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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대본

[태조 왕건] 147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7.12.06|조회수1,956 목록 댓글 0

태조 왕건 <제 147회>


<줄거리>


괴질에서 벗어난 백제는 본격적으로 조물성 공략을 서두르며 성을 포위해 간다.  고려는 괴질에 의한 피해에 전전긍긍하며 급기야 내군장군 복지겸마저 쓰러진다.  다급해진 왕건은 성 앞에 배수진을 치고, 연산진의 유금필 일행을 불러들여 전열을 가다듬으려 하지만 견훤은 전면전을 피하고 국지전으로 시간을 끌며 괴질로 지쳐가는 고려군을 괴롭히는데...  

 

 

 

 

 

 

 

씬  왕건의 군영

 

        장대에 조기가 걸려있다. 

 

씬  동 군영 안

 

        제장들이 모두 침통하게 모여있다. 왕건이 말한다.

 

왕건    병부령 겸 순군부령을 맡았던 태평군사가 갔소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장졸들이 죽어가고 있소이다. 헌데, 놀라운 것은 첩보병의 말을 들으니 백제에서는 괴질에 관한 약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약을 찾았다는 것이에요.

제장들  ...........

왕건    짐이 궁금한 것은 어떻게 저들이 그 약을 찾았는가 하는 것이오.

왕신    저들이 약을 구할 수 있었다면 우리라고 못할 리가 없는 일이옵니다. 의원은 말씀하시구려. 저들이 찾은 약을 우리는 왜 못찾고 있소이까?

의원    신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를 않사옵니다. 신의 의술로는 지금 만연되고 있는 이 괴질이 무엇인가 조차도 알지 못하옵니다.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하옵니다. 

배현경  백제군이 약을 찾았다는 것은 저들이 이번 전투에서 그만큼 우위에 섰다는 것을 의미하옵니다. 저희 군대는 아직도 조물성까지 이르지 못하였사옵니다. 일단, 성으로 들어가 다음 일을 논의하심이 마땅한 줄로 아옵니다.

김락    배장군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군대를 성으로 옮기시오소서. 이럴 때일수록 전체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사료되옵니다.

홍유    신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속히 서두르시오소서, 폐하.

왕건    그리로 간다 하여 형편이 나아질 것이 조금도 없지 않은가? 저들은 기운을 되찾고 있고 우리는 더욱더 죽어가고 있어.

최응    폐하, 제장들의 청이 옳다고 사료되옵니다. 이럴 때일수록 경계를 더욱 엄히 하고 힘을 모아 적의 공격을 대비해야 하옵니다. 그러자면 조물성 안으로 빨리 옮기시는 것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그리하면서 저들이 과연 어떤 처방으로 장졸들을 괴질에서 구해냈는지를 알아내야 하옵니다.

왕건    그렇다면 그리 하세나. 성까지야 불과 몇 십리 남았으니 옮겨가는 것이야 뭐 그리 힘들겠는가마는 문제는 약일세. 약. 저들이 찾아낸 것을 우리도 빨리 구해야 한다는 것이야. 날랜 첩자들을 저들 속으로 띄어 보내게. 그리고 그 처방이 무엇인지를 속히 알아내야 할 게야. 그 처방이 무엇인지 말이야. 알겠는가?

제장들  예, 폐하.

왕건    전투가 문제가 아닐세. 이까짓 조물성을 다 내주어도 성은 언제든 다시 찾을 수 있어. 문제는 귀한 목숨들이 속절없이 가고 있다는 것이야. 그 목숨들이 말이야. (사이) 약을 꼭 찾도록 하게. 꼭 말이야. 알겠는가?

모두들  예, 폐하.

 

씬  길

 

        백제군이 견훤을 필두로 하여 다시 이동하여 오고 있다. 이미 그들의 모습에서는 괴질에 대한 공포가 사라져 있다. 견훤이 웃으며 말한다.

 

견훤    고려군의 군사 태평이가 죽었다고...?  하하하.... 참으로 낭보로다. 태평이가 죽었다?

최승우  분명하다 하옵니다. 군중에 태평의 죽음을 알리는 조기가 걸렸다 하옵니다

견훤    태평이가 죽었다? 십년 먹은 체증이 다 내려가네 그려. 나는 지금도 금성에서의 그 패배가 어제 일같이 생생하네 그려. 생애 최대의 패배였어. 바로 그 태평이가 군사로서 고려의 모든 작전을 도맡았었지. 헌데, 그 태평이가 죽었다? 오, 하늘이 짐을 돕는 것이야. 고려의 그 많은 장수들 중에서 하필 그런 천재를 골라 데려가다니...

종훈    어쩌면 그것이 위계일 수도 있으니 깊이 헤아려 볼 필요는 있사옵니다.

능환    우리에게는 약이 있어. 장졸들을 다 살려내었네. 허나, 저들에게는 그것이 없어. 무슨 수로 위계를 쓸 경황이 있겠는가?

신검    그러하옵니다. 이번 전투는 이미 결과가 다 나왔사옵니다, 폐하. 그야말로 어른과 어린아이의 싸움이 될 것 같사옵니다.

견훤    너는 바로 그런 것이 문제야. 아무리 그렇더라도 적을 너무 가볍게 보는 그 버릇 말이다. 궁한 쥐가 고양이를 문다고 했다. 항상 경솔해서는 아니 되는 법이다.

신검    예, 아바마마.

견훤    그러나 일단 승기는 우리가 잡은 것 같구나. 아니 그런가, 애술장군?

애술    예, 폐하. 이미 다 이긴 전투이옵니다. 이제는 고려왕이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는 수순만 남은 것 같사옵니다.

견훤    고려왕이 애원을 한다? 하하하... 거 듣기에 썩 괜찮은 말이구먼 그래. 그러나 문제는 있어. 저들도 약 처방을 찾아낸다면 일은 다시 어렵게 꼬인다는 말일세.

훈겸    그럴 일은 없사옵니다. 그 내용을 단단히 감추고 극비로 하고 있사옵니다.

견훤    허허허, 그런가?

훈겸    또한, 약재로서 중요재료로 쓰이는 그 지렁이가 고려측에는 없고 우리 쪽에만 있다는 것도 하늘이 우리를 돕고 있음이옵니다.

견훤    그렇다면 안심이구먼. 많은 인명의 피해가 있다는 것은 아니된 일이나 이것은 전쟁일세. 저들이 항복할 때까지는 알려줄 수가 없지, 암... 얼마나 값비싸게 얻은 약인가? 내 기도와 조상님들의 음덕으로 찾은 약이야. 절대로 내어줄 수 없지. 어서들 가세. 내일 중으로는 조물성을 포위할 것이야. 저들도 마침 오고 있다 하니. 한번 시작해 보세나. 하하하....

 

        그들 그렇게 가면...

 

씬  길

 

        왕건군이 가고 있다. 이미 전의를 상실한 것이 드러나 보인다. 태양은 계속 작열하고 행군 도중 쓰러지는 군사들이 곳곳에 보인다. 왕건과 장수들도 피곤한 모습으로 그렇게 가고 있다. 복지겸이 자꾸만 땀을 닦으며 하늘을 본다. 그리고 몹시 목이 타는 듯 옆구리에 차고 있던 가죽물주머니를 풀어 물을 마신다. 괴로운 표정이다. 그들 그렇게 가고 있는데 멀리서 한필의 말이 달려와 군례를 드린다.

 

홍유    적진에 나가있던 첩보병이 아닌가?

첩보병  예, 장군.

홍유    무슨 일인가?

첩보병  백제군이 조물성으로 대거 이동하고 있사옵니다. 공격대형을 넓게 펼치고 성을 포위해 가고 있사옵니다.

홍유    알았다. 물러가거라.

 

        첩보병이 다시 군례를 드리고 물러간다. 홍유가 왕건 가까이 와 이른다.

 

홍유    드디어 백제군이 공격대형을 갖추는 모양이옵니다.

최응    저들은 이미 우리의 약점을 보았사옵니다. 당연히 그렇게 나올 것이옵니다. 지금은 빨리 성안으로 들어가 저들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 급하옵니다.

배현경  그렇겠지요. 행군을 서둘러야겠사옵니다. (부장들에게) 행군을 서둘러라. 행군을 서둘러라. 병자들은 한 쪽으로 남고 나머지는 행군을 서둘러라. 서둘러라.

왕건    .......... (참담하다) 이렇게 힘겨운 전투는 처음인 것 같네. 병사들이 계속해 쓰러지고 있네.

최응    하늘이 무심치 않다면 우리에게도 길은 있을 것이옵니다. 일단 성으로 들어가 대비를 해야 하옵니다.

왕건    그래야겠지. 윤신달 장군과 김락 장군은 앞서 가도록 하오. 백제군이 성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하니 서둘러야겠구려.

두장군  예, 폐하.

 

        그들이 대답하며 말을 몰아 대열에서 앞서 나가 부장들과 달려간다. 그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다가 왕건은 흠칫하며 복지겸 쪽을 본다. 복지겸이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 추운 듯 자꾸 떨고 있다.

 

왕건    아니, 복장군, 왜 그러시오? 어디가 불편하오?

복지겸  아.. 아니옵니다. 자꾸만 오한이 들어서...

 

        장수들이 모두들 본다. 이미 알아차렸다. 그도 병에 감염된 것이다.

 

왕건    안색이 매우 창백하구려. 이보게 전의, 어떤가?

의원    (보다가) 아무래도.... 그 병에 감염되신 것 같사옵니다. 

복지겸  그럴 리가 없소이다. 내가 그럴 리가 없소이다. 아니오. 나는 괜찮소이다.

제장들  ......... (모두 긴장한다)

왕건    부장들은 복장군을 한쪽으로 가서 쉬게 하라.

복지겸  아니옵니다, 아니옵니다. 신은 괜찮사옵니다.

배현경  복장군, 가서 쉬시구려. 많이 안좋아 보입니다. 어서요. 부장들은 무얼 하는가? 속히 뫼셔가라.

복지겸  폐하, 폐하..

부장1   가시지요, 장군?

복지겸  폐하...

 

        복지겸은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부장들에게 이끌려 간다. 배현경이 매몰차게 다시 소리친다.

 

배현경  전군은 행군속도를 빨리 하라. 서둘러라. 서둘러라.

 

        그들은 그렇게 가고 있다. 그 다급한 표정들에서... 디졸브

 

씬  조물성 밖

 

        끝도 없어 보이는 백제군들이 멀리 성밖으로 진을 쳤다. 그곳에서 조물성이 아득하니 보인다. 견훤이 잔뜩 신이 오른 표정으로
 본다.
 

견훤    하하하... 저곳이 조물성이란 말이지? 태자들이 그렇게 싸워도 결국 취하지 못했던 그 조물성이야.

종훈    그러하옵니다, 폐하. 성은 그리 크지 않사오나 단단하옵니다. 하오나 폐하께서 친히 오셨으니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옵니다.

최승우  일단 항복을 권유해 보시오소서, 폐하. 고려군은 지금 사면초가이옵니다.

능환    그래도 쉽게 항복할 저들이 아닐 것일세. 일단은 공격을 퍼부어서 더욱 기세를 눌러 놓은 후에, 항복을 권해도 권해야 할 것이옵니다.

견훤    글쎄... 우리 첩보병의 말을 들으면 이미 저들은 형편이 말이 아니라는 것일세. 의외로 쉽게 나올 수도 있어. 일단은 항복을 권해 보면서 공격자세를 바짝 취하도록 하세.

능애    하오면, 전령을 보내 보겠사옵니다.

공직    항복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시간만 낭비할 지도 모를 것이옵니다. 고려의 왕이 직접 나왔는데 쉽게 주저앉겠사옵니까?

애술    길은 두 가지 뿐이옵니다. 항복을 안한다면 죽음뿐이지요.

신덕    소장의 생각도 곧바로 공격하는 것이 나을 것 같사옵니다, 폐하.

상귀    그리하시오소서. 일단 고삐를 조이는 것이 더 급한 일이옵니다.

김총    기회를 잡았을 때에 서둘러야 하옵니다, 폐하.

견훤    서두를 것 없다고 하였어. 이보게, 최필 장군

최필    예, 폐하

견훤    부장 둘을 데리고 가라. 가서 항복을 권해 보아. 스스로 성문을 연다면 약을 줄 수 있다고 말이야. 약 말이야.

최필    예, 폐하.

견훤    지금 가라. 가서 짐의 뜻을 전하라. 내일 중으로 대답을 달라고 말이다. 아니면 성안이 쑥밭이 될 것이라고 전하라.

최필    예, 폐하. 부장들은 나를 따르라

 

        최필과 부장들이 진을 빠져나간다. 견훤은 보다가 말한다.

 

견훤    나도 저들이 쉽게 무릎을 꿇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러나 생각할 시간을 주자는 것이야. 우리 쪽은 우리대로 준비를 해야지. 만약에 공격을 하게 되면 선봉은 누가 맡겠는가? 

신덕    신이 오랫동안 선봉을 맡지 못하였사옵니다. 앞서 보겠나이다, 폐하. 허락하시오소서.

견훤    신덕 장군이...? 좋지. 그러면 상귀 장군과 김총, 부달, 소달 장군들이 신덕 장군의 좌, 우익을 맡으라. 나머지는 짐과 함께 이군으로서 뒤를 바칠 것이다.

모두들  예, 폐하.

견훤    허허허... 지금쯤 고려의 왕이 얼마나 속이 탈꼬..? 참으로 기가 막힐 게야. 짐도 그랬으니까 말일세. 하하하....

 

씬  동 조물성 안

 

        김락과 윤신달이 먼 성밖을 보고 있다. 군사들은 이미 대응자세를 마쳤다.

 

김락    백제군이 아주 사기가 단단히 올랐소이다.

윤신달  왜 아니 그렇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지옥 속에 갇혀있고 저들은  지옥 문턱을 벗어났습니다.

김락    그러게 말입니다.

 

        그때, 왕건을 비롯한 장수들이 윤신달들이 있는 장대로 온다. 두 사람이 예로서 맞으면...

 

왕건    적정이 어떠하오?

김락    저들은 이미 성을 공격할 준비를 마쳤사옵니다. 아마도 해가 저무는 대로 공격해오지 않을까 싶사옵니다마는...

 

        왕건은 먼 성밖을 본다. 답답할 뿐이다. 그때, 그들의 시야로 김총이 부장들을 이끌고 멀리서 백기를 들고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최응과 왕신, 최지몽, 배현경, 홍유, 박수문, 박수경 형제가 보고 있다. 최필은 성 밑 가까이 이르러 백기를 높이 펄럭인다. 그리고 다시 내리고 나서 소리친다.

 

최필    고려의 장수들은 들으라. 나는 대백제국 황제폐하께서 보내신 장군 최필이다. 폐하의 말씀을 전하겠다.

고려장수들      ..............?

최필    너희 고려군은 이미 괴질에 전염되어 태반이 죽어가고 있다. 폐하께오서는 약을 주시겠다 하셨느니라. 그대들은 내일 중으로 성문을 활짝 열고 우리 황제폐하를 영접하도록 하라. 즉, 항복하라는 말이다. 폐하의 이 크신 은혜를 거절하면 죽음뿐이다. 다시 한번 말한다. 항복하라. 내일 중으로 성문을 열어라. 내일이다.

 

        보고 있던 배현경이 왕건을 본다. 어찌할까 묻는 것이다.

 

배현경  저놈을 활로 쏘아 버리오리까?

최응    전령을 죽이는 법은 없습니다, 장군. 항복은 없다고 말씀하십시오.

배현경  (끄덕이며) 네 이놈, 김총아. 항복이라니 그게 무슨 망언인가? 네 황제에게 가서 무릎을 꿇라 하라. 아니면 맛을 보여줄 것이니라.

최필    시간이 없느니라. 내일까지 대답하라. 내일까지니라. 성문을 열면 약을 전해줄 것이니라.

 

        최필은 그렇게 소리치고 부장들과 함께 말을 돌려 돌아간다. 모두들 말이 없다. 왕건의 표정이 어두운 것이다.

 

왕신    폐하, 말도 아니되옵니다. 지금의 형편이 잠시 어렵다고 항복을 할 수야 있겠사옵니까?

박수문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온 전장터이옵니다. 이제부터 싸울 전략을 세울 것이 필요하옵니다, 폐하.

 

        왕건은 잠시 끄덕일 뿐, 말이 없다. 그 어두운 표정에서...

 

씬  송도 황궁 외경 (밤)

 

씬  동 황후전

 

        오씨와 유씨가 마주해 있다. 두 상궁이 시립해 있고, 정윤인 무가 말을 하고 있다. 김행선이 함께 해 있다. 

 

오씨    세상에... 병부령이 죽다니요? 돌림병에 말입니까?

무      그렇다 하옵니다, 어마마마.

유씨    세상에... 돌림병이라니...? 그래, 병부령 말고 얼마나 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답니까?

김행선  이미 죽은 군사가 천이 넘는다 하옵니다. 이 시간에도 계속 죽어가고 있을 것이니 어찌 숫자를 헤아릴 수 있겠사옵니까?

오씨    이게 무슨 날벼락인고...? 병부령이 어떤 사람인데 그렇게 허망하게 죽다니..? 그렇다면 우리 폐하께서도 안심하실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돌림병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데...

김행선  폐하께오서는 하늘이 내리신 분이옵니다. 그런 돌림병 따위가 어찌 폐하를 범접할 수 있겠사옵니까? 그저 군사들이 자꾸 죽어나가는 것이 걱정이옵니다.

유씨    황후마마, 어쩌면 좋사옵니까? 너무도 무섭고 불안하옵니다.

오씨    그러게 말일세. 점을 잘 본다는 그 최지몽이라는 신동이 아무래도 이번 전투는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점괘를 말하였다더니... 참으로 그런 모양일세. 어찌하면 좋을꼬? 이를 어찌해?

 

        답답해하는 오씨의 표정에서...

 

씬  조물성 안 마당

       

        군사들이 곳곳에 포진하여 있다. 그러나 경계를 선 군사들 외에는 성안 마당 한쪽으로 여전히 참담한 모습들이다. 카메라가 판하면, 곳곳에 군막이 서 있고 괴질에 걸린 군사들이 옮겨지거나 죽어나가고 있고 신음하는 군사들로 끝이 없다. 이곳에서도 지난번처럼 곳곳에 불길이 솟고 있고 많은 것들이 태워지고 있다. 그 참혹하고 부산한 모습들에서..

 

씬  동 마당 어느 군막 안

       

        복지겸이 고열에 들떠 헐떡거리며 죽어가고 있다. 의원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젖는다.

 

복지겸  물... 물....

 

        의원이 보고 있다가 코와 입을 가리고 간신히 다가가 물을 적셔 준다. 복지겸은 입술을 적시고 다시 실신하듯 말한다.

 

복지겸  전투는... 어.. 어찌되었소?

의원    글쎄올습니다.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지요. 이래가지고서야 우리가 어찌 싸울 수 있겠습니까? 어이구...

 

씬  성안 임시 군영

 

        왕건이 생각에 잠겨 있다. 제장들이 모두 함께 해 있다. 

 

왕건    아무래도 어려운 싸움 같소이다. 벌써 이천이 넘는 장졸이 죽었다고 합니다. 복지겸 장군까지 쓰러졌어요. 앞으로 갈수록 더할 겝니다.

배현경  그러나 적군은 눈앞에 와 있사옵니다. 싸우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윤신달  이 성을 막는데는 여러 가지로 한계가 있사옵니다. 백제군이 공격을 해 온다면 성안에서 싸우기보다는 성밖에서 저들을 막아내는 전략이 필요하옵니다.

김락    그러하옵니다. 이미 병사들은 싸우기도 전에 사기가 저하되어버렸사옵니다. 이래가지고는 길게 적군을 막아내기가 어려울 것이옵니다. 날랜 장졸들을 가려 뽑아서 아예 성밖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저들의 맥을 끊어야 하옵니다. 아직까지는 서로의 수가 비슷하므로 싸워볼 필요는 있사옵니다. 

홍유    김장군의 말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적절하옵니다. 일차로 성밖에서 저들과 부딪혀 보고난 뒤에 참으로 우리의 전력이 약하다면 그때 성안으로 들어와 싸워도 늦지 않사옵니다.

박수문  장군들의 말씀이 일리가 있사옵니다마는 우리에게는 여유가 없사옵니다. 또한 군사들의 의욕도 저하되었사옵니다.

박수경  차라리 연산진에 있는 유금필 장군들에게 응원을 청하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지금 그분들은 매우 사기가 충천한 군대를 이끌고 있사옵니다.

최응    그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옵니다.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사옵니다. 폐하, 장군들의 말처럼 일차로 성밖에 나가 저들과 대적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유금필 장군들을 부르시오소서. 지금은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옵니다.

왕건    찬바람만 불면 이 무서운 괴질이 다 물러간다고 들었는데 이게 무슨 낭패인고....? 어느새 구월인데도 한여름 뙤약볕이 그대로 있네.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응원군이라..? 싸움 한번도 해보지 못하고 응원군이라..? 차라리 저들에게 약을 청하여 봄이 어떠할꼬? 죄 없이 죽어 가는 병사들이 너무 딱하지 않은가?

왕신    불가하옵니다, 폐하. 폐하께오서 친정하신 전투이옵니다. 우리가 약을 청하면 그 자체가 이미 항복이 아니겠사옵니까? 불가하옵니다.

홍유    신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항복은 아니 되옵니다. 차라리 이곳에서 전원 옥쇄할 망정 무릎을 꿇을 수는 없사옵니다.

제장들  그러하옵니다, 폐하.

왕건    답답해서 해본 소리요. 너무 답답해서...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뾰족한 방법이 없소이다. 장군들의 말대로 성밖에 진을 벌리면서 연산진에 전령을 보내도록 합시다.

최응    예, 폐하. 즉시 파발을 띄우겠사옵니다.

왕건    어쩌다 이런 수세에 몰렸는고... 모처럼 나온 친정인데, 백제왕과의 첫 만남에서 이게 무슨 낭패인고... 

 

        그렇게 고심에 찬 왕건의 표정에서...

 

씬  인서트 (새벽)

 

        고려군의 전령들이 카메라 앞을 스쳐 멀어져간다. 그 다급함에서...

 

씬  성밖 백제군 군영 (낮)

 

        견훤의 군막 앞에서 제장들이 야전회의를 하고 있다.

 

견훤    끝까지 해 보겠다? 의당 처음에는 그렇게 나오는 것이지. 저들도 자존심이 있으니까 말이야. 조금 기다려 보자구. 아직 해가 떨어지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았어.

능환    하오나, 폐하. 더 이상은 여유를 주지 마오소서. 시간을 자꾸 줄수록 아군도 불리해 지옵니다. 이 괴질은 찬바람이 불면 다 사라져버리옵니다. 저들은 다시 기운을 차릴 것이옵니다.

종훈    그러하옵니다. 오늘 하루를 시간을 주어 보았다가 저들이 끝내 숙이지 않는다면 속공을 감행할 필요가 있사옵니다. 이 며칠이 아주 중요하옵니다.

신검    저들에게 형편을 보아 줄 이유가 없사옵니다. 공격을 명하시오소서, 폐하.

금강    형님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폐하, 지금 공격을 해야 할 때인 것 같사옵니다.

견훤    암, 싸울 때는 싸워야지. 그러나 사람이 느긋하게 여유를 부릴 때는 부려야 하는 것이다. 이미 통보한 내용이 있으니 기다려 보자꾸나. 오늘 저녁이다.

최승우  폐하, 병법에도 보면 가장 좋은 방법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라 하였사옵니다. 저들의 군세는 결코 우리보다 약하지 않사옵니다. 다만, 저들 군영에 괴질이 돌고 있고 약이 없다는 것뿐이옵니다. 우리는 그 약점을 십분 이용해 승기를 잡을 계책을 찾아 볼 필요가 있사옵니다.

공직    전투란 어느 편의 사기가 좋고 나쁜가에 결과가 달려 있사옵니다. 고려군은 이미 태평이라는 군사가 죽었고, 사기를 잃었사옵니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이옵니다.

최필    신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견훤    하하하... 모두들 아주 기운들이 뻗치는구먼 그래. 그러나 내가 분명히 얘기하였지만 적을 가볍게 보아서는 아니 되네. 고려왕은 그렇게 어리석지가 않아. 약속한 하루가 얼마 아니 남았어. 자, 그러면 최필장군은 다시 가서 저들의 결론을 알아오라.

최필    예, 폐하. 

 

씬  인서트 (석양)

 

씬  동 조물성 성안

 

        장졸들이 더위에 지친 모습들로 먼 성밖을 보고 있다. 배현경, 홍유, 윤신달, 김락이 보며 답답해하고 있다. 그러다 성밖을 보면 멀리서 아득히 다시 최필들의 모습이 보여온다. 가까이 와 말한다.

 

최필    나는 어제 왔던 백제의 장군 최필이니라. 폐하께오서 그대들의 대답을 듣고자 하시느니라. 성문을 열 것인가, 말 것인가?

홍유    (배현경에게) 저놈들이 아주 우리 약점을 보고 나서 제 마음대로 지껄입니다 그려.

배현경  그러게 말이오. 본래 궁지에 몰리면 궁지에 몰릴 수록 독이 나는 법입니다. 이번 성밖에 나가서 선봉은 우리 둘이 서봅시다.

홍유    옳은 말씀이에요. 한번 시원하게 휘저어 보십시다. 허허허....

최필    어찌하겠느냐? 성문을 열 것이냐, 말 것이냐?

배현경  네 이놈, 최필... 그 주둥아리를 닥치지 못할까? 물론 성문은 열 것이다. 그러나 항복이 아니라 네 놈 황제의 목을 가지러 가려고 한다. 가서 전하라. 얼마든지 오라고 하라. 우리가 기꺼이 맞아줄 것이다. 어서 가라, 이놈...

최필    후회할 것이다. 후회할 것이다.

 

        최필은 그렇게 말을 돌려 달려나간다. 그때, 왕건이 최응과 왕신, 최지몽, 박수문, 박수경 형제들과 함께 배현경 쪽으로 온다.

 

배현경  방금 또 백제군에서 전령이 왔다 갔사옵니다.

왕건    (끄덕인다) .......

배현경  이제 곧 전투가 시작될 것이옵니다. 출정의 영을 내려주시오소서. 저희가 성밖에 나가 선봉을 맡겠사옵니다.

왕건    그리하도록 하시오. 두 분이 선봉을 맡고 여기 박수문 장군 형제가 좌, 우익을 맡도록 하시오. 그리고 윤신달 장군과 김락 장군은 이 성을 수비하도록 하오.

모두들  예, 폐하

배현경  부장들은 들으라. 출정할 것이다. 소라를 불어라. 북을 쳐라. 부장들은 병대를 인솔하라.

 

        성안은 그렇게 갑자기 소란스러워 진다. 그 혼란 속에서 디졸브

 

씬  어느 산야 (야전)

 

        유금필과 신숭겸, 박술희, 왕충, 김언, 염상, 전이갑, 전의갑 형제들이 야전에서 탁자를 놓고 회의중이다. 옆에는 조물성에서 온 전령이 서 있다. 유금필이 글을 다 읽고 나서 말한다.

 

유금필  조물성의 사정이 말이 아닌 모양이올시다. 태평군사가 죽고 나서 이번에는 내군의 복지겸 장군이 쓰러졌답니다.

제장들  ....... 저런... (웅성거린다)

유금필  사상자는 늘어가고 백제군은 돌림병에서 벗어나 성을 압박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즉시 가야할 것 같습니다.

신숭겸  아니, 얼마나 지독한 괴질이길래 수천의 군사가 쓰러지고 있답니까?

박술희  형님, 이것저것 따질게 아니라 지원요청을 받았으니 속히 가도록 하십시다. 이곳이야 쉽게 평정이 되지 않았습니까?

염상    그렇습니다. 빨리 가야할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전령을 보내 지원군 요청을 하였겠습니까?

유금필  그렇게 하십시다. 이곳은 왕충장군과 전이갑 장군 형제분께서 지켜주십시오. 염상, 김언장군은 우리와 함께 가십시다.

그들    예, 장군.

유금필  자, 아우님들 서두르세. 군사를 정비하게. 즉시 떠날 것이야.

형제들  예, 형님.

유금필  자, 장군들 서두르십시다.

장군들  예...

 

        그들 그렇게 다시 부산하고..

 

씬  조물성 밖 들판 (밤)

       

        고려군에서 배현경과 홍유, 박수문 형제가 많은 군사들을 이끌고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 백제군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 먼 사이를 넘어 불빛들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백제군 진영이다.

 

씬  동 백제군 진영

 

        이곳에서도 견훤을 비롯한 장수들이 모여있다.

 

신덕    폐하, 저들이 이미 싸우고자 작정하고 성밖으로 나와 진을 쳤사옵니다. 공격을 해야하지 않겠사옵니까?

능환    영을 내리시오소서, 폐하.

최승우  아니옵니다, 폐하. 저들은 지금 배수의 진을 쳤사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성을 의지하여 친 진이옵니다. 이 밤의 전투는 그 실속이 적사옵니다.

능애    아니, 적이 싸우자고 나와있는데 그냥 보고만 있자는 것입니까?

최승우  저들이 배수의 진을 친 것은 사정이 매우 급하고 어렵다는 것을 뜻하옵니다. 우리가 서둘 이유가 없다는 뜻이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저들은 더욱 초조해 질 것이옵니다. 그저 두고 보시오소서. 저들이 싸우자고 하면 싸우고 그렇지 않으면 지켜보는 것이옵니다. 

애술    그렇게 재미없는 싸움을 무엇하러 한다는 말씀이오? 장난을 하러 온 것도 아니고 밀어부칠 때는 부쳐야지요.

상귀    그러게 말입니다. 이 기회에 저들의 기세를 더욱 꺾어놓을 필요가 있사옵니다.

신덕    폐하, 영을 내려주시오소서. 

최필들  영을 내려주시오소서.

신검    저희들도 가겠사옵니다, 폐하.

견훤    이렇게들 싸우고 싶어하는데 어떤가, 파진찬?

최승우  불필요한 힘을 낭비할 필요가 없사옵니다, 폐하.

견훤    아닐세. 때로는 맺힌 것들을 풀어 주어야 할 때가 있어. 신덕장군은 그럼 가보라. 태자들도 함께 가라. 그러나 가서 전면전을 펼 필요는 없다. 삼천의 기병을 줄 터이니 가서 국지전을 피면서 저들의 신경만 건드리도록 하라. 파진찬의 말이 매우 일리가 있어. 알겠는가, 신덕장군?

신덕    예, 폐하.

견훤    저들이 지금 어느 정도인가만을 알아보고 오라는 것이야.

신덕    예, 폐하. 그리하겠사옵니다. 허면, 가보겠사옵니다.

견훤    다녀오게.

       

        신덕들이 나간다. 김총, 상귀, 부달, 소달, 그리고 태자들이 함께 나선다. 기병들이 바람처럼 달려나간다. 견훤이 끄덕이며 보고 있다가 최승우 들에게 말한다.

 

견훤    좋은 구경거리를 놓칠 수는 없지 않은가? 신덕 장군과 태자들이 어찌 싸우는 가를 좀 보세나. 우리 저쪽 높은 곳으로들 가세. 달빛이 대낮처럼 밝네 그려.

그들    예, 폐하.

 

        그렇게 웃으며 끄덕이는 견훤들의 표정에서...

 

씬  조물성 밖 들판 그곳

 

        보름달이 밝게 떠 있다. 마치 한낮처럼 양군의 모습이 잘 보여온다. 삼천의 백제군 기마대가 까맣게 몰려와 양군이 마주선다. 고려군 측에서 홍유와 배현경들이 보고 있다. 곧 사이를 두고 이들은 긴장한다. 신덕의 모습이 보여지며 목소리가 들려온다.

 

신덕    들어라, 고려의 장졸들아. 나는 대백제국의 선봉을 맡은 장군 신덕이니라. 거기에 나온 고려의 장수는 누구인가?

배현경  나는 배현경이라 하고 이쪽은 홍유장군 이시다.

신덕    돌림병을 만나 고생들이 많겠구나. 그럼에도 싸우자고 나와있는 그 용기가 참으로 가상하다. 병졸들은 잠시 놓아두고 장수들끼리 몸이나 좀 풀어보는 것이 어떠한고...?

배현경  허허허.. 그것 참 듣기에 반가운 말이로다. 허면, 신덕이 네가 나오겠느냐, 아니면 누굴 보내겠느냐?

신덕    우리는 아직 싸울 여유가 많이 있다. 부장을 보낼 터이니 너희도 부장을 보내는 것이 어떠하냐?

배현경  그리 하자꾸나. 이보시오. 박장군? 한번 가 보시겠는가?

박수문  예, 장군. 저희가 한번 가 보겠습니다.

홍유    조심들 하오.

박수문  예.

 

        박수문 형제가 말을 타고 달려나간다. 보고 있던 백제 쪽에서 상귀와 김총이 달려나온다. 그들은 서로 마주했다. 그리고 김총이 말한다.

 

김총    나는 백제장군 김총이다. 그리고 이쪽은 상귀 장군이라 한다. 어울려 보자꾸나.

박수문  나는 장군 박수문이라 한다. 내 아우 박수경이니라. 어서 오너라.

 

        그리고 접전이 이어진다. 박수문과 김총, 상귀와 박수경이 어우러진다. 얼마를 싸웠을까... 곡예나 다름없는 검무가 무섭게 이어진다. 그 치열한 접전 끝에 제일먼저 승부가 난 곳이 박수문과 김총이다. 김총이 부상을 당하고 그대로 말에서 굴러 떨어진다. 박수문이 싸우던 청룡언월도로 그대로 밑으로 내려찍으려는데 상귀가 달려나와 막는다.

 

상귀    멈추어라. 내가 있느니라.

박수문  어서 오너라. 네 놈도 황천으로 보내주마.

 

        다시 혈전이 이어진다. 그 사이에 부상당한 김총이 말 위에 오른다. 그러나 상귀는 박수문 형제를 상대로 싸워야 했다. 중과부적, 그만 어깨를 허락하고 만다. 신덕이 부장들과 함께 보고 있다가 발을 구른다.

 

씬  그곳 백제측

 

신덕    저런 저런...

부달    아무래도 북을 쳐 불러야겠습니다.

신덕    북을 쳐라. 돌아오라 하라. 소라를 불어라.

 

        병사들이 북을 친다. 소라까지 함께 울린다.

 

씬  다시 그곳 고려측

 

        홍유를 비롯한 장수들이 손에 땀을 쥐며 보고 있다. 백제측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가까스로 말 위에 오른 김총과 상귀가 돌아서 도주하기 시작한다.

 

씬  다시 그곳

 

        박수문 형제가 뒤쫓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고려측에서도 북이 올린다. 더 쫓지 말라는 신호이다. 그들이 말을 멈춘다.

 

박수경  형님. 돌아오라고 합니다.

박수문  하하하... 어차피 더 쫓아가면 위험하다. 돌아가자꾸나.

 

        그러나 그들이 미처 가기 전에 우람한 소리와 함께 신덕이 달려 나온다.

 

신덕    걔들 섰거라. 어디들 가려고 하는가? 나는 백제군의 선봉장수이니라. 나와 함께 겨루어 보자꾸나.

 

        그러자 고려군에서 보고 있던 배현경이 달려 나온다.

 

배현경  부장들의 싸움이 끝났으면 볼일은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닌가? 한펀 어우러 지세나.

 

신덕    그대가 배현경이라고 하였겠다? 

배현경  오냐. 어서오너라, 신덕 장군. 아주 잘왔다.

 

        그대는 그렇게 각자의 무기를 가지고 합을 벌리기 시작한다. 양군이 손에 땀을 쥐며 보고 있다. 무서운 검무가 계속 이어진다. 십합, 그리고 이십합...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씬  인서트

 

        유금필의 군대가 전속력을 다해 달려오고 있다. 그렇게 지나쳐 가면...

 

씬  조물성 안

 

        성루 쪽에서 먼 어둠을 보며 왕건 일행들이 서 있다. 많은 군사들이 몰려 있는 것은 어렴풋이 보이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가
 없다.
 

최응    폐하, 아직 전면전은 아닌 것 같사옵니다. 이렇다 할 소란이 없사옵니다.

왕건    그런 것 같구먼. 아마도 백제측에서는 우리들의 헛점을 이리저리 알아보고 있는 중인 것 같네. 그러니까 한꺼번에 몰려오지 않고 저러고 있는 것이야.

최응    그러게 말이옵니다.

왕건    병사들은 어떠한가? 그 괴질 말이야.

최응    병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사옵니다. 참으로 안타깝사옵니다, 폐하.

왕건    하루하루가 피가 마르는 것 같네 그려. 과연 우리가 여기서 얼마를 더 버틸 수 있겠는가? 지금 백제군이 적극 공세를 취하지 않는 것은 우리 스스로 지치기를 기다리는 것일세. 사실상 아무런 대비가 없지 않은가? 대책이 없어.

최응    그러게 말이옵니다. 차라리 이럴 때는 장수들의 말처럼 백제군이 공격해 오는 것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빨리 승패를 결정 지을 수 있도록 말이옵니다. 허나, 백제에도 많은 책사들이 있사옵니다. 서둘러 오지 않을 것이옵니다.

왕건    그렇겠지.

 

씬  다시 그곳 성밖 벌판 (새벽) -고려측

 

        홍유가 보며 중얼거리고 있다. 기가 막히다.

 

홍유    세상에 나와 저런 검무는 처음 보는구먼. 도대체 이걸 믿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벌써 두식경이 넘도록 저렇게 싸우고 있어. 어느새 날이 밝고 있지 않은가? 배현경 장군을 맞아 저렇게 싸울 장수가 있다니.. 놀라운 일이로고..

박수문  그러게 말입니다. 대단합니다, 장군.

 

씬  그곳       

 

        여전히 승부는 나지 않는다. 치열한 접전은 계속된다. 온갖 묘기가 속출한다. 두 사람 모두 얼굴이 땀이 줄지어 흐른다. 새벽이 밝아오고 있다.

 

신덕    내 생전에 너 같이 지독한 놈은 처음이다. 배현경이라..? 그 이름을 꼭 기억해 두마.

배현경  나 또한 마찬가지이니라. 백제에도 너 같은 장수가 있었다니 기특하구나. 허나, 오늘 승부를 보아야겠다. 둘 중의 하나는 여기서 죽어야 할 것이다.

신덕    오냐. 결판을 내자꾸나.

 

        검투는 그렇게 계속 이어진다. 하지만 여전히 승부는 나지 않는다.

 

씬  백제군 견훤이 있는 곳

 

        싸움터가 잘 보이고 있다. 견훤이 서서 제장들과 보고 있다. 눈이 휘둥그레져 있다. 모두들 말이 없다.

 

견훤    지금 싸우고 있는 저 적군의 장수가 누구라 했는가?

최승우  배현경이라는 장수라 하옵니다.

견훤    배현경......? 그야말로 범같은 장수로다. 아깝도다. 어찌 저런 장수가 고려에 있었다는 말인고? 벌써 두 식경을 저러고 싸우고 있네 그려. 날이 밝고있어, 날이... 저러다가는 둘 다 다치겠네. 북을 치게나. 그만 돌아오라고 해. 누가 다치든 간에 아까운 일이야.

최승우  예, 폐하. 부장들은 가서 전하라. 싸움을 그치라 하라.

 

        부장이 대답하고 달려간다. 애술이 보고 있다가 투덜거린다.

 

애술    선봉은 소장이... 맡을 걸 그랬사옵니다. 참으로 해볼만한 장수 같사옵니다. 지난번에는 박술희라는 장군이 아주 무예가 뛰어났었는데... 배현경이라고는 처음 보옵니다.

견훤    허허, 그런가? 그러길래 우리는 많은 것을 알도록 노력해야해. 고려에 저렇게 뛰어난 장수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고려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야.  진호야.

진호    예, 폐하.

견훤    너도 잘 보아 두어라. 너는 황후의 일가로서 전장을 배우려고 나왔다.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니라.

진호    예, 폐하

 

씬  그곳

 

        두 사람이 여전히 아침 햇살을 받으며 싸우고 있는데 북소리가 들려온다. 양쪽에서 모두 들려온다. 그들 비로소 주춤하며 물러선다.

 

배현경  하하하... 날이 밝았네 그려. 이보게, 신덕장군? 몸한번 잘 풀었네 그려. 다음에는 결판을 내세나.

신덕    내가 할 말일세. 잘 싸웠네. 또 보세.

 

        그들은 그렇게 달려간다. 가다가 미련이 남은 듯 그들은 다시 돌아본다. 그리고 미소 짖는다. 배현경은 그렇게 자신 쪽으로 가고... 

 

씬  조물성 외경

 

씬  동 조물성 왕건의 처소 안

 

        처소 안으로 유금필과 장수들이 들어선다. 그리고 부복하여 예를 올린다.

 

유금필  폐하, 신 유금필 폐하의 영을 받자와 길을 재촉하여 왔사옵니다. 얼마나 고통이 크시옵니까?

왕건    말로 다하기 어려운 곤란에 봉착해 있네.

신숭겸  안심하오소서, 폐하. 신들이 왔사옵니다.

왕건    경들을 보니 든든하기는 하나 우리는 지금 몹쓸 돌림병과 싸우고 있네. 적은 약을 구하였고 기운을 더하여 우리를 핍박하고 있네. 지금 우리는 사면초가일세.

박술희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폐하? 신들이 나가 백제의 왕을 잡아오겠나이다.

염상    영을 주시오소서, 즉시 나가겠나이다.

김언    영을 주시오소서, 폐하. 이 김언이가 앞을 서겠사옵니다.

왕건    지금의 적은 백제가 아니라 이 괴질일세. 돌림병 말일세. 병부령 태평이 죽었고 내군장군 복지겸이 쓰러졌어.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장졸들이 무더기로 쓰러져가고 있어. 어려워. 모든 것이 어려워. 얼마나 버틸 지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네. 이 무서운 괴질 말일세.

 

        왕건은 안타까운 듯 한숨을 쉰다. 윤신달, 김락, 왕신, 최응, 최지몽들이 보고 있다. 그런데... 최응이 자꾸만 몸을 떤다. 애써 참으려 하기 때문에 아무도 눈치는 채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전염되었다.

 

왕건    아무튼 아우들과 장군들이 모두 와주니 두려움이 좀 거치는 것 같네. 가서 군사를 배치하고 제장들과 작전을 논하게나. 허나, 별다른 대책은 없네. 고작 이 성을 지키는 것 뿐이야. 묘안이 없어. 아니 그런가? 내봉성령?

최응    (혼자 가까스로 참으며) 예, 폐하. 지금은... 그러.. 하옵니다.

왕건    안타까운 일이야.. 안타까워..

최응    (춥다, 그렇게 참으며) 예... 폐하..

최지몽  ...........? (최응이 이상한 것이다)  

 

        왕건은 아직도 알지 못하며 혼자 끄덕이고 있다. 더욱 한기를 이겨내려 애쓰는 최응의 표정에서...

 

씬  백제군 진영 견훤의 군막

 

        제장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견훤    기가 막혔어. 신덕 장군의 그 무예를 아낌없이 다 보았어.

신덕    황공하옵니다, 폐하. 조금 더 시간을 주셨더라면 끝장을 보았을 것이옵니다.

견훤    아닐세, 아니야. 비록 적이지만 배현경이라는 장수는 정말 탐이나더구먼. 두 사람 다 너무 아깝길래 그만 하라 한 것이야. 그리고 내 많이 생각해 보았는데 파진찬의 말이 옳아.

모두들  ...........?

견훤    무리해서 싸울 이유가 없다는 것이야. 이 더위에 그야말로 피땀흘려가며 왜 싸우느냐는 것이야. 군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모두들 그늘을 찾아 푹들 쉬라고 해. 저들이 나오면 그때는 싸우는 것이고 우리가 서둘지는 말자 이거야. 저들은 지금도 죽어가고 있어. 지금도....

최승우  그러하옵니다, 폐하. 몹시 힘겨워하고들 있을 것이옵니다.

견훤    허나, 그렇다고 무한정으로 둘 수는 없고 다시 한번 항복을 권해 보아.

종훈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고려에서도 왕이 직접 나온 전장이옵니다. 버티는 데까지 버틸 것이옵니다. 폐하께오서 정 전투를 원하지 않으시면 보다 유리한 조건을 내 거시고 위엄을 크게 세우시는 실리를 얻으시오소서. 

능환    어차피 양쪽에서 국가의 지존들이 참가한 싸움이옵니다. 이까짓 조물성은 사실 별것이 아니옵니다. 누가 얼마만큼의 자존심을 크게 얻느냐가 처음부터의 계산이었사옵니다.

견훤    그랬지.. 그랬어....

능환    그렇다면 모양새를 좋게 하면서 저들도 수락할 수 있고 폐하께오서도 크게 위엄을 떨칠 수 있는 조건을 내 거시오소서.

애술    그래도 한번 밀어부처는 봐야 될 것이 아니옵니까?

견훤    저런.. 저런.. 애술장군은 그저 싸움 밖에는 모른다니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하지 않는가?

능애    저들에게 시급한 것은 약이옵니다. 벌써 수천이 쓰러져가고 있다 들었사옵니다. 저들은 회군을 하려고 해도 그것조차 마음대로 아니 되고 있사옵니다. 약을 내어걸고 회유하시오소서. 고려왕 왕건이는 본래 인정이 많고 유한 사람이라 군사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리한 조건에도 응할 것이옵니다.

견훤    그럴 듯 하네. 그러고 보니 고려왕에 비해서 나는 그만큼 인정이 없다는 것 같이 들리는 구먼 그래.

능애    그럴 리가 있사옵니까, 폐하? 폐하만큼 인정이 넘치시는 분이 또 어디 계시옵니까? 

견훤    해본 소리야. 허허허..... 자 그렇다면 파진찬

최승우  예, 폐하.

견훤    지금 이야기들을 잘 정리해서 고려측과 접선을 하여 보게나. 저들은 지금 목이 말라 죽기 직전이야.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할 게야. 내가 걸고 싶은 조건은 간단하네. 무릎을 꿇으라고 해. 어차피 고려의 왕은 나보다 연배가 십년이 아래야. 십년이면 어디인가? 강산이 변하는 세월이야. 나를 보고 상부(尙父)라고 부르라 하게.

최승우  그렇게까지야 받아들이겠사옵니까?

견훤    선택의 길은 없어. 무릎을 꿇는 것 뿐이야. 그리고 앞으로는 우리 백제가 하는 어떤 일에도 간섭을 하지 말라고 해. 조건은 그 두 가지 뿐이야. 무릎을 꿇고 나를 상부라 부른다면 이까짓 조물성 따위는 버려 두고 우리는 우리 갈 길로 가겠다고 해. 아니면 애술장군의 말처럼 해볼 수밖에, 아주 단단히 끝장을 볼 수밖에.... 이미 승리는 우리 것이야. 무얼 망설일게 있겠는가? 꿇으라고 해!     

 

                                                                <147회 끝> 



첨부파일 태조왕건147.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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