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 120회>
줄거리
철원 황궁을 향해 왕건은 전진한다. 한편, 궁예는 왕건이 혁명을 일으켰다는 소식에 내군 은부장군과 함께 급히 도망을 치고, 종간은 궁에 남아 자진을 한다.왕건은 드디어 태봉국의 황궁을 장악한 것이다.그리고, 왕건은 명성산으로 직접 궁예를 찾아가 마지막 설득을 해보지만, 궁예는 은부장군에게 미리 맡겨 두었던 칼로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고 마는데....
씬 철원 저자 거리(밤)
군사들이 등에 기를 달고 몇 명씩 조가 되어 달리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소리치고 있다.
군사들 왕시중께서 의기를 드셨다. 왕시중께서 검을 드셨다....! 백성들은 모두 궐기하라. 왕시중께서 나서셨다.
그들은 곳곳으로 흩어지고 그렇게 떠들며 지나쳐 간다.
씬 또 다른 저자 거리
함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수도 없는 횃불들이 거리를 메웠다. 기장들이 모두 왕건을 에워싸며 가고 있다.
해설 왕건의 역성 혁명, 혁명이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기존의 세력을 파괴하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왕건이 드디어 그 혁명길에 나섰다. 이때가 단기 3251년 그리고, 서기 918년의 일이었다. 실록은 이 때의 정경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 해 유월 을묘일에 기병장군 홍유와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들이 비밀리에 짜고 밤중에 태조의 저택으로 가서 그를 추대할 뜻을 말하였다. 태조는 굳이 거절하여 허락치 않았으나, 부인 유씨가 손수 갑옷을 들어 태조에게 입히니 여러 장수들이 옹위하고 나오면서 사람들을 놓아 말을 달리게 하며 외치기를 왕공이 벌써 의기를 들었다, 라고 하였다. 이때 분주히 달려와 참가한 자들이 셀 수가 없었고 먼저 궁문으로 와서 북을 치고 기다리던 자들이 만 여명이나 되었다” 라고 쓰여 있다. 그러나, 이때의 철원에는 백성들을 다 합쳐도 만 여명이 되지 않았다. 북을 치며 기다렸다는 그 만 여명이라는 숫자는 이미 계획되어 동원되어 있던 혁명군이었던 것이다.
씬 그 저자 거리 어느 곳
기장들이 잠시 멈추고 황궁 쪽을 보고 있다. 복지겸이 설명하고 있다.
복지겸 군을 모두 오군으로 나누었사옵니다. 제 일군은 지금 시중어른께서 맡으셨고, 나머지 사군은 멀리서 황궁을 포위해 들어가고 있사옵니다. 다만 북문 쪽으로는 산악지대와 맞물려 있어 아직 군사가 도착지 못하였사옵니다.
왕건 ..........
배현경 십중팔구 황제는 그곳으로 도망칠 공산이 크옵니다.
홍유 영을 내리시오소서. 이제부터 순군부를 접수하는 동시에 황궁으로 들어가야 하옵니다.
왕건 (끄떡인다) 되도록이면 유혈충돌을 하지 않도록 하오. 이군은 가서 순군부를 접수하고 통제할 것이며 나머지 삼군은 동문과 서문이 있는 현위치 그대로에서 영을 기다리도록 하오.
그들 예.
왕건 또한, 북문으로 황제가 갈 공산이 크다하니, 배장군과 홍장군은 미리 가서 저들의 지나칠 길을 막도록 하오.
두 사람 예.
왕건의 영을 받은 장군들이 그들의 부장들과 함께 흩어지고 있다.
왕건 우리 본군은 황궁으로 진군할 것이오. (사이) 진군을 알리시오.
능산 예, 주군. (큰소리로) 진군하라.
김락, 염상 진군하라. 진군하라....!
대군이 그렇게 움직이며 어둠 속으로 가고 있다. 그 어느 곳에서 숨어 보고 있던 내군 두어명이 그대로 모습을 감춘다.
씬 길
내군 첩자들이 달려가고 있다. 그리고, 소리치고 있다.
첩자들 반군이다. 반란군이 온다. 반란군이다....!
씬 황궁
내군첩자들이 그렇게 달려오며 다급히 소리친다.
첩자들 문을 열어라. 반란군이 몰려온다. 어서, 문을 열어라. 폐하께 아뢰어야 한다. 어서....
황궁 문이 열린다. 안으로 사라지는 그들.....
씬 동 황궁 마당
이미 수많은 내군군사들이 이리저리 이동하며 경계를 서고 있다. 전시상황인 것이다. 내군 관아 쪽이 보이면서....
은부(E) 뭐라? 반란군이 그예 황궁으로 오고 있어?
씬 동 관아 안
은부와 금대가 보고 있다.
은부 반군이 황궁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하였느냐?
첩자 그러하옵니다, 장군. 제일 선두에 시중 왕건이가 있사옵니다. 그리고, 많은 기병 장군들이 군사들과 함께 이리로 오고 있사옵니다.
금대 우리가 예측한 그대로이옵니다. 그 수괴가 왕건이 틀림없다 하옵니다. 장군, 피하셔야 하옵니다.
은부 장일부장은 어디 갔느냐?
금대 황궁안의 내군들을 통솔하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조금 전 까지 보였사옵니다만은.....
은부 아,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야말로 뻔히 보아왔으면서도 속수 무책이 아닌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 자, 어쨌든 폐하를 뫼셔야 한다. 이미 폐하께서도 알고 계시니, 금대부장이 대전으로 가라. 어서.
금대 예, 장군.
은부 각 궁성문을 모두 굳게 걸어 잠그고 적군의 동태를 파악하라. 나는 내원어른을 뫼시고 올 것이다. 서둘러라. 어서, 서둘러라.
은부가 달려나간다. 금대와 부장들도 이리저리 흩어져 달리기 시작한다.
씬 동 황궁 대전 복도
내관들이 어쩔 줄 모르며 이리저리 오가고 있다.. 난리다. 상궁들과 군사들이 어우러지며 혼란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씬 그 대전 안
밖의 소리들이 들려오고 있다. 궁예는 어쩔 줄 모르며 눈을 껌벅이고 있다. 그 앞에는 여전히 법봉이 놓여 있고 탁자에는 경전들이 보인다. 혼란의 소리들은 계속 들려오고 있다.
궁예 왕건 아우가 오고 있다구?....왕건 아우가..... 반란군의 수장이 왕건 아우라고..? 왕건 아우가, 왕건 아우가.......?
궁예는 잠시 뭔가를 생각한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해내며 눈을 크게 뜬다. 그 왕건의 울음이, 그 통곡이 지나쳐 간다.
왕건 (E, 통곡하며) 형님, 이 아우를 용서하시오소서. 이 아우를 용서하시오소서, 형님.
궁예는 그제서야 그랬었구나, 이해가 간다. 왕건의 울음소리는 환청처럼 계속 지나치고 있다. 마치 메아리처럼 에코성으로 그렇게....궁예가 쓴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기는데 휘장 쪽이 벌컥 열리면서 금대와 내군들이 달려온다.
금대 폐하, 드디어 반군이 황궁으로 밀려오고 있사옵니다. 어서 자리를 피하셔야하옵니다. 신을 따르시오소서, 폐하.
궁예 ...........?
금대 어서 신을 따르시오소서, 폐하.
궁예 최응이, 최응이는 어디 갔느냐?
금대 이미 궁 안에 보이지 않사옵니다. 신이 뫼시겠사옵니다. 따르시오소서.
궁예 내원은 어디 갔느냐? 은부장군은 어디를 갔고?
금대 밖에들 계시옵니다. 얘들아 뭣들 하느냐, 어서 폐하를 부액하여 뫼시어라, 어서.
군사들 예.
군사들이 대답하며 궁예를 뫼셔간다. 궁예는 가며 계속 묻는다.
궁예 어디들 갔어? 다 어디들 갔어?
금대 뫼시어라, 어서.
그 혼란한 모습에서....
씬 황궁 마당
은부가 소란한 군사들과 상궁내관들을 제치고 달려오고 있다. 그곳은 내원이 있는 그 전각이다. 은부가 소리치며 달려가 문을 연다.
은부 내원어른, 내원어른, 소장 은부이옵니다. 내원어른?
그렇게 은부가 문을 벌컥 연다.
씬 동 방 안
종간이 흰옷으로 갈아입고 그런 은부를 보며 미소 짓고 있다. 은부는 기가 질린 듯 부르다말고 멍하니 종간을 본다.
은부 내원어른?
종간 왜 그리 허둥대는가? 밖이 소란스럽구먼. 벌써 왕시중이 왔는가?
은부 예, 내원어른. 왕건이의 반란군이 성문 앞에 이르고 있사옵니다. 피하셔야하옵니다, 내원어른. 피하셔야하옵니다.
종간 피하다니, 어디로 말인가?
은부 (어이없어) 내원어른..........?
종간 이 삼한 천지에 이제 우리가 갈 곳은 없네 그려.
은부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가셔야하옵니다. 소장과 함께 가시오소서, 내원어른.
종간 나는 이미 폐하께 마지막 인사를 드렸네. 갈 곳이 있다면 가보게나.
은부 내원어른....?
종간 그 동안 자네와 적지 않은 세월을 참으로 뜻 있게 보냈네. 내생이 있다면 또 만날 것일세. 그때 보세나.
은부 내원어른....?
종간 하하하, 이보게, 은부? 잘 가시게.
은부 내원어른....?
종간은 그렇게 웃으며 다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조용히 참선에 든다. 은부가 마지막 애원을 한다.
은부 아직 사실 길이 있사옵니다. 내원어른, 소장과 함께 가시오소서. 함께 가시오소서, 내원어른, 내원어른...?
그래도, 종간은 전혀 반응이 없다. 군사들의 함성 소리가 더욱 화급하게 들려온다. 은부는 종간을 보다말고 포기 한 듯 다시 급히 걸음을 옮긴다.
씬 동 황궁 마당 일각
금대와 내군들이 궁예를 뫼셔나가고 있다. 금대가 악을 쓰고 있다.
금대 길을 열어라. 아직 북문에는 적이 오지 않았다. 폐하를 뫼시어라. 길을 열어라.
그들 그렇게 가고 있는데, 은부와 또 다른 군사들의 일단이 다가온다. 은부가 다가오며 궁예에게 군례를 드린다.
은부 폐하, 이제부터 신이 뫼시겠사옵니다. 반군이 이미 황궁의 정문 앞까지 온 것 같사옵니다.
궁예 최응이는 어딜 갔는가? 내원 그 사람은 어딜 갔어?
은부 이제 그들은 오지 않을 것이옵니다. 자, 신이 뫼시겠사옵니다. 금대부장은 어서 앞서가 북문을 열어라. 군사들은 폐하를 뫼시어라.
궁예는 그렇게 멍한 채 내군들에게 휩싸여 가고 있다. 소란은 극치를 더한다.
씬 그 북문 근처
궁예들이 그렇게 온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미 장일과 군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금대와 은부들이 오다가 이미 알아채고 멈칫한다.
은부 장일부장이 아닌가? 문을 열어라.
장일 나는 이미 왕시중께 의탁한 몸이오. 그대들의 목을 놓고 가시오. 아니면 무릎을 꿇던가?
은부 이런 고얀 놈.... 네 놈이 지금까지 누구의 은혜로 살았느냐? 썩 비키지 못할까?
금대 물러서라, 이놈아. 이 배신자 같으니....
장일 그렇게는 못한다. 목들을 내놓으시오.
금대 이런, 배신자...... 저 놈을 쳐라.
군사들이 달려간다. 접전이 이어진다. 그 혼란속에서 은부가 다시 소리친다.
은부 금대부장은 뭘 하는가? 폐하를 저쪽으로 뫼시어라. 이 북문을 포기하고 저쪽 사잇문으로 가라. 사잇문이 있을 것이다. 어서...!
장일 놓치지 마라. 황제를 놓치지 마라.
그러나, 장일쪽은 열세다. 수없는 난전속에서 장일은 어깨가 베인다. 그 틈을 타 내군의 장졸들이 궁예가 간 쪽으로 달려간다.
장일 저들을 잡아라. 잡아야 한다.
씬 그 일각(사잇문)
큰 대문이 아닌 사잇문으로 궁예들이 황급이 빠져나가고 있다. 그곳에는 이미 말이 배치되어 있었다. 내군들이 삼엄히 에워싼다.
은부 폐하, 어서 말에 오르시오소서.
금대 어서 오르시오소서, 폐하.
궁예가 말 위에 오른다. 이미 그의 표정은 굳었다. 모든 현실을 안 것이다. 그러나, 그는 황제다. 서두르지를 않는다. 그가 말에 오르자 내군들이 에워싼다.
은부 일부는 이곳에서 반란군을 막아라. 우리는 폐하를 뫼시고 갈 것이다. 금대부장이 선봉을 서라. 자, 앞을 서라.
금대 예, 장군. 군사들은 뭘 하느냐? 폐하를 뫼시어라. 가자!
그렇게 말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궁예는 황궁을 돌아본다. 그러다가, 궁예는 문득 누군가를 본다. 그 사잇문 한쪽으로 최응이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런 궁예의 말을 은부가 등채로 후려친다. 말이 튀어 오르며 달리기 시작한다. 그들은 그렇게 궁에서 벗어나가고 있다. 여전히 최응이 그렇게 보고 있다.
씬 황궁 정문 앞
어둠 속을 가득 메우며 수천의 횃불들이 몰려오고 있다. 북소리와 소라 소리들이 울린다. 마치 큰 전장터를 방불케 한다. 왕건과 제장들이 황궁을 보고 있다.
능산 황궁에 아직 내군들이 있는 것 같사옵니다.
왕건 어떻게든 유혈충돌을 막자고 하였소이다.
복지겸 그렇게 될 것이옵니다. 궁 안에 내군들은 있사오나 별로 싸울 기색이 보이지 않사옵니다.
환선길 그러게 말이옵니다. 장애물도 없고 수비 군사들도 없소이다.
염상 궁안에는 내군의 장일부장이 남아 있을 것이옵니다. 좀 더 사태를 관망 할 필요가 있사옵니다.
김락 허지만, 이대로 지켜볼 것이 아니라 안의 동정을 알아봐야 합니다.
왕건 일리 있는 말이오. 문을 열라고 해보시오.
김락 예, 시중어른. (큰 소리로) 성안의 군사들은 들으라. 이미 시중어른께서 대의로 일어나시었다. 어서, 궁문을 열어라.
그러나, 반응이 없다. 김락은 계속 목이 쉬어라 소리친다.
김락 궁문을 열어라. 시중어른께서 오시었다. 궁문을 열어라.
씬 동 황궁 안
내관과 상궁들이 이리저리 장일의 수하들에게 이끌려 오고 있다. 그때, 장일이 부상당한 몸으로 급히 달려온다. 그리고, 내관들에게 소리친다.
장일 이미 내군들은 다 도망치고 없다. 새 주인이 밖에 와 계시니라. 길을 쓸어라. 문을 열기 전에 모든 길을 다 쓸어라.
군사들 예, 장군.
장일 너희 내관들 무엇 하느냐? 빨리 쓸어라. 상궁들은 대전주변을 정돈하도록 하라. 그리고, 불을 밝혀라. 대낮처럼 불을 밝혀라. 새로운 주인께서 오시느라. 어서, 어서...!
부산하다. 군사들도 부산하게 오가고 있고, 상궁과 내관들이 길을 쓸거나, 어디론가 달려간다. 곳곳에 화롯불들이 다시 타오르고 있다. 그 먼 곳 어느 곳에서 최응이 보고 있다.
씬 동 궁성 밖
왕건과 제장들이 여전히 보고 있다. 황궁 정문은 그렇게 굳게 닫혀 있다. 김락이 한 번 더 문을 열라고 소리친 후에 누군가가 궐 담 위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두 군사가 횃불을 든 그 가운데로 장일이 서있다.
장일 장군, 소장 장일이옵니다. 장일이옵니다.
왕건 ...........?
염상 시중어른, 장부장이옵니다.
모두들 ...........(표정이 밝아진다)
장일 이미 내군은 다 도망치고 없사옵니다. 내관과 상궁들이 새주인을 모실 차비를 하고 있사옵니다. 곧 문을 열 것이옵니다.
복지겸 (미소) 곧 문을 연다 하옵니다. 혁명이 성공했사옵니다, 시중어른.
왕건 (끄떡인다) 그런 것 같소이다.
환선길 대문이 열리옵니다, 시중어른. 대문이 열려요.
육중한 궁궐 대문이 소리나며 열린다. 그 안으로 횃불들이 대낮처럼 밝게 늘어서 있고, 상궁 내관들이 모습을 보인다. 최응이가 장일과 함께 서 있다. 군사들의 함성이 그렇게 그 문 밖에서 들끓고 있다.
씬 그 곳
왕건이 말에서 내려선다. 기장들도 내려서며 그를 보좌한다. 장일과 최응이 나와 허리를 숙인다.
최응 시중어른, 이미 대전의 옥좌가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안으로 드시오소서.
왕건 ..........?
장일 안으로 드시오소서, 시중어른.
모두들 안으로 드시오소서.
왕건은 그러자 천천히 대문 안으로 들어선다.
씬 동 문 안
궁 안 마당은 내관과 상궁들이 도열하여 새 주인을 맞고 있다. 왕건은 횃불 사이로 걸어 들어가 정전 앞에 선다. 이미 그 정전 앞에 황제가 앉는 옥좌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왕건은 거기에 앉지 않는다. 감격처럼 기장들이 보고 있다. 능산이 앞으로 나서면서 소리친다.
능산 폐주는 도망을 쳤고, 새 주인께서 오셨소이다. 비록 절차가 있을 것이나 이미 황제 폐하이시오. 만세를 올립시다.
복지겸 옳은 말씀이오. 황제폐하 만세!
모두들 만세! 황제폐하 만세!
만세 소리는 한동안 끊이지 않고 계속 된다. 왕건은 그런 그들을 향해 천천히 손을 들어 제지하며 치하한다.
왕건 그만들 하시오. 아직 폐주의 소식을 모르고 있소이다. 그리고, 나랏법에 의한 절차가 남아 있소이다. 나는 그 나랏법을 충실히 지키고 싶소이다. 궁안의 질서를 잡고, 신료들을 불러 조회를 열 준비를 하시오. 그리고, 도망친 폐주가 어찌 되었는가 군사를 보내 속히 알아보도록 하시오.
제장들 예........
일부 부장들이 다시 달려가고, 왕건은 주변을 돌아보는데 최응이가 귓속말로 무언가를 왕건에게 고한다.
왕건 지금 그게 무슨 소리오, 원봉성령? 내원이 궁안에 있어?
최응 예, 시중어른. 내원 전각 안에 있사옵니다. 그 사람은 처음부터 도망칠 것을 포기한 것 같사옵니다.
모두들 (모두들 놀라서 웅성거린다)................
왕건 내원이 궁에 남아 있었다니, 이런..... 어서 가보세.
모두들 함께 몰려간다.
씬 동 내원 밖
왕건과 장수들이 함께 오고 있다. 그리고, 그 전각 앞에 이른다. 불이 환하게 밝혀 있고, 종간의 그림자가 보인다. 왕건도 다른 제장들의 표정이 굳어진다.
왕건 이르시게.
최응 (끄떡이고) 내원어른께 아뢰옵니다. 시중어른께서 오셨사옵니다.
안에서는 기척이 없다. 다시 최응이 말한다.
최응 내원어른, 시중어른께서 오셨사옵니다.
씬 동 내원 안
종간이 얼마전의 모습 그대로 단정히 앉아 있다. 그는 조용히 약간의 찌꺼기가 남아 있는 빈 약사발을 본다. 최응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최응 (E) 내원어른, 시중어른께서 오셨사옵니다.
복지겸 (E) 시중어른께서 오셨다고 했소이다. 어찌 문을 열지 않으시는 게요?
그래도, 종간은 기척이 없다. 그러자, 문이 벌컥 열린다. 거기 왕건과 최응과 태평, 능산, 복지겸, 환선길, 염상, 김락이 보고 있다. 종간이 미소지으며 왕건을 본다. 잠시 묘한 침묵이 오고간다.
종간 어서오시오, 왕시중. 드디어 그토록 염원하던 옥좌를 얻으셨구료.
왕건 ........... ?
종간 그대에게 이런 날이 있으리라는 것은 이미 나는 이 십여 년 전에 알고 있었소이다.
능산 시중께서 오셨는데, 어찌 무례하게 그리 앉아서 맞는단 말씀이오? 썩 자세를 바로 하지 못할까?
종간 하하하, 나는 왕시중을 황제로 보지 않는데, 어찌 자세를 바로 할까? 잘 들으시오, 왕시중. 오늘 같은 자리는 바로 그대들이 폐주라 하는 그 폐하께오서 만들어주신 것이오. 사람은 무릇 신세를 지면 고마워할 줄을 알아야 하는 것이오. 혹 폐하를 그대가 다시 뵙게 된다면 부디 욕된 자리를 만들지는 마시오. 그것을 부탁하고자 이렇게 남아 있었던 것이오. 하하하....
복지겸 죄인을 끌어내라.
군사들 예....
그러나, 왕건이 그들을 제지하며 막는다. 종간의 입가에 피가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종간은 죽어가며 더욱 크게 웃는다.
종간 하하핫하... 왕시중, 감축드리오. 나는 저 세상에 가서 다시 나의 주인을 만나야겠소이다. 하하하.... 하하하.....
그렇게 웃다가 종간은 표정을 정지한다. 그리고, 나무토막처럼 쓰러진다. 죽은 것이다. 그 모습을 보는 왕건의 시야에서....
해설 종간, 그는 왕건의 혁명 때에 제일 먼저 죄를 받아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그의 전력이 승려라고 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궁예에게 상당한 사상적 뒷받침을 해온 인물로 예측된다. 그 때문에 이 드라마에서는 그를 궁예의 책사로써 역할을 맡겼던 것이다. 그러니까 궁예의 그 전제정치는 종간의 사상과 은부가 관장하는 정예부대 내군의 힘에 의해 운영되지 않았을까 추측되는 것이다.
왕건 (보고 있다가) 이 나라와 폐주가 오늘날처럼 된 데에는 이 자의 죄가 가장 크다 할 것이오. 목을 베어 그 죄상을 세상에 알리도록 하오.
모두들 예........
왕건은 그렇게 돌아선다. 그리고, 하늘을 본다. 그 한숨에서....
씬 어둠 속 어느 산기슭
궁예 일행들이 오고 있다. 아무도 말이 없다.
은부 그래도 다행이옵니다. 쫓는 무리가 보이지 않사옵니다, 폐하.
궁예 ......... 다행이라...... 허허허, 졸지에 다 잃어버리고 도망치고 있으면서 무엇이 다행일 게 있겠는가?
은부 힘을 내시오소서, 폐하.
궁예 그러고 보니 이제 다 이해를 하겠네 그려. 왕건아우는 내게 와서 울며 용서해달라고 하였어. 바로 이런 결심을 그때 하고 있었던 것이야. 허허허. 그리고, 내원도 내게 와서 말했지. 먼길을 떠나려고 하니 인사를 해야겠다고. 그러니까, 나만 모르고 있었어.
은부 폐하, 폐하께서는 맨손으로 제국을 일으키신 분이시옵니다. 오늘의 위기를 넘길 수만 있다면 다시 기회를 보실 수 있사옵니다. 힘을 내시오소서.
궁예 힘이라.... 힘이라....
은부 북쪽으로 가면 부양현(평강)이옵고, 서쪽으로는 공성현(연천)과 견성군(포천)에 이르게 되옵니다. 어느 곳으로 가시겠사옵니까?
궁예 나는 늘 북쪽이 좋았던 사람일세. 가는 곳까지 가 보세나.
은부 예, 폐하.
허나,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함성 소리들이 들려온다. 산길을 돌아서려고 하는데 저쪽에서 수많은 횃불들과 군마들이 달려오고 있다.
홍유 (그곳에서) 거기 오는 이들이 누구인가? 나라를 망친 폐주가 아닌가?
은부 마군장군, 홍유인 것 같사옵니다. 길을 바꾸어야겠사옵니다. 이보게, 금부장, 길을 틀어라. 저쪽 계곡이 아니다, 냇가 쪽으로 길을 잡아라.
금대 예, 장군.
홍유 어디를 가느냐? 폐주는 항복하고 무릎을 꿇어라. 이미 왕시중께서 새로운 주인이 되셨느니라.
은부 뭣들 하느냐? 저쪽으로 길을 잡아라. 길을 잡아라. 폐하, 어서 달리시오소서. 어서요, 폐하.
모두들 당황하며 길을 바꾼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한다. 홍유군을 계속 추격해온다. 미처 뒤를 따르지 못한 내군들이 홍유군을 맞아 접전을 벌리고 있다.
홍유 잡아야 한다. 폐주를 잡아야 한다. 폐주를 놓치지 마라.
씬 어느 산 길 내천 쪽(새벽)
쫓는 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숨 가쁘게 궁예와 은부들이 오고 있다. 군사들은 아직도 상당수가 따르고 있다. 얼마쯤에 이르자 궁예는 숨을 가라앉히며 주변을 본다.
은부 안심하시오소서. 조금만 더 가면 명성산이옵니다. 견성군과 가까운 곳이옵니다. 견성군만 넘으면 그곳에서 명주(강릉) 김순식장군 쪽으로 갈 길이 있을 것이옵니다.
궁예 김순식이라... ?
은부 명주 장군 김순식은 폐하의 둘도 없는 충신이 아니옵니까?
궁예 그렇기는 하지. 허나, 언제 그 명주까지 갈 수 있단 말인가?
은부 아무튼 이 철원 지역은 빨리 벗어나야 하옵니다. 주변의 군현이 모두 반군과 연결되어 있사옵니다. (군사들에게) 자, 서둘러라. 새벽 안으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서둘러라!
그렇게 은부는 군사들을 재촉하며 길을 간다. 어디만큼 갔을까? 은부는 다시 놀란다. 내천 건너 저만큼 횃불들이 보여오는 것이다. 그것도 끝도 없이.....
은부 저건 또 웬 군사들인가? 강 건너 저건 무슨 군사들이야?
금대 .............?
그때, 그곳 강 건너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배현경 하하하, 거기 오는 이들이 누구인가? 망령이 드신 폐주가 아니시오?
은부 저런 죽일 놈이.... 저 놈은 배현경이 아닌가?
금대 그렇사옵니다. 마군장군 배현경이옵니다.
은부 길을 바꾸어라.
금대 아니되옵니다. 뒤로 가면 홍유가 우리를 추격 중에 있사옵니다.
은부 하지만, 강을 건너자면 배현경의 대군과 만나야 한다.
금대 차라리 명성산으로 가시오소서. 그쪽의 산길을 타고 공성현을 넘는 길을 찾아보는 것이 나을 것이옵니다.
은부 그리하자. 자, 어서 다시 길을 틀어라. 산쪽으로 방향을 잡아라.
씬 그 강 건너
궁예 일행이 강을 건너지 않고 다시 산 쪽으로 가는 것이 보인다.
배현경 허허, 항복하지 않고 어디로 가시오? 그곳은 깊은 산중이외다. 항복하시오, 항복하시오!
그러나, 궁예 일행은 점점 시야에서 멀어진다. 배현경은 중얼거린다.
배현경 예상대로 되어 가는 구먼. 시중께서 목숨을 거두지 말라 하시니, 쫓아가 머리를 벨 수도 없고.... 저쪽으로 가면 더 이상 길은 없어. 우리 생각대로 되었어. 저들은 더 이상 나갈 길이 없어.
부장 그럴 것이옵니다, 장군. 허허허.
배현경 되었어. 이제 저들은 영락없이 갇혔어. 주변 일대를 모두 포위하라. 그리고, 전령을 띄워 이 사실을 시중어른께 고하라. 황제를 잡았다고 말이다.
부장 예, 장군.
회심의 미소를 짓는 배현경의 표정에서.....
씬 황궁 외경(아침)
군사들이 황궁을 둘러싸고 있다. 아침이 밝고 있다.
씬 동 황궁 안 조당
왕건을 중심으로 제장들이 모여 있다.
왕건 신료들에게 모두 연통을 띄웠는가?
태평 예. 모두 곧 열리는 임시 조회에 참석하라 일렀사옵니다. 이미 거리마다 포고문을 붙였사옵고, 군사들을 보내 지난밤의 일을 안정시키고 있사옵니다.
복지겸 우리의 의거에 대하여 다른 군의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일단 혁명은 성공한 것 같사옵니다.
환선길 이 나라 군부의 중심인 우리 기장들이 일어난 것이외다. 누가 다시 또 불만을 가질 수 있단 말입니까?
김락 그렇습니다. 문제는 이 황도 주변이 아니라 각 전선에 나가 있는 군대와 먼 지방의 호족들이옵니다. 그들이 곧 오늘의 일을 알고 동요할까 걱정되옵니다.
염상 사실이옵니다. 지난 폐주 때와 같이 내군의 임무를 누군가 시급히 맡아 모든 정보와 첩보를 관장해야 하옵니다.
능산 소장이 보기로는 그 임무는 복지겸 장군께서 맡으셨으면 하옵니다. 모든 것이 용의주도하시고 생각이 깊으신 분이시옵니다.
왕건 옳은 말일세. 복장군, 새로운 내군을 맡아 주시오.
염상 충분히 대임을 수행할만한 분이시옵니다. 소장도 그리 청하고 싶사옵니다.
복지겸 황공하옵니다, 시중어른. 일단 시국이 불안하니 소장이 내군의 직무를 맡겠사옵니다.
그때, 문쪽이 소란스러우며 배현경이 보낸 부장 둘이 들어와 군례를 올린다.
왕건 무슨 일인가? 그대들은 배장군의 수하부장들이 아닌가?
부장 예, 시중어른. 지금 명성산 기슭에 폐주가 포위되어 있사옵니다.
왕건 폐주가..? 명성산에 말인가?
부장 예, 시중어른.
능산 (기뻐하며) 그예 폐주를 잡은 것 같사옵니다, 주군.
김락 속히 붙들어와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왕건 (사이) 아닐세. 내가 갈 것이야.
모두 놀란다. 복지겸이 만류한다.
복지겸 이미 장군들이 나가 있사옵니다. 시중어른께서 손수 가실 필요야 없지 않겠사옵니까?
왕건 그렇지가 않소이다. 그래도 이 사람이 모셨던 주인이셨소이다. 전후사정을 전하고 그에 따른 예우를 함이 마땅할 것이올시다.
태평 주군, 이미 페주이옵니다. 황제가 아니옵니다.
왕건 그렇다 하더라도 이 일은 내가 가보아야할 일이야. 능산이?
능산 예, 주군.
왕건 준비하라. 내가 갈 것이니라.
능산 예, 주군.
씬 명성산 계곡(부감)
배현경과 홍유가 수많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산계곡 중턱을 보고 있다. 거기 멀리 군사들이 있는 것이 보인다.
홍유 우리가 가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옳지 않겠소이까? 이미 은부의 내군은 대부분 도망치거나 투항하여 지리멸렬이올시다.
배현경 나도 압니다. 그러나, 시중어른께서 내리신 영이 있지 않소이까? 폐주의 목숨은 보존하라 하셨습니다. 전령을 띄웠으니, 곧 무슨 조치가 있으실 겝니다. 허허허, 대 미륵의 운명이 저 명성산에서 끝날 모양이외다.
배현경도 씁쓸한 듯 그렇게 중얼거리며 산쪽을 본다.
씬 그 명성산 계곡
산 아래로 배현경과 홍유의 군사들이 보인다. 끝도 없이 군사들이 늘어서 있다. 그리고, 기치창검이 번뜩인다. 궁예와 은부와 금대가 보고 있다. 군사라고는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은부 망극하옵니다, 폐하. 이 산으로 해서는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다하옵니다.
궁예 허허허, 이미 궁을 나올 때부터 갈 길이 없었네. 저 밑에 와 있는 장수들은 배현경과 홍유라 하였던가?
은부 예, 폐하.
궁예 지금쯤 내 사형인 내원도 아마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일세.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기에 우릴 따르지 않은 것이야.
궁예는 담담히 중얼거리며 그렇게 한동안 산밑을 본다. 바람소리가 계속해 들려와 침묵을 깨우고 있다. 아주 오랫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궁예 나는 일찍부터 세상사가 부질없고 허망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몸부림쳤지. 허망하지 않은 세월을 살고 싶어서 말이야. 나는 뭔가를 남기고 싶었어. 궁예라는 이름이 결국은 만인이 추앙하는 대 역사를 만들었다는 말을 듣고 싶었어. 그래서, 후세 사람들 기억 속에 영원히 살고 싶었지. (하늘 보며) 참으로 오늘따라 햇살이 맑고 좋구먼 그래. 아주 좋은 날이야.
궁예가 그렇게 서서 다시 산 아래를 보고 있다. 그런 그의 표정에서...
씬 길
왕건과 제장들이 함께 가고 있다.
능산 이제 다 와가옵니다. 저 쪽이 명성산이옵니다.
복지겸 해가 벌써 중천이옵니다. 오늘 중으로 모든 것을 끝내셔야 하옵니다, 시중어른. 그러나, 너무 깊은 인정은 베풀지 마시오소서.
왕건 .........
씬 그 곳 산 밑
홍유와 배현경들이 여전히 보고 있다. 불어오는 바람들이 수많은 깃발들을 휘날리고 있다. 군사들은 질서정연하게 그렇게 대기해있다.
씬 그 계곡
바람 소리가 계곡을 쓸어가고 있다. 궁예는 여전히 산밑을 보고 있다. 그리고, 하늘을 본다. 이미 해가 많이 기울고 있다.
금대 (눈치를 보다가) 해가 지고 나면 저들이 공격해올 것이옵니다.
은부 아니야. 공격을 하려면 벌써 했을 것이야. 저들이 저러고 있는 것은 왕건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야.
궁예 ............
은부 폐하, 날이 저물면 혹시 기회가 다시 있을 지도 모르옵니다. 아직 희망을 버리지는 마시오소서. 변복을 하고 이곳을 빠져나갈 수도 있사옵니다.
궁예 부질없는 소리... 이미 다 끝이 난 것일세. 내가 이러고 있는 것은 마지막으로 왕건 아우를 보기 위해서 일세.
은부 (울음처럼) 폐하....?
궁예 내군장군 은부 답지 않군 그래. 울음을 그치게. (사이) 음... 저기 일단의 군사들이 보이네 그려. 왕건아우가 아닌가?
지금 궁예가 가리키는 먼 산길로 일단의 군사들이 오고 있다. 그들의 그 시야에서...
씬 그 길
왕건일행들이 들어서고 있다. 군사들이 군례를 올리며 맞고 있다. 배현경, 홍유가 역시 군례를 올리며 다가오는 왕건을 맞는다.
왕건 고생하시었소, 두 장군.
두사람 예, 시중어른. 바로 저기이옵니다. 저기 폐주와 내군장군 은부가 있사옵니다. 목숨을 거두지 마시라 하셨기에 영을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왕건은 그 계곡을 본다. 그 중턱에 여전히 궁예와 그 군사들이 있는 것이 보인다. 왕건은 한참을 보다가 말한다.
왕건 내가 온 것을 알리고 목숨을 보존해 줄 것이니, 산을 내려 오라 하오.
배현경 예, 시중어른. (큰 소리로) 폐주는 들으시오. 여기 시중어른께서 오셨소이다.
씬 그 곳 계곡
궁예들이 보고 있다. 배현경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배현경 시중어른께서는 폐주의 목숨을 보존해주신다 하시오. 속히 산을 내려오시오. 어서, 내려오시오.
궁예가 웃고 있다. 은부과 금대들이 눈치를 보고 있다.
은부 폐하, 왕건이 저기 와 있사옵니다.
궁예 ..........보고 있네. 우리를 살려 준다 하는군. 글쎄.... 어쩌면 모르지. 옛정을 생각해서 살려줄지도 말이야.
은부 그렇지 않을 것이옵니다. 반드시 죽일 것이옵니다.
궁예 하하하, 이미 죽고 아니 죽고가 우리와 무슨 상관인가? 보고 싶은 아우가 왔으니 만나야하지 않겠는가?
궁예가 그렇게 말하는데, 이번에는 왕건이 직접 소리치고 있다.
왕건 폐하, 왕건이옵니다. 아우가 왔사옵니다.
씬 왕건이 있는 곳
왕건 (계속) 아우이옵니다. 아우가 여기 온 것은 형님을 뫼시고자 함이옵니다. 아우의 말을 믿으시오소서.
모두들 ...............?
씬 다시 궁예가 있는 곳
왕건 폐하, 아우가 뫼시겠사옵니다. 안심하시오소서.
그러나, 궁예는 아무 대답이 없다. 왕건 쪽에서도 더 이상 말이 없다. 바람소리만 그렇게 극성스럽게 오고 간다. 얼마나 그렇게 침묵이 이어졌을까, 궁예는 나지막하게 은부를 부른다.
궁예 이보게, 은부?
은부 예, 폐하.
궁예 모름지기 사내란 오고감이 깨끗하고 분명해야 하네. 내 어검이 거기 있을 것이네.
은부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폐하?
궁예 그 검을 자네가 잠시 맡게. 그리고, 때가 되거든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자네가 알 것이야.
은부 (울며) 폐하....?
궁예 자네의 마지막 소임이야. 그 어검을 맡게.
은부 예, 폐하. 어찌 영을 거역하오리까? 그리 뫼시겠나이다, 폐하....
은부는 울며 군사 하나가 보관하던 어검을 주자 받는다. 모두들 숙연하다. 은부는 눈물을 참으며 금대를 본다.
은부 금대부장은 폐하의 말씀을 들었을 것이다. 그대 또한 나를 어찌 해야 하는 지 알 것이야.
금대 예, 장군.
금대는 모든 것을 각오한 듯 그렇게 군례를 드린다. 궁예가 좌정하며 자리에 앉는다. 마치 탁자처럼 된 돌 한켠에 앉는다.
궁예 술 한 잔 하고 싶네. 왕건아우를 부르게.
은부 예, 폐하. 금대부장은 전령을 띄우라. 왕시중을 직접 오라 하라.
금대 예, 장군. (군사들에게) 뭣들 하는가? 폐하의 영이시다. 가서 왕시중을 이리 오라 하라.
부장 둘이 대답과 함께 군례를 올리며 돌아서 말에 오른다. 궁예가 보고 있다. 전령이 그렇게 왕건 쪽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 모습을 아득히 보며 궁예는 생각에 잠긴다.
씬 왕건이 있는 곳
저만큼 계곡에서 두 필의 말이 달려오고 있다. 모두들 긴장하여 본다. 그들은 곧 가까이 다가와 말에서 내려 왕건에게 군례를 드린다.
왕건 폐하께서 보내셨는가?
전령 예, 시중어른. 폐하께오서는 시중어른께서 직접 오시기를 바라고 계시옵니다.
제장들 ................?
복지겸 이미 대세가 기울었는데 어찌 죄인이 직접 오지 않고, 시중께서 오시기를 바라는가?
왕건 아닐세. 내가 갈 것이야. 곧 갈 것이니, 가서 그리 전해 올려라.
전령들로 온 부장들이 대답하며 다시 말에 올라 달려간다.
능산 이미 저들은 죄인이옵니다. 저곳까지 몸소 가신다는 것은 지나친 호의를 보이시는 것이옵니다.
왕건 이미 내가 간다고 하였네. 자, 준비들 하세. 가서 폐주를 뵈어야겠네. 어서...!
능산 예, 주군.
복지겸 저희들도 따르겠사옵니다. 말을 준비하라.
왕건이 앞서고, 능산, 태평, 복지겸, 배현경, 홍유가 따른다. (이 외에 사람들은 모두 궁에 있다)
씬 37 궁예가 있는 곳
멀리서 왕건들이 오고 있는 것이 보며, 궁예는 중얼거린다. 이미 돌 위에 술병이 마련되어 있고, 잔이 두 개 놓여 있다. 궁예 뒤에 은부가 보검을 들고 서 있고, 그 뒤로 금대가 있다.
궁예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었어. 인생이 찰나와 같은 줄 알면서도 왜 그리 욕심을 부렸을꼬? 허허허, 이렇게 덧없이 가는 것을..... 이렇게 가는 것을....
궁예가 처연하게 웃고 있다. 카메라 그 눈으로 다가가면 궁예의 과거가 파노라마가 되어 출렁거린다. 불바다 속에 어린 궁예를 안고 달리는 유모와 눈바람 속을 헤매는 어린 궁예와 유모....그리고, 삭발하며 울던 어린 궁예와 가득한 그 불경 소리..... 그리고 세월이 지나 종간이 무릎을 꿇던 그 모습과 도선대사가 꾸짖던 모습도 지나친다. 소년 왕건을 만나며 흐뭇해하던 그 배 위에서의 모습도 지나치고, 미륵으로써 백성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던 그 시절이 디졸브브 되면서 송악에서 황제의 옷을 입고 황궁으로 들던 그 화려한 모습과 함께 국혼을 치루던 연화의 모습이 다가오는 듯 하더니, 이윽고 궁예에게 죽음을 당하던 많은 이들의 모습이 차례로 스쳐간다. 그리고, 또 연화의 모습이 살아 오르며 그 날카로운 독설....그와 함께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도망치던 태자들의 소리가 그대로 에코로 살아 오르면서 그들에게 내려치던 그 철퇴와 비명소리에서 눈을 번쩍 뜨는 궁예..... 현실이 된다. 궁예는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본본다. 저만큼 왕건들이 가까이 이르러 말에서 내리고 있다. 그리고, 천천히 다가온다. 은부와 금대들이 바짝 긴장하며 궁예 뒤로 선다. 왕건은 그렇게 궁예와 마주 선다. 어느새 노을 빛이 산기슭을 감싸고 있다.
궁예 아우가 왔는가?
왕건 예, 형님.
궁예 마지막 가는 길에 우리 형제가 술 한잔 없을 수가 있는가? 그래서, 좀 오시라 하였네.
왕건 폐하, 이 아우가 오늘 어쩔 수 없이 이런 모습으로 형님폐하를 뵙게 되었사옵니다. 용서하시오소서.
모두들 ............(그 면면들이 지나친다)
왕건 아우가 맹세하오리다. 함께 가시오소서. 편히 쉬실 곳을 마련해드리겠사옵니다.
궁예 정말 편히 쉬는 방법은 눈을 감는 것일세. (술을 따르며) 자, 이리 오시게. 이 형과 한 잔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왕건이 보다가 마주 앉는다. 궁예가 술을 권한다.
궁예 오늘 따라 저녁 노을이 피빛처럼 아름답네 그려. 가기는 참 좋은 날이야. 자, 들게.
왕건 (잔을 들며) 다시 한 번 말씀드리옵니다. 아우와 함께 가시오소서.
궁예 ......(사이) 그만 들게. 어서, 마시세.
배현경 시중어른, 술에 독이 있을 수도 있사옵니다.
모두들 ............?
궁예 마군장군 배현경이 아닌가? 경은 이 황제를 그렇게 밖에 보지 않았는가? 섭섭한 일이로다.
왕건 마시겠사옵니다. 드시오소서, 폐하.
궁예 고맙네.
두 사람 그렇게 잔을 든다. 모두들 초조해서 본다. 그리고, 둘은 술을 넘긴다. 그리고, 잔을 놓는다.
궁예 이보게, 아우.
왕건 예, 폐하.
궁예 대업을 이루시게. 내가 못 다한 북벌을 그대가 이루어야 할 것이야. 대 제국을 이루시게. 그 말을 하고 싶어 아우를 보자고 한 것이야.
왕건 (울음 참으며) 폐하...?
궁예 나는 일찍이 아우를 죽일 수 있었어. 허나, 그렇게 하지 않았어. 웬 줄 아는가? (사이) 아우가 이 형보다도 나았기 때문이야.
왕건 ...........
궁예 (미소 지으며) 부디 대업을 이루시게. 내가 못 다한 모든 것을 아우가 이루어야 할 것이야. 아우가 말이야.
왕건 폐하...? 형님폐하...?
궁예 은부장군은 뭘 하는가? 이제 그만 갈 때가 되지 않았는가?
은부 예, 폐하. 용서하시오소서.
무슨 일인가 하고 모두 보는데, 어느새 은부는 칼을 뺐다. 그리고, 눈 깜짝 할 사이에 궁예를 벤다. 그야말로 찰나이다. 제장들의 손이 모두 검을 잡는 사이, 또 다른 기압소리와 함께 금대가 은부를 베었다. 이 또한 놀랄 일이다. 모두들 보는데, 금대는 스스로 자신의 복부를 찔렀다. 베면서 동시에 자신을 찌른 것이다.
왕건 폐하, 형님폐하.......?
궁예 (아직은 그대로 앉아 웃으며) 아우, 부디 성군이 되시게. 성군이.....
궁예는 그렇게 미소 짓다가, 고개를 꺾는다. 왕건이 참지 못하고 흐느낀다.
왕건 폐하.........?
모두들 .................?
흐느끼는 그 표정에서, 카메라 팬하면서 부감으로 떠오르며 다시 궁예를 잡는다. 그리고, 해설이 이어진다.
해설 궁예, 신라 경문왕의 아들로 태어나 황실의 권력 다툼에서 화를 당하고 한쪽 눈을 잃은 채 유리걸식하다가 승려가 되었고 백성들의 인심을 얻어 황제에 오른 사람이다. 그는 처음에 그가 기반을 이룬 옛 고구려 지방의 호족들을 생각하여 국호를 고려라 하였으나, 곧 나라 이름을 대 동방국을 뜻하는 마진, 그리고 태봉이라 하였다. 후 삼국 중 유일하게 자주 통일을 외치며 외세와 손잡지 않았고 끝없이 북벌을 꿈꾸었음을 그의 행적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세월을 거듭하면서 그는 전제주의로 절대권력을 휘둘렀으며 스스로 미륵을 칭하고 미륵관심법이라는 전무후무한 독재 수단을 이용하며 자신의 꿈을 이루려 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 것이다. 고려사 실록에서는 그가 지금의 평강군인 옛 지명 부양현에서 혁명 이튿날 보리 이삭을 베어먹다가 백성들에게 맞아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만한 삶을 살아온 그가 어찌 보리 이삭을 베어먹다가 맞아 죽었을까? 역사의 기록을 승자의 입장에서 쓴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드라라마로써 다시 상상을 더 해 엮어 본 것이다. 아무튼 한 시대, 그 시대를 풍미했던 한 영웅의 기록은 이렇게 그 한 장이 마무리되었고, 그리고 새로운 역사가 다시 시작된다
. < 120회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