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 128회>
줄거리
사흘 밤낮을 정성으로 달인 약을 먹은 아자개의 몸에서는 뜻밖에도 열이 끓어오르고, 이에 박술희 일행은 옥에 갇히게 된다. 고려에서는 왕건의 부인 유씨가 아들을 생산하고, 오씨는 다음 보위를 생각하며 적장자인 태자 무의 위치를 더욱 확고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힌다. 한편, 백제에서는 오백년 묵은 산삼을 구해 태자들과 최승우 편으로 그것을 보내는데....
씬 사불성 외경(아침)
씬 동, 성 안
아침의 새소리가 청량하다. 약을 달이는 곳에서는 긴장감이 감돈다.
최응과 의원1이 여전히 마치 기도하듯 약탕기 앞에서 그렇게 꿇어
앉아 있다. 약탕기에서 흰 김이 계속 솟고 있다. 사람들이 보고 있
다. 대주와 용개, 보개 그리고 박술희다. 또한 능애와 백제의원, 그
리고 능애의 부장들도 보고 있다. 모두들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해있
다. 드디어 의원1이 떨리는 손으로 화로에서 약탕기를 꺼내어 그 뚜
껑을 연다. 흰 김이 더욱 솟는다. 의원1은 그것을 최응이 받쳐든 약
탕그릇에 붓는다. 아주 성스럽게....
박술희 낭자, 드디어 약이 다 되었사옵니다. 사흘 밤낮을 정성을 들이며 고
은 약이옵니다.
대주 .........
박술희 자, 약을 담았으면 어서 어른께 가져다올리게.
최응 예, 장군.
최응이 받쳐들고 앞서면 의원1이 따른다. 그리고 그 뒤로 박술희와
대주, 용개, 보개들이 이어서 따라간다. 능애와 백제의원이 심각하게
보고 있다.
능애 약이 다 되었다네. 사흘간이나 치성을 드리며 고은 약이야.
의원 .........
능애 약효가 과연 날까 모르겠네. 이거 어떻게 해야하나... 아버님이 낫기
는 나으셔야겠고...... 하지만 그러다가 일이 엉뚱하게 될 수도 있
고..... 아이구 이걸 어쩌나....
씬 동, 아자개의 방
최응이 약그릇을 들고 들어온다. 그 행동이 하도 경건한지라 사람들
은 그저 숨만 죽이고 있다.
최응 상부어른. 봉삼탕이옵니다.
아자개 봉삼탕?
의원1 예, 어르신. 어르신의 그 육종이라는 병에는 이 오래된 삼을 주축으
로 하여 당삼, 백출, 봉령, 황기, 목탄피, 사삼, 단삼, 봉출, 진피같은
약들을 합하여 함께 달인 것이옵니다.
아자개 어 그래, 그래. 약이 많기도 하구먼.
의원1 하오나 그중 이 오래된 봉삼이 없으면 그리 효력이 없사옵니다. 반
드시 나으실 것이옵니다. 드시오소서.
계모 나으리, 드시오소서, 어서요.
박술희 드시오소서, 상부어른.
최응이 그렇게 올리면 아자개가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받아든다. 받
으면서도 계속해 주변을 살핀다. 먹빛처럼 검은 약물을 아자개가 두
려운 듯 보다가 입으로 가져간다.
아자개 (다시 멈추고) 이것이 정말 ........ 나을까? 오 이 흙냄새, 웬 흙냄새
가 이리 날꼬?
용개 드시오소서, 아버님. 흙냄새가 나는 것은 좋은 것이라 하옵니다.
대주 .........
박술희 어서 드시오소서.
아자개 그래. 마....마시겠네. 웬지 자꾸만 두렵네 그려. 천년이나 된 삼을 지
금 마시는게야. 천년........ 천년........ (하면서 마신다)
모두들 ............?
아자개가 다 마시고 입맛을 두어번 다시다가 고개를 외로 꼰다.
아자개 희한하구먼. 아무 맛도 없어. 쓰지도 않고 ........
의원1 이제 되었사옵니다. 푹 주무시오소서.
박술희 주무시오소서.
아자개 그러세. 그리하세.
아자개는 다시 자리에 눕는다. 모두들 보다가 긴장을 풀며 한숨을
쉰다. 계모가 치하를 한다.
계모 이보게, 술희장군. 정말 고맙네. 자네는 아마도 지난 세상에서 우리
나으리와 뭔가 있었을 것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리가 있는가.
어떻게 저런 영약을 구해올 수 있단 말인가, 고맙네 정말 고맙네...
자식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자네가 해주었어.
박술희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사옵니까? 상부어른을 친아버님처럼 뫼시고
싶다고 말이옵니다.
계모 아네, 암, 알구말구. 왜 모르겠는가. 며칠간 고생했네. 그만들 가서
쉬시게.
박술희 예, 대부인 마님.
모두들 예를 올리고 방을 나선다. 그들이 막 나서는데 아자개가 갑
자기 억! 하며 침상에서 벌떡 일어선다. 모두들 본다.
계모 왜그러시옵니까, 나으리?
아자개 속이 ....... 속이 타. 불덩어리가 들어 있는 것 같아. 아이구 뜨거워,
아이구 뜨거워... 온몸에 불이 나네... 아이구.......
의원1 ......... (창백해지며) 몸이 뜨거우시다구요?
아자개 아이구... 아이구....... 아이구 뜨거워.. 아이구 뜨거워......
대주 괜찮사옵니까, 아버님?
아자개 내 몸이 다 타는 것 같아. 아이구 눈이 튀어나올 것 같고 속에 불이
붙은 것 같아. 아이구... 아이구.......
용개보개 아버님!
계모 나으리!
갑자기 아수라장이다. 아자개는 마구 몸을 뒤틀며 자신을 쥐어뜯는
다. 그리고는 못견디겠다는 듯 마구 옷을 벗기 시작한다. 웃통을 벗
어던지고 맨가슴을 쥐어뜯는다.
대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박술희 그... 그러게 말이올시다.
대주 그러게라니요? 의원은 말하시오. 어찌된 일이오? 아버님이 지금 왜
저러시는가 말이오.
의원1 소.....송구하옵니다. 아마도 명현 현상.......인가 싶사옵니다.
대주 명현 현상?
의원1 예, 희귀한 영약은 그 약효가 나타날 때 반응이 아주 격하옵니다.
좋은 징조를 가리켜 명현 현상이라고들 하옵니다.
그러나 아자개의 몸부림은 갈수록 더한다. 마치 미치광이처럼 어쩔
줄 모르며 소리소리를 지른다. 그러다가 마치 숨을 거두듯 눈을 크
게 뜨더니 그대로 실신하여 쓰러진다. 모두들 소리치며 달려간다.
계모 나으리!
대주들 아버님!
박술희도 놀라 어쩔 줄 모르고 최응은 담담히 보고 있다. 아자개는
실신한채 정신을 못차린다.
계모 아이구 나으리... 정신좀 차리시어요 나으리... 아이구 나으리...
대주 이러고도 이게 영약이란 말이오? 여봐라, 밖에 누구 없느냐?
대답과 함께 군사들이 몰려들어온다.
대주 우리는 분명히 약조했소이다. 아버님께서 잘못되신다면 그대들의 목
숨을 받겠다고 말이오.
박술희 아니, 낭자.
대주 뭣들하느냐. 별도의 명이 있을 때까지 이들을 옥에 가두어라.
박술희 낭자, 낭자!
군사들이 그렇게 박술희와 최응, 의원1을 끌고 나간다. 대주가 입을
다물고 보다가 다시 아자개를 본다. 아자개는 입에 거품을 내면서
눈에 흰자위를 드러내고 있다. 그렇게 보는 대주의 표정에서.....
씬 동, 옥사
박술희와 최응, 의원1이 함께 갇혀있다.
최응 이보시오, 의원.
의원1 예, 시랑어른.
최응 쉬잇. 아직까지도 나는 의원의 하인이오. 그보다도 어떻게 된 것이
오? 틀림없이 명현현상이 맞소이까?
의원1 그..글쎄올사옵니다. 실은 소인도 천년짜리 봉삼을 다루는 것이 처음
인지라 명현현상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사옵니다.
박술희 아니 그걸 말이라고 하오? 허허... 이거 잘못되면 어찌한다. 잘못되
면 우리는 죽는 것이오.
최응 (미소) 약이 좋기는 좋은 모양입니다, 박장군. 내가 보는 관상으로는
저 노인은 분명 명줄이 한참 남았습니다. 지금 어떻게 될 일은 아니
예요. 기다려보시지요.
박술희 허허 이거참....
최응 그나저나 대주라는 낭자는 정말로 장군을 좋아하는 것이옵니까?
박술희 그건 또 왜 물으시오?
최응 그 낭자의 표정이 하도 차가워서 그 속마음을 알수가 없기에 물어
보는 말입니다.
박술희 말씀마시오. 평생을 저 낭자때문에 가슴을 썩고 있소이다.
최응 이번 일이 잘 되면 그 일도 또한 풀리지 않겠습니까?
박술희 풀려요? 아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이구.....
씬 능애의 처소
능애와 의원이 심각하게 서로 마주보고 있다.
능애 아버님께서 약을 드시고 속이 뜨겁다고 펄펄 뛰시다가 지금 잠이
드셨다네. 어찌되시겠는가?
의원 (긴 한숨) 그것은 고려에서 온 의원의 말이 맞사옵니다. 명현 현상
이지요. 약효가 그만큼 좋다는 증거이옵니다.
능애 뭐라고? 약효가 좋아? 어이구...
의원 틀림없사옵니다. 아마도 내일 아침이면 그 결과가 눈에 보일 것이옵
니다.
능애 그렇게되서는 안돼. 형님께서 이 일을 알면 얼마나 충격이 크시겠는
가. 고려에서 온 약을 드시고 아버님이 나으시다니. 고려에서 온 약
을 가지고 말이야.
씬 다시 아자개의 방
아자개가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인상을 쓰며 뭔
가 몸을 뒤척인다. 배에서 요란한 소리들이 들려온다. 옆에 앉아잇
던 계모가 눈을 크게 뜬다. 냄새를 킁킁 맡는다.
계모 아이구, 이게 무슨 냄새야? 아이구 이런....... (살펴보다가) 주무시면
서 변을 보시지 않는가?
계모는 그러면서 이부자리를 걷어보다가 기절초풍을 한다.
계모 아이구머니, 이게 무엇이야? 나으리께서 혈변을 보시지 않는가. 피
똥을 보고 계셔. 여봐라, 계 아무도 없느냐? 누구 없느냐?
그러자 대주와 용개 보개가 다시 들어온다.
계모 이것 좀 보아라. 아버님께서 혈변을 보고 계신다. 이게 어찌된 일이
냐? 이게 좋은 일이냐, 나쁜 일이냐?
용개 그러게 말이옵니다. 나쁜 일같진 않사옵니다.
계모 그래?
용개 그동안 아버님 뱃속에 있던 육종 덩어리들이 떨어져쏟아는 것이 아
니겠사옵니까?
보개 그런 것 같사옵니다.
대주 아니다. 그렇다면 왜 혈변을 보신단말이냐. 좋지 않은 일일수도 있
어.
계모 아니다, 대주야. 네 아버님 좀 봐라. 얼마나 주무시는 얼굴이 편안하
시냐? 언제 아프셨나 싶지 않으냐?
모두들 .......... (아자개를 본다)
계모 그렇지 않느냐?
용개 그런 것 같사옵니다, 어머님.
계모 그래. 이걸 치워드려야겠다. 내가 봐서도 좋은 징조인 것 같다. 그
약이 참으로 신기한 묘약이다. 반나절도 안돼서 속에 있는 모든 것
들이 그냥 씻겨져 나오지 않느냐? 아이구 신기하기도 해라.
대주 ....... (그런것도 같다)
계모 그래. 열 자식 소용없어. 박술희 하나가 열 자식보다 나아. 견훤이
황제라고? 그 황제가 해준 게 뭐가 있어. 제 아비가 죽어가는데 해
준 게 뭐가 있느냐 말이야.
대주 ......... (한숨)
씬 백제 황궁 외경
씬 동, 대전 안
견훤이 박씨, 고비, 최승우, 능환, 신검, 양검, 금강과 함께 있다. 견
훤이 신기한 듯 가늘고 긴 산삼 하나를 이리저리 보며 좋아하고 있
다.
견훤 하하하하하.... 그러면 그렇지. 옛말에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였어. 정
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는 것이야.
최승우 그렇사옵니다, 폐하. 오백년 묵은 산삼이라니요. 감축드리옵니다, 폐
하.
능환 그렇사옵니다. 드디어 찾으셨사옵니다, 폐하.
견훤 하하하하.... 암, 암... 하늘이 무심치 않으시지. 이제 나도 얼굴이 서
게 되었네. 드디어 삼을 찾았어. 고려에서 천년묵은 것이 왔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그것이 진품인지 아닌지는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것을 써서는 안되지. 이것이야말로 진품이라 하지 않는가.
능환 그러게말이옵니다.
박씨 이제 뭔가 일이 풀리려나 보옵니다. 그만한 산삼이 발견되다니 말이
옵니다.
고비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아버님께오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사옵니까?
박씨 글쎄... 그 어른은 잘해드려도 늘 얼굴을 찌푸리시는 분이실세. 폐하
께서 이토록 노력하신 것을 알까 모르시겠네.
견훤 아아... 그만 그만. 황후는 이제 그런 얘기 그만 좀 하시구려. 아 이
제 모든 것이 다 잘되어가려고 하지 않소이까? 이것을 어서 전해올
려야지. 어서 상주에 전해야해. 고려에서 온 가짜를 드시고 잘못되
면 어찌되겠는가! 어서 이것을 전해드려야지. 신검이 네가 아우들을
데리고 할아버지를 찾아뵙거라. 파진찬도 함께 가고.
신검 예, 아바마마.
견훤 적지 않은 세월이었어... 우리 부자간은 너무도 오랫동안 참으로 남
남처럼 살았어.
박씨 차라리 남이면 얼마나 좋사옵니까. 그보다 못하니 탈이지요.
견훤 어허, 참 황후하고는... 됐어, 이제는 됐어.... 어서 가서 푹 달여드려
서 아버님이 나으셔야지. 그리고 이리로 뫼셔와야지.
그때 밖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폐하. 상주에서 사람이 왔사옵니다.
견훤 그래? 들라하여라.
상주에서 보낸 능애의 부장이 들어와 예를 올린다. 견훤이 인자하게
웃으며 묻는다.
견훤 허허허허.... 그래. 능애 아우가 보냈다고?
부장 에, 폐하.
견훤 무슨 일인고? 그렇잖아도 좋은 삼을 구했느니라. 막 보내려는 참인
데 왜? 그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고?
부장 예, 폐하. 실은 ........
최승우 아 어서 말씀올려라.
부장 실은 ...... 고려에서 온 삼이 ......
견훤 오 그래.
부장 천년 묵은 진품이 틀림없다 하옵니다. 일이 하도 급박하게 돌아가므
로 능애 장군께오서 소인을 보내셨사옵니다.
견훤 진품이었다고? 그것이 진품이었어?
부장 그렇사옵니다.
견훤 (벌떡 일어서며) 그렇다면 일이 어찌되어가는게야. 그런 영약을 그
리 쉽게 구할 수가 있는가. 진품이라...... 진품이라.....
최승우 폐하. 아무래도 신이 한번 가보아야겠사옵니다. 이미 폐하께서도 그
수령이 오래된 삼을 구하셨사옵니다. 일단은 어떻게 하든 전해올리
면서 폐하의 뜻을 전해야하지 않겠사옵니까?
박씨 일이 또 이상해지는 것 같사옵니다, 폐하.
견훤 안되지, 안되지... 그래서는 안되지. 절대로 안되지. 이 자식이 얼마
나 노심초사하고 구한 약재인가 말이야. 파진찬이 가보게. 절대로
고려의 것을 드시게 해서는 아니되네. 절대로!
최승우 예, 폐하.
견훤 태자들을 데리고 가게. 가서 아버님의 주변도 좀 샅샅이 살펴봐.
최승우 예, 폐하.
견훤 안되지... 그렇게되면 안되지.
디졸브 되면서.......
씬 그 황궁 일각
최승우와 능환이 함께 걸어나오고 있다.
능환 상주에 다려오려면 고생이 좀 되시겠네, 파진찬.
최승우 고생이랄게 있겠사옵니까? 그나저나 고려에서 앞서 설치는 일이 예
사롭지 않아보이옵니다.
능환 그러게말일세. 뭔가 예감이 좋지 않으이. 진작 상주를 힘으로 빼았
아야했어. 노망든 노인네 하나로 해서 폐하께서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고 계시는가 말일세. 힘으로 해야해. 그것뿐이라고.
최승우 ...... (한숨)
능환 참, 자네가 공직장군을 웅주로 가게 했다고 들었는데......?
최승우 그랬사옵니다. 웅주는 지금 우리 백제와 고려가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이옵니다. 그쪽 고려장수는 이혼암이라 하는데 아무래도 곧 고려
를 떠날 사람같사옵니다.
능환 오, 그런가? 왜?
최승우 지난 날, 고려에서 반란을 일으키다가 처형된 환선길이라는 장수와
이혼암은 처남매부 지간이옵니다. 그러니 얼마나 더 버틸 수 있겠사
옵니까? 그래서 보냈사옵니다.
능환 하긴 그렇군.
최승우 불원간 괜찮은 소식이 있을 것 같사옵니다. 허면.......
최승우가 가벼운 예를 올리고 자신의 처소쪽으로 간다. 능환이 고개
를 외로 꼰다. 그러다 중얼거린다.
능환 허긴 뭐... 이 나라에 중요한 대소사는 이제 다 파진찬 자네 몫이지.
나야 늙었지... (사이) 그래도 그렇지. 이젠 아예 나와 의논조차 안하
는군 그래. 어험. 흠...
씬 웅주 성 외경
씬 동, 성 안
이흔암이 부장들과 함께 공직과 마주해있다.
이흔암 우리가 이 촌구석에서 눌러앉아 있는 사이에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어. 우리만 까맣게 모르는 사이에 말이야.
부장들 ........
이흔암 아무튼 공직장군이라고 하셨나요?
공직 그렇소이다.
이흔암 덕분에 아주 많은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소이다. 그렇지않아도 나는
내 매형이 억울한 죽음을 알고 있었소이다. 어차피 내가 모시던 황
제도 죽었고 이제 내가 뭣때문에 고려에 충성을 하겠소이까?
공직 그래서 드리는 말씀이올시다. 우리 백제의 황제 폐하께서는 그대를
중히 쓰시겠다 하시오이다. 함께 손을 잡으십시다.
이흔암 어차피 고려 아니면 백제 아니겠소이까. 하지만 그 이전에 할 일이
있소이다. 내 매형의 원수를 갚아야지요. 철원에는 아직도 나와 매
형을 따르는 무리들이 많이 있소이다. 내 그냥 두지 않을 참이오.
공직 허나 철원땅은 이미 왕건의 세상이올시다. 가능하겠소이까?
이흔암 평생을 전장터로 돌아다닌 나요. 반드시 복수를 할거요. 왕건이를
죽이고 나서 뭘 하든 할참이오. 이까짓 웅주성은 백제에서 가져가거
나 말거나 관심이 없소이다. 다만 나를 좀 도와주시구려.
공직 여부가 있겠소이까. 필요하다면 쓸만한 무사들을 선발하여 보내드리
리다.
이흔암 좋습니다. 일단 좀더 철원소식을 알아보고 나서 내가 부탁을 하게
될거요. 그때 좀 도와주시구려.
공직 그러십시다. 잘해보십시다, 이장군.
이흔암 허허 이거 참... 내가 밖에 나와있는 사이 천지가 다 바뀌어버렸어.
이 이흔암이를 뭘로 보고들 그러는지 모르겠구먼... 아주 따끔한 맛
을 보여주어야겠어. 암.
씬 철원 황궁 외경
씬 동, 황궁 안
왕건이 충주에서 온 장계를 보며 미소짓고 있다. 왕유와 복지겸, 태
평이 함께 해 있다. 그리고 김행선도 보인다.
왕건 이 장계를 보니, 지금까지는 일이 잘 되어가는 것 같소이다. 만약에
그 약의 효험을 보아 아자개가 병이 나으면 이리로 오겠다고 약속
했다는구려.
태평 그야말로 그리만 된다면 세상이 뒤집어질 일이옵니다.
왕유 최시랑이 상주에 가서 일을 아주 잘 보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왕건 최시랑도 열심히 하고있겠지만 사실은 술희아우의 공이 큽니다. 술
희아우는 오랜 세월 두고두고 그곳에 공을 들였어요. 그 인간적인
정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소이다. 잘 되어야 할터인데.......
김행선 폐하께서 큰일을 제치시고 결정하신 일이옵니다. 어찌 안될 리가 있
겠사옵니까.
왕건 상주의 일이 잘 풀리면 이 곳 철원에서의 일을 모두 마무리짓고 송
악으로 천도를 하십시다. 그 일만 풀리면 나라에 이보다 더 큰 선물
은 없소이다.
태평 그러하옵니다, 폐하. 그야말로 사건 중에 큰 사건이 될 것이옵니다.
천하의 인심이 폐하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니까 말이옵니다.
왕건 (끄덕이며) 이제서야 모든 것이 조금씩 안정이 되는 것 같소이다.
송악으로 환도하는 문제는 되도록 백성들의 고단함을 덜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요란하게 하지 않도록 해주시오.
김행선 이미 폐하의 뜻을 받들고 있사옵니다. 본래의 궁이 온전하게 보존되
어 있기 때문에 무리를 할 이유가 없사옵니다.
왕건 그래야지요. 나는 즉위를 하면서 백성들에게 삼년 간 공역과 세금을
면제하겠다고 약속했소이다. 황제가 한번 한 약속은 지켜져야합니
다.
김행선 명심하겠사옵니다, 폐하.
그때 대전내관의 아뢰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폐하, 대전내관이옵니다.
왕건 무슨 일인가. 들라.
대전내관이 들어와 예를 올리며 말한다
대전내관 폐하. 기쁜 소식이옵니다. 충주부인마마께오서 방금 전에 태자 아기
씨를 순산하셨사옵니다.
왕건 뭐라? 충주부인이 태자를 낳아?
왕유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두사람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왕건 (기쁘다) 사내아이를 낳았단 말이지. 충주부인이 사내아이를 낳았어.
허허허 이런. 이런 경사가 있는가. 이런 경사가
기뻐하는 왕건의 표정에서....
씬 수인의 처소
어린 아이가 울고 있다. 상궁들이 아이를 살피고 뜨거운 물을 내가
고 바쁘다. 수인이 밝은 표정으로 갓난아기를 보고 있다. 너무 기뻐
눈물까지 흘리고 있다.
수인 하늘도 무심치 않으셨네. 내게 태자아기씨를 주시다니. 황실에 이만
한 기쁨이 어디있겠는가.
김상궁 예, 마마. 참으로 경하드리옵니다. 이미 대전내관이 폐하께 알려드린
것으로 아옵니다. 폐하께서도 얼마나 기뻐하시겠사옵니까.
수인 기뻐하실테지. 얼마나 손이 귀하셨는가. 그래도 태자가 둘쯤 되어야
지 이나라가 안심이 되지 않겠는가. 아아, 이제 나는 그래도 내 도
리를 조금은 한 것 같네 그려.
김상궁 다시 한번 감축드리옵니다, 마마. 이제 마마께서도 태자마마의 어머
님이시옵니다.
수인 고맙네. 형님께서도 지금쯤 이 사실을 아실테지.
김상궁 어찌 모르시겠사옵니까. 알고 계실것이옵니다.
씬 오씨의 처소
오씨가 눈을 크게 뜨며 박상궁을 보고 있다.
오씨 뭐라고? 아들을 낳았다고?
박상궁 예, 마마. 사내아기씨라 하옵니다.
오씨 이런. 정말 아들을 낳았구먼. 충주아우가 아들을 낳았어..
박상궁 오매불망 기다리던 아기님이 아니었사옵니까, 충주부인마마께서 얼
마나 거드름을 피실런지... 눈에 훤하옵니다.
오씨 ...........?
박상궁 하오나 이 나라에는 오로지 마마의 아드님이신 태자마마께서 유일
한 적장자이시옵니다. 걱정하실 일이 없사옵니다.
오씨 암. 걱정은 누가 걱정을 한단 말인가. 내 아들은 이미 사서삼경을
다 떼고 있어. 어른이 되고 있다는 것이야. 그 핏덩이가 어찌 내 아
들 무와 견줄 수 있단 말인가.
박상궁 그러하옵니다, 마마.
오씨 아들을 열을 낳은들 백을 낳은들 무슨 상관인가. 낳을만큼들 낳아야
지. 황실에 사람이 많아질수록 어른 무서운 줄을 더 알게 될거야.
아니 그런가, 박상궁?
박상궁 왜 아니겠사옵니까, 마마.
오씨 내가 황실의 큰어른이 된지는 오래되었네. 그렇게 되면 자네도 자연
히 상궁중에 어른이 제조상궁의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야. 그 품위
를 잃지 않도록 하게나.
박상궁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마마.
오씨 이제 머지않아 송악으로 황궁을 옮긴다고 하네. 지금은 경황이 없어
서 말씀을 못드리지만 이제 환도를 하게 되면 보란 듯이 우리 태자
무가 다음 보위를 이을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할 것일세. 당연히 그
렇게 되어야하지.
씬 조당
시중인 김행선을 중심으로 하여 문무신료들이 다 모였다. 박지윤,
오다련, 왕식렴, 유긍달, 원극유, 박수문 형제, 왕신, 복지겸, 배현경,
홍유, 능산, 유금필, 태평, 염상, 김락 들이다.
김행선 참으로 좋은 소식들이 겹치고 있소이다. 충주부인마마께서 태자마마
를 순산하셨다 하오이다.
유긍달 (목에 힘주며) 어흠. 흠. 다 하늘이 도우신 것이외다.
오다련 어쨌든 감축드리오이다. 유대부.
유긍달 고맙소이다, 허허허.....
원극유 나라에 황실의 혈손이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암요. 감축드립
니다.
박지윤 그렇소이다. 나라의 경사지요. 또한 폐하의 복이시구요. 사방에서 우
후죽순 일어나던 반란의 무리들이 가라앉고 있소이다. 북쪽에도 폐
하께서 각별히 관심을 베푸시어 장수들이 나가있고 백제와 신라에
면해있는 전선들도 아직 이렇다할 전쟁은 없소이다. 모처럼 나라가
안정되고 있는 것이 보이옵니다.
김행선 그렇소이다. 폐하께서는 이미 환도를 결정하시었고, 내봉성과 더불
어 원로들이 있는 광평성에서 환도에 관한 일을 무리없이 추진하라
하셨소이다. 우리는 환도에 앞서서 이제부터 진정으로 나라의 기틀
을 잡는 일들에 대하여 많은 생각들을 해야할 것이외다.
복지겸 환도는 당연한 것이옵니다. 그러나 삼한이 칼을 맞대고 있는 것 또
한 현실이옵니다. 아직까지도 전국의 많은 호족들이 진정으로 폐하
께 충성하고 있는가는 계속해 전검해 보아야할 사실이올시다. 방심
해선 아니된다는 말씁이옵니다.
배현경 복장군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전장터입니다. 그
것에 대해서 대비를 해야지요.
유금필 평양에도 다시 사람을 보내어 북쪽을 경계해야 하지않겠사옵니까.
원극유 그래야지요. 역시 왕식렴공과 염상장군이 가주셔야겠습니다.
두사람 예, 그리하겠사옵니다.
김락 소장 뿐만 아니라 여기 배현경, 홍유, 능산 장군같은 분들은 너무
오래 황도에 있었사옵니다. 이제 전선으로 갈 때가 되지 않았사옵니
까.
능산 거 김장군께선 듣던 중 시원한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가 비록 공신
들이라 하나, 나라를 위해 일체의 중요한 요직에는 아니가기로 하였
소이다. 그렇다면 갈 데가 어디있겠소이까. 전장터밖에 더있겠소이
까.
배현경 하하하하....... 아주 옳은 말씀이오. 장수는 허벅지에 살이 쪄서는 아
니됩니다. 말을 타지 못하니까 말입니다. 병부렴께서는 시중어른과
상의하시어 우릴 좀 변방으로 보내주시지요.
홍유 어쩌면 생각이 그리도들 똑같습니까. 좋은 말씀입니다. 각자 가고싶
은 곳을 골라 전장터로 가기로 하십시다.
김행선 허허허.. (탁상치며) 장군들의 그 호기가 참으로 좋소이다. 그러나
지금은 환도의 일이 더 급합니다. 그리고 상주에서 아주 큰 일이 추
진되고 있소이다. 그 일만 잘 되면 우리 고려가 삼한 중에서 가장
백성들의 신망을 받는 나라로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그에 앞서서
병부는 더욱 철저히 군을 정비하여 주시고 내봉성과 광평성 그리고
기타 관부에서는 환도준비를 더욱 서둘러주시기 바랍니다.
모두들 예, 시중어른.
복지겸 그리고 염려스러운 것이 또 하나 있사옵니다.
김행선 말씀하시오, 복장군
복지겸 우리는 그동안 지난번에 처형된 역신 환선길의 처남인 이흔암 장군
을 아직까지 그대로 전선에 두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걱정이 됩니
다.
태평 이흔암 장군은 비록 환선길의 처남이라고는 하나 이렇다할 반란의
징후는 없었습니다. 폐하께서는 소란을 원치않으시니 좀더 두고보시
지요.
원극유 그러나 조심은 해야겠지요. 모처럼 많은 소란들이 가라앉고 있는데
또다른 불씨가 생겨서는 아니되니까 말입니다. 좀더 두고보십시다.
김행선 그렇게들 하십시다. 폐하께서는 그저 모든 것을 인정으로 다스리라
하십니다. 그 뜻을 받들어 뫼셔야지요. 어허... 그나저나 상주 일만
잘 되면 참으로 경사 중에 경사가 되겠는데.....
씬 상주 사불성 외경
씬 동, 성안 아자개 방
아자개가 여전히 잠을 자고 있다. 아주 편안한 모습이다. 코를 계속
해 곤다. 계모와 대주, 용개, 보개가 안도의 눈빛으로 보고 있다.
계모 벌써 사흘째 이리 주무시는구나. 얼마나 편안한 모습이시냐. 이제는
사신 것 같다. 사신 것 같아요.
대주 ........
용개 그런 것 같사옵니다, 어머님. 역시 그 영약이 효험이 아주 컸사옵니
다. 참으로 대단한 약이옵니다.
보개 놀라운 일이옵니다. 몸 속에 들어있던 그 육종의 덩어리들이 모두
다 쏟아져 나왔사옵니다.
계모 대주야. 이래도 인정을 아니하겠느냐? 아버님이 사셨다, 이것아.
대주 ......... (까닭모를 한숨)
계모 왜, 너는 기쁘지 아니하냐?
대주 아니옵니다.
계모 헌데 왜그렇게 한숨을 쉬어? 땅꺼지겠다. 아참, 박술희, 그 박장군은
어찌되었느냐? 아직도 옥에 갇혀있느냐?
용개 예, 어머님.
계모 이런, 이런. 대접이 그래서야 되겠느냐. 아버님의 은인이 아니냐. 무
엇들 하느냐, 어서 가서 풀어주어라. 어서 가보아.
용개 보개야, 어서 가보거라.
보개 예, 형님.
보개가 그렇게 급히 나간다. 계모는 좋아서 싱글벙글이다. 그러나
대주는 여전히 한숨만 쉬고 있다. 그 표정에서......
씬 동, 성 안 어느 일각
능애가 어쩔 줄을 모른다. 의원도 마찬가지고 부장 하나도 그렇다.
능애 아버님이 나으셨단말이지?
의원 예, 장군. 몸 속에 있던 병균의 덩어리들을 모두 쏟아내시고 오늘
사흘째 내리 주무시기만 하신다하옵니다. 나으신 것이옵니다.
능애 (어쩔 줄 모르고) 이런 것도 모르고 지금 황도에서 사신들이 오고
있다고?
부장 예, 장군. 파진찬과 함께 태자마마 세분이 모두 함께 오시옵니다. 오
백 년 묵은 산삼을 구하셨다 하옵니다.
능애 오백년....? 구할려면 진작 구할 것이지. 이제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
란 말인가. 오천년을 묵은들 무슨 소용이 있어. 어이구..... 어쩌나 이
걸 어쩌나..... 그래 지금 어디쯤들 왔는고?
부장 제가 조금 앞서 온 것이니 성밖에 이미 들어서고 계실 것이옵니다.
능애 어이구... 어이구......
씬 사불성 근처 길
최승우와 신검형제들이 수하들을 이끌고 오고 있다. 최승우의 표정
은 그리 밝지가 않다. 신검이 말한다
신검 이번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꼭 할아버님과 아버님이 화해를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승우 그렇사옵니다, 태자마마. 꼭 그리 되셔야지요.
양검 하지만 그동안 지켜본 것으로 보면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닌 것 같
사옵니다. 두분의 성격이 워낙 차이가 나는 것 같사옵니다.
금강 그래도 화해는 하셔야지요. 백성들이 어떻게 보겠사옵니까.
양검 할아버지께서 그러시니 어찌하겠느냐. 속모르는 소리 말아라.
금강 ........
최승우 어렵게 구한 영약이옵니다. 이 약이 꼭 소용이 되어야할터인데.... 이
제 성에 다 와가는 것 같사옵니다.
멀리 성이 보여온다. 그들 그렇게 다가가면
씬 동, 성 안 아자개의 방
잠든 아자개 주변으로 박술희, 최응, 의원1, 대주, 용개, 보개, 계모
가 보고 있다.
박술희 대부인마님, 감축드리옵니다. 하늘이 무심치 않아 결국 상부어른을
살리셨사옵니다.
계모 (감격에 울며) 왜 아니겠는가, 술희장군. 하늘이 살린 것이 아니라
자네가 살렸네 그려.
박술희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하늘의 뜻이 아니고서는 이리 될 수가 없사옵
니다.
최응 그렇사옵니다. 천년의 영약을 감히 누가 만날 수 있겠사옵니까. 이
는 하늘이 정하신 뜻이옵니다.
계모 아무튼 고맙네. 술희장군이 고마워.
박술희 아니옵니다. 이는 대부인 마님의 정성과 대주낭자, 그리고 여기 계
신 용개 장군 형제분의 효심의 덕이옵니다. 다시 한번 감축드리옵니
다.
계모 대주야. 아 뭐라고 말을 좀 해보거라. 고맙다고 말을 해보아.
대주 ..........
계모 아니다. 이럴 게 아니다. 용개야, 가서 박장군과 일행들에게 술 한상
잘 차려올리거라. 그동안 얼마나 걱정이 많았겠느냐.
용개 예, 어머님. 자, 박장군 가십시다. 모처럼 오늘 노고를 푸시지요.
박술희 고맙습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대부인마님. 대주낭자, 다시 한번
감축드립니다.
대주 ...........
계모 벙어리가 됐어? 대주는 아주 벙어리가 된게야, 이런 쯔쯔쯔...
박술희들은 그렇게 나가고 계모는 계속해 아자개의 얼굴을 닦아주
고 있다. 대주는 여전히 말이 없고....
씬 동, 성 안 어느 방
술상을 놓고 용개 형제와 박술희, 의원1, 최응이 마주해있다.
용개 많이 드시오, 박장군.
박술희 예, 장군. (마시고) 내 평생 이 나이까지 살면서 이렇게 기분이 좋은
날은 처음입니다.
용개 우리도 그렇소이다. 사실은 대주도 그럴 것이외다. 그 아이가 원래
말수가 적어서 그렇지 왜 고마움을 모르겠소이까.
박술희 허허... 뭐 꼭 고마움을 알아달라는 것은 아니오이다.
용개 그렇지가 않소이다. 사실 적지않은 세월을 박장군은 아버님과 우리
대주에게 정성을 다했소이다. 그리고 오늘 이런 일까지 오게 되었어
요. 박장군이 아니면 어찌될 뻔했소이까.
박술희 어인 말씀을......
최응 이제 결과는 다 나왔사옵니다. 소인이 주제넘은 말씀을 드리자면 이
제부터는 장군과 어르신들께서 약속을 지키실 때이옵니다.
용개 약속?
최응 우리 박장군께오서는 상부어른을 평생 모시고 싶어하시옵니다.
용개 아 그일 말인가? (박술희에게) 그 약속은 지켜야지요. 아닌 말로 우
리 형님인 백제의 황제가 볼 때 우리는 서자이고 계모의 아들들이
올시다. 그 곳에 간다 한들 좋은 대접을 받을 리가 없지요. 어려서
부터 좋은 사이도 아니었고 말이올시다.
보개 그건 그렇습니다. 나도 백제로 가기는 싫습니다.
용개 이미 아버님께서 연세가 원만하십니다. 지금 살아나셨다 하더라도
얼마를 더 사실지 모릅니다. 그 이후에는 우리들의 운명도 모를 일
이지요. 고려로... 아버님을 뫼시고 가겠소이다.
박술희 하지만 소장은 대주낭자가 걱정이옵니다.
용개 그 동생도 결국은 따를 것입니다. 이미 백제로 가기에도 너무 늦었
어요.
박술희 그렇게만 된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그렇게 애가 타하는 박술희를 보고 최응이 미소를 짓는다. 박술희는
참으로 진지하다. 대주 때문에.......
씬 동, 성문 안
열려진 문 안으로 최승우 일행들이 들어서고 있다. 그들은 성 안 어
느 곳에서 말에서 내려선다. 기다리고 있던 능애들이 다가온다. 저
만큼 대주가 보고있다.
능애 파진찬이시구려. 어이구 태자마마들도 오셨사옵니까.
신검들 예, 숙부님.
최승우 좀 어떻소이까? 어렵게 약을 구하여 쉬지 않고 달려왔소이다.
능애 늦었소이다.
최승우 예?
능애 이미 아버님께서는 고려에서 온 약을 드시고 기력을 회복하고 계십
니다. 다 소용없게 되었어요.
신검 숙부님, 그래도 온 나라를 샅샅이 뒤져 구해온 영약이옵니다. 할아
버님께서도 받으시지 않겠사옵니까?
대주가 다가온다. 태자들이 인사를 하고 최승우도 예를 올린다.
신검 고모님, 그간 안녕하셨사옵니까.
대주 예, 태자마마. 참으로 먼 길들을 오셨사옵니다. 허나 늦은 것 같사옵
니다. 어쨌든 오셨으니 안으로 드시지요.
최승우는 모든 것을 알아챘다. 긴 한숨을 쉬며 허공을 본다. 그런
그의 고뇌에서.......
씬 아자개의 방
아자개가 눈을 떴다. 계모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계모 사셨사옵니다. 나으리께서는 사셨사옵니다. 아이구 세상에...... 술희
장군이 아니면은 이렇게 깨어날 수도 없었사옵니다.
아자개 살았어?......내가 살았어? 내가 살았어요?
계모 예, 나으리.
아자개 하긴 그래. 아주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졌어요. 어깨와 손발이 힘이
나.......
계모 어찌 아니그렇겠사옵니까. 마실 것 좀 올리오릴까?
아자개 아니오. 실감이 안나는구먼. 내가 살다니... 허허허허....... 내가 살다
니... 내가 살았어요, 부인. 허허허허........
계모 예, 나으리.....
그때 대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대주(E) 어머님, 대주이옵니다.
계모 그래, 들어오너라.
대주 (들어서서) 견훤오라버니가 조카님들을 보냈사옵니다. 들어들 오시
지요.
최승우와 능애, 태자들이 들어선다. 아자개는 벌써 표정이 바뀌어버
린다. 그들은 모두 깊이 예를 올린다. 황제의 아버지이다.
최승우 어르신. 환후에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사옵니까. 대 백제국 황제폐하
의 영을 받들어 여기 귀한 영약을 뫼셔왔사옵니다.
아자개 ......... (시큰둥하다)
신검 할바마마. 소손들 역시 참으로 걱정이 많았사옵니다. 쾌유하신 모습
을 뵈니 망극하옵니다, 할바마마.
양검금강 (함께) 망극하옵니다.
최승우 (산삼보퉁이 주며) 여기 폐하께오서 전국 방방곡곡을 뒤져 찾아낸
오백년 수령의 삼이옵니다. 삼가 올리옵니다.
그래도 아자개는 반응이 없다. 계모도 시큰둥하다. 대주가 보다 못
해 말한다.
대주 오라버니께서 잠을 못주무시며 신료들과 백성들을 재촉하여 얻은
영약이옵니다. 받으시오소서, 아버님.
아자개 나 다 나았다.
모두 ........
아자개 나 나았어.
신검 할바마마. 아바마마의 정성이시옵니다.
아자개 아플 때 와야지..... 나 고려에서 온 약이 아니었으면 벌써 이 세상
사람 아니었다. 죽은 뒤에 약이 무슨 필요 있냐. 안그래?
최승우 어르신. 어르신은 우리 백제국으로 모시면 태황제가 되시옵니다. 부
디 아드님이신 황제폐하의 효심을 받으시오소서.
계모 그 알량한 효심도 효심이라고 하시오? 아니 고려에서 보내오는 약
을 백제에서는 왜 못와? 고려에서 막상 약을 가져오니까 마지못해
서 구해온 것이 아닌가 말이야. 그거 하나로도 다 알 수 있어요.
신검 할마마마. 그렇지 않사옵니다. 소손들은 보았사옵니다. 아바마마께오
서 ......정성을 다하시어 ........
아자개 됐다. (손을 저으며) 됐으니 그만들 가보아.
최승우 어르신. 이렇게 하셔서는 아니되옵니다. 대 백제국 황제폐하의 아버
님이시옵니다. 세상이 보고있사옵니다. 이제 그만 아드님을 용서하
시고 백제국 황도로 가시오소서.
아자개 황도? 그런 소리 말게. 난 이미 갈 곳이 따로 있어. 갈 곳이 있단
말일세.
최승우 어르신.......
그때 용개와 보개, 박술희들이 함께 들어선다. 갑자기 아자개가 좋
아하며 박술희를 본다.
아자개 왔네, 왔구먼. 술희가 왔어.
박술희 일어나셨사옵니다, 상부어른.
아자개 일어났네. 한잠 잘 자고 났어. (박술희가 최승우들을 보자) 아, 이
사람들? 백제에서 온 사람들일세.
그러자 순간적으로 최승우와 박술희, 다시 최승우와 최응의 시선이
교차된다. 묘한 긴장감이 맴돈다.
박술희 소장 박술희라고 하오이다.
최승우 이 사람은 대 백제국 파진찬 벼슬의 최승우라고 하오. 여기 세분은
백제국의 태자마마시오.
신검들 .......?
최승우 박장군 옆에 계신 분들은.....?
최응 소인은 최응이라 하옵니다. 여기 계신 분은 의원이십니다.
최승우 (끄덕이며) 큰일들을 하셨소이다. 백제국의 어르신을 보살펴 드렸으
니 마땅히 하례를 드려야겠지요. 고맙소이다.
박술희 그리 말씀해주시니 고맙사옵니다. 저희는 그럼 이만......
아자개 아, 아닐세. 술희장군은 남고 니들은 그만 가봐.
최승우 어르신.....?
신검들 할바마마.
아자개 그 인삼보따린지 산삼보따린지 어서 싸들고 가.
모두들 ..........
아자개 아 어서 가지 않고 무얼해.
계모 아 가라고 하시지 않는가.
능애 너무하시옵니다, 아버님. 이것이 벌써 몇번째이옵니까. 얼마나 어렵
게 구해온 약인데 이렇게 구박하여 보내시옵니까. 참으로 너무하시
옵니다, 아버님.
아자개 너무한 것 없다. 아 나 힘들어, 어서들 가보라니까 그러네.
최승우 하오면 일단 물러가겠사옵니다. 몸조리 잘하시오소서.
아자개 일단이 아니고 그냥 가보아. 자네들을 보면 또 병이 나. 가보라고.
신검들 (울며) 할바마마... 제발 노여움을 푸시오소서. 할바마마....
아자개 아이구 귀찮아 죽겠네. 아 어서들 좀 나가라고 해 어서...
그런 아자개의 표정에서.........
(128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