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 159회>
<줄거리>
백제의 책사 최승우는 고려군을 공산 깊숙히 유인하기 위해 거짓 영채를 세우고 복지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적진 속으로 들어간 왕건일행은 불의의 공격으로 신방을 비롯해 군사의 태반을 잃는다. 한편 왕건의 위급함을 듣고 달려온 신숭겸일행 역시 백제의 또 다른 함정에 빠져 왕건은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는데...
씬 공산 입구 (석양)
거대한 산과 산이다. 가파른 준령과 계곡들이 연이어 있다. 카메라가 부감으로 잡으면 멀리서 두 필의 말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온다. 그리고 그들은 계곡길로 들어서서 잠시 속도를 멈추고 주변을 돌아본다. 그들의 시야로 산등성이 저 만큼 백제군의 깃발과 영채들이 보여온다. 그들은 긴장한다. 계속 주변을 돌아보기를 반복한다. 고려의 첨병들인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조심조심 극도의 긴장을 나타내며 주변을 정탐해 간다. 한걸음, 그리고 또 한걸음... 그러나 정적이다. 그들이 그렇게 스쳐 계속 들어가면...
씬 그곳 매복지
숲 속에서 군사들이 숨어 있다. 그들은 말에 재갈을 물렸고 숨소리도 죽인 채 첨병들을 보고 있다. 첨병들은 아주 조심스럽게 그들 밑을 지나 계속 계곡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백제의 애술과 부장은 그런 첨병을 보며 끄덕인다. 만족한 것이다.
씬 다시 계곡길
고려의 첨병들은 더욱 더 휘어진 계곡 안으로 접어든다. 저 만큼 산등성이에 백제의 깃발들이 선명하다. 그러나 이상하다. 영채만 보일 뿐 인적이 없다.
첨병1 인적이 아무도 없지 않은가?
첨병2 (끄덕인다) 저 산 위에 백제군의 영채가 있네. 깃발들도 많지 않은가?
첨병1 하지만 참으로 저기에 군대가 주둔해 있다면 여기쯤에 초병들이 나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첨병2 하긴 그러하이.
두 사람 한참을 그렇게 숲 속에 말을 숨기고 관망한다. 그리고 조금씩 더 다가가 영채 쪽을 본다. 없다. 사람이라고는 없다. 두 사람, 합의를 한 듯 함께 끄덕인다. 그리고 다시 말 위에 올라오던 길을 되돌아 달린다. 그렇게 멀리 사라지면...
씬 다시 그 매복지
애술과 부장이 끄덕인다. 그들의 시야로 고려의 첨병들이 멀리 사라져 버린다.
애술 성공한 것 같네. 고려군의 첨병이 빈 영채를 보고 그냥 돌아가고 있어.
부장 역시 파진찬 어른의 전략은 참으로 기가 막히옵니다. 그렇다면 곧 고려의 본군이 들어오지 않겠사옵니까?
애술 암, 그렇게 되겠지. 허나, 아직은 아니야. 저들을 계속해 안으로 더 밀어 넣어야 한다. 이곳 공산은 몇 십리에 걸쳐 있다. 적어도 중간까지는 저들을 유인해 들여야해.
부장 소장도 그리 알고 있사옵니다, 장군.
애술 이곳은 저들과 너무 가깝다. 저들의 본군이 오게 되면 더욱 더 조심하며 주변을 살필 것이야. 군사들을 좀 더 뒤로 물리게. 우리 매복군은 좀 더 깊숙이 숨을 필요가 있어.
부장 알겠사옵니다. (큰 소리로) 곧 고려의 본군이 올 것이다. 적군에 노출되어서는 아니 된다. 숨소리도 내지 말고 뒤로 더 물러나라. 이동하라....
모두들 이동하라...
그들이 이동하기 시작한다. 애술과 부장이 보고 있다. 그리고 또 끄덕인다. 그 회심의 미소에서...
씬 큰 길
어느 야산과 논뚝길을 왕건군이 오고 있다. 무려 오 천의 대군이다. 흙먼지가 하늘을 뒤덮는다. 왕건과 복지겸, 신방들이 앞을 섰고 기마병과 보군들이 공병들과 함께 대열을 지어 오고 있다. 군사들은 하나같이 피곤한 모습들이다. 발을 절거나, 창을 끌고 가거나, 숨이 차 허덕거리거나, 가죽 주머니의 물을 마시는 자들이 부지기수다. 해는 막 넘어갈 듯 산등성이에 걸려 있다. 다시 왕건을 잡으면 그 면면들에서..
복지겸 이제 곧 적진을 살피러 간 첨병이 돌아올 시각이옵니다. 잠시 쉬심이 어떠하옵니까?
왕건 공산까지는 가야 합니다. 숭겸아우와 김락장군을 공산 해안현에서 만나기로 하였소이다. 그곳까지 가서 쉬더라도 쉬어야 합니다.
복지겸 하오나 군사들이 극도로 힘들어하고 있사옵니다. 사흘째이옵니다, 폐하. 이럴 때 적이라도 만난다면 큰 곤경에 처할 것이옵니다.
왕건 알고 있소이다. 공산이 얼마 아니 남았으니 조금만 더 참고 가십시다. (사이-하늘을 보며) 해가 지고 있구려. 하긴 서둘러야 할 것인데...
그들 얼마쯤 그렇게 가는데 멀리서 첨병들이 돌아오고 있다. 왕건군이 행군을 멈춘다. 그들은 곧 다가와 군례를 올리며 말한다.
복지겸 너희들은 정찰을 나갔던 첨병들이 아니냐? 적진은 어찌 되었느냐? 백제군은 어디쯤에 있어?
첨병1 백제군은 보이지가 않사옵니다, 장군. 산 입구로부터 시오리쯤 들어가자 저들의 영채가 산중턱에 크게 서 있는 것이 보였사옵니다.
복지겸 저들의 영채가 있어? 그런데 군사들이 없다는 말이냐?
첨병1 그러하옵니다. 아마도 저들의 군대가 미처 도착하지 못하였기로 우리 우군을 속이기 위해 거짓 영채를 세워 놓은 듯 하옵니다.
신방 그럴 수도 있사옵니다. 우리 아군을 속이고 더 이상 근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그리한 것 같사옵니다.
왕건 그렇다면 아직까지 백제군이 서라벌에 있다는 것이 아닌가?
신방 그렇게 보이옵니다, 폐하.
복지겸 아닐세. 아직 속단하기는 일러. 저 공산은 산 준령이 험하고 계곡이 거듭 이어져 있네. 그만큼 위험하고 속을 알 수가 없어. 신방, 자네가 가 보게. 군사를 몇 데리고 가서 한번 더 확인하게.
신방 예, 장군. 얘들아, 가자...
신방들이 다시 달려간다. 복지겸이 고개를 끄덕인다. 왕건도 끄덕인다.
복지겸 우리는 공산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옵니다. 그만큼 확인을 거듭하며 가야 하옵니다. 천천히 행군을 하시오소서. 여기서 멀지 않으니 신방부장이 곧 돌아올 것이옵니다.
왕건 그리 하십시다. 가십시다.
그들 그렇게 다시 간다.
씬 다시 공산 입구 계곡
그 거대한 산과 산 사이 협곡으로 첨병이 왔던 길을 신방이 군사들을 이끌고 오고 있다. 이들도 오며 다시 한번 정찰을 세밀히 한다. 굽이길을 돌자 저 만큼 첨병들이 보았던 영채가 보인다. 신방이 끄덕인다. 그러자 두 군사가 다시 군례를 올리고는 영채 쪽으로 달려 올라간다. 나머지 군사들은 경계를 선다.
씬 매복지
여전히 애술과 부장군사들이 모여 있다. 신방들이 한눈에 보여온다. 부장이 속삭이듯 말한다.
부장 장군, 저들이 영채를 확인하러 가는 것 같사옵니다.
애술 그렇구먼.
부장 꽤나 조심스러운 자들이옵니다. 첨병이 왔다가 갔는데도 재차 확인을 거듭하고 있사옵니다.
애술 그래야지. 그래야 더 확실하게 속는 것이야. 저들은 곧 저 영채로 본군을 이끌고 들어올 것이야. 그리고 또 첨병을 내보내 여기 공산 전체를 살펴보려 하겠지? 그게 결정적이야. 기회는 바로 그때라 하였어.
부장 예, 장군.
그들 그렇게 숨소리를 죽이며 먼 곳을 본다. 어느새 해는 지고 산자락에는 노을의 잔영만 남았다.
씬 그 협곡길
신방과 군사들이 경계를 서며 가깝게 보이는 영채를 보고 있다. 그 시선에서...
씬 그 영채 (밤)
첨병으로 올라갔던 두 군사들이 주변을 본다. 빈 군막들만 즐비하게 서 있다. 그리고 허수아비들과 꽂아놓은 깃발들만 보인다. 많은 영채들을 계속 돌아본다. 사람이라고는 없다. 그들 끄덕인다. 그리고 다시 내려간다.
씬 신방이 있는 길
어둠이 내리고 있다. 첨병들이 산자락에서 숨가쁘게 내려온다. 신방이 재촉하며 묻는다.
신방 어찌되었느냐?
첨병1 역시 빈 영채였나이다. 장군.
신방 그렇겠지. 자, 우리는 영채로 올라간다. 너는 가서 즉시 폐하의 본군을 인도해 오너라.
첨병1 예, 장군.
첨병은 그렇게 달려간다. 신방이 영채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그 표정에서....
씬 견훤군의 본진 (숲속)
보름달이 밝다. 불빛은 없다. 어둠 속 곳곳에서 군사들이 대기해 있다. 저만큼 어느 군막에서 가는 불빛이 새어나온다.
견훤 (소리) 고려왕의 군대가 들어오고 있다고...?
씬 그 군막 안
희미한 불빛에 공산 주변 지형과 영채들, 싸울 곳들이 표기된 지도를 놓고 있다. 거기 최승우와 견훤, 신덕이 여러 부장들과 함께 해 있다.
견훤 하하하... 드디어 들어온다고...? 고려왕이 온다고..?
부장 예, 폐하. 저들이 지금 우리가 위장해 놓은 첫 번째 지역인 공산 초례지역 영채로 올라가고 있사옵니다.
견훤 파진찬, 드디어 범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고 잇네 그려. 저들이 오고 있어.
최승우 (설명한다) 아직 기뻐하기는 이르옵니다. 저들이 두 번째 위장지까지 들어서야 비로소 완전한 그물에 들어서는 것이옵니다.
견훤 그야, 그렇겠지. 허나 한번 안심하기 시작하면 계속해 마음을 놓는 것일세. 저들은 두 번째까지 틀림없이 올 것이야.
최승우 신도 그렇게 보옵니다.
신덕 (끄덕인다) ..........
최승우 이 산에는 미리사라는 암자가 있사온데 그 앞으로 큰 갈림길이 있사옵니다. 그 암자 주변이 저들이 만날 장소일 것이옵니다.
견훤 신숭겸과 김락의 군대 말인가?
최승우 예, 폐하. 대야성 쪽에서 오는 군대는 그쪽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사옵니다. 그러니까 고려왕은 이쪽에서 오고 신숭겸군은 이쪽에서 오게 되옵니다. 바로 여기서 만나 삼거리 이 길로 해서 서라벌로 가려는 것이옵니다.
신덕 충분히 이해가 가옵니다, 파진찬 어른.
최승우 저들이 완전하게 그물에 걸릴 때까지 절대로 서둘러서는 아니 되옵니다. 우리의 매복이 드러나면 이 전투는 끝이옵니다. 끝까지 적을 속여야 하옵니다.
견훤 알고 있네. 자, 그럼 신덕 장군도 이제 가 보아야겠구먼. 신숭겸의 군대가 오는 길목을 자네가 맡지 않았는가?
신덕 예, 폐하. 저들이 지금 공산 안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이번 공산 동수전투가 어찌 끝날 것인지 훤히 알겠사옵니다. 반드시 신숭겸도 사로잡거나 그 목을 잘라 올릴 것이옵니다.
견훤 그리 하게. 아, 참으로 오늘은 역사에 남는 밤이 될 것 같네. 역사에 남는 밤이야.
씬 어둠 속 공산 그 협곡길
왕건의 대군이 들어서고 있다. 그 꼬리가 어디까지인지 보이지 않는다.
씬 그곳 영채
왕건이 둘러보고 있다. 빈 영채들이 즐비하다. 곳곳에 허수아비들과 깃발들이 어둠 속에 펄럭이고 있다. 달빛은 여전히 낮처럼
밝다.
왕건 저들이 아직까지 서라벌에 묶여 있는 것이 틀림없네.
복지겸 하오나 폐하, 위계일 수도 있사옵니다. 지금 우리는 공산의 초입에 들어와 있사옵니다. 첨병을 보내시어 확실하게 공산 전체를 읽고 나서 안심을 해도 해야 할 것이옵니다.
신방 이미 첨병을 다시 또 안으로 들여보냈사옵니다. 여기서 십리만 더 가면 미리사라는 암자가 나온다 하옵니다. 거기까지 다시 이동을 할 것이옵니다.
왕건 우리가 숭겸아우와 김락장군을 만나기로 한 곳일세. 거기가 공산의 중심이라 할 수 있지. 자, 여기서 잠시 쉬기로 하세. 첨병이 돌아올 때까지 좀 쉬세나.
복지겸 예, 폐하.
왕건 허허, 달빛이 무척 밝구먼. 보면 볼수록 산세가 참으로 좋은 것 같네 그려. 허허허...
그렇게 달빛아래 산 준령들을 보는 왕건의 표정에서...
씬 공산 계곡 냇가길
달빛을 맞으며 첨병1, 2가 와 달려온다. 산새소리들만 고적하다. 계속 달려온다. 냇가에 달빛이 흐르고 있다. 그 앞이 훤히 뚫렸다. 강은 줄기를 나누어 가고 전령들의 시야로 삼거리가 선명하게 보여온다. 한쪽 넓은 야산 둔덕에 역시 많은 영채들이 서 있다. 전령들은 서로 끄덕이고는 그 영채를 향해 달려간다.
씬 그곳
전령들이 올라온다. 시야가 아주 좋다. 주변이 잘 보인다. 그러나 군사들은 여전히 없다. 역시 빈 영채들이 즐비하다. 그들은 보다가 웃는다. 마치 황제가 있는 듯 견훤의 대기가 걸려있고, 거대한 영채가 문이 열려져 있는 채 버려져 있다.
첨병1 공산에 백제군은 없네. 모두가 위장이었어. 가세.
그들 다시 말을 타고 달려 내려간다. 영채와 그 숲 속에 숨어있던 부장1이 웃으며 일어선다. 그리고 끄덕이며 한참 보고 있다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씬 공산 계곡 길
긴 냇가를 따라 왕건군이 오고 있다. 병사들은 여전히 지치고 힘들어한다. 신방이 격려하며 간다.
신방 모두 힘들을 내라. 이제 거의 다 왔다. 오늘밤은 편히 쉴 것이다. 힘들을 내라.
그 와중에서 복지겸은 여전히 의심스럽다. 주변을 계속 보며 오고 있다. 자꾸 고개를 갸웃거린다.
왕건 다행이요. 오늘 저녁은 다음 주둔지에서 머물러 쉬도록 합시다. 그곳에서 새벽까지 푹 쉬면 숭겸 아우와 김락 장군들이 올 게요.
복지겸 하오나 폐하, 참으로 의심스럽사옵니다. 이 공산이야말로 냇가와 저수지와 협곡들을 끼고 있는 산이옵니다. 마땅히 매복하기가 좋은 곳인데 백제군이 없다는 것이 이상하옵니다.
왕건 저들은 지금 서라벌에 있는 것이 확실하오. 일국의 황도를 점령하였는데 쉽게 여기까지 나오기는 어려울 게요. 저들은 분명히 지금 서라벌에 있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 크고 넓은 공산을 비워둘 리가 있겠소이까? 첨병들이 아무리 앞서 가보아도 아무도 없지를 않소이까? 빈 영채들 뿐이에요.
그들 그렇게 가면...
씬 어느 숲길 (견훤의 주둔지 주변)
마치 고양이처럼 산 능선을 타고 가는 군사들이 있다. 백제군의 전령이다. 그들이 보는 시야 밑으로 까마득히 왕건의 군대가 두 번째 주둔지로 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가파른 벼랑이다. 그들이 가는 사이에 자갈 하나가 내리구른다. 그것은 소리를 내며 계속 굴러간다. 긴장하는 그들...
씬 그 길
가파른 비탈면으로 돌이 소리내며 굴러 떨어지고 있다. 신방이 흘깃 본다. 잠시 주변을 보다가 그냥 간다. 그 위 숲에서는 군사들이 다시 이동하며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견훤 (소리) 뭐라...? 고려왕이 드디어 우리의 목표 안으로 들어왔다고..?
씬 그곳 견훤의 영채 밖
어둠 속에서 눈빛을 반짝이며 부장 1을 본다.
견훤 고려왕이 두 번째 위장지로 이동해 가고 있다? 틀림없나?
부장1 예, 폐하. 신이 똑똑히 확인했사옵니다. 고려의 오천 군사가 지금 두 번째 위장된 영채로 들어가고 있사옵니다. 아마도 그 앞의 냇가와 야산 언덕에 진을 칠 것 같사옵니다.
최승우 (회심의 미소) 폐하, 감축드리옵니다. 드디어 저들이 폐하의 손 안에 들어왔사옵니다.
견훤 이제 시작일 뿐일세. 그리고 아직 고려의 신숭겸 군대는 오지 않았어.
최승우 얼마 아니 남았사옵니다. 새벽 무렵이면 이곳에 도착할 것이옵니다. 폐하, 이제 서서히 우리 군도 움직여야 할 것이옵니다.
견훤 그래야겠지. 앞에는 애술 장군이 있고 지금 뒤에서는 신숭겸 군을 기다리는 신덕 장군이 있어. 저들은 갈 곳이 없네 그려. 그리고 앞으로 나가려면 내가 지키고 있고 말일세. 저들은 완전히 그물 안에 들어와 있네. 자, 부장은 들어라.
부장1 예, 폐하.
견훤 애술 장군에게 가서 전하라. 이제 그물을 다 쳤으면 저들이 지나쳐 간 길을 막고 서서히 고기를 잡을 준비를 하라 이르라.
부장1 예, 폐하.
견훤 그리고 뒤에 고려의 신숭겸 군이 오는 길목은 아직 비워두라 하라. 저들을 계곡 안으로 완전히 끌어들인 뒤에 길을 끊을 것이야.
부장1 예, 폐하.
그렇게 부장1이 달려나간다. 긴장이 흐른다. 견훤과 최승우는 그렇게 본다.
견훤 수많은 전쟁을 치루어 보았지만 이렇게 흥분이 되기는 처음이야. 조물성에서도 이렇게까지는 긴장이 되지 않았어.
최승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전투이옵니다. 이곳의 결과에 따라서 삼한 통일의 향배가 가름된다 하였사옵니다. 그리고 폐하께오서는 그 결정적인 위치에 서 계시옵니다.
견훤 다행이 이번에는 그 최응이라는 신동도 아니 왔다는구먼.
최승우 그 자체가 하늘이 폐하를 돕고 계심이옵니다. 사실 신도 그 최응이를 만나 보았사옵니다마는 천재가 분명했사옵니다. 함께 왔다면 우리가 어려움을 겪을 확률이 높사옵니다.
견훤 허허허... 겸손한 소리. 아무리 최응이라 하여도 우리 파진찬만 할까? 그러고 보면 천재들은 모두 최씨성을 가진 사람들뿐이로구먼. 잘들 따져보게. 혹시 집안이 되지 않는가 말이야.
최승우 허허허... 예, 폐하. 그럴 수도 있을 것이옵니다. 허나, 이곳은 죽지 않으면 죽게되는 전장터이옵니다. 그걸 따져 무엇하겠사옵니까?
견훤 최응이도 최응이지만 고려왕의 의제라는 그 신숭겸이라는 장군도 마치 용맹하기가 관우와 같다더구먼.
최승우 예, 폐하. 고려의 명장들 중에서 손꼽히는 장수이옵니다. 조심해야 할 것이옵니다.
견훤 그래야지... 그래야지... 공연히 자만하였다가 다된 밥에 재뿌리는 수가 있어. 잘 해야 하고 말고... 하, 이것 참 긴장되는구먼. 마음이 설레....
씬 길
그 달빛을 받으며 신숭겸 군이 달려오고 있다. 신숭겸, 김락, 김언, 전이갑 형제, 박수문 형제들이다.
전이갑 이제 공산이 다 와가는 것 같소이다, 장군.
신숭겸 그래도 아직 상당히 남았소이다. 새벽까지는 가야 할 겝니다.
김락 지금쯤 폐하께서는 공산에 도착을 하셨을 겝니다.
박수문 시간으로 보아 충분히 그리하셨을 겝니다. 자, 우리도 서둘러야지요.
전의갑 아직까지 이렇다 할 전령이 오지 않는 것을 보니 백제군을 만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김언 저들은 서라벌에 있을 것입니다. 신라의 황도를 점령한 점령군이 거기서 쉽게 나올 수 있겠습니까? 아직 흥청망청하고 있겠지요.
신숭겸 자, 서두르십시다. 서둘러야 합니다. 폐하께서 기다리실 겝니다.
그들 그렇게 계속해 달려간다.
씬 공산 (미리사 앞)
영채에 불빛들이 밝다. 왕건들이 진을 쳤다. 그 아래로 강변에 이르기까지 불야성이다. 야전에 휘장을 두르고 왕건은 복지겸, 신방, 부장들과 함께 회의 중이다.
왕건 계속해 첨병을 내 보내고 있소이까?
복지겸 예, 폐하. 일단 첨병들이 이곳 공산으로 통하는 세 갈래길을 모두 살펴보았으나 백제군은 없다고 보고하여 왔사옵니다.
왕건 서라벌입니다. 저들은 아직 서라벌에 있습니다.
복지겸 하오나 폐하, 우리는 해거름에 이 곳으로 들어와 곧 어둠 속에서 이동을 줄곧 해왔사옵니다. 너무 서두른 감이 있사옵니다.
신방 첫 번째 위장지역을 무사히 통과하였고 우리는 두 번째 이곳까지 오도록 아무 일이 없었사옵니다, 장군. 저들은 일만이 넘는다 하는데 이토록 조용할 리가 있사옵니까?
왕건 허허허.. 그러게 말일세. 복장군답지 않게 이곳 공산에서는 너무 경계를 하는 것 같구려. 자, 우선 군을 배치하도록 하십시다.
복지겸 이곳에 진을 마련하였사오니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저 밑에 강 기슭에 제 일군을 배치하고 제 이군은 폐하를 뫼시고 이곳을 지킴이 옳을 것 같사옵니다.
왕건 그리하도록 하십시다. 헌데, 군사들이 너무 지친 것 같구려.
복지겸 사흘 밤낮을 달려왔사옵니다. 피곤하지 않은 군사가 어디 있겠사옵니까?
왕건 푹들 쉬게들 하십시다. 하기는 너무 무리들을 했어요.
왕건은 그렇게 여유롭게 주변을 본다. 그 표정에서...
씬 강기슭 언덕 산
어둠 속에서 백제군이 고려군을 보고 있다. 산 전체가 불야성이다. 강기슭 쪽으로 길게 배치된 군사들이 모두 자거나 누워있다. 제대로 경계를 서는 군사는 거의 없다.
애술 (부장에게) 모두 엉망이구먼 그래. 저들을 상대로 싸우다니 내키지가 않는구먼. 제대로 싸울만한 군사는 하나도 아니 보이네.
부장 그러게 말이옵니다, 장군.
그때, 어둠 속에서 부장 1이 다가온다.
부장1 장군, 폐하께오서 그물 안에 고기가 들었으니 잡으라 하시옵니다.
애술 알겠다. 부장은 무얼 하는가? 불화살을 쏘아 올려라. 전 군을 공격에 돌입하라 하라.
부장 예, 장군. 불화살을 쏘아 올려라.... 전군 공격에 돌입하라....
불화살이 공중으로 치솟는다. 한대, 두대, 세대... 그리고 어둠 속에서 순식간에 불빛들이 살아오른다. 까맣다. 함성소리와 북소리와 징소리들... 숲은 갑자기 아수라장이 된다.
애술 공격하라.... 공격하라..... 궁수부대는 화살을 쏴라...쏘아라....
화살이 비오 듯 날아가기 시작한다. 속수무책이다. 긴장을 풀었던 고려군은 나무토막처럼 마구 쓰러져 간다. 백제군은 방패를 앞세우며 앞으로 다가오며 화살을 쏘고 다시 다가와 쏘기를 반복한다.
씬 고려군 쪽
부장들이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 신방이 다가온다.
신방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 백제군이 어디에 숨어 있었다는 말이냐? 막아라... 적을 막아야만 한다. 방패부대는 앞을 가려라. 방패부대들은 어디를 갔느냐? 방패부대.....! 전령은 폐하께 가라. 적이 공격해온다. 가서 알려라.
전령이 대답하며 달려간다. 신방은 계속 소리소리 지른다.
신방 막아라... 적을 막아라.. 저쪽을 막아라... 이쪽은 무얼 하느냐? 이쪽도 막아라...
부장 장군, 앞에도 양 옆에도 모두가 적이옵니다. 보시오소서.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사옵니다.
신방 오, 이럴 수가 있느냐? 도대체 우리 첨병들을 무얼 하였다는 말이냐?
씬 그곳
애술이 신이 나서 소리친다.
애술 이야, 속절없이들 쓰러지는구먼. 이렇게 맥없는 군대는 처음 보는구먼. 쏘아라. 모조리 죽여버려라. 한 놈도 살리지 마라.
부장1 장군, 저들은 완전히 우리 안에 갇혔사옵니다.
애술 히히히... 그렇구나. 나도 보고 있다. 이렇게 싱거운 싸움은 처음 해본다. 쏘아라.. .화살을 있는 대로 다 퍼부어라...
씬 신방 쪽
무수한 군사들이 죽어가고 있다. 신방은 역시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다.
신방 막아라... 모두 피하라... 뚝 밑으로 몸을 숨기고 살을 쏘아라.. 전령은 어찌 되었느냐? 우리 일군 만으로서는 막기가 힘이 드는구나. 폐하께 지원군을 요청하라. 본군의 지원군을 요청하라...
그러다가 신방은 화살을 맞았다. 애술이 상대편에서 소리지르고 있다.
애술 적장이 맞았다. 퍼부어라.. 퍼부어라... 기마병은 앞으로 나가라..
부장1 공격하랍신다... 공격하라...
어둠 속에 대기하고 있던 수많은 기마병이 일제히 지축을 울리며 나아간다. 아수라장이다. 신방은 보면서 계속 소리를 지른다.
신방 막아라... 적을 막아라...
그렇게 기마병이 다가온다. 신방은 오는 기마병을 하나 배었다. 그리고 둘을 배었다. 그러나 그만 화살이 박힌 채 몸이 배이며 나뒹군다. 그 신방의 시체를 넘고 기마단은 계속 달려가고 있다..
씬 왕건의 본채
아래쪽 강변에서 시끄러운 전투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전령이 달려오면서 소리친다.
전령 장군..... 장군....
복지겸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저게 웬 불빛들이냐? 웬 함성소리야?
전령 적이 매복되어 있었사옵니다. 강쪽에 진을 쳤던 아군이 속수무책으로 죽어가고 있사옵니다. 삼면이 모두 포위되었사옵니다, 장군....
복지겸 본군은 즉시 출병하라. 기마대는 무얼 하느냐? 부장들은 들어라. 즉시 나가 적병을 맞아라.
그때, 영채 속에서 그 소란을 듣고 왕건이 달려나온다.
왕건 무슨 일인가? 어찌된 일이야?
복지겸 매복이 있었사옵니다. 매복이 있었사옵니다.
왕건 매복........?
복지겸 예, 폐하. 서두시오소서. 강변에 진을 쳤던 제 일군이 무너지고 있다 하옵니다.
그때, 전령 하나가 다시 달려온다.
전령1 폐하, 제 일군이 전멸 상태에 이르렀사옵니다. 신방 장군이 전사하였사옵고 ......
복지겸 뭐라, 신방 부장이 죽어?
전령1 예, 장군. 불의의 기습인지라 미처 대적할 기회도 없이 모두 죽어가고 있사옵니다.
복지겸 이럴 수가 있는가?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허망하게 당한다는 말인가?
전령1 모두가 피곤함에 지쳐 창과 칼을 놓고 잠에 빠진 사이에 당한 기습이옵니다. 어서 지원군을 주시오소서. 어서 지원군을 주시오소서. 적의 기마대가 이리로 오고 있사옵니다.
복지겸 폐하, 이곳을 일단 피하셔야겠사옵니다. 어서 말에 오르시오소서. 부장들은 무얼 하는냐? 폐하를 뫼시어라..
왕건 피하기 보다는 싸워야 할 것이오. 강가에 일군이 무너지고 있다고 하지 않소. 가십시다. 일단 저들을 강 밖으로 밀어내야 할 것이오.
복지겸 예, 폐하. 조심하시오소서.
왕건 나를 따르라....
왕건은 황제의 갑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앞선다. 질풍처럼 내달리면 내군의 부장들이 그를 호위해 간다.
씬 그 강가 접전지
애술이 말을 탄 채로 호령호령 하고 있다.
애술 적들은 오합지졸이다. 그대로 밀어부쳐라. 저 야산 영채에 고려의 왕이 있다. 고려의 왕을 잡아라...
애술과 함께 부장들이 기마병과 함께 밀려간다. 야산 중턱에서 백제군이 화살을 비오듯 날리고 있다. 그들은 마구 쓰러지며 죽어가면서도 그대로 달려든다. 그렇게 그들은 그곳에서 접전한다. 고려에서도 기병들이 달려나간다. 어지럽다. 왕건이 복지겸과 함께 눈부시게 싸우고 있다.
왕건 짐이 왔느니라... 모두 힘을 내라... 백제군은 별거 아니다.
복지겸 (계속 배고 싸우며) 폐하께서 오시었다. 힘을 내거라.
그 와중에서도 애술과 부장들이 왕건을 보았다. 애술의 눈이 특히 반짝인다.
애술 고려의 왕이다. 고려의 왕이 저기 있다. 잡아라.. 고려의 왕을 잡아라...
왕건 어서 오너라... 싸워라, 짐이 여기에 있느니라. 싸워라..
대접전이다. 왕건과 복지겸은 점차 백제군은 밀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 드디어 애술과 왕건이 붙었다.
애술 오랜만이외다, 폐하. 백제의 애술이오이다. 폐하께서 그대의 목을 가져오라 하시오이다. 목을 주셔야겠소이다. 하하하하....
왕건 어서 오시게. 나는 자네의 목을 가져야겠네.
접전이다. 수십 합을 싸운다. 복지겸이 옆을 돌며 백제의 부장들을 배고 있다. 백제의 부장1이 복지겸의 칼날에 목이 잘려 나간다. 그 순간에 다시 왕건의 검에 애술의 어깨가 배이며 투구가 달아난다. 애술이 깜짝 놀라며 한참 보다가는 도망친다. 애술의 부장도 도망친다.
왕건 애술 장군, 어디를 가시는가? 목을 주고 가게.
애술 또 봅시다... 퇴각하라. 잠시 퇴각하라..
부장 퇴각하라...
그렇게 전쟁은 잠시 일단락이 된다. 백제군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왕건과 복지겸이 계속해 검을 날리고 있고....
씬 그곳 산 언덕
달빛아래 그 전투 현장을 멀리서 견훤과 최승우가 보고 있다. 마치 한눈에 들어오는 그림처럼 다 보인다.
견훤 저기를 보게. 내 아우 왕건일세. 백마를 타고 기를 앞세우고 있어. 반갑구먼.
최승우 그렇사옵니다. 고려의 왕이옵니다. 대단하옵니다.
견훤 그러게 말일세. 무예가 뛰어나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오늘 처음 보네 그려.
최승우 폐하께오서는 천하의 장사이시옵니다. 오백근 청동화로를 손에 들고 노시는데 저 정도를 가지고 무얼 그리 감탄하시옵니까?
견훤 아닐세. 왕건 아우가 얼마나 성정이 유한 사람인가? 헌데 싸우는 걸 보니 마치 날랜 표범같네 그려. 대단하이. 대단해.... 애술 장군이 도망가고 있지를 않는가? 허허허....
최승우 그러게 말이옵니다. 허나, 다 신이 앞서서 계책을 준대로 하는 것이옵니다. 너무 몰아 부치면 오히려 싸움이 낭패를 볼 수도 있사옵니다. 저쯤에서 기를 꺾어놓고 신숭겸의 지원군이 도착하면 다시 뒤를 봉쇄한 후에 덮칠 것이옵니다.
견훤 알겠네 그려. 허나, 아쉽구먼. 눈 앞에 보이는데도 왕건 아우를 그냥 보고만 있자니 말이야.
그들의 시야로 그렇게 멀리 왕건과 복지겸이 서성거리는 것이 보인다. 견훤이 계속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고 있다.
씬 그곳
처참하다. 시체로 산을 이루었다. 왕건이 기가 막혀 넋을 잃은 채 보고 있다. 말을 탄 채로 이리저리 가보지만 계속해 시체의 벌판일 뿐이다. 냇가에는 양쪽 군사가 쏜 화살이 끝없이 덮여있고 강뚝이며 산자락에도 시체, 시체들 뿐이다.
왕건 모두가 우리 군사들일세.
복지겸 미처 준비하지 못하고 방심한 사이에서 당한 일이옵니다. 참으로 안타깝사옵니다, 폐하.
왕건 이를 어쩌면 좋은가? 남은 군사가 대체 얼마나 되는고..?
복지겸 군사를 점고해 보아라. 부장들은 무얼 하느냐? 군사들을 점고해 보아라...
부장 (다가온다) 어림잡아 헤아려 보았사온데 일천 명도 채 아니 남은 것 같사옵니다.
왕건 일천 명도 아니 남아..? 일천 명도..?
부장 예, 폐하.
왕건 삽시간에 사천이나 되는 군사가 다 죽었다는 말인가?
부장 삼천 군사는 죽고 일천은 부상당해 싸울 수가 없사옵니다.
모두들 말이 없다. 왕건은 그저 망연자실할 뿐이다.
복지겸 폐하,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야 하옵니다. 저들이 계획적으로 우리를 이곳으로 끌어들였사옵니다.
부장 사방이 다 길이 막혔사옵니다.
복지겸 지원군이 곧 올 것이옵니다. 시간을 좀더 끈다면 도착하는 지원군과 함께 다시 한번 해 볼만하옵니다.
왕건 저들은 일만군이라 하오. 어떻게 저들을 당할 수가 있소이까?
복지겸 지원군이 오면 가능하옵니다. 이제 곧 새벽이 오옵니다. 부장은 들어라.
부장 예, 장군.
복지겸 발빠른 자들을 골라 전령을 띄어라. 우리 본군이 움직이면 저들이 악착같이 쫓아올 것이니 우리는 여기 계속 있을 것이다. 전령을 보내라. 신숭겸 장군이 가까이 이르렀을 것이다. 속히 와서 폐하를 도우라 이르라.
부장 예, 장군
그렇게 부장이 사라지면 왕건이 한숨을 쉰다. 그리고 도리질을 한다.
왕건 마치 뭔가에 홀린 것 같구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소이다.
복지겸 우리가 너무 공산의 지형에 대해 모르면서 깊이 들어왔다는 것이 문제이옵니다. 하오나, 절망하실 필요는 없사옵니다. 많은 군사를 잃었으나 다시 또 오천의 군사가 폐하를 도우러 오고 계시옵니다.
왕건 조물성에서 그토록 당했는데 다시 또 첫 전투에서 이 모양이 되었소이다. 허허, 이것 참....
복지겸 일단 영채로 돌아가시오소서. 그곳에서 다시 전략을 살펴 보아야 하옵니다.
왕건 (끄덕인다) ................
씬 어느 냇가 길
산모퉁이를 돌아 고려의 전령 둘이 멀리서 사라져 가고 있다. 신덕이 미소를 지으며 그 숲 속에서 그렇게 보고 있다.
씬 견훤군 본채
이곳에도 이제는 불빛이 불야성이다. 제장들이 모여있다. 애술과 상귀가 부장들과 함께 견훤, 최승우와 마주해 있다.
견훤 하하하... 이보게, 애술 장군?
애술 예, 폐하.
견훤 왕건 아우의 검이 아주 매서워 보이더구먼.
애술 송구하옵니다. 무예가 뛰어나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그렇게까지 센 줄은 몰랐사옵니다. 다시 기회를 주시오소서, 폐하.
견훤 하하하... 기회는 또 있어. 있고 말고... 자, 파진찬 이제 어찌해야 하는가?
최승우 예상대로 첫 번째 전투에서는 대승을 거두었사옵니다. 저들은 사흘 낮밤을 달려왔고 지쳐 있사옵니다. 그야말로 어른과 어린 아이의 싸움이었사옵니다. 그러나 신숭겸군이 오면 좀 다르옵니다.
견훤 그럴 테지.
최승우 일부러 신숭겸군이 오는 길목을 허술하게 해 놓았사옵니다. 신덕 장군이 거기에 가 나가 있으니 신숭겸 군이 도착하는 대로 역시 길을 막을 것이옵니다. 그러고 나면 이번 전투는 끝이 나옵니다.
견훤 그럴 테지... 그럴 테지.. 허면, 왕건 아우는 어찌한다? 항복을 청해오면 어찌해야 하나?
최승우 조물성에서도 무릎을 꿇었사옵니다. 이번에는 항복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목을 배시오소서.
견훤 목을 말인가?
최승우 예. 이제 그럴 때가 온 것이옵니다. 서라벌을 함락시키시고 그 왕을 죽여 항복을 받으셨사옵니다. 이제 고려의 왕을 죽이시면 통일 대업이 마무리 되는 것이옵니다, 폐하.
견훤 죽인다... 왕건 아우를 죽인다... (끄덕인다) 하긴 그 편이 아우의 명예를 지켜주는 일이 될 것이야. 그리 하세. 목을 가져오도록 하세.
씬 왕건의 진영
새벽이 서서히 오고 있다. 달빛은 아직도 밝다. 왕건이 군막 앞에서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다. 그러면서 도리질을 한다.
왕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허망하오. 이게 무슨 꼴인가? 제대로 싸움도 못해보고 수천의 군사를 잃었소이다.
복지겸 그래도 폐하께서 나서시어 저들의 공격을 저지했사옵니다. 지원군이 오면 반드시 형편이 달라질 것이옵니다. 힘을 내시오소서, 폐하.
왕건 신방 부장이 전사를 했어요. 수천의 군사가 죽었어요. 오호, 이런...
씬 송도 황궁 외경
씬 동안 편전
황후 오씨와 유씨, 김행선, 유금필, 박술희, 최응, 최지몽들이 함께 해 있다. 모두들 걱정스럽다.
오씨 지금쯤 어찌되었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전령들은 아직 소식이 없습니까?
김행선 예, 황후마마. 아직 이렇다할 소식이 올 시간이 아니옵니다. 아무래도 이 삼일은 더 기다리셔야 하옵니다.
유씨 하긴 서라벌까지는 사나흘이 걸리는 길이옵니다. 조금 잘못하면 닷새가 넘는 길이 되옵니다.
오씨 그러나 어려운 전장길에 가신 분들일세. 매일처럼 오는 전령들이 소식이 없으니 하는 말이 아닌가?
최응 황후마마, 신들도 모두 지금 잠을 못 이루고 있사옵니다. 조금 더 기다려보시오소서.
유금필 이미 우리 고려의 수군이 남해안으로 돌아가 승전을 거듭하고 있다 하옵니다. 이제라도 남은 군사를 다시 모아 폐하의 뒤를 따르는 것이 옳을 것 같사옵니다.
박술희 신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시중어른, 군사를 내어 주시오소서.
최응 참으로 송구한 말씀이옵니다마는 황도에 있는 예비군을 모조리 데리고 가셨사옵니다. 갑자기 몇 천의 군사를 내어 주기가 어렵사옵니다. 일단 대야성의 신숭겸, 김락 장군들이 대구 공산에서 만나기로 되었으니 기다려들 보시오소서.
오씨 점괘가 아니 좋다니 걱정이 되어서 이러는 것이 아닙니까? 어떠한가, 내의성령? 계속해 점괘를 넣어 보았는가?
최지몽 예, 황후마마.
오씨 도대체 어찌 되었는가? 왜 말을 아니 해주는가?
최지몽 ....... 참으로 송구하옵니다. 계속하여 괘가 불길하게 나오고 있사옵니다. 말씀드리기 너무도 황망하여 차마 올리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오씨 뭐라..? 점괘가 그토록 흉하게 나온다는 말인가?
최지몽 예, 황후마마...
더욱 불안에 젖는 그들의 표정이다. 특히나 최응의 얼굴에서...
씬 새벽길
신숭겸 군이 오고 있다. 그러다가 그들은 멀리서 다가오는 두 필의 말을 본다. 신숭겸이 행군을 멈춘다. 전령이 다가와 군례를 올린다.
신숭겸 어디서 오는 전령인가?
전령1 폐하께서 보내셨사옵니다. 황도를 떠나 공산에 이른 폐하의 본군이 거의 전멸했사옵니다.
모두들 ................ (크게 놀란다)
신숭겸 무슨 말을 하는 겐가? 이제 날이 밝고 있는데, 그렇다면 밤새 전투가 있었다는 이야기인가?
김락 그래도 그렇지. 전멸이라니..? 어떻게 싸웠길래 그리 되었다는 말인고..?
전령1 계획된 매복에 철저히 걸려들었사옵니다. 길고 먼 행군에 지친 병사들인지라 저들의 기습에 속수무책이었사옵니다.
전이갑 위기올시다. 빨리 가야 하겠습니다.
박수문 이미 공산에 다 왔사옵니다. 서둘다가 우리도 화를 당할 수 있사옵니다. 조심하셔야 하옵니다.
신숭겸 이미 저들도 그 모습을 드러냈고 우리 또한 마찬가지올시다. 이제 눈치 볼 것이 없소이다. 서둘러라. 전군 서둘러라...
김락 서둘러라..
그들 그렇게 달려간다. 그 모습에서 길게 디졸브되면
씬 그 새벽의 산야
신덕과 그 군대가 숲 속에서 오고 있는 신숭겸 군을 보고 있다. 그들은 달려오고 있다. 신덕이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신숭겸의 군대는 아주 멀리서 다가와 그들의 시야를 지나 계곡 안으로 들어간다. 계속해 지켜보는 신덕군들...
신덕 기가 막힌 새벽이로구먼. 파진찬의 말씀은 단 한마디도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어. 이제 저들이 지나면 길목을 막을 것이야.. 장애물들은 준비되어 있겠지?
부장2 예, 장군.
그렇게 신숭겸군이 지나쳐 간다. 새벽이 점차 밝기 시작한다.
씬 그곳
신숭경의 오천의 군사가 다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그 꼬리가 완전히 사라질 무렵... 천지를 진동하는 소리가 들린다. 바윗덩이와 통나무들이 소리내며 굴러 내린다. 군사들이 소리치며 이리저리 피한다. 길은 계속해 막힌다. 앞서가던 신숭겸이 놀래서 뒤를 돌아본다.
씬 그곳 행렬의 앞
신숭겸 무슨 일인가? 뒤에 웬 소란인가?
부장이 달려온다.
부장 장군, 매복군이 있사옵니다. 우리가 지나온 길을 막았사옵니다.
신숭겸 우리가 지나온 길을 막아? 그럼 우리도 포위되었다는 말인가?
부장 예, 장군.
신숭겸 뭐라...? 우리가 포위가 돼?
아직도 돌덩이며 장애물들이 무더기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 그런 신숭겸의 표정에서...
<159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