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 161회>
<줄거리>
절규하는 왕건을 뒤로 하고 신숭겸일행은 마지막 전장터로 향하고 견훤은 비장한 결심으로 총공격을 명한다. 장수들의 눈물겨운 분투에도 불구하고 고려군은 전멸의 위기를 맞고 마침내 견훤은 왕건의 수급을 맞이하는데...
씬 공산 고려 군영 (석양)
지난 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신숭겸들이 왕건의 군막을 빠져나오고 있다. 안에서는 왕건의 절규가 계속 들려온다.
왕건 (소리) 아니된다.. 아니 돼... 아니 돼..... 숭겸아우... 아니 된다...
그 비통한 절규를 들으며 이들은 다시 발걸음을 잠시 멈춘다. 신숭겸을 군막 쪽을 보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그리고 눈물을 글썽인다
신숭겸 (소리) 형님폐하... 대장부들이 가는 길이옵니다. 슬퍼하지 마오소서. 사내들의 의리가 다 이와 같은 것이 아니옵니까? 형님을 위해 아우가 감은 당연한 것이옵니다. 부디, 부디 대업을 이루시오소서.
왕건 (소리) 아우야... 숭겸 아우야.... 김락 장군.... 전이갑 장군... 의갑장군.... 장군들...!
신숭겸 자, 가십시다.
그들 그렇게 간다. 왕건의 소리는 계속된다
씬 동 군막 안
여전히 박수문 형제들이 복지겸과 더불어 왕건을 제지하고 있다. 왕건은 온 힘을 다해 울부짓고 있다.
왕건 이것들 놓아라.. 놓치 못하겠는가..? 내 어찌 아우와 장수들을 죽이고 이 한 목숨 연명하랴. 놓아라, 이것 놓치 못할까?
복지겸 폐하, 고정하시오소서. (울며) 이미 장수들이 떠났사옵니다. 폐하를 위하여 그리고 국가 사직을 위하여 장렬한 선택을 한 저들이옵니다.
박수문 그러하옵니다. (역시 울며) 폐하, 저들의 큰 뜻을 받으시오소서.
왕건 아니다.. 이건 아니야. 한 나라의 황제가 할 짓이 아니야.
복지겸 폐하, 폐하께오서는 바로 국가이시며 제국의 주인이시옵니다. 만 백성의 어버이께서 이 어려움을 벗어나 백성의 안녕을 찾는 것은 당연한 본분이시옵니다. 저들의 뜻을 받으셔야 하옵니다. 그리하셔야 하옵니다, 폐하...
왕건 아아.. 이 일을 어찌할꼬...? 내 아우와 저 장수들을 어찌할꼬..? 아니 된다. 아니 된다...
씬 동 군영 어느 장막 앞
숱한 장졸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 한쪽이 갈라지면서 우람한 김락의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연이어 전이갑들의 소리가 계속된다. 평소보다 더 과장된 소리들이다. 그 소란스러움....
김락 폐하께서 납시신다. 폐하께서 납시신다..
전이갑들 폐하께서 납시신다.... 폐하께서 납시신다.....
신숭겸이 왕건의 옷차림으로 백마를 타고 화려하게 숱한 부장들에 에워싸여 나오고 있다. 도열해 있던 제장들이 모두 군례를 드린다. 말없이 신숭겸은 그들을 지나치며 손을 번쩍 든다. 부장들과 장졸들이 와-하고 구호를 계속 외친다. 신숭겸은 그들을 사이에 두고 저만치가 선다. 호위하던 양옆으로 김락과 전이갑들과 부장들이 에워싼다. 신숭겸이 손을 들자 더욱 장졸들이 환호한다. 그 환호가 멎자 김락이 말한다
김락 장졸들은 들으라. (사이) 비록 백제군이 우리를 포위하였으나 폐하께서 앞을 서셨다. 너희는 대 고려의 충용스러운 군사들이다. 이제 폐하와 함께 길을 뚫을 것이다. 죽고자 하면 산다 하였느니라. 모두 폐하를 따르라.
군사들 와.... (함성)
신숭겸 (보며 끄덕인다. 그리고 손을 흔든다) 가자. 고려의 군사들이여. 짐을 따르라.. 가자..!
그리고 신숭겸은 크게 손을 앞으로 내어 가리킨다. 그리고 백마의 옆구리를 차면 숨쉴 틈 없이 전이갑이 말을 이어 받는다.
전이갑 자, 마지막 일전이다... 폐하께서 앞을 서셨다... 전군.....출병하 라...!
전의갑 출병하라... 폐하를 따르라...!
김락 출병하라... 어마를 뫼시어라... 나팔수는 소라를 불어라.. 북을 쳐라.. 진군하라...
그러자 말 위의 나팔수들이 일제히 소라를 불기 시작한다. 그리고 북을 치며 그들은 진군한다. 군사들이 그렇게 나아가기 시작한다. 위풍당당하다. 그 누구도 황제가 거짓인줄은 모른다. 왕건의 깃발이 앞을 섰고 내군의 부장들이 함께 싸고 도열해 간다. 그들은 천천히 그렇게 적진을 향해 나아간다.
씬 그 군영 어느 곳
신숭겸의 남은 장졸들이 일제히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 가득한 흙먼지와 말 울음소리, 소라, 북소리들이 어지럽다. 그 혼란스러움 속에서 왕건과 복지겸들이 후미에 나타난다. 왕건은 눈물을 글썽이며 그렇게 황망하게 보고 있다.
왕건 아아.. 가는구나. 내 아우와 내 장수들이 가고 있어.
복지겸 성심을 단단히 하시오소서, 폐하. 이제 곧 접전이 붙게 될 것이며 폐하와 소장들은 그 틈새를 이용하여 적진 속으로 어우러 들어가 길을 찾으며 빠져나갈 것이옵니다.
왕건 아아.. 어쩌다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어쩌다 이렇게...
박수문 우리가 입은 이 군졸복은 백제군이 알아보기 어렵사옵니다. 아마도 같은 편인 줄 알 것이옵니다. 기회를 절대로 놓쳐서는 아니되옵니다.
박수경 자, 지금쯤 뒤를 따라야 하옵니다. 그리고 전투가 벌어지면 옆으로 방향을 돌려야 할 것이옵니다. 가시오소서, 폐하.
복지겸 신들을 따르시오소서.
왕건 아아.. 이런.. 이런... 오늘 이 발이 한없이 저주스럽구려. 살려고 가는 이 발이 한없이 저주스러워.
복지겸 가시오소서.
왕건은 여전히 그 눈에는 멀리 앞서가고 있는 신숭겸들이 보이고 있다. 그 시선에서 디졸브되면... 해가 지고 있다.
씬 백제군 진영
높은 지형에서 횡대로 오고 있는 왕건의 군대를 보고 있는 견훤들이다. 해는 저가고 있지만 그들의 윤곽은 선명하게 아래로 보여온다. 그리고 거짓 왕건인 신숭겸의 모습도 분명하게 보인다. 왕건임을 알리는 깃발들과 근위병들인 내군들이 백마를 에워싸고 있기 때문이다.
견훤 (도리질하며) 믿기지가 않아. 왕건아우가 아닌가?
최승우 아마도 최종 결심을 내린 것 같사옵니다, 폐하.
견훤 결심이라니..? 너무 무모한 것이 아닌가? 죽을 줄 뻔히 알면서 군사를 몰아 앞서오고 있어.
애술 삼면이 우리 군사들이옵니다. 저들 뒤는 산 준령이 높아서 도저히 넘을 수가 없사옵니다. 죽기를 작정한 것 같사옵니다.
상귀 신이 나가 보겠사옵니다.
애술 신덕 장군에게도 연락을 하여 좌우 측면을 바짝 조인다면 금방 목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사옵니다. 신이 목을 배도록 하겠사옵니다, 폐하.
견훤 (끄덕인다) 사람 목숨이 이런걸 보면 너무 허망해. (혀를 찬다) 그래도 저 왕건아우가 누구인가? 한 제국을 운영하는 황제라 하는 자일세. 오늘 이 공산동수에서 일생을 마감하게 되었구먼. 참으로 비감한 마음일세.
최승우 이미 저들의 군사가 움직이고 있사옵니다. 곧 어둠이 내릴 것이옵니다. 영을 내리시오소서.
견훤 그래야지. 어찌하겠는가? 자, 애술, 상귀 장군이 전면과 측면을 맡으라. 군호를 보내어 신덕 장군이 우측 길을 봉쇄하라 하라. 목표는 저 왕건아우다. 목을 배는 자에게는 상금을 내릴 것이니라. 군사들에게 그렇게 전하라. 왕건아우의 목을 배거나 그 전리품을 취하는 자는 모두 상금을 내릴 것이니라. 절대 놓치지 않도록 하라. 가라. 전군 공격하라.
애술 공격하랍신다... 공격하라...
상귀 공격하라.. 나를 따르라.
명령일하. 자욱한 먼지를 날리며 기마대가 산비탈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 모습이 부감으로 보인다. 수천 필의 말들이 양쪽에서 서로를 충돌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천천히 어둠....
씬 그곳 (밤)
신숭겸이 회색빛으로 변하는 구월 보름밤의 시야를 보며 멀리 움직이기 시작하는 백제군을 보고 있다. 신숭겸이 가는 쪽으로 우 몰려가며 진을 쳐 막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쪽에서도 말들이 달려나가고 있다. 김락이 소리친다.
김락 기마부대는 앞서 나가라. 가서 저들을 맞으라.
전의갑 나를 따르라....
소리와 함께 전의갑과 그 기병대가 마치 거대한 조류가 움직이듯 밀려간다. 신숭겸들은 왕건처럼 서서 보고 있다. 곧 접전이 시작되었다.
씬 다시 그곳
흰 달빛아래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전의갑과 부장들 그리고 기병들이 혈전에 혈전을 거듭한다. 그러나 백제군과는 수적으로 열세에 있다. 애술도 저만큼 뒤에서 백제군을 지휘하고 있다. 중과부적, 전의갑이 먼저 저들에게 포위되어 적장을 몇 배다가 쓰러진다. 그러나 그 뒤를 이어 형인 이갑이 일단의 기마대와 함께 그곳으로 다시 달려든다.
전이갑 죽음을 두려워 말라. 길을 뚫어라.. 폐하께서 함께 계신다. 두려워 말아라. 길을 뚫어라.
그러나 그는 상귀와 애술의 협동 공략을 받는다. 김락도 그 한쪽에서 싸우고 있다. 이들이 워낙 무섭게 적을 배자 술렁거리며 길이 열리기 시작한다. 김락이 말한다.
김락 죽기 싫거든 물러나라. 고려의 폐하께서 가시느니라. 물러서라..
애술 무엇들 하느냐. 길을 열어 주어서는 안 된다. 막아라. 막아라!
계속 아비규환이다. 백제의 부장들이 계속해 쓰러져 죽어나간다. 김락과 전이갑들의 무예는 이미 절정을 치닫고 있다. 그들 뒤로 왕건의 백마가 따르고 있다. 무인지경으로 그들은 백제군 진영으로 그렇게 들어가고 있다. 왕건으로 변한 신숭겸의 무예 또한 참으로 화려하다. 이들은 죽기를 각오한 몸들이다. 백제군은 점점 더 길을 열며 양쪽으로 갈라진다. 드디어 그 와중에서 전이갑과 애술이 맞붙었다. 치열한 접전이 계속된다. 상귀가 애술을 돕는다. 전이갑은 그 둘을 상대한다.
애술 놀라운 일이다. 고려에는 어떻게 이렇게 인물이 많단 말인가? 오늘 나를 원망하지 마라. 죽여라.. 이 자를 죽여라..
전이갑 오냐, 네가 애술이로구나. 반갑다. 함께 죽자구나.
질풍노도, 전이갑의 무예는 그렇게 영화를 다한다. 수많은 적장을 꽃잎 떨어뜨리듯 하다가 그예 애술과 상귀의 칼을 동시에 받으며 슬로우 모션으로 떨어진다. 애술이 눈을 들어보면 이미 길이 갈라진 곳으로 김락과 신숭겸이 함께 달리고 있다. 부장들이 뒤를 잇고 있다. 애술이 발을 구른다.
애술 도대체 무엇들 하는 것이냐? 고려왕을 잡아라. 저기 고려왕이 가고 있다. 막아라. 기마대는 무얼 하느냐? 막아라...
그러자 와 소리와 함께 신덕이 나타난다.
신덕 나는 백제의 신덕이니라. 앞에 오는 장수는 누구인가?
김락 나는 대 고려국의 김락이니라. 우리 폐하께서 가신다. 길을 비켜라.
신덕 하하하.. 나를 넘고 가 보거라. 어서 오너라.
그렇게 곧 김락과 신덕이 어우러졌다. 신숭겸은 무수한 백제의 부장들을 배어 넘어뜨린다. 혈전이다. 승부는 쉽게 나지 않는다. 그렇게 계속 싸우고 있다. 김락의 검이 번쩍이자 신덕의 투구가 반쪽으로 갈라지며 떨어진다. 그 머리칼이 거의 잘려 나갔다. 신덕이 기겁을 한다. 다시 김락이 달려든다. 신덕이 몸을 피한다.
김락 대단한줄 알았더니 그렇지가 못하구나. 어서 오너라. 신덕장군.
신덕 오냐.. 과연 대단하구나. 다시 해보자꾸나.
그들은 다시 그렇게 어우러진다. 그 한쪽에서는 여전히 신숭겸이 적들을 배고 있다. 김락의 검이 다시 또 신덕의 어깨를 배었다. 신덕이 그렇게 달리다가 말에서 떨어져 뒹군다. 신덕, 치욕의 날인 것이다. 그 기세를 보고 백제군들이 더욱 길을 터주며 물러선다. 김락은 다시 신숭겸 옆으로 와 달리기 시작한다. 그 뒤로 남은 기마대 몇 십기가 뒤를 따른다.
씬 그곳 견훤 측
전투 장면들이 부감으로 상세히 보여오고 있다. 길이 갈라지고 김락과 신숭겸 그리고 그를 따르는 몇십 기의 말들이 달리는 것이 보인다. 입맛을 다시는 견훤, 초조하다.
견훤 저기를 보게. 왕건 아우가 저리로 가고 있네. 길을 열고 있어.
최승우 처음부터 무모한 일전이었사옵니다. 저리로 가도 우리 군사들이 계속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견훤 (보며) 저런, 저런... 우리 군사들이 새까맣게 몰려가고 있구먼.
최승우 고려왕을 잡으면 상금을 주신다 하셨사옵니다. 그러니 어찌 아니들 몰려가겠사옵니까? 이미 다른 곳에는 고려군이 없사옵니다. 다 무너진 것 같사옵니다.
견훤 그런 것 같네 그려.
최승우 고려왕의 마지막 모습 같사옵니다.
견훤 그런 것 같으이...
씬 다시 그곳
김락과 신숭겸들이 달리며 적을 배고 있다. 이미 온 몸이 피투성이다. 얼마 안 남은 고려의 부장들도 죽어가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배고 달리기를 계속한다.
씬 그 후미 숲속 일각
수많은 시체들이 달빛아래 누워있다. 부상당한 군사들이 움직이고 있고 신숭겸 쪽으로 몰려가는 군사들의 함성소리가 메아리치고 있다. 피아간의 식별도 없고 딱히 이들을 노리는 사람들도 없다. 왕건과 복지겸, 박수문 형제들이 오고 있다.
복지겸 저리로... 저리로 가시오소서. 이곳에서 멀어지셔야 하옵니다.
박수문 자, 저리로.. 어서요. 저리로...
왕건 아아... 아직 살아있네. 저기 숭겸아우가....
복지겸 보지 마시오소서. 시간이 없사옵니다. 여기를 벗어나셔야 하옵니다. 어서 이리로.. 이리로...
망설이는 왕건을 억지로 잡아끌며 그들이 숲 속으로 사라진다.
씬 그 숲속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하기도 어렵다. 그들은 그렇게 달린다. 싸우는 함성소리들은 계속되고 있다. 그 소리가 조금씩 멀어진다. 그렇게 도망치는 그들에서...
씬 다시 그 전장터
김락과 신숭겸은 이제 불과 사오 명밖에 안 남았다. 쫓아오던 이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함께 달린다. 제지하는 백제의 부장들도 멀어졌다. 그저 사이를 두고 소리를 지르며 쫓아올 뿐이다.
김락 장군, 성공한 것 같소이다. 폐하께서는 충분히 나가셨을 것이오.
신숭겸 그러셨을 것이오. 우리는 적들을 꽤 많이 유인해 왔소이다. 이제 앞에는 길이 없소이다.
김락 그렇소이다. 이제 갈 때가 된 것 같구려.
그들 앞으로 거대한 산이 가로막고 있다. 어디선가 부장1이 어둠 속에서 소리친다.
부장1 고려왕이 저기 온다. 매복군은 화살을 쏘아라. 쏘아라....!
어둠 속에서 그렇게 백제군들이 일어서며 비오듯 화살을 날린다. 신숭겸보다 조금 앞서가던 김락이 화살을 맞는다. 하나를 꺾으며 달려들어가는데 계속된 화살이 겹쳐 그는 말에서 비장하게 떨어져 내린다. 그 슬로우 모션... 그리고 이어서 백마를 타고 혼자 달리던 신숭겸이 다시 화살을 맞는다. 한대, 그리고 두대... 그는 비틀거리며 말고삐를 낚아챈다. 그리고 그렇게 잠시 섰다가 시야를 본다. 와-하며 백제군이 달려드는 것이 보인다. 그는 그대로 검을 들며 돌진한다. 다시 또 한대의 화살이 그를 말에서 떨어뜨린다. 그리고 천천히 슬로우 모션으로 달려드는 백제군들이 보인다. 죽어가는 신숭겸의 그 표정에서... 스톱모션 걸렸다가.... 화면 다시 살아나면...이미 백제군들은 까맣게 그를 덮고 있다.
씬 그곳
상귀와 애술이 다가오고 있다. 군사들이 까맣게 짓이기고 있는 것이 보인다. 상귀가 애술을 본다.
상귀 장군, 고려의 왕인 것 같사옵니다.
애술 군사들이 아귀처럼 잡아뜯고 있구먼.
상귀 목에 상급이 걸려있으니 어찌 아니 그렇겠습니까?
애술 부장에게 일러 목을 잘 간수하라 하게. 전쟁은 끝났네. 고려왕은 죽은 것이야.
상귀 예, 장군.
애술 지독한 싸움이었어. 이런 싸움은 처음이었어. 허, 이런...
돌아보는 그런 애술의 진저리처지는 표정 위로..
씬 그 공산 어느 계곡
자갈과 숲, 물소리가 어우러진 계곡 비탈을 왕건과 복지겸, 박수문 형제들이 달려오고 있다.
복지겸 신을 따르시오소서. 이쪽이 길인 것 같사옵니다. 이쪽으로 오시오소서.
박수문 폐하, 어느 정도 호구는 벗어난 것 같사옵니다.
왕건 그런 것 같구먼....
왕건이 한숨을 돌린다. 그리고 투구를 벗어버리고 군졸복도 벗어버린다. 그리고 물을 먹으려고 두 손으로 모아서 한줌 뜨며 주변을 돌아보는데 갑자기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일어서기 시작한다. 백제군들이다.
군관 어디서 오는 놈들이냐?
복지겸 (칼을 빼며) 너희들은 누구냐?
군관 우리는 백제의 감군들이다. 전쟁에서 도망치는 병사들을 뒤에서 막는 감군들이다. 어디로 도망치느냐? 어느 쪽 병사이냐?
모두들 .............
군관1 방금 폐하라 하였는데... 누구보고 한 소리인가?
군관 누가 폐하인가? 황제가 여기 있는가? 고려의 황제인가?
복지겸 이보게
보고 있던 복지겸이 순식간에 밴다. 하나, 그리고 둘.. 모두들 접전이 붙는다. 백제군의 군관들이 잠시 물러선다.
복지겸 피하시오소서. 이 자들은 신들이 맡겠사옵니다.
군관 고려의 왕이다. 잡아라. 잡아라...
십여 명 백제군들이 몰려든다. 왕건은 다시 도망친다. 복지겸과 박수문들이 막는다. 일대 혈전이 다시 벌어진다. 왕건은 이미 그곳을 벗어나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군관1 고려왕이 도망쳤다.... 쫓아라...
그러나 그들은 쫓지를 못한다. 복지겸과 박수문들이 결사적으로 배고 막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도 수적으로는 열세다. 복지겸이 어깨를 허락하며 주춤하자 다시 박수문이 적을 밴다. 저들도 절반이 죽고 절반이 남았다. 이들은 마지막 혈전에 돌입한다. 간신히 둘을 더 배자 나머지 둘이 그제서야 도망친다. 이들은 다시 어둠 속으로 왕건의 뒤를 따른다.
복지겸 어서 가시오소서, 폐하.
멀리 아득히서 함성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복지겸이 주춤하다가 눈을 질끈감으며 그대로 달려간다. 그들 그렇게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씬 그 전장터 (새벽)
산 능선으로 여명이 터오고 있다. 아직도 달빛은 밝다. 견훤이 여유 있게 그 새벽들판으로 나오고 있다. 군사들이 환호하며 그를 맞고 있다. 부상당한 신덕과 애술, 상귀 부장들이 맞는다. 함성이 가라앉자 견훤이 묻는다.
견훤 고려왕의 목을 배었다고..?
애술 예, 폐하. 매복해 있던 부장들이 저들을 화살로 쏘아 떨어뜨린 후, 목을 잘랐다 하옵니다.
상귀 이제 곧 날이 밝사옵니다. 아침이 되면 그 수급을 잘 씻어 폐하께 올릴 것이옵니다.
최승우 (둘러보며) 신도 보았사옵니다. 고려의 왕은 이곳에서 끝이 났사옵니다.
애술 그렇사옵니다, 신도 뒤에서 확인했사옵니다. 참으로 엄청난 전투였사옵니다, 폐하.
견훤 그랬지... 내가 보기에도 지독한 싸움이었어. 왕건 아우 최후의 날이었는데 어찌 아니 그렇겠는가? 참으로 잘 싸웠도다. 모두다 잘 싸웠어. (큰 소리로) 장졸들이여. 잘 싸웠노라. 그리고 이겼노라. 고려의 왕을 죽였다. 이제 우리 백제가 명실공히 삼한의 주인으로 우뚝 선 것이니라.
군사들의 함성이 산 들판을 덮고 있다. 견훤은 감격스럽다.
견훤 이 전투에 참여한 모든 장졸들에게 짐은 포상을 내릴 것이니라. 이제 삼한은 우리 백제의 것이다. 백제의 것이다...
계속 들끓는 장졸들의 그 함성소리에서... 한껏 고무되어 주변을 보는 그 견훤의 표정에서... 디졸브
씬 그 아침 어느 숲길
헐떡거리며 왕건이 혼자 도망치고 있다. 나뭇가지와 가시덩쿨에 온몸이 엉망이다. 아침은 싱그럽고 햇살은 곱지만 그의 모습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어느 만큼 그렇게 왔을까? 잠시 안심하고 쉬려는데 발소들이 들려온다. 일단의 군사들이 산길로 지나쳐 가는 것이 보인다. 왕건은 화들짝 놀란다. 그들이 지나쳐 가고 놀라서 한참 주변을 보다가 왕건은 다시 다람쥐처럼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나아간다.
씬 또 다른 산길
왕건이 헐떡거리며 숲 사이를 전전하며 오고 있다. 어디선가 멀리 숲 속으로 꿈결인양 독경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왕건은 비로소 걸음을 멈추었다가 숨을 고르며 조심스럽게 그 쪽으로 내려간다.
씬 그곳 염불암
작은 암자 하나가 서 있다. 왕건이 암자를 둘러싼 대나무 숲 마당을 기웃거리며 본다. 그리고 여전히 주변을 경계한다. 그때, 헛기침 소리가 들린다. 왕건이 크게 놀라서 보면 승려 하나가 서 있다.
승려 허허허.. 어디서 오시는 손이십니까?
왕건 ..............(극도의 경계)
승려 모양이 말이 아니시구려. 밤새 전투가 있었다고 들었소이다. 아무래도 그와 관련된 분 같구려. 그렇소이까?
왕건 .............. (댓구 안하고 계속 경계)
승려 지금 서 계신 그 자리는 예로부터 귀한 분이 홀로 와서 앉았다가 갈 자리라고 하였소이다. 오늘 소승이 보니 의관은 남루해도 범상치 않아 보이시는구려. 뉘시오..?
왕건 고려사람이올시다.
승려 백제군이 이겼다 들었습니다. 그럼 도망치시는 길이시구려.
왕건 그렇소이다. 길을 좀 가르쳐 주셔야겠소이다. 벽진군(성주) 쪽으로 가는 길이 어느 길이오이까?
승려 그리로 곧장 나가시다가 왼쪽으로 가는 길이 있소이다.
왕건 고맙소이다. 허면..
왕건은 그대로 다시 숲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승려가 중얼거린다.
승려 오랜만에 이 염불암에 귀한 손이 왔다 가시는구나.. 아무리 보아도 범민이 아니다. 기골이 장대하고 준수한 것이 왕상이로고....
그렇게 중얼거리는 그 승려의 표정에서...
씬 견훤의 군영
전쟁의 상흔이 벌판을 덮고 있다. 군사들이 집결하거나 모여들고, 이동하고 부산한 모습들이다.
씬 그곳 견훤의 본영
군막들 사이로 부장1이 수하 2명을 거느리고 비단보로 덮은 수급을 들고 오고 있다. 그리고 견훤의 군막 앞에 이른다. 고개를 끄덕이자 경계병이 아뢴다.
경계병 폐하, 고려왕의 수급이 도착하였사옵니다.
견훤 (소리) 오 그런가? 들여라.
그러자 부장이 수급을 들고 군막 안으로 들어간다.
씬 동 군막 안
제장들이 도열해 있다. 견훤이 최승우와 더불어 탁자를 놓고 기다리고 있다. 부장1이 비단보로 덮은 수급을 탁자에 놓는다. 모두들 시선이 집중한다. 그리고 긴장한 모습들이다.
부장1 폐하, 고려왕의 수급이옵니다. 피로 물든 것을 잘 씻어 비단보에 싸왔사옵니다.
견훤 하하하.. 고생하였도다. 참으로 고생들 하였도다. 이것이 왕건 아우의 수급이란 말이지? 왕건 아우의 수급이야?
최승우 어서 보시오소서, 폐하.
모두들 ..............
견훤 암, 얼마나 보고 싶었던 얼굴인데.... 아우야, 형이 여기에 있노라.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되었는고..? 그래, 간밤에 잘 주무셨는가? 아우님? 어디 이 형과 이야기 좀 하세. 하하하....
견훤은 비단보를 벗긴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본다. 견훤이 으윽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서며 일어선다. 모두들 왜 그러는가, 놀라서 본다. 보던 최승우도 흠칫하며 놀란다.
견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이게 누구인가?
최승우 왕건 아우가 아니옵니다. 왕건의 의제 신숭겸이옵니다.
견훤 신숭겸....?
살아있는 것 같다. 신숭겸이 눈을 부릅뜨고 수염을 길게 늘여뜨린 채 견훤을 보고 있다. 그제서야 장수들이 하나 둘 다가와 본다. 그렇다. 신숭겸인 것이다.
견훤 도대체 이게 어찌된 것이야. 어찌된 것이야.
애술 맞사옵니다. 신숭겸이옵니다.
신덕 신숭겸이 맞사옵니다.
상귀 신숭겸이옵니다.
최승우 ...............(참으로 실망스럽다)
견훤 제대로 확인을 한 것이냐? 왕건 아우가 싸우다가 죽는 것을 확인 한 것이야?
애술 예, 폐하. 신이 뒤를 따랐사옵기로 잘 아옵니다. 분명히 황제의 말과 상징하는 깃발과 그 갑옷을 입고 있었사옵니다.
신덕 신도 보았사옵니다.
상귀 신도 보았사옵니다, 폐하.
견훤 그런데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도대체 왕건 아우는 어디 있다는 말인가?
최승우 (다 알았다) 위계에 속았사옵니다, 폐하.
견훤 속다니.. 속다니...?
최승우 그러고 보면 어젯밤 전투에 신숭겸이란 장수는 보이지가 않았사옵니다. 고려의 왕은 언월도를 잘 쓰지 않았는데 어젯밤의 고려왕은 줄곧 언월도를 들고 있었사옵니다. 속았사옵니다.
견훤 속아......? 속아, 속아..? 그럼 왕건 아우가 이곳을 벗어났다는 말인가? 살았다는 것이야?
최승우 신숭겸이가 고려왕을 위장하여 스스로 죽기를 자청하였을 떄는 그만한 준비가 없었겠사옵니까?
그때, 밖에서 다급한 소리다 들려온다. 부장이다.
부장 (소리) 폐하, 급보이옵니다.
견훤 들어오너라.
부장이 들어와 군례를 하고 급히 아뢴다.
부장 폐하, 공산 외곽에 감군으로 나가 있는 저희 군사들에게서 보고가 올라왔사옵니다. 탈주병 차림을 한 일단의 고려군들이 저희 군사들과 격투끝에 감시망을 벗어나 갔사온데 그 무리 중 하나가 고려의 왕인 것 같다 하옵니다.
견훤 뭐라......?
부장 숨어서 그들의 말을 들었사온데 서로 부르기를 군신간의 예의에 의해서였다 하옵니다.
최승우 고려의 왕은 이미 이곳을 벗어났사옵니다, 폐하. 하늘이 아직도 고려왕의 목숨을 보전해 주려는 것 같사옵니다.
견훤 말도 아니 되는 소리. 고려군은 전멸을 했어. 우리는 왕건 아우를 우리 속에 가두고 있었어. 탈출이라니..? 살아서 나가다니..어떻게 그럴 수가 있다는 말인가? 쫓아라. 애술장군, 신덕, 상귀 장군은 무얼 하는가? 군사를 풀어라.
그들 예, 폐하. 추격병을 풀어라. 길목마다 기마대를 풀어서 샅샅이 찾아라. 어서.......
부장 예, 장군
그들 모두 함께 몰려 나간다. 아우성이다. 견훤이 신숭겸의 수급을 노려보고 있다.
견훤 철저히 속았구먼 그래. 하늘이 준 기회를 놓쳤어. 파진찬 그대가 얼마나 내게 신신당부한 기회인가? 헌데 이 기회를 놓쳤어. 다 잡은 왕건 아우를 놓쳤어. 어쩌면 좋단 말인가? 이런 실수가 있는가, 이런....?
최승우 폐하나 우리 백제군의 실수가 아니옵니다.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그 주인이며 형의 목숨을 구하려고 한 여기 신숭겸이의 갸륵한 정성이 고려의 왕을 살린 것 같사옵니다.
견훤 뭐라.......?
최승우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지를 않사옵니까? 하늘을 울리지 않고서야 고려의 왕이 어찌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겠사옵니까? 천운이옵니다.
견훤 천운이라니..? 말도 아니 되는 소리. 잡아야 한다. 잡아야 하구 말구.. 잡아야 해....
최승우 하오나 폐하, 우리는 이 공산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사옵니다. 고려의 지원군이 지금쯤 가까이 이르고 있을 것이옵니다. (한숨) 너무도 엄청난 기회를 잃었사옵니다, 폐하.
견훤 아니 되지. 멀리는 못갔을 게야. 꼭 잡아야해. 꼭 잡아야하구 말구...
씬 어느 숲길
추격병들이 달려가고 있다. 상귀가 소리친다.
상귀 부장은 저쪽으로 가라. 나머지 기마대는 주변을 샅샅이 뒤져라. 암자며 농가에 있는 백성들을 샅샅이 탐문하라.
부장 예, 장군. 자 모두 나를 따르라.
그들은 그렇게 갈림길을 나뉘어 달려간다.
씬 또 다른 길
애술이 소리소리치고 있다.
애술 삼십리 공산 밖까지 모두 가 보아라. 길이란 길은 모두 뒤져라.
이곳에서도 부장들은 소리치며 달려간다. 애술, 그 아쉽고 섭섭한 표정에서...
씬 또 다른 숲길
이곳에서도 신덕의 추격군이 주변을 보며 달려가고 있다. 그들이 멀리 사라진다. 깊은 숲 속에서 왕건이 물을 마시다가 소리를 듣고 놀라 엎드린다. 그리고 본다. 그는 더욱 눈을 크게 뜬다. 그리고 숲 속으로 더 깊이 숨어들며 몸을 감춘다.
씬 그 숲길 근처
왕건은 허겁지겁 달리고 있다. 뒤를 보며 앞을 보며 그렇게 달리다가 어느 비탈길을 올라선다. 그곳은 낭떨어지다. 아주 급한 벼랑 비탈길인 것이다. 그는 놀라며 소나무 가지를 잡았으나 그대로 미끄러지며 그 벼랑으로 가파르게 굴러 내리기 시작한다. 길게 이어지는 그의 비명소리에서.......
씬 백제군 본영
견훤이 뒷짐을 지고 군영 밖을 오락가락 하고 있다. 최승우가 말한다.
최승우 고려의 왕은 이미 우리의 그물을 벗어났을 것이옵니다. 여기를 빠져나갔다면 이미 잡기 어렵사옵니다.
견훤 기다려 봐야지. 이 잡듯이 뒤지고 있으니까 기다려 봐야지.
최승우 여유라고는 별로 없사옵니다. 이미 고려의 지원군은 공산 가까이 이르고 있을 것이옵니다. 오후 참에는 군을 이동해야 하옵니다.
견훤 이런, 이런...
최승우 우리 군은 며칠을 밤새 싸우느라 지쳐 있사옵니다. 저들을 다시 대적하기는 어렵사옵니다.
견훤 (답답하다) 안타깝구먼. 다 잡은 것을 놓치다니... 너무도 안타까워. 경은 내게 말을 했네. 삼한의 통일대업을 여기서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헌데, 왕건아우가 살아서 도망을 쳤어. 살아서 말이야.
최승우 인간의 힘이 하늘의 의지를 따르지 못한다 하였사옵니다. 훗날을 다시 보시오소서.
견훤 훗날....? 훗날...? 언제 이런 훗날이 다시 또 오겠는가? 이런 절호의 기회가 말일세. 어이구.... 지원군이라...? 그 지원군을 감당하기 어렵다 그 말인데.. 허허, 이런 참... 다 이겨놓고 이젠 도망가기 바쁘게 생겼네 그려.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인가?
최승우 잊어 버리시오소서. 고려왕은 놓쳤지만 전과는 크옵니다.
견훤 알겠네. 그리 하세. 그리 하세.....
그런 견훤의 한숨 소리에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들...
씬 공산 근처 길
배현경과 홍유의 군대가 오고 있다. 그들도 마음은 급하다.
배현경 웬 공산길이 이리 멀단 말인가? 벌써 전투가 끝이 났을 게요. 이게 대체 어찌된 줄 알아야 말이지.
홍유 열심히 가 보십시다. 이제 반나절이면 도착할 겝니다.
배현경 폐하의 군대가 전멸을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반나절이라면 너무도 끔찍한 시각이올시다. 제발 별 일이 없어야 할 터인데... 폐하께서 별일이 없으셔야 할 터인데...
홍유 어서 가 보십시다.
그들 그렇게 카메라 앞을 스쳐 달려간다.
씬 송도 황궁 외경
씬 동 황후전 복도
제조상궁과 김상궁이 읍하고 서 있다.
오씨 (소리) 폐하께서 이끌고 가신 군대가 큰 곤경을 겪고 있다 그 말입니까?
씬 동 황후전 안
황후전에 오씨와 유씨, 그리고 김행선과 최응, 유금필, 박술희, 최지몽, 태자 무가 함께 해 있다.
오씨 그래서요? 신료분들은 어찌 대책을 세우셨습니까?
김행선 이미 여기 병부령이 대야성에 있는 배현경 장군들에게 영을 전하여 폐하께 달려가도록 했사옵니다.
유씨 그렇다면 이곳 황궁에서도 다시 군사를 보내어 뒤를 받쳐 드려야 할 것 아닙니까? 그분들에게만 맡겨놓아서 될 일입니까?
최응 이곳과 그곳은 거리상으로 너무 큰 차이가 있사옵니다. 더불어 또한 급히 수천의 군사를 모아 보내기도 어렵게 되어 있사옵니다. 배현경 장군들이 잘 해낼 것이옵니다.
무 그래도 너무 걱정이 됩니다. 처음부터 여기 내의성령은 길흉사를 점치면서 불행한 사태를 예고했습니다. 대책이 있어야 했습니다.
유금필 조금 더 들 기다리시오소서. 신들이 달려가고 싶어도 이미 모든 결과가 끝나 있을 것이기에 이렇게 마음만 태우고 있사옵니다. 페하께서는 하늘이 내리신 분이십니다.
박술희 그러하옵니다. 하늘의 명운을 받고 계신 폐하께 설마 별일이야 있겠사옵니까? 기다려보시오소서. 곧 소식이 있을 것이옵니다.
오씨 어찌한다. 이거 도대체 마음이 조려서 앉아있을 수가 없구먼 그래.
씬 공산 그 산속
계곡이 아름답다. 벌써 단풍이 가득 물들고 있다. 물가 바위틈으로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괜찮으시우..?
씬 그곳
한 나무꾼이 왕건을 살펴주며 묻고 있다. 왕건은 다행히 큰 상처가 없다.
나무꾼 저 벼랑에서 그래도 이리로 구르길 다행이었지. 저쪽으로 떨어졌다면 큰일 당했을 게요.
왕건 ......... (끄덕인다)
나무꾼 전장터에서 도망오는 길이시우?
왕건 그렇소이다.
나무꾼 이그.. 이놈의 전쟁... 걸핏하면 끌어다 사람들을 죽이니.. 이게 어디 사람 사는 세상이요? 누가 삼한의 황제가 되든 빨리 끝장이 나야지. 어이구 원.... 아무튼 참 딱하게 되었소이다. 이걸 들어보실려우? 주먹밥이우.
왕건 고맙소이다. (받아먹는다) 그대가 내 목숨을 구해주었소이다. 참으로 은혜가 큽니다.
나무꾼 별일 아니올시다. 늘 다니는 길인데요, 뭘. 하긴 나를 만났으니 이만했지 산이 깊어서 잘못하면 경을 칩니다. 자, 내려가십시다.
왕건 백제의 군사들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나는 고려군이올시다.
나무꾼 허허허.. 염려마시우. 내 이리로 오면서 보았는데 백제군은 모두 물러가고 있더이다.
왕건 사실이오?
나무꾼 사실이구 말구... 염려 놓으시우. 이 공산에 이제 백제군은 없소이다. 고려군들의 시체만 가득 널려 있지요.
왕건 ............. (한숨과 함께 끄덕인다)
나무꾼 어서 가십시다. 해가 지면 또 길을 잃어요.
왕건은 끄덕이고 절뚝거리며 따라간다. 그들 그렇게 내려간다.
씬 길
견훤의 대군이 공산을 빠져나가고 있다.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한참을 가다가 갑자기 견훤이 크게 웃는다. 그는 계속 웃는다. 최승우들이 뻥해서 본다.
최승우 왜 그러시옵니까, 폐하?
견훤 하하하...... 생각해보게. 지난 밤, 왕건 아우가 얼마나 다급했겠는가? 제 아우들을 앞세워 죽이면서 옷을 갈아입고 도망을 치는 그 꼴을 생각을 하니, 도저히 웃음을 참지 못하겠네 그려. 하하하하.... 아마 보았으면 포복절도하였을 것이야. 그랬을 것이야. 얼마나 필사적으로 도망을 쳤겠는가? 하하하...
최승우 하오나 폐하, 평생 다시없는 기회를 놓쳤사옵니다.
견훤 때라는 것이 그런 것일세.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야. 잊을 것은 빨리 잊고 털어버리세. 마음에 담아두면 병이 돼.
최승우 예, 폐하.
견훤 사람들은 곧잘 잃어버린 것들에 매달려서 인생을 허비할 때가 많아. 나는 되도록이면 기왕에 잃어버린 것은 빨리 지워버린다네. 오로지 다음에 올 것들을 위하여 신경을 곤두세우지. 왕건 아우는 살았네. 그렇다면 그는 다시 올 것일세. 그리고 만날 것이야. 그 때는 꼭 잡아야지. 암, 잡아야지. 두 번 다시는 실수하지 말아야지. 암...
그런 견훤의 표정에서.....
<161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