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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대본

[태조 왕건] 185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7.12.22|조회수3,122 목록 댓글 0

태조 왕건 <제 185회>

견훤은 용검과 양검형제를 지방도독으로 급파하고 사위 박영규에게 군권을 맡기는 등 신검세력의 숙청을 단행하기 시작한다. 위기의식을 느낀 능환과 능애 등 기존의 신료집단은 신검을 옹위하기 위한 모종의 군사적 반란을 준비하게 되고... 한편, 백제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감지한 고려의 왕건은 백제땅의 경보대사를 찾아갈 준비를 한다. 견훤은 최승우에게 금강이의 후원자가 되어 줄 것을 부탁하고 같은 시각 능환은 신검을 찾아가 혁명군의 총사가 되어 줄 것을 강력히 권하는데...



씬  황도 저자거리 (밤)

 

        별감부의 파발마들이 무리 지어 달리고 있다. 그리고 어디론가 갈림길에서 흩어져간다. 백성들이 불안하게 그런 별감들을 보고 있다.

 

별감    (소리) 대소신료들은 모두 입궁하랍시오... 폐하의 영이시오... 내일 조회에 대소신료들은 모두 빠짐없이 입궁하랍시오.

 

씬  신검의 처소 외경

 

        군사들의 경계가 삼엄하다.

 

씬  동 처소 안

       

        신검이 두 아우를 보고 있다.

 

신검    뭐라......? 아바마마께서 전 신료들을 들라 하셨다...?

양검    예, 형님. 내일 아침 조회에 모두들 들라 하였다 하옵니다.

용검    무슨 일이 결정된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신검    결정이라..?

양검    이찬을 비롯하여 중신들이 형님의 일로 계속해 연일 모임을 가졌다 들었사옵니다. 일단 신료들은 모두 형님 편인 것 같사옵니다.

신검    신료들이 내 편이면 무엇을 하느냐? 문제는 아버님이 아니시냐?

양검    어마마마께서도 어제 대전에 드시어 형님의 일로 큰 언쟁을 벌리셨다 하옵니다.

신검    소용없는 일이다. 오히려 그런 일들이 더 나를 불리하게 만드는 것이야.

용검    신료들은 모두가 형님을 추대하려고 하고 있사옵니다. 절대로 아버님 뜻대로 쉽게는 아니 될 것이옵니다.

양검    파진찬이 대전을 다녀갔다 하는데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 궁금하옵니다. 분명한 것은 파진찬이 형님 편이 아니라는 것이옵니다.

신검    안다. 처음부터 그랬지. 한때, 나를 동정하기는 했다. 그래서 예성강도 따라나왔었지. 하지만 내 편은 아니었어.

용검    그러하옵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셔야 하옵니다, 형님.

신검    정신을 차리라...? 그래야겠지. 죽지 않으려면 그래야겠지.... 금강이는 지금 어찌하고 있다더냐?

양검    이렇다 할 움직임은 없사오나 거처하는 별궁 주변에 군사들의 경계가 삼엄하다 들었사옵니다.

용검    금강이야 이미 생각이 많을 것이옵니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고 있지 않사옵니까?

신검    글쎄다... 그것이 호박이 될지 아니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암, 모를 일이고 말고......... 그렇고 말고.....

 

        신검은 입을 앙 다물며 주먹을 불끈 쥔다.

 

씬  금강의 처소 외경

       

        이곳에서도 군사들의 경계는 여전히 삼엄하다. 고비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씬  동 방안

 

        고비가 웃으며 금강을 보고 있다.

 

고비    태자, 들으셨습니까? 폐하께오서 신료들을 소집하셨습니다. 내일 아침에 모두 들라 하신답니다.

금강    예, 어마마마.

고비    이곳으로 오다 보니 주변의 경계가 아주 잘 되어 있습디다. 그래야지요. 일국의 황제가 되실 분인데 함부로 처신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저 조심, 또 조심해야지요.

금강    그런 것이 아니라 늘 함께 다니는 부장과 그 군사들이옵니다.

고비    아무쪼록 군사는 늘 옆에 두셔야 합니다. 지금은 그럴 때입니다. 언제 어떤 불순한 무리들이 우리 모자의 목숨을 노릴지 모릅니다. 보위에 오르실 때까지는 조심을 하셔야지요.

금강    답답하옵니다. 참으로 보위에 오르는 것인지 아니면 어찌 되는 것인지....

고비    이런, 이런... 하시는 말씀하고는... 황후마마께서 대전에 드셨다 폐하께 큰 꾸중을 듣고 물러나셨다 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조회를 소집하라 명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과연 무슨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좋은 소식이 있을 것입니다. 암요.. 절대로 나쁜 소식은 없을 것입니다.

 

씬  황후전

 

        황후 박씨가 펄펄 뛰고 있다.

 

박씨    조회를 소집하신다...? 그예 결심을 하셨다 그 이야기이신가...?노망이시다. 폐하께서는 노망이셔. 신료들이 모두 우리 신검이를 추대하는데 어찌 그리 고집을 부리신다는 말인가..? 소실의 자식을... 그것도 외눈박이 자식을 황제의 자리에 앉히신다는 말인가? 허허, 그럴 수는 없지. 절대로 그럴 수는 없지. 우리 신검이가 양검이, 용검이가 귀머거리가 아니고 장님이 아닌 이상 그대로 있지는 않을 것이다. 어찌 되려고 이리 되어 가는가..? 참으로 영락없이 아버님 그대로이시다. 노망이 든 아버님 그대로이셔. 어허...

 

씬  궁궐 정문 (낮)

 

        문무신료들이 가득히 몰려들고 있다.  최승우가 들어서다가 능애와 함께 오던 능환을 본다. 서로 예를 올린다.

 

최승우  오랜만에 뵙사옵니다, 이찬 어른.

능환    그러게 말일세. 잘 지냈는가..?

최승우  예, 이찬 어른. 허허, 능애장군도 오랜만이십니다.

능애    그렇소이다. 오랜만이구려. 엊그제 대전을 다녀가셨다 들었습니다마는...

최승우  그랬지요. 폐하께서 찾으시어 잠시 다녀갔소이다.

능애    허면 오늘 조회가 무엇 때문인지 짐작이 가시겠구려?

최승우  글쎄올습니다.

영순    폐하께서 뭔가 언질을 아니 주셨사옵니까?

최승우  허허, 글쎼요.. 소생은 모를 일이올시다. 자, 가시지요.

 

        그들 그렇게 간다. 저쪽으로 김총과 애술이 지나치고 있고 또 한쪽으로는 파달과 상귀, 상애들이 지나쳐가고 있다.

 

씬  동 편전

 

        문무신료들이 가득히 도열해 있다. 견훤이 옥좌에 앉아 내려보다가 말한다. 

 

견훤    (한참만에) 경들은 모두 들으라.

모두들  예...

견훤    짐은 그 동안 운주에서 돌아온 이래로 오랫동안 칩거해 있었다. 우선 내 몸이 아팠기 때문이고 또한 나라를 운영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신료들  ............... (그 면면이 지나쳐 간다)

견훤    돌이켜보건대 운주 전투의 실패는 어려운 것을 끝내 고집했던 나의 잘못이었다. 또한 그 일로 하여 우리 백제는 상당한 타격을 입었고 당분간은 전투를 하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하여 생각 끝에 몇 가지 일을 결정하였느니라.

신검들  ....................?

견훤    제일 급한 것은 우리의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는 것이다. 우리의 영화를 되찾고 힘을 되찾고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자는 것이다.

애술    그러하옵니다, 폐하. 오늘 신은 폐하의 그러한 말씀을 들으니 피가 용솟음치옵니다. 우리 백제가 이렇게 주저앉을 수는 없사옵니다. 다시 한번 전투를 명하시면 소장이 비록 나이가 들었으나 죽음으로 앞서 보이겠사옵니다.

견훤    고맙도다. 하지만 애술장군. 지금은 나아가서 적의 머리를 하나 베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는가 하는 것이 더 절실해.   

능환    폐하, 사실이 그러하옵니다. 산적한 국내 문제를 먼저 해결하시고 그 다음으로 국방을 논해야하옵니다.

능애    이찬의 말이 지극히 당연하옵니다. 조정의 문제를 풀지 않고는 밖의 일을 풀 수가 없사옵니다. 굽어 헤아리시오소서.

신덕    소신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먼저 후사에 관한 태자마마의 일을 매듭짓기를 청하옵니다.

견훤    그래서, 그래서 이렇게 들 보자고 한 것이 아닌가? 내가 경들에게 할 말도 있고 말이야.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는데 내 비록 나이가 일흔이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아. 내가 내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이전에 정리를 해야 할 일들 말이야. 그 첫 번째가 우리 태자들이 보다 확실하게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지도력을 배우는 것이야. 신검이와 양검이 용검이는 듣거라.

그들    예, 폐하.

견훤    신검이 너는 맏이로서 태자 중 가장 윗 서열에 있다. 그리고 수많은 전투를 경험했다. 허나 이제부터는 나라 사정을 살피는 공부를 해야할 필요가 있다. 알겠느냐?

신검    예, 아바마마.

견훤    너는 내가 곧 별도로 영을 내릴 것이니 대기하도록 하고... 양검이와 용검이 말이다.

두 사람 예, 폐하.

견훤    너희들은 훗날 형을 보좌하여 나라를 크게 이끌어야 할 재목들이다. 강주(경남 진주)와 무주(광주광역시 일대)로 내려가 그곳의 도독을 맡아 군사를 조련하도록 하라. 알겠느냐...?

 

        그러나 두 형제는 대답이 없다. 눈을 크게 뜨고 서로를 본다. 신료들도 모두 날카로운 눈빛을 띈다.

 

견훤    강주와 무주로 가라고 하였다. 옛날에도 한번 가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가서 군사를 조련하면서 나랏일을 배우도록 하라. 알겠느냐? 알겠느냐고 물었다.

두 형제 (마지못해) 예, 폐하...

견훤    뭐니뭐니해도 경험이 제일이다. 가서 배우도록 하라.

능환    폐하, 이 나라에는 그런 곳에 도독을 맡을만한 인물들이 기라성처럼 많사옵니다. 하필이면 태자마마들이시옵니까?

견훤    도대체 이찬이 황제의 자리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황제인가? 태자들을 교육시키려고 한다 하지 않는가?

능환    송구하옵니다, 폐하.

견훤    형제가 똘똘 뭉쳐서 몰려다니며 술이나 마시는 것은 좋지가 않다. 이제 각자 독립하여 큰 지역을 맡아 다스려보는 것도 좋은 일이야. 내일 중으로 당장 떠나도록 하라.

양검    내일 중으로 말이옵니까?

견훤    그렇다. 내일 해가 지기 전에 가라는 말이다. 그리고 경들은 들으라.

그들    예, 폐하.

견훤    내 나이 비록 일흔이라 하나 이렇게 아직 멀쩡하고 정정하다. 도대체 왜 그리들 옥좌에 대해서 말이 많은가?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그야말로 대역죄인들이나 할 수 있는 소리다. 다 때가 되면 자식들에게 물릴 것이고 때가 되면 순리대로 다 풀어갈 것이야. 모두 입조심들 하도록 하라. 알겠는가?

모두들  예, 폐하. 망극하옵니다.

견훤    내 비록 등창을 좀 앓고 있다 하나 당장 죽는 병은 아니야. 경거망동들 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리고 신검이 너...

신검    예, 폐하.

견훤    네 아우들의 떠나고 나면 특별히 짐을 대신하여 나라 사정을 살펴볼 임무를 줄 것이다. 그리 알고 대기하거라.

신검    예, 폐하.

견훤    그리고... 내 곰곰 생각해 보았는데 이 나라는 다시금 병력을 증강하고 고려와의 일전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있어. 그 동안 여러 장수들이 많은 소임을 나누어 맡았는데 지금부터는 그 총 군권을 장군 박영규에게 맡길 것이야.

 

        그러자 모두들 크게 놀란다. 금강이 뭔가 미소를 짓는다.

 

신덕    폐하, 군권을 박영규 장군에게 맡긴다 하셨사옵니까? 허면 다른 장수들은.....?

견훤    다른 장수들은 박영규 장군의 지시를 받게 될 것이야. 그 일은 차후에 다시 세부 영이 내려갈 것이야. 박장군은 들어라.

박영규  예, 폐하.

견훤    이 시간 이후부터 그대가 모든 이 나라의 군권을 행사한다. 잘못된 것은 군율로 다스려라. 군대의 이동과 황궁의 질서와 그리고 전국의 군사에 관한 명령은 그대의 소관이니라. 알겠느냐?

박영규  뜻밖에 영을 받자와 몸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하오나 기왕에 주신 소임이라면 열심히 해 보이겠사옵니다.  

견훤    금강이는 박영규 장군을 도와 그 부총사를 맡도록 하라.

금강    예, 폐하.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신료들은 모두 다시 한번 꿈틀하며 놀란다.

 

영순    폐하, 이리되면 이 나라의 모든 군권을 박영규 장군과 금강 태자마마께서 관장하시는 것이 아니옵니까?

견훤    그렇다. 왜...? 뭐 할 말이라도 있는가?

영순    아, 아니옵니다. 다만 군부의 일은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있는 지라...

견훤    황제가 명령하는 것이다. 네가 무얼 안다고 지껄이는 것이냐? 자, 다들 들었는가? 나라를 위한 쇄신책을 짐이 내놓은 것이다. 그리고 또 있다. 파진찬..?

최승우  예, 폐하.

견훤    지금까지 이 나라의 모든 공무정사는 이찬이 관장하였으나 이 이후로는 그대가 관장할 것이다. 이찬은 이제 쉴 때가 되었다. 벼슬은 그대로 두겠으나 조정 일에서는 손을 떼게 될 것이다.

능환    ............ (눈을 감는다)

견훤    짐은 이제부터 이 나라에 제 2의 건국을 선포하는 바이다. 새로운 군사력을 모으고 새로운 조정의 쇄신을 요구할 것이다. 이러한 짐의 뜻을 모두 잘 따라주기 바란다. 알겠는가?

모두들  예, 폐하.

견훤    앞으로 나라 일에 불만을 표하는 자, 그리고 황실의 일에 이러쿵저러쿵 비방을 하는 자, 특히나 짐이 앉아 있는 이 옥좌에 관하여 논하는 자는 대역죄로 다스릴 것이니라. 모두들 이 점을 명심하고 잘못을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알겠는가?

모두들  예, 폐하.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씬  황후전

 

        황후 박씨가 이상궁에게 놀라며 묻고 있다.

 

박씨    무엇이라고....? 우리 양검이와 용검이가 강주와 무주로 내려가...?

이상궁  예, 황후마마. 조금 전 편전에서 그러한 영이 내려지셨다 하옵니다.

박씨    우리 신검이는...?

이상궁  곧 대기하였다가 지방순행을 떠나신다 하옵니다.

박씨    지방순행을 떠나...? (생각하다가) 이거야말로 뭔가 짜놓은 계획이 아니겠느냐? 형제들은 뿔뿔이 찢어서 지방으로 보내고 우리 신검 태자를 혼자 있게 하자는 흉계가 아니냐?

이상궁  그리고 또 있사옵니다.

박씨    말해 보거라.

이상궁  이 나라의 군권을 박영규 장군이 총괄하게 되었으며 그 부총사를 금강 태자께서 맡으셨다 하옵니다.

박씨    뭐라고.....? 이 나라의 군권을 박영규 장군과 금강이에게 줘...?

이상궁  예, 마마.

박씨    허, 드디어 마각이 드러나는구나. 폐하의 흉심이 다 드러나는 것이야. 아니 되겠구나. 이야말로 날벼락이 떨어지고 있구먼. 아니 되겠어....

 

씬  고비전

 

        고비가 계속 웃고 있다. 동경을 보며 머리 매무새를 잡고 있다.

 

고비    호호호.... 그러면 그렇지. 폐하께서 우리 모자에게 하신 약속을 버리실 리가 있는가? 황제에 오르는 수순을 밟고 계시는구먼.

최상궁  감축드리옵니다, 마마. 모든 것이 다 제대로 되어 가는 것 같사옵니다.

고비    왜 아니겠느냐? 우리 태자가 보위에 오르면 나는 황태후가 된다. 그때, 이 나라의 제조상궁은 너에게 주마.

최상궁  망극하옵니다, 마마.

고비    그래, 이제 드디어 때가 이른 것이다. 다 끝이 났다. 끝이 났어. 우리 금강 태자가 이 나라의 군권을 손에 쥐었다고...? 그것도 박영규 장군과 함께...? 호호호... 다 끝났다. 다 끝났어. 이제 누가 감히 우리에게 비수를 들여댈 수 있다는 말이냐? 호호호... 다 끝났느니라. 암...

 

씬  궐안 길

 

        신료들이 삼삼오오 조회를 끝내고 빠져 나오고 있다. 그 한쪽에서 능환과 능애가 걸어오고 있다. 그러다 어느 모퉁이에서 선다.

 

능환    폐하께오서 단단히 칼을 빼셨소이다. 이야말로 아주 철두철미하게 계획적이올시다.

능애    그렇게 된 것 같소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방법을 생각해 보아야지요.

능환    이미 손발이 다 잘렸소이다. 군권은 박영규 장군이 가져가 버렸어요. 박영규 장군은 금강 태자의 편에 있는 사람이올시다.

능애    쉽지 않을 것입니다. 명령체계는 그렇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장수들이 자신들의 사병을 개인적으로 움직이고 있소이다. 결코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암요.... 아무튼 우리 신료들이 대책을 논의 해야겠소이다.

능환    신덕 장군과도 만나야겠소이다.

능애    그래야겠지요.

 

        그런 그들의 다급한 표정에서....

 

씬  신검의 처소 밖

 

        여전히 군사들의 경계가 삼엄하다.

 

씬  동 처소 안

 

        삼형제가 모여있다. 모두들 심각한 표정이다. 하녀가 술상을 놓고 나간다.

 

신검    (술을 따르며) 내일이면 임지로 떠나야 하니 들 바쁘게 되었구나. 자, 이 형이 주는 술이나 한잔 씩 하고 떠나거라.

양검    형님, 이거야말로 너무도 눈에 드러나 보이는 뻔한 계책이옵니다. 알면서 떠날 수는 없사옵니다.

용검    그렇사옵니다. 소제는 아니 가겠사옵니다.

신검    황명을 거역할 셈이냐...?

양검    형님.....? 형님의 수족인 우리들을 멀리 쫓아 보내고 결정적으로 형님의 힘을 약화시키자는 의도이옵니다.

신검    어쩌겠느냐...? 아버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신데.... 이건 군령이다. 따를 수밖에...

양검    해도 해도 너무하시옵니다. 매부한테 군령을 통째로 맡겼다는 것은 즉 우리를 경계하고자 하는 일이 아니옵니까?

신검    글쎄다.... 매부가 금강이와 자주 만나는 것은 사실이다마는 확실하게 이쪽 저쪽 편을 논할 수야 있겠느냐..? 금강이 보다는 우리가 더 가까운 친 매부가 아니냐..?

용검    아직도 매부를 두둔하시옵니까? 폐하께서 왜 그쪽에 다 맡기셨다 하겠사옵니까? 다 우리의 적이옵니다, 형님

신검    자, 들 마시거라. 갈 길이 멀지 않느냐?

양검    이대로는 못 간다 하였사옵니다. 형님께서 손발이 다 잘리고 계시는데 우리만 떠날 수는 없사옵니다.

신검    누가 손발이 잘린다는 말이냐? 이 어리석은 것들아. 나는 너희들의 형이고 이 나라 황실의 맏이다.

두 헝제 예...?

신검    그렇게 쉽게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올 줄 알았더냐..? 이 나라의 신료들은 다 나를 원하고 있다. 그게 내게 남아있는 유일한 믿음이고 힘이다.

양검    하지만 군권은 다른 곳으로 옮겨갔고 이찬도 벼슬만 남아있을 뿐 그 소임을 박탈당했사옵니다.

신검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너희들 일이나 걱정해라. 마시거라.

용검    형님.........? 두렵지도 않으시옵니까? 보이지 않는 칼날이 우리들 목으로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신검    이미 보이지 않는 내 칼도 검집에서 나와 움직이고 있느니라.

두 형제 형님.....?

신검    마시거라. 마시고 어마마마께 하직인사라도 드려야 하지 않겠느냐? 자, 어서....

두 형제 형님.....

 

씬  대전 밖 (밤)

 

씬  동 대전 안

 

        최승우와 견훤이 마주해 있다.

 

견훤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졌네. 이제 뭔가가 시작되었어. 

최승우  그러하옵니다.

견훤    내가 금강이를 앉히고자 하는 것을 신검이와 그 아우들도 알 아 차렸을 것이야. 그리고 신료들도 말이야.

최승우  그럴 것이옵니다.

견훤    어쩌겠는가? 이 나라를 살리고자 하는 고육지책이었어. 그리고 실제로 금강이 보다 나은 자식놈이 어디 있는가?

최승우  신료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옵니다.

견훤    어느 놈이 내게 저항을 해...? 나는 이 나라의 황제야. 내가 이 나라를 세웠고 자식놈들은 내가 낳았어. 누가 이 일을 시비한다는 말인가? 내 말하지 않았는가? 그런 자들은 대역죄로 다스릴 것이라고...

최승우  그래도 저들은 반발할 것이옵니다. 이미 신검 태자마마와 선이 닿은 지는 오래된 사람들이옵니다.

견훤    그래서 군권부터 서둘러 빼앗지 않았는가? 자, 그보다도 파진찬.... 이제 자네는 어쩔 것인가?

최승우  무얼 말씀이옵니까?

견훤    우리 금강이가 내 뒤를 잇는다면 변함없이 도와주겠는가? 자네가 도와주지 않으면 금강이는 없네.

최승우  ............... (미소만)

견훤    대답 해주게. 자네가 도와 주어야해.

최승우  신은 드릴 말씀이 없사옵니다. 그때까지 살아 있을지도 의문이옵니다.

견훤    무엇이라...? 그게 무슨 말인고...? 나는 이 일을 그렇게 오래 끌지 않을 작정이네. 며칠 있다가 신검이를 다시 지방으로 보내고 그 사이에 바로 금강이를 등극시킬 것이야.

최승우  말씀드리거니와 신은 오로지 폐하만을 의지하여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이옵니다. 이후의 일은 장담키 어렵사옵니다.

견훤    이 사람, 파진찬.... 내가 어디 나 혼자 잘 살자고 이리 발버둥치는 것인가..? 자네와 내가 세운 나라일세. 천년 만년 이 사직이 보전되기 위해서 하는 일일세. 나는 이제 틀렸어. 우리 금강이를 도와주게, 파진찬...

최승우  그리할 수만 있다면 어찌 외면 하오리까..?

견훤    고맙네.. 고맙네, 파진찬...

최승우  다시 청하옵니다. 기왕에 결단을 내리신 일이라면 매사를 냉정히 처리하시오소서. 인정을 두지 마시오소서. 나랏일이옵니다. 태자분들을 기왕에 버리셨다면 냉혹하게 버리시오소서. 그것이 바로 폐하가 사시고 나라가 사시는 길이옵니다.

견훤    어쩌겠는가....? 그래도 자식이 아닌가...?

최승우  다시 한번 말씀드리옵니다. 태자분들을 지방으로 보내시는 즉시 그 목숨을 거두시오소서. 신검 태자마마도 마찬가지이옵니다. 

견훤    파진찬......? 자네 참으로 차가운 사람이로구먼. 내 말하지 않았는가? 그래도 자식이야. 죽일 만큼 죄를 진 것은 아니지 않는가?

최승우  (긴 한숨) 훗날 신의 말이 생각나실 때가 있으실 것이옵니다. 더 이상 말씀 올리지 않겠사옵니다, 폐하.

견훤    그래, 그래... 그저 우리 금강이만 잘 도와주게. 나는 자네만 있으면 든든하이. 우리 금강이도 같은 생각일 게야. 아니 그런가, 파진찬...?

최승우  더는 드릴 말씀이 없사옵니다, 폐하....

견훤    나는 자네만 믿네, 자네만 믿어...

 

씬  백제국 병부 외경

 

        군사들의 경계가 삼엄하다. 곳곳에 횃불이 밝다.

 

씬  동 병부 안

 

        박영규와 금강이 마주해 있다.

 

금강    조금 얼떨떨합니다, 매부. 병부의 모든 권한을 인수받았으나 아직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이야말로 벼락처럼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까?

박영규  폐하께오서 기존의 군부 인사들에게 어떻게 해볼 여지를 두지 않으시려고 서두신 것 같사옵니다.

금강    물론 저도 압니다. 그래도 매부를 그만큼 신뢰하기 때문에 내리신 조치가 아니시겠습니까? 매부께서는 이 나라의 병권을 총괄 맡게 되셨습니다.

박영규  하지만 겉만 번지르르한 병부의 권한은 아무 소용이 없사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백제나 고려나 각 장수들 밑에 많은 사병들이 모여있는 군의 체제이옵니다. 일선 지휘부가 우리들의 영을 잘 따를까 걱정되옵니다.         

금강    황제 폐하의 영이십니다. 누가 영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박영규  글쎄올습니다... 폐하께오서 워낙 서두르고 계시니 정신이 하나도 없사옵니다.

금강    하하하.. 저도 그렇습니다, 매부. 하지만 분명한 것은 폐하께오서 저를 위해 서두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훗날 매부의 이런 도움도 꼭 기억하겠습니다.

박영규  예, 태자마마. 다 잘 되었으면 좋겠사옵니다마는....

 

씬  능환의 집 외경

 

        이곳에도 경계가 삼엄하다. 사랑 장지에 불빛이 밝다.

 

씬  동 집 사랑

 

        능환과 능애, 영순, 신덕, 파달, 상애, 상귀가 모여있다.

 

능환    다들 조회에서 듣고 보셨겠지만 우리의 염려가 사실로 다가왔소이다. 생각보다 빠르게 말이올시다.

능애    형제분들을 외지에 보내고 곧 신검 태자마마도 순행이라는 이름 하에 도성을 떠나게 한다면 그걸로 다 끝이올시다.

파달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것이옵니까?

영순    어떻게 되다니요? 금강 태자께서 보위에 오르시겠지요. 그리고 결국은 신검 태자마마는 물론 그 형제분들은 다 죽이실 겝니다.

상귀    그렇게까지 된다는 말입니까?

신덕    그렇소이다. 본래 황제의 자리라는 것은 후환을 염려해서는 아니 되는 자리이지요. 황권의 다툼이 있고 난 뒤에는 어느 역사를 보더라도 그 상대는 다 죽었습니다.

능환    능애 장군의 말씀처럼 뭔가 결단할 때가 온 것 같소이다. 나라를 위해 폐하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드려야 하오이다.

상애    헌데 애술 장군과 김총 장군은 왜 아니 보이시옵니까?

능환    두 장수는 본래 폐하의 심복이올시다. 그리고 사려가 깊지 못한 사람들이올시다. 이런 중요한 일을 함께 의논할 상대는 아니 되지요. 그래서 아니 불렀소이다.

능애    파당이 오래가서는 아니 됩니다. 빨리 조정의 기강을 바로잡고 순리대로 신검태자를 보위에 앉혀 올려야 하오이다. 그리고 새 황제로 하여금 다시 통일을 거론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신덕    결국 길은 하나 뿐이올시다. 능애 장군께서 말씀하신 그 길 말입니다.

파달    군사를 일으키자는 것이옵니까?

신덕    그렇소이다. 혁명이올시다.

모두들  혁명........?

능환    (큰 한숨) 국가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오늘의 현실이올시다. 고려는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우리 백제는 큰 전투마다 연패를 하였고 나아갈 진로가 막혔소이다. 게다가 나라 안의 내분까지 격화되고 있어요. 빨리 매듭을 지어야 합니다.

영순    결국 혁명을 하자면 어찌하자는 것이옵니까?

능환    신검 태자마마를 모시자고 하지 않았소이까?

영순    그리되면 폐하께서는 어찌 되시는 것이옵니까?

능환    그야... 여기서 논의가 되어야겠지요. 어찌하면 좋겠소이까? 지금의 황제 폐하를 어찌하면 들 좋겠소이까?

 

        모두들 대답이 없다. 그렇게 서로를 본다.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그들의 그런 면면에서....

 

씬  황궁 황후전 외경

 

씬  동 황후전 안

 

        세 아들과 박씨가 함께 해 있다. 모두들 무거운 표정이다.

 

박씨    두 태자가 변방으로 간다고.....?

두 태자 예, 어마마마.

박씨    그래, 폐하의 명이신데.. 가라면 가야겠지... 신검 태자도 곧 순행을 떠난다고...?

신검    예, 어마마마. 며칠 안으로 다시 영이 내려질 것 같사옵니다.

박씨    결국 이렇게 당하는구먼. 소실에 눈이 어두워서 그 외눈박이 자식을 이뻐하다 못해 적장자를 내치신 다니...?

양검    어마마마, 소자들은 가고싶지 않사옵니다. 형님께서는 괜찮다고 하시지만 소자들이 떠나면 분명히 큰 봉변을 당하실 것이옵니다.

박씨    글쎄다... 길고 짧은 것은 대 보아야 알겠지. 이찬도 신검 태자의 편에 있고 능애 장군도 그렇고... 그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렇소, 신검 태자..?

신검    예, 어마마마. 소자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아무튼 동생들은 칙명을 받았으니 떠나야 하옵니다.

박씨    그래야겠지요. 떠나도록 들 해라. 태자들의 형은 그리 호락하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냥 있지 않을 것이고... 이미 폐하께서는 망령 끼가 드셨다. 어쩌면 그렇게 상주의 할아버지와 한치도 다르지 않다는 말이냐..? 상주의 그 어른도 작은댁 때문에 자식을 버리고 고려로 가시지 않았느냐..? 이게 꼭 그 꼴이 되게 생겼어. 가거라. 가지 않으면 오히려 반역죄를 물어 올 것이다. 그러면 오히려 신검 태자가 위험하게 된다.

양검    알겠사옵니다, 어마마마.

박씨    그러나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 것은 게을리 하지 말거라. 알겠느냐? 형제의 끈이 풀어지면 모두 다 죽을 수가 있어.

양검    예, 어마마마.

용검    염려마시오소서. 절대로 형님을 소홀히 하지는 않겠사옵니다.

박씨    그래야지. 그래야 하고 말고... 그래도 형제들인데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살아야지.

 

        박씨의 눈에는 도끼가 펄펄 일고 있다.

 

씬  다시 능환의 집 사랑

 

        여전히 신료들이 모여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

 

능애    자, 우리는 이제 모두 뜻을 모았소이다. 결국 선택은 혁명뿐이라는 것을 말이오. 

영순    다행히도 신덕 장군이 그 동안 황도의 군권을 맡고 있었소이다. 비록 지금은 박영규 장군 쪽으로 넘어갔다 하나 군부의 실권은 아직도 신덕 장군이 막강하게 쥐고 있소이다.

파달    그렇사옵니다. 일선 지휘부는 박영규 장군보다도 신장군의 말을 더 따를 것이옵니다.

능환    그나마 다행이올시다. 군의 힘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 지요. 문제는 황제 폐하올시다. 폐하는 신검 태자마마와 논의하여 잘 모시도록 하십시다.

상귀    결국 폐위를 시키자는 것이 아니옵니까?

능환    폐위가 아니라 그 아드님에게 선위를 하시는 것이올시다. 황제의 자리를 기꺼이 물려주시는 것 말이올시다. 세상이 그렇게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부의 혼란이 밖으로 드러나서 나라가 위태로울 수 있어요. 그런 것은 막아야 합니다.

능애    옳은 말씀이십니다. 되도록 혼란은 짧을 수록 좋습니다. 일단 이 일을 신검 태자마마와 의논을 하십시다.

능환    그렇게 하십시다. 허면, 신덕 장군은 파달, 상애 장군과 더불어 하시라도 군사를 쓸 수 있도록 대비해 주시구려.

신덕    예, 이찬 어른.

능환    또한, 내일 임지로 떠나시는 양검, 용검 태자마마 두분에게도 우리의 뜻을 극비리에 전하여 항시 그분들의 군대를 동원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할 것이외다.

신덕    알겠사옵니다, 이찬어른.

능환    허허, 끝내 우리가 이런 의논을 하고 마는구먼. 끝내...

 

        그렇게 도리질을 하는 능환은 괴로운 표정이다. 그들의 면면이 서서히 지나치면서... 디졸브

 

씬  황궁 외경 (아침)

 

씬  동 대전 밖

 

        양검과 용검이 갑옷차림으로 들어와 문 밖에 선다. 그리고 별감에게 눈짓한다.

 

양검    아뢰어라.

별감    예, 태자마마. (큰 소리로) 폐하, 두분 태자마마께서 드셨사옵니다. 폐하, 두분 태자마마께서 드셨사옵니다.

견훤    (소리) 들라하라.

벌감    어서 드시오소서.

 

        두 형제가 투구를 끼고 대전 안으로 들어간다.

 

씬  동 대전 안

 

        두 태자의 인사가 끝난다. 견훤이 물끄러미 본다. 그들도 견훤을 본다.

 

견훤    임지로 떠난다고.....?

두 태자 예, 폐하.

견훤    그래, 이 황도에만 머물러 있어 보았자 배울 것이 없다. 가서 경험도 쌓고 백성들도 다스려보고 군사도 독자적으로 조련해보고 하거라.

두 태자 예, 폐하.

견훤    말해두거니와 이것은 공부다. 너희들의 소임을 게을리 하지 말라. 하나도 둘도 나라만 생각하고 그것이 너희들의 살길이다.

양검    예, 아바마마. 소자들이 없는 동안 옥체강녕하시오소서.

견훤    오냐. 이 등창이 그렇게 쉽게 죽는 병은 아니다. 염려 말고 가 있거라.

용검    하오면 떠나겠사옵니다. 다시 문후 올리겠사옵니다.

견훤    오냐, 가거라. 어서 떠나거라.

두 태자 예, 폐하.  

 

        두 형제는 그렇게 예를 올리고 대전을 빠져나간다. 나가다 말고 그들은 한참 견훤을 보다가 다시 나간다. 뭔가 의미가 있다. 견훤은 끄덕인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견훤    (소리) 가서 한 몇 년 푹 쉬고들 있거라. 그것이 너희가 살길이다. 파진찬은 너희를 죽이라 하였다마는 그래도 자식이라 하여 살려두는 것이다. 제발.. 나라의 후환거리가 되지 말거라. 제발.. 한 몇 년만 조용히들 있어다오. 금강이가 황제에 올라서 통일을 할 때까지만...

 

        견훤은 그렇게 한숨을 쉬며 끄덕인다. 그의 그런 표정에서...

 

씬  고려 황도 외경

 

씬  동 광평성

 

        신료들이 모여있다. 김행선, 왕식렴, 복지겸, 왕규, 추언규, 홍유, 배현경, 유금필, 박술희, 염상, 윤신달, 박수문 형제들이다. 김행선 앞에 신라에서 온 사신이 서 있다. 김행선이 가져온 국서를 읽고 있다. 그리고 크게 웃는다.

 

김행선  하하하... 귀국의 폐하께서 이처럼 우리 고려국의 은혜에 감사하는 글을 보내다니 우리 폐하께서 보시면 기뻐하실 것이외다.

사신1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우리 신라의 운명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고려에서 맡아있사옵니다.

박술희  하하하.. 고려에서 맡아 있다. 거 참 듣기 싫지 않은 말이구려. 아니 그렇습니까, 형님..?

유금필  당연한 말일세. 신라의 서라벌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우리 고려의 군사들 때문일세. 백제에서 밀고 오고 우리가 빠져 버린다면 서라벌은 반나절도 견디지 못할 것일세.

홍유    그러고 보면 우리 폐하의 은혜가 얼마나 크시오이까? 사시사철 때마다 걱정을 해주시고 또 뒤를 살펴드리지 않소이까?

배현경  아, 왜 아니겠소이까? 힘으로 하려고 들었다면 벌써 예전에 끝이 났을 것인데 폐하는 끝내 신라를 생각하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염상    그러니까 우리 폐하를 일러 군자 중에 군자시요, 성인이라 하시는 것이올시다. 힘보다는 은혜로 대함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오이까? 헌데도 폐하는 늘 세상사를 다 인정으로만 대하십니다.

복지겸  사신은 들으셨소이까? 폐하의 은혜가 이와 같소이다. 신라로 돌아가시거든 이런 고려국 폐하의 은혜를 널리 전해주시구려.

사신1   예, 장군. 새삼 전할 것도 없사옵니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옵니다. 고려가 있기에 모두들 굶어죽지 않고 백제군에 짓밟히지 않고 있다는 것을 신라 백성 치고 모르는 이 아무도 없사옵니다.

추언규  그렇다니 다행이구려. 하긴 뭐 곧 신라나 우리 고려가 한 나라가 되지 않겠소이까?

박수문  왜 아니겠소이까?

사신1   사실 우리 조정에서는 지금 그 일로 의견이 분분하옵니다. 한쪽에서는 고려에 나라를 바치자 하고 또 한쪽에서는 좀 기다리자 하고...

왕식렴  하하하... 어차피 신라는 작은 고을 하나 밖에 아니 남았소이다. 어느 길이 사는 길인지는 알아서들 하시구려. 이제는 이렇게 고맙다는 국서나 들고 올 것이 아니라 귀국의 황제께서 직접 오셔야 할 것이외다. 나라를 들고 말씀이올시다.

왕규    총관의 말씀이 참으로 지당하신 것 같습니다. 하하하....

 

        모두들 웃고 있다. 사신도 바보처럼 따라 웃고 있다.

 

씬  대전

 

        왕건과 정윤 무 그리고 오씨와 유씨가 함께 다과를 들고 있다.

 

왕건    요즘 내명부에서 모두들 바쁘다 들었습니다.

유씨    예, 폐하. 황후마마께서 하시는 일이 워낙 많으시어 우리 부인들 모두 덩달아 쉴 짬이 없사옵니다.

오씨    오호, 이런 사람하고는....

왕건    하하하... 그렇게 바쁜 일이라는 것들이 도대체 무엇이오..?

유씨    폐하께오서는 부지런히 서경을 순례하시고 또 전국 곳곳에 축성하시는 곳을 다니시며 백성들을 위로하시듯이 황후마마 또한 나라 안의 빈민들이나 불쌍한 백성들의 구휼에 앞장서고 계시옵니다.

 무     그러하옵니다. 어마마마께서는 상궁과 나인들을 밖으로 보내시어 집 없이 떠도는 유랑민들이나 병자들을 구휼하는데 앞서고 계시옵니다. 황후전에서 관리하는 황실의 내탕금을 모두 딱한 백성들을 위해 쓰고 계시는 줄 알고 있사옵니다.

왕건    저런, 저런... 몰랐소이다. 과연 황후다운 일이시오. 그래야지요. 나라의 국모님이 아니십니까? 딱한 백성들을 마땅히 생각하셔야지요.

유씨    뿐만 아니옵니다. 늘 사찰에 가시어 국태민안을 기도하시옵니다.

오씨    괜한 소리들이옵니다. 신첩은 그저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옵니다.

왕건    황제가 할 일이 있고 황후가 할 일이 있어요. 황제가 바깥 살림을 맡고 있다면 황후는 황제가 알지 못하는 안살림을 맡는 것이올시다. 그 조화가 잘 이루어질 때 나라가 편안해 지는 법입니다. 오늘 참 좋은 이야기를 들었구려. 요즘 따라 전쟁이 없소이다. 얼마나 백성들이 편안해 하오이까? 이대로 그만 통일이 되었으면 참으로 좋으련만...

오씨    소문을 듣자하니 백제의 왕은 이제 늙어서 병이 들었다지요..?

왕건    그렇다고 합니다. 운주에서 그일 때문에 백제가 우리에게 졌어요. 허나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소이다.

무      백제의 왕이 병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오래도록 조용한 것은 조금 의심스럽사옵니다.

왕건    그렇지 않아도 그 일로 하여 많은 첩자들을 보내 알아보고 있느니라. 아마도 백제왕이 워낙 나이가 많다보니 그 자식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하더구나.

유씨    그렇사옵니까? 그렇게도 백제왕은 나이가 많사옵니까?

왕건    나보다 십 년이 연상이니 올해로 칠십이 될 것이오. 허허허... 

무      지난날 백제에서 염흔이라는 대신이 투항해 온 적이 있었사옵니다.

왕건    그랬지.

무      그 자의 말에 의하면 형제들 간에 왕위 다툼이 치열하다 들었사옵니다. 죽은 최응공은 또한 머지않아 백제가 내분에 의해 무너질 것이라 유언한 바가 있지 않사옵니까?

왕건    그랬었지.

무      최응공은 유서에 그런 말도 남겼사옵니다. 때가 되거든 백제 땅에 있는 경보 대사도 찾아뵈라고 말이옵니다.

왕건    그렇구나... 생각이 난다. 분명 그리 말을 했었지. 오오... 그러고 보니 지금이 그런 때인 것 같다. 아주 잘 말해주었다. 경보대사라...? 찾아뵈어야지. 암, 이제 찾아뵈어야지. 그래.... 

 

씬  백계산 옥룡사

 

        툇마루에 앉아 경보가 먼 하늘을 보고 있다. 시자가 옆에서 말해주고 있다.

 

시자    지난 운주성 전투에서 백제군이 대패를 하였다 하옵니다.

경보    (끄덕인다) ........

시자    그 이유인 즉은 백제의 왕이 등창이 심해서 그랬다 하옵니다. 고창에서도 지고 운주에서도 패한 이후로 백제가 많이 위축되고 흔들리고 있다 하옵니다.

경보    ......... (역시 끄덕인다)

시자    대사님, 게다가 백제의 왕과 그 아들들이 불화가 아주 심하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사옵니다.

경보    그럴 것이다. 이미 하늘의 이치가 그리 정해졌다고 스승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었느니라. 아주 오래 전에 말이다. 때가 되어 가는 것 같다. 삼한의 운명이 서서히 그 결말을 보는 것 같다.

 

        그런 경보의 표정으로 석양의 구름 떼가 수없이 밀려가고 있다.

 

씬  신검의 처소 외경 (밤)  

 

씬  동 처소 안

 

        신검과 능환이 마주해 있다. 신검 혼자 술을 마시고 있다.

 

신검    이찬, 지금 혁명이라고 하시었소이까...?

능환    예, 태자마마. 신료들이 마지막으로 택한 길이옵니다. 태자마마께서 혁명군의 총사에 오르시어 잘못된 국법을 바로 잡으시오소서.

신검    (술 마시며) 잘못된 법을 바로 잡으라...? 허허허.... 자식이 되어 그 아비의 잘못을 바로 잡는 법도 있다는 말이오...? 이것은 혁명이 아니라 반란이 아니오이까?

능환    혁명이옵니다.

신검    반란이올시다.

능환    혁명이옵니다.

신검    자식이 아비를 치라는 것인데 어찌 혁명일 수 있소이까? 이것만은 피하고자 수십 번 수백 번 참아왔소이다. 이제 칼을 빼라는
 말입니까?
능환    혁명이옵니다. 잘못된 것을 타파하고 옳은 것을 찾아 일어서시는 것은 혁명에 속하옵니다. 태자마마의 것을 도적들이 빼앗아가려고 하옵니다. 어찌 칼을 아니 빼실 수 있사옵니까? 일어나시오소서, 태자마마. 그리고 황제에 오르시오소서.

신검    ...........

능환    황제에 오르시오소서.

 

       

                                                                <185회 끝> 





첨부파일 태조왕건185.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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