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 169회>
박술희와 애술, 흡사 범과 용의 싸움도중 총사 신검의 판단착오로 백제군은 진퇴양난에 빠져 견훤군과의 합동작전에 차질을 빚고 이를 모르는 견훤은 고려군의 수중으로 점차 들어간다. 한편, 낙동강전선에서 견훤을 기다리던 왕건은 공산에서의 복수를 다짐하면서 출전의 마지막 밤을 맞는다. 유금필에 의해 진로가 막혀버린 신검은 장수들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출전을 연기하며 견훤과 금강의 패배를 내심 바라는데...
씬 그 숲속 (낮)
양군이 대치해 있는 가운데 박술희와 애술이 접전하고 있다. 지난 회와 연결되어 맞 부딪혔던 서로의 검이 비켜가며 다시 떨어졌다가 또 다시 말을 달려와 교합하기를 여러 차례 계속한다. 그러나 막상막하 수십 합이 지나도 도저히 결론이 나지 않는다. 양쪽에서 손에 땀을 쥐고 보고 있다.
씬 신검의 군영
신검과 두 형제, 종훈, 신덕, 최필, 김총, 상귀, 부달, 소달들이 보고 있다. 입을 벌린 채 그저 멍하니 그들의 무예를 감탄하듯 보고 있다.
양검 형님, 과연 우리 애술 장군은 대단하옵니다. 검을 놀리는 것이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듯 하지 않사옵니까?
용검 하지만 저 박술희라는 장수도 대단하옵니다. 도무지 겁이 없지 않사옵니까? 유금필이라는 장수를 빼고 우리 애술 장군을 맞이해서 저토록 싸우는 자는 처음 보옵니다. 마치 범과 용이 싸우는 것 같사옵니다, 형님. 이야....
신검 무얼 그리 감탄까지 하고 그러느냐? 이곳은 전장터이니라. 정신들을 바짝 차리고 보거라. 이보시오, 신덕 장군...?
신덕 예, 총사
신검 지금 저 두 사람의 실력이 막상막하인 것 같습니다. 벌써 수십 합을 주고받았는데도 결론이 나지를 않고 있습니다.
신덕 그러게 말이옵니다. 그러고 보면 고려에도 쓸만한 장수들은 꽤 많은 것 같사옵니다.
신검 (계속 싸우는 것을 보며) 저러다가는 해가 져도 끝이 안 나겠습니다. 여차해서 기회를 보다가 제장들이 가서 밀어부치시오.
종훈 아니 되옵니다, 태자마마. 양쪽에서 장수들이 나와 겨루는 것은 군사들의 싸움에 앞서서 과연 누가 센가하는 기 싸움이옵니다. 이런 기 싸움은 어느 한쪽이 그 질서를 깰 때에 위험해지옵니다. 그것은 바로 약속을 어긴 쪽이 졌다는 것을 의미하옵니다.
신검 그런 것을 따질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지고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우리가 먼저 밀어 부치면 우리가 이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다가 신검이 혀를 찬다. 드디어 서서히 애술이 힘에 겨워하기 시작한다. 계속해 몇 합을 몰리며 한 쪽으로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신검의 눈에 불이 난다. 부달과 소달이 움찔하며 검을 쥔다.
신검 무엇들 하느냐? 지금 애술 장군이 힘에 겨워하지 않는가? 부달, 소달 두 장군은 무얼하오? 어서 나가 도우시오.
종훈 좀 더 두고 보시오소서. 지금 장수를 보내시면 아니 되옵니다.
신검 애술 장군이 밀리고 있지를 않습니까? 어서 가오.
두 장군 예, 총사...
신덕 태자마마...
만류하려고 신덕이 멈칫거리는 사이 두 장수는 이미 달려나간다.
씬 그곳
부달, 소달이 달려나와 애술을 도와서 박술희의 양쪽을 공격한다. 애술이 화가나서 소리친다.
애술 이런, 누가 나와 나를 도우라 하였는가?
부달 총사의 영이시오.
애술 이거 내 체면이 말이 아니지 않는가? 이것은 일대일의 장수들의 싸움이야. 이 싸움은 너희들이 버려놓는구나. 어이쿠....
박술희 하하하... 이보게, 애술이.. 자네가 진 것 같네 그려. 응원하는 장수들이 나오다니 이건 이미 진 것이야.
애술 아니야. 나는 지지 않았어.
그렇게 달려들려 하는데 저쪽에서 이미 유금필이 달려나오고 있다. 애술의 눈이 크게 떠진다.
박술희 아니, 형님... 왜 나오시는 것입니까?
유금필 저들이 이미 약속을 깨고 있는데 나라고 보고만 있을 수 있는가? 두 사람은 내가 맡을 터이니 계속 하게.
박술희 예, 형님..
유금필 너희들은 이리 오너라. 내가 상대해 주마.
부달 오냐... 네가 유금필이로구나. 오늘 잘 만났다. 해 보자꾸나. 소달장군, 측면을 맡으시오.
소달 알겠소이다. 어디 우리를 당해 보거라.
그렇게 달려간다. 그리고 그 한쪽에서는 박술희와 애술의 접전이 계속되고 있다. 유금필이 두 장수를 상대해 계속 싸운다. 그리고 몇 합이 지났을까? 소달이 먼저 목이 달아난다. 그리고 이어서 놀라서 눈을 크게 뜨던 부달마저 가슴이 베이며 말에서 떨어져 나뒹군다. 애술이 놀라서 본다. 박술희도 싸우다 말고 본다. 유금필이 빙빙 돌고 있다.
유금필 아, 왜들 나를 보고 있는가? 어서 계속 하시게.
애술 ............?
유금필 어서 계속 하라니까 그러는구먼. 계속들 하시게.
그렇게 유금필은 구경하듯 죽어있는 두 장수를 보며 신검 쪽을 본다.
씬 신검의 군영
모두들 입을 벌리고 눈 앞을 보고 있다.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맹장 두 사람이 순식간에 죽어버린 것이다.
용검 (덜덜 떨며) 죽었습니다, 형님... 부달과 소달 장군이... 수... 순식간에 죽었습니다, 형님.
신검 .............
양검 저러다가는 애술 장군도 죽지 않겠사옵니까?
신검 무엇들 하는가? 최필, 김총 장군은 어서 나가지 않고 무얼하오..?
두 장군 예, 총사..
두 장수가 달려나간다. 그러자 종훈이 한숨을 지며 말한다.
종훈 태자마마, 이미 진 싸움이옵니다. 군사를 정비하여 물리시오소서.
신검 무슨 소리를 하는 게요? 싸움도 하지 않고 군사를 물려요...?
신덕 종훈 군사의 말이 맞사옵니다. 두 장수가 죽음으로 우리 군사들은 이미 겁을 먹었사옵니다. 기선을 빼았겼사옵니다, 태자마마.
신검 무슨 소리들을 하는 겐가, 무슨 소리들을....?
그러나 미처 그 말을 할 사이가 없었다. 달려나가던 최필과 김총이 말을 멈추고 선다. 그리고 놀라서 본다. 박수문 형제가 이끄는 고려군이 와 하며 밀려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싸우던 애술도 어쩔 줄 모르며 두리번거리고 있다.
박수문 백제군이 겁을 먹었다. 모조리 헤치워라. 공격하라... 공격하라..
박수경 공격하라.....
그 한편에서 애술이 보다가 당황한다. 그리고 말한다.
애술 아니 되겠구나. 이보아, 박술희.. 다시 만나야겠다. 멍청한 우리 부장들이 일을 꼬이게 만들었어. 다음에 보자.
박술희 장수들에게 다음이 어디 있는가?
애술 다음에 보자니까 그러는구먼.. 꼭 볼 게야.
그대로 말을 돌려 달아난다. 김총, 최필도 보고 있다가 어쩔 줄을 모른다. 신검이 소리소리 지른다.
씬 그곳 신검이 있는 곳
신검 전군 공격하라. 무엇들을 하고 있느냐? 공격하라. 고려군이 온다. 공격하라...
그러나 그의 명령은 먹히지가 않는다. 유금필과 박술희가 앞을 서서 달려오고 있다. 그리고 그 뒤로 군사들이 질풍처럼 따른다. 백제군은 이미 겁을 먹고 흩어지기 시작한다.
신검 내 명령이 들리지 않느냐? 부장들은 무얼 하는가? 적군을 막아라...
신덕 태자마마, 불리해진 전투이옵니다. 군사를 잠시 뒤로 물리시오소서.
신검 어이구, 이게 무슨 소린가...? 싸움도 못해보고 도망을 쳐요..?
용검 형님, 어서 피하시오소서. 저기 유금필이 오고 있사옵니다.
양검 박술희도 오고 있사옵니다.
종훈 피하시오소서. 이미 군사들이 싸울 의지를 잃었사옵니다. 어서요, 태자마마...
신검 어이구... 어이구...
신검은 그렇게 말에 오른다. 말머리를 돌린다. 한쪽에서는 우왕좌왕 백병전이 붙고 있다. 신검과 그 형제들과 장수들이 도망치기에 바쁘다.
씬 그곳
부지기수로 군사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고려군이 승세를 잡고 쓸어내려가고 있고 백제군은 무수히 시체로 깔리거나 항복하고 있다.
유금필 어디들을 가는가? 게 섰거라. 어디들을 가는가?
박술희 신검아... 나 박술희니라. 어디로 가는가? 서지 못할까? 어디로 가는가?
그러나 이미 그들을 잡기에는 역부족이다. 유금필이 손을 들어 제지한다.
유금필 그만 하게. 이만하면 대단한 전과일세. 적군은 물러갔고 결국 이곳에 다시 오려면 한참 걸려야 할 게야.
박술희 그러게 말입니다.
유금필 이 정도 해 놓았으면 백제군의 양면 작전은 일단 그 맥은 끊어놓은 것일세. 백제의 왕과 태자의 군대가 낙동강에서 만난다는 작전은 어렵게 된 것이야.
박술희 애술을 놓치다니 아쉽게 되었습니다.
유금필 하하하.. 그만 하게. 더 쫓다가는 우리가 낭패를 보네. 불과 이삼천의 군사로 일만을 몰아낸 것은 대단한 전과야.
박술희 하지만 우회해서 고창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들었습니다. 저들이 그리로 간다면....
유금필 그 길은 너무 머네. 시간이 이곳보다 갑절이 걸려. 그 동안에 전투는 다 끝날 것일세. 하여간 좀 더 두고 보세. 군사를 정비하세.
박술희 군대를 정비하라... 군대를 정비하라...
부장들 (반복한다) 군대를 정비하라.... 군대를 정비하라...
그 정경을 보는 유금필의 만족한 표정에서....
씬 신검이 가는 길
아직도 도망치느라 군사들이 우왕좌왕이다. 얼마를 달려 왔는지 형제들은 정신이 없다. 양검과 용검은 계속해 뒤를 돌아본다. 신검이 돌아보다가 분통이 터지는 듯 말한다.
신검 (말을 멈추며) 그만, 그만, 그만.... 도대체 이런 꼴로 어디까지 도망들을 칠 것인가? 그만 서라.
신덕 정지하라... 그만 정지하라...
군사들이 정지하고 있다. 신검이 화가 나서 보고 있다. 용검이 말한다.
용검 다행이옵니다, 형님. 유금필이가 더 쫓아오지를 않사옵니다. 큰일날 뻔하였사옵니다.
신검 (노려보다가)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게냐? 너는 말만하면 유금필인데, 그렇게도 무섭더냐?
애술 ...............(그저 입맛만 다신다)
신검 기가 막히는구나. 졸지에 두 장수를 잃었어. 눈으로 보았지만 믿기지가 않아, 아직도...
애술 박술희와 싸우도록 그냥 놔두셨으면 좋을 것을 그랬사옵니다.
신검 그러게 말이오. 그건 이 사람이 실수를 하였소이다. 어쨌든 시간이 촉박하오. 군을 다시 정비하고 고창 가는 길을 의논해 보십시다.
신덕 예, 총사. 김총장군..?
김총 예, 신장군.
신덕 군사를 정비하십시다.
김총 예, 장군. 부장들은 무얼하는가? 군사들을 정비하라. 군사들을 속히 정비하라..
부장들이 김총의 말을 복창한다. 군대들이 정비되면서 답답한 신검의 표정으로 디졸브....
씬 그곳 야전 군막 외경
씬 동 군막 안
신검이 뒷짐을 지고 서서 오락가락 하고 있다. 그리고 가끔씩 답답한 듯 헛기침을 날린다.
신검 시간이 계속 지체되고 있소이다. 유금필의 군대에게 막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어요. 낙동강으로 아버님의 군대가 우리만 믿고 가고 있을 것인데... 허, 이것 참...
종훈 하지만 계속해 전령을 주고 받고 있사옵니다. 우리가 지체되면 폐하께서는 무리해서 고창으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옵니다.
신덕 그것은 모르는 일이올시다. 처음부터 폐하의 군대와 우리 군대가 양면으로 고창을 치기로 하였소이다. 그리고 이미 군사를 그렇게 움직이고 있소이다. 폐하께서는 지금쯤 그저 우리가 잘 되는 줄 알고 가고 계실 것이올시다.
애술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오소서. 유금필의 군을 넘어야 하옵니다.
신덕 이미 기세가 한번 꺾였사옵니다. 쉽게 넘지 못할 것이옵니다. 차라리 좀 늦더라도 우회해서 가는 길로 서두시오소서
최필 우회길이라니요..? 꼬박 하루가 넘는 그 길을 어떻게 돌아간다는 말입니까?
김총 지금 폐하께서는 예정대로라면 고창으로 들어서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가 돌아간다면 이미 전투가 다 끝난 뒤가 될 지도 모릅니다.
상귀 유금필 군은 고작 이삼천의 군대라 들었사옵니다. 한번 더 밀어 부쳐봄이 어떠하겠사옵니까?
신검 장군도 듣지 않았습니까? 이미 우리 군사들이 전의를 상실했다고 합니다. 이런 군대로 어찌 저곳을 넘는다는 말이오? 어찌한다, 이것을 어찌한다....
그렇게 신검은 오락가락 한다. 디졸브 된다.
씬 동 군막
신검이 혼자 생각에 잠겨 있다. 장수들은 아무도 없다. 갈팡질팡이다. 한숨만 계속 쉰다. 두 형제가 양쪽에서 보고 있다.
양검 어찌하실 것이옵니까, 형님? 시간이 자꾸 흐르고 있사옵니다.
용검 아버님과 금강이가 고창 안으로 들어섰다면 혼자 싸우시기는 벅차실 것이옵니다. 우리가 가지 않으면....
신검 (아주 무겁게) 가지 않으면.....?
용검 정말 어려울 것이옵니다. 금강이도 그리고 아버님도....
신검 그래...? 그렇게 되겠지... 금강이도... 그리고 아버님도...
반복하는 신검이의 말은 이미 무언가 깊은 뜻을 가지고 있다.
신검 그래... 금강이도.. 아버님도... 그래....?
양검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형님?
용검 우리가 가지 않으면 금강이와 아버님께서 어려울 것이라는 말씀이 아닙니까? 우리가 가지 않으면 말입니다.
양검 ...... 가지 않다니...?
용검 아이참 형님도... 유금필 군 때문에 갈 수가 없지 않습니까? 돌아가는 길은 너무 머니까 가 보아야 헛일이고 말입니다. 아니 그렇사옵니까, 총사..? 일이 너무 어렵게 되었사옵니다.
신검 그래...? 생각해 보니 일이 너무 어렵게 꼬였다. 너무 어려워....
양검 (그제서야) 예, 형님.... 정말 그런 것 같사옵니다.
신검 그래....
씬 견훤이 가는 길
군대가 계속해 내처 가고 있다. 최승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본다. 고개를 자꾸 외로 꼰다.
최승우 폐하, 이상하옵니다. 태자마마 쪽의 전령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사옵니다. 연락이 없다면 더 나아가서는 아니 되옵니다.
박영규 그러하옵니다. 전령의 소식을 충분히 접하고 나아가는 것이 옳을 것 같사옵니다.
금강 소자의 생각도 그러하옵니다, 폐하. 협공을 하기로 되어 있으면 우리 아군의 약속이 철저해야 하는 것이 아니옵니까?
견훤 물론 그것은 그렇다. 그러나 지금 우리로서는 척후병을 내 보내도 적정을 잘 알 수가 없고 전령마저도 제대로 오가지를 못하고 있어. 그렇다고 중간에 주저 앉아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최승우 불확실한 것 보다는 좀 더 기다려서 확실한 것을 보는 것이 낫사옵니다. 폐하, 조금만 늦추시오소서.
견훤 말했지만 우리 군사력만으로도 저들을 부술 수가 있어. 꼭 신검이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아니야. 물론 도와주면 더 좋지만 말일세. 그리고 신검이는 꼭 올 것이야. 아, 일만에 가까운 군대가 그까짓 몇 십리 길을 넘지 못한다면 이것은 말도 아니 되지. 내쳐 가세. 서둘러라, 금강아...
금강 예, 폐하. (부장들에게) 계속해 내쳐 가라. 대오를 잘 갖추고 길을 서둘러라.
그들 그렇게 간다. 그들 앞으로 먼 산봉우리들이 겹겹이 보여온다. 최승우와 박영규들은 우울하게 그 산들을 본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가면서 디졸브.....
씬 그 산길
백제군의 첨병이 달려와 공산 전투 때처럼 적정을 살피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도 주변은 조용하다. 그들은 조심조심 소리를 죽여가며 계속해 주변을 정탐한다.
씬 그 산 중턱
그 산 중턱 어느 쪽에서 홍유와 그 부장들이 보고 있다. 멀리 산 아래로 계속해 정탐병이 정탐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안심한 듯 끄덕이며 되돌아간다. 홍유와 그 부장들도 끄덕이며 미소짓는다.
홍유 첨병이 갔다가 다시 올 때면 대병이 함께 올 것이다. 그때도 절대로 우리를 드러내서는 아니 된다.
부장 예, 장군.
배현경 폐하가 계신 낙동강 군영으로 전령을 띄워라. 저녁 무렵이면 백제의 대군이 도착을 할 것이라고...
부장 예, 장군.
홍유 장군들은 군대를 질서있게 배분하여 저들이 다 지나가고 나면 퇴로를 끊도록 하십시다. 윤장군..
윤신달 예, 장군.
홍유 저들이 이곳을 다 지나가고 나면 장애물과 바윗덩이로 길을 끊어버리시오.
윤신달 예, 장군.
홍유 염상, 왕충 장군 두 분은 강가에서 교전이 있은 후에 저들이 다시 뒤로 도망 나오려고 할 것이오. 그때, 사정없이 저들을 베도록 하시오.
두 장군 예, 총사.
홍유 배장군께서는 소장과 함께 이곳 사정을 보다가 남은 군사를 이끌고 강으로 가서 폐하를 도우십시다. 백제왕을 잡아야 하지 않겠소이까?
배현경 옳은 말씀이시오, 총사. 우리는 왕을 잡는데 전력을 기울여야겠지요, 하하하...
씬 계곡 길
드디어 백제군이 들어서고 있다. 대군이니만큼 계곡이 꽉 차서 그렇게 이동해 가고 있다. 최승우와 박영규, 금강들은 불안하다. 멀리서 앞서갔던 첨병 두 명이 달려와 말을 멈추고 예를 올린다.
견훤 그래, 고창가는 길목은 어떠하더냐..?
첨병 샅샅이 살폈사온데 아직까지 적병의 모습은 보이지 않사옵니다. 숲속도 샅샅이 뒤졌으나 매복의 흔적은 보지 못하였사옵니다.
견훤 하하하.... 본래 그런 것이다. 산이 있으면 매복이 있다고들 생각하지. 그렇게 되면 준비를 하게 되고 결국은 매복을 먼저 나온 쪽이 별 효과를 못 얻게 되는 것이지. 그러니까 매복을 피한 것이야.
박영규 폐하, 그렇지 않을 수도 있사옵니다. 우리는 너무도 적의 사정을 모르고 있사옵니다. 한번 더 첨병을 보내시오소서.
금강 그리 하시오소서, 아바마마. 한번 더 보내겠사옵니다.
견훤 이렇게들 원.... 그래, 금강이 네가 총사이니 네 뜻대로 하거라. 허나, 별일은 없을 것이다.
금강 부장은 들어라. 다시 첨병을 내보내거라. 우리가 지나갈 길을 샅샅이 뒤져라. 이 계곡은 불과 이삼 십 리에 불과하다. 여기만 벗어나면 큰 염려는 없다. 곧 강으로 나가게 되니까 말이다.
부장들 예, 총사.
그렇게 부장과 첨병들이 다시 달려나간다. 견훤이 끄덕인다.
견훤 그건 그래... 조심한다는 것은 늘 좋은 것이다. 허나 그것이 과하면 담대해질 수가 없지. 그래, 이 계곡을 지나면 곧 강이 나온다고 했겠다..? 낙동강은 좋은 곳이지. 암.. 이 삼한의 젖줄이야. 내일까지 고창성을 함락시키고 아침에는 성안에서 낙동강 어죽이나 먹도록 하세나.
그렇게 웃으며 가는 견훤의 표정에서....
씬 낙동강 상류 언덕
숲 속에 위장되어 있는 왕건들의 군영이다. 왕건이 최응과 함께 먼 강 쪽을 보고 있다.
왕건 저들이 지금 우리 쪽으로 들어섰다고 들었네.
최응 그러하옵니다. 아마 저녁 무렵이면 저 강가에 도착할 것이옵니다.
왕건 그렇게 되겠지. 이만이라...? 적지 않은 군대일세.
최응 이미 사방으로 완벽하게 우리 군이 배치되어 있사옵니다. 그리고 저들은 정확하게 우리 계산대로 오고 있사옵니다.
왕건 알고 있네. 금필 아우 쪽에서 신검의 군대를 막았다지..?
최응 예, 폐하. 기대하지 못한 놀라운 전과이옵니다. 불과 이 삼천의 군대로 신검의 일만의 가까운 군대를 밀어내 버렸사옵니다.
왕건 과연 금필 아우일세. 지난 번 삼년산성에서도 엄청난 활약을 했었지.
최응 알고 있사옵니다.
왕건 죽은 숭겸 아우의 몫까지 대신하는 것이야. 허허허....
그때 막 삼태사와 복지겸, 최지몽이 오고 있다. 그리고 군례를 한다.
복지겸 폐하, 방금 전령이 왔었사옵니다. 백제왕이 예정대로 보문산과 백자봉 사잇길로 오고 있다 하옵니다.
최응 모든 일이 아주 잘 되어 가고 있사옵니다.
김행 유금필 장군이 갈라산 쪽에서 백제의 신검군을 잘 막고 있다 들었사옵니다. 이대로만 가면 우리 쪽의 승리가 확실하옵니다.
장정필 그러하옵니다. 이번 전투는 조짐이 아주 좋사옵니다, 폐하.
최지몽 떠나올 때의 점괘가 그대로 맞아 들어가는 것 같사옵니다, 폐하.
왕건 하하하... 듣기 싫은 말은 아니구먼. 기다려보세. 아직 저녁이 되려면 한참이 남았어. 제발... 잘 되어야 할 터인데.. 제발...
씬 그 계곡
계속해 견훤군이 오고 있다. 어느 언덕길을 넘어 긴 비탈로 내려가는데 멀리서 다시 또 부장을 포함한 네 명의 첨병이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모두 서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가까워진다.
금강 어찌 되었느냐? 적진은 여전히 이상이 없느냐?
부장 예, 총사. 샅샅이 살펴보았사오나 역시 매복군은 없어 보였사옵니다.
견훤 하하하.... 이제 시오리만 더 나아가면 곧 강쪽으로 이르게 된다. 몇 십리 동안 매복군이 아니 보였다면 그것은 없는 것이야. 곧 강으로 해서 내쳐 고창으로 가자. 신검이도 지금쯤 강에 다 와 있을 게다.
최승우 이상하옵니다. 모든 것이 이상하옵니다.
견훤 이상할 것 없네. 적은 수적인 열세를 실감하고 있어. 그러니까 성에서 안 나오는 것이야. 강을 넘어서면 고려군과 만나게 되겠지. 그때가 아마 조금 힘이 들 게야.
박영규 신검 태자마마께서 예정대로 와 있는가도 의문이옵니다.
견훤 민병대를 더하여 일만에 가까운 군대라 하였네. 강으로 오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해가 아니 가는 일이야. 올 것일세. 어서 가세.
그들 그렇게 몰려 가고 있다. 끝이 없는 그들의 모습에서...
씬 백제 황궁 외경
씬 동 궁안 어느 전각 안
능환과 능애, 염흔, 영순들이 모여서 심각한 표정들이다.
능환 이번의 고창 전투는 그 동안 움츠렸던 고려가 사활을 걸고 나선 전장터요. 쉽지 않은 전투가 될 것이올시다.
능애 그렇게 되겠지요. 양쪽의 황제가 부딪히는 싸움이 아닙니까? 분명 고려의 왕도 지난 날의 빚을 갚으려고 절치부심하였을 것입니다.
능환 그랬을 게요.
염흔 그러나 우리 쪽의 군대가 훨씬 수가 많다 들었습니다.
영순 예, 이찬 어른. 전투야 우리가 이기는 것이 뻔하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도 그랬고 말입니다.
능환 열 명의 군사가 한 명의 장수를 당하지 못하는 것이 비일비재한 것이 전장이라는 것일세. 그 결론은 장담할 수 없네. 그나저나 신검 태자께서 이번에야말로 잘하셔야 될 것인데...
능애 그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폐하보다 먼저 그곳에 가 계셨고 계속해 승리하신 덕택에 사기도 충분이 올라 있소이다.
능환 그렇기는 하지만 늘 운이 따르지 않아서 말이올시다.
그렇게 한숨을 짓는 능환의 표정에서....
씬 동 황후전
황후 박씨가 이상궁과 마주해 있다.
박씨 아직까지 전선에서는 별다른 소식이 없다고...?
이상궁 예, 황후마마. 듣자하니 폐하의 군대와 신검 태자마마의 군대가 양쪽에서 고창을 공격한다고 하옵니다.
박씨 그래...? 모처럼 부자간에 협력을 하여 싸우는 일이니 잘 되었으면 좋겠다마는....
이상궁 하지만 폐하가 계시는 그곳의 총사는 금강 태자마마라 하옵니다. 또 다시 폐하께오서 양쪽에 비교를 하시지 않겠사옵니까?
박씨 분명 그렇겠지... 그러니까 우리 신검이가 더 잘해야 할 터인데... 제발 트집이나 잡히지 말아야 할 터인데... 어이구, 이 에미 속을 알기 하는지 원.....
씬 고비전
고비와 최상궁이 함께 해 있다. 고비가 웃고 있다.
고비 호호호.... 폐하께오서 이번에도 적을 공격하는 총사로 우리 금강 태자를 지명하셨다는 말씀이지..?
최상궁 예, 마마...
고비 호호호.... 얼마나 장한가..? 폐하께서 직접 옆에 두시고 지금 공부를 가르치고 계시는 게야. 전장이 무엇인가? 이 시대의 제왕들이 하는 공부가 바로 전장터일세.
최상궁 그러하옵니다, 마마.
고비 (더욱 크게 웃으며) 호호호.... 신검 태자도 한쪽의 총사이고 또 한쪽에서는 우리 금강 태자가 총사이고... 아주 볼 만하게 되었구먼 그래. 두 태자가 결론이 어찌 날꼬..?
최상궁 그거야 뻔한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고비 호호호.... 뻔하지, 암 뻔하지... 우리 금강이 말고 누가 있겠는가? 다음 황제가 될 금강이 말고 누가 있겠어?
최상궁 그러하옵니다, 마마.
고비 황후마마의 심기가 또 한번 불편하시겠네 그려. 불편하시겠어. 생각해 보게, 고려에서는 벌써 정윤이니 뭐니 해서 다음 보위를 결정했는데 이곳은 아직도 감감 무소식이야. 그리고 우리 금강이가 쑥쑥 올라오고 있고 말일세. 잘 되고 있어. 아주 잘 되고 있어. 호호호....
그런 고비의 모습에서...
씬 고려의 황궁 외경
씬 동 황후전
오씨을 중심으로 하여 유씨와 두 상궁, 정윤 무, 그리고 김행선과, 추언규, 왕규, 왕식렴들이 함께 해 있다.
오씨 아녀자가 정사에 참여할 일은 아니오마는 폐하께오서 전장터에 나가 계심으로 궁금증을 참다 못하여 이렇게들 불렀소이다. 도대체 지금 어찌되어가고 있습니까?
무 어마마마, 마음을 놓으시오소서. 이미 아군과 적군이 대치하여 전투를 준비중이라 하옵니다.
유씨 적은 우리보다 많고 또한 그 동안 승리를 거듭해온 군대이옵니다. 어찌 마음을 쉬이 놓을 수가 있겠사옵니까?
무 두 분 마마, 하오나 모든 정황이 우리가 다 유리하다는 전령의 보고가 방금 도착하였사옵니다.
김행선 그러하옵니다. 여기 내봉성령 왕규 공도 있지마는 그곳 고창의 호족과 군사들이 워낙 깊게 단결하여 폐하를 돕고 있다 하옵니다.
왕규 그러하옵니다, 황후마마. 걱정하지 마시오소서. 백명의 무능한 군사보다도 열 명의 날랜 군사가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옵니다.
왕식렴 황후마마, 신도 오랫동안 형님폐하를 따라 전장터를 돌아다녔사옵니다. 이번 전장은 크게 걱정하실 일이 없사옵니다. 모든 여건과 군사들의 사기 또한 뛰어나옵니다. 지켜보시오소서.
추언규 지켜보시오소서, 황후마마. 분명 옛날과는 다를 것이옵니다. 폐하께오서 도성을 떠나실 때에 그 넘치는 의욕을 보았사옵니다. 잘 될 것이옵니다, 황후마마.
김행선 잘 될 것이옵니다. 너무 초조해 하지 마시오소서.
오씨 어디 마음놓고 있을 수가 있습니까? 폐하께서 나가셔서 곤욕을 치르신 것이 어디 한두 번이옵니까? 잠이 오지를 않습니다. 정말 답답합니다.
그런 오씨의 표정에서...
씬 낙동강변
왕건이 삼태사, 최응, 복지겸, 최지몽들과 함께 군사들을 보고 있다. 한쪽에서 열심히 수많은 소금 가마니들이 옮겨지고 있다.
왕건 아직도 소금 가마니를 계속 풀고 있소이까?
장정필 소금물을 푸는 데에는 많은 비용이 소용되옵니다마는 군사들이 워낙에 속설을 믿기 좋아하기로 계속해 저들의 청을 들어주고 있사옵니다.
최응 때로는 별것이 아닌 그 속설이 아주 훌륭한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번 전투에서 확인했사옵니다. 그렇사옵니다. 직접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심리적인 안정감이나 부담도 전투에서 아주 큰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왕건 왜 아니겠는가? 견훤왕은 힘이 장사일세. 게다가 아주 배포도 크지. 호랑이 젖을 먹고 자랐다고 하였네. 그래서 늘 군사들이 무서워하였지. 하지만 운명이 지렁이의 운명이라니... 우리 군사들이 저처럼 소금으로써 마음의 위안을 삼으려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쁜 일은 아닐세. 이제 곧 해가 저물겠네. 오늘 하루처럼 이렇게 시간이 길게 느껴진 적은 없어. 이제 다 와 간다고...?
김선평 예, 폐하. 저들이 막 계곡을 벗어나고 있다고 하옵니다.
왕건 다 된 것 같소이다. 이제 다 되었어요....
그런 왕건의 표정에서...
씬 그곳 계곡
한필의 전령이 계속해 달려가고 있다. 그리고 카메라의 시야에서 사라지면...
씬 그곳 강 계곡
그 전령이 달려가고 있다. 멀리 견훤의 대군이 보인다. 전령은 그들 대군을 지나쳐 끝도 없이 가고 있다. 강과 인접한 계곡을 지나 대군의 첫머리로 들어가는 전령의 모습.
씬 그곳
대군이 막 계곡을 벗어나고 있다. 그리고 강 쪽으로 그렇게 몰려들 간다. 군사들의 옆을 지나 전령이 그렇게 뒤에서 달려와 견훤들 쪽으로 간다. 모두들 멈추고 본다. 전령이 와서 군례를 드린다. 온통 흙먼지 투성이다.
박영규 너는 신검 태자마마의 전령이 아니냐?
전령 그러하옵니다.
금강 도대체 무얼 하고 이제서야 왔단 말이냐? 하루종일 너희를 기다리지 않았느냐?
전령 송구하옵니다. 신검 태자마마께서 이끄시는 군대가 지금 유금필 군에 의해 길이 막혀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사옵니다.
견훤 ............. (불쾌하다) ...........?
박영규 뭐라...? 고려 유금필 군대에게 길이 막혔다...? 그 고려군이 얼마나 되길래...?
전령 삼천 가까이 되는 것 같사옵니다.
견훤 뭐, 뭐...뭐... 뭐라고..? 고작 삼천 밖에 아니 되는 고려군에 길이 막혀서 일만이 넘는 군대가 오도 가도 못해..?
전령 고려 장수 유금필에게 우리 본군의 부달, 소달 장군이 전사하였사옵고...
견훤 뭐, 뭐라....? 유금필에게 장군이 둘씩이나 죽었어..?
전령 예, 폐하. 그리하여 지금 계속해 나아갈 것인가, 하루가 꼬박 걸리는 우회길을 돌아서 올 것인가를 논의 중이옵니다.
견훤 그걸 지금 말이라고 와서 하고 있는 것이냐? 신검이 이놈이 또 한번 이 아비를 실망시키는구나. 또 한번 실망시키고 있어....
최승우 폐하, 그럴 수도 있사옵니다. 이미 우리는 유금필이라는 고려 장수의 괴력을 알고 있사옵니다.
견훤 그래도 그렇지... 어이구 이거 속이 터져서... 당장 넘으라고 하라. 그 계곡을 넘어서 당장 이리로 오라고 해. 당장 말이다.
최승우 그쪽 일은 신검 태자마마께 맡기시오소서. 정 불리하면 우회로 올 수밖에 없는 일이옵니다. 시간이 걸려도 올 것이니 폐하께오서 이쪽 군대만으로 싸울 전력을 세우시오소서.
견훤 하는 수 없지. 그럴 수밖에... 들었느냐, 금강아..? 우리만으로 공격준비를 해라. 이제부터는 조심해야 한다. 북쪽을 통해서 온 고려군이 저쪽에서 진을 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금강 예, 폐하.
견훤 우리 군대만으로도 저들보다 많아. 밀어부쳐라. 그대로 밀고 고창성으로 가는 게야.
금강 예, 폐하.
견훤 못난 놈... 신검이 이 못난 놈... 어이쿠....
금강 지금부터 모두 전투대형으로 갖추어라. 부장과 제장들은 편대를 인솔하여 공격대형으로 갖추어라.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라. 고창성으로 향할 것이다.
금강의 말을 복창하는 소리들로 시끄럽다. 온통 수라장이다. 그 시끄러운 모습들을 보는 견훤의 답답한 표정에서...
씬 어느 들판 신검의 군영
여전히 군막들이 그렇게 세워져 있다.
최필 (E) 태자마마, 곧 해가 지옵니다.
씬 동 군막 안
제장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신검이 가운데 서서 말없이 보고 있다.
최필 이미 폐하의 대군이 고창 앞 강변으로 가고 있을 것이옵니다. 해가 지면 전투가 벌어질 것이옵니다.
신덕 그렇게 될 것이옵니다. 태자마마. 조금 늦기는 했으나 지금이라도 유금필 군과 싸워 물리쳐 그 길을 넘어야 하옵니다.
김총 그러하옵니다, 시간이 없사옵니다.
신검 내가 겁이 많아서가 아니오. 벌써 장수를 둘이나 잃었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군사들이 전의를 상실했어요.
종훈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군대를 돌려 우회길을 가시오소서. 우리의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면 폐하께서 곤경을 치르실 것이옵니다.
신검 ...............
애술 태자마마께오서는 우리 군의 총사이십니다. 한번 패한 것을 가지고 이토록 머뭇거리시면 아니 될 일이옵니다. 유금필 군은 소장이 앞장을 서서 뚫겠사옵니다.
용검 장군, 해서 아니 되는 싸움을 굳이 하자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잘 아니 되는 싸움에 군사를 보낸다는 것은 무고한 목숨들만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양검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니 가더라도 금강이가 총사로 있는 페하의 군대는 충분히 저들과 싸울 수 있습니다.
종훈 아니 간다고.... 하셨사옵니까?
모두들 ...............? (신검을 본다)
상귀 태자마마... 우회를 해서라도 가야 하옵니다. 폐하의 군대는 먼 길을 와서 쉬지를 못한 채 지금 적진 속으로 들어가고 있사옵니다. 우리가 돕지 않으면 그만큼 폐하께오서 어렵고 불리해지옵니다.
신검 (버럭) 허면 나를 보고 어찌하라는 말이오? 나아가려니 유금필이가 막고 있고 돌아서 우회해 가자니 이미 싸움이 끝난 뒤에 도착을 하게 되어 있어요. 가나마나한 길을 왜 돌아간다는 말이오? 좀 더 기다려 생각해 보십시다.
최필 폐하의 군대가 이미 적진으로 들어가고 있사옵니다, 태자마마.
신검 알고 있소이다. 어쩔 수 없지요. 지금 우리 입장이 어렵게 되었으니 어찌하겠습니까? 여기서 지켜볼 수 밖에요. 여기서 말입니다.
신검이는 이미 결심을 한 듯 무겁게 중얼거리고 있다. 제장들이 모두 입을 닫고 그런 신검을 본다. 애술도 그렇다. 신검을 보다가 두 형제를 다시 본다. 그리고 종훈을 본다. 종훈은 눈을 감고 있다. 아무도 말이 없다... 그저 신검이의 번뜩이는 표정만 그렇게 살아 있다.
씬 그곳 유금필의 계곡
서서히 서쪽 하늘이 노을로 물들고 있다. 유금필과 박술희가 서로를 보고 있다. 박수문 형제가 함께 해 있다.
박수문 신검의 군대가 이곳에서 이십 리 밖으로 물러나 있다 하옵니다.
박술희 저도 들었습니다, 형님.
유금필 이해가 아니 가는 구먼.. 저들은 우리보다 세배나 군사가 많아. 그런데도 전혀 움직이지를 않고 있어. 이상하지 않은가?
박술희 그러게 말이옵니다. 이 아우도 전혀 납득이 가지를 않사옵니다. 그렇다고 우회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저 들판에 그냥 머물러있다는 것입니다, 형님.
유금필 고창 본군과 주고받은 연락에 의하면 지금쯤이면 백제왕이 거느린 친위군이 낙동강 쪽으로 들어가고 있을 것이야.
박술희 예, 그렇겠지요.
유금필 백제왕이 계곡을 지나 강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신검의 군대와 합쳐 싸우려고 했기 때문이지. 헌데 저들은 저러고 있어. 이미 우리를 밀어내고 이 길을 지난다고 해도 늦은 것이 아닌가?
박술희 그렇지요. 그래서 저도 납득이 아니 간다는 것입니다.
박수문 무언가가 있사옵니다.
박수경 저들이 싸우기를 포기한 것은 분명하옵니다. 왜 그런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분명하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러고 있을 리가 없사옵니다.
유금필 곧 날이 저물 것이야. 어둠이 내리면 저들은 이 계곡을 절대로 올 수가 없어. 이곳은 자네가 맡고 있게. 군사 절반을 나누어 나는 형님 폐하를 도우러 갈 것일세. 이제 이곳은 안심일세. 저들은 오지 않아.
박술희 알겠사옵니다. 제 생각도 그렇사옵니다. 그것 참... 도대체 무슨 일일까? 애술같은 장수가 겁을 먹고 오지 않을 리도 없고... 무슨 일일까..?
유금필 아무튼 그렇게 하세. 나는 형님 폐하께 가겠네. 이 길목을 잘 지키게나.
박술희 염려 마시오소서. 허허 그것 참....
씬 인서트
그 산야에 드디어 노을과 함께 해가 지고 있다. 산은 점차 어두워진다.
씬 강 계곡 (밤)
견훤의 군대가 계곡을 벗어나고 있다. 그 꼬리가 끝도 없이 길게 어둠 속 강변으로 나아가고 있다.
씬 그곳 계곡 산 중턱
홍유와 배현경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홍유 자, 배장군. 이제 저들이 완전히 계곡을 지나 강으로 가고 있소이다. 이렇게 되면 일단계 전략은 성공한 것이올시다.
배현경 그런 것 같소이다. 허면 퇴로를 빨리 막아야지요.
홍유 부장은 들어라.
부장 예, 총사.
홍유 후미에 있는 윤신달, 염상 장군에게 일러라. 이제 적당한 때가 되었으니 소리 없이 퇴로를 완전히 막으라 일러라.
부장 예, 총사
그렇게 부장이 달려간다. 두 장수가 서로를 보며 빙긋 웃는다.
배현경 허면 우리도 이제 군사를 몰아 저들의 후미를 치도록 하십시다. 곧 하늘로 신호가 오를 것이외다.
홍유 허허허... 이거 아주 재미있는 밤이 될 것 같소이다, 장군.
배현경 그럴 것 같소이다. 가십시다..
씬 그 강변
견훤군이 계곡을 벗어나와 강변으로 길게 가고 있다. 견훤도 긴장하였고 최승우, 박영규, 금강들도 긴장했다.
최승우 (주변을 살피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옵니다. 이럴 리가 없사옵니다. 몇 십리 계곡을 다 지나 강 어귀로 나왔는데도 적군이 아니 보이옵니다.
박영규 그것도 그것이지만 신검 태자마마께서 전혀 소식이 없지를 않사옵니까? 협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분명 어려움이 닥칠 것이옵니다.
견훤 겁들 먹을 것 없어. 신검이는 올 것이야. 꼭 올 것이야.
금강 하지만 폐하, 형님께서 유금필의 군대를 넘어섰다면 무슨 연락이라도 취해왔을 것이옵니다. 아무 소식이 없사옵니다.
견훤 조금 늦을 수도 있겠지. 어둠 속에 보이는 강변이 참 아름답구먼. 그래... 이 낙동강변은 길기도 하지만 어딜 가도 아름다워....
기분을 내며 수염을 쓰다듬는다.
씬 강변 숲속
견훤군들이 그렇게 강변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있다. 삼태사가 어찌할 것인가를 눈으로 묻고 있다.
최응 보시오소서, 폐하. 저기..... 백제왕인 것 같사옵니다. 백마를 타고 잇사옵니다. 저기... 보이시옵니까?
왕건 그런 것 같네. 틀림없네. 백제왕일세.
김선평 폐하, 신호를 올리오리까? 대군이 우리 안으로 들었사옵니다.
왕건 그리 하도록 하시오. 때가 된 것 같소이다.
김선평 김행 장군, 신호를 올리라 하시오.
김행 알겠소이다. 자, 장장군, 때가 되었소이다. 신호를 올립시다.
장정필 신호를 올려라. 신호를 올려라...
씬 그 강변
견훤이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며 오고 있는데 강변 하늘로 불화살이 오르기 시작한다. 주춤하며 보는 견훤. 연이어 불화살이 사방에서 오른다.
금강 적병이옵니다, 폐하.
견훤 서두르지 마라. 이미 예상한 일이 아니냐? 적을 맞을 준비를 하라.
금강 제장들은 무얼하느냐? 적을 맞을 준비를 하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하늘로 불덩어리가 날아온다. 그리고 연이어 사방에서 수십, 수백의 불덩이들과 돌덩이들이 날아오기 시작한다.
박영규 폐하, 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사옵니다. 군사들이 아니라 석포와 불덩이로 우리를 공격하옵니다.
견훤 막아야지. 막도록 하라...
그러나 돌덩이와 불덩이들이 쉴새없이 날아온다. 군사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 강변에 묻어두었던 염초 더미들이 불덩이에 맞아 폭파되기 시작한다. 불이다. 온 강변에 불이 붙기 시작한다.
금강 폐하, 아니 되겠사옵니다. 적의 군대가 있는 것이 아니라 화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사옵니다. 저곳은 갈대밭이옵니다. 피하시오소서. 저곳에 불이 붙으면 겉잡지 못하옵니다. 일단 군대를 물리셔야 하옵니다.
견훤 이런 일을 보았는가? 고려군들은 보이지 않고... 불이라... 불.....
불길은 점점 더 일기 시작한다. 말과 군사들이 수없이 불 속에 쓰러지기 시작한다. 돌덩이도 쉬임 없이 날아든다. 그리고 이어서 함성이 들린다. 보면 유금필 군이 나타나고 있다. 박영규가 소리친다.
박영규 폐하, 저자가 유금필이옵니다. 유금필이옵니다, 피하시오소서.
견훤 유금필....? 아니, 신검이 있는 곳에 있을 자가 어떻게 이곳에 나타났다는 말인가?
금강 피하시오소서, 군사들이 밀려오고 저쪽에서는 불길이 덮치고 있사옵니다.
다시 와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화살이 비오듯 쏟아진다. 그쪽에서는 김선평과 김행, 장정필들이 이끄는 군대가 덮치고
있다.
김선평 우리 고창의 세 호족이 너를 기다린지 오래이니라. 견훤왕은 목을 내놓거라.
견훤 이게 어떻게 된 것이야? 서둘지 마라. 우리가 군사가 많다. 서둘지 마라. 신검이... 신검이 이 놈은 어떻게 된 것이야.... 유금필이가 여기 와 있는데 제 놈은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것이야...?
씬 신검의 군영 앞
신검이 혼자 뒷짐을 지고 생각에 잠겨 있다. 그 얼굴이 긴장해 있다.
신검 (E) 그래... 오늘밤은 이러고 있는 것이 좋다. 구태여 무리해서 갈 필요가 없어. 금강이가 총사로 앞을 서고 있어. 고려의 군대와 고창의 저 지독한 군사들이 똘똘 뭉쳐서 기다리고 있는 곳이야. 차라리 이 기회에.... 금강이도 그리고 아버님도... 끝이 나면 좋겠구나. 끝이 나면 좋겠어.... 오늘밤에 끝이 났으면 좋겠어.... 모든 것이 다 깨끗하게 끝이 났으면 좋겠어...
<169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