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 183회>
견훤의 거짓어차가 발각되고 이치일행의 끈질긴 추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견훤은 박영규의 용맹으로 구사일생 적진을 탈출하지만 등창의 고통과 또다시 왕건아우에게 대패했다는 비통함에 절망하고 신검일행 역시 고려군에 속수무책 패배을 당하고 쓸쓸히 환궁길에 오른다. 한편, 왕건은 이치와 유금필의 전공으로 대승을 거두고 바야흐로 고려의 시대는 만개하는데... 환도이후 칩거해 온 견훤은 어느날 태자들을 모두 불러모으고 운주전투에서의 자신의 과오를 자책하면서 후계자결정을 원점에서 재고할 것임을 천명하는데...
씬 밤길 (부감)
지난 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견훤이 탄 수레가 달빛을 받으며 전속력으로 내달리고 있다. 불과 이삼십 기가 견훤을 호위해 가고 있다. 그 수레 옆으로 박영규, 금강, 최승우, 훈겸들이 가고 있다.
박영규 길을 재촉하라... 적병은 다시 쫓아올 것이다. 전속력을 내서 서둘러라.
금강 서둘러라... 적군이 올 것이다. 서둘러라.. 임성군(청양)을 지나야 안심할 수 있다. 서둘러라...
그들은 그렇게 전속력을 다해 달리고 있다. 그러나 견훤을 실은 수레가 제 속력을 내지 못한다.
훈겸 폐하를 조심스레 뫼셔야 하오이다.
박영규 그럴 겨를이 없소이다. 서둘러야하오. 폐하, 용서하시오소서. 지금은 어쩔 수가 없사옵니다.
견훤이 끄덕인다. 박영규가 수레를 끄는 말을 채찍으로 때리며 더욱 속력을 재촉한다. 최승우도 그 옆에 함께 따르며 말없이 가고 있다.
박영규 이치가 곧 우리 사정을 알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뒤쫓아 올 것이옵니다.
금강 그럴 것입니다, 매부. 빨리 가야 하오이다.
그러나 수레는 생각처럼 그렇게 빠르지 못하다. 박영규가 계속 채찍을 때려댄다.
박영규 빨리 가자, 이놈의 말아.... 적군이 온다, 빨리 가자..
그렇게 수레를 몰고 간다. 견훤은 수레가 요동을 계속하자 아픔을 참느라 고통스럽다. 그렇게 카메라 앞을 지나쳐 가면...
씬 또 다른 길
산길이다. 지난 회의 이치가 쫓던 연결이다. 이곳에서도 숨가쁜 추격전이 계속되고 있다. 이미 최필은 죽었고 그 부장들이 십여 명 거짓 어차를 호송해 가고 있다. 쌍두마차가 끌고 달리는 것이라 그 속도가 굉장하다. 이치들이 가까이 따라 잡으며 소리지른다.
이치 섰거라... 견훤왕은 게 섰거라.. 이제 더 도망갈 수 없다. 서라.. 서라..
드디어 그들은 따라 잡았다. 백병전이 다시 이어진다. 쫓고 쫓기고 그 와중에서 마차를 호위해 온 기병들은 거의 다 죽어 넘어간다. 그리고 마차를 몰던 기병이 다급하게 기수를 옆으로 틀다가 그예 마차는 길 옆으로 전복된다. 그렇게 거꾸로 쳐박힌 마차의 바퀴가 제 홀로 돌고 있다. 이치와 그 군사들이 나머지 군사들을 베고 드디어 그 마차 곁으로 다가온다. 그러다 이치가 놀란다. 아무도 없는 것이다.
이치 이것이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 아무도 없지 않느냐..?
부장 그렇사옵니다, 장군. 속았사옵니다.
이치 속아....? 아니, 백제의 용장인 최필이란 장수가 직접 호위해온 어차가 아니냐?
부장 그러니까 우리가 더욱 속은 것이옵니다.
이치 그렇구나... 화려한 어차에다가 백제가 내노라 하는 장수가 호위를 하였으니..... (하다가) 허면... (하다가) 그래, 그 수레로구나. 뒤를 따라오던 그 수레다. 그 허술한 빈 수레 말이다.
부장 그러하옵니다, 장군.
이치 견훤왕이 거기에 있었다. 거기에 있었어. 그 수레가 어디로 갔느냐? 보이지 않지 않느냐?
부장 오다가 사라진 것을 보니 아무래도 임성군 쪽으로 간 것이 분명하옵니다. 어쩐지 이상했사옵니다. 이 어차가 이리로 온 것이 말이옵니다. 이쪽은 계속가면 우리 금강 쪽이옵니다. 저들이 사지로 들어올 리가 없지 않사옵니까?
이치 그렇다. 우리를 유인하려고 한 계책이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수레는 빨리 달릴 수 없어. 쫓아라. 임성군 쪽이 틀림없다. 그 쪽이 백제 지역이니 그리로 갔을 것이다. 쫓아라.
부장 예, 장군. 쫓아라. 임성군 쪽으로 간다.
그들 그렇게 말머리를 돌린다. 그리고 오던 길을 되돌아간다. 그들의 일단이 그렇게 사라진다.
씬 다시 견훤이 가는 길 (어느 강변 길)
이들은 속력을 내고 있다. 박영규는 계속 채찍을 때려댄다. 그러나 말은 가려고 하지 않는다. 앞발을 들고 울뿐, 그것은 걷는 것이지 결코 뛰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모두 애가 탄다.
박영규 이랴, 이랴... (때려대다가) 말이 도대체 달리려 하지 않사옵니다. 온통 자갈밭이니 수레가 나갈 수가 없소이다. 이걸 어찌한다...? 적군이 벌써 이리로 접어들었을 것인데 이를 어찌한다...
최승우 그럴 것이오, 박장군. 이대로는 아니 될 것 같소이다. 저들에게 발각이 될 것이에요.
금강 하지만 방법이 없사옵니다. 방법이 없사옵니다.
박영규 이랴, 이랴....
그들 모두 당황하고 있다. 박영규는 계속 때려댄다. 말은 드디어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모두들 표정이 밝아진다. 그리고 얼마쯤 갔을까, 수레가 마구 이리저리 요동하다가는 드디어 수레의 바퀴 하나가 빠져 버리며 주저앉는다. 모두들 폐하 소리치며 가까이 온다.
최승우 폐하, 괜찮으시옵니까?
견훤 괜찮네.. 이야말로... 참담한 일이로구먼... 적군이.. 오고 있다는데.. 수레의 바퀴가 빠졌어...
최승우 곧 손을 볼 수 있사옵니다. 군사들은 무얼 하는가? 빨리 수레의 바퀴를 다시 맞추어라.
군사들이 대답하며 몰려든다. 한쪽에서는 들고 다시 바퀴를 맞추고 부산하다. 금강과 박영규는 더욱 애가 탄다.
훈겸 바퀴가 빠져버리다니... 아하, 이제 자갈밭을 거의 다 나왔는데 이렇게 되어 버렸소이다.
금강 시간이 없소이다. 시간이.... 어서들 맞추어라... 어서..
박영규 이치도 우리를 쫓아오고 있지만 문제는 본군이 얼마나 버티는가 하는 것이옵니다.
최승우 그렇게 오래는 아니 될 것이오. 우리 군은 처음부터 사기를 잃었소이다. 싸울 준비가 전혀 아니 되어 있었어요. 어쨌거나 폐하께서 무사히 이곳을 나가셔야 합니다. 서둘러야 해요.
금강 무엇들 하느냐? 시간이 없다고 하지 않느냐, 시간이...?
군사들은 계속해 영차, 영차하며 수레를 들고 바퀴를 끼우고 난리다. 그들의 표정은 다급하기 이를데 없다.
씬 신검의 벌판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화살이 나르고 육박전이 치열하다. 곳곳이 불길에 싸여 있다. 신검이 당황하여 보고 있다. 신검과 용검, 종훈이 보고 있고 그 앞에서 신덕, 상귀, 김총, 파달, 상애 들은 군사들과 어우러져 치열한 접전을 벌리고 있다. 그러나 죽어가는 군사들은 대부분 백제군이다.
신검 일방적이로구먼.. 우리 백제군이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어.
용검 그러하옵니다, 총사. 우리 군사들은 처음부터 추위에 지쳐서 싸울 의지를 잃고 있었사옵니다.
종훈 이제 서서히 퇴각령을 내리셔야 하옵니다.
신검 참으로 허망하고도 무모한 전투가 아닌가?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왔으며 또 이렇게 군사들을 죽이고 있는가? 무엇 때문에...?
종훈 지금 그걸 따질 겨를이 없사옵니다. 퇴각하셔야 하옵니다, 총사. 이러다가는 전멸할 것이옵니다.
신검 좌우 측면으로 나간 군사들은 어찌되었는지 모르겠구먼.
종훈 저기 오고 있사옵니다.
그때다. 한쪽에서 와 하면서 양검과 애술이 몰려온다. 도망쳐 오고 있는 것이다. 신검이 놀라서 본다.
신검 아니, 좌우 측면을 막으러 나가지 않았느냐? 왜 되돌아오는 게야?
양검 총사, 도저히 아니 되겠사옵니다. 좌우 측면이 모두 무너지고 있사옵니다. 돌파구를 뚫을 수가 없사옵니다. 피하시오소서.
신검 피하다니...? 어디로 피한다는 말이냐? 죽기로 싸워야지 어디로 피해..?
애술 아무리 싸워보고 싶어도 군사들이 말을 듣지 않사옵니다, 총사. 모두가 투항을 하거나 무기를 버리고 있사옵니다.
신검 ...................?
애술 군사를 물리시오소서. 이대로는 아니 되옵니다.
신검은 대답이 없다. 입술을 깨물며 좌우를 본다. 신덕, 김총들이 여전히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다.
씬 그곳
신덕과 김총, 상귀, 파달, 상애들이 싸우고 있다. 또한 고려 쪽에서는 유금필, 박술희, 염상, 왕충, 박수문 형제들이 어우러져 난전을 이루고 있다. 그 와중에서도 백제군만 수없이 죽어 나간다. 손을 드는 병사 무기를 버리는 군사들이 속출하고 있다. 유금필 소리지르고 있다.
유금필 백제군들이 투항하고 있다. 투항하는 군사들은 죽이지 마라.
박술희 투항하는 군사는 죽이지 마라.
곳곳에서 백제군은 그렇게 손을 들고 무기를 버리고 있다. 신덕, 김총이 당황하고 있다.
신덕 투항하지 마라... 싸워라.. 투항하지 마라..
김총 무기를 버리지 마라.. 싸워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 서서히 싸움이 판가름나고 있다. 파달, 상애들이 보다가 다시 놀란다. 홍유와 윤신달이 군사를 이끌고 와 하며 몰려오고 있다.
파달 장군, 저기를 보시오소서. 우리의 좌우를 매복했던 고려의 군사들이옵니다. 무더기로 몰려오고 있사옵니다.
상애 좌우 측면도 다 당한 것 같사옵니다. 퇴각을 해야 할 것 같사옵니다.
파달 장군, 퇴각을 해야 할 것 같사옵니다. 퇴각령을 내려주시오소서.
신덕 총사께서 뒤에 계시다. 군령이 떨어지지 않으면 퇴각할 수 없다. 싸워라...
파달 더 싸울 수가 없사옵니다. 이러다가는 다 죽사옵니다.
그렇게 무수히 백제군이 죽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투항하고 있고 와 하면서 드디어 퇴각명령이 없어도 군사들이 모두 도망치기 시작한다. 장수들은 당황한다.
씬 신검이 있는 곳
신검이 보고 있다가 절망적 표정을 한다.
신검 틀렸구먼. 틀렸어... 완전히 당하고 있어.
양검 아직 퇴로는 뚫려 있사옵니다. 가야하옵니다, 총사.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사옵니다.
신검 그래, 그래야겠구나. 지금쯤 아버님께서는 안전하게 빠져나가셨을 것이야. (한숨) 그만, 퇴각령을 내려라. 퇴각하라 하라.
종훈 퇴각하랍신다... 총사께서 퇴각하랍신다... 퇴각하라...
양검 퇴각하라...
북소리가 들린다. 접전을 벌리던 장수들이 말머리를 돌리기 시작한다. 신검의 표정이 어둡게 일그러진다.
양검 총사, 무엇하시옵니까? 전군이 퇴각하옵니다. 어서 말을 돌리시오소서. 어서요, 형님.
용검 유금필 군이 오고 있사옵니다. 서두시오소서, 형님.
신검 가자꾸나. 갑시다, 종훈 군사.
종훈 예, 총사.
그들은 모두 말머리를 돌린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한다. 그때, 유금필의 소리가 들려온다.
유금필 저기, 신검이가 가고 있다. 백제의 태자 신검이를 잡아라. 활을 쏘아라... 궁수들은 활을 쏘아라.
화살이 비오듯 쏟아진다. 부장과 군사들이 활을 맞고 말에서 나뒹군다. 신검들은 달린다. 그 와중에서 종훈이 그예 맞았다. 그대로 달리다가 말에서 떨어져 나뒹군다. 신검이 부른다.
신검 종훈 군사...? 종훈 군사....?
양검 그대로 가시오소서. 적군의 추격이 급하옵니다. 그냥 가시오소서.
신검 오, 이럴 수가.... 종훈 군사........?
종훈이가 떨어져 멀어지는 그들을 보고 있다. 어깨에서는 피가 흐른다. 어느새 왕충들이 종훈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다. 멀어지는 그들의 모습에서....
씬 그곳
유금필이 군사들을 멈춘다. 그리고 멀리 신검 쪽을 본다.
유금필 더 이상 추격은 무리인 것 같소이다. 군사를 정비하세.
박술희 예, 형님. 추격을 멈추어라. 군사들을 정비하라.
부장들 추격을 멈추어라. 추격을 멈추어라...
그렇게 전장터는 서서히 소란이 가라앉고 있다. 박수문, 박수경 형제가 염상과 함께 군사들을 정비하고 있다.
박수문 포로들을 모두 한곳으로 모아라.
박수경 군사를 정비하라..
염상 대오를 정비하라.. 대오를 정비하라...
그때, 왕충이 부상당한 종훈을 끌고 온다. 그 한쪽으로 홍유와 윤신달도 다가온다.
왕충 총사, 도주하던 적의 군사이옵니다. 백제국의 태자와 함께 있던 자이옵니다.
유금필 (한참 보다가) 오호... 그대는 백제국의 군사가 아닌가?
종훈 그렇소이다.
박술희 조물성에서 본 적이 있사옵니다. 백제국의 파진찬 최승우와 더불어 전략을 맡고 있는 책사이옵니다.
홍유 맞소이다. 이름이 아마도 종훈이라는 자일 것입니다.
종훈 그렇소이다. 백제국의 종훈이올시다. 오랜만이구려, 들... 허허허..
그때, 군사들의 길이 열리며 왕건이 배현경, 복지겸, 최지몽과 함께 오고 있다. 군사들이 일제히 환호하며 맞는다. 모두들 군례를 올린다.
왕건 고생들 하였소이다.
유금필 폐하, 백제국의 술사인 종훈이라는 자이옵니다.
왕건 본 적이 있네. 아니 되었구먼. 그대가 모시는 황제는 어디로 갔는가? 그리고 태자는.......?
종훈 이미 다 이곳을 뜨신지 오래 되셨소이다.
왕건 유감이로구먼. 이 자를 끌고 가라.
유금필 끌고 가라.
부장들이 대답하며 종훈을 끌고 간다. 그때, 다시 한쪽이 갈라지며 말을 타고 온 자들이 수급 하나를 바친다.
배현경 그건 무엇이냐? 어디서 온 군사들인가?
부장 전의 성주 이치 장군의 수하이옵니다. 여기 백제국의 장수 최필이라는 자의 수급이옵니다.
복지겸 최필......? 폐하, 백제의 여러 장수 중 꽤나 이름이 있는 용장이옵니다. 누가 베었느냐?
부장 이치 장군께서 베셨사옵니다.
복지겸 이치 장군은 지금 어디 있느냐?
부장 견훤왕을 쫓고 있사옵니다.
왕건 오호, 견훤왕을.....? 참으로 대단하도다. 최필이의 목을 베고 백제의 왕을 쫓고 있다는 말이지..? 백제의 왕을...? 허허허.... 퇴로를 끊겠다 하더니 과연 눈부신 전공을 세우고 있구먼. 대단해. 아주 대단해. 허허허...
홍유 폐하, 이번 운주 전투는 완벽한 우리 고려의 대승이옵니다. 총사를 맡은 유금필 장군의 공이 컸사옵니다.
왕건 옳은 말일세. 총사의 결단력과 추진력이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이야. 이겼네. 우리가 이겼어. 허허허... 내의성령...?
최지몽 예, 폐하.
왕건 너의 점괘가 다 들어맞았다. 완벽한 우리 고려의 대승이다. 대승이야. 하하하....
씬 다른 길 (새벽)
신검들이 달려오고 있다가 말을 멈춘다. 멀리 여명이 트고 있다. 신검이 돌아본다. 양검, 용검, 애술, 신덕, 상귀, 김총, 파달, 상애들이 함께 온다.
신검 남은 군사가 얼마나 되는가?
애술 채 천여 명도 아니 되옵니다.
신덕 다행히 고려군이 더 이상 우리를 추격하지 않고 있사옵니다.
상귀 완전한 패배이옵니다, 총사. 모두가 이놈의 추위 때문이옵니다.
양검 그렇사옵니다. 저들에게 진 것이 아니라 이 혹한의 추위에 졌사옵니다. 분하옵니다.
신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무모하고 무리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 일을 들추어서 무엇하겠느냐? 자, 어찌 되었든 군사를 정비하고 우리도 회군을 하십시다.
신덕 예, 총사. 대오를 정비하라. 회군할 것이다. 회군할 것이다.
그렇게 소란이 계속되면서 김총이 말한다.
김총 폐하를 뫼시기 위해 앞서간 최필 장군이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사옵니다.
모두들 ..........
신검 십중팔구 당했을 게요. 최필 장군은 스스로 죽을 것을 알고 간 것이올시다.
양검 그러하옵니다. 스스로 자원해서 앞을 섰사옵니다.
신검 물론이다. 그야말로 충신이 아니냐? 폐하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어놓은 장수이다. 그나마 그런 계책이 있었기에 아버님께서는 호구를 벗어나셨을 것이다.
신덕 아직 낙관할 수는 없사옵니다. 전의 성주 이치가 워낙 용맹한지라 안심이 아니 되옵니다.
신검 그렇기는 하오마는...
신검의 우울한 표정에서...
씬 길
막 동이 터오고 있다. 이치와 그 군사들이 내달리고 있다. 불과 이십 여 기이다.
이치 서둘러라.. 조금 더 달리면 잡을 수 있다. 서둘러라...
그렇게 급히 지나쳐 간다.
씬 어느 강변 (아침)
수레의 바퀴가 거의 맞추어 지고 있다. 금강은 발을 구른다. 견훤은 말없이 보고 있다. 금강이 소리치고 있다.
금강 벌써 날이 새고 있지 않느냐? 해가 뜨고 있어, 이놈들아... 무엇들을 하고 있다는 말이냐? 수레는 어찌 되었느냐?
부장 이제 다 되어가옵니다, 태자마마.
최승우 큰일이로다. 큰일이야... 저들이 가까이 왔을 것이오. 여기서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했소이다.
부장 이제 되었사옵니다. 수레가 움직이옵니다.
박영규 서둘러라.. 어서 가자. 폐하, 좀 어떠시옵니까? 괜찮으시옵니까?
견훤 괜찮아... 허, 최필이 죽었어... 최필이가... 사위도.. 보았는가..?
박영규 예, 폐하. 어쩔 수 없는 일이었사옵니다.
견훤 그래, 어쩔 수... 없었지. 최필이는 나를 위해 죽었어. 내가.. 죽인 것이야. 내가... 신검이는... 어찌 되었을까...?
박영규 매우 힘든 전투가 되었을 것이옵니다.
견훤 그랬을 게야...
금강 재촉하라. 모두 길을 재촉하라...
부장들이 대답한다. 수레가 움직인다. 그들 곧 강변을 벗어난다. 견훤은 말이 없이 침묵으로 보고 있다.
씬 또 다른 길
마차가 강변을 벗어나서 달리고 있다. 박영규와 금강이 말에 계속해 채찍을 가한다. 그들은 그렇게 달리고 있다. 그러나 말과 수레의 차이가 크다. 금강은 급한 듯 계속 뒤를 돌아본다.
금강 도대체 왜 이렇게 느리다는 말이냐? 왜...? 좀 더 달리지 못하고.. 적군이 거의 다 쫓아왔을 것이다. 조금만 더 가면 임성군 관내로 들 수가 있다. 제발 속력들을 내거라. 제발...
부장 수레는 어쩔 수가 없사옵니다. 전투마처럼 달리지를 못하옵니다, 태자마마.
금강 달려야 하느니라. 적군이 뒤에 왔다 하지 않느냐?
그때, 군사 하나가 소리치며 뒤를 가리킨다.
군사 태자마마, 저기........... 적군이옵니다. 적군이옵니다...
모두들 기겁을 한다. 이치의 군대가 질풍처럼 달려오고 있다. 다급하다. 금강도 박영규도 너무 다급하다.
박영규 무엇들 하느냐? 말을 때려라. 서둘러라... (그렇게 가다가) 아니 되겠사옵니다. 폐하. 신이 저들을 맡겠사옵니다.
견훤 ..............?
훈겸 폐하, 적병이 가까이 오고 있사옵니다. 어찌하면 좋겠사옵니까? 어이구, 폐하.......
최승우 모두 서두르지 말라... 침착하라... 침착하라... 폐하, 단단히 준비를 하시오소서. 아무래도 수레를 가지고는 아니 될 것 같사옵니다.
견훤 그런 것 같구먼..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뜻이다... 요란들을 떨지 말라
박영규 힘이 드시겠사오나 수레를 버리고 어마를 타셔야 할 것 같사옵니다. 태자마마, 폐하를 뫼시오소서. 여기서 십여 리만 더 가면 임성군 관내로 들어 안심할 수 있사옵니다. 가시오소서. 소장이 저들을 맡겠사옵니다.
금강 알겠소이다, 매부. 폐하를 어마로 뫼시어라.
수레가 서고 견훤이 모셔져 간신히 말에 오른다. 비명과 아픔을 삼키며 견훤이 비틀거리면서 말에 오른다.
최승우 폐하, 가실 수 있겠사옵니까?
훈겸 어렵사옵니다. 말을 타시고는 못 가시옵니다. 어이구, 이런...
견훤 호들갑 떨지 말라.. 저들에게.... 잡혀 죽는 것보다는.... 말을 타고 가다가.... 죽는 것이 더 낫다..
그렇게 견훤은 말에 올랐다. 금강이 박영규를 보며 끄덕해 보인다. 이치들이 가까이 오고 있다.
박영규 어서 가시오소서, 어서... 파진찬도 어서 가시오소서.
금강 그럼 갑니다, 매부. 이랴....
그렇게 달려간다. 견훤은 말고삐를 잡는다. 비틀거리면서도 그는 몸을 유지하며 도망친다. 훈겸도 뒤를 따른다. 그러다가 훈겸은 말에서 뒤를 돌아보다가 그만 말이 놀라 진저리를 치자 땅에 떨어진다. 벌써 이치들이 덮쳤다.
이치 백제의 왕이 저기 도망친다. 잡아라...
박영규 어림도 없다. 나를 넘어서서 가보거라.
이치 오냐, 보아하니 네가 백제왕의 사위 박영규라는 자이로구나. 너희는 여기를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겨루어 보자.
접전이다. 박영규와 이치가 맞붙었다. 양쪽의 십여 군사들이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다. 훈겸이 그 틈을 이용해 다시 말에 올라 도망치려 한다. 그러나 이치의 부장이 보았다.
이치부장 어디로 도망치느냐, 이놈.......? 백제의 대신인 모양이로구나.
훈겸 아니오. 나는 아니오...
그러나 그대로 이치 부장에 의해 목이 베인다. 박영규는 미처 놀랄 틈도 없다. 교전은 그렇게 계속 된다. 박영규의 활약이 눈부시다. 이미 그 틈에 견훤들은 멀리 사라졌다. 이치가 발을 구른다.
이치 어허... 백제왕이 사라졌다. 무엇들 하느냐? 쫓아라...
박영규 마음대로 아니 될 것이다.
이치 대단하구나. 박영규라 하였겠다..? 대단해... 오늘 어디 사생결단을 내어보자꾸나.
그러나 그들의 승부는 결단나지가 않는다. 이미 양쪽은 군사가 거의 절반 이상 희생되었다. 양쪽 모두 사오 명 씩 남았다. 박영규가 그것을 보다가 감을 잡는다.
박영규 전의 성주 이치라고 하였겠다...? 대단하다.. 허나 다음에 보아야겠다.
이치 다음이라니...? 그냥 보낼 수 없다. 결판을 내자.
박영규 다음에 보자꾸나. 길이 급하다.
박영규는 견훤들이 보이지 않자 다시 그 뒤를 쫓기 시작한다. 이치는 안타깝다.
이치 도망치지 마라, 어디로 가느냐...? 도망치지 마라...
박영규가 도망치고 이치는 쫓고... 그러다가 어느 샛길로 들어서면서 이치는 드디어 쫓기를 단념하며 선다. 사오 명의 부장들이 함께 와서 선다. 이치는 또 답답하다.
이치 임성군이다. 더 들어갈 수가 없어. 이제부터는 백제의 영역이다.
이치부장 그런 것 같사옵니다.
이치 안타깝게 되었다. 눈 앞에 두고 놓치다니.. 참으로 안타깝게 되었다.
그렇게 답답해하는 이치의 표정에서 디졸브...
씬 어느 시골길
금강과 최승우가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는 견훤을 이끌고 오고 있다. 그들은 이제 달릴 필요가 없다.
최승우 안심하시오소서, 폐하. 우리 영내로 들었사옵니다. 더 이상 추격은 없을 것이옵니다.
금강 견디실 수 있겠사옵니까?
견훤 목숨이 붙어있는 것이.... 다행이로구나... 다들 어찌되었을까? 다들... ?
그때, 말발굽소리가 들려온다. 한쪽을 보면 멀리서 박영규와 사오 명의 군사들이 뒤를 따라온다. 그들은 한참 보다가 얼굴에 기쁨이 돈다.
금강 매부이옵니다.
견훤 그렇구나.
박영규는 가까이 이르러 군례를 올린다. 그들은 한동안 말이없다.
박영규 폐하, 얼마나 고통이 크시옵니까? 이제 염려를 놓으시오소서. 신이 편히 뫼시겠사옵니다. 적군은 물러갔사옵니다.
견훤 전의... 훈겸이는... 어찌 아니 보이는고....?
박영규 적군에 당했사옵니다.
견훤 ............ (끄덕이다가) 그랬구먼. 가자...
박영규 예, 폐하. 폐하를 뫼시어라.
금강 폐하를 뫼시어라.
그들은 그렇게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견훤은 등창에 관한 아픔과 비통함과 표정이 모두 어둡다. 그렇게 가고 있고...
씬 또 다른 길
신검의 군대가 가고 있다. 양검, 용검, 신덕, 애술, 상귀, 김총, 파달, 상애들이다. 패전군의 모습이 완연하다. 신검이 하늘을 본다.
신검 이 날씨 좀 보시구려. 전투가 끝나고 나니까 이처럼 날이 포근하고 좋소이다. 빌어먹을....
김총 최필 장군이 전사를 했고 종훈 군사가 저들에게 잡혔사옵니다.
신검 폐하께서는 어찌 되셨는지 모르겠소이다. 최필 장군이 죽었다면 결코 쉽게 저들의 포위망을 뚫지 못하셨을 것인데...
신덕 하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소식이 들어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큰 불행은 아니 당하신 듯 보이옵니다.
신검 그래야지요. 결국은 아버님을 구하기 위한 전투였고 희생이었습니다. 이 운주 전투는 결국 그런 것이었어요. 그렇다고 보면 결코 실패한 전쟁은 아니었소이다. 가십시다.
장수들 예, 총사.
신검 앞으로 한동안은 전투가 어려울 것이외다. 저들 고려가 오지 않는 한은 말이오. 한동안은 어려울 것이에요.
그렇게 씁씁해 하는 신검의 표정에서 들려오는 함성소리들...
씬 왕건의 군영
함성소리가 들끓고 있다. 장수들이 도열해 있다. 거기 이치도 보인다. 유금필, 배현경, 홍유, 박술희, 복지겸, 염상, 윤신달, 왕충, 박수문, 박수경, 최지몽들이다.
왕건 장졸들은 들으라. 이번 운주 대전은 우리 고려의 압승으로 끝이 났다.
군사들 (와- 환호) ...........
왕건 유금스럽게도 백제왕과 그 아들은 놓쳤으나 우리는 서해안 일대를 장악하고 제압하는 엄청난 전과를 거두었다. 또한 수없이 많은 적장들을 베었고 사로잡았다. 이제 백제는 함부로 준동하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통일대업의 기회는 우리 고려에 크게 다가온 것이다. 오늘의 공은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게 한 유금필 총사와 전의 성주 이치의 공이 컸느니라. 황도로 돌아가는 즉시 이들의 공을 크게 기리고 역사의 기록과 그 후손들에게 널리 남겨 알리게 할 것이다.
다시 환호가 물결처럼 일어난다. 유금필과 이치를 비롯하여 장수들의 면면이 지나쳐간다. 그 위로 자료화면과 함께...
해설 운주전투. 단기 3267년, 서기로는 934년에 있었던 이 싸움은 견훤이 참가한 전투로서는 일생일대의 마지막 전투였다. 그리고 실패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고창전투 이래 또 한번의 뼈아픈 패배로써 학계에서는 후백제가 무너진 결정적 시점을 바로 이 운주전투로 보고 있다. 이때, 백제는 갑사 오천 명을 투입하였다고 하는데 그 중 무려 전사자가 삼천이나 되었다 한다. 백제의 일방적 패배였음을 여실하게 드러내는 대목이다.
씬 몽타주
견훤들이 돌아가고 있다. 그 쓸쓸한 모습과 떠블되면서, 풀죽은 신검 군대의 모습들도 지나쳐간다. 그리고 반대로 백성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황도로 돌아가고 있는 고려군들의 모습들도 보인다. 지도도 함께 수파되면서...
해설 (계속) 그랬다. 운주전투는 왕건으로 하여금 삼한통일의 절대적인 기선을 잡는 큰 영향력을 안겨 주었다. 동으로는 고창전투에서 승리하였고 다시 서쪽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듭함으로써 백제는 북상의 의지를 완전히 상실했던 것이다. 또한 이 전투 이후, 웅진 이북의 삼십 여 성이 일제히 고려에 항복하게 됨으로써 이제 고려는 명실상부하게 삼한의 패자 중 제일 강력한 영향력을 확보하게 된 것이었다. 비로소 하늘이 왕건의 편을 들어주게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씬 고려의 황도
도성 문안을 왕건의 군대가 들어서고 있다. 오씨와 유씨, 정윤 무, 김행선, 추언규, 왕규, 왕식렴, 문무대신, 상궁, 내관들이 모두 나와 크게 영접하고 있다.
김행선 폐하, 어서오시오소서. 엄청난 대승을 감축드리옵니다.
신료들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오씨 폐하, 신첩들은 폐하께서 얼마나 힘겨운 승리를 거두셨는지를 잘 아옵니다. 이제 천하가 폐하께 머리를 숙일 것이옵니다.
유씨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온 백성들과 문무신료들과 더불어 참으로 이 대승을 감축드리옵니다.
왕건 고맙소이다. 이것은 짐이 하례를 받을 일이 아니올시다. 백성들의 복이고 공이에요. 또한, 이 전투를 결정적으로 승리로 이끌게 한 장졸들의 공이 크오이다. 자 들 가십시다.
복지겸 폐하께서 황궁으로 드신다. 내군들은 뫼시어라.
내군들 예, 장군.
어마어마한 의장이다. 기병들이 앞서 인도해 가고 기치창검을 든 장졸들이 수없이 꼬리를 물고 들어서고 있다. 백성들이 길 양편에서 크게 환호하며 만세를 부르고 있다. 왕건이 끄덕이며 그렇게 간다. 황후들과 함께 그 모습에서 서서히 디졸브되면...
씬 황궁 외경
씬 동 편전
왕건이 옥좌에 앉아 신료들을 돌아보며 말하고 있다.
왕건 이른 바와 같이 운주전투에서 공을 세운 공신들은 상 줄 것이오. 남천현에서 만난 서목이라는 호족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우리의 승리는 불가능했을 것이오. 또한 나아가 저 금강을 건널 때에 이치 장군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 또한 어려웠을 것이며 운주 전투에서도 그 공이 막중하였소이다.
모두들 ..................
왕건 남천현을 이제부터 이천이라 부르도록 하시오.
모두들 예, 폐하.
왕건 또한 우리로 하여금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게 한 전의 성주 이치 공을 고려개국통합이등공신에 올릴 것이며, 삼중대광태사에 봉할 것이오. 아울러 전산후를 더하고 시호를 성절이라 할 것이며 지금의 이름 치를 바꾸어 특별히 도라 할 것이오. 사관은 이를 기록하고 후대에 이름을 빛나게 하라.
사관 예, 폐하.
이도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해설 이도, 이때부터 이치의 이름은 이도가 된다. 황제가 특별히 하사한 이름을 쓰게 되는 것이다. 왕건이 이도의 공을 얼마나 높이 평가했는가를 알 수가 있다. 이때부터 그 자손들은 전의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고 고려조에도 훗날 많은 명신들을 낳게 된다.
왕건 내봉성과 수춘부에서는 이러한 짐의 뜻을 살펴서 지금까지 공신록에 이름이 오른 신료들을 다시 그 공과를 살피고 공신당을 설치하여 동서벽에 그 화상과 이름을 남기도록 하라.
모두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해설 공신록과 공신당. 이미 왕건은 지난 날 공신들을 다시 정리하여 역사에 기록해 둔 바가 있었다. 그 기록에 보면 개국공신 일등은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등 4명이었고, 이등은 견권, 권능식, 권신, 염상, 김락, 연주, 마란 등 7명이 각각 책록되었고 3등은 그 이름들은 보이지 않은 채 무려 2천여 명이나 책록되어 있다. 지금 말하고 있는 공신은 통합삼한 익찬공신이다. 이 기록은 일등에 최응,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순으로 기록해 가고 있고 2등에는 유금필, 김선평, 장길, 유차달, 이도, 함규, 김선궁, 홍규, 왕희술, 김원술, 윤신달, 박윤응 등을 지명하고 있다. 이것은 왕건이 초창기에 거론했던 개국공신들의 순위와는 사뭇 다른 면을 보이기도 하는데, 훗날 나라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그 만큼 많은 인물들의 공과 도움이 필요했으며, 그에 걸맞는 상을 폭넓게 보상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왕건 경들은 다시 들으오.
모두들 예, 폐하.
왕건 우리는 지난 날 우리가 자랑하는 수군의 대부분을 잃고 이 황도가 짓밟히는 엄청난 수모를 겪은 적이 있소이다. 이제 그러한 빈틈과 방심은 용서치 않을 것이오. 모두다 맡은 직분을 열심히 수행하고 다가올 통일을 대비하도록 하오.
모두들 예, 폐하.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왕건 오늘은 특별히 공이 있고 고생이 많았던 장수들을 위하여 짐이 연회를 베풀고자 하오. 군신간에 한번 취토록 마셔보십시다. 하하하하....
모두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씬 연회장
모두들 즐기며 놀고 있다. 춤사위가 무르익고 있고 악공들이 음악을 켜고 있다. 신바람나는 검무가 이어지고 있다. 유금필, 이도를 비롯한 제장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오씨와 유씨를 비롯한 황후들의 모습도 보인다. 그 질탕한 음악과 웃음시로에서 디졸브되면.......
씬 백제 황궁 외경
엄청난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다.
씬 동 황궁 마당 안
낙엽과 눈보라가 어우러져 끝없이 밀려가고 있다. 추운 듯 내관과 상궁들이 지나쳐 가는 것이 보인다.
씬 황후전
황후 박씨와 이상궁이 함께 해 있다. 한숨을 계속 내쉬는 박씨.
박씨 대전에 모두들 불려갔다고.....?
이상궁 예, 황후마마.
박씨 돌아오시자마자 하실 말씀들이 있으신 게지... (사이) 헌데 우리 신검 태자와 그 형제들만 갔다고..?
이상궁 예, 황후마마.
박씨 무슨 일일꼬....? 뭔가 이상하지 않는가? 운주에서 참담하게 돌아오시자 마자 형제들을 부르셨다...? 왜..? 혹시 거기에 금강 태자도 갔다 하던가?
이상궁 그렇다 하옵니다.
박씨 뭘꼬..? 무슨 일일꼬...?
씬 동 고비전
고비도 안을 서성거리며 초조해 하고 있다.
고비 폐하께오서 돌아오시자 마자 형제들을 부르셨다...? 형제들을 모두다 말인가?
최상궁 그렇다 하옵니다, 마마.
고비 간이 조리는구먼. 이미 폐하께오서는 운주로 떠나시기 그 이전부터 조짐이 이상하셨느니라. 파진찬을 딸려보내 예성강 전투를 치르게 하셨고 그때 옥좌를 넘기신다는 말씀도 하셨어. 헌데 돌아오시자 마자 모두를 부르셨다...? 왜.....? 왜.....?
씬 동 대전 안
견훤이 초췌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그 앞에 신검, 양검, 용검과 더불어 금강이 함께 해 있다. 한 동안 침묵이 흐르고 있다. 밖의 바람소리만 요란하게 들려온다. 그들의 면면이 하나씩 스쳐간다. 견훤은 일일이 자식들을 보다가 손이 등으로 가며 아픈 듯 찡그린다. 그리고 또 침묵이 흐른다.
신검 아바마마, 소자들이 모두 영을 받아 대령했사옵니다.
견훤 .......... (끄덕인다)
모두들 .............
견훤 그래, 지난 운주전투 말이다.... 그건 모두 내 잘못이었다.
신검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총사를 맡았던 소자의 잘못도 있사옵니다.
견훤 아니다. 좀 더 솔직하게 내 이 병을 말했어야만 했다. 허나... 욕심이 앞을 가렸지... 운이 따르지 않는데 욕심만 앞섰어. (사이) 그래, 욕심 말이다.
신검 ..............?
견훤 한동안 우리 백제국은 그 만큼 운신의 폭이 더 좁아졌다. 함부로 군사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좀 더 내실을 다질 필요가 있어.
신검 예, 아바마마.
견훤 그리고... 이제 내 나이 곧 일흔이다. 일흔이야... 난 그런데도 늙지 않았다고 생각했었지. 헌데, 이번에 보니 늙었다. 인정하마. 늙었어. 신검아.....?
신검 예, 아바마마.
견훤 내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그 동안 말이다. (사이) 헌데, 시간을 좀 더 가져 보아야겠다.
신검 ...................?
견훤 시간을 좀 더 가져보자. 알겠느냐? 시간 말이다... 모든 것을 다시 한번 따지고 정리해 볼 시간 말이다.
신검 ............. (마음의 소리) 지금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이제 약속을 지켜주실 때가 되시지 않았사옵니까?
견훤 그래, 나는 늙었어. 분명히 늙었지. 그래서 너희 형제들을 보자 한 것이다. 통일의 길은 멀고 나는 늙었고... 뭔가 보이는 것은 없고 손에 잡히는 것도 없고... 세월만 다 갔다.
신검 (마음의 소리) 아바마마, 왜 모든 것은 다 인정하시면서 소자와 약속하신 것은 말씀이 없으시옵니까? 예성강 전투를 떠날 때에 약속을 주시지 않았사옵니까? 그래도 말씀이 없으셔서 한번 더 보여드리고자 모든 악조건을 감수하며 치루었던 운주전투가 아니옵니까? 잃어버리셨사옵니까, 아바마마....? 약조 말이옵니다.
견훤 금강아.....?
금강 예, 아바마마.
견훤 이 아비는 좀 더 쉬면서 많은 생각을 좀 해야겠다. 신검이도 또 너희 형제들도 그리 알거라.
신검 하오나 아바마마.....
견훤 왜....? 할 말이 있느냐?
신검 아, 아니옵니다.
견훤 그래, 그럼 그렇게들 알고 물러들 가거라.
형제들 ....................?
신검 (마음의 소리) 너무 하시옵니다. 아바마마 같은 크신 분이 한 입으로 두 말씀을 하시려 하시옵니까? 왜 갑자기 그 이야기는 없으시옵니까, 아바마마...? 옥좌 말이옵니다.
견훤 (신검을 본다, 마음의 소리) 너는 확실하게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예성강에서도 한번 이기고 한번 졌다. 운주 전투는 내가 고집을 하였어도 네가 말렸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네가 황제가 될 자격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오로지 욕심밖에는 몰라. 그러니 어찌 나라를 끌어갈 수 있겠느냐?
그렇게 두 부자의 시선이 마주치고 있다. 형제들은 그런 둘을 보고 있다.
견훤 가 보라고들 하지 않았느냐? (사이) 아, 어서들 가보아...
신검 ..................?
신검의 그 분노 같은 표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