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 167회>
백제의 태자 신검은 고려의 문소성과 순주성 등의 투항에도 불구하고 싸우지 않고 얻은 전과를 두고 있을 견훤의 핀잔에 벌써부터 마음이 어둡고 백제의 능환은 후계자 문제로 나라가 와해되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마지막 충절을 다짐한다. 한편, 견훤은 군사적 요충지인 고창성이 투항을 하지 않자 직접 대병을 이끌고 출전하고 고려의 최응은 이제 때가 됐음을 알리고 왕건에게 출전을 권하는데, 책사 최지몽 역시 왕건의 삼재가 끝났음을 알리고 고창전투의 승리를 확신한다.
씬 견훤의 대전
지난 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견훤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능환을 보고 있다. 능환은 야무지게 입술을 앙 다물고 있고 그런 그들을 다 소 놀란 눈으로 최승우가 보고있다.
견훤 지금 그렇다고 하였는가?
능환 예, 폐하.
견훤 허허.... 그래... 이찬 자네가 지금 감히 짐에게 말 댓구를 하는 것인가?
능환 그럴 리가 있사옵니까, 폐하? 신이 어찌 하늘로 우러러 뫼시는 폐하께 댓구를 할 리가 있사옵니까?
견훤 그럼 뭔가 이것이.... 능환이 자네는 나의 의제이고 여기 능애놈은 나의 친 아우야. 헌데 너희들이 지금 나를 훈계하러 온 것인가? 뭐, 신검이를 앉히지 못하면 나라가 망해? 그리고 무엇이 정도를 벗어났다는 것이야?
능환 폐하, 신 능환은 오래 전부터 폐하의 충직한 충복이며 노예로서 평생을 뫼시어 왔사옵니다. 지금도 신은 폐하께서 죽으라 하시면 언제든 칼을 물고 죽을 수 있는 인간이옵니다. 하오나 폐하, 폐하께오서는 언제부턴가 조금씩 세상을 보시는 용안이 달라지고 계셨사옵니다.
견훤 달라져..? 뭐가..?
능환 폐하께오서는 충성스러운 신하들의 말은 멀리 하시고 일부 요망한 자들의 말만을 쫓으시면서 귀를 막으시고 눈을 감으셨사옵니다.
최승우 ...............(눈을 감는다)
견훤 허허, 이런... 오늘 두 사람이 아주 작정을 하였구먼. 작정을 하였어. 보아라 들, 역사에 보면 수많은 영웅들이 제국을 일으키기는 하였으나 그것을 망해먹는데에는 불과 얼마 걸리지 않았어. 내가 신검이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야. 이 대 백제국의 앞날이 과연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 지금 그것을 보고 있는 중이야. 알겠는가?
능환 폐하, 하오나...
견훤 내 말을 마저 들어. 그래, 자네들이 지극한 충성심으로 오늘 이곳에 왔다고 하자 그러나 나보다 더 이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이 제국을 누가 세웠는가? 바로 나야. 나도 나라를 위해서 이런다고 하지 않는가? 나라를 위해서... (칼을 내 던지며) 보기 싫으니 들 나가거라.
능애 폐하, 굽어 살피시오소서. 질서와 도리를 벗어나시면 후환이 생기게 되옵니다.
견훤 후환이라고...? 네가 이제 나에게 겁까지 주는 것이냐?
능애 폐하...
능환 폐하... 신들의 충정을 받아주시오소서.
견훤 나가거라. 당장 나가거라. 들 나가거라 어서... 어서...
두 사람 폐하....
견훤 나가라고 하였어.
견훤은 그렇게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다. 최승우는 먼 산을 보며 그렇게 한숨만 짓는다.
씬 궁궐 길
능환과 능애가 말없이 걸어 나오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걸어오다가 서서 한숨을 내쉰다.
능환 괜히 장군께서 큰 곤욕을 치르셨소이다.
능애 어인 말씀을... 황실 지친의 한 사람으로서 언젠가는 직언을 아뢰려 했던 참이었습니다. 그나저나 큰일입니다. 참으로 이 나라가 어찌 갈 것인가, 큰일입니다.
능환 이미 나라를 위해 죽기를 자청했소이다. 기회를 보아 다시 말씀드립시다. 분명한 것은 이대로 가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아아.. 희대의 영웅이신 폐하께서 어찌하시어 저토록 다가오는 불행을 모르신다는 말씀이실꼬..? 딱하신 일이올시다.
능애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 하자가 없는 적장자를 저처럼 외면하시니 장차 이 일을 어찌 해결하면 좋다는 말입니까? 어떻게....?
두 사람, 그렇게 도리질을 하며 걸어간다.
씬 동 황후전
박씨가 표독하게 눈을 치켜 뜨며 이상궁을 보고 있다.
박씨 두 대신이 물러갔다고..?
이상궁 예, 황후마마.
박씨 능애 장군이 접시에 맞아 피까지 흘렸다고...?
이상궁 그렇다 하옵니다.
박씨 (큰 한숨) 노망이 드신 게야. 폐하께서 이제 노망이 드신 게야. 평생 폐하를 시중들어온 노신들을 그렇게 박대하셨단 말인가? 대체 훗날 어떤 대접을 받으시려고 저리하신다는 말인가? 그나저나 그나마도 또한 위안이 되기는 된다. 아직도 이 나라의 중신들이 우리 신검이를 위해 저토록 뛰고 있으니 말이다. 어찌할꼬...? 앞날이 점점 더 어두워지니 이 일을 어찌할꼬..? 이러다가 정말 우리 신검이가 못 볼 것을 보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걱정이야...
씬 황톳길
굽이진 산야 황톳길을 신검의 대군이 가고 있다. 양검, 용검, 신덕, 종훈, 애술, 최필, 김총, 상귀, 부달, 소달들이 따르고 있다.
신덕 태자마마, 이제 거의 문소군 가까이에 이르고 있사옵니다.
애술 이상하리만큼 조용한 것 같사옵니다. 우리 대군이 오고있는데도 아직까지 적군의 반응이 전혀 없사옵니다.
김총 그러게 말이옵니다.
종훈 우리가 보낸 전령도 돌아오지를 않고 있사옵니다. 아마도 적진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사옵니다.
최필 그런 것 같사옵니다. 예상대로라면 지금쯤 적군이 방어진을 치고 우리가 오기를 기다려야 맞지 않겠사옵니까?
신검 그러게 말이오. 그런데 앞서보낸 전령들은 왜 아직 소식이 없을꼬..?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먼지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난 회에 달려갔던 전령들이 돌아오고 있다.
상귀 태자마마, 전령들이옵니다. 앞서 보낸 전령들이옵니다.
전령이 가까이 이르러 군례를 올리고 보고한다.
전령 총사, 문소군으로 갔던 전령들이옵니다.
신검 왜 이리 늦었느냐? 문소군 쪽의 형편은 어떠한가?
전령 기뻐하시오소서. 저들이 성문을 활짝 열어놓고 우리 백제군을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신검 뭐라....? 싸우지도 않고 성문을 열었다는 말이냐?
전령 예, 태자마마. 고려군의 진영에서 내부 반란이 일어나 그곳의 성주 홍술이 죽고 그 휘하 부장들이 우리에게 투항하며 성문을 열었사옵니다.
부달 총사, 자중지란이 일어난 것 같사옵니다.
애술 이거 일이 또 싱겁게 된 것 같사옵니다, 태자마마.
신검 그런 것 같소이다.
종훈 폐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싸우지 않고 성을 함락시킬 수 있다는 것은 반갑고도 기쁜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어서 가시오소서.
신검 허허허... 이보시오, 군사? 반갑고도 기쁘다니요..? 이번에 이 전투는 금강이가 나올 뻔한 전투였소이다. 그것을 내가 대신하여 왔는데 그냥 성을 얻는다면 폐하께서는 무어라 하시겠소이까? 이번에는 분명 또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오. 싸우지 않고 성을 얻은 것이 무엇이 그리 대단하냐..? 하고 말이올시다.
모두들 ................
신검 애술 장군의 말이 맞소이다. 싱겁게 되었어요. 어쨌든 큰 성의 성주가 죽고 저들이 성문을 열었다니 가보십시다.
신덕 고려가 이제 정말로 그 운이 다한 것 같사옵니다. 지난 삼년산성 때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또 저들이 싸움을 포기하고 우리에게 항복을 해오고 있사옵니다.
신검 세상 인심이라는 것이 다 그런 것이 아니겠소이까? 강한 자에게는 엎드리고 약한 자는 밟고... 허허허... 가십시다.
용검 문소군이 항복하였다. 전군은 군용을 정비해서 앞으로 나아가라.
부장들 군용을 정비하라... 행군을 계속하라.
그들의 군대가 그렇게 가고 있다. 그 모습에서... 디졸브되면...
씬 문소성
성문이 활짝 열려있고 성루에는 백기가 꽂혀있다. 신검의 군대가 들어서고 있다. 성루에는 성주의 목이 걸려있고 부장들과 호족들이 나와 길가에 엎드려 있다. 신검군이 들어서며 머리를 땅에 대고 무릎을 꿇고 있는 호족과 부장들을 경멸의 눈으로 보고 있다.
신검 누가 너희들의 향도이냐?
호족1 소인이옵니다.
신검 저 성루에 걸려있는 목이 이곳의 성주이냐?
호족1 그러하옵니다. 싸워봤자 승산이 없는 전투를 강행하자 하여 소인들이 베었나이다.
신검 그래, 자신 없는 싸움은 안 하는 것이 낫지. 그러나 너희들이 모시는 상전의 목을 베었다는 것은 생각해 볼일이로다. 별로 칭찬받을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호족들 ...............
신검은 핀잔처럼 말하며 다시 성안으로 들어가려 한다. 바로 그때, 멀리 한필의 말이 달려와 군례를 드린다. 모두들 본다.
전령1 총사, 인근에 있는 순주성(경북 순흥)에서 오는 전령이옵니다.
신검 순주성...? 거긴 고려의 성인데..? 무슨 일로 왔느냐?
전령1 저희 순주성도 백제의 태자마마께 항복함을 전해 올리러 왔사옵니다. 받아주시오소서.
신검 허허허.... 벼를 베고 나서 고기를 줍는다더니 이야말로 그런 격이로구나. 문소군이 문을 여니 줄줄이 항복을 해오는구나. 알았다. 우리 군대를 파견할 것이니 성주는 맞을 준비를 하라 하라.
전령1 예, 태자마마.
전령1이 다시 되돌아 사라져 간다. 신검이 성루를 올려다본다. 애술이 다가와 말한다.
애술 참으로 태자마마의 세월이 오는 것 같사옵니다. 큰 성 작은 성 할 것 없이 줄줄이 문을 열고 있사옵니다. 지난번에는 상주 일대가 다 무릎을 꿇었는데 이번에는 문소군까지도 평정이 되었사옵니다.
종훈 그러하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저 고창이옵니다. 고창일대만 장악하게 되면 고려의 전 전선은 우리 백제군에 차단이 되는 것이옵니다.
신검 자, 들어들 가십시다. 옳은 말이오. 이제 문제는 고창이올시다. 문소성에 들어가서 고창 전략을 논의하십시다.
모두들 예, 총사.
신덕 모두 입성하라. 입성하라....
신검군이 그렇게 들어가고 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씬 길
어느 굽이진 길을 고려의 전령들이 달리고 있다. 그렇게 사라지면...
씬 고려 황궁 외경 (밤)
씬 동 대전
왕건과 최응이 마주해 있다. 왕건이 답답한 듯 탁자를 톡톡 치며
최응을 보고 있다.
왕건 그 큰 문소성이 넘어 갔다네.
최응 들었사옵니다, 폐하.
왕건 그 옆의 순주성도 또한 저들에게 문을 열어 주었어.
최응 예, 폐하.
왕건 상주도 일부 지역만 남고 다 넘어가 버렸고 우리가 백제와 맞닿은 경계지역의 호족들이 줄지어 넘어가고 있어. 백제는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우리 고려는 속수무책으로 구경만 하고 있어.
최응 예, 폐하.
왕건 상주는 그래도 일부 지역은 남았는데 문소군이 넘어갔다는 것은 치명적인 손실이 아닌가? 이제 바로 그 옆의 고창까지 위험하게 되었어. 그들도 손을 든다면 우리 고려는 남진할 길이 아무 곳에도 없게 되네. 이보게, 병부령. 헌데, 자네는 영 아무 반응이 없지를 않는가? 어찌하려는 것인가? 전투도 나가지 마라. 좀 더 지켜만 보라. 어쩌자는 것이야?
최응 그 동안 몇 년을 폐하께오서는 큰 전투마다 패전을 거듭하셨사옵니다.
왕건 그러니까 이를 악물고 나가 더 싸워야 될 것이 아닌가? 머리 좋고 현명한 그대마저 이 황제를 닮아 주저앉아 쉬자는 것인가? 그런 것이야? 나는 숨이 막히고 가슴이 터지려 하네.
최응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기회와 때가 있사옵니다. 그리고 무릇 역사라는 것 또한 그와 같아서 때가 아닐 때에는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움만 거듭되는 것이옵니다. 요 몇 년은 그런 때이었사옵니다.
왕건 허면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된다는 말인가?
최응 이제 거의 다 되었사옵니다. 그 동안은 백제의 운세가 강했사옵니다. 이제는 아니옵니다. 신이 그 동안 우리 군이 적극적인 전투에 나가는 것을 만류한 것은 진정한 우리편과 그 반대를 보기 위함이었사옵니다.
왕건 그건 또 무슨 소리인고...?
최응 조물성에 이어서 공산전투에서 패하셨을 때 호족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어디로 의탁해야 할 것인가를 점치고 있었사옵니다. 그리고 숱한 호족들이 백제에 붙었사옵니다. 그 때문에 폐하께서는 삼년산성에서 곤경을 치르신 것이 아니옵니까?
왕건 그랬지. 그러니까...
최응 들어보시오소서. 이제 그 기다림의 결과로 적과 동지가 분명해졌사옵니다. 폐하께서 곤경을 겪으신 삼년산성 일대는 물론이거니와 상주도 그랬고 또한 이번의 문소군이 문을 여니까 순주성까지도 넘어가 버렸사옵니다. 허나, 어떻사옵니까? 우리 모두가 한 목소리로 걱정하고 있는 그 고창은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사옵니다.
왕건 (흥미가 있다) 그래서..?
최응 백제의 왕이 서라벌로 들어가 신라의 왕을 죽이고 황후를 욕보였다는 것은 이미 세상이 다 알게 되었사옵니다. 백제왕의 그러한 패륜을 과연 세상에서는 어떻게 보느냐, 신은 이것이 관건이었사옵니다.
왕건 계속 하게.
최응 폐하께서는 불쌍한 신라를 구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신 황제가 되셨사옵고 그 때문에 무수한 고초를 겪으신 것으로 세상에 알려졌사옵니다. 명분 싸움에서는 폐하께서 이기셨사옵니다.
왕건 아무 것도 가시적으로 드러난 것이 없네. 무엇이 이기고 지고 한다는 것인가?
최응 신라는 천년의 제국이었사옵니다. 비록 땅은 셋으로 갈라졌으나 신라를 동정하는 연민의 마음들은 삼한 곳곳에 남아있사옵니다. 비록 백제왕이 무서워서 항복들을 하였으나 내심은 폐하를 존경하고 사모하는 마음들이 클 것이옵니다.
왕건 그만 두게. 저들이 정녕 그랬다면 내가 그러한 수모를 당하였겠는가?
최응 이제부터는 달라질 것이옵니다. 세상의 인심을 얻는 전략은 그만큼 인고의 세월을 필요로 하옵니다. 이제 그 인고가 다 되신 것 같사옵니다.
왕건 무슨 소리인가, 그것은..?
최응 백제의 저 무서운 기세에 모두들 스스로 자처해 무릎을 꿇고 있는데 고창 지방의 호족들은 아직 아무 반응이 없사옵니다. 저들 지방은 대대로 신라에 충성해온 뿌리 깊은 신라 측의 유신들이옵니다.
왕건 .............?
최응 저들은 지난 날 견훤왕이 서라벌에서 저지른 잘못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것이옵니다. 노도처럼 밀려들고 있는 백제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동요가 없다는 것이 그것을 뜻하옵니다. 이제야말로 우리 고려와 백제를 경계한 지역에서 진정한 아군을 만나신 것 같사옵니다. 진정한 적과 아군을 알아야 긴 전략을 세울 수 있사옵니다. 고창군 일대는 폐하께서 통일대업을 이루시는 가장 중요한 대동맥이옵니다. 이제 그곳에서 확실한 아군을 찾아내신 것 같사옵니다, 폐하.
왕건 확실한 아군이라....? 확실한 아군...? 자네는 지금까지 그것을 찾고 있었다는 말인가? 아무 말도 없이 말이야?
최응 예, 폐하.
왕건 허허, 이런...
씬 동 황후전
황후 오씨와 유씨, 그리고 두 상궁이 함께 해 있다.
오씨 이 밤이 늦도록 아직도 폐하께서는 병부령과 마주해 계신다지..?
제조상궁 예, 황후마마. 오전 참에 대전에 드신 이후 아직까지도 함께 계신다 들었사옵니다.
김상궁 조금 전에 막 저녁 수라를 들여가신 것으로 아옵니다.
오씨 나라가 늪 속으로 깊숙이 가라앉고 있는 기분일세. 들려오는 소식마다 계속해 성을 잃거나 호족들이 배신을 한 이야기뿐이고...
유씨 그러게 말이옵니다. 오죽하면 폐하께오서 항복한 장수들이 가족을 그토록 엄히 벌 하셨겠사옵니까? 아무튼 온 나라가 그저 우울한 소식들뿐이옵니다.
오씨 그러게 말일세. 광평성에서도 신료들이 지금까지 가지 않고 모여서 회의들을 하고 있다 들었네. 우리의 여인네들은 언제쯤이나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을꼬...?
그런 오씨의 얼굴에서...
씬 광평성 외경
씬 동 전각 안
김행선, 추언규, 복지겸, 유금필, 박술희, 홍유, 배현경, 왕식렴, 염상, 윤신달, 최지몽들이 모여 있다. 곳곳에 불이 밝다.
김행선 아직까지 폐하께오서는 병부령과 더불어 대전에 계신다 합니다. 뭔가 깊으신 얘기가 있으신 것 같소이다.
복지겸 전선의 사태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사옵니다. 병부령은 군사를 책임진 사람이옵니다. 그 동안 할 말이 많았을 것이옵니다.
박술희 이해가 잘 아니 갑니다. 전선은 갈수록 우리 고려에 불리한데 왜 군사를 동원하지 않는지 말입니다. 벌써 성이 얼마나 많이 백제로 넘어갔습니까?
홍유 그렇소이다. 병부에서는 무슨 생각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이렇게 가다가는 결국 백제군이 우리 도성까지 오게 생겼소이다.
배현경 왜 아니겠소이까? 참고 기다리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이올시다. 이러다가 이거 나라꼴이 말이 아니게 생겼소이다.
염상 아침나절에 대전에 간 사람이 이 늦은 밤까지도 아니 나온다고 합니다. 이제야말로 뭔가 중요한 논의가 있는 것이 아니겠소이까?
최지몽 그렇겠지요. 문소군이 넘어가고 순주성도 넘어가고 이제 고창 지역 일대도 위험하게 생겼는데 중요한 논의가 없다면 그건 이상한 일이지요. 뭔가가 있을 것이옵니다.
윤신달 이것 참 큰일이 아닙니까? 문소군과 순주가 넘어갔다면 고창이라고 별 수 있겠습니까?
추언규 답답하오이다. 도무지 병부의 전략을 알 길이 없으니... 더 답답한 것 같습니다. 그래, 모처럼 오셨는데 평양은 어떻습니까, 왕총관?
왕식렴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이후 국경이 다소 애매해졌습니다. 그 틈을 이용하여 우리는 고구려의 옛 영토를 상당히 밀고 올라가고 있습니다. 좋은 일이지요.
유금필 거란은 조심해야 할 것이외다. 아직 미처 정리가 아니 되어서 그렇지 훗날 반드시 분쟁이 일어날 것이올시다. 미리 준비를 해야 할 것이외다.
왕식렴 옳은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서경은 이 사람의 소관이올시다. 별 일이 없을 것입니다. 국경을 지키는 군사들만도 이미 오 천이 넘습니다. 능히 서쪽의 도읍이라 할만 하오이다. 허허허... 그나저나 남쪽의 경계가 계속해 어려운 모양이니 이것 참... 듣기가 거북하오이다. 지난번에는 폐하께서 유장군의 도움으로 곤경을 면하셨다 들었습니다마는....
유금필 어인 말씀을... 신하의 본분을 다했을 뿐이올습니다.
복지겸 그렇기는 하지만 이 사람이 듣기로는 유장군께서는 마치 저 삼국지에 이름이 보이는 조자룡 같았다고 합니다. 기세가 등등하던 백제군이 기겁을 하고 도망을 쳤다 들었습니다마는... 허허허...
유금필 과찬이올시다. 어쨌든 우리는 실패한 전투였소이다. 칭찬은 당치가 않습니다. 그나저나 대전에서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을 보니 분명 우리 장수들에게는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김행선 좋은 소식이라니요..? 그게 뭡니까?
유금필 허허허... 여기 박술희 장군이 매일처럼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요. 장수가 무엇을 기다리겠사옵니까?
박술희 아, 그거야 전투에 나가는 것이지요. 그것 말고 뭐가 있겠사옵니까? 아니 그렇습니까, 형님?
유금필 허허허... 자네의 그 기대가 아무래도 이루어질 것 같네 그려. 그런 예감이 들어.
씬 다시 동 대전
차를 마시며 여전히 왕건과 최응이 마주해 있다.
왕건 설명을 계속해 보게. 자네가 알아본 고창이 어떻다고..?
최응 고창이 오랫동안 신라에 충성한 이유는 그곳의 성주 김선평과 더불어 대 호족인 김행, 그리고 그곳의 막강한 민병을 이끌고 있는 장정필이라는 인물이 있기 때문이옵니다. 이들 세 사람은 우정도 각별할 뿐더러 그 중 김행은 신라 황실의 피를 이은 사람이니 이번에 견훤왕의 서라벌 사건을 어찌 보겠사옵니까?
왕건 그렇구먼... 자네의 얘기를 들으니 눈앞이 훤해지는 것 같네 그려. 허면 성주 김선평은 어떠한가?
최응 성주 김선평은 대대로 신라에 충성을 다해왔던 사람이나 이제 그 충성의 길이 어렵게되어 우리 쪽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인물이옵니다.
왕건 알겠네. 자네가 적과 아군을 충분히 보며 가려내겠다는 것이 그 말이었네 그려.
최응 그러하옵니다. 사람의 일은 모르옵니다. 아직도 곳곳에서 호족들이 자신들의 지분을 내세우며 계산에 따라 움직이는 이 때에 누구를 믿을 수 있겠사옵니까? 보다 확실한 것을 알기 위하여 답답함을 참고 기다려온 것이옵니다.
왕건 알겠네. 허면 나머지 한 사람 그 장정필이라는 인물은 가계가 어떠한가?
최응 얼마 전, 그 선대가 중국에서 건너온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사람이 대국의 기질이 있고 호방하여 곧 고창 지방의 큰 호족 중 하나가 된 것으로 아옵니다.
왕건 그 정도로 파악이 다 되었다면 안심이네 그려. 어차피 전투는 피할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저들이 저항을 한다면 백제군이 그냥 놔둘리 만무할 것이고 결국은 우리가 가서 도와야 할 것이고....
최응 그러하옵니다. 일단은 백제군이 움직이기 시작하였으니 폐하께서는 사신을 보내시어 저들을 달래시고 사후의 사태를 지켜보시오소서.
왕건 알겠네 그려.
최응 고창 지역이 중요한 만큼 사신으로서도 조정의 중요 인사를 보내시는 것이 마땅할 것이옵니다.
왕건 그렇겠네 그려. 허면 사신으로는 내봉성령을 보내도록 하세. 그만하면 비중이 큰 인사가 아니겠는가?
최응 물론이옵니다. 폐하. 그리하시오소서.
왕건 헌데 말일세. 혹시 그곳에 백제의 왕은 오지 않겠는가? 백제의 왕 말일세.
최응 (미소) 백제의 왕이 보고 싶으시옵니까?
왕건 어찌 아니 그렇겠는가? 내가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하였는가?
최응 아마도 보실 수가 있으실 것이옵니다. 고창은 매우 중요한 곳이옵니다. 문소성이나 상주보다 더 몇 배나 중요한 곳이 바로 그곳 고창이옵니다. 그곳을 얻으시면 신라는 물론이고 삼한의 절반을 얻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옵니다. 그 때문에 견훤왕은 반드시 올 것이옵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옵니까?
왕건 (끄덕인다) 그렇지. 그렇게 되면 올 게야. 암...
최응 오래 잘 참으셨사옵니다. 이제 폐하께도 기회가 오셨사옵니다. 곧 그 기회가 무엇이었는지를 보시게 될 것이옵니다.
왕건 제발... 제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네 그려. 제발...
그렇게 기대감으로 끄덕이는 왕건의 표정에서...
씬 전주 황궁 외경 (낮)
씬 동 편전
견훤이 웃고 있다. 아주 기분이 좋은 듯 계속해 웃는다. 남은 신료들이 함께해 있다. 최승우, 능환, 능애, 박영규, 염흔, 영순, 금강들과 여러 신료들이 모여있다.
견훤 고려군이 지리멸렬일세. 지리멸렬이야. 경들은 들었는가? 신검이가 문소성으로 입성하였다는구먼. 순주성도 얻고 말이야. 이보게 이찬?
능환 예, 폐하.
견훤 자네가 좋아하는 신검이가 이번에 아주 운이 좋았어. 문소성은 중요한 곳이야. 거기를 얻어야만이 고창을 칠 수가 있거든. 우리 백제군은 절대적인 우세를 앞세우면서 그 동안 고려를 연파했어.
최승우 그러하옵니다, 폐하. 이제 우리 영역은 북쪽으로는 청주와 삼년군, 충주로 이어지면서 저 소백산맥 이남으로는 대야주를 위시해서 대구와 칠곡, 그리고 이제 문소군까지 점령하여 우리 지배하에 두었사옵니다. 또한 저 낙동강 서안의 강주를 비롯해서 그 일대가 모두 우리 백제 땅이 되었사옵니다. 명실공히 폐하의 시대이옵니다.
견훤 하하하... 어찌 이것이 나만의 공이겠는가? 다 경들이 함께 이룬 것이야. 아니들 그러한가?
모두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견훤 그래... 이번에는 신검이도 제법했어. 실수가 많이 줄었어.
박영규 그러하옵니다, 폐하. 신검 태자마마께서 아주 큰 일을 해내셨사옵니다. 크게 칭찬해 주시오소서.
능환들 .................
견훤 암, 칭찬할 것은 해야지. 하지만 별 싸움도 없이 성을 얻었지 않았는가? 칭찬할게 있어야 하지. 고려군이 그냥 내어준 것을 거저 주었어.
능애 ...............
염흔 하오나 그 또한 전과가 아니겠사옵니까? 큰공을 세우신 것만은 틀림없는 것으로 아옵니다, 폐하. 마땅히 위로하시고 크게 칭찬해 주시오소서.
영순 그러하옵니다, 폐하. 그처럼 어려운 성을 고려에서 내어놓은 것은 신검 태자마마의 위세와 뛰어난 영도력에 굴복한 것이옵니다. 칭송 받아 마땅한 일이옵니다.
견훤 (찌푸리며 보다가) 그래, 하지만 그것은 대 백제국의 위상 때문이었지 꼭 신검이의 영도력이라고야 할 수 있겠는가? 거기는 누가 가도 마찬가지였어. 금강이가 가도 그랬을 것이야. 아니 그러하냐, 금강아?
금강 아니옵니다, 폐하. 신료들의 말이 맞사옵니다. 그것은 분명히 신검 형님의 공이라 사료되옵니다.
견훤 에잉... 그래도 네 형이라고 역성을 드는구나. 하긴 그렇다. 굴러온 것이든 거저 주운 것이든 얻은 것은 얻은 것이야. 포상을 해야지. 관계부처에 일러 술과 음식을 크게 내리도록 하라.
모두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견훤 그리고 이제 고창 문제가 바야흐로 눈앞에 이르렀는데 어찌하면 좋을꼬...?
능환 폐하, 이미 신검 태자마마께서 많은 장수들을 이끌고 나가 계시옵니다. 계속해 고창을 함락하시도록 하시오소서. 이번에야말로 큰 전공을 보여주실 수 있으실 것이옵니다.
능애 그리 하시오소서, 폐하. 전략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신검 태자께서 고창 공략을 맡으시는 것이 가한 줄로 아옵니다.
견훤 물론 자네들의 생각은 그렇겠지. 어떻게 하든 신검이가 뭔가를 보여주어야 할 테니까 말이야. 아니들 그런가?
그들 ..............
견훤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고창이야말로 엄청나게 중요한 곳이야. 만약에 신검이가 실수라도 한다면 어찌하겠는가? 전쟁이란 기세가 중요한 것이야. 우리가 한창 잘 나갈 때에 밀어 부쳐서 끝을 내야 하는 것이야. 헌데 실패라도 하는 날에는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놓은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가 있어.
모두들 ..................
견훤 고창이야말로 짐이 기다린지 오래일세. 짐이 갈 것이야.
최승우 폐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이찬어른의 말씀이 맞사옵니다. 그곳은 신검 태자마마께 맡겨두시오소서. 그저 군대만 증원하여 보냄이 가한 줄로 아옵니다.
견훤 아니야, 아니야.. 모르는 소리야. 고창은 오래 전부터 골수 신라의 귀족과 호족들이 살아온 지방이야. 그리고 자체적으로 군사도 만만치가 않아. 내가 가야하네. 금강아..?
금강 예, 폐하.
견훤 네 형들만 보내고 그 동안 쉬느라고 답답하였을 것이다. 함께 가자꾸나.
능애 정 그러시오면 신들도 가겠사옵니다.
견훤 아우도...? 아니야. 이 황도에들 있어. 아우나 이찬이나 전장터에 나가기에는 너무 늙었어. 편한 것이 좋아. 파진찬은 함께 가세. 자네는 그래도 아직 갈만하지 않은가?
최승우 예, 폐하. 하오나 신은.... 폐하께오서 아니 가셨으면 좋다는 생각이 드옵니다. 신검 태자께 맡기시오소서.
견훤 허허, 아니 된다고 하지 않는가? 그곳은 아주 고약한 곳이란 말일세. 주변 모두가 성을 바치고 무릎을 꿇는데도 전혀 항복할 기미가 없지를 않는가?
최승우 폐하께서는 이제 황도에 계시면서 영만 내리시오소서. 그러실 때가 되었사옵니다.
견훤 파진찬도 날 보고 늙었다는 것인가? 날보고 쉬라고...? 아닐세. 아직은 그럴 수가 없어. 더구나 매우 중요한 고창 전투를 눈앞에 두고서 말이야.
최승우 폐하께서 가시면 그 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고려의 대군이 마주 나올 것이옵니다.
견훤 하하하.... 내가 원하는 바일세. 바로 그것이야. 왕건 아우와 만날 수 있다면 거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나도 이참에는 고창에서 아주 끝장을 볼 생각일세. 기왕에 고려가 나온다면 저들도 마찬가지일 게야. 그곳의 중요성을 모를 리가 없지 않는가? 아우는 들어라.
능애 예, 폐하.
견훤 짐이 직접 나가는 전투이니라. 아우는 이찬과 협의해서 황도의 군사들과 주변의 군대를 동원하여 이만의 군대를 출병할 수 있게 하라. 신검이가 가지고 있는 군대까지 이만 오천이면 충분할 게야.
능애 예, 폐하.
견훤 왕건이라... 고창이라...? 또 한번 기억에 남을 전장터가 되겠구먼 그래. 금강이는 군대를 점검하라. 곧 떠날 것이니 휘하 장수들을 점검하고 병참 지원부대도 일일이 다 확인하도록 하라.
금강 예, 폐하.
견훤 이번에 가서 네 형들에게 잘 좀 보여주어라. 일부 신료들은 그저 신검이 신검이 하는데 네가 과연 장수란 어떻게 싸우는 것인지, 그리고 진정한 장수의 모습이 무엇인지 좀 보여주어 보아라.
금강 예, 폐하.
능환이 그 말에 눈을 감아 버린다. 그런 능환을 능애가 본다. 염흔도 보다가 도리질을 한다.
씬 황후전
박씨가 웃고 있다.
박씨 폐하께서 우리 신검이를 칭찬하셨다는 말이냐?
이상궁 예, 황후마마. 군사들을 통하여 이미 전선으로 술과 고기를 보내시고 크게 칭찬하시는 글을 보내셨다 들었사옵니다.
박씨 이제서야 뭔가 보이시는 모양이구먼 그래. 똑같은 자식도 얼마나 잘해주고 믿음을 보여주는가에 따라서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없고가 나오는 것이야.
이상궁 예, 황후마마. 그런 것 같사옵니다.
박씨 사실 그 동안 폐하께서 얼마나 많은 구박을 하셨는가 말이야. 이번에 전장터에 직접 가신다니 제발 부자분이 좀 더 가까워지셨으면 좋겠네 그려. 휴우.... 그저 나는 신검이 이야기만 나오면 웃다가 울다가... 이게 어미인 모양일세. 참으로 한심스러워. 내 모양이 한심스럽다는 말일세.
씬 고비전
고비가 금강이를 보며 웃고 있다.
고비 또 폐하를 뫼시고 전장터에 가신다구요..?
금강 예, 어마마마. 아무래도 이번 고창전투는 꽤 시일이 걸리거나 아니면 큰 규모의 전쟁이 될 것 같사옵니다.
고비 조심하시오, 태자. 곧 황제가 되실 분이십니다.
금강 어마마마, 그 무슨 말씀을....
고비 무슨 말이라니요..? 천하가 다 알고, 이 황실이 다 알고, 온 조정과 백성들이 다 아는 일입니다.
금강 소자의 문제로 조정이 점점 어색해져가고 있사옵니다. 어마마마라도 조심하셔야 하옵니다. 모두가 이 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사옵니다.
고비 폐하께서 결정을 하고 계시는 일입니다. 왜 우리가 조심하고 주의를 해야 합니까? 태자가 곧 폐하게 되십니다. 이 일은 이미 굳어진 일이에요. 능애 장군이 혼이 나고 이찬 그 늙은이가 혼이 났다가는 것도 다 알고 있습니다.
금강 어마마마...
고비 잘 하시오, 태자. 황제가 되실 귀하신 몸이십니다. 아시겠습니까?
금강 어마마마...
고비 호호호... 태자가 황제가 되셔야 이 어미는 황태후 소리를 듣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렇습니까? 호호호.....
씬 황도 어느 연병장
수많은 군대가 동원되어 전투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능애와 능환, 염흔 등이 보고 있다.
능환 이번 고창전투는 상당히 큰 규모가 될 것일세. 그만큼 양국이 사활을 건 전장터이기도 하고...
능애 폐하께서 직접 나가시니 아마 고려에서도 그 왕이 나올 것이 분명할 것 같소이다.
능환 서로가 중요한 목적을 가지고 있고 또한 한이 많은 만큼 그 어느 때보다도 전투가 격렬해질 것 같소이다.
염흔 그리고 그 만큼 위험한 전쟁이기도 할 것이옵니다.
능환 그렇겠지.
염흔 그 위험함 때문에 후계자를 일찍부터 정해놓는 것인데 우리 백제국은 그것이 안 되고 있사옵니다.
능환 그 일을 잘해 보려다가 여기 장군이나 나나 이렇게 소외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염흔 폐하의 고집은 이제 아무도 꺾을 사람이 없사옵니다. 오늘 조정에서 보니 다음 후계는 이미 결정이 된 것 같사옵니다. 노골적으로 신검 태자마마를 핀잔하고 있지 않사옵니까? 그것은 칭찬이 아니라 핀잔이었사옵니다. 그것도 그 아우인 금강 태자 앞에서 말이옵니다.
능애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지. 위기 올시다, 이찬. 이번 고창전투가 끝나고 나면 무슨 일이 생겨도 생길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능환 무슨 일이라...? 허허, 그건 또 무슨 말씀을....?
능애 좋지 않은 일 말이올시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요.
능환 허허... 막아야지요. 좋지 않은 일은 늙은이들이 막아야지요. 어쨌든 이번 전투 준비나 잘해 드리십시다. 고창 전투는 그만큼 비중이 큰 것이니까... 그 뒤에 다시 한번 폐하를 만나 보십시다. 음.....
그렇게 어두운 능환의 그 표정에서...
씬 문소성 외경
씬 동 성안
열려진 성문으로 바리바리 술과 음식들이 수레에 실려 들어오고 있다. 부장들이 보고 있고 그 한켠에서 신검이 전령을 맡고 있다.
신검 폐하께서 보내오신 술과 고기란 말이냐?
전령 예, 태자마마.
신검 그것 참... 고맙기도 하시구나. 생전에 전장터에 나와 하사품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애술 그런 것 같사옵니다. 폐하께오서 아주 크게 기뻐하신 것 같사옵니다. 장계까지 내리셨다 들었사옵니다마는...
신검 그렇소이다. 문소성과 순주성을 얻은 것을 치하하시는 글이셨소이다.
신덕 감축드리옵니다, 태자마마. 이제 폐하께오서도 태자마마를 생각하심이 달라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사옵니까?
종훈 왜 아니옵니까? 문소성은 큰 성이옵니다. 그리고 순주성은 전략적으로 고창 그 북쪽에 자리하고 있어서 또한 중요하옵니다. 이러한 성들을 얻었는데 어찌 칭찬이 없으시겠사옵니까?
최필 군사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이제 폐하께서 직접 친정을 나오신다 하시니 오신 이후 더욱 큰 관심을 두실 것이옵니다.
신덕 그것은 마땅히 그래야지요. 우리가 폐하와 더불어 고창을 얻으려면 양쪽에서 공략을 해야 합니다. 태자마마께서 폐하와 더불어 합동으로 고창을 치는 전략이라면 그야말로 태자마마께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폐하가 보시는 데에서 전공을 세우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옵니다.
종훈 고창은 도모하기 어려운 고집 불통의 호족들이 있는 곳이옵니다. 우리들이 잘 협공을 해서 들어간다면 모르겠거니와 그렇지 못하다면 고려와 고창의 군대가 만만치 않을 것이옵니다.
상귀 아 그러니까 이럴 때에 공을 세워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김총 사실이올시다. 그 동안 태자마마께서는 많이 불운하셨습니다. 이번에야말로 기회 같사옵니다.
신검 하는데 까지 해 보십시다. 하지만 나는 아버님과 함께 있으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도무지 아무 것도 되지를 않아요. 잘 될 일도 안된다 이런 말입니다. 이번에는 금강이도 함께 온다지요?
용검 그까짓 금강이가 오면 어떠하옵니까? 형님, 그 아우의 생각은 버리시오소서. 형님께서는 이쪽방면군의 총사이십니다. 아바마마의 후광이 없다면 금강이는 아무 것도 아니옵니다.
신검 글쎄다... 허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 어찌한다는 말이냐? 자, 어찌 되었든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여라. 그리고 아버님께서 출병하신다 하니 고창군에 대한 전략들을 세우도록 하십시다.
장수들 예, 총사.
신검 고창군이라...? 아버님이 오신다....? 허....
씬 황도 길
견훤의 대군이 출병하고 있다. 최승우와 금강, 박영규가 함께 앞을 섰다. 능환과 능애, 염흔들이 황후들과 더불어 전송하고 있다. 견훤이 손을 흔들며 멀어져간다. 그들을 보는 신료들과 황후들의 면면들...
씬 황톳길
견훤과 최승우, 박영규들이 가고 있다.
견훤 우리가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왕건 아우도 움직일 것일세. 아, 그 동안 너무나 적조하였어.
박영규 참으로 묘한 운명 같사옵니다, 폐하. 그 동안 몇 번씩이나 고려의 왕은 폐하께 죽음을 모면하고 도망을 쳤사옵니다. 그런데도 폐하께서는 늘 친한 이웃처럼 이야기하시고 또한 보고 싶어하시옵니다.
최승우 허허허... 친한 이웃이라..? 거 참 그럴 듯한 말이올시다.
견훤 하긴 그러하이. 왕건 아우와 나 사이야 사실 개인적으로는 원한이 없다네. 아마 우리 사이처럼 서로를 좋아하는 사이도 드물 게야. 다만 대장부들로서 누가 먼저 삼한의 주인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이 서로를 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뿐이지.
최승우 아무튼 이번 고창 전투는 조심하셔야 하옵니다. 결코 만만치 않은 호족들이옵니다.
견훤 저들은 과거에 신라에 있었고 지금도 신라의 영향을 받고 있어. 그러나 신라는 이제 갔어. 항복 아니면 죽음 뿐이야. 어딘가는 택해야겠지. 신검이에게 전령을 보내서 고창의 호족들에게 항복을 권유하라고 하게.
박영규 예, 폐하.
견훤 그리고 고려군의 사정도 세세히 탐지해서 소식을 가져오게.
박영규 예, 폐하. 부장들은 들었는가? 첩보병을 보다 멀리 보내서 고려군의 동정을 탐지하라. 문소군에 전령을 띄워 태자마마께 폐하의 영을 전하라.
부장들 예, 장군.
그렇게 부장들이 움직인다. 부산한 그들의 모습에서 견훤의 얼굴로 가면서 디졸브...
씬 고려 황궁 외경
씬 동 편전
왕건을 중심으로 하여 전 신료들이 다 모였다.
왕건 드디어 백제의 왕이 직접 고창군으로 향했다 하오. 이제 때가 온 것 같소이다. 짐도 그랬거니와 경들 또한 그 동안 얼마나 울분의 날을 보냈는지 잘 아오.
모두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왕건 주지하다시피 그 동안 병부에서는 대국적인 전략에서 천하의 판도를 보고자 애써왔소이다. 이제 그 전략적 분석이 끝나고 우리는 백제와 고창에서 만나게 되었소이다. 병부령은 이야기해 주라.
최응 예, 폐하. 지금 폐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백제의 왕이 이만의 병력을 이끌고 그곳 도읍지인 전주를 떠나 고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 태자인 문소성 신검의 병력과 투항한 민병대의 수까지 합친다면 아마도 삼만이 넘을 것입니다.
김행선 허허... 그토록 대병이오이까?
최응 그러하옵니다. 그에 비해서 우리 군은 다른 경계지역을 제외하고 나면 단 시일에 삼만이라는 대병을 모으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그 절반 정도인 일만 오천의 군사를 몰아갈 것입니다.
박술희 폐하, 신 박술희 모처럼 전투에 임할 수 있다 하니 감개가 무량하옵니다. 그 동안 참다참다 못하여 가슴에 피멍이 생겼사옵니다.
유금필 아무튼 오랜 칩거를 끝내고 저 백제의 망동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은 장수들의 본분으로서는 너무 기쁘고 반가워할 일이옵니다. 속히 영을 내려주시오소서, 폐하.
배현경 영을 내려주시오소서. 신 배현경도 오랫동안 울분을 참기가 어려웠사옵니다.
추언규 하지만 백제는 우리 병력에 배가 넘는다고 합니다. 고창군도 확실히 어느 편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말입니다.
김행선 그건 그래요. 늘 적에 관한 사정을 잘 모르다가 당한 일들이 꽤 많았다고 봅니다마는...
최응 이미 전령이 떠났습니다. 아마 백제에서도 전령을 보냈을 것으로 압니다. 고창군의 호족들은 어딘 가를 결정할 것입니다.
김행선 허면 이번에도 폐하께오서 친정을 나가시는 것이오이까?
왕건 그렇소이다. 몇 년 동안 연거푸 당했던 치욕의 한을 풀고 삼한 통일의 대업을 결정지을 전투이올시다. 마땅히 짐이 갈 것이오.
윤신달 하오나 폐하, 적은 계속하여 몇 년 동안 우리의 기선을 누르며 전승을 거두어왔사옵니다. 그 기세가 너무도 성한데다가 군사마저 우리의 배가 넘는다 하니 마땅히 주의하셔야 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박수문 언제나 전장터는 위험한 곳이옵니다. 차라리 정윤 마마를 보내심이 어떠하옵니까?
무 폐하, 그리 하시오소서. 폐하를 대신하여 소자를 보내주시오소서.
박수경 그리 하시오소서.
왕충 그리 하시오소서, 폐하.
홍유 박수문 장군의 청이 참으로 지당하옵니다. 이제 폐하께서도 보령이 원만하시옵니다. 정윤 마마께서 대신하여 전투에 나가심은 당연한 일이옵니다.
김행선 신의 생각도 이들과 같사옵니다. 폐하께오서는 황도에 남아 나라를 살펴주시오소서.
왕건 하하하....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린 일이오. 저쪽에서도 왕이 나오는데 나만 비겁하게 앉아서 숨어 있으라는 말이오? 이보아라, 내의성령?
최지몽 예, 폐하.
왕건 그래, 너는 그 동안 여러 번 점괘를 아주 잘 맞추었다 들었다. 이번에는 어떠하냐? 이번에도 내가 백제군의 옷을 갈아입고 산속으로 도망칠 운세이더냐? 어디 말해보거라.
최지몽 신은 단지 점괘만을 말씀드리겠사옵니다. 그 동안 폐하께오서는 많은 어려움이 계셨사온데 그것은 모두가 삼재에 들었기 때문이었사옵니다.
왕건 삼재라...? 그건 무슨 말인가..?
최지몽 인간에게는 9년을 주기로 돌아오는 세 가지 종류의 재난이 있사옵니다. 그 하나가 역재라 하여 돌림병에 걸리는 재난이고, 또 하나는 도병재라 하여 연장이나 무기 혹은 전란으로 입는 재난이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근재라 하여 굶주리는 재난이 있사옵니다. 이를 대 삼재라 하옵니다.
왕건 헌데...?
최지몽 폐하께서는 어리실 때에 굶주리는 재난이 지나갔으며 지난 번 조물성에서는 돌림병에 걸리는 재난이 지나갔고 또한 공산전투에서는 도병재의 재난이 지나갔사옵니다. 그러니까 모든 환란이 다 지나갔다는 것을 뜻하옵니다. 이번에는 이기시옵니다.
김행선 폐하, 복술에 능통한 내의성령이 폐하께서 이기신다 하옵니다.
왕건 하하하.... 언제는 짐이 그런 일에 크게 의탁하였소이까마는 크게 기분 나쁜 말은 아니올시다. 아무튼 치욕의 몇 년이었소이다. 이번에는 기필코 한을 갚을 작정이오. 기필코 말이오. 병부령은 들으라.
최응 예, 폐하.
왕건 짐이 친히 제장들과 더불어 고창으로 갈 것이다. 황도는 정윤과 더불어 서경에서 돌아온 총관 왕식렴 아우가 임시로 맡을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짐을 따라 고창으로 갈 것이다. 전투 준비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고 곧 출병하도록 하라.
모두들 예, 폐하.
왕건 이번 전투는 절대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만에 하나 짐이 실패하여 다시 또 돌아온다면 그때는 내 죽음이 돌아올 것이다. 패전을 한다면 절대로 살아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야. 이 점을 신료들에게 맹세하는 바이니 제장들도 모두 각오를 새로이 하라. 절대로 고창에서 패배는 없을 것이다. 패배는 없을 것이야.
그러한 왕건의 단호한 표정에서....
<167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