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 144회>
<줄거리>
눈에 화살을 맞은 금강은 후방으로 이송하려는 주변을 뿌리치고 그 자리에서 화살을 빼어딸려나온 동공을 씹어삼키며 분전한다. 금강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조물성 전투는 고려의 승리로 돌아가고 견훤은 격노하여 회군을 명한다. 견훤은 조물성전투의 총사인 신검을 심하게 질책하고 전장에서 눈을 잃은 금강을 더욱 총애하게 된다. 한 편 왕건은 두 장수를잃은 태자 무를 훈계하고 오씨를 황후에 책봉하는 준비를 서두르라 명한다. 그즈음 신라에 조문사절로 파견되었다가 돌아 온 최응은 왕위 계승문제로 내분조짐이 보이는 신라의 내부사정을 왕건에게 보고하는데...
씬 조물성 그곳 (밤)
지난 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박술희가 굳은 표정으로 성 쪽에서 무와 함께 보고 있다. 금강 주변의 어지러운 모습들이 보여온다.
박술희 맞았사옵니다. 백제의 태자가 눈에 화살을 맞았사옵니다. 보시오소서, 정윤 마마.
무 보고 있습니다, 장군. 그런데도 물러가지 않고 저러고 있어요.
박술희 이 기회를 잡아야 하옵니다. (큰 소리로) 백제의 태자가 화살을 맞았다. 계속 쏘아라... 성 위에 오른 자들은 얼마 아니 된다. 모두 베어라.
혈전이다. 성 위에 오른 병사들은 말대로 그렇게 많지 않다. 금강이 화살을 맞자 이미 우왕좌왕들이다. 무는 여전히 충격처럼 보고 있다.
씬 그곳 성 아래
신검 형제들이 다가온다. 훈겸도 의원으로서 다가온다. 애술이 말한다. 여전히 화살은 그렇게 눈에 박혀 있다.
애술 태자 마마, 피하시오소서. 어서요?
금강 괜찮습니다, 장군... 계속 공격하라 하시오, 여기서 멈추어서는 아니됩니다.
애술 공격이 문제가 아니옵니다. 더 이상은 무리이옵니다. 화살을 빼야 하옵니다.
신검들 ...........?
금강 아닙니다. 내가 여기서 피하면 모처럼 성을 넘기 시작했는데 아니 됩니다.
애술 피하셔만 하옵니다, 어서요?
훈겸 어서 뒤로 물러 나시오소서. 화살을 빼야 하옵니다. 급하옵니다.
애술 그리하시오소서, 태자마마.
금강 지금이 어느 때인데 뒤로 가란 말인가? 이미 눈은 못쓰게 되었네. 여기서 빼면 될 것 아닌가?
모두들 태자마마....
이미 금강은 화살을 빼었다. 그런데 그 화살촉에 동공이 함께 딸려 나왔다. 모두들 충격이다.
금강 눈알이 딸려 나왔소이다. 그 옛날 중원에서 있었던 삼국기 뒷 얘기를 들으니 조조의 장수 하후돈도 전장에서 나처럼 눈을 잃었다 합니다. 그리고 부모가 주신 것이라 하여 다시 삼켰다 들었습니다. 맞는 말이지요.
그리고 금강은 눈알을 입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씹어먹는다. 그리고 그는 옷깃을 찢어 눈을 싸맨다. 경악이다. 애술도 그리고 놀라서 달려온 신검형제들도 경악해 한다.
금강 무엇들 하시오. 공격을 명하시오. 공격하라... 공격하라...
금강이 소리친다. 그러나 이미 피가 온 몸에 범벅이 된다. 함성 소리들이 들린다. 성에 올랐던 병사들이 무더기로 떨어져 내린다. 박술희의 소리가 들려온다
박술희 백제의 태자가 화살을 맞았다. 퍼 부어라.. 퍼 부어라...
역시 상처 투성이인 상귀와 부달, 소달들이 달려온다. 그리고 놀란다.
상귀 태자마마, 어찌된 일이옵니까?
금강 아아... 지금 이리들 오면 어찌하오? 성을 넘어야지요? 저 성을... 저 성을.....
그러다가 금강은 드디어 비틀한다. 훈겸이 도리질을 한다.
훈겸 빨리 뒤로 옮기셔야 하옵니다. 위험하시옵니다.
신검 .........
그 형제들 ........
애술 (주변을 보다가) 어렵게 되었사옵니다, 태자마마. 간신히 성에 올랐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요. 퇴각해야겠사옵니다. 여봐라, 어서 태자마마를 후송해 뫼시어라.
부장들이 대답하며 달려와 축 늘어져 가며 의식을 잃고 있는 금강을 이끌고 간다. 가면서도 금강이 소리친다.
금강 안된다... 퇴각은 안된다.... 공격하라... 공격하라.....
신검이 그렇게 끌려가는 금강을 보다가 주변을 본다. 피해가 더욱 속출해가고 있다. 이미 패색이 짙어 보인다. 신검과 그 형제들이 긴 한숨을 내쉰다. 지독한 금강을 또 확인한 것이다.
상귀 총사, 영을 내려주시오소서. 다시 공격을 하오리까?
애술 공격은 더 이상 무리이옵니다. 적은 이미 우리의 약한 곳을 보았사옵니다.
신검 벌써 날이 밝고 있습니다. 퇴각하라 하시오. 퇴각하시오.
애술 퇴각하라.... 퇴각하라....
그러자 장수들이 이를 복창한다. 소라소리가 퇴각을 알리고 있다. 적진을 보는 신검의 시선에 박술희와 무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 그 모습들에서 천천히 디졸브되면....
씬 인서트
새벽의 여명이 천천히 벗어지고 있다. 그리고 화면은 곧이어 한 낮으로 변한다. 그 성 주변에 수많은 시체들과 전장의 상흔들이 보여온다.
씬 동 조물성 안
한쪽이 부서져 나간 장대 위에서 장수들이 백제군이 물러간 그 성밖을 보고 있다.
박수문 정윤 마마, 우리가 해냈사옵니다. 이겼사옵니다, 마마.
무 .......... (그러나 침울하다)
박술희 그러하옵니다. 이겼사옵니다, 정윤 마마.
무 장군의 말처럼 평생 기억에 남을 밤 같습니다. 참으로 충격이었습니다. 백제의 태자 말입니다.
박술희 예, 정윤 마마. 견훤왕의 여러 아들 중 막내라고 하옵니다. 이름이 금강이라고 하는 태자라 하옵니다. 비록 적이기는 하지만 존경할 만하옵니다.
무 금강이라...? 아무튼 참으로 충격이었습니다. 너무 놀랬습니다.
박수경 이제 더는 저들이 오지 못할 것이옵니다.
왕신 그렇겠지요. 대야성에 있는 견훤왕이 오지 않는 한은 더 이상 싸움은 없을 것 같습니다.
박술희 자, 모두들 군사를 재정비하도록 하십시다. 정윤 마마, 안으로 드시지요? 이제 좀 쉬셔도 될 것 같사옵니다.
무 예, 장군.
그럼에도 무는 여전히 성밖을 본다. 충격이 남아 있는 것이다.
씬 동 성밖 백제군 진영
군막 안에 금강이 눈을 싸매고 앉아 있다. 그 한쪽 눈으로 눈물이 흘러내린다. 신검, 양검, 용검과 애술, 그리고 상귀, 부달, 소달들이 보고 있다. 훈겸이 막 치료를 끝낸다.
애술 어떻게 되시겠는가?
훈겸 이미 한쪽 눈은 못쓰시게 되셨사옵니다.
신검들 ............
금강 (울며) 다 이긴 전쟁을 그르치고 말았습니다. 형님, 형님께서는 총사이시옵니다. 저를 군령으로 다스려 주오소서.
신검 ..........
애술 비록 성은 함락 못했으나 원없이 싸운 전투였사옵니다. 군령을 적용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사료되옵니다, 총사.
상귀 그러하옵니다. 참으로 열심히 싸우셨사옵니다.
신검 물론 그것은 인정하오. 그러나 이길 수 있었던 전투를 선봉장군이 스스로 조심하지 못하여 그르쳤음은 마땅히 군령을 적용할 수 있는 일이오.
모두들 ..........
신검 따지고 보면 우리는 패한 것이외다. 우리가 진 전투예요. 마땅히 책임을 물을 것이나 한쪽 눈까지 잃었으니 불문에 부칠 것이오. 그러나 이후 나와 함께 하는 전투에서는 절대로 선봉을 주지 않을 것이야. 그것은 약속이니까. 알겠느냐?
금강 ....... 송구하옵니다. 영을 따르겠사옵니다.
신검 네가 잘못하여 다친 눈이다. 하지만 분명 아버님은 또 나를 책망하실 게다. 허허, 이런....
신검이 휭하니 군막을 나간다. 양검, 용검이 뒤따라 간다. 애술이 금강의 손을 잡는다.
애술 참으로 잘 싸우셨사옵니다. 지난 전투를 고려의 태자도 보았을 것이옵니다. 저들이 아마도 간담이 서늘했을 것이옵니다. 하옵고, 한쪽 눈으로도 얼마든지 싸우실 수 있고, 또 선봉도 서실 수 있사옵니다. 소장은 태자마마를 뵈면서 참으로 백제의 장수가된 보람을 느끼옵니다. 잘 싸우셨사옵니다. 참으로 잘 싸우셨사옵니다.
금강 아닙니다. 부끄럽습니다. 아바마마께서 과연 어찌 생각하실지...?
씬 대야성 외경
씬 동 성안
견훤이 놀라서 벌떡 일어서고 있다. 전령이 와 있다. 신료들도 모두 놀라 표정이다.
견훤 뭐라..? 지금 뭐라고 하였는가? 우리 금강이가 눈을 잃어...? 눈을 잃어....?
전령 예, 폐하. 군사를 이끌고 선봉을 서시어 성을 공략하시던 중 오른쪽 눈에 화살을 맞으셨사옵니다.
신료들 (웅성거린다) .......
전령 태자 마마께오선 눈에 박힌 화살을 손수 빼시었는데 그 화살촉에 눈알이 함께 묻어 나오자 그것은 부모님께서 주신 것이라 하여 스스로 삼키셨사옵니다.
신료들 (더욱 웅성거린다)
견훤 삼켜...? 눈을 제 스스로 삼켜...?
전령 예, 폐하. 그리고 다시금 공격을 명하셨사오나 이미 기회를 잃어 결국은 성을 넘지 못하였사옵니다.
견훤 (한동안 기가 막히다) 우리 금강이가... 눈을 잃었다? 그리고 그것을 삼켰다...? 이럴 수가 있는가? 이럴 수가 있어?
능환 신은 도저히 믿기지가 않사옵니다, 폐하. 어떻게 그런...?
최승우 금강 태자마마께오서는 참으로 놀라운 용기를 보여주셨사옵니다. 하옵고, 그 효심을 또한 천하에 빛내셨사옵니다. 장하시옵니다.
신덕 이보게, 전령? 지금 전황은 어찌되었는가?
전령 많은 군사가 희생되어 자체적으로는 더 이상의 공격이 어렵사옵니다.
공직 페하, 금강 태자마마께오서 큰 부상을 입으셨다 하옵니다. 또한 군사도 그 희생이 매우 크다 하니 지원군을 보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최필 고려에서도 이미 지원군이 조물성으로 가고 있다 하옵니다. 폐하, 신들을 보내주시오소서.
김총 빨리 서둘러야 할 것으로 아옵니다. 어차피 시작한 전투이옵니다. 끝을 보아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폐하?
견훤 (흥분했다) 보아야 하구 말구... 반드시 끝장을 내야지. 어이구, 우리 금강이가 눈을 잃다니...? 눈을 잃다니...? 이걸 어찌하면 좋은가? 도대체 함께 간 형이라는 놈들은 다 무엇을 하였단 말인가? 저희들이 무얼하고 어린 금강이를 앞에 내세웠단 말인가?
능환 여러 번 계속된 전투였사옵니다. 선봉은 본래 교대로 서는 것이옵니다. 형님 되시는 태자분들이야 무슨 잘못이 있겠사옵니까?
견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제놈들은 멀쩡하고 금강이만 다쳤는가 그말이야. 이런 못난 놈들... 이런 못난 놈들... 제장들은 들으라. 당장 군을 출발시키도록 하라. 조물성으로 갈 것이니라.
최승우 폐하, 신 최승우 아뢰옵니다. 금강 태자마마의 일은 참으로 아니 되었사옵니다. 하오나, 고려에서 지원군이 오고 있는데 우리마저 지원군을 또 보낸다면 이는 전면전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하옵니다. 아직 농사철이 끝나지 않았사옵니다. 이득이 적은 전투를 전면전으로 바꾸심은 득이 될 게 없사옵니다. 몇 달만 더 기다리시오소서, 폐하.
견훤 기다리라니..? 무얼 기다려? 우리 금강이가 외눈박이가 되었어. 애꾸가 되었다는 게야. 어이구, 이걸 어찌하나... 이걸 어떻게 해. 군사를 준비하라. 짐이 직접 갈 것이니라.
능애 폐하, 파진찬의 말이 일리 있사옵니다. 처음의 목적인 고려군의 전력을 시험해 보고자 시작한 전투였사옵니다. 우리는 충분한 것을 알았사옵니다. 농사철이 끝난 뒤에 병력을 크게 일으키소서. 조금만 더 참으시오소서, 폐하.
신덕 신 신덕 또한 그리 생각하옵니다. 태자마마들은 충분히 그 소명을 다하셨사옵니다. 농번기를 피하는 것은 백성을 위하고 군사를 위함이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오소서, 폐하. 그리고 직접 조물성으로 가시오소서. 신들이 그 성을 빼았겠나이다.
견훤 참으라...? 나를 보고 참으라니.. 어이구 이런... (한참을 그렇게 스스로 진정하려 애쓴다) 좋다. 하긴 경들의 생각이 실은 맞는 것이다. 흥분해서 이기는 전쟁도 없고... 하긴 뭐 고려국의 폐주 궁예 왕도 한쪽 눈으로 왕 노릇만 잘했어.
모두들 .............
견훤 과연 금강이야. 그놈이 그래도 자식들 중 제일 나아. 눈알을 삼켰다고...? 부모가 주신 것이라 하여 삼켰다고...? (목이 메인다) 그것이 이렇게 기특할 수가 있나? 이렇게 기특할 수가 있어? (사이) 그래, 이번 전투는 그쯤 되었어. 돌아오라고 하게. 다시 내년을 기다리세. 이번에는 자식들이 아니라 우리 둘이 한번 싸워 보자고 해. 짐과 고려의 왕이 직접 한번 싸워 보자고 해.
씬 백제 전주 황궁 외경
씬 동 황후전
박영규와 황후 박씨, 고비가 모여 있다. 상궁 이씨와 궁녀들도 있다.
박씨 세상에.... 태자 금강이 그토록 중한 상처를 입었단 말인가?
박영규 그렇다 하옵니다, 황후마마.
고비 장군, 우리 금강이가 어찌 되었다는 말입니까, 도대체..?
박영규 화살을 맞아 한쪽 눈을 실명하셨다 하옵니다.
고비 (비틀한다) 눈을.... 눈을 잃었단 말입니까?
박영규 예, 승주부인 마마. 참으로 아니 되었사옵니다.
고비 (눈물 흘리며) 눈을 잃다니... 화살에 눈을 잃다니... 이런 날벼락이 있나? 세상에 얼마나 아팠을꼬... 얼마나....
박씨 우리 태자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다치지는 않았는가?
박영규 예, 황후마마. 금강 태자마마만 그리 되셨다 하옵니다.
고비 다들 괜찮은데 어째서 우리 태자만 그리 되었단 말인가? 어떻게 우리 금강이만 그리될 수가 있는가? 아이고, 하늘님...
박씨 (눈꼬리 세우며) 이 사람아.. 금강이가 다친 것은 아니 되었네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가? 그럼 모두다 다쳐야 옳단 말인가? 사람하고는....
고비 그런 것은 아니옵니다, 황후마마. 그저 젊은 아이가 눈을 잃다니 너무 기가 막혀서...
박씨 목숨이 오가는 전장터가 아닌가? 그럴 수도 있는 게지. 무얼 그러는가? 목숨을 잃은 것보다는 낫지. 이상궁 아니 그런가?
이상궁 예, 황후마마... 모든 것은 생각하기 따라서 다른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그만하기가 천만다행이시옵니다, 마마.
고비 어쩌나, 세상에 이를 어쩌나...
씬 조물성 밖 백제군 진영
군막 앞에 신검을 비롯한 제장들이 모여있다. 신검이 화를 낸다.
신검 회군이라니...? 이대로 돌아간다면 너무 허망하지 않은가? 성도 빼앗지 못하고 군사들만 잃고...
애술 폐하의 영이시니 어찌 하겠사옵니까? 다음에 다시 조물성을 공격하신다 하옵니다. 이만 회군하여 군사들을 쉬게 해야 하옵니다.
양검 어차피 고려에서 지원군이 오고 있다 하옵니다. 우리만으로는 승산이 없사옵니다.
신검 충분히 다시 해볼 수 있는 전쟁이었는데... (금강 보며) 다 네가 경솔한 탓이다. 결정적인 때에 우리 기를 꺾이게 했어.
금강 송구하옵니다.
신검 폐하의 영이시니 따라야지요. 모두들 회군을 서두르시오. 대야성으로 돌아갈 것이오.
제장들 예, 총사.
신검 에이, 참... 답답해서... 도대체 왜 싸웠는가 말이야, 왜...?
씬 동 조물성 외경
씬 동 성안
윤신달과 김락이 왔다. 무와 박술희, 박수문, 박수경, 왕신, 왕충들이 참여해 회의를 하고 있다.
윤신달 전투가 다 끝난 뒤에야 도착을 해서 참으로 민망하옵니다.
김락 백제군이 회군을 준비하는 모양입니다마는....
무 그런 것 같다고 합니다.
박술희 전면전은 원하지 않는 모양이올시다. 이번 전투는 우리 정윤 마마께서 이긴 전투올시다. 백제왕의 막내 아들 금강이가 애꾸가 되었소이다. 하하하.... 외눈박이를 만들었어요.
왕신 그러나 그 금강태자는 참으로 용감하였습니다.
박수문 예, 섬찟할 정도로 냉정하고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차후로도 만만히 볼 수는 없는 인물 같사옵니다.
박수경 전형적인 장수의 기질이 보였사옵니다. 칭찬할 만 하옵니다.
박술희 그건 그렇소이다. 칭찬할 것은 해야지요. 자, 어쨌든 이곳 조물성은 잘 지켜 내었습니다. 그리고 백제군은 대야성으로 회군을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도 황도로 돌아가야겠소이다.
김락 전투가 끝났다면 그리들 하셔야지요. 윤신달 장군과 소장이 이 곳을 교대하여 맡을 것이니 정윤 마마와 장군들은 그만
황도로 가시오소서.
무 예, 장군. 그렇게 하겠습니다.
박술희 우리 정윤 마마께서는 이번에 참으로 큰 공부를 하셨사옵니다. 아주 좋은 경험이 되셨을 것이옵니다. 하하하... 자, 이제 그만 서두르시오소서. 황도로 가야 하옵니다.
무 예, 장군. 그럼 두 장군이 고생 좀 하시구려.
두 사람 예, 정윤 마마. 고생하셨사옵니다. 하하하....
씬 송도 황궁 외경
씬 동 대전
왕건이 장계를 읽으며 연신 감탄한다. 왕유, 태평, 김행선이 함께 해 있다.
왕건 아무튼 조물성 전투가 그쯤에서 마무리 되었다니 다행이오. 그리고 여기 백제국 태자 금강이의 이야기는 짐도 참으로 경탄스럽소이다.
태평 신들도 보았사옵니다, 폐하. 대단한 젊은이 같사옵니다.
왕유 이번에 정윤 마마께서 돌아오시면 크게 위로해 주시오소서. 아직 어리신 춘추로 어려운 전투를 훌륭히 수행하셨사옵니다.
김행선 그러하시옵니다. 우리 고려 제국의 앞날에 큰 서광이 비추는 듯 싶사옵니다. 벌써 그만한 대전투를 이끄시다니 말이옵니다.
왕건 무슨 소리요? 우리 장수가 둘이나 전사를 했소이다. 이는 마땅히 총사의 책임입니다. 위로는 커녕 죄를 물어야 할 것이외다.
왕유 전장터에서 장수들이 죽고 사는 것은 늘 있는 일이옵니다. 문제는 결과가 어찌 나왔는가 하는 것이옵니다. 끝까지 성을 잘 지켜낸 것은 마땅히 상을 내리시고 위로하실 일이옵니다.
왕건 아무튼 우리 정윤이 다소 경솔했어요. 그 때문에 장수들이 변을 당했소이다. 그 꾸지람은 들어야 합니다.
김행선 다 그래 가면서 배우는 것이옵니다. 더는 나무라지 마시오소서.
왕건 알겠소이다. 어쨌든 그 일은 우리 정윤이 돌아오면 다시 하기로 하십시다. 그리고 우리 사신들이 지금쯤 신라국 계림(경주)에 도착을 하였겠구려.
김행선 그리 되었을 것이옵니다.
왕건 어차피 삼국은 이제 양국 체재로 바뀌었소이다. 신라는 우리 고려에 의탁을 하고 있어요. 이 관계가 깨어져서는 아니 됩니다. 계속해 발전시켜야 합니다. 신라가 원하는 것은 가급적 다 도와주도록 하십시다. 그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지름길입니다.
모두들 예, 폐하.
씬 신라 황궁 외경
씬 동 조당 안
경애왕이 사신으로 온 최응과 왕규를 만나고 있다. 신라의 신료들인 김율, 김부, 김웅겸, 연식, 유염, 효렴, 경영들이 문무신료들과 섞여 이들을 보고 있다.
최응 폐하, 전 황제께오서 천수를 다하지 못하시고 흉서하셨음을 참으로 애통하게 생각하옵니다. 저의 고려국의 폐하께오서는 후히 조상을 하고 오랍시는 영을 내리셨사옵니다. 삼가 조문을 드리옵니다.
경애왕 경황중에 이렇게 와서 위로를 주니 고맙소이다. 짐은 전 황제의 아우가 되는 사람으로서 어려운 때에 나라를 맏게 되었소이다. 아무쪼록 고려국에서 많이 도와주시구려.
최응 이를 말이옵니까? 우리는 동맹국이옵니다, 폐하.
왕규 이미 저희 고려는 동맹국으로서 신라의 모든 어려운 일들을 저 희 일로 생각하고 대처하고 있사옵니다. 문제는 백제가 아니겠사옵니까? 저들을 있는 힘을 다해 막을 것이오니 안심하시오소서, 폐하.
김율 고맙소이다. 하긴 뭐, 우리 신라가 고려에 신세를 진 것이 벌써 여러 차례 되오이다. 변함없이 잘 지냈으면 하오이다.
최응 그것은 이미 우리 폐하께오서도 약조를 하신 일이옵니다. 끝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이옵니다.
유염 지금 우리 삼국은 먹고 먹히는 숨가쁜 관계에 있소이다. 상황이 나빠지면 언제든 배신할 수 있소이다. 이 사람은 이 신라국에 원로로서 고려를 크게 믿지 않소이다.
김웅겸 이 사람 또한 그렇소이다. 고려는 지금 우리 신라를 삼키기 위해 가면을 쓰고 있소이다. 그 검은 속을 어찌 모르겠소이까?
최응 그리들 생각하실 수도 있사옵니다. 그러나 말씀드리건데 우리 고려가 신라를 침공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것을 저희 고려제국 황제폐하께오서 약조하셨사옵니다. 믿으시오소서.
경애왕 암, 믿어야지. 이제 와서 믿지 않으면 어떻게 한단 말이오?
김부 옳은 말씀이시옵니다. 국가간의 동맹은 쉽게 깨어지는 것이 아니옵니다. 한번 상대를 의심하면 그것은 계속해 꼬리를 물기 때문에 유의하셔야 하옵니다.
유염 그러나 지금은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올시다. 언제 우리 신라를 삼키려 들지 모르니 폐하께서는 이점을 십분 경계하셔야 하옵니다. 고려를 믿지 마오소서.
경애왕 자자, 지금은 국상 중이오. 그만들 하십시다. 먼 곳에서 온 손님입니다. 자, 아찬께서 좀 뫼셔가 차라도 대접하시구려.
김율 예, 폐하.
경애왕 자 들 물러가 쉬시구려.
최응들 예, 폐하
최응들이 그렇게 물러간다. 유염이 다시 소리친다.
유염 고려를 믿지 마시오소서, 폐하.
김웅겸 그러하옵니다. 믿지 마오소서.
연식 허허, 왜들 이러시오? 어쨌든 지금은 동맹국이 필요하오. 고려를 믿지 않으면 백제를 믿으라는 것이오?
효렴 맞소이다. 그래도 백제보다는 고려가 우리에게는 우호적입니다.
유염 우리에게 진심으로 우호적인 나라는 없소이다. 다 우리땅을 삼키기 위해 거짓 웃음을 웃고 있는 것이에요. 그걸 알아야 합니다.
씬 동 신라 황궁 일각
김율이 최응과 왕규에게 차를 대접하고 있다.
김율 아까 그분들은 나라의 원로들이지요. 그 중 말이 많은 유염이라는 사람은 주로 친백제적인 사람입니다.
최응들 (끄덕인다)
김율 특히나 승하하신 폐하나 지금의 폐하 모두가 박씨 성을 가진 분들로서 왕통을 이어 받으셨소이다. 오랫동안 진골인 김씨 성의 왕족들이 통치해온 나라이다 보니 원로들이 아주 불만이 많지요. 박씨에게 왕자리를 빼았겼다고 말입니다.
최응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김율 그러나 지금은 나라를 보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박씨성, 김씨성을 따질 때가 아닙니다. 다 왕재가 되기 때문에 옥좌에 오른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가지고 계속 편을 갈라 왈가왈부하니 참 딱합니다. 아무쪼록 귀국의 폐하께 잘 얘기해 주시구려.
왕규 아찬께서는 누구보다도 우리를 잘 아십니다. 결코 서로가 소원해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김율 암요, 저도 그렇게 믿습니다. 또 그래야 하구 말구요. 우리는 이미 고려에 의지를 하고 있습니다. 백제는 우리의 적이고 고려의 적이기도 합니다. 아직 이것을 믿으려하지 않는 신료들이 있다는 것이 답답합니다. 참으로 답답해요. 예....
그렇게 한숨을 쉬는 김율의 표정에서...
씬 대야성 외경
씬 동 성안
임시 조당에서 견훤이 아들들과 장수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외눈박이가 된 금강이가 보인다.
견훤 잘들 싸우고 돌아왔다. 잘들 싸웠어. 금강아...
금강 예, 폐하.
견훤 눈을 하나 잃었다니 참으로 안타깝구나. (손수 내려와 본다) 어디 보자. 얼마나 고통스러웠느냐?
금강 아니옵니다, 폐하. 오히려 소자의 불찰로 성을 함락하지 못한 죄가 크옵니다. 벌하여 주오소서.
견훤 아니다, 아니다... 지금의 네 모습이 네가 얼마나 열심히 싸웠는가를 증명하는 것이다. 네 스스로 화살을 빼었다지..?
금강 예, 폐하.
견훤 그리고 그것을 삼켰다지...?
금강 부모님께서 주신 것이옵니다. 어찌 함부로 하겠사옵니까?
견훤 암, 암... (옥좌로 돌아가 앉으며) 너야말로 진정 자랑스런 나의 아들이다. 대 백제국의 태자로서 위엄을 지켰다. 그까짓 조물성이 문제가 아니다. 이번 전쟁은 나름대로 의미가 컸다. 잘하였다. 아주 잘하였어.
금강 망극하옵니다, 폐하.
견훤 물론 신검이도 처음에는 잘 싸웠다. 적의 장수를 둘이나 베었다는 것은 칭찬 받을만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조물성 전투에 관한 모든 보고를 다 들었다. 성을 함락하지 못한 것은 총사로 간 신검이 네가 군사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 멋대로 하였기 때문이야. 네 멋대로...
신검 폐하, 성을 함락시킬 수 있었사옵니다. 하오나 금강아우가 실패하는 바람에 급격한 전략적 손실이 있었사옵니다.
견훤 (불같이 화를 낸다) 지금 누구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이야! 너는 총사였고 태자들 중 가장 맏형이다. 못난 놈 같으니라고..... 아우는 눈 하나를 잃었는데 도대체 너는 무얼 했어? 처음의 작은 승리에 도취해서 군사의 말도 안 듣고 무리하게 성을 공격했어. 이미 거기서 군사의 태반을 잃은 것이 아니더냐? 그래, 안 그래?
애술 폐하, 하오나 모두들 열심히 싸우셨사옵니다. 죄를 논하자면 소장 애술도 면할 길이 없사옵니다. 용서하시오소서.
견훤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야. 적어도 비겁해서는 안돼. 내 잘못을 남에게 미루어서는 아니 된다 이 말이야.
모두들 ........
견훤 잘못을 분석하는 것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야. 그것을 감추려 든다면 잘못은 자꾸만 반복되는 것이야. 나는 그것이 지금 답답한 것이야. 그것이 말이야. 알겠느냐, 신검아?
신검 예, 폐하.
견훤 너희들도 처음부터 금강이처럼 목숨을 내어놓고 성을 공략했더라면 보다 좋은 결과가 있었을 것이야. 그러나 그렇지가 못했어. 안 봐도 다 알아.
능환 ........... (답답하다)
최승우 폐하, 신이 알기로는 태자마마들 모두 참으로 사력을 다해 싸우신 것으로 아옵니다. 적의 저항이 워낙 거세었기 때문에 결과가 좋게 나오지 않은 것뿐이옵니다. 그만 하시오소서, 폐하.
견훤 아무튼 한번 전투가 끝나면 그에 따른 시시비비는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야. 앞으로도 전쟁은 수도 없이 계속 될 것이야. 그래서 하는 말이야. 그 이야기는 이쯤하고... 아무튼 금강아.
금강 예, 폐하.
견훤 한쪽 눈을 잃었다고 실망할 것 없다. 지난 날 고려국의 왕 궁예도 한쪽 눈으로도 제국을 잘 다스렸다. 힘을 내거라.
금강 예, 폐하.
견훤 제장들은 모두 들으라.
모두들 예, 폐하.
견훤 조물성 전투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군사들을 잠시 쉬게 하고 해가 바뀌는 대로 짐이 직접 나설 것이야. 그때까지 철저한 준비들을 해주기 바란다. 알겠는가? 짐이 직접 나서겠다는 것이야.
모두들 예, 폐하.
씬 동 임시 조당 밖
신료들이 삼삼오오 조당을 빠져나가고 있다. 그 한쪽에서 능환이 신검을 위로하며 오고 있다.
능환 폐하의 꾸지람을 너무 염두에 두지 마오소서. 금강 태자께서 눈을 잃으셨는지라 아마도 노여움이 크신 것 같사옵니다.
신검 허허허... 아바마마의 꾸지람이 어디 어제오늘의 일입니까? 저는 이제 별로 새삼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양검 하지만 너무 하십니다. 금강이는 그렇게 칭찬하시면서 왜 우리들에게는 그토록 차갑게 대하신다 말입니까?
용검 저두 이해가 아니 갑니다. 정말로 너무 하십니다.
능환 잠시 노여워하시는 것 뿐이옵니다. 곧 괜찮아 지실 겝니다. 허, 이것 참... 계속해 일이 왜이리 꼬이는고....?
씬 송악 고려 황궁 외경
씬 동 조당
왕건과 문무 신료들이 모두 모여있다. 김행선, 왕유, 최응, 왕규, 추언규, 태평, 최지몽, 복지겸, 홍유, 배현경, 유금필, 신숭겸, 박술희, 전이갑 형제, 염상, 김언, 왕충, 박수문 형제가 모여있다. 조물성에서 돌아온 무와 장수들이 함께 있다.
왕건 그 동안의 전황을 다 듣고 있었느니라. 어린 몸으로 첫 전투에 나가 참으로 고생을 하였다.
무 아니옵니다, 폐하.
왕건 이번 전투는 백제와 우리 고려의 태자들이 총사로서 싸웠다는 점에서 의미가 아주 큰 전투였다. 성은 잘 지켜냈으나 정윤, 너의 잘못은 아니 짚고 넘어갈 수가 없다. 물론 경험이 없어서 그랬겠지만 어떻게 그리 섣불리 적의 계략에 말렸는고..? 너 때문에 아까운 장수가 둘이나 전사했다. 이를 대체 어찌할 것이냐? 어떻게 할 것이야?
무 잘못되었사옵니다, 폐하.
왕건 박술희 장군이 분명 너를 말렸음에도 너는 적에게 속아 적진으로 갔다. 그리고 너를 구하려던 장수가 둘이나 죽었어. 너
때문에 말이다.
박술희 폐하, 신을 꾸짖어 주오소서. 신이 소임을 다하지 못해 그런 일이 일어났사옵니다. 하오나, 정윤 마마께서는 참으로 용감하게 싸우셨으며 성을 지켜내셨사옵니다.
왕건 그 점은 나도 아네. 그러나 잘못은 지적을 아니 할 수가 없는 것이야. 정윤 너는 앞으로도 많은 전장터에 나갈 것이니라. 나는 백제 태자 금강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저들에게 결코 부끄럽지 않도록 처신하도록 하라. 알겠느냐?
무 예, 폐하.
유금필 아무튼 승패를 논한다면 분명 우리 고려가 승리한 전쟁이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신숭겸 그러하옵니다. 비록 두 장수의 희생이 있었으나 정윤 마마께서 승리하신 전투이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배현경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모두들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왕건 신라의 일은 어떠하든가? 내봉성령은 말해보라.
최응 신라의 내부사정이 복잡한 것 같사옵니다. 저들은 오랫동안 진골 귀족인 김씨들이 왕자리를 이어왔으나 지난번에 이어 다시 박씨로서 왕이 되었사옵니다. 이에 대한 불만들이 많은 것 같사옵니다.
왕규 저들 중 일부는 지금의 박씨 왕을 못마땅해하고 있었사옵니다. 따라서 우리 고려보다는 백제 쪽에 호감을 갖고 있는 신료들도 있음을 보았사옵니다. 조심하셔야 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복지겸 신라로서는 약자이다 보니 우리 고려와 백제 양쪽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사옵니다. 그럴 수록 더욱 바짝 신라를 껴안아야 할 것으로 아옵니다.
홍유 복장군의 말이 참으로 지당하옵니다. 신라와 계속해 왕래를 빈번하게 하시고 저들의 어려움을 살펴 주셔야 할 것이옵니다.
추언규 그러하옵니다. 한번 신세를 지기 시작하면 그 신세가 결국은 빚으로 변하옵니다. 신라에 계속 큰 빚을 안겨 주어서 훗날 때가 오면 나라로 받을 수 있도록 하오소서. 이점을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이옵니다.
염상 이미 신라는 우리의 동맹국이 아니라 보호국이 되었사옵니다. 반드시 신라는 우리 고려이 영토가 될 것이옵니다, 폐하.
왕건 허허, 그만들 하오. 신라라고 해서 우리의 계산을 모를 리 없소이다. 저들을 잘 어우르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이오. 처음부터 이해를 따지고 들어 속셈을 보인다면 누가 우리에게 마음을 주겠소이까? 그런 말들은 자제하도록들 하오.
모두들 예, 폐하.
김행선 폐하, 신 시중 김행선 아뢰옵니다. 어찌되었든 이제 조물성 전투는 일단락이 되었사옵니다. 정윤 마마께서도 돌아오시었으니 나주 부인마마의 황후책봉 의례를 서두르심이 가한 줄로 아옵니다. 허락하시오소서.
최지몽 폐하, 황후마마의 책봉의식이 참으로 늦은 감이 있사옵니다. 기왕에 영을 내리신 일이니 시중의 말처럼 속히 의례를 집전토록 하시오소서.
김언 그리하시오소서, 폐하.
전이갑 그리하시오소서, 폐하.
왕건 알겠소이다. 그것은 이미 짐이 말한 바 있소이다. 집전을 맡은 관부는 서둘도록 하오. 그리고 신료들 모두 이 의식에 함께 참여하도록 하시오. 국모의 자리를 모시는 일이올시다.
모두들 예, 폐하.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씬 황궁 어느 큰 전각 (대관전)
백여 명이 넘는 악공들이 한쪽에 도열하였고, 내군들이 질서를 잡고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문무백관들이 모두 도열하였다. 왕건이 옥좌에 앉아 있고, 그 옆의 작은 탁자에 황후의 인장과 끈이 놓여있다. 그리고 또 그 한쪽에 많은 부인, 상궁들이 가득히 보고 있다. 멀리 입구에서부터 오씨가 상궁들의 부축을 받으며 황후 차림으로 그렇게 들어오고 있다. 전의(집사)를 맡은 왕유가 말한다.
왕유 황후마마께서 납시옵니다.
오씨가 그렇게 점점 가까워지고 신료들은 모두 허리를 숙여 절을 한다. 왕건은 그렇게 옥좌에 앉아서 맞는다.
왕유 황후마마께서 폐하의 조서를 받으셔야 하옵니다. 시중께서는 조서를 전하시지요.
김행선 예 (앞으로 나와 조서를 읽는다) 짐은 대 고려 제국의 황제로서 다음 보위를 이을 정윤의 어머니를 황후에 책봉하노라. 무릇, 황후의 자리는 만백성의 국모로서 그 위엄과 자애로움이 있어야 할 것이며, 황궁의 법도를 다스리고, 또한 그 교육에 헌신을 해야 하는 자리이니라. 이에 나주부인을 황후에 봉하니 그 소임을 다할 것이니라. (교지 접으며) 폐하께 절을 올리시오소서, 황후마마.
왕유 절을 올리시오소서. 상궁들은 황후마마를 부액해 올려라.
궁중 음악이 계속 들려오면서 오씨가 왕건에게 절을 올린다. 절이 끝나자 왕유가 탁자 위의 황후 옥새를 전한다. 그리고 그것을 받았다가 제조상궁(박상궁)에게 주면 상궁이 그것을 받아 탁자에 다시 놓는다. 그러자 왕건이 옥좌에서 내려가 오씨의 손을 잡으며 그리고 비어있는 황후자리에 앉힌다.
왕유 자 모두들 새로운 황후마마께 예를 올리시오.
신료들 (모두 절하며) 감축드리옵니다.
문무신료들의 절이 끝나자 왕유가 다시 말한다.
왕유 부인들은 모두 차례로 나와 황후마마께 절을 올리시오.
그러자 유씨가 나와 무릎 꿇고 절을 올린다.
유씨 감축드리옵니다, 황후마마. 내내 강령하시오소서.
오씨 고맙네, 충주부인. 많이 도와주시게나.
유씨 이를 말이옵니까?
왕유 자 다음 부인 와서 예를 올리시오.
그렇게 부인들이 계속 나와 절을 올리기 시작한다. 음악과 더불어 그 위로..
해설 오씨의 황후 책봉. 사료에는 그 기록이 정확치 않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황후를 책봉한 시기가 아마도 그 아들 무가 정윤이 되면서부터가 아닌가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아무튼 오씨는 황후가 된다. 그리고 유씨는 여전히 다른 부인들과 마찬가지로 부인으로서 머문다. 그리고 이로써 황실 내의 우열은 분명하게 가려지게 된다. 아마도 왕건으로서는 스물 아홉이나 되는 부인에게서 보게 되는 그 많은 자식들에 대한 염려와 그리고 부인들의 우열에 관한 일들을 빨리 매듭 짖고 싶었을 것이다. 그에 따라 오씨는 명실공히 천하가 인정하는 황궁 안의 어른이 되었다. 훗날 그녀는 이렇게 해서 장화왕후로 불리운다.
씬 인서트 (그 자리)
연회가 펼쳐진다. 악공들은 계속해 궁중음악을 켜고 있고 문무신료들이 가득히 모여 마시며 즐거워하고 있다. 유씨가 아부처럼
말한다.
유씨 황후마마, 일찍부터 그 자리에 가실 것이온데 너무 늦었사옵니다. 이 몸이 목숨을 바쳐 보필해 올리겠나이다.
오씨 고맙네, 아우. 다른 부인들이야 어디 우리 사이만 한가? 비록 여러 부인들이 지금 궁 안에 많이 들어와 있지만 그대가 제일로 맏이일세. 궁 안의 질서를 잘 잡아주시게나.
유씨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왕건 아무튼 황후전에 사람이 들고 보니 마음이 넉넉해지는구려. 모쪼록 많이들 드시오. 그러나 오늘에 만족해서는 아니 될 것이오. 진정한 황후와 진정한 황제의 소리를 듣는 길은 삼한을 통일한 그 다음이 될 것이오. 아니 그렇소이까?
유금필 듣자오니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하오나 삼한의 통일은 오로지 폐하께서만이 하실 수 있사옵니다. 이미 신라가 폐하께 의탁하였고 이제 곧 백제만 평정하면 되옵니다. 모두가 폐하의 발아래 무릎을 꿇을 것이옵니다.
신숭겸 그러하옵니다. 세월이 조금 늦어질 뿐이옵니다. 모두가 폐하의 땅이 될 것이옵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하하하...
배현경 왜 아니겠사옵니까? 오늘 참으로 술맛이 좋사옵니다. 우리 모두 폐하와 황후마마를 위해 만세를 불러드림이 어떻겠소이까?
홍유 좋은 제안이십니다. 그렇게 하십시다. 자 모두들 일어나시구려.
모두들 일어난다. 그리고 만세를 부른다.
홍유 황제폐하 만세.... 황후마마 만세... 만만세....
신료들 황제폐하 만세.... 황후마마 만세... 만만세....
최응 폐하, 그리고 황후마마 부디 만수를 누리시오소서.
박술희 자, 두분 양위분의 만수를 축원했으니 이번에는 우리 모두 함께 춤을 추어 드림이 어떻겠소이까?
홍유 좋소이다. 폐하, 우리 장수들이 춤을 추어 올리겠사옵니다. 즐기어 보시오소서.
왕건 허허, 이사람들이 왜 이러는가, 오늘? 허허, 이런....
홍유 악공들은 소리를 높이게. 자 춤을 추십시다... 춤을 추십시다.
김행선 나도 함께 추겠소이다. 자 문신들도 모두 나오시오.
음악소리는 커지고 문무신료들이 가득히 어울려 춤판이 된다. 왕건은 참으로 즐거운 표정을 짙는다. 오씨도 웃고 있다. 그러나 감격에 겨워 눈물을 닦고 있다.
왕건 허허, 이보시오, 황후? 지금 우시는 게요?
오씨 아, 아니옵니다, 폐하. 너무도 감격스러워...
왕건 허허, 이런.... 기쁨이 커도 눈물이 난다더니 그게 정말인가 보구려. 나도 축하를 드리오, 황후. 잘해보십시다. 모두들 얼마나 진심으로 축하하며 즐거워들 하고 있소이까? 잘해보십시다.
오씨 예, 폐하. 신첩 또한 미력을 다해 폐하의 자손들과 황궁 안을 보살필 것이옵니다. (다시 눈물 닦으며) 고맙사옵니다, 폐하. 오늘 같은 날을 신첩에게 있게 하여 주시니 평생 은혜로 알겠사옵니다. 저희 목포 고을의 영광이옵고 오씨 문중의 광영이옵니다. 고맙사옵니다, 폐하.
<144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