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 177회>
고려의 책사 최응은 잠시 황궁을 내주어 무의미한 피해를 줄이자하나 박술희를 비롯한 여러 장수들은 지원군을 기다리며 맞서 싸우길 주장한다. 백제군은 절대적인 수적 우세를 앞세워 본격적인 공략에 돌입하고 고려의 수비군들은 중과부적으로 결국 황궁을 포기한다. 황궁을 아비규환으로 만들던 신검일행은 왕건이 때마침 서경에 있음을 알고는 안타까움에 탄식하는데... 이 시각 황도 함락소식을 들은 왕건은 서둘러 환궁을 명하며 자신의 나태함을 책한다. 한편, 백제의 신검일행은 예성강포구에 다시 모여 승리를 자축하고 책사 최승우는 고려의 최응을 포구로 초대하고 최응 역시 옛 벗의 초청에 기꺼이 응한다. 바야흐로 天下를 건 천재들의 만남은 다가오는데....
씬 고려 황궁 외경 (새벽)
신검군이 불야성을 이루며 궁을 보고 있다. 신검이 말한다.
신검 눈앞에 보고 있으면서도 실감이 나지를 않습니다, 파진찬. 우리가 고려 황도에 와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가 않아요.
최승우 허나 사실이옵니다.
애술 총사, 군령을 내리시오소서. 곧 날이 밝사옵니다.
최승우 날이 밝으면 회군을 해야 하옵니다. 어서 영을 내리시오소서.
신검 물론입니다. 공격을 해야지요. 그리고 고려왕을 잡아야지요. 얼마나... 많은 세월을 노려왔습니까? 몇 번씩이나 잡았다가 놓치고 또 잡았다가 놓치고.... 이번에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지요.
최승우 대문이 굳게 잠겨 있사옵니다. 아무래도 충차로 부셔야 할 것 같사옵니다.
신검 그리 하십시다. 애술장군?
애술 예, 총사.
신검 적은 불과 몇 백이라 들었습니다. 충차를 대령하고 기마대를 앞세우시오. 빨리 끝을 내십시다.
애술 예, 총사. 충차는 앞을 서라. 대문을 부수어라. 기마대는 앞을 서라.
명령과 동시에 충차와 기마대가 전열을 정비해서 선다. 그 혼란 속에서 애술이 친구를 보았다. 박술희가 궁안에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애술이 웃는다.
씬 그곳
박술희도 애술을 보았다. 이미 궁에서 보는 백제군은 모든 공격 준비가 끝나 보인다. 어마어마한 대군이다. 그 위용이 엄청나다. 애술이 외치고 있다.
애술 또 만났구나. 박술희... 나 애술이다...
박술희 오냐... 백제의 못난이가 여기까지 어쩐 일이냐?
애술 네 황제의 목을 가지러 왔다.
박술희 하하하... 멀리까지 오느라 고생들 했다. 그러나 너희들은 쉽게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씬 다시 그곳 밖
신검과 최승우가 보고 있다. 모두들 보고 있다.
신검 저자가 박술희 아닙니까?
최승우 예, 총사. 고려왕의 의제이옵니다. 용맹하기가 범같은 장수이옵니다.
신검 허허, 그 옆에 아는 얼굴들이 꽤 있는 것 같소이다.
배현경과 홍유가 얼굴을 드러내며 말한다.
배현경 백제의 태자가 어쩐 일인가? 어쩐 일로 이 새벽에 남의 집에 마실을 왔는가?
신검 허허허... 방금 우리 애술 장군이 말하지 않았느냐? 고려왕의 목을 가지러 왔느니라. 어서 궁문을 열고 항복하라.
애술 어서 항복하라.
박술희 너희들은 이 궁문을 열지 못할 것이다. 궁수들을 무얼 하느냐? 쏘아라...
명령과 동시에 화살이 비오듯 날아간다. 신검 쪽에서도 애술이 공격령을 내린다.
애술 적은 몇 아니 된다. 충차는 무얼 하느냐? 궁문을 부수어라. 군사들은 방패로 막으며 진군하라. 담을 넘어라. 기마대는 무얼 하느냐? 담을 넘어라. 공격하라... 공격하라...
접전이 붙었다. 수많은 화살들이 오가고 있다. 충차가 다가가기 시작한다. 박술희들의 화살에 맞아 숱한 백제군들이 쓰러진다. 그러면서도 충차는 다가간다. 그리고 부수기 시작한다. 아비규환이다. 처절한 접전이다.
씬 그곳 궁안
박술희와 장수들이 소리소리 지르며 독전하고 있다.
박술희 적병이 성을 넘게 해서는 아니 된다. 있는 대로 퍼부어라.
홍유 쏘아라. 저들을 절대로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라.
그때, 부장 하나가 달려와 소리친다.
부장 장군, 충차가 궁문을 부수고 있사옵니다. 곧 부서져 열릴 것 같사옵니다.
배현경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막아라. 막아야 하느니라. 그쪽으로 퍼 부어라.
부장 중과부적이옵니다. 아무리 죽어도 계속해 밀려오고 있사옵니다. 아군의 희생이 크옵니다, 장군.
그렇다. 궁 안의 군사들도 속절없이 죽어가고 있다. 불화살이 날아와 곳곳에 불이 붙기 시작하였고 이미 저 한쪽에서는 대문이 부서져 넘어가는 것이 보인다.
윤신달 아니 되겠습니다. 도저히 수적인 열세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왕충 적병이 이미 담을 넘고 있습니다. 피해야 합니다.
박수문 (달려오며) 박장군, 궁문이 부서졌습니다. 적들이 까맣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박수경 어서 피하십시다. 여기는 아니 됩니다. 어서요.
박술희 이런, 젠장.... 이게 무슨 꼴이라는 말인가?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이라는 말인가...?
박수경 어서요, 어서 피해야 합니다.
씬 그곳 궁문
궁문이 부서져 넘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위로 군사들이 밟고 궁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신검과 애술이 계속 영을 내린다.
신검 왕을 찾아라. 고려왕을 찾아라. 궁안을 샅샅이 뒤져라.
그러면서 신검이 최승우와 함께 들어서고 있다. 감격스러운 듯 최승우가 주변을 보며 함께 들어간다.
씬 그 궁안 어느 곳
내관, 궁녀들이 아직도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있다. 복지겸이 군사들과 함께 보고 있다. 최응이 옆에 있다.
복지겸 내관들은 도망치지 마라. 전각에 불이 붙거든 물동이를 길어다 불을 꺼라. 내군들은 무엇 하느냐? 내관들을 단속하라.
그때다. 박술희와 장수들, 군사들이 몰려온다.
복지겸 어찌 되었소이까?
홍유 중과부적이올시다. 후문으로 일단 몸을 피하십시다.
복지겸 결국 이렇게 되었구려. 이렇게 되었어요.
배현경 가십시다. 어서 가십시다. 적군이 궁안으로 들고 있소이다.
최응 당황할 필요는 없습니다. 잠시 지나가게 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저들도 시간이 없습니다. 자, 피하시지요.
복지겸 저쪽으로... 저쪽으로 가십시다. 출구가 준비되어 있소이다.
그들이 달려간다. 그리고 중문을 닫아 버린다. 계속해 간다.
씬 그곳 그 자리
신검과 군사들이 들어서고 있다. 아우성이다. 곳곳에서 백제군들이 불을 지르거나 내관과 궁녀들을 베고 있다. 신검이 부장들과 함께 걸어서 들어오고 있다. 그는 점령군이다. 여유있게 주변을 돌아보고 있다.
신검 고려왕이 있는 곳이 어디인가? 대전을 찾아라. 부장들은 무얼하느냐? 대전이 어디인가 알아보라.
그때, 늙은 내관 하나를 애술의 부장이 잡아 끌고 왔다. 신검이 본다.
내관 살려주시오소서, 살려주시오소서, 장군들....
신검 너희 왕은 어디에 있느냐?
내관 폐하께서는 서경으로 가 계시옵니다.
신검 서경.....? 서경이라는 곳이 어디더냐?
최승우 평양을 일컫는 것이옵니다. 이들은 그곳을 서쪽 도읍이라 하여 서경이라 하옵니다.
신검 뭐라......? 그렇다면 너희 왕은 이곳에 없다는 말이냐?
내관 그러하옵니다, 장군.
신검 아뿔싸... 우리가 그것을 몰랐던 모양이구려.
애술 (칼을 들이대며) 네 이놈, 그것이 거짓이 아니렸다..? 너희 왕이 평양에 가 있는 것이 분명하렸다..?
내관 예, 예, 장군... 사실이옵니다. 살려주시오소서.
신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기회인데 고려왕이 이곳에 없다니...? 가 봅시다. 대전과 편전이 어디인지, 앞서라.
내관 예, 예, 장군.... 바로, 저기.. 편전은 저기이옵고, 대전은 그 뒤이옵니다.
신검 가보자.
그들 그렇게 내관을 앞세워 간다.
씬 편전 복도
신검들이 들어서고 있다. 그대로 방문들을 걷어차면 문짝이 떨어져나간다. 곳곳에 불길이 붙고 있다. 그리고 신검이 한곳에 이르면 휘장을 검으로 베어버리면... 거기 편전의 빈 옥좌가 보인다.
신검 (주먹을 불끈 쥔다) 저곳이 고려왕의 옥좌인 것 같소이다.
최승우 그러한 것 같사옵니다. 고려왕은 이 궁 안에 없는 듯 싶사옵니다. (긴 한숨) 아무래도 어려울 모양이옵니다.
신검이 입을 다문다. 그리고 한참 주변을 돌아보다가 빈 옥좌에 가 앉는다. 신료들처럼 애술과 최승우들이 그 옆에서 본다.
신검 좋다... 옥좌가 좋기는 좋다. 앉아보니 아주 좋아.
모두들 .............
신검 이놈의 옥좌가 무엇인지...? (하다가) 허나 이제 어찌한다는 말이오? 고려왕이 없다고 하지를 않소이까?
애술 총사, 이렇게 억울할 때가 있사옵니까? 고려의 황궁에 들어왔는데 고려왕이 없다니요?
신검 (벽을 친다) 정말 운이 닿지를 않습니다. 기가 막히게 저 바다를 지나고 예성강을 지나고 황궁으로 들어왔는데 왕이 없다니요? 왕이 없다니요?
최승우 고려왕의 목숨이 질기다고 하지 않았사옵니까? 자, 서두르시오소서. 이미 날이 밝고 있사옵니다.
신검 아니오. 더 찾아 보십시다. 어디 궁안에 숨어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얘들아, 부장들은 들어라.
부장들 예, 총사
신검 찾아라. 이 궁안을 이 잡듯이 뒤져보아라. 어딘가 숨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샅샅이 뒤져라.
부장들 예, 총사.
신검 그리고 참으로 왕이 없다면 그 혈족들이라도 남아 있을 것이 아닌가? 황후들도 좋고 태자도 좋고 있는 대로 다 찾아보아라. 한둘이라도 잡아서 끌고 가야 체면이 설 것이 아니냐?
부장들 예, 총사. (그들 그렇게 대답하며 흩어져 나간다)
신검 (다시 옥좌를 두드려보며) 좋다... 옥좌가 참 좋다. 좋기는 좋다...
애술 ........... (씩 웃고) 그렇사옵니까? 그렇게 좋사옵니까?
신검 다 이곳에 앉아 보려고 그렇게 몸부림을 치는 게 아니겠소이까? 이 옥좌가 대체 무엇이라고... 어흠....
씬 동 궁안 마당
편전에서 나온 부장들이 소리치며 몰려가고 있다.
부장1 고려왕의 주변은 모두 잡으랍신다. 샅샅이 뒤져라. 전각들마다 모두 뒤져라.
씬 다시 그 궁궐 후원
대문이 잠겨있고 대나무 숲이 가득하다. 내군 둘이 번을 서고 있다.
씬 동 후원 방안
황후들이 숨어 있다.
오씨 난군들이 벌써 성안에 들었다고 하네.
유씨 설마 여기까지 오겠사옵니까? 이곳은 숲속 깊이 가려져 있어서 찾아내기 어렵다 하옵니다.
오씨 어쩌는가? 이곳까지 오면 어쩌는가? 온다면 끌려가기 보다는 자결을 해야 할 것이야.
유씨 이를 말이옵니까?
그녀들은 그렇게 두렵게 문밖 동정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 두려운 표정들에서...
씬 다시 궁안 마당
여전히 어지럽게 난군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씬 다시 그 편전 안
신검이 옥좌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서성거리고 있다. 최승우가 말한다.
최승우 총사, 어차피 고려왕을 잡기는 늦은 것 같사옵니다. 궁안을 다 뒤져도 고려왕의 주변 인물들은 없다 하옵니다. 서둘러야 할 것 같사옵니다.
신검 어떻게 말이오? 그냥 가자는 것이오?
최승우 고려왕의 명이 긴 것을 어찌하겠사옵니까? 우리는 고려의 수군을 궤멸시켰고 예성강에 상륙하였으며 황도를 유린하였사옵니다. 그것만으로도 고려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는 엄청난 전과이옵니다. 속히 이곳을 빠져나가야 하옵니다.
신검 이대로 말이오이까?
최승우 예, 총사. 고려의 황궁을 수비하는 방위군이 곧 도착할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엄청난 부담이 되옵니다. 일단, 포구 쪽으로 군사를 되돌려 재정비하지 않으면 아니 되옵니다.
신검 아, 억울하오. 참으로 억울하오. 이곳까지 와서 이게 무슨 꼴인가? 너무도 억울하오.
신검은 옥좌를 걷어 차버린다. 분을 삼키는 그 표정에서 디졸브...
씬 궁안
날이 밝고 있다. 동녘이 훤히 터 오고 있다. 곳곳이 불이 타거나 쓰러진 궁녀, 내관의 시체들로 즐비하다. 신검과 최승우, 애술들이 걸어 나오고 있다. 군사들의 대열이 이리저리 지나치는 것이 보인다.
최승우 서둘러야 하옵니다, 총사.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사옵니다.
신검 가십시다. 하긴 이 정도만 해도 고려국 전체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성과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요.
애술 그러하옵니다. 우리는 저들의 황궁을 점령했었사옵니다.
신검 하하하... 좋소이다. 아니 되는 일을 가지고 아쉬워한들 무엇하겠소이까? 고려왕에 대한 미련은 이쯤 접읍시다. 예성강 포구로 돌아가 전열을 정비하십시다. 애술 장군..? 돌아가십시다.
애술 예, 총사. 부장들은 들어라. 시간이 없다. 군사들을 정비하라. 포구로 돌아갈 것이다. 군사들을 정비하라.
신검 (궁을 돌아보며) 아깝도다.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가다니...? 아깝도다... 고려의 이 황궁을 두고 그냥 가다니..? 참으로 아깝도다.
그렇게 끄덕이는 신검의 표정에서.. 천천히 디졸브되면....
씬 고려 황궁 (아침)
정문을 통하여 백제군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들은 천천히 포구 쪽을 향해 행군해 간다. 곳곳에 부서지거나 타버린 전각들과 시체들뿐이다.
애술 태자마마, 고려의 황도가 아주 폐허가 되어 버렸사옵니다.
신검 허나 고려왕을 잡지 못한 것은 아쉽습니다. 두 번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에요.
최승우 허허허... 쉽지 않은 기회였지요. 허나 어찌 하겠사옵니까? 이쯤으로 만족하시오소서.
신검 그럴 수밖에요. 고려가 자랑하는 수군을 다 부수었습니다. 그만해도 폐하께서는 큰 칭찬을 내리실 것입니다. 이제서야 참으로 아버님의 웃으시는 용안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파진찬의 은혜가 큽니다.
최승우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다, 태자마마의 덕이시옵니다. 허허허..
애술 지금쯤 염주와 정주로 갔던 우리 군사들이 예성강 쪽으로 올라오고 있을 것이옵니다.
최승우 그럴 것입니다. 어서 가시지요, 태자마마...?
신검 그러십시다. 서둘러라. 포구로 가자. 어서 가자.
그들 그렇게 간다. 그 모습에서 디졸브되면...
씬 그 궁문 일각
멀리서 슬며시 복지겸이 나타나고 있다. 최응과 문신들도 보인다.
복지겸 최공의 말처럼 썰물이 지나간 것 같습니다. 다 가버렸어요.
최응 하늘이 도왔습니다. 폐하께서는 하늘이 도우셨습니다. 다른 장수분들은.......?
복지겸 지금 궁 안에서 회의를 열고 있소이다. 우리도 들어가십시다. 그래도 모두들 철저히 준비를 했다가 수습을 했기로 더 큰 방화도 막고 궁을 제대로 보전할 수가 있었소이다.
최응 그렇습니다. 이만해도 아주 다행이올습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이라는 것이 이를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있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다 최승우 그 사람의 장난입니다. 백제의 파진찬 최승우라는 사람 말입니다.
씬 궁안 길
황후들이 내관과 상궁들의 인도 하에 들어서고 있다. 곳곳에 불을 끄거나 불탄 것들을 치우거나 하는 군사들과 내관들로 아우성이다. 오씨와 유씨가 기가 막혀 보며 가고 있다.
오씨 이게 도대체 웬 난리라는 말이냐? 백제의 군사가 우리 황궁을 이처럼 유린하고 가다니...? 믿어지지가 않는구나.
유씨 그렇게 말이옵니다. 어떻게 백제의 군사가 우리 황궁에 들어올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오씨 이보게, 제조상궁...? 평양에는 연락이 갔다던가..? 서경 말일세.
제조상궁 예, 황후마마. 내군 장군께서 변란을 알자마자 즉시로 전령을 띄운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유씨 장수들과 신료들은 어찌하고 있는가?
김상궁 지금 모두들 광평성으로 들어서 회의를 열고 있는 것으로 아옵니다.
오씨 악몽이로다. 이야말로 악몽이 아니고 무엇인가? 지난 하룻밤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 일이로구나.
그들 그렇게 간다.
씬 광평성 안
문무신료들이 모두 모여있다. 최응, 복지겸, 추언규, 왕규, 홍유, 배현경, 박술희, 윤신달, 왕충, 박수문 형제들이다.
홍유 참으로 엄청난 폭풍이 휩쓸고 지나갔소이다. 믿기지가 않는 폭풍이었어요.
배현경 우리 대 고려국의 치욕적인 날이었소이다. 폐하의 용상이 짓밟혔소이다. 온 황궁이 적도들의 발에 밟혔소이다.
박술희 아직 적은 물러나지 않았소이다. 지금 예성강 포구에 새롭게 진을 치고 다시 우리 황도를 노리고 있어요. 우리 군대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것입니까? 황도 주변에 있는 군대들은 다 무얼 하고 있어요?
복지겸 황궁의 방위군 총사는 염상 장군이 맡고 있소이다. 가까운데는 오십 리, 먼 곳은 백여 리에 걸쳐서 군대가 둔을 치고 있소이다. 저들이 모여 여기까지 오려면 아침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오고 있을 것입니다.
윤신달 그 염상 장군의 군대는 모두 얼마나 됩니까?
복지겸 일 천 정도가 된다 들었습니다.
박수문 백제의 군사는 삼천이 다 된다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더 많은 군대를 동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복지겸 아무래도 내군을 책임진 사람으로서 볼 때에 더 많은 군사를 들여오자면 이삼일은 걸려야 할 것이외다.
홍유 치욕이올시다. 백제에게 완전히 당했소이다. 지금쯤 폐하께서도 이를 아실 것인데 이를 어찌하면 좋소이까?
배현경 당한 것은 당한 것이고 저들을 여기서 몰아내야지요. 내군은 서둘러서 주변 군단에 파발을 띄워서 군대를 부르도록 하시구려. 서두르십시다. 그리고 폐하께도 다시 저들이 황궁에서 물러났다는 것을 알려드리십시다.
복지겸 알겠소이다. 그리 하겠소이다. 허, 이것 참... 폐하께서는 지금쯤 백제군이 황궁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만을 받고 계실 것인데 얼마나 놀라고 계실꼬...?
난감해 하는 복지겸의 표정에서..
씬 서경 외경
왕건 (소리) 무엇이라고........?
씬 동 행궁 거소 안
정윤 무와 왕식렴, 김행선 그리고 서경의 호족들이 함께해 있는 가운데 왕건이 부들부들 떨며 전령을 보고 있다.
왕건 백제군이... 백제군이 우리 황도로 들어왔다는 말이냐?
전령 그러하옵니다, 폐하.
왕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냐? 어떻게......? 우리 강과 바다를 지키는 수군들은 다 무얼 하였다는 말이냐?
전령 백제의 수군이 당나라의 무역선으로 위장하고 들어와 모두들 꼼짝없이 당했다고 하옵니다.
왕건 오오.... 그래서 간밤의 꿈이 그토록 불길하였구나. 그래, 우리 피해는 얼마나 된다 하더냐?
전령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백주와 염주, 정주의 수군 기지에 있던 전함 백여 척이 모두 불에 탔다 하옵니다.
왕건 (벌떡 일어나며) 무어라...? 백여 척이나 되는 전함이 다 탔다는 말이냐?
전령 예, 폐하.
김행선 (후들후들 떨며) 세상에... 세상에.... 우리 수군의 배들이 다 탔다...? 다 탔어...?
왕식렴 그것이 사실이렸다..?
전령 예, 사실이옵니다. 뿐만 아니오라 수군 기지들 마저 다 탔사옵고 수많은 군사들이 저들의 기습을 받아 헤일 수 없이 죽었다 하옵니다.
무 아바마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당장 황도로 가야하지 않겠사옵니까?
왕건 그래야겠구나. 그러면 저들이 황도에 상륙을 하였다고 하였는데 너는 어디까지 알고 온 것이냐?
전령 저들의 군대가 황궁으로 난입하기 직전에 이곳에 왔사옵니다.
왕건 (도리질하며) 믿기지가 않는다. 이야말로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믿기지가 않아. 이보게, 식렴아우...?
왕식렴 예, 폐하.
왕건 빠른 말들을 준비하라. 당장 황도로 돌아갈 것이다. 어서...
왕식렴 예, 폐하. 부장들은 들었는가? 폐하께서 환궁하신다. 대오를 정비해 드려라. 서둘러라...
부장들 예, 총관어른.
왕건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정신이 하나도 없군... 한동안의 승리에 취하여 미처 발 밑의 구멍을 보지 못하였구나. 큰 실수를 하고 말았어. 오, 이런...
그런 왕건의 표정에서...
씬 길
왕건 일행들이 온 힘을 다해 달리고 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이 지나쳐 가면...
씬 예성강 포구
신검과 최승우, 애술들이 오고 있다. 기다리고 있던 상귀, 신덕, 최필, 파달, 상애 그리고 양검, 용검, 종훈, 김총들이 맞는다.
그들 어서오시오소서, 총사.
신검 오, 무사히들 왔구려. 전령을 통해 보고는 들었소이다. 고려의 수군을 궤멸시켰다구요?
그들 예, 총사.
신검 잘들 해주었소이다. 우리 또한 고려의 황궁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소이다. 모두들 간이 콩알만해 졌을 것이오.
신덕 참으로 치하드리옵니다, 태자마마. 한동안 불운하시어 열심히 싸우시고 공을 세우셨음에도 세상에 그를 몰라주었으나 이제는 태자마마의 시절이 왔사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태자마마.
모두들 감축드리옵니다, 태자마마.
최승우 .............?
신검 고맙소이다. 오늘의 이 빛나는 전공은 나의 힘이 아니라 모두가 군사로 나온 파진찬의 계책에 의해서였소이다. 파진찬, 고맙소이다. 다시 한번 고마움을 드리는 바이오.
최승우 태자마마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부끄럽사옵니다.
신검 아닙니다. 파진찬은 분명 우리 백제가 자랑하는 천재의 한분이올시다. 앞으로도 계속하여 이 사람을 도와주시구려. 부탁드립니다.
최승우 이미 나라를 위해 바친 몸이옵니다. 무슨 일인들 못하겠사옵니까? 나라와 폐하를 위한 일이면 무엇이든 할 것이옵니다.
신검 나를 좀 도와달라고 하였소이다.
최승우 그것이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돕겠사옵니다.
신검 고맙소이다. 자, 제장들은 들으시오.
모두들 예, 총사.
신검 우리는 목적한 바를 거의 이루었소이다. 안타깝게도 고려의 왕은 서경에 가 있기 때문에 그 목을 취하는 것은 실패하였소이다. 그러나 우리는 승리했소이다. 고려가 자랑하는 막강 수군을 모조리 궤멸시켰고 이 황도를 불바다로 만들었소이다. 우리는 이겼소이다.
신검이 손을 흔들자 제장들이 모두 열렬히 환성을 지르며 환호를 한다.
신검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고려가 자랑하는 수군을 무찔렀다는 것이오. 회복 불능할 정도로 다 태워버렸소이다. 수고하였소이다. 상귀 장군.
상귀 망극하옵니다, 총사.
신검 양검과 제장들도 수고하였노라.
그들 황공하옵니다, 총사.
신검 이제 이 바다는 백제의 것이오. 삼한의 모든 바다가 다 백제의 것이 되었소이다.
모두들 와하며 환호를 계속한다.
신검 고려의 황도를 지키는 방위군은 염상이라는 장수가 맡고 있다 하는데 불과 일천여 명이라 합디다. 우리는 이곳에서 이틀간 머물며 배와 군사들을 정비하고 돌아갈 것이오. 그 동안 수고한 많은 장졸들은 번을 나누어 충분히 쉬면서 먹고 마시도록 하오. 군수를 책임진 장수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충분히 내도록 하라.
장수들 예, 총사.
신검 자, 진을 치고 모두 제자리를 지키며 쉬도록 하오.
장수들 예, 총사.
신검 우리 백제국의 황도로 전령은 띄웠는가?
부장 예, 총사. 시시각각 전령을 계속 보내어 이곳 사정을 전하고 있사옵니다.
신검 (끄덕이며) 폐하께서 이 소식을 들으시면 참으로 기뻐하실 것이야. 암, 그렇구 말구... 우리가 아직도 고려의 황도에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감격적인가, 이 얼마나....?
그런 신검의 표정에서 천천히 디졸브된다.
씬 동 군영 전경 (부감)
씬 동 군영
군막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바다 쪽에는 선박들이 가득해 보이고 군사들이 바쁘게 오가는 것이 보인다. 경계병들은 경계를 엄히 곳곳에 서고 있다. 그 한쪽에서는 왁자한 웃음소리들이 들려온다.
씬 어느 군막 안
장수들과 술자리가 벌어졌다. 신검이 중심에 앉아 호쾌함을 부리고 있다.
신검 우리는 이곳에서 한 이틀 더 푹 쉬고 나서 배도 수리하고 군사들의 피곤도 풀고 나서 아직 두어 군데 남아있다는 고려수군들의 진영도 다 찾아서 없앨 것이오. 기왕에 청소를 하려면 아주 깨끗이 할 필요가 있어.
양검 하지만 형님 이제 다 끝난 일이 아닙니까? 그까짓 잔챙이들을 찾아가면서까지 없애야 할 일이 무엇이옵니까? 저절로 다 끝이 날 것이옵니다.
애술 그러하옵니다. 고려의 수군 중 그 주력군은 이미 다 불이 타버렸사옵니다. 남아있는 것들은 그야말로 쓸모 없는 것들뿐이옵니다.
신검 그래도 그렇지가 않아요. 아주 씨를 말리자는 것이야, 내 이야기는... (주변을 보다가) 헌데 파진찬은 어디를 갔는가?
최필 허허허... 본래 술을 못하시니 답답하여 나가 계시는가 보옵니다.
신검 하하하... 그래도 술은 좀 해야하는 것인데... 사내가 술을 못마시면 참으로 재미가 없거든... 자, 자세한 얘기는 회의에서 다시 논하기로 하고 듭시다. 오늘은 아주 푸짐히 마셔 보십시다.
모두 잔을 든다. 와 하며 마시는 그들의 표정에서...
씬 동 군영 최승우의 처소 안
최승우가 뭔가 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한참 생각하다가 다시 쓴다.
최승우 (소리) 고려의 신동 최응공에게 백제의 늙은이가 인사를 전하는 바이오. 나는 그 동안 백제를 운영하였고 그대 신동은 고려를 경략하였소이다. 오늘 잠시 때가 되어 이곳 예성강을 오게되었고 그대의 황궁을 구경하였소이다. 기왕에 여기까지 와서 그대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면 섭섭할 것이오. 조물성에서의 우정을 생각하여 글을 보내 청하니 내일 저녁 차 한잔 나눔이 어떠하오..? 인편을 시켜 보내니 자리를 함께 해 보십시다. 기다리겠소이다.
최승우가 끄덕이며 만족한 듯 웃는다. 그 서찰을 돌돌 말아 봉투에 넣고 사람을 부른다.
최승우 게 있느냐...?
소리 예, 파진찬 어른.
문이 열리고 들어선다. 이미 그는 일반의 미복차림이다.
최승우 내가 이른 대로 고려의 황도로 들어가 최응공을 찾아 전하거라. 틀림없이 올 것이다. 속히 가 보거라.
군졸 예, 파진찬 어른.
군졸이 받아서 품에 넣고 곧 자리를 뜬다. 최승우는 포구의 먼 바다를 본다. 그리고 또 중얼거린다.
최승우 허허허... 다 덧없는 것이로고... 아무리 이 강을 취하고 저 산을 취한들 그것들은 본래 주인이 없는 것이로다. 무엇을 욕심내어 우리가 이토록 싸우고 있다는 말인가? 내 인생도 그리 많이는 남지 않았고.... 고려를 운영해 온 최응이 또한 이제 그 목숨이 다 되었다. 앞으로 누가 이 강산을 운영하여 또 다툴 것인가? 부질없는 세월이로다.
그런 최승우의 깊은 사색으로...
씬 고려 황궁 앞
염상의 군대가 달려오고 있다. 궁문 앞에 가까이 이르자 기다리고 있던 내군들이 맞는다.
염상 대체 어찌된 일인가? 백제군은 어디에 있는가?
군관 포구 쪽으로 물러가 진을 치고 있사옵니다.
염상 포구 쪽이라....? 다른 제장과 신료들은 어디에 있는가?
군관 지금 궁안에서 회의를 거듭하고 있사옵니다.
염상 알겠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 회의에 참석을 해야 한다. 부장들은 첨병을 풀어서 적진을 살펴 보고하도록 하라.
부장들 예, 장군.
염상 (말에서 내려가며)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로다. 어떻게 백제군이 이곳까지 올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면....
씬 동 광평성 안
신료들이 여전히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최응이 몹시 피곤한 표정이다. 계속 눈을 감고 있다가 간신히 떠서 보고 또 감는다.
박술희 폐하께서 돌아오고 계실 겝니다. 헌데도 우리는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소이다.
홍유 황도 주변에 있는 군대가 다 모이기까지는 이삼 일이 소요된다고 했소이다. 그 동안에는 어쩔 수가 없소이다.
배현경 이미 황도 주변의 모든 바다는 백제의 수중으로 넘어갔소이다.
복지겸 수군이 궤멸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소식이올시다. 이렇게 당했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를 않아요.
추언규 문책이 따라야지요. 예성강과 그 주변 바다를 책임진 수군 장수들은 모두 군령에 따라 문책을 받아야 합니다. 모두 목을 베는 참형에 처해야 할 것입니다.
그때, 염상이 갑주소리를 내며 들어와 예를 표하고 자신의 자리에 앉는다.
염상 송구하오이다. 군사들을 부지런히 재촉하여 왔음에도 다 끝이 난 뒤였소이다. 이제부터 누구의 지휘를 받아야 하오이까?
박술희 폐하께서 아니 계십니다. 황궁의 일은 내군 장군의 소관이나, 그 밖의 일은 서열이 높은 공신들이 맡아야겠지요. 여기 홍유 장군과 배현경, 복지겸 장군, 세 분이 의논하고 있는 중이오.
염상 지금 백제군이 예성강 포구 쪽에 진을 치고 있다 들었습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공격을 하오리까, 마오리까?
박수문 그 용기는 가상하시나 수적으로 열세올시다. 저들은 오십 척이 넘는 전함과 삼천에 가까운 용맹한 군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황도 주변의 군사가 다 오기까지에는 두고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왕충 치욕이올습니다. 황궁을 유린당하고 도성 곳곳이 다 불에 탔습니다. 우리 수군이 궤멸되었는데도 두고만 보다니요.
윤신달 그렇소이다. 우리들 모두 한다 하는 이름 깨나 얻은 장수들이올습니다. 이렇게 탁상공론만 할 것이 아니라 저들 속으로 달려가 차라리 죽음을 맞는 것이 폐하와 백성들 앞에 속죄하는 길일 것입니다.
왕규 허나 장군, 이럴 수록 침착해야 하오이다. 폐하께서 오시면 그때 죽고 살고를 결정해도 늦지 않소이다. 지금은 모두가 어려운 때입니다. 감정보다는 힘을 모으고 지혜를 모을 때인 줄로 압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최공...?
최응 (억지로 피곤함을 참으며) 예, 내봉성의 말씀이 참으로 올습니다. 감정은 금물입니다. 폐하께서 오실 때까지 궁안을 더욱 치우고 정비하여 다음 일을 준비하는 것이 우리들의 할 일일 것입니다.
박수경 그러나 적군이 우리 턱 앞에서 모여있는데 보고만 있다는 것도 우습지 않습니까?
홍유 그건 그렇소이다. 염상 장군...? 일단 저들과 경계를 마주하면서 오고 계시는 폐하께 다시 전령을 띄우고 황도 주변의 군대와 합류하도록 하십시다.
염상 이미 그러한 조치들을 취했습니다. 허면 소장은 백제군과 경계하는 쪽에 나가 일선을 점고하겠습니다.
배현경 지금은 국가 비상사태이올시다. 박수문 장군 형제분이 가서 도와드리면 어떻겠소이까?
박수문 예, 장군.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우, 가세나?
박수경 예, 형님.
염상 허면.... 들 같이 가십시다. 자, 가보겠습니다.
염상과 박수문 형제들이 그렇게 군례를 드리고 나간다. 다른 장수들이 서로를 보고 있다. 박술희가 탁상을 내리치며 중얼거린다.
박술희 참담한 일이야. 너무도 부끄러운 일이야...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다는 말인가? 어쩌다가....?
모두들 ...................
다들 그렇게 침울하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 최응이가 조는 듯 피곤한 듯 그렇게 기대어 있다. 박술희가 보다가 말한다.
박술희 허허, 이보시오, 내봉경...?
최응 아, 예...
박술희 보아하니 많이 곤하신 것 같구려. 요즘 건강이 아니 좋다 들었는데 큰불은 끈 것 같으니 그만 들어가 보시구려.
최응 아, 예...
배현경 그리 하세요. 아주 혈색이 정말 아니 좋아 보이시오.
최응 고맙습니다. 허면 소생은 오늘 이만...
홍유 그리하세요, 예. 어서 들어가시구려.
최지몽 소생이 좀 뫼셔다 드리면 어떠하겠사옵니까?
배현경 아, 그렇게 하시구려. 늘 함께 다니지 않소이까? 그리 하세요.
최응이 일어나 예를 취하고 그곳을 빠져나가면 최지몽이 부축하듯 함께 간다. 모두들 보다가 혀를 찬다.
추언규 아니 젊은 사람이 어쩌다가 건강이 저 지경이 되었는고..?
박술희 그러게 말이올시다. 아주 아니 좋아 보입니다 그려. 허, 이런...
씬 궁안 길
두 사람이 함께 걸어오고 있다.
최지몽 괜찮사옵니까?
최응 괜찮네.
최지몽 전의에게 한번 보이시오소서. 중병이라 하지 않사옵니까? 도대체 이러시다 어찌하시려고 그러시옵니까?
최응 (미소) 이미 잎이 마르고 줄기조차 말라가고 있네. 뿌리는 썩어서 모든 것이 시들어 가고 있는데 몸부림친들 무엇하겠는가?
최지몽 하오나 어르신...
최응 내 말하지 않았는가? 한번 핀 꽃은 반드시 지는 것이고 봄이 오면 겨울 또한 오는 것일세. 인생이 그와 같은 것이야. 그것을 알면 발버둥칠 이유가 없어지지.
그들 그렇게 문을 빠져나간다.
씬 그곳 문 밖
궁문을 빠져 나오자 최응의 집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들 예를 표한다.
집사 나으리, 여기.. 누군가 서찰을 전해왔사옵니다.
최응 서찰...? (받아 본다, 그리고 미소 짓는다) 허허, 이런... 귀인이 저녁을 청하는구나.
최지몽 그건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누가 청한다 하시옵니까?
최응 나도 보고 싶은 사람이었네. 내일 저녁일세. 함께 가시려는가? 저 포구에 말일세.
최지몽 포구라 하셨사옵니까? 아니 허면....?
최응 백제의 귀인이 나를 부르고 있다네. 죽기 전에 한번 보아야 할 사람일세.
최지몽 아니 그곳이 어디인데 가신다 하시옵니까? 혹시 그 귀인이라는 사람은 백제국의 파진찬 최승우가 아니옵니까?
최응 허허허... 자네도 벌써 눈치 깨나 늘었네 그려. 맞네. 그 사람일세. 그 사람이 나를 청하고 있다네.
최지몽 하오면 그 몸으로..... 적진까지 가시겠다는 것이옵니까?
최응 (미소) 우리는 서로를 잘 알고 있다네. 아주 오랫동안 말일세. 그리고 말없이 무언의 교감을 이루어왔네. 교감 말일세.
최지몽 .............?
최응 지금 그 사람은 나의 죽음을 알고 있는 것일세. 그래서 나를 청하고 있는 것이야.
최지몽 예.....?
최응 내 죽음을 알고 있어. 내 죽음을 말이야. 최승우 이 사람은 천문과 역학에도 밝은 사람일세. 이미 나를 보았네 그려. 내 죽음을 보고 나를 청하고 있는 것이야. 나를 말이야.
그런 최응의 담담한 미소에서....
<177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