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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대본

[태조 왕건] 143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7.12.06|조회수2,002 목록 댓글 0

태조 왕건 <제 143회>


<줄거리>


조물성 계곡을 점거한 백제태자 신검은 내처 조물성을 함락하고자 서두른다. 백제 군사 종훈은 신검이 무리한 공격을 감행하려 하자 공격시점을 늦추자고 간언한다. 고려태자 무는 장졸들을 독려 하던 중에 황도로부터 이천명의 증원군이 파견된다는 뜻밖의 소식을 접하고 ....한 편 신라에서는 경명왕이 죽고 경애왕이 등극하는데, 사신을 통해 조문사절을보내 줄 것을 요청하고, 이에 고려에서는 최응과 왕규를 파견한다. 몇 차례의 조물성 함락시도 후 드디어 견훤의 총애를 받는 백제 태자 금강이 선봉에 나서는데...

 

씬 조물성 외경 (석양)

 

        박술희를 비롯한 고려 측의 장수들이 멀리 백제군 진영을 보고 있다. 핏빛 노을 속에 해가 한 뼘이나 남았다. 무가 우울하게 박술희에게 말한다.

 

무      해가 져가고 있습니다, 장군.

박술희  그렇사옵니다. 저들은 지금 해가 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사옵니다. 어둠이 내리면 아마도 이 성을 공격해 올 것이옵니다.

왕신    저들의 사기가 너무 높사옵니다. 계곡을 빼앗기고 나자 우리 군사들은 하나같이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박수문  병사들은 장수들이 하기에 달려 있사옵니다. 우리가 앞을 선다면 두려움 따위는 곧 없어질 수 있사옵니다.

박수경  그러하옵니다. 힘들고 피곤하기는 백제군도 마찬가지이옵니다. 저들은 쉴 새 없이 우리를 쫓아 왔고 또 성벽을 넘어야 하옵니다. 우리가 불리할 것이 없사옵니다.

왕충    당연한 말씀들이시옵니다. 계곡 하나 내어준 것을 가지고 기가 죽을 이유가 없사옵니다. 분명한 것은 저들이 우리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다는 것이옵니다.

박술희  그렇소이다. 어쨌든 이 성은 절대로 내어줄 수 없습니다. 성이 문제가 아니라 양국의 태자분들이 나선 싸움이올시다. 백제의 태자들이 이 성에 들어오게 해서는 아니 되지요. 정윤 마마, 마마께오서는 우리 고려군의 총사이시옵니다. 저들을 물리칠 수 있사옵니다.

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장군. 이제서야 전쟁이 무엇이고 전투가 무엇인지 알 것 같사옵니다.

박술희  하하하, 그렇사옵니까? 참으로 대견하시옵니다. 그 하나로도 이미 마마께서는 큰 공부하나를 하신 것이옵니다.

무      이곳에서는 오로지 어떻게 죽느냐, 그것만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죽음을 각오할 때 비로소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장군.

박술희  그러하옵니다. 그런 마음이시라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사옵니다. 바로 그것이옵니다, 정윤 마마

 

        그렇게 박술희가 끄덕이며 웃고 있는데 저만큼에서 전령하나가 급히 다가와 군례를 드린다. 그리고 장계를 올린다.

 

박술희  (장계 받으며) 어디서 오는 전령인가?

전령    윤신달 장군께서 보내신 전령이옵니다.

박술희  윤장군이...?

전령    지금 황도에서 폐하의 영을 받자와 윤신달 장군과 김락 장군께서 이천의 증원군을 이끌고 오고 계시옵니다.

박술희  증원군....? (읽다가 끄덕인다) 정윤 마마, 우리 전투과정이 보고된 이후 아마도 폐하께오서 증원군을 보내신 것 같사옵니다.

무      그렇다면 아바마마께오서 저를 믿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오이까?

박술희  그럴 리가 있사옵니까? 우리 상황이 잠시 어렵다는 것을 아시고 미리 조치를 취해 주시는 것 같사옵니다.

왕신    하지만, 이곳까지 도착하려면 적어도 사흘은 걸릴 것이옵니다. 그 안에 우리는 사활을 건 싸움을 끝내야 하옵니다.

박수문  그러하옵니다. 오늘 저녁이 문제이옵니다. 오늘 저녁 말이옵니다....

 

        모두들 무겁게 끄덕인다. 그리고 다시 성밖을 본다. 멀리 백제군 넘어 산등성이로 점차 해가 서산 너머로 지고 있다.

 

씬  어느 길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이미 해는 졌다. 윤신달과 김락이 군사를 이끌고 오고 있다.

 

김락    우리가 지원군으로 가기는 가오마는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 지 모르겠습니다. 꼬박 사흘은 내처 가야 할 터인데...

윤신달  그러게 말입니다. 전황을 듣자하니 조물성이 매우 위태로운 모양인데 말입니다.

김락    그런 것 같소이다. 하긴 아직 정윤 마마가 전투에 나서시기는 좀 이르다고 봐야겠지요. 아마도 정윤 마마를 보좌하는 박술희 장군이 고생을 많이 하고 있겠소이다.

윤신달  그렇겠지요. 그러고 보면 백제의 태자들이 참으로 대단한 모양입니다. 그 계곡을 빼앗고 성 밑까지 와 있다니 말입니다.

김락    백제의 견훤 왕은 그 아들들을 어려서부터 혹독하게 교육시켰다 합니다. 우리 정윤 마마보다는 아무래도 전투 경험이 많지 않겠습니까? 그나저나 이거 길이 몹시 바쁘게 생겼소이다. 우리가 갈 동안 별 일이 없어야 할 터인데...

윤신달  소장도 걱정이올시다. 어서 길을 서두릅시다. 부장들은 들어라. 행군을 빨리하라. 전 대열에 전하라. 행군을 서둘러라.

부장    예, 장군. (복창한다) 서둘러라. 행군을 서둘랍신다....

 

        부산한 그들의 모습에서...

 

씬  조물성 밖 백제군 진영 (밤)

 

        공격준비를 끝낸 백제군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그들이 들고 서있는 횃불들이 불야성이다. 신검과 양검, 용검 그리고 그리고 금강, 애술, 상귀, 부달, 소달, 종훈들이 모여있다. 적진을 보고 있는 그들의 시선에 각오가 대단하다.

 

양검    총사, 공격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신검    그래, 이제 때가 된 것 같다.

용검    공격 목표는 어디로 잡을 것이옵니까?

신검    정문을 공격하기보다는 우리가 점령한 계곡 쪽이 더 유리할 것이다. 성벽이 높지 않고 공격하기에 지형이 아주 좋아.

양검    총사께서 선봉을 서시면 저희들이 좌우를 맡겠사옵니다.

신검    물론 그럴 것이다. 이번 성의 공격은 우리 형제들로서 끝을 내려고 한다. 물론 상귀장군과 부달, 소달 장군은 부장으로서 양쪽 날개를 도와주기 바라오.

그들    예, 총사.

애술    허허허... 그렇다면 금강태자마마와 소장은 역시 또 예비군이옵니까?

신검    예, 장군. 만약에 우리가 힘이 딸리면 뒤에 계시다가 바로 도와주시오.

애술    알겠사옵니다.

금강    총사, 이 아우도 싸우고 싶사옵니다. 함께 참여하게 해 주시오소서.

신검    너를 아껴서 하는 소리다. 너는 우리들 중에 제일 어리지 않느냐? 애술장군과 함께 뒤에 있거라. 자, 준비들 되었는가?

모두들  예, 총사...

신검    적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오늘 밤 안으로 저 성을 넘어야 한다. 기마대가 앞을 서고 성문을 파괴할 충차부대 그리고 성을 넘을 운제부대와 후방의 비루부대는 각자의 위치를 잘 파악하고 공격에 임하라.

부장들  예, 총사...

종훈    (눈치를 보다가) 총사, 저들은 지금 우리가 오리라는 것을 너무도 정확히 계산하고 있사옵니다. 시간을 좀 더 늦추었다가 공격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우리 군대는 몹시 피곤해 있사옵니다.

신검    그러나 사기는 좋소이다. 더 이상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고 하였소이다. 자 대열을 다 갖추었는가? 허면,. 기마부대는 출병하라.... 공격하라....

 

        명령이 떨어졌다. 수천의 기마부대가 일제히 까맣게 몰려가기 시작한다. 그들의 뒤를 따라 충차부대, 궁수부대, 운제부대, 보병들이 한꺼번에 달려가기 시작한다. 종훈은 머리를 가볍게 젖는다. 애술과 금강이 그저 묵묵히 보고만 있다. 특히나 금강은 굳게 입을 다물고  생각이 많다.

 

씬  동 조물성 안

 

        박술희와 장수들 그리고 숱한 병사들이 적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무가 마른침을 삼키며 박술희 옆에서 몰려오는 적을 보고 있다.

 

무      장군, 적군이 오고 있습니다.

박술희  이미 만만의 준비가 되어 있사옵니다. 예상대로 이쪽 계곡의 성을 노리고 있사옵니다. 박장군?

박수문  예, 장군.

박술희  적이 가까이 오고 있소이다. 부장들을 독려하시오.

박수문  예, 장군.

박술희  왕충장군은 좌측으로 가고, 박수경 장군이 우측을 맡으시오. 있는대로 다 퍼붓고 내어던져서 저들을 성벽에 붙지 못하도록 하오. 

그들    예, 장군....

 

        그들이 모두 부산하게 흩어진다. 백제군은 드디어 성 밑에 가까이 이르렀다. 그곳에서도 신검이 잘 보인다. 그 좌우에 상귀와 부달, 소달들이 보인다. 신검이 소리치고 있다

 

씬  그곳 성 밖

 

신검    공격하라... 비루부대는 석포를 퍼부어라.... 운제부대는 성벽으로 붙어라..... 충차는 성의 사잇문을 부수어라....

 

        드디어 엄청난 피아간의 공방이 시작된다. 석포가 수없이 많은 돌을 성 안으로 퍼붙고 있다. 그 돌들이 날아가 성의 망루를 부수고 장대 기둥을 맞추어 부러뜨리며 장대가 무너지기도 한다.

 

씬  동 성안

 

        돌이 날아와 부서지는 망루에서 병사들이 떨어져 내린다. 그러면 다른 병사들이 달려가 가죽푸대로 그 부서진 망루를 막는다. 그리고 다시 다른 병사가 올라가 수기를 흔들며 공격지점을 표시하고 있다.

 

병사    (망루에서 수기를 흔들며) 좌공........ 우공.........

 

        그 위치에 따라 공격지점들이 보여지고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도  병사들이 수도 없이 또 죽어간다. 화살에 죽어가고 돌에 맞아죽고 불화살들이 안으로 쏟아져 곳곳이 불타고 있다. 장수들이 소리친다.

 

왕충    불을 꺼라. 밑으로 뜨거운 물을 퍼부어라. 화살을 쏘아라....

박수경  활을 쏘아라......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라.....

박수문  불덩이를 내려 던져라...... 모두 태워버려라........

 

        그 한쪽에서 왕신도 성루 쪽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하는 백제군을 물리쳐라 소리치고 있다.

 

왕신    저들이 올라온다. 막아라... 성벽에 오르지 못하도록 하라...

 

        성벽을 타기 시작한 백제군들이 무더기로 떨어져 내린다. 아비규환이다. 박술희와 무가 그 한쪽에서 보고 있다. 화살과 돌이 그들 옆으로 무수히 날아간다. 성 밑으로 물과 기름과 나무와 돌들이 떨어져 내린다. 백제군의 공격은 치열하지만 희생도 엄청나다.

 

씬  그곳 성 밑

 

        그 아우성 속에서 신검이 계속 외치고 있다

 

신검    물러서서는 안된다... 물러서지 마라.... 성벽을 올라라.... 비루부대는 무얼 하는가... 계속 돌을 날려라..

용검    형님, 도무지 끄떡하지도 아니 하옵니다.

신검    아직 날이 새려면 한참 멀었다... 계속 퍼부어라... 우리는 오늘 성을 넘지 못하면 돌아가지 않는다. 공격하라... 

용검    아군의 피해가 너무 크옵니다.

신검    피해가 없는 전투가 어디 있느냐? 어서 가서 좌측을 뚫어라...

용검    예, 형님....

       

        용검이 다시 달려간다. 그 한쪽에서 양검도 죽어라 싸우고 있다. 작은 성의 사잇문을 충차가 부수고 있고, 화살부대는 수없이 성안으로 불화살을 날리고 있다. 상귀, 부달, 소달들의 독전하는 모습들도 보여진다. 그들은 모두 '쏘아라, 성을 넘어라' 등등 소리치며 혼신을 다한다. 그 중 양검과 함께 싸우는 상귀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상귀    태자마마, 예측은 했지만 적의 저항이 너무도 완강하옵니다.  

양검    그러게 말이오. 너무도 일방적으로 계산이 없는 공격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도무지 무너질 기미가 보이지를 않아요.

상귀    희생이 너무 크지 않사옵니까?

양검    하지만, 형님의 결심이 워낙 완강하십니다. 반드시 오늘밤 성을 넘어야 한다고 합니다. 계속 공격할 수 밖에요. 공격하라.... 화살을 퍼부어라...

 

        그들은 그렇게 혼신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계속 독전하고 있는 그 치열한 신검과 주변 전장터의 모습에서...

 

씬  대야성 외경

 

        견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씬  동 성안

 

        견훤과 제장들이 모두 모여있다.

 

견훤    우리 신검이가 계곡을 다 점령하였고 성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

최승우  그렇다 하옵니다, 폐하. 아마도 지금쯤 공격을 시작했을 것이옵니다.

능환    폐하, 얼마나 장하시옵니까? 신검 태자마마께오서는 역시 폐하의 아드님이시옵니다. 적의 장수를 둘이나 베고 전략적 요충지인 성의 계곡 일대를 모두 장악하였으며 또한 성을 공격 중이옵니다.

공직    이번만은 모든 전투가 저희 태자마마들의 승리로 돌아가는 것 같사옵니다.

견훤    암, 그래야지. 그래야지... (장계보며) 헌데 말이야.. 신검이가 이거 너무 혼자 독선을 부리는 것 같구먼.. 어떻게 금강이는 계속 뒷전에 놔두느냐는 말이야? 신검이는 이것이 문제야. 욕심이 너무 많다는 말이야.

능환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형제분들 중 맏이로서 앞장을 서시는 것은 당연하시옵니다.

견훤    뭐 그렇기는 하겠지만서두.... (하다가) 거 이찬은 우리 신검이 이야기만 나오면 사람이 아주 적극적으로 변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 신검이가 이 애비보다도 이찬을 더 따르는 모양일세.

능환    그럴 리가 있사옵니까, 폐하?

신덕    아무튼 이번에 태자마마들께서 조물성에 나아가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계시니 보기에 참으로 든든하옵니다.

김총    신들도 태자마마들의 일은 들으면 들을수록 신명이 나옵니다. 대단들 하시옵니다.

최필    그러하옵니다. 대 백제국을 위하여 이만한 복이 없는 듯 싶사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견훤    그렇다고 해서 너무들 들뜰 필요는 없어. 전쟁은 항상 다 끝난 뒤를 보아야 하는 것이야. 아직 성을 빼앗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기왕이면 성까지 함락했으면 좋겠구먼서두...

최승우  기다려보시오소서. 좋은 소식을 가져올 것이옵니다.

견훤    그러게 말이야... 제발 그래야 할 터인데...

 

씬  동 조물성 (새벽)

 

        어슴프레 여명이 터오고 있다. 공방은 그렇게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점점 더 백제군의 피해가 눈에 띄게 보여오기 시작한다. 신검이 여전히 독전하고 있다.

 

신검    무엇들 하느냐? 비루부대는 왜 공격하지 않는가? 무얼하고 있는 게야. 계속 돌을 쏘아 날려야지..

부달    끌고 온 비루들이 모두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성으로 쏘아 날릴 돌들도 바닥이 났다고 하옵니다.

신검    말도 아니 되는 소리, 벌써 돌이 바닥이 나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구해 오라고 해, 어디서든 돌을 구해 쏘아 올리라고 해. 적들은 계속 우리에게 퍼붓고 있는데 왜 우리는 쏠 돌이 없다는 말인가?

소달    저들은 우리가 쏘아 보낸 돌을 다시 쓰고 있사옵니다.

신검    이런 세상에... 돌이 없으면 화살을 날려라.. 궁수부대를 더 투입해. 공격하라... 여기서 머뭇거리면 안된다. 더 힘을 내라...

       

        신검이 그렇게 소리를 지르다가 돌 하나가 날아와 신검의 투구를 깨어 버린다. 모두들 놀라서 본다. 신검이 간신히 말에서 떨어지기를 모면하고 놀라서 멍하니 본다.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부달    괜찮사옵니까, 태자마마...?

신검    나는 괜찮소이다. 멈추지 마오. 공격을 계속 하라고 해. 공격하라... 공격하라....

 

씬  그 일각

 

        양검이 상귀와 함께 충차부대를 지원하고 있다. 주변으로 시체가 즐비하다. 눈앞에서 성벽을 오르다가 떨어져 죽는 병사들이 무수히 보인다.

 

양검    지독한 놈들이야... 도무지 틈이 보이지를 않아.

상귀    아무래도 퇴각을 해야 될 것 같사옵니다. 더 이상은 무리이옵니다. 날이 밝고 있사옵니다.

양검    그러게 말이오. 가서 퇴각하자고 하십시다. 군사들이 너무 많이 희생되었어요. 내가 가서 청해보리다. 더 이상은 무리에요.

 

        그렇게 막 양검이 돌아서려고 하는데 화살 하나가 날아와 그의 팔뚝에 꽂힌다. 상귀가 놀라서 본다.

 

상귀    태자마마... 괜찮사옵니까?

양검    괜찮소이다. 이대로는 아니 되겠소이다.

 

        그렇게 양검이 달려간다.

 

씬  동 조물성 안

 

        박술희가 독전하고 있다. 그러나 주변은 폐허나 다름없이 변해있다.

 

박술희  날이 밝고 있다. 우리가 이겼다. 힘들을 내라... 우리가 이겼다...

무      우리가 이겼다. 계속 퍼부어라... 퍼부어라...

 

씬  동 성밖

 

        신검이 답답한 표정으로 전투 상황을 보고 있는데 양검이 달려와 말한다.

 

양검    형님, 더 이상은 무리이옵니다. 군사들의 희생이 너무 크옵니다. 날이 밝고 있사옵니다, 형님...

신검    아니 된다. 저 성을 꼭 넘어야 한다.

양검    형님..... ?

       

        그때, 용검이 다시 달려온다. 그도 피투성이다.

 

용검    아니 되겠사옵니다. 화살도 바닥이 났사옵니다. 군사들이 벌써 천여명이나 죽었사옵니다. 퇴각령을 내리시오소서.

신검    퇴각이라니..? 그건 말도 아니 된다. 절대로 아니 된다.

 

        그때, 애술과 금강, 종훈, 훈겸들이 온다.

 

애술    태자마마, 날이 밝사옵니다. 오늘은 이만 하시오소서. 이미 공격의 시기가 지났사옵니다. 내일이 또 있사옵니다.

신검    이럴 수가 있나? 지독한 놈들이오. 저 성 하나를 넘지 못하다니 이럴 수가 있나...?

양검    어서 명을 내리시오소서, 형님.

신검    (한참 이를 갈다가) 오냐, 오늘만 날이겠느냐? 오늘은 일단 이쯤에서 퇴각하라 하라.

 

        대답소리와 함께 용검과 양검이 달려간다. 그리고 곧 부장들 입에서 퇴각하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비통한 신검의 표정에서....

 

씬  동 조물성 (낮)

 

        성안은 어지럽고 폐허처럼 곳곳이 다 불타고 부서져있다. 박술희와 무가 성안을 돌아보며 참담해 한다. 그리고 다시 성밖을 멀리 본다.

 

박술희  저들은 물러갔지만 반드시 다시 올 것이옵니다.

무      도대체 어떻게 싸웠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왕신    지난밤에는 모두들 악으로서 막아냈지만 다시 밤이 오면 어떨지 모르겠사옵니다.

왕충    또 죽기로 싸워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길은 그것밖에 없사옵니다.

박술희  아무튼 이번 대전에서는 총사이신 정윤 마마께서 승리를 하셨사옵니다. 이번 전쟁은 그야말로 자존심 싸움이옵니다. 어떻게 하든 끝까지 이 성을 방어하셔야 하옵니다.

무      알겠사옵니다. 우리가 지면 아바마마 체면에 큰 흠집을 남겨드리게 될 것이옵니다. 그래서는 아니 되지요, 절대로요....

 

씬  동 성밖 신검의 진영

 

        군막 앞에서 제장들이 모여있다. 신검도 양검도 모두 피투성이, 용검 또한 그렇다. 모두들 무거운 표정이다.

 

신검    고려에서 지원군이 오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밤 안으로 끝을 내야 합니다. 지원군이 오면 우리는 결정적으로 불리해 져요..

용검    그렇다면 우리도 지원군을 청하면 어떻겠사옵니까?

신검    못난 소리.. 그렇게 되면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공적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야. 지원군은 없다. 우리의 힘으로 다 해결할 것이야.

상귀    하오나 총사, 너무도 많은 희생이 있었사옵니다. 비록 군을 다시 정비하고 있으나 함락이 쉽지 않을 것 같사옵니다.

신검    함락할 것이요.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요.

양검    그러나 형님께서도 다치셨고 저 또한 부상을 입었사옵니다.

애술    태자마마, 차라리 이번에는 신이 선봉을 서면 어떻겠사옵니까?

금강    아니옵니다, 형님.. 형님께서는 총사이시옵니다. 총사는 장수들의 역할을 공평히 하셔야 한다고 배웠사옵니다.  이제 이 아우에게도 기회를 주시오소서.

신검    금강이 네가..? (비웃듯이) 우리 모두가 얼마나 열심히 싸웠는가를 너는 알것이다. 네가 과연 저 성을 넘을 수 있겠느냐?

금강    군령으로 약속을 드리겠사옵니다. 이 아우에게 선봉을 주시오소서.

애술    소장 애술이 보좌하겠나이다. 허락하시오소서, 총사.

 

        모두들 그런 금강을 본다. 신검이 잠시 갈등한다. 그러다가 차갑게 말한다.

 

신검    좋다, 네가 그토록 원하니 허락을 하마. 그러나 약속은 약속이다. 성을 넘지 못하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을 것이다. 차후로는 너는 절대로 선봉을 맡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좋겠느냐?

금강    예, 총사...

신검    좋다... 다시 군사들을 정비하라. 해가 지면 또 공격할 것이다.

부장들  예, 총사. (흩어지며) 군을 재정비하라. 재정비하라...

 

        신검이 그런 모습들을 본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서 금강과 애술의 시선이 교차된다. 애술이 끄덕이며 웃는다. 금강도 마주 끄덕인다.

 

씬  동 조물성 안

 

        무가 박술희를 비롯한 제장들과 부장들과 함께 전략을 숙의 한다.

 

무      저들이 다시 군대를 정비하고 있소이다. 오늘밤을 어떻게 넘기느냐가 최대의 관건이 될 것입니다.

박수문  이미 서로가 죽느냐 죽이느냐 그런 결단만이 있는 전쟁이옵니다. 어차피 지원군이 온다해도 그 덕을 보기가 어렵사옵니다.

박수경  그러하옵니다. 오로지 철저한 대비만이 우리가 취할 마지막 선택이옵니다.

왕신    그러나 정윤 마마는 폐하를 대신하는 존귀한 분이시옵니다. 행여라도 잘못되실까 두렵사옵니다. 좀더 후방으로 나가 계심이 어떻겠사옵니까?

무      숙부님, 말씀이 지나치시옵니다. 저를 보고 도망을 가라 하시는 것이옵니까? 절대로 그것은 아니 되옵니다.

왕충    그만큼 오늘밤의 전투는 더욱 치열할 것이옵니다. 드려본 말씀일 것이옵니다. 소장이 생각해도 오늘밤은 참으로 지독한 밤이 될 것 같사옵니다.   

박술희  이미 정윤 마마께서는 전장터의 생리를 익히셨소이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을 것입니다. 지금 여기 계신 정윤 마마는 곧 폐하를 대신하여 계시는 것이올시다. 해 내셔야 합니다. 나가야 해요. 저들의 공격을 어찌 대비할 것인지 의논이나 하십시다.

 

        모두들 끄덕인다. 그런 그들의 표정에서..

 

씬  송도 황궁 외경

 

씬  동 대전

 

        왕건이 초조한 모습으로 서서 서성거린다. 그 옆에 최응이 앉아있다. 왕건 혼자 중얼거린다.

 

왕건    역시 아직 무는 너무 어린 것 같아. 학문보다는 좀더 큰 담력을 키워주었어야 했는데 말이야..

최응    비록 조물성의 전황이 어렵다고는 하오나 공부의 제일 첫걸음은 성공보다는 실패를 배워야 하는 것이옵니다. 처음부터 승리를 맛보기 시작하면 어려움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없사옵니다. 넉넉히 생각하시오소서.

왕건    그렇기는 하네마는... 이거, 체면이 말이 아니지 않는가? 백제에서 태자들이 나왔다길래, 우리도 태자를 보낸 것일세. 헌데, 한다하는 장수들을 잃고 성밖의 계곡 땅을 다 내주었다는 것이야. 그리고 성이 지금 풍전등화이고 말이야.

최응    기다려 보시오소서, 폐하. 그 때문에 아예 장수들을 아니 보내려고 하다가 김락, 윤신달 두 장수를 보냈사옵니다. 

왕건    그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견훤왕 그 사람이 지금쯤 얼마나 좋아할지...? 눈에 보이는 것 같네 그려.

 

        그렇게 왕건이 한숨을 쉬는데 대전내관의 소리가 들려온다

 

대전내관        (E) 폐하, 나주부인 마마께서 납시셨사옵니다.

왕건    나주부인이...? 드시라 하여라.

 

        오씨가 들어와 예를 올린다. 왕건이 앉으며 권한다.

 

왕건    어쩐 일이시오, 앉으시구려.

오씨    (앉으며) 폐하, 참으로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미천한 이 몸을 황후에 책봉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사옵니다. 망극하옵니다, 폐하.

최응    신 또한 감축드리옵니다.

오씨    고맙소이다.

왕건    부인이 황후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오. 우리 정윤의 어머니가 아니시오? 오히려 좀 늦은 감이 있소이다.

오씨    망극하옵니다, 폐하.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사옵니까?

왕건    허허, 은혜랄게 무엇이 있겠소이까?

오씨    하옵고, 폐하. 신첩이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왕건    말씀하시구려.

오씨    듣자하니 조물성에 나가있는 우리 정윤이 화급한 지경에 처해있다 하옵니다. 어찌된 일이옵니까? 김락, 윤신달 장군이 지원군을 이끌고 급히 출병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사옵니다. 전선이 그리도 급박하옵니까?      

왕건    그런 모양이오.

오씨    그런 모양이라니요? 우리 정윤이 나가있는 전장이옵니다. 어찌 그리 태평하게 말씀을 하시옵니까? 우리 정윤이 위험한 것이 아니옵니까?

왕건    무릇 전장터라는 것은 어디나 다 위험한 것이요.

오씨    형편이 그토록 나쁘다면 정윤을 데려와야 하는 것이 아니옵니까?

왕건    (엄하게) 이보시오, 부인. 그곳에 나가있는 모든 장졸들이 다 위험한 지경에 있소이다. 어찌 우리 정윤만 데려온다 하시오? 황후가 되실 분이 지금 그걸 말씀이라고 하는 것이오?

오씨    하오나, 폐하...

왕건    그런 말씀을 하시려거든 썩 들어가시오. 황후가 되시면 이 나라 국모가 되시는 겝니다. 내 자식이 안타까운 만큼 거기 나가 있는 많은 장졸들의 부모들이 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시는 그런 말씀을 하지 마시오.

오씨    폐하....

 

        그때, 다시 대전내관의 소리가 들려온다.

 

대전내관        (E) 폐하... 내군장군께서 드셨사옵니다.

 

씬  동 복도

 

        복지겸 와 있다. 왕건의 소리가 들려온다.

 

왕건    (E) 들라 하여라.

 

씬  다시 동 대전 안

 

        복지겸이 들어선다. 왕건이 오씨에게 이른다.

 

왕건    정무가 바쁜 것 같소이다. 부인은 그만 돌아가 보시구려. 다시는 그런 말씀을 하지 마오. 아시겠소이까?

오씨    아, 예..  폐하.

왕건    어서 가 보오.

오씨    예...

 

        오씨가 그렇게 면박을 당하고 돌아가고 왕건은 그들을 앉힌다.

 

왕건    앉으시오. 어쩐 일이시오?

복지겸  신라에서 사신이 왔사옵니다. 신라 왕이 얼마 전 부음을 당했다 하옵니다.

왕건    허허, 저런... 사신이 어디에 있소이까?

복지겸  지금은 조당에 들었사옵니다. 납시셔서 위로라도 해드려야 하시지 않겠사옵니까?

왕건    그래야지요, 가십시다. (최응에게) 함께 가세

최응    예, 폐하

 

        그들 그렇게 나가면..

 

씬  동 조당

 

        신료들이 배석해 있다. 왕건에게 사신 김율이 막 절을 끝내고 있다.

 

김율    폐하, 아국의 황제폐하께오서 얼마 전에 흉서하셨사옵니다. 하옵고 그 아우 되시는 분께서 보위를 이으셨사옵니다. 동맹국으로서 이를 알리고자 찾아뵈었사옵니다.

왕건    오호..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올시다. 돌아가신 경명왕께서는 우리와 동맹을 체결하신 분이올시다. 양국이 오늘처럼 평화롭게 된 것은 다 그분의 공이 실로 크십니다. 참으로 아니 되었소이다.

김율    망극하옵니다, 폐하.

해설    신라 경명왕의 죽음, 경명왕은 신라 제 54대 왕으로서 7년간 왕위에 있었던 사람이다.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건지려고 후당에 조공을 바치며 구원을 청하기도 하였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때에 죽으니 서기 924년 9월의 일이었다. 그는 고려의 왕건과 동맹을 맺었고 백제의 침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노력하였으나 그것은 결과적으로 훗날 신라가 고려에 종속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의 아우가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또한 훗날 견훤에게 비운의 죽음을 당하는 경애왕 그 사람이다.

 

        해설이 진행되는 동안 신라 황실의 면면이 보여진다. 그리고 경애왕의 모습도 소개된다.

 

씬  다시 조당

 

왕건    우리가 이미 동맹을 맺은 지 상당한 세월이 되었소이다. 귀국의 불행은 곧 우리의 불행이올시다. 이보시오, 시중?

김행선  예, 폐하

왕건    신라국에 조문사절을 파견토록 하오. 아니, 그보다도 내봉성령과 경이 함께 가면 어떻겠는가?

최응, 왕규      예, 폐하... 삼가 영을 받들겠나이다.

왕건    가서 진심으로 우리 고려국 신민들이 애통해 함을 잘 전해 주시오.

김율    망극하옵니다, 폐하... 저희 신라에서는 일찍부터 고려국에서 저희 신라를 얼마나 극진히 생각하고 있는지를 잘 아옵니다. 지금도 조물성에서 우리 신라로 오려하는 백제를 막고 큰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을 잘 아옵니다. 참으로 고맙기 그지없사옵니다.

왕건    그렇게 생각한다니 우리가 오히려 고맙소이다. 잠시 물러가 쉬시구려.

김율    예, 폐하.

 

        김율이 그렇게 물러간다. 왕건이 좌우를 보며 말한다.

 

왕건    신라의 왕이 운명을 했다고 합니다. 이 시대에 진정으로 통일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면 세상의 인심을 모으는 것에 게을리 해서는 아니 됩니다. 신라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의지하기 시작했소이다. 대소신료들은 이런 사실을 깊게 주지하고 그 외교관계에 있어서도 성의를 다해야 할 것이오.

신료들  예, 폐하.

왕건    특히나 우리가 신라와 가까운 만큼 백제의 시기가 또한 극성을 더할 것이외다. 그에 관한 것들도 간과하지 말도록 하오.

신료들  예, 폐하...

태평    실은 지금의 조물성 전투가 바로 그것을 의미하옵니다. 저들은 지금 우리를 견제하면서 신라로 가려는 속내를 내보였사옵니다. 이번 전투의 결과가 어찌되든 간에 백제는 전면전으로 나설 공산이 크옵니다. 이를 대비해야 할 것이옵니다.

배현경  신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많은 우리 장수들이 조물성으로 출전함이 가한 줄로 아옵니다.

신숭겸  그리하시오소서, 폐하. 신의 생각으로는 지금 저 조물성 전투가 태자분들의 싸움으로 그칠 것 같지가 않사옵니다.

유금필  조물성 전투만의 문제가 아니옵니다. 이제 곧 농사철이 끝나면 전선이 크게 확대될 것이옵니다. 우리 고려도 그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하는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통촉하시오소서, 폐하.

홍유    유장군의 말이 지극히 옳사옵니다. 지금부터 그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옵니다. 그동안 장수들이 많이 쉬었사옵니다. 이제부터 전장터로 달려가 할 일이 많을 것이옵니다, 폐하. 우리도 대병을 준비해야 할 것이옵니다.

최지몽  장수들의 말이 참으로 적절하옵니다. 이제 고려와 백제의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사옵니다. 그 준비를 명하시오소서, 폐하.

왕건    듣고 보니 경들의 말이 맞는 것 같구려. 경들의 생각이 한결같이 이제부터 전면전에 돌입할 것이라 하니 대책을 세움은 당연한 일. 이보게, 병부령?

태평    예, 폐하.

왕건    우리도 백제를 향한 전면적인 군의 편제를 서두르도록 하오. 특히나 유금필 장군,

유금필  예, 폐하.

왕건    짐의 의제들 중에서 경이 제일 맏이가 아닌가? 이번에 특히 서쪽에 있는 백제를 정벌하는 데에 있어 그대가 한번 앞서 보라. 그대를 서쪽을 정벌한다는 의미에서 정서대장군에 봉하노라. 그대가 총사로서 군의 편제를 병부와 의논하여 주도하도록 하라.

유금필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왕건    이제는 방어적으로 나갈 필요는 없느니라. 모든 전략을 수세에서 공세로 바꿀 필요가 있어. 공격할 틈새가 보이거든 우리도 과감히 공격하도록 하라. 옳은 말이야. 이제부터 백제와 전면전이야. 전면전이야....

모두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씬  대야성 외경

 

씬  동 성안 임시 대전

 

        견훤과 능환, 최승우가 함께 해 있다. 견훤이 노발대발하고 있다.

 

견훤    무엇이 어쩌고 어째? 신라왕이 죽었는데 우리는 거들떠도 안보고 고려에 달려가서 눈물을 흘려...? 이런 괘씸한...

능환    신라와 고려는 이미 동맹국이옵니다. 당연한 일이옵니다, 폐하.

견훤    당연해..? 뭐가 당연해? 이제 껍데기만 남은 신라야. 제 놈들이 우리에게 와서 빌고 엎드려도 시원치가 않은데 이제 고려만 섬기겠다 이런 말이구먼...?

최승우  폐하, 바로 그런 것들이 고려의 장점이기도 하옵니다.

견훤    장점..? 뭐가..?

최승우  이 삼한 땅에서 천년의 사직을 이어온 신라이옵니다. 아무리 땅이 갈라지고 나라가 갈라져도 백성들의 의식은 신라를 기억하고 있사옵니다. 그 신라가 이제는 고려에 완전히 의탁을 했사옵니다.

견훤    그러게 말이야   . 그러니까 서둘러야 해. 역시 고려를 무너뜨리지 않고는 아무 것도 될 수가 없어. 아니, 아니... 신라든 고려든 어느 한쪽부터 빨리 이 삼한 땅에서 지워 버려야 해.

능환    그러하옵니다. 저 조물성 전투가 그 시작을 이미 알렸사옵니다.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옵니다. 폐하.

견훤    글쎄., 지금쯤 무슨 결과가 나와도 나왔을 것인데 말이야...

 

씬  조물성 그 밖 (그 저녁)

 

        신검의 군영이다. 장졸들이 모두 다시 공격준비를 갖추느라 부산하다. 신검의 형제들은 그 후방 쪽에 있고 애술과 금강이 성쪽을 보고 있다.

 

애술    태자마마, 이번 공격은 지난 밤 보다도 더 어려울 것이옵니다.

금강    압니다, 장군. 저들이 아주 지독한 것 같습니다.

애술    이번에 아주 무언가를 보여주시오소서. 어차피 우리는 계곡 쪽 윗 성벽을 넘는 것이 목표이옵니다. 그쪽이 제일 약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만큼 그곳에 고려의 군사들이 겹겹이 막고 있사옵니다. 아마도 고려의 태자와 박술희라는 장수도 그쪽에 있을 것이옵니다.

금강    예, 장군. 부딪혀 보아야지요. 형님께서는 이번에 실패하면 다시는 선봉을 아니 주신다 하셨습니다. 장수의 신분으로 선봉의 기회를 받지 못하면 죽은 목숨이나 같지 않습니까? 꼭 해내고 싶습니다.

애술    그리하셔야지요. 암요, 태자마마, 허허허...

 

씬  그 후미

 

        세 형제가 앞쪽에 있는 금강들을 보고 있다.

 

용검    금강이가 아무리 용맹하다 하여도 저 성을 넘기는 불가능하옵니다. 괜히 우리 전략만 소비할 것이 분명하옵니다.

신검    끝내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니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양검    형님과 제가 나서서 하지 못한 일이옵니다. 저 어린것이 무엇을 하겠사옵니까?    

신검    글쎄다. 어쨌든 나는 총사로서 두 번이나 저를 말렸고 그 세 번쨰 한번 기회를 준 것이다. 전사를 하든 아니면 불구자가 되든 그것은 제 운명이겠지. 어쨌든 싸울 기회는 주어야 한다.

양검    하오나 형님, 만약에 금강이가 저러다가 성을 넘게되면 어찌 되는 것이옵니까? 형이라고 하는 우리들의 체면이 뭐가 되옵니까? 

신검    아마 어려울 것이다. 저 성은 절대 넘지 못한다.

용검    그런데 왜 군사는 주어 보내는 것이옵니까?

신검    왜라니..? 싸울 기회는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두고 보자꾸나. 해가 다시 저물었다. 이제 곧 공격이 시작되겠구나.

 

씬  그 조물성

 

        박술희와 무가 해가 저버린 성밖 들판을 보고 있다. 군사들이 들것과 가마니로 쇠못을 나르고 있다. 왕신이 지시하고 있다.

 

왕신    그것들을 성밖으로 뿌려라. 적군이 쉽게 오지 못할 것이다. 있는 대로 다 뿌려라.

박수문  오늘밤이 아마도 최대의 격전이 될 것이다. 부장들은 군사들을 시켜 화공에 쓸 수 있는 것들은 모조리 성으로 끌어내라. 짚단도 좋고, 나무도 좋고, 기름도 좋다. 무엇이든지 다 가져오너라.

왕충    망루를 잘 수리하라. 적병들이 다시 돌을 날릴 것이다. 싸울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비하라.

박수경  궁수부대는 화살을 모두 갖다 쌓아라. 오늘밤 나릴 수 있는 화살을 모두 가져와라. 투석부대는 돌을 날라라. 일할 수 있는 장정들은 모두 데려다가 돌을 나르게 하라. 어서 서둘러라.

 

        그렇게 다그치는 장수들을 보며 박술희와 무가 굳게 입을 다물고 보고 있다.  노소의 장정들이 돌과 나무들을 성벽 쪽으로 옮기고 있다. 곳곳이 부산하다.

 

박술희  정윤 마마, 오늘밤은 아마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밤이 될 것이옵니다. 적군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사력을 다한 마지막 전투가 될 공산이 크옵니다.

무      예, 장군.

박술희  저들이 곧 올 것이옵니다. 이제 곧.... 영을 내리시오소서.

무      (끄덕이고) 곧 적군이 몰려 올 것이다. 각자 위치로 가라. 위치로 가라.

 

        그 부산한 모습들에서....

 

씬  동 성밖 (밤)

 

        공격준비가 끝났다. 애술과 금강이 그 앞에 서 있다. 금강은 백마를 탔다. 수기병들이 '백제국태자 금강'을 알리는 수기를 들고 있다.

 

금강    잘들 들어라, 장졸들아. 우리는 오늘밤 반드시 저 조물성을 넘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삼군으로 나누어 제 일대가 성벽을 넘지 못하면 제 이대가, 다시 제 이대가 넘지 못하면 제 삼대가 성을 넘을 것이다. 즉, 죽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모두 알겠는가?

장졸들  (와-하며 환호하고)

금강    우리는 모두 여기서 죽을 것이다. 그 앞에 내가 있을 것이다. 이 금강이가 그대들의 앞에서 제일먼저 성을 오를 것이다. 모두 죽기를 각오하라.

 

        군사들의 함성이 계속 끓고 있다. 선제공격을 취할 천여 필의 기마대가 끝도 없이 도열해 있다. 그들 뒤에서 형제들이 보고 있다. 금강 애술 옆으로 상귀, 부달, 소달이 부장으로 있다. 애술을 고개를 끄덕하며 신호를 보내자 금강이 씨익 웃는다. 그리고 손을 들어 명한다. 공격인 것이다.

 

금강    전군..... 공격하라.......! 제 일대 공격개시하라......

 

        참으로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한 대군이 밀려간다. 경쟁하듯 수없는 기마병들이 앞다투어 몰려간다. 금강도 그리고 애술과 부장들도 그렇게 간다.

 

씬  그 성

 

        몰려오고 있는 백제군들이 보인다. 그들은 들판을 덮을 듯 밀려오고 있다. 무가 소리친다.

 

무      적군이 밀려온다. 각자 위치를 사수하라. 적군이 성벽 가까이 이르렀을 때 장애물을 퍼부어라.....

 

        그리고 드디어 백제군이 그 밑에 이르렀다. 비오듯 화살이 쏟아져 내려온다. 비루를 통해 수많은 돌덩이들이 성으로 날아든다. 불화살이 날아들어 곳곳이 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시야로 다시 충차가 움직이고 운제부대들이 사다리를 가지고 이동하고 있다. 더러는 깔려진 쇠못에 의해 말과 사람이 넘어지기도 하고 그것을 치우는 일단의 병사들도 보인다. 방패부대 위로 화살이 비오듯 쏟아진다.

 

씬  그곳

 

        목이 터져라 금강이 공격을 외치고 있다.

 

금강    저 쪽 성루로 운제를 놓아라. 겁내지 마라... 충차부대는 계속 문을 부수어라... 제 일대 무엇하는가? 돌진하라... 사다리를 걸쳐라. 올라라... 성벽을 타고 올라라...

애술    성벽을 올라라... 운제를 모두 다 놓아라... 제 이대 다시 뒤를 받쳐라...

 

        아우성이다. '성을 올라라, 운제를 놓아라' 등등 소리치며 상귀와 부달, 소달들도 병사들과 함께 성벽에 운제를 놓고 있다  여기저기서 수없이 사다리들이 놓아지고 성안에서는 돌덩이와 불붙은 섶단들이 쏟아진다. 그 희생은 참으로 엄청나다. 충차는 성문을 부수고 피아간의 화살은 비 쏟아지듯 오고 간다. 그 아비규환 속에서 유난히 금강의 모습은 돋보인다. 그는 제일 전방에서 지휘를 하고 있다. 좌우를 독려하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희생 끝에 제 일대가 성벽을 타기 시작한다. 그러나 앞서 병사들과 성벽을 오르던 상귀가 그대로 사다리와 함께 불덩이에 휩싸이며 떨어진다. 죽지는 않았으나 그와 같은 상황들은 곳곳에서 일어난다. 상귀는 악귀처럼 다시 오른다.

 

상귀    운제를 다시 놓아라....... 성벽을 올라라... 올라라.....

금강    모두 다 성벽을 올라라....

애술    계속 화살을 성안으로 쏘아 넘겨라.... 공격하라...

 

        처절한 전투다. 성 위에서도 박술희와 무가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다. 그들의 시야로 저만큼 금강이 보여온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수많은 희생자들이 보여온다. 대부분은 성을 오르는 백제군들이다.  상귀가 오르다가 또 떨어진다. 부달과 소달은 오르지도 못하고 혈전에 휩싸여 있다. 

 

소달    (다가와) 태자마마, 제 일대가 거의 전멸했사옵니다.

금강    보고 있소이다. 제 이대 공격하라. 제 삼대도 함께 공격하라...

 

        군사들이 보강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희생은 갈수록 더욱 커진다.

 

금강    오늘 우리는 저 성을 넘어야 한다. 올라라... 모두들 올라라.... 우리는 여기서 돌아가지 않는다...

       

        금강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깝다. 애술도 미친 듯이 그렇게 독전하고 있다. 백제군은 드디어 그 어려운 틈을 뚫고 성 벽에 기어 오르기 시작한다.

 

씬  그 성 안

 

        박술희와 무가 소리친다. 적병이 넘어오기 시작한다.

 

박술희  적병이 성을 넘는다. 베어라. 막아라.. 무엇들 하는냐? 적을 막아라...

 

        위기다 왕신과 박수경 부장들이 달려간다. 그리고 백병전이다. 사다리를 밀어 던진다. '불섶을 던져라, 운제를 태워라, 돌을 내리쳐라' 소리들이 계속된다. 군사들이 몰려들고 백병전이 이어진다. 그 시야로 금강과 애술들이 보인다. 박술희가 다시 소리친다.

 

박술희  궁수들은 무얼 하느냐? 화살을 쏘아라... 저쪽으로 화살을 집중적으로 날려라... 저쪽에 적의 괴수가 보인다. 궁수들은 살을 날려라...

 

        그러자, 집단으로 궁수들 수백 명이 몰려온다. 표적이다. 화살이 비오듯 날아간다. 그렇게 계속 되면서...

 

씬  그 성밖

 

        금강이 희열에 들뜬 모습으로 보고 있다. 군사들이 성벽을 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 뒤 저만큼에서 신검 형제들이 놀라서 보고 있다.

 

금강    드디어 성을 넘었다.... 계속 올라라... 계속 올라라....

 

씬  그 후미

       

        신검 형제들이 놀란 눈으로 계속 보고 있다..

 

양검    형님, 성을 넘고 있사옵니다. 우리 군사들이 성을 넘고 있사옵니다.

신검    그러게 말이다...

용검    기적같은 일이옵니다. 성을 넘다니요?

 

신  다시 그곳

       

        금강이 소리치고 있다. 화살을 빗발치고 있다. 방패로 막아가며 계속 독전하는 금강.

 

금강    계속 뒤를 이어라. 계속 넘어라. (애술에게) 장군, 우리가 이겼습니다. 군사들이 성을 넘기 시작했어요.

애술    그렇사옵니다, 태자마마. 우리가 이긴 것 같사옵니다.

금강    예, 장군... 공격하라, 계속 공격하라.. 계속...

 

        그러다가 금강의 소리가 뚝 멈추었다. 그리고 비명소리로 이어진다. 화살 하나가 날아와 금강의 눈에 맞은 것이다. 

 

애술    태자마마...

금강    ...........?

애술    (가까이 와) 이런, 화살이 눈에 박혔사옵니다. 병사들은 무얼 하느냐? 방패로 가려라... 어서 방패로 가려라.

 

씬  인서트

 

        성벽 위에서 박술희와 무가 보았다.

 

박술희  맞았사옵니다. 백제의 태자가 화살을 맞았사옵니다.

무      .........?

 

씬  다시 그곳

 

        금강이 그렇게 화살이 박힌 채로 성벽을 보고 있다. 애술이 급히 소리친다.

 

애술    태자마마.... 태자마마....

 

        그러나 금강은 댓구가 없다. 그렇게 화살이 박힌 채로 성벽쪽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 모습에서....

 

       

                                                                <143회 끝>





첨부파일 태조왕건143.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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