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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대본

[태조 왕건] 108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7.12.05|조회수2,446 목록 댓글 0

태조 왕건 <제 108회>

 

줄거리
 


궁예는 강장자에게 태자들을 보위에 올리려고 하는 등 대역에 뜻을 두었다며, 관심법으로 사형을 명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연화는 궁예에게 서서히 복수의 칼날을 갈기 시작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태기가 있음을 알고 다시 한 번 절망하게 된다. 한편, 순군부의 낭장 임춘길은 백제국에서 보낸 첩자의 꼬임에 넘어가 왕건을 다시 모함한다. 다시 궁지에 몰린 왕건. 궁예의 곁에서 한결같았던 그가 드디어, 모든 것에 회의를 느끼고 다시 철원을 떠날 것을 결심하게 되는데...



 

씬 황궁 의형대 국문장(낮)

 

        지난 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카메라는 왕건과 신료들 면면의 표정을 지나 종간과 은부를 지나고 강장자들을 지나 궁예를 잡는다. 펄럭이는 깃발 소리만 들린다. 궁예가 관심법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아주 오랜 후에 궁예는 서서히 그 외눈을 뜬다. 신하들은 더욱 얼어붙는다. 궁예는 계속 침묵을 지키며, 죄인들을 보다가 주장자를 두어번 내려친다.

 

궁예    듣거라. 나는 이미 관심법을 통해 다 보았노라. 짐의 관심법은 하늘과 땅을 들여다보고 사람의 마음을 꽤 뚫어 거짓과 진실을 볼 수 있느니라. 마음을 관하여 그 속을 보는 것이 관심법이다.

모두들  ..........

궁예    이 불쌍한 것들아. 어찌하여 자비로운 이 미륵이 갱생하여 살길을 열어 주었음에도, 따르지 못하는고..? (정말 슬픈 듯) 왜, 이토록 나 미륵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고..? 그대, 강장자는 들어라.

강장자  예, 폐하....

궁예    이 자리는 내가 미륵으로 와 있는 자리니라. 장인도 없고, 사위도 없으며, 오로지 미륵과 죄인의 자리이니라.

강장자  억울하옵니다, 폐하.... 살펴헤아리시오소서.

궁예    이미 관심법으로 다 보았다 하였다. 역모를 꾸몄는가, 아니 꾸몄는가?

강장자  천...천만의 말씀이옵니다. 역모라니, 그런 것은 없었사옵니다.

궁예    쯧쯧쯧..... 바른 대로 말을 하면 살려 줄 수 있었을 텐데..... 여봐라, 이름이 기전이라고 했느냐?

기전    예, 폐하.....

궁예    어찌된 일이냐? 저 강장자가 역모를 꾸몄느냐, 아니 꾸몄느냐?

기전    (눈치보며 떨다가) 소..소인은 모르옵니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옵니다.

궁예    내군에 금부장은 무얼 하느냐? 마군이로다. 이미 다 나와 있는 것을 아니라고 하는구나. 쳐죽여라. 

기전    폐하, 폐하......말씀 올리겠사옵니다, 폐하.

궁예    죽여라.

 

        그대로 철퇴가 날아간다. 기전은 비명을 지르며 죽는다. 궁예가 다시 능달을 본다.

 

궁예    능달이라고 하였지?

능달    예, 폐..폐하... 말씀 올리겠사옵니다. 다 말씀 올리겠사옵니다. 분명 그런 일이 있었사옵니다. 두 분 태자마마를 보위에 올리기로 강장자분과 죽은 아학사가 약조하는 것을 보았사옵니다, 폐하. 폐하, 살려주시오소서.

 

        신료들이 웅성거리며 서로를 본다. 종간은 낭패다 싶어, 눈을 감고. 왕건이 입술을 굳게 다문다. 태평, 능산들도 무거운 표정이다. 임춘길은 덜덜 떨고 있다.

 

궁예    그렇지. 너는 정말 바른 말을 하였다. 내 관심법에 그렇게 보였어. 이보시오, 강장자. 이래도 아니오이까?

강장자  아, 아니옵니다. 그것은 모함이옵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없었사옵니다.       

궁예    딱하구먼. 그래도 실토를 하지 않는구나. 능달아, 그렇지 않느냐?

능달    그...그러하옵니다, 폐하. 사실이옵니다.

궁예    그래, 너는 바른 말을 하였다. 그러나, 앞서 충분한 시간을 주었음에도 너는 말하지 않았다. 이미 면죄 받을 기회를 놓친 것이다. 능달이도 죽여라.

능달    폐하, 살려주시오소서, 폐하.....신은 바른 대로 말하였사옵니다, 폐하.

궁예    (주장자를 치며) 죽여라. 뭘 하는가?

 

        대답 소리와 함께 능달도 비명을 지르며 죽어간다. 궁예는 냉소를 지으며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주장자로 강장자를 가리킨다.

 

궁예    그렇다. 그대는 나의 장인이었다. 그러나, 나는 하늘을 대신하는 미륵이며, 이 태봉국을 다스리는 황제이니라. 지금의 나에게는 그런 인간관계는 필요 없다. 그대들은 나의 중생들이며, 또한 백성들이다. 너희 딱한 백성들이 감히 나를 죽이고, 나의 어린 아들들인 태자들을 앞세워 역모를 꾀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래도, 할 말이 있는가?

강장자  폐하... 살펴 헤아리시오소서. 신은 그저... 죽은 아지태가 몇 번 만나자고 하며 태자마마를 운운하길래....

궁예    그래서, 어찌하였는고?

강장자  (더욱 엎드리며) 살려주시오소서, 폐하. 그것뿐이옵니다. 신의 입으로 역모를 꾀한 적은 없사옵니다, 폐하....

궁예    살려달라? 살려달라...?

 

씬 황후전

 

        연화가 내군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여전히 이곳은 제조, 슬이가 있다.

 

연화    네 이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문을 막는 게냐? 나는 황후이니라. 국문장으로 갈 것이다. 길을 열지 못할꼬..?

제조    어서 길을 여시오. 황후마마께 이게 무슨 짓들이오?

슬이    길을 여시오.

연화    비키지 못할까?

내군부장        송구하옵니다, 황후마마. 폐하의 영이시옵니다. 국문이 끝날 때까지 이곳을 떠나게 하시지 말랍시는 엄명이 계셨사옵니다.

연화    무슨 일들을 하려고..... 대체, 어떤 일을 저지르시려고... 나를 이곳에 꼼짝못하게 하신단 말인고..? 어서 폐하께 말씀드려라. 나도 국문장에 갈 것이니라. 이놈들아, 길을 비켜라.

 

씬 다시 국문장

 

        모두의 눈이 초미의 관심으로 강장자를 보고 있다. 궁예가 그런 강장자를 보다가, 임춘길을 본다.

 

궁예    순군부의 낭장 임춘길은 어찌된 것이냐? 죽은 아지태와 저 강장자가 태자들을 보위를 운운하며 역모를 꾸민데 가담하지 않았느냐?

임춘길  폐하, 신은 아니옵니다. 살펴주시오소서.

궁예    아니라...?

 

        그때, 종간이 재빨리 앞을 나서며 머리를 숙인다.

 

종간    폐하, 신이 나름대로 그 사건을 많이 조사해보았사옵니다. 일찍이 왕시중도 아지태 사건을 조사하면서 순군부의 임춘길 장군을 죄가 없다고 방면한 예가 있사옵니다.

궁예    죄가 없다..?

종간    물론,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그 반역사건을 주도한 적은 없사옵니다. 오히려, 여러 가지로 국가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많은 걱정들을 제보하여 준 공이 있사옵니다.

궁예    그래요?

모두들  ...........

왕건    (의미 심상하게 보고 있다)

궁예    좋소이다. 임춘길에 관한 일은 다시 묻기로 하고, 이번 일을 처리하겠소이다. 신료들은 모두 들으라.

신료들  예, 폐하.....

궁예    사사로이 여기 강장자는 나의 장인이노라. 허나, 죄를 짓고 벌을 아니 받는다면 그 형평이 무너질 것이다. 왕시중은 인정으로 대하려 하였으나, 나는 그렇지가 않노라. 참형을 명한다. 즉시, 시행하라.

강장자  폐하.... 폐하.......?

궁예    아직도 할 말이 있는가? 무슨 할 말이 남아서 나를 부르는고?

강장자  그러하옵니다. 태자마마들을 운운한 적이 있었사옵니다. 하오나, 그만한 연유가 있었사옵니다.

궁예    연유라? 말해보라.

강장자  폐하를 시해하려 한 적은 추호도 없사옵니다. 하오나, 이 난국 속에서 황실을 지켜야 하는 의무는 누구보다도 소인에게 있었사옵니다. 폐하께서는 환후가 깊으셨사옵니다. 누가 황실을 지킬 것이옵니까?

궁예    .........?

강장자  그래서, 태자마마들을 앞세워 폐하를 쉬시게 해드리려고 한 것이옵니다. 통촉하시오소서, 폐하.

종간    (나서며) 폐하, 강장자가 비록 보위를 운운하는 대역죄는 지었사오나, 지금의 말이 결코 변명이 아닌 듯 하옵니다. 은혜를 베푸시오소서, 폐하.

왕건    (나서며) 폐하, 신이 일찍이 아지태만을 처벌하고 다른 죄인들을 방면한 것은 그 사악함이 적었고 저들이 단순하며 어리석었기 때문이옵니다. 황후마마의 어버이시옵니다. 은혜를 베푸시오소서.

강장자  .......... 이 난세에서 어떻게든 무너지지 않고, 살아 남고 싶었사옵니다. 그것뿐이옵니다, 폐하. 헤아려주시오소서.

 

        궁예는 잠시 갈등한다. 금대가 궁예를 본다. 궁예는 두어번 주장자를 친다. 그리고, 냉혹하게 말한다.

 

궁예    대역죄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처형하라!

신료들  .........

궁예    처형하라, 무엇 하는가?

강장자  폐하, 폐하......

 

        그것과 더불어 강장자의 목소리는 끝난다. 피를 뿌리며 벌써 절명해 쓰러지고 있는 것이다. 신료들이 침묵으로 보고 있다. 아무도 말이 없다. 종간, 은부들도 경악해 있다. 강장자가 죽은 것이다.

 

궁예    아지태 사건은 이것으로 종결이다. 그리고, 요망한 중 석총이는 비록 지난 법회 때 죽었지만, 살펴볼수록 그 여죄가 너무도 크다.

승려들  .......... (이미 체념해 있고)

궁예    미륵이라니, 감히 짐을 빼고 어디에 미륵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너희 문도들이 왜 왕건시중을 붙들고 늘어지는고? 도대체, 그 연유가 무엇인가 알고 싶어 조사하라 하였다.

왕건    ..........

 

        눈치를 보다가 임춘길이 얼른 나서며, 부복한다.

 

임춘길  폐하, 신 임춘길 그에 관하여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궁예    그래, 그대는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아지태 사건과 관련이 되어 있지 않았었는가?

임춘길  그것은 억울한 누명이었사옵니다. 신은 단지 저기 왕시중이 그 동안 죽은 아지태와 관련하여 역모에 깊숙이 관여하였다는 것을 오늘 고하옵니다.  

 

        삽시간에 사람들이 술렁거린다. 왕건은 표정이 굳어지고, 태평, 능산들은 눈을 크게 뜨고 임춘길을 본다. 종간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다른 신료들은 모두 다시 다가올 파장이 두려워 그저 보고만 있다.

 

궁예    허허, 역모라..? 지금 역모라 하였는가, 임장군?

임춘길  예, 폐하.

궁예    말해보라.

임춘길  예, 폐하. 신은 일찍이 죽은 아지태와 동향인 관계로 여러 번 자리를 함께 한 적이 있었사옵니다. 그 때문에 오해와 더불어 누명도 썼었사옵니다.

궁예    본론을 말하라. 그대가 알고 있는 역모말이다.

임춘길  예, 폐하. 신은 아지태로부터 몇 가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사옵니다. 그 하나는 왕시중이 지난 날 송악에서 폐하께서 당하신 변의 주모자라는 것이옵니다.

궁예    ........

신료들  .........(술렁거린다)

임춘길  그때 왕씨 가문에서는 도선이 퍼뜨린 그 도선비기의 낭설을 믿고 왕시중을 옥좌에 앉히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 하였사옵니다.

능산    (발음을 정확하게) 이보시오, 임장군. 지금 누구를 모함하는 것이오? 이런 거짓말장이를 보았는가? 당신이야말로 아지태와 더불어 죽을 목숨이었는데 시중께서 불쌍히 여겨 목숨을 구해주시었소. 이럴 수가 있는 게요?

종간    어허, 지금 증인이 증언을 하고 있는데 웬 말들이 그리 많은가? 계속 하시오, 임장군.

왕건    ............

임춘길  아지태는 분명 그리 말하였사옵니다. 더불어 아지태는 여러 번 왕시중에게 옥좌에 앉으라고 한 적이 있었다고 말하였사옵니다. 하오나, 신은 사인이 중대하고도 엄청나며 믿기 또한 어려워 미처 고변하지 못하였사옵니다. 

박지윤  폐하, 임장군의 말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믿기가 어렵사옵니다. 이미 그 일은 폐하께서 송악에서 관심법으로 다 처리하신 일이옵니다. 괘변인 듯 하오니 살펴 들으시오소서.

은부    아직 폐하의 평결이 끝나지 않으셨소이다. 다 듣고 말씀하시오.

궁예    계속 해보라.

임춘길  또한, 폐하께서 벌을 내리신 중 석총이도 청주로 당시 전선에 나가있던 왕시중을 찾아가 다음 미륵이 왕시중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하옵니다. 그 자체가 바로 신은 반역이라 생각하여 오늘 아뢰는 것이옵니다. 통촉하시오소서.

궁예    (한참 생각하다가 웃는다) 여기 그 석총이의 문도들이 있어. 그러나, 임장군이 말한 것처럼 과연 석총이가 왕시중에게 다음에 미륵이 될 것이다, 아니 될 것이다 말한 것을 들은 자는 없다는 것이야. 그러니, 어찌하겠는가? 더 이상 논할 것이 없다.

종간    아니옵니다, 폐하. 지난번에는 아지태 혼자서 지껄인 것이라 어디까지를 믿어야 할 지를 몰랐으나, 지금은 들은 자가 다시 나타났사옵니다. 증인이 생겼다는 것이옵니다. 엄히 추국하시오소서.

궁예    추국이라...왕시중을 추국하라..?

 

        그러나, 왕건은 표정의 변화가 없다. 그저 그렇게 담담히 서 있는 것이다. 한참보고 있던 궁예가 껄껄 웃는다.

 

궁예    들었는가, 왕시중? 지금 자네가 역모를 꾀하고 있었다는 것이야.

왕건    예, 폐하. 들었사옵니다.

궁예    많은 이들이 왕시중을 물고 늘어지고 있어. 하긴, 우리 속담에 그런 말이 있어. 어찌 때지 않은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고 말이야.

왕건    ........

궁예    아니 그런가, 왕시중?

왕건    이미 신이 변명을 할 자리가 아님을 알고 있사옵니다. 폐하의 분부를 기다리옵니다.

궁예    (한참 보다가) 허허허, 그렇다는 것이야. 왕시중 그대는 나의 아우이다. 사람이 똑똑하여 자리가 높아지면 시기하는 자들이 많은 법이다. 그럴수록 몸을 삼가고 옷깃을 여미어 한 걸음 떼는 것도 소리 없이 가야 할 것이다. 오늘의 일을 거울 삼아 다시는 이런 일에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도록 하라. 

왕건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미륵을 운운한다는 것은 대역죄에 속하는 것이다. 누구든 차후에 이런 말을 다시 하는 자가 있으면 역시 엄벌에 처할 것이다. 저 석총이의 문도들은 모조리 데리고 나가 까마귀밥이 되게 하라. 오늘의 국문은 이것으로 끝이니라.

주지    너무하시옵니다. 미륵을 칭하시는 분이 어찌 이리도 잔혹하시옵니까? 신들의 목숨을 구제하여 주시오소서, 폐하. 살려주시오소서, 폐하.

궁예    가자. 왕시중도 오후 참에 대전으로 들라.

왕건    예, 폐하.

 

        궁예는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내딛는다. 내관들이 따라 붙는다. 그 속에 진내관도 눈치를 보며 뒤를 따른다. 신료들이 소리 없이 궁예를 보내고 있다. 임춘길과 왕건의 시선이 잠시 교차된다. 임춘길은 그렇게 고개를 숙이며 가버린다. 왕건이 의미 심상한 웃음을 웃고 있다. 그런 표정에서 디졸브.....

 

씬 황궁 외경(밤)

 

씬 동 황후 전

 

        연화가 입술을 떨며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진내관이 서 있다.

 

연화    돌아가셨다고? 아버님이 그예 신료들이 보는 그 국문장에서...?

진내관  예, 황후마마.

제조,슬이       ........

연화    돌아가셨다고... 그게 참말인가? 그게 사실이야?

진내관  (울며) 그러하옵니다, 황후마마. 심지를 굳게 가지시오소서.

연화    (제 정신이 아니다) 아니다, 진내관이 잘못 보았을 것이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 그래도 장인이 아니냐? 어떻게 사위가 장인을 죽인단 말이냐? 어떻게.....

 

        말을 하다가 한동안 연화는 멍하니 있다. 도저히 믿기 지가 않는다. 그러다가, 정신이 나는 듯 벌떡 일어선다.

 

연화    나는 믿지 못하겠다. 내 이 두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다. 가보자꾸나. 아니다, 폐하께 가자꾸나. 어서 가자. 

제조    고정하시오소서, 황후마마.

연화    고정이라니..? 내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하지 않느냐? 미치광이다. (절규, 발악 같은) 폐하가 아니라 미치광이가 아니냐? 장인도 아버지가 아니더냐. 악마가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제 안해의 아버지를 죽일 수가 있단 말이냐? 미치광이다. 황제가 아니다. 미치광이다. 가자. 내가 그 미치광이 얼굴을 보아야겠다. 가자.

모두들  (만류하며) 마마....

연화    어서들 가자. 지금 들은 것들이 모두 사실인지 아닌지 알아야겠다. 어서 가자. 어서.......(하다가 헛구역질을 한다)

모두들  마마.......왜 그러시옵니까, 마마?

연화    (절규처럼) 저주로구나. 저주가 내리고 있구나. 그예 이 황실에 저주가 내리고 있어. 오, 오, 천지신명님, 이 일을 어이하오리까? (계속, 절규하며) 이 일을 어찌하오리까?

 

        그렇게 내뱉다가 연화는 실신한다. 모두들 달려들며 걱정한다.

 

모두들  마마...마마......?

 

씬 동 황궁 내원

 

        종간과 은부가 마주해 있다.  

 

은부    황후전이 지금 난리라 하옵니다.

종간    그렇겠지. 사실 강장자가 죽으리라고 까지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어.

은부    오늘의 일을 어찌 보아야하겠사옵니까?

종간    뭘 말인가?     

은부    예전 같으면 폐하께서 환후가 깊으시기 때문에 병적으로 그리하셨다 할 수 있지만, 오늘 일은 아니지 않사옵니까?

종간    물론 아니지. 어쩌면 그것이 진정한 폐하의 모습이실 수가 있어. 그 무서운 냉정함 말일세. (사이) 처음에 강장자는 황후마마와 왕시중의 정혼이야기로 불려 들어왔어. 그리고, 그 일을 추궁 받다가 다시 다른 죄에 의해서 갇혔지.

은부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종간    폐하께서는 여러 가지로 위엄이 손상되신 것들에 대해서 정리하실 필요를 느끼신 것일세. 이번 국문에 단초가 된 것은 지금은 다 잊혀지고 버려진 것 같지만 바로 그 정혼이야기였어. 아지태가 물고 늘어진 그 이야기 말이야. 폐하께서 자존심이 상하셨지. 누군가를 혼낼 필요가 생기신 것이야. 그리고, 더불어 이 일을 통해서 여러 가지 불편하시었던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씻어내시려 했던 게야.

은부    헌데, 하필 왜 그 중에서도 강장자를...?

종간    강장자는 본래 가벼운 사람일세. 상징적으로는 그러나 황실외척의 어른이야. 본보기를 보이신 것일세. 누구든 대권에 대자도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곧 죽음이다.

은부    (고개를 끄떡인다) 과연 그런 것 같사옵니다.

종간    그러나, 득보다는 실이 커. 어쨌든 독재나 독선은 많은 적을 만들게 되어 있어. (가벼운 한숨) 죽일 필요까지는 없으셨는데....

은부    그러나, 임춘길이라는 자가 왕시중을 물고 들어온 일은 우리로써는 나쁠 것이 없는 것 같사옵니다.

종간    그러기 때문에 내가 그 자를 변명해 주어 살려 놓은 것일세. 폐하께서는 비로소 왕건이를 경계하기 시작하셨네. 지금에 와서 말일세. (한숨) 아주 오래 전부터 입이 닳도록 권해드린 그 말을 이제서야 믿기 시작하신 것일세. 그렇다면, 제거해야지. 기회를 찾아야지.

은부    하지만.... 폐하께서는 그러면서도 여전히 왕건이를 감싸셨사옵니다. 사실 오늘 국문에서는 마음만 잡수신다면 얼마든지 벌을 내릴 수도 있는 상황이 아니었사옵니까?

종간    그렇게 쉽지는 않네. 수십 년 쌓은 정일세. 의심은 시작하셨지만, 칼을 들기까지는 역시 시간이 필요하네. 지금도 왕건이가 대전에 있다지?

은부    그렇다하옵니다. 국문이 끝나고 대전으로 들었다 들었사옵니다.

종간    상당히 놀랐을 게야. 폐하께서 처음으로 강한 어조를 왕건이를 추궁하셨단 말일세.

 

씬 동 대전 복도

 

씬 동 대전 안

 

        궁예와 왕건이가  마주해 있다. 어주상이 올라와 있다.

 

궁예    독한 소주가 아니라, 국화주일세. 들게.

왕건    예, 폐하.

궁예    오늘 있었던 국문을 어찌 보는가?

왕건    폐하께서 내리신 꾸지람을 깊이 생각하며 반성하고 있사옵니다.

궁예    그건 사실이야. 그럴 필요가 있네, 아우.

왕건    ......

궁예    왜 많은 사람들이 하필이면 아우를 붙들고 늘어지냔 말일세. 왜?

왕건    신이 부족한 까닭이옵니다.

궁예    아니지. 그 반대일세. 너무 잘난 탓이야. 그러나, 그 때문에 죽는 사람이 많다네. 너무 잘나서 죽는 사람 말이야. 해야 할 일이 많을 때에 싸움질에 끌려 다닌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아니 그런가?

왕건    예, 폐하, 명심하겠사옵니다.

궁예    (의심처럼 한참 보다가) 그것 참.... 중요한 일마다, 의심스러운 일마다 아우가 관계되어 있단 말이야. 열 번 찍어서 아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했어. 그 동안 수없이 아우를 시기하고 질투한 사람들이 있었어. 나는 그 때마다 아우 편을 들었어. 허지만, 이야기가 갈수록 구체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야.

왕건    .........

궁예    오늘 임춘길이 같은 경우는 아지태처럼 아주 그럴싸하게 말을 했어. 그 자는 순군부의 수장이야. 내가 물론 듣지 않았지만 말일세. 왜... 왜 사람들은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할까? 역시 대답은 하나야. 아우는 그만큼 총명한 것이야. 이 형을 대신할만큼 말이야.

왕건    (꿈틀하며)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폐하께서는 하늘을 대신하는 미륵이시고, 황제이시옵니다. 이 아우는 그저 폐하의 영에 따라 죽고 사는 한낱 어리석은 신하에 불과하옵니다.

궁예    그래, 형과 아우 사이는 분명하지만, 오해받을 짓을 해서는 아니되네. 명심하게나.

왕건    예, 폐하. 참으로 망극하옵니다.

궁예    내가 다소 건강이 회복이 되었네. 그 동안 참으로 어려웠어. 중요한 일은 다시 내가 챙길 것일세. 잘 도와주게나.

왕건    이를 말씀이시옵니까, 폐하?

궁예    해야 할 일이 많아. 아우가 다시 시작한 저 북벌도 아주 성과가 많다고 들었어. 더 많은 세금을 걷고, 더 많은 군사를 조련하고,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신라를 도모할 필요가 있어. 아니면, 백제가 먼저 신라를 먹어 치울 것이야. 지금 대야성을 공격하고 있다지?

왕건    그렇게 들었사옵니다, 폐하.

궁예    그래, 우리라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지. 할 일이 많아. 할 일이 정말 많단 말일세, 아우.

왕건    .........?

 

씬 왕건의 집 외경

 

씬 동 집 사랑

 

        두 유씨와 태평, 능산, 왕신들이 모여 있다. 모두 걱정스럽다.

 

유씨    밤이 깊었는데, 서방님께서 아니 돌아오시니 걱정이옵니다.

태평    폐하와 자리를 함께 하고 계시옵니다. 아무래도 나누실 말씀이 많으실 것이옵니다.

유씨    황후마마의 아버님께서 그렇게 참혹하게 벌을 받았다고 하셨습니까?

수인    세상에... 그 자리에서... 철퇴를 내리셨다고요?

능산    그러하옵니다. 참으로 믿기지 않는 일이었사옵니다.

왕신    형님께서도 걱정이시옵니다. 공개적으로 국문장에서 꾸지람을 듣지 않으셨사옵니까?

태평    폐하께서 주군을 의심하신다는 것을 처음으로 신료들 앞에 보이신 것이옵니다. 앞으로의 향배가 참으로 순탄치 않을 것 같사옵니다.

능산    나주에서 지금 몇 번째 위급하다는 소식이 오고 있는 것으로 아옵니다만은.... 이럴 때에 차라리 그곳에라도 가 계시는 것이...

태평    그렇습니다. 내용으로 보면 상당히 나주 상황이 다급해 보이옵니다만, 가만히 살펴보면 다소 명료하지 않은 일이기도 하옵니다.

왕신    그건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태평    이 사람이 생각하기로는 아무래도 나주마님께오서.... 장군들과 의논하여 모종의 계획을 세우시는 것 같사옵니다.

유씨    무얼 말이옵니까?

태평    지금 백제군은 대야성으로 몰려가 있어서 나주에서 전쟁을 벌릴만한 여력이 없사옵니다. 그런데도, 급보가 계속해 올라오고 있사옵니다. 즉, 주군을 그쪽으로 모시려는 생각이 아니신가 사료되옵니다.

모두들  (끄떡인다)......

태평    지금으로써는 그리로 가시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시옵니다. 이미 내원 그 사람과 순군부의 임춘길이라는 자가 모종의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사옵니다. 주군을 해치려는 음모말이옵니다.

수인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서방님께서는 그것을 아시면서도 왜 저렇게 아무 대책 없이 계시는 것이옵니까?

능산    주군께서는 그런 분이시지요. 형편이 곤란하다고 해서 당장 뒤로 돌아서시는 일은 못하시는 분이옵니다, 허허허.

태평    그것이 주군께서 우리 같은 많은 무리들을 따르게 하는 큰 힘이 아니시옵니까? 

유씨    그나저나, 황후마마댁에 그러한 날벼락이 떨어지셨으니,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참으로 폐하께서는 눈물도 인정도 없으신 분 같사옵니다. 어떻게 그러실 수가....

 

씬 강장자 집 마당

 

        상청이 마련되어 있다. 백씨와 그의 양자가 상복차림으로 위패 앞에 앉아 있다. 백씨가 중얼거린다.

 

백씨    아이고, 부처님... 이것이 꿈이옵니까, 생시이옵니까? 폐하가 아니라 사람백정이 아니옵니까? 어떻게 사위가.... 내 딸을 통해서 아이까지 본 사람이 제 장인을 이렇게 쳐죽일 수가 있사옵니까? 아이고, 부처님.... 이런 퍠륜이 있을 수 있사옵니까?

양자    .........

백씨    아이고, 우리 황후마마가 지금 어찌하고 계실꼬?

 

씬 황궁 황후전

 

        연화가 기진맥진하여 누워 있다. 슬이가 살피고 있다. 계속해 눈물을 흘리는 연화. 그러면서도, 눈에는 독기가 펄펄 일고 있다.

 

연화    그래도, 아버님 시신은 수습하셨다고 하였느냐?

슬이    예, 황후마마.

연화    기가 막힌 일이로구나. 하늘이 무너지는 이 정황 속에서 다시 아이가 들어섰구나. 부처님도 무심하시지. 왠 형벌을 이리도 심히 내리시는고?

슬이    고정하시오소서. 이러시다 황후마마께서 환후 얻으실까 두렵사옵니다.

연화    저 미치광이가 내 아버지를 죽였다. 이제 저 칼이 어디로 갈지 또 누가 알겠느냐? 태자들을 오라 한 일은 어찌 되었느냐?

슬이    제조상궁이 갔으니, 모셔올 것이옵니다.

연화    무섭다. 무서운 일이다. 설마 했던 일들이 하나 둘 사실로 나타나고 있구나. 이 일을 어찌하면 좋으냐? 결국은 내가 황후가 되어서 우리 집안을 송두리째 망가뜨리고 있구나.

슬이    그 국문장에서 왕시중님도 큰 곤경을 겪으셨다 하옵니다.

연화    오죽하였겠느냐? 처음부터 나와 왕시중 그분의 일로 비롯된 일이다. 황제라 하여 차마 그 일은 입에 꺼내지 못하고 다른 것을 빙자하여 제 화풀이를 한 것이 아니냐? 간신들은 그것이 기회다 싶어 물고 늘어졌을 것이다. 이런 황실에 무슨 희망이 있겠느냐? 이럴 때 아이가 또 생기다니... 참으로 한스럽구나. 태자들이 위험하다. 뭔가 방책을 세워야 한다. 뭔가...

 

        그때, 제조상궁의 소리가 들려온다.

 

제조    (E) 황후마마, 두 분 태자마마께서 오셨사옵니다.

연화    (벌떡 일어나 앉으며) 오, 그래, 뫼셔라.

 

        두 태자가 제조상궁, 진내관과 함께 들어선다. 태자들은 곧 어마마마 부르며 울며 안긴다.

 

신광    어마마마, 얼마나 상심이 크시옵니까? 이야기 들었사옵니다.

청광    어마마마...

연화    오, 우리 두 태자... 어찌하면 좋소? 폐하께서 망령이 드셨습니다. 나는 우리 두 태자가 또 걱정입니다. 어이할꼬...대체 이 일들을 어이할꼬....

두태자  (울며) 어마마마......

연화    몸 조심들 해야 합니다. 폐하는 지금 악마가 씌였습니다. 악마가 아니고서야 이럴 수가 없습니다. 오, 어이할꼬.... 어이할꼬....

 

씬 왕건의 집 외경(낮)

 

씬 동 마당

 

        왕건이 마당가에 서서 연못에 노는 잉어들을 보고 있다. 조심스럽게 태평이 서서 함께 본다.

 

태평    새벽녘에야 돌아오셨다 들었사옵니다만....

왕건    오, 그랬네. 폐하를 뵈면 자주 밤을 세운다네.

태평    별다른 말씀은 없으셨사옵니까?

왕건    늘 그저 그런 것이지, 뭐.....

태평    나주전선이 상당히 화급하다고 하옵는데, 그 이야기는 아니하셨사옵니까?

왕건    왜, 그리로 보내달라고 청하라 그 말인가?

태평    그 방법밖에는 묘수가 없는 것 같사옵니다. 어쨌든 이 곳은 떠나셔야 하옵니다.

왕건    글쎄... 하긴, 그러하이. 북벌군들 소식도 오늘 아침에 들었는데, 그 성과가 괄목할만하다 하였네. 그렇다면, 딱히 내가 당장 해야 할 일도 없고....

태평    북벌이 문제가 아니옵니다. 폐하께서 환후를 떨치고 일어나시어 모두 손수 챙기고 계시옵니다. 주군께서 하실 일이 없사옵니다.

왕건    그러게 말일세.

태평    나주로 보내달라 청하시오소서. 그 청이 먹힐 수 있사옵니다.

왕건    당장 그런 청을 하면 도망치는 꼴밖에는 아니되네. 안타깝네. 폐하께서는 죽은 아지태의 망령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계셔. 역시 아지태는 희대의 간웅이었어. 죽어서도 엄청난 괴력을 보이고 있으니 말일세.

태평    순군부의 임춘길이가 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말씀이 없으셨사옵니까?

왕건    공연한 소문이 날 리가 있겠는가? 조심하라, 그러시더군. 그 임춘길이도 딱해. 사정이 급하고 죽게 생겼으니까, 나를 끌고 들어간게야.

태평    그렇다하더라도, 인면수심이옵니다. 논할 가치조차 없는 인물이옵니다.

왕건    오죽 급하면 그리하였겠는가? 허허허.

 

씬 임춘길의 집 사랑

 

        임춘길과 도우가 차를 마시고 있다. 임춘길이 고개를 숙인다.

 

임춘길  모두다 대사 덕분이오. 모두들 철퇴로 맞아 죽었는데, 나는 살았소이다. 그 관심법은 이유가 불문이올시다. 황제가 죽이고 싶으면, 죽는 것이지요. 내가 거기서 살아 남았소이다. 대사 덕분에....

도우    그리 말씀하시니, 고맙사옵니다. 그러나, 안심하실 일은 아니옵니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정국이옵니다. 언제 무엇이 어떻게 변할 지 모르는 일이옵니다.

임춘길  그러게 말이오. 나도 정신이 하나도 없소이다. 다 끝난 그 아지태 사건이 이렇게 다시 불거질 줄은 누가 알았겠소이까? 세상에.... 강장자가 죽었습니다. 황후의 아버지예요.

도우    그러니 조심하라는 것이옵니다. 아마도 왕건시중의 공격이 있을 지도 모를 것이옵니다. 그 점도 생각하시오소서. 기왕에 벼랑으로 몰기 시작했으면 밀어서 떨어뜨려야 하옵니다.  

임춘길  글쎄올습니다. 하지만, 워낙 폐하와 왕시중의 사이가 두터워서 말이지요. 허지만, 내원 그 사람이 내 역성을 들고나섰습니다. 나쁜 일은 아니지요.

도우    그렇사옵니다. 아무튼 조심하시오소서.

임춘길  마땅히 거처가 없다면, 이 사람 집에 머물러 주시구료. 내가 이거 큰 은인을 만났소이다.

도우    고맙사옵니다. 그리 하겠사옵니다, 장군.

 

        회심의 미소를 짓는 도우의 표정에서....

 

씬 신라의 대야성

 

        멀리 대야성이 보인다. 그 앞으로 수많은 군대가 늘어서 있고, 기치창검이 번뜩인다. 백제군의 공격준비가 완료된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 수많은 군영이 보인다.

 

씬 그 중 어느 군막 안

 

        최승우가 밀지를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끄떡이며 다시 읽고 나서 접는다. 견훤이 그런 최승우를 보고 있다.

 

최승우  신이 보낸 첩자가 태봉국에 안착을 한 것 같사옵니다.

견훤    허허, 그런가?

최승우  태봉국에서는 그 궁예왕이 친정한 자리에서 큰 국문이 있었다 하옵니다. 원로대신격인 궁예왕의 장인이 형을 받았고, 여타 신료들도 죽거나 문책을 받았다고 하였사옵니다.

견훤    허허, 그렇다면 파진찬이 시도하고 있는 일들이 효험을 보는 것이 아닌가?

최승우  그런 것 같사옵니다. 이제 뿌리가 박혔으니, 뭔가 이루어지지 않겠사옵니까? 조금 더 기다려 보아야겠사옵니다.

견훤    암, 그 때문에 우리가 다소나마 안심하면서 이 대야성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헌데, 대체 언제 공격들을 할 것인지, 도무지 말들이 없어.

최승우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여전히 대야성은 단단한 것 같사옵니다.

견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아, 그걸 모르고 왔는가? 빈틈을 찾아야지. 그리고, 공격해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닌가?

최승우  곧 제장들이 모일 것이옵니다. 페하께서 친림하시어 대사를 논의하시오소서.

견훤    그래야겠네. 이거 벌써 여기 와서 얼마나 세월을 보냈느냐 말이야?

 

        그런 견훤의 표정에서......

 

씬 대야성

 

        그 옛날 대야성을 지켰던 노장들이 보인다. 노장1,2,3의 표정들이 모두 숙연하다. 그리고, 새로운 인물인 "계강"이 보인다. 그가 노장들을 이끌고 멀리 적진을 보고 있다.

 

계강    백제군이 온지 벌써 며칠이 되었소이다. 아마도 우리의 빈틈을 노리는 모양인데, 이 성은 죽어도 빼앗겨서는 아니됩니다.

노장1   이를 말이오이까? 저들은 지난번에도 우리들의 저항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소이다, 상대등 어른.

노장2   참으로 집요한 사람이올시다. 견훤이 말이올시다. 십오년 전에도 왔다가 불쌍한 모습으로 돌아갔는데, 또 왔소이다.

노장3   아직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소이다. 우리 모두 여기서 죽읍시다. 우리 몽뚱이로 성을 더 높이고, 저들을 막고자 한다면 어찌 들어올 수가 있겠소이까?

계강    듣자하니, 참으로 감격스럽사옵니다.

노장1   당연한 이야기올시다. 내 조국 신라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일이라면 어딘들 가지 못 하겠소이까? 못된 견훤이가 다시 온다기에 우리 노장들이 왔소이다.

계강    고맙사옵니다. 소장 또한 목숨을 바쳐 이 성을 지킬 것이옵니다.

해설    대야성, 합천의 남쪽에 있는 성이었다. 이 성은 전 삼국시대부터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역으로써 군사적 요충지였다. 동쪽으로는 낙동강이 있고, 남동쪽으로는 의령군, 북쪽으로는 고령군, 그리고 서쪽으로는 거창군에 인접한 지역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산과 비계산, 두무산, 오도산 같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천해의 요새를 이룬 지역이다. 백제로써는 이곳을 함락시키지 않고서는 신라의 서라벌로 가는 길이 너무도 멀었다. 견훤이 집요하게 이 성을 도모하려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씬 백제 군영

 

        견훤이 대형군사지도를 걸어 놓고 제장들을 질타하고 있다.

 

견훤    이보게, 신덕장군.

신덕    예, 폐하.

견훤    이곳에 온지 벌써 여러 날이 지났어. 선봉을 맡은 장수로써 어찌 생각하는가?

신덕    폐하께서 아시는 바와 같이 저 성은 난공불락의 철옹성이옵니다. 신들은 지금 백방으로 첩자를 풀어 성의 빈곳을 찾고 있사옵니다.

견훤    그게 무슨 소리야? 어차피 전면전이 아닌가? 성문을 부수고 넘어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어. 사방이 산으로 막혀 있는데, 다른 길이 없지 않는가?

신덕    동쪽으로 낙동강 지류인 황강이 있사옵니다. 이쪽으로 기습부대를 보내면서, 정면으로 공격하는 작전을 연구 중에 있사옵니다. 좀 더 시간을 주시오소서.

견훤    뭐, 그렇게 말한다면야 더 기다려보겠지만 누구보다도 내가 저 성을 잘 알아. 저곳은 정면돌파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어. 지독한 성이란 말이야. 다른 길이라고는 바늘구멍 하나 없어.  

신덕    그렇사옵니다. 특히나 신의 수하들을 통하여 알아본 바에 의하면 신라의 상대등 계강이라는 자가 몸소 나와 군사들을 지휘한다 하옵니다.

능애    (놀라며) 신라의 상대등이 직접 나왔단 말이오?

신덕    예, 뿐만 아니라 그 옛날 이 전투에 참여했던 늙은 장수들이 다시 나와 앞을 서서 군사들을 지휘한다 하옵니다.

추허조  그까짓 늙은이들을 뭘 걱정한단 말이오. 우리는 군사가 일만이 넘는 대군이올시다. 밀어 부칩시다.

공직    그러나, 상대를 무시해서는 아니됩니다. 우리는 십오년 전에도 이곳에서 쓰라린 경험을 하였소이다.

애술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올시다. 폐하께서 친정을 나오신 전장터올시다. 뭘 더 망설인단 말이오?

최승우  그러나, 저 견고한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선봉을 신덕장군이 맡았으니 기다려 보십시다.

최필    옳은 말씀이십니다. 한번도 아니고 두번째로 온 전장터이니 용의주도하게 작전을 짜서 성공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옵니다.

김총    신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폐하, 서두르실 필요가 없사옵니다. 문제는 저 성을 함락시키느냐 못시키느냐 그것에 있사옵니다.

견훤    제장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대부분 신중하게 생각하고 전투를 개시하자는 쪽인 것 같구먼. 아무튼, 신장군에게 맡긴 전투이니 그 의지를 따르도록 하겠네. 허나, 내 말이 맞을 게야. 저 대야성은 방법이 없어. 정면, 정면을 돌파하는 것 뿐이야. 그리고, 이보게, 신장군.

신덕    예, 폐하.

견훤    우리 여기 두 태자 말이야. 지난번에 중군에 배치를 하였는데, 그건 너무 약한 것 같아. 모름지기 전투를 경험하려면, 선봉이 중요해. 자네와 함께 선발대에 세우도록 하게.

능애    (놀라서) 폐하, 태자마마들을 선봉에 세우시다니요? 너무도 위험하옵니다.

최승우  그렇사옵니다, 폐하. 그 분부는 거두시오소서.

견훤    그렇지가 않아. 범의 새끼는 범답게 커야 하는 것이야. 자신의 목숨이 무서워 전장터에서 앞도 서지 못한다면 어떻게 수많은 백성들을 끌고 갈 수 있단 말인가? 앞에서 싸워봐.

신검,양검       예, 폐하.

견훤    그리고, 신장군. 너무 시간 끌 것 없어. 이미 적의 상황을 다 알았다 하니, 수삼일 내에 공격을 시작하도록 하게. 알겠는가?

신덕    예, 폐하. 그리하도록 하겠사옵니다.

견훤    이번에는 저 성으로 입성을 해야 하네. 그래야 하고 말고... 지금 내 나이 오십이야. 서른 다섯 때에는 젊어서 객기를 부리다가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아니야. 천하가 이 견훤이를 보고 있단 말이야. 반드시, 반드시 넘도록 하게.

 

씬 나주 관아 외경

 

씬 동 관아 안

 

        오씨, 다련군, 김언, 윤신달, 전이갑들이 모여 있다.

 

다련군  지금 백제군의 동향은 어떻소이까?

김언    우리의 의도를 아직은 지켜만 보고 있사옵니다. 우리 군은 백제군 진영으로 전진 배치되어 있사옵니다. 영이 다시 떨어지는 대로 저들을 공격할 준비가 끝났사옵니다.

오씨    그러면, 결국 우리가 원하지 않는 전투를 시작해야 되지 않습니까?         

윤신달  허허허, 그렇다고 해서 전면전은 아니옵니다. 철원 황도에서도 이곳 나주가 급하다는 것을 그쯤은 되어야 믿을 것이옵니다.

전이갑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조금 전에 도착한 전령들의 말을 들으니, 시중께서 더욱 더 위험에 몰리고 계신 것 같사옵니다. 폐하의 장인인 강장자가 처형되었다 들었사옵니다.

오씨    저도 들었사옵니다. 일부 군부의 대신들이 시중이신 서방님을 모함한다는 것도 들었사옵니다.

다련군  황제가 병석에서 일어났다는 구료.

김언    그러나, 잠시 시중께 맡겼던 정권을 거두어 갔다 들었사옵니다. 이것은 지극히 위험한 징조이옵니다. 권력 암투가 극에 달한 철원이옵니다. 우리 나주에서 빨리 서둘러야 합니다.

다련군  (한숨) 헌데, 왕시중이 우리 의도를 지금쯤 충분히 알았을 것인데도, 아무 반응이 없구료. 문제는 왕시중이 움직여야 하는 것이네 말이오.

오씨    다, 알고 계실 것이옵니다. 그러면서, 생각하실 것이옵니다. 그렇게 어리숙한 분이 아니시라는 것을 아시지 않사옵니까? 어쩌면 이미 서방님께서는 다음에 하실 일을 결정하셨을 것이옵니다. 우리는 서방님께서 별 말씀이 없으신 이상 계속해 계획한 일을 밀고 나가야 할 것이옵니다.

       

        모두들 끄떡인다. 생각하는 오씨의 표정에서......

 

씬 왕건의 집 외경(밤)

 

씬 동 집 사랑

 

        왕건은 혼자 촛불 밑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왕건    (E) 변하였다. 정말 모든 것이 변하였다. 나는 오로지 폐하의 그 강한 집념과 의리를 사모하여 왔다. (사이, 한숨) 이젠 정말 변하셨다. (사이)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많은 이들이 나를 일러 세상을 구할 인물이라고 예언했었다. 그러나, 나는 세상을 위해 나를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을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헌데, 아니지 않는가? 폐하는 나를 의심하신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요구하는 미륵의 자리로 떠밀려 가고 있다. 어찌하란 말인가? ... 폐하를 만나 뵌 지 어언 이십 년이다. 허허, 이십 년. 어느덧 내 나이 사십이야. 사십이면 불혹의 나이라 하였다. 헌데,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것인가? 무엇을 위해 지금 이 자리에까지 와 있는 것인가? 과연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혈육보다도 더 강했던 폐하와의 사이가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씬 황궁 대전

 

        궁예 역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그 옆에 최응이 있다.

 

궁예    이제 그만 너도 돌아가 눈을 붙이거라. 밤이 깊었다.

최응    예, 폐하.

궁예    저녁은 들었느냐?

최응    아직 못했사옵니다. 폐하께서도 그러시지 않사옵니까? 수랏간에 알리오리까?

궁예    허허허, 아니다. 너나 어서 가서 먹거라.

최응    조금 전에 황후전에서 연통이 올라왔었사옵니다.

궁예    무슨 일로...?

최응    황후마마께오서... 환후가 계시는 듯 하옵니다.

궁예    그렇겠지. 아비가 죽었는데 왜 아니 그렇겠느냐?

최응    하옵고...

궁예    또 뭐?

최응    황후마마께오서 태기가 있으시다 하옵니다.

궁예    태기..?

최응    예, 폐하.

궁예    허허허, 그것 참 신통한 일이다. 남과 여가 밤을 지새우니 다시 또 생명이 하나 생기는 구나. 아니 그러하냐?

최응    .........

궁예    감축할 일이다. 짐의 아들이 또 하나 생기는 모양이로구나. 허허, 하필 이런 묘한 때에 그런 일이 생기다니... 황후는 제 아비가 벌을 받고 죽어 가슴이 아프겠지만, 나로써는 축하할 일이로다. 그 아이는 내 아이가 틀림없다. 참으로 순백한 나의 아이일 게다.

최응    ........?

궁예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는 나의 아이 말이야. 아니 그러냐, 최응아?

 

        굳어지는 최응의 표정과 역시 묘한 생각에 사로잡히는 궁예의 쓴  웃음에서 스톱모션....

 

        < 108회 끝 >









첨부파일 태조왕건108.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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