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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대본

[태조 왕건] 153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7.12.06|조회수2,414 목록 댓글 0

태조 왕건 <제 153회>


<줄거리>

고려에 볼모로 보냈던 진호가 시신이 되어 돌아오자 격노한 견훤은 고려의 볼모 왕신의 처형과, 고려에 대한 응징을 명한다. 백제의 파진찬 최승우는 왕신을 살려두어 고려의 발목을 붙들자며 처형을 만류하고, 이찬 능환 등은 처형을 주장한다. 한 편, 고려의 병부령 최응은 서둘러 백제의 대야성과 용주성 양 방면으로 공격을 명하며 군사를 출병시키는데....
 

 

 

씬  백제 황궁 외경

 

씬  동 조당 혹은 편전

 

        견훤이 대노한 표정으로 조당 안을 둘러보고 있다. 신료들도 표정이 모두 굳었다.

 

견훤    우리가 고려로 보낸 진호가 변을 당했다는구먼. 황후의 일가인 진호가 병들어 죽었다는 게야. 저 고려땅에서 말이야. 경들은 어찌 생각하는가? 우리 진호가 저 고려에서 갑자기 병이 들어 죽었어. 그곳으로 간지 불과 몇 달만에 말일세.

종훈    폐하, 우리의 볼모가 고려로 갈 때, 그 분의 건강은 참으로 좋았사옵니다. 뭔가 내막이 있는 듯 보여지옵니다.

능환    요 얼마동안 고려는 조용했사옵니다. 군사적인 움직임도 없었고 작은 충돌도 없었사옵니다. 그 와중에서 갑자기 우리가 보낸 볼모가 죽었사옵니다. 결코 우연이라 보기 어렵사옵니다. 

견훤    파진찬은 어찌 생각하는가?

최승우  진호 그 분이 고려로 갈 당시를 기억하옵니다. 종훈 군사의 말처럼 절대로 병이 들어 운명할 분은 아니었사옵니다. 설사 병이 들었다하더라도 갑자기 급사했다는 것은 어딘가 의심스런 구석이 있사옵니다.

견훤    그렇겠지....? 나도 그런 생각이 드네.  사람 목숨 하나 죽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야. 특히나 고려로서는 우리가 보낸 손님을 잘 보호하고 살펴줄 의무가 있었어.

공직    지금 시신이 우리 쪽으로 오고 있다고 하옵니다. 곧 확인이 될 것이니 직접 보시고 방책을 세우시는 것이 옳을 것 같사옵니다. 어쨌든 저들은 예의를 다하여 시신을 모셔오고 있고 병사하였다하고 있사옵니다.

애술    말도 아니 되는 소리이옵니다. 병사가 아니옵니다. 저들은 꼼짝을 못하고 있었고 우리는 마구 신라 땅으로 들어가고 있다가 보니 심술이 나서 일을 저지른 것이 분명하옵니다.

신덕    애술 장군의 말이 충분히 일리가 있사옵니다. 고려의 왕이 아니더라도 그 조정내부에서 일을 벌렸을 공산이 크옵니다.

최승우  그러하옵니다, 폐하. 신이 생각하건데 이는 계획된 사고일 가능성이 농후하옵니다. 고려로서는 무언가 다시 우리 백제와 다툴 명분이 필요했을 것이옵니다. 언제까지 잠잠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견훤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최승우  폐하께서 보내신 인질을 죽여 화를 돋굼으로서 우리가 고려를 치게 하고 자신들은 어쩔 수 없이 싸움에 응했다는 구실을 만들고자 했을 것이옵니다.

견훤    그렇다고 우리가 보낸 손님을 죽인다는 말인가? 제놈들이 우리에게 맡겨놓은 그 왕신이라는 놈을 어찌하려고...?

최승우  이미 그만한 각오 없이 일을 벌렸겠사옵니까?

신검    폐하, 듣고 보니 고려의 행동이 무례하기 짝이 없사옵니다. 어찌 죽었든 간에 폐하께서 맡겨놓은 목숨이 해를 입었다면 그에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하옵니다.

능애    태자마마의 말씀이 지당하시옵니다. 이미 고려가 우리 백제에게 무릎을 꿇었던 사실을 잊고 다시 싸우기를 생각한 것이 틀림없사옵니다. 죄를 물으시오소서, 폐하.

박영규  신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죄를 물으시오소서, 폐하. 어차피 고려는 우리의 우방이 될 수 없사옵니다. 이 기회에 몰아부처 끝을 보시오소서.

견훤    저놈들이 계획적으로 우리 진호를 죽였다면 응당 그 값을 치루어 주어야지. 그래야 하고 말고... 도대체 화친을 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렇게 다른 얼굴을 하고 나온다는 말인가? 만에 하나 이것이 정말로 계획된 일이었다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야. 절대로...

최필    어쨌든 시신이 오고 있다 하오니 잠시 더 기다려 보시오소서. 검시를 하고 나서 그 결과에 따라 방법을 정해야 할 것으로 아옵니다, 폐하.

견훤    일단은 그렇게 하세. 허나, 십중팔구 뻔해. 뭔가 수작이 있는 게야. 수작이... 멀쩡하던 진호가 이렇게 갑자기 죽을 리가 있는가, 이렇게 말이야....? 아무튼 일이 이렇게 되었다니 우리도 지금 데리고 있는 고려의 볼모 왕신이라는 자를 저대로 놓아 둘 수 없어. 특별한 영이 있을 때까지 잡아 가두고 영을 대기하도록 하라. 결과를 보면서 대처할 것이다.

모두들  예, 폐하.

견훤    그리고 이미 고려가 군사적 움직임을 시작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야. 전 전선에 비상령을 내리도록 하라.

모두들  예, 폐하.  

견훤    뭔가가 있어. 이건 필시 고의적일 것이야. 암....

 

씬  어느 저자 거리

 

        군사들이 몰려가고 있다. 그리고 어느 집 대문을 박차고 들어선다.

 

씬  동 집안

 

        왕신이 마당 한 곳 사랑에서 책을 읽고 있다가 들이닥친 군사들을 본다.

 

군사1   저자를 끌어내라.

왕신    무슨 일들이오...? 왜들 이러는 게요?

군사1   폐하께서 그대를 잡아 가두라 하셨다. 우리가 고려로 보낸 손님을 너희 나라에서 죽였느니라. 그래서 너를 잡아가는 것이다.

왕신    .............?

군사1   어서 끌고 가라.

왕신    .............

 

        그렇게 거칠게 끌려가는 왕신, 이미 뭔가를 예감하고 있다. 그 얼굴에서....

 

씬  황후전

 

        황후 박씨가 눈을 크게 뜨고 이상궁에게 묻고 있다. 

 

박씨    지금 뭐라고 하였는가? 우리 진호가 죽었다고..?

이상궁  예, 황후마마. 그 일로 하여 지금 조당이 온통 시끄럽다 하옵니다.

박씨    그건 도대체 언제 들은 소리인가? 왜 우리 진호가 죽어..?

이상궁  폐하께오서도 황도로 오시는 길에 소식을 접하셨다 하옵니다. 하옵고, 고려에서 글을 보내오기로는 갑자기 몸이 아파 병이 들어 운명하셨다 하옵니다.

박씨    말도 아니 되는 소리야. 우리 진호가 평소 얼마나 건장하였는가? 몸이 아프면 약을 썼을 것이고, 오래 누웠다면 우리에게 소식이라도 주었을 것이 아닌가? 그렇게 갑자기 죽는 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그래, 폐하께서는 무어라 말씀하신다 하는가?

이상궁  아직 조회가 계속 중인지라 그 결론을 알지 못하였사옵니다.

박씨    이것이 다 우리 황후 집안을 없수히 여기시는 폐하의 탓이야. 그 많은 사람을 두고 어떻게 내 조카를 인질로 보낼 수가 있는가? 그래서 결국 그렇게 죽게 하였다는 말인가? 아마 승주부인이라면 그렇게 아니 했을 것이야. 그렇고 말고... 갈수록 산일세, 갈수록 산이야. 이 서러움을 도대체 어이할꼬...?

 

씬  고비의 방

 

        고비가 금강을 보며 말하고 있다.

 

고비    어찌하여 조당에 참여하지 않으셨소..?

금강    중신들 몇 분만이 회의를 하시는 지라 이리로 왔사옵니다.

고비    전쟁에 나갈 때마다 이 어미는 아주 간이 조립니다. 우리 금강태자가 왜 매일처럼 앞을 서야 합니까?

금강    하하하, 어마마마 전장터에서 앞을 선다는 것은 그만큼 용감한 지휘장수임을 뜻하옵니다. 좋은 일이옵니다.

고비    그 눈을 생각해보시오. 내게는 얼마나 귀여운 아드님인데 이렇게 되셨다는 말이오?

금강    염려하지 마시오소서, 어마마마. 태자도 신하 중에 하나이옵니다. 그만큼 남들과 경쟁을 하고 공을 세워야 하옵니다. 아바마마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사옵니다. 한쪽 눈이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하고 말이옵니다. 고려의 전 왕이었던 궁예라는 사람도 한쪽 눈이 없이 나라를 세워 잘 다스리지 않았사옵니까?

고비    하긴 뭐 그런 말들도 합디다마는... (하다가 묘하게 보며) 그래서 얘기오만 혹시 폐하께서 태자에게 뭐 별다른 언질은 아니 주시던가요?

금강    언질이라니요, 어마마마?

고비    (주변을 보고 나서) 다음 보위에 관한 일 말입니다. 사실 신검태자가 지금 나이 삼십이 넘었습니다. 마땅히 다음 보위를 약속해야 함에도 말씀이 없으시다는 것이지요. 이 어미는 폐하께서 우리 금강태자를 내심 생각하시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마는......

금강    그럴 리야 있사옵니까? 소자를 형님들보다 특히 이뻐해 주시기는 하옵니다마는 아직 그런 말씀은 없으셨사옵니다.

고비    하나를 보면 열을 압니다. 폐하께서는 신검태자보다도 우리 금강태자를 더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혹시라도 그런 말씀이 있으시면 당당하게 하실 수 있다고 대답하시요.

금강    아니 어마마마..

고비    왜 못하시옵니까? 우리 금강태자가 무엇이 모자라 못합니까? 이 어미말을 꼭 기억하세요. 아시겠습니까? 

금강    하하하, 어머마마도.... 형님들이 많으신데 그럴리가요.

 

씬  대전

 

        견훤이 최승우, 능환, 종훈과 함께해 있다. 이른바 책사 회의이다. 

 

견훤    만약에 고려가 정말로 의도적으로 우리 진호를 죽였다면 앞으로의 전략은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가? 우리는 신라로 가기 위해서 군사적인 조치를 재조정하려고 황도로 온 것이야.

최승우  폐하께오서 신라로 가시려고 하시는 그 계획은 바꾸거나 수정할 필요가 없사옵니다. 이미 신은 고려가 과연 언제까지 참고 앉아 있을 것인가, 계산을 해 본바가 있사옵니다.

견훤    오호, 그런가...?

최승우  영토로 따지면 우리 백제보다도 더욱 큰 땅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고려이옵니다. 언제까지 조용히 있겠사옵니까? 이번에 이 일은 다분히 계산된 일일 것이옵니다.

능환    주저할 것 없사옵니다. 속히 우리도 왕신의 목을 베어 저들에게 돌려주고 군사를 일으켜 징계하도록 해야 할 것이옵니다.

종훈    그리하시오소서, 폐하. 어차피 저들이 싸우자고 또 다시 칼을 들었사옵니다.

견훤    지금 신라에서는 내분이 일어나고 있고 상당수의 신라 대신들이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네. 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헌데, 고려를 등에 업고 가게 된다면 그만큼 어려운 전쟁이 아닌가?

종훈    이미 조물성 전투 이후, 고려는 우리에게 많은 약점을 보이고 있사옵니다. 저들을 막으면서 충분히 서라벌로 가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능환    그때, 조물성에서 고려왕을 죽였더라면 다 끝났을 일이었사옵니다. 너무도 아쉽사옵니다.

견훤    지난 이야기를 해서 무엇하겠는가? 그때는 그럴 수 없는 사정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현실을 이야기 하세나. 

최승우  어쨌든 고려군은 우리와 대적할 것이옵니다. 어디가 주 전장터가 될 것인가가 문제이옵니다. 왕신이를 좀 더 살려 놓으시오소서. 두고두고 적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잇점이 있사옵니다.

능환    이미 우리가 보낸 인질을 죽였네. 헌데, 우리는 살려 놓으라는 말인가?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

최승우  고려왕은 인정이 약한 것이 약점이옵니다. 우리의 인질은 어찌되었든 이미 죽었사옵니다. 무엇이 보다 더 우리에게 실리가 있는 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사옵니다. 왕신을 살려 놓으면 필요할 때마다 끌어내서 이용할 수가 있사옵니다.

견훤    그건 그렇지가 않아. 저쪽에서 우리 사람을 죽였으면 마땅히 왕신이 놈도 죽어야지. 그런 건 질질 끌 필요가 없어. 내 성미에 맞지가 않아. 그래, 고려군이 어디로 올 것 같은가?

최승우  이미 조물성 일대는 우리 수중에 들어왔기 때문에 대야성이나 상주 방면 혹은 용주성(경북 예천)쪽을 노릴 공산이 크옵니다. 왜냐하면 고려로서도 그 쪽이 신라로 들어가는 중요한 길목이기 때문이옵니다.

종훈    신도 그런 생각이 드옵니다.

최승우  그 일대를 태자분들에게 맡기시고 폐하께오서는 극비리에 정예군사들을 이끄시어 서라벌로 가시오소서. 가는 길목의 호족들은 대부분 폐하를 존경하거나 우리와 내통하고 있는 신라 대신들의 당여들이옵니다.    

견훤    일리가 있네. 맞는 말이야. 이번 기회를 놓치면 서라벌로 가기가 점점 더 어려워져.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어.

능환    태자분들로 하여금 북쪽 전선을 맡게 하시는 것은 신도 참으로 좋은 계책이라 사료되옵니다.

견훤    허허, 그런가...? 허면, 모처럼 의견들이 일치되었군 그래.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세. 우리 신검이와 그 아우들을 대야성에 두어 본군을 삼기로 하고 고려와 경계를 이루는 용주성 쪽에는 금강이를 보내도록 하세.

최승우  좋은 생각이시옵니다. 하오나 폐하, 서라벌로 가시는 것을 고려가 눈치 채어서는 아니 되옵니다. 폐하께서는 대야성에 계시는 것으로 위장하시고 야음을 틈타 서라벌로 내처 가셔야 하옵니다. 족히, 사흘이면 서라벌 황궁에 당도하실 수 있사옵니다.

견훤    그럴듯해. 내가 대야성에 있는 것으로 위장하면 고려군은 대야성으로 몰려들 것이야. 그 사이에 나는 서라벌로 가는 것이야. 그럴듯해.

능환    하옵고 폐하..

견훤    말을 해 보게나.

능환    기왕에 태자마마들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신이 한 말씀 아뢰고 싶사옵니다.

견훤    말해 보게나.

능환    그 동안 시기가 적절치 않아 말씀을 드리지 못하였사옵니다마는... 어느덧 폐하의 보령이 환갑이 되셨사옵니다.

견훤    허허허, 그렇게 되었지. 헌데, 왜...?

능환    하온데도 아직까지 뒤를 이으실 황태자를 정하지 못하셨사옵니다. 이미 고려에서는 폐하의 보령보다 십년이나 아래인 고려왕도 정윤이라 하여 그 후사를 정해 놓았다 들었사옵니다. 이제 우리 백제국도 그럴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되어 한 말씀 올리옵니다.

견훤    ..........(불쾌해서 본다)

두 사람 .........(눈치만 보고)

능환    이제 신검 태자마마의 춘추가 삼십하고도 중반을 넘으셨사옵니다. 폐하께오서 그 권한을 크게 늘리시고 어려우신 일을 나누어 주심이 어떠하옵니까?

견훤    (한참 보다가) 신검이에게 말인가...?

능환    태자분들 중 맏이가 아니시옵니까?

견훤    맏이라...? 나이만 많고 서열만 높다고 해서 황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나라를 책임지고 끌고 갈 힘이 있어야 되는 것이야. 그리고 뭐라...? 권한을 늘리고 일을 나누어 주라...? 내가 그렇게 늙었다는 말인가? 그런겐가, 이찬?

능환    그런 것이 아니오라... 고려에서도 이미 그리한 일인지라...

견훤    (큰 소리로) 고려에서 하였다고 해서 나도 뒤를 따르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나는 고려의 왕이 아니야. 그리고 아직도 멀쩡해. 환갑이라고...? 나이는 환갑일지 몰라도 몸과 마음은 아직도 펄펄 끓어. 이 중요한 시기에 겨우 한다는 얘기가 그따위 얘기들인가? 후계는 내가 정하는 것이야. 내가 말이야, 알겠는가?

능환    ............

견훤    때가 오면 내가 다 알아서 할 것이야. 신료들이 이러쿵저러쿵 할 말이 아니야. 내가 이찬에게 한마디 경고를 하겠네. 공연히 신검이 편에 서서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 하는게 좋아. 그게 바로 이 황실에 분란을 일으킨다는 것을 아는가, 모르는가? 알아, 몰라?

능환    송구하옵니다, 폐하. 신은 다만....

견훤    오늘 회의는 그만 하도록 하세. 나 같은 늙은이하고 무슨 회의를 하겠는가? 돌아들 가게. 돌아들 가. 

최승우  폐하, 고정하시오소서. 이찬께서도 다 나라를 생각하시어 하신 말씀이시옵니다.

견훤    나라를 생각한다는 것이 고작 그런 말밖에 못하는가?  그만 돌아들 가.

능환    예, 폐하.. 하오면...

 

        세 사람 대답하며 일어선다. 능환과 종훈이 예를 표하고 먼저 나간다. 최승우가 그 뒤를 따르는데 견훤이 말한다.

 

견훤    파진찬은 잠시 좀 남아.

최승우  아, 예....

 

        능환들이 그렇게 빠져나간다.

 

씬  동 대전 밖 길

 

        궁궐 사잇길을 돌아오며 능환은 한숨을 거푸쉰다. 종훈이 본다.

 

종훈    뭘 그렇게 낙심하시옵니까? 마음을 편히 가지시오소서.

능환    폐하께오서는 이제 이 능환이를 아주 떠난 듯 보이시네. 그래도 옛날에는 죽음을 함께 하자고 약속한 의형제 사이네.

종훈    알고 있사옵니다.

능환    옛날은 다 갔어. 폐하께서는 그 옛정을 다 잊으셨네. 이제는 미움만 남으신 것 같아. 내가 어디 틀린 말을 하였는가? 황태자를 정하는 일은 늦어도 한참이나 늦었네. 헌데도 저리 노여워하시니... 

종훈    소인이 보기로는 폐하께서 다른 생각을 하고 계시는데 이찬어른께서 그걸 잘 모르시는 것 같아 보이옵니다.

능환    다른 생각.......?

종훈    허허허... 그렇다는 것이옵니다.

능환    다른 생각이라...? 다른 생각이라니...?

 

        그런 능환의 표정에서...

 

씬  다시 대전

 

        최승우와 견훤이 마주해 있다. 표정이 심각하다.

 

최승우  이찬어른은 평생을 폐하를 위해 사신 분이옵니다. 왜 그리 역정을 내셨사옵니까?

견훤    전후사정을 좀 보아가면서 이야기를 해야지. 이찬은 이제 늙어 가지고 앞뒤 분간을 잘 못한단 말이야. 그저 신검이만 무조건 끼고 도는 게야. 무조건 말이야.

최승우  틀린 말은 아니지 않사옵니까? 장자분을 후계로 정하시는 것은 고금의 예이옵니다.

견훤    자네마저 그렇게 생각하는가? 어느 시대나 제국의 창업기에 있어서는 그 예에 구속받지 않는 법이네. 왜냐, 창업보다 어려운 것이 수성이기 때문이야. 신검이가 과연 그 수성을 해낼 수 있겠는가? 아비가 세워 놓은 이 제국을 과연 만년 반석 위에 세울 수 있겠는가, 그 말이야? (도리질한다)

최승우  폐하... 하오나, 신검태자마마는 맏이시옵니다. 깊이 생각해 보시오소서.

견훤    잘못되었어. 금강이가 맏이가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여러 자식 중에 그만한 아이가 없어.

최승우  폐하..... ?

견훤    그렇다는 것이야.

 

        그렇게 생각하는 견훤의 괴로운 표정에서...

 

씬  어느 전각 외경 (밤)

 

씬  동 전각 안

 

        신검과 용검, 양검이 모여 있다.

 

양검    이찬께서 다음 보위 이야기를 꺼냈다가 아바마마께 큰 꾸중을 들었다 하옵니다.

신검    ..............?

용검    마땅히 옳은 이야기를 하였음에도 아바마마께서는 역정만 내셨다고 하옵니다. 이찬은 형님을 후계로 하실 것을 청하였다가 그리 되었다 는 것이옵니다. 

양검    이번 전투에 관한 배려도 그러하옵니다. 형님께서는 대야성에 계시고 금강이만 앞을 세운다 하시옵니다.

신검    그게 뭐 어제 오늘의 일이더냐? 뭐가 그리 새삼스럽다고들 그러는  것이야?

양검    불안해서 그러하옵니다. 계속 이렇게 나가다가는 우리 형제가 모두 금강이에게 당하는 것 아니옵니까..?

신검    당하다니, 당하기는 누가 당한다는 말이냐? 너희들 할 일이나 열심히 하거라. 너희들의 형이 그렇게 약하지는 않느니라.

용검    하오나 형님,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어찌 될 지 누가 아옵니까? 이찬 그분만으로는 부족하옵니다. 조정 안에 누군가 형님 편에 설 중신들을 더 찾아보아야 하옵니다.

신검    쓸데없는 소리다. 하늘이 정한 법을 누가 막는다는 말이냐? 그 법을 막는 자는 불행해 질 수밖에... 지금은 그저 참을 뿐이니라. 참고 지켜볼 뿐이야. 하다 안되면.... 그럴 리는 없지만, 하다 안되면.... 스스로 나의 권리를 찾을 수밖에...

두 형제 ............?

 

        그렇게 강한 결의를 보이는 신검의 표정에서...

 

씬  능애의 집 사랑

 

         능애와 박영규가 함께해 있다. 그들 차를 마신다.

 

능애    낮에 대전에서 황태자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지...?

박영규  예, 그런 일이 있었다 하옵니다.

능애    그것 참... 이찬은 왜 하필 그런 이야기를 꺼내가지고서는.... 그런 핀잔을 듣는다는 말인가?

박영규  그러나 사실 이야기가 나올 때는 되지 않았사옵니까? 우리 황실사람들로서도 그 동안 많이 궁금했던 일이옵니다.

능애    그렇기는 하네마는 폐하께서 아직까지 아무 말씀이 없으실 때는 그만한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틀림없이 신검태자 외에 다른 생각이 있으신 게야.

박영규  그 다른 분이라면...?

능애    허허허... 이 사람, 조카사위.. 왜 이렇게 알면서도 능청을 떠는가? 누구는 누구이겠는가? 금강태자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박영규  하긴 그렇기는 하옵니다마는...

능애    아니 되지.... (도리질하며) 아무리 금강이가 총명하다고 해도 형제간에 서열을 무시하면 아니 되지..

박영규  하오나, 폐하의 입장에서 보면 한 나라를 물려주고 맡기시는 일이옵니다. 그만큼 조심, 또 조심하시지 않겠사옵니까? 신검태자마마는 다소 과격한데다가 적지 않은 실패를 했던 과거가 있사옵니다. 그에 비해서 금강태자마마는 눈에 드러나는 전공이 많을 뿐더러 용감하고 총명하기가 형제분들 중 으뜸이옵니다.

능애    허허, 이 사람도 이거 금강태자를 두둔하는구먼 그래...? 그러나, 정해진 수순을 무시한다면 여러 가지로 일이 복잡해지네 그려. 나라는 결코 황제 혼자서 다스리는 것이 아닐세. 비록 크게 총명하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잘 보좌만 한다면야 얼마든지 잘 꾸려갈 수 있는 것이 정치 아니겠는가?

박영규  물론 그렇기는 하옵니다마는...

능애    허고 아직까지도 폐하께서는 정정하시네. 다시금 우리 백제와 고려가 긴장하고 있는 이 마당에서 다음 보위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옳지가 않아. 지금은 신라를 어떻게 하느냐, 그리고 고려에 인질로 가 있다가 죽은 진호의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이냐, 그게 중요한 것 같네 그려. 결국 국가의 과제는 통일이 아니겠는가? 그러자면 신라를 어떻게 하는가가 제일 큰 숙제인 것이야. 이번에 잘 되어야 할텐데...

 

씬  신라 황궁 외경 (낮)

 

씬  동 편전

 

        경애왕이 눈을 크게 뜨고 묻고 있다. 김율, 연식, 김부, 효렴, 영경, 김응겸, 유염들이다.

 

경애왕  고려에 와 있던 백제의 인질이 죽었다구요?

김율    예, 폐하.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사오나 백제의 인질 진호라는 자가 갑자기 죽어 지금 제 나라로 옮겨져 가고 있다 하옵니다.

경애왕  백제에도 고려의 인질이 가 있지 않소이까?

김율    그러하옵니다.

유염    고려 땅에서 백제의 인질이 죽었다는 것은 새로운 전쟁을 의미하옵니다. 우리 신라로서는 뭔가 대비를 하여야 할 것이옵니다.

김부    그러하옵니다.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던 고려가 분명 다시 백제와 싸우게 될 것이옵니다. 우리 신라는 어느 편인가 다시 택해야 하옵니다.

유염    이제부터는 백제를 의지 하오소서. 지난 번 조물성 전투에서도 백제는 승리를 하였사옵니다. 그리고 고려는 패하여 우리와의 동맹관계를 지키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연식    그럴 수는 없사옵니다. 그래도 우리는 고려를 지지해야 하옵니다. 한때, 고려가 어렵고 불리하였으나 지금은 다르옵니다. 여전히 고려는 우리 신라를 제일 우호적으로 생각하는 나라이옵니다.

효렴    신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백제는 공공연히 우리를 적으로 대하는 무지막지한 나라이옵니다. 백제와 손을 잡을 수는 없사옵니다.

김응겸  고려도 마찬가지이옵니다. 결국 언젠가는 숨겨진 마각을 드러내고 우리 신라를 삼키려 할 것이옵니다. 우리는 백제와 고려를 적절히 이용해야 하옵니다.

경애왕  여러 신료들의 말이 다 일리가 있소이다. 그러나 이럴 떄일수록 우리가 흔들려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고려와의 약속을 계속 지켜야 합니다. 백제는 아니에요. 오히려 우리가 고려를 도와서 백제를 무너뜨려야 합니다. 고려는 우리를 보존해 줄 수 있지만 백제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유염    잘못 생각하시는 것이옵니다. 오히려 고려가 그러하옵니다. 믿지마오소서.

경애왕  아니오 더이상 논하지마오. 국론이 분열되어서는 아니 되오. 백제는 우리의 영원한 적이오. 절대로 믿지 못할 사람들입니다. 고려뿐이오. 우리의 이웃은 고려뿐입니다.

 

        그러자 유염은 한숨을 쉬며 김응겸을 본다. 두 사람의 눈빛이 교환되며 서로 머리를 젓는다. 뭔가를 결심한 것이다.

 

씬 송악 연병장

 

        군사들이 훈련에 연연이 없다. 기마대와 보병들이 열을 지어 지나간다. 이어서 온갖 병기를 든 병사들이 끝도 없이 지나쳐 가고 있다. 각 장수들이 모두 참여해 있다. 유금필, 신숭겸, 박술희, 배현경, 홍유, 김락, 염상, 왕충, 윤신달, 김언, 전이갑 형제, 박수문 형제들이다.

 

김락    우리를 조물성에서 불러 올린 이유를 이제야 알겠소이다. 아아.. 참으로 가슴이 벅차오이다. 백제를 친다하니 맺힌 응어리가 다 풀리는 것 같소이다.

윤신달  왜 아니겠습니까? 한동안 조용하길래 정말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하고 무척 답답했습니다.   

유금필  이제 그 답답증이 다 풀릴 것이외다. 이미 폐하께서 결심을 하셨소이다. 백제와 전면전이 시작 될 겝니다.

배현경  왜 아니겠소이까? 우리의 소원은 백제왕을 잡아 꿇려서 폐하께 용서를 빌게 하는 것이외다. 반드시 그리 만들어야지요.

김언    우리 장수들 치고 그런 생각을 아니 갖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리 되어야지요. 반드시 그리 되어야지요.

박술희  군사들의 훈련은 만족 할만 합니다. 어서 영이 떨어져야 할 터인데. 벌써부터 마음이 급합니다. 허허허.

전이갑  소장도 그렇습니다. 정말 급합니다. 

박수문  그러나 아직까진 백제에 가있는 우리 인질의 소식이 없습니다. 그 일의 결과를 보아야 우리가 출병을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홍유    그건 그럴 것이외다. 아무래도 폐하께서 영을 내리시는 것은 그 다음이 되겠지요. 우리는 그 동안 열심히 칼을 갈아 놓는 것입니다. 단칼에 저들의 목을 벨 수 있도록 아주 잘 갈아 놓아야겠지요. 하하하...

 

씬 황궁 외경

 

씬 동 대전

 

        왕건과 최응이 마주해 있다. 

 

왕건    군사들이 연일 훈련에 여념이 없다고 들었네.

최응    예 폐하. 모두들 의기가 아주 높사옵니다. 일당백의 용기들로 땀을 흘리며 훈련에 임하고 있사옵니다.

왕건    (최응을 보며) 이건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산된 것이 아닌가? 진호가 죽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야. 아니 그런가 병부령?

최응    진호 때문이 아니라 모두들 맺힌 것이 그만큼 큰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왕건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신이 아우의 소식을 모르고 있네. 너무 저들을 자극하는 것은 좋지가 않네. 나는 군을 비상 대기하라고 하였지 저토록 요란하게 훈련을 하라고 한 적은 없네.

최응    알고 있사옵니다 폐하.

왕건    나는 지금도 내 아우의 목숨이 보존되기를 바라고 있네. 어차피 진호는 이미 목숨을 잃었네. 그러나 내 아우는 아직 아니야. 그것이 확인되기까지는 절대로 군사를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야. 알겠는가? 그 점을 분명히 알아주게.

최응    예 폐하. 어찌 폐하의 그 깊으신 성심을 모르겠사옵니까? 신들은 그저 충분히 사후를 지켜보며 대응할 뿐이옵니다. 염려 놓으시오소서 폐하.

왕건    제발 아무 일 없어야 할 터인데. 제발... 그래도 목숨을 살려 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랬으면 좋겠는데.

최응    ......

 

씬 광평성 일각

 

        김행선과 왕식렴, 왕규, 최지몽이 함께 해있다.

 

김행선  백제의 볼모가 죽고 나서 나라 사정이 아주 크게 변해 버렸소이다.

왕규    그러게 말이옵니다. 온 나라가 아주 시끌벅적 하옵니다.   

최지몽  숨들을 죽이고 있다가 기지개를 펴니 얼마나 시원들 하겠사옵니까?

왕식렴  ......(그저 쓴 미소만)

김행선  왕 총관.

왕식렴  예 시중어른.

김행선  아무튼 이번 일은 조정에서 알 사람은 다 압니다. 왕 총관의 결심이 아주 크다고 들었습니다. 시중으로서 너무 고맙소이다. 이로서 나라가 살았소이다. 왕공.

왕식렴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그저 순리를 따르고 있을 뿐이옵니다.

김행선  그러나 그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소이까? 자신의 것은 털끝하나조차도 아까워하는 것이 세상의 인심이올시다. 하물며 사람의 목숨이겠소이까?

왕식렴  물론 그러하옵니다. 이 세상에 목숨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사옵니까? 그러나 나라를 위해 필요하다면 드려야지요. 그것이 신료된 자들의 본분이 아니겠사옵니까?

김행선  그런 공의 마음이 많은 신료들의 심금을 울렸소이다. 공이야말로 참으로 존경받아 마땅한 분이올시다.

왕식렴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그만 하시오소서. 아우는 죽어가고 있는데 형이 되어 그 목숨 값으로 칭찬을 받는 다는 것은 차마 못할 일이옵니다. 지금쯤 진호의 시신이 도착을 하였을 것이옵니다. 제 아우도.... 아마.......(목이 메이며) 지금쯤 죽어가며 이 형을 원망하고 있을 것이옵니다. 이 형을........

 

        그렇게 목이 메이는 왕식렴의 표정에서 천천히 디졸브 되며

 

씬 전주 백제 황궁

 

        왕신이 끌려 나와 형을 기다리고 있다. 저만큼 진호의 시신이 오고있다. 그 수레가 황궁 앞에 이르자 신료들이 일제히 갈라서며 주목한다. 아무도 말이 없다. 견훤이 노한 눈빛으로 시신을 호송해 온 군사들과 관리를 보고있다.

 

견훤    네가 우리 진호의 시신을 운구 해왔느냐?

관리    예 폐하. 신은 시랑 의훤이라 하옵니다. 대 고려국 황제 폐하의 영을 받자와 이렇게 시신을 뫼셔 왔사옵니다.

견훤    그래? 우리 진호는 어찌하여 죽었느냐?

관리    소인이 어찌 알겠사옵니까? 미리 글을 띄워 보냈다 들었사옵니다. 폐하께서 이미 아시지 않겠사옵니까?

견훤    그 글이 엉터리 같기에 다시 물은 것이다. (보다가 훈겸에게) 가서 살펴보게.

훈겸    예 폐하.

 

        훈겸이 시신 가까이 내려가 덮인 것을 들추고 이리 저리 살펴본다. 신료들은 모두 마른침을 삼키며 본다. 견훤도 가까이 와서
 본다.
 

견훤    (찡그리며) 여러 날이 지나서 그런지 많이 상했구먼. 부패되었어.

훈겸    날이 오래 지났기도 하였지만 그보다도 아주 지독한 극약을 마신 것 같사옵니다. 그 극약 때문에 부패가 심한 것이옵니다.

견훤    극약이라고 하였는가?

훈겸    틀림없사옵니다. 맹독물을 마신 것 같사옵니다. 입술과 눈 주변을 보면 알 수 있사옵니다. 독살되신 것이 분명 하옵니다.   

신료들  ..........(웅성거린다)

견훤    (제자리로 가 서며) 왕신이라고 하였느냐?

왕신    ..........?

견훤    지금 우리 의원이 한 말을 들었느냐? 우리 황후의 조카이고 나를 대신하여 고려에 손님으로 가있던 우리 진호가 독살을 당하였다고 한다. 독살 말이다. 이렇게 되면 너의 목숨이 어찌 되는 줄 알고 있느냐?

왕신    ......(미소만)

견훤    진호는 나를 대신한 손님이었다. 고려의 무지한 자들이 그러한 진호를 죽였다. 그리고 너는 바로 고려의 왕을 대신하여 이곳에 와있었다. 이젠 네가 어찌 되어야 하느냐? 말해 보아라.

왕신    긴말을 해 무엇 하겠소이까? 죽이려거든 어서 죽이시오.

견훤    나를 원망하지 말아라. 너희 나라와 너희 황제를 원망하여라. 여봐라! 이자를 끌어내 목을 베어라! 진호의 원혼을 달래 주어야겠다.

 

        대답 소리와 함께 군사들이 와서 왕신을 끌고 나간다. 최승우가 나선다.

 

최승우  폐하, 한 번 더 생각하시오소서. 왕신의 목숨은 잠시 살려 두오소서. 쓸모가 많사옵니다.

능환    아니 되옵니다. 죽이시오소서. 사정을 볼 이유가 없사옵니다.

능애    그러하옵니다. 죽이시오소서.

모두들  죽이시오소서 폐하.

견훤    어쩔 수 없네, 파진찬.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야. 비록 훗날 쓸모가 있다 하여도 지금 필요한 것은 고려에 보여 줄 우리의 의지일세. 어서 데려가 목을 베거라.

왕신    기다리시오.

모두들  ...........?

왕신    어차피 죽은 목숨이오. 기왕에 죽는다면 우리 황제가 계시는 곳에 마지막 절이라도 하게 해주는 것이 예의일 것이오. 예를 차릴 기회를 주시오.

견훤    그 말을 들으니 그럴 법도 하다. 어찌 인사할 시간을 아니 주겠느냐. 그리하라.

왕신    고맙소이다. (북쪽을 향해 서며) 폐하, 신 왕신이는 가옵니다. 기꺼이 나라의 소명을 받들어 이 목숨을 바침을 광영으로 생각하옵니다. 부디 대업을 이루시오소서 폐하. 대업을 이루시오소서.

 

        절을 한다. 한번 그리고 두 번, 그리고 세 번째 갑자기 혀를 깨물며 일어서더니 소리치며 그대로 달려가 돌기둥에 머리를 두 번 부딪혀 죽는다. 미쳐 손을 쓸 사이도 없었다. 군사들이 달려가 왕신을 제지할 때에 그는 이미 눈을 부릅뜨고 죽어있다. 모두들 처참한 광경을 그렇게 보고있다.

 

견훤    (끄덕이며) 과연 고려왕의 아우답다. 미련을 남기지 않고 사내답게 죽었구만. 아니 된 일이지만 이럴 수밖에 없었느니라. 너 사신으로 온 자는 들어라.

관리    (떨며) 예, 폐하.

견훤    너희가 진호의 시신을 보내 주었듯이 나도 왕신의 시신을 돌려 줄 것이다. 이미 이로서 화친은 깨어졌다. 돌아가거든 내가 지난 날 선물로 주었던 우리 절영도의 총마도 돌려보내라 하라. 선물의 의미가 이미 없어졌다. 알겠느냐?

관리    예 폐하.

견훤    이제 돌아가라. 남은 것은 전쟁뿐이다. 가서 전하라. 조물성에서는 인정을 봐주었으나 이제 그런 것은 없다고 말이다. 그렇게 전하라! 알겠느냐?

관리    예 폐하. 그리 전하겠사옵니다.

견훤    왕신이의 시신을 수습해주어라. 그리고 전 군은 출병준비 해라. 출병준비 하라!

신료들  예 폐하.

 

        그렇게 결전을 다짐하는 견훤의 표정에서

 

씬 길

 

        왕신의 시신이 가고 있다. 배경 화면이 깔리면서...

 

해설    왕신. 왕건의 사촌 아우이다. 지난 날 조물성 전투에서 왕건이 크게 불리하였을 때 견훤과 화해를 하며 보냈던 인질이다. 이 때 견훤은 황후의 조카가 되는 진호를 왕건에게 보냈었다. 그 진호가 서기 926년 4월에 의문 속에 죽자 견훤은 일부러 죽인 것이라 의심하며 왕신을 가두었다가 죽인 것이다. 그리고 시체를 돌려보내니 이때가 927년 1월의 일이었다. 이때 견훤은 일찍이 왕건에게 선물로 주었던 절영도의 명마를 다시 돌려보내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절영도의 말이 백제를 떠나면 백제가 망한다는 도참설에 의해서 그리했다고 한다. 어쨌든 이로서 모든 화친은 깨어졌다.

 

씬 고려 송악 황궁 길

 

        왕신의 시신이 오고있다. 군사들이 양쪽에서 호위해 오고있다. 저작거리를 지날 때 백성들이 모두 오열하며 엎드린다. 그렇게 지나쳐 가면

 

씬 동 황궁 앞

 

        신료들과 왕건이 왕신의 시신을 맞고 있다. 가까이 황궁 문 앞에 이를 때까지 아무도 말이 없다. 황후 오씨와 부인 유씨 그리고 태자와 두 상궁도 보인다. 왕신을 태운 수레가 멈추고 나자 왕건이 다가간다. 그리고 시신을 본다. 눈물을 흘린다. 왕식렴도 저만큼 보고있다. 이미 눈가에 눈물이 가득하다. 신료들은 아무도 말이 없다. 유금필은 특히 표정이 무겁다. 허나 최응은 담담하다.

 

왕건    오오... 이렇게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오다니. 이일을 어이할꼬.... 이 형이 못나서 아우를 죽게 하였구나. 용서하게 아우. 용서하시게.

복지겸  폐하. 신료들이 보고 있사옵니다. 그만 자중하시오소서. 지존께서 신하들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셔서는 아니되옵니다. 위엄을 보여주시오소서 폐하.

왕건    한 목숨이 그 황제가 무능하여 죽었소이다. 위엄이 다 무엇이오. 이미 내 부끄러움은 백성들이 알고 장졸들이 다 알고 있소이다. 거짓 위엄을 세워 무엇하리오. 차라리 진실로 이 부끄러움을 빌고 내일을 기약함이 옳을 것이오. 이보게 식렴아우.

왕식렴  예 폐하

왕건    우리 아우가 이렇게 차갑게 말없이 돌아왔네. 우리는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아우를 죽인 것은 나와 자네와 그리고 이 나라의 모든 신료 들일세.

신료들  .......

왕건    (제자리로 돌아가며) 경들은 들으오.

모두들  예 폐하.

왕건    오늘부터 사흘간 나라를 위해 죽음을 택한 신이 아우를 조상할 것이오. 이 동안 가무음곡을 금하고 도성 성문에는 조기를 걸도록 하라.

모두들  예.

왕건    그리고 들으오. 어차피 화친은 옛말이 되었소이다. 우리는 출전할 것이오. 기왕에 나서는 싸움이라면 절대로 후회하는 싸움을 해서는 아니되오. 그야말로 대 고려의 이름을 드러내도록 합시다. 싸울 것입니다. 그리고 이길 것입니다. 모두들 오늘의 이 죽음을 헛되지 않도록 하오.

모두들  예, 폐하.

 

        그렇게 결심하는 왕건의 표정에서 디졸브되면...

 

씬  인서트

 

        황도 어느 연병장이다. 훈련은 계속되고 있다. 끝도 없이 보급품들이 옮겨지고 있고 군사들의 이동이 눈에 보인다. 성을 공격하는 장비들도 계속해서 지나쳐 가고 있다.

 

씬  편전

 

        왕건의 주재 하에 최응이 지도를 보며 설명하고 있다. 장수들의 회의가 열리고 있다.

 

최응    (지도를 가리키며) 여기 조물성은 아직까지 우리 영토에 속해 있으나 이 성밖 일대는 대부분 백제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사옵니다. 지금 우리 군은 여기 근암성을 최단 경계로 하여 고사갈이성(문경읍)과 배산성(문경시 초계면) 그리고 용주 일대와(경북 예천) 계림령 일대를 전선으로 할 것이옵니다.

왕건    그렇다면 주 전장터가 상주지방이 되지 않겠는가?

최응    그렇지는 않사옵니다. 상주와 더불어 용주지방 전체가 주 전장터가 될 것이옵니다. 용주성은 아직까지도 백제군이 장악하고 있사옵니다. 우리가 이 성을 공격하여 이 일대를 확보하고 조물성과 연결시킴으로서 신라로 갈 수 있는 길목을 완전하게 장악할 수가 있사옵니다. 백제로서도 이 길은 신라로 가기 위해 필요한 곳이옵니다.

배현경  상주는 아직까지도 우리 고려의 영향력이 강한 곳이올시다. 소장이 생각하기로는 용주(예천)가 더 큰 전장터가 될 것 같사옵니다.

홍유    신도 그리 보옵니다. 어쨌든 백제는 우리를 경계하면서 신라를 도모하려고 할 것이옵니다. 그 길목을 선점하는 것은 당연하옵니다. 먼저 용주성을 공격하도록 하시오소서.

왕건    (끄덕이며) 그리하도록 하십시다. 그러나 적군은 용주를 비롯해 주변 일대의 최고 전략적 요충지인 대야성에 전진기지를 두고 있소이다. 이 기회에 대야성도 한번 노려봄이 어떠하오?

최응    일리 있는 말씀이시옵니다. 그 동안 신라가 빼앗긴 그 대야성으로 하여 우리 조물성이 계속해 위협을 받아왔사옵니다. 이번에 용주를 치면서 동시에 대야성의 허를 찔러볼 필요가 있사옵니다. 문제는 백제를 공략하면서 우리가 서경으로 삼고 있는 평양성 이북의 저 북방도 경계를 게을리 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옵니다.

왕건    옳거니... 지금 거란의 힘이 발해를 무너뜨리고 빠른 속도로 남하하고 있다고 들었네. 그쪽도 경계를 단단히 해야지. 그쪽은 이번에 다시 식렴아우가 돌아가도록 하고 금필아우와 술희아우가 잠시 가서 맡아 있도록 하게.

그들    예, 폐하.

왕건    어차피 목표가 용주성이라 하니, 이보게 숭겸아우...?

신숭겸  예, 폐하

왕건    아우가 배현경, 홍유 장군과 함께 용주를 치도록 하게.

신숭겸  예, 폐하.

배현경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왕건    그리고 김락 장군이 김언 장군과 전이갑, 의갑 장군들과 더불어 대야성을 한번 도모해 보도록 하오.

김락    예, 폐하. 큰 성을 공략하게 허락하여 주시니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최응    그러나 대야성의 공략은 극비로 해야 하옵니다. 워낙 단단하고 큰 성인지라 정면으로 들어가서는 승산이 안서옵니다. 어디까지나 겉으로는 용주를 공략하면서 군사를 비밀리에 이동하여 기회를 보아야 할 것이옵니다. 

왕건    그리하도록 하세. 허면, 대야성은 그리하도록 하고 짐과 복장군은 황도에 남아 전 전선을 살펴보도록 하십시다.

복지겸  예, 폐하.

왕건    그리고 염상장군과 왕충, 윤신달 장군은 신숭겸 장군의 우익을 맡고 박수문, 박수경 장군들은 역시 김락 장군을 나누어 돕도록 하오.

그들 모두       예, 폐하.        

 

        그때, 신방이 다가와 뭔가 귓속말로 복지겸에게 속삭인다. 복지겸이 흠칫하며 끄덕인다. 그리고 말한다.

 

복지겸  폐하, 마침 기쁜 소식이 들어왔사옵니다.

왕건    기쁜 소식이라니...?

복지겸  신라에서 밖에 사신이 와 있사옵니다. 폐하께서 군대를 일으키신 것을 알고 지원군을 보내겠다 하옵니다.

모두들  .............(술렁거린다)

왕건    아니, 신라에서 지원군을 말인가?

복지겸  그러하옵니다. 이미 출병준비를 마치고 폐하의 영을 기다리고 있다 하옵니다.

왕건    이렇게 기쁠 때가 있나? 신라에서 지원군을 다 보내다니...

김락    폐하, 그까짓 오합지졸의 신라 지원군을 무엇에 쓰겠사옵니까?

최응    그렇지가 않습니다. 쓸모가 있건 없건 그리고 몇 명이 되었든 간에 신라와 고려가 연합군이 되어 싸운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천하의 인심을 움직이는 데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것입니다.

왕건    옳은 말일세. 과연 그러하이. 어쨌든 신라와 고려가 힘을 합쳐서 백제와 싸운다는 데에 의의가 있는 것이야. 적절한 때에 참으로 큰 힘을 보태 주었네. 허허허... 군사를 일으키는 데에 아주 낭보로세. 좋은 소식이야. 기꺼이 지원군을 받겠다고 하시오. 연합군으로서 얼마든지 싸울 수 있다고 전하시오. 얼마든지 말이오. 경들은 들으시오.

모두들  예, 폐하.

왕건    하늘이 우리를 돕기 시작한 것 같소이다. 사실 형편이 어렵기 그지없는 신라가 우리에게 군사를 지원해 줄 수 있다는 것은 꿈같은 일이올시다. 이는 신라가 우리 고려를 얼마나 믿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이오. 동시에 천하의 인심이 우리에게 오고 있음을 또한 증명하는 것이오. 이번 전투에 우리는 사활을 걸 것이오. 반드시 목적한 바를 얻고 백제를 물리치도록 하십시다.

모두들  예, 폐하.

왕건    그리고 조물성에서 짐이 당했던 그 수모를 반드시 갚도록 하십시다. 반드시 말이오.

 

 

 

                                                        <153회 끝>  





첨부파일 태조왕건153.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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