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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대본

[태조 왕건] 146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7.12.06|조회수2,247 목록 댓글 0

태조 왕건 <제 146회>


<줄거리>


의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뚜렷한 처방을 찾지 못한 채 괴질의 피해는 갈수록 커간다.  견훤 진영의 태자 금강 또한 괴질로 인해 쓰러지고,  금강을 구하기 위해 견훤은 눈물겨운 기도를 올린다.  백제의 종군의원훈겸은 우연히 새벽녘 강가에서 기이한 노인으로부터 중요한 약 처방을 얻게되고, 금강을 비롯한 백제진영은 안정을 찾으나 반면 왕건은 끝내 금강전투의 주역인 태평을 잃게 되는데...

 

 

 

 

씬  고려군 군영 (밤)

 

        곳곳이 아우성이다. 군막마다 돌림병에 걸린 군졸들로 아우성이다. 물을 찾거나 구토를 하거나 사경을 헤매는 병졸들이 많다. 의원들이 이리저리 매우 바쁘다. 그리고 계속 환자들이 옮겨지고 있으며 한쪽으로는 죽은 시체들이 옮겨지고 있다.  

 

씬  동 태평의 군막

 

        태평이 침상에 누워있다. 여전히 오한으로 떨고 있다. 최응이 헝겊에 물을 묻혀 입술을 적셔주고 있다. 의원과 더불어 왕건, 복지겸, 홍유, 배현경, 최지몽이 보고 있다. 의원이 보다가 도리질을 한다.

 

왕건    말해보라. 어찌된 것인가? 병부령이 왜 이 모양인가?

의원    그 병이옵니다.

왕건    그 병이라니..?

의원    괴질이옵니다.

왕건    괴질이라..?

복지겸  말씀드렸다시피 전 진중으로 돌림병이 급속히 퍼져나가고 있사옵니다. 벌써 수백의 군졸들이 숨을 거둔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모두들  ...........?

왕건    말도 아니 되는 소리. 우리가 이 돌림병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만 하루밖에 되지 않았어. 그런데 벌써 군사들이 수백이나 죽어나간다는 말인가?

의원    사실이옵니다, 폐하. 이 괴질은 여러 가지로 복합적인 것을 띄고 있사옵니다. 어떻게 보면 호열자(콜레라)도 같고, 또 어떻게 보면 역질(천연두)도 같고 또 살펴보면 흑삿병(페스트)도 같사옵니다.

왕건    그런 말이 어디 있는가? 정확하게 무슨 병인지 알아야 대책이 세워질 게 아니겠는가?

의원    그렇기 때문에 괴질이라 하는 것이옵니다. 정확히 병명을 알지 못할 때 의원들은 그것을 괴질이라 하옵니다.

왕건    이런 날벼락이 있는가? 도대체 이게 무슨 변이란 말인가?

 

        태평이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다. 눈빛마저 흐려져 있다.

 

최응    정신차리십시오. 눈을 좀 떠보십시오, 병부령?

태평    추워.... 너무 춥소이다... 목이... 말라.... 

최응    이보시오, 의원? 어떻게 좀 해보시오. 온 몸에 열이 불덩이 같소이다. 열꽃이 오르면 몸이 추운 것이 아니겠소이까?

의원    이미 이 사람이 알고 있는 약재란 약재는 다 동원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이 내리지 않는 것은 이 병의 균이 워낙 다스리기 어렵기 때문이오이다.

왕건    이게 무슨 일인고...? (다가가 가까이 본다) 이보게, 태평이? 날세. 황제일세. 나를 알아보겠는가? 나를 알아보겠어?

태평    (간신히 끄덕인다) 예.... 폐..하.. 소..송구하옵니다... 소신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요...

의원    폐하, 가까이 하지 마오소서. 내봉성령께서도 멀찍이 떨어져 계셔야 하옵니다. 서로 마주보고 말씀을 나누지 마오소서. 병균이 지독하여 어디로 파고들지 모르옵니다. 어서 떨어지오소서.

모두들  ............ ?

배현경  폐하, 의원의 말이 일리가 있사옵니다. 좀 거리를 두시오소서.

의원    거리뿐이 아니옵니다. (손을 입을 가리면서) 숨을 쉬는 코와 입을 모두 천으로 가려서 병균의 이동을 막아야 하옵니다. 되도록이면 이곳을 나가시는 것이 좋겠사옵니다. 이곳은 이미 위험하옵니다.

홍유    그리하시오소서, 폐하. 비록 병부령의 병세가 위중하기는 하나 돌림병이 아니옵니까? 어서 이곳을 나가시오소서.

태평    예... 폐..하... 어서... 나가... 시오소서.... 어서...

최응    (딱한 듯 더욱 들여다보며) 어찌하면 좋습니까? 이곳까지 와서 돌림병에 걸리다니... 어찌하면 좋습니까, 병부령..?

태평    어서... 어서... 내봉성령도.. 나가시구려... 나가시구려... 위험하오...

의원    그렇게 가까이 계시면 아니 된다 하지 않았사옵니까? 떨어지시오소서, 어서요.

왕건    이보게, 태평이... 괜찮을 게야. 병이 있으면 반드시 약이 있는 법.. 괜찮을 게야. 조금만 더 고통을 참고 있게나. 이보게, 태평이..?

 

        왕건은 목이 메인다. 그렇게 온 몸을 떨며 헐떡거리는 태평이 딱한 것이다. 의원이 다시 종용한다.

 

의원    이곳을 나가셔야 하옵니다. 어서 밖으로 납시오소서, 폐하.

복지겸  폐하, 그리 하시오소서. 의원이 누차 청하고 있지 않사옵니까?

왕건    어찌하면 좋을꼬...? 이런 벼락이 있는가? 이런 벼락이 있어..?

 

        왕건이 한숨을 쉰다. 태평이 어서 나가라고 눈짖을 한다. 왕건이 돌아선다. 그리고 그 군막을 나선다. 모두들 따라 나선다. 태평이 안타깝게 나가는 그들을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최응이 나가다 말고 다시 보다가 그의 군막을 나가면, 다시 헐떡거리며 더욱 죽어가는 태평의 모습에서...

 

씬  그곳 군영 안 어느 마당

 

        왕건과 장수들 일행이 오고 있다. 얼굴을 싸맨 병졸들이 시체를 끝없이 나르고 있다. 왕건이 오다말고 서서 넋잃은 듯 보고 있다. 신방이 소리치고 있다.

 

신방    시체들을 모두 한 곳에 모아라. 절대로 여기저기 묻어서는 아니 된다. 시체들의 옷가지며 음식물이며 모두 다 태워버려라. 기름을 있는 대로 모두 다 가져오너라. 시체를 다 소각해야 한다.

 

        그 소리들을 왕건이 듣고 있다. 군사들이 이리저리 다 뛰고 있고 그 참상이 말할 수 없이 펼쳐져 보여진다. 한쪽에서는 불꽃이 오르고 그 큰 불구덩이 속으로 시체들이 던져지고 있다.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한다. 왕건은 그저 그렇게 얼어붙은 듯 보고 있다.

 

왕건    어이할꼬..? 이 일을 어이할꼬...?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디졸브되면

 

씬  왕건의 군막 안

 

        왕건을 비롯한 제장들이 회의를 열고 있다. 왕신, 박수문, 박수경 형제, 최응, 최지몽, 복지겸, 홍유, 배현경, 신방들이다. 

 

왕건    뜻밖에 큰 허를 찔렸소이다. 이제와 생각하니 백제군이 왜 아직도 머뭇거리며 조물성 밖까지 도착하지 못하고 있는 지를 알
 것 같소이다.
최응    이번 전투는 먼저 괴질과의 한판을 어떻게 치루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사옵니다. 우리보다도 의원들이 어떻게 약재와 처방을 마련하는가가 근본적 해결책이옵니다.

왕신    돌림병이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옵니다. 지금쯤 백제의 사정이 어떠할 지도 알아보아야 할 것이옵니다.

박수문  그러하옵니다. 백제 또한 우리와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그 사정이 비슷할 것이옵니다. 이럴 때일수록 적의 동정을 파악하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아니 될 것이옵니다.

홍유    그는 그러하옵니다. 이 돌림병의 원인과 규모가 과연 어느 정도인지, 백제는 어찌하고 있는지 살피는 것이 옳을 것 같사옵니다.

복지겸  신이 생각하기로는 이미 우리 고려와 백제가 이곳에서 싸움을 하기는 어렵다고 여겨지옵니다. 하룻밤 사이에 수백 씩 쓰러져 가는 마당에 어찌 전투가 있을 수 있겠사옵니까? 문제는 약이옵니다. 약을 찾아야 하옵니다. 너무 급하옵니다, 폐하

왕건    같은 생각일세. 이 마당에서 무슨 전쟁을 논할 것인가? 어찌 싸울 수가 있겠어? 의원은 어찌 생각하는가? 지금 이만에 가까운 장졸의 목숨이 그대에게 달려있어.

의원    참으로 망극하옵니다, 폐하. 보통 의원들의 상식으로는 이런 괴질에는 영신해독탕을 쓰옵니다. 그 재료가 광활과 독활, 원방풍, 백지, 천궁, 창률, 황기, 생지황 등을 쓰옵니다마는 이번 병증은 그 상태가  하도 복잡하여 처방이 먹히지를 않고 있사옵니다.

왕건    지금은 변명을 할 때가 아니라 어떻게든 고칠 수 있는 약을 찾아야 할 때이니라. 약 말이다. 경을 따라온 많은 수하 의원들을 다 동원하여 어서 약을 찾아라. 어떻게 하든 약을 찾아야 해. 약을....!

최응    당장 약이 없더라도 더 이상 병이 퍼지지 않도록 해야할 방책을 내 놓아야 할 것이오. 이 밤에 확인된 시체들이 수백이라 하면 내일은 수천으로 늘어나는 것이 돌림병이올시다.

홍유    그건 그렇소이다.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이까?

의원    달리 방법이 없사옵니다. 일단은 병이 옮겨진 병자들을 격리 수용하고 음식물은 모두 끓여 먹어야 하며, 물 또한 그냥 마셔서는 아니 되옵니다. 시체는 모두 태워야 하며 그들과 접근했을 때에는 손발을 끓는 물에 씻고 병균의 접근을 막아야 하옵니다. 지금으로서는 그것 뿐이옵니다.

왕건    아하, 이런... 이렇게 답답할 때가 있는가? 수백의 병졸이 죽어가고 있어. 병부령 태평도 죽어가고 있어. 아하, 이를 어이할꼬.. 이를 어이해..?

 

        안절부절 못하는 왕건의 표정에서...

 

씬  견훤의 군영 (낮)

 

        아비규환이다. 이곳에서도 견훤이 몸소 보고 있다. 견훤이 계속해 인상을 찌푸리며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 이곳에서도 산더미같은 시체들이 불구덩이에 던져지고 있다. 그리고 그 연기가 주변 일대를 덮고 있다. 신료들과 함께 대야성부터 함께 온 진호도 보인다.

 

견훤    아아.... 저들이 모두 나의 군사들이란 말인가? 저렇게 많은 목숨들이 간밤에 모두 죽었단 말인가?

제장들  .......

견훤    내가 뭐라고 하였는가? 자네는 의원이야. 지리산에서 이름께나 얻었다는 명의라는 자가 이런 괴질하나 해결하지 못한단 말인가? 보게. 저들을 보아. 간밤에 천여 명이 넘는 군사가 죽었다는 게야. 천여 명이 넘는 군사가 말이야.

훈겸    .............

능애    폐하의 말씀을 들었습니까? 천여 명이 넘는 군사가 죽었어요. 그리고 또 죽어가고 있구요. 의원으로서 해결방안을 내야할 것이 아니오이까?

능환    그렇구 말구. 이곳은 전장터일세. 병과 싸우는 것 또한 전쟁이야. 자네는 자네 소임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야. 약을 찾아내야 하네. 약을....

훈겸    드릴 말씀이 없사옵니다, 폐하. 이미 쓸수 있는 처방은 모두 썼사옵니다. 하오나, 전혀 효험을 못보고 있사옵니다. 신도 속이 타옵니다. 의원 생활 30년에 이런 돌림병은 처음 보옵니다.

견훤    그건 다 마찬가지야. 우리도 항상 전장터에 나가보면 늘 새로운 전투가 기다리고 있다네. 언제나 새롭지. 그러나 늘 해결을 해왔어. 그대도 마찬가지야. 의원으로서 해결을 해야해. 이 난제를 풀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니 되네. 우리는 지금 조물성을 눈앞에 두고도 가까이 가지 못하고 있어. 이러다가 우리 군사 이만이 오도가도 못하고 여기서 다 죽게 생겼어. 이렇게 빨리 번지다가는 며칠이나 가겠나? 며칠이나 가겠어...?

 

        그때, 신덕이 부장들과 함께 다가와 군례를 올린다.

 

신덕    폐하, 여기 계셨사옵니까? 첩자들이 고려군의 동정을 돌아보고 왔사옵니다.

견훤    오, 그래. 고려쪽은 어떠하다 하던가?

신덕    그 쪽 또한 사태가 아주 심각하다 하옵니다. 지난 밤에 수를 셀 수 없는 군사들이 죽어나가 그 시체를 태우는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다 하옵니다.

애술    헤헤헤... 저들이라고 별 수가 있겠사옵니까? 돌림병이 어디 이쪽저쪽 사정 봐주고 가는 병이옵니까? 저들도 큰 곤욕을 치루는 모양이옵니다. 이럴 때에 아픈 병사들은 놓아두고 날랜 병사를 가려 뽑아서 조물성을 드려 치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공직    말도 아니 되는 소리. 이것은 돌림병이라고 하지 않았소이까? 어느 누가 병증을 가지고 있는지 그 자체를 알지 못하는 것이올시다. 어떻게 공격을 감행할 수가 있단 말이오? 

신검    그렇기는 하지만 여기서 발목이 잡힐 수는 없사옵니다. 일단 조물성 가까이 가서 진을 펼쳐야 하옵니다.

상귀    신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폐하, 여기서 멈추어 있을 것이 아니라 속히 조물성 가까이 가도록 행군을 명하시오소서.

최필    모처럼 폐하께서 세우신 큰 뜻이 훼손될까 두렵사옵니다. 아픈 병사들은 가려서 제쳐놓고 행군을 명하시오소서.

견훤    (도리질한다) 아니야... 그것도 어느 정도라야지? 이대로는 무리야. 아하, 이런 복병을 만나다니... 이렇게 무서운 복병을 만나다니...아하. 어쨌든 약을 찾아. 병의 증세가 너무 빠르고 치명적이야. 불과 하루 이틀 사이에 고열에 시달리다가 숨을 거두고 있지 않은가 말이야. 약을 찾아봐, 약을....

훈겸    예, 폐하.. 노력해 보겠사옵니다.

견훤    저런, 저런...저런..

 

        견훤의 앞으로 숱한 시체들이 마차에 포개져 실려서 임시 화장장인 불구덩이 쪽으로 가고 있다. 견훤이 계속 안타깝게 혀를 찬다.

 

씬  견훤의 군막

 

        견훤이 홀로 뒷짐을 지고 서성거린다. 최승우가 보고 있다.

 

견훤    이런 악재를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하였네. 참으로 무섭구먼. 이 밤이 새고 나면 또 얼마나 죽어갈 것인가?

최승우  그러게 말이옵니다. 신도 도무지 전혀 도움이 될만한 생각이 떠오르지를 않사옵니다.

견훤    자네는 그 의원 훈겸이라는 사람을 지리산에서 이름을 얻은 큰 명의라하였네마는 그렇지가 못한 것 같네. 속수무책이 아닌가 말이야. 전혀 손을 못쓰고 있어.

최승우  폐하의 말씀처럼 복병을 만난 것이옵니다. 세상에 많은 병이 있사오나 그 병이 모두 한결같은 것은 아니옵니다. 이 괴질 또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여러 증상들이 겹쳐있다 하옵니다. 하오니 어찌 명의라 한들 쉽게 처방이 있겠사옵니까?

견훤    무슨 소리야? 명의는 명장과도 같은 의미야. 명장은 좋은 장수를 뜻하는 것이고 명의는 이름난 의원을 뜻하는 것이야. 그렇다면 그에 걸 맞는 이름 값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큰일일세. 이거 정말 오도가도 못하게 생겼어. 우리는 우리대로 또 고려의 왕은 고려의 왕대로 모두 발목을 잡히고 말았어. 어허, 이런... 이런...

 

        한숨을 쉬는 견훤의 귓가로 천둥소리가 들려온다. 더욱 답답한 듯 군막 쪽을 보는 그 표정에서...

 

씬  동 군영 마당 일각 (밤)

 

        천둥번개가 치며 비가 쏟아진다. 훈겸이 그 어지러운 주변을 보며 홀로 생각에 잠겨 있다.

 

훈겸    (E)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괴질이다. 약이 전혀 듣지 않고 있어. 게다가 병이든 군사들은 하나같이 무서운 고열에 시달리고 있다. 문제는 열이다. 열을 다스려야 한다. 열이다. 이걸 어이할꼬...? 이제 비까지 쏟아지고 있으니 이 비가 멈추고 나면 병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아하, 이 일을 어이할꼬...?

 

        훈겸은 그렇게 도리질을 한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다.

 

씬  고려군 진영

 

        이곳에서도 어둠 속에 비가 쏟아지고 있다. 천둥번개가 쉬임 없이 울고 있다.

 

씬  왕건의 군막 안

 

        천둥번개소리가 들려온다. 왕건도 초조하다. 복지겸과 함께 의원이 죄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왕건    아직도 약을 마련하지 못하였는가?

의원    죽을죄를 짖고 있사옵니다, 폐하. 아무리 처방전을 다 뒤져도 도무지 병을 다스릴 길이 보이지 않나이다.

복지겸  본래 돌림병이란 이렇게 비가 쏟아지고 난 뒤에는 그 습한 기운 때문에 더욱 기승을 부리는 법이오. 당장 내일이 또 문제가
 아니겠소이까?
의원    그러하옵니다. 소인도 그것이 걱정이옵니다, 장군.

왕건    내봉성령과 최지몽이는 어디를 갔는가?

복지겸  병부령 태평이 더욱 위독하다 하옵니다. 아마도 그 처소에를 간 듯하옵니다.

의원    아니 되옵니다. 그곳에 가셔서는 아니 되옵니다. 아이고, 이런...

왕건    조심들을 해야지. 의원의 말을 들을 것은 들어야지. 이런 사람들 하고는..

 

씬  동 태평의 군막 안

 

        태평이 죽어가고 있다. 더욱 가쁜 숨을 몰아쉰다. 최응이 물수건으로 이마를 적셔준다.

 

태평    물... 물... 물...

최응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그래도 남들은 하루 이틀에 변을 당했으나 병부령께서는 오늘이 사흘째입니다. 용기를 내세요.

태평    (간신히 끄덕인다) 그래야지요... 조금만... 더도말고.. 조금만 더.. 살고 싶소... 폐하께서 이루시는... 삼한의 통일 대업을... 보아야지요... 보아야지요...

 

        태평은 그렇게 간신히 중얼거리며 헐떡이다가 정신이 혼미한 듯 눈을 감는다. 그렇게 가쁜 숨만 몰아쉰다. 최지몽이 말없이 보고 있다. 최응은 계속 수발을 들어준다.

 

최응    이분은 그 옛날 제갈공명보다도 더 위대한 분이실세. 실제로 천문과 학문에 능통하고 천기를 읽을 줄 알아 수없이 많은 공을 세우며 폐하를 도와드렸네.

최지몽  알고 있사옵니다.

최응    제발, 나아야 할텐데... 일어나야 하는데...

 

        천둥소리가 계속해 들린다. 미풍에 촛불이 일렁거린다. 다시 또 태평이 희미하게 눈을 뜬다.

 

최응    정신이 드십니까, 병부령? 일어나셔야 합니다. 꼭 일어나셔야 합니다.

태평    (조금 숨을 고르며) 잠깐... 꿈을... 꾸었소이다... 아주.. 예쁜... 가마를 타고... 구름위로 올랐어요... 거기... 아주 큰 궁전이.. 있더이다.. 궁전이... 내가 살기는... 살 모양입니다.... 허허, 참.... 별 꿈도...

 

        태평은 또 잠이 든다. 그렇게 고른 숨을 쉰다. 별로 힘이 들어보이지 않는다.

 

최지몽  잠이 드신 모양이옵니다. 그만 나가시지요?

최응    그렇게 하세. 아하, 제발 별 일이 없어야 할텐데..

 

        그들은 그렇게 군막 문 가까이 다가선다. 그러면서 최지몽이 나직이 말한다.

 

최지몽  어르신, 지금 병부령께서 하신 꿈 이야기 말이옵니다.

최응    말해보게.

최지몽  이미 운명을 다했다는 예시이옵니다. 아마도 이틀을 넘기시기가 어려우실 것이옵니다.

최응    뭐라..?

최지몽  좋은 가마를 타고 새 집을 보는 것은 이승을 떠난다는 뜻이옵니다.

최응    이 사람아, 그 무슨..?

최지몽  그만 나가시지요?

 

        그 위로 소리가 들려온다.

 

왕건    (E) 무어라..? 이틀을 넘기기가 어려워...?

 

씬  왕건의 군막 안

 

        제장들이 모두 모여있다. 왕건이 다시 묻는다.

 

왕건    말해보게. 지금 뭐라고 하였어?

최지몽  꿈풀이를 하여본 결과 그렇게 풀이가 되옵니다. 

왕건    이런, 이런.... 어떻게 태평이 죽을 수가 있단 말인가? 어떻게 태평이가 죽어?

제장들  .........

최응    사람의 목숨은 그 귀천을 가리지 않고 때가 되면 가는 것이라 알고 있사옵니다. 신이 보기에도 이미 그 병증이 극을 달하여 더 이상 낙관하기가 어려울 것 같사옵니다.

왕건    아하, 아무리 그렇다 하여도 태평이 누군가? 태평이 누구인가? 어떻게 하든 살펴보도록 하게. 이보게 전의, 제발 좀 살려보게. 어떻게 하든 살려보아, 이 사람아.

의원    송구하옵니다, 폐하. 차라리 신을 죽여주시오소서.

왕신    폐하, 이러다가는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까 두렵사옵니다. 차라리 회군을 하심이 어떠하시옵니까?

홍유    회군은 아니 되오? 우리의 이런 어려움은 백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첩보병의 이야기로는 백제도 지금 수천의 군사들이 희생되고 있다 들었소이다.

배현경  그쪽 또한 지금 정신들이 없을 것이옵니다. 이번 전쟁은 어느 편이 언제, 어떻게 이 괴질과 싸워 먼저 이기는가 하는 것이옵니다. 괴질과의 전쟁이옵니다, 폐하.

복지겸  본래, 무더위에 발생한 괴질은 추위가 오면 물러가옵니다. 신이 생각하기로는 이 더위가 꺾일 때까지 병마와 싸워 이겨내는 요령이 필요할 것 같사옵니다. 그때까지 좀더 모든 장졸들에게 주위를 요하게 하시고 인내 하심이 옳을 것 같사옵니다.

왕건    하지만 너무 참혹하지 않은가? 검이나 창 한자루 들어보지 못하고 속절없이 군사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도대체 언제까지 날씨가 바뀌기를 기다린단 말입니까? 언제까지...

 

씬  인서트 (강변)

 

        백제군의 진영은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다. 곳곳에 수없이 세워진 군막들 사이로 의원의 말이 들려온다.

 

훈겸    (E) 태자마마. 목이 타시옵니까?

 

씬  동 군막 안

 

        훈겸이 놀란 표정으로 이미 고열에 들떠 누워있는 금강을 보고 있다. 그 옆으로 놀란 표정의 견훤과 능애, 최승우, 능환, 신검, 양검, 용검, 종훈이 보고 있다.

 

훈겸    목이 타시옵니까, 태자마마?

금강    그렇습니다. 너무 춥고 또 오한이 납니다.

견훤    그 병인가?

훈겸    그런 것 같사옵니다.

능애    그런 것 같다니...? 그럼 괴질이란 말인가? 바로 그병이란 말이오?

훈겸    예, 장군.

견훤    말도 아니 되는 소리. 우리 금강이가 괴질에 걸렸단 말인가? 바로 그 괴질에...?

훈겸    얼굴이 달아오르고 이미 열이 과하여 가슴까지 치미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사옵니다. 더 이상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격리해서 수용하셔야 할 줄로 아옵니다.

 

        금강은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구토를 하고 흰 분비물을 토한다. 훈겸이 보다가 도리질을 한다. 견훤이 눈을 감고 어쩔 줄을 모른다. 

 

견훤    아아... 우리 금강이가... 이 병에 걸리다니.. 이를 어찌할꼬? 이를 어찌할꼬..?

금강    아바마마, 목이... 목이...  타옵니다. 너무... 숨이... 차옵니다, 아바마마..

신검들  ............

견훤    어떻게 좀 해보아, 이 사람아. 우선 열이라도 좀 내려줘야 할 것 아닌가? 이러다가 숨이 막혀 죽겠네 그려. 금강아, 정신을 놓아서는 아니 된다. 아비 말을 알아듣겠지? 정신을 놓아서는 아니 되느니라. 어이구, 이를 어찌할꼬? 왜 하필 금강이에게 이런 일이 닥친다는 말인가? 왜.......

신검들  ...........?

능애    어찌되었든 폐하, 일단 이 자리를 피하시오소서. 폐하의 옥체가 염려되옵니다. 이곳은 의원에게 맡기시고 그만 나가시오소서.

견훤    이보게, 아우.. 금강이가 괴질에 걸렸다는 것이야. 금강이가.. 하늘도 무심하시지. 우리 금강이가 말일세. 어이구, 어이구....

 

        견훤은 그렇게 답답해한다. 신검 형제들은 아무 말이 없다. 한숨을 쉬는 견훤과 그리고 견훤이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그 훈겸의 표정에서....  디졸브

 

씬  인서트 (동 새벽)

 

        회색 빛 여명이 밝고 있다. 강가에는 물안개가 피고 있다. 비는 여전히 간간이 뿌리고 있다. 훈겸이 그 강둑을 천천히 바라보고 있다.

 

훈겸    (E) 이렇게 모두다 끝을 내려고 하시는가? 하늘이 참으로 무심하시다. 전장에서 죽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병마로 사람을 이처럼 많이 죽이시다니... 이제는 태자마마까지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다. 아하, 이를 어이할꼬..? 참으로 의원이 된 것이 한스럽구나.

 

씬  견훤의 군막 외경

 

씬  동 군막 안

 

        견훤이 머리를 싸매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그리고 도리질을 한다. 그는 비몽사몽이다. 기도하듯 그렇게 두 손을 모으고 있다.

 

견훤    하늘이시여. 우리 금강이를 살려 주시오소서. 제 가장 아끼는 자식이옵니다. 살려 주시오소서. 이렇게 비옵니다. 제발 목숨은 거두지 말아 주시오소서, 제발....

 

씬  금강의 군막

 

        금강이 죽어가고 있다. 그렇게 가슴을 쥐어 뜯으며 헐떡거리고 있다.

 

금강    아바마마... 아바마마... 살려주오소서... 아바마마..

 

씬  다시 견훤의 군막 안

 

견훤    (계속 기도한다) 하늘이시여.. 우리 금강이만은 살려주시오소서... 생애 태어나서 처음으로 간구하옵니다. 내 자식 금강이를 살려 주시오소서. 살려 주시오소서, 하늘이시여...그리고 조상님들이시여.. .굽어 살피시오소서.  한번 더 굽어 살피시오소서.

 

씬  백제군 진영의 그 강변 (새벽)

 

        여전히 훈겸이 물안개 피는 강뚝을 보고 있다. 얼마쯤 그렇게 서 있었을까, 비는 멈추었고 강변 갈대밭 쪽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인다. 훈겸은 잠에서 깨어난 듯 본다.

 

훈겸    이 이른 아침에 웬 백성인고..? 고기를 잡는 것인가?

 

        훈겸은 홀린 듯 다가간다. 점차 가까워지면서 웬 노인 하나가 진흙뻘을 호미로 캐고 있다. 그리고 지렁이를 잡아 작은 소쿠리에 담고 있다. 훈겸이 가까이 와서 보다가 묻는다.

 

훈겸    아니, 노인장. 거기서 무얼 하시는 게요?

노인    무얼 하다니요? 보다시피 지렁이를 캐어 담고 있소이다.

훈겸    아니, 고기를 잡는 것도 아니고 지렁이는 무엇하러 잡는다는 말씀이오?

노인    허허, 이런... 댁의 몸에서 감초냄새가 나는 것을 보니 본업이 의생인 모양인데 지렁이도 모르시오?

훈겸    예...?

노인    지금 엄청난 괴질이 이 일대를 휩쓸고 있소이다. 그 병은 누구나 열을 내리게만 한다면 금방 쉽게 나을 수 있는 병이외다.

훈겸    그야 그렇사옵니다마는...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이라야지요. 아무리 처방을 써도...

노인    본래 지렁이는 열을 내리는 데에 있어 큰 효과를 보는 약재인데 사람들이 그걸 몰라요. 안타까운 일이지.

훈겸    오, 그렇사옵니까? 약을 아시는 걸 보니 의업을 닦으셨나 보옵니다.

노인    천만의 말씀이오. 내 아끼는 후손 하나가 자식을 살려달라고 하도 애원하길래 이렇게 뻘밭에 나온 것이외다. 허허허, 세상 참.. 그 미련한 놈이 전생이 제가 지렁이의 화신인줄도 모르면서 나를 보고 자식을 살려달라 하니... 얼마나 아둔한 놈인가 말이오? 그 놈이 태어날 때에 태몽이 있었는데, 제 어미가 지렁이 허리에 긴 실을 꿰는 꿈을 꾸고 낳은 놈이올시다. 그런데도 이것을 모르니.. 쯧쯧쯧...    

훈겸    (다른 생각은 없다) 헌데, 그 지렁이를 쓰면 정말로 이 괴질이 나을 수 있습니까, 노인장?

노인    허허, 지렁이는 본래 큰 열로 고생하고 헛것 광란이 보일 때에 쓰이는 명약이올시다. 일반 괴질에 두루 쓰이는 영신해독탕에다가 이놈만 씻어서 넣어 다리면 잘 들을 겝니다. 거기다가 오줌을 더 섞어 넣으면 효과가 배는 좋을 게요.

 

        노인은 계속해 뻘을 캐며 지렁이를 찾아다닌다. 훈겸은 그렇게 홀린 듯 본다. 생각과 계산이 돌고 있는 것이다.

 

노인    그래도 말이요. 다행인 것이 이 일대에서 여기만이 늪지대인지라 지렁이가 많다오. 다른 데는 눈을 씻고 볼래야 볼 수 없거든... 자, 이제 캘 만큼 캐었으니 가 보아야겠소이다.

 

        노인은 그렇게 갈대밭으로 여유 있게 사라진다. 훈겸이 혼자서 중얼거린다.

 

훈겸    지렁이라..?  지렁이라...? (이미 노인은 멀어진다) 아니, 이보시오, 노인장.... 노인장..... (이미 보이지 않는다) 이거 내가 이 이른 아침에 뭔가에 홀린 것이 아닌가? 지렁이라..?  지렁이라..? 그렇지.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민방약이 너무도 많다. 해볼 만한 일이 아닌가? 암,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때가 아닌가?

 

        훈겸은 그렇게 오던 길을 허겁지겁 되돌아 달리기 시작한다. 그런 그 표정에서... 디졸브

 

씬  백제군 진영 일각 (낮)

 

        훈겸이 약재를 다리고 있다 한소쿠리 잡아온 지렁이들을 물에 깨끗이 헹구어 온갖 약재와 더불어 탕기에 넣고 있다. 훈겸의 표정은 진지하기만 하다. 다른 수하 의원들이 모두 함께 분주하다. 부산한 작업을 끝내고 그 약탕기를 보는 훈겸의 표정에서...

 

씬  동 금강의 군막

 

        금강이 한쪽눈을 허옇게 뒤집고 있다. 견훤은 어쩔 줄을 모른다. 최승우, 능환, 종훈, 능애가 보고 있다. 모두들 이미 죽음이 오고 있음을 알고 있다.

 

견훤    금강아... 금강아... 정신 좀 차리거라. 아비가 보이느냐?

금강    ........... (병은 심해지고)

견훤    아비가 보이느냐, 금강아....? 그만 대야성에 있게 할 것을... 왜 너를 내가 데리고 왔단 말이냐? 정신 좀 차려 보거라. 금강아...

금강    아바마마.....

견훤    오냐, 말해보거라. 내 아들.. 말해보거라.

금강    아무래도 소자는 ....... 죽을... 모양이옵니다.

견훤    아니된다.. 죽다니? 네가 왜 죽어? 네가 왜?

금강    소자는.... 아버님을 뫼시고.... 고려를... 정벌하고... 삼한을.. 통일하는 것을... 보고 싶었사옵니다... 이렇게... 죽는다면.. 너무도.. 억울하옵니다...

견훤    그래, 안다... 안다.. 너는 그래서 내 자랑스러운 자식이다. 죽음이 눈앞에 왔는데도 그 어린 마음으로 삼한 통일을 생각하다니.... 아, 너는 살아야 한다. 너는 살아야 한다.

모두들  .........

 

        그때, 훈겸이 군막문을 열고 약탕기를 받쳐 온다.

 

견훤    훈겸이 아닌가? 그것은 무슨 약인고...?

훈겸    이 약이 얼마나 효험이 있을 지는 모르옵니다. 다만, 태자마마의 병증이 하도 급하여 급히 대령하였사옵니다. 이 약은 한 노인을 만나 처방을 받은 약이옵니다. 영신해독탕에 지렁이를 넣었으니 영신지룡탕이라 부름이 마땅할 것이옵니다. 

견훤    노인을 만나...? 지렁이...?

훈견    일단, 시간이 촉박하니 태자마마께 드시게 하시오소서. 결과를 보면서 차차 과정을 말씀 올리겠사옵니다.

견훤    그렇게 하세. 어서 먹이도록 하세.

 

        의원들이 다가가 금강이를 부축하고 입에 약을 넣는다. 금강이 그 약을 마신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눕는다. 모두들 그렇게 보면... 디졸브.

 

씬  견훤의 임시 군영 안

 

        견훤이 놀라서 되묻고 있다.

 

견훤    지금 뭐라고 하였는가? 강가 늪지대에서 노인을 만났는데 뭐가 어떻다고...?

훈겸    예, 폐하. 신이 만난 노인이 이르기를 자신의 어리석은 후손 하나가 자식을 살려달라고 하도 애원하기로 지렁이를 캐러 나왔다고 하였사옵니다.

견훤    그래서...?

훈겸    그 노인은 지렁이의 효험을 알려주면서 자신의 그 후손이 지렁이의 태몽을 꾸고 태어났으면서도 지렁이의 약효를 모른다며 안타깝다고 하였사옵니다.

견훤    (뭔가 충격이 온다) 더 자세히 말해 보게. 그 지렁이 이야기 말이야.

훈겸    그 노인은 자신의 후손이 태어날 때에 그 어미가 지렁이의 허리에 긴 실을 꿰는 태몽을 꾸고 태어났으면서도 그것을 모른다고 하였사옵니다.

견훤    그랬어.... 그 노인이 어디에 산다고 하던가..?

훈겸    미처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었사옵니다. 신은 오로지 약처방을 받는데에 급급하여...

견훤    오오... 조상님들이 도우셨구나. 조상님들이 현신을 하신 게야.

모두들  ...........?

견훤    내 기도를 들으셨구나. 조상님들이 내 기도를 들으셨어. 이보게, 훈겸이, 그대가 본 것은 헛것이 아니다. 짐의 조상님들께서 자식을 살려달라는 내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게야. 바로 짐이 그러했느니라. 내 어머님께서 그러한 태몽을 꾸시고 나를 낳으셨느니라.

훈겸    오호, 그리하셨사옵니까, 폐하? 하오면 신이 만나뵈온 노인은 인근 백성이 아니라 폐하의 조상님이시옵니까? 오호, 이럴 수가?

견훤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였다. 조상님들이 결코 나를 버리지 않으신 게다. 우리 금강이는 낫을 것이다. 아니, 우리 모든 군사들은 다 나을 수가 있어. 약을 찾은 것이다. 약을 찾은 것이야. 하하하... 성대하게 제를 올려야겠다. 이 고마움을 하늘에 계신 조상님들께 전해 올려야겠다. 금강이가 일어나는 대로 제를 준비하라. 제를 준비하라.

제장들  예, 폐하.

 

씬  몽타주

 

        ○금강이 회복을 하고 있다. 온몸에 땀을 쏟으면서 점차 기운을 차리는 모습이 보인다. 제장들이 기뻐하고 있다. 훈겸이 누구보다도 더욱 기뻐한다. 견훤이 그런 금강이를 토닥거린다. 디졸브되면...

        ○병자들로 가득한 군막에 약사발이 돌고 있다. 끝도없이 많은 그 환자들이 모두 약을 먹으려 아우성이다. 그리고 다시 디졸브되면

        ○견훤이 모든 제장들을 참여시킨 가운데 젯상을 놓고 하늘에 제를 올리고 있다. 견훤의 표정에 기쁨이 넘치고 있다. 그 몽타주 위로

 

해설    견훤에 얽힌 지렁이의 설화. 견훤은 바로 그러한 설화를 안고 태어난 사람이다. 설화에 보면 옛날에 한 낭자가 시집을 갈 즈음해서 임신을 하게 되는데 매일 밤 찾아오는 미남자가 누구인지를 몰랐다 한다. 그 낭자의 아버지는 그 청년을 찾아내기 위해 꾀를 써서 남자의 옷자락에 명주실을 꿰어 놓으라 하고 다음날 찾아가 보니 지렁이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딸이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견훤이었다 한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고기에 씌여있는 것이고 이를 삼국유사에 옮겨놓은 설화일 뿐이다. 하지만, 견훤과 지렁이에 얽힌 이야기는 훗날 지금의 안동인 고창전투에서도 크게 작용하여 지금까지도 전설로서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지금의 이야기는 그 안동 전투의 설화를 인용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씬  견훤의 군영 안

 

        견훤이 제장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열고 있다. 모두 자신만만한 표정들이다.  

 

견훤    과연 훈겸의원은 명의일세. 참으로 엄청난 일을 해냈어.

훈겸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이번 일은 오히려 신이 죄를 청해야 하옵니다. 모두가 폐하의 조상님들께오서 현신하시어 알려주신 것이옵니다. 오히려 신이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최승우  그러하옵니다. 아무리 의원이 공부를 많이 하였다 하여도 이 세상에는 약보다도 병이 더 많사옵니다. 폐하의 선조님들께오서 폐하의 간곡한 원을 들어주시어 약을 내려주셨으니 이번 조물성 전투는 틀림없이 아군이 이길 것이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모두들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애술    이제 큰 고비를 넘겼사오니 속히 저들을 공격할 영을 내려주시오소서, 폐하.

능환    하오나 폐하, 당장 공격은 무리이옵니다. 아직도 병자리에서 회복하지 못한 병사들이 많이 있사옵니다. 어차피 약은 우리만이 가지고 있사옵니다. 여유를 가지시고 차분히 공략계획을 세워야 할 것으로아옵니다.

종훈    이찬 어른의 말씀이 지당하시옵니다. 충분한 여유가 있사옵니다, 폐하.

능애    이제부터는 고려의 반응이 어떠한가를 살펴봄이 더 중요할 것이옵니다. 저들은 아직도 괴질에 허덕이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것이옵니다.

견훤    그렇겠지. 나도 그 심정을 알아. 금강이를 잃을 뻔하면서 난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 허허허, 금강아. 참으로 혼이 났었지?

금강    송구하옵니다, 아바마마.

신검들  .........

견훤    그래, 빨리 아픈 군사들을 다 추스리게. 그리고 다시 전열을 재정비하도록 해. 아무튼 타격이 너무 컸어. 우리야 그래도 이쯤에서 그 무서운 질병을 벗어나고 있네마는 고려는 지금쯤 말이 아닐 게야.  아니 보아도 뻔 하네. 지금쯤 전전긍긍들 할 게야. 하하하....

 

씬  고려군 진영 (밤)

 

        병자들이 있는 군막의 아우성은 계속되고 있다. 이곳은 속수무책인 것이다. 환자들이 계속 옮겨지고 있고 시체들은 여전히 불태워지고 있다. 곳곳에 불이 지펴지고 시체들이 옮겨지고 있다. 참담한 모습들을 복지겸과 홍유, 배현경들이 보고 있다.

 

홍유    이러다가 아무래도 큰 일을 치르겠소이다. 도무지 약이 없지를 않소이까, 약이....?

배현경  모두들  괴질에 걸리면 잘 버터야 이틀인데.... 태평 병부령은 그래도 벌써 나흘째 저러고 있습니다.

복지겸  귀신같이 점을 잘치는 최지몽이가 이틀을 넘기기가 어렵다고 하였는데 오늘이 그 이틀이올시다.

홍유    아, 그까짓 점이야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는 법이지요. 제발 살아야 하는데... 그 사람이 죽으면 이번 전투는 낭패이올시다.

 

        그때, 윤신달과 김락이 군영으로 들어서며 이들을 본다.

 

윤신달  어허, 여기들 계셨구려. 그렇지 않아도 이야기를 듣고 달려오는 길이올시다. 우리 성안도 마찬가지입니다.

김락    병사들의 태반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독한 괴질은 처음 봅니다. 폐하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복지겸  안에 계십니다. 함께들 가시지요.

 

        그때, 신방이 달려온다.

 

신방    장군, 태평군사가 막 운명하려 한다 하옵니다. 폐하와 제장들이 모두 그리로 가셨사옵니다.

복지겸  이런 세상에... 어서들 가십시다.

 

씬  태평의 처소

 

        왕건이 눈물을 흘리며 태평의 손을 잡고 있다.

 

왕건    아아.. 이를 어이할꼬? 이렇게 간단 말인가? 이렇게 눈을 감으면 아니 되네. 제발 정신 좀 차리게, 태평이?

태평    (모든 걸 포기했다) 그래도... 한때는... 살 수.. 있는 줄... 알았사옵니다. 하오나...이제는.. 가야할 것... 같사옵니다...

모두들  ..........

최응    폐하께서 병부령을 얼마나 생각하고 계시는지 잘 아실 겝니다. 정신을 차려보세요.

최지몽  .........

왕신    힘을 내셔야 합니다. 힘을 내세요.

 

        그때, 복지겸과 장수들이 모두 들어선다.

 

태평    폐하... 불충한 신... 일어나... 예를 드리지 못하고.... 감을... 용서하시오소서.... 짧은 생이었사오나....행복하였사옵니다...

왕건    아니 되오.. 태평이... 이렇게 죽어서는 아니 되네.

태평    (꿈을 꾸듯) 신은... 나주전투의 일을... 지금도... 기억하옵니다... 폐하께오서는.. 반드시... 대업을 이루실 것이옵니다..... 만수..무강.... 하시오소서....

왕건    아니 되네.. 아니 되네, 이 사람, 태평이...

태평    이 몸이 가면.... 저기... 내봉성령 최응이... 있사옵니다... 내봉성령은... 신보다도... 백배나 더... 총명하고... 학문과...기지가... 뛰어난... 천재이옵니다... 크게... 쓰시오소서... 그리고... 이보시게, 내봉성령?

최응    말씀하시오.

태평    폐하께서... 대업을... 이루시는 것은... 그대에게... 달렸소.. (손을 내밀면 최응이 잡는다) 잘해 주시오... 잘.... 그리고 제장들.... 먼저 가서 미안합니다... 미안... 합니다... 폐하... 폐하.... 부디.. 대업을...이루시오소서... 그 끝을 보지 못하오니.... 차마... 차마... 눈을 감지... 못하겠사옵니다... 눈을......

 

        그렇게 다시 손을 왕건 쪽으로 뻗치다가 태평은 눈의 동공이 멎는다. 죽은 것이다. 왕건이 보다가 끝내 오열한다.

 

왕건    태평이.... 태평이..... 이 사람아!

 

        왕건이 그렇게 오열하고 있다. 모두들 숙연하게 그 모습을 본다. 통곡하는 왕건의 모습에서 다시 죽어있는 태평의 모습을 잡으면...

 

                                                                <146회 끝>




첨부파일 태조왕건146.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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