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 112회>
줄거리
연화는 조문을 온 왕건을 만나자, 마음 속 깊이 쌓아 두었던 궁예에 대한 증오를 폭발시키고 만다. 그리고, 왕건에게 옥좌에 오를 것을 청한다. 왕건은 거절하며 급히 그 자리를 피해 나오지만,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자가 있었다. 이 사실을 보고 받은 궁예는 연화를 역모의 굴레로 몰아 세우게 된다. 한편, 이런 철원의 사정을 모르는 왕건은 나주에 도착하여 다시 전선을 평정하게 되는데...
씬 강장자 집 외경(밤)
씬 동 집 사랑 밖 마당
진내관과 제조상궁, 슬이 들이 서 있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 같이 긴장되어 있다. 첩자 상궁이 소반에 먹을 것을 들고 온다. 그리고, 눈빛으로 가도 좋은가 제조상궁을 본다. 제조가 고개를 끄떡인다.
연화 (E) 제가 너무 직설적으로 말씀을 드렸습니까?
씬 동 집 사랑
연화가 찻잔을 앞에 놓고 왕건을 보며 묻고 있다.
연화 그런 것입니까, 왕시중?
왕건 아니옵니다, 황후마마. 황후마마께서 보신 그대로이옵니다.
연화 시중께서 그렇게 쉽게 수긍을 하시니 웬일이십니까? 나주로 도망가신다는 이야기를 저는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건 그러하옵니다, 황후마마. (한숨) 똑바로 보신 일이옵니다. 이곳 황도의 사정은 어렵고 잠시 제가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그 때문에 나주를 택하였사옵니다.
연화 (아주 긴 한숨) 시중께서 그렇다 하시니 더 이상 묻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긴 그럴겁니다. 황후인 제가 지금 오갈 곳이 없이 악만 남아 이러고 있듯이 왕시중께서도 이곳 철원 황도는 괴로운 곳이라는 것을 압니다. 아버님 때문에도 더 고통을 겪으셨고요.
왕건 마음은 있었으나, 돌이켜보건데 아무 것도 도와드린 것이 없사옵니다. 그 점이 지금도 가슴 아프옵니다.
연화 그런 것은 아니지요. 시중께서도 하실만큼은 하셨습니다. 아버님을 가볍게 처리하시려다가 결국은 이렇게 된 것이 아닙니까? 폐하께서 직접 나서셨고 말입니다.
왕건 제 불찰이었사옵니다, 황후마마.
연화 누구의 불찰도 아닙니다. 따지고보면 미치광이 하나가 온 세상을 휘저었기 때문이지 어찌 시중의 죄이겠습니까?
왕건 황후마마, 분을 삭히시고 조용히 마음을 다스리시오소서. 이 난세에 그 길만이 온전히 마마를 보존하실 수 있는 길이옵니다.
연화 보존이라고 하셨습니까? 보존이라고요? 바꾸어 말하면 사는 길을 찾아보아라 이런 얘기 아닙니까?
동 집 방 밖
첩자 상궁이 귀를 기울이며 듣고 있다.
왕건 (E) 그러하옵니다. 지금은 위기의 시대이옵니다.
씬 다시 동 방 안
왕건 당장 내일이 어찌 될 지 사흘 후가 어떻게 변할 지 예측이 어려운 세월이옵니다. 그나마 모든 것들이 황후마마께는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사옵니다. 평정을 되찾으시고 그저 조용히 지내시오소서. 진심으로 권해드리고 싶사옵니다.
연화 (한참을 그런 왕건을 본다) 시중께서는 젊으실 때도 그리하셨습니다. 늘 신중하셨지요. 침착하셨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때와 시기가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지금은 그럴 때도 아니고요. 조용히 눈치나 보고 있다가는 언제 어떻게 저 쇠방망이에 맞아 죽을 지 모르는 때가 지금입니다. 시중께서는 그걸 모르십니까? 폐하께서는 여전히 광인이십니다. 미치광이 말입니다.
왕건 황후마마..
연화 병이 나았다고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그 병은 낫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의심과 불만으로 가득 차서 누구를 어떻게 죽일까 그것만을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폐하입니다. 어디까지 얼마만큼 냉정할 수 있는 가를, 아니 자신이 얼마나 지독할 수 있는 가를 늘 시험하고 스스로 재보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 미치광이입니다.
왕건 말씀이 지나치시옵니다, 황후마마.
연화 조금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황후자리를 떠나서 묻고 싶습니다. 왕공께서는 이 나라 최고 벼슬인 시중이십니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제일 존경을 받는 군부의 대장군이시기도 합니다. 왜 썩은 무리들을 빨리 잘라내고 옥좌에 오르지 않으십니까?
그 말에 왕건은 충격처럼 연화를 본다. 그러나, 연화는 당황하지 않는다.
연화 이미 지금의 폐하는 옛날의 미륵이 아닙니다. 이루기 어려운 욕망과 허세와 더러운 위선이 가득 찬 폐인입니다. 시중께서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지금 폐하의 눈이 왜 외눈박이가 되었습니까? 신라의 왕자가 아니었습니까? 서자로 태어나 도망치다가 한쪽 눈을 잃은 것이 아닙니까? 고구려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 나라가 왜 신라의 왕자를 받들어야 합니까?
왕건 지난 과거를 저는 알지 못하옵니다, 황후마마. 그리고, 듣고 싶지 않사옵니다. 그만 하시오소서. 화를 부를 수 있사옵니다.
연화 화가 무서워 할 말을 못하던 때는 지났습니다. 한 마디만 더 해보겠습니다. 지금의 폐하가 또 누구십니까? 저 세달사에 이름 없는 승려가 아니었습니까? 내원 그 사람도 그렇고요. 저들에 비하면 왕시중께서 모자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저들은 세상에 신뢰도 다 잃었습니다. 그저 무자비한 살인마들일 뿐입니다. 시중께서 옥좌를 맡으신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도와드리겠습니다.
왕건 듣지 않은 것으로 하겠사옵니다. 자중하시오소서.
연화 변한 게 없으십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렇게 겁이 나십니까?
왕건 다 삭히시오소서. 그리고, 부디 자중하시오소서, 황후마마. 그 길만이 모두가 함께 사는 길이옵니다. 저는 이만 일어나 보겠사옵니다.
연화 나는 그래도 오늘 이곳에 와서 왕시중의 위로를 받을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뭔가 따뜻한 말씀 한마디 정도는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 한 많은 목숨과 저 철없이 어리고 불쌍한 태자들을 의논하려 했습니다. 역시 어려운 분이십니다.
왕건 가보겠사옵니다, 황후마마.
연화 한 마디만 기억해 주십시요. 이 황실은 오래 못 갑니다. 그리고, 비록 우리의 옛날들이 순결하고 깨끗하였다 하더라도 폐하께서는 이미 그 의심의 병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은 한 번 시작한 일은 틀림없이 끝을 보지요.
왕건 ........?
연화 틀림없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태자들이 위험하고 또 제가 위험하고 왕시중도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가보세요.
왕건 예, 황후마마. 부디 옥체 보존하시오소서.
왕건은 그렇게 깊숙이 허리를 숙이고는 사랑 문을 벗어난다. 거기 그 상궁이 지금 막 온 것처럼 소반을 들고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방안에 들어와 그것을 놓는다. 연화는 상을 보지도 않고, 입술을 깨물며 도리질을 한다.
연화 늘 저랬어. 언제나 그랬어. 모든 게 다 그랬어. 역시 아니야. 저 사람은 아니야.
씬 동 집 마당
왕건이 나가고 있다. 제조, 슬이가 안으로 들어가고 진내관이 배웅한다.
왕건 지금 황후마마께서는 아직도 많이 격해 계시네. 그리고, 불안해하고 계셔.
진내관 그러하시옵니다.
왕건 자네가 할 일이 많을 것 같네 그려. 잘 뫼시게.
진내관 예, 시중어른. 하오면... 살펴가시오소서.
왕건 한동안 못 볼 것일세. 황후마마 잘 뫼시게. 자네 뿐이야.
진내관 알겠사옵니다.
왕건은 그렇게 대문을 나선다. 장수장이 모시고 간다. 그런 왕건들의 뒷모습을 진내관이 하늘을 보며 한숨을 터트리며 보고 있다.
씬 길
왕건이 집으로 돌아가며 혼자 독백하고 있다.
왕건 (E) 그렇사옵니다, 황후마마. 분명 위기는 몰려오고 있사옵니다. 황후마마의 그런 절박한 심정을 어찌 모르오리까? 허나, 지금은 숙일 때이옵니다. 조용히 침착하게 이 위기를 벗어나시오소서. 달리 길이 없으니 어찌 하겠사옵니까? 달리는 길이 없사옵니다, 황후마마.
왕건은 그렇게 내심으로 중얼거린다. 카메라 앞을 지나쳐 가고 있다.
씬 왕건의 집 마당(아침)
대문이 활짝 열려 있다. 마당 안은 사람들로 분주하다. 길 떠날 준비이다. 마필들이 여러 필 준비되어 있고, 장수장이 그들을 부리고 있다. 그 한쪽으로 조정 관료들이 또한 수없이 들어서고 있다. 왕신이 그들을 맞고 있다. 박지윤과 두 아들도 막 들어서고 있는 것이 보이고, 입전, 신방도 보인다.
왕신 어서오시오소서, 박장자 어른.
박지윤 아이고, 이거 조정이 이리로 옮겨 온 것 같소이다. 왠 사람들이 이리 많소이까? 허허... 나도 왕시중이 간다길래 잠시 인사차 왔소이다.
입전 박장자 어른이 아니시옵니까?
박지윤 오, 의형대령이 아니시오?
신방 여기서 뵙사옵니다.
박지윤 그러게 말이오. 자, 들어들 가십시다. 안에도 사람들이 많은 것 같소이다. 허허허....
씬 동 집 사랑
왕건과 복지겸이 마주해 있고, 그 한쪽으로 능산, 태평, 배현경, 홍유, 유금필, 염상, 김락, 왕식렴들이 보인다. 두 유씨가 시녀들과 함께 다과상을 보고 있다.
복지겸 허허허, 이거 저만 인사차 온 줄 알았더니 군부의 장수들이 모두 보이십니다, 그려.
김락 그러게 말이옵니다. 시중께서 다행히 이 몸은 불러 주셨사옵니다만은 다른 분들은 어찌 되시는지..?
왕건 이번에 가시는 분들은 제 의제들과 더불어 여기 김락장군뿐이올시다. 그곳에도 여러 장수분들이 계시기 때문이지요.
홍유 아, 그래도 그렇지요. 늘 시중어른을 모시는 저희들이올습니다. 함께 가시기를 고대하였사옵니다만은...
왕건 허허허, 이제는 시중이 아니라 다시 대장군으로써 나주로 가는 것입니다. 시중이 아닙니다.
모두들 (웃는다)......
배현경 아무튼 조심하시오소서. 크든 작든 간에 목숨을 건 전장터이옵니다.
왕건 고맙소이다. 자, 그만 준비들 해야 하지 않겠는가?
가신들 예...
그때, 박지윤 부자, 입전, 신방 들이 들어선다.
박지윤 아이구, 이거 벌써 이렇게 들 와 계셨군요? 먼길 떠난다기에 잠시 인사차 왔소이다.
왕건 고맙습니다. 이렇게 직접 오시기 않아도 되는 일인데...
박지윤 무슨 말을... 이 나라 신료 중 으뜸인 시중께서 전장터로 가는 일이올시다. 마땅히 원로로써 위로와 인사를 드려야지요.
그때, 장수들이 모두 일어선다.
염상 저희들은 그만 가보겠습니다. 모쪼록 몸 조심하십시요, 시중어른.
홍유 조심하시오소서.
복지겸 왕시중께서는 혼자의 몸이 아니십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따르고 또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해주십시요.
왕건 고맙소이다. 어찌 잊겠습니까? 모두들 고맙습니다. 다녀와서 또 들 뵙기로 합시다. 이보게, 금필이, 이 분들을 배웅해드리게.
유금필 예.
그들, 그렇게 일어서며 간다. 왕건이 일어나서 배웅한다. 그들 그렇게 어울러져 나가고, 입전, 신방, 박지윤 들이 다시 앉는다. 표정이 금방 긴장으로 변한다.
박지윤 아주 힘들 때에 나주로 가시는 것 같소이다.
입전 그러게 말이옵니다. 많은 신료분들이 장군께서 나주로 가시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사옵니다.
왕건 고맙소이다. 그러나, 장수가 전장터로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올시다.
박지윤 조정의 사정은 어렵고 왕시중을 모함하는 자들이 많소이다. 폐하께서 총기를 되찾으셨나 했는데, 그렇다고 나아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황실은 더욱 시끄럽고 황제는 더 독선적으로 흐르고 있소이다.
왕건 잘 되지 않겠습니까?
박지윤 (도리질 하며) 많은 사람들이 이제 포기 상태에 와 있소이다. 황제의 광기에 질려 있고, 그 독재와 독선에 떨고 있어요. 은연 중에 황후마마도 가까운 시일 내에 어떤 변을 당하시지 않을까 말하는 사람들이 있소이다. 두 분 사이가 그 정도로 틀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왕건 (한숨 지으며) 예,
박지윤 잘 가시는 겝니다. 왕시중도 여기 있다가는 어떤 화를 당할 지 모릅니다. 지금 나라 사정이나 황실 사정이나 모두 그렇게 되어 있어요. 조심하시오. 왕시중은 이 나라 양심 있는 신료들의 마지막 희망이올시다. 내 그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온 것이외다.
왕건 듣기에 부끄럽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박지윤 보세요, 그 많은 장수들도 모두 왕시중을 보러 왔소이다. 그 말 못하는 속뜻을 깊이 깊이 새겨 달라 이 말입니다.
왕건 예, 장자어른.
씬 황궁 내원 외경
씬 동 내원
종간이 불쾌한 표정으로 임춘길을 보인다.
종간 왕건이 집에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임춘길 예, 내원 어른. 그렇다 하옵니다. 문무신료들이 정신없이 몰려들고 있다 들었사옵니다. 하긴, 먼 길 떠나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사옵니다만은....
종간 무슨 소리를 하는 게요? 시중자리를 떼이고 다시 장군으로써 전장터에 가고 있어. 다시 말하면 일종의 견책을 받고 가는 것이야. 제 분수를 알고 겸손해야 하거늘, 쯧쯧쯧.... 그래, 그 이야기나 계속 해보시오. 청주에서 석총이가 누구와 있었다고?
임춘길 그곳에서는 지금 나주로 가고 있는 왕건장군과 더불어 허월 대사도 함께 있었다 하옵니다.
종간 허월 대사가..?
임춘길 예, 내원어른. 그 사람들은 그 날 새벽녘까지 함께 들 있었는데, 뭔가 아주 중요한 것을 주고받았다는 것까지 알아냈사옵니다.
종간 주고받다니, 뭘 말이오?
임춘길 그걸 알아보고 있사옵니다. 그 때문에 그곳 유장자 집을 그만 둔 집사장을 수배하고 있사옵니다.
종간 (끄떡이며) 고생이 많소이다. 하긴 그래요. 기왕에 왕건이와 한 판 싸움을 시작하였소이다. 싫든 좋든 승부가 나게 되어 있고, 둘 중 하나는 이겨야 하는 것이올시다. 끝까지 싸워서 이기시요.
임춘길 고맙사옵니다, 내원어른.
그때, 밖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은부 (E) 내원어른, 은부이옵니다.
종간 오, 들어오시게.
임춘길 하오면, 저는 이만...
임춘길이 일어서는데, 문이 열리고 은부가 들어선다.
은부 어허, 임장군, 이거 요즘 부쩍 자주 뵙는 것 같소이다.
임춘길 예, 내원어른께서 각별히 불러 주시어서...
은부 잘 해보시구료.
임춘길 예, 장군. 하오면....
임춘길이 그렇게 나가고,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은부는 표정이 긴장되어 있다.
종간 표정이 그리 밝지 않는 것 같네. 무슨 일이 있었는가?
은부 황후마마 말이옵니다.
종간 왜? 무슨 일이 또 있는가?
은부 황후마마와 왕건장군이 만났다 하옵니다.
종간 그 얘기는 알고 있네.
은부 제가 상궁들 속에 끄나풀을 하나 박아 놓았었사옵니다. 황후께서 폐하를 저주하며 왕장군에게.... 허, 참....
종간 왜 그러는가? 말을 해보게.
은부 왜 옥좌에 앉지 않는가 하고 물었다 하옵니다. 황후께서 도와주실 수 있으니 옥좌에 앉으라고 말이옵니다.
종간 .........?
은부 말씀드리기조차 송구하옵니다만은... 폐하와 내원어른 두 분이 세달사의 보잘 것 없는 승려 출신이 아니었는가 하시면서 왕장군 같은 사람이 왜 옥좌에 오르지 않느냐고 했다는 것이옵니다. 이야말로 대역이 아니옵니까?
종간 황후께서 목숨을 재촉하시는 구먼. 그래, 왕건이는 뭐라고 하였다 하던가?
은부 그런 황후마마를 달래면서 대답을 피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하옵니다.
종간 그러니까, 왕건이야. 어지간한 일에는 걸려들지를 않는단 말일세. 그나저나, 황후가 큰 일이로군. 갈수록 조짐이 좋지가 않아.
은부 아무래도, 폐하께 말씀드려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종간 폐하께?
은부 문제는 황후마마가 아니라 왕건이옵니다. 황후마마까지도 왕건이에게 옥좌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사옵니까? 언제까지 왕건이를 두고 보실 것이옵니까? 더 이상 여유는 없사옵니다. 나주에 가 있는 동안 뭔가 결단을 내야 하옵니다.
종간 그야, 그렇네 만은... 황후마마의 일을....전해 올린다...?
은부 제가 맡겨 주시옵소서. 생각이 있사옵니다.
종간 음....
씬 동 황후전
연화가 생각에 잠겨 있다. 슬이와 함께 해 있다.
연화 슬이야,
슬이 예, 황후마마.
연화 네가 보기에는 어떠하더냐? 왕장군 말이다. 조금도 변한 것이 없지 않느냐?
슬이 예, 마마. 그렇게 보였사옵니다.
연화 참으로 딱도 하지. 세월은 벌써 이십년이 훌쩍 넘어 갔는데, 나는 아직도 제자리에 서있으니 말이다. 나는 그래도 왕장군이 마지막 정 하나는 가지고 있는 줄 알았다. (사이) 그러나, 왕장군도 혼자 몸 하나 감추고 도망치기에 급급하더구나.
슬이 형편이 그리 된 것을 어찌하겠사옵니까?
연화 분명히 우리에게 위기는 다가오고 있는데, 어떻게 해 볼 길이 없구나. 태자들과 나는 어찌해야 할꼬....
슬이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사옵니까?
연화 나는 보인단다. 다가오는 있는 불행이 보여. 죽음의 그림자 말이다.
슬이 황후마마...?
연화 나는 보여.... 헌데, 도망칠 곳이 없어. 갈 곳이 없단 말이다.
씬 동 대전
궁예가 생각이 많다. 최응이 보고 있다.
궁예 (E) 왕건아우 집에 신료들이 많이 보여 들었다? (사이) 그래, 그래도 이 나라 시중이었으니 그럴만도 하겠지. 헌데, 내가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면 가지 말았어야지. 그 문상은 무엇 하러 갔단 말인가? 아무도 가지 않는 그 초상집에를 왜 왕건아우 혼자서 갔을꼬....그 집에 갔다면 분명히 황후와 만났을 것이야. 황후와.... 그들이 거기서 만나서 무슨 얘기를 나누었을꼬....?
궁예는 계속 고개를 젓는다. 그때, 대전내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대전내관 (E) 폐하, 내군 장군께서 들었사옵니다.
궁예 들라 하라.
은부가 들어와 예를 올리고 앉는다.
궁예 어서오게. 그렇지 않아도 막 차 한 잔 하려고 하던 참이었어. 왕건아우는 나주로 떠낫다고?
은부 예, 폐하. 신도 그런 보고를 받았사옵니다.
궁예 떠나기 전에 신료들이 아주 많이 몰려들었다더군. 왕건 아우 집에 말이야.
은부 예, 그것도 들었사옵니다. 폐하께서 시중벼슬을 거두시고 나주로 보낸 사랍이옵니다. 신료들이 몰려갔다는 것도 경박스럽지만, 스스로 조심하고 삼가 할 줄 알았어야 했사옵니다.
궁예 뭐 그럴 수도 있는 일이겠지. 그래, 어쩐 일인가?
은부 좋지 않은 일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어서 말이옵니다.
궁예 그래? 뭐가?
은부 황후마마의 주변을 본의 아니게 살펴보아왔사옵니다. 폐하께오서 걱정하시는 일들도 있으신 것 같고 해서...
궁예 걱정이라..? 하긴, 뭐 요즘 황후가 좀 그래. 이 대전이 부서져라 하고 욕설을 퍼붓지를 않나... 제 집안의 잘못을 모두 내 탓으로 돌리지를 않나... 도무지 뉘우치는 빛이 없어.
은부 그렇사옵니다, 폐하. 황후마마께오서는 대부인의 초상을 치르시려 사가로 가셨다가 그곳에서 왕건장군을 만나셨사옵니다.
궁예 왕건아우는 그리 가겠다고 나에게 말을 한 적이 있어. 크게 잘못 된 것은 아닐세.
은부 하오나, 황후마마와 두 분 사이에..... (최응의 눈치를 본다) 두 분 사이에....
궁예 괜찮아. 말을 해보게.
은부 차마 말씀 드리기 어려운 대역에 관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하옵니다. 황후마마께오서 왕건장군에게 옥좌에 오르라 하시었고...
최응 ........?
궁예 뭐라고? 황후가 왕건아우에게 뭐라고...?
은부 옥좌에 오르라 권하셨다 하옵니다. 하옵고, 폐하의 지난 날들을 들먹이시면서 신라 왕실의 서자가 왜 이 나라의 황제 자리에 계시는가 하시면서.....
은부는 말을 하다가 만다. 궁예가 이미 탁자를 주먹으로 내려쳤기 때문이다.
궁예 참으로 실성을 했구나. 황후가 실성을 했어. 제 부모가 죽고 나서 아주 돌아 버렸어.
은부 황후마마도 그러하시지만, 문제는 왕건장군이옵니다. 이미 많은 신료들의 인심을 애써 끌어 모으고 있사옵니다. 지난 날 아지태의 말 중에서 왕장군에 대한 부분은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사옵니다. 역모 사건 언저리에는 언제나 왕장군이 있었사옵니다.
궁예 ........(끄떡인다)
은부 지금 석총이에 관한 사건도 재조사에 들어가 있사옵니다.
궁예 그 문도들은 지난 번에 다 없애지 않았는가?
은부 그렇기는 하오나 왕장군이 어디까지 관여를 하였는가 하는 점은 석연치가 않았사옵니다. 계속 조사하여 그 결과를 곧 올리겠사옵니다.
궁예 왕건아우는 큰 죄가 없어. 사람들이 자꾸만 물고 들어가서 그럴 게야. 허지만, 이번 황후의 일은 뜻밖이네 그려.
은부 어찌해야 하올지 폐하의 하명을 청하러 왔사옵니다.
궁예 (아주 오래 생각하다가) 황후도 사람이야. 화가 나서 해본 소리겠지. 그리고, 내 아이도 뱃속에 가지고 있어. 그러나, 일단 조사는 해보아.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애. 기왕 의심이 되는 것은 뿌리를 뽑아야 해. 조사를 하려면 태자들에 관한 것도 다시 조사해 보아.
은부 예..?
궁예 그 집안 내력을 샅샅이 알아 보라 이 말이야. 왕건아우와 얽혀 있다는 정혼 이야기도 샅샅이 찾아보아. 아주 뿌리 채 캐어야 해. 의심이라는 것은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지워지지가 않아.
은부 예, 폐하.
궁예 허허, 신라의 서자라..? 왕건아우 보고 옥좌에 올라라..? 이미 그것 자체가 목숨을 구제 받기 어려운 죄가 아닌가? 황후가 정말 돌았구먼. 돌아 버렸어.
입술을 모질게 앙다무는 궁예의 무서운 그 표정에서...
씬 바다
왕건의 배가 가고 있다. 물결이 매우 고요하다. 태평, 능산, 유금필 김락 들이 가고 있다.
태평 주군, 참으로 철원을 잘 벗어 나셨사옵니다. 얼마나 넓고 시원한 바이옵니까?
능산 하하하, 태학사가 이제 주군을 닮아 가는 것 같소이다. 바다를 좋아하니 말이올시다.
유금필 이제 우리들과 한 식구가 되었다는 증거올시다. 우리도 모두다 주군을 오래 모시다보니 바다를 좋아합니다.
태평 아무튼 저 철원은 정말로 잘 떠나온 것 같사옵니다. 조금만 더 계셨더라도 분명히 주군께서는 해를 입으셨을 것이옵니다.
왕건 (긴 한숨) 그럴 수도 있을 것일세. 그러나,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뜻 있는 신료들은 모두다 황도를 싫어하고, 폐하께서는 갈수록 의심과 독선이 더 커지시니....
태평 주군께서 떠나오실 때에 그 많은 신료들이 온 것을 보시오소서. 그들 모두가 주군께 드리는 속뜻이 있사옵니다. 그것은 이대로는 이 조정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옵니다.
왕건 그만 하게.
유금필 태평학사의 말은 누구든 다 알고 있는 일이옵니다. 폐하의 주변에는 간악한 자들만이 들끓고 있사옵니다. 내원 그 사람도 그렇고 내군을 강력하게 틀어쥐고 있는 은부 장군도 그렇고, 임춘길이도 가세를 했사옵니다.
능산 소인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이대로는 오래 못 갈 것이옵니다, 주군.
태평 아무튼 나주로 가신다 해서 다 끝난 일은 아니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 주군께서는 경계하고 조심하실 일이 많사옵니다. 잊지마시오소서.
왕건 ........(한숨만 쉰다)
씬 철원 임춘길의 집 외경
씬 동 집 안
임춘길과 도우가 웃고 있다.
임춘길 아무튼 나는 이제 내원을 마음 놓고 드나드는 사람이 되었소이다. 내원이 어딘 줄 아시오? 바로 폐하께 계시는 대전 다음이 내원 그곳이란 말이오. 그곳 자체가 권력의 상징이예요.
도우 들어서 알고 있사옵니다.
임춘길 내가 보니 저 사람들은 이미 왕건장군을 죽이기로 아주 작정들을 하고 있소이다. 잡아 넣을 꼬투리가 문제인 거예요.
도우 지금 그곳을 알아보고 있사옵니다. 소승이 꼭 청주에서 있었던 내막을 찾아 올리겠사옵니다. 그렇게되면, 장군에 대한 신뢰는 더욱 커질 것이옵니다.
임춘길 암,암...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게요. 생각할수록 대사가 고맙습니다. 내 언젠가는 반드시 이 은혜를 갚으리다.
도우 은혜랄 것이 무엇이 있겠사옵니까? 이 모든 것이 인연이고 장군께서 그렇게 복을 타고나신 것이옵니다.
임춘길 그러게 말이오. 꼼짝없이 죽게 되었던 목숨인데 출세 길이 훤히 보이고 있으니, 허허, 이거 참.... 정말 모든 게 대사의 덕이오.
도우 고맙사옵니다, 장군. 허허허......
씬 길(회군길)
최승우가 말없이 가고 있는 견훤을 보다가 한 마디 한다. 그 뒤로 능애, 공직, 김총, 애술, 최필, 신덕, 신검, 양검 들이 보인다.
최승우 폐하, 이제 황도에 거의 다 왔사옵니다.
견훤 그런 것 같네 그려. 백성들이 얼마나 기운들이 빠지겠는가? 내가 이렇게 빈손으로 돌아오고 있으니 말일세.
최승우 그렇기는 하오나 패전을 한 것은 아니옵니다. 너무 상심하지 마시오소서.
견훤 어떻게 상심이 안되는가? 아깝게 목숨을 잃은 추허조 생각만 하면, 너무 기가 막혀. 그나마 태봉국에서 우리의 빈틈을 노리지 않았기 다행이지 자칫 잘못하면 더 심한 곤경에 처할 수도 있었어.
최승우 태봉국은 지금 내정이 복잡하옵니다. 다행스럽게도 신이 보낸 첩자가 제몫을 아주 훌륭히 해주고 있사옵니다.
견훤 오, 오, 그런가? 그나마 다행이구먼.
최승우 태봉의 왕 궁예의 폭정이 갈수록 도를 더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스스로 미륵을 운운하면서 황후의 집안까지도 대역 사건을 빌미로 모조리 도륙했다 하옵니다.
견훤 저런, 저런... 그런 일이 있었는가?
최승우 뿐만 아니라 시중이었던 왕건이를 다시 좌천하여 금성으로 가게 하였다 하옵니다. 아마 지금쯤 금성으로 가고 있을 것이옵니다.
견훤 그래? 아니, 그 왕건이가 다시 금성으로 온단 말인가?
최승우 예, 폐하.
견훤 우리로써는 바람직한 일이 아닐세 그려. 차라리 철원에서 저희들끼리 내분을 일으키거나 말거나 그 속에서 어찌 되어야지 금성으로 온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 아니야. 그러고보면, 금성에 전투가 아주 커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최승우 그런 것은 아니옵니다. 무진주성의 보고를 계속 받았사온데, 국지전을 몇 번 하다가 지금은 그나마 휴전상태라 하옵니다.
견훤 그래도, 왕건이가 오고 있지 않는가?
최승우 전투를 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좌천이옵니다. 뭔가 권력 싸움에서 밀려나 나주로 일시 몸을 피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보여지옵니다만은...
견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최승우 여러 모로 생각해 볼 때 저들이 처음부터 싸울 의사도 없이 우리 무진주 성을 집쩍 거린 것은 아마도 뭔가 위기에 처해있던 왕건이를 구해내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나 생각되옵니다.
견훤 (끄떡이며) 그럴 수도 있겠구먼. 자고로 혹세무민하는 종교는 오래 갈 수가 없는 법이야. 미륵이란 게 뭔가? 미륵 말이야. 어떻게 인간이 미륵이 될 수 있는가? 그것부터가 틀렸어. 태봉도 오래 못 갈 게야.
최승우 그럴 것이옵니다. 결국은 이 삼한의 주인은 폐하께서 되실 것이옵니다.
견훤 허허허, 그것을 위해서 지금 이 고난의 길을 계속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루어야지. 우리 백제가 삼한의 주인이 되어야지. 암....
그들이 그렇게 얼마를 더 가는데, 저만큼 이들을 마중 나온 사람들이 보인다. 그런 그들을 견훤들이 본다.
씬 그 곳
박씨, 고비, 능환, 박영규, 금강 들이 내관 상궁들과 함께 가까이 오고 있는 견훤을 보고 있다. 이들은 곧 서로를 보며 예를 올린다.
박씨 어서오시오소서, 폐하. 얼마나 노고가 크시었사옵니까?
고비 어서오시오소서.
능환 폐하, 얼마나 고생이 크시었사옵니까?
견훤 고생은 무슨 고생..? 전쟁을 뜻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돌아오게 되어 백성들에게 면목이 없게 되었네.
능환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폐하? 전쟁이란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일이옵니다.
박영규 그렇사옵니다, 폐하. 신라군도 폐하의 그 놀라운 위압감에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이옵니다.
견훤 나를 위로할 생각들은 말게. 이번 전쟁은 결국 우리가 부담이 더 컸어. 그래, 도성에서는 별 일이 없었는가?
능환 예, 폐하. 무진주 성에서 가벼운 전투가 두어 번 있었던 것으로 아옵니다만은 지금은 별 다른 소식이 없사옵니다.
견훤 그렇지 않아도 오면서 그 이야기를 하였어. 전령을 보내서 사정을 다시 알아보도록 하게.
능환 예, 폐하.
견훤 자, 황후, 가십시다.
박씨 예, 폐하.
이들 그렇게 다시 함께 움직인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씬 무진주 성 안
지훤이 여전히 부장들과 함께 묘한 표정으로 멀리 진을 치고 있는 태봉군을 보고 있다.
지훤 더 이상 싸울 의사가 없어. 참 이상한 일이었어. 도대체 뭘 노리고 저들이 저렇게 나와 있었는가 말이야.
부장1 분명한 것은 성주님의 말씀이 맞다는 것이옵니다. 전혀 싸울 의지를 보이고 있지 않사옵니다.
지훤 폐하께서 회군을 하신다 들었네. 지금쯤은 황도에 도착을 하셨을 게야. 그렇게 되면, 우리 후방은 더욱 안정해 지는 게야. 대군이 언제라도 달려올 수 있으니 말일세. 이제 한시름 놓아도 되겠네 그려.
부장1 그럴 것 같사옵니다.
끄떡이는 그들의 표정에서...
씬 그 곳 들판
윤신달과 전이갑이 많은 군사들의 앞에 서서 멀리 성을 보고 있다. 그들은 서로를 보며 빙긋이 웃고 있다.
윤신달 전장군, 아무래도 그만 철군을 해야 할 것 같소이다.
전이갑 그러게 말이외다. 우리의 목적은 다 이루지 않았소이까? 모두들 왕시중을 마중하러 포구로 갔다 들었소이다.
윤신달 하하하, 그렇소이다. 왕시중께서도 오시고 또한 저 무진주 성 뒤로 견훤왕이 대야성에서 회군해 돌아왔다 합니다. 이렇게 되면 아니되지요. 물러 나십시다.
전이갑 그래야겠소이다. 부장은 듣거라.
부장 예, 장군.
전이갑 철군한다. 군사들을 물러라. 철군을 알려라.
부장 예, 장군. 철군이다. 대오를 갖추어라. 모두 철군한다.
그렇게 부산한 그들의 모습에서...
씬 나주 포구
왕건이 도착해 배에서 내리고 있다. 오씨, 다련군, 김언들이 마중하고 있다. 거기 5살 정도의 무가 함께 나와 있다.
오씨 오서오시오소서, 서방님.
왕건 오, 그동안 잘 계셨소이까, 부인? 장인어른,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사옵니까?
다련군 어서오시게, 왕시중.
왕건 하하하, 이제는 시중이 아니라 대장군으로써 이곳에 왔사옵니다.
김언 얼마나 철원에서 고생이 많으셨사옵니까? 이렇게 뵈오니 참으로 반갑사옵니다.
왕건 이곳 나주는 김장군이 있어서 늘 안심이오.
김언 부끄럽사옵니다, 장군.
오씨 서방님 무이옵니다. 무야, 인사드려야지. 아버님이시다.
무 무이옵니다, 아버님.
왕건 오, 그래, 그 사이에 많이 컸구나. 자, 들 가십시다.
모두들 예.....
그들 그렇게 함께 포구를 빠져 나오면서.....
씬 나주 관아 외경
웃음소리들이 들려온다. 집사장이 흐뭇한 표정으로 지나친다.
씬 동 관아 안
왕건과 더불어, 오씨, 다련군, 태평, 능산, 유금필, 김락, 김언, 윤신달, 전이갑 들이 함께 음식을 들고 있다.
왕건 역시 이곳은 내 두번째 고향이올시다. 비록 처향이기는 하나 이제는 내 고향이 되었어요.
모두들 하하하하...
왕건 나주에 돌아오니 마음은 편안한데 조금 쑥스럽구료. 나 한사람 내려오게 하기 위해서 모두가 그러한 요란을 떨었다니 말이오.
윤신달 아니옵니다, 시중어른. 저희들은 시중어른께오서 철원으로 가실 때부터 걱정이 많았사옵니다. 그곳은 역시 계실 곳이 아니옵니다.
전이갑 그렇사옵니다. 폐하와 더불어 그 주변의 간신들은 자신의 장졸들이 어찌 싸우고 어찌 죽어 가는 지를 모르옵니다. 그저 정권 지키기에 혈안들이 되어 있사옵니다.
김언 사실이옵니다. 우리가 그 동안 어떻게 나주를 위해 싸웠고 지켜왔는가 하는 것을 아무도 알아주는 이가 없사옵니다. 폐하께서도 그러하옵니다.
왕건 그만들 하시오. 폐하와 나라를 비방해서는 아니됩니다. 물론, 나라 사정은 어렵습니다. 나 또한 어려운 처지에서 이곳을 왔소이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 본분에 충실함으로써 자신들의 몸을 보존하는 것이 낫소이다.
왕건의 말에 모두 헛기침을 한다. 마땅치 않은 것이다. 분위기를 돌리려는 듯 오씨가 말한다.
오씨 그러고보니, 이번에도 박술희 장군이 아니 보이시옵니다. 계속해 상주에 주둔해 있는 것이옵니까?
왕건 그렇지 않아도 이곳으로 오면서 다른 장수들과 교대를 하라고 하였소이다. 그곳에만 꽤 있었거든. 이리로 오게 될 것이오.
김락 오, 그렇사옵니까? 하긴, 박장군을 뵌지도 꽤 되었사옵니다. 이곳에 함께 있게 되었다니 다행이옵니다. 하하하하.
왕건 자, 모처럼 만의 해후이니 한 잔들 하십시다. 부인, 상을 좀 더 크게 보아주시구료. 장수들의 술자리오. 안주가 좀 푸짐해야 하지 않겠소이까?
오씨 예, 서방님. 염려마시오소서. 부엌이 지금 한창 바쁘옵니다. 곧 들여 올 것이옵니다.
다련군 자, 자, 이렇게 좀 드십시다. 드세요.
왕건 드십시다.
모두들 잔을 든다. 훈훈한 그들의 표정에서...
씬 사벌주 아자개 성 외경
아자개 (E) 아니, 이보게, 술희, 지금 뭐라고 하였는가?
씬 동 성 안
아자개, 계모, 박술희, 대주도금, 용개, 보개가 함께 해 있다. 모두들 눈이 뚱그래서 박술희를 보고 있다.
아자개 뭐라고? 여길 떠난다고?
박술희 예, 상부어른. 저희의 주군이시고 큰 형님이신 왕건장군께서 시중 벼슬을 놓고 나주로 가셨사옵니다.
아자개 나주..? 나주가 어디야?
용개 금성의 이름을 바꾸어 나주라 한다 하옵니다.
아자개 아, 아, 참, 그래. 들은 적이 있었지. 그런데, 왜 술희 장군 자네가 그리로 가나? 아, 이곳에 있지 않고서?
박술희 나라의 명이시옵니다. 어찌 받들지 않을 수가 있겠사옵니까?
계모 아니, 아니야, 우리 나으리는 술희 장군이 없으면 사는 낙이 없으신 분이세요. 대주야,
대주 예, 어머님.
계모 아, 뭐라고 말 좀 해보거라. 박술희 장군이 떠난다고 하지 않느냐?
대주 제가 할 말이 무엇이 있겠사옵니까? 본래 군인이란 명령에 따라 죽고 사는 직분이옵니다. 나라의 명을 받았으면, 당연히 가는 것 아니겠사옵니까?
아자개 글쎄, 얘가 이래요. 이러니 박장군이 무슨 낙이 있겠는가? 그래도, 대주 너 하나 보고 이곳에 자원하여 지금까지 있지 않았느냐? 나는 말이다. 이제 박술희 장군이 없으면 정말 세상 사는 재미가 없어요. 그 머루주는 누가 갔다 주고, 때마다 철마다 나를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 인제 누가 있겠느냐? 아이고, 가지 마라, 술희장군.
박술희 어쩔 수가 없사옵니다. 꼭 다시 오도록 노력해보겠사옵니다.
아자개 지금까지 우리가 얼마나 재미있게 살았는가? 이 일대는 전쟁이란 없었어. 얼마나 평화롭게 살았는가 말이야. 그것이 다 나하고 자네하고 통했기 때문이 아닌가? 헌데, 가면 어떡하나? 보나마나, 이곳이 시끄러워져. 아이고, 부인 이를 어쩌면 좋소이까?
계모 그러게 말입니다. 너무도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나으리.
박술희 (술을 따르며) 상부어른, 한동안 못 뵐 것이옵니다. 잔 받으시오소서.
아자개 그래, 그래. (잔 받고 따른다) 자네도 받게. 내 말 잘 듣게. 자네는 빨리 돌아와야 해.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이 평화가 깨어지면 우리도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그런 얘기야.
대주 아버님,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시옵니까? 우리가 어찌 되다니요?
아자개 생각해보거라. 태봉국에 박장군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가 편안하게 사는 것이다. 그리고, 견훤이는 내가 있어서 더 이상 이쪽으로 오지 않았어. 이제 그 균형이 깨어지면 분명히 일은 벌어진다, 내 생각이 틀림없을 게야.
용개 그럴 수도 있을 것이옵니다. 저도 아버님 생각과 같사옵니다.
대주 우리에게 힘이 있사옵니다. 오라버니는 우리 성을 절대로 치지 않사옵니다. 그럴 마음이 있었다면 벌써 그랬을 것이옵니다. 또한, 태봉국에서 다른 장수가 와서 우리를 넘본다면 물리치면 그만이옵니다. 대체, 무슨 걱정들을 그리 하시옵니까?
계모 어른들의 말씀을 잘 들어라. 다 경험에서 하시는 말씀이다. 아이고, 어찌할꼬.... 이곳이 불안해지면 또 어찌할꼬....
박술희 대주낭자, 어디를 가든지 나는 낭자를 잊지 않을 것이외다. 반드시 다시 돌아오겠소이다. 기억해주시구료.
대주 박장군은 참으로 끈질기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저의 마음도 변함이 없습니다. 나는 백제국 황제의 동생입니다. 적국의 장수를 어찌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부탁입니다. 이번에 가시거든 다시는 보지 않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자개 아, 대주야,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게냐? 얘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어? 아, 나는 어찌 살란 말이냐, 그럼? 무슨 낙으로 살아?
계모 그건 나도 그렇다. 술희 장군은 이제 우리와는 떨어져서는 살 수가 없어요. 대주 네가 좋아하든 아니든 말이다. 아니 그런가, 술희장군?
박술희 고맙사옵니다. 언제가 되었든 소장은 기다릴 것이옵니다. 낭자의 마음이 변하실 때까지 기다릴 것이옵니다.
아자개 헤헤헤, 그래야지. 그래야지. 사내가 기왕에 칼을 뺏으면 결과를 봐야지. 암, 그렇고 말고. 그렇고 말고...... 자네가 하기에 따라서 태봉국과 백제국이 서로 전쟁을 종식시킬 수도 있을 것이야. 옛날에는 그런 일이 많았어. 나라와 나라 사이에 국혼을 하고, 서로 사돈이 되고, 많아지. 그런 일이 참으로 많았다고. 아, 태봉국과 그렇게 못할 것이 뭐 있어? 아니, 그러냐, 대주야?
대주 ..........(대답이 없다)
그런 그들의 표정에서....
씬 철원 황궁 외경(밤)
씬 동 대전
궁예가 생각에 잠겨 있다. 일렁이는 촛불을 보며 혼자 중얼거린다.
궁예 황후까지도 왕건아우에게 옥좌를 권했다고 한다. 그런 정도라면 아지태가 한 말이 빈말이 아닐 수도 있다. 왕건이는 반드시 나의 자리를 훔칠 것이라고 했던가?
궁예는 고개를 외로 꼰다. 아지태의 목소리가 에코로 들려오고 있다. (102회 아지태의 대사만 참조)
아지태 (E) 석총이는 폐하께서 가시고 새로운 미륵이 나타날 것이라고 저주를 했사옵니다. (사이) 그 새로운 미륵이 누구를 말하는지 아시옵니까? (사이) 왕건이옵니다. 바로 저 왕건이옵니다. 새로운 미륵이란 다음에 나타날 반역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옵니까? (사이) 폐하, 그래도 신의 말을 믿지 못하시옵니까? 바로 저 왕건이가 반역자이옵니다. 자신의 정혼녀를 불경스럽게 폐하께 바친 간악한 자가 왕건이옵니다. (사이) 불쌍하구나. 황제여, 너는 이미 미쳤다. 제국을 끌어 나갈 힘도 없다. 결국은 왕건이에게 다 내주게 될 것이다. 이 미련하고 불쌍한 황제여.
궁예 (E) 아지태는 뭔가를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어. 왕건아우라... 황후까지도 그렇게 말을 했단 말이지? 황후까지도.... 너무도 많은 이들이 왕건이의 반역을 경고하고 있다. 아무리 분해서 내뱉은 말이라고는 하지만 황후까지도 말이다. 이렇게 되면 어찌 되는 것인가? 그리고, 저 황후는 어찌한다? 아이를 가진 지 벌써 여러 달이지 않는가? 저 황후를 어찌한다..?
씬 황후전
연화가 눈물을 글썽이며 불러오는 배를 보고 있다. 제조와 슬이가 보고 있다.
연화 기가 막힌 일이다. 세상의 섭리가 참으로 무섭구나. 이 가슴속에는 증오와 한이 펄펄 끓고 있는데, 뱃속의 핏덩이는 어느새 이리도 다 자라 버렸구나.
제조, 슬이 ..........
연화 (눈물을 흘리며) 어쩌다 이렇게 내가 가련하고 박복한 여인이 되었단 말인가?
제조 고정하시오소서, 마마.
연화 생각해 보거라. 폐하의 세 번 째 씨앗이니라.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냐? 이것이 바로 하늘의 벌이 아니겠느냐? 하늘에 벌을 받은 것이다. 나야말로 하늘에 저주를 받은 것이야.
제조,슬이 마마......
연화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날개가 있어서 훨훨 저 담장을 날아 갈 수도 없고, 세상천지에 누구 하나 의지할 사람도 없구나. 나는 어찌하란 말이냐? 도대체, 나는 어찌하란 말이냐? 나는......?
절규처럼 소리지르는 연화의 표정에서...... 스톱모션.
< 112회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