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KBS대본

[태조 왕건] 142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7.12.06|조회수1,990 목록 댓글 0

태조 왕건 <제 142회>


<줄거리>


고려태자 무는 조물성의 지형을 이용하여 유인책을 시도한다. 백제 태자 신검은 군사인
종훈이 이를 간파하자 서둘러 회군명령을 내리는데... 1차 접전이 마무리 된 후 군사 종훈은 승기를 잡을 수 있는 계책을 신검에게 제안한다. 백제 태자 용검은 고려태자 무의 신경을 거스르며 맞대결을 제안하고, 흥분한 태자 무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뛰쳐 나가는데, 그의 무예 사부인 장수장이 태자를 쫓아나가지만...

 

 

씬  조물성 계곡 (밤)

 

        넓은 계곡 입구 좌우로 고려군이 이미 진을 펼치고 있다. 박술희와 태자 무가 계곡 밖의 넓은 들판 쪽을 보고 있다. 그 쪽에도 아스라히 백제군의 수많은 군사들이 횃불을 밝히고 있는 모습들이 보여온다. 애선과 박수문 형제, 왕신, 장수장들이 함께 적진을 보고 있다.

 

애선    이 조물성 주변은 아주 특이한 지리적 여건을 가지고 있사옵니다. 우리 성을 함락시키려면 이 계곡을 통과하거나 성의 정면으로 오는  두 곳이 있사옵니다. 그러나 성 앞에 길은 좁고 험하기 때문에 대부분 이 계곡을 통과하려고들 하옵니다. 

박술희  그런 것 같소이다. 백제군들이 이미 그것을 알고 이 쪽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소이다. 여기서 성까지는 얼마나 되오이까?

애선    줄잡아 삼십여 리는 되옵니다.

왕신    적과 우리는 군사의 숫자가 비슷하옵니다. 아무래도 전투가 오래 끌 것 같사옵니다.

장수장  소장도 그런 생각이 드옵니다. 아무튼 형세를 보니 오늘밤에 일전이 불가피할 것 같사옵니다.

무      어차피 싸워야 할 일이라면 빠를수록 좋지 않겠습니까?

박술희  옳으신 말씀이옵니다, 정윤마마, 허허허..... 기왕 할 일은 빨리 끝내는 것이 좋사옵니다. 애선장군?

애선    예, 장군.

박술희  총사이신 정윤 마마께서 이 전투를 빨리 끝내고 싶어 하시오이다. 계곡 입구 강뚝에 장애물들은 다 설치하였습니까?

애선    예, 이미 만반의 준비를 끝내놓았사옵니다.

박술희  그렇다면 기다려 보십시다. 전방에 첨병들은 나가 있겠지요?

애선    물론이옵니다.

박술희  이미 밤이 깊었소이다. 한두 시간 후면 저들이 공격해 올 것입니다. 한동안은 저들과 정면으로 맞서십시다. 그리고 적당한 때에 군사를 계곡 뒤로 물리십시다. 안으로 끌어들여서 결정적 타격을 입히자는 것입니다.

애선    옳으신 생각이시옵니다. 지금으로써는 그 방법밖에 없사옵니다.

박술희  자, 모두들 군사를 점고하도록 하십시다. 부장들을 전투 태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오. 정윤 마마, 전투 명령은 총사께서 내리시옵니다. 전투태세를 갖추라 명하시오소서.

무      예, 장군.. 모두 전투태세를 갖추어라.

부장들  예, 총사....

 

        부산하게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에서.. 무는 신이 났다. 박술희도 웃고 있다.

 

박술희  전장터에서 모든 명령은 총사만이 하실 수가 있사옵니다. 이 전투는 정윤 마마께서 치루시는 전투이옵니다.

무      알겠습니다, 장군. 

 

씬  그곳 백제군 진영

 

        신검을 비롯해 양검, 용검 그리고 금강과 애술들이 고려군 진영 쪽을 보고 있다.

 

양검    형님, 저들이 이제 막 진을 펼쳤사옵니다. 아직 피곤함이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니 지금 공격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신검    그래야 할 것 같다.

종훈    저들은 먼길을 왔사옵니다. 속히 공격을 시작해야 하옵니다.

신검    허면, 양검 아우는 준비를 하게. 그리고 부장들은 좌우를 잘 협공해야 할 것이야. 용검아우도 준비를 하게.

용검    예, 형님.

애술    소장이 보기에는 저 조물성은 아주 단단하다 들었사옵니다. 특히나 지리적 여건이 아주 묘해서 쉽게 도모하기는 어렵다하옵니다. 계곡을 정면 돌파하실 것이오이까, 군사?

종훈    지금은 계곡을 뚫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적의 전력을 시험해 보는 전투이옵니다. 저들의 피곤함이 아직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상황이 좋아지면 계곡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으면 저들을 더욱 피곤하게 만들어 전력을 약화시키는 것이옵니다.

애술    일리가 있는 말이구려.

신검    어차피 이번 전투는 양쪽 모두 정면 승부가 될 것 같소이다. 하는데까지 밀어부쳐 봐야지요. 자, 공격준비가 끝났는가?

양검    예, 형님.

신검    허면, 공격하라. 적병은 강뚝을 경계로 하고 장애물을 놓고 있을 것이다. 조심하여 돌파하도록 하라.

양검    예, 형님

신검    처음부터 저들의 기를 눌러야 한다. 특별 선발된 철기군을 앞세워 사정없이 짓밟도록 하라.

양검    염려 놓으시오소서, 형님.

신검    가라.

양검    예, 형님 ... 공격하라. 용검 아우도 내 뒤를 따르라. 공격하라.....

모두들  공격하라.......

 

        드디어, 그들은 그렇게 달려가기 시작한다. 어둠속에 온 들판이 백제군으로 뒤덮힌다. 그 아우성치는 모습에서...

 

씬  계곡 고려측 진영

 

        멀리 고함소리들과 함께 수많은 횃불들이 밀려온다. 강뚝에 박술희가 서서 심호흡을 하고 있다.

 

박술희  적군이 오고 있사옵니다.

무      예, 장군.

박술희  전쟁이란 비록 목숨을 거는 것이기는 하지만 아주 재미있사옵니다. 죽이느냐 죽느냐, 아니면 어떻게 머리를 써서 적을 속이느냐, 그 결과들에 따라서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가옵니다.

무      알 것 같사옵니다. (긴장하며) 적병이 점점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장군.

박술희  보고 있사옵니다. 좀더 가까이 오도록 기다려야 하옵니다. 조금 더... (사이) 조금 더....

 

        백제군이 그렇게 몰려온다. 무는 바짝 긴장하기 시작한다. 그 옆으로 장수장과 왕신이 바짝 붙어 있다. 박술희가 한 동안 보고 있다가  백제군이 확실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무에게 끄덕인다.

 

무      쏘아라......  궁수부대는 활을 쏴라.... 적병이 온다

 

        화살이 비오듯 날기 시작한다. 부장들이 여기저기서 소리치며 독전한다. 아비규환이다.

 

씬  동 벌판

 

        양검의 군사들이 마구 쓰러지고 있다. 양검이 쏟아지는 화살을 막으며 부장들과 함께 소리치고 있다.

 

양검    적은 별거 아니다. 어린 아이가 총사로 온 고려군이다. 힘껏 밀어 부쳐라. 우리 쪽에서도 화살을 쏘아라. 비루(석포)부대는 무얼 하는가? 적진으로 돌을 날려라.

부달    비루부대는 돌을 날려라.

소달    방패부대는 앞을 막고 화살을 쏘아라....

 

        명령일하, 군사들이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다. 수없이 쓰러져가면서 일렬로 방패부대가 앞을 막아서면 그 사이로 열을 지은 궁수부대들이 쏘고 물러나고, 다시 쏘고 물러나고를 교차하며 반복하고 있다.

        함께 온 비루부대가 수없이 돌덩이들을 날리고 있다. 그 와중에서도 엄청난 군사들이 죽어가고 있다. 양검과 더불어 용검 그리고 그의 부장들이 계속 독전하며 소리치고 있다.

 

용검    쏘아라.... 쏘아라...계속 쏴라.... 저 강둑을 넘어야 한다. 모조리 화살밥을 만들어라.

상귀    쏘아라... 멈추어서는 아니 된다. 계속 퍼 부어라.....

 

씬  고려측 진영

 

        전투는 극에 달하고 있다. 고려군 편에서도 전사자가 속출하고 있다. 무는 눈을 크게 뜨고 적진을 보고 있다. 그 좌우로 숱한 화살들이 날아가고 있다. 그리고 돌덩이가 곳곳으로 날아와 군사들을 짓 부순다. 무의 바로 옆에도 날아와 군사들을 쓰러뜨리며 구른다. 무가 피하며 한쪽으로 서자 즉시 장수장이 경계에 나선다.

 

장수장  정윤마마, 그곳은 위험하옵니다. 이 쪽으로 서시오소서.

무      괜찮습니다, 사부님. 참으로 대단합니다. 엄청나옵니다.

박술희  이것은 약과이옵니다. 적의 공격 대형을 보니 우리의 전력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옵니다. 아무래도 새벽까지는 싸워야 할 것 같사옵니다. 저들이 우리 작전에 말려들었으면 좋겠는데... 계곡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 말이옵니다.

무      아, 예....

 

        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 한쪽에서는 애선과 왕신이 목이 터져라 독전하고 있다.

 

왕신    적이 돌과 화살을 퍼붓고 있다. 이쪽에서는 불화살을 쏴라. 궁수들은 염초를 날려라.

애선    염초를 날려라.... 궁수들은 염초를 날려라......

 

        명령과 함께 불화살이 날기 시작한다. 그것들은 마치 폭죽처럼 날아가 섬광을 일으키며 적진 곳곳에 떨어지고 있다. 치열한 전투이다. 그렇게 얼마를 싸웠을까? 박술희가 무를 본다. 무가 다시 영을 내린다.

 

무      철수하라.... 계곡으로 철수한다, 철수하라...

박수문  (끄덕이며 반복한다) 총사께서 철수하랍신다.... 적의 공격이 너무 완강하다. 일시 후퇴한다. 좌측 부대는 계곡 안으로 철수하라. 철수하라...

박수경  일시 후퇴한다. 철수하라.....

 

        박수문 형제들과 함께 부장들이 계속 소리치자 포진했던 군사들이 뒤로 급히 물러나기 시작한다. 박술희가 그 한쪽에서 보고 있다가 무를 재촉한다.

 

박술희  자, 정윤마마. 지금부터 적병들에게 낚시 밥을 던지기 시작했사옵니다. 우리도 계곡으로 가야 하옵니다.

무      예, 장군...

 

        그들 그렇게 급히 이동하기 시작한다. 

 

씬  백제측 진영

 

        계속 아우성치는 그 전투장에서 양검이 미소를 짖는다.

 

양검    보시오 부달장군. 적의 진영 한쪽이 무너지고 있소이다. 저들이 퇴각하고 있어요.

부달    그런 것 같사옵니다. 공격이 뜸해지고 있사옵니다.

용검    계속 밀어부처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형님?

양검    이를 말인가...? 기마부대는 앞을 서라. 돌격하라......

소달    돌격하랍신다.... 전군 돌격하라...........

 

        함성과 함께 그대로 제방 뚝을 넘어 가고 있는 백제 군사들. 질풍처럼 계곡 쪽으로 달려간다.

 

씬  그 백제군 후미 (공격군 본진)

 

        신검이 한참 앞서 싸우는 전장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갸웃한다.

 

신검    전투 대형이 바뀌는 것 같소이다. 갑자기 아군의 공격속도가 빨라졌어요.

종훈    (긴장하며) 속임수이옵니다. 

신검    속임수....?

애술    소장이 보기도 그런 것 같사옵니다. 유인책이옵니다. 계곡 안으로는 들어가서는 아니 될 것 같사옵니다.

종훈    바로 그것이옵니다. 북을 쳐 군사를 다시 물리시오소서. 들어가서는 아니 되옵니다.

신검    어쩐지.... 너무 빠른 것 같아요. 적군이 저렇게 쉽게 무너질 리가 없지 않습니까? 부장들은 들어라. 회군의 북을 올려라.... 소라를 불어라..... 더 이상 들어가지 말라 하라....... 어서.....!

 

        신검의 명령과 동시에 다급한 소라 소리와 북소리가 계속 울린다. 초조한 그들의 표정에서..

 

씬  계곡

 

        이미 강둑을 넘은 양검과 용검의 군사들이 계곡 내천 쪽으로 물보라를 일으키며 들어서고 있다. 그들 뒤로 소라 소리와 북소리가 들려온다. 양검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고삐를 낚아채며 뒤를 본다.

 

양검    아니 이건, 무슨 소리인가? 회군하라는 신호가 아닌가?

용검    그런 것 같사옵니다, 형님.

양검    회군이라니...? 적이 도망치고 있는데 무슨 회군이란 말인가? 내쳐 가세...

상귀    아니옵니다, 태자마마. 우리를 부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옵니다. 이 계곡이 수상하옵니다. 더 들어가지 마오소서.

양검    수상해...?

 

        그러나 이미 앞장을 선 군사들이 파도처럼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상귀    어서 정지명령을 내리시오소서. 회군해야 하옵니다.

양검    하지만, 이미 기마부대가 앞서 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상귀    그러니까 속히 영을 내리시오소서.

양검    알겠네. 정지하라...... 더 이상 들어가지 말아라........ 기마부대는 거기서 정지하라......

 

        그러나 이미 그 명령은 리듬을 잃었다. 쏟아져 들어가던 군사가 한꺼번에 돌아설 수가 없던 것이다. 정지하라는 소리는 계속되고 있다. 

 

씬  그 계곡 언덕

 

        박술희가 미소짓고 있다. 군사들이 이미 매복하여 기습준비를 끝내고 있다. 그들은 쏟아져 들어오는 백제군들을 보고 있다. 이들의 귀에까지 양검들의 멈추라는 명령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박술희  아차차..... 저들이 눈치를 챈 것 같사옵니다. 하지만, 그물 안에 들어온 고기가 꽤 많은 것 같사옵니다. 하하하.... 총사, 무얼 하시옵니까, 영을 내리시오소서?.

무      예, 장군. 퍼 부어라...... 화살과 돌을 퍼 부어라...... 염초부대는 불덩이를 굴려라.....

애선    공격하라......

 

        명령과 동시에 아비규환이 벌어진다. 섶으로 만들어진 큰 불덩이들이 대낮처럼 밝게 곳곳에서 굴러 내리고 화살이 수없이 날아간다. 무는 자못 긴장했다. 주먹을 꼭 쥔 채 그 정경을 보고 있다. 다급한 양검 형제들의 모습이 보여온다.

 

양검    퇴각하라.... 더이상 들어가지 마라..... 모두 퇴각하라..........

용검    퇴각하라.......

부달,소달       퇴각하라.............

 

        그리고 그들은 다시 방향을 돌려 계곡을 빠져나간다. 수많은 시체들이 산을 이루고 있다. 그들은 도망을 치면서도 계곡을 내려오는 고려의 군사들에게 수없이 죽어가고 있다. 멀어지는 양검들... 비로소 그곳을 나서며 무는 한껏 기분이 고조되었다.

 

박술희  총사, 승리하였사옵니다. 첫 전투는 총사께서 이기셨사옵니다. 하하하.....

무      고맙소이다, 장군. 정말로 우리가 이긴 것입니까?

박수문  그렇사옵니다, 경하드리옵니다, 총사.

왕신    참으로 훌륭하셨사옵니다. 앞으로 남은 많은 전투를 직접 챙기셔도 될 것 같사옵니다.

박술희  당연하시옵니다. 그리 되셔야지요. 하하하.... 참으로 대승을 거두었사옵니다. 하하하

 

        으쓱해하는 무의 표정에서....

 

씬  새벽녘 신검의 진영

 

        풀이 죽은 양검형제와 장수들이 신검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애술과 금강들도 보고 있다.

 

신검    아우야, 그것도 전투라고 하느냐? 도대체 귀가 있는 게야, 없는 게야? 회군 신호를 들었으면 속히 군사를 돌렸어야지.

양검    송구하옵니다. 형님.

신검    여기서는 형님이 아니야. 나는 이곳의 총사야, 총사..

양검    예, 총사.

신검    에잉, 쯧쯧쯧..... 그만하기가 다행이다. 나니까 이만한 것이지. 아버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아마도 난리가 나셔도 여러 번 나셨을 게다.

용검    송구하옵니다, 총사.

종훈    태자마마, 뭐 그렇게 낙심할 것은 없사옵니다. 적의 전력은 역시 보통이 넘사옵니다. 일단 서로의 힘을 확인하였으니 다시 전략을 살펴볼 필요가 있사옵니다. 다음 방책이 소인에게 서 있사오니 잠시 군사를 쉬게 하시오소서. 곧 논의를 드리겠사옵니다.

애술    그럴 필요가 있사옵니다, 태자마마. 군을 정비하라는 영을 내리시오소서.

신검    장수들은 모두 물러가 잠시 쉬고 군을 정비하라.

모두들  예, 총사...

 

        아우들과 장수들이 물러간다. 신검은 으쓱하며 전방을 보고 있다. 애술이 다가와 말한다.

 

애술    잘 될 것이옵니다, 태자마마. 비록 약간의 병력 손실은 있었으나 두 분 태자마마들은 모두 훌륭하셨사옵니다.

신검    아닙니다. 아바마마께서 이 전투를 보셨더라면 아마도 그냥 넘어가지 않으셨을 겝니다. 다음에는 반드시 이겨야 할 터인데...

 

씬  고려군 측 진영

 

        드넓은 계곡 사이로 여전히 물은 흐르고 아침 안개 사이로 고려군의 군영이 우람하게 보여온다. 그 어느 망루 같은 곳에서 무와 박술희가 적진을 내려다보고 있다.

 

무      백제군이 물러간 이후 공격할 기미가 보이지를 않습니다.

박술희  저들이 다시 질서를 정비하자면 꽤 시간이 걸릴 것이옵니다.

무      그렇다면 우리가 선제공격을 하면 어떻습니까?

박술희  나쁠 것은 없사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곡을 떠나 들판으로 나간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전략이지요. 저들에게 보다 유리한 기회를 주는 것이 되옵니다. 저들은 성을 뺏어야 하기 때문에 이리로 들어오는 것이 급한 군대이옵니다. 우리는 그럴 이유가 없는 것이옵니다.

무      아, 알겠습니다.

 

        그들 그렇게 지형아래 쪽의 백제군영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멀리 흙먼지를 일으키며 두 필의 말이 다가와 보일만한 위치에 선다. 그는 용검과 부장인 상귀이다.

 

용검    들어라, 고려의 태자야.... 나는 대 백제국 태자 용검이니라.

무      .........?

용검    어린 놈이 무얼 안다고 전장터에 나왔느냐?

무      저런... 괘씸한 놈이 있는가?

박술희  괘념치 마오소서. 화를 돋우려는 술책이옵니다.

용검    너는 아직 어미 젓이 필요한 아이이니라. 아니 그러하냐?

무      (참지 못하고) 닥치지 못할까? 내가 어찌 어린아이란 말이냐?

용검    이 풋나기야. 너는 장군들 뒤에 숨어있는 못난이가 아니냐? 용기가 있으면 나와보거라. 나와 한판 어우러짐이 어떠하냐?

박술희  댓구하지 마오소서.

용검    왜 대답이 없느냐..? 너는 정말 겁장이로구나... 배포가 있으면 나와보거라. 왜 대답이 없느냐....? 정말 겁장이가 맞는 모양이로구나..

무      (참지 못하고) 닥치지 못할까....? 닥쳐라, 이놈..... 내가 왜 겁장이란 말이냐? 기다려라 내가 나갈 것이다. 나는 고려군의 총사이니라.

박술희  아니 되옵니다. 가시면 아니 되옵니다.

장수장  아니 되옵니다.

왕신    아니 되옵니다.

무      아니오, 용검이라 하면 저들 형제중 제일 아우가 아닙니까? 나를 우습게 알고 약을 올리는 데 어떻게 알고 아니 간단 말입니까? 한번 해 보겠습니다. 여봐라... 말을 준비해라..

부장들  예, 총사....

박술희  아니, 이런....

 

        그러나 이미 부장들은 대답하며 말을 끌고 온다. 총사의 명령인 것이다. 박술희가 어쩔 줄을 모르다가 명령을 한다.

 

박술희  내 말도 가져오너라.

무      아니오, 장군. 장군이 함께 가면 저들은 나를 더욱 겁장이라 할 것입니다. 혼자 가겠습니다.

장수장  저쪽도 부장 하나를 데리고 나왔사옵니다. 소장이 총사를 뫼시겠사옵니다.

박술희  그렇게 하시구려. 어서 가시오. 

무      좋소이다, 가십시다.

 

        박술희는 긴장했다. 이미 무와 장수장이 그렇게 길을 가로질러 달려나간다. 왕신과 박수문 형제, 애선도 바짝 긴장한다.

 

박술희  저들의 술책이요. 정윤 마마가 너무도 경험이 없으시어 순식간에 넘어가신 것 같소이다. 애선장군이 뒤를 바쳐 주시구려.

애선    예, 장군

박술희  전 군은 다시 비상대기하라.

박수문  전 군은 비상대기하라.

 

        다시 부산해진다.

 

씬  그곳

 

        무가 장수장과 함께 달려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마주 선다. 용검이 가소롭다는 듯 웃는다.

 

용검    하하하.... 네가 고려국의 태자로구나. 참으로 어린놈이 가상하다. 에미 젓은 받아 가지고 왔느냐?

무      말이 너무 거칠구나.  네 소원이라 하여 나왔다. 한번 어우러 보자.

용검    좋은 말이다.

 

        용검이 말을 박차며 나선다. 태자 무가 그 검을 받아친다. 접전이다. 햇살아래 검무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장수장과 상귀도 서로 식은땀을 쥐며 보고 있다. 그렇게 접전이 계속되고 있고...

 

씬  고려측 진영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는 박술희와 장수들의 표정이 굳어있다. 애선이 부장들과 함께 무의 뒤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또 보고 있다. 

 

왕신    박장군, 그래도 우리 정윤 마마가 참 잘 싸우십니다.

박술희  그러게 말이요. 그런데, 왜 저렇게 나와서 화를 돋우고 싸움을 청하는지 이상하지 않습니까?

박수문  우리 정윤 마마를 망신주자는 의도가 아니겠사옵니까?

박수경  하지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고....?

박술희  ..........

 

씬  그곳

 

        여전히 박빙의 승부다. 태자들의 검투는 참으로 눈부시다. 위기가 거듭되고 한때는 무가 밀리는 듯 하다가 다시 역전되면서 용검이 거듭 당하기 시작한다. 한 수, 두수, 그리고 세 수, 용검은 점점 위기에 몰리기 시작한다. 무는 점차 신이 오른다.

 

무      고작 그만한 실력을 가지고 큰 소리를 쳤느냐? 참으로 웃기는 자로구나. 너는 오늘 여기서 죽을 것이다.

용검    큰 소리 치지 마라. 아직 승부는 않끝났다.

무      어디 내 검을 계속 받아 봐라.

 

        그러나, 무가 계속 이기고 있다. 용검이 쩔쩔맨다. 막기에 급급하다.

 

씬  백제군 진영

 

        멀리서 싸우는 모습들이 보여온다. 그들 군영 한 쪽으로는 얕은 야산이 보인다. 종훈이 끄덕이며 미소짓는다.

 

종훈    용검 태자마마께서 고려의 어린 태자를 아주 잘 유도하고 계시옵니다. 우리 작전이 먹혀드는 것 같사옵니다.

신검    그러게 말이오. 장수들은 다 배치되어 있소이까?

종훈    예, 태자마마. 잘하면 고려의 태자도 잡고 고려의 많은 장수들 또한 잡을 수 있을 것 같사옵니다.

신검    음.... (계속 뚫어져라 싸움 쪽을 본다, 끄덕인다)

 

씬  다시 그곳

 

        완전히 형평이 기울어졌다. 용검은 몇 번이고 말에서 떨어질 뻔한다. 그리고 그럴 듯한 연기를 하며 말고삐를 나꾸어 방향을
 돌린다.
 

용검    아니 되겠다. 다음에 보아야겠구나. 오늘은 이만 하자.

무      (신이 나서) 이만이라니...? 기왕 시작했는데 끝을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네 마음대로 갈 수 없느니라. 서라....

용검    다음에 보자꾸나....

 

        용검이 그렇게 도망친다. 그러자 무가 바짝 따라 붙는다. 함께 왔던 상귀가 다시 무를 막아선다. 그리고 몇 차례 또 싸운다.

 

무      너는 웬 놈이냐? 죽고 싶으냐?

상귀    나는 백제국 장수 상귀니라. 오늘은 그만 끝내자꾸나.

 

        그렇게 두 합을 받다가 상귀도 팔꿈치를 베이며 꿈틀하고는 도망친다. 무는 정말로 신이 났다

 

무      이 겁장이들아 어디로 가느냐.....? 서라....

장수장  (좌우를 보며 상황을 판단했다) 정윤마마. 더 이상 쫓지 마오소서. 정윤 마마.....

무      아니오, 저놈들을 꼭 잡아야겠소이다.

 

        그들 그렇게 도망치고 쫓기를 계속한다. 잘 달리는 말들이다. 금세 그렇게 멀어진다.

 

씬  고려측 군영

 

        박술희의 표정이 벌써 얼어붙었다.

 

박술희  속고 계시는 것이다. 유인책이다. 더 쫓지 말라고 하라. 애선장군은 무얼 하는가? 빨리 가오, 어서 뒤를 쫓으오....

애선    예.... 장군.... 부장들은 가자.

박술희  (발을 동동 구른다) 아닌데, 이것이 아닌데... 전군은 공격준비하라. 총사께서 위험하시다. 준비하라....

 

씬  그곳

 

        애선들이 달려가고 있다. 그래봐야 고작 십여 기에 불과하다. 앞에 가고 있는 태자들은 이미 까맣게 멀어지고 있다. 애선은 속이 탄다.

 

애선    가자, 빨리 가야 한다. 

 

        그들 그렇게 달려가고...

 

씬  백제군 군영측

 

        애술과 부달, 소달이 기다리고 있다. 이미 군사들이 가득하다. 애술이 웃고 있다.

 

애술    군사의 지략이 참으로 대단하오. 영락없이 미끼에 걸려 오고 있구먼.. 다 와가오. 저들을 잡아야 하오. 고려의 태자만 잡으면 이번 전투는 대승을 거두는 것이오, 허허허... 준비들 하오. 저기 옵니다.

 

        야산 모퉁이를 돌아 용검과 상귀가 먼저 지나친다. 그리고 그 뒤로 무와 장수장이 들이닥쳤다. 그 어느 쯤에서 용검과 상귀가 말을 멈추어 서며 돌아선다.

 

용검    하하하하.... 이 풋나기야.. 여기까지 오느라고 고생하였구나.

무      ...........(이미 상황을 알았다, 흙빛이 된다)

애술    하하하.... 그대가 고려국의 태자인가..? 보니 아직 소년이로구나. 곱게 항복하는 것이 어떠한가?

 

        그러나 이미 무는 칼을 뺴든 그 상태이다. 그리고 장수장이 바짝 붙어 있다.

 

애술    시간이 없다, 소년아... 너희들 뒤에도 군사들이 오고 있구나. 죽겠느냐, 아니면 싸우겠느냐?

용검    장군, 시간이 없소이다. 어서 저놈의 목을 벱시다.

애술    (끄덕이며) 고려국 태자를 사로잡으라.

 

        그렇게 부장과 군사들이 몰려든다. 상귀와 용검도 달려든다. 장수장이 소리치며 앞서 나간다. 과연 무예 사범이다. 삽시간에 낙엽처럼 쓰러뜨린다.

 

장수장  가까이 오지 마라... 정윤 마마를 건드리는 자는 누구도 용서치 않을 것이다.

상귀    하하하.. 대단하구나. 늙은이가 참으로 대단해... 어디 나와 붙어 보자.

 

        그들은 그렇게 어울린다. 막상막하다. 무도 용검과 싸우고 있다. 그러나 실력이 부친다. 애술이 보고 있다가 소리친다. 저 한편으로 애선 일행이 오고 있는 것이다.

 

애술    시간이 없다. 고려 태자의 목숨을 거두어야겠다. 사정없이 처라...

 

        위기다. 고려군이 까맣게 에워싼다. 실전이다. 상귀와 장수장의 싸움에서는 장수장이 중과부적 힘이 밀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귀가 역시 장수장에게 어깨가 베인다. 비틀하는 모습을 보고 애술이 보다가 달려나간다.

 

애술    늙은이가 대단하구나... 네 이놈.....나와 한번 해보자.

 

        그리고 십합 쯤 싸웠을까? 역시 장수장은 늙었다. 그만 헛점을 보이면서 위기에 닥치는 무를 보다가 가슴을 허락한다. 무가 보았다.

 

무      사부님......?

애술    저 어린 태자를 잡아라, 어서...

 

        장수장이 죽어가고 있는 그때 애선들이 들이닥친다.

 

애선    멈추어라..... 정윤 마마를 건드리지 말아라.

 

        혈전이다. 애선들도 곧 혈전에 돌입한다. 치열한 접전 속에서 간신히 무는 위기를 넘긴다. 애술과 애선이 또 붙고 있다.

 

애술    고려 태자가 명이 긴 모양이다. 이 놈.... 너는 조물성주 애선인 모양이로구나? 겁없이 이 애술장군에게 덤비느냐?

애선    어서 오너라, 이 백제의 졸개들아.

       

        격렬한 접전이다. 그러나 애선도 그만 허리를 베이고 만다. 역시 애술인 것이다. 애술이 범같은 눈을 치켜뜨며 애선의 시체를 보다가 한쪽을 본다. 박술희와 고려군이 까맣게 밀려오고 있다. 이미 그 한쪽으로 무가 위기를 벗어나고 있다. 무는 그곳을 벗어나며 계속해 장수장을 부르고 있다.

 

무      사부님.... 사부님.....

장수장  어서... 어서 가시오소서... 정윤 마마.. 어서.....

 

        장수장이 그렇게 숨을 거둔다. 무는 눈물을 흘리며 한쪽으로 비켜선다. 박술희들이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한쪽에도 신검군이 밀려오고 있다.

 

박술희  공격하라. 백제군을 남김없이 무찔러라... 정윤 마마 이쪽으로 피하시오소서. 어서요....

무      장군, 사부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장군....

박술희  아옵니다, 어서 이쪽으로....

 

        무를 한쪽으로 챙기면서 군사들은 대 접전에 들어갔다. 육박전이다. 왕신이 '이리오시오소서'하며 무를 감싸며 후방으로 뺀다. 신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신검    (멀리서 나타나며) 좌우 복병은 무얼 하느냐? 고려군을 모두 전멸시켜라. 한 놈도 남기지 마라......

양검    총 공격하라.... 공격하라....

박술희  적을 막아라.... 적을 막아라..

박수문  적을 막아라... 물러서지 마라.......

 

        대 접전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고려군의 희생이 눈에 띄게 보인다. 백제군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일방적인 살육전과도 같다. 박술희는 안타깝다. 너무 희생이 큰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애술과 박술희는 서로를 알아본다. 두 사람 모두 놀라운 무예로서 주변을 휩쓸고 있는 것이다.

 

애술    오라, 네가 바로 박술희로구나. 보고 싶었느니라. 한번 겨루어 보자꾸나.

박술희  오냐, 네가 애술이냐? 참으로 지독하게도 못생겼구나. 어서 오너라.

애술    하하하하... 못생긴 것은 피장파장이 아니냐? 아무튼 반갑다.

 

        두 장수가 그렇게 격돌한다. 무서운 검투가 한동안 이어진다. 그러나 도저히 승부를 가릴 수가 없다. 막상막하. 그들은 필사적으로 싸우지만 우열은 가려지지 않는다. 그리고 서로들 스스로 놀란다.

 

애술    과연 허명이 아니었구나. 대단하다, 박술희. 오랜만에 임자를 만난 것 같다.

박술희  동감이다. 생긴 대로 잘 싸우는 구나. 대단하다, 애술. 오너라..

 

        접전은 계속된다. 그 과정에서도 고려군은 더욱 피해가 늘어난다. 박수경이 급히 다가와 말한다.

 

박수경  장군, 퇴각해야겠사옵니다. 더 이상 아니 되겠사옵니다.

박술희  알겠소이다. 퇴각령을 내리시오. 퇴각하오.

박수경  퇴각하라... 퇴각하라...

애술    아니 된다, 박술희, 싸움을 끝내고 가자꾸나.

박술희  오늘은 바빠서 아니 되겠다. 다음에 보자꾸나.

 

        박술희는 그렇게 말머리를 돌린다. 애술이 쫓기를 포기한 채 주변을 보며 웃는다.

 

애술    하하하... 박술희야. 어딜 가느냐? 어서 오너라. 돌아 오너라. 하하하.

 

        애술의 그 웃음소리를 뒤로하여 고려군이 퇴각하고 있다. 무수한 시체를 남기며 그렇게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고려군들... 신검과 양검, 용검들이 애술 곁으로 온다.

 

신검    장군, 참으로 전과가 큰 것 같소이다.

용검    고려의 태자를 잡을 수 있었는데 안타깝게 되었소이다.

양검    이정도의 전과라면 대단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겼사옵니다, 총사.

종훈    아직 전투가 끝난 것이 아니옵니다. 계속해 뒤를 밀어부쳐야 하옵니다. 그리고 저쪽 계곡을 우리 것으로 만들고 성을
 공략해야 하옵니다.
신검    그래, 그런 것 같구먼... 옳은 말이요. 소라를 불어라. 계속 진격하라..... 적의 뒤를 계속 쫓아라. 저 조물성 계곡은 이제 우리 것이다.

 

        신검이 그렇게 달려나간다. 양검, 용검, 그리고 두 부장과 애술도 한꺼번에 달려간다. 그렇게 달려가는 그들의 모습과 자신감 있는 웃음에서..... 디졸브

 

씬  그 밤 조물성 외경 (밤)

 

        장군기가 조기로 내려져 있다.

 

씬  동 성안

 

        무가 풀이 죽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모두들 숙연하다.

 

무      모두가 제 잘못이옵니다. 저 때문에 계곡을 다 빼앗기고 이 성까지 쫓겨왔습니다.

박술희  전쟁이란 원래 그런 것이옵니다. 상황을 미리 파악하지 못한 소장의 책임도 크옵니다. 그렇다고 완패한 전투도 아니니 너무 낙심하지 마오소서.

무      두 장군이 저 때문에 죽었습니다. 두 장군이....

박술희  장수들이란 언제나 죽음을 뒤에 달고 다니는 존재들이옵니다. 그것이 운명이옵니다. 마음을 가라 앉히시오소서.

무      ........

 

씬  대야성 외경

 

씬  동 성안

 

        견훤이 파안대소하고 있다. 읽고 있던 장계를 놓으며 탁자를 친다.

 

견훤    오랜만에 우리 신검이가 한번 해냈구먼 그래. 적병을 무려 삼천이나 죽였다는 게야. 적장의 수급을 둘이나 베고 말이야.

능환    신이 무어라 했사옵니까? 태자마마께서는 해 내실 것이라고 하지 않았사옵니까?

최승우  참으로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장수들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능애    폐하, 태자마마들이 고려국의 태자를 눌렀사옵니다. 특별히 상을 내리시고 위로해 주심이 마땅한 줄 아옵니다.

견훤    암, 그래야지, 그래야지... 이보게, 파진찬... 병참을 맡은 장수에게 일러 술과 고기를 푸짐히 보내도록 하게.

최승우  예, 폐하.. 그리하겠사옵니다.

견훤    우리 자식들이 이겼어. 고려국의 태자들을 이겼단 말이야. 핫하하하.. 이 아니 기쁜 일인가? 이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 말이야... 하지만, 아직 성을 함락한 것은 아니야. 칭찬은 칭찬이고 또 할 일을 해야 하는 것이야. 성문을 열라고 해. 반드시 열라고 해.

최승우  예, 폐하.

견훤    오랜만에 속이 참 시원하다.... 자, 제장들, 오늘 짐이 술 한잔 내겠네. 이야말로 마실 만한 일이 아닌가 말이야? 하하하.... 고려국의 왕 왕건이가 지금쯤 속이 뒤집어지겠구먼. 얼마나 열불이 나겠는가?  자식이 나가서 죽도록 매를 맞고 있으니 얼마나 열불이 나겠어? 하하하.....

 

        그렇게 혼자 계속 배를 쥐고 웃고 있는 견훤의 표정에서...

 

씬  송도 황궁 외경 (낮)

 

씬  동 대전

 

        왕건이 역시 탁자를 치며 놀란 눈으로 태평을 보고 있다.

 

왕건    무어라..? 장수장이 죽었어..? 성주 애선도 죽었고...?

태평    그렇다 하옵니다, 폐하.

왕건    어쩌다가... 어쩌다가 일이 그 지경까지 되었는고...? 어쩌다가....?

태평    아마도 적의 유인책에 걸려든 것 같사옵니다. 정윤 마마와 함께 공격을 해 들어가다가 변을 당했다 하옵니다.

왕건    도대체 술희 아우는 무얼 했단 말인가?  어떻게 그렇게 당할 수가 있어? 군사도 삼천이나 잃었다고...? 허허, 이런 이런.... 이를 어이할꼬...? 이렇다면 우리가 진 전쟁이 아닌가? 우리가 진게야...우리가...

 

씬  조당

 

        김행선과 더불어 문무신료들이 모여있다. 모두들 침통하다.

 

김행선  지금 순군부령이 폐하께 가 있소이다. 대충 소식들 들으셨겠지만 정윤 마마께서 총사로 가신 그 조물성 전투의 첫번쨰 대전에서 우리가 완전히 패했다고 합니다.

왕유    장수가 두 분이나 전사했다고 들었습니다마는...

신숭겸  그렇소이다. 정윤 마마의 무예사부였던 내군의 장부장이 전사하였고 조물성 성주 애선장군이 전사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믿기지 않는 소식입니다.

유금필  거 술희아우가 어떻게 하였길래.. 그렇게까지 되었단 말입니까? 허 참...

배현경  아무튼간에 우리가 첫번째 전투에서 졌소이다. 그 전투는 양쪽의 태자들이 주관한 것이었어요. 어쨌든 다시 체면을 만회해야하지 않겠소이까?

홍유    해야지요. 이대로 있을 수는 없는 일이지요.

복지겸  아무튼 후속책은 폐하께 상주하러 순군부령이 갔으니 기다려 보십시다.

김락    기다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전선의 상황이 다급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군사를 더 보내는 것이 마땅한 일이지요.

염상    그렇다고 보여지옵니다. 지원군을 보내야 할 것 같사옵니다.

전이갑  단순한 지원군이 아니라 우리 장수들이 한꺼번에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조짐이 좋아보이지를 않습니다.

유금필  그래야할 것 같습니다. 시중어른, 지원군을 보내는 쪽으로 폐하께 청을 올리시지요?

김행선  무어.. 장수들의 뜻이 다 그러하다면 그리해야지요. 하지만... 국가적인 체면도 생각해야 합니다. 어차피 태자들의 전쟁이었어요. 아직 완전히 진 것이 아니니 한번 더 싸워봄직도 한 것이 아니겠소이까?

최지몽  그러하옵니다. 어떤 때에는 그 체면이라는 것이 나라 하나와 바꿀 만큼 클 때도 있사옵니다. 이 태자들간의 싸움에서 우리 고려가 지고 많은 장수들이 다시 가 싸운다면 그 소문이 천하에 어떻게 나겠사옵니까? 좀 더 지켜보심이 가할 줄로 아옵니다.

추언규  소생의 생각도 같사옵니다. 지금은 실리를 따지기 보다 나라의 체면을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 같사옵니다.

왕규    아직 성을 빼았긴 것은 아니옵니다. 그러나 형편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인 것 같사옵니다. 너무 긴장하고 서둘기보다는 더 이상의 피해를 막고 성을 굳게 지켜내는 것이 결과적인 승리가 될 것이옵니다. 그에 관한 방책을 연구함이 옳을 것이옵니다.

김행선  그리고... (좌우보며) 폐하께오서는 나주부인 마마께서 이미 그 아드님이 정윤에 오르셨기 때문에 마땅히 그 신분을 올리셔야 한다고 말씀 하셨소이다. 우리 광평성에서 뜻을 모아 절차를 밟으라 하시는데 여러 신료분들의 생각은 어떻소이까?

왕규    그 아드님께서 마땅히 다음 보위를 이으시는데 황후마마로 책봉하심은 당연한 일이옵니다. 어찌 이론이 있을 수 있겠사옵니까? 마땅히 그리 뫼셔야지요.

최지몽  오히려 늦은 감이 있사옵니다. 시중께서 서두르심이 마땅하시옵니다.

신숭겸  옳은 말씀입니다. 그리 하셔야지요. 아니 그렇습니까?

모두들  암요, 당연한 일이올시다.

김행선  허면, 이 일을 수춘부(각종 행사와 의식을 맡은 관청)에 내려서 그 절차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들 그렇게 아시구려.

모두들  예, 시중어른.

김행선  그나저나 그 조물성 전투를 어찌한다? 어허, 이것 참...

 

씬  오씨의 처소

 

        오씨가 박상궁을 보며 근심스런 한숨을 토하고 있다.

 

오씨    어쩌다가 도대체 어쩌다가 장부장이 목숨을 잃었단 말이냐? 도대체 어쩌다가....

박상궁  소인이 귀동냥으로 듣자하니 정윤 마마께서 무리하게 적진으로 들어가시어 싸우시는 것을 돕다가 그리 되셨다 하옵니다.

오씨    뭐라고...? 우리 정윤이 적진 속으로까지 들어갔단 말이냐?

박상궁  그리하셨다 하옵니다. 얼마나 대단하시옵니까?

오씨    (펄쩍뛰며) 대단이라니..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우리 정윤 무는 곧 황제가 될 사람일세. 어떻게 그렇게 가벼이 목숨을 내놓고 싸울 수 있단 말인가? 말도 아니 되는 소리... 아니 이것이 대체 함께 간 박술희 장군은 무엇을 하고 그렇게 까지 내버려두었단 말인가? 아이구 세상에.... 이거 큰일 나겠구나. 아무래도 큰일 나겠어.

 

        그때 나인 연이의 소리가 급하게 들려온다.

 

연이    (E) 마마... 마마... 쇤네 연이옵니다..

박상궁  왜 이리 호들갑인고..? 들어오거라.

연이    (들어와) 마마, 마마... 감축드리옵니다.

오씨    이 아이가 뜬금없이 무슨 소린고...? 감축이라니..? 감축은 무슨 감축?

연이    방금 전 이리로 오다가 소식을 들었사옵니다. 지금 수춘부에서 마마를 황후로 책봉하신다는 의례를 준비하고 있다 하옵니다.

오씨    무어라..? 나를...?

박상궁  그게 사실이냐?

연이    예, 사실이옵니다. 거듭 확인한 일이옵니다. 지금 그 일로 하여 온 궐안이 술렁거리고 있사옵니다. 폐하께서 직접 내리신 영이라 하옵니다.

박상궁  마마, 감축드리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황후마마...

오씨    (흥분하였다) 세상에... 폐하께서 이렇게 사람을 놀라게 하실 수가 있는가? 황후라... 내가 드디어 황후가 된단 말이지...? 그런 말이지 제조상궁?

박상궁  예, 황후마마... 황공하옵니다. 신을 제조상궁으로 삼아 주시니, 참으로 황공하옵니다.

오씨    내가 황후가 되었으니 자네는 응당 제조상궁이 되는 게야.

박상궁  망극하옵니다, 황후마마.

 

        그때, 밖에서 다시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E) 마마... 충주부인 마마께서 드셨사옵니다.

오씨    충주부인이...? 드시라 하게.

 

        잠시 후, 유씨가 들어선다. 그리고 아주 공손하게 큰 절을 올린다.

 

유씨    황후마마... 감축드리옵니다. 소인이 방금 전에 소식을 들었사옵니다. 앞으로 변함없이 황후마마를 궐 안의 큰 어른으로 잘 뫼시겠사옵니다.

오씨    (한동안 보다가) 황후가 되는 것은 뭐 당연한 일이 아니었겠는가? 자네도 하긴 황후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인데...

유씨    언감생심, 어찌 그런 뜻을 품겠사옵니까? 감축드리옵니다. 그리고... 참으로 감축하네. 제조상궁.

박상궁  고맙사옵니다, 마마.... 

김상궁  감축드립니다, 제조상궁님...

박상궁  고맙네, 김상궁. 앞으로 잘 해보세.

오씨    아무튼 이렇게들 찾아와 주니 고맙네. 연이는 무얼 하느냐? 가서 차 좀 내오너라. 앉게나, 충주부인...

유씨    예, 황후마마...

오씨    그동안 같은 부인의 반열에 있었는데 내가 황후전으로 옮겨가면 섭섭하겠네 그려.

유씨    어인 말씀이옵니까? 늘 불러주시오소서, 자주 찾아뵙겠사옵니다.

오씨    암, 자주 와 인사를 해야지. 그래야 서로 가까워지는 것이야.

유씨    예, 황후마마...

 

        그렇게 목에 힘을 주는 오씨의 콧대 높은 표정에서...

 

씬  동 대전

 

        왕건이 계속 한숨을 내려 쉰다. 최응이 보고 있다.

 

왕건    신료들의 의견은 아직 장수들을 더 보낼 때가 아니라 그 말이지..?

최응    그렇사옵니다. 신도 그 의견에는 공감하옵니다. 차라리 증원군을 대폭 늘리심이 가할 것이옵니다.

왕건    그리 하세나. 역시 우리 정윤 무는 너무 어린 것 같네.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어.

최응    실수와 상처를 많이 겪을수록 그만큼 강인해지는 법이 아니옵니까?

왕건    그러나 이번에는 참으로 마음이 아프이... 장부장은 내 어릴 적 무예스승이기도 하였어. 그런 사람이 죽다니...

최응    예, 신도 아옵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옵니다.

왕건    (장계를 보며) 황후 책봉에 관한 일은 지금 절차를 준비중이라...?

최응    예, 조당에서 페하의 영을 속히 받들기로 의견을 모았다 하옵니다.

왕건    (끄덕인다) 그러나 서두를 것은 없네. 조물성 전투를 마무리하면서 해도 늦지 않아. 

최응    예, 폐하.

왕건    조물성으로 증원군을 보내게. 주변 인근의 군사들을 동원하여 갑절로 늘려주게나. 군사가 넉넉해야 자신감을 갖는 것이야.

최응    예, 폐하.. 그리하겠사옵니다.

 

씬  조물성 외경

 

        박술희가 무와 더불어 우울하게 멀리 성밖을 보고 있다. 성 밖 멀리 백제군의 깃발로 덮여있다. 그 옆으로 무와 장수들이 함께해 있다.

 

박수문  백제군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것 같사옵니다.

박술희  그럴만도 하지요.

왕신    이제 어찌할 것이옵니까? 저들이 곧 몰려올 것이옵니다.

박수경  우리가 계곡을 내 주었으니 전략상 매우 불리하게 되었습니다. 성 앞과 계곡의 빈틈으로 한꺼번에 밀려들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왕충    그럴 것입니다. 우리 군은 사기도 저하되었고 아주 불안한 위치에 놓여버렸소이다.

무      .......... 그래도 싸워야지요. 이 성만은 지킬 것입니다.

박술희  (미소) 암요, 정윤 마마... 아직 전투가 끝장을 본 것은 아니옵니다. 승패가 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옵니다. 성을 공격하는 쪽이 방어하는 쪽보다는 불리하옵니다. 한번 더 해보시오소서.

무      그렇게 할 것입니다. 꼭 그렇게 할 것입니다.

 

씬  동 성 밖 백제군 진영

 

        멀리 조물성이 보여온다. 장수들이 모여 그 성을 보고 있다.

 

신검    이제 성문을 여는 것만 남았소이다. 폐하께서는 술과 음식을 보내시면서 우리에게 다시 한번 명령하였소이다. 성문을 열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공격을 준비하십시다.

애술    성을 공격하는 것은 계곡을 취하는 일보다 열 배는 어려운 일이옵니다. 특히나 저들은 독이 올라 있고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사옵니다. 당분간은 공격을 늦추고 기회를 볼 필요가 있사옵니다.

신검    무슨 말씀이오. 우리 군이 사기가 올라 있을 때에 치는 것이 마땅하오. 이번 선봉은 내가 서겠습니다.

용검    형님, 계곡 전투에서는 양검 형님이 서셨으니 이번에는 소제가 서도록 해주시오소서.

신검    방금 듣지 아니 하였느냐? 성벽 전투는 계곡 전투보다 열 배나 위험하다. 내가 성문을 여는 것을 보여줄 것이니라. 내가 말이다. 이번에는 꼭 보여드릴 것이다. 아바마마께 확실하게 보여드릴 것이다. 이 맏아들 신검이가 어떠한 존재인가를.... 확실하게 인식시켜 드릴 것이야.

금강    ..........

양검    형님은 하실 수 있사옵니다.

신검    암, 그래... 그 동안은 너무도 운이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아바마마는 늘 나를 책망하셨다. 나도 아바마마께 잘 보이고 싶었다. 열심히 싸웠지만 그게 되지를 않았어. 이번에는 보여 드릴 것이다. 저 조물성을 제물로 삼아 나의 진면목을 보여드릴 것이다.

 

        그러한 신검의 표정에서...                              

 

                                                                <142회 끝>





첨부파일 태조왕건142.txt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