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 154회>
<줄거리>
고려는 신라의 지원군과 연합군을 이루어 백제의 대야성과 용주성으로 향한다. 견훤은 최승우의 계책에 따라 자신이 대야성에 주둔하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여 고려군을 속이고, 극비리에 신라의 서라벌로 향한다. 견훤은 신라의 친백제계 신료들의 도움으로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은 채, 거침없이 서라벌로 진군한다. 한 편, 고려군은 대야성 지리에 밝은 신라군을 활용하여 양동작전으로 대야성을 공격하는데.....
씬 황궁 도성 앞
왕건이 전선으로 가는 장수들을 환송하고 있다. 신숭겸과 김락이 이끄는 대 부대가 왕건에게 군례를 드리며 도성을 빠져나가고 있다. 그들을 위해 손을 흔드는 왕건 그리고 왕후들이 보고 있다. 그 위로
해설 단기 3260년, 서기로는 927년 드디어 왕건은 조물성 전투 이후의 침체를 벗어나 백제의 원정길에 올랐다. 이해는 왕건의 즉위 십년 째 되는 해였다. 고려의 주목표는 지금의 경상북도 예천인 용주와 경상남도 합천인 대야성이었다. 그 중 특히 용주는 소백산맥 이남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확보하는 전략적 의미가 컸다. 그리고 이때에 무엇보다도 고려와 신라가 동맹을 맺고 연합군을 편성했다는 사실은 역사상 매우 특기할만한 일이었으니 백제가 삼한의 세 나라 중 두 나라의 공동의 적이 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의미하는 것이었다. 고려의 왕건으로서는 어찌 기운이 나지 않았으랴. 그러나... 그러나 아직 왕건의 시대는 오지 않고 있었다. 조물성 전투 이후, 왕건으로서는 생애 두 번째의 엄청난 불행이 예고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황도 송악을 출발하여 도중에 신라의 지원군과 만나 연합부대를 이루어 진격해 나아간다. 그리고 그 무렵, 백제도 이미 군을 준비하고 있었다
씬 백제 황도
견훤이 군을 사열하고 있다. 이곳에서도 대군이 들끓고 있다. 장수들이 군사들을 이끌고 지나쳐 가고 있다. 사열대에서 견훤이 최승우와 함께 보고 있다. 책사들인 종훈과 능환도 함께 있다.
최승우 군을 셋으로 가를 것이옵니다. 그 중 제 일군인 폐하께오서는 선발된 정예 철기군과 극비리에 서라벌로 이동하시오소서. 지금 고려군은 북부지역인 용주(예천)로 집중하여 몰려오고 있다 하옵니다. 하오니 폐하께서는 동남쪽으로 우회하시어 거창군과 대야성(합천)을 지나 고령과 의창(의성), 벽진(성주)군 앞을 지나 임고군(영천) 쪽으로 가시면 서라벌로 가는 지름길을 큰 저항 없이 가실 수 있사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폐하의 군대가 겉으로 드러나서는 아니 되옵니다.
견훤 알고 있네. 부장으로서 애술장군과 신덕, 상귀 장군이 함께 가는데 무엇이 걱정이겠는가?
최승우 하긴 그러하옵니다. 도중에 적은 없사옵니다. 폐하께서 가시는 그 길 자체가 이미 우리와 밀약을 해놓은 친 백제족 호족들이 다스리는 경계지역들이옵니다.
견훤 알고 있네. 나는 태자들이 더 걱정일세. 이번 기회에 대야성과 용주를 맡겨놓고 가긴 하네마는 왠지 불안하이. 고려와 신라의 연합군이 온다고 하지 않는가?
능환 말뿐인 연합이옵니다. 신라가 무슨 힘이 있어 큰 군대를 보내겠사옵니까? 그저 몇 백명 보내서 보급품이나 나를 정도일 것이옵니다.
종훈 그렇다 하더라도 신라와 고려가 손을 잡았다는 그 사실 자체가 우려할 만한 것이옵니다.
최승우 그렇사옵니다.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대외에 알려져 있는 두 나라 사이의 동맹관계가 더 걱정이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 백제만 세상에 좋지 않은 모양으로 비칠 우려가 있사옵니다. 그 때문이라도 빨리 서라벌 길을 여셔야 하옵니다.
견훤 다 그 신라의 박씨왕 때문이야. 이 자가 아주 나를 우습게 보고 있어. 이번에 서라벌에 들어가거든 단단히 혼을 내줄 것이야.
최승우 어차피 폐하께서 가시면 김씨가 박씨를 밀어내고 왕좌에 앉게 될 것이옵니다.
종훈 저는 그 점이 아직 이해가 가지 않사옵니다. 기왕 들어가실 바에야 신라를 아예 백제땅으로 만들 것이지 어찌하여 다시 또 명줄을 붙여놓는다는 말이옵니까?
최승우 허허허... 그렇지가 않소이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서로 칼을 맞대고 싸우고는 있지만 그래도 형식은 평화로운 통일이 되어야 하는 것이오. 강제로 빼앗고 피를 보게 되면 백성들이 한을 품게 되는 법입니다. 이번에 가셔서 친 백제적인 신라를 만들어 놓으시면 그들 스스로 옥좌를 들어서 폐하께 올 것이외다. 그러면 마지못하시는 척 받으시는 것이지요. 결론은 같지만 방법은 다르다는 것이지요.
견훤 어쨌든 간에 신라의 왕이 고려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것은 두고두고 기분 나쁜 일이야. 더 이상은 놓아둘 수가 없어. 지원군을 보내다니...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느냐는 말이야. 나를 도대체 뭘로 보고 말이야. 괘씸한...
그들 그렇게 사열대 주변을 걸어간다. 능애가 지난 번에 밀사로 왔던 사내 하나를 데리고 온다. 모두들 보면...
능애 폐하, 방금 신라에서 도착한 밀사이옵니다. 신라의 국상 김응겸이 보낸 밀사라 하옵니다.
밀사가 와서 예를 올린다. 그리고 밀지를 전해 올린다. 최승우가 받아 읽고 말한다.
최승우 (미소) 폐하, 신라의 서라벌에서는 이미 약속대로 폐하가 오시는 길마다 모든 장애물을 치우고 학수고대 기다린다 하옵니다. 출병을 하실 때가 된 것 같사옵니다.
견훤 오, 그런가...? 허면 편전으로 가세. 제장들을 오라 하게.
최승우 예, 폐하.
견훤 (가면서 밀사에게) 그대는 가서 전하거라. 나 백제황제는 그대들의 청에 기꺼이 응하겠노라고... 이미 군사를 일으켰으니 빠른 시일 안에 그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나를 영접할 준비를 성대히 해 놓으라 하라. 하하하.....
밀사 예, 폐하.
견훤들 그렇게 가고.... 밀사는 회심의 미소를 짖는다.
씬 동 편전
대형지도가 걸려있고 제장들이 모두 모였다. 견훤이 일장 훈시를 하고 있다.
견훤 드디어 고려군이 움직였어. 그리고 우리도 출병 준비를 마쳤어. 태자들은 들으라.
태자들 예, 폐하.
견훤 이번 전투는 조물성 전투 이후 가장 큰 전투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전투 중 절반에 해당하는 부분에 태자들이 맡게 되어 있다. 너희들의 책임이 그만큼 막중하다는 것이야.
태자들 예, 폐하.
견훤 파진찬은 설명해 주게.
최승우 예, 폐하. (지도 가리키며) 지금 우리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투에 임해 있사옵니다. 이번 전쟁은 크게 둘로 나누어 태자마마들께서는 고려군을 방어하는 소임을 맡게 되실 것이고 폐하께오서는 정예선발된 철기군을 이끄시고 전광석화같이 신라의 서라벌로 향하실 것입니다.
모두들 .............
최승우 일단 겉으로 우리는 대야성과 용주성으로 집결하는 것처럼 위장할 것입니다. 이는 폐하께서 안전하고 빠르게 그리고 극비리에 서라벌에 도착하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 올습니다. 더불어 신검태자마마께오서는 일단의 장졸들을 이끄시고 대야성으로 가실 것이옵니다. 가실 때에는 황제폐하를 상징하는 군기를 함께 가져가시오소서. 저들을 속일 필요가 있사옵니다.
신검 알겠사옵니다.
최승우 또한 금강태자마마께오서는 용주성으로 가시어 밀려오는 고려군을 막아야 하옵니다. 군사는 총 이만이며 그중 오천은 대야성에 또 오천은 용주성에 배치될 것이며, 나머지 일만군은 모두 세개의 군단으로 나뉘어 지름길로 하여 서라벌로 향할 것입니다. 모두들 아시겠습니까?
제장들 예...
최승우 이번에 폐하께서는 공직장군께서 황도를 지키라 하십니다.
공직 예, 알겠소이다.
최승우 애술장군과 신덕, 상귀 장군은 폐하를 모실 것입니다.
그들 알겠습니다.
최승우 이찬 어른은 능애, 부달, 소달 장군과 더불어 신검태자마마를 모시고 대야성으로 가시오소서.
이찬 알겠네.
최승우 그리고 박영규 장군과 김총, 최필 장군은 종훈 군사와 더불어 용주성으로 가야할 것이외다.
그들 알겠사옵니다.
견훤 자 그러면 모든 군의 편제도 끝났어. 이미 적이 오고있다 하니 우리도 곧 출발하여 저들을 맞아야 할 것이야. 다시 한번 일러두거니와 이만의 군사 중 일만이 서라벌로 가는 것이야. 우리가 서라벌에 입성하게 되면 하늘이 놀라고 땅이 놀라는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이 벌어질 것이야. 그러나 대군이 가는 것을 숨기자면 그만큼 엄청난 노력이 필요해. 모두들 최선을 다해주길 바라노라.
모두들 예, 폐하.
견훤 자, 곧 세상을 놀라게 할 엄청난 소식들을 기대하라. 그리고 출병하라. 밤이 어두워지면 각자의 임지로 출발할 것이다.
모두들 예, 폐하.
그리고 끄덕이는 견훤의 표정에서 디졸브되면...
씬 황궁 마당길 (밤)
엄청난 군사들의 대 이동이 시작되고 있다. 먼저 금강이 깃발을 앞세우고 소속된 부장들과 함께 떠난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신검과 용검, 양검 형제들이 견훤이 가지고 다니던 황제의 깃발을 앞세우고 거짓황제의 모습으로 꾸민 신검을 백마를 타고 앞세워 가고 있다. 그들 모두 견훤에게 그렇게 군례를 드리며 앞서간다. 끄덕이고 보는 견훤과 최승우, 그리고 장수들의 모습에서 이윽고 견훤도 손을 들어 행군을 알린다.
견훤 자, 우리도 가자. 전원출발하라.
애술 전원 출발하라.....
장수들 출발하라.....
공직이 예를 올린다. 황후들인 박씨와 고비가 보고 있다. 그들도 모두 예로서 견훤군을 환송한다. 흙먼지는 끊이지 않고 군사들의 모습은 점차 어둠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씬 길
달빛 어린 황톳길을 견훤군이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 깃발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일단의 장졸들이 가고 있는 것이 보일 뿐, 견훤의 모습도 일반장수들과 같다. 다만 띠를 둘렀을 뿐이다. 그렇게 계속해 가고...
씬 또 다른 길
어느 강변길이다. 신숭겸과 김락이 군사를 거느리고 오다가 갈림길에 이르른다. 그때, 저만큼 어둠 속에서 일단의 군대가 오고 있다. 그들 서서 보면 신라의 지원군이다. 장수 하나가 와서 군례를 드린다.
장수 소장은 신라에서 오는 지원군의 장수올시다. 지금 막 김락장군의 수하에 들라는 영을 받았습니다.
김락 이 사람이 바로 김락이오. 반갑소이다.
장수 예, 장군.
신숭겸 자 마침 때맞추어 신라의 지원군이 도착했구려. 우리는 그럼 용주로 가겠소이다. 잘해보십시다.
김락 조심하시구려.
신숭겸 모두들 가자...
배현경 김장군, 승전보를 가지고 만납시다.
김락 그리 하십시다, 허허허....
그렇게 신숭겸 군은 방향을 돌려 멀어져간다. 김락의 군대가 그렇게 서 있고 장수들이 지원군으로 온 장수를 본다.
장수 우리 신라군은 어디를 공격하는 것이옵니까?
김락 우리는 야음을 틈타 이틀 안에 대야성에 도착하려고 합니다. 우리 병부령은 그대들과 대야성의 일을 의논하라 하였소이다.
장수 그렇소이다. 그 일은 우리 신라의 군사들이 할 일이 올습니다. 지금부터 전략을 세워 우리 군사들이 미리 대야성안에 잠입할 것입니다. 지난 날 백제군이 대야성을 함락시킨 방법을 그대로 쓸 필요가 있습니다.
김언 그거 좋은 방법 같습니다. 황도를 떠나올 때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잘해 보십시다.
전이갑 적은 지금 온통 용주성에 신경이 가 있습니다. 병부령은 우리보고 그 틈새를 노리라고 하였소이다. 지금 생각하니 신라 지원군을 우리에게 붙여준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김락 (끄덕이며) 자, 그럼 일단 우리가 목적한 곳까지 이동을 하십시다. 거기 가서 구체적인 공략 방안을 논의해 보십시다.
모두들 예, 장군.
김락 계속 행군하라. 서둘러라.
부장들 서둘러라.. 서둘랍신다.....
그렇게 군사들이 다시 움직여 간다.
씬 고려 황궁 외경 (새벽)
씬 동 대전
왕건과 최응, 복지겸, 정윤 무가 함께 해 있다. 최응이 설명하고 있다.
최응 백제도 지금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하옵니다. 쉬임 없이 들어오고 있는 첩보에 의하면 백제의 주력부대는 우리가 목표로 삼고 있는 용주로 향하고 있다 하옵니다.
왕건 오, 그런가?
복지겸 저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대야성에 본진을 두고 용주를 공격할 참인 것 같사옵니다.
무 그렇다면 병부령의 생각대로 맞아드는 것이 아닙니까?
최응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옵니다. 저들도 워낙 뛰어난 책사들이 많아 끝까지 행동반경을 보고 나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옵니다.
왕건 아무래도 이번에는 짐이 직접 친정을 할 걸 그랬나보이.
최응 기회는 많이 있사옵니다. 이제 시작이옵니다, 폐하.
왕건 북쪽에 내 아우들을 보낸 것은 든든하네마는 대야성 공략은 좀 무리가 있는 듯 하네.
최응 용주에서 양쪽 군대가 크게 충돌할 것이옵니다. 그 사이에 신라군이 김락장군의 군대를 도와 대야성의 헛점을 노릴 것이옵니다. 전혀 생각지 못한 길로 빠르게 다가가고 있사옵니다. 어차피 허를 찌르자면 그럴 필요가 있사옵니다. 만에 하나 성을 함락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만큼 타격을 주면 그 자체가 성과일 것이옵니다.
왕건 그렇기는 하겠지마는.... 대야성에는 백제의 왕이 직접 온다고 하지 않는가? 쉽지 않을 것 같네.
최응 오히려 강하고 위엄이 커 보이는 곳에 헛점이 또한 많은 법이옵니다. 기다려 보시오소서. 내일이 되면 모든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날 것이옵니다.
씬 동 황후전
오씨와 유씨, 상궁들이 함께 해 있다.
오씨 한동안 조용한가 했더니 또 전쟁이라는구먼. 이번에는 아주 대대적인 큰 전투가 벌어진다는 게야.
유씨 우리 왕신공이 해를 입었으니 어찌 전쟁이 아니 일어나겠사옵니까?
오씨 그건 백제도 마찬가지일세. 인질로 보냈던 자가 죽어서 가지 않았는가? 그 자도 우리측에서 일부러 죽였다는 소문이 자자하다네. 그렇지 않은가, 제조상궁?
제조상궁 그렇사옵니다. 그 때문에 서경총관 왕식렴 공께서 적의 인질을 죽이기 전에 그 아우님을 생각하시며 눈물을 흘리셨다는 일화가 세간에 자자하옵니다.
김상궁 쇤네도 들었사옵니다. 모두들 왕식렴 공을 칭찬하며 안타까워하는 말들이 많다 하옵니다.
유씨 스스로 아우의 목숨을 버리게 하다니 참으로 딱도 하시옵니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겠사옵니까?
오씨 그래서 이야기일세. 도무지 나라를 위해서 하는 일들에는 우리아녀자들이 생각할 수 없는 엄청난 일들이 너무 많아. 쯧쯧쯧... 왕신공이 죽어가면서 얼마나 한이 맺혔을꼬...? 세상에 쯧쯧쯧... 그나저나 이 전쟁은 또 얼마나 갈꼬...? 두 나라가 사생결단을 하고 있다 하지 않는가?
유씨 신라까지 군대를 보냈다 하니 큰 전쟁은 틀림없나 보옵니다.
오씨 그러게 말일세.
씬 대야성 외경 (낮)
군사들의 경계가 삼엄하다. 성루에 황제의 깃발이 걸려 있다.
씬 동 대야성 안
신검이 견훤과 똑같은 모습으로 뒷짐을 지며 오락가락 하고 있다. 그리고 똑같은 제스쳐로 말한다.
신검 지금 우리군은 어떻게 나누었소이까?
능환 삼천의 군사는 성안을 지키게 하고 나머지 이천은 예비부대로서 성 후미에 주둔하게 하였습니다
신검 뭐 여기는 여유가 있으니 그만하면 되었고... 헌데 말입니다. 도무지, 도무지 이해가 아니 가....
제장들 ...........?
신검 어린 금강이는 최일선인 용주에 보내서 공을 세우게 하시면서 맏이인 나는 여기 대야성에서 군수품이나 지원하고 앉아 있으라 하니 도대체 무슨 전략이 이러한가?
형제들 그러게 말이옵니다.
신검 도대체 이 전략을 짠 파진찬은 무슨 생각으로 나를 대야성에 앉혀 놓은 게야? 왜...? 내가 공을 세우는 것이 그토록 싫은 것인가?
능애 허허허, 태자마마. 그럴 리가 있사옵니까? 본래 이 대야성은 황궁과 마찬가지로 폐하께서 오래 주석하시던 곳이옵니다. 이곳에서 전투를 지휘하신다 생각하시오소서.
신검 그래도 그렇지요, 숙부님. 이건 좀 너무 심하옵니다.
능환 허허허... 생각하시기 나름이옵니다. 소인은 태자마마께서 황제폐하의 깃발을 앞세우시고 폐하를 위장하시어 백마를 타고 가시는 것을 보았을 때에 참으로 감개가 무량했사옵니다. 태자마마께서 폐하를 대신하여 이곳에 계시는 것이옵니다. 아니, 폐하께서 하실 일을 맡아서 하고 계시는 것이옵니다.
신검 뭐,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마는.... 아무튼 아바마마께서 자식들을 편애하시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금강이 만큼만 나에게 명예를 얻을 기회를 주셨어도 이렇게 섭섭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능환 곧 좋은 기회가 올 것이옵니다. 어차피 훗날 태자마마께서 운영하실 세상이십니다. 모든 걸 넉넉히 생각하시오소서.
신검 그래야지 지금이야 어찌하겠습니까? 여기서 또 얼마나 많은 세월을 낚아야 할지, 허허, 이것 참......
그는 그렇게 수염을 쓰다듬으며 불만의 표정을 짖고 있다.
씬 산길
산중 언덕길을 견훤의 군대가 가고 있다. 그저 그렇게 사라져버린다. 얼마쯤 가다가 최승우가 말한다.
최승우 폐하....?
견훤 왜 그러는가?
최승우 폐하를 상징하시는 일체의 것들을 버리시고 장군복을 입고 가시는 기분이 어떠하옵니까?
견훤 허허허, 사람하고는.... 왕후장상(王侯將相)이 따로 있다던가? 나도 처음에는 시골 호족의 아들이었고, 또 신라의 군관이었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우리는 지금 한 나라의 황도를 점령하러 가는 길일세. 서라벌은 신라의 천년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야.
최승우 그러하옵니다. 폐하께서 하신 말씀처럼 곧 하늘과 땅이 뒤집힐 것이옵니다.
견훤 그렇게 되겠지. 고려에서는 더더욱 무릎을 치며 한탄하겠지. 하하하... 헌데 말이야. 나는 일만이나 되는 대병을 나누어 서라벌로 가고 있는데 비해서 용주와 대야성에는 너무 군사가 적은 것 같아.
최승우 그럴 수도 있사옵니다.
견훤 그러다가 두 성을 다 잃게 되면 어찌되겠는가?
최승우 (한참 묘하게 보다가) 두 성을 잃고 한 나라를 얻을 수도 있사옵니다.
견훤 그건 무슨 소리인가?
최승우 아직 말씀드릴 단계가 아니옵니다마는... 그럴 수도 있다는 뜻이옵니다. 폐하께서 서라벌에 이르시고 고려의 왕을 공산 쪽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경천동지는 그때 일어날 것이옵니다.
그러자 견훤이 가던 말을 멈추고 서서 최승우를 본다.
견훤 무슨 소리인가....?
최승우 신은 일찍이 신라에서 공부를 할 때에 왕도주변의 산세를 유심히 공부할 기회가 있었사옵니다. 공산은 그 지리적 여건으로 보아 능히 적의 일만 대군을 매복하여 전멸시킬 수 있는 최적의 요지이옵니다.
견훤 그래서...? 그래서,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겐가? 우리 두 성을 내어주고 한 나라를 얻는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최승우 이제서야 폐하께 말씀드리옵니다마는 고려군이 우리보다 더 많은 대군을 이끌고 대야성과 용주를 공격한다면 폐하께서 염려하시는 것처럼 두 성이 다 무너질 수도 있사옵니다.
견훤 그러니까 걱정이 아닌가?
최승우 그러나 저들이 두 성을 함락하건 못하건 간에 우리가 서라벌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면 송악에 남아있는 고려의 왕은 즉시 군사를 몰아 뒤쫓아 올 것이옵니다. 그곳에서 여기까지 이르려면 태반이 지쳐 싸울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고 공산에서 그런 저들을 맞게 된다면 이번에야말로 고려의 왕을 죽이거나 잡을 수 있는 절대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옵니다. 공산 안에 들어와서는 누구도 도망칠 수가 없사옵니다.
견훤 고려의 왕이 여기까지 올지 안 올지는 어찌 알 수 있는가?
최숭우 십중팔구 올 것이옵니다. 왜냐하면 용주 방면은 이미 군사들이 싸우고 있음으로 즉시 길을 바꾸기는 어렵사옵니다. 그러나 송악에 남아있는 고려의 왕은 폐하께서 직접 서라벌을 함락시킨다는 것을 알게되면 스스로 몸을 아끼지 않고 달려올 것이 뻔하옵니다. 서라벌은 그만큼 우리 백제나 고려에 있어서 중요한 곳이기 때문이옵니다. 신라의 황도가 아니옵니까?
견훤 그랬었구먼. 자네는 거기까지 보고 있었구먼.
최승우 그러하옵니다. 신라를 우리 친백제 국가로 만들어 놓고 이어서 고려의 왕을 잡는 일석이조의 전략을 생각한 것이었사옵니다. 이것이 맞아들면 삼한의 통일 대업은 그것으로서 끝이옵니다.
견훤 이 사람, 파진찬... 그랬었구먼. 자네의 생각이 거기까지 가 있었구먼. 이러니 어찌 천재라 하지 않겠는가? 이러니 어찌 삼최의 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최승우 아직 장담하기 이르옵니다. 일단은 어떤 일이 있어도 내처 서라벌로 가시어 신라의 황도를 점해야 하옵니다.
견훤 그래야지. 그래야하고 말구.. 요 며칠간에 통일 대업의 운명이 달려있다 하니 내 어찌 소홀히 하겠는가? 고을부(영천)에 가면 사잇길로 흩어졌던 우리 군사들을 모두 만나게 될 것이야. 그때부터는 탄탄대로일세. 걱정할게 없어. 가세, 어서 가세. 마음이 급하이. 허허허.... 통일 대업이라....? 통일 대업이라....? 이제서야 그것이 손에 잡히는 듯 하이. 이제서야 말이야... 허허허..
그들 그렇게 다시 움직여 가고 웃고 있는 최승우의 미소에서...
씬 용주성 (노을)
금강과 종훈, 박영규, 김총, 최필들이 먼 성밖을 보고 있다. 거기 고려군이 기치창검을 앞세우고 숲을 이루어 서 있다.
금강 고려군이 온 것 같습니다.
종훈 예, 태자마마.
금강 이번에도 아바마마께서는 이 사람에게 최일선인 용주를 맡기셨습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박영규 한번도 실패가 없으셨던 태자마마이옵니다. 두려울 것이 무엇이옵니까? 이미 적을 막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사옵니다. 염려놓으시오소서.
김총 해가 떨어지면 저들이 공격을 시작할 것이옵니다.
최필 어림잡아 적군이 오천이 넘는다 하옵니다. 해 볼만하옵니다.
금강 암요, 해 보아야지요. 그렇구 말구요.
씬 그 성밖 고려군 진영
신숭겸과 제장들이 용주성을 보고 있다. 해가 서산에 지고 있다. 배현경이 묻는다.
배현경 이번에는 신장군이 총사가 되셨소이다. 언제쯤 공격을 감행하겠소이까, 총사?
신숭겸 조금 더 기다려 보십시다. 서두를 것 없소이다. 대야성에서 소식이 온 이후에 공격을 감행해도 할 것입니다.
홍유 그렇게 빨리 소식이 오겠습니까? 대야성은 여기보다도 더 큰 성이올시다.
신숭겸 병부령 최응공이 그렇게 하라 시켰소이다. 대야성의 소식을 듣고 나서 공격이든 방어든 하라고 말입니다. 기다려보십시다. 서두를 것은 없어요. 지금쯤 대야성이 어찌 되었을런지....?
씬 대야성 외경 (밤)
어둠 속에 횃불을 끈 일단의 군대가 지나쳐 가고 있다가 어느쯤에 이르러 그 행렬을 멈춘다. 그리고 소리 없이 수신호를 한다. 그러자 군대는 횡대로 갈라지며 숲 사이로 잠겨들기 시작한다. 김락, 김언, 전이갑, 의갑 형제가 모여 숙의한다.
김락 참으로 기적같이 여기까지 왔소이다. 이제 우리는 약속대로 신호를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전이갑 과연 신라의 지원군이 잘 해낼까 모르겠소이다.
김언 저들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대야성의 지리에 아주 밝은 자들이라 하였소이다. 장담을 하고 성안으로 우회하여 잠입해 들어갔으니 기다려보십시다.
전의갑 우리가 올 때에 병부령 최응공이 저들은 용주에만 신경이 가있지 대야성은 안심하고 있을 것이라 하였는데 참으로 그런 것 같소이다. 여기까지 이르도록 별다른 경계가 없었소이다.
김언 그렇다 하더라도 이곳 대야성에는 백제의 왕이 와 있다고 하오이다. 경계를 단단히 해야 할 것입니다.
전이갑 왕의 깃발이 걸려 있는 것은 분명하나 이상할 정도로 그리 경계가 삼엄하지 않소이다. 그리고 왕의 모습이 보이지를 않아요.
김락 왕이 있든 없든 그건 중요치가 않소이다. 우리는 이 성을 함락하거나 아니면 그에 상응하는 타격을 주면 되는 것이올시다. 그리고 이렇게 경계가 느슨한 것은 대야성과 용주성 사이가 상당히 먼 거리이기 때문이올시다. 족히 기병이 달려도 하룻길이되다 보니 우리가 이쪽으로 올 줄은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기다려 보십시다. 조짐이 좋아 보입니다.
씬 대야성 성루
군사들의 경계가 느슨해 보인다. 웃음소리들이 들려온다.
씬 동 성안 장대 혹은 전각
제장들이 모두 술을 마시고 있다. 신검은 조금 취해 있다.
신검 그것 참 이상합니다. 아바마마의 상징이신 황제의 깃발을 꽂고 여기에 있다 보니 묘한 생각이 듭니다. 불경스럽게도 이 몸이 마치 아버님의 자리에 오른 듯 한 기분입니다.
능애 허허허... 어차피 폐하의 뒤를 이으실 분은 태자마마 뿐이십니다.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능환 그렇구 말구요. 다음 보위는 태자마마께서 이으실 것입니다. 지금은 아무 말씀이 없으셔도 폐하께서는 결국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신검 이보시오, 부달장군.
부달 예, 태자마마.
신검 여기에는 지금 아바마마의 대기가 걸려 있소이다. 어찌 적군이 올 수 있겠소이까? 지금 용주성은 어찌하고 있다 하오이까?
부달 고려의 대병을 마주한 채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하옵니다.
신검 허허허... 금강이가 이번에도 잘 해낼까..? 보나마나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지원병을 보내달라고 할 게야. 고려도 이번에는 이를 갈고 나온 전쟁이 아닌가 말이야. 자, 뭐 그때는 그때고.. 여기는 한가하니 한잔씩 하십시다.
모두들 예, 태자마마.
신검 (마시고 더욱 호기를 부린다) 아, 이럴게 아니라 군사들도 좀 여유가 있을 때에 쉬게 하십시다. 이보시오, 소달장군?
소달 예, 태자마마.
신검 진중에 영을 내려서 오늘밤은 술과 안주를 넉넉히 주어 쉬게 하도록 하시오. 몇 일 후면 또 바빠질 지도 모르니까...
소달 예, 태자마마.
능환 하오나 태자마마.. 군사들에게 술을 내린다는 것은 아직 이를 것 같사옵니다.
신검 그렇지가 않아요. 여유가 있을 때에 쉬게 하고 마시게 해야 사기가 오르는 것입니다. 이 신검태자가 얼마나 정이 많고 군사들을 사랑하는 가를 보여주려 하는 것입니다. 가서 그리 하오.
소달 예, 태자마마.
소달이 그렇게 물러간다. 신검이 더욱 흥이 나서 소리친다.
신검 자, 마십시다. 마셔요.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분들은 훗날 내가 크게 기억할 것이오. 자 드십시다. 마음껏 드십시다. 하하하...
모두들 그렇게 마신다. 그리고 웃음소리가 커진다. 신검은 황제처럼 웃는다.
씬 그 대야성 주변
야음을 틈타 백성의 옷으로 갈아입은 군사들이 삼삼오오 밀려가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성 쪽으로 사라진다. 신라군의 장수도 보인다.
씬 그 대야성 성루 쪽
곳곳에 모닥불이 피어있고 군사들이 술을 마시고 있다. 창과 검은 제멋대로 놓여 있고 취한 군사들의 모습이 곳곳에 보인다.
군사1 참으로 인정 많으신 태자마마실세. 우리 고단함을 알고 이렇게 술을 주시니 말일세.
군사2 그러게 말일세. 여보게, 거기 창을 놓고 이리 오게. 한잔 하게. 경계는 무슨 경계인가? 온 성의 군사들이 다 마신다네.
군사3 알겠네. 한잔 주게...
그들 저만큼으로 신라군들이 잠입해 사라지는 모습들이 보인다. 어디를 가나 군사들은 쉬거나 잡담들이다.
씬 동 성루
성루를 신라군들이 변복한 채 돌아가고 있다. 그들 그렇게 또 사라져 간다.
씬 인서트
신검들의 술자리는 계속되고 있다. 신검은 더욱 취해 있다.
신검 원래 어른들이란 나이가 들면 막내를 더 사랑한다고 들었소이다. 그걸 내리사랑이라고 한다던가? 그래도 그렇지 황실의 일은 나라의 일입니다. 금강이 그 아이가 한쪽 눈을 잃고 나서 건방지기가 말이 아니게 되었소이다. 나라의 원로들이 이런 점은 지적해야 합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숙부님?
능애 허허허... 많이 취하셨습니다, 태자마마. 밤말은 쥐가 듣는다 하였습니다. 그만 하시오소서.
신검 아니 내가 못할 말을 하였습니까? 사실 그렇지가 않습니까?
용검 왜 아니겠사옵니까? 생각할 수록 부화가 치미옵니다.
양검 그러하옵니다. 사실 형님께서는 많이 참으셨사옵니다.
능환 그만 하시오소서. 능애 장군의 말씀이 맞사옵니다. 벽에도 귀가 있다고 하지 않사옵니까?
신검 그까짓 귀가 무서워 할 말을 못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무튼 기분이 나쁩니다. 한두 번이 아닙니다.
능환 자자, 그만 일어나 쉬시지요. 군사들도 더 이상 많은 술을 주어서는 아니 됩니다. 이곳이 비록 전투가 없을 것이라고는 하나 끝까지 안심할 것은 못 되옵니다.
신검 아니오. 황제 폐하를 대신하여 이 태자가 은혜를 내리는 것이오. 마시라고 하시오. 모두들 마음껏 마시라고들 하시오.
그러다가 신검이 술에 취해 그만 고개를 박는다. 능환이 혀를 차며 도리질을 한다.
능환 태자마마를 군영 안으로 뫼시고 가거라. 그리고 진중에 알려 더 이상 술을 금하라 하라. 더는 아니 된다. 교대로 번을 서도록 하라. 여기는 전장터이니라.
부장들 예, 이찬어른
능환 허허, 이거 너무 취하셨군... 너무 취하셨어.
신검 (이끌려가며) 더 마시라고 하오. 태자가 주는 술이야. 마시라고 하오..
그렇게 신검은 가고 능환과 능애는 서로 보며 끄덕인다.
능애 섭섭하신게 많은 것 같소이다.
능환 왜 아니겠습니까?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암요... 그나저나 이거 장수나 병졸이나 너무들 마셔놔서...
능애 별 일이야 있겠소이까?
씬 성밖 김락의 진영
이미 공격 준비를 끝내고 군대들이 성쪽을 보고 있다.
김락 곧 연락이 올 것입니다. 이제 그럴 때가 되었어요. 불빛이 오르거든 공격해 들어가십시다. 아무 연락이 없는 것을 보니 일이 잘 되는 것 같소이다.
모두들 ..............(끄덕인다)
씬 대야성 안
성루마다 병사들이 졸거나 자고 있다. 일단의 신라군들이 다가와 어느 사잇문에 자고 있는 병사의 목을 조인다. 그리고 곧이어 불길이 솟는다. 그리고 또 그들끼리 연결하며 말을 타고 달려가 곳곳에 불을 놓는다.
장수 성문을 열어라. 사잇문과 성 대문을 모두 열어라. 어서 열어라.
곳곳에 불길이 크게 솟는다. 어느 쪽에서는 사잇문이 열리는가 하더니 또 큰 성 대문이 열리고 있다. 비로소 놀란 백제군들이 달려나온다. 부달과 소달이 달려온다.
부달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취해서) 저놈들이 왠 놈들이냐? 저놈들을 잡아라.
소달 기습이오... 적군이오... 적군이 성안에 들어왔소이다. 북을 쳐라... 소라를 불어라... 어서 북을 쳐 장졸들을 다 깨워라...
그리고 백병전이 벌어진다. 곳곳에 싸움과 불길이 더욱 치솟는다.
씬 동 성밖 김락의 진영
성 쪽에 불길이 솟고 있다. 김락이 회심의 미소를 짖는다.
김락 과연 신라 지원군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소이다. 성문을 열 모양이올시다. 공격하십시다. 전군.... 공격하라....
김언 공격하라....
전이갑 공격하라....
그들 그렇게 일제히 달려나간다.
씬 그 성
몇몇 군사들이 화살을 날린다. 북소리도 들리고 소라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우왕좌왕이다. 김락의 군대가 이미 까맣게 몰려오고 있다. 성문은 열려져 있고 성벽을 타고 오르는 군사들도 별 저항 없이 성을 넘는다. 아우성이다.
김락 항복하는 자는 살려두고 나머지는 사정없이 베어라.
전이갑 성문이 열렸다. 모두 성안으로 들어가 황제를 잡아라.
김언 공격하라.... 공격하라.... 적은 모두 오합지졸이다....
씬 그 성안 일각
불길과 혼란 속에서 신검이 취해 걸어 밖으로 나오고 있다.
신검 어찌된 일이냐? 이게 무슨 소리야?
능애 (달려나오며) 적군의 기습이올시다. 태자마마, 어서 피해야겠소이다.
신검 군사... 우리 군사들이.. 오천이나 되오이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이에요?
능환 (달려나오며) 신라군이 잠입하여 성문을 열었고 수천의 고려군이 야음을 타 성밖에 왔다 하오이다. 어서 피하시오소서. 성문이 열렸습니다. 어서요. 어서 이리로....
그때, 양검, 용검형제가 다시 달려온다.
양검 형님, 신라군이 성안에 잠입해 있었사옵니다. 여기를 빨리 피하셔야 하옵니다.
신검 우리 군사가 오천이나 된다. 다 어디 갔느냐?
용검 삼천은 성안에 있사오나 이미 싸울 기력을 잃었고 이천은 성뒤에 주둔하고 있어 지금 올 수가 없사옵니다. 피하시오소서, 어서요..... 태자마마를 뫼시어라..
신검 어이구.. 이게 어찌된 것인가? 어이구.....
그들 그렇게 한쪽으로 몰려간다.
씬 그곳 성안
아우성이다. 불길 속에 시체가 곳곳에 나뒹군다. 무더기로 창칼을 버리고 엎드리는 자들이 속출한다. 고려군의 말발굽 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김락 황제는 없다. 태자가 와 있다 한다. 태자를 잡아라... 전각을 다 뒤져라... 태자를 잡아라....
그렇게들 달려간다.
씬 다시 그 일각
말을 탄 신검 일행들이 부장들에게 싸여 도주하고 있다. 그렇게 곧 고려군 몇을 베며 성을 멀리하고 달아난다. 그들 뒤로 함성소리가 들린다. 참담한 얼굴로 성을 돌아보는 신검의 표정에서...
씬 대야성 안
함성소리가 크게 일고 있다. 김락과 제장들이 성루에 올라 환호하는 군사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락 우리가 이겼느니라. 백제가 세번 만에 얻었던 대야성을 우리가 얻었노라. 어서 이 일을 폐하께 알릴 것이다. 그리고 용주에도 알려 전의를 돋구도록 하라.
부장들 예, 총사....
들끓는 장졸들의 환호와 김락의 표정에서 디졸브되면...
씬 길
전령들이 말을 몰아 달려가고 있다. 그렇게 카메라 앞을 스쳐 사라지면...
씬 동 대야성 (아침)
씬 동 성안
김락이 총사로서 제장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김락 우리는 참으로 손쉽게 대야성을 얻었소이다. 그러나 대야성은 백제의 큰 전진기지로서 다시 공략해 올 가능성이 크오이다.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될 것이오.
모두들 예, 총사.
김락 헌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올시다. 아무리 포로들을 다그쳐 봐도 백제의 왕을 보았다는 사람이 없소이다.
박수문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허면, 왜 왕의 대기는 여기다 걸어놓고 위장을 했을까요?
박수경 그러게 말입니다. 백제왕이 허면 지금 어디있다는 것입니까?
김락 그걸 모르겠다는 것이올시다. 하긴 백제의 왕이 여기에 있었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성을 내줄 리가 만무합니다. 백제의 왕은 여기에 없었소이다. 허허, 어디에 있을꼬..?
전이갑 아무튼 하회를 기다려 보십시다. 이미 우리의 승전보를 가지고 전령이 황도와 신숭겸 장군이 있는 용주로 가지 않았습니까?
김락 그렇소이다. 백제왕의 이야기는 곧 밝혀지겠지요. 우리는 성을 빼앗기고 물러간 신검군이 다시 올 것을 대비해도록 하십시다.
모두들 예, 총사.
씬 인서트
견훤군이 그렇게 몰려가고 있다. 견훤이 묻는다.
견훤 도무지 여러 고을을 지나도 저항을 하는 무리가 없으니 약속이 되어도 아주 단단히 된 모양일세.
최승우 그러게 말이옵니다. 신라의 대신들이 폐하를 청한 일이옵니다.
견훤 허허.. 그러게 말일세. 고을부까지는 얼마나 남았는가?
최승우 이렇게 달려가다간 내일 저녁이나 모레 아침이면 당도할 것이옵니다.
견훤 가세. 자네 말을 듣고 난 이후 나는 계속해 마음이 바쁘네. 어서 하늘과 땅이 깨어지는 소리를 듣고 싶어. 허허허... 용주성과 대야성은 어찌 되었을꼬..? 전투가 시작되었나 모르겠네..?
최승우 그럴 시간이 된 것도 같사옵니다마는...
견훤 자, 가세. 지금은 그 일에 신경쓸 겨를이 없구먼 그래....
그들 그렇게 달려간다. 사라지는 모습에서...
씬 용주성 밖 신숭겸의 군영
신숭겸이 껄껄 웃으며 전령의 장계를 보고 있다.
신숭겸 하하하.... 어쩜 이렇게 신통할꼬..?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던 대야성의 공략이 성공했다고 합니다.
배현경 뭐요..? 대야성을 김락 장군이 함락시켰다는 말입니까?
홍유 허허, 이런, 이런... 하룻밤 사이에 말입니까?
신숭겸 그렇다고 합니다.
염상 이렇게 되면 우리는 어찌되는 것이오이까? 공격을 해야하는 것이 아니오이까?
신숭겸 아니올시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합니다.
윤신달 기다리다니요? 아니 이렇게 싸우지 않고 언제까지 있을 요량이십니까?
왕충 뭔가 다른 전략이 있으신 것이옵니까?
신숭겸 그렇소이다. 병부령 최공은 대야성의 결과를 보고 나서 그에 따라 전략을 세우라 하였소이다. 이미 대야성이 함락되었다 하니 우리는 다음 계책을 쓰면 되는 것이올시다. 기다려 보십시다. 오늘 밤 안에 뭔가 저들이 움직일 것이오이다. 오늘밤이오.. 하하하... 성을 빼앗긴 견훤왕의 맏아들 신검이가 지금쯤 얼마나 억장이 무너질꼬...? 하하하...
씬 대야성 주변 어느 산야
신검이 절반밖에 안 남은 군대를 이끌고 제장들과 모여 있다. 땅이 꺼져라 한숨만 쉰다.
능애 너무도 믿기지 않습니다. 그렇게 어이없이 당하다니... 아니, 성밖에 나가 있던 우리 세작들은 다 무얼했다는 말인가..? 적군이 수천씩이나 야음을 틈타 오고 있었는데도 그걸 몰랐다니..?
능환 폐하께서 화를 내실 일이 눈에 선하오이다. 태자마마를 뫼시고 벌써 두 번쨰 큰 실수를 했어요.
용검 형님, 보나마나 아바마마께서 크게 노하실 것이옵니다.
신검 그러게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내 허물을 찾지 못해서 안달이신 아바마마가 아니시냐? 어이할꼬..? 이 일을 어이할꼬..?
양검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그래도 성은 되찾아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신검 되찾아..? 어떻게 되찾아..? 이 남은 군대를 가지고...? 어이구..
능애 차라리 용주에 있는 금강태자에게 전령을 보내십시오. 지원군을 좀 달라고 말입니다.
신검 뭐요..? 아니, 숙부님.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지 금강이에게 지원병을 달라구요? 그건 못합니다. 절대로 못합니다. 어이구, 이 일을 어이할꼬..? 이 일을 어이할꼬..? 그놈의 술 때문이야....그놈의 술 때문이야...!
그렇기 돌아보는 신검의 난감한 표정에서...
<154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