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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대본

[태조 왕건] 139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7.12.05|조회수2,025 목록 댓글 0

태조 왕건 <제 139회>


<줄거리>

도선대사의 제자 경보를 만나기 위해 최응 일행은 장사꾼으로 변복하고 백제땅으로 숨어든다. 그 시간 견훤 역시 경보를 국사로 모시기 위해 백계산 옥룡사로 직접 찾아 나선다. 최응과 견훤은 경보의 예지로 간발의 차이로 어긋나면서, 그토록 궁금해하던 삼한의 미래에 대해 선문답같은 예언을 듣는데... 한편 수인(왕건의 셋째부인)의 세 살배기 아들 태자 태는 급격히 병세가 악화되어 생사를 헤매고...


 


 

씬  옥룡사 근처길

 

        산비탈 길을 최응이 수행원과 함께 오르고 있다.

 

수행원  시랑어른 이제 다 온 것 같사옵니다. 옥룡사가 얼마 아니 남았사옵니다. 저기 보이는 저 곳이 아니옵니까?

최응    그런 것 같네. (주변을 보며) 과연, 이곳은 명당 자리일세. 도선대사께서 터를 잡고 앉으실 만한 곳일세.

수행원  풍수를 보실 줄 아시나 보옵니다.

최응    학문을 많이 하다보면 주역은 물론이요, 풍수 또한 빼 놓을 수 없는 것일세. 풍수란 자연의 이치일세. 인간이 살아야 하는 방법을 그대로 땅이 말해주는 것이야. 그것이 풍수라네.

수행원  예, 시랑어른.

최응    경보대사께서 절에 계실지 모르겠구먼. 일단 올라가 보세. 지금부터는 자네가 내 상전이 되는 것이네.

수행원  예, 시랑어른.

최응    가세나.

 

        그들 그렇게 산길을 올라가면, 그들 뒤로 저만큼 아득한 옥룡사의 모습이 보여온다.

 

씬  동 옥룡사 전경

 

        대단히 큰 고찰이다. 여럿 승려들이 오가는 것이 보인다. 카메라 그중 어느 객사를 잡는다.

 

경보    (E) 손님이 오시는 모양이다.

 

씬  동 객사

 

        경보가 방안에서 글을 읽고 있다. 조용히 책장을 넘기며 밖의 서 있는 시좌에게 다시 말한다.

 

경보    얘야, 손님이 오시는 것 같다고 했다.

시좌    경내에는 아무도 없사옵니다, 큰스님.

경보    허허허... 고요하던 마음 자리에 미풍이 이는구나. 손님이 오시는 게다. 일주문 쪽에 나가보거라.

시좌    예, 큰스님.

 

        경보는 그렇게 열려진 방문 안에서 글을 읽고 있고, 시좌는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간다. 

 

시좌    (가면서 중얼거린다) 아무도 없는데 도대체 누가 오신다고....?

 

        시좌는 그렇게 간다.

 

씬  동 산사 일주문

 

        시좌가 두리번거리며 걸어나온다. 그러다가 흠칫하며 산 아랫길을 본다. 거기, 최응 일행이 오고 있는 것이다. 홀로 감탄하는
 시좌.
 

시좌    이런, 세상에... 큰스님께서는 천리안을 가지고 계신가? 산아래 오는 사람들을 방안에서 어찌 보신단 말인고...? 허허, 이런...

 

        그리고 얼마큼 이르자 최응들이 가까워진다. 그들은 서로 합장을 한다.

 

최응    경보대사님을 뵈러 왔사옵니다.

시좌    아, 예.. 그렇지 않아도 큰스님께서 오시는 것을 이미 알고 뫼셔오라 하셨사옵니다.

수행원  (놀라서) 아니, 우리가 오는 것을 알고 계셨다고요?

시좌    예, 그러니까 큰스님이 아니시겠습니까? 어서 가시지요.

       

        두 사람 뻥해서 본다. 그러다 헛기침을 하며 시좌의 뒤를 따른다.

 

씬  다시 경보의 방

 

        참선의 자세로 경보가 앉아있다. 미동도 없이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다가 조용히 고개를 들어본다. 툇마루 저만큼 절 마당으로 최응 일행들이 오는 것이 보인다. 그들 그렇게 점차 가까워져 마주 이른다. 최응들이 합장을 한다.

 

시좌    큰스님 시주님들을 모셔왔사옵니다.

경보    그래, 너는 그만 가 보거라.

수행원  대사님, 대사님을 뵈러 먼길을 왔사옵니다. 저희들은 장사꾼으로서 그저 인사나 좀 여쭙고 가려고 왔사옵니다. 여기는 제 수하이옵니다.

경보    장사꾼이라....? (그들을 예리하게 한번 훑어보고 미소 짖는다)

수행원  예, 대사님....

경보    그대들의 몸에서 바다 냄새가 나고 또한 묵향이 그윽하니 장사꾼은 아닌 것 같소이다.

최응    ..........?

경보    아마도 먼 바닷길을 오신 것 같소이다 그려.... 그리고 두 분은 주종간이라는 그 설명이 잘못되셨구려. 묵향이 젊은이 쪽에서 나는 것을 보니 젊은이가 주인이신 것 같소이다. 허허허....

 

        두 사람 잠시 어안이 없이 뻥하니 있다가 최응이 그대로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최응    대사님, 잘 보셨사옵니다. 주변에 눈이 있을 것 같아 잠시 신분을 속였사옵니다. 소인은 대 고려국 신료인 최응이라 하옵니다. 잠시 대사님을 속인 것을 용서하오소서.

경보    자,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손님으로 오셨는데 문 밖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질 않소이까?

최응    예..

 

        그들 방안으로 들어가면...

 

씬  동 방안

       

        세 사람은 그렇게 마주 보고 있다.

 

최응    저희 황제폐하께오서는 대사님께 안부를 여쭈라 하셨사옵니다.

경보    고맙소이다. 일찍이 스승님을 뫼시고 그 분을 한번 뵌 적이 있었습니다. 송악에서였지요.

최응    아, 예..

경보    그때는 내가 아주 젊었었는데, 당나라로 공부를 떠나기 직전이었소이다. 저희 스승께서는 그 어른을 일러 삼한의 백성들을 구할 것이라 하셨지요.

최응    그러하옵니다. 이미 그 분은 황제가 되시었고 백성들의 많은 신망을 받고 계시옵니다.

경보    들었습니다.

최응    폐하께오서는 대사님께서 우리 고려국으로 오시어 나라의 스승이 되셔주셨으면 하시옵니다.

경보    허허허.... 그분의 스승은 이미 그분에게 가르쳐 드릴 것을 다 전해주시고 이 세상을 떠나셨소이다. 새삼 또 무슨 스승이 필요하겠습니까?

최응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인간의 배움에는 끝이 없사옵니다. 부디 고려로 오셔서 저희 폐하를 도와주시오소서.

경보    스승께서는 스승님이 하실 일을 하시었고 소승은 소승이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최응    소인은 어리석어 그 말뜻을 잘 모르겠사옵니다. 쉽게 말해주오소서.

경보    스승께서는 그 분의 인연을 따라서 사신 것이고 소승은 소승의 인연의 길을 간다 이런 말이올시다. 즉 고려로 가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최응    이유가 무엇이옵니까?

경보    허허, 이런... 최학사처럼 영민한 사람이 자꾸 묻는다니 오히려 내가 이상하구려. 고려에는 나 같은 사람이 할 일이 많지 않소이다. 내가 할 일은 이 백제에 있을 것 같소이다.

최응    백제는 우리 고려와는 적이옵니다. 백제를 도울 것이옵니까?

경보    나는 부처님의 제자이며 삼한 땅의 한사람이지 어느 지역국의 백성이 아니오. 어느 쪽을 돕던 간에 백성들에게 해가 가는 일은 아니 할 것이오. 그리고 한가지 말해두겠소. 우리는 언젠가 만나게 될 것이오. 그대의 황제 폐하와 소승이 말이오.

최응    허면, 언젠가는 고려국으로 오신다는 말씀이 아니옵니까? 그렇게 믿어도 되겠사옵니까?

경보    때가 되면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올시다.     

최응    (절하며) 고맙사옵니다, 대사님. 저희 폐하께 그리 말씀 올리겠사옵니다.

경보    그러나... 이 땅의 백성들이 아직 흘릴 피가 많이 남았고 서로 마주보는 기운들이 아직도 성성하오. 저들의 피가 멎고 그 기운이 한 주인을 찾아 정리가 될 때까지는 적지 않은 세월이 남았소이다. 그 세월 이야기 또한 전해주시구려. 기다려야 한다고 말씀이오.

최응    예, 대사님. 참으로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사옵니다. 한가지 더 여쭙겠사옵니다. 과연 삼한의 통일은 저희 고려국이 이룰 수 있겠사옵니까?

경보    허허허... 나는 점쟁이가 아니오. 그리고 천기를 누설할 수도 없는 노릇.. 내 스승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을 잘 생각하라 하시오.

최응    예, 대사님. 알겠사옵니다.

경보    허허, (마치 먼 곳을 보듯) 한 떼의 사람들이 또 몰려오고 있구려. 최시랑에게는 맞지 않는 사람들인 것 같소이다.  그만 물러가 쉬시구려.

최응    예, 대사님.

 

        잔잔히 웃는 경보의 표정에서

 

씬  옥룡사 일주문

 

        이미 견훤의 일행들이 화려한 모습으로 일주문 가까이 이르고 있다. 여러 승려들이 일제히 나와 합장을 하며 견훤 일행을 맞는다.

 

박영규  대 백제국 황제폐하께서 납시었소이다. 대사님께서는 어디에 계시오?

시좌    객사 안에 계시옵니다.

박영규  한 나라의 황제께서 납시었는데 어찌 나와서 맞지 않으시는 게요?

견훤    아아... 사위, 그 무슨 무례한 말인가? 나는 시주이고 그 분은 이 절의 큰 어른이실세. 자 들 내려서 가세.

 

        견훤이 말에서 내리자 모두들 함께 따라한다. 그들 그렇게 일주문을 걸어가 위로 올라간다.

 

씬  동 경내

 

        견훤 일행들이 들어서고 있다. 황제의 행렬답게 여전히 요란하다. 그들은 곧 법당 쪽으로 이르는데 거기 경보가 서 있다. 그렇게 그들은 가까워지고... 마주본다. 경보가 합장한다.

 

경보    빈도 경보라 하옵니다. 먼길을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사옵니다, 폐하.

견훤    허허허... 일찍부터 대사의 고명을 듣고 있었소이다.

경보    고명이라니, 당치 않사옵니다. 빈도는 그저 평범한 승려에 불과하옵니다.

능환    (보고 있다가) 대 백제국의 폐하이시오. 어찌 절을 올리지 않으시는게요?

모두들  .............?   

 

        전각 한 모퉁이에서 최응들이 이 정경을 보고 있다.

 

능환    절을 올리시오.

경보    여기는 부처님 집이고 나는 그 분의 제자요. 부처님 집안에서 그 분 외에 누구에게도 절을 하는 법은 없소이다. 오히려 불가의 예법을 안다면 폐하께서 이미 절을 하셨어야 했을 게요.

박영규  무엄하오. 누구에게 절을 하라는 것이오.

최승우  ........?

 

        분위기가 잠시 어색해지자 견훤이 껄껄껄 웃고 옷을 여민다.

 

견훤    옳으신 말씀이오. 나는 백제국의 황제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불제자이올시다. 불가에서는 스님을 뵈면 삼배를 드려야하는 것으로 압니다. 절받으시지요, 대사?

능환    폐하.. 절을 하시다니요? 당치 않사옵니다.

신검    절을 하심은 옳지 않사옵니다.

견훤    자리를 깔아라.

최승우  폐하의 영이시다. 자리를 깔아 뫼셔라.

 

        자리가 깔려진다. 모두들 긴장하며 이들을 보고 있다.

 

견훤    자, 대사.. 절을 받으시지요?

 

        그리고 견훤이 절을 한다. 그렇게 서서 절하는 모습을 오만한 듯 보고 있는 경보. 한번 절을 하고 일어서자 잠시 침묵이 흐른다. 경보가 다시 말한다.

 

경보    스님에게 하는 절은 본래 삼배를 하는 법이옵니다. 두 번이 더 남았사옵니다, 폐하. 

신검    아니, 저런 무례한.....

견훤    허허허... 참 그걸 깜박 했소이다. 절을 더 받으시지요?

 

        견훤이 연이어 두 번의 절을 끝낸다. 아무도 말이 없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본다. 숨어서 보고 있던 최응도 참으로 충격적이다. 갑자기 경보가 너털웃음을 웃는다.

 

경보    하하하..... 과연, 백제국의 황제폐하시옵니다. 스스로를 낮출줄 아시니 바로 그것이 가장 높은 자리에 계신 것이옵니다. 부처님 집에 오셨으니 법당으로 가시지요?

견훤    그리 하십시다, 하하하... 가십시다.

 

        경보가 견훤과 함께 법당으로 간다. 능환과 신검 박영규등은 아직도 굳은 표정이 가시질 않는다. 최승우만이 미소짖고 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씬  그곳 최응이 있는 곳

 

        최응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최응    보았는가? 견훤왕이 삼배를 하는 걸 말일세.

수행원  예, 시랑어른. 참으로 놀라운 일이옵니다.

최응    역시 호걸일세. 한 나라의 왕으로서 손색이 없어. 그 옆에 가는 사람이 최승우라는 사람이고, 그 옆이 능환이라는 책사야. 그리고 그 한쪽은 사위이고 그 옆이 아마도 태자인 것 같구먼... 아무튼 오늘 백제의 왕을 보았다는 것은 대단한 수확일세. 생각대로 그릇이 아주 큰 사람이야.

 

씬  동 법당 안

 

        견훤이 경보와 마주해 있다. 그 뒤로 최승우, 능환, 신검, 박영규 등이 서있다.

 

견훤    대사, 이 몸은 나라를 일으킨 지 이미 30년이올시다. 이제 신라는 그 위력을 잃었고 고려와 우리가 천하의 패권을 놓고 겨루고 있소이다. 대사께서는 이 삼한의 장래를 어찌 보시오이까?

모두들  .......?

경보    이 땅의 역사가 단군 이래로 수없이 합치고 갈라지기를 반복해왔사옵니다. 천년의 신라가 있기 전에도 그러했고 그 신라가 삼국을 병합한 지 이 백여년 만에 다시 이렇게 또 갈라졌사옵니다. 이 땅이 자꾸 이렇게 분열하는 것은 서로의 욕심이 크기 때문이옵니다. 훗날 삼한의 주인이 될 사람은 그 욕심을 이긴 사람이 될 것이옵니다.

견훤    허허허... 욕심 없이 어찌 삼한의 주인이 되겠소이까?

경보    모든 것을 다 놓았을 때, 다 얻는 것이옵니다. 그 이치를 모르시옵니까, 폐하?

견훤    하하하.... 이 사람은 참선 수행하는 스님 같은 분이 아니라서 우매합니다. 허면, 치국하는 법을 가르쳐주시오, 대사.

경보    강한 것은 일시적이고 유한 것은 영원한 것이옵니다. 백성을 은혜로서 다스리고 신료들은 엄히 단속하는 것이 군주의 도리이옵니다. 그리고 자신을 이기는 것이 바로 천하를 이기는 것. 스스로 몸을 갈고 닦지 않으면 어찌 만백성을 다스릴 수 있겠사옵니까?

견훤    무슨 말씀이신지.. 한번 더 들려주시구려.

경보    폐하께서는 성정이 급하시옵니다. 그 성정이 바로 폐하를 낳아주신 어버이를 가시게 하였고 훗날 폐하의 후손과도 액운이 따를 수 있사옵니다.

 

        그 말에 흠칫하며 신검과 능환이 놀란다.

 

견훤    그건 그렇습니다. 이 사람이 좀 급한 성격이지요.

경보    군주는 혼자 사는 몸이 아니시옵니다. 수많은 이들의 목숨과 더불어 사는 분이시지요. 군주가 어찌 하는가에 따라서 작게는 그 스스로가 망하고 크게는 나라가 망하는 것이옵니다.

견훤    깊이 새겨듣겠소이다, 대사.

최승우  대사께서는 그 옛날 고명하신 도선대사의 제자가 되시오. 어찌 백제에 오셨는지 궁금하외다.

경보    그러고 보니 삼십 년 전인가, 빈도가 스승님을 뫼시고 있을 때 바로 이 절에서 뵈었던 분이구려. 신라의 세 최씨 천재 중에 한 분이라는 최승우 학사가 아니시요?

모두들  ........ (아, 하는 표정이다)

최승우  그렇소이다, 대사. 인사가 늦었소이다.

경보    역시 세월은 속이지 못하는 것 같소이다. 많이 늙으셨소이다, 허허허... 빈도가 어찌 이곳에 오셨는가 물으셨는데 그 대답은 어렵지 않소이다.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온 것이외다. 그것은 바로 내 나름대로 백제국의 폐하를 뫼시기 위해서요.

견훤    (너무도 좋아서) 오, 대사... 이렇게 고마운 말씀을... 그 말을 들으니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소이다. 이 사람을 많이 도와주시구려, 대사. 나라의 스승이 되어주시오. 나와 함께 황도로 가십시다.

경보    말씀은 참으로 고마우시나. 빈도는 이곳에 있기를 원하옵니다. 빈도가 어디에 있든 폐하를 뫼시는 일에 소홀히 하지 않겠사옵니다. 이곳에 있는 것을 허락해주시겠사옵니까?

견훤    아, 생각이 그러하시면 어찌 굳이 막겠소이까? 어디에 계시든 백제 땅에 계시는 것이올시다. 허허허... 오늘 참으로 마음이 든든합니다. 허고... 대사, 대사는 조금 전에 삼한의 주인에 관한여 이야기를 하셨소이다. 고려의 왕 왕건과 우리 백제의 이 사람 중에서 과연 누가 삼한의 주인이 되겠소이까?

경보    (한참을 말이없다) .........

최승우  대사, 말씀해주시지요? 폐하께서 물으십니다.

모두들  ..........?

경보    (한참을 말이 없다가 웃는다) ....... 글쎄올사옵니다. 아직 그 대답을 하기에는 이른 것 같사옵니다. 다 세월이 말을 해 주겠지요. 아니 그렇습니까, 최학사?  최학사께서는 아실 법도 합니다마는....? 

최승우  ....... (표정이 매우 굳어진다)

견훤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네 그려.. 파진찬은 아는 것이 있는가?

최승우  (한참만에) 신도 무슨 말씀이신지 어리석어 모르겠사옵니다.

경보    사람이 사는 것은 시골의 무지렁이나 한 나라의 황제나 정해진 길을 살다가 가는 것일 뿐, 별 것이 아니옵니다. 하늘의 이치대로 산다는 것이지요. 훗날 빈도의 이 말뜻을 아실 때가 오실 것이옵니다. 빈도는 아마도 그날을 기다리기 위하여 이 백제 땅을 온 듯 싶사옵니다.

견훤    어렵구려... 참으로 어렵소이다. 이 사람은 대사의 이야기를 이 사람이 천하의 주인이 된다 하는 것으로 알겠소이다. 그 말을 아주 어렵게 하시는 것 같구려, 허허허.... 자자, 그럼 이야기는 그만 하십시다. 이 사람은 오늘 이왕 큰절에 왔으니 시주도 좀 듬뿍하고 기도도 좀 올리고 갈까 합니다.

경보    좋은 생각이시옵니다. 한 생각 놓고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옵니다. 편히 기도하시오소서. 허허허....

 

        그러나 모두들 웃고 있지만 최승우는 웃지를 못한다. 그저 그렇게 경보의 얼굴만 보고 있을 뿐이다. 그런 최승우의 얼굴에서 빠른 한 생각이 지나쳐 간다.

 

도선    (E) 쯧쯧쯧... 그대같은 현자가 어쩌자고 여기로 왔는고....

 

씬  짧은 회상

 

        16회 중의 한 장면이 지나쳐간다.

 

최승우  소인이 대사님을 뵈러 온 것은 이 나라와 소인의 갈 길을 여쭙기 위함이옵니다. 일러주시오소서.

도선    이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대가 다 알고 있는 것을.... 이제 신라의 영토는 옛날 삼한시대로 돌아가고 있네. 새로운 주인이 다시 자리를 잡으려면 오랜 세월 피를 흘려야겠지...

최승우  그세월이 얼마나되오리까?

도선    족히 한세월이니....아마도 반 백년은 되겠구먼....

최승우  누가 천하의 주인이 되오리까?

도선    (대답없이 빙그레 웃다가) 천기를 어찌 누설할 수 있겠는가?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그대가 머무는 곳에는 주인의 의자가 없다는 것이야

 

씬  다시 현실의 동 법당

 

        경보가 미소를 지으며 여전히 최승우를 보고 있다. 가볍게 그렇게 고개를 끄덕인다. 최승우는 충격적인 모습으로 안면의 근육이 경련한다. 그때, 견훤이 말한다.

 

견훤    자, 대사께서도 좀 쉬셔야 할 것이야. 그만 일어들 나세. 파진찬..

최승우  아, 예.. 폐하.

견훤    좀 쉬시오, 대사.

경보    예, 폐하.. 허허허.........

 

        그런 그들의 모습과 길게 여운을 남기는 최승우의 표정에서...

 

씬  백제 황궁

 

씬  동 황궁 어느 전각

 

        능애가 공직과 공달, 민합, 신덕, 지훤, 김총들과 함께 모여있다.

 

능애    이번에 폐하께서 백계산으로 가시면서 태자마마와 이찬을 함께 뫼셔간 것은 바람직한 일이었소이다.

공직    그러게 말입니다. 사실, 우리 장수들은 폐하와 태자마마 사이를 은연중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폐하께서 워낙 성정을 불같으셔서 아무 곳에서나 질책을 하시니, 허허허....

신덕    그러게 말입니다. 그리고 태자마마도 참으로 운이 없으십니다. 요 근래 큰 전투 때마다 실패를 보셨습니다. 

능애    그러게 말이오. 나도 함께 태자마마를 뫼셨습니다마는 참으로 면목이 없었소이다.

김총    허나, 그런 일들로 하여 틈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공달    왜 아니겠소이까? 요즘 보면 이찬어른과 파진찬 어른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묘한 갈등이 있는 것 같소이다. 우리 눈에도
 그게 보입니다.
민합    그래서 이번에 폐하께서 그분들을 모두 함께 데리고 가신 것 같습니다.

공달    폐하와 태자마마의 사이는 물론이거니와 나라의 안과 밖을 책임지신 이찬과 파진찬 어른 또한 조금의 틈도 있어서는 아니 되오이다. 그분들 모두가 우리 백제국의 기둥들이 아니십니까?

지훤    그렇소이다. 작은 틈새 하나가 거대한 제방을 무너뜨린다 하였소이다. 이번에 제발 잘들 되셨으면 좋겠소이다, 허허허...

능애    그렇게 될 것이외다. 아니 될 이유가 없소이다. 암요.

애술    하지만, 폐하께서 섭섭하실 만도 합니다. 나이 어리신 금강태자는 대야성 전투에서도 선봉을 서셨습니다. 그리고 이기셨습니다.

신덕    허허, 애술장군.. 그만하십시다. 바로 그런 문제들이 황실의 분위기를 어색하게 하고 조정의 화근이 되는 것이올시다. 그런 말들은 삼가하십시다.

애술    허허허.. 무어 그렇다면 그렇게 하십시다. 나는 사실을 말한 것이올시다, 어흠.,음...

 

씬  동 황후전

 

        박씨가 상궁 이씨와 함께 생각에 잠겨 있다.

 

박씨    지금쯤 우리 태자가 백계산에 도착을 했겠지..?

이상궁  그리 하셨을 것이옵니다.

박씨    이번에는 폐하와 껄끄러운 모든 것들을 좀 잘 정리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이상궁  너무 심려마오소서, 황후마마. 폐하께서도 다 생각이 있으시어 태자마마를 함께 가시자 한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박씨    그렇기는 하네마는 지금까지 지내온 일들을 생각해 볼 때 나는 늘 하루하루 사는 것이 가시방석 같아. 금강이를 보시고부터 폐하께서는 너무도 자식들을 냉대하시는 것 같아.  

이상궁  그럴 리가 있사옵니까, 마마?

박씨    생각해보게. 우리 큰 태자의 나이가 벌써 삼십이야. 그런데도 아직까지 다음 보위에 관한 약속이 없으시네. 황태자 자리 말이야.

이상궁  그 점은 쇤네도 참으로 궁금해하고 있사옵니다.

박씨    밑으로도 내 소생이 둘이나 더 있어. 그런데도 아무 말씀이 없으시네. 지금 폐하의 보령이 쉬흔하고도 다섯이시네. 그런데도 다음 보위에 관하여 말씀이 없으셔. 이상한 일이 아닌가 말이야?

이상궁  그러게 말이옵니다, 마마.. 이번에 오시면 한번 물으시오소서.

박씨    물으나 마나일세. 뻔한 일이 아닌가? 금강이 때문이야.

이상궁  마마, 금강 태자님은 아직 어리시옵니다.

박씨    아니야. 내 생각에 틀림없어. (긴 한숨)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또 일리도 있네. 그 어린것이 얼마나 영특한가 말이야. 전쟁에 나가도 맨 앞에만 선다고 하네. 거기다 글도 잘 읽고... 그러니 어찌 귀여움을 받지 않겠는가?

이상궁  ........ 그래도 언감생심, 어찌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겠사옵니까?

박씨    암.. 폐하의 다음 보위는 누가 뭐래도 우리 큰 태자일세. 누구도 그 누구도 그것을 바라볼 수는 없지. 그건 곧바로 죽음이 되는 것이야. 아니 그런가?

이상궁  예, 마마... 옳은 말씀이시옵니다.

박씨    내가 다 챙겨줄 것이야. 우리 태자에 관한 일은 내가 다 챙길 것이야. 폐하께서도 그 일만은 어쩌시질 못할 게야. 세상에 자기 맡아들을 그토록 버려두고 계시다니 말이 되는가 말이야. 이런 일은 어느 나라 황실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암, 있을 수 없지.

 

씬  송도 황궁 외경

 

씬  동 대전

 

        왕건이 올라온 장계들을 점검하고 있다. 옆에서 왕유가 일일히 설명하고 있다.

 

왕유    광평성과 병부, 순군부에서 올려온 글들이옵니다.

왕건    (보다가) 아니, 이것은 신라에서 온 글이 아닙니까?

왕유    그러하옵니다. 신라의 왕이 사신을 통하여 보내온 글이옵니다. 바로 얼마 전 북방의 오랑캐 달고적이 신라의 영토를 침범하기 위하여 등주(강원도 안변)를 지나다가 우리 견권 장군에게 발각되어 괴멸되었다 하옵니다. 이를 사례하는 글을 보내온 것이옵니다.

왕건    허허허... 참으로 기쁜 소식이올시다. 암, 그래야지요. 이미 신라는 우리가 보호해야 할 나라요. 그 나라를 침범하는 자는 누구도 우리의 적이 되는 것입니다. 잘 했습니다. 이 견권장군에게 상금을 후히 내리도록 하세요.

왕유    예, 폐하. 하옵고 또 있사옵니다. 역시 북방의 오랑캐인 흑수말갈의 추장 고자라가 그들의 족속 170명을 데리고 우리 고려로 귀순을 청해 왔사옵니다.

왕건    반가운 일이지요. 허락하도록 하십시다.

왕유    그들 뿐만 아니라 같은 흑수말갈 족인 아어한이라는 추장이 또한 같은 족속 이백여 인을 데리고 역시 귀순을 원해 왔사옵니다. 이는 모두 우리 고려국의 국력이 그만큼 커져 있음을 뜻하는 것이옵고 폐하의 위엄을 나타내는 것이옵니다.

왕건    아무튼 나라 밖의 세력들이 우리에게 머리를 숙이고 들어온다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신라를 돕는 일 또한 기쁜 일이고 말입니다.

 

        왕건이 읽던 것을 끝내고 다시 다른 것들을 가져와 읽는데 눈치를 보던 왕유가 다시 묻는다.

 

왕유    폐하,

왕건    말씀하세요.

왕유    지금 조당에 시중을 비롯해 여러 관료들이 모여있다 하옵니다.

왕건    늘 조당에서 국사를 보는 것이 상례 아니겠습니까? 헌데, 왜요?

왕유    신이... 듣자옵기는 폐하께오서 여러 신료들을 나무라셨다 들었사옵니다. 그 중 원로들을 꾸중하시면서 나주와 충주의 두 대부들을 고향으로 돌아가라 명하셨다 들었사옵니다.

왕건    허허허... 고생들을 많이 하신 분들이라 가서 좀 쉬시라고 한 것입니다.

왕유    그 분들은 두분 부인 마마의 아버님들이 되시옵니다. 그리고 태자마마들의 외조부가 되시옵니다. 고향으로 보내심은 좀 심하신 것 같사옵니다.

왕건    글쎄올습니다. 쉴 때는 쉬어야지요.

왕유    한번 더 기회를 주시오소서, 폐하.

왕건    하하하.... 왕학사께서는 무얼 그리 걱정하십니까? 이미 내려진 영이올시다. 황제가 되어 한번 뱉은 말을 가지고 이리저리 번복을 한다면 그 또한 좋은 모습은 아닐 것이오. 이번 일은 그냥 그리 하십시다.

 

        왕건은 그러면서 연이어 다른 글들을 열심히 본다. 왕유는 그만 입을 다문다.

 

씬  동 조당

 

        김행선과 더불어 박지윤 부자, 원극유 등 문무신료들이 모여있다. 유금필, 신숭겸, 박술희, 태평, 왕식렴, 왕신, 배현경, 홍유, 복지겸, 김락, 염상, 입전, 신방, 장수장들이다.

 

김행선  에..... 여기 계시는 모든 분들은 대부분 나름대로 폐하를 뵈셨을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우리 원로들은 물론이거니와 여러 신료들을 심히 꾸중하신 것으로 압니다. 다 태자 문제 때문이지요.

박지윤  그렇습니다. 사실, 태자마마를 정윤으로 모시는 문제는 여러 가지로 신료들에 따라서 의견이 달랐습니다. 폐하께서는 바로 그 점을 크게 질책하신 것이올시다.

박질    그렇소이다. 이는 국론이 분열되는 것이었어요. 우리 원로들은 이점을 크게 반성하기로 하였소이다.

원극유  암, 반성해야지요. 일찍이 폐하께서 그처럼 섭섭해하시는 모습을 뵌 적이 없습니다. 참으로 민망했소이다.

유금필  저희들도 더불어 잘못을 알고 있사옵니다. 폐하께 큰 불충을 저지른 것 같사옵니다. 차제에 그 문제는 다시는 거론치 않기로
 하였사옵니다.
신숭겸  저희들이 하나만 생각하였지, 폐하의 깊으신 뜻을 미쳐 살피지 못했사옵니다. 여러가지로 저희들도 자중하겠사옵니다.

박술희  ...... 소장의 잘못도 크옵니다. 자중하겠사옵니다.

배현경  그 점은 저희 공신들도 마찬가지이옵니다. 아직 할 일이 많고 나라를 위해 수없이 죽고 또 죽을 만한 일이 넘치는 때이옵니다. 이런 일을 가지고 깊은 생각없이 잠시 섭섭해했다는 것을 대소신료들 앞에 자인하옵니다.

홍유    소장 또한 마찬가지이옵니다.

복지겸  허허허... 늘 이러한 자세를 갖는 것이 바로 폐하를 뫼시는 충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요. 페하께서도 저희 신료들의 이러한 뜻을 아시면 그 진노가 다 풀리실 것이옵니다.

왕식렴  신료들의 파벌은 곧바로 국력이 쇠하여지는 것을 뜻하옵니다. 이번에 소인 또한 배운 것이 많았사옵니다.

왕신    아무튼 위로는 시중어른부터 아래로는 저희들 젊은 신료들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한 목소리로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하고 있사옵니다. 시중어른께서는 이 점을 잘 전하여 주시오소서.

김행선  이를 말이겠소이까? 우리 원로들이 나이값을 제대로 못한 것 같소이다.

김락    연세가 많으신 어른들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젊은 저희들이 드릴 말씀이 없사옵니다. 저희들 모두 잘못을 반성하는 글을 폐하께 올리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염상    거 듣자하니 참으로 좋은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게 하십시다.

박수문  폐하께오서는 이미 우리 신료들의 이러한 마음을 알고 계시리라 생각되옵니다. 새삼스럽게 글을 올리는 것보다는 보다 진실된 마음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충성인가를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 보다 옳은 길이라 사료되옵니다.

박수경  그러하옵니다. 참다운 충성은 행동으로 나오는 것이옵니다.

입전    소인도 글을 올리기보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충성을 각자 보여야 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폐하께서는 그런 모습을 더욱 기뻐하실 것이옵니다.

신방    신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장수장  본래 충성이란 것은 그 본질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들었사옵니다. 소인은 애써 요란함을 보이기보다는 소리 없이 마음을 다 하는 그 정성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옵니다. 헤아리시오소서, 시중어른.

김행선  들으면 들을수록 다 옳은 말씀이올시다. 시중 자리에 있는 이 사람이 더 몸둘 바를 모르겠구려. 아무튼 태자 문제는 이제 더는 거론하지 마십시다. 절대로 거론하지 마십시다, 예... 그래야 합니다.

 

씬  궁안 오씨의 처소 외경

 

        다련군이 풀죽은 모습으로 걸어오고 있다. 막 처소 앞에 이르렀는데 나인이 나오다가 인사를 한다.

 

나인    대부어른 아니시옵니까?

오다련  오냐, 마마를 좀 뵈러 왔느니라. 안에 계시느냐?

나인    마마께오서는 법당에서 기도 중이시옵니다.

오다련  법당이라니? 황궁 법당 말이냐?

나인    예, 대부어른. 그렇지 않아도 지금 막 그리로 가는 참이옵니다. 기도가 끝날 때가 되었사오니 함께 가시겠사옵니까?

오다련  허허, 글쎄다.. 하긴 뭐 여기서 기다리기도 그렇고.. 멀지 않은 곳이니 가자꾸나.

나인    예, 대부어른.

 

        나인이 그렇게 앞서가고 오다련이 헛기침을 하며 뒤를 따른다.

 

씬  동 법당 외경

 

씬  동 법당 안

 

        목탁을 치며 염불을 외는 승려의 모습이 보인다. 그 옆에서 오씨가 계속해 절을 올리고 있다. 상궁과 나인들이 그 밖에 서 있고.... 계속 절을 올리는 오씨의 그 표정에서...

 

스님    (소리) 무릇 세상사는 도리는 남을 원망하기 이전에 자신의 허물을 잘 살펴보는 것이라 하였사옵니다. 사람 사는 일은 대 자연의 눈으로 볼 때에 한잔 잔 속의 물이 출렁거림과 같사옵니다. 일체의 현상은 덧없는 것, 지혜의 눈으로 비추어 보아야만 보이는 것이옵니다. 복을 구하려거든 먼저 분노와 욕심의 끈을 놓아야 하옵니다. 그 끈을 놓으시오소서. 복은 절대로 그냥 오는 것이 아니옵니다. 참회하고 쉬임 없이 부처님께 절을 올리시오소서. 그것이 곧 복을 구하는 길이옵니다.

 

        그런 소리를 배경으로 오씨는 계속해 땀을 흘리며 절을 올린다.

 

오씨    (E) 내 자식에게 올 귀하고 높은 자리이옵니다. 그것을 빼앗으려 하는데 어찌 원망이 없고 분노가 없겠사옵니까? 부처님 도와주시오소서. 하오나 참회하옵니다. 원망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겠사옵니다. 참회하옵니다. 도와주시오소서, 부처님...

 

        그런 소리들이 염불소리에 지워지면서 스님의 독경소리는 높아진다. 그리고 얼마쯤 그 독경이 끝난다. 절도 끝나고... 오씨는 합장으로서 그렇게 오늘의 기도를 마친다. 그 모습에서 승려들이 일어나 같이 합장하며 물러간다. 오씨가 보면 법당 밖에 상궁나인들이 보인다. 오씨가 나간다.

 

씬  그곳

 

        오씨가 상궁 나인들의 인사를 받으며 내려오다가 오다련을 본다.

 

오씨    아버님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박상궁  마마의 처소에 오시었다가 이리로 오셨다 하옵니다.

오다련  아니, 언제부터 그렇게 법당을 나가셨사옵니까?

오씨    얼마 아니 되었습니다. 헌데, 아버님께서 어쩐 일로...?

오다련  향리로 돌아가라는 폐하의 영을 받았사옵니다.

오씨    향리로 가시다니요?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오다련  저 뿐만 아니라 충주의 유대부도 향리로 가옵니다.

오씨    폐하께서 그리 명하셨단 말입니까?

오다련  예, 마마. 잠시 가서 쉬라 하시기에 떠날 차비를 하고 인사를 온 것이옵니다.

오씨    왜 그리 되셨습니까? 무엇 때문에요?

오다련  허허허.. 별것 아니옵니다. 허나, 곧 돌아올 것이옵니다. 길게야 가겠사옵니까?

오씨    세상에... 폐하께서 내 아버님께 이러실 수가 있는가? 향리로 보내시다니....? 어떻게 폐하께서 그러실 수가 있습니까?

오다련  아무것도 아니라 하였사옵니다. 노여워 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마마. 괜찮사옵니다, 곧 돌아올 것이옵니다.

오씨    세상에.. 세상에 폐하께서 어떻게....

 

씬  수인의 처소

 

        유긍달과 수인이 마주해 있다. 이들도 표정은 몹시 굳어져 있다.

 

수인    충주로 내려가시다니요? 그렇다면 이것은 폐하께서 벌을 내리셨다는 것이 아닙니까?

유긍달  결과적으로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수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버님께서 무얼 잘못했다구요? 허나, 참...

유긍달  많은 신료들이 꾸중을 들었고 나주의 오대부 또한 향리로 가옵니다. 허나, 우리 모두 곧 올라올 것이옵니다. 조정이 시끄러우니 패하께서 잠시 좀 물러가 있는 것이 어떤가 하시는 듯 하옵니다. 허허허.. 너무 그리 놀라실 일은 아니옵니다, 마마...

수인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태자 태는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옵니다. 왜 나주 형님의 소생만 정윤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다 같은 부인의 반열입니다. 같은 반열이라 이런 말입니다, 아버님...

유긍달  아옵니다, 마마. 그렇게 될 것이옵니다.

수인    (긴 한숨을 쉬며) 정윤 이야기가 나온 뒤로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엇그제부터 우리 태가 많이 아프옵니다.

유긍달  아프시다니요? 어떻게 말이옵니까?

수인    먹은 것이 체한 것도 같고, 고뿔이 들린 것도 같고... 전의의 말로는 별일이 없을 것이라 하옵니다마는...

 

        그때다,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김상궁이 소리치며 허겁지겁 들어온다.

 

김상궁  마마, 마마... 김상궁이옵니다.

수인    왜 이리 소란인고..?

김상궁  마마. 큰일 났사옵니다.

수인    큰일...? 무슨 큰일...?

김상궁  참으로 아뢰옵기 망극하옵니다마는.... 태자 아기님 께오서....

수인    말을 해보라, 왜 그러는고?

김상궁  유모 방에 있는 태자 아기님께오서 갑자기 숨이 가쁘시고 열이 더하시면서 위급하시다 하옵니다.

유긍달  무어라...?

수인    우리 태가 위급해? 그게 무슨 소리인고? 전의는 괜찮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게 무슨 소리야?

 

씬  다시 오씨의 처소

 

        오씨와 오다련이 그렇게 마주해 있다. 두 사람 모두 한숨을 쉰다.

 

오씨    당연히 자격이 되는 내 아들을 그 자리에 앉히는 일이옵니다. 헌데 왜 이렇게 고통을 받아야 하옵니까? 아버님까지도 이렇게 되시구요?

오다련  폐하께오서는 꾸중을 내리실 만도 하옵니다. 제가 제일 먼저 이 일을 꺼내었고 서둘렀사옵니다. 허나, 유대부도 너무 했지요. 넘 볼것을 넘봐야지 허, 이것 참..

오씨    폐하께 불려갔다온 이후, 저도 재 정신이 아닙니다, 아버님. 걱정이 많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법당에도 그래서 나간 것이지요. 기도라도 드려 보려구요.

오다련  잘하셨습니다. 마마...

오씨    법당의 스님은 그저 욕심도 버리고 분노도 버리고 그저 참회만 하라고 하니 더 답답합니다.

오다련  허허허.. 스님들은 늘 그러시지요. 잘 될겝니다. 마마...

 

        그때 나인 하나가 한 쪽에서 달려와 박상궁에게 뭔가 소근거린다. 박상궁이 놀라는 표정을 짖다가 다시 오씩에게 와 말한다.

 

박상궁  마마..

오씨    왜 그러는가?

박상궁  충주부인마마 처소쪽에 급한 일이 생긴것 같사옵니다.

오씨    충주아우가...? 급한 일이라니..? 무슨 급한 일...?

박상궁  작은 태자마마께오서 이틀 전부터 병이 나셨사온데 그 증세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하옵니다.

오씨    무어라..? 언제 그 이야기를 들었는가?

박상궁  지금 막 충주부인마마의 유모 방 쪽으로 오다가 들었다 하옵니다.

오씨    .......?

 

씬  수인의 처소 유모의 방

 

        모두들 놀라서 보고 있다. 아이가 헐떡거리며 죽어가고 있다. 전의가 어쩔 줄을 모르며 아이를 보고 있다.

 

수인    이보시게, 전의? 도대체 우리 태자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전의    송구하옵니다, 마마... 처음에는 고뿔인줄 알았사오나, 그렇지가 않은 것 같사옵니다. 눈곱이 끼고 여기 입가의 점막에 반점이 나타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마진(급성 홍역)같사옵니다.

수인    마진....?

유긍달  뭐라고, 마진....?  

전의    불과 이틀만에 이렇게 고열이 나시다가 갑자기 열이 떨어지시면서 기운이 쇠하여 지시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열꽃이 안으로 솟는 것 같사옵니다.

수인    그러면 어찌되는 것인가?

전의    참으로 송구한 말씀이오나 폐장에 염증이 동반하면서 심장쇠약을 일으키게 되옵니다. 어려우실 것 같사옵니다.

유긍달  어렵다니..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약을 찾아봐야 할 것이 아닌가?

전의    송구하옵니다. 태자마마가 너무 어리신지라. 탕재도 써볼 도리가 없사옵니다.

수인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전의    급성폐렴에다가 마진까지 겹치신 것 같사옵니다. 소인의 의술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사옵니다.

수인    이런 사람을 보았나?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니? 자네가 그러고도 전의인가..? (바로 아이를 끌어안으며) 태자, 내가 어미요? 정신좀 차려보오...? 내가 어미오...? 태자... 태자..... ?

 

        그런 소란 속에서 들려오는 왕건의 소리

 

왕건    (E) 무어라..? 어린 태자가 어찌 되었다고..?

 

씬  동 대전

 

        대전 내관이 급히 아뢰고 있다.

 

왕건    태자가 어찌 되었어?

내관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작은 태자마마께오서 위급하시다 하옵니다, 폐하...

왕건    무슨 소리인가..? 잠시 아프다고는 하였으나 곧 낳을 것이라 하지 않았는가?

내관    하오나, 일이 그렇지 못한 것 같사옵니다.

왕건    이런 세상에...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야?

 

        벌떡 일어나며 그렇게 바라보는 왕건의 표정에서...

 

씬  동 황궁길

 

        왕건이 급히 가고 있다. 그러다가 급히 오고 있는 오씨를 본다.

 

왕건    아니 부인이 아니시요?

오씨    예, 페하... 어디를 납시는 길이옵니까?

왕건    어린태자가 많이 아프다는구려.

오씨    신첩도 그 소식을 듣고 지금 급히 가는 중이옵니다.

왕건    가십시다.

 

        그들 그렇게 가면...

 

씬  다시 유모의 방

 

        수인이 계속해 소리소리 치며 아이를 어르고 있다.

 

수인    정신차리시오, 태자... 정신좀 차리시오... 아이구 하늘님... 이를 어찌 하옵니까? 살려주시오소서, 우리 태를 살려주시오소서...

유긍달  해보게, 어떻게 좀 해 보게나, 이 사람아.... 자네는 의원이야

전의    어찌 해볼 도리가 없사옵니다. 참으로 송구하옵니다.... 이미 열을 다스릴 수 없어, 급하신 호흡을 제어할 수가 없사옵니다. 용서하시오소서.

수인    말도 아니된다. 우리 태가 죽으면 전의도 죽을 것이야. 어서 살려내게.. 어서....  아이구, 태자, 태자.. 어이구 태자.....

 

        그때, 왕건과 오씨가 들어선다.

 

왕건    대체 어찌된 일인가?

수인    아이구, 폐하... 살려주시오소서. 우리 어린 태자가 위급하다 하옵니다. 살려주시오소, 폐하...

오씨    전의, 어찌된 일이오?

전의    송구하옵니다... 급성 마진같사옵니다. 더불어 폐렴이 겹치셔서 어찌 다스려볼 길이 없사옵니다. 용서하시오소서, 마마....

왕건    어디좀 보세.

 

        왕건이 아이를 본다. 수인이 애절하게 절규한다.

 

수인    폐하.. 살려주시오소서... 우리 태를 살려주시오소서... 폐하...

 

        그러다가 수인의 눈이 순간 멈추었다. 아이가 그렇게 죽은 것이다. 왕건의 눈도 경악처럼 아이를 본다.

 

수인    (아이를 흔들며) 왜 갑자기 숨을 멈추는고...? 태자, 왜 숨을 멈추는고....?
정신좀 차리오, 태자? 어미오... 어미오....
왕건    ......

오씨    ......

 

        모두들 침묵한다. 그리고 경악한다. 아이의 숨이 멈추어 있는 것이다. 수인이 계속 흔들며 소리친다.

 

수인    숨을 쉬어보시오, 태자... 태자....... 태자............?

 

       

                                                                <139회 끝>



첨부파일 태조왕건139.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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