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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대본

[태조 왕건] 122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7.12.05|조회수2,445 목록 댓글 0

태조 왕건 <제 122회>

 

줄거리
 

명주에서 그예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한 왕건은  김순식 장군의 아버지인 허월 대사에게 전권대신의 소임을 주어 다시 한 번 명주에 다녀오도록 한다. 그러나, 명주의 여파는 실로 엄청났다. 임춘길이 또한 청주의 호족 선장 형제들과 함께 난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왕건은 반란의 그림자가 휩싸이고 있었다. 한편, 백제의 견훤은 왕건이 고려를 개창 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 사신을 보내기로 하는데.....
 



 

씬 철원 황궁 외경(낮)

 

씬 동 대전외경

 

장수장과 내군들이 경계를 서고 있다. 그 한쪽으로 환선길의 아우 향식이 내군들을 이끌고 지나쳐 가며 장수장과 묵례를 나눈다. 경계를 서는 중인 것이다.

 

왕건    (E) 무엇이라고?

 

씬 동 대전 안

 

왕건이 놀라서 최응과 태평에게 묻고 있다.

 

왕건    명주의 김순식 장군이 짐이 보낸 사자의 목을 베었어?

태평    예, 폐하. 이미 예측한 일이었사옵니다.

왕건    예측이라니? 누가 그런 예측을 했단 말인가? 어느 정도 불만이야 있을 수 있겠지만 짐이 보낸 사자의 목을 베?

최응    (서찰을 올리며) 여기 사자의 수급과 함께 글을 보내왔사옵니다. 참으로 오만하기가 그지없는 글이옵니다.

 

왕건이 그것을 받아 펼쳐 읽는다. 표정이 점점 굳어진다.

 

김순식  (E) 역적 왕건은 듣거라. 네 어찌 배은망덕하게도 너를 살펴주고 오늘까지 이끌어 준 주인을 배반하였는가? 그리고 불손하게도 네 스스로 황제를 칭하다니 하늘이 두렵지 않는가? 하물며 짐승도 자신을 살펴 준 주인을 위해서는 목숨을 다하거늘 폐하를 살해하고 옥좌를 찬탈한 죄는 도대체 어떻게 변명할 수 있겠는가? 나 명주 장군 김순식은 지난 날 폐하께 영토와 충성을 다 드리며 평생을 함께 가고자 맹세한 바 있노라. 오늘 들으니 역적 왕건이 참람하게도 대역을 범했다 하니, 내가 어찌 이 말을 듣고 명주에만 머물러 있을 수 있으랴, 곧 군사를 일으켜 반드시 응징하여 하늘에 벌을 대신하겠노라. 나의 손에 도륙되기 전에 스스로 머리를 풀고 무릎을 꿇어 죄를 청함이 어떠한가?

 

왕건이 읽기를 마치자 부들부들 떨며 서찰을 움켜쥔다. 그리고, 끓어오르는 노기를 참는다.

 

최응    신이 알기로는 김순식 장군은 그 넓은 명주 땅을 싸움 한 번 없이 송두리째 폐주에게 바친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 아니옵니까? 반발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옵니다.

태평    그러나 이러한 반발에 다른 호족들이 동조할까 두렵사옵니다. 이렇게 되면 국론이 분열되고 나라를 통치하시는 폐하의 위엄에 상당한 손상이 갈 것이옵니다.

최응    하오나, 폐하. 이미 폐하께서는 전권대신들을 보내시어 싸움보다는 타일러 위로하심을 국책으로 정하셨사옵니다. 초지일관하시어, 참고 또 참으시오소서.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볼 것이옵니다.

태평    그러나, 언제까지 좋은 웃음만 보이시다가는 허를 찔릴 수도 있사옵니다. 인정과 용서가 모두 다 좋은 것만은 아니옵니다.

왕건    (생각한다)..... 김순식이라는 사람은 나도 본 적이 있는데, 그 고집과 용맹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으로 알고 있네. 맞아, 저들과 싸우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야. 다시 전권대신을 보내도록 하게.

태평    처음 간 사자가 목이 잘려왔사옵니다. 누구를 또 보낼 수 있겠사옵니까?

최응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아주 좋은 분이 계시옵니다.

왕건    그건 무슨 소린가?

최응    김순식의 부친이 바로 허월대사가 아니시옵니까? 설마 그 자식이 아비의 목을 치기야 하겠사옵니까?  

왕건    (끄떡인다) 좋은 생각이기는 하네만은.... 허월대사께 그런 수고로움을 끼쳐서야 되겠는가?

최응    삼한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사무외대사와 더불어 오로지 폐하를 돕기 위해 황도에 오신 허월대사이시옵니다. 어찌 그만한 것을 수고로움이라 할 수 있겠사옵니까?

왕건    (끄떡이며) 일이 어려워지는 것 같구먼. 이건 아마 시작에 불과할 게야. 어디 김순식이 하나로 끝나겠는가?.....

 

왕건은 그렇게 우울하게 한숨을 쉰다. 그런 그의 표정에서...

 

씬 황궁 안 조당 어느 곳

 

김행선이 시중으로써 원로 회의를 주도하고 있다. 원극유, 박지윤, 박질, 유천궁, 유긍달, 오다련 들이다.

 

김행선  다들 들으셨을 겝니다. 명주 얘기 말입니다. 

모두들  ............

김행선  사자의 목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김순식이가 반란을 일으키겠다고 했다는 거예요.

박지윤  들었습니다. 예삿일이 아닙니다. 그 자는 옛 황제의 원수를 갚겠다는 것입니다. 듣기에 따라서는 그럴 듯한 말일 수도 있어요.

김행선  폐하의 새로운 제국이 문을 열자마자 이러한 벽에 부딪치다니요? 김순식이라면 예사로운 장수가 아니올시다.

박질    문제는 김순식이가 아니고 아직도 어느 길로 가야할까 하고 눈치를 보고 있는 많은 호족들이올시다. 저들이 힘을 함께 모은다면 엄청난 결과가 빚어질 것이올시다.

오다련  이미 나라가 바뀌었고 새로운 주인께서 앉으셨는데, 저들이 저렇게 오만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혼을 내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유긍달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혁신적인 정책들을 계속해 내놓고 계시옵니다. 백성들이 춤을 추고 좋아하는데 제놈들이 누구라고 건방을 떤단 말입니까?

유천궁  그렇지가 않아요. 우리 원로들은 모름지기 백성들의 편안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폐하의 뜻이고 말입니다. 이제 간신히 세금을 줄이고 노역과 군역을 면제하고 노비들을 풀어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있소이다. 백성들이 모처럼 한숨을 돌리려는 때에 다시 큰 전쟁을 일으킨다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올시다. 그것도 내란이 아닙니까? 아니되지요.

원극유  이 사람도 유대부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호족들 모두가 나서서 폐하의 일을 이해시키고 새로운 나라가 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천하에 납득시켜야 합니다.

박질    병부령의 말씀이 옳아요. 남에게 미룰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먼저 나서야 합니다. 가까운 호족들과 뜻이 통하는 호족들을 찾아서 나라를 안정시키는 일에 앞서야 할 것입니다.

박지윤  옳은 말씀이예요. 원로들이 나서주신다면 폐하의 걱정은 그만큼 줄어들 것입니다. 모두가 내일처럼 나서야 할 것이예요.       

김행선  새로운 조정의 시중을 맡고 보니 참으로 마음이 무겁습니다. 우선은 우리들이라도 앞서서 사람들을 모아보십시다. 거국적으로 나라 살리기에 앞서보자는 것입니다. 지금은 너와 나를 가릴 때가 아니올시다. 곧 조회가 열릴 것이니 그때 이 점을 단단히 알려야겠어요.

모두들  (끄떡인다).....

 

그들의 비장한 모습에서....

 

씬 내군 관아 안

 

복지겸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계속 한숨을 쉰다. 그리고 올라온 장계들을 본다. 장일과 입전이 보고 있다.

 

장일    왜 그러시옵니까, 장군?

복지겸  명주에서 사자가 목이 잘렸네. 김순식이는 노골적으로 반란을 통고 했어. 잘 못하면 이것은 전국으로 전염병처럼 번질 수도 있어. 지금 이 일 때문에 폐하께서도 걱정하고 계시고 광평성에서도 원로들이 모여서 논의 중일세.

그들    ...............

복지겸  그리고 첩자가 보내온 이 장계를 보게나. 청주 말이야. 우리의 염려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네. 그쪽의 호족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게야.
입전    많은 청주인들이 이곳 철원으로 온 이후 어느덧 지신들이 황도를 세웠다는 주인의식을 갖게 되었사옵니다. 허나, 지금은 나라 사정이 바뀌면서 상대적으로 허탈감을 느끼고 있사옵니다. 그것을 임춘길 같은 자들이 이용하고 있는 것이옵니다.

복지겸  (끄떡이며) 임춘길이의 수하들이 청주와 연결되고 있다 하였는가?

입전    예, 장군. 확실한 것은 드러나고 있지 않고 있사오나, 저들과 연계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옵니다.

복지겸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 같아. 나라 전체가 안정을 되찾으려면 말이야. 어쨌든 한 눈들을 팔지 말게. 우리들의 첩보가 지금은 나라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명심들 하게.   

장일    하옵고 장군, 우리 내군에 환장군의 아우를 배속시킨 것도 뭔가 안심이 안되옵니다. 어찌해서 그런 조치를 하셨사옵니까?

복지겸  도둑을 잡자면 먼저 그럴듯한 먹이를 주어야하네. 이름도 없었던 환장군의 아우를 내군에 배속한 것은 겉으로는 환장군을 예우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또 다른 면으로는 그 자를 통해 환장군 주변을 알아보자는 것이야. 그 일도 자네들이 잘 살펴야 할 일의 하나일 것이야.

두사람  예, 장군

 

씬 환선길의 집 외경

 

씬 동잡 사랑

 

환선길이 그의 동생 향식과 그의 처와 함께 있다.

 

향식    형님, 김순식이가 반기를 들었사옵니다.

환선길  이야기 들었네.

향식    형님께서 그 자의 향배가 나라에 치명적인 변수를 가져올 것이라고 하지 않았사옵니까?

환선길  그러게 말이야. 허지만, 그렇게 노골적으로 저항할 줄은 몰랐네. 앞으로 이 나라가 어찌 될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게 되었어.

향식    그렇사옵니다. 삼한통일은커녕 잘못하면 내란에 휩싸여서 제일 먼저 주저앉을 수도 있사옵니다.

환선길  그러게 말이야. 이거 참 앞으로 어찌 될 것인지 모르겠구먼....

환선길처        그것보다도 장군, 내 아우가 다시 상주로 돌아갔습니다. 아닌말로 장군의 처남입니다. 등극식에 얼굴을 내밀라 해놓고 그렇게 먼 오지변방으로 다시 보내야 옳겠사옵니까?

환선길  아, 그거야 병부와 순군부에서 하는 일이지....

향식    병부와 순군부가 다 무엇이옵니까? 결코 형님보다 높을 수 없사옵니다. 형님은 마군장군이시고 혁명의 주체이시옵니다.

환선길  그야 그렇지만....

환선길처        저들이 장군을 깔보고 있사옵니다. 왜 모르시옵니까? 저들이 이미 장군을 돌려놓는 일들을 겪고서도 아직도 모르시옵니까? 

환선길  허허, 부인은 참. 누가 나를 깔본단 말이오? 이 환선길이를 말이오?

환선길처        지금 돌아가는 것이 그렇지 않사옵니까? 내 아우도 장수들 중에서는 이름이 있사옵니다. 마군장군이고 말이옵니다. 장군께서 그런 큰  공을 세우셨는데, 다시 변방으로 내쫓다니요? 내 참....

환선길  ..........(그런 것도 같다)

향식    저는 계속해 불안하옵니다. 처음부터 저들은 형님을 돌려놓고 저희들끼리 거사를 의논했사옵니다. 형님이 참여하시게 된 것은 마지못해서이옵니다. 아니 그렇사옵니까?

환선길  ..............뭐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

향식    기회를 따져볼 필요가 있사옵니다. 잘못하면 형님께서 언젠가 불이익을 받으실 수도 있사옵니다. 뭔가 꼬투리를 잡자면 안잡힐 사람이 누가 있사옵니까?

환선길  .............

향식    겉으로 말은 안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수근거리고 있사옵니다. 반드시 임춘길이도 머지 않아 죄를 받을 것이라고 말이옵니다.

환선길  뭐 임춘길이는 그럴 수도 있겠지.

환선길처        장군도 예외가 아니옵니다. 폐주의 은혜를 얼마나 많이 받았사옵니까? 그러니까 이번 거사에서도 돌려놓으려다가 마지못해 장군의 힘이 무서워서 참여시킨 것이 아니옵니까? 경계를 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누구를 믿사옵니까? 아차 하면 이미 죽은 목숨이 됩니다.

환선길  ................

 

씬 임춘길의 집 외경

 

씬 동 집 사랑

 

도우와 임춘길이 함께 해 있다. 부장1이 함께 있다.

 

도우    김순식이가 반기를 들었다는 것은 왕건이가 황제가 된 뒤에 첫 번째로 일어난 가장 큰 반발이옵니다.

임춘길  사실이오. 모두들 그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것 같소이다.

도우    수많은 전권대신들이 황제의 친서를 품에 넣고 여러 고을로 떠났다 들었사옵니다. 허지만, 어려울 것이옵니다. 어쨌든 군사를 일으켜서 옥좌를 찬탈했다는 것은 분명하옵니다.

임춘길  그건 그렇지요.

도우    준비를 하시오소서. 결코 오래 못가옵니다. 청주에서 군사들이 올라오고 또한 명주에서 김순식이가 올라오면 이 나라는 그야말로 사분오열되어 찢어질 것이옵니다. 장군께서는 그때 큰 기회를 잡으실 수 있사옵니다.

임춘길  그러나 지금 황제의 주변에는 이 나라에 한다하는 장수들이 모두다 충성을 맹세하고 있소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예요.

도우    그 장수들이라고 해야 황도 안에 모여 있는 몇몇에 불과하옵니다. 장군께서도 분명 잘하시면 황제에 오르실 수 있사옵니다. 그리고, 지금이 그 적기이옵니다.

임춘길  (솔깃하다) 허허허, 황제라...황제라...?

도우    그렇사옵니다. 분명 황제가 되실 수 있사옵니다. 사실 황제의 자리가 무엇이옵니까? 누구든 먼저 기회를 잘 잡는 자가 주인이 되는 것이옵니다. 지난 번 폐주도 미천한 승려에서 황제가 되었고, 왕건이도 송악의 장사꾼이었사옵니다.

임춘길  (한참 고민한다) 뭐, 하긴 그렇지요. 아무튼 대사의 말씀이 구구절절이 고맙소이다. 그러나, 아직 그런 말이 나오기에는 좀 이른 것 같소이다. 기회를 보십시다. (사이) 곧 조당에서 조회가 있다 하니 가봐야겠소이다. 가서 조정이 돌아가는 것도 좀 봐야할 것 같고, 주변 눈치를 좀 보십시다.

도우    소승의 말을 잊지마시오소서. 기회는 자주 오는 것이 아니옵니다.

 

임춘길이는 흔들린다. 계속 마른침을 삼키고 있다. 그의 표정에서...

 

씬 조당 외경

 

씬 동 안

 

시중 김행선과 더불어 문무신료들이 모두 모여 있다. 왕건은 없다. 복지겸과 내군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모여 있다.

 

김행선  여러 대소 신료들께서도 아시겠지만 폐하께서 즉위하신 지 얼마 아니되어 아직 인심이 제대로 잡히지를 못했소이다. 명주의 일은 그 중 가장 큰 걱정거리로 눈앞에 와 있어요.

능산    그 자는 일찍부터 폐주와 가까웠습니다. 이미 예상한 일이니 우리가 서둘러 군사를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환선길,임춘길   ............(긴장한다)

홍유    제 아무리 명주가 큰 땅이라 한들 우리가 힘을 합치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김행선  허나, 폐하께서는 되도록 군사를 동원하는 것을 자제하시라 하셨습니다. 일단 그곳은 좀 더 지켜보기로 하고 앞으로 백제와 신라에 관한 전선을 어떻게 유지하는가가 또한 당면한 문제올시다.

태평    그 일은 병부와 순군부에서 폐하의 영을 받았사옵니다.

김행선  그렇다면, 태평낭중이 그 영을 전해주시구료.

태평    예, 시중어른. (사이, 서류 보며) 살펴보건데 가장 큰 전선은 역시 상주라는 결론이 내려졌사옵니다. 그곳에 장수를 바꾸어 박술희 장군이 소임을 맡아 갈 것이옵니다.

박술희  ..............(고개를 끄떡이며 인사한다)

환선길  그곳은 이미 내 처남이 가 있는 곳이올시다. 굳이 장수를 바꾼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내 처남은 어찌 되는 것이오이까? 허허, 이 황도로 돌아오는 모양이구료. 암, 진작 그렇게 했어야지.

원극유  아니올시다, 환장군. 이흔암 장군은 웅주로 가게 될 것이외다. 그곳이 백제와의 접경지대이기 때문에 노련한 장군이 필요해요.

환선길  뭐요? 아니, 여태 외지에서 고생을 그만큼 하였으면 됐지. 상주보다도 더 험한 곳으로 보낸단 말입니까?

원극유  군인이란 늘 그런 것이 아니겠소이까, 환장군? 허허허...

환선길  아, 그래도 그렇지요....상주에 가 있는 것도 뭣한데, 다시 웅주로 가라? 어허, 이거 나 원.....

 

환선길은 노골적으로 불쾌하고 모든 이들의 시선이 굳어지며 그런 환선길을 본다. 김행선이 분위기를 풀려는 듯 웃으며 말한다.

 

김행선  허허허, 환장군. 그게 다 이흔암 장군이 믿음직스러워서 그런 것이올시다. 그렇게 생각하십시다.

환선길  ..........(여전히 불쾌하다)

김행선  그리고, 우리가 국호를 고려로 택한 것은 옛 고구려의 영토를 회복하자는데 그 깊은 뜻이 있소이다. 병부경 왕식렴공은 지난 날 북벌을 다녀온 경험이 있으니 다시 그쪽으로 가서 인심을 살펴주셨으면 합니다.

왕식렴  알겠사옵니다.

배현경  기왕이면 저희들도 전선으로 보내주셨으면 하옵니다. 이제 저희 장수들이 황도에서 할 일이란 없는 것 같사옵니다.

홍유    그렇사옵니다. 전선으로 보내주시오소서.

염상    마땅하고 옳은 일이옵니다. 장수들은 전선으로 가야 하옵니다. 소장은 왕식렴공과 함께 북으로 가고 싶사옵니다. 삼가 허락을
 청하옵니다.
환선길  ................(기분 나빠 주변을 본다)

원극유  고맙소이다. 그렇게 자원들을 하시니, 폐하께 재가를 받아 보리리다.

김행선  그리고, 폐하께오서는 국가의 살림을 튼튼히 하시고자 바다 밖의 나라들과 관무역을 크게 넓히라 하셨소이다. 이 부분은 왕신공이 맡으시고 나라재정을 맡고 있는 박수문, 박수경 공이 돕도록 하시구료.

그들    예, 시중어른.

박지윤  옛부터 패서인들은 장사에 밝고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했었소이다. 폐하께서 그 점을 짚으신 것은 참으로 깊은 생각 끝에 내리신 영 같소이다. 특히나 중원에 흩어져있는 재당신라인들을 환국시키는 일은 제국의 장?를 위해 큰 도움이 될 것이올시다. 암요...

유천궁  폐하께서는 이 나라 종사를 위해 계속해 뜬눈으로 밤을 지세우고 계십니다. 우리 원로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나라가 바뀐 사정을 모르는 여러 호족들에게 스스로 전권대신이 되어 그간의 일을 이해시키고자 뜻을 모았소이다. 여러신료들도 마땅히 동참을 해야할 것이외다.

유긍달  그렇지 않고요. 나라 일을 내 일처럼 해야 비로소 모든 것이 안정될 것이외다.

다련군  신료들 모두가 폐하의 사절이 되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그럴 수만 있다면 어떻게 반역이 나올 수 있겠소이까? 아니 그렇습니까? 누가 감히 반역을 하고 대역을 할 수가 있겠어요? 누가요...?

 

모두들 끄떡인다. 임춘길이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김락    허허허, 임장군께서는 한마디도 말씀이 없으시구료. 아, 하실 말씀 있으면 하시구료. 나야 별로 할 말이 없으니 이러고 있지만 말이외다.

임춘길  소장이 딱히 할 말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김락    하긴 그러실 게요. 임장군이 뭐 할 말이 있겠소이까?

모두들  .............

환선길  ............

 

분위기가 묘해진다. 김행선이 다시 정리를 한다.

 

김행선  자, 자, 그만들 하십시다. 지금은 모두가 힘을 모을 때이올시다. 그것이 폐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일이십니다. 지난날은 다 잊으십시다. 오로지 좋은 일만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폐하께서 말씀을 하셨어요. 우리는 그 말씀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합니다.

 

씬 황궁 안 대전 복도

 

왕건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씬 동 안

 

사무외대사와 허월, 최응이 함께 모여 차를 마시고 있다.

 

왕건    대사님들을 뵈니 입적하신 형미대사님이 생각납니다. 참으로 모진 결단을 내리시고 안타깝게도 순교를 하셨습니다.

이엄    예, 가짜 미륵이 부처님의 백성들을 억압하니 스스로 한 몸을 던지시어 악의 근본을 자르고자 하신 것이옵니다.

여염    삶과 죽음은 본래 하나입니다. 뜻 있는 일을 하고 갈 수 있다면 그 얼마나 행복한 것이겠사옵니까? 허허허....

허월    아무튼 석총대사도 그러했고 형미대사도 그러하셨사옵니다. 모두들 대단한 분들이시옵니다.

 최응   허월대사님은 또한 어떠시옵니까? 그 동안 너무도 많은 일을 이 나라에 해주셨사옵니다.

허월    허허허, 내가 무슨.... 나는 그저 여전히 떠돌이 걸승이지.

왕건    어인 말씀이십니까? 대사님의 공은 참으로 큽니다.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최응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하께오서는 아드님의 문제로 심려가 아주 크시옵니다. 명주의 김순식장군 말이옵니다.

모두들  .......?

최응    대사님께서는 이토록 폐하와 백성들을 위해 열심이신데.... 참으로 명주의 일은 민망하옵니다.

허월    (갑자기 껄껄껄 웃는다) 자식이라 하지만 아비와 생각이 다르니 어찌하겠는가? 나는 이미 불제자가 되었고 저는 여전히
 명주에 주인이야.
이엄    하하하, 대사. 그러나 대사의 혈육이 모처럼 자리를 잡아가는 이 나라를 시끄럽게 한다면 그 얼마나 한스러운 일이겠소?

최응    그렇사옵니다. 명주의 일은 허월대사님께오서 좀 나서주시오소서.

허월    나도 내 아들놈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많았네. 본래 고집이 세고 유난히 의리를 찾는 놈이었지. 이번 일은 내가 한 번 가봄세.

왕건    고맙습니다, 대사.

허월    그 일이 잘 될지 잘못 될지는 빈도도 장담할 수가 없사옵니다. 워낙이 성정이 매운 아이가 되어 놔서....

 

그때, 새로운 대전내관의 아뢰는 소리가 들려온다.

 

대전내관        (E) 폐하, 대전내관이옵니다.

왕건    무슨 일인가? 들라.

 

대전내관이 들어와 예를 올리며 말한다.

 

대전내관        내군에서 사람이 왔사옵니다.

왕건    내군에서?

대전내관        예, 폐하. 지난 조정에 있다가 자취를 감추었던 학사 박유라는 사람이 폐하를 알현코자 왔다 하옵니다.

 

그러자, 모두 놀란다.

 

왕건    박유...? 그 박학사가 왔단 말이냐? 그 사람이 왔어?

허월    허허, 이제 올바른 주인이 자리를 잡으니 봉황이 날아드는가 보옵니다. 허허허....

최응    폐하, 박학사는 세상 모두가 존경하는 대 학자이옵니다.

왕건    옳은 말이야. 이럴 게 아니라 내가 나아가 맞아야지. 아니, 아니야. 그 분은 본래 황궁 안에 모든 교육을 맡기도 하였지. 내관은 들어라.

대전내관        예, 폐하.

왕건    가서 황후와 부인들과 태자를 속히 오라 하라. 큰 스승께서 오셨느니라. 

 

대전내관이 대답하며 나가고, 왕건이 급히 일어선다. 대사들이 미소를 짓는다. 그런 그들의 표정에서....

 

씬 동 대전 앞 마당

 

박유가 왕건에게 인사를 드린다. 대사들과 최응이 보고 있다. 황후 유씨와 오씨, 수인, 태자 무가 함께 예를 받고 있다.

 

박유    폐하, 신 박유 그 동안 산천을 떠돌다가 폐하께서 새 나라를 여심을 들었사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왕건    오오, 박학사, 대체 이것이 얼마만입니까? 이보시오 황후, 인사 드리시오. 박유 선생이시오.

유씨    대명은 오래 전부터 듣고 있었사옵니다. 이렇게 뵈오니 하늘의 도우심이옵니다.

박유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듣자옵기 민망하옵니다, 항후마마

오씨    박학사께서는 일찍이 지난날에도 황궁에서 태자들의 교육을 맡으셨다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도아주십시오.

왕건    태자야 무얼 하느냐, 어서 절을 올리지 않고.....

무      예, 아바마마. (꿇어 절을 올린다) 학사 어른 절 받으시오서.

박유    (황급히 맞절을 하며) 태자마마 어인 절이시옵니까, 뫼시기 민망하옵니다.

허월    허허허, 민망할 것이 무엇이란 말씀이오, 비록 태자마마이시라해도 스승과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오이까?

대사들  .....(웃으며 끄덕인다)

최응    그렇사옵니다. 박학사께서 와 주시었으니 앞으로 이 나라의 학문에 큰 서광이 비칠 것이옵니다.

박유    ..............................

해설    박유, 당대의 큰 학자였다. 일찍이 궁예 밑에서 태자들의 교육을 맡았다가 궁예의 폭정이 심해지자 스스로 몸을 숨겼던 사람이다. 왕건이 즉위를 하자 그 모습을 들어내니 그렇지 않아도 세상 인심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왕건으로서는 이만한 기쁨이 없었다. 왕건은 곧 그에게 왕씨 성을 하사하고 후이 대접하여 태자들의 교육과 나라의 기밀 문서를 관장하는 중요한 소임을 부여한다.

 

씬  동 대전

 

왕건과 최응, 박유가 함께 있다.

 

왕건    그래 그 동안 어디에 계시었소이까?

박유    여러 산천을 전전하였사옵니다. 백두산과 금강산에도 있었고 치악산에서도 여러 철을 나다가 이번에는 지리산과 남해안을 돌아보는 길에 폐하의 소식을 접하였사옵니다.

왕건    핫하하하.....그랬구료. 참으로 반갑고 또 반갑소이다.

박유    (작은 쌈지 하나를 내어놓는다) 폐하, 신이 올리는 예물이옵니다.

왕건    예물이라, 이것이 무엇이오?

박유    폐하께오서는 유난히 차를 즐기시는 것으로 아옵니다. 삼한 땅 곳곳에 차밭이 많사오나 신이 들어본 중에 백제땅 보성에서 느껴본 차 맛이 그중 향이 맑고 좋았던 것 같사옵니다. 이 차향처럼 맑고 깨끗한 치세를 길이길이 펴시어 역사에 남는 성군이 되시오소서.  

왕건    핫하하하하...고맙소이다. 하긴 새 조정을 열고 보니 어려운 일들이 한둘이 아니외다. 많은 호족들이 아직도 짐이 황제에 오른 내용을 자세히 모르고 있소이다. 안타까운 일이예요. 좋은 말씀을 많이 좀 들려주시구료.

박유    폐하, 신은 감히 아뢰고 싶은 것이 있사옵니다.

왕건    말씀하시구료

박유    일찍이 고대의 많은 역사를 보더라도 한 나라가 망하고 주인이 바뀌면 대부분 그 도읍을 옮겨 인심의 향배를 새로이 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있사옵니다. 이 철원을 버리시고 도읍을 옮기시오서.

최응    ....................?

왕건    아니, 박학사, 이제 겨우 새 조정의 질서를 바로 잡으려 하고 있는데 도읍을 옮기다니요? 지난 날 폐주가 왜 인심을 잃었습니까? 바로 무리하게 도읍을 옮겼기 때문에 비롯된 일이었어요.

박유    물론 그렇사옵니다. 그러나 그 때는 멀쩡한 황궁을 버리고 분수에 넘치는 공역을 하였기 때문에 그리 되었사옵니다. 허나 폐하께서는 이미 훌륭하게 마련되어 있는 황궁이 있질 않사옵니까?

왕건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박학사?

박유    송악에 있는 황궁을 잊으셨사옵니까?

왕건    ........(그제서야 뭔가를 깨닫는다)오오...과연......

최응    폐하, 박학사의 말씀이야말로 무명 속에서 등불을 보는 것 같사옵니다. 신도 미처 그것은 생각지 못했사옵니다. 바로 그것이옵니다. 이곳 철원은 이미 그 기가 쇠하고 백성들의 인심이 떠났사옵니다. 그리고 폐주가 세운 도읍이 아니옵니까? 송악은 폐하의 땅이옵고     폐하를 열렬히 지지하는 인심이 살아 있는 곳이옵니다. 또한 옛 황궁이 그대로 있사옵니다.

 

왕건도 이미 잠에서 깨어난 듯 웃고 있는 박유를 보고 있다. 세 사람의 눈빛이 그렇게 교차 된다.

 

박유    그렇사옵니다. 새로운 기운을 맞으시오소서. 서두르실 것은 없사오나 지금부터 준비는 하셔야 할 것이옵니다.

왕건    (끄떡이며) 좋은 말씀을 해주셨소이다. 헌데, 백제땅을 두로 돌아보셨다 했는데, 그쪽은 어떻소이까?

박유    의외로 견훤왕이라는 사람은 백성들을 잘 보살피고, 그 신료들을 굳게 장악하여 뛰어난 통치력을 보이고 있는 것을 보았사옵니다. 신료들의 체계가 확실하고 백성들 또한 그리 불만이 없어 보였사옵니다.

왕건    그래요? 나도 그 사람을 압니다. 뛰어난 호걸이지요. 언젠가는 분명 서로가 만나보게 될 것입니다.

       

씬 전주 백제 황궁  마당 일각

 

말을 탄 채 금강의 무예 연습이 한창이다. 무예사범들이 대적을 해주고 있다. 날카로운 공격과 수비가 계속 된다. 놀라운 기예를 금강은 거듭 선보이고 있다. 이른바 마상 무예이다. 말 위에 서서 달리고, 붙어서 달리고, 누워 달리며 검과 창과 활을 자유자재로 쓴다.(무술감독과 마상무예단 섭외, 공조) 신료들이 혀를 내두른다. 견훤과 더불어 박씨와 고비, 신검과 양검, 최승우와 능환, 박영규와 공직 신덕, 김총, 애술, 최필들이 보고 있다.

 

견훤    들 보게, 우리 금강이가 어느새 저렇게 컸어. 경들은 보고 있는가? 저 금강이가 지금 적진 속을 뚫고 들어가는 시범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야. (계속 신이 나며)  하하하, 어릴 때 나를 보는 것 같아. 아니 그런가 이찬?

능환    그렇사옵니다 폐하, 하오나 여기 계시는 두 분 태자마마들도 그 무예의 기량이 아주 뛰어나시옵니다. 폐하.

견훤    우리 태자들....?

신검, 양검      ..................(그저 죄스럽다)

 

견훤은 그냥 헛기침하며 입맛을 다신다. 그런 모습을 보다가 박씨가 토라지며 일어나 한마디하며 휑하니 가버린다.    

 

박씨    보령(나이)이 더해지시면서 폐하께서는 영락없이 상주의 아버님을 닮아가시옵니다. 왜 자식들을 그리 편애하시옵니까? 상주의 아버님이 지금 그래서 폐하와 틈이 갈라져 있지 않사옵니까? 하긴 부자간이신데 왜 아니 닮으시겠사옵니까?

고비    ....(어쩔 줄 모르고).....

박씨    자네는 좋겠구먼....자식이 저토록 제 형들의 칭찬까지 다 챙겨가니 얼마나 좋겠는가?

견훤    아니, 이보시오  황후? (하다가) 하여튼 저 성질 하구는...에잉......

 

금강이 와서 부복하자 또 입이 벌어진다.

 

견훤    오냐, 오냐 금강아, 참 잘 했다. 이 전국시대에는 오로지 힘, 힘뿐이다.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거라.

금강    예, 아바마마.

신검형제        .................................

견훤    자, 오늘은 짐이 한 상 내리다. 모두들 가십시다.

모두들  예, 폐하.  

견훤    (일어서 가며) 허허허, 파진찬?

최승우  예, 폐하.

견훤    우리 태자들이 이만한데 고려의 왕건이가 무슨 걱정이겠는가, 저들이 상주로 올 것 같다고 하였는가...허허허 올테면 오라고 하게. 얼마든지 오라고해. 그건 그렇고 참 , 이보게 파진찬,

최승우  예, 폐하

견훤    아무리 서로가 적이지만 그래도 사내들 사는 세상이야. 왕건이가 황제가 되었다는데 모르는 척 하는 것은 옹졸한 짓이야. 짐이 미처 그 걸 챙기지 못했어. 지금이라도 축하 사신을 보내게. 가서 대 백제국의 황제가 진심으로 축하를 한다고 전하게나, 앞으로 전장터에서 사내답게 서로 만나자고 말이야. 응, 핫하하하하하.. 그렇지 그래. 기왕에 상주이야기가 자꾸 나오고 있는데, 거기서 한 번 보자고 하면 어떻겠는가, 응? 하하하하....

 

씬 상주 사불성 외경

 

아자개의 신음소리가 들려 온다.

 

 씬 동 성안

 

의원이 아자개를 살펴보고 있다. 계모와 대주. 용개 형제가 보고 있다. 의원이 심각하게 고개를 젓는다.

 

아자개  아이고, 아이고....이보게 의원 어떤가, 여기 이렇게 손에 잡히는 이 혹이 무어야, 응?

의원    아무래도 육종 같사옵니다.

계모    내가 그렇다고 하지 않았사옵니까?

대주    그 병은 어떤 병이오?

의원    이 병은 정기가 부족한 사람이 과하게 정신적인 억압을 받는데서 생기는 것으로 결국은 그 화가 승하여 몸 안에 악성 종기가 생기는 것이옵니다. 한 번 발병을 하면 치료가 거의 어렵사옵니다.

계모    아이구, 나으리. 어렵다니요, 이건 또 무슨 말이옵니까?   

모두들  .....................?

아자개  그래, 그 동안 많은 돌팔이들이 왔다가 갔다마는 그중 네 놈이 제일 그럴 듯 하구나. 그래 그건 맞다. 늙은 내가 그동 안 얼마나 노심초사 정신적 충격이 많았느냐. 그래도 술희가 있었을 때는 이러지는 않았다.  아이고 이 아자개가 결국은 이렇게  죽는 모양이로구나.

용개    (의원에게) 그 병이 틀림없는가?

의원    예, 한다 하는 의원이라면 누구든 알 수 있는 병이옵니다. 아무리 길게 보아도 석달을 넘기시기는 어려울 것 같사옵니다. 연세도 있으시고 하시니...  그만.....

아자개  (벌떡 일어나며) 그만 뭐....? 포기하라 이말이냐? 그런 말이야?

의원    아, 아니옵니다. 그만 아시는 것이 좋으시겠다 이런 말씀이옵니다.

아자개  이런 죽일 놈을 보았는가, 뭐? 길게 보아도 뭐 몇 달? 석달....? 아이고...용개야 이놈 데려다가 목을 베어라, 아주 나를 보고 저주를 하는구나. 이놈이 저주를 해. 이놈이...?

대주    의원은 그만 물러가오.

의원    예......

 

의원이 급히 도망치듯 나간다. 아자개는 더욱 청승을 떨며 신음소리를 높힌다. 한숨을 지으며 대주가 밖으로 나간다. 계모도 초상이나 난듯 아이구 나으리를 연발 하고 있다.

 

씬 동 밖

 

대주가 생각에 잠겨 있는데 용개 형제가 나온다.

 

용개    어찌하면 좋으냐 대주야?

대주    지금까지 여러 의원이 다녀갔사옵니다. 그리고 비슷한 말들을 하옵니다.

용개    그러니 어찌해야 하는가 묻지 않느냐?

대주    저토록 중한 병이라면 견훤오라버님께 알려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보개    알려요? 알려서 어떻게 하게요?

대주    어쩌다니? 아버님이 잘못되시면 이 사불성도 오래 못 간다. 또한 부모가 아픈 것을 자식이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

용개    하지만 어머님이 반대를 하실 게다. 나도 탐탁지 않고....

대주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우리는 다 식구이옵니다. 병이 의외로 급하시니 당연히 알려야 합니다. 제가 사람을 보낼 것입니다. 이 일만은 막지마시오소서. 분명 말하지만 아버님이 잘못 되시면, 이 사불성은 금방 고려에 먹힐 것입니다.

용개형제        .......(답답하기만 하고)

 

씬 충주 관아 외경

 

씬  동 관아 안

 

이혼암이 칙서를 보다가 인상을 확 찌푸린다.

 

이혼암  이게 무슨 소리야, 나를 보고 박술희 장군에게 임무를 다 넘기고.....웅주로 가라? ... 웅주?

부장들  ...............?

이혼암  계속 변방으로만 돌릴 참이란 말인가..... 아니, 나도 마군 장군이야. 게다가 우리 매형이 혁명을 주도했어.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웅주로 가라, 웅주라......? 아니 여기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박술희를 보내면서 나를 내?아? 저 사불성에 노망든 늙은이 하나 뿐인데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씬 철원 황궁 외경

 

씬  동 대전 안

 

왕건이 박술희, 왕식렴, 최응과 태평과 함께 있다.

 

왕건    어려운 때에 막중한 임무들을 맡겨 원지로 보내게 되니, 참으로 마음이 아프네 그려.

박술희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폐하? 오히려 대임을 맡겨 주시니, 소제는 신이 나옵니다.

왕건    술희 아우는 상주로 떠나고 식렴아우는 평양으로 가네. 두 사람 다 그 소임이 참으로 커. 나를 대신하여 가는 것이니, 일들을 열심히 해주게나.

두사랍  예, 폐하.

왕건    식렴아우는 염상장군과 함께 간다고 하였던가?

왕식렴  예, 폐하.

왕건    암, 염상장군은 북쪽 사정에 아주 밝은 사람이지. 본향이 그쪽일 것이야 아마.

태평    그렇사옵니다, 폐하.

왕건    사사로이는 두 사람 모두 내 아우들일세. 아무쪼록 몸조심들 하게.

박술희  황은이 하해와 같사옵니다. 신이 황궁으로 오다보니, 창부 관아 앞에 백성들이 많이 몰려있었사옵니다. 사연을 들으니, 하나같이 폐하의 은혜를 받은 백성들이라 하였사옵니다. 하온데, 무엇을 걱정하시옵니까? 호족들의 불만은 시간이 가면 가라앉을 것이옵니다. 너무 심려치 마시오소서, 폐하.

왕건    고맙네, 술희 아우. 상주는 자네에게 달렸어. 잘해주게나.

박술희  예, 폐하. 그곳에서도 폐하의 대명을 백성들이 우러러 칭송하도록 신이 기필코 만들어놓겠사옵니다.

왕건    고맙네. 고맙네, 아우. 하하하....잘들 다녀오게나.

두사람  예, 폐하.

 

씬  창부 관아 앞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관리들이 그들을 물리치느라 애를 먹고 있다.

 

관리    아, 차례들을 지키시오, 차례를 지켜요.

백성1   이 예물을 가지고 몇 백리 길을 왔소이다. 이것은 호피요. 폐하게 좀 전해주시오.

백성2   폐하께서는 노비 신분인 우리를 풀어주셨소이다. 이 은혜를 무엇으로 다 갚겠소이까? 이걸 받아 주시오. 내가 직접 딴 꿀이외다.

백성3   이건 어렵게 구한 사향이요, 폐하께 올려 주시오.

관리    어허, 폐하께서는 이런 것들을 받지 않으시오. 돌아들 가시오.

 

        관리들과 백성들이 실랑이를 벌리는데 마침 박수경 형제가 들어서다가 묻는다.

 

박수경  어허, 왜 이리 소란들인가?

관리1   폐하의 은혜를 입은 백성들이옵니다. 모두들 예물을 드리겠다고 이 난리들이옵니다.

박수경  허허....이런, 폐하께서 백성들의 것을 받으시겠느냐, 모두들 어서 돌려보내라.

 

이들 형제는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문가에 놓인 작은 비단 보따리를 본다.

 

박수경  아니, 이것은 무엇이냐?

관리1   글세 올사옵니다. 소인들이 일절 받지를 않다보니 누군가가 말없이 두고 간 것 같사옵니다.

박수문  이런, 쯧쯔쯔...... 형님, 이렇게 갸륵한 백성들의 뜻을 어찌 물리치기만 할 수 있겠사옵니까? 그것은 보아하니 비단으로 싼 것이 매우 귀한 물건 같구나, 일단은 안으로 들여라.

관리1   예, 나으리.

 

이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간다.

 

씬 동 관아 안

 

박수경은 서무를 보고 있고 박수문이 중얼거리며 보따리를 푼다.

 

박수문  참, 백성들이란 이렇게 단순하옵니다. 호족들은 제 땅을 잃을까봐 불평이나 하면서 엉뚱한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뭐라도 그저 드릴려고 몰려오니 말이옵니다.

박수경  허허, 그것은 왜 푸는가? 주인에게 돌려주어야지.

박수문  허허, 참 형님두...돌려 받을 것이라면 그렇게 몰래 두고 가겠사옵니까? 어디 뭔지 보기나 하십시다.(다 풀고 보다가 깜짝 놀란다) 아니, 이런.....형님?

박수경  왜 그러는가 아우?

박수문  이게 무엇이옵니까? 삼.....산삼이 아니옵니까?

 

그제서야 박수경도 놀라며 본다. 엄청나게 큰 산삼이다. 그 뿌리의 잔털이 수염처럼 늘어져 있다.

 

박수경  맞아, 산삼일세. 그 동안 여러 번 산삼을 보긴 했지만 이렇게 큰 것은 처음일세. 허허....이런? 이것은 폐하께 아뢰어야 하지 않겠는가?

박수문  그렇게 하시지요, 형님. 그렇지 않아도 요즘 폐하께오서 여러 가지로 근심이 많으시다 들었사옵니다. 이렇게 상서로운 것을 올린다면 그나마 잠시 시름을 더시지 않겠사옵니까?

박수경  그러게 말일세. 지방 호족들의 조짐이 여러 곳에서 걱정스럽다 들었네. 한 두 곳이 아닌 모양이야.

 

씬 어느 길

 

전령기를 꽂은 군사 둘이 말을 몰아 달려오고 있다. 그들은 급히 카메라 앞을 스쳐 멀리 사라진다.

 

씬 황궁 외경

 

씬  동 황궁 황후전

 

유씨가 여전히 더부룩한 듯 트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 거린다. 보다가 민상궁이 말한다.

 

민상궁  황후마마, 아무래도 탕재를 올려야 할 것 같사옵니다. 벌서 이러하신지 여러 날이 아니옵니까?

유씨    아니다, 한동안 긴장을 해서 그럴 게야.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을 것이야.

민상궁  병은 널리 자랑하라 하였사옵니다. 자꾸 감추시면 오히려 일을 크게 만드실 수 있사옵니다.

유씨    호호호, 알았네. 내일도 이러하면 약을 써 보세나.

 

씬 오씨의 처소

 

오씨와 무, 그리고 다련군이 함께 해 있다.

 

오씨    그래도 박유라는 훌륭한 학인이 우리 태자의 스승이 되어서 천만 대행입니다 아버님.

다련군  예, 그 사람은 이 고려는 물론이고 삼한이 다 아는 대 학자이지요. 참으로 잘 되었사옵니다 마마.

오씨    (한숨) 사가에서는 몰랐는데 이 황궁으로 들어오고 보니 답답한 것이 많습니다. 정주형님은 황후가 되셨는데 태자까지 낳은 나는 여전히 나주부인입니다.

다련군  허허허, 그래도 모두 황후마마로 다름없이 뫼시며 존경하옵니다. 그리고 마마로 불리시옵니다. 섭섭히 생각 마시오소서.        

오씨    (한숨) 그렇기는 하지마는..... 하지만 아버님, 만약에 형님께서 태자를  늦게라도 생산하시면 우리는 어찌 되옵니까? 다음 보위는 어림도 없는 것이 아니옵니까?

다련군  허허, 마마...(주변 살피며) ...그런 말씀을 하셔서는 아니되옵니다. 아직은 보위를 운운할 때가 아니옵니다. 지난 날 폐주가 황후를 사단 낸 것도 다 그 보위를 운운한 때문이옵니다.

오씨    하지만 사실이 그렇지 않사옵니까?

다련군  황후마마는 몸이 약하시어 이미 생산을 하시는 것과는 거리가 머옵니다. 오히려 그런 생각이 있으시다면 충주부인을 잘 경계하셔야 할 것이옵니다.

오씨    호호호, 그 아우는 어차피 제 서열 아래이옵니다.  그야말로 걱정할 게 무엇이옵니까? 물론 당찬 구석이 있기는 하옵니다만.....

다련군  그 집안도 다 생각이 있어서 폐하를 억지 사위로 삼은 것이옵니다. 경계는 풀지 마시오소서.

오씨    .................?

 

씬  수인의 처소

 

수인이 수를 놓으며 유긍달을 보고 있다.

 

유긍달  광평성 원로들과 모임을 갖기로 왔다가 잠시 들렸사옵니다 마마. 마침 나주의 대부 다련군도 나주부인마마를 뵌다하기에.....허허허, 그래 궁궐 생활은 할만 하시옵니까?

수인    예, 아버님.

유긍달  그래도 여유가 있어 보이시니 안심이옵니다. 그것은 무슨 수를 뜨시는 것이옵니까?

수인    폐하의 것이지 누구의 것이겠사옵니까?

유긍달  (미소) 사실 이 황궁 안에는 세분의 안주인들이 계시옵니다. 그 중에서도 마마께서 제일 위치가 낮으시고 아직 태기가 없으셔서 걱정이 많았사옵니다.

수인    그 동안은 폐하께서 외지에만 나가 계셨사옵니다. 그 때문에 한동안 나주 형님께서 깨소금이 쏟아 지셨지요. 하지만 이제부터는 아니옵니다. 저는 이제서야 비로소 폐하를 뫼실 기회를 찾았사옵니다 아버님. 얼마나 어렵게 온 기회인데 그것을 놓치겠사옵니까?

유긍달  허허허, 참으로 대견하시옵니다. 아무쪼록 가문을 생각 하시오소서. 그 모든 것이 마마께 달려 있사옵니다.

수인    염려 마시오소서. 듣자하니 여러 변방들이 아주 시끄러운 모양인데

아버님도 몸조심 하시오소서. 오래 사셔서 이 딸의 효도도 받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긍달  핫하하하하....고맙사옵니다. 마마...참으로 대견하시옵니다 마마.

 

씬  황궁 대전

 

박수경 형제와 황궁의 전의와 최응, 그리고 왕건이 그 삼을 보고 있다. 전의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모두들 전의를 본다.

 

최응    이보시오, 전의. 이것이 산삼이 맞습니까?

모두들  ...............?

전의    (한참만에) 틀림없소이다. 그냥 산삼이 아니라 봉삼이라는 것이옵니다.

왕건    허허허, 산삼이면 산삼이지 봉삼은 또 무엇인가?

전의    산삼도 여러 종자가 있사옵니다. 그 종자에 따라서 약효가 천양지차이옵니다. 또한 산삼은 귀하기는 하오나 깊은 산에는 어디든 있사옵니다. 그러나 이 봉삼은 다르옵니다. 심마니들이 평생 한 번 구경하기를 소원하는 것이 바로 이 봉삼이옵니다. 그런데다가 이것은.......

왕건    말해보게나.

전의    그 수령이 족히 천 년은 넘어 보이옵니다.

모두들  천....년?

전의    예, 폐하. 이것은 능히 산 사람이 들면 백년 장수를 할 수 있사옵고 만약에 백약이 무효인 병자가 이 것을 만난다면 틀림없이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영약이옵니다.

모두들  ................?

왕건    (한참을 보다가) 이 귀한 것을 짐에게 바치다니.... 그 정성이 참으로 아름답도다. 그러나 내게 귀한 것은 그 백성에게도 또한 귀한 것일세. 정성은 이미 받았으니 물건은 다시 돌려주게.

박수경  몰래 두고 간지라 주인을 알 수가 없사옵니다.

왕건    귀신이 놓고 가지 않은 바에야 찾으려고 한다면 왜 못 찾을까, 듣고보니 참으로 귀한 것이야. 그 주인을 꼭 찾게나.

최응    하오나 이런 영약을 그대로 돌려보내심은 아니될 말이옵니다. 훗날 나라를 위해 여러 가지로 쓰임새가 클 것이옵니다. 이는 받으시고 그 주인을 찾아 상급을 내리도록 하시오소서. 분명 이 주인은 돌려 받지 않으려 할 것이옵니다.

왕건    경이 굳이 그렇게 말한다면 전의에게 시켜 보관하도록 하세. 그러나 분명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함이 마땅할 것이야. 그만 치우게나.

전의    폐하께서 이런 신령스러운 지초를 만나신 것은 절대로 하늘의 뜻이 아니면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이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모두들  감축드리옵니다. 페하.  

최응    전의의 말처럼 이는 하늘이 폐하께 내리시는 선물 같사옵니다. 모쪼록 많은 심려를 잠시 잊으시고 성심을 밝게 하시오소서.

왕건    허허허, 고맙네. 정말 모처럼 엉뚱한 일로 하여 잠시 시름을 잊었네 그려. 허허허... 어서, 그만 내가게나, 전의.

전의    예, 폐하.

 

전의가 다시 보따리를 싼다. 모두의 눈은 여전히 그 삼에 쏠려 있다. 그때, 다급한 발소리들이 들려온다. 그들 보면....

 

대전내관        (E) 폐하, 내군장군 입시이옵니다.

왕건    복장군이..? 드시라 하여라

 

대답과 함께 복지겸이 급히 들어선다.

 

왕건    복장군, 어인 일이시오? 왜 그리 급한 모습이시오?

복지겸  폐하, 변란이옵니다. 청주에서 파발이 올라왔사옵니다. 선장이라는 호족형제가 무리를 모아 난을 일으켰다 하옵니다.

왕건    무엇이라?

복지겸  뿐만 아니오라, 첩자의 말에 의하면 명주성의 김순식이가 그예 군사를 정비하여 이곳 황도로 출병한다 하옵니다.

왕건    김순식이도..?

복지겸  예, 폐하. 시급히 병부와 순군부에 영을 내리시어, 대안을 마련해야 하실 줄로 아옵니다.

왕건    청주가...? 김순식이가...? 그들이 그예 군사를 일으켰단 말인가? 그들이....?

 

굳어지며 눈을 크게 뜨는 왕건의 표정에서.....

 

< 122회 끝 >




첨부파일 태조왕건122.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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