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 138회>
씬 송도 황궁 외경
씬 동 황궁 대전
왕건이 수북히 올라온 장계들을 보고 있다. 최응이 그 옆에 함께 있다. 무언가를 왕건이 깊이 들여다보고 있는데 최응이 말한다.
최응 폐하, 지금 보고 계시는 것은 호족들에 관한 관리정책이옵니다. 호족들은 신라가 흔들리던 수십 년 전부터 각 지역에서 나름대로 독자적인 힘을 기르며 주인행세를 해왔사옵니다. 저들을 다스리는 길은 그래서 쉽지가 않은 것이옵니다.
왕건 하지만, 여기 올라온 정책들을 보면 좀 무리가 많은 것 같네그려.
최응 호족들은 늘 주변의 눈치를 보며 어떻게 할까를 계산하는 무리들이옵니다. 그들을 대하실 때는 두 가지가 필요하옵니다. 저들이 원하는 이익과 자유를 보장해주면서 또 한편으로는 저들이 변함없이 충성할 수밖에 없는 고리를 만들어놓아야 하옵니다.
왕건 (끄덕이면서) 하긴, 이 방법은 옛날에 신라나 또 지난날의 폐주도 생각해본 것들이었어.
최응 그러하옵니다. 각 지역에 넓게 퍼져있는 호족들의 자식들을 중앙으로 불러들여 벼슬을 주고 인질로 삼는 것이옵니다. 또한, 사내자식이 없는 영주들은 그 딸들을 황궁에 보내게 하여 저들이 두 마음을 품지 않도록 인간적 고리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옵니다.
왕건 조금 가혹하지 않은가?
최응 전혀 그렇지 않사옵니다. 변방에 있는 호족들이 자신의 장래를 보장받을수 있는 길은 저들의 자식들이 이곳 황도에서 폐하의 은혜를 얼마나 받느냐에 달려있사옵니다. 또한 그만한 거래가 없이는 서로 무엇을 가지고 신뢰할 것이옵니까? 이 점을 바짝 서두시오소서.
왕건 일리있는 말이야. 그리고 지난날에도 조금씩 해왔던 일이고... 허면, 이제부터는 이 일을 전국적으로 확대시켜 호족들에게 의무사항으로 주지시키게.
최응 예, 폐하.
왕건이 끄덕이면서 보고있던 것을 치우고 다른 장계들을 보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인상을 찌푸린다.
왕건 이건 또 무엇인가? 광평성에서 올라온 글이 아닌가?
최응 그러하옵니다. 광평성 뿐만 아니라 공신들이 모여올리는 글도 있사옵니다.
왕건 공신들도 말인가? (글을 보면서) 이게 무어야? 태자들에 관한 일을 아예 길게 뒤로 물렸으면 한다?
최응 예, 그것이 바로 원로분들의 생각이신것 같사옵니다.
왕건 이 일은 이미 그렇게 하기로 조회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허면, 공신들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최응 그러하옵니다, 폐하. 공신들은 이번 태자마마에 관한 일들이 너무 급박하게 일부 의견으로만 치닫고 있는 것이 염려스럽다고 했사옵니다.
왕건 그렇다면 내 의제들을 일컬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최응 그럴 수 있사옵니다.
그러자 왕건은 표정이 굳어진다. 다시 광평성의 글을 보다가 이번에는 공신들이 올린 글을 읽는다. 그리고 무겁게 묻는다.
왕건 이건 말하자면 저들의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원로들은 원로들대로 또 공신들은 공신들대로 지금 불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야.
최응 폐하의 말씀이 읋으시옵니다. 이번 태자마마의 일은 그만큼 국가의 장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각자의 생각과 이익이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옵니다.
왕건 ..... (무거운 한숨을 쉬며 생각에 잠긴다) 그럴수도 있겠지.
최응 폐하의 의제분들께서도 다시 별도로 폐하를 알현하기를 청해왔다 하옵니다. 태자마마의 문제로 말이옵니다.
그러자 왕건은 무거운 한숨을 또 내쉰다. 얼마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눈치를 보던 최응이 또 말한다.
최응 어젯밤에 폐하께오서는 태자마마들과 두분 부인마마를 부르셨다 들었사옵니다.
왕건 그랬지.
최응 혹시... 정윤에 관한 문제는 정하셨사옵니까?
왕건 물론 그에 관한 일로 불렀어. 그러나 역시 아홉 살이라는 나이는 너무 어려. 그리고 그 밑에 아이는 이제 세 살이야. 과연 이들에게 막중한 나라의 장래를 맡긴다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래서 조금 기다려보자고 한 것인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아.
최응 ..... 무엇이 말이옵니까?
왕건 광평성과 공신들이 뒤로 미루자는 것은 자신들의 계산이 다르기 때문이야. 또한, 충주부인과 유대부가 이번 정윤을 정하는 문제를 뒤로 미루자는 것은 자신들의 소생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고... 아니 그런가, 최시랑?
최응 바로 보셨사옵니다.
왕건 허면, 내 의제들은 왜 그렇게 서두르는 것인가?
최응 박술희 장군은 어느 분보다도 의협심이 강한 분이옵니다. 당연히 나주 오대부님의 청을 물리치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그 서열을 따져 보아도 마땅한 일이기 때문에 나섰을 것이옵니다.
왕건 그래도 그렇지. 많은 대소신료들의 생각도 헤아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최응 폐하, 어리석은 신의 생각으로는 그만 이 일을 정하셨으면 하옵니다.
왕건 어떻게...?
최응 나주부인 마마의 무 태자로 하심이 맞사옵니다. 서열도 그러하고 훗날에 있을지도 모르는 여러 가지 논쟁을 미리 막는 일이옵니다.
왕건 하지만 너무 어려.
최응 지금은 그렇게 보시지만 세월은 금방 가옵니다.
왕건 글쎄... 하지만 내가 지금 답답한 것은 지금까지는 잘 화합해 왔던 신료들이 제각각 다른 목소리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야. 이것은 국론이 분열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야.
최응 그래서 이야기가 나왔을 떄 정하셨으면 하는 것이옵니다.
왕건 (끄덕인다) 생각해 봄세. 그리고 내 의제들도 들어오라고 좀 전하게.
최응 예, 폐하.
왕건 아, 참.. 백제 땅에 있는 경보스님에게는 어찌할 생각인가?
최응 이 길로 신이 다녀왔으면 하옵니다.
왕건 최시랑이 말인가? 백제땅까지...?
최응 예, 폐하. 신이 생각하기로는 그 분은 쉽게 우리 고려로 오실 분 같지는 않사옵니다. 그 때문에 당나라에서 오면서 백제땅으로 가신 것이옵니다. 그 분의 여러 생각들을 좀 알고 싶사옵니다. 신을 보내주시오소서.
왕건 그렇게 하게. 하지만 적국으로 가는 일이야. 조심하도록 하게.
최응 예, 폐하. 하옵고 다시 한번 말씀드리옵니다. 태자마마의 일은 길게 미루지 마시오소서. 국익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사옵니다.
왕건 생각해 보겠네.
그렇게 끄덕이는 왕건의 표정에서..
씬 길
최응이 가고 있다. 종자 하나만 데리고 평복 차림으로 그렇게 가고 있다.
최응 (E) 폐하께서는 역시 현명한 분이시다. 태자분들의 문제는 더 이상 확대되어서는 안된다. 폐하께서는 충분히 그것을 아시었어. 그나저나 경보대사는 도대체 무얼 생각하고 계시는 걸까? 아직도 삼한 통일의 길은 멀다. 도선대사님은 우리 폐하께 통일 대업의 길이 있음을 말씀하셨다. 헌데, 그 분의 제자이신 경보스님이 왜 백제로 그냥 가시었을까? 무엇 때문에...
씬 백계산 옥룡사 외경 (부감)
씬 동 옥룡사
경보가 툇마루에 앉아 먼 산야를 보고 있다. 카메라가 경보의 얼굴로 조여들면서 옛 생각이 살아 오른다.
경보 (E) 많은 사람들이 스님께 앞으로의 세상을 물었사옵니다.
씬 짧은 회상 (6회 중에)
도선과 경보가 함께 있었던 그 옛날의 옥룡사 방이다. 경보가 계속해 묻고 있다.
경보 소승도 실은 궁금하옵니다. 한치 앞을 모르겠으니....
도선 어제를 생각해 보고 오늘을 보면 알 것 아니냐? .....시산 혈해가 될 것이니라. 시체의 산이 쌓이고 피의 바다가 될 것이야. 그리고... 새 시대가 도래하겠지.
경보 고통받는 백성들은 어찌하옵니까?
도선 그래도 가을은 오고 겨울 또한 피할 수 없다.
도선의 낭랑한 그 목소리에서 천천히 다시 디졸브 되면...
씬 짧은 회상 (7회 중에서)
경보 스님께선 지금 비기를 적으시나 보옵니다.?
도선 ....... (미소)
경보 시국이 어찌 될 것 같사옵니까? 스님의 비기엔 어찌 나와 있사옵니까? 궁금하옵니다.
도선 이놈아... 네 눈은 어디 두고 남의 눈으로 보려 드느냐? 답답한 놈.... 훗날 너도 알게 될 것이니라.
씬 다시 현실
경보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혼자 미소짖고 있다. 그리고 마음에 소리로 중얼거린다.
경보 (E) 그래, 이제 내 눈이 뜨였다. 스승께서 하신 말씀들이 다 보이고 다 들려온다. 그리고 다 맞는 말씀이셨다. 그러나 백성들이 너무 불쌍하지 아니한가? 결말은 너무 비참하고 또 너무 어렵다. 내가 할 일은 이 곳에 있는 것이다. 이 곳에 있어...
그렇게 끄덕이는 경보의 그 표정에서...
씬 백제국 황궁
씬 동 황궁 조당
많은 문무신료들이 모여있고 견훤이 옥좌에 앉아 말하고 있다.
견훤 경들은 들으라.
모두들 예...
견훤 우리는 지금 대야성을 함락시킨 이후 보다 큰 통일 전쟁을 위해 힘을 비축하는 시기에 들어와 있다. 다행이 농사는 대풍이고 군사들의 훈련 또한 그 사기가 높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지금 고려 또한 언젠가 우리와 싸울 그 때를 위해 필사적인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들었다. 경들은 결코 이 점을 가볍게 보지 말라.
모두들 예, 폐하....
애술 폐하. 우리는 그동안 충분히 쉴만큼 쉬었사옵니다. 신라든 고려이든 이제 우리의 힘을 보여줄 때가 왔다고 생각되옵니다. 영을 내려주시오소서.
최필 애술 장군의 말이 지극히 맞사옵니다. 너무 오래 쉬면 군사들의 마음이 헤이해질 수 있사옵니다. 폐하의 영토를 넓히도록
허락하시오소서.
김총 허락하시오소서, 폐하.
견훤 하하하하... 그러나 전쟁이란 다 시기와 때가 있는 것이야. 아직도 농사가 다 끝나지 않았어. 농번기에는 군사를 이르키는 것이 아니야. 조금만들 더 기다리게. 기다려...
신덕 폐하, 옳으신 말씀이옵니다. 대야성 전투 이후 장졸들의 사기는 매우 높사옵니다. 크게 염려하실 것이 못되옵니다. 폐하의 군대는 언제든 어디로든 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사옵니다. 서둘 일이 아니라 사료되옵니다.
능애 그러하옵니다, 폐하. 싸우기보다도 지금은 좀 더 국력을 다지고 폐하꼐서 말씀하신 외국과의 외교 문제를 보다 깊이 헤아리실 때이옵니다. 삼한을 통일하는 것은 주변 여러 나라들의 이해관계가 함께 하는 일이옵니다. 그 대비를 철저하게 하시오소서.
견훤 암, 암... 우리 삼국이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일이 더 중요하지. 그 때문에 지난번에 특별히 관련 부서에 영을 내려놓았어. 특히나 지금은 당나라가 무너지면서 오월국이 우리와는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워 저들과 크게 협력할 필요가 있어. 물론 일본국에도 사신을 보내기로 했으니 그 결과를 지켜보도록 하세. 그리고 태자
신검 예, 폐하.
견훤 나는 태자가 알다시피 지는 것을 매우 싫어해. 나는 특별히 태자에게 군부를 점검하라고 하였어. 그 깊은 뜻을 잘 새겨야 할 것이야.
신검 예, 폐하.
공직 폐하. 하옵고 신이 알기로는 폐하께오서 백계산으로 직접 납신다 들었사옵니다. 일개 승려 한 사람을 보시기 위하여 폐하께서 직접 거동하심은 예에 어긋나는 것 같사옵니다. 그점 또한 살피오소서.
박영규 그러하옵니다. 그 자가 아무리 이름이 높은 고승이라 하더라도 폐하의 땅에 있는 백성이옵니다. 폐하께서 직접 가심은 너무도 과분한 일이라 사료되옵니다.
민합 그러하옵니다. 그 자를 황도로 부르시오소서, 폐하.
공달 그리하시오소서. 자칫 백성들이 비웃을까 염려되옵니다.
능환 신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폐하. 폐하의 위엄에 손상이 갈 수 있사옵니다. 그 자를 부르시면 올 것이옵니다.
견훤 그렇지가 않아. 무릇 큰 스승을 모시는 데에는 그에 걸맞는 예법이 필요한 것이야. 나는 그것을 지키고 싶은 것이야. 아니 그런가, 파진찬?
최승우 지극히 옳으신 말씀이옵니다. 한 사람의 현자를 만나는 것은 열 개의 성을 대하는 것보다 신중하고 어렵게 하셔야 하옵니다. 그리로 납시는 것은 폐하의 도량을 크게 보이시는 일이옵니다.
견훤 암, 그러기에 나도 결정한 것일세. 이 일은 더 논하지 말라.
능환 하오나 폐하. 그 경보라는 중이 누구이옵니까? 도선의 제자라 들었사옵니다. 도선이란 그 중은 옛날에 고려의 왕 왕건이의 편에 서 있던 자이옵니다.
견훤 그러나 그 이름이 얼마나 높았던가? 흑백논리로만 사람을 본다면 결국 실패하고 말아. 그럴 수록 우리가 가서 잘 설득하고 이해를 시켜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번에는 이찬도 함께 가도록 하세.
능환 .........
견훤 파진찬도 가고 태자들도 함께 가도록 해. 알겠는가?
그들 예, 폐하..
견훤 그래, 전쟁도 중요하지만 현자를 만나는 일 또한 참으로 중요해. 무릇 나랏일을 하는 관리들을 그 점을 특히 잘 생각해야 할 것이야. 알겠는가?
그들 예, 폐하.
씬 동 황후전
박씨가 상궁 이씨에게 묻고 있다.
박씨 폐하께서 태자들을 데리고 백계산으로 가신다고..?
이상궁 예, 마마. 이번에는 큰 태자마마와 금강 태자님도 가신다 하옵니다.
박씨 어쩐 일로 우리 신검이를 다 챙기시는고...?
이상궁 .......
박씨 금강이는 아주 옆에 차고 다니실 요량이신 모양일세. 어딜 가든 그저 금강이야, 금강이, 금강이.... 그 밖에 또 누가 간다고 하던고..?
이상궁 이찬과 더불어 파진찬도 함께 간다 하옵니다.
박씨 듣자하니 그 중은 도선대사의 제자라더구먼. 백리길도 훨씬 넘는 그 먼길을 손수 찾아가실 게 무엇인고...? 차라리 그 정성으로 자식들이나 좀더 자상히 살펴주시지.
씬 고비의 처소
고비가 금강에게 타이르고 있다.
고비 이번에는 적지않이 먼길을 가시는 겝니다. 특히나 형님 되시는 신검 태자와 함께 가십니다. 여러모로 조심하셔야 합니다.
금강 예, 어마마마. 하오나, 어머님께서 너무 걱정이 크신 것 같사옵니다. 그토록 매번 걱정하시는 이유를 모르겠사옵니다.
고비 이유를 모르다니요, 태자? 폐하께서 유독 태자를 이뻐하시니 많은 이들의 질투가 있습니다. 특히나 신검태자는 태자의 형님이시고 훗날 보위를 이으실 분입니다. 그런 분이 우리 모자를 좋게 보지 않고 있습니다.
금강 형님은 여러번 전투에서 실패를 하셨사옵니다. 그 때문에 아버님께 꾸중을 들은 것이지 소자 탓은 아니옵니다.
고비 그런 말도 해서는 아니 됩니다. 언제 어떻게 화를 당할지 모르는 것이 이 궁궐입니다. 형님들을 보면 그저 죽은 듯이 머리를 숙이세요. 그게 사는 길입니다, 태자. 아시겠습니까?
금강 잘 이해가 아니 가옵니다, 어마마마. 하지만 노력해 보겠사옵니다.
고비 그리 하셔야지요. (대견한 듯 보며) 이 어미도 태자만 보면 그저 든든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혼자서만은 못사는 것입니다. 어미 말을 명심하세요.
금강 예, 어마마마.
그렇게 금강을 보는 고비의 대견한 눈빛에서
씬 길
견훤 일행들이 가고 있다. 능환과 최승우, 신검과 금강이 함께 따르고 있다. 그리고 박영규도 함께 가고 있다. 그들 그렇게 가면서 능환이 견훤에게 말한다.
능환 폐하, 신은 아무리 생각하여도 그 경보라는 중이 우리 백제에게 호의적일 것 같지가 않사옵니다.
견훤 허허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만큼 공부를 많이 한 스님이라면 결코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서 이리저리 하지는 않을 것이야. 지금은 덕망이 있는 인물들의 도움이 필요한 때일세. 상대가 누구이든 그리고 어디에 있든 나라를 위해서라면 가서 머리를 숙이는 것이 치자의 도리일세.
능환 그렇기는 하오나.. 이 먼길을 가신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워서 드리는 말씀이옵니다.
견훤 허허허... 그 옛날 파진찬을 만날 때에도 그러하였어. 그 때는 이찬 자네가 그렇게 하라고 권하지 않았는가?
능환 아, 예, 뭐.......
견훤 헌데, 어떠한가? 지금 파진찬이 하는 일이 말일세?
최승우 과분하신 말씀이시옵니다. 신이 하는 일은 여기 이찬 어른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일들이옵니다. 이찬 어른이야말로 우리 백제국의 보배중의 보배가 아니시옵니까?
능환 ........(불쾌하다) 어흠, 음음......
견훤 그래, 이찬은 지난날 공이 참으로 컸지. 암, 그건 맞아. 그나저나 길을 한참 가야겠네 그려. 허허허... 경보대사라.....
씬 바닷길
최응이 배를 타고 가고 있다. 함께 가는 수행원에게 묻는다.
최응 이제 곧 나주에 닿겠네 그려.
수행원 예, 시랑어른.
최응 우리는 지금 나주에 내려 다시 백제 땅으로 들어갈 것일세. 평범한 백성을 가장하고 가는 것이니 이후로는 존칭을 쓰지 말도록 하게.
수행원 예, 시랑어른.
최응 그러고 보면 그 옛날 폐하께서 나주를 우리 땅으로 만들어 놓으신 것은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셨네. 그곳이야말로 요지 중의 요지가 아닌가 말일세. 백제도 그렇고 우리 고려도 그렇고 이 삼한에서 외국으로 통하는 길은 그 나주항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야.
수행원 그러하옵니다.
최응 나주에 닿으면 영암까지는 꼬박 하룻길이 넘을 것일세.
수행원 나주에 김언장군은 아니 보고 가실 것이옵니까?
최응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못하네. 그냥 가야겠네 그려.
수행원 아, 예...
씬 고려 황궁 외경
씬 동 대전
왕건과 의형제들인 유금필, 신숭겸, 박술희가 와 있다. 왕건이 각자의 잔에 술을 따라준다.
왕건 몇 잔 하였더니 얼큰해지네 그려. 자 들 마시게? (사이) 그래, 국사가 다망한 때에 굳이들 한꺼번에 날 보자 한 이유가 무엇인고..?
유금필 허허허.... 그간 너무도 적조하였는지라, 문후를 여쭙고 싶어 그리하였사옵니다.
왕건 암, 그렇긴 그래. 우리는 너무도 가까이 있으면서도 자리를 함께 하지 못했어.
신숭겸 그렇사옵니다, 폐하.
왕건 자 한잔 씩들 더 드세..
모두들 예, 폐하...
그렇게 한번 술잔들을 들고나서 왕건이 정색을 하며 천천히 의제들을 하나씩 바라본다. 의아해서 박술희가 묻는다.
박술희 왜..... 그렇게 보시옵니까, 폐하?
왕건 아닐세. 아우들의 얼굴을 보니 옛날이 생각이 나서 말이야. 우리가 함께 의를 맹세하고 형제가 된 때를 생각하고 있네 그려. 그 때는 참으로 사심들이 없었네.
유금필 예...? 무슨 말씀이시온지...?
왕건 그 때 우리는 아주들 순수했네. 오로지 정의만 생각했지.
신숭겸 폐하,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왕건 그렇다는 이야기일세. 이보게 술희아우?
박술희 예, 형님폐하.
왕건 아우는 어째서 우리 태자 무가 빨리 정윤이 되어야 한다고 앞장을 서고 있는 것인가? 그 이유가 무엇이야?
박술희 (흠칫하며) 폐하, 그것은 황실과 나라의 앞일을 생각하여...
왕건 (말을 막으며) 물론 그렇지. 그건 나도 알아. 헌데 말이야... 황실과 나라를 생각하기 그 이전에 다른 생각들이 있는 것 같아.
모두들 ......... 폐하...?
왕건 말하자면 이런 것이지. 나는 황제의 아우이다, 보아라 신료들이여 우리 말은 곧 황제의 말과 같다, 누가 감히 우리의 뜻을 거스를 것인가...?
그 말을 끝내면서 왕건의 표정은 굳어졌다. 형제들의 표정도 모두 굳어졌다. 박술희가 자세를 바로하며 말한다.
박술희 폐하,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신들은 오로지 황실의 안위를 생각하여 드린 말씀이옵니다. 추호도 다른 뜻은 없사옵니다, 폐하.
신숭겸 그러하옵니다, 폐하. 다른 이들이라면 몰라도 신들이 어찌 형님 폐하를 뫼시면서 그런 생각을 품을 수 있겠사옵니다.
유금필 그러하옵니다, 폐하. 그 말씀은 거두어 주시오소서. 신들의 마음은 변함이 없사옵니다, 폐하.
왕건 이보게, 술희.
박술희 예, 폐하.
왕건 태자문제는 아우가 먼저 꺼냈어. 그리고 물론 나주의 오대부가 자네를 찾아가 부탁을 했을 게야. 거기까지는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한번 다음으로 이야기를 미루자 하였으면 그리 해야지. 조정에서 보란 듯이 이야기를 꺼냈어.
박술희 폐하.
왕건 (엄하게) 아우의 힘을 한번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인가? 그랬던 것이야?
박술희 (다시 일어나 부복한다) 폐하, 신이 어찌 그럴 리가 있사옵니까? 그리 생각하셨다면 신이 잘못했사옵니다. 용서하시오소서, 폐하.
왕건 자네들 둘도 마찬가지야. 집안 일이라 하면 집안에서 할 이야기야. 공신들과 대립하고 원로들과 대립하고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 그대들의 참으로 내 아우가 맞는가? 태자 문제를 생각할 때에 아우들이 나보다도 더 가깝고 진솔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말들을 해보아.
그야말로 세 사람은 그냥 얼어붙었다.
왕건 무어, 문후를 여쭙고 싶었다고..? 아우들의 의견을 다시 말하려 온 것이지 내 안부를 물으려 왔단 말인가? 그런 것이야?
세사람 폐하.
왕건 .........!
씬 동 복도
막 공신들인 배현경, 홍유, 복지겸이 함께 오다가 안에서 들려 나오는 고성에 흠칫 하며 선다.
왕건 (E) 말들을 해보아, 말들을 해... 그런 것인가, 아니 그런 것인가?
공신들 .........?
왕건 (E) 아우들이 먼저 다독거려야 할 태자 문제를 아우들이 들고 설치다니 말이 되는가?
공신들 .........?
씬 동 대전 안
세 아우는 꼼짝 못하고 그렇게 머리를 숙이고 있다. 왕건이 다시 말한다.
왕건 모름지기 아우들은 내가 믿는 것만큼 내 입장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이야. 벌써부터 권력에 맛을 들이고 그것을 행사하려 한다면 나는 아우들을 보지 않겠네.
유금필 폐하. 신들이 잠시 성급했던 것 같사옵니다. 용서하시오소서.
두사람 용서하시오소서, 폐하.
왕건 오늘의 일을 돌아가서 침착하게 생각들 해보라. 진정으로 아우들이 나를 대신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들을 낮추는 일이야. 알겠는가?
그들 예, 폐하.
그때 대전 내관의 아뢰는 소리가 들린다.
내관 (E) 폐하... 배현경 장군들께오서 드셨사옵니다.
왕건 그만 물러들 가게. 내 공신들도 좀 보자고 하였어.
세형제 예, 폐하. 하오면 물러가옵니다.
왕건 가 보아...
그들이 일어나 나가면서 공신들이 굳은 표정으로 들어온다. 왕건이 보고 있다가 여유있게 말한다.
왕건 들 앉으시구려.
배현경 예, 폐하.
그들이 앉자 상궁들이 다시 술잔을 내다 준다. 왕건이 말없이 따른다. 세 장군은 계속 눈치만 살피고 있다. 보고 있다가 홍유가 묻는다.
홍유 폐하, 신들을 불러계셨사옵니까?
왕건 그랬소이다. 경들이 올린 상소문을 보았소이다. 태자 문제 말입니다. 참으로 구구절절히 옳은 말들이었어요.
복지겸 신은 상소문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사옵니다.
왕건 아, 물론 그럤지요. 우선 드십시다. (모두들 마시고) 헌데, 여기 두분 말이오. 두 분은 이 나라의 일등 공신이십니다. 여기 복장군도 그렇고 방금 나간 내 의제 신숭겸 장군도 그래요. 일등공신이라면 명실공히 이나라의 최고 반열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모두들 ..........
왕건 지금 여기에 있는 황제는 공신들이 아니면 어디 옥좌를 꿈이나 꾼 사람이겠습니까?
배현경 (크게 놀라며) 폐하,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왕건 누구나들 처음 만나고 출발할 때는 뜻이 아주 좋은 법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가고 위치가 높아지면 어느새 목이 굳어지는 법이지요.
홍유 폐하........?
왕건 공신들이 국정에 관여하면 나라 질서가 위태로워집니다. 나는 오늘 이 말만 하고 싶습니다. 태자 문제는 여기 계신 공신들이 분명 나름대로의 불만이 있어 제동을 거는 것이올시다. 내 말이 틀렸습니까?
배현경 폐하께서 그리 질책하시오니 드릴 말씀이 없사옵니다. 참으로 몸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폐하. 하오나...
왕건 말해보시오.
배현경 솔직히 말씀 올려서 신들은 권력의 중심에 나서겠다는 것이 아니오라 중요한 국사를 논하는 데에 소외되어 있다는 것이 섭섭했사옵니다. 더군다나 그 중요한 태자마마 문제이옵니다.
왕건 그래서... 지금은 아주 시원하오이까?
배현경 신 배현경 다시 말씀 올리옵니다. 생각해 보건데 신이 잘못한 것 같사옵니다. 벌하여 주시오소서.
홍유 신도 그러하옵니다. 잠시 섭섭함이 있었사옵니다. 하오나, 오늘 폐하의 꾸중을 듣고 보니 큰 죄를 진 것을 알았사옵니다. 용서하시오소서, 폐하.
왕건 나는 깜짝 놀랐소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말이오. 태자가 정윤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오. 그런데 각자의 생각들이 너무 달라. 왜 이 일이 권력 싸움으로 비쳐야 된단 말이오? 경들은 그런 권력을 가지고자 공신이 된 게 아니지 않소이까?
홍유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신들이 잠시 앞을 보지 못하였사옵니다. 이후, 크게 잘못을 반성하겠사옵니다.
왕건 세상의 인심이란 그런 것이오. 경들이 나를 앞세워 이 나라를 연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오. 그러나 그것을 끝까지 가슴에 품고 자신을 크게 보이고자 한다면 그건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 되오.
세사람 예, 폐하....
왕건 태자문제는 집안 일이오. 내가 알아서 할 것이란 말이오. 경들은 경들의 일만 하오.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세사람 망극하옵니다, 폐하....
왕건 되었소이다. 자 한잔씩들 하시구려. 처음에 있었던 일을 끝까지 가지고 갈 수만 있다면 우리는 영원히 역사에 그 이름을 남길 겝니다. 잘들 해보십시다.
세사람 예, 폐하...
웃고있는 왕건의 표정에서...
씬 오씨의 처소
오씨가 오다련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오씨 아니 아버님, 처음에는 폐하의 의제분들이 불려 들여가고 또 그 다음에는 일등공신들이 불려갔단 말이옵니까?
오다련 그렇사옵니다, 마마. 잠시 후에는 저의 원로들 모두가 대전으로 들라는 명을 받고 있사옵니다.
오씨 무슨 일이옵니까, 아버님?
오다련 모르지요, 어떤 말씀을 하실런지는.... 하온데, 마마. 지난 밤에 폐하께 가셔서 아무런 말씀도 듣지 못하셨단 말이옵니까?
오씨 예, 아버님. 오히려 꾸중만 들었사옵니다. 충주 아우와 잘 지내라고 말이옵니다.
오다련 폐하께서는 물론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으시옵니다. 그러나 우리 태자님께서 정윤이 되시는 것은 사필귀정이옵니다. 이미 조정의 공론이 그리 돌아가고 있사옵니다.
오씨 하지만 불안하옵니다. 폐하께서는 우리 태자 무를 보시면서 마땅치 않아 하셨사옵니다.
오다련 그 이야기는 들었사옵니다. 그러나 글도 중요하지만 무예도 닦아야 한다는 충고를 하신 것이지 꾸중을 하신 것은 아니옵니다. 너무 심려치 마시오소서. 잘 될 것이옵니다. 무언가를 폐하께서 정하신 것 같사옵니다. 그러니까 차례차례 부르시는 것이 아니옵니까?
오씨 장담하실 일이 아니옵니다. 너무도 불안하옵니다.... 불안하옵니다.
오다련 잘 될것이옵니다, 마마. 기다려보시오소서. 저는 그럼 대전으로 가 보아야겠사옵니다. 소식을 기다리시오소서.
오씨 예, 아버님..
오다련이 그렇게 나간다. 불안하게 가슴을 조아리던 오씨가 박상궁에게 말한다.
오씨 내 생각대로 되어 가는 것이 아닌 것 같네. 어제도 그래. 폐하께서는 마치 너는 왜 그 모양인가 하고 태자를 나무라는 듯한 모습이셨네.
박상궁 그럴 리가 있사옵니까? 대부님의 말씀이 맞사옵니다. 좀 더 폭넓은 공부를 하시라고 격려하시는 것이었사옵니다.
오씨 아니야... 아니야.. 이러다가 정말 우리 태자 무가 정윤의 자리에서 밀려나는 것이 아닌 지 모르겠네. 너무 두렵고 떨리네.
박상궁 안심하시오소서, 마마.
오씨 황궁의 새 법당을 만들지 않았는가?
박상궁 예, 마마.. 법당은 왜...? 물으시옵니까?
오씨 지금 같아서는 기도라도 드리고 싶네 그려. 그렇게 하면 마음이라도 좀 편하지 않겠는가? 그 법당을 좀 알아보게. 아무래도 그렇게라도 해야겠네 그려. 견디기가 어려워.
박상궁 예, 마마...
씬 동 대전
왕건이 김행선과 더불어 원극유, 박질, 박지윤, 오다련, 유긍달과 찻잔을 마주하고 있다.
왕건 백제땅 보성에서 건너온 햇차입니다. 향이 아주 좋습니다. 허허허....
김행선 (마시며) 참으로 그러하옵니다. 향이 그윽하옵니다. 허허허...
박지윤 오면서 들으니 폐하께오서는 오늘 많은 신료들을 대면하셨다 하옵니다. 무슨 일이 있으시옵니까?
왕건 허허허... 일은 무슨 일이겠습니까? 그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조정에서 할 이야기가 있고 또 사사로이 나눌 이야기들이 있지 않습니까?
박질 암, 그렇고 말구요. 어찌 아니 그렇겠사옵니까?
왕건 광평성의 원로분들께서 올려주신 글을 보았습니다. 구구절절이 참으로 좋은 말씀이셨습니다.
김행선 망극하옵니다, 폐하. 신들의 뜻을 그렇게 어여삐 받아주시니 참으로 황은이 크시옵니다.
원극유 신도 폐하의 그 넓으신 은혜에 다시 한번 경하를 올리옵니다.
왕건 나는 원로들께서 무엇을 염려하시고 또 원하시는 줄을 압니다. 마땅히 태자문제는 충분히 생각하고서 결정해야 합니다.
유긍달 망극하옵니다, 폐하. 그리 생각해 주시니 원로들 모두가 마음을 놓을 것이옵니다.
왕건 그런데 말입니다... 과연, 원로분들께서는 그토록 나라를 염려하셔서 이 일을 반대하시는 것인지 좀 알고 싶습니다.
모두들 ........?
왕건 원로라는 위치는 나라의 어른들이라는 뜻이올시다. 그리고 모범을 보여야 하는 중심이올시다. 왜 원로들이 태자문제를 아예 뒤로 제쳐버리자고 하는 지는 이 나라 백성이면 누구든 금방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역적인 이익에 관계가 된 것 같소이다.
김행선 폐하....?
왕건 세상을 오래 사신 분들이니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황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를 아실 겝니다. 참으로 그 동안 여기 계신 원로 분들은 나라를 위해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박지윤 무슨 말씀이시온지....?
왕건 이제 더러는 나이들도 있으니 그만 향리로 돌아가서 쉬실 분은 쉬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원로들은 모두 눈을 크게 뜨고 어쩔 줄을 모른다.
왕건 특히나 여기 계신 두 장인어른 말씀입니다.
두대부 예, 폐하.
왕건 나라를 위해 두 분 만큼 열심히 하신 분들도 아니 계십니다. 잘 압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마는 우선 향리로 돌아가시지요.
두사람 폐하...?
모두들 ............ (다들 겁을 먹었다)
왕건 그렇게 하세요. 태자문제는 두 외조부께서 그렇게 힘을 쓰지 않으셔도 잘 처리가 될 것입니다. 허허허......
오다련 폐하, 신은 그저.. 태자 마마께오서 어느덧 장성하셨기로 다음 정윤의 자리를 말씀올린 것 뿐이옵니다. 신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용서하시오소서.
유긍달 신 또한 그러하옵니다. 신의 생각은 아직은 그 일을 논하기가 이른 것 같아 말씀드렸을 뿐 다른 뚯은 없었사옵니다. 살펴헤아리시오소서.
김행선 신들도 그러하옵니다. 다른 뜻이 없사옵니다, 폐하. 오로지 나라의 장래를 생각해 드린 말씀이옵니다. 폐하. 통촉하시오소서.
왕건 아닙니다, 아니에요. 나라를 생각하는 그 마음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잘 압니다. 그래서 좀 쉬시라는 것이 아닙니까?
박지윤 신 박지윤 아뢰옵니다. 신들은 아직도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싶사옵니다. 물러가라는 말씀은 거두어 주시오소서, 폐하.
왕건 고생한 분들이시니 쉬라 한 것 뿐입니다. 헌데, 고맙게도 아직도 이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싶다 하시니 한번 더 생각해 보도록 하십시다.
박지윤 망극하옵니다, 폐하. 신들은 더 이상 태자마마 문제에 관해서 관여하지 않겠사옵니다. 폐하께서 그처럼 깊이 생각하시는 지는 몰랐사옵니다.
김행선 그러하옵니다, 폐하. 그 문제로 노여움이 있으셨다면 용서하시오소서.
왕건 좋습니다. 허면, 그 이야기는 그만 하십시다. 허나 내가 보기에는 시중께서도 나이가 너무 많이 드신 것 같습니다.
김행선 예..?
왕건 원로들의 의견을 정리하는 것은 시중의 일이올시다. 업무가 과중하시면 별도로 배려를 할까 합니다. 괜찮겠습니까?
김행선 아니 올사옵니다. 그럴 리가 있사옵니까? 신은 아직 일할 수 있사옵니다. 통촉하시오소서, 폐하.
왕건 좋습니다. 차가 다 식었습니다. 어쨋든 오늘은 국사에 그 동안 노고가 많으신 원로들을 모시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자 한 것뿐입니다. 차들 드시지요? 자 드십시다.
원로들 예, 폐하....
왕건 허허허... 이거 물을 새로 들여야겠구먼, 차가 다 식었습니다, 그려.. 원로분들 대접이 이래서는 아니 되는데 말입니다. 허허허...
능청스러운 왕건의 그 표정과 식은 땀을 흘리는 원로들의 표정에서...
씬 수인의 처소 외경 (밤)
씬 동 처소 안
수인이 김상궁과 더불어 마주해 있다.
수인 뭐라고...? 의형제분들과 공신들과 그리고 원로분들까지 불려들여가서 혼들이 나셨다고...?
김상궁 그렇다 하옵니다, 마마. 인자하신 폐하께서 오늘은 하루 종일 신료 분들을 차례로 불러 들이셔서 엄히 꾸중하셨다 하옵니다. 하옵고...
수인 말해 보게.
김상궁 두 분 대부님께오서는 향리로 돌아가시라는 영이 내려지셨다 하옵니다.
수인 뭐라고.....? 향리로 돌아가다니..?
김상궁 사실이라 하옵니다, 마마. 더 이상 태자마마 문제에 개입하지 말라는 꾸중이신 것 같사옵니다.
수인 세상에 이를 어쩌나... 폐하께서 어떻게 그렇게... 몰인정하실 수가 있단 말인가? 아버님을 내 쫓으시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가?
김상궁 대부 어른 뿐만 아니라 나주의 오대부께서도 향리로 가신다 하옵니다.
수인 세상에.. 이런 세상에...?
김상궁 대전의 분위기가 참으로 무서운 것 같사옵니다. 잠시 조심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수인 (끄덕인다) 그래... 그게 바로 폐하의 숨겨진 모습이시지. 언제나 온유한 척 하시지만 그 내면 속에는 무서운 칼날이 들어있어. 세상에 그래도 그렇지...(하다가) 김상궁은 아버님일을 좀더 알아보게.
김상궁 예, 마마...
그들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는데 나인이 급하게 달려와 말한다.
나인 (E) 황후마마... 쇤네이옵니다.
김상궁 들어오게
나인이 들어와 말한다.
나인 마마, 방금 유모에게서 오는 길이옵니다. 아기 태자마마께서 갑자기 많이 편찮으시다 하옵니다.
수인 뭐라고...? 우리 태가 말인가...?
나인 예, 마마.. 초저녘부터 갑자기 열이나시고 드신 것을 토하신다 하옵니다.
수인 이런 세상에.. 가보게 김상궁..
김상궁 예, 마마...
그들 그렇게 가면...
씬 태자 유모의 처소
아이가 계속 울고 있다. 유모가 애가 타서 전의를 재촉하고 있다.
유모 태자 아기님께서 열이 불덩어립니다. 대체 웬 까닭입니까?
전의 글쎄올시다. 자꾸 토하시는 걸 보면 잡수신 것이 체하신 것도 같고... 헌데, 웬 열이 이렇게 오르실고...?
그때, 수인일행들이 들어선다. 울고 있는 아이를 본다.
수인 이보시오, 전의 아이가 왜 이러오?
김상궁 귀하신 태자마마실세. 유모는 대체 아기님을 어떻게 하신겐가?
유모 송구하옵니다. 갑자기 초저녘부터 이러시는지라...
수인 이보시게, 전의. 괜찮겠소?
전의 약을 좀 다려 올리겠사옵니다. 어리실 때는 이럴 때가 종종 있사옵니다. 크게 염려 안해도 될 것이옵니다.
수인 ......... 허지만, 열이 이렇게 불덩이가 아니오? 왜 그런지는 알아내야 하지 않겠소?
전의 예, 마마.. 계속 지켜보겠사옵니다. 왜 이러실고..?
수인 ..............?
전의의 그런 표정에서...
씬 동 황궁 법당
오씨가 박상궁과 더불어 기도 드리고 있다. 그 옆에서 스님이 독경을 하고 있다.
오씨 부처님 제발 우리 태자 무가 별일 없이 정윤에 봉해지도록 도와주시오소서. 사악한 무리들을 멀리 해 주시고 우리 태자가 폐하의 뒤를 잇게 해 주시오소서, 비옵니다... 부처님 비옵니다...
그러한 오씨의 표정에서...
씬 황궁 마당 일각 (낮)
왕유와 장수장이 보고 있다. 어린 태자 무가 목검을 들고 장수장에게 배우고 있다. 기합소리와 함께 검세를 연이어 펼쳐 보인다.
왕유 허허허... 이보시오, 장부장?
장수장 예.
왕유 폐하께서는 특별히 무예 스승을 찾아 뫼시라고 하시었소. 그대는 일찍이 폐하께서 잠저에 계실 때 또한 무예를 가르치신 분이오. 잘좀 이끌어 주셔야겠소이다.
장수장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가서 자세를 바로 해 준다) 태자 마마 이렇게 하시오소서. 앞으로 나가실 때는 이렇게... 옆으로 베실 때는 이렇게 해 보시오소서, 자 해보시오소서.
무 예, 장군....
태자 무는 계속해 검법을 훈련한다. 끄덕이며 보는 그들의 표정과 무의 모습에서...
씬 황궁 대전
왕건이 홀로 생각에 잠겨 있다.
왕건 태자 문제는 최응이의 말처럼 오래 끌어서는 아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원로들의 말처럼 한동안 이 일을 잊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국론이 분열된다. 어떻게 할고....? 이 일을 어떻게 할고...? 신료들의 의견이 갈라지는 것은 이 기회에 막는다 하더라도 태자문제는 어떻게 결정하는 것이 옳은 일일고...? 어려운 문제로다. 어쨋든 오래 끌 수는 없다. 오래는 안돼.
그렇게 끄덕이는 왕건의 고민에서..
씬 길
최응이가 수행원과 가고 있다. 강변길을 따라 그렇게 간다.
수행원 시랑어른, 이미 우리는 백제땅에 들어와 있사옵니다.
최응 알고있네. 이후부터는 자네의 그 말을 조심해야 하네. 나와 자네는 그저 평범한 보부상처럼 행동을 해야해.
수행원 예, 시랑어른, 그리하겠사옵니다.
최응 어서 가세. 온종일 걸어야 하네.
그들 그렇게 가면...
씬 또 다른 길 (산길)
가고 있는 견훤과 그 일행들.
견훤 이것 참 길이 멀기는 멀구먼... 꼬박 이틀 길이 아닌가?
최승우 영암까지는 먼 길이옵니다.
견훤 그러게 말일세. 그러고보면 우리 백제땅이 넓기는 넓어. 허허허... 아니 그런가, 이찬?
능환 그러하옵니다, 폐하.
견훤 허나 여기에 만족 할 수는 없지..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삼한일세. 내가 지금 경보대사를 찾아가는 것도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한 이유의 하나일세. 그걸 알아주게 이찬.
능환 예, 폐하. 신이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견훤 그리고.. 지난 날 내가 이찬에게 여러가지로 더러는 심한 말도 할 때가 있었어. 그건 이찬을 혼내는 것이 아니라 훗날 우리 백제를 책임질 태자를 혼내는 것일세. 이 기회에 그 얘기도 좀 하고 싶었네.
능환 예, 폐하.. 그 말씀 깊이 삭이겠사옵니다.
견훤 내 나이 오십이 넘은 지 오래일세. 그리고 자네도 늙었고... 헌데 정열은 아직도 식지가 않았어. 내 생전에 삼한의 통일을 보려고 하니까 이렇게 서두르는 것일세. 답답해서 말이야.
능환 예, 폐하..
그런 그들의 모습을 최승우가 들으며 끄덕이고 있다.
견훤 그리고 태자도 잘 들어라.
신검 예, 폐하..
견훤 아비가 자식을 혼내는 것은 다 그만큼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반드시 내 대에 통일을 이룰 것이다. 그리고 안정된 큰 나라를 너에게 넘겨줄 것이다. 그러자면 네가 강해져야 한다.
신검 예, 아바마마...
견훤 좀 더 자신감을 가져라. 오기 말이다. 사내에게 있어서 그 두 가지가 없다면 그건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이다. 알겠느냐?
신검 예, 아바마마....
견훤 도선대사는 고려왕 왕건이에게 천하를 통일 할 것이라 예언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가소롭다. 사실 경보대사에게 가는 이유 중의 하나도 그 궁금증을 한번 더 물어보고 싶어서이다. 도선의 제자에게 말이다. 과연 삼한 통일의 대업을 누가 이룰 것이냐고 말이다. 나는 지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나이니라. 대 백제국의 황제 이 견훤이가 그 주인공이 될 것이니라.
<138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