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 126회>
줄거리
왕건은 황후의 병이 깊다는 사실을 알고 갈등하지만 결국 산삼을 상주의 아자개에게 보내고, 황후는 궁밖으로 요양을 가게 된다. 박유에게 왕씨 성을 내린 왕건은 송악으로의 천도를 밝히고 자신의 집권에 공을 세운 공신들을 치하한다. 한편, 견훤은 명약이 될 산삼을 구하러 백제 전역을 뒤지지만 별소득을 얻지 못하고, 신료들은 환선길의 죽음으로 역심을 품은 이흔암을 이용하여 고려를 위기에 빠트릴것을 제안한다.그리고, 최응은 천년묵은 산삼을 들고 상주에 도착하는데...
씬 1 철원 황궁 대전
지난 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박유 폐하, 허락하시오소서. 이 지초는 황후마마를 위해 쓰셔야하옵니다.
왕건 ............ (계속되는 갈등)
최응 그리하시오소서. 상주의 일은 잠시 뒤로 미루시오소서.
왕건 ......
두사람 허락하시오소서, 폐하.
왕건은 그래도 대답을 못한다. 눈을 감고 생각하기를 얼마, 그는 드디어 두 사람을 보다가
그 산삼을 밀어준다.
왕건 자, 최시랑.
최응 예, 폐하.
왕건 이제 되었네. 그만들 하세나. 이것을 어서 싸도록 하게.
최응 폐하........?
왕건 어서
박유 폐하, 아니되옵니다, 폐하.
왕건 나도 내 안해인 황후를 누구보다도 생각할 줄 아오. 그러나 그것은 사사로운 일이
고 그 이전에 결정한 것은 나라를 위한 일이오. 공과 사를 가릴 줄 아는 것은 하물며 백
성들도 아는 일인데, 헌데 날 보고 그것을 바꾸라하는 것이오?
두사람 ......
왕건 자, 최시랑.
최응 예, 폐하.
왕건 갈 시간이 다 되었어. 이 지초를 어서 비단보에 싸게나.
최응 (울며) 아니옵니다, 폐하. 그 영을 거두어주시오소서. 이 지초를 황후마마께 드리오
소서, 폐하.
왕건 아니라고 하지 않았는가. 어서 싸게나. 그리고 상주로 떠나게.
최응 (울며) 폐하......
박유 폐하... 황후마마를 구하시오소서, 폐하... 폐하.....
왕건 어서 싸게. 어서 이것을 싸. 어서.
그러나 왕건도 애써 감정을 참고 있다. 최응이 오열하며 왕건을 본다.
최응 이 죄를 어이하오리까, 폐하. 신은 이 죄를 어이하오리까.
왕건 그게 무슨 소리인가. 어찌 죄가 될 수 있겠는가. 나는 나라를 위해 내가 한 약속을
지키려하는 것이고, 그대는 또한 나라를 위해 내게 청했던 것이었어.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네. 황후도 이해를 할 것이야. 자, 어서 싸게나. 어서.
최응 (통곡하며 엎드리고) 폐하..... 하오면 신은 폐하의 영을 받들겠나이다. 만에 하나, 일
이 잘못되면 다시는 폐하가 계시는 이 황도로 돌아오지 않겠나이다. 망극하옵니다, 폐하...
그런 최응의 눈물에서 .....
씬 2 길
최응 일행 서너명이 가고 있다. 최응은 여전히 숙연한 표정이다.
최응(E) 폐하, 용서하시오소서. 폐하께오서 나라를 위해 내리신 그 결단은 결코 소홀히 되지
않을 것이옵니다. 이 최응이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지고 돌아올 것이옵니다. 기다려주시오
소서, 폐하.
그렇게 지나치는 최응의 표정에서 씬 바꾸고.
씬 3 황궁 안, 순군부 관아
기장들이 모두 모여있다. 능산과 배현경, 홍유, 복지겸, 유금필, 태평, 원극유 들이다.
능산 (큰 한숨) 아아,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단 말이오. 당연히 황후마마를 먼
저 구해드려야지. 어떻게... 적국의 늙은이를 위해 그 소중한 지초를 쓴단 말이오.
배현경 누가 감히 폐하의 그 크고 넓으신 뜻을 지적할 수 있겠소이까. 나라를 위한 그 크
신 마음을 누가 말할 수 있단 말이오.
홍유 소장은 할말이 없소이다. 과연 폐하시옵니다.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계시옵
니다.
복지겸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폐하의 그 뜻을 헤아리고 길이 마음에 새겨야할 것
입니다.
유금필 그래도 그렇지요. 황후마마께서 환후로 이미 약이 소용없다합니다. 사사로이 저희들
에게는 형수님이시기도 합니다. 폐하께서 너무하시옵니다. 참으로 너무하시옵니다.
태평 ........ (숙연하기만 하고)
원극유 이 늙은이도 생각할수록 그저 가슴이 답답하오이다... 그 지초를 들고 가는 최시랑
의 마음은 또 어떻겠소이까. 허허... 이런 답답한 일이...
태평 군주의 길은 그래서 고단하고도 어려운 것입니다. 누가 감히 자신의 가족을 생각하
지 않고 대의를 먼저 생각하겠습니까. 폐하가 아니시면 어려운 일이올시다. 모쪼록 간 일이
잘 되어야 할 터인데...
능산 말렸어야했어요. 그 자리에 동궁기실 박유학사도 있었다는데. 어찌 말리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보냈단 말씀이오.
유금필 그러게말일세. 누군가는 말렸어야지. 상주의 그 늙은이가 무엇이 그리 소중하단 말
인가. 술희 아우가 이번에는 아주 일을 잘못하는 것 같으이. 다 그 아우때문에 빚어진 일이
아닌가.
태평 좋은 일을 크게 결단하신 것이옵니다. 우리모두 그것을 살펴드려야지요. 그렇게 생
각들 하셔야합니다.
씬 4 동, 황궁 광평성
늙은 대신들이 모여서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무거운 표정들이다.
거기에 박유도 함께 있다.
김행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요. 아니, 박학사께서 도대체 무얼 하셨습니까?
박지윤 이미 우리는 모든 일을 전해들었습니다. 폐하께서 눈물로써 허락하신 일을 더이상
탓해서는 아니됩니다.
유천궁 ....... (그저 한숨만)
오다련 (눈치를 보며) 그래도 그렇지요... 약이란 쓸데 써야지요. 어떻게 백제국의 늙은이를
위해 가져간단 말입니까.
유긍달 그렇구말구요, 아무리 생각해도 폐하께서 무언가 잘못 생각하신 것 같소이다. 그런
엉뚱한 곳에 그 귀한 지초를 쓰다니, 이런 쯔쯔쯔....
김행선 허나... 따지고 보면 황후마마의 일보다도 나랏일이 더 크다고 폐하께서는 생각하신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것을 최시랑에게 이미 주기로 약조하신 이후에 황후마마의 환후를 아
셨다하오이다. 그 심정이 십분 이해가 가는 바이올시다. 참으로 안되었소이다, 유대부.
유천궁 (긴 한숨) 내가 전해듣기로 황후마마께서 먼저 그 지초를 사양하셨다 들었소이다.
비록 사사로이는 내 여식이나 나는 황후마마의 결단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그것이 바로 국
모로서의 덕목이 아니겠소이까. 더이상 할말이 없소이다.
김행선 오늘은 제가 술 한자리 뫼시겠소이다, 유대부. 우리 모두들 저희 집으로 가십시다.
박지윤 그렇게 하시지요, 유대부. 저희들 모두가 오늘은 마음이 참으로 무겁습니다.
유천궁 아니올시다. 아마 곧 황후마마께서 피접을 가셔야한다고 합니다. 나는 그 준비라도
해야할 것 같소이다, 허허.. 이것 참....
모두들 ........
씬 5 동, 황후전 복도
왕건(E) 이보시오, 황후. 왜 진작 내게 말을 안해주셨소?
씬 6 동, 황후전 안
왕건이 유씨의 손을 잡고 위로하고 있다.
유씨는 그저 눈물만 글썽이고 있다.
그 옆으로 오씨와 수인도 서서 보고있다.
왕건 왜 그러셨소, 황후?
유씨 별 일 아니옵니다. 괘념치마시옵소서, 폐하.
왕건 별 일이 아니라니..... 이미 전의에게 다 들었소이다. 너무도 가슴이 아픕니다. 피접
까지 나가야한다니. 언제 그렇게 심한 병을 키우셨단 말이오.
유씨 심려를 끼쳐드려 참으로 송구하옵니다, 폐하.
왕건 아니오. 용서를 빌 사람은 나요. 황후는 그동안 이 사람에게 와서 내내 고생만 하시
었소. 그런데 내가 황제가 되었는데 황궁에 오자마자 병을 얻어 나가다니요.
유씨 염려놓으시오소서. 곧 죽는 병은 아니옵니다.
왕건 그 산삼을 최시랑을 통해 보내면서 수십 수백번 가슴을 쳤소이다. 왜 진작 알지 못
했는가 하고 말이오.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도 그것은 황후가 썼어야할 것이오. 허나... 이미
약조를 한 뒤였소이다. 이미.....
유씨 신첩은 일찍부터 그것이 다른 곳에 써야함을 알고 있었사옵니다. 폐하께서 이리하
시면 오히려 신첩이 민망하옵니다. 다 잊으시오소서, 폐하.
왕건 용서하오. 나를 용서하시오 황후.
유씨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오히려 신첩을 용서하셔야하옵니다. 황궁에 심려를 끼치고 있
으니 이또한 죄라면 죄가 아니겠사옵니까.
모두들 .......
유씨 (애써 밝게) 곧 나을 것이옵니다. 속히 건강을 찾아서 폐하를 뵐 것이옵니다.
왕건 그리하셔야지요. 꼭 그리하셔야지요.
오씨 황후마마, 힘을 내시오소서. 이 아우들을 생각하셔서 빨리 쾌차하시오소서.
수인 그리하셔야하옵니다. 이 아우가 기도하며 빌겠사옵니다.
오씨 ..........?
유씨 잘들 지내셔야하네. 자네들은 이 황궁 안에 어른들이야. 서로 모자라는 것을 도와주
고 서로서로 위해주어야 할 것이야.
두사람 예, 마마.
유씨 특히나 (수인에게) 자네는 이제 홀몸이 아니네. 폐하의 혈육을 가졌다는 것은 엄청
나게 큰 책임을 맡았다는 것과도 같아. 알겠는가?
수인 예, 황후마마.
유씨 이제 되었습니다, 폐하. 가보아야겠습니다. 내내 강건하시오소서.
왕건 언제 ..... 다시 또 본단말이오.
유씨 곧 나아서 빨리 돌아오겠사옵니다.
왕건 ...... 이보시오, 황후.
왕건은 애써 북받치는 감정을 참는다.
두 부인들도 착잡하다. 민상궁이 부축하면 유씨가 일어나 왕건에게 절을 올린다. 왕건의
눈에도 물기가 돈다. 유씨는 그렇게 절을 올리고 언제 또 볼까 하는 마음으로 왕건을 한동
안 본다. 그리고 애써 미소를 짓는다.
유씨 하오면... 다녀오겠사옵니다, 폐하. 이미 정주 집으로 가려고 준비를 다 해놓았사옵
니다. 민상궁.
민상궁 예, 황후마마.
유씨 무얼 하느냐. 이제 인사를 다 드렸으니 가야하지 않겠느냐.
민상궁 (울음참으며) 마마...
유씨 어허.. 어서.
민상궁 예, 마마.
유씨는 다시 왕건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다. 그리고 황후전을 나선다. 왕건도 두 부
인도 그리고 상궁나인들도 따르기 시작한다. 왕건이 그런 유씨를 부축하며 함께 걷는다.
씬 7 동, 황후전 밖 뜰
이미 황후의 가마가 기다리고 있다.
황후는 다시 언제 볼까 하는 마음으로 왕건을 한 번 더 보다가 말한다.
유씨 내내 강건하시오소서.
왕건 잘 가시오, 황후. 빨리 다시 보기를 바라오.
유씨 그럼... (두 부인에게) 잘 들 있게. 또 보세.
유씨는 그렇게 가마 안으로 사라진다. 장수장이 내군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다가 명령한
다.
장수장 황후마마를 뫼셔라.
내군들 예.
유씨는 미련처럼 뒤를 돌아다본다. 왕건이 울고있다. 가마는 점점 더 멀어진
다. 그렇게 유씨들은 멀어져가고......
씬 8 동, 황궁대전 외경
(밤)
씬 9 동, 대전 안
왕건이 술을 마시고 있다. 박유가 태평과 함께 마주해있다.
박유 한잔 더 따르오리까, 폐하.
왕건 경도 한잔 하시구려.
박유 허허허.. 본래 못하는 술이옵니다. (따라주며) 마음을 편히 하시오소서. 황후마마께
오서는 병을 다스리러 가신 것이옵니다. 분명 좋아지실 것이옵니다.
태평 그렇게 될 것이옵니다, 폐하.
왕건 황제의 자리라는 것이 참으로 때로는 못할 것이야. 난들 왜 나의 안해를 살리고 싶
지 않겠는가 말이오.
두사람 .........
왕건 이런 내 마음을 황후가 알까 몰라...
태평 어찌 모르시겠사옵니까. 어느 분 보다도 마음이 넓고 인자하신 황후마마셨사옵니다.
왕건 그렇겠지......?
태평 틀림없이 그러하실 것이옵니다.
왕건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 합시다. 그보다도 박학사.
박유 예, 폐하.
왕건 일찍부터 나는 많은 사람과 더불어 경의 학문을 존중해왔소이다. 나의 태자도 경이
가르치고 있고, 또한 나라의 막중 기밀들을 경이 관리하고 있어요. 나는 경을 나의 스승처럼
모시고 싶소이다. 아버님처럼 말이오.
박유 (놀라며)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폐하. 합당치 않사옵니다. 어찌 신이 폐하의 아버님
자리를 운운할 수 있겠사옵니까.
왕건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나는 이제부터 경에게 왕씨의 성을 주려하오. 우리 같은
성을 쓰면서 가족처럼 지내십시다.
박유 듣잡기 민망하고 또한 심히 두렵사옵니다. 말씀을 거두어주시오소서.
왕건 나는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경은 그렇게 듣지 않는 모양이구려. 어떻소이까. 내가
드리는 왕씨 성을 받아주시겠소이까?
박유 참으로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그토록 은혜를 크게 주시는데 어찌 마다하오리
까. 대대손손 영광으로 알고 오늘을 크게 기억하겠나이다, 폐하.
왕건 고맙소이다. 고맙소이다, 왕학사.
해설 왕유, 박유에게 새로운 왕건의 성씨를 하사함으로써 박유는 이때부터 왕유가 된다.
기록에 보면 그는 왕건의 혁명 이후 곧바로 찾아와 하례를 드리고 벼슬을 받음으로써 왕씨
성을 하사받았다고 되어있다. 어찌되었든 이 이후로 상당히 많은 인물들이 고려에 공을 세
우거나 어려울 때에 왕건을 도움으로써 왕씨 성을 하사받는 일이 늘어나게 된다. 황제인 왕
건이 자신과 같은 성씨를 내림으로써 여러가지 권위와 정치사회적인 보장을 해주었던 것이
다.
왕건 청주도 안정이 되었고, 또 나주도 올라오는 장계를 보니 소요가 가라앉고 있는 것
같소이다. 이제부터는 보다 내실있는 정치를 해야할 터인데, 무엇부터 해야겠소이까.
왕유 이미 폐하께오서는 삼한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셨사옵니다. 백제와는 전쟁을 계
속할 것이며 신라와는 우호적으로 대외관계를 처결하신다 하셨사옵니다.
왕건 그랬지요.
왕유 그리하시면서 신이 말씀드린 천도를 서두르시오소서. 그또한 시급한 일이옵니다. 이
미 이 철원은 황도로써의 수명을 다 했사옵니다. 새로운 땅, 새로운 희망이 있는 곳으로 가
셔야하옵니다.
왕건 그렇게 하십시다.
태평 그 이전에 마무리지으실 것은 다 지으셔야하옵니다. 시급한 것은 공신들의 포상이
옵니다. 나라가 바뀌었음에도 공있는 신하들을 상주지 못하셨다는 것은 그들의 사기에도 영
향이 미치옵니다.
왕유 태평낭중의 말이 지극히 일리있사옵니다. 서두르셔야할 일이옵니다.
왕건 그렇게 하십시다. 이제 한숨을 돌렸으니 먼저 공신들을 포상하고 또한 천도를 하십
시다.
태평 광평시랑 최응이 폐하의 크신 결단으로 상주로 간 일은 폐하께서 삼한의 주인이 되
시는데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일이옵니다. 그 일은 반드시 성공되어야하옵니다. 그 일도 크
게 배려를 하셔야하옵니다.
왕건 이미 그리하고 있지 않은가.
태평 또 있사옵니다. 평양으로 가있는 북벌군에게도 계속해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셔야
하옵니다.
왕건 (끄덕인다) 암, 그래야지. 역시 결과적으로 삼한을 통일하고 나면 우리가 뻗어갈 곳
은 그쪽밖에 없어.
태평 그러하옵니다, 폐하.
왕건 자, 그럼. 지금까지 한 이야기들을 정리해서 공신들에 관한 것은 내봉성과 의논하기
로 하고 천도를 하는 것은 광평성에서 맡으라 하시구려.
두사람 예, 폐하.
왕건 북벌에 관한 일은 태평낭중이 계속 확인토록 하고
태평 예, 폐하.
왕건 이제부터요. 혼란과 소요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되어가고 있으니, 이제부터 고려를 진
정으로 다시 세우는 일을 시작해야합니다.
두사람 예, 폐하. 마땅하고 옳은 일이옵니다.
끄덕이는 왕건의 표정에서.....
씬 10 평양, 어느 폐허의
성터
잡초 무성한 그 길을 왕식렴과 염상이 많은 수하 장졸들을 거느리고 돌아보고 있다.
그 어느 쯤에서 윤선이 왕식렴에게 예를 표하고 있다. 뭔가 대화를 나누는 그들의 표정에
서....
해설 도처에서 일어나던 저항과 반란이 숨을 죽이면서 왕건은 새로운 제국 고려의 기반
다지기에 박차를 가한다. 그 중 하나가 궁예가 그토록 염원했던 북벌을 계승하는 일이었다.
왕건은 이미 집권하면서부터 그의 사촌동생 왕식렴을 염상과 더불어 그리로 보냈었다. 그리
고 폐허로 남아있는 평양성을 확보하면서 그 일대의 호족들을 규합하기 시작한다. 그 성
과의 하나가 그 일대 최고의 호족인 윤선을 귀부시킨 일이었다. 윤선은 무려 이천의 무리를
거느린 변방의 대호족이었다. 그런 그가 왕식렴에게 귀순하면서 왕건의 새로운 북방군
대로 편입된 것이었다.
씬 11 황궁 조당
김행선을 비롯한 광평성의 노신들과 문무신료들이 가득히 모여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고 있
다.
해설 (계속) 또한 왕건은 왕유가 이야기한 송악으로의 천도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
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집권에 공을 세운 공신들을 선별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이른바
나라가 서서히 그 기초와 안정을 잡아가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한편 최응이 그 오래된
산삼을 가지고 떠난 상주의 일은 어찌되었을까. 고려가 그처럼 심혈을 기울여 아자개의 일
에 뛰어든 것처럼 백제의 견훤도 또한 그러했다.
씬 12 백제 전주 황궁
외경
씬 13 동, 황궁 안 조당
백제의 문무신료들이 모두 모여있다.
견훤이 노해서 소리를 치고 있다.
그의 앞에는 가느다란 산삼 몇 뿌리가 비단보 위에 놓여있다.
견훤 도대체 무엇들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이 삼이라고 캐온 것인가. 이것이 삼이야?
아이고오..... 흔하고 흔한 것이 삼이야. 얼마나 많은 심마니들이 많은 산삼을 캐고 있는가.
신료들 ........
견훤 구해온 것들이란 게 하나같이 쓸모없는 것들뿐이니 이래가지고서야 어찌 아버님을
뵐 수 있단 말인가.
능환 황공하옵니다, 폐하. 전국의 수령방백들에게 그렇잖아도 재촉을 하고 있사옵니다.
견훤 재촉가지고 될 일인가. 조정에서 칙사들을 내려보내서 다그쳐야지. 이것이 언제부터
서두른 일이었는가 말이야. 아버님이 오늘 내일 하신다고 하지 않는가. 약이라고는 그
것밖에 없다는데 그렇게들 모르는가. 아이구 답답이야...
최승우 고정하시오소서, 폐하. 모두들 열심히 뛰고 있사옵니다.
견훤 생각들 해보아. 수십 년을 버려졌던 사벌주 성이야. 거기에 아버님이 계셔. 백제의
황제인 나를 싫다하시고 등을 돌리신 아버님을 뫼셔오는 일이야. 이번에 아버님 마음을 돌
리고 상주를 얻으면 나아가 저 고려를 본격적으로 도모할 수가 있어. 그런데 일이 이렇게
안풀린단말인가.
신덕 폐하. 폐하의 그 심려를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보시오소서.
견훤 이것도 싸움이야, 이것도 전쟁이란 말이야. 서둘러 보아. 아버님 돌아가시고 나면
천년 만년 묵은 산삼도 아무 소용이 없어. 제발 좀 서두르란 말이야.
모두들 예, 폐하.
공직 하오나 폐하. 상주의 일은 온 나라가 나서서 그 지초를 찾고 있으니 그렇다 하더라
도 그 이후의 대책은 세우셔야 하옵니다.
견훤 이후의 대책?
공직 예, 폐하. 만에 하나 아자개 어른께오서 돌아가시면 상주 땅은 지금껏 완충지대로
남아 있던 것이 금방 전장터로 변할 것이옵니다.
견훤 아, 그러니까 내가 서두르는 것이 아닌가.
공직 고려군은 상주 바로 지척에 군을 주둔시키고 있사옵니다. 일이 잘못되면 저들은 곧
아자개 어른이 계시는 사벌주 성을 공략해 들어올 것이옵니다.
애술 그렇사옵니다, 폐하. 산삼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옵니다만은 이후의 대책을 튼튼히
세워야할 것이옵니다.
견훤 이 사람들이 이거 우리 아버님이 꼭 돌아가시길 바라는 것 같구만. 그러니까 산삼
을 구하는 것은 자신이 없다.. 그런 말들인데......
최승우 어찌 그렇겠사옵니까, 폐하. 다만 신료들은 노환을 앓고 계시는 어르신께서 잘못되
실 경우의 일을 염려하는 것이옵니다.
견훤 어흠... 음.. 뭐 그럴 수도 있지만.
능환 이럴 때일수록 여러 방면에서 어떠한 일이 발생할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사옵니다.
이제 고려도 여러가지 혼란을 벗어나 서서히 그 자리를 잡아가는 것으로 아옵니다. 불가불
가까운 시일 내에 어디서든 접경지대에서 전투가 벌어질 것이옵니다.
박영규 그러하옵니다. 제일 큰 곳이 일단 상주이기는 하오나 웅주(공주)또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지역이옵니다.
김총 어디 그것뿐이겠사옵니까. 우리가 두번씩 실패하면 대야성 또한 고려로서는 크게
노리고 있는 곳이옵니다.
견훤 알아, 알아..... 짐도 알아. 그러나 그런 것들은 이미 우리가 대비하고 있는 것들이야.
나는 이 기회에 아버님을 살리고 자식으로서 인정을 받고 싶어. 그러면서 상주도 또한 얻는
것이란 말이야. 피를 흘리지 않고 땅을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경들은 알 것이야.
나는 지금 그것을 원하고 있는 것이야.
박영규 잘 아옵니다, 폐하. 그래서 온 신료들과 지방의 호족들이 다 나섰사옵니다.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옵니다. 하오나 신이 말씀올린 웅주의 일은 소홀히 보지 마시오소서.
견훤 사위는 왜 자꾸 웅주 이야기를 하는겐가?
박영규 웅주에는 지금 고려군의 마군 장군 이흔암이 와있사옵니다. 지금 그자는 고려에서
눈치를 받고 있는 장수 중 하나이옵니다.
최승우 그건 그렇사옵니다, 폐하. 고려의 장수 이흔암은 첩보에 의하면 얼마 전에 고려 왕
에게 반란을 꾀하다가 죽은 장수 환선길의 처남이라 하옵니다.
견훤 그래...? 그래서?
최승우 당연히 공작을 한번 펴볼만 하옵니다. 우리편으로 끌이던가 아니면 계략을 써서 고
려 조정에 혼란을 야기시키는 것이옵니다.
견훤 지금 경황이 없질 않은가. 그런 것은 경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나로서는 상주의 일
이 급해. 웅주가 아니라 상주야. 서두르라고. 모두들 서둘러보아.
모두들 예, 폐하.
씬 14 웅주 성 외경
씬 15 동, 성안
이흔암이 고개를 외로 꼬고 있다.
부장들이 여러 명 도열해 앉아있다.
이흔암은 분하여 떨고 있다.
이흔암 내 매형이 그렇게 돌아가셨다고? 내 누이까지. 모조리 죽었단 말이지. (사이) 허...
이것 참 믿을 수가 없구만. 내 매형이 누구인가 말이야. 그런 매형이 죽어?
부장1 장군, 환선길 장군의 역모 사건은 변방에 나가있는 여러 장수들에게도 지금까지 쉬
쉬하고 있다 하옵니다.
이흔암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가 있단 말인가. 매형도 그렇지. 무슨 일
을 그렇게 흐리멍텅하게 해서 집안까지 모두 절단이 난단 말인가 그래. 그나저나 이를 어찌
한다? 내 처신을 어찌해야하나?
부장2 어쨌든 조정에서 장군을 오래 이곳에 두시진 않을 것입니다.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옵니다.
이흔암 아무래도 그렇겠지. 결국은 저들이 나를 오래 살려두지 않을 것이야. 그렇다면 ....나
도 살길을 찾아야지. 당연히 찾아야지. 그리고 원수도 갚아야지. 왕건이가 그럴 수가 있는
가 말이야. 얼마 전만 해도 우리는 다 같은 장수들이었어. 제깐 것이 황제가 되었다고 이럴
수가 있는가 말이야.
모두들 .........
이흔암 이까짓 웅주 성이고 뭐고 이젠 내게 하나도 필요치가 않다. 부장들은 들어라.
부장들 예, 장군.
이흔암 앉아서 죽으나 서서 죽으나 죽을 운명이라면 한번은 부딪혀봐야하지 않겠느냐. 모
두들 비상대기하고 내 영을 기다리라.
부장들 예, 장군.
이흔암 왕건이가 그럴 수가 있어... 제깟 게 무슨 황제라고? (사이) 맞았어. 생각해보니까
그래. 처음부터 저들이 우리 매형을 따돌려 놓고 있었어. 그리고 나도 말이야. 아 그러니까
상주에 잘 있는 나를 이 오지로 내쫓은 것이 아니냔 말이야. 틀림없어, 일이 그렇게 된게야.
상주에 있을 때부터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야.
씬 16 상주 사벌주 성
씬 17 동, 성안
아자개가 여전히 죽어가고 있다.
숨을 헐떡거리며 눈동자만 움직이고 있다.
계모는 눈물을 닦고 있고 대주 형제들은 한숨만 계속 쉰다.
능애와 의원이 보고 있다. 진맥하던 의원이 계속 고개를 젓는다.
계모 약도 없으면서 뭣하러들 또 왔는가.
능애 임시방편이라도 쓸까 하여 심마니들이 모아온 산삼을 가져왔사옵니다.
계모 쥐꼬리보다도 못한 그런 산삼뿌리들을 약이라고 가져왔다고? 그래, 그것도 약이라
고 견훤이가 보내던가?
능애 형님 폐하의 정성이시옵니다. 지금 백제국의 온 나라가 약을 찾고자 헤매고 있사옵
니다.
계모 그만두게. 아이고.. 이 일을 어찌하나, 이젠 아예 정신도 못차리시는구려. 그래, 의원
이라고 와있으니 한번 더 물어보세. 어쩌겠는가? 응? 어쩌겠어?
의원 ............
대주 말을 해보시오. 지금 아버님께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시지않소.
용개 말을 해보시게.
의원 소....송구하옵니다. 아무래도... 며칠을 더 .... 넘기시기가...
계모 뭐가 어쩌고 어째? 며칠을 못넘겨? 뭐 이런것도 의원이라고 당장 나가지못할까.
뭐? 며칠? 며칠? 용개야.
용개 예, 어머님.
계모 저들을 오지말라고 했는데 왜 이곳으로 들였느냐. 내쫓아라 어서, 어서 내쫓아.
대주 왜들 이러시옵니까? 그래도 아버님을 위해 온 의원이옵니다. 능애 오라버
님. 잠시 나가 쉬시오소서. 계속해 아버님을 돌봐주시오소서. 어쨌든 의원은 필요하옵니다.
능애 알겠다, 대주야. 이보게 의원, 잠시 물러가세.
의원 예, 예..
그렇게 그들은 물러가고 계모는 땅을 치며 하소연을 한다.
계모 아이고 나으리... 천년만년 살자 하시더니 이것이 웬말입니까. 정신좀 차려보시오소
서, 나으리... 아이고 나으리....
씬 18 충주 관아 외경
씬 19 동, 관아
최응과 박술희가 마주해있다. 옆에는 최응이 함께 온 의원이 앉아있다.
그들은 펼쳐진 비단 위의 산삼을 보며 놀라고 있다.
최응 산삼 중에 삼으로 불리는 봉삼이라는 것이오. 족히 천년은 넘었다고 합니다.
박술희 천년..!
의원1 그렇사옵니다. 이는 많은 의원들이 검증을 한 것이옵니다. 나이테로 보아도 천년이
훨씬 넘은 신령한 지초이옵니다.
박술희 (침을 꿀떡 삼키며) 있기는 있었구려. 이런 것이 있었어요.
의원1 모든 삼이 그 병에 좋다는 것은 사실이오나 이것을 들고 나을지 안나을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옵니다.
최응 그건 그러하오. 그러나 써보는 것이 안써본 것보다는 나을 것이오. 다행히 그대는
저런 병을 앓는 많은 환자를 보았다고 하였소이다. 그래서 데려온 것이니 상태를 잘 관찰하
여 말해주시구려.
의원1 예, 시랑어른.
최응 이제부터 난 시랑이 아니오. 내 신분이 드러나서는 절대로 아니되오. 나는 그저 그
대의 식솔처럼 그렇게 보여야하오.
의원1 예, 알겠사옵니다.
박술희 최시랑께서는 무슨 일을 하러 오신겝니까?
의원1 박장군을 돕고 그 아자개라는 사람을 이곳으로 모셔오는 중임을 맡았소이다. 내가
장군께 부탁했던 그 일 말입니다.
박술희 일이 잘못되면 다 허사올시다. 그만큼 어렵게 되어있어요.
최응 폐하께오서 황후마마께 쓰실 것을 마다하시며 주신 것입니다. 하늘의 뜻이 아니고
서는 이 지초가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자개는 반드시 살 것입니다.
박술희 그럴 수 있겠소이까?
최응 그렇게 되어야합니다. 반드시 이 지초는 황후마마의 한 목숨과도 같은 것입니다.
박술희 ...........황후마마의 목숨? 형수님의 목숨이? 오호 이런...
씬 20 고려 정주 바닷가
유천궁의 집이 보이는 바닷가이다.
민상궁과 함께 유씨가 먼 바다를 보고 있다.
민상궁 황후마마, 바람이 차옵니다. 그만 들어가시오소서.
유씨 그렇지않느니라. 이 바다가 얼마나 보기 좋으냐. 생각해보면 내 병은 이미 오래 전
부터 있었느니라. 늘 가슴 졸이고 떨며 폐하의 주변을 보아오지 않았느냐. 그것이 병이 되었
어.
민상궁 이제 이곳에서 모든 시름을 잊으시오소서.
유씨 그래, 그래야지. 이곳에 오니 가슴이 다 뚫리는 것 같다. 맺혔던 모든 것들이 풀어
지는 것 같아 사실 나는 그 황궁이 싫었다네.
민상궁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마마.
유씨 그냥 그랬어.... (사이) 참 좋다.... 바다가 보기 좋아.
씬 21 황궁 오씨 처소
오씨가 박상궁과 함께 마주해있다. 그 옆에 태자도 함께해 있다.
오씨 안되셨어. 황후마마께서 참으로 안되셨어.
박상궁 그러게 말이옵니다. 마마.
오씨 참 복도 박하시지. 그 지초를 지금껏 그대로 버려두었다가 막상 쓸 일이 생겼는데
그때 그 이야기가 나오다니. 쯔쯔쯔...
박상궁 하오나 마마, 황후마마께오서 피접까지 나가셨다면 결국은 그리 오래 못가실 것이
아니옵니까?
오씨 무슨 소리인가, 그것이?
박상궁 이 나라의 황후마마는 한 분 뿐이시옵니다. 이제 곧 마마께오서 황후전에 드시지
않으시겠사옵니까?
오씨 이런 사람하고는.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그러면서도 싫지않다) 그야 응당 형님께
서 잘못 되시면 그리 되겠지만 그런 말은 삼가해야하네. 큰 일날 소리야.
박상궁 예, 마마. 해본 말이옵니다.
오씨 그래, 태자. 요즘 공부는 잘 하고 계시오?
무 예, 어마마마. 왕학사님께오서 잘 가르쳐주시고 계시옵니다.
오씨 왕학사...? 호호호, 그렇지. 박유학사가 이제 왕씨가 되었지. 더 잘 된일이 아닙니까,
태자? 스승이 일가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무 예, 어마마마.
오씨 호호호... 나는 태자만 보면 든든합니다. 좋은 스승이 계시겠다, 태자 위로 아무도
형님이라곤 없으시겠다. 무엇이 걱정할 게 있겠습니까. 호호호호호.........
씬 22 수인의 처소
전의가 막 진맥을 끝내고 있다.
수인이 거만하게 묻는다.
수인 아기님은 어떻소이까?
전의 아주 좋으시옵니다. 별 이상이 없으시옵니다.
수인 그래야지... 황제폐하의 혈육이십니다. 황후마마께서도 가시면서 각별히 부탁하신 아
기님이시오. 전의가 많이 도와주시구려.
전의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수인 (패물 던져주며) 종종 좋은 약재를 올려주시오. 요긴하게 쓰시오.
전의 황공하옵니다. 마마. 어찌 이런 것까지... 고맙사옵니다.
수인 가보오 그만.
전의 예, 마마. 자주 찾아뵙겠사옵니다.
전의가 황망하여 패물을 들고 물러간 후 수인이 크게 웃는다.
수인 황후마마께서 피접을 나가셨네. 이제 이 황궁은 나주형님과 내가 안주인이야. 아니
그런가, 김상궁?
김상궁 왜 아니겠사옵니까.
수인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것이라네. 지금은 나주형님이 큰 꿈을 꾸고 계시겠지
만 나중 일을 누가 알겠는가? 나도 아들만 낳으면..... 이 황궁의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될 것
이야. 암 그렇고 말고... 아들만 낳으면 말일세...
씬 23 동, 대전
왕건이 공신명단을 확인하여 넘기고 있다.
그 앞에 태평과 김행선이 마주해있다. 함께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왕건 개국 일등공신에 사기장들이 들어있구려. 능산아우와 배현경, 복지겸, 홍유장군들이
구려.
김행선 그러하옵니다, 폐하. 그들은 일등공신으로서 손색이 없사옵니다. 누구보다도 앞서서
목숨을 걸고 나라를 열었으며 폐하를 옹립한 공이 있사옵니다.
왕건 .......... (끄덕인다) 그리고 이등공신들은......
태평 이등공신은 염상장군과 김락 장군을 비롯하여 만안장군, 견권, 연주 장군들을 신료
들이 천거해 올렸사옵니다.
왕건 마땅한 일이오. 이들은 모두 그만한 공을 세웠소. 헌데 어떻게 태평낭중은 이름이
안보이는고?
태평 (미소) 폐하. 신은 모두들 거사를 꾸미고 일으킨 이후에 참여를 하였사옵니다. 어찌
감히 개국 공신의 반열에 들겠사옵니까.
김행선 많은 원로들이 그렇지 않아도 태평낭중의 공적을 말하였으나 스스로 끝까지 마다하
였사옵니다.
태평 폐하, 공신이 무엇이옵니까. 나라에 공을 세운 신하들이옵니다. 폐하께서 나라를 여
셨을때에 공으로 따지자면 안세운 사람이 어디있겠사옵니까. 중요한 상을 남발하심은 오히
려 상의 권위를 떨어뜨리옵니다. 신은 폐하의 곁에 있는 것으로 족하옵니다.
왕건 그래도 그렇지.....
태평 아니옵니다. 그리하시오소서. 오히려 삼등공신에는 섭섭해하는 많은 이들을 모
두 섭렵해 주시오소서. 그래야만 공신이라는 우월감과 비뚤어진 권력의 형성이 자제될 것이
옵니다.
왕건 (끄덕인다) 참으로 옳은 말을 해주었네. 지극히 마땅하고 옳은 말을 해주었어. 나는
국초에 밝힌 바가 있네. 공이 있는 자들이라 하여 권력을 독식하면 나라가 제자리를 잡지
못한다고 말이야. 경의 뜻을 따르겠네.
태평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김행선 태평낭중의 말이 참으로 아름답사옵니다. 이러한 뜻은 이미 일등 공신들에게도 다
전해진 것으로 아옵니다.
왕건 그렇다면 다행이구려. 곧 조회를 열도록 하시오.
두 사람 예, 폐하.
씬 24 순군부 관아 안
복지겸과 능산, 배현경, 홍유가 모여있다.
복지겸 지금 대전에서 공신책봉에 관하여 태평낭중과 시중께서 폐하께 말씀을 올리고 있다
합니다. 여기있는 우리 네 사람이 개국 일등 공신에 책봉되는 모양이올시다.
능산 공신책봉은 내봉성과 광평성에서 의논하여 정한 것이니 우리가 이렇다 할 말은 없
소이다만은 세상의 많은 눈이 있소이다. 곧 조회가 열릴 것인데... 우리의 뜻을 모아야 하지
않겠소이까.
홍유 그래야지요. 일등공신들이라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의 권력이나 부를 위해서 칼을
들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소이다.
배현경 그렇습니다. 우리는 폐하를 옹립하기 직전에 이미 그러한 뜻을 나누었소이다. 듣자
하니 태평낭중도 스스로 공신의 직을 물렸다 합니다.
복지겸 앞으로 우리가 보여주는 일들이 여러모로 조정신료들에게 귀감이 될 것입니다. 반
대로 잘못보이면 비판의 대상도 될 것이구요.
능산 그렇습니다. 지난 공은 잊어야합니다. 권력의 요직이나 큰 벼슬에 욕심을 내서는 아
니됩니다. 아니그렇소이까?
모두들 그렇소이다.
능산 폐하께 부담이 되어서는 아니됩니다. 우리 스스로 자제하고 절제하여서 폐하께서
운신의 폭이 넓어지실 수 있도록 해드려야합니다.
복지겸 그렇습니다. 이렇게 되면 뜻은 다 모아졌다고 하겠습니다. 하하하하... 참으로 마음
이 가볍습니다. 그러고보니 모두들 역시 존경받을만한 분들이올시다. 나는 그래도 조그마한
욕심들은 있는 줄 알았는데 말씀입니다.
배현경 복장군께서는 뭔가 섭섭하신 모양이십니다, 그려.
복지겸 하하하... 글쎄올습니다. 이거 잘못하다가는 크게 오해받겠습니다, 그려.
모두들 ........ (크게 웃는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씬 25 동, 조당
많은 문무신료들이 모여있다.
왕건 경들은 들으오.
신료들 예.
왕건 짐은 오늘 새제국 고려가 열리는 일에 공을 세운 신하들을 선별하여 포상하기로 하
였소이다. 이미 광평성과 내봉성의 관료들이 엄격히 천거하고 가려서 그 등위를 결정하였소
이다. 시중은 짐을 대신하여 전해주시구려.
김행선 예, 폐하.
김행선이 앞으로 나서며 두루마리를 펼쳐 읽는다.
김행선 폐하께오서는 신료들이 올린 공신들의 등위를 재가하시고 오늘 전하라 하심으로 이
에 그 영을 따르는 바이오. 먼저 개국 일등공신을 말씀드리리다. 일등공신에는 홍유장군.
홍유 망극하옵니다, 폐하
김행선 배현경 장군.
배현경 망극하옵니다, 폐하
김행선 능산 장군.
능산 망극하옵니다, 폐하
김행선 복지겸 장군을 봉하신다 하셨습니다.
복지겸 망극하옵니다, 폐하.
김행선 또한 개국 공신 이등에는 염상장군, 김락장군, 만안장군, 견권, 연주장군을 명한다
하셨습니다.
모두들 (한꺼번에) 망극하옵니다, 폐하.
김행선 또한 거국적으로 이 고려제국의 앞날을 위하여 공있는 모든 자들을 다 포상하신다
하셨소이다. 이에 그 기록을 관련된 부서에서 기록하게 될 것이오. 그 해당자는 무려 이천에
이르니 일일이 다 호명할 수 없으므로 여기서 그치도록 하겠소이다.
김행선이 기록을 접으며 자신의 자리에 가서 선다.
왕건 감축하오. 공있는 모든 이들에게 다 감축하오.
신료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왕건 짐은 오늘 참으로 가슴이 메이고 뜨거워지는 감동을 보았소이다. 여기 계신 일등공
신들은 이곳에 오기 전에 자신들 스스로 모든 권력의 요직에 앉지 않겠거니와 조정의 큰 일
에 간섭하지 않겠음을 밝혔소이다. 이 어찌 쉬운 일이겠소이까.
모두들 .......?
왕건 그렇소이다. 짐 또한 어찌 부끄러움이 없으리오. 짐이 비록 백성들을 구하기 위하여
끝까지 신하의 절개를 지키지 못하고 오늘날 이렇게 황제의 위를 받아 이곳에 섰으니 이또
한 부끄러움이라 할 것이오.
모두둘 ...........
왕건 경들 또한 이러한 짐의 마음을 헤아려 스스로 사양하니 어찌 아름답다하지 않겠소
이까. 그렇소이다. 혹시 누군가가 자신의 공을 자랑하며 위세를 부리려 든다면 이 나라는 그
야말로 순식간에 혼란과 투쟁의 자리로 변할 것이오. 공있는 자들이 스스로 권력에서 물러
나기를 청하니, 짐은 너무도 감격스럽소이다.
신료들 (다시 한번) 망극하옵니다, 폐하.
박지윤 폐하, 신 박지윤. 오늘 폐하의 말씀을 들으니 이 나라의 앞길이 훤히 보이는 것 같
사옵니다. 그렇사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작은 것 하나를 자랑하며 그것을 무기삼아 거만을
떨고 남을 얕보며 힘을 자랑하려 하옵니다. 하온데 국가의 막중동량들이 이처럼 스스로 절
제하고 나라를 위해 양보를 거듭하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옵니까. 폐하의 큰 복이시옵
니다.
왕유 그렇사옵니다, 폐하. 광평성의 노대신들은 오늘 모두들 감격하고 있사옵니다. 감축
드리옵니다, 폐하.
신료들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왕건 짐은 이자리에서 공신들의 책봉과 더불어 이 자리를 빌어 황도를 송악으로 옮길 것
을 대내외에 천명하는 바이오.
모두들 ..........
왕건 이 철원은 폐주가 무리하여 옮겨온 황도올시다. 본래 송악이 고려의 황도였으므로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 나라의 기풍을 진작시키고 중흥시켜 명실상부한 제국의 기초를 닦을
것이오. 경들은 그리 아시오.
모두들 예, 폐하.
왕건 이제 몇 달 후면 해가 바뀔 것이오. 그 안에 아직도 산적해있는 국가의 대소사를
해결할 것들이 많소이다. 신료들은 모두 자신의 일들처럼 잘들 처결해주길 바라오.
모두들 예, 폐하.
왕건 자, 오늘은 참으로 기쁜 날이오. 궁한 전각에 연회가 마련되었으니 모두들 크게 즐
기도록 하시오.
모두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왕건의 상기된 표정에서 디졸브되면........
씬 26 동, 연회장
문무신료들이 가득히 모인 곳에서 수십 명의 악공들이 아악을 연주하고 있다. 또한
수십명의 무희들이 검무를 추고 있고 왕건과 오씨와 수인, 그리고 광평성의 원로들, 또한 조
당에 있던 많은 신료들이 화기애애하게 자리를 메우고 있다.
해설 공신, 지금 이곳에 보이는 이름들은 고려사 실록에 나와있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훗
날 다른 여러 기록들을 보면 태조 대에 공신들은 무려 삼천 이백 여명에 이른다. 훗날 왕건
이 삼한을 통일한 이후 통일 과정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까지 합쳐 그만한 공신들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개국 공신은 지금 보이는 것처럼 일등과 이등과 삼등을 합쳐 모두 약 이천
여명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이한 것은 일등 공신들은 모두 한결같이 평민 출
신이었다는 점이다. 이등 공신들이 대부분 호족 출신인데 반하여 평민 출신들이 일등 공신
이 되었다는 것은 당시 후삼국의 정황으로 보아 특기할만한 일일 것이다.
왕건 (술을 마시고) 이 얼마나 좋은 자리인가. 더도 덜도 말고 오늘같은 날만 계속된다면
이 제국이 얼마나 편안하겠는가.
김행선 그렇사옵니다, 폐하. 하오나 짧은 시일 안에 많은 근심들이 걷혔사옵니다. 이제 좋
은 일만 계속될 것이옵니다.
오다련 그럴 것이옵니다, 폐하. 곳곳에서 일어나던 반란의 무리들이 모두 자취를 감추고 있
사옵니다.
유긍달 그렇사옵니다. 이제 폐하의 위엄이 비로소 삼한에 떨치기 시작했사옵니다.
유금필 참으로 좋은 자리이기는 하오나 몇 가지 섭한 것이 있사옵니다. 그 중 하나는 황후
마마께서 피접을 나가계시는 것이옵고 또 하나는 술희아우와 최응시랑이 아니보인다는 것이
옵니다.
능산 그렇사옵니다, 폐하. 참으로 즐거운 자리에 중요한 얼굴들이 아니보이옵니다.
오씨 황후마마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프옵니다, 폐하.
수인 (억지 눈물 닦으며) 신첩또한 그 생각을 할때마다 참으로 눈물이 나서 어쩔 줄 모
르겠사옵니다.
오씨 ........ (또 내숭인가)........ ?
수인 폐하, 가슴이 미어지옵니다.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왕건 어찌하겠소이까. 쉬임없이 우리가 신경을 써야지요. 아우는 좀 어땠는가? 평양에서
의 여러 일들은 다 장계를 받았네.
왕식렴 지난 날 폐주가 그토록 북벌을 주장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사옵니다. 앞으로도 끊
임없이 평양 쪽의 호족들을 잘 관리하여 북으로 뻗어가야 할 것이옵니다.
염상 그렇사옵니다, 폐하. 삼한 중에 우리 고려만이 저 북쪽을 맞대고 있사옵니다. 머지
않아 모두가 폐하의 땅이 될 것이옵니다.
왕건 고마운 말이오, 염장군. 그러나 폐주처럼 무리해서는 아니되오. 서서히 아주 천천히
빈틈없이 북벌을 계속해나가야 할것이오, 염장군
염상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왕건 자, 들 드십시다. 그러고보니 술희 아우 생각이 나는구만. 의제들이 모두들 모였는
데 그 아우만 빠졌소, 허허... 지금쯤 상주에서도 모두들 바쁘겠구먼 그래...
씬 27 사벌주 성 외경
씬 28 동, 성안
아자개는 간신히 정신을 차린 듯 숨을 몰아쉬고 있다. 능애와 백제에서 온 의원이 진맥을
계속 보고 있다.
능애 어떠하시겠는가.
의원 글쎄올사옵니다. 아무래도 ....... 얼마나 견디실지...
대주 어이할고....... 도대체 그토록 약이 없단 말인고.
계모 찾으면 왜 없겠느냐. 백제국의 황제라면서 왜 그걸 못찾겠어?
능애 .......?
계모 아이고....... 지난 번에 술희장군이 꼭 약을 찾아다준다고 했는데. 왜 술희장군마저
소식이 없을꼬. 아이고...... 대주야, 너희 아버님 정말 가시는가보다.
모두들 .............
그때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나으리, 충주에서 박술희 장군이 오셨사옵니다.
계모 (번쩍해서) 뭐라? 술희 장군이 왔어? 술희장군이?
대주들 ..........
계모 어서 뫼시어라, 어서.
문이 열리고 박술희와 최응, 의원1이 들어선다. 최응은 의원을 따라온 하인처럼보인다.
박술희 상부어른, 환후는 어떠하시옵니까.
계모 아이고.... 갈수록 정신을 못차리시네. 이보게 술희장군, 어떻게 좀 해주게나. 어떻게
좀 해보아.
박술희 ........?
계모 백제에서 많은 산삼을 구해왔지만 다 쓸모없는 것들 뿐이라네. 술희장군은 어떻게
약 좀 가져왔는가?
능애들 ..........?
계모 왜 말이 없는가, 이 사람아. 하긴 그렇지... 자네라고 무슨 수가 갑자기 있겠는가.
박술희는 잠시 말이 없다. 그리고 의원1이 들고 온 것을 본다. 그 무렵 최응은 이미
아자개를 보다가 능애들을 본다.
박술희 마님, 어찌 소장이 허언을 하겠사옵니까. 신령한 지초를 구해왔사옵니다.
모두들 ........(충격) ..........?
계모 구했어? 지초를 구했어?
아자개 (죽어가던 눈을 크게 뜬다)
구했어.....?
박술희 예, 상부어른. 힘을 내시오소서. 천년 묵은 지초를 구했사옵니다. 상부어른을 위해
하늘이 내리셨사옵니다.
아자개 구했다고? 그것을 구했다고, 그것을..?
박술희 예, 상부어른. 소장이 어찌 약조를 지키지 않겠사옵니까. 온 고려국을 모두 뒤져서
끝내 찾아냈사옵니다, 상부어른. 이것이옵니다. 이것이 바로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바로
그 지초이옵니다.
박술희가 의원1이 들고있는 지초를 들어 보인다. 모두의 시선이 그 박술희에게 쏠린다.
그 표정에서.............
(끝) (05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