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 109회>
줄거리
여전히 궁예는 왕건과 연화에 대한 의심을 놓지 못한다. 연화 또한 아버지 강장자의 죽음으로 궁예에 대한 증오심을 서서히 키워 가기 시작하고, 왕건도 계속되는 궁예의 폭정에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에 나주에서는 왕건을 불러 내리기 위해 무진주 성으로 군대를 옮겨 전투 준비에 돌입한다.드디어, 백제의 견훤왕은 15년 전에 패배를 했었던 신라의 대야성을 다시 도모하려 하지만 신라의 방비는 너무나 막강하였는데....
씬 1 황궁 외경(새벽)
어디선가 범종 소리가 들려온다.
카메라 소리를 따라 가면 황궁 안의 법당으로 이어진다. 그곳에서 승려 하나가 종루의 범종을 치고 있다.
씬 2 황궁 대전 밖
대전 안에 불빛이 밝다. 내관, 내군들이 그렇게 지켜서 있고....
씬 3 동 황궁 대전
궁예가 그대로 앉아 있는 채 범종 소리를 듣고 있다. 가만히 보면 그는 무언가를 보고 있다.
동경이다.
물끄러미 그렇게 동경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있다.
얼마만큼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었을까? 궁예는 낮은 한숨을 쉰다.
궁예 어느새 새벽이 밝고 있구나. 잠깐 사이 하루가 가고 또 오고 있어. 세상사 찰라라 하더니 정말 그런 것 같구나. 내 나이 어느덧 오십이 가까워 오고 있다. 무상한 것이 세월이라더니.... 어느새 이렇게 되어 버렸어.
궁예는 그렇게 한숨을 쉬며 여전히 들려오는 범종 소리를 듣는다. 그러다가, 또 중얼거린다.
궁예 할 일은 많은데 몸이 벌써 늙고 있어. 촌각이 아까운데, 세월은 바람처럼 가고 있어. 너무 많은 세월이 눈 깜짝 할 사이에 가버렸어. 아무것도 해 놓은 것 없이 세월이 그렇게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어. 그러고보면, 인생은 너무도 짧아.
궁예는 다시 긴 한숨을 쉰다. 그리고, 허공을 보며 계속 생각에 잠긴다.
궁예 (E) 그 짧은 인생동안 너무도 많은 것들이 지나쳐 갔어. (도리질하며) 거대한 불국토를 만들겠다고 나는 제국을 일으켰다. 미륵제국, 미륵제국.... 수많은 백성들이 열광을 했고, 그 많은 호족장자들이 다투어 내게 영토를 내놓았다. 지금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다. 처음 그대로일뿐...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했어. (사이) 아지태는 나를 우롱하다가 갔고, 석총이라는 놈은 다른 미륵이 올 것이라고 했다.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그토록 믿었던 왕건아우를 의심하고 있었고, 가만히 따져보니 그 아우에게는 실제로 여러 가지로 의혹이 많았다. 의혹...의혹....(사이, 생각한다) 아지태도 왕건을 지목했고, 석총이도 그랬고... 무엇보다도 내 사형인 내원도 그랬다. 왕건아우...왕건아우가....(도리질하며) 일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황후까지도 왕건아우와 정혼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두려운 일이다. 저 왕건아우는 처음부터 선택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처음부터..(에코)..처음부터...처음부터......처음부터....
궁예는 정신이 드는 듯 번쩍 고개를 든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창밖을 본다.
궁예 두 태자는 정말 내 아이였을까? 지금 저 두 태자는....? 왜 장인인 강장자가 목숨을 걸어가며 그 아이들을 나 대신 보위에 올리려 했을까? 왜...? 왜....?
씬 4 동 황궁 마당(아침)
막 해가 떠오르고 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상쾌하다.
저만큼 정자가 보여오면, 거기 누군가가 있다. 종간이다.
씬 5 동 황궁 정자
산 계곡 사이로 막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종간이 보고 있다.
한참 그렇게 보고 있는데, 조용히 은부가 예를 올리며 다가온다.
은부 내원어른, 아침 일찍이 산보를 나오신 것 같사옵니다.
종간 그렇네 그려. 폐하께서도 대전에서 꼬박 밤을 세우신다기에... 나도 잠이 안 오고 해서 말일세. 자, 태양을 보게. 얼마나
장엄한가?
은부 그러게 말이옵니다.
종간 폐하께서는 예전의 총기를 되찾고 계시네. 한동안 무섭게 모든 것을 정리하시더니, 이제는 왕건이가 갖고 있던 정권마저 되찾아 오셨어.
은부 그렇사옵니다. 참으로 든든하옵니다.
종간 차제에 왕건이까지 정리를 한다면 참으로 더 이상 걱정이 없을 것인데... 그렇게만 된다면....
은부 이제 때가 된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소장이 알기로는 이미 내원어른께서 칼을 빼신 것으로 보이옵니다만은...
종간 (끄떡이며) 임춘길을 잘 이용해야해. 그 자는 지금 살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어. 내가 조금만 받쳐 주면 무슨 일이든지 할 것이야.
은부 실제로 내원어른께서 목숨을 구해주신 것이 아니옵니까? 아니였으면, 벌써 폐하의 그 관심법에 죽어 나갔을 것이옵니다.
종간 그랬겠지. 두고 보세나. 그 자는 사력을 다해 왕건을 제거하기 위해 앞장을 설 것이야. 우리는 천천히 기회만 보면 될 것이야. 이제 폐하께서도 왕건과는 상당한 사이를 두기 시작하셨어. 서두를 필요는 없어. 어차피 걸려들게 되어 있어.
은부 하옵고 내원어른, 황후마마께오서 다시 회임을 하셨다 들었사옵니다.
종간 나도 들었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너무도 비극적인 일이야.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것이 아니겠는가? 폐하께서 말일세. 헌데, 그 분의 아이를 다시 보신다는 것은 상당한 아픔이겠지. 그럴 것이야.
은부 그 또한 운명이 아니겠사옵니까?
종간 운명이라...운명이라...허허, 자네도 꽤 감상적인 말을 할 줄 아는 구먼. 그래, 운명이겠지. 운명....
씬 6 동 황후전 복도
씬 7 동 황후전 안
연화가 충열된 눈으로 독기만 남은 표정이다.
마치 넋이 나간 듯 불안한 정서를 보이며 진내관을 보고 있다.
연화 지금 어머님은 어찌하고 계신다던가?
진내관 무사히 상을 다 치르시고 식음을 전폐하신 채 누워 계신다 하옵니다.
연화 그러시겠지. 졸지에 가장을 잃으셨는데, 무슨 낙이 있으실꼬... 참으로 미쳐도 독하게 미친 사람이 아니겠느냐? 폐하라니... 저 자가 어찌 폐하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겠는가? 거기다 미륵이라고....? 인간 백정을 보고 미륵이라고...?
제조 황후마마, 누가 들을까봐 무섭사옵니다.
연화 무섭다니..? 이제 무서울 게 뭐가 더 남았느냐?
슬이 황후마마, 고정하시오소서.
연화 이대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저 미치광이가 내 아버님만 그리 할 줄 아느냐? 끝내는 모두 요절을 낼 것이다. 더 이상 큰 일이 닥치기 전에 우리도 나름대로 살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보게, 진내관.
진내관 예, 황후마마.
연화 내 말 허투루 듣지 말게. 우리 태자들을 보호해야 하네. 저 미치광이가 언제 어떻게 제 자식들을 죽일 지 누가 알겠는가?
진내관 마마, 설마 그렇게까지 하실 리야 있겠사옵니까?
연화 모르는 소리 말게. 설마가 사람을 잡았어. 생각해보게. 우리 아버님이 얼마나 살려고 발버둥을 치셨는가? 그러나, 결과는 결국 그렇게 당하시고 말았네. 곧 화살이 우리 쪽으로 날아 올게야. 그러기전에 무슨 수를 써야 해. 그러기 전에 말일세. 내 말 알겠는가?
진내관 예, 황후마마.
씬 8 왕건의 집 외경
씬 9 동 집 사랑
왕건이 태평, 능산과 함께 정무를 보고 있다. 결재할 것은 하고, 수결을 놓을 것은 놓는다. 계속해 이리저리 많은 장계들을 처리한다.
능산 시중부에 나가시지 않고 계속 여기서 정무를 보실 것이옵니까?
왕건 시중부에서 일을 하나, 여기서 하나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딱히 폐하를 뵐 일이 아니라면 여기가 곧 시중부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태평 허허허, 그렇기는 하옵니다만... (장계 보이며) 이것은 평양 쪽에서 올라온 장계이옵니다.
왕건 오, 그래... 그쪽은 어찌 돌아간다고 하였는가?
태평 소기의 목적은 다 이룬 듯 하옵니다. 별 전투가 없이 평양성 일대에 흩어져 있는 호족들을 다스렸다고 되어 있사옵니다.
왕건 그것 참 다행이로군 그래. 그러나, 그것이 영구적인 복종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일세. 상황이 바뀌면 호족들은 언제든지 마음을 바꾸거든.
능산 그건 그렇사옵니다. 하오나, 폐하께 보고를 드릴 사안으로써는 아주 훌륭하옵니다. 어쨌든 평양 일대를 우리 태봉국의 군대가 평정을 하였다고 말이옵니다.
왕건 허허허, 그건 그렇네. 명분은 그만 이지. 그럼, 곧 그쪽에 간 장수들과 군사들을 오라고 해야겠구먼 그래.
태평 그러는 것이 좋겠사옵니다.
왕건 그건 그렇게 하세 그럼. 병부와 순군부와 함께 의논을 해서 그렇게 하세.
태평 그리고 이것은 병부에서 올라온 안이옵니다만은 나주가 아주 위험하고 하옵니다. 벌써 세번째 올라온 급보인 것 같사옵니다.
왕건 ........(생각에 잠긴다)
태평 장계에는 이미 백제군과 가까운 거리에 대치하여 일촉즉발의 분위기라 하옵니다. 전투가 벌어지면 아무래도 제한적인 지리적 여건으로 해서 나주가 불리하다고 되어 있사옵니다.
왕건 글쎄....
그때, 소리가 들려온다.
장수장 (E) 주군, 장수장이옵니다. 나주에서 집사장이 올라왔사옵니다.
왕건 뭐라, 나주에서?
능산 호랑이도 제 말을 하면 온다더니... 우리가 나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허허, 이거 참...
왕건 들어오라 하게.
씬 10 동 밖
장수장이 길을 열어주면 나주집사장이 안으로 들어간다.
두 유씨와 왕신이 함께 따라 들어간다.
씬 11 다시 동 방 안
그들이 모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집사장이 예를 끝내고, 앉으면 왕건이 묻는다.
왕건 여기까지 오다니 무슨 일인가? 마침 나주에서 온 장계를 보고 있었네. 무슨 일이 있는가?
집사장 예, 시중어른. 몇 번 장계를 조정에 올렸으나 아무런 대답을 받지 못하였사옵니다. 마님께서 특별히 소인을 보내시어 시중어른께 사정을 전하라 하셨사옵니다. 여기....
서찰을 전해주면, 왕건이 받아 펼쳐 본다.
모두들 본다.
오씨 (E) 이곳에 사정을 수차례 급박하게 조정에 올렸으나, 아직 아무런 비답이 없다고 하옵니다. 지금 서방님께서 곤경에 처해 계신 것을 이곳에서 잘 알고 있사옵니다. 어려운 바람은 피해가셔야 하옵니다. 일단 나주에 사정이 급하다고 아뢰었으니, 폐하께 주청을 드려서 내려오시도록 하시오소서. 그 길만이 최선책인 것 같사옵니다. 이곳에 제장들이 모두 서방님을 도우려 나서고 있사옵니다. 심사 숙고하시어서 빨리 길을 잡으시오소서. 손 모아 기다리옵니다.
왕건이 한숨을 쉬며 서찰을 접어 놓는다.
유씨 뭐라고 하셨사옵니까?
왕건 그곳 사정이 급하니 내려오라는 구료.
수인 가시는 것이 마땅하시옵니다. 사방에서 서방님을 노리고 있다고 들었사옵니다. 폐하께 청하여 이곳을 떠나시오소서.
왕건 모두들 왜 이러는지 모르겠구료. 아무 것도 불안할 것 없소이다.
왕신 소제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형님, 지금으로써는 폐하께서도 형님에게 좋지 않은 눈길을 보내고 계시옵니다.
능산 주군, 모두들 권하고 있사옵니다. 불어오는 바람을 맞을 필요는 없사옵니다. 나주로 가시오소서.
왕건 나주라...나주라.... 허허허, 참 모두들 금방 무슨 일이 생길 것처럼 말들 하네 그려. 나도 생각이 있네. 지금까지 많은 생각을 해오고 있어. 조금만 더 여유를 가져보세. 그래서, 정말 가야 한다면 가세나. 그러나, 허겁지겁하지는 말자는 것일세. 나는 이 나라에 시중이야. 그에 걸맞는 체신을 지켜야 해. 그렇지 않겠는가? 음.....
씬 12 나주 관아 외경
씬 13 동 관아 안
오씨, 다련군, 김언이 모여 있다.
오씨가 불안한 표정으로 말한다.
오씨 우리 집사장이 지금쯤 도착을 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련군 네가 서찰을 보내지 않아도 왕시중이 돌아가는 이곳 사정을 모를 리가 없다.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야. 서둘지 말거라.
오씨 이미 많은 적들로부터 위협을 받기 시작했사옵니다. 어찌 서둘지 않겠사옵니까?
김언 허허허, 그러나, 천하에 왕건시중이시옵니다. 죽음을 넘나드는 수많은 전장터를 누비신 분이 그런 간신들에게 호락호락 당하시겠사옵니까?
오씨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만은... 지금 강쪽에 전선은 어찌되었사옵니까?
김언 그런대로 잘 돌아가고 있사옵니다. 견훤왕이 지금 신라의 대야성에 가 있사옵니다. 말하자면 지금 우리와 대치하고 있는 무진주성의 군대는 만약에 경우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지원을 받을 수가 없사옵니다.
다련군 오, 그건 참 그렇겠습니다.
김언 따라서 해 볼만하옵니다. 그냥 이렇게 나주만 지키고 있는 것도 실은 따분한 일이옵니다. 백제군의 본군이 없을 때에 무진주성을 노려보는 것도 나쁠 것은 없사옵니다.
다련군 아니, 그럼 진짜로 전쟁을 하려는 것입니까?
김언 그럴 생각이옵니다. 처음에는 시중어른을 모셔오기 위해서 한 일이지만 지금은 형편이 좀 달라졌사옵니다. 노려볼만 하옵니다.
끄떡이는 오씨, 다련군의 표정에서...
씬 14 무진주 성 근처
윤신달과 전이갑이 멀리 무진주성을 노려보고 있다.
나주 관내에 수천 군사들이 대대적인 전투 장비를 갖추고 수많은 깃발을 펄럭이고 있다.
윤신달 전장군, 지금 이렇게 대치한 지가 꽤 되었소이다. 백제군은 지금까지 아무런 동요가 없소이다. 이럴게 아니라 한 번 들어가 보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전이갑 나도 동감이외다. 그러나, 나주의 총관은 김언장군이오. 일단 의논을 해 보십시다.
윤신달 하하하, 김장군도 우리와 생각이 같더이다. 지금 견훤왕이 대야성을 가 있기 때문에 이럴 때 무진주를 한 번 노려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김장군의 생각이예요.
전이갑 하하하, 뭐 그렇다면 이심전심이올시다. 기회를 잡아 보십시다. 저 무진주 성을 찔러볼 필요가 있어요. 그동안 전투가 없어나서 너무 지루했소이다.
윤신달 왜 아니겠습니까? 사정을 좀 살펴보고 결정을 하십시다. 언제 공격을 할 것이가 말입니다.
전이갑 그렇게 하십시다. 일단 군사들을 좀 더 전진배치 시킵시다. 전투대형을 갖추자는 이야기올시다.
윤신달 옳은 말입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큰 소리로) 부장들은 들어라. 전투대형을 갖추어라. 좀 더 전진배치한다. 전진하라. 성 가까이 접근하라.
부장들 예, 장군. (전달한다) 전투대형을 갖추어라. 전투대형을 갖추어라.
온통 먼지와 더불어 말 울음소리 그리고 대 장비들이 이동하기 시작한다.
금방 전투가 일어날 것처럼 보인다. 그 소란에서....
씬 15 동 무진주 성 안
성주 지훤이 성 밖을 보고 있다.
부장이 다급하게 소리친다.
부장 성주님, 적군이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곧 공격할 것 같사옵니다.
지훤 당황하지 마라.
부장 허나, 이미 사방이 포위되었사옵니다.
지훤 저들의 군사력은 뻔하다. 참으로 이해하지 못할 놈들이다. 저들은 우리를 공격할 입장에 있지 못해. 그런데, 군사를 움직여 강을 건너오다니 무슨 까닭일꼬...?
부장 어쨌든 폐하께 알려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지훤 그럴 필요는 있을 것이다. 지금 저들이 오고 있는 것을 보면 그냥 시위만 하려는 것은 아니야. 분명 한 번 싸워보자는 것인데.... 뭔가가 있는 것 같다. 일단 대야성에 전령을 띄워라. 폐하께 전령을 띄워.
부장 예, 성주님.
지훤은 계속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표정에서...
씬 16 길
두 필의 말이 달려가고 있다. 지훤의 전령들이다. 그들 그렇게 사라져가면....
씬 17 대야성(밤)
어둠 속에서 수많은 횃불이 일렁거린다.
견훤의 군막 앞에서 제장 회의가 끝난 듯 견훤이 영을 내리고 있다.
견훤 이미 대야성주변에 관한 모든 정탐이 끝났어. 신장군이 알아본 황강을 이용한 군사투입도 어려워졌어. 오로지 정면돌파야.
최승우 쉽지 않은 전투가 될 것 같사옵니다, 폐하. 적군이 의외로 완강하고 전열이 잘 준비되어 있사옵니다.
견훤 그렇다고 마냥 저들의 빈틈이 생기기를 기다릴 수는 없지 않는가?
능애 이를 말이옵니까? 공격해야 하옵니다.
추허조 폐하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두려워 할 것 없사옵니다. 정면돌파를 시도해야 하옵니다.
견훤 그렇게 하세. 정탐도 끝났고, 어디로 공격할 것인가의 공격로도 이미 마련이 되었어. 이번 전쟁은 오로지 누가 더 세고 누가 더 끈질기냐에 달려 있어.
신덕 폐하의 영을 따르겠사옵니다. 영을 주시오소서.
김총 폐하, 신이 우군을 맡았사오나 이번에는 신장군을 도와 선봉에 함께 서고 싶사옵니다. 허락하여주시오소서.
견훤 이미 선봉은 우리 태자들이 앞서기로 했어. 그러나, 선봉도 여러 곳에 필요하네. 김장군은 그대로 우측을 맡아. 그리고, 두 태자는 듣거라.
두태자 예, 폐하.
견훤 확인된 첩보에 의하면 좌측 계곡의 성벽이 제일 취약하다고 한다. 그 성벽을 넘으면 바로 대야주 읍내로 가는 길목이라 들었다. 기왕에 선봉을 서려거든 한 번 공을 세워 보거라. 신덕장군과 함께 가기 보다는 좌측을 책임 맡거라. 독자적으로 해보라는 뜻이다.
두태자 예, 폐하.
견훤 최필장군과 더불어 추장군도 함께 가도록 할 것이니, 반드시 성을 넘어라.
추허조 망극하옵니다, 폐하.
견훤 내가 몇 번씩 생각을 바꾸어 가며 너희들을 다시 세우는 것은 너희가 장차 대제국을 맡아야 하기 때문이니라. 특히 신검이 너는 십오년 전의 기억을 잊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너는 그때 어렸다고는 하지만, 태자로써의 품위를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 추장군을 함께 다시 보내는 것이다. 반드시 성을 넘고 지난날의 명예를 회복하라. 알겠느냐?
신건 예, 아바마마.
견훤 적군은 우리 절반이야. 성안에는 고작 오 천밖에는 아니된다는 것이다. 자, 각자 군을 이끌고 목표 지점으로 가 공격을 대기하라.
신덕 전군, 공격지점으로 이동하라.
부장 이동하라, 이동하라, 이동하라!
북소리가 들리고, 수천필의 말울음 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소라 소리가 울고 그렇게 대지는 들끓고 있다. 견훤이 그런 군사들의 모습을 보고 있다. 다소 흥분한 듯 한 그의 표정에서...
견훤 쉽지는 않을 게야. 그건 나도 알아.
최승우 그럴 것이옵니다. 부패하고 썩은 신라이지만 몇 몇 남아 있는 충신들이 모두 이 대야성으로 달려와 있다 하옵니다. 천년 신라의 뿌리를 가벼이 보셔서는 아니될 것이옵니다.
견훤 옳은 말이야. 그러나, 성은 반드시 넘어야지. 저곳을 빼앗지 않고는 신라까지 너무 길이 멀어. 반드시 도모해야 해. 반드시...
씬 18 동 성 안
어둠 속에서 멀리 벌판을 뒤덮은 횃불들이 보인다. 마치, 그것은 불바다처럼 엄청난 모습으로 보여져 오고 있다.
노장1,2,3과 계강이 그것들을 보고 있다.
노장1 아무래도 곧 공격을 할 것 같소이다.
계강 그럴 것 같습니다. 적군은 우리의 곱이라 하였습니다. 일만 대군이 몰려 왔다면 쉽지 않은 전투가 될 것입니다.
노장2 지구전에 들어갈수록 불리합니다. 왜냐하면 적은 수가 많고 군량미가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몇 달 몇 년씩도 버틸 수가 있어요.
노장3 그렇다고, 달리 방법이 없지 않소이까? 적군을 막아낼 수 밖에요.
노장2 그런 얘기가 아니라, 계책을 쓰자는 것이올시다.
계강 무슨 묘안이 있사옵니까?
노장2 이 대야성이 비록 천하의 요새이기는 하나 좌측 성벽이 부실 하오이다. 물론, 그곳에서 적군을 막자면 못 막을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애써 희생자를 많이 내면서까지 그렇게 할 것이 아니라 적군을 유인하십시다. 다행히 그곳과 다른 성루는 연결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대로 유인해서 계곡으로 십여리쯤 끌고 들어와 몰살을 시키는 것입니다. 적군에 절반은 없앨 수가 있소이다.
노장1 그것 참 그럴 듯 하오이다. 그러나, 실패를 한다면.... ?
노장3 실패할 리가 있소이까? 그 계곡은 너무도 깊고 높아요. 그리고, 반드시 그 계곡을 지나야 성의 다른 쪽으로 연결할 수가 있게 되어있소이다. 적군은 반드시 지나간다는 이야기지요.
계강 소장도 동감하옵니다. 아주 좋은 계책이시옵니다. 적군을 끌어 들이시오소서. 무너지는 척하면서 끌어 들여 계곡에서 끝을 보는 것이옵니다. 이 작전을 부장들에게 알려주시지요.
노장1 그렇게 하십시다. 뭔가 보이는 것 같소이다. 뭔가가 보여요.
모두들 고개를 끄떡인다. 하나같이 비장한 모습들이다.
씬 19 인서트/ 하늘
달무리에 쪽달이 물들고 있다.
서서히 먹구름이 그 달빛마저 감추면서....
씬 20 동 견훤의 군영
최승우, 능애, 공직, 애술이 어둠 속을 보고 있다. 그 어둠 속은 군사들로 벌판을 이루고 있다. 이미 공격할 장비들도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견훤 시간이 되었어. 중앙군과 좌우군에게 영을 전하라.
능애 예, 폐하.
견훤 공격하라. 공격 소라를 불어라. 대북을 쳐라.
능애 예, 폐하. 전군 공격하라. 소라를 불어라. 북을 쳐라.
소라 소리가 들리고, 북소리가 요란하다. 공격하라는 소리들이 수십 수백 곳으로 전달되어 퍼져가고 있다. 그리고, 말발굽 소리들이 들려온다. 대군이 그렇게 몰려가는 그 정경에서....
씬 21 동 성
전투가 시작되었다.
치열한 전투다. 공격용 무기들과 불화살들이 날고 있다. 석포가 거대한 돌들을 성안으로 날리며, 망루며 성벽들을 부수고 있다. 신덕이 김총과 함께 소리치며 군사들을 독려하고 있다.
신덕 우리는 영예로운 선봉부대이다. 물러나지 마라. 반드시 성을 넘어 가라. 성을 올라라. 공격하라. 물러서지 마라.
김총 물러서지 마라. 공격하라. 공격하라.
씬 22 동 성 안
삽시간에 시체들로 산을 이루고 있다. 계강과 노장3이 사력을 다해 이곳에서도 독전하고 있다. 화살과 석포가 쉼없이 성 안으로 날아든다. 아비귀환이다.
계강 막아라. 저들은 절대로 이곳을 넘지 못한다. 죽기로 싸워라. 우리는 신라의 정예병들이다. 막아라. 돌을 굴려라. 뜨거운 물을 퍼부어라. 통나무를 굴려라.
노장3 부서진 망루를 보수하라. 적을 잘 관측하라. 활을 쏘아라. 막아라.
혼전이다. 피아간에 속출하는 부상병들과 시체들... 전투는 그렇게 계속된다.
씬 23 다시 견훤의 군영
멀리 어둠 속에서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견훤은 마른침을 삼킨다.
견훤 그 옛날 전 삼국시대에도 저 대야성은 참으로 요충지였어. 그때 그 유명한 신라의 죽죽장군이 김춘추의 사위 밑에서 저 성을 지키고 있었는데, 결국은 우리 백제 장군 윤충에게 무너졌어.
최승우 그 내력을 들은 적이 있사옵니다. 그때 저 성의 도독은 훗날 신라왕이 된 김춘추의 사위가 아니었사옵니까?
견훤 그랬지. 그런 내력이 있는데도 우리가 저 성을 얻지 못하면 이야말로 얼마나 웃음거리이겠는가? 반드시 함락시켜야 해.
능애 좌측 성으로 간 두 분 태자마마가 걱정이 되옵니다.
견훤 나이 삽 십에 가까운 태자들이야. 뭘 걱정을 한단 말인가? 넘어야지. 이번에는 이 아비에게 뭔가를 보여 주겠지. 더구나 추장군이 함께 갔어. 이 시대의 군왕은 전투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
공직 전선이 아무래도 쉽지 않은 모양이옵니다. 전투를 시작한지 꽤 되었는데 이렇다할 보고가 없사옵니다.
견훤 처음부터 각오를 단단히 한 전투야. 기다려보세.
씬 24 신검의 전투장
이곳도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산비탈이 험하고 성벽은 낮다. 신검, 양검이 검을 들고 계속 지휘하고 있다.
신검 저쪽 비탈로 올라라. 신라군은 별거 아니다. 계속 좁혀 올라가라.
양검 쉼 없이 몰아 부쳐라.
그들이 독려하고 있는 가운데 추허조와 최필이 의논을 한다.
추허조 이보시오, 최장군. 저쪽 방어력이 별거 아닌 것 같소이다. 왠지 허술해 보여요.
최필 본성과는 많이 떨어져 있사옵니다. 그리고, 외길이 아니옵니까? 아무래도 군사가 많지 않겠지요.
추허조 허허허, 폐하께서는 이런 기회를 이용해서 두 분 태자마마께 공을 세우게 하시려는 것 같소이다. 암, 그래야지요. 자, 우리도 들어가십시다.
그들은 말고삐를 낚아 채며 그대로 전진해 오른다.
추허조 적군은 겁을 먹었다. 그 수가 많지 않다. 계속해 올라라. 계속 올라라.
씬 25 동 성루
치열하게 산기슭과 성벽을 타고 오르는 백제군들이 보인다. 신검과 양검, 최필, 추허조들이 필사적으로 군사들과 오르고 있다.
막는 신라군들도 필사적이다. 노장1,2가 서로 눈짓을 한다.
노장1 슬슬 때가 된 것 같소이다.
노장2 그렇소이다. 반시각쯤 후에 못이기는 척 후퇴해서 계곡으로 들어갈 것이외다.
노장1 걸려드는 것 같소이다. 저놈들은 지금 저희들이 이기는 줄 알고 제정신이 아니올시다. 불쌍한 놈들...
전투는 그렇게 계속된다. 드디어, 사다리가 걸쳐지고 성루로 오르는 백제군들이 보인다. 신검이 신이 나서 소리친다.
신검 잘들 한다. 그렇게 올라가라. 신라군들이 물러나고 있다. 계속 올라가라. 기회를 놓치지 마라.
추허조 신라군들이 도망친다. 어서 올라라.
그렇게 백제군들은 성으로 들어간다. 성루에서 치열한 접전이 계속되는가 하더니, 노장1,2가 소리친다.
노장1 아니되겠다. 모두 퇴각하라. 후퇴하라. 후퇴하라.
그들은 그렇게 도망치기 시작한다. 드디어, 작은 그 성문이 열리고 백병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백제군들이 물밀듯 들어가고 있다. 추허조도 최필도 양검들도 그렇게 함께 들어가고....
씬 26 동 성 안
성문이 열려져 있고, 이미 신라군들은 도망치고 없다. 군사들이 함성을 지른다.
추허조 (신검에게) 태자마마, 해내셨사옵니다. 신라군들은 모두 도망치고 있사옵니다.
신검 그렇습니다, 장군. 그러나, 이 성루는 본성과 떨어져 있사옵니다. 본성으로 가려면 이삽리를 돌아가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최필 그렇사옵니다. 우리 군대가 저들을 쫓아 계속 들어가 신라군의 후미를 치게 되면 본성에 문이 열릴 것이옵니다.
양검 앞뒤로 공격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옵니까?
추허조 그렇사옵니다. 신라군은 우리가 길을 돌아 후미를 치게 되면 꼼짝 없이 앞뒤로 공격을 받게 되옵니다. 이 전쟁은 승산이 있사옵니다.
신검 좋습니다, 장군. 매일처럼 아버님에게 나약한 모습만 보였는데,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장군.
추허조 좋은 생각이시옵니다. 일단 폐하께 좌측 성루를 함락하였다고 전령을 보내시오소서. 그리고, 계속 영을 내리시오소서.
신검 그러십시다. 양검아우, 전령을 보내게, 그리고 군사들을 다시 정비하게. 우리는 계속 신라군을 쫓을 것일세.
양검 예, 형님.
신검 나를 따르라. 오늘 신라군은 모두 우리 손아래 전멸될 것이다. 가자.
신검, 추허조, 최필들이 일단의 숱한 군사들을 이끌고 질풍처럼 달려가고 있다. 멀리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에서 디졸브....
씬 27 그곳 어느 계곡
아주 깊은 계곡이다.
노장1,2가 거느린 숱한 군사들이 매복되어 있다.
노장1 곧 백제군이 이리로 몰려올 것입니다.
노장2 그렇겠지요.
노장1 본성전투가 어찌되었는지 모르겠소이다. 백제군이 워낙 많았소이다.
노장2 물론 걱정은 되오만은 이미 죽기를 작정한 장졸들이올시다. 잘 막아 줄 겝니다. 우리가 여기서 결정적 타격만 입히면 이번 전쟁은 한층 수월해질 것이외다. 우리 하기에 달렸소이다.
노장1이 끄떡인다. 그들의 그런 숨 죽인 모습에서...
씬 28 대야성 본성
여전히 치열한 전투가 계속된다. 그러나, 백제군은 성에 오르지 못한다. 시체가 수없이 깔려 있다. 신덕이 부장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계속 독전하고 있다.
신덕 우리는 오늘 저 성을 반드시 함락해야 한다.
그러나, 전세는 그렇게 밝지 못하다. 백제군은 계속할수록 불리하다. 바윗덩어리들이 계속 굴러오고, 불기둥들이 구른다. 사상자는 속출한다. 김총이 다가와 다급하게 말한다.
김총 신장군, 이대로는 희생이 너무 큰 것 같습니다. 잠시 군사를 물려야겠습니다. 저들의 저항이 워낙 거셉니다.
신덕 벌써 성을 공격한지 두 식경이 넘었소이다. 곧 날이 밝아요. 밝기전에 결단을 내야 합니다.
김총 보세요. 도저히 이대로는 무리입니다. 군사 절반이 죽거나 다쳤소이다.
신덕 그래도 공격해야 합니다. 늦추지 마라. 계속 공격하라.
그러나, 신덕의 용기와는 달리 백제군은 부지기수로 죽어나가고 있다. 신덕이 어쩔 줄 모른다. 그때 바위 하나가 굴러내려오며 김총의 말을 덮친다. 신덕이 놀라며 부른다.
신덕 김장군, 김장군..?
김총 나는 괜찮습니다. 어서 퇴각 명령을 내리시오. 어서!
신덕 이를 어이할꼬..이를 어이할꼬... 어떻게 저렇게 강할 수가 있단 말인가? 어떻게.....
씬 29 동 성루
계강과 노장3이 여전히 목이 터져라 독전하고 있다.
계강 잘하고 있다. 군사들이여 아주 잘 싸우고 있다. 백제군은 별거 아니다. 퍼부어라. 계속 퍼부어라. 바위를 굴리고 불기둥을 내려라.
치열하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사상자는 속출하고 있다.
씬 30 견훤의 군영
견훤이 먼 전선을 훑어 보고 있다. 그리고, 걱정스레 말한다.
견훤 시간이 벌써 꽤 되었어. 중앙에 신덕장군은 물론이고, 우측에 김총도 그렇고... 좌측으로 간 태자들도 왜 아무도 소식이 없는 게야? 곧 날이 밝을 터인데...
최승우 .......
그때, 말을 탄 부장하나가 달려와 군례를 올린다.
부장 폐하, 태자마마께서 보내신 전령이옵니다.
견훤 오, 그래 어찌되었느냐? 그쪽은 어찌되었어?
부장 두 분 태자마마와 추허조, 최필장군께서 좌측 성문을 여셨사옵니다.
능애 성문을 열었어? 오, 이런... 폐하, 성문을 열었다하옵니다. 성문을 말이옵니다.
공직 두분 태자마마께서 해내셨사옵니다, 폐하.
견훤 어, 장하다. 성문을 열었다. 하하하하.... 그야말로 승전보로다.
부장 두분 태자마마와 장군들께서는 좌측 성문을 여시고 그 길로 계속 신라군을 추격해 가셨사옵니다. 곧 저 대야성의 후미를 쳐서 성문을 열게 하신다 하셨사옵니다.
공직 허허허, 믿음직스럽사옵니다, 폐하. 하긴, 대야성의 후미로 지쳐 들어가면 신라군은 꼼짝없이 성문을 열게 될 것이옵니다.
그러나, 최승우는 안색이 변하며 급히 묻는다.
최승우 여봐라, 부장.
부장 예, 파진찬어른.
최승우 지금 뭐라 하였느냐? 좌측의 성문을 열었으면 됐지. 지금 뭐라고 신라군을 추격해들어가셨단 말이냐?
부장 그러하옵니다, 파진찬어른.
최승우 이런...이런....
견훤 왜 그러는가, 파진찬?
최승우 그곳은 본성과는 떨어져 있는 외길 계곡이옵니다. 더구나 우리 군으로써는 지형과 지리가 어둡사옵니다. 그리고, 아직 날이 밝지 않았사옵니다.
견훤 (그제서야) 오, 과연.... 과연.... 뭔가 의심스럽구먼.
최승우 즉시 군사들을 다시 보내는 것이 좋겠사옵니다.
견훤 (끄떡이며) 공직장군과 아우가 가라. 아무래도 뭔가 성급한 것 같아. 저 지독한 신라군들이 쉽게 성문을 열은 것도 이상하고, 어서 가라. 지금 후방군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
공직 대기 병력이 이천은 되옵니다.
견훤 군사 오백만 남기고 모두 출동하라. 어서 가라.
두장군 예, 폐하.
그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견훤이 고개를 외로 꼰다. 최승우는 이미 뭔가 불길한 예감을 갖고 있다. 그때, 또 한 전령이 급히 다가와 예를 올린다.
최승우 뭔가?
전령 본성을 공격 중인 신덕, 김총장군의 주력군이 퇴각해도 좋은가 여쭈라하시옵니다.
견훤 뭐라, 퇴각...?
최승우 전세가 어떠한가?
전령 이미 군사의 절반을 잃었사옵고, 사기마저 크게 저하되어 있는 것으로 아옵니다.
견훤 (주먹을 쥐며) 이런...이런... 그렇게 큰소리들을 쳐놓고, 이게 지금 무슨 소리야? 이게 지금....
최승우 폐하, 허락하시오소서. 전투는 사기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옵니다. 다시 정비토록 하시오소서.
견훤 (긴한숨) 이게 무슨 소린고..? 이게..? 싸움을 못하겠다는데 도리가 있겠는가? 회군하라 하라.
전령이 대답하며 급히 다시 사라진다. 견훤이 분해서 계속 어쩔 줄 모른다.
최승우 태자마마들이 걱정이옵니다. 아무래도 뭔가 불길하옵니다, 폐하.
견훤 .......? 그래도 추허조가 갔어. 최필장군도 있고. 기다려보세.
씬 31 그 계곡
신검형제와 추허조, 최필이 군사들을 이끌고 오고 있다. 이미 그들은 계곡 깊숙이 들어섰다. 그러나, 신라군들의 모습은 그림자도 없다.
신검 이상하지 않습니까, 추장군? 적군들이 하나도 보이지를 않습니다.
추허조 그러게 말이옵니다. (두리번거리며) 아무래도 기분이 썩 좋지를 않사옵니다만은...
최필 너무 깊숙이 들어온 것 같사옵니다, 추장군.
양검 적은 이미 오합지졸입니다. 무엇이 그리 걱정이 될 게 있습니까? 더 가보시지요. 아주 멀리 달아난 모양입니다. 어서 쫓읍시다.
이들 고개를 끄떡인다. 그리고, 점점 더 계곡 속으로 빨려 든다.
씬 32 동 계곡 신라 진지
노장1,2가 백제군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백제군이 완전히 그물 속으로 들때까지 소리없이 보고 있다.
그리고, 어느 한계에 이르자 두 사람이 눈짓을 교환한다.
노장1 입구에 불을 질러 막고, 퇴로에는 바위를 굴러 길을 막아야 합니다.
노장2 이미 준비가 되었소이다.
노장1 계곡 속으로 들어온 군사가 족히 삼천은 되어 보입니다.
노장2 그럴 것 같소이다. 자, 다 들어왔소이다. 완전히 들어왔소이다. 영을 내리시지요.
노장1 (끄떡인다) 뭣들 하느냐? 신호를 울려라. 불화살을 쏘아라.
어둠 속에서 공중으로 불화살 하나가 날아오른다. 그와 동시에 처참한 일방적 살육이 시작된다. 통나무, 바윗돌, 그리고 화살들이 어우러져 시야를 가릴 듯 퍼붓고 있다.
씬 33 그곳
추허조가 소리친다.
추허조 함정이올습니다. 퇴각해야 합니다. 퇴각하라. 퇴각하라.
최필 퇴각하라.
신검 (정신이 없고) 이게 어떻게 된 것입니까?
양검 적군입니다, 형님. 사방이 적이에요. 저쪽에 불길이 솟습니다. 형님,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돌아서라. 퇴각하라.
부장1 (다가오며) 퇴로가 막혔사옵니다. 바윗돌이 계속 굴러내려 돌아갈 수가 없사옵니다.
추허조 무슨 소리인가? 태자마마들을 뫼시어라. 사잇길이라도 뚫어라. 어서 가라. 태자마마, 소장을 따르시오소서. 길을 뚫어라. 길을 뚫어라. 어서 따르시오소서.
추허조가 말을 돌리며 앞을 선다. 그리고, 달린다. 바윗돌을 피하고, 화살을 피하고.. 두 태자가 그 뒤를 바짝 따라 붙는다. 어느만큼 갔을까? 공격은 계속되고 있다. 바윗돌이 길을 막고 있고, 연기들이 자욱하다. 시체로 산을 이루고 있다. 추허조가 한쪽 비탈을 가리키며 소리친다.
추허조 태자마마, 이쪽으로...이쪽으로 오시오소서. 태자마마...
그와 동시에 비오듯 화살이 쏟아 진다. 그 중 하나가 앞서 오던 추허조의 가슴에 박힌다. 뒤 따르던 두 태자가 놀라가 소리친다.
두태자 장군..?
추허조 그냥 가시오소서. 내처 가시오소서.
추허조가 검을 빼는데, 다시 또 수십개의 화살이 날아와 추허조는 고슴도치가 된다. 두 태자는 경악하여 아무말도 못하고 있다. 추허조는 그렇게 버티고 섰다.
추허조 어서 가시오소서. 어서...
신라군들이 비탈로 내려오기 시작한다. 그들도 엄청난 군세였다. 추허조가 그렇게 웃으며 무너져 간다.
추허조 가시오소서, 어서... 어서...
신검 (결심한 듯) 아우, 가세. 추장군은 이미 틀렸네.
그들은 그렇게 다시 도망친다. 노장1,2가 군사들을 정비하며 말한다.
노장1 내주었던 성을 다시 돌려 받을 것이다. 대오를 정비하라. 백제군을 다시 쫓을 것이다.
신라군들이 그렇게 다시 반대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씬 34 어느 길
신검 형제가 최필과 몇 몇 부장들과 도망쳐 오고 있다.
최필 성밖으로 다시 피하셔야 하옵니다. 백제군의 전략에 말렸사옵니다.
신검 가십시다. 오, 추장군은 어찌할꼬... 추장군은 어찌할꼬...?
그들은 그렇게 그곳을 벗어나 사라진다. 그 모습에서 디졸브되며 새벽으로 이어진다.
씬 35 동 대야성 밖(새벽)
까마귀가 떼지어 울고 가고 있다. 시체와 부러진 깃발들과 말들의 죽은 모습들도 보인다. 피투성이의 노장들이 그렇게 서서 계강과 함께 성밖을 보며 미소짓고 있다.
씬 36 견훤의 군영(아침)
견훤은 망연자실이다.
아무도 말하는 장수가 없다. 신덕, 김총들이 고개를 숙이었고, 태자들과 최필은 검을 놓고 땅바닥에 엎드려 있다. 최승우도 하늘을 보며 계속 한 숨을 쉰다.
견훤 죽었다고 했느냐? 추허조가 죽었다고 했어?
모두들 .......(대답을 못하고)
견훤 이런... 이런 못난 놈들... 네놈들을 살리려고 앞장섰다가 그렇게 벌집이 되어서 죽었다고..? 추허조가 죽었어..? 네놈들 때문에 추허조가 죽었어? (울먹이며) 내 아우 추허조가 죽었어...?
견훤의 눈은 이글이글 끓고 있다. 들고 있던 등채로 무릎 꿇고 있는 태자들을 마구 때리기 시작한다.
견훤 이런 못난 놈들... 이번에는 아주 내 아우를 죽게 만들어 버렸구나. 너희같은 놈들이 그러고도 내 아들이냐? 대 백제국의 태자냐, 이놈들아?
최승우 폐하, 고정하시오소서. 폐하....
견훤 너희들이 살고자 추허조를 죽게 했느냐? 이 못된 놈들...!
능애 폐하, 고정하시오소서. 전투 중에 일어난 일이옵니다. 어찌 태자마마들께서 일부러 그리하셨겠사옵니까?
견훤 아니다. 십몇년 전에도 그랬어. 이렇게 나약한 놈들은 내 아들이 아니야. 저희들의 목숨을 버리고서라도 추장군을 구해왔어야 했어. 오, 부끄럽도다. 참으로 부끄럽도다. 여봐라.
부장들 예, 폐하.
견훤 두 태자를 끌어내라. 가서 목을 베어라.
최승우 폐하..?
견훤 어서 끌고가 형을 집행하지 않고 뭘 하느냐? 목을 베어라.
격노한 견훤의 표정에서......
(끝) (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