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 <제 186회>
신검은 능환의 혁명권유를 대권탈취를 위한 반란에 불과하다며 단호히 거부한다. 군권을 장악한 박영규와 금강은 제장회의를 열고 병부의 단합과 일신을 강조하지만 황도방위를 맡고 있는 신덕장수와 그 일행은 군사적 반란을 준비하는데... 한편, 고려의 왕건은 백계산 옥룡사의 경보대사에게 삼한통일의 혜안을 얻고자 관료들을 파견하고 황후 박씨와 신료집단의 계속되는 혁명권유에 신검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파진찬 최승우는 다가올 파국을 막기위해 금강이를 찾아가 욕심을 버리고 신검에게 자리를 양보하라 권하는데...
씬 신검의 처소
지난 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능환과 신검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이들은 한동안 말이 없다.
능환 다시 한 번 아뢰옵니다. 태자마마, 보위에 오르시오소서. 그 자리는 본래부터 태자마마의 자리였사옵니다. 본래의 것을 되찾으시오소서.
신검 아니오, 그것은 내 것이 아니었소이다.
능환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아니라니요?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이옵니까?
신검 나도 한 때는 그렇게 생각해 왔소이다. 내가 아들 중 맏이이고 의당 서열로써는 옥좌를 받아야 한다고 말이올시다. (한숨) 그러나, 그러나 말이오... 황제의 자리는 그렇게 해서만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소이다. 그 자리를 물려주는 아버님의 뜻이 따라야하고 하늘이 이를 인정해야 하고 백성들이 납득해야 한다는 것이올시다. 아시겠소이까...? 아버님과 하늘과 백성의 뜻 말이올시다.
능환 태자마마, 태자마마께서는 그 자격을 아니 갖추셨다고 생각하시는 것이옵니까?
신검 억울하고 분하지만 그렇소이다. 아버님은 금강이를 좋아하십니다. 나는 어떻게 하든 인정을 받고 싶었소이다. 그래서 꾹꾹 참아가며 때가 오기를 기다린 것이올시다.
능환 참으로 말씀드리기 송구하오나 이미 폐하께오서는 망령이 드셨사옵니다. 그리하여 사리를 분별치 못하시고 판단의 능력이 흐려지셨사옵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것은 태자마마의 의무이시옵니다.
신검 변명이오. 그것은 변명이올시다. 대권을 탈취하기 위한 아전인수격인 해석이올시다. 백성들은 비웃을 것이외다.
능환 지금 태자마마께서는 막바지에 몰리셨사옵니다. 누구의 눈치를 보신다는 말씀이옵니까? 백성들은 미련하여 모르옵니다. 오로지 태자마마의 결단만이 이 나라를 살리고 태자마마 스스로를 보전하실 수 있사옵니다. 오죽하면 평생 폐하를 뫼시어온 이 늙은이가, 그리고 폐하의 의형제인 이 사람이 태자마마께 이러한 청을 드리겠사옵니까? 태자마마, 결단을 내리시오소서.
신검 아니오... 그럴만한 명분이 없소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황제가 되는 것도 그리고 세상의 인정을 받는 것도 그 명분 없이는 아니 되는 것이오. 내게는 지금 그것이 없소이다.
능환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태자마마.
신검 지금까지 수십 년을 참아왔고 수십 년을 기다려왔소이다. 아직도 더 기다릴 수 있소이다. 비록 다급하기는 하지만 그럴 수 있소이다. 그리하여 명분을 잡고 세상의 인정을 받고 떳떳하게 옥좌에 오르고 싶소이다. 찬탈이 아니라 선위를 받고 싶다는 말이외다. 아시겠소이까, 이찬...? 그게 내 욕심이자 희망이올시다.
능환 그러나 더 이상 시간이 없사옵니다. 기다릴 여유가 없사옵니다. 눈앞의 현실을 바로 보시오소서, 태자마마. 제발 현실을 보시오소서.
신검 아니오... 그런 것은 아니오. 그리해서는 오래 갈 수가 없소이다. 나는 정당하게 옥좌에 오르고 싶소이다. 만인의 축복을 받으면서 말이오. 아시겠소이까, 이찬...?
능환 태자마마........?
씬 대전 복도
대전내관과 여타 내관들이 시립해 있다. 별감부의 별감들도 보인다.
견훤 (소리) 몹시 아프구나.... 근이 더 깊이 들어간 모양이다.
씬 대전 안
전의가 등에 박힌 고름을 짜내며 근을 뽑으려 하고 있다. 견훤은 참지 못하고 계속 비명을 삼킨다.
견훤 도대체 이놈의 등창은 어찌하여 갈수록 더 승하다는 말이냐? 그토록 약이 없는고...?
전의 송구하옵니다, 폐하. 모든 병은 약으로만 고칠 수는 없사옵니다. 약과 병을 고치려는 의원과 병자가 다 함께 노력해야 되는 것이옵니다.
견훤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그렇다면 노력을 아니 한다는 말이냐?
전의 폐하께오서는 계속해 독한 소주를 드시고 마음의 평정을 이루지 못하시어 매번 노기를 품으시옵니다. 어찌 등창이 쉽게 날 수 있겠사옵니까?
견훤 쯧쯧쯧... 답답한 소리만 하는구나. 그렇다면 네가 의원을 그만두고 이 자리에 앉아 보거라. 황제의 자리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야.
전의 어찌 아니 그렇겠사옵니까? 하오나 폐하의 병은 중하시옵니다. 제발 요양을 하시오소서. 신이 드릴 말씀은 그것뿐이옵니다.
견훤 상처를 다 보았으면 그만 끝내자꾸나.
전의 예, 폐하.
그들은 그렇게 치료를 끝낸다. 불편한 듯 견훤이 다시 몸을 움직이며 찌푸린다.
견훤 아주 단단히 걸려들었어. 이놈의 등창인가 뭔가에 단단히 발목이 잡혔어. 그만 가보거라.
전의 예, 폐하.
의원이 그렇게 침구와 도구를 싸들고 나간다. 견훤은 생각이 많다. 홀로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견훤 (소리) 그래, 사람이 늙으면 추해진다더니 꼭 나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아... 계속해 등의 고름이나 짜내면서 역정이나 내고 앉아있는 이 꼴하고는... 에잉, 쯧쯧..... 그래, 결국은 이러다가 죽을 것이다. 늙은이의 결말은 누구나 다 비슷한 법이지. (사이) 그러고 보면 내가 그 결정들을 잘한 게야. 파진찬은 불만이 많은 모양이지만 아주 잘한 게야, 암... 이제 양검이와 용검이를 멀리 보냈으니 다음은 신검이를 보내면 되는 것이야. 그리고 사위가 더욱 단단히 군권을 거머쥐고 그 사이에 금강이를 앉히면 다 끝나는 것이야. 암... 헌데, 파진찬 이 사람은 정말 조정에 출사를 아니할 셈인가...? 어떻게 통 보이지를 않아...? (큰 소리로) 여봐라.. 게 있느냐...?
대전내관 (소리) 예, 폐하... (들어선다) 불러계셨사옵니까?
견훤 오냐. 파진찬이 통 아니 보인다. 별감들을 보내 들라 하여라. 이 늙은 황제가 궁금하다고 말이다.
대전내관 예, 폐하.
내관이 다시 나간다. 견훤이 고개를 꼬며 또 중얼거린다.
견훤 그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단 군권이야. 사위 박영규가 군부의 일을 잘 통솔해 주어야 할 것인데...
그런 견훤의 표정에서...
씬 군부 외경
씬 동 회의실
박영규가 제장회의를 열고 있다. 그 옆에 금강이 앉았고 신덕과 상귀, 파달, 상애, 김총, 애술들이 보인다. 그 외에도 십여 명이 넘는 부장급들이 함께 참석해 있다.
박영규 제장들도 아시는 바와 같이 황제폐하의 영을 받들어 이 사람이 한동안 군부를 통제하게 되었소이다. 지금 우리 백제는 몇 년간에 걸쳐 고려와의 전투에서 연패하였으며 그 이후, 급격히 사기가 떨어졌소이다. 폐하께서 지난 조회에서 제 2의 건국을 선포하신 것은 그만큼 나라 사정이 급하고 어렵다는 것이올시다.
제장들 ............... (면면이 스쳐간다)
박영규 비록 이 사람이 미흡한 곳이 많으나 폐하의 영을 받아 뫼시었으니 우리 군부는 모두 단결하여 폐하와 국가를 위해 뭔가를 보여 드리도록 하십시다.
애술 장군의 말씀이 당연하시오이다. 또한, 군부를 맡은 총사로서의 자격도 넉넉하시오이다. 박장군은 폐하의 사위 분이시고 저 승주(순천) 지역을 다스리시던 대 호족이셨소이다. 단결해야지요. 모두들 단결하여 나라를 위해 일을 해야지요.
김총 암요, 폐하께서 특별히 내리신 영이올시다. 따라야지요.
그러나 신덕은 반응이 차갑다. 그저 헛기침만 한다. 파달도 상귀도 그런 신덕을 보며 별 반응이 없다.
금강 이 전국시대에는 믿을 것이 군부 뿐이올시다. 폐하께오서 이 사람의 매부이신 박장군과 이 몸에게 군부를 맡기신 것은 나라를 새롭게 부흥시키고자 하는 여망이 크시기 때문이올시다. 모두 잘해 보십시다. 신장군...?
신덕 예, 태자마마.
금강 이 사람이 알기로 황도를 경계하는 모든 군권을 오래도록 신장군의 군대가 관할하여 왔다고 들었소이다.
신덕 그러하옵니다. 휘하의 장수들이 모두 소장을 따르는 무리들이옵니다.
금강 매부를 많이 도와주시구려.
신덕 예, 태자마마. 이미 통수권이 바뀌었는데 어찌 군령을 아니 따르오리까?
금강 고맙소이다. 이제 형님 두 분도 강주와 무주로 가시었고 황도는 이 사람이 맡게 되었소이다. 지금 황궁의 수비는 누가 맡고 계시오..?
상애 소장이옵니다, 태자마마.
금강 나라 안이 많이 어수선하오이다. 황궁에는 폐하께서 계시니 특별히 잘해 주기 바라오. 앞으로 황궁에 관한 일은 이 사람이 통제할 것이니 그리 알고 따라 주시오.
상애 예, 태자마마.
그러면서도 상애는 신덕을 본다. 신덕이 차갑게 웃고 있다. 그리고 끄덕인다. 상애도 끄덕인다.
박영규 아무튼 우리 군부가 일치단결 해야 나라가 편안한 법이올시다. 모두 잘해 보십시다. 파달 장군...?
파달 예, 총사.
박영규 그리고 상귀 장군..?
상귀 예, 총사.
박영규 잘들 해보십시다. 두 분은 신덕 장군과 함께 이 황도의 도성을 방위하는 분들이올시다. 잘들 도와주시구려.
그들 예, 총사.
박영규 특히나 신덕 장군.. 정말 잘 부탁합니다. 장군의 영향력이 그 어느 분보다도 크다는 것을 정말 잘 압니다.
신덕 허허, 어인 말씀을... 잘해야지요. 암요.. 허허허.....
그렇게 시큰둥한 신덕의 표정에서...
씬 최승우의 집 외경
씬 동 집 사랑
화롯불 위에 찻물이 끓고 있다. 최승우가 그것을 들어내어 찻 그릇에 물을 붓고 녹차를 넣고 닫는다. 그 앞에 집사가 서 있다.
최승우 대궐에서 사람이 나왔다고...?
집사 예, 나으리. 폐하께서 찾아 계신다 하옵니다.
최승우 허허허... 이미 하실 일을 다 하시고 끝내시었는데 무슨 일이 또 남아서 보자 하시는고...? 별감이 왔는가..?
집사 예, 나으리.
최승우 기왕에 찻물을 따랐으니 한잔 마시고 입궐하겠다 이르게.
집사 예, 나으리.
최승우는 다시 다기를 들어 잔에 따르고 그 맛을 조용히 음미한다. 그러다가 나가는 집사에게 다시 말한다.
최승우 그리고 이보게 집사..?
집사 예, 나으리
최승우 대궐에 가는 길에 병부에도 좀 들릴 참이네. 그리 알고 준비를 해주게나.
집사 예, 그리하겠사옵니다. 바로... 가실 참이옵니까?
최승우 그리 하세나. 폐하가 부르시는데 머뭇거릴 이유는 없지 않은가?
집사 알겠사옵니다.
집사가 나가고 최승우는 계속해 녹차를 마신다.
최승우 외로우신 게야... 폐하께서 외로움을 타고 계시는 게야. 하지만 이제 더 큰 외로움이 기다린다는 것을 아시게 되겠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들고 있어. 모든 것이 다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달려들 가고 있어.
그렇게 끄덕이는 최승우의 표정에서 디졸브 되면서...
씬 저자거리
최승우가 집사와 함께 가고 있다. 집사가 묻는다.
집사 나으리, 왜 요즘 통 출사를 아니 하시고 댁에만 계시옵니까?
최승우 이 사람아, 할 일이 있어야 조정에 나갈 것이 아닌가?
집사 나으리 같은 분이 왜 일이 없으시겠사옵니까? 소인이 알기로는 이찬께서 하시던 많은 일을 다 나으리께서 맡으셨다 들었사옵니다마는...
최승우 허허허... 그게 다 빈 껍데기뿐이라네. 그저 책임만 맡게 되었지.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닐세.
집사 사람들은 모두 백제의 모든 권력이 나으리께 있다고들 말하고 있사옵니다마는...
최승우 허허허... (크게 웃는다) 권력이라...? 그래,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허나 그런 것은 모두 잠깐이라네. 본래 권력이라는 놈은 주인이 없어. 오늘 이 사람이 쥐었는가 하면 내일은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고, 그 다음 또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 있지. 그것은 어느 한쪽에 머물러 있는 법이 없다네. 그래서 권불십년이라 하는 것이야. 허허허...
집사 예, 나으리. 병부로 뫼시겠사옵니다.
최승우 그리 하세. 그리 들렸다가 가자고 하지 않았는가? 그리로 먼저 가세.
집사 예, 나으리. 병부로 먼저 가실 것이다. 병부로 길을 잡아라.
하인들 예, 집사 어른.
그렇게 여유로와 보이는 최승우의 편안한 모습에서...
씬 신검의 처소 외경
여전히 경계병들의 경계는 삼엄하다.
씬 동 신검의 처소 안
신검은 계속해 술을 마신다. 능환의 소리가 들려온다.
능환 (소리) 신료들이 마지막으로 택한 길이옵니다. 태자마마께서 혁명군의 총사에 오르시어 잘못된 국법을 바로 잡으시오소서. (사이) 혁명이옵니다. 잘못된 것을 타파하고 옳은 것을 찾아 일어서시는 것은 혁명에 속하옵니다. 태자마마의 것을 도적들이 빼앗아가려고 하옵니다. 어찌 칼을 아니 빼실 수 있사옵니까? 일어나시오소서, 태자마마. 그리고 황제에 오르시오소서.
신검이 술을 마시다 말고 지긋이 눈을 감으며 도리질한다.
능한 (소리-계속) 다시 한 번 아뢰옵니다. 태자마마, 보위에 오르시오소서. 그 자리는 본래부터 태자마마의 자리였사옵니다. 본래의 것을 되찾으시오소서.
신검이 마시던 잔을 탁자 위에 그대로 내려꽂는다. 술이 흩어지고 사기잔은 박살이 난다. 손에 피가 흐른다.
신검 왜 나인들 그러고 싶지 않겠는가? 아니, 수십, 수백 번을 내가 먼저 칼을 빼고 싶었어. 지난 세월은 모두가 그런 날들이었어. 하지만 아니야. 칼을 들고 올라가야 될 용상은 아니야. 아니야... 한때를 참지 못한다면 두고두고 영원히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다. 그것은 아니야. (눈물 글썽이며) 억울하더라도 더 참을 수밖에.... 이를 악물고 참을 수밖에...
그렇게 괴로워하는 신검의 표정에서...
씬 능환의 집 외경
씬 동 집 사랑
능환과 능애, 영순이 모여있다.
능애 신검 태자마마께서 끝내 대답을 아니 주셨다는 말입니까?
능환 (한숨) 그렇습니다. 아무리 권해도... (도리질) 어렵습니다.
영순 아니, 일이 이 지경까지 되었는데 왜 거절을 하신다는 말이옵니까?
능환 혁명이 아니라 반란으로 보고 있는 것이 문제올시다.
영순 반란이라니요...?
능애 경우에 따라서는 그리 볼 수도 있겠지요. 이런 일은 잘되면 혁명이 되는 것이고 잘못되면 반란이 되는 것이고 그런 것이 아니겠소이까?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시간이 매우 급하고 위기는 목전에 와있다는 것이올시다.
영순 그렇고 말구요... 군권은 금강 태자를 지지하는 박영규 장군에게 넘어가 버렸고 이찬께서 갖고 계시던 이 나라의 모든 공무정사를 파진찬이 훔쳐가 버렸사옵니다. 하루하루가 마치 살얼음판 같지 않사옵니까?
능애 물론이오. 작은 태자마마 두 분이 강주와 무주로 내려가셨소이다. 그것은 쫓겨가신 것이올시다. 이제 곧 신검 태자마마도 보내신다고 공표를 하셨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 조정은 끝이올시다. 신검 태자께서 앞을 서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가 없어요. 결국은 우리들도 내일이 어찌 될지 장담할 수 없을 겝니다.
능환 그럴 겝니다. 십중팔구 그렇게 될 공산이 크지요. 허나 어찌하겠습니까? 신검 태자마마가 저토록 완강하시니 말이올시다.
영순 그것 참 모를 일이옵니다. 얼마나 기다려온 기회이옵니까?
능환 그렇기는 하나 신검 태자마마의 입장도 이해가 갑니다. 명분이 없다는 것이지요. 칼을 들고 그 아버님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 앉을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영순 아, 이것저것 다 가리고 언제 무얼 얻을 수 있다는 말이옵니까?
능환 고민이올시다. 때는 되었는데 당사자는 저러고 꼼짝 않고 있소이다. 빨리 이 조정을 수습하고 고려와 결판을 지어야 하는데... 일이 엉뚱한 곳에서 지체되고 있소이다. 시간이 없는데... 시간이...
영순 이찬 어른, 차라리... 파진찬 그 사람에게 한번 더 사정을 이야기하고 의논해 봄이 어떠하옵니까?
능환 파진찬이라...? 이미 폐하가 내리신 결단 뒤에는 그 사람이 있었소이다. 우리와는 영원히 물과 기름인 사이올시다.
능애 그렇소이다. 그 사람은 끝난 사람이올시다. 황제 폐하도 그리고 금강 태자도 모두들 믿고 있는 것이 파진찬 그 사람이올시다. 제거해야 될 사람 중 제일 첫 번째이올시다.
능환 안타깝지만 그런 것 같소이다. 허, 참...
그들의 그러한 초조감에서...
씬 병부 외경
병부 문 앞에 이르러 최승우가 말에서 내려선다. 그리고 막 안으로 들어간다.
씬 동 마당 안
최승우가 들어서고 있는데 신덕과 파달, 상귀, 상애가 나온다. 그들은 서로 예를 취한다.
신덕 파진찬 어른이 아니시옵니까? 이 병부에는 어쩐 일이시옵니까?
최승우 입궐하는 길에 잠시 들렸소이다. 금강 태자마마도 뵐 겸해서요. 계시는지요..?
신덕 예, 그렇지 않아도 군부 회의를 막 끝내고 나오는 길이옵니다. 들어가 보시오소서.
최승우 예, 신장군... 그럼 살펴 가시오.
그렇게 최승우는 병부 안으로 들어간다. 한참 보고 있던 신덕이 고개를 갸웃한다.
신덕 이보시오, 상귀 장군...?
상귀 예, 장군.
신덕 자, 저쪽에 가서 차나 한잔 하십시다.
상귀 예, 그러시지요.
그들 열려져 있는 한쪽 전각으로 간다. 군사들이 군례를 올린다. 이들이 안으로 들어가고 문이 닫히면...
씬 동 전각 안
그들은 투구를 벗어놓고 차를 마신다.
신덕 이러다가 아무래도 나랏일이 경을 치게 생겼소이다. 우리가 잘못하다가는 머리를 묻을 곳도 없게 되었소이다. 뭔가 일이 잘못되고
있어요.
상귀 알고 있습니다. 난감한 일이올습니다.
파달 난감할 것이 무엇이옵니까? 역적놈들이 파당을 지어서 나라를 그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이찬 어른을 쫓아내고 두분 태자마마를 멀리 쫓아 버리고 이제는 신검 태자마마까지 쫓으려 하시옵니다.
신덕 이보게 상애 장군..?
상애 예, 장군.
신덕 황궁 안을 지키는 일은 자네 몫일세. 만약을 대비하도록 하게.
상애 예, 장군.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파달 신덕장군께서 아무 이유도 없이 황도의 군권을 넘기신 것도 불만이옵니다. 저 박영규 장군이 언제부터 병부를 맡을 수 있는 위치였사옵니까? 이야말로 웃기는 일이 아니옵니까?
신덕 그러나 경거망동은 금물일세. 윗 어른들이 지금 신검 태자마마와 긴밀하게 연락을 취하고 계시네. 그 결과에 따라 행동들을 해야 할 것이야. 상귀 장군도 그리 알아 주시구려.
상귀 이미 눈치를 잡고 있었소이다. 안타까운 일이올시다. 헌데 이렇게 되면 애술 장군과 김총 장군 같은 사람들은.... 어찌 되는 것이오이까?
신덕 적당히 견제를 해야지요. 일단 황도의 군권을 확보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상귀 그야 오래 전부터 황도의 군권은 신덕 장군께서 관장을 하셨습니다. 그 확보가 무엇이 그리 어렵겠사옵니까?
신덕 그래도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고 합니다. 머지 않아 무슨 일이 있을 것같은 예감이올시다. 바짝 정신들을 차리십시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서로를 보는 그들이 표정도 긴장되어 있다. 그 위로 소리가 들려온다.
씬 병부 박영규의 처소 안
최승우와 박영규, 금강이 모여 환당하고 있다.
금강 제장회의가 아주 화기애애하게 잘 끝났습니다. 여러 장수들이 폐하의 영과 군령을 충실이 따르겠다고 약조를 했습니다. 파진찬...
박영규 그렇사옵니다. 군부는 뭐 크게 염려할 것이 없을 것 같사옵니다.
최승우 그래야지요. 암요...
박영규 헌데 입궐하시는 길이라 하셨사옵니까?
최승우 그렇소이다. 폐하께서 적적하신 모양입니다. 허허허... 가는 길에 개인적으로 몇 가지 금강 태자마마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소이다마는...
박영규 아, 그렇사옵니까? 허면 말씀 나누시오소서. 저도 마침 여기 병부의 일을 여러 가지로 살펴볼 일이 많아 놔서...
최승우 고맙소이다. 뭐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올시다. 허허허...
박영규 하하하.. 괘념치 마시고 충분히 말씀 나누시오소서. 허면...
그렇게 박영규가 나간다. 차를 마시다가 금강이 그 외눈으로 뭔가 이상한 듯 최승우를 본다.
금강 제게 하실 말씀이 계신다 하셨습니까?
최승우 예, 태자마마.
금강 말씀하십시오.
최승우 예, 태자마마.
그렇게 최승우는 금강을 본다. 그렇게 뚫어져라 본다. 침묵이 흐른다.
씬 동 처소 밖
밖으로 나와 몇 걸음 겄던 박영규가 굳은 표정으로 안쪽을 본다. 뭘까 하는 그런 표정이다.
씬 다시 동 처소 안
침묵하던 최승우가 진지하게 금강을 보며 말한다.
최승우 금강 태자마마...
금강 말씀 하시오소서.
최승우 태자마마께서는 작금의 현실을 어찌 보시옵니까?
금강 무엇을 말이옵니까?
최승우 폐하께오서는 태자마마의 두분 형님들을 변방으로 보내시고 다시 맏이이신 신검 태자마마를 또 보내실 참이옵니다.
금강 압니다. 헌데 왜요..?
최승우 신료들이 동요하고 있사옵니다. 아시옵니까?
금강 이미 그 일을 걱정하시어 아버님께서 단단히 경고를 하셨사옵니다. 누구든 황실의 일에 관여하거나 칙령을 어기는 자는 중형으로 다스리겠다고 말이옵니다.
최승우 신검 태자마마를 어찌 보시옵니까?
금강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최승우 과연 옥좌에 오르지 못할 만큼 형편없는 위인이라 보시옵니까?
금강 왜 물으시는가, 물었습니다.
최승우 태자마마... 말씀드리오리다. 폐하께오서는 금강 태자마마를 이미 낙점 하셨사옵니다. 허나 그것은 황제 폐하의 지나치신 편애 때문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옵니다.
금강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파진찬.... ?
최승우 욕심을 놓으시오소서. 놓으시면 다 편안해 지옵니다.
금강 .................?
최승우 신료들이 원하지 않는 일이고 태자마마들 또한 불만과 원한에 차 있사옵니다. 금강 태자마마께서 한순간 버리시면 나라가 편안할 수 있고 다 잘될 수 있는 일이옵니다. 놓으시오소서. 마지막으로 그 이야기 한번 권해 드리고자 왔사옵니다.
금강 파진찬.... ?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무얼 놓고 무얼 버리라는 것입니까? 그리고 아버님께서 무얼 편애하셨다는 것입니까? 나는 수많은 전투에서 공을 세웠습니다. 아버님을 위해 눈도 하나 버렸습니다. 황제가 되기 위해 버린 것은 아닙니다. 나라를 위해서 버린 것입니다. 헌데 신검 형님께서는 나보다 무엇을 잘한 것이 있습니까?
최승우 태자마마...
금강 아버님께서 이 나라를 창업하셨습니다. 나라를 일으키기는 어렵지만 지키는 것은 더 어렵다 했습니다. 이미 나는 나라를 지키고자 결심했소이다. 아시겠습니까? 놓으라구요..? 놓으면 나는 죽습니다. 형님들이 나를 살려둘 것 같습니까?
최승우 스스로 놓으시면 절대로 불행은 없을 것이옵니다.
금강 천만에요... 나는 형님들의 눈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나를 증오하고 원망하는 그 눈들 말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그것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욕심 때문이 아니에요. 이미 죽느냐, 아니면 사느냐. 기로에 서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형님보다 내가 더 유리한 고지를 잡았는데 왜 놓는다는 말입니까, 왜요...? 오늘 이야기는 아니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최승우 태자마마...?
금강 돌아가십시오. 다 끝날 일 가지고 왜 이러시는 것입니까? 이미 끝났습니다. 다 끝이 났다는 말입니다.
최승우 ........(그만 눈을 감아 버린다) .....?
씬 신검의 처소 외경 (밤)
씬 동 처소 안
박씨가 신검과 마주 앉아 있다.
박씨 이야기 듣고 있습니다. 태자는 계속 술로 소일을 하신다구요..?
신검 예, 어마마마. 송구하옵니다. 술밖에 달리 더 길이 있겠사옵니까?
박씨 아우들이 변방으로 갔습니다. 조정의 권력향배가 바뀌고 군부의 통솔권도 바뀌었습니다. 이제 태자 차례입니다.
신검 신료들도 그렇게 말하고 있사옵니다.
박씨 신료들은 뭐라고 합니까?
신검 이찬은 나에게 혁명을 일으키라고 했사옵니다. 실은 반란이지요. 아니 그렇사옵니까, 어마마마...? 그래서 반대를 했사옵니다.
박씨 신료들은 목숨을 걸고 청해온 일인데 그렇게 쉽게 물리쳤다는 말입니까?
신검 어마마마...?
박씨 내가 수없이 말했습니다. 집안 내력이라고요. 폐하께서는 영락없이 상주의 할아버님을 빼어 닮으셨습니다. 지금 부리고 계시는 저 노망기 말입니다. 상주의 할아버님도 계모님의 꾀에 넘어가서 결국은 고려로 가셨습니다. 작은댁 때문에 말입니다.
신검 ...........
박씨 지금도 형편은 똑같지 않습니까? 소실 댁의 소생을 황제로 삶으려 합니다. 나는 절대로 용납 못합니다. 더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이 황도를 쫓겨나면 다 끝나는 일이에요. 신료들의 청을 받으세요.
신검 어마마마....?
박씨 더 이상 당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우들과도 상의를 하세요. 분명 길이 있을 겝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나 신검은 대답이 없다. 하늘을 보며 긴 한숨만 내쉰다.
씬 강주성 외경
씬 동 성 안
양검이 술을 마시며 푸념하고 있다. 그 옆에 전령기를 꽂은 군사가 서 있다.
양검 무진주 용검이가 보낸 전령이라는 말이지..?
전령 예, 도독어른
양검 그래, 잘 있다 하더냐..?
전령 예, 도독어른. 이미 군사를 정비하여 언제라도 황도의 부름이 있거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셨사옵니다.
양검 그래...? 황도에서 누가 부른다는 말이냐...?
전령 신검 태자마마께서 부르실 것이니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하셨사옵니다.
양검 하하하... 그럴 수도 있지. 천하를 뒤집을 수도 있는 일이니까... 알았다고 가서 전하여라. 이 형도 단단히 군사를 준비해 놓고 있겠다고 말이다.
전령 예, 도독어른.
그렇게 전령이 군례를 하고 나간다. 양검은 술잔을 털어 넣으며 또 중얼거린다.
양검 절대로 그럴 수는 없지... 애꾸눈 아우놈에게 옥좌가 넘어가게 할 수는 없지. 우리 형제의 군사를 합치면 일만이 넘는다. 여차하면 가는 것이지. 절대로 그렇게 할 수는 없지.
그렇게 술을 따르는 양검의 표정에서...
씬 황궁 외경
씬 동 대전
최승우와 견훤이 마주해 있다. 견훤이 술을 마시며 말한다.
견훤 의원은 술을 금하라는데 말이야. 요즘은 그게 잘 안돼. 괜스레 초조하고 또 답답하고 말이야. 빨리 모든게 자리를 잡아야 할 터인데... 자네는 차나 한잔 들게.
최승우 예, 폐하.
견훤 이 사람아.. 늙을 수록 동무가 필요한 법이야. 왜 그렇게 꼼짝 않고 집에만 박혀 있는가? 자주 좀 나오지 않고는....
최승우 송구하옵니다.
견훤 아무래도 말이야. 내 곰곰 생각해 보았는데...
최승우 말씀하시오소서.
견훤 어차피 이 조정에 개혁을 시작한 일이 아닌가? 기왕 일을 벌려놓았으니 금강이도 빨리 앉혀야겠고... 그러자면 말일세.. 예정대로 신검이도 빨리 보내야겠어. 그래야 일이 제대로 될 것 같아.
최승우 예, 폐하. 그리 하시오소서.
견훤 그리고 거 아무래도 불편한 신료들 몇몇은 내 보내야겠고... 그 중에서도 또 두어 사람은 유배를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황도에서 보았자 분란만 일으킬 테니 말이야.
최승우 유배라니요...? 죄가 있어야 유배를 보낼 것이 아니옵니까?
견훤 황실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것 자체가 죄가 아닌가?
최승우 천천히 하시오소서. 서두르실 필요가 없사옵니다. 죄를 물으시기보다는 신료들을 달래가면서 하나, 둘 저들이 적응을 하도록 하셔야 하옵니다.
견훤 하지만 급하게 되었어. 어느 세월에 금강이가 앉고 질서가 잡히고 신료들이 하나로 뭉쳐서 고려를 대적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저 힘으로 밀어 부쳐야 하네. 힘 말이야... 그렇지 않고는 영원히 고려에 뒤지게 돼.
최승우 다행히 고려는 요즘 모든 도발을 자제하고 조용하옵니다. 너무 의식하지 마시고 서두르지 마시오소서.
견훤 그렇지가 않아. 나는 자꾸 조급해진다는 말일세. 이놈의 등창은 갈수록 커져가고 마음은 급해. 이러다가 왕건 아우가 덥석 대군을 일으켜 온다면 어찌되겠는가? 왕건 아우 말일세. 나는 그 생각만 하면 잠이 안 와. 잠이...
최승우 서두르지 마시오소서. 고려도 지금 나라를 안정시키고자 전쟁을 삼가하고 민심을 어우르는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마음을 편히 하시오소서, 폐하.
견훤 편하지가 않아... 편하지가.... 어이구....
씬 고려 황궁 외경 (낮)
씬 동 편전
왕건이 김행선, 추언규, 왕규, 최지몽, 복지겸, 왕식렴, 유금필, 박술희, 홍유, 배현경, 염상, 박수문, 박수경 형제들과 함께 해 있다. 복지겸이 말한다.
복지겸 폐하, 계속하여 올라오는 첩자들의 말을 요약해 보면 백제에 뭔가 일이 생겼음이 분명하옵니다.
배현경 그러하옵니다, 폐하. 백제의 황실에 내분이 있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사옵니다.
유금필 태자 두 사람이 지방으로 내려갔사옵니다. 그리고 백제의 왕은 등창이 깊어 병이 위중해지고 있다 하옵니다. 뭔가가 있사옵니다.
왕건 나도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좀 더 지켜볼 수밖에...
박술희 태자들을 지방으로 내쫓고 황도의 군권을 그 사위인 박영규와 막내아들 금강태자에게 주었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옵니다.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사옵니다.
홍유 그러하옵니다. 백제에 뭔가가 일어나고 있사옵니다. 예의 주시하시고 대처하심이 옳을 줄로 아옵니다.
최지몽 폐하, 전 내봉경 최응공이 이미 예언한 바 있사옵니다. 백제에 내분이 시작되는 것이 분명하옵니다. 이럴 때일수록 적정을 잘 살펴보시면서 그쪽의 끈을 놓을 필요가 있사옵니다. 최응공의 말을 깊이 헤아릴 때가 되었사옵니다.
왕건 무엇을 말인가..?
최지몽 최응공께서는 백제에 내분이 시작되면 백계산 옥룡사에 주석하는 경보대사를 만나 보라 하셨사옵니다.
왕건 (기억나는 듯) 옳거니... 경보대사...?
홍유 그러하옵니다. 일찍이 최응공은 경보대사에 관한 말을 중요시 했사옵니다. 그리고 특히나 그 스스로 옥룡사에 다녀온 일도 있지 않사옵니까?
박수문 경보대사는 백제의 왕이 스스로 국사라고 존칭하며 모셨다 하옵니다. 우리에게 도움이 되겠사옵니까?
왕식렴 그것은 백제의 왕 스스로 그리한 것이지 경보대사는 백제의 황실에 한발자국도 간 적이 없소이다. 폐하, 경보대사는 도선대사님의 제자이시옵니다. 폐하 또한 도선대사의 제자가 아니시옵니까? 두 분은 통하실 것이옵니다. 경보대사께서는 하실 일이 있어 옥룡사에 남아있노라고 최응공에게 말한 바 있사옵니다. 이제 예의주시하시고 사람을 보내시오소서.
염상 신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이제 그 대사님을 만나보실 때가 된 것 같사옵니다.
왕건 생각해보니 옳은 말이오. 허면, 사신을 보내야겠구려. 하급관리를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누가 가시겠소이까?
왕규 신이 가겠사옵니다.
추언규 어차피 이런 일은 문신들의 몫이니 신도 보내주시오소서. 우리 두 사람이 가서 여러 가지 정황을 살펴보겠사옵니다.
왕건 그럼 그리하도록 하십시다. 하기는 그래요. 운주 전투 때부터 백제의 왕이 이상했소이다. 중병을 앓고 있는 것이 분명해요. 그리고 그 때문에 왕위계승 다툼이 시작되는 눈치인 것 같소이다. 일단 두 분이 인사도 겸해서 경보대사를 가서 만나보도록 하시오.
두 사람 예, 폐하. 그리하겠사옵니다.
왕건 백제가 흔들린다....? 백제가....?
씬 황후전
황후 오씨와 유씨가 마주앉아 있다.
오씨 백제 문제로 폐하와 중신들이 회의 중이라고...?
유씨 그렇다 하옵니다. 백제에 뭔가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다 하옵니다. 형제들이 왕위승계를 놓고 다투고 있는 것 같다 들었사옵니다.
오씨 백제가 잘못되는 것은 곧 우리 고려가 그만큼 유리해진다는 것이 아닌가...? 신라도 이제 마치 우리의 속국처럼 되었고 백제만 남았어. 백제가 흔들린다면 이제 통일은 그만큼 빨라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유씨 그렇다고 보아야 할 것이옵니다.
오씨 잘 되어야 될 터인데... 요즘은 한동안 전쟁이 없고 보니 얼마나 세상과 백성들이 다 편안한가..? 통일은 빨리 와야 하네. 문제는 백제야... 이제 신라는 다 간 나라이고...
씬 신라 황궁 외경
씬 동 편전
어전회의가 열리고 있다. 경순왕과 마의태자와 김봉휴, 김억렴등 신료들이 배석해 있다.
마의태자 폐하, 지금 무어라 하셨사옵니까?
경순왕 이미 나라의 운이 다하였으니 장래를 논의하자 하였다.
마의태자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운이 다하였다니요?
경순왕 이미 고려를 다녀온 사신의 이야기가 그러하지 않느냐? 저들은 때가 되었는데 왜 나라를 바치지 안느냐고 하였다고 하지 않느냐?
마의태자 말도 아니 되옵니다. 저들이 도적이 아니고서야 어지 천년 사직의 우리 신라국을 내노으라 한단 말이옵니까? 있을 수 없사옵니다
김억렴 그러나 태자마마, 이미 국운은 기울었고 나라를 보존할 대책이 막연 하옵니다. 고려의 도움이 없으면 단 하루도 견딜 수 없음이 직금의 사정이옵니다.
마의태자 그렇다고 나라를 바친다는 말입니까? 이 나라를 말입니까?
경순왕 무조건 버티는 것도 계속해서 할 일은 못되느니라. 신료들은 이 일을 진지하게 논의하라.
김봉휴 그러하옵니다. 고려에 가보니 이미 신료들은 한결같이 우리 신라국의 항복을기다리는 듯한 눈빛들이었사옵니다. 어치피 고려의 힘을 당하지 못할 것이라면 나라를 들어 바치는 일을 따져 볼 계기가 되었다고 사료되옵니다, 폐하.
마의태자 아니되옵니다. 있을 수 없사옵니다. 천추의 한을 남기지 마시오소서. 열성조들이 보고 계시옵니다. 차라리 모든 신료들의 할복을 명하시오손서. 그것이 났겠사옵니다. 폐하....폐하...
경순왕 이미 힘이 다하였다고 하지 않느냐 , 무엇으로 더 버틸 수 있다는 말이냐, 태자는 그만 입을 닫으라,
마의태자 아니되옵니다. 절대로 아니되옵니다. 영을 거두시오소서 폐하, 영을 거두시오소서.
마의태자는 울부짖는다. 경순왕도 눈물을 닦고 있다. 마의태자의 계속되는 절규에서.....
씬 다시 대전
왕건이 혼자 생각이 많다. 그 앞에 무가 앉아 있다.
왕건 내봉성령과 의형대령이 백제로 떠났다..
무 이야기 들었사옵니다.
왕건 백제에 내분이 일어났음이 거의 확실한 것 같구나. 그러길래 황실이 얼마나 안정되어 있는가가 한 나라가 죽고 사는 지름길이 된다. 너도 비록 여러 국사에 참여하느라 바쁘겠지마는 늘 황실 안의 일을 잘 관리하도록 하라.
무 예, 아바마마.
왕건 많은 호족들을 관리하고 나라에 안정을 기하기 위하여 나는 본의 아니게 황실에 많은 혈연을 두게 되었다. 작게는 너희들의 형제이고 또 황제인 나의 아들들이다. 이들간에 분란이 생기면 나라가 흔들리느니라. 그래서 나는 일찍이 너를 정윤에 앉혀 나의 다음 보위를 약속해 준 것이다.
무 알고 있사옵니다, 아바마마.
왕건 형제들이 화합하거라. 네가 맏이로서 그만큼 책임이 중하고 클 것이다. 백제의 일은 앞으로도 잘 지켜보고 대책을 세울것이다마는 한 편으로는 너에게 좋은 귀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무 예, 아바마마.
왕건 그래, 집안이 편안해야지. 바깥일도 잘 되는 것이야. 백제에 뭔가가 있어.. 뭔가가.... 분명히 뭔가가 있어......
<186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