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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대본

[태조 왕건] 119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7.12.05|조회수3,391 목록 댓글 0

태조 왕건 <제 119회>

 

줄거리
 

종간 또한 모든 신료들까지도 왕건을 중심으로 반 궁예사상으로 뭉쳐 있다는 것을 알고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감지한다.복지겸을 비롯한 기장들은 군사훈련을 핑계로 혁명에 대한 준비를 그예 끝마친다.그리고, 왕건을 찾아가 혁명에 앞장을 설 것을 청하게 되는데,드디어 왕건은 부인 유씨가 전해주는 갑옷을 받아들고 마는데..왕건은 복지겸을 비롯한 4기장들에게서 궁예의 목숨을 보장받기로 하고, 드디어 혁명 길에 오른다.



 

 

씬 황궁 외경(밤)

 

씬 동 대전

 

        지난 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왕건이 울고 있다. 눈물을 흘리면서 그렇게 궁예를 보고 있다. 궁예는 아직도 지난 날이 미안한 듯 어깨를 토닥거리며 사과하고 있다.

 

궁예    이보게 아우, 아, 이 형이 아우에게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고 눈물까지 보이다니 이건 정말로 뜻밖이로구먼 응? 참으로 뜻밖이야 이 사람아. 아, 그렇게 섭섭하였던가? 내 다시 한 번 사과를 함세. 내가 잘 못하였어. 하지만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나는 정말로 아우를 해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고 말이야.

왕건    ................(그렇게 눈물만)

궁예    자, 그만 하게. 이 형이 민망하지 않는가, 어서 눈물을 닦게. 그리고 대답을 해보게. 형의 마음을 알고 있다고 말이야. 아, 어서...?

왕건    ..........?

궁에    어서 이 사람아. (사이) 아, 어서....?

왕건    에. 형님.

궁예    그래, 그래야지.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는 형제야. 아무도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수는 없어.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나는 아우를 지켜 줄 것이야. 물론 아우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말이야. 안 그런가,(사이) 아 안 그런가 이 사람아?

왕건    예. 형님....(눈물과 다시 오열을 참으며) 그러하옵니다. 그러하옵니다 폐하.       

궁예    또오....또...왜 이러는가? 허어, 이거 아무래도 오늘 아우가 술이 취했어. 실은 나도 정말 오랜만에 아주 많이 마셨어. 취했어 나도.....이보게 아우, 우리 기왕에 만나 형제가 되었으니 그럴 듯 하게 살아 보세나. 큰 뜻을 품고 제대로 살아 보자구. 실은 말이야 . 죽은 황후의 말이 맞아. 나는 정말로 여인네 따위에는 아무리 관심을 가지려고 해도 잘 되지가 않아. 남녀간의 정보다도 더 큰 것이 사내들의 의리가 아니겠는가 말이야. 의리....

왕건    예, 폐하

궁예    나는 그야말로 파란 만장하게 살아왔어. 아우도 알지 않는가, 내 어린 시절을 말이야. 아우의 아버님이 눈보라 속에 서 죽어 가는 나를 구해 주셨어. 나는 그리고 절로 가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지. 그래, 거기가 세달사였어.(생각한다.) 신라에서 버림받고 쫓겨난 어린 왕자는 그렇게 세상을 떠돌았지. (술 마시며) 그리고 세상으로 나오면서 아우를 만났어. 아우를 말이야. 기억 안나는가, 우리가 서라벌로 가던 그 때를 말이야. 그 배에서 말이야.

왕건    기억이 나옵니다.

궁예    (취해서 신이 난다) 그래, 그래. 생각이 날거야. 핫하하하....그때 내 사형인 내원이 말했지. 자네와 나는 서로 살생의 운이기 때문에 가까이 해서는 아니된다고 말이야.

왕건    ...................?

궁예    그래서 나는 말했지. 큰 세계를 향해 가는 사람들이 그까짓 미신 따위에 현혹되어서야 되겠는가 하고 말이야. 허허허허. 그 이후 내원은 아직 까지도 아우를 좋게 보고 있지를 않아. 서로 화해를 해야 하는데 말이야. (다시 마시고)  어....이거 정말 취하는구먼....취해. 하지만 말이야. 생전에 보지 못하던 아우의 눈물을 봐서 그런지 오늘 술은 아주 기분이 좋았어. 정말이야. 자, 들자구. 오늘 아주 실컷 들어보자구.......들어?

왕건    예 페하,

 

        두 사람 술잔을 들고 마시다가 다시 서로를 본다. 그런 그들의 시선에서.....

 

씬 동 내원 외견

 

씬 동 내원

 

        종간이 한 숨을 쉬고 있다. 은부가 보고 있다.

 

은부    새벽이 밝아오고 있사옵니다. 그만 주무셔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종간    자네는 왜 가지 않고 그러고 있는가?

은부    요 며칠을 내원 어른께서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우시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어찌 혼자 돌아가 편한 잠을 잘 수 있겠사옵니까?

종간    왕건이는 아직도 대전에 있는가?

은부    예, 그런 것으로 아옵니다.

종간    시중이라, 왕건이가 다시 시중이 되었다...다시 시중이 되었어.

은부    ...........................?

종간    이 제국이 정말 무서운 속도로 벼랑으로 몰려가고 있구먼, 미처 어떻게 옆을 돌아 볼 사이도 없이 마구 곤두박질 치고 있어.

은부    소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를 않사옵니다. 도대체 무얼 보시고 자꾸만 그리 비관을 하시옵니까?

종간    고경참문으로 인해 나는 다 보았네. 우리의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을 말일세. 그것은 아주 결정적이었어.

은부    우리에겐 내군이 있사옵니다.

종간    내군의 힘이 민심을 이길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은부    하오나 내원 어른?

종간    언제부터 였을까, 최응이 말일세. 최응이가 돌아선 것 말일세.

은부    그 일도 너무 괘념치 마시오소서. 폐하께오서 그 어린것을 얼마나 이뻐하셨사옵니까? 하온데 배신이라니요? 끌어다 목을 베면 될 것이 아니옵니까?

종간    그 하나를 목 벤다고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이 나라 최고의 학사들이 다 돌아섰다고 말이야.

은부    ..................?

종간    하늘이 우리를 버렸네. 이제는 더 희망이 없어.

 

씬 다시 대전

 

        궁예는 많이 취했다. 오랜만에 대취해서 연신 웃고 있다.

 

궁예    아, 벌써 새벽이 오는 모양이야. 이거 우리 둘이 꼬박 날밤을 세우네 그려.

왕건    예, 폐하. 그런 것 같사옵니다.

궁예    참 오랜만이야. 이렇게 허리끈을 풀고 아우와 술을 마시는 것이 말이야. 그러고보면 술이란 참으로 필요한 마물이야. 필요 악 말이야. 하하하하..... 희망이 보이네. 이 제국은 희망이 보여. (마시며) 그러니 어찌 이 술 맛이 달지 않겠는가? 글쎄 말이야. 내가 압록강을 넘는 다는 것이야. 닭을 잡고 오리를 친다는 것이야. 신라의 황도인 저 계림을 얻고 압록강을 넘는다는 것 말이야. 이 얼마나 신바람이 나는 이야기인가? 아, 아니 그런가?

왕건    그렇사옵니다, 폐하.

궁예    (취해서 흔들리며) 지금 밖에서는 말이야.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하고 있다는 거야. 농사철을 고려해서 훈련을 앞당겨 달라기에 내 그러라고 그랬어. 요즘은 그러고보면 군대의 장수들도 제법 머리가 있어. 백성들도 생각할 줄 알고 말이야. 하긴 그래. 아 농사가 잘 되어야 배가 불러서 싸움도 잘 할 것이 아닌가? 우리 한 번 우리 형제가 나란히 그 훈련을 사열하러 가 보세. 난 훈련을 볼 때마다 힘을 느껴. 제국의 힘 말이야.

왕건    예, 폐하.

궁예    (하품하며) 정말 많이 마셨네. 오랜만에 많이 마셨어. 아우도 나와 함께 여기서 자고 가지 그래?

왕건    아니옵니다. 어찌 폐하의 침상에 몸을 누일 수가 있겠사옵니까?

궁예    허허, 뭐 그런 걸 다 나와 따진단 말인가? 내 것이 다 아우 것이고 그런 것이지 뭐. 아, 정말 취한다. 최응이, 최응이가 어디 갔나?

왕건    벌써 새벽이옵니다. 저녁 늦게 대전을 나가 원봉성 관아에 있는 것으로 아옵니다.

궁예    (끄떡이며) 그래, 참 새벽이지 벌써. 새벽이야....

 

씬 동 황궁 원봉성 관아

 

        그 관아 어느 방에 탁자를 놓고 최응이와 태평이 마주 앉았다.

 

태평    두 분이 만나시면 참으로 자리가 길어지는 것 같습니다. 밤을 꼬박 새우지 않소이까?

최응    예, 저러한 모습들을 저는 자주 뵈었습니다. 우리도 벌써 찻물을 여러 번 비우지 않았습니까?

태평    하하하, 그렇습니다.

최응    태평학사께서도 아시겠지만 더는 기회도 없으려니와 여유 또한 없습니다. 돌아가시거든 왕시중께 그 점을 분명히 전해올리십시오.

태평    일찍부터 원봉성령께서 저희 주군을 도와주시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처럼 이렇게 고맙기는 처음입니다.

최응    내원이 올린 고경참문을 보면서 사태가 매우 급박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원은 절대로 무리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비록 왕시중과는 적대 관계에 있으나 꾀나 합리적이고 원만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다는 것은 상당한 위기가 닥쳤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태평    알겠습니다.

최응    지금 황궁 밖 야영지에서 하고 있는 훈련에 관한 내용도 알고 있습니다.

태평    ...........?

최응    그 일은 분명 모르긴 몰라도 혁명을 위한 준비작업으로 압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태평학사?

태평    (사이) 그렇습니다.

최응    내군에서 누군가가 그 정보를 막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는 못 갑니다. 잘못하면 대 혼란과 피바람이 불수가 있습니다. 그런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 촉박한 시간을 잘 운영해야 할 것입니다.

태평    (끄떡이며) 고맙습니다, 원봉성령.

 

        그때, 밖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E) 원봉성령어른, 대전내관부에서 왔사옵니다. 왕시중께서 돌아가신다 하옵니다.

최응    아마도 태평학사를 찾으시는 모양입니다. 자, 그럼.

태평    (일어서며) 차 잘 마셨습니다. 그럼.....

최응    모든 것이 잘 되기를 빕니다.

 

씬 동 관아 밖

 

        그 새벽 마당으로 태평과 최응이 함께 나온다. 태평이 묵례를 하고 기다리고 있던 내관들과 함께 사라진다. 그리고, 바로 누군가 오는 기척이 보인다. 돌아서려던 최응이 본다. 거기 종간이 오고 있다.

 

종간    (놀라는 최응을 보며) 허허, 원봉성령이 이 새벽에 아직도 잠을 안자고 계시는가?

최응    내원어른께서는 어쩐 일이시옵니까? 주무시지 않고....

종간    나이가 들면 새벽잠이 없어지는 법일세. 어쩐 일인가 이 새벽에 밖에 나와 있다니?

최응    소생도 잠이 오지 않아 나와 있었사옵니다.

종간    하하하, 자네는 아직 어린 나이야. 새벽잠이 없다니 곤란한 일이로군.

최응    나이는 어리오나 세상 돌아가는 것이 자꾸만 눈에 보여오니, 어찌 잠이 제대로 오겠사옵니까?        

종간    그럴 수도 있겠지. 자네라면 폐하께서 성인이라고 불러주는 천재요, 신동이 아닌가? 세상 돌아가는 것이 아니 보일 리 없겠지. 그래, 그렇게 너무 잘 보여서 기군망상(欺君罔上)을 하였는가?

최응    (아주 태연하게) 기군망상이란 임금과 하늘을 속인다는 뜻이옵니다. 오히려 그 죄를 따지자면 먼저 내원어른께서 생각해 보실 일이 많을 것이옵니다.

종간    허허, 내가..?

최응    고경참문은 어찌 된 일이옵니까? 하늘이 거울에 그런 일을 새겨 이 나라에 보냈다고 보는 사람이 과연 있겠사옵니까?

종간    허허, 글쎄..... 그보다도 폐하께서는 자네에게 참으로 잘해 주셨네. 신하는 그 주인을 배반해서는 아니되는 법이야. 자네는 언제부터 마음을 바꾸었는가?

최응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보면 이러한 말이 있사옵니다. 군주가 바르면 나라 백성들이 안락한 생활을 보낼 수 있지만, 군주가 사악하면 백성들이 고통의 나날을 보낸다고 말이옵니다. 그리고 또 있사옵니다. 군주가 처음 나라를 세웠을 때는 대부분 그 덕이 크게 빛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곤두박질 치는 예가 허다하다고 말이옵니다. 즉, 처음의 좋은 점을 끝까지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이지요.

종간    .............? 그래서.... 그래서, 폐하를 배신하였는가?

최응    군주는 백성들의 지지를 받아야 그 위엄이 서는 것이옵니다. 과도한 제국건설의 허상으로 하여 나라와 백성을 피폐케 하고 백성들의 존재를 잃어버린 군주는 이미 천자의 자격을 잃은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이미 인심이 폐하를 떠나버렸으니, 저 혼자 충신을 가장한 듯 어찌할 수가 있겠사옵니까? 폐하께서 저를 이뻐하시는 것은 사사로운 것이오, 소생이 백성을 생각하는 것은 사사로움을 떠난 것이옵니다. 

종간    (보다가 웃는다) 과연, 최응이로구나. 조금도 겁이 없이 말하고 있구나. 하하하.... 아주 담이 크구나.

최응    ............

종간    좋은 새벽이야. (하늘을 보며) 나는 이 새벽을 아주 좋아해.

최응    지금이라도 내원어른께서는 하실 일이 있지 않겠사옵니까? 폐하를 살리고 제국을 살리는 길을 생각해보시오소서.

종간    잠시나마 무료함을 잘 달래었네. 지금이라도 눈 좀 붙이게나, 허허허.

 

        종간은 그렇게 가버린다. 최응이 맑은 눈으로 그렇게 보고 있다. 그리고, 아픈 듯 눈을 감는다.

 

씬 내군 관아

 

        은부와 금대, 장일이 모여 있다. 새벽이지만 아직도 촛불이 흔들리고 있다. 여러가지 서류를 조사하던 은부가 탁자를 가볍게 치며 고개를 외로 꼰다.

 

은부    황궁이 모두 초긴장 상태일세. 고경참문 사건이후로 내원어른께서는 주무시는 것을 내가 보지 못했네. 내원어른은 지금의 상태를 최악으로 보시고 계셔. 아주 절망적으로 말이야.

두부장  ..........

은부    나는 우리 내군의 힘을 종종 내원어른께 말씀드렸네. 우리 내군이라면 다 해낼 수 있다고 말이야. 헌데, 실은 나도 그것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언제부턴가 이 내군조차도 제대로 운영이 되지 않고 있어. 올라오고 있는 많은 첩보들이 그 신빙성이 불확실한 것이 많아 졌어. (사이) 이번 훈련만 해도 그래. 순군부 임춘길이의 이야기가 매우 일리가 있어.

금대    그러하옵니다. (의심으로 장일 보며) 분명 그런 점이 있사옵니다.

은부    대규모의 훈련에 비하여 그 주변 상황에 대한 첩보가 아주 소홀히 처리되어 있어. 순군부의 수뇌부는 훈련에서 거의 제외되어 있고, 저희들끼리 움직이고 있어.

금대    비록 농번기를 핑계하고 있지만, 훈련 날짜를 갑자기 앞당긴 것도 뭔가 이상하옵니다.

은부    (장일에게) 어찌 된 일인가? 장부장은 계속 별 일이 아니라고 하였어. 그러나, 뭔가가 있지 않는가 말이야.

장일    별다른 조짐은 없사옵니다. 안심하시오소서, 장군.

은부    문제는 지방의 군대들이야.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야. 그것도 또한 의심스럽지 않은가 말이야? 지방의 군대까지 왜 훈련에 올라오는가 말이야?

장일    ....... 저도 그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옵니다.

은부    나는 자네들을 믿고 평생을 산 사람이야. 의심을 한다기보다는 이상해서 해보는 말이야. 다시 조사해봐. 현장에 가서 훈련상태를 살펴보란 말이야. 금대부장도 함께 가 보아.

두사람  예, 장군.

은부    비상시기라서 그래. 아주 좋지 않은 시기란 말이야. 모든 것이 다....

 

씬 궐 밖 길

 

        왕건일행이 돌아가고 있다. 저자 거리로 뿌옇게 동이 밝아 오고 있다. 어느 만치 가면서 태평이 말한다.

 

태평    주군, 고경참문 이야기는 결과적으로 볼 때 주군을 해치기 위한 내원의 조작임이 확실해졌사옵니다.

왕건    (대꾸가 없다)........

태평    원봉성령 최응이는 더 이상 여유가 없을 것이라고 주지시켜 주었사옵니다.

왕건    (역시 대꾸가 없다).........

태평    지난 관심법 때에도 원봉성령이 주군을 살리셨사옵니다. 이번에는 아주 촉박한 시간을 걱정하고 있었사옵니다. 그만큼 주변 여건이 상황이 다급한 것 같사옵니다. 주군, 속히 결단을 내리시오소서. 이미 군사들도 그 준비가 완료되지 않았사옵니까, 주군?

 

        그래도, 왕건은 대답이 없다. 그저 침묵으로 그렇게 가고 있다. 디졸브되면........

 

씬 그 야영지(낮)

 

        흙먼지를 일으키며 대부대가 곳곳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쪽으로 전령들이 깃발을 꽂고 달리고 있고, 끊임없이 영을 하달하고 있다.

 

전령들  (소리) 제 일군 좌향......... 좌향하라...........! 이군 우향하라.......! 기마부대 앞으로........ !

 

        전령들은 여기저기서 소리지르며 달리고 있다. 각 부대들이 부장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그 한켠에서 기장들이 보고 있다. 복지겸, 배현경, 홍유, 능산, 환선길 등 오기장과 염상과 다른 부장들도 둘러서 있다.

 

홍유    이제 부대들이 이동하기 시작했소이다. 저들은 각자 자신들의 작전구역으로 배치되어 나갈 것입니다.

배현경  이미 거사는 정해진 것이고 군대를 움직였소이다. 왕총사께서 마침 시중이 되셨다는 연락도 받았습니다. 자, 이렇게되면 이미 이 혁명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문제는 시중어른의 대답입니다. 능산장군, 어찌 된 것입니까?

능산    송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아직까지도 대답을 아니 주고 계십니다.

환선길  모든 게 다 정해졌는데, 대답을 아니하고 계신다면 이 보다도 더 딱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가서 대답을 들어와야지요.

복지겸  그렇소이다. 머리 없는 용이 어찌 움직일 수 있겠소이까? 능산장군, 다시 한 번 다녀와주셔야겠습니다. 이미 군이 움직였어요. 동서남북으로 일군, 이군, 삼군을 모두다 배치시켰습니다.

염상    가셔야합니다. 가서 꼭 대답을 들어오셔야 합니다.

복지겸  지금 즉시 좀 가주시구료. 어떻게든 대답을 받아오시오. 시간이 없소이다.

 

        그때, 저만큼 김락이 오고 있다. 오면서 묵례를 한다.

 

김락    나주에 있다가 병부의 영을 받고 오는 길입니다. 이미 오면서 대강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불러주셔서 고맙소이다.

능산    내가 병부령에게 청하여 장군을 불렀소이다. 나주는 중요한 곳이라 금필이 형님과 술희아우가 필요할 것이고 해서 장군을 좀 뫼시고자 하였소이다. 우리 뜻을 모아보십시다.

김락    고맙습니다. 이런 기회를 주시니 참으로 영광이 크오이다.

능산    허면, 소장은 다시 시중어른께 가보겠습니다.

홍유    꼭, 꼭 대답을 받아오셔야 합니다. 더는 지체해서는 아니 됩니다.

 

        능산이 대답하며 나간다. 기장들의 표정이 모두 초조하다. 그때, 저만큼 군사들을 헤치며 금대와 장일이 오고 있다. 그들은 기장들에게 가까이와 군례를 올린다. 어쨌든 서열은 낮은 것이다.

 

복지겸  어쩐 일이시오? 내군의 부장들께서..?

금대    내군장군의 영이시오. 이 훈련이 합당하게 되고 있는가를 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배현경  허허허, 보면 모르겠소이까? 아주 잘 되고 있소이다.

금대    일단 군의 훈련일지와 부대주둔 현황, 그리고 병력이동 상황기록들을 보여주셔야겠습니다.

염상    암, 보여드려야지... 자, 저쪽 군막으로 가세.    

기장들  ...........?

 

씬 동 군막 안

 

        많은 서류철들을 금대가 뒤지고 있다. 장일도 형식적으로 보고 있고, 그 뒤로 내군의 군사들이 서 있다. 순간적으로 장일과 염상의 시선이 교차된다. 사기장이 보고 있다.

 

금대    (계속 의심하고 넘기며) 지방병력이 엄청난 숫자로 훈련에 동참한다고 들었습니다. 어찌 된 것이옵니까?

복지겸  일부 지방병력이 참가한 것은 사실이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군수품을 지원하는 정도이지 주력부대로 온 것은 아니오.

금대    왜 허락을 받지 않고 지방병력을 참여시키는 것입니까?

배현경  그런 일은 종종 있는 일이오.

금대    지금 이동하고 있는 저 부대들은 훈련 목적지가 어디오이까? 왜 황궁 쪽으로 이동을 하고 있습니까?

홍유    훈련지역의 범위는 장수들이 결정하는 것이오. 그것까지 보고할 의무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소이다.

금대    아무래도 공격로하고 훈련 방향이 이상한 것 같습니다. 마땅히 순군부의 지휘부가 이 훈련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으로 아옵니다. 어찌 된 것입니까?

복지겸  순군부의 지휘부가 빠진 것은 이번의 훈련 성격에 단위부대들의 공격 훈련이기 때문이오. 그러나, 재가는 거쳤으니 새삼 이야기할 것이 없소이다.

금대    (다시 계속 보다가) 이보게, 장부장,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이 모든 것이 하나같이 누락되어 있어. 일부러 그런 것인가, 아니면 그래도 좋다고 생각한 것인가?

사기장  ...........?

장일    ...........?

금대    (다시 추궁하듯) 지금 군사들의 훈련 최종 목적지를 확인해야겠습니다. 얘들아?

내군군사들      예, 장군.

금대    군사들의 이동상황을 샅샅이 살펴보도록 하라.

내군군사들      예, 장군(그대로 달려나간다)

금대    (계속 보며) 너무 많은 상황들이 누락되었어. 이거 참....

장일    .............?

사기장  .............?

 

씬 내군 관아 안

 

        임춘길과 은부가 함께 해 있다.

 

임춘길  분명 이번 훈련은 뭔가 이상한 것이 있사옵니다. 제대로 보고되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사옵니다. 훈련의 내용조차도 파악이 안되고 있사옵니다.

은부    (의심하다가) 어쨌든 우리 두 부장이 갔소이다. 기다려보십시다.

임춘길  일찍 서둘렀어야 했습니다. 좀 더 일찍 말이옵니다. 저들 군대가 움직이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오고 있사옵니다. 훈련장을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옵니다.

은부    그래요? 어쨌든 우리 부장들이 곧 돌아올 것이외다. 기다려보십시다.

 

씬 동 황궁 대전

 

        궁예가 한가롭게 차를 마시며 지형도를 보고 있다. 여러 장의 지형도들을 이러 저리 바꾸어 본다.

 

궁예    그래, 그래... 내가 지난 번에 한 이야기가 맞아. 본격적인 북벌을 하기에 앞서서는 이 삼한 통일이 먼저야. 그러자면, 신라보다는 먼저 백제를 쳐야 해. 전면전으로 총력을 기울여서 말이야.

최응    ...........

궁예    이봐라, 최응아?

최응    예, 폐하.

궁예    나도 이제 백제의 견훤왕처럼 전장터에 친정을 나가보고 싶구나. 이제 황도에만 웅크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군사들의 앞에 서서 직접 지휘를 하는 것이야. 그리고, 견훤왕도 좀 만나보고 말이야.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어. 이제는 보고 싶은 사람이야. 전장터에서 서로 만난다면 얼마나 보기 좋을꼬? 하하하..그래, 내가 친정을 하는 것이야. 이제는 승복이 아니라 갑옷과 어검을 만들어 위풍 당당히 나갈 것이야. 어떠냐, 내 생각이 그럴  듯 하지 않느냐, 최응아?

최응    예, 폐하. 참으로 좋은 생각이신 것 같사옵니다.

궁예    암, 그렇지 않고서. 그렇고 말고.하하하...

 

씬 백제 황궁 외경

 

씬 동 대전

 

        제장 회의가 열리고 있다. 최승우, 능환, 능애, 최필, 신덕, 애술, 김총, 지훤, 공직, 박영규, 신검, 양검 들이다.

 

견훤    지금 이 삼국이 전쟁을 피하고 소강상태로 접어든지 꽤 되었어. 그러나, 어차피 전쟁은 마무리를 지어야 하고 승자와 패자는 그 가름이 나게 되어 있어.

모두들  ...........

견훤    우리는 그 동안 충분한 군량미와 적국에 대한 파악을 게을리하지 않았어. 자, 제장들은 말하라. 이제 기지개를 켜야 한다. 어디로 향하는 것이 좋겠는가?

능애    폐하, 신 능애 아뢰옵니다. 많은 전장터가 있사오나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치욕을 안겨준 전장터를 그냥 두고 있사옵니다.

견훤    오, 금성을 말하고 있는 겐가?

능애    그러하옵니다. 태봉국은 그곳을 나주라고 이름을 고친 이후 아주 제 땅처럼 천연덕스럽게 눌러앉아 있사옵니다. 반드시 되찾아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견훤    일리는 있는 말이야.

공직    폐하, 물론 금성은 언제든 되찾아야 하옵니다. 그러나, 금성은 지리적으로 더 이상 우리 백제로 넘어올 위치나 형편이 아니옵니다. 그곳은 잠시 접어두시옵고, 신의 생각으로는 상주를 다시 복원해야 한다고 보옵니다.

견훤    상주라..? (찡그리며) 또 상주야?

능환    공직장군의 말이 극히 타당하옵니다. 지금 태봉국은 그 내부 사정으로  흔들리고 있사옵니다. 이럴 때에 그 쪽을 다시 회복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옵니다.

신덕    신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그곳은 태봉국이 반드시 신라로 가기 위해 지나야하는 길목이옵니다. 이때에 완전히 차단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환이 될 것이옵니다.

최필    신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상주를 도모하시오소서, 폐하.

김총    맞사옵니다. 그곳을 도모하시오소서, 폐하.

애술    영을 내려주시오소서. 역시 금성보다는 상주가 더 급하옵니다.

지훤    영을 내려주시오소서.

최승우  폐하, 하오나 그곳은 여전히 폐하의 아버님께오서 주둔하고 계시는 큰 성이옵니다. 심사숙고하셔야 할 것으로 아옵니다.

능환    그러나,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일을 벌써 몇 십 년 째 저리 두고 계시옵니다. 어차피 내려야 할 결단이라면 지금이라도 폐하께오서 중대한 결심을 하셔야 할 것으로 아옵니다.

견훤    중대한 결심이라면, 결국 싸우는 것밖에 더 있겠는가? 부자간의 싸움이라니, 세상이 어찌 보겠는가? 그런 결심을 나보고 하란 말인가?

능환    그리하셔야 하옵니다. 어떻게든 정리를 하셔야 할 땅이옵니다.

견훤    그렇기는 하겠지. 금성도 되찾아야하고 말이야. 어쨌든 태봉국은 저들의 내부사정이 다시 정리가 되면 군사를 일으켜 올 것이야. 우리는 그것을 대비하지 않으면 안돼. 그러자면, 역시 상주야. 거기가 맞기는 맞는데..... (아프다) 아버님이 계신단 말이야. 아버님 말이야. 어쨌든 준비는 하라. 적국의 동태를 세밀하게 살피고 아버님 주변을 좀 더 확실하게 알아오도록 하라. 그래, 이제 준비는 해야 한다. 우리가 태봉국과 부딪쳐야 하는 것은 뻔한 이치니까 말이야야. 그 점을 다시 알아서 짐에게 보고하도록 하라. 알겠는가, 제장들?

제장들  예, 폐하.

견훤    상주뿐 아니라 그 금성도 계속 알아봐. 찾아야지, 그 땅도 반드시 찾아야지.

 

씬 나주 관아 외경

 

씬 동 관아 안

 

        오씨와 다련군, 유금필, 박술희, 윤신달, 전이갑, 김언이 함께 해 있다. 모두 긴장해 있다.

 

오씨    뭔가 철원 황도에 심각한 일이 거듭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옵니다. 이번에는 태평학사에 이어 김락장군이 전보되어 갔사옵니다.

다련군  (끄떡인다) 그러게 말이다. 대체 그것이 무엇일꼬? 요즘은 전혀 서신왕래도 끊겼으니 답답해서 이거 참....

유금필  이 나주에는 많은 전함들과 정예 군사들이 있사옵니다. 만약을 대비하여 소장과 술희 아우를 이곳에 주둔하고 부르시지 않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계획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옵니다.

박술희  대체 그것이 무엇일까요?

전이갑  왕총사께서 철원으로 소환되어 가신 이후 군부가 상당히 긴장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다행히 화는 면하셨으니 급한 상황은 아닌 것 같고.....

김언    하지만, 한여름에 있어야 할 훈련이 조금 당겨졌다면서요? 지금 황도의 중앙군이 모두 훈련에 동원되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윤신달  하긴 그래요. 그 훈련이 뭔가 이상하기는 하오이다. 지금껏 훈련을 앞당겨서 한 일은 없었소이다. 그리고, 태평군사도 갑자기 불려 올려가더니 이번에는 김락 장군도 또 불러 갔어요. 황제께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 병부의 인사명령으로 말입니다. 뭔가가 있기는 있어요.

오씨    그래요. 뭔가는 있어요. 분명 있습니다.

 

씬 야영 훈련장

 

        아직도 오후의 태양이 이글거리고 있다. 군사들은 여전히 부산해 보인다.

 

씬 동 군막 안

 

        능산을 제외한 제장들이 모두 모여 있다. 모두 긴장해 있다.

 

홍유    상당수의 군사들이 황궁을 중심으로 하여 수십 리 밖으로 포위해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배현경  이 군대들은 내일 새벽 안으로 황궁을 거의 에워 쌓게 될 것입니다.

환선길  어쨌든 혁명을 하기로 한 일이올시다. 그런데도, 혁명의 주체가 되는 분의 허락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말도 아니되는 일이올시다.

복지겸  (한숨) 아무래도 지금까지 능산장군이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왕시중께서 대답을 아니 주시는 모양입니다.

홍유    우리 기장들이 모두 함께 가서 청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사실 그게 또 마땅한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배현경  그건 그렇소이다. 어차피 그 분께서는 새로운 황제가 되실 분이십니다.

환선길  화...황제요? (하다가 끄떡이며) 허긴 그렇게 되겠지요.

복지겸  (그런 환선길을 잠시 보다가) 좋소이다. 우리 기장들이 함께 가십시다. 환장군께서는 여기 염상, 김락장군과 더불어 일단 이곳을 통솔해주시오. 우리가 다녀오리리다.

환선길  뭐 그렇게 하십시다. 곧 해가 질 터인데 이거 다급하게 되었소이다.

염상    그렇습니다. 다들 다녀오십시요.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김락    이곳은 안심하시고 어서들 다녀오십시요.

복지겸  가십시다.

 

        기장들이 그렇게 급히 군막을 나간다. 환선길이 뭔가 마땅치 않게 본다. 김락, 염상들도 긴장하여 그렇게 보고.......

 

씬 왕건의 집 외경(석양)

 

씬 동 집 사랑

 

        능산이 왕건과 마주해 있다. 태평과 왕식렴형제도 보고 있다.

 

능산    (다급하다) 이미 군이 움직였사옵니다. 내군에서도 저희들의 혁명을 이미 눈치챘사옵니다.

왕건    ...........

능산    내군의 금대부장이 와서 모든 것을 조사해갔사옵니다. 군은 모두 오군으로 나누어 그 제 일군을 주군께서 맡기로 되어 있사옵니다. 황궁의 정문을 여는 것이옵니다.

왕건    나는 아니라고 하였어.

능산    하셔야 하옵니다. 이미 만 여명의 군대가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황궁을 포위하기 시작했사옵니다.

왕건    아니라고 하였어.

능산    이미 쓸 시간은 다 썼사옵니다. 더 이상 여유가 없다고 말씀드렸사옵니다. 주군, 이미 소재가 이렇게 몇 시각을 애원하고 있사옵니다. 만 여명의 군사가 주군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사옵니다, 주군.

모두들  ..........?

왕건    (눈을 감는다)...........

 

씬 동 사랑 밖

 

        두 여인이 긴장하여 안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뜨고 있다.

 

씬 다시 동 사랑

 

능산    (계속) 주군, 어서 갑옷을 입으시오소서. 어서요, 주군.

왕건    ............?

능산    주군......? 애써 이룬 기회들을 다 놓치옵니다. 주군.....?

 

        왕건은 요지부동이다. 모두들 애가 타서 그렇게 보고 있다.

 

씬 황궁 내군 관아 외경(밤)

 

씬 동 관아 안

 

        은부가 금대와 장일을 보고 있다.

 

은부    군대가 모두 움직이고 있다? 목적은 훈련이 아니라 황궁을 에워싸는 것이다?

금대    그러하옵니다, 장군. 동서남북 방향으로 이미 지방군들이 황도의 중앙군과 합세하며 조여드는 것으로 아옵니다.

은부    (장일 보며) 어찌 된 일인가?

장일    소장도 모르는 일이옵니다.

은부    순군부에서도 이번 훈련을 아주 이상하게 보고 있어. 우리에게 올라온 훈련 내용이 아니야. 이상징후가 곳곳에 보이고 있단 말이야. 지금까지의 보고를 종합해본다면 이것은 군령 위반이고.... 반란이야.

두부장  ..........?

은부    다 합친다면 무려 일만의 군대가 사방에서 움직이고 있어. 이 철원의 황성을 향해서 말이야. 기장들을 소환해야겠어. 이보게, 금대부장?

금대    예, 장군.

은부    전령들을 띄우게. 폐하의 칙령을 써도 좋아. 가서, 전하라. 폐하의 영이시니, 기장들은 지금 모두 즉시 황궁으로 들어와 영을 받으라 하라. 전령들에게 그리 전하게 하라. 지금 당장! 

금대    예, 장군.

은부    어서 가라. 지금 즉시 파발을 띄워. 그리고, 왕건시중의 주변도 모두 살펴서 낱낱이 보고하라.  

장일    예, 장군.

은부    내원어른, 내원어른은 어디 계시는가? 내원어른께 알려야 한다.

 

        부장들이 급히 나가자, 은부는 그렇게 잠시 섰다가 그도 황급히 그곳을 벗어난다.

 

씬 동 내원

 

        종간이 은부를 보고 있다.

 

종간    반란이 시작되었다..?

은부    그러하옵니다, 내원어른. 드디어, 드디어 일이 터진 것 같사옵니다.

종간    (미소)....... 예정된 것이 오고 있는 것일세.

은부    훈련에 동원되어 있는 기장들을 모두 궁으로 소환한다는 전령을 보냈사옵니다.

종간    허허허, 그들이 오겠는가? 이미 내군의 군사력으로 저들을 상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하였네. 자네도 준비를 하게.

은부    예?

종간    때가 이르렀으니 그래야하지 않겠는가? 나는 이미 모든 준비를 다 마쳤다네.

은부    내원어른..?

 

        종간이 눈을 감고 말이 없다. 은부는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른다. 그 표정에서....

 

씬 철원 저자 거리

 

        석양에서 어둠으로 넘어가는 그 길을 기장들이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다. 그렇게 지나쳐가면.....

       

씬 다시 왕건의 집 사랑

 

        여전히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모두들 그렇게 대치해 있다.

 

능산    다시 한 번 청하옵니다, 주군. (애원처럼) 더 이상 여유가 없다 하였사옵니다, 주군.

왕건    .............  

태평    능산장군의 청을 허락하시오소서. 주군, 이제 길은 달리 없사옵니다. 허락하시오소서. 군이 움직이고 있다고 하지 않사옵니까?

 

        그러나, 왕건은 장승처럼 서서 말이 없다. 그 모습에서.....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온다.

 

장수장  (E) 누구시오이까?

 

씬 동 집 마당 대문

 

        장수장이 긴장하여 다시 묻고 있다.

 

장수장  누구시오이까? 누가 시중어른을 보자하시는 것이오이까?

배현경  문을 열어라. 다급하라. 우리는 병부에서 온 장수들이니라. 어서...

 

        장수장이 수하들에게 눈짓을 하면 문이 급히 열린다. 기장들이 쏟아져 들어오며 묻는다.

 

복지겸  왕시중께서는 어디 계시는가?

장수장  사랑쪽에 계시옵니다.

복지겸  가십시다.

 

        장수들이 사랑쪽으로 달려들어간다. 두 유씨가 보며 놀라고 있다. 이들은 모두 다급한 것이다. 그렇게 장수들을 맞는 두 유씨에서...

 

씬 다시 동 사랑

       

        그들 그렇게 왕건과 능산이 마주하여 서 있는데, 발소리와 갑옷 소리들이 들리며 이윽고 기장들이 들어선다. 두 유씨도 함께 보고 있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얼마를 그렇게 서로를 보았을까? 홍유가 다시 묻는다.

 

홍유    능산장군, 아직도 시중어른께서 대답을 아니 주셨습니까?

능산    그러하오이다.

배현경  두 마님께 청하옵니다. 

두유씨  예.

배현경  소장이 알기로 이 댁 뒷 후원에 새 오이가 많이 열었다 들었습니다. 술안주로 좀 필요할 것 같사온데 따다주실 수 있겠사옵니까?

유씨    (눈치 보다가) 알겠사옵니다.    

복지겸  (두 유씨가 나가자) 이제 더는 아니된다고 하였습니다. (무릎을 꿇는다) 시중어른, 소장 복지겸 여기 기장들과 함께 청하옵니다. 나라를 구하는 일에 앞서주시오소서. 신들과 이 세상의 주인이 되시어 도탄에 빠져 있는 백성들에게 광명천지를 열어주시오소서. 삼가 청하옵니다.

모두들  (함께 꿇으며) 삼가 청하옵니다.

왕건    나는 분명 못한다고 하였소.

배현경  대체 이토록 굳이 마다하시는 연유가 어디 계시옵니까?

왕건    일찍이 나는 말한바 있소이다. 비록 폐하께서 본 마음을 잃으시고 포악해지셨다 하더라도 신하는 감히 두 마음을 가질 수 없는 것이라고 말이오.

홍유    이미 황제의 정치가 어긋나고 그 형벌이 과람하여 황후를 죽이고 또한 태자들을 죽였으며, 신하들로써 죽은 자는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사옵니다.

복지겸  또한, 이 나라 정치가 그 방향을 잃어 나라가 피폐해졌고 이미 그 갈 길을 잃었사옵니다. 어두운 주인을 패하고 밝은 주인을 세우는 것은 천하의 도리이니, 시중어른께서는 소장들의 청을 받으시오소서.

왕건    그렇지가 않소이다. 신하로써 그 주인을 치는 것을 좋은 말로 바꾸어 혁명이라고들 하는데, 나는 그런 덕이 없는 사람이오. 또한 한 번 주인을 배반하기 시작하면, 뒷세상에서 이를 구실로 삼아 다시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가 있소이다. 이 어찌 두려운 일이 아니오이까? 그래서, 나는 못한다는 것이오.

배현경  소장들이 이렇게 무릎을 꿇었사옵니다. 맹세컨데 소장들이 목숨을 다해 보좌하여 다시는 그런 세상을 만들지 않도록 하겠사옵니다. 청을 받아주시오소서. 

모두들  받아주시오소서.

 

        그래도, 왕건은 대답이 없다. 뒷짐을 진 채 그저 허공만 보고 있다. 안타까운 태평, 식렴 형제들의 면면이 지나친다.

 

복지겸  시중어른, 여유가 없다 하였사옵니다. 받아주시오소서, 시중어른.

왕건    ..........

모두들  시중어른....?

 

        그때다. 휘장이 활짝 열리며 유씨가 다시 들어선다. 유씨는 두 손 위에 갑옷을 들었다. 모두 놀라서 보고 있다.

 

왕건    부인께서는 어쩐 일이시오?

유씨    꾸중을 들을 각오를 하고 서방님과 장군들의 이야기를 들었사옵니다. 이 분들의 간절한 청을 외면하심은 책임 있는 신료로써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 되옵니다. 허락하시오소서.

왕건    이게 무슨 짓이오, 부인? 부인이 나설 자리가 아니오.

유씨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의병을 일으켜 포악한 군주를 패하고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은 마땅히 장부로써 해야 할 일이옵니다. 하물며 이 나라 신료 중 제일 윗자리에 앉으신 서방님이 아니시옵니까? 이 갑옷을 입으시오소서. 그리고, 백성들의 여망을 풀어주시오소서.

태평    주군, 받으시오소서. 이미 천하의 뜻이옵니다.

복지겸  받으시오소서.......

모두들  받으시오소서.....

 

        모두들 무릎을 꿇고, 그렇게 청한다. 왕건은 비로소 흔들리기 시작한다. 복지겸들이 거듭 다시 청하자, 그때서야 왕건은 다시 말한다.

 

왕건    그대들이 모두 하늘의 뜻이라 하고, 백성들의 여망을 앞세우니 계속 마다함도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 될 것이오. 이제 어쩔 수 없이 부득불 나라를 위해 그대들의 청을 아니 받을 수가 없구료.

모두들  참으로 지당하시옵니다.

왕건    그러나, 기왕에 혁명의 대열에 총사로 나서는 이상 나도 장군들에게 청이 있소이다.

모두들  ........?

왕건    사사로이 폐하께서는 나의 의형이시고, 또한 수십년 이 나라를 통치한 군주시오. 그 분의 목숨만은 보장해드리고 싶소이다.

모두들  ..........(대답이 없다)

왕건    신료였던 사람으로 그 주인의 목을 벤다는 것은 차마 나로써는 하지 못할 짓이오. 어찌들 하겠소이까? 들어주시겠소이까, 마시겠소이까? 나머지는 모두 장군들의 뜻을 따르리다.

복지겸  이미 어른께서는 저의 장수들의 주인이 되셨사옵니다. 주인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아랫사람들이 어찌 거역하오리까? 삼가 받들겠나이다.

모두들  삼가 받들겠나이다.

 

        유씨가 비로소 갑옷을 펼친다. 그리고, 왕건에게 내민다. 장군들이 감동처럼 보고 있다. 보고 있던 태평이 다시 왕건에게 검을 바친다.

 

태평    주군, 검을 받으시오소서. 세상을 바꾸시는 검이옵니다.

 

        비로소 그것을 받아드는 왕건의 그 표정에서.......

 

씬 황궁 외경

 

씬 동 대전

 

        궁예와 종간이 차를 마시고 있다. 언제나처럼 그들은 편안한 모습이다.

 

종간    폐하, 오늘따라 차 맛이 아주 맑고 청아하게 느껴지옵니다.

궁예    찻잎이 햇것이라 그렇겠지요. 헌데, 내원께서는 무슨 하실 말씀이 있어 오신겝니까? 이 밤중에...

종간    인사를 드리러 왔사옵니다.

궁예    허허, 이런...매일 서로 보며 사는데 새삼스럽게 무슨 인사...? 그보다도 그저께 왕시중과 새벽까지 술을 했는데 말이오. 글쎄 왕시중이 술이 취해서 허허허... 아, 글쎄 눈물을 보이더란 말이야. 나 세상에 원... 이보시오, 내원.

종간    예, 폐하.

궁예    나는 왕시중이 우는 건 처음 보았어. 난 그 아우만은 술 주정이 없는 줄 알았지. 글쎄, 취해서 울더라니까. 하하하하.... 내가 두고두고 골려줄 참이오. 이 얼마나 재미있냔 말이야. 아, 안 그렇소이까?

종간    예, 폐하. (감정을 참으려 애쓰며, 사이)...... 그리 하시오소서.

궁예    우리는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소이다. 사형이야기도 하였지요. 그리고, 북벌 이야기도 말이오. 물론 고경참문 이야기도 했지요. 모든 조짐이 갑자기 다 좋아지고 있다고 말이오. 갑자기 말이야. 

종간    예, 폐하.

궁예    (얘기하다 말고 종간보며) 헌데, 왜 그러시오, 사형? 표정이 좀....밝지가 않은 것 같소이다.

종간    인사를 드리러 왔다고 하였사옵니다.

궁예    인사..? 왜요? 헌데, 무슨 인사?

종간    예, 폐하. 한동안 못 뵐 것 같사옵니다.

궁예    그건 무슨 소리요? 한동안....이라니? 왜, 어디 가실 곳이 있소이까?

종간    예, 곧 아시게 될 것이옵니다.

궁예    그래요? 아니 얼마나 먼 곳으로 가길래? 거기가 어딘데?

 

        그때, 다급한 발소리들이 한꺼번에 들려온다. 궁예가 본다. 그대로 갑옷과 신을 신은 차림으로 은부가 들어선다.

 

은부    폐하, 반란이옵니다.

궁예    반란..? 그게 무슨 소리오? 어느 누가 반란을..? 어디서...?

은부    시중 왕건이옵니다. 

궁예    왕건, 왕건아우 말인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

종간    .........(미소만)

은부    군이 통제되지 않고 있사옵니다. 지방군이 올라와 이미 궁성의 동쪽과 서쪽으로 다가오고 있고, 훈련을 빙자한 기병군단이 궁성 밖 야영지에서 대오를 갖추고 있다고 하옵니다.

궁예    그런데, 뭘 보고 반란이라고 하는 겐가?

은부    내군의 전령을 보내서 폐하의 영을 전하여 소환을 명하였으나 이미 군령을 듣지 않고 있사옵니다. 훈련을 주관하는 기장들이 지금 왕건과 긴밀히 내통하고 있음이 확인되었사옵니다. 반역이옵니다, 폐하. 반란이 틀림없사옵니다.

 

        함성소리들이 들려오고 있다. 말 울음소리, 그리고 달리는 군사들의 소리들도.... 종간이 천천히 일어나 큰절을 한다.

 

종간    폐하, 신 종간 다시 한 번 인사드리옵니다. 편히 가시오소서.

궁예    이보시오, 사형? 사형...? 지금 뭘 하는 게요?

종간    왕건이 예정된 그의 자리로 오고 있사옵니다. 폐하, 신은 머지않아 다시 또 폐하를 뵈올 것이옵니다. 안녕히 계시오소서.

궁예    이보시오, 사형? 사형...?

 

        그러나, 종간은 조용히 대전을 물러난다. 궁예가 눈을 크게 뜨고 다시 은부를 본다.

 

은부    반역이 분명하옵니다. 우리 내군들도 철통같이 이 황궁을 수비중이오나 반군에는 그 세가 미치지 못하옵니다. 폐하, 차비를 차리시오소서. 만약에 대비를 해야 하옵니다.

궁예    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 왕건아우가 왜? 그 아우가 왜 반란을 해? 왜? 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 무슨 소리를...?

은부    다시 뫼시러 오겠사옵니다. 소장은 황궁의 내군들을 점거하겠사옵니다. 떠나실 준비를 해주시오소서, 폐하.

궁예    떠나? 어디로? 내가 어디로 떠나? 이보게, 은부장? 은부장?

 

        은부가 그렇게 대전을 나갔다. 궁예는 어쩔 줄 모른다.

 

궁예    떠나? 이 황궁을 두고 어디로 떠나? 왕건아우가 그 아우가 반역을 했단 말인가? 그 아우가?

 

씬 야외 야영지 훈련장

 

        어둠 속에서 왕건이 군사들 앞에 서 있다. 그리고, 출발의 훈시가 이어진다.

 

왕건    장졸들은 들으라. 나는 오늘 그대들의 청을 받아 몇 번을 고사하다가 이 자리에 섰노라.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이 어지럽고 혼탁하여 황제가 그 위엄을 잃고 망령을 얻은지 오래다. 이에 장졸들은 물론이거니와 수많은 신료들과 백성들이 모두 나를 원하니 어찌 이 목숨을 내어놓지 않으랴? 나는 오늘 그대들과 함께 신명을 다 바쳐 새로운 세상을 열 것임을 천지신명께 맹세하고 검을 들었노라.

군사들  와...............(함성 계속)

왕건    이미 상당한 병력들이 궁의 좌우로 몰려갔다 들었다. 모든 장졸들은 나를 따르라. 나는 황성의 문을 열고 백성들에게 새로운 세상이 도래했음을 알릴 것이니라. 모두 나를 따르라. 나를 따르라........!

 

        검을 들고 소리치는 그 왕건의 표정과 들끓는 함성에서.......

 

        < 119회 끝 >










첨부파일 태조왕건119.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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