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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대본

[태조 왕건] 199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7.12.22|조회수4,339 목록 댓글 0

태조 왕건 <제 199회>


씬 예성강 포구 (낮)

지난 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의장병들은 군호를 계속해 불러댄다. 온 포구가 떠나갈 듯 하다. 수 없는 기치창검이 펄럭이고 번뜩인다. 신료들이 보고 있다. 황후들이 보고 있다. 그 가운데 견훤과 왕건이 서로를 그렇게 보고 있다.

왕건 상부어른... 잘 오셨사옵니다. 이 아우가 기다리고 있었사옵니다.
견훤 고맙소, 아우님...
왕건 어찌하여 이 아우에게 존대를 하시옵니까? 예전처럼 하시오소서.
견훤 아니오. 이미 예전의 내가 아니오. 절 받으시오.
왕건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이 무슨....
견훤 이미 나는 백제국의 황제가 아니오. 나라를 잃어버린 폐주가 어찌 대국의 황제와 동등할 수가 있겠소. 절 받으시오.
왕건 아니 되옵니다. 상부어른, 상부란 뜻은 어버이 격의 어른을 일컫는 높임말이옵니다. 그럴 수 없사옵니다.
견훤 받아 주시오, 황제.
왕건 아니 되옵니다.
모두들 ................... (예민하게 본다)
왕건 절대로 그럴 수 없사옵니다. 이렇게 아우에게 와 주신 것만으로도 큰 은혜이옵니다. 하물며 상부어른께서 형편이 어렵다 하시어 이 아우가 절을 받을 수 있겠사옵니까?
견훤 나라와 나라의 일이오. 수많은 눈이 보고 있소이다. 이미 나는 폐주의 몸이라 하였소. (꿇어 엎드린다) 고려국 황제폐하, 폐주 알현이옵니다. 절 받으시오소서.
왕건 상부어른.....

아무도 말이 없다. 군호도 그쳤다. 바람소리와 펄럭이는 깃발소리와 그리고 정적뿐이다. 견훤은 그렇게 엎드려 있다. 왕건이 보다가 황망하여 견훤을 부축한다. 일으키면...

왕건 어찌 이러하시옵니까? 왜 굳이 이리하셔야 한다는 말이옵니까? 이 아우는 진심으로 상부어른을 뫼시고 싶었사옵니다.
견훤 아니오, 아우님. 이미 기력이 다해 신세를 지러 온 사람이오. 그리고 하늘에 해는 하나뿐이라오. 삼한의 황제는 바로 왕건 아우님이시오.
왕건 상부어른....?
견훤 이제 삼한의 모든 분란은 끝이 났소. 마지막 정리만 남은 것 같소. 아우님의 세상이 온 것이오.
왕건 고맙사옵니다, 상부어른. 그 영광을 다함께 나누어야지요. 자, 이쪽은 황후이옵니다. 상부어른께 예를 올리시구려.
오씨 (예를 한다) 고려국 황후이옵니다.
견훤 반갑소이다.
유씨 고려국 충주부인이옵니다.
견훤 반갑소이다.
김행선 고려국의 시중이옵니다. 진심으로 환영하옵니다. 상부어른.
신료들 환영하옵니다, 상부어른.
왕건 자,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오. 상부어른을 궁으로 뫼시도록 하라.
복지겸 상부어른을 뫼시어라.
부장들 상부어른을 뫼시어라.

왕건이 기다리고 있던 마차에 견훤을 안내한다. 그리고 함께 오른다. 그 마차가 달려가기 시작한다. 의장병들이 도열하고 뫼셔간다. 신료들이 뒤를 따른다. 그 화려하고 엄청난 정경에서...

씬 길

 그렇게 왕건일행들이 가고 있다. 백성들이 연도에 구름처럼 늘어서서 구경하고 있다.

씬 동 마차 안

 왕건이 견훤의 손을 잡는다.

왕건 상부어른, 이렇게 같은 마차를 타고 가니 꿈만 같사옵니다. 부디 모든 근심과 걱정을 털어버리시고 오래오래 사시오소서.
견훤 고맙소, 아우님. 이렇게 곤궁한 모습으로 찾아오게 되어서 면목이 없구려.
왕건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수십 년을 함께 싸워왔지만 정은 깊었사옵니다.
견훤 (모처럼 웃는다) 동감이었소, 아우님. 나도 그랬다오.
왕건 편히 쉬시오소서. 이미 모든 모실 준비가 끝나 있사옵니다.
견훤 고맙구려.

씬 그 길

 왕건 일행들이 그렇게 가고 있다. 내군 부장 하나가 복지겸 옆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주변을 보며 소근거린다.

부장 장군, 철원에서 소식이 왔사옵니다. 아자개 노인이 운명하셨다 하옵니다.
복지겸 뭐라...? 운명...?
부장 예, 지난밤에 머루주를 낮밤으로 드시더니 그만 숨을 거두셨다 하옵니다. 일부러 그리 했다고도 하고...
복지겸 알았다. 노환으로 숨지신 것이다. 다른 말은 일체하지 말거라.
부장 예, 장군.

부장은 물러가고 복지겸은 태연하다. 그들 그렇게 황궁 쪽으로 밀려간다. 디졸브되면...

씬 황궁 연회장

 신료들이 모두 참석했다. 백여 명의 악공이 음악을 켜고 있고 수십 명의 무희들이 화려하게 군무를 추고 있다. 황후들도 참석을 했다. 견훤이 신료들을 하나하나 뜯어본다.

견훤 이번에 유금필 장군이 고생이 많았네.
유금필 아니옵니다, 상부어른.
견훤 저쪽이 박술희 장군이지..?
박술희 예, 상부어른.
견훤 그래... 하마터면 내 매제가 될 뻔했었지. 허허허...
박술희 예, 상부어른. 그럴 뻔했사옵니다.
견훤 저쪽은...?
배현경 장군 배현경이라 하옵니다.
왕건 그쪽도 인사를 드리시오.
홍유 장군 홍유라 하옵니다.
왕건 이쪽은 복지겸이라 하옵니다. 내군을 맡고 있사옵니다. 상부어른.
견훤 아무튼 이제 나도 고려사람이 되었소이다. 잘들 지내십시다.
오씨 (고비에게) 우리도 잘 지내보십시다, 부인.
고비 이를 말이옵니까, 마마?
왕건 하하하... 자, 무엇 하느냐? 더욱 풍악을 크게 울려라. 앞으로 사흘간은 계속해 연회를 열 것이다. 상부어른을 기쁘고 편안히 해드릴 것이야. 또한 상부어른의 수발을 맡은 관청은 무엇하나 소홀히 해서는 아니 된다. 그런 것이 발각될 경우 크게 경을 칠 것이다. 시중이 직접 챙기시오.
김행선 예, 폐하.
견훤 허허, 뭐 그렇게 까지야... 허허허... 자, 아우님 드십시다.
왕건 예, 상부어른. 허허허... 자, 모두들 드십시다.

그들 모두 잔을 든다. 그리고 마신다. 그들의 그런 모습에서 견훤을 다시 보면 그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있다. 그런 모습 위로...

해설 견훤의 고려 귀부. 왕건은 견훤이 고려로 오자 그야말로 모든 정성을 다했다. 그를 예전처럼 상부라 불렀고 남궁을 견훤의 사관으로 지정해 주었다. 또한 그의 품계는 백관의 위에 있게 하였고 양주를 식읍으로 주었으며 금과 비단을 주고 노비 각각 사십 명과 말 열 필을 주었다. 양주는 오늘날의 서울 북부 지역을 일컫는다. 그리고 그 옛날 삼국시대에 백제가 처음 자리를 잡았던 상징적인 곳이었다. 왕건이 견훤에게 양주를 선물로 준 것은 여전히 그가 백제의 상징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깊은 의미가 담긴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견훤의 눈물 가득한 표정에서...

씬 백제 황궁 마당

 궐 마당에서 즉위식이 거행되고 있다. 이곳에서도 의장병이 도열하였고 문무백관들이 가득히 정전 뜰을 메웠다. 악공들이 아악을 켜고 있다. 신 황제 신검이 신료들 사이를 지나 단이 마련된 옥좌 앞으로 간다. 그리고 선다.

능환 국궁...........................! 바이............................! (계속)

신료들이 일제히 소리에 따라 엎드리고 절하기를 네 번이나 반복한다. 그 네 번이 끝나는 동안 카메라는 신검과 그 형제들과 그리고 황태후가 된 박씨와 능환, 능애, 영순, 신덕, 김총, 애술, 파달, 상귀, 상애 그리고 숱한 문무신료들의 면면을 훑어간다.

신검 경들은 들으시오.
모두들 예, 폐하.
신검 우리 대 백제국은 천명에 의하여 나의 아버님께서 창업하시었소. 나라를 세운 지 수십 년 동안 나의 아버님께서는 신묘한 무예와 영특한 지모로써 나라를 더욱 크게 일구시고 옛 백제를 회복하셨으며 유리걸식하는 백성들을 모아 편안히 하고 삼한 땅 위에 그 위엄을 드러내셨소이다.
신료들 ................ (그 면면에서)
신검 (계속) 그러나 폐하의 환후가 깊으시고 연세가 원만하시어 국정을 돌보실 수 없게 됨에 그 어린 자식이 사랑을 독차지하고 권세를 농락하여 늙으신 아버님과 국가를 미혹에 빠뜨렸소이다. 다행히 하늘이 굽어 살피시사 맏아들인 나로 하여금 이 나라를 바로잡게 하여 오늘 이렇게 위에 오르게 되었소이다. 나는 이제 백제국의 황제로서 마땅히 낡은 것을 쇄신하고 새로운 정치로써 국가를 부흥시킬 것이오. 특히 오늘을 기념하여 황제로서 은혜를 베푸니 오늘 이전을 기하여 이미 드러났거나 드러나지 않았거나 매듭을 지은 것이거나 지어지지 않은 것이거나를 막론하고 사형제 이하를 모두 사면할 것이오. 주관하는 부처는 이를 시행하오.
능환 황제폐하 만세.....
신덕 황제폐하 만세.....
신료들 황제폐하 만세.... 만만세..... (계속)
해설 드디어 신검이 후백제의 두 번째 황제로 즉위했다. 그리고 대 사면을 단행한다. 단기 3268년 서기로는 935년 10월 17일의 일이었다. 신검은 정변을 주도한 이후 황제에 오르기까지 무려 7개월이 걸렸다.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 신검은 어차피 치루어야 할 고려와의 마지막 대전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한편 그 무렵 신라에서도 드디어 그 사직의 문을 닫는 마지막 조정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씬 신라 황궁 외경

씬 동 편전

 경순왕이 비통한 모습으로 신료들을 보고 있다. 마의태자는 눈물을 흘리며 보고 있다.

경순왕 백제의 견훤왕이 고려에 투항하였소이다. 이제 백제는 그 아들 신검이 황제에 올랐다 하나 이미 국운이 기울었소이다. 우리 신라도 이제 무언가를 결정할 때가 되었소이다.
마의태자 아바마마, 무엇을 결정한다 하시옵니까? 나라를 들어 항복하시는 일이옵니까? 그런 것이옵니까, 아바마마?
경순왕 그렇다, 태자야. 백제의 견훤왕이 누구이냐? 삼한을 떠들썩하게 하던 그도 고려에 무릎을 꿇었다. 이제 우리가 어쩌란 말이냐? 그 동안 숨줄만 붙어서 허덕거려온 신라였다. 이제 더 어쩌란 말이냐? 이제 더....
마의태자 아바마마.... (통곡한다) 그렇다고 사직의 문을 닫는다는 말씀이옵니까? 차라리 모든 신료와 백성들에게 자결을 명해주시오소서.
경순왕 아니다.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을 것이냐? 그리고 신료들이 또한 무슨 죄가 있을 것인가? 다 사직을 망친 죄는 우리 황실에 있는 것이다. 경들은 들으오.
모두들 예, 폐하.
경순왕 우리는 오랫동안 고려의 보호를 받으면서 여러 번 나라를 들어 바칠 것을 논의했소이다. 이제 더는 끌 수가 없기에 짐은 결심했소이다. 신라는 그 운이 다하였소이다. 나라를 들어 고려에 바칠 것이오. 경들은 그리 알기 바라오.
모두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경순왕 사신은 즉시 이러한 짐의 뜻을 고려에 가 전하도록 하라. 그리고 남은 신료들은 고려에 귀부할 제반 모든 준비를 하여주기 바라오. 이제 신라는 끝난 것이오. 천년의 신라는 그 문을 닫는 것이오. (울며) 그 문을 닫는 것이오.
모두들 (울며) 폐하... 망극하옵니다, 폐하....
마의태자 폐하... 차라리 자결을 명하시오소서... 폐하... 폐하.......

마의태자가 머리를 바닥에 찧고 있다. 그 처절한 울부짖음에서..

씬 길

 경순왕 일행이 가고 있다. 신료들과 백관들이 다 따르고 있다. 그 짐을 실은 수레들이 끝도 없이 연결되어 있다.

해설 신라의 귀부. 이 또한 견훤이 고려로 오고 그리고 신검이 즉위하던 같은 해인 단기 3268년 서기로는 935년에 연이어 일어난 일이다. 그러니까 견훤은 6월에 고려로 왔고 신검은 10월에 황제에 올랐고 신라는 11월에 나라를 들어 고려에 바치는 숨가쁜 격동의 시간들이 이어졌던 것이다. 실록은 이때 신라에 관한 일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해 겨울 10월 임술일에 신라왕 김부가 시랑 김봉휴를 보내어 고려에 들어오기를 청하였다. 왕이 섭시중 왕철과 시랑 한헌옹을 신라에 파견하여 신라왕의 요청에 동의하는 뜻을 알렸다. 11월 갑오일에 신라왕이 백관을 거느리고 왕도를 출발하였는데 백성들이 다 그를 따라 나섰다. 이때 향나무로 꾸민 수레와 구슬로 장식한 말이 30리에 뻗쳐 길을 메웠고 구경꾼들이 담벽처럼 늘어섰다’ 라고....

그렇게 경순왕 일행들이 끝없이 가고 있다.

씬 그 길 어느 산야

 삼배옷 차림을 한 마의태자가 통곡을 하며 먼 산아래 길을 보고 있다

마의태자 아바마마.... 아바마마....
해설 (계속)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 그가 누구인가는 역사에 확실하게 나와있지 않다. 다만 그는 신라가 그 사직의 문을 닫자 통곡하며 베옷을 입고 개골산으로 들어가 평생을 초근목피로 연명하다가 죽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신라는 이렇게 그 천년의 운명을 다한다.

씬 고려 황궁 외경

씬 동 황궁 안 뜰

 왕건이 백관들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 경순왕을 맞고 있다. 경순왕과 신라의 신료들이 왕건 앞에 이르러 그렇게 선다. 견훤도 그렇게 함께 보고 있다.

경순왕 폐하, 신라의 왕 김부가 알현이옵니다.
왕건 어서 오시오.
경순왕 신 김부는 이제 더 이상 사직을 운영할 수가 없어 백관을 거느리고 나라를 들어바치겠다고 청하였나이다. 폐하께오서는 가엾게 여기시고 윤허하여 주시오소서.
왕건 잘 오시었소이다. 본래 삼한은 한 백성이었소이다. 어차피 그 경영이 힘이 들어 오셨다 하니 다 함께 힘을 모아 사십시다.
경순왕 망극하옵니다, 폐하. 이제부터 신은 폐하의 백성이며 신하가 되옵니다. 절 받으시오소서.
왕건 아니오. 천년의 역사를 가져온 신라였소이다. 어찌 짐이 그대의 절을 받겠소이까? 그만 두시구려.
경순왕 받아주시오소서. 어찌 한 나라에 두 해가 있을 수 있사옵니까? 받아주시오소서.
견훤 신라왕의 말이 지극히 옳소이다. 한 나라에 두 해는 있을 수 없으며 두 황제 또한 있을 수 없는 법이외다. 절을 허락하시오.
김행선 허락하시오소서, 폐하.
신료들 허락하시오소서, 폐하.
경순왕 절 받으시오소서, 폐하.

어쩔 수가 없다. 왕건은 황망한 중에서도 김부의 절을 받는다. 황후들이 보고 있다. 신료들이 다 보고 있다. 절이 끝나자 왕건이 뜰 계단을 내려가 김부의 손을 잡는다.

왕건 결국 이렇게 다 만나는구려. 상부어른이시오. 인사드리시오.
경순왕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상부어른, 어른께서 왕좌에 앉혀주신 김부이옵니다.
견훤 이미 다 옛 이야기올시다. 자, 폐하 드디어 삼한의 옛 주인들이 이곳에 모두 모인 것 같구려. 참으로 술 한잔이 필요하게 되었소이다.
왕건 이를 말이옵니까? 두 분 어른을 뫼시어라.
복지겸 뫼시어라.

아악소리가 들리면서 다가오는 김부에게 두 황후가 예를 올린다. 왕건이 친히 김부를 안내한다. 백관들이 구름처럼 그 뒤를 따른다. 그 김부의 표정 위로 해설이 계속된다.

해설 경순왕 김부. 역사에는 이제부터 그의 이름이 왕이 아닌 김부로 기록되기 시작한다. 경순왕은 이렇게 해서 신라의 마지막 황제가 되는 것이다. 신라, 기원전 1세기에 박혁거세를 그 시조로 하여 경순왕에 이르기까지 역사는 992년, 그리고 왕통은 무려 56대 왕에 이르렀다. 가히 천년의 역사를 존속해온 나라였던 것이다. 신라는 7세기경인 서기 660년에 무열왕이 나당 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키면서 그 8년 후인 668년 또 다시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삼한을 통일했었다. 그리고 그 324년 후인 지금에 이르러 고려에 의해 사직의 문을 닫게 되었던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역사의 종장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씬 대전 외경

씬 동 대전 안

 왕건과 견훤과 경순왕 김부가 함께 주안상을 놓고 있다. 왕건이 상좌에 앉았다.

왕건 내 생전에 이렇게 두 분을 뫼시고 자리를 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견훤 어인 말씀이시오? 폐하의 덕이 그만큼 우리보다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오.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소이다.
김부 그러하옵니다. 폐하의 덕은 이미 삼한 모든 백성들이 존경하고 있으며 흠모하고 있사옵니다. 어차피 폐하께서는 이제부터
 삼한의 주인이시옵니다. 왕건 그렇지가 않습니다. 아직까지 백제 땅이 그대로 있습니다.
견훤 그렇지가 않소이다. 이 몸이 백제를 떠나면서부터 이미 그 땅은 주인 없는 땅이 되었소이다.
두 사람 ..............?
견훤 내가 이 늙은 몸뚱이를 끌고 저 바다를 거쳐 온 것은 아직도 남은 인생에 미련이 있어서가 아니올시다. 이 사람도 삼한을 통일하여 그 주인이 되고 싶었소이다.
두 사람 ..............?
견훤 허나 어느덧 나이는 들고 세월은 가고... 그 꿈을 그나마 희망이 있는 자식을 통해 이루려 하다가 끔찍한 일을 당했소이다. 내가 고려로 온 것은 황제의 꿈을 보다 빨리 이루어드리려는 것도 있겠거니와 또 한편은 나의 말년이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 놓은 나의 못된 자식을 벌하려는 것이올시다.
왕건 상부어른....?
견훤 이제 황제는 서두르셔야 할 것이올시다. 내가 이루어놓은 저 백제 제국을 무너뜨리고 삼한을 평정하여 하루라도 빨리 백성들을 쉬게 하고 이 땅을 편안하게 해야 할 것이올시다.
김부 상부어른의 말씀이 지극히 당연하시옵니다. 이제 무엇을 더 망설이실 것이옵니까? 순리를 따라 백제를 정벌하시오소서.
견훤 그리하시구려. 어차피 고려에서도 대군이 준비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이다. 전쟁이란 기회를 잃으면 몇 갑절씩 어려워지는 것이오. 지금 고려에 운이 닿아 있으니 군사를 일으키도록 하시오. 이 늙은이가 앞을 서리다.
왕건 상부어른께서 말씀이시옵니까?
견훤 그렇소이다.
왕건 차라리... 백제국에 사람을 보내 잘못을 뉘우치게 하고 용서를 빌게 함이 어떻겠사옵니까?
견훤 (격노하며) 용서....? 지금 용서라고 하였소이까? 저놈들이 잘못을 빈다구요? 어림없는 말씀.... 그럴 놈들이 아니올시다. 그리고 용서를 해서도 아니 되구요. 내 손으로 죽일 것입니다. 반드시... 저 참담한 역적 놈들을 다 내 손으로 죽일 것입니다.
왕건 상부어른....?
견훤 저들은 절대로 항복을 아니 합니다. 일으켜야 합니다. 군대를 일으켜야 합니다, 황제.

견훤은 온 몸을 경련하며 부르짖고 있다. 김부가 끄덕이고 왕건도 한숨을 쉬며 동감하는 듯 끄덕인다. 그 표정에서...

씬 동 황궁 조당

 전 신료들이 다 모여있다. 왕건이 주재하고 있다.

왕건 신라는 이제 우리와 한 나라가 되었고 서라벌은 경주로 이름을 새로 하였소이다. 또한 백제의 황제였던 상부께서 이 몸에게 의탁을 청해 오셨소이다. 이 두분 모두가 백제와의 화해보다는 전쟁을 해야 한다고 하고 있소이다. 어떻소이까?
김행선 신 시중 김행선 아뢰옵니다. 이미 백제도 듣건데 장정이란 장정은 전국에서 모두 뽑아 올려 군대에 적을 두게 하였다 하옵니다. 그리하여 그 군대가 십만이 가깝다 하옵니다. 저들이 저만한 군세를 가졌는데 쉽게 항복하고 무릎을 꿇겠사옵니까? 전쟁은 불가피하다고 사료되옵니다.
유금필 그러하옵니다. 이제 폐하께오서는 삼한을 운영하시는 모든 권한을 손에 쥐셨사옵니다. 백제는 말로써 복종시킬 나라가 아니옵니다. 이 여세를 몰아 대업을 이루시오소서.
배현경 유장군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군대는 준비되었고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하옵니다. 마지막 과업을 완수하시오소서.
박술희 삼한 통일의 대업은 폐하의 것이옵니다. 영을 내리시오소서.
홍유 영을 내리시오소서.
염상 영을 내리시오소서.
박수문 백제로 가겠사옵니다. 영을 주시오소서.
신료들 영을 주시오소서.
최지몽 통일 과업의 모든 운은 이미 폐하의 손에 쥐어져 있사옵니다. 하늘이 그리 정하였고 일찍이 도선대사께서도 그 비기에 그리 일러주셨사옵니다. 예언을 이루시고 백성들의 고단함을 덜어주시오소서.
추언규 모든 신료들이 백제로 군사를 몰아가기를 청하옵니다. 더 무엇을 망설이실 것이옵니까? 영을 주시오소서, 폐하.
왕규 영을 주시오소서.
모두들 영을 주시오소서.
왕건 경들의 뜻이 두 어른의 뜻과 같소이다. 그렇다면 짐이 무엇을 더 주저하겠소이까? 군사를 일으킬 것이외다. 병부는 군을 준비하도록 하오.
배현경 예, 폐하.
왕건 우리와 백제군이 대 접전을 벌릴 곳이 일찍부터 정해져 있었다 들었소이다. 그곳이 일선군(경북 선산)이라고 합니다. 그 일선군에 양군이 만날 것이라 하오. 제장들은 만전을 기하여 군을 정비하고 준비하기 바라오.
모두들 예, 폐하.
왕건 우리 고려나 백제나 운명을 건 싸움이올시다. 추호도 그 준비를 소홀히 하지 않도록 하오.
모두들 예, 폐하.

씬 인서트

 대군이 훈련중이다. 엄청난 마필들과 공격장비들과 군대가 이동하고 있다. 그들을 인솔하는 배현경 이하 유금필, 박술희, 염상, 박수문 형제, 왕충들의 모습이 보인다. 왕건이 사열대에서 보며 끄덕이고 있다. 그 옆에는 그림자처럼 견훤이 따라붙고 있다. 훈련의 모습이 부감으로 그렇게 펼쳐지면서....

씬 백제국 황궁 외경

씬 동 조당

 신검을 비롯하여 이곳에서도 전 신료들이 모여있다.

신검 고려국에서 지금 군사준비가 한창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일부가 이미 고려의 천안부로 이동을 시작했다고 하오이다. 저들은 천안을 거쳐 일선군으로 모여들 것이오.
신덕 폐하, 이미 알고 있었고 다 파악된 상황이었사옵니다. 우리 군도 그에 대비하여 이동을 시작했사옵니다. 폐하의 영이 내려지면 우리 십만 대군은 여러 곳으로 군을 나누어 일선군으로 내려가 고려군을 대할 것이옵니다.
능환 이번 전쟁은 우리나 고려나 마지막 전투가 될 것이옵니다. 그 이기는 자가 삼한의 주인이 될 것이고 또한 지는 자는 목숨은 물론이거니와 그 나라를 잃게 될 것이옵니다. 그만큼 모진 각오가 없이는 아니 되는 전쟁이옵니다.
능애 이미 각오는 충분하오이다. 그만한 것쯤 모르는 사람은 없소이다. 죽느냐, 사느냐... 이 전투가 모든 것을 말해줄 것입니다. 폐하께오서 친히 친정을 하실 전투이옵니다.
애술 폐하께오서 직접 전투에 가실 것이옵니까?
신검 물론이오. 고려의 왕도 아마 전장에 나올 것이외다. 나라의 운명이 걸렸다는데 어찌 비겁하게 황도에만 머물 수 있겠소이까?
상귀 폐하의 말씀을 들으니 신들은 용기가 백 배나 더하옵니다. 반드시 승리할 것이옵니다.
파달 그러하옵니다. 어차피 양쪽의 군사 규모가 같사옵니다. 백제국이 불리할 것이 아무 것도 없사옵니다.
김총 폐하, 어차피 싸워야 할 일이옵니다. 이번 전쟁이 마지막이라 하니 꼭 고려를 무찌르고 삼한의 황제로 오르시오소서.
양검 폐하, 신료들이 이구동성으로 아군의 승리를 장담하고 있사옵니다. 반드시 승리할 것이옵니다.
용검 폐하께서 앞서시는 전투시옵니다. 신도 백제국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사옵니다. 폐하께서는 분명 삼한을 다스리시는 황제가 되실 것이옵니다.
영순 좋은 기회란 많은 것이 아니옵니다. 우리 백제는 오래 전부터 이번 전투를 준비해 왔사옵니다. 폐하의 위엄을 천하에 보여주시오소서. 그리하여 온 삼한이 다 두려움에 떨게 하소서. 폐하께오서는 하실 수 있사옵니다.
신검 고맙소이다. 우리 모두 힘을 합치십시다. 그리하여 목숨을 걸고 이번 전투를 치루어 냅시다. 그리고 반드시 승리합시다.
모두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신검 군대의 이동을 명하는 바이오. 일리천으로 가십시다. 가서 싸워 승리하십시다. 그리하여 고려왕의 목을 장대에 꽂고 새로운 백제를 건설하십시다.
모두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모처럼 기운이 넘쳐 보이는 신검의 그 자신감에서...

씬 어느 황톳길

 대군이 이동하고 있다. 신검과 능환이 앞을 섰고 그 뒤로 능애, 신덕들이 뒤를 따르고 있다. 엄청난 규모의 대 부대이다. 그 끝이 보이지를 않는다. 그들 그렇게 가고 있고...

씬 어느 산길

 박술희와 정윤 무가 이끄는 대군이 가고 있다. 그들이 길게 꼬리를 물고 지나쳐 가고 있고...

씬 고려 황도 궁 앞

 대군이 출전을 기다리고 있다. 유금필, 배현경, 홍유, 박수문, 박수경, 염상, 왕충, 윤신달들의 모습이 보인다. 특히나 유금필의 뒤에는 흑수말갈 족을 비롯한 북방의 오랑캐 족들이 특별한 부대를 이루어 지켜서 있다.

씬 동 대전

 왕건이 갑옷차림으로 출전을 준비중이다. 오씨와 유씨가 함께 그 갑옷을 입혀주고 있다. 그리고 왕건이 검을 챙겨든다.

오씨 폐하, 꼭 친히 가셔야 하시는 것이옵니까?
왕건 마지막 전투가 될 것이라 하였소이다. 후삼국이 일어난 이래 최대의 전투이자 마지막 전투올시다. 가야 합니다.
유씨 십만의 대군이라 하였사옵니다. 폐하께서 아니 가신들 어떻겠사옵니까? 황도에 계시오소서.
왕건 두 분은 그런 말씀 마오. 오늘 같은 날을 위하여 평생을 기다려왔소이다. 곧 승전보가 이 황도에 전해질 것이오. 그리 알고 기다리도록 하시오. 삼한 통일의 승전보가 올 것이외다.
오씨 부디 조심하시오소서, 폐하.
유씨 반드시 승리하시오소서.
왕건 고맙소...

왕건이 그들에게 인사를 하며 막 대전을 나가려고 하는데 견훤이 불편한 몸으로 다가와 선다.

왕건 아니, 상부어른...? 여긴 어인 일이시옵니까? 이제 막 출전하는 길이옵니다.
견훤 지금.. 황제께서 전선으로 가신다 하셨소이까?
왕건 예, 상부어른. 이미 제 일군이 앞서 천안부로 가고 있사옵니다.. 저는 곧 본군을 이끌고 그 뒤를 이어갈 것이옵니다.
견훤 이보시오, 황제....?
왕건 예, 상부어른.
견훤 이 전쟁은 이 늙은이가 청한 것이올시다. 어찌 나를 버려두고 가려 하시오?
왕건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허면 상부께서 전선으로 가시겠다는 뜻이옵니까?
견훤 말하지 않았소이까? 이 늙은이가 앞서겠다고 말이오.
왕건 상부께서는 환후중이십니다. 어찌 전장터에 나간다 하시옵니까? 아니 되옵니다.
견훤 아니 되다니...? (막아서며) 내가 세운 제국이오. 그 제국을 내가 거두어야겠다고 했소이다.
황후들 ................?
견훤 이보시오, 황제...? 나를 데려가 주시오. 부탁이오.
왕건 환후도 중하신데다가 이미 춘추가 일흔이 넘으셨사옵니다. 어찌 저 험한 전장터에 가신다 하시옵니까? 아니 되옵니다.
견훤 부탁이오... 부탁이오, 황제.... 이 늙은이, 숨 거두기 전에 청하는 마지막 청이오. 나를 데려가 주시오.
왕건 상부어른....?
오씨 환후가 중하신데 어찌 가신다 하시옵니까?
견훤 부탁이라 하였소이다, 부탁.... 내가 무릎을 꿇고 빌어야겠소이까?
왕건 허 이것 참..... (어쩔 줄을 모른다)
견훤 허면 빌겠소이다. 내가 무릎을 꿇지요.
왕건 (얼른 잡으며) 아, 아니옵니다. (한참 보다가) 정히 그러시다면 뫼시겠사옵니다. 함께 가시오소서.
견훤 고맙소이다.. 황제... 고맙소이다... 할 일이 있어서 그래요. 할 일이 있어서... 내 자식놈들을 꼭 보고 할 일이 있어요.
황후들 ................?
왕건 얘들아, 상부어른을 뫼시어라.
내군들 예, 폐하.
왕건 다녀오리다. 가시지요, 상부어른.

황후들이 예를 취한다. 왕건이 견훤과 함께 그 대전을 빠져나간다. 견훤의 눈에는 독기가 펄펄 끓고 있다.

씬 길

 왕건과 견훤이 앞을 섰다. 견훤은 갑옷차림이다. 그 등창을 참으며 백마를 타고 가고 있다. 물론 몸은 부자연스럽다.

왕건 정말 괜찮으시옵니까?
견훤 물론이오. 이까짓 등창 쯤 괜찮소이다. 많이 좋아졌소이다.

왕건은 갸우뚱한다. 그들 그렇게 간다. 각 장수들의 면면이 보이고 그들 그렇게 까맣게 몰려간다. 그리고 멀어지는 그들의 모습 위로....

해설 드디어, 드디어 왕건은 백제의 정벌에 올랐다. 그리고 신검 또한 오고 있는 고려군을 맞기 위해 일리천으로 대군을 움직이고 있었다. 단기 3269년 서기로는 936년 9월의 일이었다. 왕건은 이때, 보병과 기병 일만을 태자와 박술희를 시켜 미리 앞서가게 하였고 그는 삼군을 거느려 그 뒤를 따라 지금의 구미와 선산인 일선군으로 향하였다. 그것은 왕건이나 신검이의 말처럼 후삼국의 마지막을 마무리짓는 전쟁이었다. 또한 그에 걸맞게 그 규모가 사상최대의 것이었다.

씬 일리천

 왕건의 군대가 멀리서 강 쪽으로 오고 있다. 점차 그들의 면면이 보이고 제장들이 모습이 지나쳐 간다. 유금필과 그가 이끄는 오랑캐족들 그리고 박술희와 정윤 무, 염상, 홍유, 박수문, 박수경, 왕충, 윤신달들의 모습이 거쳐간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는 김씨에서 왕씨성으로 바뀐 명주 왕순식의 모습도 보인다.

해설 (계속) 이때 실록에 보이는 고려의 군사편제를 보자. 먼저 앞을 섰던 견훤은 박술희와 더불어 기병 만 명을 거느리고 있었고 제 이군은 보병 만 명을, 또한 홍유와 박수문이 거느린 제 삼군이 기병 만 명을, 명주에서 올라온 왕순식이 기병 이만 명을, 그리고 유금필이 끌고 온 변방의 오랑캐 족인 흑수말갈, 달고, 철륵 같은 외인부대가 구천 오 백 명이었고 그 이외에 왕건의 본군을 모두 합쳐서 전체 기병이 사만 구천 팔백 명, 보병이 삼만 칠 천 명 도합 팔만 육 천 팔백 명이 참여했다고 되어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전투가 있었으나 이처럼 대 병이 동원된 예는 없었던 것이다.

씬 그 일리천 강 건너 야산

 신검의 진영이다. 이곳에도 군사들이 구름처럼 펼쳐져 있어 그 끝을 가늠키 어렵다. 신검과 제장들이 멀리 왕건의 진영 쪽을 보고 있다. 긴장이 감돌고 있다. 강 쪽으로 이미 방책들이 서 있다.

해설 (계속) 이때, 백제의 군사 규모에 관해서는 그 자세한 기록들이 없다. 그러나 백제군이 고려군 보다 결코 열세가 아니라는 것을 다음과 같은 대목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삼국유사에 견훤이 그의 아들에게 하늘 말에 ‘군사가 북군(고려군)에 배나 더 되는데도 오히려 불리하니...’라는 기록이 그것이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후백제는 그 영토가 물자가 풍부한 전라도와 충청도 경상남도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국력이 결코 고려에 모자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신검 (고려 쪽을 보다가) 대단하구려... 양쪽이 합하여 이십 만이 넘겠소이다.
능환 예, 폐하. 그리 길게 끌지 않을 것이옵니다. 일단 저 일리천의 물이 없는 모래뻘을 경계로 하여 선발대가 나아가 서로의 전략을 탐색할 것이옵니다.
신검 그렇게 되겠지요. 누가 선발을 나갈 것이오?
애술 소장이 가겠사옵니다, 폐하.
신검 허허허... 애술 장군이라면야 무엇을 걱정하겠소이까? 허나 고려군의 저 진영을 보시오. 마치 까마귀 떼가 앉은 것처럼 군사들이 야산을 덮고 있소이다. 어마어마하구려.
애술 하하하... 어차피 죽고 사는 전장터가 아니옵니까? 우리 또한 군사가 저들만큼 있는데 무엇이 두렵겠사옵니까? 신이 앞서 나가 공격로를 열겠사옵니다.
신덕 애술 장군이라면 저 고려군도 겁을 먹을 것이옵니다.
신검 좋소이다. 허락하겠소이다. 언제 공격하겠소이까?
애술 이미 양군이 진을 확보하고 자리를 잡았사옵니다. 군사들이 밥을 먹은 지 얼마 아니 되었으니 한 식경 후 해가 질 무렵 일만의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겠사옵니다.
신검 그리하시오. 기다려지는구려. 그 저녁이 기다려져요.

그런 신검과 제장들의 표정에서....

씬 동 고려군 진영

 왕건과 제장들이 함께 해 있다. 이곳에서도 멀리 강 건너 백제의 군영이 보여온다. 해는 점차 기울고 있다. 견훤이 왕건 옆에서 함께 보고 있다.

유금필 폐하, 오후가 한참이나 지났사옵니다. 해가 저물 무렵이면 저들이 공격을 해올 것이옵니다.
왕건 그럴 게야. 허면 우리도 누군가 선봉을 서야하지 않겠는가?
박술희 소장이 서겠사옵니다, 폐하.
염상 아니옵니다, 소장이 서겠사옵니다.
홍유 소장을 보내주시오소서. 적진을 뚫겠사옵니다.

그때, 견훤이 그들을 만류하며 말한다.

견훤 아아.... 아니오... 이번의 선봉은 이 늙은이가 서리다.

그 말에 제장들이 모두 입을 딱 벌린다. 왕건도 다시 본다.

왕건 상부어른, 지금 뭐라 하셨사옵니까?
견훤 이 늙은이가 선봉을 서겠다 했소이다.
왕건 어찌 저 무지막지한 백제의 장수들과 겨루려 하시옵니까? 그냥 뒤에서 보고만 계시오소서.
견훤 어허... 황제는 무슨 말씀을... 어차피 이십 만이 뒤엉켜 싸우는 전장터올시다. 이 전투는 누가 먼저 기선을 잡느냐가 아주 중요합니다. 그 기선을 이 늙은이가 잡겠다는 것이올시다.
배현경 대체 그 몸으로 어찌하시겠다는 것이옵니까?
견훤 몸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오. 나를 저쪽 야산 높은 지역으로 데려다 주시구려. 그리고 군사 이만을 양쪽으로 포진케 하시오.
유금필 그래서 어찌하실 것이옵니까?
견훤 백제에서 어느 누가 선봉으로 나오든 간에 내가 있는 곳을 보면 결국은 창검을 버릴 것이외다. 그때, 좌우 군이 치도록 하시구려.
유금필 (그제서야) 상부어른.... 참으로 지당하다 사료되옵니다.
왕건 무엇이 그리 지당하다는 것인가?
유금필 폐하, 신은 보았사옵니다. 상부어른께서 백제를 나오실 때에 바닷길로 하여 왔는데 백제의 군사들이 그 수장인 상귀의 말을 듣지 않았사옵니다.
모두들 .............?
유금필 한결같이 활을 쏘라는 명령을 받았음에도 아무도 쏘지 못하였사옵니다. 상부어른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공격을 하기보다는 방어의 벽을 치시고 상부어른으로 하여금 적의 예봉을 꺾게 하시오소서. 분명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옵니다.
왕건 (그제서야) 오오.... 그런 일이 있었는가? 그런 일이....?
견훤 나의 이름을 백제군사들이 볼 수 있도록 그 수기를 크게 걸어주시오.
왕건 알겠사옵니다, 상부어른. 무엇들 하느냐? 즉시 수기를 만들라.
견훤 저들을 막을 군사를 일만을 앞세우고 좌우로 이만을 배치하도록 하시오.
왕건 그리하도록 하라.
견훤 그리고 군을 두 곳으로 나누어 저들이 무너지면 일제히 들어가도록 하시오. 반드시 효험을 볼 것이오.
왕건 그리하겠사옵니다, 상부어른.
견훤 나는 오로지 내 자식들을 보면 되오이다. 내 자식들을 잡을 것이오. 내 자식들 말이오. 저 건너에 와 있는 내 자식들 말이오.

씬 인서트

 해가 서서히 서쪽으로 기울고 있다. 긴장이 감돌고 바람소리가 강 중심을 지나쳐 간다.

씬 신검의 진영

 애술이 하늘을 보고 있다. 그리고 신검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애술 서서히 군대를 이동시켜야겠사옵니다. 저 아래로 내려가 공격준비를 해야겠사옵니다.
신검 그리하도록 하오. 가시오, 애술 장군.
애술 예, 폐하. 전군 이동하라... 천변으로 이동하라... 전투 대형을 갖추어라...

애술군이 가득히 내려가고 있다. 비탈진 곳을 서서히 내려와 저 멀리 일리천 쪽으로 간다.

씬 강 건너 왕건의 진영

 거기 견훤이 높은 곳에 앉아 있다. 그 옆에는 대 고려국 황제 상부 견훤이라는 엄청나게 큰 수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그 뒤로 유금필과 박술희가 섰고 그 좌우로 멀리 염상, 박수문, 박수경, 홍유, 배현경들이 대군을 이끌고 포진하고 있다. 왕건의 본군은 저만큼 뒤에 있다.

유금필 상부어른, 백제군이 이동을 시작한 것 같사옵니다. 전투 대형을 벌리며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아득히 오는 그들을 가리키며) 보시오소서. 이동을 시작했사옵니다.
견훤 수기를 보게. 장수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하네.
유금필 아직은 잘 아니 보이옵니다. 가까이 이르면 볼 수 있을 것 같사옵니다.
견훤 기다려보세. 가까이 올 때까지....

씬 그 뒤 왕건의 군영

 왕건이 저만큼 높은 곳에 있는 견훤을 보며 초조해 한다.

복지겸 과연 저 상부어른은 대단한 분이시옵니다. 춘추 칠십에 그 심한 등창까지 앓고 있으면서도 저렇게 버티고 서 계시옵니다.
왕충 그러하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옵니다.
왕건 삼한을 호령하던 영웅이시오. 당연한 일이 아니오? 그나저나 참으로 괜찮을런지...
윤신달 신도 보았사옵니다. 백제의 전함이 수십 척이 가로 막았음에도 저 상부께서는 눈썹하나 깜짝하지 않으셨사옵니다. 그리고 백제군은 그 누구도 범접하지를 못하였사옵니다.
복지겸 평생을 걸쳐 몇 번 뵈었지만 참으로 엄청난 분이시옵니다. 저 담력이 얼마나 크시옵니까?
왕건 그러게 말일세.

그때, 최지몽이 하늘을 가리키며 말한다.

최지몽 페하...?
왕건 왜 그러는가?
최지몽 저 하늘을 보시오소서. 이번 전투의 결과를 알려주는 예시이옵니다
 왕건 하늘이라니...? (보다가) 아니...? 저 구름이 참으로 신묘하구나.
최지몽 그러하옵니다. 마치 창과 검처럼 생기지 않았사옵니까?
왕건 그렇구나.
최지몽 길조이옵니다. 저 창과 검이 우리 쪽을 떠나 백제군 쪽으로 가고 있사옵니다. 이번 전투는 폐하의 승리시옵니다.
왕건 허허, 그런가..? 나의 승리라..?
최지몽 예, 폐하. 고려의 대승이옵니다, 폐하.

그렇게 창과 검 모양의 흰 구름이 백제 쪽으로 가고 있다. 장수들도 모두 탄성을 지르며 보고 있다.

씬 그곳

 견훤은 그렇게 버티고 섰다. 점점 애술의 군대가 가까워지고 있다. 그렇게 서서히 윤곽이 드러난다.

유금필 상부어른, 적장의 수기가 보이옵니다. 백제국 장수 애술인 것 같사옵니다.
견훤 애술이라...? 곰같이 미련한 놈이지.. 허나 용맹만은 대단하다네.
유금필 아옵니다.
견훤 좀 더 기다리세. 좀 더....

씬 그 천 건너

 애술들이 부장들을 좌우에 거느리고 숱한 군사들을 이끌고 오고 있다. 그러다가 점차 견훤의 모습과 윤곽이 시야에 확실하게 들어온다. 애술이 눈을 크게 뜨며 당황한다.

애술 여봐라, 부장... 저기 저 황제폐하가 아니시냐?
부장 (보다가) 그러하옵니다, 장군. 황제폐하시옵니다.
애술 저런 저런... 아니 저 노인네가... 저기는 왜 와 있다는 말이냐?
부장 저 수기를 보시오소서. 황제폐하가 틀림없사옵니다.

부장이 크게 당황한다. 군사들이 술렁거린다. 모두 멈칫거리며 우왕좌왕한다. 여기 저기서 소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애술 왜들 이리 시끄러운가? 조용히 하라.. 조용히 하라....
부장 지난 번 바다에서도 폐하께서 나타나시어 수군을 이끌던 상귀 장군이 낭패를 보았다 하옵니다. 군사들이 동요하고 있사옵니다, 장군.
애술 아니 된다. 동요해서는 아니 된다. 조용히 하라고 하지 않느냐, 이놈들아...? 조용히 해라, 조용히 해...

그러나 군사들은 더욱 웅성거린다. 견훤의 웃음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견훤 하하하..... 거기 오는 것이 애술이가 아니냐? 네 놈의 눈에는 황제도 아니 보이느냐?
애술 .................. (난처하다, 어쩔 줄을 모른다)
견훤 네 이놈,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너의 주인이니라. 썩 와서 무릎을 꿇지 못할꼬...?
애술 아니 되겠다. 공격해라... 부장들은 무얼 하느냐? 공격해라. 공격해...

허나 움직이지 않는다. 우왕좌왕 소요는 더욱 커지고... 아무도 나가려 하지 않는다. 견훤은 웃음소리는 계속된다.

견훤 애술아... 이놈의 애술아... 황제이니라. 내 말이 들리느냐? 애술아...
애술 공격하라... 공격하란 말이다... 공격하라.... 왜 이렇게 꼼짝을 않느냐? 공격하라, 공격해....

들끓는다. 군사들이 소요로 들끓는다. 견훤의 웃음소리는 계속되고 있다.

견훤 어서 오너라 애술아.... 황제이니라.. 어서 오너라...

그렇게 웃고 있는 견훤의 모습에서.....


 <199회 끝>




첨부파일 태조왕건199.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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