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 160회>
<줄거리>
왕건일행은 백제군의 포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은 군사들을 재정비해 탈출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한편, 뜻밖의 고려수군의 공격에 당황한 견훤은 옛 금성전투의 악몽을 떠올리며 수적인 우세를 앞세워 전투를 마무리 지으려하고 이에 고려의 신숭겸은 최후의 방법을 쓰게 되는데...
씬 공산 그곳 (새벽)
지난 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신숭겸이 돌아보고 있다. 아직도 소리내며 돌덩이와 통나무들이 떨어지고 있다. 군사들이 아우성치며 피하고 있다. 산 위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곳에 신덕이 보인다.
신덕 하하하... 어서 오시게. 신숭겸 장군. 백제의 이 신덕이가 밤새워 기다렸노라. 이미 길은 막혔노라. 가서 그대의 왕에게 항복을 권해봄이 어떠한가?
신숭겸 .......... (보다가) 자, 그대로들 가십시다. 폐하께서 저기 계실 것이오. 어서 가십시다.
김락 어서 가자. 그대로 가자... 전군 속보로 가라.
그들 그렇게 달려 간다.
씬 그곳 왕건이 있는 곳
왕건들이 산능선 아래를 보고 있다. 멀리서 흙먼지를 날리며 신숭겸 군이 들어서고 있다. 복지겸이 기뻐한다.
복지겸 오오, 폐하... 저기를 보시오소서. 신숭겸 장군들이 오고 있사옵니다. 지원군이 오고 있사옵니다, 폐하.
왕건 ............
복지겸 이제는 되었사옵니다. 힘을 합쳐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사옵니다.
그래도 왕건은 말이 없다. 이미 날은 밝았다. 주위를 둘러보면 자신들이 갇혀 있음을 곧 깨닫는다. 멀리 사방을 둘러 숲마다 백제군의 기치창검이 펄럭인다. 뒤는 거대한 절벽의 산이다. 좌우로 거대한 산이고 그 사이로 샛강이 흐르고 있다. 삼면 모두가 백제군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신숭겸 군이 서서히 가까이 이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말에서 내려 침통해하는 왕건에게 군례를 드린다.
신숭겸 폐하, 신 신숭겸 영을 받들어 군대를 이끌고 왔사옵니다. 그간의 사정을 들었사옵니다. 안심하시오소서.
김락 이제 신들이 모두 맡을 것이옵니다. 힘을 내시오소서, 폐하.
장수들 힘을 내시오소서, 폐하.
왕건 고맙구려. 숭겸아우와 더불어 김락 장군, 전이갑, 의갑 장군 그리고 박수문, 박수경 장군과 김언 장군도 왔구려.
모두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왕건 내 서라벌이 위급하다 하여 황망하게 군사를 끌고 오다가 이곳 공산 동수에서 다시 또 저들에게 망신을 당하고 있구려. 데리고 온 군사들의 대부분을 지난밤에 잃었소이다.
김락 폐하, 실패와 승리는 병가상사라 하였사옵니다. 이제 신들이 왔으니 저 무도한 백제놈들을 물리칠 것이옵니다.
왕건 이미 사방으로 포위되었소이다. 저들은 전략적으로 모두 우리보다 나은 곳을 차지하고 있고 대군으로 길목을 모두 막았소이다. 우리는 갇혔소이다.
왕건이 사방을 본다. 특히나 아침 햇살에 드러나는 견훤의 본체 군영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멀리 마주 보이는 그곳은 수많은 깃발과 창검으로 번쩍거리며 펄럭거린다. 군사의 수가 미처 헤아릴 수가 없다.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메아리쳐 들려온다. 아주 아득히 먼 곳 산 위에서 견훤이 모습을 드러낸다.
견훤 (아주 먼 소리로) 거기 아우 있는가....? 아우 있는가....?
왕건들 .............?
복지겸 백제의 왕이옵니다, 폐하.
견훤 하하하하... 좋은 아침일세. 잘 있었는가, 아우님?
씬 그곳 견훤이 있는 곳
왕건들의 모습이 산 아래로 아득히 내려다보인다. 그들의 눈에도 왕건의 군대가 산 아래에 갇혀 있음이 보인다. 애술, 상귀들이 함께 해 있다.
견훤 지난밤에 아주 힘이 들었을 것일세. 이 형이 참으로 안타까웠네. 자네의 군사가 너무 많이 죽었어.
왕건들 .............
견훤 이제 또 공격을 하려고 하네. 그만 항복함이 어떠한가? (사이) 항복함이 어떠한가, 아우님...?
왕건 오랫만이오, 상부어른...
씬 왕건이 있는 곳
왕건 지난밤에는 몸을 잘 풀었소이다. 이제부터요, 전투는... 우리 한번 형님과 아우가 싸워보십시다.
견훤 하하하.... 역시 아우님일세. 허나, 이미 아우님은 갇혔네. 아직 여유가 있으니 기다리겠네. 항복을 아니하면 군사를 몰아 갈 것이야. 알겠는가?
왕건 그리 하시구려. 항복은 없소이다.
그들의 큰 소리가 계속 메아리로 울리고 있다. 견훤의 웃음소리가 서서히 사라진다. 왕건들은 다시 초조하다.
씬 다시 견훤이 있는 곳
견훤 저들은 지금 매우 초조할 것이야. 우리도 밤새 싸우느라 장졸들이 다소 피곤할 것이야. 충분히 군사를 재정비하세. 뒤는 신덕 장군이 맡고 있으니 걱정할 것 없어.
최승우 그럴 것이옵니다, 폐하. 곧 군사를 재정비하시고 사냥을 다시 시작하시오소서. 이미 범은 우리 안에 갇혀 있사옵니다.
견훤 애술 장군, 상처는 괜찮은가?
애술 예, 폐하. 가벼운 상처였사옵니다. 이번에 소장이 설욕을 할 수 있도록 허락을 하시오소서, 폐하.
견훤 암, 그리 해야지. 상귀 장군과 더불어 저 왕건 아우의 목을 가져오도록 하게.
그들 예, 폐하.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들 다시 왕건이 있는 쪽을 본다. 그 표정에서..
씬 왕건의 군영
영채 안에서 회의가 계속되고 있다.
복지겸 여러 장군들도 이제 아셨겠지만 우리는 저들의 함정에 아주 깊이 빠져버렸소이다. 길이 모두 막혔소이다.
김락 막혔다면 열어야지요.
왕건 우리는 백제군을 밀어내고 서라벌을 구하러 오다가 이렇게 되었네. 이제 서라벌이 문제가 아니라 저 백제군이 문제야. 우리 상황이 너무 불리해.
신숭겸 이곳을 벗어나지 않으면 계속해 곤경에 처할 것이옵니다. 어떻게 하든 이곳을 탈출해야 하옵니다, 폐하.
전이갑 그러하옵니다. 이곳을 벗어나야 하옵니다. 이곳에 있으면 있을 수록 그만큼 궁핍해지옵니다. 길을 열어야 하옵니다.
신숭겸 군을 다시 이군으로 나누시오소서. 제 일군은 신이 맡겠사옵니다. 김언, 박수문, 박수경 장군과 함께 제 일선의 전선을 맡아 백제왕이 있는 정면으로 돌파하여 길을 열어 보겠사옵니다. 제 이군은 김락 장군이 폐하를 모시고 있다가 전투가 가열되면 전이갑, 의갑 장군과 함께 기회를 보시구려. 어떻게 하든 길이 열리면 그 길을 뚫어 이곳을 벗어나야 하옵니다.
왕건 희생이 크지 않겠는가?
신숭겸 각오해야 하옵니다. 큰 희생 없이 이곳을 벗어날 수는 없어 보이옵니다.
왕건 아아, 어쩌다 이런 곤경에 처하게 되었는고...? 그야말로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네.
모두들 ...........
신숭겸 자, 복장군. 복장군께서 여기 김락 장군과 더불어 제 이군을 다시 점고해 주시구려. 앞으로 나갈 최전방의 병대는 소장이
점고 하오리다.
복지겸 알겠소이다, 신장군. 자 들 일어나십시다.
모두들 일어선다. 왕건은 그럼에도 그대로 앉은 채 표정이 굳었다.
씬 그 군영 밖
소란스럽다. 기마대가 정렬하고 있고, 군사들이 오가고 있고, 보병, 창병, 궁병들이 이리저리 오가고 있다. 신숭겸과 김락들이 한숨을 쉬며 본다. 그들의 시야는 여전히 멀리 백제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신숭겸 완전히 저들의 계략에 빠졌소이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 군영은 저들의 시야에 너무 잘 드러나 있어요. 손바닥 위에 놓고 보고 있는 형국이란 말이오.
김락 그러게 말입니다. 조물성 보다도 더한 최악의 상태에 빠졌소이다.
전이갑 수많은 전투를 치루어 보았지만 이처럼 많은 군사를 가지고 이렇게 어려운 곤경에 처한 적은 없었소이다. 대 접전이 될 것 같소이다. 엄청난 전투가 될 것 같아요.
모두들 ...............
씬 견훤의 진영
여전히 발아래 멀리로 웅성거리는 고려군들을 보고 있다. 최승우가 말한다.
최승우 폐하, 말씀을 올렸듯이 저들은 절대로 항복은 아니 할 것이옵니다. 이 차제에 확실하게 고려왕의 목을 취해야 하옵니다.
견훤 피아간의 사정이 너무 현격하게 드러나다 보니 왕건 아우가 딱하다는 생각이 드네 그려.
최승우 인정은 금물이옵니다, 폐하.
견훤 그러나 저들도 생각이 있다면 지금의 현실을 모를 리 없을 것이야. 어차피 저곳은 빠져나가지 못해. 항복을 권해 보세나.
최승우 아니 된다고 하였사옵니다. 그대로 죽이시오소서. 잘못하면 기회를 잃사옵니다.
견훤 다 이긴 전쟁이 아닌가? 무엇이 두려워 꼭 목을 잘라야 한다는 말인가?
최승우 말씀 드렸사옵니다. 고려왕은 폐하와 더불어 영웅이라 칭함을 받는 인물이옵니다. 여기서 죽이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하실 것이옵니다.
견훤 이번에는 파진찬이 워낙 단호하니 그렇게 하세나. 허나, 참으로 아까운 인물이 아닌가? 개인적으로는 나는 저 아우와 정이 들었어. 허허허..
최승우 항복을 해 오든 아니 하든 폐하의 손에 들어오면 불문곡직 목을 배시오소서. 이 공산동수에서 통일대업을 마무리 짓는 것이라
하였사옵니다.
견훤 알겠네. 그리 하세나.
최승우 잊지 마시오소서, 그것이 오늘이옵니다. 바로 오늘이옵니다. 이미 신라를 끝이 났고 마지막 남은 고려를 부수는 날이옵니다, 폐하.
끄덕이는 견훤의 표정에서...
씬 신라 황궁 외경
씬 동 조당
경순왕과 신료들이 모두 모여있다. 마의 태자도 보인다.
경순왕 지금 고려와 백제가 공산 동수에서 마주하고 있다 하오이다.
유염 신도 소식을 들었사옵니다. 고려군이 밤새 엄청난 피해를 입고 지금 포위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옵니다.
마의태자 이미 백제는 우리 서라벌을 떠났사옵니다. 아바마마, 지금 고려나 백제를 의식할 때가 아니옵니다. 무너진 국권을 회복해야 하옵니다.
김웅겸 무너진 국권이라니..? 무얼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태자마마?
마의태자 비록 박씨성의 황제께서 우리 신라 황실을 맡아 계시다가 변을 당하셨으나 그분은 황실 모두의 재청을 받아 왕위에 오르셨던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변을 당하여 죽음을 받으셨으니 이제라도 마땅히 장례를 치루어 드려야 할 것이옵니다.
유염 장례라니...? 박씨왕을 장례를 치루어 준다는 말씀이옵니까?
경순왕 이보시오, 유염공?
유염 예, 폐하.
경순왕 어찌되었든 승하하신 경애왕께서는 우리 김씨들이 동의하였기 때문에 왕이 되셨던 것이올시다. 이미 돌아가신 분이고 우리의 황제이셨으니 장례를 치루어 드립시다. 어차피 돌아가신 분이십니다.
유염 폐하께서 그리 하시겠다면 어찌 말리겠사옵니까? 허나, 백제의 황제께서 그 일로 하여 또 어떤 꾸중을 내릴 지 걱정이 되옵니다.
마의태자 이미 저들은 서라벌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고려군과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 서라벌에 더 이상의 간섭은 없을 것이옵니다.
유염 글쎄 올습니다. 그거야 두고 볼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어흠, 흠...
씬 대야성 외경
배현경 (소리) 지금 뭐라 하였느냐?
씬 동 성안
배현경, 홍유, 왕충, 윤신달들이 함께 해 있다.
배현경 공산 근처에 이르러서 폐하께서 보내신 전령과 만났다..?
전령 예, 장군
배현경 그리고 폐하께서 거느린 본군이 전멸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전령 예, 장군. 그 때문에 신숭겸 장군과 김락 장군들은 속도를 더해 공산으로 가셨고 소인이 전령의 소임을 띄고 이리로 달려 왔사옵니다.
홍유 사정이 아주 나쁜 것 같소이다. 아무래도 증원군을 보내야겠소이다.
윤신달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나빠도 아주 많이 나쁜 것 같습니다.
왕충 소장이 나가 군사를 준비하겠습니다.
배현경 그리 해주시오. 왕충, 윤신달 장군 두 분이 용주성과 이곳을 지켜주시구려. 우리 둘이 가 보아야겠소이다.
왕충들 예, 장군.
배현경의 걱정하는 그 눈빛에서.... 막 밖에서 부장이 말한다.
부장 (소리) 장군, 황도에서 사람이 왔사옵니다.
부장과 황도에서 온 전령이 들어선다. 전령이 예를 올리고 장계를 전한다.
황도전령 병부령께서 보내셨사옵니다. 여기...
배현경 (받아 본다) 으흠... 이거 병부령께서도 벌써 예측을 하고 계셨구려.
홍유 무슨 말이 씌어있소이까?
배현경 아무래도 폐하께서는 너무 서두시고 여러모로 형편이 좋지 않아 보이시니 지원군을 준비하고 있다가 기회를 보아 도우라고 하고 있구려.
윤신달 역시 병부령은 다르오이다. 이미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소이다. 서둘러야겠소이다.
배현경 허허, 공산이라...? 전령 혼자서야 한나절이면 올 수 있지만 군사를 이끌고 가면 이틀이 걸리는 길이요. 허허, 이것 참.... 이런 답답할 때가 있나.
그런 배현경의 표정에서...
씬 송도 황궁 외경
씬 동 황궁 안
신료들이 모두 초조해 해 있다. 최응이 뒷짐을 지고 오락가락 한다. 최지몽은 그 옆에서 눈을 감고 계속 한숨만 쉬고 있다. 유금필, 박술희, 그리고 김행선이 함께 해 있다. 최지몽이 대나무통에 신점 가락들을 다시 흔들고 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있다가 또 하나를 빼어서 보면... 다시 긴 한숨을 쉰다.
김행선 왜 그렇게 한숨만 쉬는가, 내의성령?
최지몽 계속해 이 신점은 폐하의 흉액을 알리고 있사옵니다.
모두들 ................?
유금필 이보시오, 병부령? 이러고 있어서야 될 일입니까? 나라의 길흉을 점치는 최지몽이 계속해 불행을 예고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이러고만 있을 것입니까? 전령이 끊긴 지 이틀째이올시다.
최응 ............... 이미 우리는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그 중 가까운 곳은 대야성이라서 그곳에 전령이 갔습니다. 다시금 배현경, 홍유 장군들이 신숭겸 장군의 뒤를 바치라고 말입니다. 기다려 볼 수 밖에요.
박술희 허허, 이것 참... 기다린다? 그저 기다린다? 어이구 이거야 원...
씬 공산 그곳
출병 준비가 끝나있다. 말 울음소리들이 계속해 들려온다. 신숭겸과 왕건이 서로를 본다. 이미 군은 나뉘어 있다.
신숭겸 폐하, 신이 일단 정면을 돌파하여 길을 뚫어보겠사옵니다. 폐하께오서는 뒤에 계시다가 소장이 들어온 그 길을 노려보시오소서. 일단 이곳을 벗어나면 되는 것이옵니다.
왕건 알겠네. 무리하지는 말게. 적병이 너무 많으이.
신숭겸 일단 저들의 헛점을 노려보는 것이옵니다. 저들이 공격하기 이전에 우리가 선공을 취할 필요가 있사옵니다.
왕건 알겠네.
신숭겸 제 일군을 나를 따르라. 적의 정면 전선을 돌파할 것이다. 제 일대, 이대, 삼대는 나를 따르라. 기마대는 앞을 서라.
그런 대로 다시 고려군은 웅장해 보인다. 기치창검을 내세우며 들판을 나아가고 있다.
씬 견훤의 군영
견훤이 보고 있다. 애술과 상귀들이 영을 대기하고 있다.
애술 폐하, 저들이 병대를 둘로 나누었사옵니다. 고려의 왕은 뒤에 있는 것 같사옵니다.
상귀 아직도 기운이 대단해 보이옵니다.
견훤 자, 우리도 준비하라. 저들을 맞아야 할 것이 아닌가?
최승우 이번 싸움이 큰 전투가 될 것이옵니다. 저들은 이미 모두들 각오하고 정면으로 나서는 것이옵니다.
견훤 그렇게 보이네 그려. 자, 애술 장군, 가라...
애술 저기 아득히 보이는 저 흰 말이 고려의 왕이 아니옵니까?
견훤 그런 것 같네.
애술 이제 저들을 또 만나러 가 보아야겠사옵니다, 폐하.
견훤 그리하라. 공격하라.
애술 전군.... 공격하라........... 공격하라......... 기마대가 제 일선에 서라......... 고려군을 쓸어버려라..
상귀 공격하라.......
기마대가 내달리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부감으로 잡으면 산비탈 전체가 천여 마리의 말로 덮여 내려가고 있다. 장관이다. 그 모습을 견훤이 흡족하게 보고 있다.
씬 그곳 신숭겸의 진영
강뚝을 경계로 기마병들이 대기해 있다. 그들의 먼 시야로 백제의 기마대가 질풍처럼 쓸어 내려오고 있다. 신숭겸의 기마대 앞으로는 궁수들이 활을 들고 뚝에 의지해 있다. 백제군이 가까이 오자 김언이 '쏘아라' 소리친다. 그리고 곧 화살이 비오듯 나른다. 백제의 기마대는 수없이 쓰러지며 나뒹군다. 그러나 중과부적이다. 온 들판을 기마대가 다 덮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강가로 접어든다. 김언이 다시 소리친다.
김언 장군, 화살로는 아니 되겠소이다. 부딪혀야 되겠소이다.
신숭겸 알겠소이다. 기마대는 준비하라... 가라.....
애술의 기마대와 신숭겸의 기마대가 다시 붙었다. 대 접전이고 혼란이다. 혼전이다. 양군이 전면적으로 어우러졌다. 신숭겸이 소리친다.
신숭겸 김락 장군은 무얼하시오. 어서 폐하를 뫼시고 우측 길을 뚫어 보시오.
김락 알겠소이다. 폐하, 가시오소서. 제 이군은 나를 따르라.
전이갑 공격하라.... 폐하, 가시오소서. 우리는 우측을 공격해야 하옵니다.
왕건 알겠네.
그들 싸우는 뒤에서 제 이군이 이동해 간다. 질풍처럼 그렇게 달려가면...
씬 견훤이 있는 곳
망루와도 같은 관찰지역에서 견훤이 끄덕인다.
견훤 저기 가는 것이 왕건 아우가 아닌가?
최승우 신덕 장군이 있는 길을 뚫으려 하는 것 같사옵니다. 하오나 그곳에 배치된 병력만도 오천이나 되옵니다. 가기 어려울 것이옵니다.
견훤 저들이 내가 있는 이곳을 뚫으면서 동시에 신덕 장군이 있는 길을 노리는구먼. 마지막 발버둥인 게야.
최승우 그러하옵니다.
그렇게 견훤이 보고 있는 그 시야에서...
씬 신덕이 있는 계곡
질풍처럼 왕건의 군대가 달려가고 있다. 신덕군이 노리고 있다.
신덕 고려의 왕이 온다. 저들은 장애물에 걸려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있는 대로 퍼부어라. 공격하라..... 공격하라....
왕건의 군대가 미처 도착하기도 전에 엄청난 화살과 바윗덩어리와 통나무들과 불덩어리들이 굴러 내린다. 아비규환이다.
김락 물러나지 마라... 계속 나아가라... 전장군은 폐하를 뫼시오...
전이갑 알고 있소이다... 폐하, 이리로 오시오소서.... 여기이옵니다, 폐하...
왕건 알고 있소.
복지겸 폐하, 너무 위험하옵니다.. 아군이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사옵니다.. 이곳은 협곡이옵니다... 위험하옵니다...
불덩이와 바윗덩어리, 통나무들은 계속 굴러 떨어진다. 군사들은 계속 죽어 나간다. 그들은 그렇게 그 속을 뚫고 얼마쯤 달려간다. 그러나, 신덕군이 쏟아놓은 장애물이 눈에 보여온다.
복지겸 폐하, 저곳을 넘어야 하옵니다. 군사들은 다리를 놓아라... 장애물을 치워라....
그러나, 소용없다. 집중적으로 그쪽을 향해 화살과 돌덩이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내린다. 사방에 불이 붙어 타고 있다.
신덕 저기 고려왕이 있다. 잡아라... 저쪽으로 퍼부어라...
비오듯 쏟아지는 바윗덩이와 통나무들, 그들은 장애물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곳에 이르는 군사들은 다 죽어나간다.
전의갑 아니 되겠사옵니다, 폐하... 잠시 뒤로 물러 나시오소서... 적의 공격이 너무도 완강하옵니다..
복지겸 폐하, 뒤로 잠시 물러 나시오소서. 아니 되겠사옵니다, 폐하.
왕건 아아... 이럴 수가... 이럴 수가...
그들은 그런 아비규환 속에서 말머리를 돌린다. 군사들은 계속 죽어나가 싸이고 있다. 그 불길, 그 죽음, 그 아비규환에서... 디졸브.
씬 다시 신숭겸의 전장터
치열한 접전이 계속되고 있다. 완전한 수적인 열세다. 신숭겸은 당황을 하며 주변을 본다. 고려군이 수없이 쓰러져 가고 있다. 좌우편 언덕에서는 다시 백제의 기마대 제 2선이 또 달려나오고 있다.
박수문 장군, 저기.....적이 다시 오고 있습니다.
신숭겸 장창부대.... 앞으로 나가라.....나아가라....
신숭겸의 명령에 따라 수백의 장창부대가 긴 창을 들고 앞을 나아가는데 좌우 옆에서 다시 기마대가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신숭겸 여기서 물러나서는 아니 되오, 박장군. 기마대를 인솔해 나아가시오. 정면을 뚫어야 하오.
박수문 알겠습니다. 기마병은 나를 따르라... 그대로 공격하라... 공격하라.....
혼전이다. 죽고 쓰러지고 나뒹굴고... 강가는 온통 시체로 덮이기 시작한다. 애술도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있다.
애술 고려군은 얼마 아니 된다. 싹 쓸어버려라. 쓸어버려라.....
얼마를 그렇게 싸웠을까? 대 혼전은 계속되는데 드디어, 김언이 화살을 맞으며 신숭겸 쪽으로 달려온다.
김언 장군... 중과부적이올시다. 적의 숫자가 너무 많소이다.
신숭겸 그래도 싸워야 합니다. 여기서 뒤로 밀리면 저들은 이곳을 지나 폐하의 뒤를 치게 됩니다. 막아야 하오이다.
김언 하지만 적이 너무 많소이다. 보시오, 사방이 적이올시다.
함성소리가 계속된다. 쓰러지는 것은 주로 고려군이다. 장창부대도 벌써 반이나 죽어나가거나 도망치고 있다. 와... 와...하는 함성이 천지를 진동한다. 신숭겸은 더욱 당황한다. 드디어 그 앞에서 김언이 애술과 몇 합을 붙다가 사방이 포위되면서 하나를 배고 둘을 배고... 세 번째는 힘이 부치면서 그만 허리를 허락한다. 장렬히 전사하는 그 모습에서 슬로우 모션되면서...
신숭겸 김언 장군.... 김언 장군.....!
사태는 심각하다. 박수문 형제가 달려왔으나 이미 늦었다. 그들은 모두 당황한다. 함성소리는 더욱 커지면서 고려군이 밀리기 시작한다. 신숭겸이 계속해 적을 배면서 소리친다.
신숭겸 물러나서는 아니 된다... 물러나지 마라... 물러나지 마라...
박수문 장군, 아니 되겠소이다. 잠시 퇴각령을 내리십시오.
박수경 적의 숫자가 너무 많소이다. 잠시 퇴각해야 합니다.
신숭겸 아니 되오, 퇴각은 아니 되오.. 폐하께서 우측길로 가셨소이다. 길을 뚫을 때까지 우리가 버텨야 하오...
신숭겸의 무예는 그야말로 관운장의 화신이다. 청룡언월도가 춤을 출 때마다 백제군 장졸들이 낙엽처럼 쓰러져간다. 무인지경이다. 그의 화려한 무예가 선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미 주변의 고려의 장졸은 점차 보이지 않는다. 박수문들도 겹겹이 에워싸이면서 싸우다가 그예 밀리며 물러서기 시작한다. 그러나 신숭겸은 여전하다.
씬 그곳 언덕
아주 가까운 곳에서 견훤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보고 있다. 최승우도 혀를 찬다. 견훤은 넋을 잃은 듯 하다.
견훤 저 장수가 도대체 누구인가?
최승우 신숭겸이라 하옵니다.
견훤 아하, 신숭겸이라...? 저 자였구먼...? 저 자가 신숭겸이었구먼. 아깝도다. 죽이지 않고 사로잡을 수 없을까?
최승우 아마도 어려울 것이옵니다. 고려왕의 의형제이옵니다.
견훤 그런가? 왕건 아우는 참으로 복도 많네 그려. 어떻게 아우들이 하나같이 다 그리들 잘났는가? 기가 막히네. 기가 막혀. (하다가 놀란다) 저런, 저런, 저런.... 그예 혼자 빠져나가고 있구먼 그래. 저것 봐. 저러다 우리 장수들이 다 죽겠어. 마치 낙엽을 배듯이 배고 있네.
화려한 무예는 계속되고 있다. 언월도가 번쩍거릴 때마다 장졸들이 맥없이 풀처럼 배어지고 있다. 그 화려한 무예에서...
씬 그곳
신숭겸이 그렇게 달려나간다. 장졸들이 무서워 모두 피한다. 그는 혼자서 그렇게 여유 있게 그곳을 벗어나고 있다. 저만치서 애술이 달려온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애술은 쫓기를 멈추고 그저 멍하니 본다.
애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더니 세상에....
그런 애술의 표정위로 퇴각을 알리는 소라와 북소리가 들려온다. 백제군이 일제히 쫓기를 멈춘다. 그렇게 디졸브되면서...
씬 그곳 들판길
신숭겸이 홀로 오면서 보고 있다. 시체로 역시 또 들판을 이루었다. 크게 한숨을 쉬는 신숭겸... 백제군도 이미 저만큼 물러서고 있다. 박수문과 군사들이 한쪽에서 달려온다.
박수문 장군, 괜찮사옵니까?
신숭겸 나는 괜찮소이다. 우측으로 가신 폐하께서 어찌되셨는지 모르겠소이다.
신숭겸들이 불안하게 한쪽을 본다. 그때 저쪽에서 왕건과 복지겸, 김락, 전이갑 군들이 오고 있다. 모두 풀이 죽었다. 죽거나 다친 군사들이 부지기수로 쫓아오고 있다. 신숭겸이 보다 목이 메인다.
신숭겸 폐하...
왕건 면목없네, 아우... 길을 뚫지 못하였네.
신숭겸 소제도 마찬가지이옵니다. 송구하옵니다. 많은 군사들과 장수들을 잃었사옵니다.
왕건 일단 적이 물러갔으니 본진으로 다시 가세나.
신숭겸 예, 폐하.
김락 부장들은 병대를 재점고하라. 재점고하라....
그 소란과 어지러운 모습들에서... 디졸브되면...
씬 견훤의 군영
견훤이 껄껄껄 웃고 있다. 아주 기분이 좋은 표정이다.
견훤 파진찬의 전략이 일전 일획도 빗나감이 없이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있네. 그렇다면 이제 왕건 아우의 목이 내 앞에 곧 놓이겠네 그려.
최승우 당연한 말씀이시옵니다.
견훤 이렇게 끝나는 것이로구먼. 내 나이 육십에 이제서야 삼한통일의 대업이 끝나는 것이야. 감개가 무량하이. 다시 군사를 정비해서 또 부딪혀야겠구먼.
애술 그래야 할 것이옵니다. 이제 마지막 전투가 될 것이옵니다. 적의 병력은 이미 태반이 다 소멸되었사옵니다.
상귀 강 언덕과 산기슭마다 모두가 고려군의 시체로 덮여 있사옵니다. 적의 장수도 둘이나 배었사옵니다.
견훤 알고 있네. 엄청난 전과야.
그때, 부장 1이 전령을 데리고 들어선다. 군례를 드리며...
부장1 폐하, 황도에서 전령이 왔사옵니다.
견훤 황도에서...?
전령 예, 폐하.
장계를 올리면 견훤이 받아 읽는다. 그러다가 크게 놀란다.
견훤 이게 무슨 소리인고...? 고려의 수군이 남해를 덮쳐...?
최승우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폐하?
견훤 우리가 서라벌을 치고 있는 사이에 고려의 수군이 남해를 덮쳤다는 구먼. 전이산(남해)과 돌산(순천)들이 이미 고려의 수중으로 들어가 상륙한 고려군이 속속 북상하고 있다 하네.
애술 아니, 어느 사이에 그렇게....?
최승우 (잠시 눈을 감다가) 역시, 고려의 신동은 대단하옵니다. 우리가 서라벌에 오는 것을 알고 후방을 급습하였사옵니다.
견훤 어찌하면 좋겠는가? 나는 고려의 수군 이야기만 나오면 우리 금성을 잃어버린 것이 생각나서 가슴이 서늘해.
최승우 그렇사옵니다. 막아야 하옵니다. 빨리 이곳의 일을 마무리 짓고 황도로 돌아가야 하옵니다. 그리고 고려의 수군이 아니더라도 불원간에 다시 고려의 지원군이 올 공산이 크옵니다. 이 밤 안으로 고려의 왕을 잡고 전투를 마무리 지어야 하옵니다, 폐하.
견훤 (계속 장계를 보며) 이 신검이 하는 짓 좀 봐. 적군이 상륙을 하였다는데도 어찌할 것인가를 내게 묻고 있어. 이게 어디 물을 사항인가? 우선 적군을 막고 봐야지, 이런, 이런....
최승우 저들 고려의 수군이 그렇게 계속해 올라오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저들도 한계가 있사옵니다. 그곳 태수들이 잠시 막고 있도록 놓아 두시고 우선 이번 일을 해결하시오소서. 그것이 순서이옵니다. 시간을 끌면 일이 아주 복잡하게 되옵니다.
견훤 알겠네. 저들의 증원군이 자꾸 오기 시작하면 어려워지지. 암, 빨리 끝을 내야지.
그런 견훤의 표정 위로 달려오는 말발굽 소리들...
씬 길
배현경과 홍유의 군대가 달려오고 있다.
배현경 지금쯤 어찌 되었는지 참으로 궁금하오이다. 제발, 별 일이 없어야 할 터인데...
홍유 그러게 말이올시다. 어서 가십시다.
그들 그렇게 가면...
씬 그곳 공산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다. 왕건의 영채는 죽음처럼 조용하다. 곳곳에 수많은 부상병들이 신음하고 있다. 왕건이 하염없이 먼 들판을 보고 있다. 참으로 참담한 것이다. 그 뒤로 군막이 보인다.
씬 동 군막 안
제장들이 모여있다. 모두들 무겁게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다.
김락 폐하께서 많이 괴로워하시는 것 같소이다. 아까부터 밖에 서서 저렇게 먼 산만 보고 계십니다.
복지겸 남은 군사가 채 이천도 아니 됩니다. 뭔가 방향을 결정하지 않으면 그나마 폐하께서 이곳을 벗어나기 어려우실 것입니다.
박수문 방법이 있어야 말이지요. 우리가 있는 힘을 다해 부딪혀 봤지만 결과가 없었소이다. 희생만 눈덩이처럼 불어났어요.
신숭겸 ......... (한숨만)
박수경 곧 해가 집니다. 저들이 또 공격해 올 것입니다.
전의갑 이대로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전이갑 그렇소이다. 어떻게 하든 폐하만은 이곳을 벗어나시게 해야 합니다.
김락 어떻게 말입니까? 어떻게 여기를 빠져나간다는 말이오?
그 말에 모두들 한숨을 쉰다. 대책이 없는 것이다. 신숭겸은 더욱 더 괴로운 듯 눈을 감고 있다.
복지겸 신장군...? 해가 지고 있소이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방책을 찾아야 합니다.
신숭겸 적은 이미 우리의 약한 곳을 보았소이다. 그리고 갈 길도 알고 있소이다. 어차피 우리는 여기서 모두 살아나가기 어렵소이다. 항복을 하지 않는 이상 말이오.
김락 항복이라니요? 조물성의 일을 잊었소이까? 그런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것이 떳떳한 일일 것이오.
전이갑 소장도 그리 생각합니다. 허나, 폐하께서는 이곳을 벗어나셔야 하오이다. 폐하께서 변을 당하시면 국가의 사직 또한 무너지는 것이외다.
복지겸 아아, 이 일을 어이 하나...? 도무지 방법이 없구려.
신숭겸은 여전히 말이없다. 고통스럽게 하늘을 보며 계속 한숨을 내쉬다가는 드디어 입을 연다.
신숭겸 우리 제장들이 모두 죽음을 각오했다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외다.
김락 방법이 있다는 말입니까? 그게 무엇입니까?
모두들 방법이 있어요...?
신숭겸 그렇소이다. 그 옛날 중원의 한나라 고조 때에 기신이라는 장수가 있었소이다.
모두들 ...............?
신숭겸 고조가 하남성에서 항우의 군사에게 포위되었을 때에 그 사람은 고조의 수레에 타고 초나라 군사를 속여 마침내 고조를 대신하여 죽음으로써 고조로 하여금 그곳을 벗어나게 하였소이다.
전이갑 허면, 저들을 속이면서 폐하를 탈출시키자 그런 이야기오이까?
신숭겸 그렇소이다. 방법은 그것뿐이외다.
복지겸 명안이올시다. 허면 누군가가 폐하를 대신하여 위장하여 싸우는 사이에 폐하께서는 군졸의 옷으로 갈아입고 전투 중에 이곳을 빠져나가신다면 가능한 일일 것이외다.
김락 명안이올시다. 가능성이 큰 이야기올시다.
모두들 끄덕인다. 허나 신숭겸은 다시 말한다.
신숭겸 문제는 폐하께서 이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에 있소이다. 이를 폐하께서 알면 아니 된다는 것이올시다.
모두들 .............. (끄덕인다)
신숭겸 공들과 나는 이를 폐하께도 숨겨야 합니다. 그저 이곳을 탈출하는 방법으로 군졸의 옷을 갈아입고 갈 것이라는 것만 알려드리도록 하십시다. 복장군..?
복지겸 말씀하시지요.
신숭겸 제장들 중 소장이 가장 폐하의 용안과 닮았소이다. 소장이 폐하의 갑옷으로 갈아입고 페하의 어마를 타겠소이다. 장군은 오랫동안 폐하를 뫼셔온 내군장군이시오. 여기 박수문, 박수경 장군과 더불어 폐하를 적진 밖으로 뫼셔 나가도록 하시오.
복지겸 허나 어찌 우리만 살고 공들을 죽게 한다는 말이오?
신숭겸 지금으로서는 폐하를 살려 뫼시는 일이 여기서 죽는 것보다 더 큰일이오. 아니 그렇소이까?
김락 옳은 말씀이시오. 그렇게 하도록 하십시다. 소장 김락이 여기 전이갑, 의갑 장군과 더불어 신장군의 거짓 어마를 모시고 갈 것이오. 적군의 눈이 모두 그리로 쏠려 있을 때, 빠져나가야 합니다.
신숭겸 허면 의견들이 모아진 것이오이까?
모두들 (끄덕인다) .......
신숭겸 자, 그럼 여유가 별로 없소이다. 복지겸 장군은 가서 이 사실을 알려 드리시구려.
복지겸 알겠소이다.
복지겸이 나간다. 모두들 눈빛이 교차된다. 그리고 끄덕인다.
씬 동 밖
복지겸이 왕건의 곁으로 다가온다. 왕건이 허탈하게 웃는다.
왕건 노을빛이 참으로 아름답구려. 마치 핏빛같소이다. 서글픈 저녁이오.
복지겸 아직까지도 이곳에 계셨사옵니까?
왕건 도무지 묘안이 없구려. 여기를 나갈 방법이 없어요.
복지겸 조금 전에 제장들이 의견을 모았사옵니다.
왕건 그래요..? 말씀하시오.
복지겸 어차피 해가 지면 백제의 대군이 한꺼번에 몰릴 것이옵니다.
왕건 그렇겠지요.
복지겸 우리 제장들이 마지막 일전을 겨루면서 탈출로를 뚫기로 하였사옵니다.
왕건 어떻게 말이오.
복지겸 싸우는 척 하면서 폐하와 제장들이 백제군 군졸의 갑옷으로 갈아입고 저들 속에 어우러져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옵니다.
왕건 그것이 가능하리라고 보시오?
복지겸 가능하다는 결론이 났사옵니다. 곧 해가 지는 대로 결행하기로 하였사옵니다, 폐하.
왕건 군졸의 옷으로 갈아입고 여기를 빠져나간다? 고려의 왕이 백제군 군졸의 옷으로 갈아입고...? 이렇게 참담할 때가 있는가? 이렇게 부끄러울 때가 있는가?
복지겸 폐하께 대 고려 제국의 명운이 걸려 있사옵니다. 사직을 보전하셔야 하옵니다.
왕건 (한동안 말이 없다) 제장들과 나는 그렇게 빠져나간다 치고 남은 군사들은 어찌한다는 말이오?
복지겸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이미 진 전쟁이옵니다. 전투가 벌어지고 저들이 처내려오면 지치고 겁먹은 군사들은 대부분 항복을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목숨들은 건질 수 있을 것이옵니다.
왕건이 비로소 끄덕인다. 그렇게 긴 한숨을 쉰다.
왕건 그렇다면 해보는 수밖에...
복지겸 시간이 별로 없사옵니다. 소장과 함께 가시오소서. 군졸들의 옷이 마련되어 있을 것이옵니다.
왕건이 끄덕인다. 그리고 그렇게 복지겸을 본다. 그렇게 가면서 디졸브...
씬 또 다른 군막 안
신숭겸이 왕건의 갑옷을 입고 있다. 그리고 머리에 관까지 쓴다. 김락과 전이갑 형제들이 보고 있다.
신숭겸 폐하께서는 어찌하고 계십니까?
전이갑 백제군 군졸의 옷으로 갈아입고 계십니다.
신숭겸 소장이 이 모습을 하고 밖으로 나가게 되면 폐하께서는 벌써 눈치를 채실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으로써 폐하를 살리려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폐하는 아니 가려 하실 것입니다. 여유를 주어서는 아니됩니다.
김락 이미 그렇게 약속이 되었소이다. 허나 뫼시는 주군께 마지막 인사는 있어야겠기에 우리가 출병하면서 잠깐 보실 수 있게 하였소이다.
신숭겸 그래야겠지요. 마지막 인사는 드려야지요. 허나 우리 군사들도 이 일을 알면 아니 됩니다. 막 해가 지고 있으니 소장이 어마에 오르면서 앞으로 나아가면 아무도 모를 것이외다. 부장들도 그 점을 명심하라.
부장들 예, 장군.
신숭겸 전군에 공격령은 내려져 있소이까?
전의갑 그렇소이다. 모두 죽음의 일전을 각오하고 있소이다.
신숭겸 장렬한 밤이 될 것이외다. 생의 마지막 밤이올시다. 허허허....
김락 그러게 말입니다. 죽기는 아주 좋은 날이올시다. 허허허...
비장한 그들의 모습에서...
씬 또 다른 군막 안
이미 옷들을 다 갈아입었다. 왕건의 모습은 투구까지 써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복지겸도 박수문 형제도 다 같은 모습이다.
왕건 헌데, 왜 숭겸 아우와 김락 장군들은 보이지가 않는가?
박수문 다른 곳에서 준비중이옵니다.
왕건 전이갑, 의갑 장군도 아니 보이는구려.
박수경 아마 함께들 계실 것이옵니다.
왕건 그래도 숭겸아우가 뭔가 말을 해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이상하구먼.
복지겸 폐하, 지금 신숭겸 장군은 마지막 일전을 통솔하기 위해 밖에 있사옵니다. 한가지 말씀 드릴 것이 있사옵니다.
왕건 말해보시오.
복지겸 지금부터 아무 말씀도 하셔서는 아니 되옵니다. 이 일은 극도의 보안을 요구하옵니다.
왕건 알겠소이다.
복지겸 조금만 계시오소서. 그리고 잠시 신들이 폐하께 경솔함을 저지를 수 있사옵니다. 그 죄는 뒷날 물으시오소서.
왕건 그건 또 무슨 말이오?
복지겸 곧 아시게 되옵니다.
씬 백제군 진영
견훤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애술과 상귀, 최승우들이 함께 해 있다.
견훤 지금 해가 지고 있는데 저들이 공격준비를 하고 있어?
애술 그렇다 하옵니다, 폐하. 군사를 집결하고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최승우 그렇게 되지 않겠사옵니까? 어차피 항복은 안할 것이옵니다. 철통같이 저들을 막고 꼭 고려왕을 잡아야 하옵니다.
견훤 (끄덕이며) 저들이 온다면 우리도 준비를 해야지. 길목을 에워싸게. 그리고 오는 대로 인정을 두지 말고 쓸어버리게.
애술 예, 폐하. 꼭 고려왕의 목을 베어오겠사옵니다. 준비하라... 적이 공격준비를 하고 있다. 모두들 준비하라. 전령들은 각 길목에 알려 철통같이 막으라 하라.
부장들이 대답하며 흩어진다. 견훤과 최승우와 애술의 표정은 비장하게 굳어져 있다. 그 소란 속에서....
씬 그 일각
소란이 계속되고 있다. 군사들의 이동이 부산하다. 김락이 말한다.
부장 곧 폐하께오서 출정하신다. 내군은 폐하를 뫼실 준비를 하라.
내군들 예, 장군...
씬 그 일각
왕건이 나오고 있다. 신숭겸인 것이다. 누가 보아도 왕건의 모습이다. 군사들이 군례를 올린다. 그는 왕건처럼 그렇게 지나쳐 간다. 전이갑은 복지겸의 갑옷을 입었다. 김락과 장수들이 따르고 있다. 그들은 곧 어느 군막 앞에 이르러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린다. 신숭겸과 김락들은 만감이 교차한다.
신숭겸 문을 여시구려.
김락이 끄덕이며 문을 연다.
씬 그 군막 안
아직 투구를 쓰지 않은 왕건이 군졸복 차림으로 놀라 벌떡 일어선다. 제장들이 와 그렇게 선다.
왕건 (너무도 놀라) 뭐가 어떻게 된 일인가? 숭겸 아우는 그게 무슨 일인가? 왜 이 형의 갑옷을 입었는고..? 전이갑 장군은 왜 복장군의 갑옷을 입었는가?
그러자 그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는다. 신숭겸이 눈물을 흘린다.
신숭겸 형님폐하, 오늘의 이 곤경을 도저히 피할 길이 없어 신들이 꾸민 일이옵니다. 무사히 가시오소서.
왕건 무슨 소리인가?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김락 폐하, 부디 이곳을 빠져나가시어 사직을 보전하시오소서.
전이갑 신들을 용서하시오소서, 폐하. 부디 이곳을 무사히 나가시오소서.
전의갑 사직을 보전하시오소서, 폐하.
왕건 나를 속였구먼. 모두들 나를 속였어. 이제 보니 아우가 나를 위장하여 적진으로 가는 사이에 이 형보고 도망가라는 것이 아닌가? 그런 것이 아닌가?
신숭겸 용서하시오소서, 형님폐하. 형님폐하를 위해 목숨을 다 할 수 있게되어 이런 기쁨과 영광이 없사옵니다. 바라옵건데, 부디 대업을 이루시오소서, 형님폐하.
김락들 대업을 이루시오소서, 폐하.
왕건 (절규하며) 이럴 수는 없다. 내 목숨 하나 살자고 아우와 제장들을 다 죽이다니... 이럴 수는 없다. 나는 아니 갈 것이야. 나는 아니 갈 것이야...
신숭겸 무엇들 하시오? 어서 폐하를 뫼시시오.
복지겸 폐하, 용서하시오소서.
그러자 그렇게 복지겸과 박수문들이 왕건을 잡는다.
왕건 놓아라. 이것들 놓아라... 나는 아니 간다. 나는 아니간다....
신숭겸 형님폐하, 가셔야하옵니다. 형님폐하의 어깨에는 대 고려제국의 명운이 달려있사옵니다. 신들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시오소서. 부디 강건하시고 대업을 이루시오소서.
왕건 아니 되네... 아니 돼...
그러나 이미 신숭겸들은 일어나 예를 올린다. 그리고 그곳을 빠져 나간다. 왕건은 계속 몸부림친다.
왕건 아니된다.. 아니 돼... 아니 돼..... 숭겸아우... 아니 된다...!
신숭겸 무사히 가시오소서, 형님폐하.
왕건 숭겸아우....!
왕건이 손을 뻗어 절규한다. 카메라는 그 모습에서 슬로우모션으로 잡아들면서 판하여 마지막 웃으며 군막문을 나서는 신숭겸의 웃는 모습을 잡는다... 그 모습에서 스톱모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