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 136회>
줄거리
씬 벽진군성 신검의 군영(낮)
지난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신검이 원망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다. 제
장들이 참담하게 보고 있다.
심검 이미 절 보고 죽으라고 하시는 아버님이십니다. 어버님이기 이전에
그 분은 이 나라의 황제폐하이시옵니다. 어찌 명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능환 (한숨) 뭔가가 조금 잘못 된것 같사옵니다.
신검 잘못되었다구요? 무엇이 말이옵니까? 아무 것도 잘못된 것은 없사옵
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님의 변함없으신 모습이십니다.
박영규 참으시오소서 태자마마, 본래 불처럼 급하신 그 성정을 어찌 하겠
옵니까? 조금 더 계시면 폐하께서도 화가 풀리실 것이옵니다ㅣ.
능애 하지만 이 번만은 의외로 아주 강경하신것 같네. 예전에는 이렇게 까
지는 하시지 않으셨어
신검 아닙니다. 숙부님, 언제나 똑 같은 모습이십니다. 이 번에는 아주 결
심을 하신 것이지요. 너는 죽는 것이 낫다. 여기서 죽던지 아니면
어디 네 재주를 한번 보여보아라. 바로 그것이옵니다.
능환 폐하께서는 대야성을 함락하시고 또 많은 신라 땅을 공략하여 얻으
셨사옵니다. 하지만 이 곳은 그 반대로 많은 것을 잃었사옵니다. 당
연히 진노하실 만 하옵니다. 그러나 폐하의 그 진노를 얼마든지 만
류할 사람이 있음에도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옵니다. 오히려 부추기
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능애 누가 말이오이까? 누가 그런.............?
능환 누구는 누구 이겠소이까? 그럴만한 사람이 또 있겠소이까?
박영규 .....................?
능애 파진찬을 말씀하시는 것이오이까?
능환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소이다.
박영규 ................................?
신검 어쨋든 싸우라는 명을 재촉하고 계시옵니다. 이 것은 군령이옵니
다. 지킬 수 밖에요. 잘 된 일입니다. 저는 정말이지 이 곳에서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영규 태자마마 죽기는 왜 죽사옵니까? 아 번 일은 퍠하께서 태자마마만
을 탓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기 있는 우리 모두를 책망하시는 것이
옵니다. 소장은 물론이고 폐하의 아우분이신 여기 능애 장군님도 또
이찬 어른도 그리고 태자마마도 모두 폐하의 신하이옵니다. 신하말
이옵니다.
그들 .....................
박영규 송구한 말씀이오나 신하는 어느 누구도 그 주인이신 폐하를 원망하
는 말을 해서는 아니되옵니다. 무릇 모든 신료는 언제나 그 명령을
죽음으로서 이행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잇어야 하는 것이
옵니다.
능환 .................................?
박영규 섭섭한 생각을 그만 걷으시고 한 번 해보도록 하시오소서.? 못할 것
도 없사옵니다. 우리에겐 아직도 오 백이 넘는 철기군 결사대가 있
사옵니다.
능환 어려운 일이올시다. 이미 사기가 다 죽었어요.
능애 아니올시다. 그렇게 만 생각할 일은 아니예요. 듣고보니 조카사위
의 말이 일리가 있네. 물론 폐하께서 너무 하신 것은 사실이네. 그
러나 그게 어디 꼭 우리 모두를 다 죽으라고 하시는 것은 아닐 것
일세. 결국은 한 번 더 옹골차게 싸워 보라는 말씀이실게야.
박영규 그렇사옵니다. 이찬 어른 우리 한 번 해보시지요?
능환 ........................
신검 어차피 한 번 죽기를 결심한 몸이옵니다. 아직 군사가 조금 남아
있으니 마지막 공격을 해보십시다. 이찬. 이미 우리는 궁지에 몰렸
고 이래저래 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능환은 말이 없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긴 한숨을 쉬며 말한다.
능환 분명 어리석은 싸움을 하는 것이옵니다. 그러나 폐하의 영이라 하시
니 갈 수 박에요. 하지만 값없이 목숨을 버릴 수는 없사옵니다. 박
장군
박영규 예,
능환 태자마마는 폐하의 다음 자리를 맡으실 귀한 분이시오. 우리가 반
드시 지켜뫼셔야 하오. 별도의 정예병들을 함께 붙이도록 하시오.
박영규 예, 옳은 말씀이십니다. 제가 옆에 설 것이옵니다.
신검 별 말씀들 다 하십니다. 나는 부끄럽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제일
선봉에 서서 성벽을 열 것입니다. 제일 먼저 죽을 것이예요.
모두들 ..........................?
신검 저 성을 정면 돌파 하도록 하십시다. 군사를 매복하는 일은 이미
우리가 한 번 보았기 때문에 그 방법을 다시 쓰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면으로 한 번 부디쳐 보도록 합시다.
박영규 그렇게 하시지요 태자마마, 궁즉 통이라 했사옵니다. 죽기로 해본
다면 아니 될 것은 없사옵니다.
모두들 고개를 끄떡인다. 박영규가 다시 주위의 부장들에게 소리지
른다.
박영규 부장들은 들어라. 우리는 다시 공격을 감행 할 것이다. 전투대열을
갖추어라. 전투준비를 하라.
부장들 예, 장군. (복창 한다) 전투준비를 갖추어라. 천투준비를 갖추어라.
다시금 소요가 이는 그모습들에서........
씬 벽진군 성 외경
씬 벽진군 성 안
이총언과 그의아들 영, 그리고 부장들이 함게 모여 있다.
이총언 백제군이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고?
영 예, 아버님. 밖에 나가 있는 첩자들이 그렇게 보고하여 왔사옵니다.
아마도 오늘 밤에 다시 공격해 올 것 같사옵니다.
이총언 지독한 놈들이로구나. 그만큼 타격을 입었으면 더는 엄두를 못낼
터인데 또 해보겠다고?
영 아마도 죽기를 작정한 모양이옵니다.
이총언 그럴 수도 있겠지. 이 곳에 와 있는 것은 백제국의 태자라고 들었
다. 제 아비는 대야성을 함락했는데 저는 저지경이니 그럴 법도 하
다. 그렇다면 이번 전투는 예사롭니 않은 전투가 될 것이니라.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돼.
부장 그러하옵니다. 여러모로 불리한 줄 알면서도 온다는 것은 죽기 아
니면 살기라는 배수의 진을 친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이총언 맞는 말이다. 독이 오른 군대는 무서운 것이다. 그에 적절한 충분
한 전략을 세우지 않으면 아니 된다.
영 허면 어찌하실 것이옵니까?
이총언 (생각하다가) 정면으로 대응하다가는 우리도 큰 희생을 각오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 방법은 좋지가 않아. 이 번에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영 다른 방법이라 하시면.....?
이총언 글쎄다. 조금 위험하기는 하지만 방법이 있기는 있다마는.......과연
저들이 속아 줄런지가 의문이로구나. 백제군 속에는 백제의 견훤왕
이 총애하는 능환 이라는 늙은 책사가 함께 있다구 들었다. 지난번
에는 저들이 만용을 부리다가 우리에게 당했지만 이번에는 달라.
음....방법이 있기는 있는데......
모두들 ......................?
이총언 어쨋든 별도의 지시가 있을 것이니 모두들 군사를 정비하고 각자
영을 대기하라.
부장들 예, 성주님.
이총언 그래, 이번에는 그 방법밖에는 없어....
혼자 중얼거리는 이 총언의 표정에서.......
씬 동 성안
황혼이다. 성안 계곡 쪽으로 길게 이동해 올라가는 군사들이 보인
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쪽에는 군사들이 성루에 배치되고 있다. 그
모습들을 이총언이 성루 한 쪽에서 보고 있다. 긴장한 모습으로 보
고 있는 그 모습에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씬 동 성밖 신검의 군영(밤)
군사들과 마필들이 어지럽게 움직이며 대열을 맞추고 있다. 그 한
쪽에서 비장한 모습으로 신검이 먼 벽진성을 보고 있다. 그는 몇 번
이고 심호흡을 한다. 능애와 능환, 박영규도 그렇게 보고 있다. 잠시
후 부장 하나가 다가와 군례를 드리며 말한다.
부장 태자마마, 벽진성에 나가 있던 첩자들이 돌아왔사옵니다.
박영규 오, 그래 적진의 동향은 어떠하다든가?
부장 저들은 이미 우리의 공격을 눈치채고 방어태세에 들어가 있다 하
옵니다.
능애 매복군은 없다 하던가?
부장 예, 장군. 여러 곳을 샅샅히 살폈사오나 매복군은 없다 하였사옵니
다.
박영규 생각대로인 것 같사옵니다. 저들도 이번에는 우리와 정면 승부를
걸겠다는 것이옵니다.
능환 하지만 이총언 이라는 장수는 꾀가 많은 사람이외다. 우리가 공격
을 하더라도 순간순간 저들의 움직임을 잘 살펴서 대치해야 할 것
이외다. 무조건 방어만 할 사람이 아니올시다.
신검 어차피 최후의 일전입니다. 성만 넘으면 되는 것이지요. 자, 준비들
이 되었는가?
부장들 예, 태자마마.
신검 지금부터 군을 공격지점까지 이동시킨다. 그리고 한 식경 후에는
전군이 성을 넘는 전투에 모두 투입하게 될 것이다. 전 장졸들은 성
을 넘지 못하면 결코 돌아가지 못한다. 각오들을 새롭게 할 것이다.
장졸들 예,
신검 출병하라. 가마대가 선두를 서라.
박영규 출병하라.
부장들 출병하라.
드디어 기마대가 앞을 서고 신검과 장수들이 그 뒤를 따르기 시작
한다. 오백여 남은 구사가 모두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모습에
서..........
씬 벽진군 성루
군사들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백제군을 가디리고 있다. 폭풍전
야, 전투를 앞에 둔 군사들은 무거운 정적에 쌓여 있다. 그 일가 어
느 곳에서 이총언 부자가 먼 어둠 속을 보고 있다.
영 아버님, 적군이 이리로 오고 있사옵니다.
이총언 (끄떡인다) 그래 보고를 들었다.
영 아버님은 우리 군사를 반으로 갈라 그 한 쪽을 뒤로 보내셨사옵니
다. 어인 까닭이시옵니까? 예비군으로 두었다가 한 쪽이 피곤해지
면 교체하여 투입시킬 것이오니까?
이총언 허허허. 그럴 여유가 어디에 있느냐? 저들이 죽기살기로 나오는
데...?
영 그런데 왜?
이총언 한동안 싸우다가 성문을 열어 주려는 것이다.
영 아버님? 성문을 열어 주다니요?
이총언 적군은 이미 화가 머리까지 올라들 있어서 오로지 성문을 여는 것
에만 신경이 가 있다. 되도록 새벽까지 계속 끌다가 날이 밝기 전에
못이기는 척 한쪽 모서리를 열어 주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들이
성벽을 넘고 다시 성문을 열고 들어서면 우리는 성안 양쪽 야산에
숨어 있다가 그대로 내려 덮치는 것이다. 즉 지친 저들을 끌어드려
서 한참 기운이 넘치는 우리 군사들로 하여금 번개처럼 치는 전법
이다.
부장1 가능하옵니다. 마침 우리 성 안은 그런 입지적 여건이 좋사옵니다.
영 저들이 과연 속겠사옵니까?
이총언 바로 그것이다. 이 전법은 적을 충분히 속이지 않으면 안된다. 따
라서 우리 군사도 저들이 충분히 속도록 전력으로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부장들에게만 일부 극비로 이 작전 내용을 전한 것
이야. 견훤의 책사라는 그 늙은이가 마음에 걸리기는 한다마는 적들
은 지금 급하다. 급하면 물게 되는 법이다. 해보자꾸나. 실패해도 나
쁠것은 없다.
영 예, 아버님. 듣고보니 마음이 설레옵니다.
이총언 허허허. 나도 그렇다. 잘 하면 저들을 전멸 시킬 수 있어. 자, 너는
그만 후방으로 가서 부장들을 지휘 하거라. 새벽녁에 우리가 퇴각하
는신호를 올리면 그 때 부터는 너의 일일 것이니라,
영 예, 아버님.
영이 그렇게 물러 간다. 이총언이 먼 성 밖을 본다. 서서히 어둠
속에서 백제군이 몰려 오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벌판을 메운
횃불들이 마치 파도처럼 출렁이며 몰려오기 시작한다.
이총언 적군이 가까히 온다. 전군은 적을 맞을 준비를하라.
부장들 예, 성주님. (복창한다) 적군이 가까이 온다. 전원 저투준비 하라,
전원 전투준비하라.
소라가 울고 북소리가 곳곳에서 들려 오기 시작한다. 보고 있는 이
총언의 표정에서.............
씬 동성밖 신검의 군영
신검군들은 성 밖 가까이 이르렀다. 어느 쯤에 다다르자 신검이 군
사를 멈추게 한다. 모두들 일자로 늘어서서 심호흡을 하고 있다. 벽
진성도 이미 불야성이다. 모두들 마른침을 삼킨다.
박영규 놈들이 단단히 준비하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날이 밝도록 싸워야
할 것이옵니다.
능애 의외로 쉽게 끝날 수도 있네. 우리 군사들은 오늘 모두 여기서 죽
을 각오들일세. 전투는 군의 사긱 결정하는 것이야.
능환 적은 병력으로 큰 병력과 싸울 때는 군의 통솔력이 전투를 좌우
하옵니다. 각 공격군과 공격군의 연락체계를 확실하게 세우고 적군
의 작전을 파악하는데로 우리도 빠르게 작전을 변화시켜야만 이 전
투를 원만히 치룰 수 있사옵니다. 성을 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적
들이 어떤 계략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옵니다.
신검은 그러나 대답이 없다. 그저 전의만 불타오를 뿐 이들의 조언
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능환이 다시 줘지 시킨다.
능환 태자마마, 소인의 이야기를 아시겠사옵니까?
신검 모든 결과는 성을 넘으면 다 끝나는 것이오. 지금 이 전투에서 무
슨 작전이 필요하겠습니까? 이찬의 이야기는 성을 넘고 난 뒤에 듣
겠습니다.
능환 태자마마, 우리는 적의 작전을 모르옵니다. 지금부터 주의하셔야
하옵니다.
능애 이찬어른, 태자마마의 말씀이 맞사옵니다. 지금은 오로지 성을 넘
는 길만이 있을 뿐이옵니다. 모든 것은 그 다음에 다시 이르시오소
서,
능환 긇지가 않소이다. 지금 이럴 때일수록...
박영규 자, 태자마마 영을 내리시오소서. 공격준비가 끝난지 오래이옵니다.
능환은 그만 더 이상 말할 기회를 잃고 만다. 신검이 주변을 돌아
보다가 손을 높히 든다.
신검 들으라 장졸들이여. 오늘 우리는 이곳에서 그동안 당했던 모든 치
욕을 한꺼번에 저들에게 돌려 줄 것이다. 저 성은 새벽이 되면 우리
의 것이다. 전군 공격하라.
능애 공격하라.
박영규 공격하라.
명령과 동시에 북소리와 소라가 울기 시작한다 . 그리고 기마대가
달려나간다. 한 쪽으로는 성문을 부수는 충차들이 움직이고 있고 방
패부대와 궁수부대, 그리고 비루, 운제같은 장비들이 성으로 다가가
고 있다. 포차는 쉬임없이 돌을 성으로 날려보내고 있다. 능애와 부
장들이 갈라지며 좌우를 공격해 들어가고 있다. 신검이 목이 쉬어라
계속 독전하고 있다.
신검 반드시 함락하라. 성을 넘어라. 성을 넘어라.
그야말로 치열한 접전이다. 어둠 속에 보이는 그 규모는 대야성의
전투와 그렇게 다를 것이 없다.
씬 동 성안
곳곳에 성벽과 망루가 부서져 나간다. 망루가 무너지면 곧 바로 군
사들이 다가와 가죽으로 그 곳을 보수한다. 관찰병은 그 망루에서
적군의 공격방향을 관측하며 수기로 신호를 보내고 있다. 화살부대
가 비처럼 살을 쏟아붓고 있고 돌을 굴리고 통나무를 굴려 내린다.
혈전이다. 군사들이 수없이 살과 석포에 의해 죽어나간다. 이총언이
독전하고 있다.
이총언 적은 별것 아니다. 막아라, 화살을 쏘아라. 돌을 굴려라. 저기 올라
오는 운제군사들을 먼저 막아라.
부장1 충차가 성 문을 부수고 있다. 저 쪽으로 화살을 쏘아라. 쏘아라.
접전은 계속되고 있다. 피아간의 희생은 속출하고 있다. 부장2가 말
한다.
부장2 성주님, 놈들이 아주 필사적이옵니다. 보시오소서. 물러나는 병사라
고는 하나도 보이지가 않사옵니다.
이충언 이미 알고 있었느니라. 참으로 대단하구나.
부장2 저기 보이는 저 장수가 신검인 것 같사옵니다. 철기군들이 에워쌓
고 있사옵니다.
이충언이 끄떡인다. 신검은 신들린 듯이 마구 지휘검을 휘두르며
그렇게 독전을 계속 하고 있는 것이 멀리 보여 온다.
씬 그곳
신검이 독전하고 있다. 그 옆에는 박영규와 능한이 바짝 붙어 있고
그 앞쪽으로 군사들이 엉켜 있는 좌우에서는 능애와 부장들이 소리
소리 지르며 전투를 독려하고 있다. 군사들은 수없이 쓰러져 가면서
도 계속해 성문을 부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마른침을 삼키며 보고
있는 능환의 표정에서...... 박영규가 말한다.
박영규 태자마마 가히 감격이옵니다. 우리 군사들이 모두 한 덩어리가 되
어 하나같이 맹열히 싸우고 있사옵니다. 성을 함락시킬 수 있을 것
같사옵니다.
신검 나도 그렇게 보입니다 매부.
능환 .............?
전투는 그렇게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 치열한 모습들, 특히나 신
검의 희열같은 모습들과 함성소리들에서 디졸브 되면서..
씬 대야성 장대
달빛이 밝다. 견훤이 그 달빛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최승우가
함께 있다가 위로처럼 말한다.
최승우 밤이 깊었사옵니다 폐하.
견훤 그렇군 그래. 시각이 꽤 되었어. 그것 참 달빛도 밝네 그려.
최승우 그만 침소에 드시오소서 폐하.
견훤 오늘은 잠이 오질 않는군 그래. (사이) 지금쯤 우리 신검이가 벽진
군성에서 한참 격렬하게 싸우고 있겠구만.
최승우 그럴 것이 옵니다. 아마도 참으로 힘겨운 전투를 벌리고 있을 것으
로 아옵니다. 좀 더 여유를 주실 것을 그러신 것 같사옵니다.
견훤 그렇지가 않아. 한 번 뒤로 물러나는 자는 괴로울 때마다 물러날
생각을 하지. 그러나 한 번 죽기로 독을 품어 본 자는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물러나기보다는 뚫고 나갈 방법을 더 찾게되지. 태자는
이 기회에 공부를 좀 해야해.
최승우 너무도 위험한 공부이옵니다 폐하.
견훤 그렇겠지. 그리고 내 아우와 사위도 있고 그리고 이찬도 있어. 그
들은 이번 일에 대해서 속으로는 많이 들 원망할게야. 내 깊은 마음
은 모르고 말이야.
최승우 평생을 함께 살아오는 분들이옵니다. 폐하의 그 깊은 성심을 어찌
헤아리지 못하겠사옵니까?
견훤 그랬으면 좋겠구먼서두.....제발 별일이 없어야 할 터인데... 태자가
이런 아비의 마음을 알까 몰라. 사실 아비 만한 자식이 어디 있는
가? 그저 섭섭한 것만 생각 할 테지. 못난 놈 같으니라구....
최승우 (미소지으며) 다 아실 것이옵니다 폐하. 그만 침소에 드시오소서.
하옵고 황궁으로 돌아갈 준비들이 이미 끝이 났사옵니다. 날이 밝거
든 그에 관한 일도 다시 한 번 재고하여 주시오소서.
견훤 황도로 가는 일은 급할 것이 없네. 벽진군의 소식을 듣고서 가도
간다고 하지 않았는가? 내일이면 다 알 수 있을 터인데 뭘...(하늘
보며) 허허허.. 벌써 새벽이 오는 것 같네 그려.
최승우 그런 것 같사옵니다.
그런 착찹한 그들의 표정에서 들려오는 함성 소리들.
씬 벽진군 성(새벽)
치열하고도 극렬한 전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시산혈해
이다. 엄청나게 많은 군사가 죽어나가면서도 그리고 성벽에서 떨어
지면서도 문을 열고 성을 넘으려는 시도는 계속 되고있다. 이미 성
문은 반쯤은 열리려 하며 틈이 벌어지고 있다. 충차의 세찬 공격은
이어지고 있고 이를 막으려는 성벽의 군사들 또한 혼신을 다 하고
있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군사들이 운제를 성벽에 걸쳐놓고 오르며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이를 신검들이 보고있다.
신검 지독한 놈들이올시다. 아직까지도 완강하게 버티고 있어요.
능환 그렇지는 않사옵니다. 가만히 보건데 우리가 공격하던 때보다는 저
항이 많이 수그러 들었사옵니다.
박영규 그런 것 같사옵니다. 태자마마. 저기 보시오소서. 능애 장군께오서
드디어 성벽을 오르시는 것 같사옵니다.
신검 오오... 어디?
능환 ......(냉철하게 보고있다) ......?
박영규 보시오소서 저기. 우리 군사들이 성벽을 넘기 시작했사옵니다.
그들이 가리키는 그곳에 백제군이 드디어 사다리로 성벽을 넘기
시작한다. 능애가 소리소리 치고있다.
능애 우리 백제군이 성을 넘었다. 닥치는 대로 무찔러라! 가차없이 다
죽여라!
함성이다. 백병전이 이어지고 석포가 계속 날아와 주변을 모두 부
수고 있다. 이총언이 그 한 쪽에 소리치며 독전한다.
이총언 물러서지마라! 적을 막아라!
부장 1 적을 막아라!
그렇게 그들은 계속 소리치고 밀고 밀리는 백병전이 치열하다. 그
한 쪽에선 드디어 성문이 거의 열릴 듯 다 갈라지고 있다. 부장 2가
달려온다.
부장 2 성주님 성문이 다 부서졌사옵니다. 퇴각하셔야하옵니다.
이총언 막을 수 있는한 막아야 한다! 막아라! 적을 막아라!
그들은 그러게 싸운다. 그러나 백제군이 꾸역꾸역 성을 마구 올라
오기 시작한다. 부장 2가 계속 권한다.
부장2 잠시 피하시오소서 성주님. 더 이상 위험하옵니다.
그제 서야 주변을 보며 끄덕이는 이총언. 그쯤에서 피하며 말한다.
이총언 군사들을 잠시 물려라! 안전하게 제 2선으로 물려라!
부장 2 예, 성주님!
그들 그렇게 다급하게 돌아간다.
씬 그 성밖 신검이 있는 곳
아우성 속에서 백제군이 성으로 오르는 것이 보인다. 접전하는 백
병전도 보인다. 신검은 감격으로 울 듯하다. 또 한쪽으로는 성문도
다 부서져 나가고 있다.
신검 (울먹이며) 매부! 보시오! 이찬! 보시구려! 우리 군사가 그예 성벽
을 넘고 있소이다. 성문도 다 뚫었소이다. 다 열었어요!
그예 한 쪽에서 와 하는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백제 군사들
이 떼를 지어 성문 쪽으로 밀려간다. 육중한 성문이 다 부서져 소리
내어 넘어간다. 그러나 그들의 감동과는 달리 능환은 그 작은 눈이
반짝인다.
능환 (다급하게) 태자마마! 잠시 멈추시오소서. 저렇게 쉽게 문을 열어
줄 저들이 아니옵니다. 조금 더 주변을 살피셔야 하옵니다.
신검 우리는 이 새벽까지 싸웠소이다. 무엇을 더 염려할 것이 있단 말이
오.
능환 아니 되옵니다 태자마마. 좀더 경계를 하시오소서. 서두를 것이 없
사옵니다.
신검 적은 이미 도망치고 성문은 열렸소이다. 지체하면 오히려 화가 될
것이오. 모두 성으로 들어가라! 들어가서 남김없이 적군의 목을 베
어라! 갑시다! 매부!
박영규 예, 태자마마! 가자! 어서들 가자!
그들 그렇게 말의 옆구리를 차며 달려들어가기 시작한다. 능환도
어쩌는 수 없는 듯 주변을 계속 경계하며 따라 붙는다. 그러나 그는
이미 무언가를 예측하고 있다. 그들 그렇게 쏟아져 들어간다. 그 함
성소리... 함성소리들 에서...
씬 동 성안
무너져 내린 성 문짝을 밟으며 백제군이 밀물처럼 들어오고 있다.
그들이 들어서자 마자 보이는 것은 성안의 야산 계곡들이다. 멀리
도망치고있는 벽진군의 군사들이 보인다. 신검, 박영규, 능애, 능환
들이 모여서 그 정경들을 보고있다.
능애 지체할 이유가 없습니다. 계속 추격하여 밀어 부쳐야 하옵니다 태
자마마. 그렇지 않으면 저들은 다시 우리를 공격할 것이옵니다.
박영규 그러하옵니다. 우리가 승세를 잡았을 때 다 끝을 내야하옵니다.
신검 옳은 말이오. 부장들은 계속 공격하라! 추적하여 저들을 남김없이
도륙하라!
부장들 예, 태자마마!
능환 아니 되옵니다 태자마마. 더 이상 쫓지마오소서. 저들은 처음부터
우리보다 군사가 많았사옵니다. 뭔가 우리를 끌어들이는 수작이옵니
다. 더 쫓지마오소서.
신검 무슨 소리요! 이제 성문을 열었는데 뭘 그리 겁을 낸단 말이요. 쫓
아라! 남김없이 도륙하라! 가자! 내가 앞을 서겠다!
능환 태자마마!
그러나 이미 신검이 앞을 섰다. 박영규와 능애가 따라 붙는다. 군
사들은 그렇게 질풍처럼 앞으로 달려간다. 능환이 중얼거린다.
능환 무언가가 있다! 가서는 아니 되는데! 아! 어이할꼬...(하다가 지나치
는 부장을 부른다) 여봐라! 부장!
부장 예, 이찬 어른!
능환 너는 뒤를 쫓지 마라! 너는 이곳을 사수하라! 그리고 급한 일이 있
을 때는 네가 이곳을 운영하도록 하라! 이 곳을 정비하라는 뜻이다!
부장 예, 알겠사옵니다. 이찬 어른! 이곳을 정비하라! 이곳을 정비하라!
능환은 그 것을 확인하고 나서 신검의 뒤를 쫓아 달려간다.
씬 성안 그곳
상황은 그 예전과 비슷하다. 영이 군사들을 데리고 기다리고 있다.
그 숲 속에 숨어서 숨을 죽이고 보고있다. 백제군들이 파도처럼 지
나쳐 가고있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영이 드디어 소리지른다.
영 자 그물에 다 걸려들었다. 쏴라!
불화살들이 수없이 하늘로 솟아오른다. 마치 불꽃놀이처럼. 곳곳에
서 섬광과 함께 불꽃들이 피어 나온다. 대낮처럼 주변이 밝아지며
백제군의 모습들이 그대로 꼼짝 못하고 드러난다. 화살 밥이다. 비
오듯 수많은 화살들이 그렇게 좌우 양옆에서 쏟아지고 있다. 그것은
일방적인 살육이었다.
씬 그곳 그 계곡
신검은 너무도 갑작스런 공격에 아연실색한다. 박영규와 능애는 알
아 차렸다. 또 걸린 것이다.
박영규 태자마마! 잠시 멈추시오소서! 복병이옵니다!
신검 매부! 복병은 없다고 하지 않았소?
박영규 그러게 말이 옵니다. 일단 이곳을 피하시오소서. 위험하옵니다.
능애 저들의 복병에 걸렸사옵니다. 우리가 너무 깊이 들어왔사옵니다.
부장들은 들어라! 퇴각하라! 당장 퇴각하라!
박영규 퇴각하라! 길을 뚫어라!
신검은 이 현실이 믿기 지가 않는다. 그저 넋 나간 듯 멍하니 할
말을 잃고있다. 그가 보는 앞에서 이미 군사들은 풀잎이 눕듯 썰물
처럼 쓰러져 가고있다. 화살하나가 날아와 신검의 어깨에 박힌다.
그대로 말에서 떨어지려다가 간신히 지탱한다. 박영규가 방패로 막
으며 급히 보호하고 나선다.
박영규 어서 성 쪽으로 다시 가야하옵니다. 소장을 따르시오소서. 태자마
마.
능환 (다가오며) 예상대로 이옵니다. 복병이옵니다. 어서 성밖으로 다시
나가야하옵니다. 위험하옵니다. 어서 가시오소서! 어서!
신검 (어깨의 화살을 불질러 꺾으며)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박영규 어서 소장을 따르시오소서! 길을 열어라! 길을 열어라!
그들 그렇게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 도망치기 시작한다. 아수라장
이다. 그 속을 헤쳐나가며 성문 쪽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그들. 이총
언이 영과 함께 나서며 소리친다.
이총언 저기 가는 저 자가 신검이다! 신검을 잡아라! 저들의 목을 베라!
와 하며 영의 군사들이 쫓기 시작한다. 신검은 그렇게 급히 도망쳐
나간다.
씬 동 성문
지난번 능환이 남겨 놓았던 부장이 달려오는 자신들의 군사들을
보고 뻥해서 본다. 오는 자들은 신검과 박영규 능애들이다.
부장 태자마마 어찌 된 일이옵니까?
박영규 저들이 다시 오고 있다. 우리는 성을 빠져나갈 것이니 부장은 잠시
후 군사를 수습해 퇴각하라!
부장 예?
그러나 그에 대한 대답은 없다. 그들은 이미 성문을 빠져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능환도 역시 달려나간다. 그
뻥한 부장의 모습으로 밀려오는 적군들과 함께 디졸브..
씬 동 벽진군 성
와 하는 함성이 일고 있다. 이총언 부자와 부장들, 그리고 군사들
이 손을 흔들어 환호하고 있다.
이총언 자랑스럽다! 벽진군의 군사들이여! 우리는 이겼노라! 또 이겼노라!
백제군은 우리에게 전멸 당했노라!
군사들 와!(함성)
이총언 이제 저들은 다시는 이곳을 오지 못할 것이다.
군사들 와!(함성)
이총언 그러나 우리는 자만해서는 아니 된다. 적은 언제고 또 우리를 노릴
것이다. 우리는 변함없이 경계하고 이 땅을 잘 지켜내야 한다. 그리
고 승리는 기쁜 것이나 이 많은 죽음들은 가슴 아픈 일이다. 저들의
시체를 거두어 주고 스님을 모시어 천도제를 올려 주도록 하라!
부장들의 대답소리와 함께 다시 함성이 떠나갈 듯 하다.
해설 이총언과 벽진군, 그러니까 벽진군은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의 그
때 이름이다. 이곳은 남쪽으로는 낙동강 건너 대구 달성군과 칠곡군
과 접해있고 북서쪽으로는 김천이 그리고 남쪽은 지금 견훤이 장악
한 대야성. 즉, 합천의 가야산과 맞닿은 당시의 대단히 중요한 전략
적 요충지였다. 이총언은 당시 이곳의 성주였고 그렇게 많은 백성들
의 인망을 받으면서 그 땅을 지켜내 고려의 중요한 방패 역할을 하
였다. 그리고 그는 고려의 공신록에 기록되면서 벽진 이씨의 시조가
된다. 그는 또한 태조 21년까지 살았으며 81세로 죽기까지 변함없는
충성을 보였다 한다.
씬 아침의 산야
아침 햇살이 싱그럽다. 그러나 그 숲 속을 아주 초라하게 오는 이
들이 있다. 불과 이십 여기도 남지 않은 신검의 무리가 풀이 죽어
오고있다. 아무도 말이 없다. 눈치를 보다가 능환이 말한다.
능환 이보게 부장.
부장 예, 이찬 어른.
능환 대야성에 계신 폐하께 이 소식은 전하였는가?
부장 예, 이찬 어른. 전령을 보내는 것은 약속되어 있는 일이라 사정을
알려 보냈사옵니다.
신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능애 이제는 어떻게 한다?
능환 전멸을 당했소이다. 당연히 폐하께 가서 무릎 꿇고 군령을 받을 수
밖에요.
박영규 하오나 우리는 원 없이 싸웠사옵니다. 이제는 군령을 받던 아니 받
던 어쨌든 황도로 돌아 가야하옵니다.
능환 그렇게 하십시다. 가시오소서. 태자마마.
신검 (입술을 깨물고 눈물만 흘리다가 소리친다) 아! 하늘이 왜 나를 이
토록 박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나를 살려 놓으셨는지 정말 모
르겠사옵니다!
그는 그예 목을 놓아 통곡한다. 모두들 숙연하다. 신검의 그 절규
에서
씬 대야성 외경
견훤(소리) 이게 무슨 소리야!
씬 동 성안
많은 장수들이 다 모여있다. 전령이 막 장계를 올린 듯 옆에 서있
다. 견훤이 읽고 있던 장계를 팽개친다.
견훤 또 졌어? 이젠 아예 전멸을 했다구? 어이구! 그러고도 어떻게 저희
들만 살아 있단 말이냐?
모두들 ..........
견훤 어떻게 저희들만 뻔뻔하게 살아있어?
전령 태자마마는 어깨에 화살이 박혀 큰 부상을 입었사옵니다.
견훤 부상? 수천의 군사가 죽었는데 그까짓 화살한대 맞은게 뭘 그리
대단해? 이렇게 부끄러울 데가 있나? 이젠 아주 모두 다 죽었다는
구만. 그러고 저희들만 살았다는 게야. 저희들만!!
최승우 고정하시오소서 폐하. 하오나 이미 성문을 한 번 열었었고 그 안으
로 들어가서 다시 싸우다 그리 된 것이옵니다. 좋게 생각 하시오소
서.
신덕 그러하옵니다. 폐하. 일방적 패배가 아니라 적진을 뚫고 들어갔다
가 숫자가 적어 그리 된 것 같사옵니다.
견훤 무슨 소리들을 하고 있어? 나는 수십 수백 곳의 전장터를 누빈 사
람이야. 숫자가 적었다고? 성문을 열었다고? 그건 제 놈들이 벽진군
성주에게 속은 것이지 성문을 연 것이 아니야!
모두들 ......(할말이 없다)
견훤 나 같았으면 그 자리에서 할복을 했을 게다. 멍청한 것들 같으니.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싸울 군사가 하나도 없이 다
죽었다하니 돌아갈 수밖에. 황도로 오라 하라. 그리고 이제 벽진군
의 결과도 나왔으니 우리도 돌아갈 것이다. 알겠는가 제장들?
모두들 예, 폐하.
견훤 경들도 기억하라! 저 벽진군의 실패를 말이다. 저들은 갑절이 넘는
군사를 가지고도 실패를 하였다. 그것은 오만 때문이었다. 전장터에
서 오만은 없다. 그리고 승리하지 못한 군대는 책임만 있을 뿐이다.
경들은 각별히 명심하라!
모두들 예, 폐하.
진노한 견훤의 그 불쾌한 표정에서 디졸브되면.......
씬 길(인써트)
견훤의 대군이 황도인 전주로 돌아가고 있다. 그 끝없는 행렬이 지
나쳐 가면서
씬 또 다른 길
초라한 신검의 일행들이 몰려서 가고 있다. 그들의 표정에서 디졸
브.
씬 낙동강 전선
강을 배경으로 한 고려군의 군영이다. 배현경과 더불어 윤신달, 전
이갑 형제가 강 쪽을 보고있다.
배현경 백제국의 견훤 왕이 황도인 전주로 돌아갔다 하오이다.
윤신달 저도 보고를 받았사옵니다. 이렇게 해서 이번 소동은 끝을 맺는 모
양이옵니다.
전이갑 그러게 말이올시다. 최시랑의 예견이 아주 정확했사옵니다.
전의갑 그러하옵니다 형님. 이렇게 되면 우리도 서서히 돌아갈 준비를 해
야하지 않겠사옵니까?
배현경 그래야 할 것이올시다. 결국 신라가 대야성 하나를 백제국에 넘겨
준 것으로 이번 일은 마무리가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백제는 벽진
군에서 단단히 망신을 당했소이다. 장군 멍군이 된 꼴이올시다. 하
하하. (모두들 함께 웃다가) 자, 우리도 경계 병력만 남겨 놓고 회군
을 해야 할 것 같소이다. 준비들 하십시다. 허허허허.
씬 송도 황궁 외경
씬 동 황궁 안 대전
왕건과 태평, 최응, 박술희, 신숭겸, 복지겸 그리고 김행선과 박지
윤, 박질, 원극유, 오다련, 유긍달들이 모여있다. 이들은 다과를 들고
있다.
왕건 대야성도 그렇게 정리가 되었고 우리 장수들이 회군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벽진군은 완벽한 아군의 승리였소이다.
김행선 백제군이 거듭 벽진군을 노렸사오나 연패를 면치 못했다 하옵니다.
유긍달 벽진군의 성주는 나이 60이 넘었다고 들었는데 참으로 대단하옵니
다.
오다련 60이면 그럴 수도 있지요. 사람 나름이 아니겠습니까? 살기에 따라
서 늙은이가 될 수도 있고 또 좋은 장수가 될 수도 있고 그러는 것
이겠지요.
왕건 하하하 옳은 말씀입니다. 어떻게 사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이지요.
자 이제 어려운 전선들이 대충 정리가 된 것 같소이다. 그만 한 것
이 다행이올시다. 신라는 아니 되었지만 말이오.
태평 하오나 우리가 언젠가는 그 대야성을 다시 되 찾아야 하옵니다. 신
라로 가는 길은 그곳이 가장 큰 지름길이기 때문이옵니다.
왕건 물론 그래야지요. 허허허.
최응 이제 전선이 이렇게 정리가 되면 다시 모든 경계 지역을 재편해야
하옵니다. 외방에 나가있는 중요 장수들을 중앙으로 불러 새로운 편
성에 참여시키도록 하오소서. 폐하.
왕건 옳은 말이네. 그리하도록 하세. 북방에 나가있는 유금필 장군도 오
라고 하시오. 염상 장군도 그렇고 다들 오라 하시오.
원극유 예, 폐하.
박지윤 신이 들으니 지난번 대야성 전투에서 견훤 왕의 아들인 어린 금강
이라는 태자가 아주 눈부신 전공을 올렸다 하옵니다. 아직 한참 어
린 나이로 아옵는데 아마도 일찍부터 전투 경험을 익혀 주려는 것
같사옵니다. 역시 견훤 왕은 참으로 그 자식교육이 집요하옵니다.
박질 어디 그뿐 이겠소이까? 그 맏아들 신검이는 아버지에게 혼줄이 나
면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벽진군 전투를 목숨을 걸고 치루다가 결
국은 군사를 다 잃었다 하오이다. 견훤 왕은 정말 그 성격이 대단한
모양입니다.
왕건 그만 한 인물이니 오늘날 그런 제국을 이룬 것이겠지요.
복지겸 당연하옵니다. 견훤 왕의 자식 교육은 참으로 남다르옵니다.
박술희 폐하. 남의 나라 이야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제 폐하께오서도 두
분 태자마마 중에서 원윤을 정하셔야 하옵니다.
두 대부 ........ (신경이 곤두선다)
신숭겸 그러하옵니다. 폐하. 사실 따지고 보면 많이 늦었사옵니다. 후사를
준비하는 것은 황실의 의무이고 책임이옵니다.
모두들 ............(두 대부를 본다)
왕건 그 이야기는 태평 낭중에게도 들었네. 허나 아직 때가 아니라고 말
해 주었어. 할 일이 많은 때에 그런 일에 신경을 기울일 수가 있겠
는가? 얼마든지 뒤에 해도 될 일이야.
오다련 .......... 아니 저........(뭔가 말을 하려는데 박술희가 나선다)
박술희 폐하. 이미 태자마마의 나이 아홉이시옵니다. 후사를 일찍 정해 놓
으시는 것은 그만큼 나라의 걱정을 더는 것이옵니다. 서두르셔야 하
옵니다 폐하.
신숭겸 그리하시오소서. 그럴 때가 되었사옵니다.
유긍달 아니 저 그것은......(뭔가 또 말하려는데 왕건이 나선다)
왕건 황제의 자질은 아직 그런 나이로써는 점치기 어렵네. 좀더 두고 보
자고 하지 않았는가? 다음에 이야기 하세나. 아직 일러! 자 차나들
드세 그려.
그러자 유긍달은 휴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런 왕건을 보며
원로들은 눈치를 보고 박술희들은 왜 그러는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
한다. 그러나 왕건은 태연하고.... 두 대부는 서로 눈치를 보고.
씬 오씨 처소
오씨가 눈살을 찌푸리며 박상궁을 본다.
오씨 지금 대전에서 원로들과 신료들이 모여 계신다고?
박상궁 예, 마마. 시중어른을 비롯하여 박술희, 신숭겸 장군과 복지겸 장군
도 있다 하옵니다.
오씨 내가 들으니 태평 낭중과 광평성 시랑 최응이도 그 곳에 있다고
하던데?
박상궁 그렇다하옵니다.
오씨 그 사람들 모두 지난 날 아버님과 만나 태자가 원윤이 되는 일을
의논하였다고 하네. 이번 대전에서도 그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겠는
가?
박상궁 국사를 논하는 자리이니 분명 나왔을 법하옵니다.
오씨 박술희와 신숭겸 장군들은 적극적으로 우리 태자를 돕겠다고 하였
다네. 그렇다면 걱정은 더 이상 없네. 그분들은 폐하의 아우 분들
이시네. 잘 될 것이야. 잘 되구 말구. 그 사람들 모두가 다 긍정적이
라 하였다니 참으로 마음이 놓이네 그려. 대체 언제부터 내가 이렇
게 겁장이가 되었는지 생각할 수록 한심해. 이게 다 그 충주 아우
때문일세. 어떻게 제가 감히 원윤의 자리를 볼 수 있단 말인고? 하
참 기가 막혀서.
씬 수인의 처소
이곳에서도 수인과 김상궁이 마주 해있다.
수인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고 있단 말이지?
김상궁 예, 마마. 듣자하니 요즘 매일처럼 그 이야기들이 조당 안에서 나
오고 있다 하옵니다. 원로 분들도 그렇고 신료들 모두가 원윤을 정
하는 일에 관해서 왈가왈부들 한다하옵니다.
수인 나도 들었어. 아버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더구만. 헌데 여러모로 지
금은 내가 좀 불리하단 말일세. 우리 태가 너무도 불리해요. 나이도
어린 데다가 물론 같은 부인이라 지만 서열도 낮아.
김상궁 그렇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물러 나셔서는 아니 되옵니다. 나주 마
마님과 마마님께서는 다 같으신 처지시옵니다. 절대로 약하게 마음
잡숫지 마오소서.
수인 그러자니 답답하단 말일세. 폐하의 의형제 분들이 듣자하니 한결같
이 나주 형님 편을 드시는 모양일세.
김상궁 그렇다고 들었사옵니다. 그러나 전선에 나가있는 장수들이 모두 올
라오고 있다 하옵니다. 그 다음에는 형편이 달라질 수도 있사옵니
다. 의형제 분들도 그 영향력이 크지만 공신 분들 또한 그렇사옵니
다. 아직 실망하실 이유가 없사옵니다 마마.
수인 그렇겠지? 나도 쉽게 물러날 생각은 없네. 암.....
씬 동 대전 외경 (밤)
내군의 부장들과 군사들이 오가고 있고.....
씬 동 대전 안
왕건이 고민에 잠겨있다. 뭔가 한참 생각하다가 도리질을 한다. 최
응이 보고있다.
왕건 (마음의 소리) 원윤을 정해야 한다. 어쩌면 그럴 때도 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중요한 일이 아닌가? 이제 아홉 살과 세살
짜리 어린아이를 보고 어떻게 장래를 정할 수가 있단 말인가? (도
리질한다) 이 나라가 얼마나 어렵게 세운 나라인가? 맞아! 단단히
살펴야 해. 함부로 정할 일이 아니야.
최응 폐하. 무얼 그리 깊이 생각하고 계시옵니까?
왕건 음.. 아닐세. 시간이 늦었는데 이제 그만 돌아가야지. 가서 눈 좀
붙이게나.
최응 아니옵니다 폐하. 그보다도 낮에 있었던 신료분들의 그 원윤에 관
한 이야기를 어찌 생각하시옵니까?
왕건 자네도 알 것이야. 이 나라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말이야. 그리고
나는 태평 낭중에게 진시황제의 이야기를 해주었어. 아무리 큰 제국
을 세워도 다음 주인이 그 재목이 되지 못하면 한꺼번에 다 잃는다
고. 나는 그것이 두려운 걸세.
최응 (미소) 하오나 폐하. 그렇다고 다음 세대를 어찌 하실 수 없사옵니
다. 앞으로도 많은 태자분들이 나오실 것이옵니다. 큰 하자가 없는
한은 맏이로써 다음 보위를 정하는 것이 지당하시옵니다. 만약에 그
렇지 못하면 또 다른 불화가 형제들간에 생기고 황실에 번져서 결
국은 그 일이 나라 전체를 당파로 가르고 어려운 일에 처하게 할
수도 있사옵니다.
왕건 글쎄......
최응 오히려 일찍 정하시어 잡음을 없애시고 태자마마를 더욱 현명하게
이끄심이 옳으실 것이옵니다.
왕건 그렇다면 충주 부인에게서 본 태자 태는 어찌 하는가?
최응 장자 우선이라 했사옵니다. 깊이 헤아려 살피시오소서 폐하.
왕건 글쎄....그것이 과연 그럴까? 글쎄.............
최응 백제국을 생각해 보시오소서. 견훤 왕은 이미 그 여러 자식들을 지
방 고을과 전장터마다 데리고 다니며 훗날을 기약하고 있사옵니다.
폐하께서도 서두셔야 하옵니다.
왕건 ........
씬 백제 황궁 외경(낮)
씬 동 황궁안 조당
문무 신료들이 모두 다 모였다. 부상당한 신검과 능환 그리고 능애
와 박영규가 중앙에 무릎을 꿇고 있다. 견훤이 내려다보고 있다.
견훤 그래도 좀 다치기는 하였지만 멀쩡히들 살아왔네 그려.
모두들 .............
견훤 이봐라. 태자야!
신검 예, 아바마마.
견훤 네 이놈! 지금은 네 아비가 아니라 이 나라 황제로써 너를 보고 있
는 것이다. 알겠느냐?
신검 예, 폐하.
견훤 못난 놈 같으니라구! 네가 잃어버린 수천의 군사는 내가 보물처럼
아끼는 대 백제국의 백성들이니라! 네 놈이 어떻게 그렇게 허망하게
다 잃고 올 수가 있느냐? 이게 지금 몇 번째이냐?
신검 죽여주시오소서. 폐하. 잘못 되었사옵니다.
견훤 죽으려면 거기서 죽었어야지 왜 살아왔어?
능환 폐하. 모든 잘못은 벽진군 전장의 전략을 이끌었던 소신의 죄이옵
니다. 신을 벌하여 주오소서 폐하.
견훤 그건 일리가 있어. 자네도 이제 늙었어! 어떻게 그렇게 형편없는
곳에서 그런 망신을 당하고 온단 말인가? 옛날의 그 총기는 다 어
디로 갔는가? 정말 늙은 게야 이찬? 그런 게야?
능환 송구하옵니다 폐하.
최승우 ..........
능애 폐하. 신의 잘못도 크옵니다. 벌하여 주오소서.
박영규 아니옵니다. 신의 잘못이 더 크옵니다. 신에게 벌을 주오소서.
견훤 그만들 해! 다 마찬가지야. 너희들 모두가 적을 깔보고 태만하였다
가 당한 일들이야. 이제 태자 너를 어떻게 믿고 전쟁에 내보내겠느
냐? 말해보거라. 내가 어떻게 믿으라는 것이야? 어떻게?
신검 용서하시오소서. 폐하.
최승우 폐하, 그만 용서하시오소서. 태자마마와 여기 함께 한 제장들은 참
으로 열심히 싸웠사옵니다. 목숨을 걸고 성을 넘었으며 끝까지 최선
을 다하였사옵니다. 전쟁이란 질 수도 또 이길 수도 있는 일이옵니
다. 용서하시오소서.
능환 ............(비웃 듯 입을 실룩거린다.)
견훤 암 어쩌겠는가? 용서를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군령으로 다스려야
하는데 그 죄는 죽음 뿐이야. 죽음! 태자는 나의 자식이고 능애 장
군은 나의 아우이고 박영규 장군은 사위이고 이찬은 내 의형제일세.
아주 집안끼리 제대로 한번 망신을 잘 시켰어. 자리로들 돌아가라!
이번 일은 그만 논하고 싶다. 돌아들 가!
그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그들이 그렇게 대답하며 모두 일어나 제자리로들 가 선다.
견훤 오늘의 일은 경들 모두가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이다. 분명히 말하건
데 다음에 이런 일이 다시 또 계속 있을 시에는 정말로 군법을 적
용 할 것이다. 이것은 경들 모두에게 하는 말이니라! 작은 승리에
취하지 말라! 알겠는가?
신료들 예, 폐하.
그렇게 화가나 있는 견훤의 표정에서
씬 박씨의 처소
박씨는 거퍼 한숨만 쉰다. 혼자서 중얼거리며 도리질한다.
박씨 저렇게 자식을 미워하고 망신을 주니 훗날이 무섭구먼. 폐하께서는
도대체 늙지 않으신 단 말인가? 훗날 태자가 보위에 오르면 어떤
대접을 받으려고 저리 하시는고? 허 참. 맨날 좋은 시절일 줄 아시
는 모양이실세. 이거야말로 영락없이 망령이 드신 시아버님과 무엇
이 다른가 말이야. 무엇이 달라?
씬 고비의 처소
고비가 금강을 마주 해있다.
고비 태자는 절대로 밖에 나가 형님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서는 아니 됩
니다. 내가 보아도 폐하께오서 형님 태자 분들을 너무 닥달하시는
것 같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태자.
금강 소자가 조심할 것이 무엇이옵니까?
고비 그렇지가 않습니다. 형님들이 공경에 처할 수록 바로 태자를 원망
할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절대로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금강 예, 어머님.
고비 나는 이 황실이 아주 살어름판 같습니다 태자! 아휴...
씬 견훤의 대전
술상이 놓여있고 최승우가 마주해있다. 한숨을 쉬며 술잔을 들이키
는 견훤.
견훤 갈수록 답답해. 역시 세월은 못 속이는 모양이야. 이찬 말일세. 사
실 그렇게 방심하지만 않았다면 그게 어디 그처럼 실패할 전장이었
단 말인가?
최승우 가끔 실수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옵니다. 그리고 사람이란 어쩌다
한번 실수하기 시작하면 그 일이 빌미가 되어 자꾸 그렇게 될 수가
있사옵니다. 지난 일은 그만 잊으시오소서.
견훤 (마시며) 안타까워서 그래! 안타까워서 말이야. 그래도 예전에 얼마
나 총명한 사람이었는가 말이야. 모처럼 우리 신검이 위신을 세워주
려고 함께 보냈는데 똑 같아.. 똑 같아!
최승우 다음엔 틀림없이 잘 될 것이옵니다. 폐하. 그만 노여움을 푸시오소
서.
씬 황궁 어느 곳
능환의 처소이다. 그의 표정은 울분으로 가득해 있다.
능환 폐하께서 예전에는 이러지 않으셨다. 어떻게 신료들 앞에서 그렇게
공개적으로 이 능환이를 망신주신단 말인고? 그래도 내가 그 분을
오늘날의 옥좌에 오르게 하시고 이렇게 큰 제국을 운영하게 하시는
데 밑거름이 되지 않았는가? (사이) 이제 내가 늙었다고 이렇게 까
지 핍박하신 단 말인가? 도대체 파진찬 최승우가 이 나라에 한 것
이 무엇이 있다고 그렇게 싸고 도시는가? 이 능환이가 그토록 늙었
단 말인가? 이건 참으로 너무 하시지 않는가?
그렇게 독기를 품는 능환의 그 표정에서 스톱모션이 걸린다.
(제 136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