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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대본

[태조 왕건] 113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7.12.05|조회수2,234 목록 댓글 0

태조 왕건 <제 113회>

 

줄거리
 

궁예는 연화가 왕건에게 보위를 권유하는 한편 역모를 꾀하였다고 믿고 즉시 내군과 의형대에 일러 연화는 물론 태자들까지 철저히 조사케 한다. 한편, 왕건은 나주에서 상주에 가 있던 박술희를 불러들이는 등 다시 나주의 안정을 꾀하기 시작한다. 그 즈음 연화가 산고를 시작하고, 궁예는 연화에 대한 역모 사건으로 인심을 잃을 것이 두려워 마지막으로 연화를 찾아가게 된다. 그러나, 연화는 고통 속에서도 절대 뜻을 굽히지 않고 독설을 퍼붓는데....


 


 씬 황궁 외경(새벽)

 

               산기슭 사이로 짙푸른 새벽이 붉은 서기와 뒤엉키며 벗어지고 있다.

               여명이 밝고 있는 것이다. 카메라 그렇게 부감으로 조여들면....

 

씬 동 황궁 마당

 

               전각들 사이로 내군들이 경계를 서며 지나치고 있다. 금대와 장일의

               모습도 보인다. 은부가  관복 차림으로  산책하듯 천천히  걸어온다.

               금대와 장일이 예를 올린다.

 

은부          (그 예를 받으며) 고생들이 많구먼. 내원어른을 뵙지 못하였는가?

금대          내원께오서는 저쪽 정자에 올라 계시옵니다.

은부          허허허, 내 그럴 줄  알고 이리로 오는 길이었지. 자네들이  요즘 들

               어서 무척 바쁠 게야. 할 일이 아마도 갑자기 많아 졌을 게야.

장일          아니옵니다, 장군. 그럴수록 즐거운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은부          나는 자네들만 믿고 일을  하는 게야. 내군은  이 나라 최고의 황제

               폐하를 뫼시는 친위부대일세. 

금대          알고 있사옵니다.

은부          자네들의 소임을 게을리 하지 말게.

금대          예, 장군.

은부          내가 새로  내려보낸 그 사건들도  긴밀하게 의논하여  처리들 해야

               할 게야.

장일          염려 놓으시오소서, 장군.

은부          그래, 허허허. (가며) 내원께서는 요즘 통 잠이 없으셔.... 저 쪽 정자

               에 계시겠지.

 

               은부는 그렇게 멀리 보이는 정자 쪽으로 걸어간다.

 

씬 동 정자 안

 

               종간이 밝아 오는 새벽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종간          (E) 도무지 어디로  가야할 지 길을  잡기가 어렵구나. 하나의 일이

               끝나는 듯 하면 또  다른 일이 밀려오고, 그리고  그 일이 정리되는

               듯 하면 또 다른  일이 밀려온다. 하나 같이  백해무익한 좋지 않은

               일들뿐이다. (사이, 한숨) 우여곡절 끝에 그 지독하던 폐하의 환후가

               나으셨다. 모처럼 총기를 되찾으시고 정사를  보시는가 하였는데 그

               것도 아니지 않는가? 강장자의 일로써 복잡한 모든 끈을 끊는가 했

               더니 이번에는 황후 쪽으로 일이 번지고 있다.  어찌 하시자는 것인

               가? 도대체 그런 소소한 것들에  매달려 무얼 어떻게...? 그래,  변하

               신 것은 맞다. 옛날의 폐하는 아니시다. 

 

               그때, 은부가 조용히 정자 계단을 올라온다.

 

은부          여기 계실 줄 알았사옵니다, 내원어른. 요즘 따라 새벽잠이 통  없으

               신 것 같사옵니다.

종간          허허허, 세월 탓인가 보이. 새벽에 잠이 없다는 것은 나이를  들어간

               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은부          (주변 보며) 이제 그러실 때도 되지 않았사옵니까?

 

               두 사람 그렇게 가볍게 웃으며 함께 산기슭을 본다. 그러다, 종간이

               그대로 산에 시선을 놓은 채 묻고 있다.

 

종간          황후마마의 일은 어찌되고 있는가?

은부          계속 조사가 진행되고 있사옵니다.  내군도 동원하여 의형부를 돕게

               하고 있사옵니다.

종간          (한숨 쉬며) 황후마마의 일은 복병이네 그려. 예상치 않았던 것이야.

은부          그러나 어쩌겠사옵니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도저히 그냥  두어서

               는 아니될 일이었사옵니다.

종간          그래, 그러나 막중한 국사들이 수없이  줄을 이어 기다리고 있는 때

               일세. 이럴 때 폐하께서 엉뚱한 일에 생각이 가 계시니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은부          그러나, 황실이 안정되지 않고는  나라가 안정될 수 없사옵니다.  폐

               하께오서 앉아 계시는 그 옥좌가  불안하다는 것은 결국 나라가  불

               안한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황후마마께서 돌이키기 어려운  결정적

               잘못을 저지르셨사옵니다. 

종간          그러나, 아녀자의 일일세. 집안 일이라는 말일세. 황후마마가 우리의

               견제목적은 아니었네. 왕건이 하나만 잡으면 끝나는 일이 아닌가?

은부          허지만, 그 덫에 황후마마께서  함께 걸려드시니 어찌하겠사옵니까?

               이미 폐하께서는 결심이 서신 것 같았사옵니다.

종간          결심이라... 나도 예감은 하고 있었네. 그러신 것 같네.  그래서, 자네

               가 대전으로 가는 것을 막지 못했던 것이야. 어차피 일은 벌어질 것

               이니까 말일세.

은부          강장자가 죽을 때에 이미 황후마마와 태자마마들도 그 의심의  넝쿨

               속으로 함께 끌려들어온 것이옵니다.

종간          (흠칫하며) 태자마마들까지 말인가?

은부          본의든 아니든 간에  태자마마들은 폐하의 옥좌에 앉으려  했사옵니

               다. 역시 죄인의 반열에서 벗어 나오기 어렵사옵니다.

종간          그리 말씀하시던가, 폐하께서?

은부          그런 암시를 주셨사옵니다. 모조리, 황후든 태자든 모조리  조사하라

               고 말이옵니다.

종간          (긴 한숨) 황후의 일은 우리 계산에 없던 일이야. 생각할 수록  기분

               이 좋지를 않아. 그건 폐하를 위해서도 그렇단 말일세. 나나 자네는

               누구보다도 폐하를 잘 아네. 그 분은 한 번  시작하시면 모든 게 끝

               이야. 피를 보지 않으면 끝나지 않으실 게야.

은부          아마도 그럴 것이옵니다.

종간          아,아, 답답하이. 그 옛날 폐하께서 하신 말씀처럼 제국의 앞날을 위

               해서는 너무도 시간이 없는 이 때일세. 어찌할꼬...어찌할꼬....

 

씬 동 대전

 

               궁예가 여전히 생각에 잠겨 있다. 최응이 보고 있다. 궁예는 혼자서

               도리질을 하고 있다.

 

궁예          내군을 맡고 있는 은부라는 사람은 빈틈이 없어.

최응          .........

궁예          오래도록 내원과 더불어 내 옆에  있었지. 은장군은 이번 사건을 아

               주 잘 조사해 올 게야. 아니 그러냐, 최응아?

최응          .........

궁예          왜 대답이 없느냐? 너는  내가 이번 사건을 다시 조사하는  것에 대

               해서 별로 탐탁지 않은 눈치로구나.

최응          아니옵니다, 폐하. 신이 어찌  폐하께오서 하시는 일에 시비를  가릴

               수 있겠사옵니까?

궁예          황실이 깨끗하고 맑고 투명해야 한다.  그래야 온 조정이 또한 그것

               을 본받아 배우고 다시 백성들에게 전해지는 것이야. 헌데, 내 주변

               이 구려서야 되겠느냐?

최응          .........

궁예          나를 보고  신라왕실에서 버림받고  도망친 서자라고  했어. 그리고,

               왕건에게 옥좌를 오르라고 했다는 것이다.

최응          지금 조사에 들어가  있는 일이옵니다. 아닐  수도 있지 않겠사옵니

               까?

궁예          나를 위한 일이라면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는 저들이다. 저들이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보느냐?

최응          그런 것은 아니옵니다만은....

궁예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이냐?  아지태 그 놈이 죽으면서 한  말이 모조

               리 들어맞고 있어. 이러니 황후와 왕건 아우에  관한 나쁜 소문들이

               도는 것도 당연한 게야. 태자들도 의심을 받고 말이야.

최응          태자마마들께서야 무슨 죄가 있겠사옵니까?

궁예          허허, 이런... 몰라서 묻느냐?  그 어린것들이 애비의  자리에 앉으려

               고 했다. 나를  밀어내고 말이다.  그것이 죄가 아니겠느냐?  최응이

               너는 아주 나와 생각이 많이 다른 모양이다. 이런 쯧쯧.... 당연히 죄

               인이지. 당장에라도 끌어다가 죄를 물어야  할 대역사건이지. (사이)

               문제는 황후가 내 아이를  다시 갖고 있다는 것이다.  내 아이 말이

               다. 죄를 물어도 그 후에 물어야겠지. 이봐라, 최응아.

최응          예, 폐하.

궁예          내의원에 일러서 황후전에 동태를 좀 알아보라고 해라. 언제 출산을

               하는지 그것도 확실히 알아보라고 해.

최응          예, 폐하.

궁예          내가 알기로는 오늘 내일이라고 들었다만은... 그래도, 확실히 알  건

               알아야지.

최응          예, 폐하.

 

               그렇게 최응이 나간다. 궁예는 독하게 중얼거린다.

 

궁예          내 아이는 마땅히 잘  보호를 해야지. 그리고, 물을 죄는  또 확실하

               게 물어야지. 물어야 하고 말고....

 

씬 황후전 외경

 

씬 동 황후전 안

 

               의원이 진맥을 보고 있다. 모두들 그런 의원을 본다. 조심스럽게 뒤

               로 물러나는 의원....제조가 묻는다.

 

제조          어인 일로 갑자기 진맥을 보러 오시었소?

전의          예, 폐하께오서 마마의 해산날에 관하여 알아 보라 하시었사옵니다.

제조          폐하께오서 말씀이시오?

전의          예.

슬이          그 날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전의          한 열흘이면 해산을 보실 것 같사옵니다. 아기님도 아주 강건하시옵

               고 황후마마께오서도  또한 그러하시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하오

               면...

 

               의원이 물러갈 때까지 연화는 그렇게 보고만 있다. 그리고, 뭔가 불

               현듯 생각한다.

 

연화          이야말로 기이한  일이 아니냐?  폐하께서 생전에 아니하시던  일을

               하시는 구나. 나와 아이의 건강을 알아보신다...?

제조          마마, 당연하신 일이옵니다. 폐하께오서 아기씨께 어찌 관심이  없으

               실 수가 있겠사옵니까?

연화          모르는 소리일세. 자신이 낳아 놓은 아드님들도 안부 한 번 묻지 않

               으시는 냉혹한 분이실세. 그 분은 영원히 혼자 사셔야 하실 분일세.

               자식이니 안해 따위에는 전혀 정이  없으신 분이실세. 관심이라고..?

               그런 소리 말게. 뭔가 다른 저의가 있으신 게야. 그게 무엇일꼬..?

슬이          그저 좋게 생각하시오소서, 마마. 그럴 리야 있겠사옵니까?

연화          아니다. 분명히 뭔가가 있다. 뭔가가 있어.

 

씬 내군 전각 안

 

               은부가 입전, 신방을 불러 압박을 주고 있다.  그 옆으로 금대, 장일

               들이 보인다. 입전들은 은부가 준 서책을 보고 있다.

 

은부          그대들은 지난 번 아지태 사건에도  공이 많았소이다. 물론 법을 다

               루는 의형대에서 당연히 해야할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오.

두사람        예, 장군.

은부          지금 의형대에서  조사하는 그 일은  아지태 사건보다도  더 중요한

               황후마마께오서 관여되신 대역사건이오. 

입전          알고 있사옵니다.

은부          헌데, 우리가 내려 준  사건의 전말 외에는  뭣 하나 시원스럽게 더

               나온 것이 없소이다.

입전          장군, 이 나라 국모님께오서  관여되신 일이옵니다. 또한 그  이야기

               를 들은  사람이 누구인지도  밝혀내기도 어렵사옵고....  더더군다나

               시중이셨던 왕건장군은 지금 나주에 계시옵니다. 그 분을 불러 조사

               한다는 것도 또한 폐하의 허락이 있어야 하옵고....

은부          (호통치며)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게야, 지금? 그래가지고 무슨 법

               을 맡은 관리라 하는가? 왕건장군은 폐하의 영이 계셔야 부른다 하

               더라도 황후마마의 주변에 여러 내관 상궁들이 있었어. 그들부터 조

               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입전          그 또한 황실 안에 있는 사람들인지라 폐하의 영이....

은부          이런 답답한...! 폐하의 영은 이미 내려졌다고 하지 않는가? 좋아. 그

               럼, 황후전 사람들도 아직 놔둔다고  치자, 황후 사저에 있는 그  강

               장자의 양자라는 자는 왜 그냥 놔두고 있는가? 즉시 불러다가 매질

               을 해보아. 다 불게 되어 있어.

입전          예, 장군.

은부          잘하란 말이오, 잘. 이건 폐하의 지엄하신 영이오. 우선 양자부터 불

               러다가 족쳐보란 말이오. 그리고,  황후전의 상궁 내관들도 다  잡아

               들여.....

입전          장군,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장군께서 말씀하신 그 상궁 하나 뿐

               이옵니다. 다른 사람은 그곳에 없었사옵니다.

은부          그러니까 조사를 하라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다 알아보아.  태

               자마마를 보위에 올린다고 한 그 이야기 말고 또 무엇이 있었는가?

               왜 그 지밀한 곳에 어떻게 황후마마와 왕장군만이 있을 수 있는가?

               그것이 말이 되는가 말이야. 다 조사해보아. 다....

입전          알겠사옵니다, 장군.

은부          석총이 건도 그래. 그게 어디 순군부의 임춘길 장군 혼자서 할 일인

               가? 법을 다루는 의형대에서 조사를  하는 것이 더 쉽고 빠른  것이

               아닌가, 그 말이야.

신방          그리하겠사옵니다, 장군. 저희가 서둘러 보겠사옵니다, 장군.

은부          이미 폐하께 다  보고된 일이야.  증인도 있고, 그  뒷조사를 마무리

               지으라는 것인데 이렇게도 원... 서둘러, 서둘러서 그 결과를 올리도

               록 하게.

신방,입전     예, 장군.

 

씬 임춘길 집 외경

 

씬 동 집 사랑

 

               크게 웃고 있는 임춘길과 도우.

 

임춘길        일이 아주 묘하게 되어가고 있소이다. 황후마마의  사가에 왕건이가

               갔다는 것입니다. 물론 문상을 간 것이지요. 그것이 그예 화가 되었

               답니다.

도우          그렇사옵니까?

임춘길        의형대는 물론이고 내군까지 나서서 이 사건을 속속들이 파고 있답

               니다. 내군의 은부 장군이 직접 관여를 하고 있다는 것이예요.

도우          일이 정말 커지는 모양이옵니다, 장군.

임춘길        쉬쉬하면서 들 하는 말이 황후마마와 왕건이 사이에서 역모 이야기

               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역모 말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예사로운

               사이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돌고 있소이다.

도우          그것은 실은 아지태가 과장되게 부풀린 것이 아니옵니까?

임춘길        아, 그러니까 재미있지 않소이까?  어차피 정혼을  했었다는 사실도

               있고 하니 말이올시다. 그러니까 태자들도 억울하게 의심을 받는 게

               지요.  이게 얼마나 재미있소이까?

도우          더 재미있는 일이 있을 지도 모르옵니다.

임춘길        오, 그래요?

도우          지금 충주에 있는 왕건이의  세 번째 처갓집에 있던 집사장을  만나

               서 회유 중이옵니다.

임춘길        오, 그렇소이까?

도우          거기에도 분명히 뭔가가 있었사옵니다. 이번에야말로 왕건이는 사면

               초가에 부딪칠 것이옵니다. 잘 하면 관심법으로 끝장이  날 수도 있

               는 일이옵니다. 더 재미있지 않겠사옵니까?

임춘길        오, 그러게 말이오. 그렇게만 된다면..... 왕건이가 그렇게만 되면....

 

씬 나주 포구 근처 길

 

               사람들의 내왕이 활발해 보인다.  거기 왕건과 오씨가  나란히 말을

               타고 오고 있다. 그 뒤로 유금필, 능산, 태평이 따르고 있다. 그리고,

               가신들이 따른다.

 

오씨          이렇게 서방님을 뫼시고 바깥 나들이를 하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

               겠사옵니다.

왕건          부인은 나들이라고 말씀하시지만 나는 공무를 수행 중이오. 이 나주

               포구가 어찌 돌아가는가, 그리고 군사들의 경계  상황은 어떤가? 다

               시 이곳에 총사로 왔으니 의당 살펴보아야지요.

오씨          그러면서도 박술희 장군이  오시는 것을 마중하시는 것이  아니옵니

               까?

왕건          그것도 공무올시다. 예하 장수들이 전보되어 오는데 어찌 가만히 있

               겠소이까? 하하하.

유금필        그렇사옵니다. 주군께서 하시는 일은 모두가 공무이옵니다.

능산          정말 그렇사옵니다. 허허허.

오씨          배가 도착한 것 같사옵니다. 저기....

 

               포구에서 박술희와 그의 부장들이 나오고 있다. 왕건들을 보자 군례

               를 올린다.

 

박술희        주군, 박술희이옵니다.

왕건          어서 오게.

박술희        이렇게 포구까지 주군께서  나와주시니 감개가  무량하옵니다. 형수

               님, 그간 편안하셨사옵니까?

오씨          예, 박장군. 참으로 반갑습니다.

유금필, 능산 어서 오게, 아우님. 참으로 오랜만일세.

태평          어서오시오소서.

박술희        예, 태평군사, 오랜만입니다.  그리고, 형님들  정말 오랜만이옵니다.

               이렇게 모두다 모이고 보니 참으로 기쁘옵니다. 하하하.

왕건          자, 관아로 가세. 가면서 이야기하세.

 

               그들 행렬이 모두 다시 길을 잡아든다.

 

씬 그 길

 

               그들이 가면서 이야기의 꽃을 피운다. 오씨가 먼저 묻는다.

 

오씨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사벌주에 있는 백제국 견훤왕의 누

               이동생은 어찌 되었습니까?

유금필        아, 이 사람아 정말 그 일은 어찌 되었는가?

능산          맞아. 주군께서 그 일  때문에 특별히 자네를  오래 두게 하신 것일

               세. 지금쯤은 뭔가 이루어졌을 것이 아닌가?

왕건          아, 말을 해보아.

박술희        참으로.... 드릴 말씀이 없사옵니다. 세상에 안되는 일이 없는 소인이

               온데, 그 일만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사옵니다.

왕건          서로가 적국일세. 남녀간의 인연이란 쉽지  않은 법이지. 그래서, 결

               국은 지금까지도 별 소득이 없었다 그런 이야기인가?

박술희        그러하옵니다, 주군.

오씨          호호호, 참으로 아니되었습니다.  헌데, 그  대주라는 낭자가 그리도

               미인이라면서요?

박술희        그 말씀은 참으로 맞사옵니다.  세상에 그만한 낭자는  어디서도 볼

               수가 없었사옵니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프옵니다, 형수님.

 

               모두들 웃는다. 왕건이 다시 묻는다.

 

왕건          그래, 그곳 전선은 어떠한가?

박술희        소인이 있을 때까지는 아주 편안했사옵니다. 앞으로도  누가 그쪽에

               총사를 맡던 간에 계속해 우호 정책을 쓸 필요가 있사옵니다.

태평          그렇사옵니다. 그 아자개라는 사람은 백제국 견훤왕의 아버지이옵니

               다. 그러니까 유일하게 상주가 아직까지도 우리와 백제 사이의 완충

               지대로 남아 있는 것이옵니다.  지난번에도 사실 견훤왕이  그 땅을

               도모하려고 했다면 할 수도 있었사옵니다. 그 아자개라는 사람 때문

               에 오늘 같이 되어 버린 것이지요.

왕건          맞는 말이야. 그 쪽에 내가 알기로 이흔암 장군이 총사로 가는 것으

               로 되어 있는 것 같더구먼.

박술희        그렇사옵니다. 이장군에게 군무를 인계했사옵니다.

왕건          그 아자개라는 사람과 잘 지내야 할 터인데....

 

씬 상주 태봉국 군영(충주 관아)

 

               이흔암이 부장들을 가득히 집합 시켜 놓고, 상석에 앉아 있다. 가득

               히 위험을 차리려고 애를 쓴다.

 

이흔암        내가 장군 이흔암이오. 모두들  얘기 들었을 것이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폐하를 모시고 수많은 전장터를 누빈 사람이올시다.

제장들        예, 장군.

이흔암        이곳 일대는 그 옛날 왕건장군 이래로  충주를 기점으로 해서 낙동

               강 일대까지 우리 태봉 땅이 되었소이다. 헌데, 아직까지 저 사벌주

               성에 견훤왕의 아버지가 살고 있다  하는데.... 이게 정말 묘한  일이

               란 말이야. 어떻게 우리의 영내에 백제의 성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야.

부장1         오랫동안 그렇게 지내온 일이옵니다.

이흔암        오랫동안..?

부장1         예, 장군.

이흔암        하긴, 뭐, 왕건장군이 그렇게 기반을 닦았다는 얘기는  들었네. 어쨌

               든 내가 총사로 왔으니까  그 노인을 한 번  보기는 봐야겠구먼. 거

               참, 괘팍스러운 늙은이란 말이야. 아, 아들이  백제국의 황제인데 저

               렇게 고집을 부리면서  우리 태봉국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  그것

               참...

 

씬 사벌주 성 외경

 

아자개        (E) 이게 도대체 사람 사는 재미가 없어요.

 

씬 동 성 안

 

               아자개가 자식들에게 짜증을 부리고 있다.

 

아자개        박술희가 가고 나니까 그저 온 주변이 텅 빈 것 같아.  이렇게 무료

               할 수가 없어요. 그래도, 옛날에는 달마다 거르지 않고 찾아오는 박

               술희 때문에 그 사람 기다리는 재미에 살았어. 

계모          어쩌겠습니까요? 기왕에 간 사람을 가지고 왜 이러시옵니까?

아자개        아, 부인은 그렇지 않소이까? 그 박술희가  이제 지쳤어. 사람이 아

               주 진이 빠졌단  말씀이야. 그러니까,  저쪽에서 왕건이라는  사람이

               오라고 하니까 훌쩍 가버린 것이야.

계모          그러면 어쩝니까? 우리 대주가 전혀 마음에 없어하니 말이옵니다.

용개          마음에 없다기보다도 우리의 처지가 그래서 그러는 것이옵니다.

계모          우리의 처지가 뭐 어때서?

보개          참, 어머님도... 아, 형님이 백제국의 황제이신데 대주누님이 뭘 어찌

               할 수 있겠사옵니까? 설령, 그 박술희라는 장수가 좋다고 해도 말이

               옵니다.

대주          그런 소리 할 것 없다. 내가 언제 좋다고 하였느냐? 그 사람이 가고

               나니까 십년 묵은 체증이 떨어지는 것 같다.

아자개        뭐,뭐, 뭐 어째 십년 묵은 뭐가 떨어져? 생각해보아라.  견훤이는 견

               훤이고, 우리는 우리대로 살았다. 이미 몇 십 년 째 말이다. 네가 박

               술희한테 시집을 간다고 해서 아무도 말릴 사람 없다.

대주          시집은 아니 간다고 하였사옵니다, 아버님.

아자개        간다고 하면 말이다. 생각해보아라. 얼마나  사내답게 생겼냐? 거기

               다 아주 유식해요. 그만한 호걸이 어디 있느냐? 아, 안 그러냐?

대주          이제 우리 사불성과는 그렇게 끝난 사람이옵니다. 처음부터 아무 일

               도 없었고 말이옵니다. 

아자개        때끼.... 니가 이 아비 심정을 알기나 하느냐? 박술희가 우리와 얼마

               나 정이 들었느냐? 이제  내 자식이나 진배없이  된 사람이다. 아이

               고, 언제 또 볼까? 장기는 누구하고 두고, 머루주는 언제 구경을 하

               나? 아이고..아이고, 박술희.....

 

씬 백제 전주 황궁 외경

 

씬 동 대전 안

 

               견훤이 최승우, 능환, 능애와 함께 여러 장수들과 모여 앉아 회의를

               하고 있다. 공직, 박영규, 김총, 애술, 최필, 신덕, 신검, 양검 들이다.

 

견훤          우리는 대야성에서 돌아온 이후 많은 것을 점검하였어. 역시 무리한

               공략보다는 단단한 수성이 먼저라는 것도 알았어.

모두들        ........

견훤          그래서, 성을 얻기보다는 지키기 어렵다는 옛말이 비로소 실감이 가

               는 것 같아. 하나를  얻기보다는 그 하나를 오래  보존하는 것 말이

               야. 나도 새삼스럽게 나이 들면서 배우는 게 많아.

모두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견훤          태봉국의 사정부터 지금껏 우리가 회의한 모든 것들을 파진찬이  얘

               기해 보게.

최승우        예, 폐하.

 

               최승우가 두루마리에 적은 것들을 펼쳐 보이며 말을 시작하자, 능환

               은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한 표정으로 본다.

 

최승우        그 동안 이 나라의 여러 가지 제반 문제들을 폐하를 뫼시고 더불어

               의논한 것들입니다. 먼저 우리의 전선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지

               금 여기 일리천(안동), 영천, 대구, 대야주, 진주 일대를 삼국의 경계

               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벽진군(성주) 또한  아주 미묘한 지

               역으로써 저 금성 못지 않게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우리 앞에 놓

               여 있습니다.

능애          벽진군이라면 이총언이라는 자가 있는 곳이 아니오이까?

최승우        그렇습니다. 그 자는 벽진군 태수로써 오랫동안 그곳에 선정을 베풀

               어 오면서 백성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고 있는데 아직까지 태봉국이

               나 백제국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곳

               곳에 남아 있는 전략 요충지를 우리에게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싸

               움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이러한 민심을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신덕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인심이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견훤          그래서, 그래서... 하는  말이야. 우리는 당분간  큰 전투를 멀리하고

               국력을 신장시키는데 최선을 쏟아야 한다 하는 얘기를 하는 것이야.

               지금 태봉국은 그 내부 사정이 아주 복잡해.  신라는 여전히 명맥만

               유지한 채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어. 이럴  때에 우리는 그야말로

               알차게 삼한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 이런 말이야. 알겠는가?

모두들        예, 폐하.

견훤          그래서, 태자와 여러 제장들은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우리와 첨예하

               게 대립하고 있는  여러 전선들을  순회하면서 짐을 대신해  인정을

               베풀고 인심을 모으는 일들을 해줘야겠다 이런 말이야. 알겠는가?

모두들        예, 폐하.

견훤          이찬.

능환          예, 폐하.

견훤          이찬은 이 나라에서 짐 다음 가는 신료 중 으뜸의 벼슬이야. 파진찬

               은 국내의 국방 관계를 담당한다면, 그대가 나라  안의 살림과 외교

               문제에 대해서 잘 관리를 해 주어야 해.

능환          예, 폐하.

견훤          특히나 오월국은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중원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위치에 있어. 그 옛날 신라가 삼한을  통일했을 때도 당나라의

               힘을 빌렸어. 나라와 나라가 손을 잡고 서로를 돕는 일은 아주 필요

               한 것이야. 비록 금성의 포구가 저 왕건이에게 점령당해 있지만, 다

               른 길을 뚫어서라도 다시 길을 열어 보아. 일본국도 마찬가지야. 그

               쪽도 관무역을 넓히고 나라간의 우호를 다지도록 손을 써보란 말이

               야.

능환          예, 폐하.

견훤          농사도 그래, 백성들이 배가 불러야 싸움도 하는 것이야. 최대한  농

               사를 도와주고 충분한  곡식을 얻을  수 있도록 관리들을  파견하여

               그 어려움들을 덜어주도록 하게. 모두들 짐의 뜻을 알겠는가?

모두들        예, 폐하.

견훤          신라는 비틀거리고 있고, 태봉국 또한 물고 뜯고 시끄러워. 이럴  때

               우리는 힘을 비축하고 다져야  해. 모두들 그 일을  게을리 하지 말

               게. 내가 지켜보고 꼼꼼히 다 적어 놓을 것이야. 알겠는가?

모두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씬 철원 황궁 외경

 

씬 동 대전 안

 

               궁예가 올려온 서류철을  보다가 흠칫하며  앞에 겁을 먹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입전과 신방을 본다. 그 옆에 은부가 앉아 있다.

 

궁예          뭐라? 황후의 대역사건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황후 주변의 상궁  내

               관들을 소환할 필요가 있다?

입전          예, 폐하.

궁예          그 자들은 왜?

입전          어찌되었든 대역에 관한 말이 오고간 그 장소에 있었던  자들이옵니

               다. 모두들 불러서 여러 정황을 알아볼 필요가 있겠기에...

은부          황후마마의 죄를 물으시는 일이옵니다.  모든 사안이 분명하게 처리

               되었다는 것을 백성들이 알 필요가 있사옵니다. 

궁예          하지만, 이미 증인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은부          그렇기는 하옵니다만은...

궁예          (한참 생각하다가) 황후가 해산을  하는 날이 얼마 아니 남았어.  그

               아이는 내 아이야.

은부          예, 폐하.

궁예          며칠 아니 남았어. 며칠.... 그때까지는 시끄러울 필요가 없네 그려.

은부          알겠사옵니다, 폐하. 하오면 그때까지 관련된 죄인들의 소환을  미루

               겠사옵니다. 하오나, 강장자의 양자는 데려다가 조사할 필요가 있사

               옵니다.

궁예          그거야 상관없겠지. 그러고 보면 강장자는 처음부터 욕심이 너무 많

               았어. 양자를 들인 것은 다음 대에 영화를 보기 위함이었어. 태자들

               이 나를 밀어내고 앉았다면, 그 꿈들이 다 이루어졌겠지.

모두들        .........

궁예          그렇게 해. (서류 보며) 그리고, 이건 뭔가?

입전          조사하는 관리들을 풀어서  황후마마와 왕건장군에 관한 모든  내막

               을 알아본 것들이옵니다.

궁예          그래, (계속 넘겨본다) 정혼을 했었는데... 그것을 스스로 깬 것은 왕

               건아우의 집안이었다?

은부          그러하옵니다. 도선대사의 예언에 왕건장군이  훗날 황제의 앉을 것

               이라는 것이 있다 하옵니다. 그 예언을 믿고  지금의 황후마마와 약

               조했던 정혼을 피하고, 파했다는 것이옵니다.

궁예          재미있구먼. 그럼, 이게 어떻게 되는 것이야? 왕건아우 집에서  황후

               감이 아니라고 버린 사람을 내가 황후로 맞은 것이 아닌가? 이렇게

               되면 내원 그 사람도 실수가 있었구먼.

은부          (변명하듯) 그런  것이 아니오라, 당시만  해도 패서  일대에 그만한

               분이 아니 계시기에 내원께서 천거해 올리신 것이옵니다.

궁예          재미있군. 재미있어.

은부          아무튼 중요한 것은  황후마마께서 보위를 운운하는 대역의  말씀을

               하신 때에 왕장군이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것이옵니다. 마땅히

               함께 불러 올려 국문 하셔야 할 것으로 아옵니다.

궁예          (기분 나쁘다) 가는 곳마다 왕건이야. 일마다 왕건이야 이러니....  도

               선대사가 예언을 했다...?  도선비기라는 그 얘기가 아닌가?

은부          그러하옵니다, 폐하.  그 때문에  내원께서 왕건장군을  만날 때부터

               경계를 하고 말씀 올렸던 것이옵니다. 그 예언들이  지금 뿌리를 내

               리고 있지 않사옵니까? 굽어 살피시오소서, 폐하.

궁예          (한참 생각한다) 이미 황후는 죄를  벗을 길이 없어. 그리고, 국모로

               써의 체통과 품위도 다 잃어버렸어. 그리고, 태자들도 마찬가지야.

최응          ........?

궁예          다들 벗어날 수는 없어.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를  노린 자들이야. 

              어차피..... (한숨처럼) 어차피 다시 시작해야 해. 처음부터 다시.... 국

               혼 같은 것은 처음부터 하는 게 아니었어. 나나 내원이나 아직도 본

               분은 승려야. 여인을 안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어. 가보아. 그

               만들 가보게. 왕건아우에 관한 일은 좀 더 생각해보겠어.

은부들        예, 폐하.

궁예          강장자의 그 양자  아들은 데려다 조사를  하던지. 자네들 마음대로

               해.

입전          예, 폐하.

궁예          그만 가보아.

 

               그들이 일어나 나간다. 최응만이  조용히 앉아 있다. 궁예가  중얼거

               린다.

 

궁예          그랬어. 나는 처음부터 국혼 따위는 원치 않았어. 내원이 그렇게  강

               권을 하더니만, 결국은 사태가 이렇게까지 되어  버렸어. 하지만, 후

               회만 할 수 없지 않는가?  어차피, 내가 지은 업이니까  내가 풀 수 

               밖에.... 그리고, 다시 시작해야지. 다시....다시.......!

 

씬 동 내원

 

               종간이 긴 한숨을 거퍼 쉬며, 괴로워하고 있다.

 

종간          갑갑하구나. 어디를 둘러보아도 참으로 갑갑해. 폐하께서는 이미  생

               각을 굳히신 지 오래이시다. 이 나라 조정  신료들과 백성들이 어찌

               생각을 할까? (사이) 그 동안 그 몹쓸 병마 때문에  수없이 많은 사

               람을 죽여오신 폐하이시다. 이제 황후와  태자들까지도 죽이시는 폐

               하를 보면서 뭐라고들 할 것인가? 누가 과연 폐하를 정상으로 보아

               줄꼬...? 누가...? 어떤 사람들이  있어 폐하를 동정하고 고개를  끄떡

               여 줄 것이란 말인가? 인심이다. 그 인심이 달아나고 있다. 그것 없

               이 어떻게 한 나라를 통치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 없이 어떻게...?

 

               그 위로 다급한 말발굽 소리들이 들린다.

 

씬 철원 시가지

 

               군사들이 달려가고 있다. 그리고, 카메라 앞을 지나쳐 사라지면....

 

씬 강장자 집

 

               대문이 부서질 듯 소리나게 열리면서 군사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뻥

               해서 보고 있는 양자를  군사들이 낚아챈다. 머슴들은  미처 어찌해

               볼 도리도 없다. 

 

양자          웬, 웬.. 일들이시오?

장일          황제폐하의 영이시다. 그대를 대역죄인으로  구금하노라. 얘들아, 데

               리고 가라.

양자          이보시오, 들.... 이보...시오....

장일          어서 데리고 가라.

 

               소란이다. 저항하는 양자를  그렇게 군사들이  강제로 끌고  나간다.

               바라보는 장일의 위압적인 표정에서.....

 

씬 유천궁의 집 외경(밤)

 

씬 동 집 사랑

 

               박지윤, 유천궁, 박질, 원극유가 모여 있다.

 

박지윤        (소리 죽여) 조정에 아주 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사

               롭지가 않은 일이라 합니다.

유천궁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황후마마를 국문  하신다는 소문입

               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원극유        사실이올시다. 오면서 들었는데, 강장자의  양자가 의형대로 끌려갔

               다 합니다. 그것도 내군의 군사들이 직접 끌어갔다는 것이예요.

박질          그 사건을 내군의 은부장군이 지휘를 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유천궁        대체 죄안이 뭐라고 합니까?

박지윤        대역, 대역죄랍니다.

유천궁        대역..?

박질          모르긴 몰라도 이미 상당한  조사가 진행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관리

               들을 대거 파견하여 황후마마와 나주에  가 있는 왕장군에 관한  일

               들도 더불어 조사가 되고 있다고 하더이다.

유천궁        참으로 끈질기십니다, 폐하께서는.... 아지태 사건이 이어져서 강장자

               를 죽게 하더니 다시 그 강장자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이제 황후마마

               와 왕장군까지 조사를 한다는 것입니까?

원극유        또 있습니다. 태자마마들도 다시 조사중이라 합니다.

유천궁        대역이라.... 그 대역이란 것 자체가 한 번 국문이 열렸다 하면 모두

               가 죽어나가는 죄이올시다. 망국의 징조올시다.

모두들        ......... ?

유천궁        그렇지 않고서야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인 것도 부족해서 황후마마와

               태자마마까지 국문장으로 끌고 나온단 말입니까? 이게 망국의 징조

               가 아니고 무엇이겠소이까?

박지윤        무섭습니다. 폐하께서는 조금도 나아지신 것이 없습니다. 이제는 어

               떻게 황후마마와 태자마마까지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씬 병부 관아 어느 곳

 

               장수들이 모여 있다. 복지겸, 배현경, 홍유,  염상, 환선길 들이 모여

               서 서로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보고 있다.

 

홍유          폐하께서 내군과 의형대를  통하여 황후마마의 죄를 조사하신다  합

               니다.

배현경        아마도 죽은 강장자와  관계된 일이  아니겠소이까? 내가 듣기로는

               태자마마들도 그 죄를 조사중이라 합니다.

염상          나도 내군에 있었지만은 내군에서 직접 의형대와 함께 조사를  한다

               면 그것은 기필코 작은 일이 아니올시다.

복지겸        황후마마께서 문상을 다녀오신 이후에 갑자기 이루어진 조사올시다.

               문제는 왕건장군이 그 일에  관여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올

               시다.

환선길        허허, 나주로 가신 왕장군이 말씀이오? 왜요?

염상          과거에 밑에 있었던 수하들에게 대충  들었는데, 그 죄안이 아주 중

               요하고 크다고 합니다. 대역죄를 밝혀내는 것이랍니다.

모두들        대역죄..?

염상          황후마마께서 왕장군과 더불어 역모를 꾀하셨다는 겁니다.

배현경        허허, 말도 아니되는 소리. 구중궁궐 속에 박혀 계시는 황후께서 어

               떻게 왕장군과 역모가 가능하다는 말씀이오?

염상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런 쪽으로 이야기가 되고 있는

               것 같소이다.

복지겸        폐하의 친위군인 내군에서 이 일을 조사하고  있다는 것은 아주 불

               길한 결과를 예고하는 것이올시다.

환선길        설마, 아 설마하니,  그래도 그렇지.  황후마마가 누구시오이까?  아,

               태자마마는 누구시고? 그 분들의 죄를 물으실 리가 있겠소이까?

복지겸        허나, 사실로 굳어지는 것 같소이다. 이미 국문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예요.

배현경        헌데, 거기 또 왜 왕건장군을 끌어들인단 말입니까? 소장은 그런 이

               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거 분통이 터져서 살수가 없소이다. 아, 목숨

               을 내놓고 얼마나 전장터를 누비며  공을 세우셨소이까? 이건 어떻

               게 황도에 돌아오기만 하면 그냥 잡지 못해서 난리들이니.... 참으로

               답답하오이다. 나주에 간지 얼마 되셨다고 대역사건이니 뭐니 또 불

               러 올립니까?

복지겸        그러니까, 안타까운 일이예요.

홍유          폐하께서 환후가 좋아지셨다 하더니, 그게  아닌 모양입니다. 아, 그

               러니까 이번에는 황후마마까지 일이 번지는 것이 아니오이까?

환선길        거, 무슨 불경스러운 말씀이시오. 그럼, 폐하께서 제  정신이 아니시

               고 어딘가 잘못되어서 그리 하신단 말씀이오이까?

홍유          생각해보시구료, 환장군.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황후마마와  태자

               마마까지 끌어 들이신단 말입니까?

환선길        글쎄, 그게 뭔가 나도 잘못된 것 같기는 하오이다만은... 허, 참....

복지겸        아무튼 예삿일은 아니올시다.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씬 왕건의 집 외경

 

씬 동 집 사랑

 

               두 유씨와 왕식렴, 왕신이 모여 있다.

 

왕식렴        태평학사가 그렇게 걱정한 것처럼 불길한  징조들이 일어나고 있사

               옵니다. 아무래도 황후마마의 일은 형님까지  파급될 것이 분명하옵

               니다.

수인          그러길래, 얼마나 만류를 드렸사옵니까?

유씨          서방님께서는 이미 오늘 같은 일이 있을 줄도 알고 계셨던 분일세.

왕신          물론, 그렇기는 하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많은 사건이 있었사옵니

               다만은 이번만은 다르옵니다. 큰 위기가 오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왕식렴        집 안 모두가 긴장을 늦추지 말고, 돌아가는 사태를 잘 주시할 필요

               가 있사옵니다. 나주에도 빨리 이런 사실들을 알려드려야 하고요.

 

               모두들 끄떡인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씬 황궁 외경

 

씬 동 대전

 

               최응도 없고, 궁예 혼자 생각에 잠겨 있다.

 

궁예          (E) 황후의 죄를 조사한다는 것은 결국은 죽음을 의미한다. 이미 내

               가 그것을 시작했다는 것을 백성들과  신료들은 지금쯤 다 알  것이

               다. 죽음...죽음.... 황후를 죽인다...? 그  어린것들도 죽인다...? (사이)

               죽인다.... 허나, 달리 방법이  없지 않는가? 한  나라의 제왕인 내가

               왜 이런 일들에 계속 끄달려  가야 한단 말인가? 마땅히 빨리  해결

               을 하고, 의심과 반목의 싹을  다 치워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이런

               나의 생각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야. (사이) 허나, 허나...  백성과

               신료들이 뭐라 할꼬..? 나를 비정한 황제라고  하겠지? 그래도, 연약

               한 황후가 아닌가? 태자들은 아직 철부지들이고... 한  번 인정을 베

               풀어봐? 인정을....... 아니지. 아니야.  (사이) 아니야, 그것도  아니야.

               지금쯤 해산날이 이제 다 되었을 텐데...  해산날이... 그래, 아직까지

               문상을 다녀온 이후로는 한 번도 보지를 못하였어.  이럴 게 아니라

               어찌되었든 한 번 만나 볼 필요는 있어. 그건, 그래...

 

               그러다가, 궁예는 대전내관을 부른다.

 

궁예          밖에 대전내관 있느냐?

대전내관     (E) 예, 폐하.

궁예          황후전에 갈 것이니라. 차비 하라.

 

씬 동 황후전 복도

 

연화          (E) 뭐라? 내 아우를 잡아들였다? 내 아우를...?

 

씬 동 황후전 안

 

               연화가 눈을 크게 뜨고 묻고 있다. 배는 이미 만삭이 되어 있다.

 

연화          무슨 죄로 내 아우를 잡아 들였단 말인고?

진내관        아무래도 사태가 심상치 않사옵니다. 의형대와 내군에서  곧 국문을

               열 준비를 한다 하옵니다. 그 죄안이 바로 황후마마를 향해 있다 하

               옵니다.

제조          소인도 들었사옵니다, 황후마마. 일이 급하게 돌아가는 것  같사옵니

               다.

슬이          도대체 죄가 뭐란 말씀입니까?

진내관        역모죄라 하네.

연화          역모...? 흥... 이미 다른 뜻이 계시는 것일세. 내가 문상을 다녀온 그

               때부터 폐하께서는 다른 뜻이 계셨던 것이야. 나를 죽이고 싶으시겠

               지. 그런 생각은 꽤 오래 전부터 갖고 계셨던 것이야.

진내관        황후마마, 어찌해봐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연화          지금 여기서 내가 뭘 어찌 할 수 있단 말이냐? 내가....

 

               말하던 연화가 괴로운 듯 배를 움켜잡는다. 모두들 놀라서 본다. 연

               화는 계속 괴로운 신음 소리를 낸다. 제조가 소근거린다.

 

제조          산통이시오. 진내관은 어서 나가 다른 일들을 더 알아봐주시구료.

진내관        알았소이다.

 

               바로, 그때 대전내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연화는 산고를 계속  한

               다.

 

대전내관     (E) 황제폐하, 납시오. 황제폐하, 납시오.

 

               그리고, 곧 궁예가 들어선다. 연화는 땀을 흘리며 고통을 계속 한다.

               그렇게 그들 내외는 서로를 본다.

 

궁예          어쩐 일이시오, 황후? 어디가 아프시오?

제조          산통이시옵니다, 폐하.

궁예          오, 그렇지 않아도  전의에게 이야기를  들었소이다. 고생이 많구료.

               너희들은 잠시 나가 있거라.

 

               궁예는 다가가 옆에 선다. 그리고, 고통을 계속 표하는 연화를 본다.

               연화의 눈은 독기가 여전하다. 연화만 남고 모두 밖으로 나간다.

 

궁예          많이 힘이 드시겠소이다, 황후?

연화          많이 힘이 드냐고 물으셨사옵니까? 

궁예          그렇소이다.

연화          그렇사옵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말이옵니다. 내 아우를 잡아  가

               셨다 들었사옵니다.

궁예          그건 죄가 있기 때문이오.

연화          죄라고 하셨사옵니까? (고통은 계속) 무슨 죄이옵니까? (악을 쓰듯)

               신첩은 지금 이렇게 폐하의 아이를 또 낳고  있사옵니다. 도대체 폐

               하께서는 사람이시옵니까, 짐승이시옵니까?

궁예          ...... 뭐라?

연화          저로 하여금 아이를 낳게 하시면서 한쪽으로는 의심의 병이  가득하

               여 처갓집을 몰살하는 황제도 있사옵니까?

궁예          이런, 이런.... 죄가 있으면 받아야지요.

연화          내 아우를 풀어주시오소서. 아무리 사람이  미워도 남의 집 대를 끊

               는 법은 없사옵니다.  

궁예          죄인의 집안에서는 역적이 나오는 법이오. 대를 이어봤자 나라에 아

               무 도움이 안되는 법이오.  황후도 그 아이를 낳게  되면 죄를 묻게

               될 것이오. 나를 밀어내고 왕건아우를 옥좌에  앉으라 하였다지? 왜

               그런 말을 하였소?

연화          저로 하여금 (고통 계속) 그렇게 만드신 분이 누구시옵니까?

궁예          이보시오, 황후. 나는 황후가  이 세상 누구보다도 정결하고  참으로

               순수한 사람으로 알고 살았소이다.  허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

               기 시작한 게요.

연화          폐하는 불쌍하신 분이십니다.

궁예          불쌍하다..? 내가..?

연화          폐하께서는 평생을 사람을 믿지  못하고 사셨습니다. 여인의 지극한

               정이 무엇인지, 가족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십니다. 오로지 야망만

               갖고 살아 오셨습니다. 그러니, 어찌 불쌍하다 아니 할 수 있겠습니

               까? 그 옛날 죽은 북원부인의 일을 기억하옵니다. 그 가엾은 여인은

               어찌 죽었습니까? 그 북원부인이 죽을 때 신첩도 그때 이미 제명에

               죽지 못하리라는 것을 보았사옵니다. 

궁예          지난 얘기를 할 필요는 없소이다. 이보시오, 황후. 참으로 궁금한 게

               하나 있소.... 왕건아우를 사모하였소?

연화          ......... ?

궁예          그랬던 것이오?

연화          신첩에 속내를  그리도 알고  싶으시옵니까? 왜 관심법으로  보시지

               그러하시옵니까?

궁예          뭐라..?

연화          신첩 하나 잡으시는  것도 부족하여 왕장군까지 죽이고  싶으시옵니

               까? 그렇사옵니다. 사모의 정을  갖고 있었사옵니다. 이제  되셨사옵

               니까? 후련하시옵니까?

궁예          (애써 참는다) 나는 황제이고 미륵이오. 황후가 나의 안해가 되어서

               다른 마음을 갖고 있었다면 그 자체가 이미 죽을 죄인 것이오. 황후

               는 살수가 없어요. 아시겠소이까?

연화          살려달라고 애원한 적도 없사옵니다. 

궁예          그래요? 그렇다면 다행이구료. 이미 각오가 다 되어 있는 것 같은데

               말이오. 황후는 제국을 위해 죽는 것이오. 이 제국을 위해서 백성을

               위해서 말이오.

연화          그러나, 그 길에는 백성도  없고 제국도 없사옵니다. 오로지  전지전

               능한 거짓 미륵만이 우뚝 서 있사옵니다.

궁예          거짓 미륵..?

연화          그렇사옵니다. 폐하께서는 석총대사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거짓이시

               옵니다.

궁예          (한참 보다가) 어쩔 수가 없구먼. 도저히 어쩔 수가 없어. 나는 그래

               도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인정을 베풀 길이 있을까 해서 왔었소.

               (차갑게 보며) 죽을  방법을 잘 생각해  보시구료. 그리고, 내  아이,

               그 내 아이를 잘 낳아주시구료. 내 아이 말이야.

연화          어찌 폐하의 아이라고만 하시옵니까? 신첩의 아이이기도 하옵니다.

궁예          그 아이는 내 아이요.

연화          폐하께서는 아무 것도 주장하실 수  없사옵니다. 사람 사는 법을 모

               르시는 분께서 어찌 아이는 그렇게 욕심을 내시옵니까?

궁예          내가 사람 사는 법을 모른다..?

연화          인간이기를 포기한 악마가 어찌 그것을 알겠습니까?

궁예          악마라..? 악마라..? 더  이상 얘기해 봐야  아니되겠구먼. 역시 길이

               보이지를 않아. 길이 없어.

 

               궁예는 그렇게 연화를 노려보다가 휭하니 빠져나간다. 연화가 그 고

               통 속에서도 무서운 독기로 소리 지른다.

 

씬 동 복도

 

               막 황후전을 나오던 궁예가 그 소리에 뒤를 다시 돌아본다.

 

연화          (E) 악마다. 황제가 아니라 악마야!

궁예          ...........!?

 

               < 113회 끝 >












첨부파일 태조왕건113.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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