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 145회>
<줄거리>
양국 태자들간의 조물성 전쟁 후 1년, 견훤은 친히 대군을 일으킨다. 견훤은 태자 금강을 고려에 사신으로 보내 왕건에게 조물성에서의 일전을 청하고, 왕건은 견훤의 제안을 수락한다. 한 편 최지몽은 왕건의 친정에 대해 불길한 점괘를 들어 만류해 보는데.. 무더운 날씨 속에서 왕건과 견훤이 각각 대군을 이끌고 조물성으로 향하던 중, 양군 진영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돌림병이 생겨 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고, 급기야 왕건의 책사 태평이 쓰러지는데...
씬 대야성 외경 (낮)
씬 동 대야성 안
연병장이다. 수많은 군사들이 지나쳐 가며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기마대에 이어서 중장비로 무장한 공병들과 방패를 든 군사들, 그리고 장창부대들이 끝도 없이 지나쳐 가고 있다. 견훤이 이른바 이들을 사열하고 있는 것이다. 군사들 사이사이로 많은 장수들이 지나쳐 간다. 신검, 양검, 용검, 금강, 공직, 신덕, 최필, 애술, 그리고 상귀, 부달, 소달들의 모습이 그 군사들 사이사이로 지나쳐 간다. 사열대에서는 견훤을 비롯해 최승우와 능환, 종훈들이 보고 있다
견훤 (끄덕인다) 한해가 지나는 동안 충분히 정비가 된 것 같구먼. 각 병대마다 모두들 힘이 넘쳐 보이네 그려.
최승우 지난 가을서부터 겨울과 초봄을 지날 때까지 군사들을 잘 먹이고 넉넉히 쉬게 하였사옵니다. 또한 농사에 필요한 병졸들은 돌려보내고 싸울 수 있는 병졸을 특별히 선발하여 정예군으로 편성하였사옵니다.
견훤 암, 백성들의 사정을 배려해주어야지. 하지만, 일이 좀 묘하게 된 것 같네 그려. 작년 이맘때에도 농번기를 피하고자 하여서 전투를 중단했던 것인데 올해도 어쩌다 보니 또 다시 한여름에 군사를 일으키게 되었어.
능환 하오나 앞서 말씀드린 대로 충분한 대비를 하였사옵니다. 너무 괘념치 마시오소서, 폐하.
종훈 비록 지금 군사를 점고하고 계시오나 우리 백제와 고려가 맞붙는 본격적인 전투는 아마도 두 세달 뒤가 될 것이옵니다. 그때쯤 되면 농번기나 큰 폭염은 피하실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그리고 고려도 그런 계산을 할 것이옵니다.
견훤 그럴 테지. 고려도 지금쯤 우리가 조물성으로 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야. 이번 전쟁은 짐이 직접 가는 것이니 만큼 고려국에서도 고려왕이 나올 가능성이 다분해. 충분한 전력을 확보하도록 하게. 전장에 필요한 군수물자도 여유가 있게 비축을 하고 말이야.
최승우,능환 예, 폐하.
견훤 특히나 폭염 속에서 전쟁준비를 하자면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이 많은 법이야. 경은 종군의원이니 만큼 병사들의 건강도 잘 챙겨주게나.
훈겸 예, 폐하
최승우 여기 훈겸 의원은 백제국의 그 많은 의원 중에서도 특별히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옵니다. 본래 지리산에 은거해 있고자 하는 것을 사정사정하여 불러들인 명의이옵니다, 폐하.
견훤 허허허, 나도 들은 바가 있네. 그러니까 더욱 병사들을 잘 챙겨 달라는 것이야. (훈련보며) 그런 대로 보기에 괜찮아. 저기 우리 금강이 말일세.
모두들 아, 예....
견훤 오히려 한쪽 눈에 안대를 차고 보니 보다 사내다운 것 같네 그려. 인상이 날카롭고 담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가 말일세. 장수 깜이야. 아니지, 아니지.. 제왕감이야. 제왕말이야. 허허허...
능환 ...............(심기가 불편하다)
최승우 ...............(그런 능환의 기분을 안다)
견훤 그래, 사내라면 저 정도는 되어야지. 어느새 장성한 아들이 여럿 되었는데 그 중에서 우리 금강이가 가장 나를 닮은 것 같아. 하는 모든 것들이 내가 자랄 때와 어쩜 그리 같은지 말일세. 허허허.....
최승우 폐하, 그만 군영으로 드시오소서. 보다 세밀한 전략을 논의하신다 하지 않으셨사옵니까?
견훤 그랬지. 군사들을 그만 쉬게하고 장수들을 들라하게.
최승우 예, 폐하.
견훤 (대견하다) 되었어. 저만한 군대라면 해볼 만 해. 이번에야말로 조물성을 꼭 우리성으로 만들어야지. 자식들이 나서서 해결하지 못한 싸움이었어. 이번에는 끝을 내야지. 그야말로 자존심 싸움이 되지 않겠는가 말이야. 황제들의 자존심, 자존심 말이야...
그런 견훤의 모습에서... 디졸브
씬 동 군영 안
사열에 참여하였던 태자들과 장수들이 모두 모였다. 그리고 문신들로서는 민합, 공달, 김악, 영순 등이 보인다.
견훤 어느새 태자들이 싸웠던 그 조물성 전투 이후, 만 일년이 되었어. 짐은 그때 분명히 제장들에게 말하였어. 저 조물성을 짐이 직접 나서서 함락시켜 보이겠다고 말이야. 짐은 꼭 이번 전투에서 고려의 왕을 보고 싶어. 고려의 왕, 왕건이 말이야.
모두들 .........
견훤 생각들 해보라고. 지난해에는 백제와 고려의 자식들이 자존심을 걸고 피를 흘리며 싸웠어. 그 전투에서 우리 금강이는 눈을 하나 잃었어. 그런데도 결국 이렇다할 승부를 보지 못했어. 짐은 우리 금강이의 한을 갚아주고 싶네. 저 잃어버린 눈 값을 받아내고 싶어.
금강 .............
견훤 짐은 그래서 대야성에서 절치부심 일년을 기다렸고 이제 군사를 일으키려고 하는 것이야. 금강이의 한도 한이겠지마는 조물성은 우리에게 그만큼 중요해. 그리고 또 하나 있어. 조물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백제의 황제와 고려의 황제가 싸워서 과연 누가 이기느냐 하는 것이란 말이야.
능환 폐하, 하오나 만약에 고려의 왕이 전투에 나오지 않는다면 어찌 되는 것이옵니까?
신검 그럼 그냥 성을 함락시키면 되는 것입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무엇이옵니까?
신덕 그러하옵니다. 굳이 고려의 왕을 불러낼 것이 무엇이옵니까?
견훤 무슨 소리들을 하고 있는 게야? 고려의 왕을 굳이 왜 불러내느냐구? 몰라서들 하는 소리인가? 지난번에는 자식들이 싸워서 승패를 가리지 못했어. 이제 그 아비들이 전장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것이야. 아니들 그런가? 고려의 왕을 오게 해야해. 꼭 오게 해야해. 안 오면 겁장이라는 것을 알려 주어야지.
공직 하오나 폐하, 상대는 고려의 왕이옵니다. 폐하의 뜻대로 꼭 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사옵니다.
견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나 이번 전장에서 우리는 서로 마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고려왕도 알고 있을 게야. 지난번에 나는 그걸 확인했어. 짐이 우리 태자들을 내보냈을 때, 고려의 왕도 즉각 자신의 태자를 보냈어. 그것은 말하자면 언제든 대등한 위치에서 당당하게 겨룰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야. 그래서 짐은 고려의 왕이 이번 전장에 나올 것이라 생각하는 것일세.
애술 정 그러시오면 그 일을 보다 확실히 다짐을 받으시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고려의 왕에게 이 전투에 직접 나오라고 한번 불러보시오소서.
견훤 그래, 그래. 바로 그거야. 애술장군의 말이 옳아. 짐도 실은 한쪽으로 그 생각을 하고 있었어. 사람을 보내서 짐의 뜻을 전하려고 말이야. 이보게, 파진찬.
최승우 예, 폐하
견훤 짐이 글을 써줄 터이니 사신을 즉시 고려에 보내도록 하게. 대 백제국의 황제인 짐이 조물성으로 갈 터이니 고려의 왕도 모름지기 사내라면 조물성으로 오라고 해. 와서 한번 자웅을 겨루어 보자고 해.
최승우 예, 폐하. 그리하겠사옵니다.
견훤 아, 아 다른 사람으로 사신을 보낼 것이 뭐 있겠는가? 금강아.
금강 예, 폐하
견훤 네가 직접 다녀오너라. 저들은 너를 특별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너희 아비인 백제국 황제가 보냈다 하고 가서 친서를 전하거라. 알겠느냐?
금강 예, 폐하.
견훤 그리고 기왕에 상대를 청하러 가는 길인데 그냥 갈 수야 없지. 내가 좋은 선물을 하나 보낼 터이니 가져다주어라. 우리 백제국의 절영도(부산 영도) 말은 명마로 유명하니라. 그중 특히 날랜 말을 한필 줄 것이니 가지고 가서 고려왕에게 전하거라.
금강 예, 폐하.
상귀 폐하, 절영도의 명마까지 딸려 보내실 필요가 무엇이옵니까? 너무도 과분한 처사인줄 아옵니다. 하옵고 태자마마를 보내시는 것 또한 마땅치 않다 사료되옵니다.
최필 그러하옵니다. 태자마마를 사신의 역할로서 보내심은 과분한 일이옵니다.
김총 명마도 보내지 마오소서. 저들이 폐하의 지극하신 뜻을 제대로 알리 가 없사옵니다.
견훤 아니야, 아니야.. 서로가 한번 잘 싸워 보자고 청하는 게 아닌가? 태자를 보내는 것은 이번에는 자식들이 아닌 황제들끼리 해보자 하는 의미이고 또한 절영도의 명마를 보내는 것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싸우자 하는 것이야. 우리는 양국의 황제이기 전에 사내들이야 , 사내 말이야. 싸우되 깨끗할 필요가 있고 싸우기 전에는 예의를 반듯하게 갖출 필요가 있어. 이 결정을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라. 알겠는가? 알겠어?
모두들 예, 폐하...
견훤 이번에는 반드시 대 백제국의 명예를 천하에 드러낼 것이야. 왠지 그런 좋은 예감이 들어. 가거라, 금강아. 문신들을 데리고 함께 가도록 해. 민합과 공달이 함께 가도록 하게.
그들 예, 폐하.
견훤 자, 우리 금강이가 떠나는 즉시 장수들은 제반준비를 갖추라. 준비를 마치는 대로 조물성으로 향할 것이니라. 조물성이야.
모두들 예, 폐하...
그런 견훤의 표정에서..
씬 길
어느 산길을 금강이 민합과 공달을 이끌고 가고 있다. 그들이 카메라 앞을 지나쳐 멀어져 간다. 그 즈음에서 또 다른 사잇길로 백제의 황후들이 오고 있다. 지나쳐 멀어지는 금강일행을 본다. 그러나 그들이 누구인지는 미쳐 모른다.
박씨 보아하니 대야성에서 가고 있는 일행 같은데 무엇하는 사람들인고...?
이상궁 예, 황후마마. 차림으로 보아 그런 것 같사옵니다마는...
그때, 박영규가 저만큼에서 다가와 말한다.
박영규 방금 멀어져간 저 일행은 폐하께서 고려에 보내는 사신들이라 하옵니다. 금강태자께서 신료들을 이끌고 가시는 것이라 하옵니다.
고비 세상에 우리 태자가 사신으로 간단 말입니까?
박영규 그렇다 하옵니다. 무슨 까닭이 있으시겠지요. 자, 대야성이 얼마 아니 남았사옵니다. 어서들 가시지요.
고비 우리 금강이가... 이 에미가 보고 싶어 왔는데 보지도 못하고....
고비가 그렇게 눈물을 글썽이며 안타까워하면. 박씨가 냉담하게 말한다.
박씨 자 무엇들 하는가? 어서들 가세. 페하께서 기다리고 계실 것이야.
박영규 서둘러라. 성에 다 왔느니라. 서둘러라.
그렇게 움직이는 그 행렬, 그리고 고비의 안타까운 모습에서. 디졸브
씬 동 대야성 (밤)
박씨와 고비들이 들어서고 있다. 성문을 통해 들어가면 신검형제들과 능환이 나와 마중하고 있다.
신검 어서오시오소서, 어마마마. 대야성까지 어인 일이시옵니까?
박씨 폐하께서 워낙 바쁘시니 어찌하겠느냐? 우리가 이곳으로 찾아와 뵐 수 밖에...
양검 어서 안으로 드시오소서.
박씨 다들 무사하니 다행이다. 용검이도 얼굴이 많이 탔구나.
용검 예, 어마마마.
능환 자, 안으로 드시오소서.
씬 동 임시 대전
견훤이 시큰둥하니 박씨 일행들을 보고 있다.
견훤 우리는 곧 조물성으로 가야 하오. 그냥 황도에들 계실 것이지. 여기까지 무엇하러들 오시었소.
박씨 일년이 넘도록 폐하를 뵙지 못하였사옵니다. 또한 우리 태자들도 그렇구요. 어찌 황도에만 머물러 있을 수가 있겠사옵니까?
고비 그러하옵니다. 신첩도 우리 금강태자가 한쪽 눈을 실명하였다 들었으면서도 아직 보지 못하였사옵니다. 어렵사리 왔사오나 또 볼 수 없다 하옵니다.
견훤 하하하... 맞아요. 고려에 사신으로 보냈소이다. 이보시오, 승주부인. 아무 걱정 마시오. 그까짓 눈 하나 없어도 얼마든지 삽니다. 특히나 금강이는 그런 아입니다. 이름 그대로 금강처럼 단단한 아이예요. 그 아이는 장차 크게 될 겝니다. 암요. 아니 그런가, 사위?
박영규 아, 예, 폐하... 그 놀라운 소문은 잘 들었사옵니다. 눈알을 스스로 삼키셨다 들었사옵니다.
견훤 암, 암... 누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누가...? 대견한 일이지.
박씨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다. 신검 형제들도 입맛이 쓰다.
견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암, 내 그래서 보란 듯이 금강이를 고려로 보낸 것이야. 고려의 왕은 보아라. 내 아들 금강이가 어떤가 하고 말이야. 하하하... 우리에게 이런 태자들이 있는데 너희 고려가 우리 백제를 당할 수 있겠는가 하고 말이야. 자, 사위 어쨌든 모처럼 왔으니 다과라도 함세. 그리 하십시다, 황후.
박씨 말씀만 들어도 배가 부르옵니다, 페하. 금강이 칭찬을 하도 듣다보니 아니 먹어도 배가 부르옵니다.
견훤 뭐요..?
박씨 어쩌면 그러실 수가 있사옵니까? 다 큰 자식들 앞에 놓고 어떻게 금강이만 그렇게 칭찬하실 수가 있사옵니까, 폐하? 고려의 왕이 폐하께서 자식들을 이렇게 병적으로 편애하시는 줄 알면 잘도 겁을 먹겠사옵니다. 자고로 그 질서를 무시하고 자식을 편애하는 집안치고 잘되는 집 못 보았사옵니다.
견훤 무어라...? 황후는 지금 그걸 말씀이라고 하시는 게요? 뭐, 집안이 뭐가 어째?
박씨 신첩이 말씀을 잘못 드렸사옵니까?
견훤 그만두지 못하시겠소? 에잉, 이런...이런... 늘 이렇다니까, 늘 이래.
씬 송도 황궁 외경
씬 동 조당
많은 문무 신료들이 모여 있다. 하나 같이 긴장의 표정들이 역력하다. 발해장수 신덕을 보고 왕건이 묻고 있다.
왕건 그대가 발해국에서 온 장군 신덕이라고 했는가?
신덕 예, 폐하.
왕건 함께 온 장졸들이 무려 오백여 인이나 된다고?
신덕 예, 폐하.
왕건 도대체 발해국의 사정이 얼마나 급하길래 그 많은 장졸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고려로 온단 말인고?
신덕 이미 거란의 침략이 본격적으로 준비되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저의 발해국으로서는 저들을 막을 힘은커녕 국내의 내분이 갈수록 심하여져서 당장 오늘 내일의 운명을 점칠 수가 없게 되었사옵니다.
왕건 안타까운 일이로다. 발해국은 우리 고구려의 같은 뿌리가 아닌가, 한 제국을 이루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그토록 큰 나라를 마련하고서 고작 300년도 채 못 넘기고 몰락의 길을 걷는단 말인가?
최지몽 신 최지몽 아뢰옵니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에 일관들로부터 길이가 칠십 척이나 되는 지렁이가 북쪽에서 내려와 남쪽 궁궐로 사라진 일이 있다 들었사옵니다. 풀이를 해보았사온데 이는 머지않아 발해국이 우리 고려에 의탁할 것임을 뜻하는 것이옵니다. 발해국의 운명이 다 되어 가는 듯 싶사옵니다.
왕건 안타깝도다, 참으로 안타깝도다. 경들은 이 일을 절대로 소홀히 생각하지 마오, 발해국은 우리와 형제간이오. 신료들은 앞으로 발해국 의 운명과 거취에 관하여 각별히 관심을 갖고 대응하기 바라오. 저들은 우리와 피를 나눈 형제올시다. 형제 말이오.
신료들 예, 폐하.
해설 발해, 서기 925년 이해, 고려의 사기는 처음으로 발해국의 장수 신덕이 수하 500여명을 이끌고 고려로 귀순해왔음을 적고 있다. 발해의 시조는 대조영이다. 서기 668년,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멸망시켰을 때, 당나라는 고구려유민 이만 팔천 세대를 중국 땅으로 강제 이주시키는데, 이때 대조영도 그의 아버지와 함께 요서 지방으로 옮겨진다. 그리고 기회를 엿보다가 698년 고구려 유민 및 말갈족과 함께 동부지역으로 탈출하여 지금의 길림성 동모산 부근에 나라를 세웠으니 그 나라가 곧 발해이다. 발해라는 나라 이름은 713년 당나라가 발해의 시조 대조영에게 '발해군공'이라는 관작을 수여한데에서 비롯됐다. 15대 왕, 230년간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 대부분의 말갈 세력을 복속시켰고 국토는 지금의 고려를 경계로 하여 북으로는 요하 유역까지 진출, '5경 16부 62주'라는 거대한 제국을 이루면서 해동성국이라는 칭호를 얻었던 나라이다. 그러나 거란족을 통일하고 황제가 된 '야율아보기'에게 서기 925년, 12월 말 침략을 받기 무려 보름만에 한꺼번에 무너져 버리니 그 이유는 귀족들간의 오랜 내분으로 나라의 질서가 극도로 황폐화되었기 때문이었다 한다. 거대한 제국의 최후치고는 참으로 허망한 종말이었다.
해설이 진행되는 동안 발해국의 지도가 화면에 보여진다. 그리고 해설이 끝나면...
씬 동 조당 안
왕건 발해국의 일은 그렇게 하기로 하고... 짐이 듣자하니 지금 백제국의 왕은 지난날 조물성 전투 이후 돌아가지 않고 대야성에 머물면서 군사를 조련시켰다 하오. 이는 다시 전쟁을 하자는 의도가 아니겠는가?
태평 이를 말이옵니까, 폐하? 저들은 다시 조물성을 노리고 있사옵니다. 이미 첩자들을 통하여 그에 관한 많은 증거들을 포착했사옵니다.
복지겸 그러하옵니다. 저들은 이미 군의 편제를 새롭게 하였고 전쟁 수행에 필요한 모든 물자들을 비축하였사옵니다. 또한, 군의 편제를 바꾸면서 그 수를 늘려 지금은 병력이 무려 2만이 넘는다 하옵니다.
모두들 술렁거린다.
김행선 대단한 숫자올시다. 2만이나 된다는 말입니까?
왕규 그렇다면 아군도 그에 버금가는 군대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 아니옵니까?
최응 물론 그래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숫자의 우열을 따지는 것 보다도 백제의 황제가 전면으로 나서서 오고 있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태평 그러하옵니다. 이는 백제가 신라로 가기 전에 우리 고려의 간섭을 완전히 해결하고 가겠다는 뜻이옵니다.
배현경 어차피 저들이 다시 조물성을 노리고 있사옵니다. 전투는 조물성 한 곳에서 끝날 것이 아니옵니까? 이제 신들을 전선으로 보내주시오소서. 전선은 넓사옵니다, 폐하.
유금필 그러하옵니다. 일찍이 신은 폐하의 영을 뫼시어서 병부와 의논하여 백제와 경계를 이루는 전 전선을 연구하였사옵니다. 그리고 폐하께오서는 신에게 정서대장군을 명하시면서 서쪽의 백제를 평정하라 하셨사옵니다. 이제 그 때가 이르렀사오니 영을 주시오소서.
신숭겸 신 신숭겸도 또한 아뢰옵니다. 유금필 장군의 청이 참으로 지당하옵니다. 저들이 군사를 움직이기 전에 서두를 필요가 있사옵니다.
박술희 신 또한 두 장군의 청이 적절한 것으로 아옵니다. 이번에는 저희 의제들을 함께 전선으로 보내주시오소서.
홍유 신들도 가겠사옵니다. 영을 주시오소서, 폐하.
왕건 좋은 이야기들이오. 짐은 그때 유금필 장군에게 공격을 받기 보다는 과감히 먼저 나서라고 하였소이다. 지금이 그런 때인 것 같소이다. 허면, 유금필 장군은 먼저 백제의 어디를 치려고 하는고..?
유금필 신은 연산진(문의)과 임존군(예산)쪽을 노려볼까 하옵니다. 백제는 지금 신라의 계림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조물성에만 신경이 가있사옵니다. 이 기회에 그 뒤를 드려치면 저들의 중요한 후방을 교란시키는 결과를 얻을 수 있사옵니다.
왕유 신이 듣자하니 참으로 좋은 계책 같사옵니다. 저들이 앞으로 나가려 할 때에 그 뒤를 공격당한다면 섣불리 행동할 수 없게 되옵니다. 또한, 조물성과 길이 이어져 있어 유사시에 아군을 도울 수도 있사옵니다.
염상 신이 생각하여도 지금 유장군의 청은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때 적절한 것 같사옵니다. 유금필 장군으로 하여금 연산진 쪽을 공격하게 하시고 신들로 하여금 조물성으로 가도록 허락하여 주시오소서.
전이갑 신들도 가겠나이다. 허락하여 주오소서.
전의갑 신도 가겠나이다. 이번 기회에 백제의 왕을 잡아 꿇릴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오소서, 폐하.
왕건 알겠소이다. 모두들 의기가 넘쳐 전장터로 가겠다 하니 짐의 마음이 어느 때보다도 든든하오이다. 그렇다면 유장군은 신숭겸, 박술희 장군과 함께 연산진으로 가라.
유금필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페하. 즉시 출병하겠나이다.
왕건 왕충장군과 김언, 염상, 전이갑, 전의갑 장군도 함께 가도록 하오.
그들 예, 폐하.
왕건 조물성에 관한 일은 다시 의논하여 그 방법을 정할 것이오. 모두 그리 알도록 하오.
신료들 예, 폐하.
그때다. 내군에 속해 있는 신방이 걸어 들어와 복지겸에게 무언가 귓속말을 한다. 복지겸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가서 말한다.
복지겸 폐하, 백제국의 왕이 사신을 보냈다 하옵니다.
왕건 백제에서 사신이 말이오?
복지겸 예, 폐하. 백제의 왕이 그 막내 태자인 금강태자를 보내어 명마를 한필 선물로 가져왔다 하옵니다. 지금 황궁 대중전 밖에서 하회를 기다리고 있다 하옵니다.
모두들 뜻밖의 일에 잠시 소란이 인다. 왕건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왕건 아니, 전쟁을 준비중인 백제가 난데없이 웬 사신을 보내왔단 말인가? 그리고 그 말은 또 무엇이고..? 어쨌든 사신이라 하니 만나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자 오늘 조회는 이쯤 하십시다. 가 봅시다, 복장군.
복지겸 예, 폐하.
씬 동 황궁안 대중전 뜰
금강이 민합, 공달과 더불어 옥색빛의 명마를 한필 가지고 서 있다. 왕건일행들이 대전내관의 알림과 동시에 그 모습을 나타낸다.
대전내관 황제폐하 납시오....
금강은 왕건이 다가오자 공손히 군례를 드린다. 왕건과 더불어 최응, 최지몽, 왕규, 왕유, 태평, 복지겸, 신방, 그리고 정윤 무가 함께 왔다.
왕건 (한참보다가) 그대가 백제국의 태자 금강인가?
금강 예, 폐하. 이렇게 뵈오니 참으로 반갑사옵니다. 소인은 금강이라 하옵니다.
왕건 보아하니 한쪽 눈이 없구먼 그래.
금강 예, 폐하. 지난번 조물성 전투에서 잃었나이다.
왕건 그랬는가? 참으로 아니되었구먼. 그러나 그대가 참으로 열심히 싸웠다는 이야기는 들었노라. 반갑구먼 그래. 역시 대장부다운 기품이 있어 보여.
무 ..............(생각이 많다)
금강 망극하옵니다, 폐하. (친서를 올린다) 저희 아바마마이신 대백제국 황제폐하께오서 저를 통하여 친서를 올리고 여기 절영도의 총마를 선물로 전해 드리라 하였사옵니다. 받으시오소서.
그것을 복지겸이 받아 다시 왕건에게 전한다. 왕건이 글을 읽는다. 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끄덕인다. 견훤의 소리가 들려온다.
견훤 (E) 고려의 왕 왕건족하(足下)는 보시게 나 백제국의 황제는 지난번 태자들간에 있었던 조물성의 전투를 기억하는 바일세. 그때는 승부가 나지 않아 다시금 양국의 황제끼리 자웅을 겨루어 그 결과를 논하고 싶네. 정중히 조물성에 청하니 서로 만나봄이 어떠할꼬...? 특히나 우리 백제국에서 크게 자랑하는 절영도의 일품 총마 한 필을 골라 전하니 갑옷투구를 잘 챙겨서 전장에서 보기 바라네.
읽기를 마친 왕건이 금강이를 보다가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왕건 이는 선전포고가 아닌가? 참으로 글솜씨가 매섭고 또한 당당하네 그려. 암, 짐 또한 바라던 바일세. 태자는 가서 전하게.
금강 예, 폐하.
왕건 나 고려국의 황제는 이 청을 기꺼이 수락한다고 말일세.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지금 백제국에서 일으키고 있는 군사적 행동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네. 암, 참으로 오랜 세월이었지. 우리는 서로를 너무도 못보고 싸워왔네 그려. 가서 전해주시게나. 짐도 꼭 백제국 왕의 모습을 뵙고 싶다고 말일세. 기꺼이 수락한다고 전해주시게.
금강 예, 폐하. 그리 전해 올리겠사옵니다.
왕건 그리고 이보시게 내봉성령?
최응 예, 폐하.
왕건 백제국에서 기가 막히게 좋은 선물을 보내왔는데 우리라고 답례품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우리 송악의 명품인 인삼을 비단과 더불어 후히 싸서 보내드리게나.
최응 예, 폐하.
왕건 가서 말씀 드리게. 역시 백제국의 왕께서는 장부중에 장부시라고 말일세. 같은 전쟁을 치르더라도 이토록 예의와 범절이 뛰어난 분은 참으로 드물 것이라고... 이는 장부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하하하... 이것은 진심일세. 그대의 부친인 백제의 왕은 참으로 장부임에는 틀림없네. 개인적으로 존경을 드린다고 가서 전해드리게.
금강 예, 폐하. 그리 전해 올리겠사옵니다.
왕건 병부령은 들었는가? 나는 정중하게 초청을 받았네. 백제왕의 초청을 받았어. 그렇지 않아도 이심전심이라고 나 또한 조물성으로 갈 생각을 하고 있었네 그려. 이번 전장은 내가 친히 나갈 것일세. 그리 알고 모든 것을 준비하도록 하게나.
태평 예, 폐하.
금강을 보며 웃는 왕건의 그러한 여유있는 모습에서...
씬 황후전
오씨와 수인이 함께 앉아 있다. 오씨는 황후의 모습이다.
오씨 또 전쟁이란 말인가, 전쟁...?
수인 예, 황후마마. 이미 유금필 장군들과 더불어 여러 장군들이 연산진으로 일차 떠났사옵고, 다른 장수들과 문신들이 곧 폐하를 뫼시고 조물성으로 향한다 하옵니다.
오씨 폐하께서도 전장터에 가신다 그말이신가?
수인 그렇다 하옵니다, 황후마마.. 이를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오씨 지난해에는 태자를 내보내서 싸우시더니 이번에는 직접 전장터로 나가실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 많은 장수들을 두고 왜 손수 나가신다는 말씀인고...?
수인 백제의 왕이 청하였다 하옵니다.
오씨 무어라..? 청을 해? 아니, 죽고 사는 싸움에서 청을 해서 가고 아니 가고 하신단 말씀이신가? 이게 무슨 동네 마실가시는 일이란 말씀이신가? 아니 세상에, 어찌 이런...
씬 동 편전
김행선과 더불어 왕규, 왕유, 태평, 최응, 최지몽, 배현경, 홍유, 복지겸들이 보인다.
왕건 경들도 알다시피 짐은 백제왕의 정중한 청을 받았소이다. 그렇지 않아도 짐은 오래 전부터 중요한 전장터에는 친정을 하겠노라고 늘 밝혀왔었소이다. 이번에 청함을 받고도 가지 않는다면 저들이 우리 고려를 우습게 보게 될 것이오.
김행선 하오나 폐하, 나가서 싸울 장수들이 많사옵고 황도에서 하실 일이 또한 많사옵니다. 친히 가실 일이 무엇이옵니까?
왕규 신도 그런 생각이 드옵니다. 장수들을 보내시오소서. 친히 가실 이유가 없사옵니다.
왕건 백제의 왕이 나를 청하고 있소이다. 그리고 이미 대답을 하였소이다. 무엇이 겁이나서 못간다는 말이오?
배현경 옳으신 말씀이시옵니다. 백제의 왕이 직접 나오는 전투라 하니 폐하께오서도 가시오소서. 신들이 보필할 것이옵니다.
홍유 가시오소서, 폐하. 이 기회에 저 거만한 백제왕의 콧대를 눌러놓을 필요가 있사옵니다.
복지겸 하오나, 황제폐하께오서 쉽게 황도를 비우신다는 것은 문제가 있사옵니다. 신중히 생각하시오소서.
왕건 병부령과 내봉성령은 왜 말이 없는고..?
최응 신 또한 생각이 복장군과 같사옵니다. 쉽게 폐하께서 움직이시는 것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사료되옵니다.
왕건 이미 정한 일이라고 하지 않는가? 일차로 태자들이 싸워서 승부가 나지 않았어. 이제 그 아비들이 나와 싸우자 하는데 물러 선다는 것은 얼마나 비겁한 일이겠는가? 나는 가서 싸우고 싶네 그려. 이봐라 지몽아. 아니 그러하냐?
최지몽 (한참 대답이 없다) ........
왕건 아, 아니 그러냐고 묻지 않느냐?
최지몽 예, 폐하. 신이.... 폐하께서 전장에 나가시는 일을 가지고 점을 쳐 보았사온데....
모두들 ..............?
왕건 그런데...?
최지몽 아무리 몇 번이고 점을 쳐도 점괘가 도무지 시원하게 나오지가 않사옵니다. 친정을 하시는 것은 다시 한번 고려를 하시오소서.
왕건 하하하... 네가 맡은 소임이 천문과 복술에 관여된 것이니 크게 나무라지는 않겠다마는 어찌 점괘 하나를 믿고서 큰 일을 하고 아니하고 한다는 말이냐? 자 일은 결정이 되었소이다. 내 아우들이 이미 연산진으로 떠나 백제국의 배후를 노리고 있으니 우리도 준비하여 조물성으로 가십시다. 가서 우리 고려국의 위엄을 한번 드러내 보십시다. 과연 누가 더 센지 한번 따져 보자는 말씀이올시다. 하하하.... 준비들 하시구려. 출병할 것이외다. 출병할 것이에요.
그렇게 자신감을 보이는 왕건의 여유 있는 표정에서... 디졸브
씬 조물성
윤신달과 김락이 이글거리는 태양을 보고 있다.
김락 지독한 더위올시다. 올해는 참으로 이상하지 않소이까?
윤신달 그러게 말이올시다. 벌써 구월이 넘어서는데도 아직까지 폭염이 퍼붓고 있어요. 사람도 짐승도 오랜 더위에들 모두 지쳤소이다.
김락 이번 전쟁은 전면전이라고들 합니다. 양쪽에서 황제들이 나오는 전쟁이올시다. 나라의 운명을 걸고 말씀이에요.
윤신달 양쪽 군사를 합쳐 4만이 넘는다 하니 이런 엄청난 대 전투도 예전에 못 보던 일이올시다.
김락 그렇겠지요. 그나저나 이 더위에 어찌들 싸울런지... 허, 참...
씬 동 대야성
제장회의가 열리고 있다. 견훤이 한바탕 웃고 있다.
견훤 고려의 왕이 짐을 존경한다 하였다고...?
금강 예, 폐하. 분명 그리 말을 하였사옵니다.
견훤 그러고 보면 고려의 왕도 사내다운 데가 있어. 그러니까 하긴 한 나라의 왕 노릇도 하는 것이지. 그러고 보면 대개 큰 일을 하는 사내들은 가는 길이 거의 비슷해. 배포가 있고 용기가 있어. 결단력도 빠르고 말이야. 고려의 왕도 그런 점이 있어.
최승우 폐하, 이미 고려군 일단이 우리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연산진 일대로 가고 있다 하옵니다. 그곳은 우리 영토가 경계한 후미가 되옵니다.
능환 우리의 뒤를 노리는 것은 우리가 신라로 가려는 의도를 기본적으로 막고자 함이옵니다. 그 쪽에도 서둘러 방비를 해야 할 것이옵니다.
종훈 그러하옵니다. 고려가 우리의 앞뒤를 한꺼번에 노리는 것은 결과적으로 조물성 전투를 약화시키자는 데에 의도가 있사옵니다. 아무래도 연산진 쪽을 방비하면서 전투를 서두르셔야 할 것 같사옵니다.
견훤 암 암, 그래야지.. 저쪽에서도 조물성에서 만나기를 쾌히 대답하였다 하네. 그러니 이제 가서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느새 사신이 왔다 갔다 하다가 보니 농번기도 좀 피한 것 같고 말이야. 군사를 움직이세. 연산진에는 사람을 보내 주변 성들의 군사들을 모아 저들 스스로 당분간 막고 있으라 하게. 곧 지원군을 보내 주겠다고 말이야. 그리고 우리는 출병을 하세.
공달 하오나 폐하, 올해 들어 이상하리 만큼 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아직까지 물러가고 있지 않사옵니다. 그것이 좀 마음에 걸리옵니다.
견훤 그건 그래. 전투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더위나 추위는 아주 큰 방해물이지. 하지만, 우리가 힘이 들면 그건 적도 마찬가지야. 아무래도 그에 관해서는 우리 명의인 훈겸 의원이 신경을 많이 써야 할 것이야.
훈겸 예, 폐하.
견훤 아무튼 서두르게. 이미 고려가 움직인다고 하는데 마땅히 서둘러야지. 즉시 출병하도록 하라. 즉시.... 어서 가서 고려왕을 보고 싶도다.
모두들 예, 폐하.
씬 인서트 (어느 산길)
백제의 대 병이 가고 있다. 견훤과 더불어 모든 제장들이 다 참여한 행군이다. 그렇게 위풍당당히 가고 있고, 카메라 앞을 지나쳐 멀어져 가고... 디졸브되면서
씬 송도 도성 길
백성들과 황후들과 신료들이 배웅하고 있다. 왕건이 요란한 모습으로 백마를 타고 내군의 호위를 받으며 출정하고 있다. 황제의 출정을 알리는 깃발들이 요란하다. 오씨들과 정윤 무가 배웅한다. 왕건의 옆에는 복지겸과 내군들, 그리고 태평과 최응, 최지몽, 배현경과 홍유가 함께 가고 있다. 나머지는 모두 황궁에 남고... 그 위로
해설 조물성 전투, 곧 모든 상황이 나타날 것이겠지만 이 전투는 왕건의 여러 전투 중 참으로 뼈아픈 상처의 하나로 기억되는 전쟁이다. 더구나 오랜만에 왕건이 그 이름을 앞세워 친히 나간 전쟁이었다. 그 전쟁 준비는 한 여름부터 계속되었고 구월이 넘자 그들의 군대는 조물성으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백제 또한 여유를 가지고 고려군의 이동을 살피면서 군사를 출병하게 되니 두 군대가 조물성으로 모여든 때는 구월이 넘어서였다.
씬 어느 산야 (밤)
초생달 빛이 밝다. 어느 구릉을 타고 유금필과 박술희, 신숭겸들이 먼 산 아래를 보고 있다. 유금필이 공격신호를 내린다. 장수들과 기마대 보병들이 산야를 휩쓸고 내려간다. 그리고 치열한 접전이 이어진다. 그들의 그 접전에서...
해설 (계속) 그 무렵, 정서대장군의 자격으로 총사를 맡아 지금의 예산 근처인 임존군으로 출병한 유금필은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공격을 강행하여 승승장구, 장군 길환을 죽이면서 연산진(문의)을 계속 공략해 들어가며 무려 삼천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그곳은 백제와 고려의 경계이면서 사실상 백제의 영향과 지배를 받는 지역이었다. 그러니까 비록 조물성은 아니었지만 고려와 백제의 첫 전투에서 잠시 고려가 기선을 제압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씬 길
어느 황톳길을 왕건군이 지나가고 있다. 태양은 계속해 작열하고 있다. 왕건이 더운 듯 하늘을 보며 땀을 닦는다.
왕건 참으로 엄청난 더위일세 그려.
태평 그러게 말이옵니다. 물을 좀 올리오리까?
왕건 아닐세. 행군 중에 총사로 나온 황제가 자꾸 물을 마신다면 병사들에게 있어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야. 그냥 가세. 의원들에게 일러 충분한 조치를 미리 마련하라 이르게. 더위를 먹는 병사들이 있을 수 있거든.
태평 예, 폐하
왕건 덥구먼, 참으로 더워...
그들은 그렇게 행군을 계속해 간다.
씬 어느 마을 길
넓은 황톳길 사이로 곳곳에 마을들이 보인다. 왕건 일행들이 그곳을 지나쳐 가고 있다. 덥다. 황제를 비롯해 모두들 더운 표정들이다. 얼마쯤 그렇게 가는데 왕건의 앞에 가던 내군들의 말이 멈춘다. 길가에 백성 둘이 죽어가고 있다. 사람들이 달려가서 본다.
복지겸 웬일들인가? 그 자들은 무엇이야?
신방 더위를 먹은 모양이옵니다, 장군.
왕건 저런, 세상에... 어서 약을 주고 그늘진 곳으로 데려가도록 하라.
군사들이 대답한다. 황궁에 있던 전의가 눈꺼풀을 까보다가 흠칫한다. 백성은 이내 떨다가 숨을 거둔다. 계속 고개를 꼬는 의원.
복지겸 왜 그러는가? 더위에 죽은 것이 맞는가?
의원 글쎄올습니다. 일단 그렇기 보기는 봐야겠습니다마는.... 어떻게 보면 역질 같기도 하고....
배현경 역질이라니...? 그것은 돌림병이 아닌가?
의원 예, 허나 확실한 것은 아직 아니옵니다. 몸에 나타난 열꽃으로 보아 그저 비슷한 것 같아서.... 앞서 가시오소서. 잘 살펴보겠사옵니다.
최응 돌림병이라면... 이거야말로 큰일이 아니옵니까?
왕건 어쨌든 딱하니 잘 묻어주라 이르라. 그리고 참으로 돌림병이라면 이는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의원들은 속히 대책을 마련하고 사실유무를 좀더 확인하라. 계속 가자.
모두들 예, 폐하.
행렬은 그렇게 계속 간다. 왕건이 가면서 계속 고개를 외로 꼰다.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다.
씬 또 다른 길
백제군들이 밀려오고 있다. 그들은 어느 냇가 마을길을 지나친다. 점차 마을입구로 들어서자 행군을 맡은 장군 상귀가 정지 신호를 내리며 한쪽을 본다. 까마귀 떼가 상공을 맴돌고 있다. 모두들 불길하게 본다.
견훤 왠 까마귀 떼인가...?
최승우 마을이 이상하리만큼 조용하옵니다, 폐하.
능환 행군 별감은 가서 알아보아라. (사이) 군사들을 잠시 쉬게 함이 어떻겠사옵니까?
견훤 그렇게 하세. 모두 피곤하고 목들이 마를 게야. 쉬었다 가세.
상귀 전군..... 행군중지하라... 잠시 휴식을 취한다.... 행군중지하라...
군사들이 부산하게 흩어지며 땀을 닦거나 그늘로 가거나 개울물을 엎드려 마시는 군사들도 보인다. 견훤들이 한쪽으로 큰 나무 그늘 밑으로 가면 상귀와 장수들이 집집을 돌아본다.
씬 그 골목
상귀와 부장들이 놀란다. 사람들이 집집마다 죽어있다. 어린 아이,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살아있는 사람이 보이지를 않는다. 뒤따라온 의사 훈겸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죽어있는 한 아낙의 시신을 살핀다. 그러다가 눈을 크게 뜬다. 아낙은 쌀뜻물 같은 허연 배설물을 쏟아놓았다. 훈겸은 입을 딱 벌린다. 그 충격적인 훈겸의 표정에서... 디졸브되면.
씬 그곳 견훤의 군막 외경 (밤)
견훤 (E)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 괴질...?
씬 동 군막 안
제장들이 모두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있다.
훈겸 괴질이 틀림없사옵니다. 괴질이라 함은 병명이 뚜렷이 나타나지 않는 돌림병을 일컫는 것이옵니다. 대부분 호역이라고도 하고 호열자라고도 하는 것을 일컫기도 하지만, 꼭 그렇다고만도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증상이 보이옵니다. 그래서 괴질이라 하는 것이옵니다.
최승우 어찌하면 막을 수 있겠소이까? 지금 그것이 급한 것이 아니겠소이까?
훈겸 한방에서는 여러 가지 괴질에 영신해독탕을 주로 쓰고 있사옵니다. 일단 그 약제에 소요되는 약초들을 대량으로 구입하여 조치하도록 하겠사옵니다.
종훈 돌림병이 돈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엄청난 군사적 손실을 의미하는 것이옵니다. 이를 극비에 붙이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하옵니다.
최승우 옳은 말이오. 폐하, 지금부터라도 군사들을 잘 단속하셔야 할 것 같사옵니다. 그리고 이 돌림병이 지금 어디까지 퍼져있는지 예의주시해 볼 필요가 있사옵니다.
공직 백성들이 무더기로 죽은 것으로 보아서 사태가 심상치 않은 것 같사옵니다. 대책을 먼저 서두르셔야 할 것 같사옵니다.
신덕 무엇보다도 돌림병은 그 예방이 필요하옵니다. 의원은 다른 여러 의원들을 동원하여 우선 약처방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오. 허허, 돌림병이라니요, 이런 악재가 있는가?
견훤 (고민이 많다) 하긴 이상한 여름이 아닌가 말이야? 절기로는 분명히 가을로 접어들고 있는데 폭염이 극성을 부리고 있어. 돌림병이 돌만도 하지. 허허.. 이를 어찌한다... 이를 어찌한다?
모두들 그렇게 초긴장의 상태로 모여있는데 밖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E) 폐하, 연산진에서 온 전령이옵니다.
견훤 들여라..
전령이 군막 안으로 들어와 군례를 들이고 말한다.
전령 폐하, 연산진과 임존군이 고려군 장수 유금필에게 모두 함락되었다 하옵니다.
견훤 함락이라니...? 아니, 고려군이 그리로 간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함락이란 말인가? 도대체 그곳의 장수들은 무얼 하고....?
전령 그곳의 성주인 길환장군이 전사를 하였고, 양쪽의 군사 삼천여 명이 죽거나 포로가 되었사옵니다.
신검 어떻게 그렇게 빠른 시일에 성이 두 곳이나 함락될 수 있단 말인가?
전령 그곳의 고려군은 총사로 나온 유금필 장군 이외에도 그 의제들인 신숭겸, 박술희 장군들과 더불어 고려의 명장들이 모두 참여해 있다 하옵니다.
최필 그렇다면 저들이 조물성을 치는 척하면서 실은 우리의 후미를 전면 노린 것이 아니옵니까?
김총 아무래도 그래 보이옵니다, 폐하. 연산진 쪽으로도 군대를 보낼 필요가 있어 보이옵니다.
애술 지금 군사를 나누는 것은 맞지 않사옵니다. 우리는 이미 조물성 가까이에 이르렀사옵니다. 지금은 조물성이 급하지 연산진이 급한 것은 아니옵니다.
견훤 옳은 말이야. 지금은 오로지 조물성이야. 허허, 이것 참.. 우리가 완전히 초반에 기운이 꺾이는 것 같구먼. 후방이 무너지고 돌림병마져 진중에 돌고 있어. 하하, 이 돌림병, 이게 더 문제야... 훈겸의원을 서두르게. 그리고 한편으로는 첩자를 적진으로 띄워보게. 지금 조물성에 오고 있는 고려군은 어떠한가 알아보란 말이야. 서둘러. 서둘러야겠어.
모두들 예, 폐하.
견훤 돌림병이라니...? 이 중요한 시기에 돌림병이라니...? 그리고 뭐? 연산진이 그리 쉽게 무너져...? 허, 이런....
씬 연산진 어느 일각
유금필의 군대가 진을 치고 있다. 신숭겸과 박술희, 왕충, 김언, 염상, 전이갑, 의갑 형제들이 보인다.
유금필 우리는 큰 손실없이 이곳 연산진과 임존군을 함락시켰소이다. 폐하께서는 지금 한참 대군을 이끄시고 조물성에 거의 다 당도를 하셨을 것입니다. 초반에 전과가 아주 좋소이다.
김언 그런 것 같사옵니다, 총사. 아주 만족할 만한 성과이옵니다. 이 두 성을 함락함으로써 저 먼 조물성까지 갈 수 있는 통로를 연 것도 의미가 크옵니다.
유금필 그러게 말이오. 이보게, 아우들?
두 장군 예, 총사
유금필 이미 승전보를 형님폐하께 전하였네. 이곳 일은 쉽게 마무리를 지었으니 언제든 조물성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미리 조치하도록 하게.
두 장군 예, 총사.
유금필 형님 폐하와 백제의 왕이 처음으로 맞붙는 대전일세. 절대로 여기에서 밀리면 아니될 것이야. 우리는 비록 폐하께서 부르시지 않더라도 폐하를 뒷받침할 준비를 확실하게 해 두어야 하네. 이를 모두들 명심하오.
장수들 예, 총사.
씬 조물성 근처 왕건의 군영
잠시 행군하는 길에서 휴식 중이다. 왕건이 올라온 장계를 보며 끄덕인다. 야전 회의장이다.
왕건 허허허... 금필 아우가 연산진과 임존군을 함락시켰다는군요. 무려 삼천 명이나 되는 군인을 죽이거나 포로로 하였답니다. 큰 전과올시다. 우리도 서둘러야 겠소이다.
최응 백제군도 조물성 밖으로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 하옵니다.
태평 생각보다는 백제군의 행군이 속도가 느린 것 같사옵니다. 우리 계산대로라면 벌써 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옵니까?
배현경 날이 워낙 덥사옵니다. 구월이 넘어서 이리도 더운 것은 처음 보옵니다. 백제군도 그 때문에 아마 늦을 것이옵니다.
홍유 그럴 것이옵니다. 저희 군사들도 지쳐서 더위를 먹은 병졸들이 한둘이 아니라 하옵니다.
왕건 그럴 수록 저들을 잘 보살피고 쉬게 하여야 합니다. 무리하게 행군을 강요하거나 해서는 아니 됩니다. 더위라는 것은 사람들을 쉽게 짜증나게 하고 지치게 하는 것이에요.
최지몽 그러하옵니다. 이 더위가 참으로 예사롭지 않사옵니다.
태평 허허허... 그래서 그런지 신도 먹은 것이 자꾸 거북하고 트림이 오르는 것이 아무래도 배탈이 난 것 같사옵니다.
왕건 조심하여야지. 더위에는 반드시 배탈이 온단 말일세. 그대는 병부령이고 동시에 순군부를 맞은 수장이야. 아픈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 되네. 어서 가서 의원에게 약처방을 내라 하게.
태평 예, 폐하. 거 참, 조금 전에도 괜찮았는데...
왕건 어서 의원을 찾아가 보게. 그리고 경들도 수하부장들을 독력하여 각별히 이 더위 병에 조심들 하라 하오. 상한 음식을 먹어서도 아니 되고 더러운 물을 먹어서도 아니 되오. 하여튼 더위에는 조심할게 너무 많아요.
씬 동 진중 안 어느 군막
복지겸과 신방이 의원과 함께 아픈 병사들을 돌아보고 있다. 더위 먹은 많은 군사들이 누워 있거나 구토, 설사를 하며 신음을 하고 있다. 거기 전의들이 군사들을 살피고 있다. 한둘이 아니다. 수십, 수백이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들것에 군사들이 실려오거나 업혀오고 있다. 극심한 열에 시달리며 물을 달라고 애원하는 군사들이 보인다. 그 군사를 의원이 살피고 있다. 충격이다. 눈꺼풀을 까보고, 피부를 만져보고, 토해내는 오물을 받아본다. 그는 파랗게 질리고 있다. 복지겸이 보다가 묻는다.
복지겸 이보시오, 의원? 왜 그리 놀라시는 게요?
의원 이 병사를 보시오소서.. 더위를 먹은 것이 아니옵니다.
복지겸 뭐요...? 그럼 뭐란 말이요?
의원 아픈 병사들 대부분이 쉬임 없이 고열을 앓으며, 구토, 설사를 하고 있사옵니다. 목소리가 쉬고 맥박이 약해지면서 탈진하여 죽어나가고 있사옵니다. 돌림병이옵니다. 괴질이에요.
복지겸 무어라....? 괴질..?
의원 그렇사옵니다. 이 병에 걸리면 이틀을 견디기 어렵사옵니다. 그 이틀안에 모두들 숨을 거두는 무서운 급성 돌림병이옵니다.
씬 동 군영 태평의 군막
태평이 구토를 하고 있다. 그리고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다. 오한과 전율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숨이 차서 몹시 헐떡거린다. 열 때문이다. 헛구역질을 그렇게 계속 한다.
태평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시종 (대답하며 들어선다) 예, 어르신.
태평 의원... 의원을 불러라... 춥구나... 너무 춥고 떨리는 구나.... 어지럽다.. 몸을 가눌 수가 없어... 속은 또 왜 이렇게 메스껍단 말이냐... 의원... 의원을 불러라....
시종 예, 병부령 어른.
시종이 달려나간다. 태평은 더욱 헐떡거리며 자신의 목을 쥔다.
태평 물.... 물..... 물....!
괴로움에 절규하는 태평의 모습에서....
<145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