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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대본

[겨울연가] 01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06.12.24|조회수1,282 목록 댓글 0
[겨울연가] 01
 
 
 
 
 
 
 
 
 
 
S#1. 유진의 집 근처 (아침)
 
춘천의 한 동네가 보여진다.
아랫동네의 커다란 집과 대조적으로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윗동네.
책가방과 화구통을 든 유진이 대문을 박차고 뛰어나온다.
넥타이를 아무렇게 목에다 꿰고 뛰쳐나가는데-

엄마(소리) : 유진아! 명찰!
유진 : 아차차...!! (받아들고 나오다 다시 들어간다) 엄마, 도시락!!

유진, 얼른 집 안에 들어가서 도시락을 받아들고 뛰쳐나온다.

유진 : (달려가며) 다녀오겠습니다아!

유진, 다시 엄청난 속도로 뛰어간다.


S#2. 집 앞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아침)

눈썹이 휘날리게 달리는 유진을 따라 스쳐가는 골목길의 풍경들.
정신없이 달리던 유진, 저멀리 서 있는 남자아이를 향해 소리쳐 부른다.

유진 : 상혁아! 김상혁!

초조하게 시계를 보던 남자아이, 유진을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어 재촉한다.
유진이 헉헉 대며 상혁 앞에 선다.

유진 : 안늦었지?
상혁 : 잠깐만.

상혁이 유진의 느슨해진 넥타이를 다시 고정시켜준다.

상혁 : 가자!!

정신없이 뛰어가는 두 사람. 버스 정류장에 버스가 멈춰 서있는 게 보인다.
혼신의 힘을 다해 뛰어가는 두 사람, 간신히 버스를 잡는다.
이미 충분히 만원버스이다. 도저히 두 사람을 태울 수 없는 분위기.
상혁은 유진을 꽉꽉 밀어서 넣어주고 자신도 타려고 하지만 도저히 안된다.
유리문에 납작 눌려있는 유진에게 입모양으로 먼저가라고 하는 상혁.

상혁 : 졸지마!!!

상혁을 뒤로 하고 유유히 떠나는 버스.
 

S#3. 버스 안 (아침)

다른 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우르르 내린다.
유진, 제일 뒷자리에 앉는다. 유진은 같은 교복을 입은 남자아이(준상)의 옆에 앉는다.
안졸려고 하지만 쏟아지는 잠을 어쩌지 못한다.
눈꺼풀이 점점 내려앉는 유진. 시야가 가물가물 흐려진다.

(시간경과)

유진이 준상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쿨쿨 자고 있다.
준상, 유진의 머리를 반대쪽으로 슬쩍 민다고 미는 게 유리창에 쿵 부딪친다.
눈을 번쩍 뜨는 유진, 준상과 눈이 마주친다. '이씨.... 째려보는데.....'
버스는 이미 학교를 지나쳐서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기겁하고 벌떡 일어나 주변을 살펴보는데 그 많던 유진네 학교 학생은 아무도 없다.
주위 사람들이 있는 것도 무시하고

유진 : (무지막지하게 큰 소리로) 아저씨!!!!!


S#4. 한적한 거리 (아침)

버스가 끽 하면서 급정거하면 유진이 내리고 뒤이어 준상이 따라내린다.
발을 동동 구르며 주위를 둘러보는 유진. '여기가 도대체 어디야?'
준상은 멀뚱하게 유진을 바라보며 서 있다.

유진 : 어쩌면 좋아.......(준상을 째려보며) 도대체 안깨우고 뭐한 거에요?
준상 : ......
유진 : (탐색하듯) 몇 학년.....이에요?
준상 : 2학년.
유진 : (다짜고짜) 야! 너 도대체 몇 반이야? 가가멜이 무섭지도 않냐?
          내가 2학년 중에 너처럼 간뎅이 부은 애는 본적이 없어.
준상 : (멀뚱)

유진, 씩씩대며 걷다가 휙 뒤를 돌아본다.

유진 : 빨리 안오고 뭐해? 같이 타야 택시비라도 줄지!!

막무가내로 준상의 팔을 끌어당기는 유진. 준상, 엉겁결에 따라간다.


S#5. 학교로 향하는 언덕길 (아침)

택시에서 내린 유진은 뒤도 안돌아보고 냅다 뛰기 시작한다.
얼핏 고개를 돌려보는데 준상은 벽에 기대선다.
유진 : 야, 너 지금 뭐해?

준상은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더니 길게 연기를 뿜어낸다.
탈선의 현장을 목격한 사람처럼 눈이 동그래진 유진, 할 말을 잃은 듯 혼자서 허겁지겁 올라간다.


S#6. 학교 정문 앞 (아침)

지각생들이 손을 들고 나란히 서 있다.
가가멜이 기다렸다는 듯 몽둥이를 휘두르고 있다. 잘 걸렸다는 표정.

가가멜 : 정유진이! 단골고객이 요새 통 얼굴을 안보인다했다. 너도 저리 가서 서!!

지각생 중 진숙이 유진을 향해 배시시 웃는다. 유진, 진숙의 옆으로 선다.

진숙 : (나 일분오십초 밖에 안늦었어. 담임인데 너무 야박하지 않냐?)
유진 : (가가멜이 언제 그런 거 봐줬니?)
진숙 : (상혁이는 지각안했던데 왜 늦었어?)
유진 : (말도 마. 어떤 이상한 놈 때문에...!!)
가가멜(소리) : 너 이놈 지금이 몇신데 이제 와?

문득 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유진, 준상이 가가멜에게 걸린 걸 본다.
유진의 눈이 지글지글 타오른다.

유진 : (분해서 순간 목소리가 크게 나온다) 바로 쟤야!!

사람들이 일제히 유진을 쳐다본다. 고개를 돌려 유진을 보는 준상.


S#7. 학교 인서트 (아침)

학교 전경. 바글바글 떠드는 아이들 소리 위로 종소리가 울린다.


S#8. 교실 (오전)

교단 위에 나와 있는 용국이 반성문을 읽고 있다.

용국 : (기어들어가는 소리) 저는 학생의 본분을 잊고 자습시간을 빼먹은 걸 가슴깊이 반성 하며...
          앞으로는 절대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담임 : 크게 해!
용국 : 절대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담임 : 더 크게!
용국 : (목소리를 팍 풀더니) 선생님,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선생님은 학교 다니면서 땡땡이 한 번도 안치셨단 말입니까?

용국의 뒤통수를 딱 때리는 담임.

담임 : 안쳤다, 이놈아! (용국의 귀를 세게 잡아당기며) 요놈, 요거 아직도 정신 못차렸네.

담임이 다시 용국의 머리를 한 대 갈기려고 할 때 노크소리가 들린다.
담임, 나갔다가 잠시후 다시 들어온다.

담임 : 오늘 우리반에 전학생이 한 명 생겼다. (밖을 향해)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은 준상이다. 깜짝 놀라는 유진.

진숙(소리) : (유진을 쿡쿡 찌른다) 야 야 아침에 봤던 걔 아냐?

준상과 눈이 마주치자 얼른 시선을 돌리는 유진. 악연이 겹친다는 표정.

가가멜 : 서울과.학.고(강조), 과학고에서 왔단다. (전학서류를 뒤적이며) 이름이.....
준상 : 강준상입니다.
가가멜 : 그래, 준상이. (답지않게 다정한 목소리) 얘들아, 사이좋게 지내야한다? 자, 다같이 환영의 박수!

아이들, 얼기설기 박수를 친다.

가가멜 : 자리는 저기 앉으면 되겠고.... (상혁을 보며) 아, 반장!
상혁 : (벌떡 일어나며) 네!

상혁을 본 준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가가멜(소리) : 빈 사물함 있나 확인해서 챙겨줘라.... 그리고 학급일지 다 됐으면 교무실로 가져와.
상혁 : 네.
가가멜 : 자, 오늘 조회 끝!
상혁 : 차렷, 경례!
아이들 : 감사합니다!

가가멜은 나가고 아이들은 웅성웅성 떠드는데 상혁을 바라보는 준상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S#9. 교실 (오후)

교실 구석 맨 끝자리에 앉은 준상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하지도 않고 혼자 앉아있다.
유진, 진숙, 채린을 비롯한 여자아이들이 준상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다.
유진 아직도 준상에 대한 불쾌함이 남아 있다
진숙 : (유진에게) 유진아 이게 무슨 악연이니? (준상을 돌아보며) 근데 참 잘생기긴 잘생겼네
유진, 채린 : 저 얼굴이? (마주본다)
채린 : 난 관심없어. (새침하게)
유진 : (휙돌리며) 나도
아이1 : 야, 우리 반 남정네들 상판을 훑어봐라. 쟤보다 나은 애 있나.
유진, 채린 : (다시 준상을 보다가 서로 의식한 듯 흥)
진숙 : 왜 없어....? 있긴 있어.
아이1 : 누구? 상혁이?

진숙, 턱 짓으로 용국을 가리킨다.
의자를 꺼떡거리면서 연필로 귀를 파고 있던 용국, 누가 내 말 하나 하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본다.
아이들, 일제히 "미쳐! 미쳐!" "야아"하면서 진숙의 등을 때린다.

진숙 : (억울하다는 듯) ....사실인데.....
채린 : 아아- 시끄러워 여자애들이란..... 얼굴만 좀 생기면 다니?
아이2 : (조그맣게) 얼굴만이 아니다. 내가 교무실에 갔다가 들었는데
            강준상 쟤 과학고에서도 끝내줬던 애래. 뭐라드라? 전국 수학 올림픽?
채린 : (힐끗) 수학 올림피아드?
아이2 : 하여튼 그거 1등도 했었데. 한마디로 난 놈 아냐?
일동 : 진짜..?

아이들의 눈이 전부 준상 쪽으로 휙 돌아간다. 대단한걸...?
채린 반짝한다. 유진 한 번쯤 더 준상을 돌아보는데

채린 : (책상을 탁 치며) 결정했다!
아이들 : ???
유진 : ?
채린 : (자신만만) 강준상, 내가 찍었다. (나가며, 으쓱) 소문 좀 내줘.
유진 : ? (쳐다보는데)
채린, 씩 미소를 지으며 준상의 뒤 가까이를 지나간다.
왕재수라는 표정으로 채린의 뒷모습을 쳐다보는 아이들.
유진 어우 하는데 상혁이 클럽활동일지를 들고 혼자 앉아있는 준상에게 다가서는게 보인다
상혁다가서자 긴장하는 준상

상혁 : 안녕, 난 김상혁이다. 잘지내보자 (손내민다)
준상 : (그냥 올려다본다.)
상혁 : (머쓱) 클럽활동 뭐할 건지 정해야 하는데..... 너 무슨 부에 들고 싶니?
준상 : 관심없어. (확 일어나 나가버린다)
상혁 : 강준상! (하고따라나가려는데)
유진 : (어느새 와서) 줘봐! 내가 할게
유진 상혁에게 클럽일지를 받아 준상을 쫓아나간다.
 
S#10. 복도 (오후)
유진 : 어이...야... 강준상!
준상 : (돌아본다)
유진 : (다가서서) 첫날부터 학교에서까지 비협조적이면 안되지. 반장이 곤란하잖아.
          클럽활동 뭐할꺼야?
준상 : (피식) 학교에선 안 자나?
유진 : 뭐? (하다가 참고) 과학고 다녔다고 들은 것 같은데.... 과학부하는건 어때?
준상 : 야구선수가 취미로 야구하는 거 봤어?
유진 : (약간 기분이 상했다. CA일지를 읽으며) 그래? 그럼 있는 부서를 읽어줄테니까
          아무거나 하나 골라봐. 합창부, 기악부, 탁구부, 수예부....
준상 : (대뜸) 쟤는 무슨 무슨 분데?

유진, 준상이 시선을 두고 있는 쪽을 돌아보면 상혁이 복도로 나와 보고있는..

유진 :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누구....? 김상혁?
준상 : (끄덕)
유진 : (의아..?) .....방송반.
준상 : 방송반? 그래, 그럼 그걸로 할게.

준상, 말을 마치고는 돌아서가 버린다. 유진, 준상을 뜨악하게 쳐다본다.
그리고 상혁을 돌아보면 상혁도 모르겠다는 듯 으쓱하는표정.


S#11. 방송반 (오전)

팔짱을 낀 채 방송실 구석 의자에 앉아있는 준상.
상혁과 함께 판을 고르던 유진은 준상이 신경 쓰이는 듯 힐끗 돌아본다.
스튜디오 부스 안에서 마이크 테스트를 하는 용국과 진숙, 채린.
용국이 스튜디오 유리창을 쾅쾅 두드린다.

용국 : (입모양만 보인다) 들려?
유진/상혁 : (고개를 가로젓는다)

부스 문을 벌컥 열고 나오는 용국.

용국 : 큰일났네. 소리 하나도 안들려?
상혁 : 뭐가 고장난 거야? 어제까지는 멀쩡했는데?
용국 : 아무래도 채린공주가 한 건 올린 것 같으이.
채린 : 나 아냐. 절대 아냐. 내가 만지기 전부터 이상했었어. (유진을 휙 쳐다보며)
          어제 유진이가 마지막 방송했잖아. 정유진, 니가 그런 거 아냐?
유진 : (황당해서 채린을 본다) 그럼 너 아침 방송은 어떻게 했냐?
용국 : 모름지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아녀자의 으뜸가는 도리인 즉슨!
          오채린이.... 발뺌하지 마라.
영남 : (째려보며) 권용국!!!
진숙 : (자신감없이 눈치를 보며) 혹시 스위치 빠진 건 아니겠지?
상혁 : ......괜히 엉뚱한 거 만져서 일 키우지 말고 선생님한테 말씀드려야하지 않을까?
채린 : (펄쩍 뛰며) 안돼!.... 가가멜이 알면 가만 안둘거야. 절대 안돼!
용국 : 맞다. 목숨이 두 개가 아닌 이상 말하면 안된다.
상혁 : 아니. 사실대로 말하면 뭐라고 안하실거야.
채린 : (사운드 잭을 마구 만지며) 안돼 안돼. 뭔가 방법이 있을거야.
상혁 : (채린을 말리며) 그렇게 함부로 만지지마!

하는데 준상의 손이 쑥 들어온다.
채린이 들고 있던 잭을 가져가 다른 쪽에 꽂는다. 눈이 휘둥그래져서 준상을 올려다보는 채린.

상혁 : 뭐하는 거야?
준상 : (잭을 뽑으며) 패치가 잘못됐어.

아이들이 어? 하는 사이에 사운드 잭을 다시 정렬하기 시작한다.
아주 익숙하게 기계를 만지는 준상을 쳐다보며 가만히 서 있는 아이들.
채린은 뿅간 표정으로 준상을 보고.....

준상 : (꽂더니) 테스트 한 번 해봐.
채린 : (준상에게 넋이 나갔다가 황급히) 아! 아! 마이크 테스트! 아! 아!
          (보며) 어머 된다아!!! 강준상, 너 진짜 대단하다!!!
준상 : (상혁을 노려보는 느낌) 이제 됐지?

준상, 상혁을 싸늘하게 보더니 방송실을 나가버린다. 아이들, 뻘춤해 있는데-

용국 : (혼잣말) 특이해.... 아주 특이해......
상혁 : 뭐가?
용국 : 강...준....상이..... 두상과 체상이 다같이 심성질 성격의 역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걸 보면
          쟨 목국목체상임에 틀림이 없어. 여난이 많다고 할 수 있지.....
진숙 : 여난이 뭔데....?
채린 : (끼어들며) 여자가 많다는 건데.... 날 만났으니까 다 끝난 얘기지, 뭐. 안그래?

채린, 부스 안으로 들어가고 아이들은 황당한 듯 채린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용국 : 근데 목국목체상이면 상혁이 너랑은 상극이네?
상혁 : 무슨소리야? (웃는데)
유진 : (표정)

S#12. 청소시간 (오후)

아이들이 장난치며 청소하고 있다.
유진, 창가에 기대있는 준상이 계속 상혁을 주시하고 있는 걸 알아본다.
유진, 상혁을 툭치면서 준상을 가리킨다.
상혁, 준상을 보면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시선과 부딪힌다.
준상, 대수롭지 않다는 듯 시선을 창 밖으로 돌린다.
상혁, 뭔가 찜찜하다.


S#13. 꽃담길 (저녁무렵)

유진과 상혁이 집에 돌아가고 있다.

유진 : 상혁아, 강준상 걔 좀 이상하지 않아?
상혁 : 왜, 청소시간 때문에?
유진 : 그것도 그렇고.... (상혁을 보며) 내 느낌엔..... 걔 방송반 든 거 너 때문인 것 같애.
상혁 : (피식 웃으며) 말도 안돼. 오늘 처음 봤는데?
유진 :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하긴..... 그렇지?

하면서 유진은 꽃밭 옆으로 만들어진 긴 담 위로 폴짝 올라간다.
평균대를 밟듯 비틀거리며 걷는 유진.
상혁 : 유진아, 불안하다. 내려 와.
유진 : 안돼. 안돼. 오늘은 꼭 끝까지 가야 돼.
상혁 : 열 발자욱도 못갈꺼면서.
유진 : 걱정마 오늘은 꼭 갈꺼야. 꼭! 하나, 둘, 셋, 넷... (하다가 비틀댄다)
상혁 : 야아!!! 조심해. (손을 내밀며) 유진아, 잡아.
유진 : (겨우 중심잡고 손잡으려다 장난스레 빼는) 니가 내 애인이야? 내가 왜 니 손을 잡니?
          난 특별한 사람한테만 잡아달랠거다 (다시 걷는) 다섯, 여섯..
상혁 : (머쓱하다)
유진 : 일곱, 여덟, 아홉, 열

꽃담길은 끝나고 유진은 깡총 내려온다.

유진 : 봤지! (웃으며 돌아서 팔랑 팔랑 걷는다)
상혁 : (유진 뒷모습 본다 이쁘고 좀 쓸쓸한)


S#14. 준상의 집 마당 (저녁)

준상이 대문을 열고 들어서다가 멈칫한다.
넓지만 손질이 잘 안되어있는 정원에 강미희가 앉아있다. 준상의 얼굴이 굳는다.

준상 : .....언제 오셨어요?
미희 : 좀 전에. 들어가자.

미희 몸을 일으켜 먼저 집안으로 들어간다. 뒤따라 들어가는 준상.


S#15. 준상의 집 거실 (저녁)

준상의 엄마(강미희)의 졸업연주회 사진이 크게 걸려있는 거실.
저녁을 먹고 있는 준상과 미희. 휑한 느낌이 든다.

준상 : 일본에 계실거라면서요.
미희 : 공연하기 전에 잠시 들어왔다. 너 어떻게 지내는지도 궁금하고....
준상 : ....언제 가실 거에요?
미희 : (시니컬하게) 니가 재촉하지 않아도 곧 갈거야. 내일 아침 비행기 예약해놨다.
준상 : ..... (좀 미안한 표정)
미희 : 그래, 니 소원대로 여기 오니까 좋니?
준상 : (대답하지 않는다.)
미희 : 너도 참 이상한 애다. 미국 가면 그만인데
          굳이 여기까지 와서 그 학교를 다니겠다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
준상 : 왜요? 엄마 모교잖아요.
미희 : (보는) !
준상 : 아버지하고 추억이 서려있는 엄마 모교요.
미희 : 누가 니 아버지야?
준상 : 누구죠? 제 아버지가?
미희 : (싸늘하게) 니 아버진 없다. 죽은사람이야.

미희와 준상의 팽팽한 긴장. 미희, 준상의 시선을 피하며 일어난다.

미희 : 어쨌든 이번 공연 끝나고 정리 되는대로 미국으로 갈거니까 그렇게 알아.


S#16. 준상의 방 (밤)

스탠드를 켠 채 준상이 앉아있다. 책 사이에서 가장자리가 반쯤 탄 흑백사진을 꺼내본다.
강미희의 모습은 불에 반쯤 탔지만 그 옆에 웃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온전하다.
준상, 남자의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거칠게 책을 덮어버린다.


S#17. 도서관 서가 (오후)

준상이 서가를 돌아다니고 있다.
문득 발길을 멈춘 준상이 손가락으로 쭉 따라가는 책은 제일고등학교 졸업앨범이다.
1966년의 졸업앨범을 꺼내보는 준상.
뭔가를 찾는 듯 열심히 종이를 넘기다 멈춘다.
졸업앨범 속 환하게 웃고 있는 19살 강미희의 모습.
준상은 열심히 그 반 남학생들의 사진을 살펴본다.
김대현, 남상준, 이종호, 정현수..... 빡빡머리 고등학생들의 사진들 중 하나에 눈길이 닿는다.
'김진우'라는 이름. 준상이 주머니에서 불에 탄 그 흑백사진을 꺼내 옆에 대본다.
사진 속의 남자와 앨범 속 김진우의 얼굴이 똑같다.


S#18. 대학교 전경 (오후)

S#19. 강의실 (오후)

계단식 대형강의실. 김진우가 강의를 하고 있다.
칠판에 복잡한 수학공식들을 적어가면서 문제를 풀어간다.
정신없이 공식을 베껴적으며 수업을 듣는 학생들 -

김진우 : ......어떤가... 풀만 하지?
학생들 : (야유한다.)
김진우 : (빙긋 웃으며)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여러분이 이 공식만 충실히 외워두면
              다변수함수의 미분 정도는 식은죽 먹기가 될테니까.
              자, 그럼 이번엔 예제를 풀어볼 시간인데..... 누가 풀어볼까?

학생들을 훑어보는 김진우. 학생들, 김진우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얼른 시선을 내리깐다.
김진우의 시선이 문득 멈춰진다. 준상이 강의실 구석에 앉아있다.
김진우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 준상.

김진우 : (준상을 가리키며) 거기 학생,
준상 : .......
김진우 : 그래, 학생이 나와서 한 번 풀어보지.

휴우-안도하는 학생들. 준상, 망설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을 내려간다.

김진우 : 공식을 이해한 건지 확인하려고 하는거니까 부담갖지 말고.

칠판 앞에 선 준상, 잠시 생각하다가 엄청난 속도로 문제를 풀어가기 시작한다.
점점 표정이 변하는 김진우. 교실 안은 쥐죽은 듯이 조용해진다. 놀란 표정의 대학생들.
김진우는 안경을 천천히 벗고 준상의 솔루션을 놀랍다는 듯이 쳐다본다.

김진우 : 이건 처음보는 공식인데.... 누가 만든 공식인지 물어봐도 되겠나?
준상 : .....누가 만든 게 중요합니까?
김진우 :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알아야.....
준상 : (분필을 딱 내려놓는다) 이건 그냥 제 방식대로 푼 겁니다.
김진우 : (믿기지 않는다) 아니, 자네 가 정말 이 공식을 만들었단 말인가?
준상 : (시선을 내리깐 채) .....교수님은 정해진 공식이란 게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김진우 : ......!
준상 : ......0과 1사이에 존재하는 무한개의 숫자만큼 답을 얻는 방법도 무한합니다.........
          공식이란 건 없습니다.

말을 잇지 못하는 김진우. 종이 울린다.

김진우 :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지.

학생들이 웅성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나간다. 나가려던 준상을 붙잡는 김진우.

김진우 : 학생, 이따가 괜찮으면 내 방에 잠깐 오지 않겠나? 내가 좀 물어보고 싶은게 있는데.....

준상, 대꾸하지 않고 나간다.


S#20. 김진우의 연구실 앞 (오후)

준상, 복도에서 들어갈까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계단을 내려오는 김진우의 목소리가 들린다.
조교와 이야기하면서 내려오는 김진우.
준상, 결심한 듯 다가가려고 하는데, 상혁이 갑자기 나타난다.

상혁 : (김진우를 향해) 아버지!
준상, 상혁을 보고는 얼른 몸을 숨긴다.

김진우(소리) : 상혁이 니가 왠일이냐?
상혁(소리) : 오늘 야간자습 없는 날이라 아버지랑 같이 들어가려구요.

김진우, 연구실 문 앞에서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러나 준상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숨어서 이야기를 엿듣고 있는 준상.

상혁 : 왜요? 누구 기다리세요?
김진우 : ......응? 아니다...


S#21. 상혁의 집 (밤)

상혁과 김진우 그리고 상혁의 엄마 박지영이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지영 : (진우를 보며) 잘 찾아봐요. 당신학생이 아니라면 다른 과 학생인지모르잖아요.
상혁 : 아버지가 말씀하시는거 보면 완전 천재네요. 천재.....
진우 : 천재라기보단.... 가르치는입장에선 선생을 긴장시키는 학생을 만났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할 수 있지. 오늘 그 학생이 그런 경우였어.
지영 : 상혁이, 너 아버지 말 잘 새겨둬. 너도 선생님들을 좀 긴장시켜보란 말이야.
상혁 : 아이, 엄마. 공부는 팔자에요, 팔자.
지영 : (어이가 없다) 누가 그런 말하데? 유진이니?
상혁 : (싱긋 웃으며) 용국이라고 있어요.
진우 : 틀린 말은 아니네. 원래 공부랑 연애는 팔자라고들 하지...(하더니 껄걸)
상혁 : 그쵸, 아버지. 전 그래서 공부는 방송으로 정했고 연애는 유진이로 결정봤습니다.
지영 : 공부는 상관없지만 유진이를 며느리 감으로선 생각해봐야겠는데....?
상혁 : 엄마, 생각 많이 해주세요. 이쁜 며느리다....생각 많이 해주세요.
진우 : (웃음을 거두고) 그러고보니 현수 기일이 며칠 안남았네.
상혁 : 유진이 아버지요?
진우 : 그래. 작년엔 바빠서 못갔는데 이번엔 꼭 가봐야지.
상혁 : (폼잡고) 장인 어르신 기일인데....저도 가봐야겠네요.
지영 : (도저히 못참겠다) 뭐라고? 여보, 도대체 얘가 누굴 닮아서 이렇게 넉살이 좋은거죠?

전체 웃는다. 단란한 가족 모습.


S#22. 상혁의 집 앞(밤)

창 밖으로 상혁 가족의 행복한 모습이 보인다. 어두운 골목길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준상.

S#23. 버스 정류장 (아침)

버스가 떠나려고 하는데 유진이 헐레벌떡 달려온다. 유진, "아저씨!!!!"하면서 달려온다.
유진이 소리치면서 달려오다가 버스를 향해 가방을 집어던지는 걸 보고 학생들이 와르르 웃는다.
버스 운전사는 놀래서 버스를 멈춘다. 준상도 그 속에 끼어서 보고 있다.
버스 문이 열리고 유진이 올라탄다.

기사 : 아니... 학생, 깡패야!!!
유진 : (겸연쩍어하며) 고맙습니다.

사람들, 키들거리며 웃고 유진은 뒷자리를 향해 다가온다.
유진, 뒷자리에 앉은 준상과 눈이 마주친다. 유진,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는다.


S#24. 버스 안 (오전)

준상, 버스가 멈춰서면 자리에서 일어난다.
준상, 자고 있는 유진을 깨울까 하다가 그냥 아이들과 함께 내린다.


S#25. 학교 버스 정류장 (오전)

준상, 떠나려는 버스 유리창을 손가락으로 탕 튕긴다.
유진, 놀라서 눈을 뜬다. 순간 버스가 출발한다.
준상이 걷고 있는데 잠시후 버스가 멈춰선다.
유진, "고맙습니다"하면서 내린다. 준상을 밀치고 허겁지겁 올라가는 유진.


S#26. 교문 앞 (아침)

가가멜이 지각생들을 잡아서 벌을 세우고 있다.
교문 앞 골목길에 숨어서 상황을 살피는 유진,
어떡하나 고심하는데 준상이 어슬렁거리면서 올라오는걸 본다.
준상이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골목길에서 팔 하나가 쑥 나오더니 준상을 끌어당긴다. 유진이다.

유진 :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 이리 좀 따라와.

유진, 가가멜의 눈을 피해 준상을 끌고 어딘가로 간다.


S#27. 학교 담 밑 (아침)

준상, 멀뚱히 유진을 내려다본다.

유진 : 내가 올라가서 너 잡아줄테니까 빨리 엎드려봐. 상부상조, 몰라?

준상, 어이없다는 듯 웃더니 등을 구부려 대준다.
유진은 치마를 입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씩씩하게 준상의 등을 밟고 올라선다.
준상, 슬쩍 고개를 돌리자,

유진 : 야! 고개들지 마!
준상 : 무거워서 돌아가지도 않아.
유진 : (흘겨본다)

펄쩍 담장 위로 올라간 유진, 준상에게 손을 내민다.

유진 : 강준상, 잡아줄테니까 올라와!

준상, 픽 웃더니 가방을 담장 안으로 던지고 가볍게 담을 뛰어넘는다.
담 위에서 눈을 둥그렇게 뜨고 보는 유진. 준상, 훌쩍 착지하고는 유진을 돌아본다.
유진, 내려가려고 하는데 생각보다 담이 높아서인지 내려가지 못하고 쩔쩔맨다.
준상, 유진에게 팔을 건넨다. (마치 허리를 안아서 내려주려는 것처럼)

준상 : 상부상조 하자며?
유진 : (차마 준상의 팔에 몸을 못맡긴다) 됐어!!!
준상 : 그래?

하더니 가방을 들고 앞서가기 시작한다.
유진, 어쩔 줄 몰라서 주위를 둘러본다. 이대로 담 위에 있을 수는 없다.....

유진 : 야! 강준상!!! 야아- (오라는 손짓)

준상, 돌아서서 다가온다. 준상, 손을 올려서 유진의 허리춤을 잡는다.
유진, 벽에서 발을 떼어 준상에게 몸을 실린다. 순간 "어...어"하며 바닥에 꽝 넘어지는 두 사람.
유진, 얼른 일어나서 수습을 한다. 챙피해서 얼굴이 화끈해진다.

유진 : (딴소리) 오늘 점심 방송해야 하는 거 알지? 늦지 말고 와. (하더니 냅다 뛴다)
준상 : 정유진!
유진 : (돌아보면)
준상 : 지퍼 열렸다.
유진 : (화끈! 놀라서 얼른 허리춤을 만진다.)
준상 : 가방 지퍼 말이야!
유진 : (돌아보며) 너!! ..정말!!!

얼른 수습하고는 뒤도 안돌아보고 씩씩대며 가는 유진.


S#28. 교실 (점심시간)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 도시락을 꺼내들고 삼삼오오 먹는 아이들.


S#29. 방송실 안 (점심시간)

유진이 시계를 보고 있다. 12시가 지났는데도 준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유진 : (기계를 만지며) 그럼 그렇지.... 니가 올 턱이 없지... 어디 두고보자, 강준상.
          (타이틀 음악이 뜬다) 안녕하세요, CHBS에서 점심 방송 시작합니다.
          오늘은 잠시 책임감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데요....


S#30. 학교 옥상 위 (같은 시간)

준상이 누워 있다. 얼굴에 책을 덮고 누워 있는 준상. 방송이 들린다.

유진(소리) : 오늘 전 방송을 같이 하기로 약속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가 안나타나는 바람에 전 점심도 못먹고 주린 배를 움켜쥐고
                   방송을 진행할 것 같아요.


S#31. 방송실 안 (같은 시간)

유진 : 누구라고 이름을 밝히진 않겠지만.... 이 방송을 듣고 있다면 (강조한다) 꼭 가슴에 새겨두기
          바래요. 자신의 작은 이기심이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요....


32. 옥상 위 (같은 시간)

유진(소리) : 어머? 제가 방송을 이용해서 사적인 감정을 풀었다구요? (애교스럽게) 아이, 좀 봐주세요.
                   그럼 첫 곡 들려 드릴께요. 애니 해슬렘이 부릅니다. "스틸 라이프"

음악이 흐른다. 준상의 얼굴은 책에 가리워져 있지만 입가는 웃고 있다.


S#33. 복도에서 방송실까지 (오후)

음악은 계속 나오고 있다. 빛이 들어오고 있는 어두운 복도를 준상이 걷고 있다.
준상, 방송실로 다가서는데.... 들어서려다가 문득 걸음을 멈춘다.
문틈으로 부스 안의 유진이 음악에 맞춰서 지휘하는 동작을 하느라 몸을 춤추듯이 움직이는게 보인다.
준상이 입가에 미소를 띄운 채 유진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는데,
음악에 취해있던 유진이 문가에 선 준상과 눈이 딱 마주친다.
당황해서 얼른 동작을 멈추고 자리에 털썩 앉는 유진. 준상도 못 본 척 방송실에 들어가 앉는다.
유진은 창피해서 부산하게 바쁜 척 레코드들을 들었다놨다 한다.
준상의 눈치를 보는데 눈이 마주치자 얼른 피하는 유진. 준상, 웃음을 감춘다.
스튜디오 유리창 너머에 앉은 준상, 유진이 가방과 함께 놓고 간 스케치북을 집어든다.
한 장 씩 넘겨가며 유진의 그림들을 보는 준상. 꽤 훌륭한 실력이다.
슬쩍 준상의 눈치를 보려고 고개를 든 유진, 준상이 그림을 보고 있는 걸 알고 당황한다.

유진(마이크) : (당황해서) 야, 그거 보지마...! (준상이 못들은 척 계속 넘기면)
                      강준상, 그거 보면 안된다니까...!

못들은 척 여전히 그림을 보는 준상, 유진 몰래 손으로 마이크 볼륨을 올려놓는다.

유진(마이크) : (벌떡 일어나며) 야!!!!!!


S#34. 교실 (같은 시간)

유진의 소리가 울린다. 열심히 밥을 먹던 아이들이 놀라서 일제히 스피커를 쳐다본다.
상혁과 용국의 눈이 마주친다. "사고났다" 하는 표정들. 후닥닥 일어난다.


S#35. 방송실 앞 복도 (같은 시간)

상혁과 용국이 뛰어오는데 유진이 스케치북 들고 씩씩대며 걸어오는 게 보인다.

상혁 : 유진아, 무슨 일이야?
유진 : (불그락푸르락) 몰라!!!

마주보는 상혁과 용국, 방송실 문을 열어본다.
판을 걸던 준상이 느긋하고 태연하게 돌아본다. 무슨 일 있었냐는 표정.


S#36. 복도 (오후)

쉬는 시간. 음악실로 가는 아이들 틈의 용국과 진숙.
진숙은 계속 손으로 피아노 치는 흉내를 내며 계이름을 외운다.

용국 : 진숙아, 아까 방송사고에 대해서 유진이가 아무말 안하데?
진숙 : (피아노 연습에만 몰두) 아니.... (중얼거린다) 도미파 솔... 도미파 솔....
용국 : 뭔가가 있었음에 틀림없어. 강준상은 계일생이고 정유진은 무일생이라 겉으로 보면 상극처럼
          보이겠지.... (진숙은 용국의 말에 쫑긋) 하지만.... 이런 상극이 더 무서운 거지.
진숙 : ... 상극이면 나쁜 거 아냐?
용국 : 아냐. 이런 상극은 무계합이 되니까 결국은 서로 좋아지는 형상이란 말이야.
          (혼잣말처럼) 이거 예감이 안좋은데 상혁이한테 말해줄까.....?
진숙 : 상혁이한테는 왜?
용국 : 몰라서 묻냐? 상혁이랑 유진이랑 좋아하잖아.
진숙 : 에이, 아냐. 유진이는 그냥 친구처럼 생각하던데?
용국 : 바보야, 친구가 애인되고 애인이 마누라 되는 거야. 지금은 비록 상혁이가 더 좋아하지만....
          여잔 자기 좋아하는 남자한테 넘어가게 되있어.... 두고 봐라.
진숙 : .... (고개를 끄덕끄덕)
용국 : (괜히 비장하게) 난 왜 이렇게 남의 미래가 잘 보이냐.... 이것도 나의 운명이겠지.....?
진숙 : (대뜸) 그럼 나 음악 실기 몇 점 맞을 것 같애?

용국, 진숙의 반짝거리는 눈을 보며 차마 말을 하지 못한다.


S#37. 음악실 (오후)

선생님 : 공진숙, 5점!!!

진숙이 피아노 앞에 앉아서 절망적인 표정이 된다.

진숙 : (아쉬운 듯) 선생님, 한번만 더 해볼께요....
선생님 : 됐어. 다음주에 다시 쳐. (출석부를 보며) 다음은.... 강준...상?

준상, 피아노로 다가가서 의자에 앉는다.

선생님 : 성자들의 행진. 오른손 왼손 같이! 준비이, 시작!

준상, 악보가 없는 피아노를 보며 가만히 앉아 있다. 유진은 그런 준상을 바라본다.

선생님(소리) : 너 뭐야? 연습 안했어? (준상이 말이 없자) 강준상!
유진 : (불쑥) 선생님! 강준상 전학왔는데요?
선생님 : ....그래? 진작에 말하지.... 좋아, 너도 다음주까지 연습해와. 그때도 못치면 진짜 빵점이야.
             알았어? 다음은, 김범상!!!

준상은 일어나서 자리로 들어간다. 유진, 준상과 눈이 마주치자 아무렇지 않은 척 시선을 돌린다.


S#38. 운동장 (체육시간 - 오후)

남자 아이들이 배구를 하고 있다. 코트에 둘러서서 구경하고 있는 여자아이들.
남자아이 하나가 상혁 쪽으로 공을 보낸다. "상혁아, 패스!"
그때 준상이 휙 끼어들어와 가로채서 강스파이크를 날린다.
여자1 : 야아.... 강준상, 스파이크 죽인다!!!
진숙 : 역시... 뭐니뭐니 해도 남자는 역시 힘이야. 채린아, 그렇지 않니?
채린 : (준상을 보며 좋으면서도) 글쎄.... 남잔 자고로 세 가지를 겸비해야 해.
진숙 : 그게 뭔데?
채린 : 여자에 대한 탐구정신, 개척정신.... 그리고....

하는데 갑자기 공이 채린 얼굴로 날아온다.
으악-! 거의 정면으로 맞을 뻔하는 순간, 준상이 손으로 팍 쳐내서 공을 살려낸다.

채린 : (준상을 쳐다보며) ..... 뭐니뭐니해도 기사도 정신이지. 지금처럼 말이야, 봤지?

유진과 아이들, 어이없다는 듯 채린을 본다.
계속해서 맹렬히 공격하는 준상.
그런데 계속해서 상혁에게 날아오는 공을 커트해서 자신이 공격하는 등 팀웍에는 신경쓰지 않는다.
"마이볼" 하며 상혁이 토스하려고 하는데 준상이 거칠게 밀고 들어와 공격하다가 상혁을 밀어뜨린다.
저만치 나가떨어지는 상혁. 얼른 상혁을 일으켜세우는 용국.

용국 : 상혁아 괜찮아?
상혁 : 어, 괜찮아. (상대편을 향해 손을 들며) 작전타임! 강준상, 너 너무하는 거 아냐?
준상 : 뭐가?
상혁 : 팀웍을 생각해야지. 너 혼자 다 쳐낸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준상 : 이기고 있잖아. 그럼 된 거 아냐?
상혁 : 넌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도 몰라?
준상 : (픽 웃더니) 누가 그래?
상혁 : (본다)
준상 : (비아냥거리듯) 책에서 그러디? 과정이 중요하다구? 범생인 할 수 없군.....
상혁 : (달려들며) 이 자식이....
준상 : (상혁은 치지 못한다) 쳐봐. 쳐보라구.... (비웃듯) 왜....? 사람을 때리면 안된다고 하니까
          못치겠냐? 범생이 같은 자식.....

하더니 공을 상혁의 앞에서 탕 쳐내고는 돌아서서 가버리는 준상.
아이들, 수군거린다. 유진은 멀어지는 준상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S#39. 수돗가 (오후)

유진, 주전자를 들고 수돗가로 가는데 준상이 세수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준상의 옆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는 유진.
유진, 힐끔거리며 준상을 본다. 망설이다가 말을 꺼내는 유진.

유진 : 강준상!
준상 : (본다) .......
유진 : 너, 김상혁한테 무슨 감정 있니?
준상 : ........
유진 : 내 느낌에는 니가 상혁이를 별로 안좋아하는 것 같은데......
          (과장되게) 내 친구라서가 아니라 상혁이 좋은 애야.
준상 : 그래서....?
유진 : 그래서라기 보단..... 뭐, 니 행동이 좀 지나쳤다는 얘기지.
준상 : (고개를 들며) 니들 둘.... 사귀냐?
유진 : (어이없다는 듯) 뭐?

준상, 물을 뚝뚝 흘리며 가버린다. 유진의 황당한 표정.


S#40. 하교길 (늦은 오후)

유진과 상혁이 학교를 빠져나가서 걷고 있다. 상혁은 좀 언짢아보이고 유진은 말한다.

유진 : 결과가 중요한 지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그래도 과정이 중요하다고 믿고 싶어하는
          니 마음이 소중한 거야. 난 그렇게 생각해.
상혁 : .... 유진아.
유진 : 응?
상혁 : 아, 아냐.
유진 : 왜.... 말해 봐. 뭔데... 응?
상혁 : .... 내가 그렇게 범생이 같아?
유진 : (푸하하 웃는다) 범생이 맞지. 좀 멋진 범생이....
상혁 : (언잖은척) 놀리지마. 난 심각하단 말야.
유진 : (상혁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어이고... 그러셔....?

상혁과 유진, 툭툭거린다. 상혁은 기분이 풀린 듯 유진과 즐겁게 장난친다.
학교를 내려가던 준상이 그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 이때 나타나는 채린.

채린 :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잘 어울리는 바퀴벌레 한 쌍 같지 않니?
준상 : (채린을 본다)
채린 : 쟤들... 진짜 웃기는 애들이야. 어려서부터 친구사이네....어쩌구하는데
          변명치고는 너무 유치하지 않아?
준상 : 변명이라니?
채린 : 저런 애들이야 뻔하지..... 서로 사귀면서 연막치는 거 아니겠어?

준상, 상혁과 유진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채린 : 난 저렇게 내숭 떠는 것보다는 솔직한 게 좋아.
준상 : ......?
채린 : 너, 나 좋아하지?
준상 : 뭐..?
채린 : 난 너같은 애들 잘 알아. 절대로 좋아한다는 말 먼저 못하지. 안그래?
          체육시간에 다 알아봤어. 니가 방송반 든 것도 나 때문에 그런 거잖아.
준상 : (실소)
채린 : (선심쓰듯) 좋아! 내가 사겨 줄께.
준상 : .......너, 참 재밌는 애구나.
채린 : .....?
준상 : 근데 연애소설만 쓰기에는 니 상상력이 아깝지 않니?

준상, 휭 가버린다. 부들부들 떠는 채린.


S#41. 유진의 집 (밤)

희진이 옆모습을 취한 채 포즈를 잡고 있다.

희진 : 언니, 나 진짜 목 아파. 그만 하면 안될까?
유진(소리) : 쫌만 더 있어봐. 다 되간단 말야.
희진 : (돌아보며) 오줌 마려운데....!

유진, 다가오더니 다시 희진의 얼굴을 원위치로 돌려놓는다.

유진 : 내가 니 숙제 해준 거 벌써 잊어버렸어? 또 움직이면 첨부터 다시 그릴 줄 알아. 알았어?

유진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고 희진은 울상이다. 이때 전화벨이 울린다.

희진 : (반색하며) 전화왔다!!!
유진 : 꼼짝말고 기다려.

전화를 받으러 가는데 희진, 도망가버린다. 피식 웃는 유진.

유진 : 여보세요? 엄마..!


S#42. 시장통 옷가게 (밤)

시장통에 있는 옷가게. 유진엄마가 시장통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아줌마 한 명과 실랑이를 하는 엄마.

엄마 : 아줌마 너무 하네. 바지 하나 사면서 이렇게 깎으면 남는거 하나도 없어요.
아줌마 : 아유,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딨어? 좀 깎아줘.
엄마 : 만팔천원은 주셔야 되요.
아줌마 : (억지로 만오천원을 쥐어주며) 나, 다음에 또 올게. 많이 파셔어?

휭하니 옷을 들고 가버리는 아줌마. 유진엄마, 붙잡지도 못한다.
휘유- 한숨을 쉬고 돌아서는데 유진이 애잔하게 웃으며 서 있다.

엄마 : (밝아지며) 왔어?
유진 : (옷보따리를 건네며) 많이 팔았어?
엄마 : (확인하며) 내가 챙겨갖고 나온다는 걸 깜빡 했지 뭐니?
유진 : 밥은, 먹었어?
엄마 : 먹었지.
유진 : (눈을 흘기며) 또 라면 시켜먹은거 아니지?
엄마 : (웃으며) 밥 먹었으니까 걱정말고 얼른 들어가.
유진 : 알았어. (가려다가 말고) 엄마, 추우니까 옷 튼튼히 입고.....
엄마 : (웃으며) 그래. 알았어. 희진이 기다리겠다. 어서가.

유진, 손을 흔들며 엄마한테서 멀어진다. 옷정리를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다가 걷기 시작하는 유진.


S#43. 시장통에서 번화한 술집 거리 (밤)

유진, 시장통에서 연결된 번화한 거리로 접어든다.
술집 네온들이 번쩍거리는 거리에는 술취한 사람들로 번잡한다. 유진이 가고 불쑥 유진을 잡는 손.

남자 : 아가씨, 어딜 가시나.....?
유진 : (놀라서) 왜 이러세요?


S#44. 분식집 (밤)

손님없는 분식집에서 혼자 라면을 먹고 일어서는 준상.

준상 : 얼마죠?

돈을 계산하고 나온다.


S#45. 유흥가 (밤)

준상이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유진의 목소리가 들린다.

유진(소리) : (다급하게) 이 손 놔요!!

준상이 골목길로 들어가보면, 유진이 술 취한 남자에게 손목을 잡힌 채 실랑이를 하고 있다.

남자 : 아가씨 같이 놀자니까? 나 나쁜 사람 아니야.
유진 : 빨리 이 손 안놓으시면 저 소리 지를 꺼에요.
남자 : 소리를 지르긴 왜 질러? 좋으면서, 안그래 아가씨?
준상 : 정유진!
유진 : (준상을 알아보고 놀란다)
준상 :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남자 : 넌 뭐야?
준상 : 손 좀 놓고 얘기하시죠.
남자 : 니가 애인이라도 돼? 엉?

남자, 준상을 향해 막무가내로 주먹을 날린다.
준상은 피해보다가 안되겠는지 남자에게 주먹을 한 대 날린다.
구석으로 나가 떨어지는 남자.

남자 : (입가의 피를 보고 흥분한다) 이런, 쓰발....!!

남자, 갑자기 옆에 놓인 맥주병을 들고 준상을 치려고 하는데
대롱대롱 팔뚝에 매달린 유진이 팔을 꽉 깨물어버린다. 으악! 비명을 지르는 남자.


S#46. 경찰서 (밤)

시끄러운 경찰서 분위기. 시끄럽게 싸우는 취객들과 여자들의 소리가 들린다.
준상과 유진은 구석자리에 앉아 있다. 준상과 싸운 남자는 옆에서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유진, 흘낏 준상을 보는데 입이 터져서 피가 묻어있다.

유진 : (어색하게 손수건을 내밀며 입가를 가리킨다.)
준상 : (손수건을 받아 닦는데 엉뚱한 곳을 닦는다.)
유진 : 아니, 거기 말고.... (손수건을 뺏어서 닦아주는데)
준상 : (어색한 듯 휙 피한다)
유진 : 가만 있어봐. (잘 닦아준다) 너... 싸움도 잘 못하던데 왜 그렇게 덤비고 그랬어....
          거기, 턱도 좀 닦아봐.
준상 : (아무 말 없이 닦는다.)
유진 : 어휴.. 어떡하지.... 큰일났다. 엄마가 알면 가만 안있을텐데...
          (준상을 보고) 나는 죽어도 우리 엄마 못부르니까 니네 부모님 오시라고 해. 응?

형사가 두 사람 앞에 털썩 앉는다.

유진 : 아저씨...! 저희가 잘못한 거 아니에요. 저 아저씨가 괜히 시비건거에요.
형사 : (서류로 머리를 콩 때리며) 시끄러! 얼른 니네 아버지나 불러. 아, 빨리!
유진 : (머리를 만지며 씨- 올려다본다) .....아버지 안계세요..... (유진을 보는 준상)
          엄마는 저기..... 일하시느라 바빠서 못 오실텐데......
형사 : 뭐야? (준상을 보고) 너는! 연락했어?
준상 : (대답 없이 가만히 있다.)
형사 : 야 이놈아! 시간 없어! (전화기를 밀어주며) 얼른 전화해서 나오시라고 해.
준상 : .......
형사 : (준상에게) 허! 이 자식 봐라! 귓구멍이 막혔나. 한국말 몰라?
          (진술서의 보호자란을 가리키며) 보.호.자! 아.버.지 부르라니까?
준상 : .....아버지 없어요.

유진, 놀란 눈으로 준상을 바라본다. 준상, 유진의 놀란 시선을 외면한다.


S#47. 경찰서 밖 (밤)

유진과 준상이 나온다. 두 사람은 거리를 터벅터벅 걷는다. 유진, 경찰서를 힐끔대며-

유진 : (혼잣말) 휘유.....별일이 다 있네....
준상 : .....
유진 : (앞장서며) 가자. 약이라도 발라야지.
준상 : 됐어.
유진 : 거울이나 보고 그런 소리해. 어? 약국 있다. 잠깐만 있어. 약 사가지고 올게.

하면서 뛰어서 약국으로 들어간다. 준상, 유진의 모습을 보다가 그냥 혼자서 걷기 시작한다.
준상이 걷고 있는데 멀리 뒤에서 유진이 약국문을 열고 나오는게 보인다. 유진이 다다다 뛰어온다.

유진 : (준상을 탁 치며) 야!!! 약도 안바르고 어딜 가?


S#48. 공원 벤치 (밤)

유진이 준상 얼굴에 마지막으로 반창고를 붙여주고 있다.

유진 : (걱정스럽게) 흉지지 않아야 할텐데......
준상 : (어색한 듯) 됐어. (한참후) 넌 괜찮아?
유진 : 응. (목을 가리키며) 파스 붙였잖아.

두 사람, 어색하게 벤치에 앉아 있다.

유진 : ... 너도 아버지 없는 줄은 몰랐어...... 우리 아버진 병으로 돌아가셨는데.... 너희 아버진?
준상 : .....
유진,준상 다시 머쓱 앉아있다.
유진.준상 : (같이) 김상혁...
유진 : ?
준상 : (잠시 그러다 불쑥) 너 김상혁 좋아하냐?
유진 : ! (새침) 그얘기 하려고 했어. 나하고 상혁이 아무사이도 아니라고. 우린 친구야.
          아버지끼리도 친구였구
준상 : (본다) 상혁이..... 아버지하고 너희 아버지?
유진 : (끄덕) 두분다 우리 학교 선배야.
준상 : 너희...아버지도?
유진 : (본다) ? 너 김진우 교수님이 우리학교 다닌건 알고 있었어?
준상 : 어...아냐. 아무것도 아니야
유진 : (준상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
준상 : (일어나며) 가자. 늦었어.

두 사람, 일어나서 걷기 시작한다. 유진은 준상을 계속 힐끔거리며 본다.
유진 : (호기심 발동) 너 솔직히 말해. 서울에서 사고치고 전학온 거 아냐?
준상 : (피식 웃는다)
유진 : 아냐? .....그게 아니면 왜 왔어?
준상 : (가만히 있다가)......누구 찾으러.
유진 : (예상치 못한 대답이다) 누-구?
준상 : ....그런 얘기 할 정도로 친하지 않아.
유진 : (뜨악하지만 참는다) 그래... 그렇겠지..... (한참 가다가) 야, 강준상 오늘 일....
준상 : 고맙다는 말 안해도 돼. 너 아니었어도 그랬을 거야.
유진 : 뭐???
준상 : 먼저 간다. 잘 가.

준상, 앞서 걷기 시작한다. 유진, 기가 막힌 듯 준상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준상, 멈춰서있는 유진에게서 점점 멀어지는데 뒤에서 유진이 부른다.

유진 : 야, 강준상!
준상 : (몸을 돌린다)
유진 : (약을 던지며) 약이나 똑바로 발라. 하루 세 번씩, 잊어먹지 말고. 꼭 발라!

유진, 휙 돌아서 씩씩대며 간다. 준상, 자신의 손에 들린 약봉투를 바라든다.
준상, 멀어지는 유진을 보며 옅게 웃는다.


S#49. 등교길 (오전)

아이들이 우르르 학교로 들어서고 있다.
준상과 유진이 들어오는데 서로 마주친다. 서로의 얼굴에 붙어 있는 반창고
두 사람은 피식 웃는다.


S#50. 교실 (오전)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
목에 파스를 붙인 유진이 앉아서 가방을 여는데 유진을 본 상혁이 다가온다.

상혁 : 유진아, 어제 어디 갔었어?
유진 : 어?
상혁 : 물리 숙제 때문에 계속 전화했는데 희진이가 받더라?
유진 : (당황) 어.... 잠깐 엄마 심부름 나갔을 때 했나보지...?
상혁 : (유진의 목에 붙은 파스를 보고) 너 왜 그래? 어디 다쳤니?
유진 : (곁눈길로 준상을 보고) 으응..... 오래간만에 운동 좀 하려다가 삐끗했지 뭐야....
채린 : (준상에게) 어, 강준상? 너, 얼굴이 왜 그래? 어디서 넘어졌어? 많이 다친거 아냐?
고개를 돌려 준상을 본 상혁, 준상의 얼굴에도 반창고가 붙어있다.
준상, 놀라서 자신을 바라보는 상혁의 눈길을 직시한다.

채린 : (유진을 보고) 유진이 넌 또 왜 그래? (싸잡아 비아냥거리는 느낌) 이상한데?
          니들 어제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냐?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는 상혁의 눈에 의아한 빛이 서린다.
유진과 준상은 서로의 얼굴에 난 반창고를 보면서 알 듯 모를 듯 미소를 짓는다.


S#51. 쉬는 시간 (오후)

진숙은 책상 위에 종이 피아노를 펼쳐놓고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다.

진숙 : 오른 손 따로 왼손 따로하면 되는데 왜 같이 하면 안되지?
용국 : (불쌍한 듯) 애쓰지 마라. 이미 점수는 결정났다....(점보는 시늉)
진숙 : (용국 휙 보며) 보여? 보이니? 또 5점은 아니겠지?
용국 : (곤란한 듯) 음... 그냥 피아노가 니 인생의 오점이라고 생각해라.
진숙 : 뭐어?!

유진, 진숙을 보고 웃다가 갑자기 구석에 있는 준상을 바라본다. 다가가는 유진.

유진 : .... 강준상, 나 좀 따라올래?
준상 : (유진을 멀뚱하니 올려다본다)


S#52. 음악실 (오후)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유진과 준상.

유진 : 자, 이렇게 손을 얹어봐. (준상의 손을 피아노 위에 얹어주며) 해봐. 손은 계란을 쥔 것처럼
          오무려야해. 손목도 세우고.
준상 : ......지금 뭐하는거야?
유진 : 보면 몰라? 피아노 가르쳐주고 있잖아.
준상 : (본다)
유진 : (약간 어색) 저번에 니가 나 도와줬잖아.......
준상 : 그래서...?
유진 : 빚갚는거야. 내가 또 빚지고는 못사는 성격이거든.
준상 : (픽 웃는다)
유진 : (개의치 않고) 음악선생님이 말로는 빵점 준다고 했지만 노력한 성의만 보이면 괜찮을거야.
          자 빨리 손 얹고..... 손톱이 보이면 안돼. (성자들의 행진을 신나게 친다) 어때, 쉽지? 한 번 해봐.

열심히 피아노를 치는 유진의 모습이 귀엽다.

유진 : (같은 부분을 계속 반복해서 치며) 이 다음에 뭐더라....? (혀를 쏙 내민다) 까먹었다.

준상이 오른손을 내밀어 유진이 막혔던 부분의 멜로디를 쳐준다.
부드럽고 유려하게 흘러나오는 소리.
유진의 눈이 동그래진다.

유진 : 야! 너 피아노 못 친다고 했잖아!
준상 : 못친다는 말은 안했어.
유진 : (기가막힌다.)

준상, 피아노로 다른 곡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아주 맑고 아름다운 멜로디의 곡이다.
점점 준상이 해석한 방식대로 풍부하고 아름답게 변주되기 시작한다.
놀랍게 보던 유진은 이제 음악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 잠시후 준상의 연주가 끝난다.

유진 : (감탄하며) 너 진짜 잘 치는구나.... 근데 그 곡 이름이 뭐니?

준상, 일어나서 창가로 간다. 유진은 혼자서 준상의 친 곡에서 기억나는 멜로디를 뚱땅거려본다.

준상 : ...."처음"

준상의 눈에 상혁의 모습이 들어온다. 복도에서 진숙에게 유진을 못봤냐고 묻는 상혁.
준상의 눈빛이 묘하게 빛난다.

준상 : (대답하지 않고) 정유진, 너 다른 걸로 빚 갚지 않을래?


S#53. 복도 (오후)

진숙과 이야기하던 상혁, 고개를 돌리는데 유진이 보인다.
유진을 부르려다가 멈칫하는 상혁, 유진과 준상이 함께 걸어가고 있다.
그때 상혁은 준상과 눈이 마주친다. 준상은 시선을 돌리고 유진과 함께 어디론가 가버린다.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히는 상혁.


S#54. 정문 근처 (오후)

유진, 나무 뒤에 숨어서 정문의 수위 아저씨를 살펴본다. 겁난다는 눈으로 준상을 본다.

유진 : 꼭 이 방법 밖에 없니?
준상 : 빚 갚는다며?
유진 : 좋아 좋아! 해보자구, 어디..... 빚갚기 힘드네, 정말....

유진은 수위 아저씨 눈을 피해 담을 넘으려고 하는데
준상은 그냥 척척척 교문 쪽으로 걸어간다.
유진, 놀라서 준상을 부르다가 자기 목소리에 더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잠시후 교문 앞 수위 아저씨와 얘기하던 준상이 유진을 향해 오라는 듯 손을 흔든다.


S#55. 정문 앞 거리 (오후)

교문을 빠져나오는 두 사람.
유진은 멀어지는 학교와 준상을 번갈아 바라본다. 어떻게 나왔는지... 신기한 얼굴.

유진 : 야, 뭐라고 했는데? 뭐라고 했길래 아저씨가 그냥 보내주니?
준상 : 학교 그만 뒀다고 했어.
유진 : (황당해서) 뭐? 그럼 나는?


S#56. 버스 정류장 (오후)

준상, 유진이 버스 정류장에 서있다. 버스들이 왔다가 떠난다.

유진 : 어디 가?
준상 : ......
유진 : 어디 가는건데?

버스가 도착하자 준상이 올라탄다. 얼른 뒤쫓아 버스에 오르는 유진.


S#57. 버스 안 (오후)

준상과 유진이 뒷자리에 앉아 있다.
유진은 춘천의 풍광에 새삼스럽게 감탄한 얼굴이다.

유진 : 와아... 근사하다.

유진, 턱을 괸 채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호수며 나무들을 바라본다.

유진 : (혼잣말) ....좋다.... 그러고 보면 난 왜 하루만 학교를 빠져도 큰일난다고 생각했을까.......

준상이 유진의 얼굴을 슬쩍 본다. 창밖에서 보여지는 두사람의 얼굴.


S#58. 몽타쥬 (오후에서 저녁까지)

-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는 두 사람.
- 배를 타고 들어가면서 보이는 호수의 풍경들.
- 호수 주변 잔디밭을 걷는 두 사람.
- 준상이 잔디밭에 벌렁 눕는다. 유진이 황당해서 들여다보면 준상은 잠든 것처럼 보인다.
- 유진이 잔디밭에서 눈을 뜨면 준상은 보이지 않는다.
   놀라서 둘러보면 준상은 저 멀리 오리배를 타고 있다.
- 준상이 오리배에 앉아 있는데 유진이 오리배를 타고 다가온다. 두 사람, 수평선을 향해 달려간다.


S#59. 다른 꽃담길 (저녁)

유진과 준상이 길을 걷고 있다. 유진, 준상을 보더니 피식 웃는다. 준상, 유진을 본다.

준상 : 왜....?
유진 : 그냥.... 재밌어서.
준상 : 뭐가?
유진 : 나 첨에 너 무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잘 웃지도 않고 맨날 혼자 다니구...
          사회에 불만이 많은 앤 줄 알았어.
준상 : 뭐? (하더니 기가 막힌 듯 웃는다.)

유진은 걷다가 앞에 펼쳐진 나무 위로 무의식적으로 또 폴짝 올라간다.

유진 : (비틀비틀 걸으며) 내가 볼 때 너한텐 친구가 필요해.
          애들하고 친하게 지내서 나쁠 거 없잖아. 안그래?
준상 : 그런 거 필요 없어.
유진 : (아랑곳 않고) 내가 친구 만드는 거 알려줄까? (멈춰서서 준상을 보며) 무지 쉬워.
          서로 한 발자국만 다가서면 되는 거야. 그렇다고 한 사람만 다가서면 안 되고...
          (걷기 시작하며) 이렇게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차곡차곡 쌓여야 친구가 되는 거지...

준상 할말 없는지 픽 웃으며 따라간다.
유진도 웃으면서 다시 " 오른발, 왼발..." 하면서 걷다가 비틀대더니 간신히 중심을 잡는다.

준상 : (손을 내민다) 잡아.
유진 : (망설이는 눈빛)
준상 : 한발자국씩 다가서는거라며?

준상 웃으면서 유진 바라본다. 유진, 쑥스러운 듯 준상 손을 잡는다.


S#60. 호숫가 (저녁)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호숫가를 걷고 있는 두 사람.
유진이 몇 걸음 떨어져 걷고 있다.

유진 : 너, 맨날 학교 빠지면 이러고 다녔어? 낮잠이나 자고.... 아무 버스나 타고 돌아다니고....?
준상 : 너야 말로 맨날 버스에서 잠만 자고 넌 왜 그렇게 잠이 많아?
유진 : (궁색하지만) 꿈꾸고 싶어서 그런다. 왜?
준상 : 니 꿈이 뭔데?
유진 : 뭘거같애?
준상 : (놀리듯) 그림 실력으로 봐서는.... 화가는 아닐 것 같고....
유진 : (의외로 순순히) ......맞아. 아빠처럼 그릴 수 없으니까 화가는 못될거야.
준상 : (유진을 본다)
유진 : (배시시 웃으며) 우리 아빠 화가셨거든. 아빠가 좋은 그림은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건다고 그랬다....
          근데 내 그림들은 전부 벙어리야. (준상을 보며) ...화가가 되긴 힘들겠지?
준상 : ..........
유진 : 넌 꿈이 뭐야?
준상 : 글쎄.... (유진을 보며) 나도 잠이나 잘까? 꿈 좀 꾸게?
유진 : (피-웃는다.) .....근데..... 찾으려던 사람은 찾았어?
준상 : ....응.
유진 : 누군데?
준상 : (망설이다가) ......아버지.
유진 : (놀라서 준상을 바라본다.) 돌아가신 거 아니었어?
준상 : ........
유진 : (사실을 짐작하는) ........만나보니까 어때?
준상 : 모르겠어..... 처음엔 그냥 아무런 감정도 없었어.
          어떤 사람인지..... 내가 그 사람의 무얼 닮았는지.... 그냥 궁금했을 뿐인데.....
유진 : ....그런데....?
준상 : 글쎄.... 날 전혀 기억 못하는거처럼 보이니까 기억해 줬더라면 좋았을텐데...
유진 : (보면)
준상 : (피식) 역시 난 그 사람이 미운건가?
유진 : 미워해도.... 아버지가 있다는 건 좋은거야...... 살아있다면.

준상, 유진을 돌아본다. 호수를 바라보는 유진이 왠지 슬프고 예뻐보인다.
준상이 돌멩이 하나를 휙 던져 물수제비를 뜬다. 유진도 돌멩이를 던져보지만 풍덩 그냥 빠진다.


S#61. 선착장 근처 (오후)

뿌우-하고 출발을 알리는 뱃소리가 들린다. 멀리서 들리는 소리, "오늘 마지막 뱁니다!"
노을지는 호수가,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뛰어오는 두 사람의 모습.


S#62. 유진네 집 근처 (밤)

집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는 유진과 준상. 유진의 집 앞에 상혁이 서 있다.

유진 : 상혁아.....!
상혁 : (유진의 가방을 건네며) 가방....챙겨왔어. 빠진 거 있나 봐.
          보충 수업 프린트 나눠준거는 내가 넣었으니까 확인해보고.
유진 : 저기... 오늘....
상혁 : (아무렇지도 않게) 별 일 없어서 다행이다. 무슨 일 생긴 줄 알았거든.
          (준상을 보며) 유진이랑 같이 나간 줄 알았다면 니 것도 가져왔을 텐데....

상혁과 팽팽하게 눈을 마주치는 준상.
그때 자동차 라이트 불빛. 김진우가 차에서 내린다. 놀라는 아이들. 얼굴이 굳어지는 준상.

상혁 : 어.... 아버지...!
김진우 : 상혁이도 와있었구나? (유진을 보며) 잘 지냈니? 제사 준비하느라 고생많았겠구나.
유진 : (깜짝 놀라며) ...맞다......! 오늘 아빠 제산데.... 어떡하지 엄마한테 혼나겠다!
          아저씨 저 먼저 들어갈게요. (들어가다가 준상을 돌아보며) 준상아, 잘가! 내일 보자!
유진은 후닥닥 집안으로 들어간다. 준상과 상혁 그리고 김진우.
준상은 인사없이 몸을 돌린다. 준상의 뒷모습을 유심히 보는 김진우.

진우 : .....너희 반 친구..니?
상혁 : ........네...... 들어가요, 아버지.
진우 : ...그래...

유진의 집으로 들어가는 상혁과 진우. 김진우, 다시 한 번 준상을 돌아본다. 어디서 봤을까...?


S#63. 유진의 집 부엌 (밤)

유진이 음식 준비를 하는 엄마 옆에 얼른 선다. 부산하게 뭔가 일을 하는 유진.

엄마 : 너는 정신이 있는 애니, 없는 애니? 이제 오면 어떡해?
유진 : 엄마, 죄송!!
엄마 : (유진을 흘겨보며) 너, 사실대로 말해. 왜 늦었어?
유진 : 어? 어......
엄마 : (유진을 보며) 엄마, 거짓말 탐지기인거 알지?
유진 : (엄마 눈치를 보고) 사실대로 말하면 용서해줄거야?
엄마 : 말하는 거 들어보구.
유진 : (쑥스럽게) 나 있지.......데이트했다?
엄마 : (심드렁) 누구, 상혁이하고?
유진 : 엄마아! 걘 친구지. 친구랑 데이트하는거 봤어?
엄마 : (놀라서) 그럼 누구? 누군데?
유진 : (그릇을 챙겨들고) ......있어.

눈이 휘둥그레져서 유진을 돌아보는 엄마.


S#64. 유진의 집 거실 (밤)

거실에 차려져 있는 제사상. 가운데 놓여져있는 유진 아빠의 영정 사진.
유진이 절을 한다. 애틋하게 이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와 김진우, 상혁.


S#65. 놀이터 (밤)

어두운 놀이터에 혼자 앉아있는 준상. 담배에 불을 붙인다.
후- 연기를 내뱉는다. 지갑에서 사진을 꺼내보는 준상.
강미희와 김진우의 사진.

S#66. 엄마방 (밤)

혼자 앉아 앨범을 보고 있는 희진. 그저 그렇고 평범한 사진들이 지나간다.
그때 유진이 방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다.

유진 : 희진아, 제사 끝났다. 뭐하고 있었어?
희진 : 아빠 사진 보고 있었어.
유진 : (와서 희진의 어깨너머로 앨범을 본다.)
희진 : (심각하게) 언니, 근데 이 아줌마 뭔데 우리 아빠 팔짱을 끼고 있어?
유진 : (놀리듯) 아빠 애인이다, 왜?
희진 : (울 듯) 정말?
유진 : (웃으며) 상혁이네 아저씨랑 다 같이 고등학교 친구였데. 됐지? 자, 밥먹으러 가자.

희진, 좋아서 얼른 앨범을 내려놓고 나간다. 희진이 내려놓은 앨범으로 카메라가 들어가면-
준상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흑백 사진.
김진우와 강미희 옆에 한 명의 남자가 더 있다. 유진의 아버지 정현수.
그리고 강미희는 정현수의 팔짱을 끼고 있다. 사진을 클로즈업하며.


S#67. 놀이터

공원에서 보고 있는 준상의 불타버린 사진이 겹친다.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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