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 114회>
줄거리
연화의 독설에 대노한 궁예는 드디어 연화가 세 번째 태자를 생산하자마자 그예 국문을 준비하라 명하게 된다. 또한, 연화가 보위를 권유했던 왕건도 다시 철원으로 불러들여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하여야 한다는 종간의 설득에 궁예는 왕건에게 관심법을 사용하기로 하고 소환령을 내린다. 한편, 임춘길은 청주에서 왕건이 석총대사에게서 미륵의 상징인 간자를 받았다는 정보를 입수하는 등 왕건을 없애기 위해 더욱 박차를 가한다. 궁예는 연화에게서 갓난아이를 빼앗고, 태자들과 함께 연금 시키고 마는데...
씬 황궁 외경(밤)
씬 동 대전
궁예가 화를 삭히지 못하고 있다.
궁예 처음부터 국모감이 아니었어. 사형이 눈이 어두워서 저런 여인을 황
후라고 잘못 천거한 것이야. 이제 보니 아주 제가 독사가 아닌가?
그래, 빨리 아이만 낳거라. 그것으로 끝이야. 다 끝이야. 황제의 위
엄이 얼마나 무서운지 또한 법이 얼마나 엄한 것인지 다 보여주고
말 것이야. 괘씸한.... 대전내관 있느냐?
대전내관 (E) 예, 폐하.
대전내관이 들어와, 눈치를 살핀다.
궁예 주안상을 봐 오거라. 수랏간에 일러 술을 가져 오라 하라.
대전내관 예, 폐하.
대전내관이 다시 나가고, 궁예는 또 중얼거린다.
궁예 처음부터 잘못 된 것이야. 처음부터..... 나는 그저 경전이나 읽으면
서 그렇게 혼자 살았어야 했어.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사람들은
안해를 죽이고 자식마저 죽이는 비정한 자라고 하겠지? 이런 저런
영문도 모르고 말이야. 황제란 처자식보다는 나라가 먼저인 게야.
다시 해야지. 다 쓸어버리고 다시 해야지......
씬 동 내원
종간이 은부와 함께 해 있다.
종간 그게 무슨 소린가? 폐하께서 황후전에 드셨다가 대노를 하시었어?
은부 예, 내원어른.
종간 아니, 왜, 어째서?
은부 아마도 폐하께오서 잠시 옛 정이 생각나셨던 것 같사옵니다. 그러하
시니 산고 중인 황후마마전에 납시지 않았겠사옵니까?
종간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 헌데, 왜?
은부 황후마마께오선 아무래도 이미 죽음을 생각하신 것이 아니겠사옵니
까?
종간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은부 내군이나 의형대에서 조사하고 있는 것을 모르실 리 없사옵니다. 하
온데, 그 어느 때보다 자중하셔야 할 분께서 전혀 상반되는 행동을
하셨다는 것이옵니다.
종간 분위기는 지금 그렇게 돌아가고 있지 않는가?
은부 물론 그렇기는 하옵니다만은... 황후마마의 아우를 우리 내군이 끌고
와 취조 중이옵니다. 그 일을 가지고 또 다시 강하게 따지신 듯 하
옵니다. 욕설이나 다름없는 독설을 퍼부으시면서 말이옵니다.
종간 (한탄한다) 아, 하.. 이런, 이런.... 이렇게 되면 정말 끝이 보이는 구
먼 그래. 끝이 보여.
은부 폐하께오서는 태중의 아기님을 생산하실 때까지는 모든 것을 그냥
두라 하셨사옵니다.
종간 그렇다면, 그 이후에는 곧 바로 국문을 하시겠다는 것이 아닌가?
은부 그런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종간 이렇게되면 다 끝이야. 다.... 문제는 조정 신료들과 백성들일세. 가
뜩이나 폐하를 옳게 본 사람들이 별로 없네. 헌데, 황후마마와 태자
마마까지 화가 미친다면....
은부 이 일만 끝나고 나면.... 더 이상 폐하께서 의심하시거나 피를 부를
일은 없을 것 같사옵니다. 다시 말씀드리오면 그 후로는 국사에 전
념을 하실 수 있으실 것이옵니다.
종간 아닐세. 그렇게 쉽게는 아니돼. 인심이라는 것은 한 번 떠나면 그만
이야. 그렇구먼.... 황후께서 죽음을 택하고 계시는 게야. 그런 게야.
씬 황후전 복도
연화의 산통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온다. 궁녀와 나인들이 세숫
대야와 비단들을 준비해 안으로 들어간다. 의원이 발을 구르며 거기
서 있다.
씬 동 황후전 안
연화의 힘겨움이 계속 된다. 아이를 낳으려 하고 있다. 산줄을 잡고
계속 고통을 토한다.
제조 힘을 내시오소서, 마마. 좀 더 힘을 주시오소서.
그 한쪽에서 슬이가 눈물을 흘리며 보고 있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슬이 이게 도대체 어이된 일인고...? 만천하의 축복을 받아야 마땅한 일이
거늘.... 아기님을 생산하시면 형벌이 기다린다니 웬 말인고?
제조 힘을 주시오소서, 마마.
연화 (신음하다가) 참으로..... 이야말로 하늘의 벌이다..... 전생에 지은 죄
가 너무 큰 모양이구나.... 아니, 그런가?
제조 (눈물) 마마......
연화 전생에 업이다...... (고통 계속) 전생에 업....업이야.....
연화는 그렇게 계속 고통을 더해 간다. 그 엄청난 고통에서....
씬 왕건의 집 대문 앞
진내관이 주변 눈치를 보며 마구 대문을 두드리고 있다.
씬 동 집 마당
장수장과 하인들이 다가온다.
장수장 누구시오?
진내관 (E) 진내관입니다. 문 좀 열어주시구료, 어서요.
하인들이 문을 연다. 진내관이 급히 들어서고 문은 다시 닫힌다.
진내관 왕공자를 뵈오러 왔습니다.
장수장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진내관 예....
그들 그렇게 사랑 쪽으로 사라진다.
씬 동 집 사랑
왕식렴과 진내관이 마주 해 있다. 왕신도 보고 있다.
진내관 위기가 아니라 곧 모든 것이 끝이옵니다, 공자님. 도와주시오소서.
어디 말을 붙여 볼 곳이 없사옵니다.
왕식렴 (답답하다) 진내관도 아시다시피 우리 형님 또한 큰 곤경에 처해 계
시오. 우리 집안도 전전긍긍하고 있소이다.
진내관 모르는 것은 아니옵니다. 그러나, 이미 뻔하게 정해져 있는 국문이
옵니다. 저대로 두면 틀림없이 황후마마와 두 분 태자님은 죽음을
면치 못하시옵니다. 신료분들을 좀 만나주시오소서.
왕신 그 또한 모르는 말씀이오. 지금 이 나라에서 감히 누가 나서서 부처
님보다도 더 높으신 저 미륵 폐하께 이러쿵저러쿵 말할 사람이 있
단 말이오?
진내관 그럼 어찌하옵니까? 도대체 우리 황후마마는 어찌하옵니까? 신료분
들이 나서서 바른 말을 해주셔야 할 것이 아니옵니까?
왕식렴 이 나라의 신료들이 입을 닫은 지는 아주 오래되었소이다. 우리도
어쩔 수가 없소이다.
진내관 그러면 어찌하옵니까? 대체 황후마마는 어찌하옵니까? 그래도, 이
집안과 황후마마의 집안은 대를 이어 친교를 맺어온 집안이옵니다.
왕식렴 어쩔 수가 없소이다. 나도 어쩔 수가 없소이다.
그런 그들의 표정에서....
씬 동 집 안채 방
두 유씨가 함께 해 있다. 그들도 긴장해 있다.
수인 진내관이 이 밤중에 웬일이옵니까?
유씨 아니 보아도, 사정이 뻔하네. 황후마마의 일이 급해진 것이 아니겠
는가?
수인 그렇다 하더라도 이리 오면은 어찌하옵니까? 가뜩이나 조정에서 지
금 우리 집을 노리고 있지 않사옵니까?
유씨 사람도 참... 저 사람들이 지금 갈 때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의
지처라고 찾아 왔는데 말이 심하네 그려.
수인 그래도, 그렇지요.
유씨 큰 일일세. 도대체 뭐가 어찌 되는 것인지, 서방님께 별탈이 없으면
좋겠네만은... 도대체 황후마마가 무슨 죄를 지으셨을꼬? 이야기대로
라면 지금쯤 해산을 하고 계실 것인데.... 참으로 딱도 하셔라.
씬 황궁 외경(새벽)
연화의 고통 소리가 들려온다.
씬 황궁 황후전
연화의 산통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제조상궁과 슬이, 궁녀들은 그
렇게 바쁘고....
씬 동 대전
궁예가 술을 마시고 있다. 몇 잔을 마시다가 잔을 소리나게 놓으며
다시 대전내관을 부른다.
궁예 대전내관 있는가?
대전내관 (E) 예, 폐하. (들어와) 찾아 계셨사옵니까?
궁예 황후전은 어찌 되었는가? 아이는 낳았는가, 아니 낳았는가? 수시로
알아서 이르라 하지 않았는가?
대전내관 예, 폐하. 산통이 아마도 길어지시는 듯 싶사옵니다. 아직 이렇다할
기별이 없사옵니다.
궁예 (마시며) 그 아이는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깨끗한 아이이다. 아주
순백한 나의 아이이다.
대전내관 ........
궁예 어느새 날이 밝고 있는 모양이다. 내군에 은장군을 이리 오라고 하
라.
대전내관 예, 폐하.
대전내관이 다시 달려나간다. 궁예는 술잔을 든 채 중얼거린다.
궁예 내가 냉정해야 한다. 인정 따위에 신경을 써서는 아니된다. 그것이
황제의 소임이기 때문이야. 암....
씬 동 내원
종간과 은부가 함께 해 있다. 이들도 긴장해 말이 없다.
은부 (한참만에) 아직도 황후전에서는 기별이 없사옵니다.
종간 폐하께서도 날밤을 세우셨다지?
은부 예, 내원어른.
종간 (한숨) 이럴 때가 가장 절망스럽네. 이럴 때가 말이야. 사실 황후마
마야 무슨 죄가 있겠는가? 어쩌면 나의 죄일지도 몰라.
은부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종간 그냥 두었더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일세. 혹시나 왕건이와 혼인을
할 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에서 내가 무리해서 추진한 일이야. 나는
처음부터 왕건이에게 황제의 기상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야.
은부 잘 알고 있사옵니다.
종간 돌이켜보면 너무도 큰 실수를 했어. 폐하께서는 여색에는 흥미가 없
으신 분이실세. 따라서 가족간의 정 따위는 또한 모르시네. 오늘 같
은 일이 벌어진 데는 그러한 것들도 영향이 있어.
그때, 소리가 들려온다.
대전내관 (E) 내원어른, 대전내관이옵니다.
종간 무슨 일인가? (문을 열면)
대전내관 폐하께오서 은장군을 들라 하셨사옵니다.
은부 폐하께오서..?
대전내관 예, 장군.
종간과 은부가 바짝 긴장하여 그렇게 서로를 본다. 그 위로 연화의
계속되는 비명 소리와 겹치면서....
씬 동 황후전 복도
연화의 비명 소리와 함께 카메라 다가가면 그예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씬 동 황후전 안
연화가 아이를 낳았다. 상궁들이 아이를 감싸고 있다.
제조 황후마마, 태자 아기님이시옵니다. 아드님이시옵니다. 기뻐하시오소
서, 마마.
연화 (멍하니 본다).....
슬이 마마, 태자 아기님이시옵니다.
연화 태자라..? 기뻐하라..?
모두들 .........
연화 무엇을 기뻐할 일이 있단 말이냐? 이 딱하고 슬픈 목숨은 앞으로
어찌 살아갈꼬...? 이 어린 목숨은 어떻게...?
모두들 (울며) 황후마마...?
연화 이 세상에서 이 아이보다 박복한 운명이 어디 있단 말이냐? 이렇게
박복한 운명이.....?
씬 동 대전 복도
내관 하나가 밖으로부터 들어와 숨이 가쁘게 다가온다. 대전내관이
보고 이미 알아채며 가까이 간다. 그들 귀엣말을 뭔가 속삭인다.
대전내관 (놀라며) 오, 태자아기님이시라고.. ?
내관 예...방금 전에.... 순산을 하셨다 하옵니다.
대전내관 알았네. (큰 소리로) 폐하, 대전내관이옵니다.
궁예 (E) 무슨 일이냐? 들어오너라.
씬 동 대전 안
대전내관 (들어와) 폐하, 지금 막 황후전에서 기별이 왔사옵니다.
궁예 .....? 낳았느냐?
대전내관 예, 폐하. 태자아기님을 생산하셨다 하옵니다.
궁예 뭐라? 사내아이야? 아들이란 말이더냐?
대전내관 예, 폐하.
궁예 (약간의 미소) 아들이라... 아들이라... 아들을 낳았단 말이지.... 그래,
기왕이면 아들이 좋지. 대를 이을 아들 말이다.
그때, 종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종간 폐하, 신 내원이옵니다.
궁예 오, 들어오시오. (내관에게) 너는 알았으니, 물러가거라.
대전내관 예, 폐하.
대전내관이 물러가고, 종간과 은부가 예를 올리고 앉는다.
종간 폐하, 신도 지금 막 이곳에 오며 이야기를 들었사옵니다. 감축드리
옵니다. 황후마마께오서 다시 또 태자마마님을 생산하셨다 들었사옵
니다.
은부 감축드리옵니다.
궁예 암, 마땅히 감축 받을만 하지. 아들이 생겼으니 말이오.
종간 마침 내원에 함께 있다가 폐하께서 은장군을 찾으신다 하시기로 함
께 왔사옵니다.
궁예 잘 하시었소이다. 이보게, 은장군.
은부 예, 폐하. 말씀하시오소서.
궁예 실은 그것 때문에 불렀네. 국문 말이야.
은부 이미 준비가 끝이 났사옵니다. 강장자의 양자도 잡아들여 대기시켜
놓았사옵고 황후마마와 대질할 증인은 언제든 가능하옵니다. 다만,
왕장군을 어찌하실런지...? 아직 폐하께서 하교가 없으시어, 영을 기
다리고 있사옵니다.
궁예 황후도 이미 아이를 낳았어. 자식 낳는 의무를 마쳤으면 이제부터는
죄인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야. 아니 그런가?
종간 아무리 중한 죄인을 다스리신다하셔도 그에 따른 절차와 인정이 있
사옵니다. 이제 막 아기님을 생산하신 분이시옵니다.
궁예 그런데..?
종간 세상의 백성들이 보고 있고, 신료들이 또한 보며 듣고 있사옵니다.
기왕에 죄를 물으실 요량이시라면 여유와 말미를 주시오소서.
궁예 여유와 말미..?
종간 황후마마께오서 몸을 추스리신 이후 죄를 물으셔도 늦지 않으시옵
니다. 무엇이 그리 급하시옵니까?
궁예 (생각하다가) 몸을 추스린다?
종간 그러하옵니다, 폐하. 적어도 며칠은 기운을 돌이킬 여유를 주셔야
할 것으로 보옵니다.
은부 신도 그것은 그리 생각하옵니다. 이미 다 결정하신 일이 아니옵니
까?
궁예 기왕에 받을 죄인데 시간을 끌면 무엇하나? (사이) 하지만, 그렇게
들 얘기를 한다면 그 며칠이야 못 참을까? 얼마면 되겠소?
종간 한 열흘은 두고 보시오소서.
궁예 열흘? 열흘이라면 너무 길어. 기왕에 죄를 물을 것인데 무얼 그렇게
끈단 말인가?
은부 나주에 있는 왕장군을 불러 올려 황후마마와 더불어 죄를 캐물으시
려면 그 정도는 소요가 될 것이옵니다.
궁예 왕건아우에 관한 일은 내가 생각해본다고 하였어.
종간 생각해보시는 것이 아니라, 이 기회에 확실하게 죄를 물으셔야 하옵
니다.
궁예 그걸 생각해보겠다는 것이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지금 어지러워.
왜 왕건아우가 이 지경까지 와 있는가 말이야. 과연 죄가 있는 것인
지 없는 것인지 좀 더 생각을 해 보아야겠다 이 말이오. 죄는 황후
가 진 것이지 왕건아우가 아니질 않소이까?
종간 왕건장군이 있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옵니다. 태자마마들이 계시어
서 죽은 강장자가 보위를 운운했듯이 말이옵니다.
궁예 그건 또 그래... 그래서, 어지럽다는 것이야.
종간 부르시오소서. 어차피 불러 죄를 확인하셔야 하옵니다.
궁예 (끄떡인다) 정 그렇다면 한 번 불러 보십시다. 그렇게 하십시다. 이
번에는 조정에서 조사할 사안이 아니라, 내가 관심법으로 한 번 볼
것이오.
두사람 (놀라서) 관심법으로 말이옵니까?
궁예 그렇소이다. 관심법이오. 그게 제일 빠르고 정확하지. 관심법으로 보
겠어. 관심법으로.... 그래서, 확실하게 죄를 묻던가 아니면 그 의심
을 끈을 확실하게 잘라주던가 해야겠어. 그게 맞는 이야기야. 나주
로 전령을 띄우게. 기왕에 정한 일이면 빨리 오라고 해, 내군에 장
부장을 보내도록 하라. 즉시!
은부 예, 폐하.
씬 인서트/ 철원 저자 거리
장일이 군사 둘을 데리고 달리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급히 사라져
간다.
씬 황후전
연화가 아기를 보고 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보인다.
진내관 황후마마, 아무래도... 달리 방법이 없사옵니다. 서둘러서 어떤 수를
쓰던 이 황궁을 벗어나는 것이 최선일 듯 싶사옵니다.
연화 황궁을 벗어난다..? 어떻게 말인가?
진내관 이미 황후마마를 도와주실 분은 이 나라에 아무도 없사옵니다. 그렇
다고 하여 폐하의 저 광기를 막을 분도 또한 없사옵니다. 이곳을 도
망치시는 것이 유일한 길이옵니다.
제조 그리하시오소서, 마마.
슬이 쇤네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이곳을 벗어나셔야 하옵니다, 마마.
연화 그렇게 구차하게 목숨을 유지하려 했다면 벌써 했을 것이니라. 나는
아무데도 아니 간다.
진내관 마마... 마마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제 정신이 아니신 폐하이시옵니
다. 무엇 하러 애꿎은 목숨을 버리려 하시옵니까?
제조 들리는 소문으로는 두 분 태자마마님들도 위험하시다 하옵니다.
연화 그럴 수도 있겠지. 허나, 독사도 제 새끼는 아끼는 법이다. 설마 태
자들이야 죽일 리 있겠느냐?
진내관 어떻게든 길을 마련해 보겠사옵니다. 이 황궁을 벗어나셔야 하옵니
다.
연화 (초연하다) 내가 황후로 책봉될 때부터 이미 나의 인생은 없었네.
나의 꿈도 그 때에 부서졌고, 죽음도 그때부터 내 가까이에 있었네.
아무것도 두렵지 않네. 오히려 나의 죽음이 이 나라를 위해 도움이
된다면 그나마 다행이 아니겠는가? (사이) 왕건장군은 어찌 되셨는
가?
진내관 논의가 분분하더니, 끝내 소환하는 것으로 결론을 보았다 하옵니다.
연화 그래..? 소환이라... 그 분도 딱하게 되셨구나. 하지만, 그래도 폐하는
그 분을 아끼신다. 설마 죽이기야 하시겠느냐?
진내관 임춘길 같은 간신배들의 농간이 치열하다 하옵니다. 얼마나 오래 버
티실 수가 있겠사옵니까? 엊저녁에 그 댁에 잠깐 찾아뵈었는데 우
리처럼 모두 전전긍긍하고 있었사옵니다.
연화 그렇겠지. 그렇기는 하겠지.......
씬 임춘길의 집 외경
씬 동 집 사랑
임춘길이 유긍달 집 집사장을 보고 있다. 도우가 웃고 있다.
도우 장군, 충주 유긍달 장자의 집에 있던 집사장이옵니다.
집사장 박가이옵니다.
임춘길 잘오셨네. 자네가 충주 유장자 집 집사장이었는가?
집사장 예, 장군.
임춘길 죽은 중 석총이와 지금 나주에 가 있는 왕건장군의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집사장 소인이 아는 것은 석총대사께서 왕건장군을 보실 때에 이백여년 전
진표 율사께서 내려주신 간자를 전하셨다는 것이옵니다.
임춘길 간자..? 그게 무엇인가?
도우 다시 말하면 진표 율사, 즉 부처님을 뜻하는 증표이옵니다. 이것이
야말로 대단한 일이옵니다. 이것 하나로도 반역의 사실은 굳어지는
것이옵니다. 간자란 바로 미륵을 뜻하는 상징이옵니다. 황제가 옥새
를 가지고 있듯이 말이옵니다.
임춘길 오, 그런 것이오?
도우 그래서, 뭔가 있을 것 같아 소승이 그토록 여기 이 집사장을 집요하
게 찾았던 것이옵니다. 장군께서는 이제 결정적으로 왕건장군을 처
리하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 간자 이야기 하나로 다 끝낼 수 있
사옵니다.
임춘길 그때 누가 누가 거기 있었는가?
집사장 저희 어르신인 유긍달 장자님과 왕건장군과 허월대사님도 계셨사옵
니다. 저야 문 밖에서 엿본 것 뿐이옵구요.
도우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 간자를 전하던가?
집사장 석총대사께서 무릎을 꿇고 절을 하신 후 간자를 올렸습지요. 그리고
는 새로운 미륵으로써 나라와 백성들을 구해달라 하셨사옵니다.
임춘길 반역이야.. 이것이야 말로 대역모의야.....! 왕건이는 이제 살기 힘들
게 되었소이다 그려. 아주 어려운 일을 해주었소이다, 대사. 하하하..
씬 나주 관아 외경
씬 동 관아 안
왕건과 오씨, 다련군, 태평, 능산, 유금필, 박술희, 김락, 김언, 윤신
달, 전이갑들이 모두 모여 있다. 왕건 앞에 서찰이 놓여 있다.
유금필 지금 철원의 사정이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고 하옵니다. 그 화가
여기까지 미칠 수 있지 않겠사옵니까?
왕건 .......(한숨만)
다련군 철원에서 보내온 그 서찰을 보면 황후의 목숨도 풍전등화라 하였네.
그리고, 그 원인이 왕총사가 찾아갔던 문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야.
오씨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이곳으로 정말 잘
내려오셨사옵니다. 하마터면 호구에 빠질 뻔하지 않았사옵니까?
태평 그것은 그렇사옵니다. 구사일생으로 그 험지를 잘 벗어나셨사옵니
다. 이곳 나주는 안전하옵니다. 이곳이야말로 주군이 닦아 놓으신
훌륭한 터전이 아니겠사옵니까?
왕건 자네들은 마치 내가 잘 도망쳐와서 이제는 살았다고 안심하는 것
같은 표정들이네.
박술희 듣고 보니 사정이 그렇게 되었사옵니다, 주군. 철원에 계셨더라면
어떤 화를 당하셨을지 모를 일이 아니옵니까?
전이갑 그 때문에 저희들도 장군을 모셔오려고 군사들까지 움직였사옵니다.
철원으로는 다시는 가지마시오소서.
윤신달 그리하시오소서.
김언 처음부터 소장이 말씀 올렸사옵니다. 저 철원은 모리배들만 들끊는
권력 싸움의 추한 장이라고 말이옵니다. 사실 폐하께선 얼마나 왕총
사를 총애하셨사옵니까? 주변에서 자꾸만 들먹이니 점점 변하고 계
시는 것이옵니다.
오씨 아무튼 서찰로 보아서는 상당히 상황이 다급하옵니다. 좀 더 사태를
관망해볼 필요가 있겠사옵니다, 서방님.
왕건 그리해야 할 것 같소이다. 좀 더 지켜보십시다.
그때, 밖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집사장이다.
소리 (E) 장군, 집사장이옵니다. 왠 스님께서 장군을 뵙고자 오셨사옵니
다.
왕건 나를..?
씬 동 밖
형미가 서 있다. (이때 나이 52세) 왕건과 오씨, 다련군이 나온다.
형미가 합장을 하며 웃는다. 한 눈에도 고승임을 알아볼 수 있다.
형미 왕총사, 빈도는 형미라는 중이옵니다.
왕건 오, 그렇습니까? 어인 일이십니까?
형미 지난 길에 왕장군께서 다시 이곳에 총사로 오셨다기에 들렸습니다.
그때, 다련군이 한참을 보다가 그대로 대청을 내려와 합장을 한다.
다련군 아이고, 대사님..? 소인은 이곳 태수를 맡고 있는 다련군이올습니다.
대사님의 존명은 익히 듣고 있었사옵니다. 잠시 몰라본 불찰을 몰라
용서하시오소서.
모두들 .........
다련군 이보시게, 왕총사, 형미대사께서는 온 세상이 다 아시는 고승이실세.
그리고, 대 법사이시지. 어서 오르시오소서, 어서 저쪽으로...
왕건 몰라 뵈었습니다. 용서하시오소서, 대사님.
형미 허허, 이러시면 소승이 민망하오이다. 허허허....
이들 모두 안으로 들어간다.
씬 동 집 다른 사랑
형미와 왕건, 오씨, 다련군이 함께 해 있다.
왕건 여기까지 어인 일이시옵니까, 대사님?
형미 빈도는 이곳 나주를 아주 좋아하오이다. 그럴 듯한 강변과 바다가
있고, 산세가 아주 또한 일품입니다. 게다가, 왕총사의 그 덕행이 백
성들 입에 많이 오르내리기에 내심 뵙고 싶어 왔습니다.
왕건 그리 말씀해주시니, 소장이야말로 부끄럽습니다. 많은 가르침을 주
시오소서.
형미 어인 말씀을.... 한동안 오가며 이곳에 묵을까 하옵니다. 내쫓지나 말
아주시오소서, 허허허.....
다련군,오씨 어인 말씀을....
해설 형미, 나이 열 다섯에 출가하여 보조선사의 제자가 되었다가 화엄사
에서 구족계를 받았다고 한다. 서기 864년에 태어났다 하니 지금 그
의 나이는 쉬흔 둘이 된다. 그는 당나라에 들어가 그곳의 고승 도응
의 법을 전해 받았으며 905년에 귀국하여 널리 불법을 폈고 이 당
시 삼한을 통틀어 최대의 고승으로 일컫는 사무외대사(四無畏大士),
즉 네 사람의 선승 중 한 사람이었다. 그 네 사람은 형미와 더불어
이엄, 여엄, 경유 스님들을 일컫는다. 이때 왕건과 만났으나 애석하
게도 그 인연이 길지는 못하였다. 그 역시 석총처럼 바른 말을 하다
가 그 일생을 마치기 때문이다.
왕건 참으로 몰라 뵈었습니다. 자주 좀 들려주시오소서. 소장은 아둔하여
세상 이치를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형미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세상 번뇌는 커지는 법이옵니다, 허허허...
왕건 그래, 어디 어디를 들려 오시는 길이십니까?
형미 싸우는 사람들은 태봉이니 백제니 신라니 구분이 있지만 우리 같은
불제자들은 하늘이 지붕이고 오늘 머무는 땅이 바로 아랫목이올습
니다. 어디로든지 가고 또 옵니다. 허허허. 사벌주에서 오는 길입니
다.
오씨 사벌주라고 하셨사옵니까? 저희도 그곳과는 인연이 좀 있사옵니다.
형미 따지고 보면 인연 없는 곳은 아무 곳도 없사옵니다, 마님. 세상 만
사가 다 인연이옵니다. 허허허...
그런 그들의 표정에서....
씬 사벌주 성 외경
아자개 (E) 새로 오신 총사라 하시었는가?
씬 동 성 안
아자개, 이흔암이 마주보고 있고, 계모, 대주, 용개, 보개 들이 함께
해 있다.
아자개 언제 새로 오셨는가?
이흔암 얼마 아니되오이다. 노인장께서는 저 백제국 견훤왕의 아버님이라고
들었소이다만은...
아자개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어?
이흔암 예?
아자개 노인장..?... 자네 이름은 무언가?
이흔암 장군 이흔암이라고 하오이다.
아자개 네 이놈....
벽력같이 소리를 지른다. 이흔암이 놀라서 어쩔 줄 모른다. 모두들
이흔암을 쏘아본다.
아자개 이런 버르장머리없는 놈... 이흔암이라고 하였겠다? 네가 왕건장군보
다 높으냐?
이흔암 예?
아자개 이놈아, 나는 그 왕건장군으로부터 상부 소리를 듣고 있어. 어른, 아
버지 그런 뜻이다 상부라는 것은... 무식한 놈 같으니라고... 처음부
터 다시 해보아.
이흔암 무엇을 말이오이까?
아자개 아, 이놈아, 처음부터 인사를 다시 해보라는 것이다. 나는 백제의 황
제 저 견훤이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물론, 우리 부자 사이는 별로
좋지가 않지만 말이야.
대주 그런 저런 사정을 다 떠나서 어른이시옵니다. 내가 보기에도 그 말
투하며 모든 것들이 건방져보입니다, 이장군. 찾아온 용건이 인사입
니까, 무엇입니까? 전쟁이라도 한 번 하자는 것입니까?
이흔암 아, 아, 아니올시다, 낭자. 그런 것이 아니올시다. 내 본래 습관이 이
래놔서..허허허허.... (깍듯이) 역시 제 선임자들의 생각이 옳았던 것
같사옵니다. 상부어른, 건방지게 보셨다면 용서하시오소서.
계모 (찌푸리며 보다가) 역시 박술희야. 그만큼 예의 있고, 호방한 장수는
역시 찾기가 어려워. 아니 그렇습니까, 나으리?
아자개 아, 아니기는 왜 아니야. 보기 싫구나. 아주 싹수가 없어 보여. 인사
고 뭐고 귀찮으니 그만 가보게.
이흔암 그래도, 저희와 이 성이 잘 지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상부어른?
아자개 (그제서야) 상부라고 부르는 거 그거, 진심으로 하는 게야?
이흔암 예, 상부어른.
아자개 그러길래 근본이 필요한 게야. 근본이... 배운 게 없어 놓으면 이럴
때에 다 드러난단 말이야. 자네 천자문은 떼었나? 아, 하늘 천 따지
는 알아?
이흔암 그게, 저... 통 시간이 없어 놔서...
아자개 이렇게 무식한 것이 장군이래, 장군. 어쨌든 날 상부라 하니 되었어.
각별히 조심을 하란 말이야.
이흔암 예, 상부어른.
아자개 그건 가져 왔는가? 머루주 말이야. 머루주...?
이흔암 미처 그것은 준비하지 못했사옵니다.
아자개 이렇다니까, 이게 다 무식해서 그래요. 할 수 없지. 이보시오, 부인.
아랫것들에게 일러서 먹다 남은 머루주라도 내오시구료. 거기, 앉아.
에이, 그저 이럴 때는 박술희가 있어야 하는 것인데. 에잉.....
이흔암 .......(멀쑥한 표정, E) 참 지독하게 억센 늙은이가 아닌가? 이러니
자식하고 불화가 있지. 아무튼 시끄러울 필요는 없지. 처음에는 잘
지내야지.
그때, 시녀들이 술상을 봐온다. 아자개가 잔을 놓는다.
아자개 아, 뭘 그렇게 멀뚱멀뚱 보고 있어? 내가 먼저 따라야 하나, 자네가
먼저 따라야 하나?
이흔암 아, 물론 소장이 먼저 따라 올려야 하옵지요. 예, 예...
아자개,계모 .........
마땅치 않게 보는 그 표정에서...
씬 백제 전주 황궁 외경
씬 동 황후전
박씨, 고비가 견훤과 함께 금강이 글을 읽는 것을 보고 있다. 견훤
이 좋아서 보고 있다. 능환과 최승우가 보고 있다.
견훤 그래, 계속 읽어보거라.
금강 예, 아바마마. 손자왈(孫子曰) 병자(兵者)는 국지대사(國之大事)라.
사생지지(死生之地)요 존망지도(存亡之道)니 불가불찰야(不可不察也)
니라.
견훤 무슨 뜻인고?
금강 손자가 말씀하시기를, 전쟁은 국가의 중대사이며, 국민의 생사는 물
론 국가의 존망이 달려 있다, 그러므로 아주 신중하게 고찰하지 않
으면 안된다 라고 하였사옵니다.
견훤 그렇지, 그래.
박씨 잘 읽는 구먼. (그러나, 표정은 밝지 않다) 아주 글을 일찍 깨었어.
고비 (너무 좋아서) 그러게 말이옵니다.
견훤 지금은 난세이고, 전국시대이니라. 태자들은 누구든 강하게 커야 한
다. 나라를 다스리는 첫째 조건이 힘이야. 그렇다면, 군무에 밝아야
하고, 전략에도 능해야 한다. 자, 다음을 다시 읽어보거라.
금강 예, 아바마마. (계속 읽는다) 고(故)로 경지이오사(經之以五事)하고,
교지이칠계(校之以七計)하여 이삭기정(而索其情)이니라.
고비 어서 말해보오, 태자.
금강 예, 어마마마. (풀이한다) 풀이 하오자면, 전쟁은 일시적인 기분이나
순간적인 감정으로 해서는 아니된다는 뜻이옵니다. 부득이 하려면
사전에 치밀한 계획과 준비를 하고 반드시 이긴다는 확신이 섰을
때만 해야 한다는 그런 뜻이옵니다.
견훤 그렇지, 그래. 이 아비가 그런 예에 속하느니라. 실수를 아니한다 하
면서도 하고 또 하고 반복을 해왔어.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했기 때
문이야. 모쪼록 글로만 읽어서 치울 것이 아니라 깨닫고 행하는 것
이 중요한 것이다, 알겠느냐, 금강아?
금강 예, 아바마마.
최승우 참으로 금강태자마마의 공부가 일취월장이시옵니다. 뵐 때마다 다른
것 같사옵니다.
능환 그런 것 같사옵니다.
박씨 우리 신검이와 양검이도 어릴 때는 이러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전
쟁터에 나가보아야 아는 것이지요. 아니 그런가, 승평부인?
고비 그야 그렇겠사옵니다만은...
박씨 이 황궁 안에서는 모르는 법이옵니다. 세상 밖으로 나가 보아야 알
지요.
견훤 그야 그렇기는 해. 허지만, 공부가 든든하면 세상 밖으로 나가도 당
황할 것이 없지. 이 아비 대에 삼한을 모조리 통일할 것이다. 그리
고, 너희들에게 이 대제국을 넘겨 줄 것이야. 그러자면, 너희들도 커
가면서 싸울 줄을 알아야 해. 신라는 삼한 중 제일 약하다. 문제는
태봉이지. 너희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이 아비를 도와 태봉을 꺾어야
한다. 그곳에는 난다 하는 장수, 호걸들이 많아. 너희들이 아비와 함
께 그들을 꺾는 것이다. 알겠느냐, 금강아?
금강 예, 아바마마.
견훤 꿈을 크게 가져야 한다. 꿈 말이다. 늘 기억해 두거라. 우리는 태봉
을 꺾지 않고는 아니된다는 것 말이다. 태봉을 꺾는 것이야. 지금
그 태봉이 흔들리고 있지. 흔들흔들 말이다. 허허허....
최승우 ........ (의미 있는 미소).......
씬 철원 황궁 외경
씬 동 대전
궁예가 생각에 잠겨 있다. 최응이 보고 있다. 경전을 앞에 펼쳐 놓
았지만 생각은 다른 곳에 가 있다. 그는 법봉을 천천히 쓰다듬고 있
다.
궁예 최응아?
최응 예, 폐하.
궁예 지금쯤 황후는 자신의 죄를 받는 다는 것을 깨닫고 있겠지?
최응 아마도 그러실 것이옵니다.
궁예 태자들도 알고 있을까?
최응 어떤 경로로든 주변 돌아가는 것을 아시지 않겠사옵니까?
궁예 왕건아우는 어떠할까? 지금쯤 전령이 그곳에 도착을 하였을 것인
데...
최응 예, 떠난지 사흘 째 되오니 거의 도착하고 있을 것이옵니다.
궁예 너는 이번 일을 어찌 생각하느냐? 나는 좋지 않은 과거와 자꾸 되
풀이되는 의심의 끈을 자르려고 한다.
최응 폐하께오서 하시는 일을 어찌 신이 왈가왈가 할 수 있겠사옵니까?
궁예 괜찮다. 너는 늘 내 옆에 붙어사니 세상 돌아가는 것 또한 내가 본
만큼 보고 있을 것이고, 또 듣는 만큼 듣고 있지 않느냐?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최응 듣는 귀는 폐하와 제가 같사오나 생각은 다르옵니다. 어찌 함부로
말씀 올리오리까?
궁예 허허허, 딴에는 그렇기도 하다. 허나 괜찮다. 말해 보거라.
최응 하오면 말씀 올리옵니다. 황후마마는 이 나라의 국모이시고, 만 백
성들의 어머님이시옵니다.
궁예 (법봉 닦으며) 헌데, 스스로 그 자리를 차버렸다.
최응 또한 두 분 태자마마님들은 폐하의 적자이시옵니다. 아직 사리 분별
이 어렵고 또한 그 분들 스스로 옥좌를 운운할만큼 죄를 지은 바가
없사옵니다. 벌을 내리심은 공평치 못한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궁예 공평치 못하다? 너는 그들이 지은 죄는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구나.
그럼, 이번에는 왕건아우는 어찌 생각하느냐?
최응 이미 전령을 띄워 부르셨사옵니다. 또한 관심법으로 보신다 하셨사
옵니다.
궁예 그랬지. 터지는 사건마다 이름이 가 있으니, 어찌 아니 부를 수 있
겠느냐? 비록 내가 형이고, 제가 아우라 한다 한들 물을 죄는 물어
야 하고, 억울하다면 또한 벗겨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최응 그러하옵니다. 이번에 부르신 것은 마땅하고 옳으신 일이옵니다.
궁예 허허, 그래?
최응 예, 폐하. 기왕에 부르신 일이니 그 충성을 시험하시오소서.
궁예 시험하라..?
최응 예, 폐하. 변함없이 페하께 충성하는가 아닌가 아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사옵니다. 그 마음을 보시고 판단하시오소서.
궁예 음... 그래. 일리 있는 말이다. 마음을 보라. 그렇지, 마음을 봐야지.
(사이) 나는 볼 수가 있지. 볼 수가 있어. 그래, 왕건아우를 오라고
한 것은 잘 한 것이야.
최응 폐하, 황후마마를 용서하시옵고 또한 태자마마 두 분을 너그럽고 따
뜻이 보시옵소서.
궁예 아니다. 이미 그럴 때는 지났다. 아이를 낳은지 사흘이 이미 넘어
섰다 하니 이제 슬슬 준비를 해야겠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최
응이 니가 가서 전하라.
최응 예, 폐하.
궁예 먼저 나의 새로 낳은 아들의 이름은 순백(洵伯)이라 할 것이다. 진
실 되고 참된 일가를 이룬다는 뜻이다. 그 갓난것을 황후에게서 떼
어 내어 유모들에게 맡기도록 하라.
최응 ........?
궁예 듣고 있는 게야?
최응 예, 폐하.
궁예 다음, 내 마지막 인정을 베풀고 싶다. 그 동안 어미와 시간을 별로
갖지 못하였을 게다. 두 태자를 황후전으로 보내 잠시 함께 있게 하
라.
최응 예, 폐하.
궁예 그리고, 왕건아우가 도착하는 그 날에 맞춰 국문을 열게 하라. 알겠
느냐?
최응 예, 폐하.
궁예 즉시 가라. 즉시 전하라.
최응 예, 폐하.
씬 황궁 마당
내군들이 금대의 인솔하에 내관, 상궁들을 이끌고 가고 있다. 태자
둘이 그들 속에 함께 가고 있다. 그들은 곧 황후전으로 들어간다.
씬 동 황후전 복도
태자들, 내군들과 내관,상궁들이 다가와 도착한다. 금대가 큰 소리로
이른다.
금대 황후마마, 황제페하의 영을 뫼셔 왔사옵니다.
씬 동 황후전 안
모두들 긴장하여 소리를 듣고 있다. 연화가 본능적으로 아이를 감싸
안는다.
금대 (E) 황후마마, 태자아기님을 뫼셔오라는 폐하의 분부 받자와 왔사옵
니다.
연화 아기를 데려 간다고..?
제조 (울며)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황후마마?
진내관 그예, 그예 시작을 하려는 것 같사옵니다 황후마마. 그예....
그때, 금대와 내관, 상궁들이 들어서고, 태자들이 울며 달려와 연화
의 옷을 잡는다.
태자들 어마마마.
연화 우리 태자들이 어쩐일들이오?
금대 황후마마, 폐하께오서는 그 아기님의 존함을 순백이라 부르신다 하
셨사옵니다. 참되고 깨끗하며 진실한 일가를 이루는 뜻이라 하셨사
옵니다.
연화 순백이라고..? 그렇다면, 우리 이 두 태자들은 순백하지 못하다는 얘
기냐? 이게 무슨 소린고..?
금대 소장이 어찌 알겠사옵니까? 다음은 두 태자마마님의 일이시옵니다.
국문이 열릴 때까지 지난 정을 생각하시어 황후전에 머물게 하신다
하셨사옵니다. 하오면...
진내관 국문... 국문이라고..? 정말 그 국문이 열리는 것이오, 금부장.
금대 폐하의 영이라 하지 않았는가? 자, 어서 아기님을 받아 뫼시어라.
연화 못 준다. 폐하만의 아이가 아니라, 나의 아이이기도 하니라. 나는 못
준다.
금대 영을 거역하시면 아니되옵니다. 어서 주시오소서.
연화 못 준다 하였다.
금대 얘들아, 뭣들 하느냐? 뫼시어라.
그러나, 내관과 상궁들이 달려가 낚아챈다. 연화는 아니된다고 울부
짖는다. 제조, 슬이들도 황후마마를 외치며 울고 있다. 연화가 쓰러
지고, 아이는 빼앗긴다.
금대 송구하옵니다, 황후마마. 하오면, 이만 물러가옵니다. 가자.
연화 (절규하며) 나의 아이다. 그 아이는 나의 아이다. 두고 가거라. 그
아이는 나의 아이야.
그런 연화의 모습에서...
< 114회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