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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대본

[학교2] 06 - 나만 시작한다면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06.05.27|조회수695 목록 댓글 0

[학교2] 06 - 나만 시작한다면











씬1-1. 학교 근처 길 (이른 아침)


마을버스가 정류장에 서면 내리는 유미. 시계를 보고 얼른 뛰어간다.



씬1-2. 학교 근처 꽃집 (이른 아침)


꽃가게에서 꽃을 고르고 있는 유미. 후리지아 한다발을 사들고 나온다.

향기를 맡아보며 길을 재촉하는 유미.



씬1-3. 교정일각 (이른 아침)


아직은 한산한 길. 저만치 길의 끝에서 유미가 뛰어오고 있다. 한 손엔 후리지아 꽃 한다발을 들고 있다.

그 생기있는 모습이 아침 공기 속에 신선해보이고.

어쩐 일인지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서는 유미. 잠시 그대로 서있다가... 귀엽게 엣취! 재채기 하고는 다시 뛰기 시작한다.

그 위로 타이틀.



씬2. 2학년 5반 교실 (D)


텅빈 교실. 뒷문 드르륵 열리고 뛰어 들어오는,


유미 : 애라야 미안,


하다가 보면 아무도 없고 정연이 이어폰을 낀채 책을 보고 있다.

유미, 정연에게 다가가 자기 자리에 앉으며,


유미 : (툭치며) 정연아?


조금 놀라며 그제서야 이어폰을 빼며 유미를 보는 정연. 어쩐지 안색이 창백하고.

공부 중이었는지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문제집과 연습장.


정연 : 어, 유미 왔구나!

유미 : 혹시 애라 못봤니?

정연 : 애라? 아니. 왜?

유미 : 기집애, 주번 늦지말라구 잔소리 실컷 하더니...

정연 : (시계보며) 니가 너무 빨리 온거 아니니? 아직 애라 오려면 먼거 같은데?

유미 : 잉? (시계보고는 정연이 시계를 본다) 아휴! 이 밥통! 에이, 잠이나 더 자고 나올걸.

         근데, 넌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정연의 책상 위 보며) 벌써 시험 준비 하는거야? 아직 시험 볼려면 멀었는데...

정연 : 아냐. 그냥 일찍 깨졌어.

유미 : (정연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정연아... 너 어디 아픈거 아냐? 얼굴이 창백해.

정연 : (조금 웃으며) 그냥 가벼운 몸살기야. 꽃 냄새 좋은데?

유미 : 어? (퍼뜩 꽃 내려보며) 어, 맞다! 시들기 전에 갖다놔야 하는데. (튕겨져 일어나는)


정연 피식 웃고는 다시 연습장에 영어단어 쓰기 시작한다. 두통이 있는지 잠시 멈추고 얼굴 찡그려지는...



씬3. 야외 세면대 (D)


노래 흥얼거리며 꽃병 씻고 있는 유미. 볼륨을 잔뜩 올려 놨는지 이어폰에서 음악소리 새어나오고 있다.

누군가 절뚝이며 다가와 물 틀어놓고 세수하기 시작한다.

전혀 모르는 체 세면대에 꽃 펼쳐 놓고 가지 골라내던 유미. 어느순간 그 상태로 하얗게 굳는다.

노란 후리지아 꽃 사이로 흘러 내려가는 핏물... 유미 하얗게 질려 손으로 입을 막으며 옆을 돌아본다.

세면대에 고개 박고 피 닦아내고 있던 한이 이쪽을 돌아본다. 아직 이마에서 흐르는 피...

유미 너무 놀라 아무 말도 못하는데.

어느순간 체육복으로 이마를 누르며 수돗물 잠그고 가는 한.


유미 : (그제서야 겨우 입 떨어지며 멍하게) 피...다....



씬4. 2학년 5반 교실 (D)


정연 연습장에 수학문제 풀고 있고, 그런 정연을 뭔가 애원하는 눈빛으로 보고 있는 애라.


정연 : (시선 연습장에 둔 채) 아무리 불쌍한 척 해두 소용없어.

애라 : 아우 야아. 딱 한 번만. 응?

유미 : (털어온 칠판 지우개 놓고 와서 앉으며) 왜 그래? 뭔데?

지민 : (웃으며) 영작숙제. 정연이꺼 좀 베끼자구 저런다.

유미 : 영작숙제? 나 그거 해왔는데. 내꺼 빌려줄까? (노트 꺼내려는데)

애라 : (무시) 니껀 됐어. 정연아, 한번만...응? 응?

유미 : ...(무안해져서 노트 집어 넣는)

정연 : (펜 딱 내려놓으며) 애라야.

애라 : (흠칫해서) 어?

정연 : 내 말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구 들어.

애라 : (기죽어) 뭔데에...

정연 : (타이르듯 어른스럽게) 너 지금까지 수행평가 점수 스스루 해결한 적 있어?

         독후감은 성제 점수, 영작은 내 점수, 미술은 지민이 점수... 여기 저기 점수 꿔다가 내신 관리하는 거,

         그거 버릇 들면 나중엔 진짜 아무것두 혼자 할 수 없게 돼.

애라 : (몰래 입 삐죽이는데)

정연 : (노트 주며) 이번 한 번 뿐이야. 똑같이 베껴내면 둘 다 점수 깎이니까 뒤져봐서 옛날꺼 중에 하나 베껴.

애라 : (환해지며) 고마워. (신나서 숙제 베끼기 시작하는데)


드르륵 열리는 문. 애라 돌아 보면 이마에 반창고 부치고 들어오는 한.


애라 : 어머,어머, 쟤 또 왜 저래?


아이들 다 돌아본다.

한, 자리로 가더니 지친 듯 털썩 엎드려 잔다. 혜원 그런 한을 흥미롭게 본다.


지민 : 다쳤나?

애라 : (툭) 어디서 쌈질 했겠지 뭐.

지민 : 니가 재 싸우는거 봤니? 왜 덮어놓구 그래.

애라 : 옆에 앉은 애들 얘기가 그래. 밤마다 어디가서 뭘 하는지 아침마다 파스 냄새가 진동을 하구, 가끔 붕대두 감구 온대더라.

유미 : ... (안타깝게 보는)

정연 : 재두 힘들겠지. 그대루만 했으면 재 실력에 이 대학 저 대학에서 스카웃 제의가 쇄도했을텐데.

애라 : 내 말이 그 말이다. 득점 관리는 그렇게 잘하던 애가 성적관리는 왜 도통 안하나 몰라.

         어짜피 이젠 성적으루 대학 가야될텐데.

유미 : ...

애라 : 맨날 숙제두 안해오구. 수업두 안들어 오구. 하긴... 목표를 상실했으니 학교 다닐 맛이 뭐 있겠어. 그냥 견디는 거지.

유미 : (순간 노트 하나 꺼내더니 자기 영작 노트 펼쳐놓고 베끼기 시작한다)

애라 : ? (해서 유미 보며) 너 숙제 해왔다며?

유미 : (말없이 열심히 적기만)



씬5. 학교 외경 (D)


명교감 : (E) 기말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씬6. 교무실 (D)


교무회의 시간.


명교감 : 가능한한 시험범위 빨리 알려 주셔서 학생들이 미리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신경 좀 써주시고,

            저번에 본 모의고사 성적표도 나왔고 하니 이번주 부터 개인면담 들어가두룩 하세요.

재하 : (혼자만 씩씩하게) 예. (하다가) ? (둘러보면 썰렁하다)

명교감 : (한심해서) 이선생님.

재하 : 예?

명교감 : 이제 웬만하면 이학년 꼴등자리 다른 반에 좀 넘겨주시는게 어떻겠습니까? 옆에서 지켜보기 아주 지루해 죽겠습니다.

재하 : (넉살좋게) 하하. 애들이랑 의논 좀 해보겠습니다.

명교감 : (못마땅하게 보며) 애들 좀 잡으세요. 면학 분위기 조성에 힘 좀 쓰시라구요. 이상 회의 끝입니다. (나가면)

재하 : (벌써 잊은 듯 콧노래 흥얼거리며 책상으로 가고)

일평 : (보며) 낄낄. 가만 보면 말야, 이선생이랑 텔레토비랑 닮은데가 있어.

재하 : 어이. 무슨 말씀이세요. 그 뚱땡이랑 제가 어디가 비슷합니까?

일평 : 아, 그렇잖아? 5반이 꼴등을 해두 아이 좋아, 문제를 일으켜두 아이 좋아.

교사들 : (깔깔 웃고)

재하 : 하하! 바로 그게 제 인생 철학 아닙니까? 전요, 애들에게 째째하게 성적 운운하고 싶지 않습니다.

         니 인생은 너의 것! 니 꿈을 펼쳐라!

유란 : 학부모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껄요?

일평 : 미리미리 준비해 두라구. 정년단축에, 월급삭감에, 교사들 사기가 땅바닥에 헤딩한 이 마당에,

         아 어떻게 알어? 이번엔 성과급제 도입한다구 난리칠지.

광도 : 그럼 완전 영업사원되는거지 뭐.

재하 : (교무수첩 챙겨 들고 일어나며) 하하, 그럴리야 있겠습니까?



씬7. 2학년 5반 교실 (D)


창백해져서 책상에 엎드려 있는 정연.

지민, 애라, 유미 걱정스럽게 정연을 보고 있다.


지민 : 정말 괜찮겠어?

정연 : 괜찮아. 약 먹었는데 뭐.


하는데, 재하 들어오고 우당탕탕 자리 찾아 앉는 아이들.

지민 일어나서 경례하고.


재하 : 자 내일부터 선생님이 너희들과 찐한 데이트를 한 번 해볼까한다. 이름하여 성.적.면.담.

아이들 : 아으으...

재하 : (책상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앞에 성적이란 두 글자를 지우고 나면 면담, 즉 담담하게 얼굴이나 보자 뭐 그런 얘기다.

아이들 : (웃는다)

재하 : 자 그럼 그렇게들 알고, (돌아서다가) ? 정연이 어디 아프니?

정연 : (자세 바로 하며) ...아니예요.

재하 : 아닌게 아닌거 같은데? 어디 봐봐. (하며 이마 짚어본다)

아이들 : 와우우...! 아흐! (환호성 보내는)

재하 : 차식들, 무지하게 질투하는구만. (정연에게) 건강해라 건강. 건강이 최고야 임마.

정연 : (미소) 네에...

재하 : (나가며) 자 이상! 인사는 생략한다.

유미 : 이한두 아픈데...

애라 : (어이없어 보는)

유미 : 엣취! (이마 짚어보며) 나두.... 아픈거 같애...

애라 : 쯧쯧쯧. 난 이한 보다 니가 더 불쌍하다. 이한은 그래두 쌍심지 켜구 관심갖는 박광도라두 있지.

유미 : (코 훌쩍이는 모습 위로)

정희 : (E) 원래 학교라는 데가 그래.



씬8. 교무실 (D)


머그잔 들고 오는 민주, 정희.

민주, 유란에게 한 잔 건네며 자리에 앉는다.


정희 : (앉으며) 사고를 친다거나 성적이 뛰어나지 않으면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 곳이거든.

유란 : 한계야 한계. 교사 일인당 책임져야 할 애들이 너무 많아.

민주 : 그럼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애들은 관심에서 조금은 빗겨나는거네요.

유란 : 믿는거지. (민주 보고 웃으며) 같은 말이라두 그렇게 좀 해주라.

민주 : 그런 애들두 고민이 많을텐데... 주로 이름보단 번호로 많이 불리구, 교실에선 있거나 없거나 별루 티 안나구,

         뭔가 뒤집어지게 잘하는게 없으니까 늘 심드렁하구... (타이르듯) 선생님들이 잘해주셔야 돼요.


유란, 정희 보는.


민주 : 자꾸 그러다 보면 관심 끌려구 돌출 행동을 할지도 모르거든요.

정희 : 그, 그러니까 이렇게 면담두 하구 그러는거잖아.

민주 : 에이, 그런 성적면담 말구요. 뭔가 확실한 대안을 세우셔야 한다니깐요.


정희, 유란 보다가 웃고마는.



씬9. 교정일각 (D)


흥수, 용구의 영작 노트 넘겨보며 감탄하며 오고 있고.

용구 한팔에 네댓개의 빵봉다리 안고, 우적우적 씹으며 걷고 있다.


흥수 : 이야, 내가 이용구 노트를 다 빌려보구... 니가 어쩐일루 영작숙제를 다 해왔냐?

         이제부터 성적관리 전선에 나서기루한거냐?

용구 : 미쳤냐? 피부관리, 몸매관리, 팬관리 하기두 바빠죽겠는데 곰팡내 나는 성적관리가 웬 말이니 진짜.

         너 20세기를 살아가는 자유개성 힙합세대 맞냐?

흥수 : ? 그럼 이건 뭐야? 이거 니가 한 거 아냐?

용구 : 스파이스걸스가 대신 해줬다.

흥수 : 뭐?

용구 : 낄낄. 이게 팝송 가사 아니냐. (직접 불러보는) 내 머리 끝내주게 잘 돌아가지 않냐?

         머리 돌아가는거 만큼만 히프가 돌아가 주면 백댄서로 나서는건데.

흥수 : (노트로 때리며) 죽어라 죽어. 빵 도루 내놔 임마. 안내놔?

용구 : 낄낄낄. (도망치는)



씬10. 교정일각 (D)


유미, 노트를 들고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

그때 뒤로 장난하며 달려가던 용구와 흥수 유미를 보고 후다닥 선다. 그러다가 기둥 뒤로 휙 숨는 두 사람.

그 시야로 유미에게 다가오는 한.


한 : 여기 웬일이야?

유미 : 응? 응... 저기 실은...


두사람을 숨어서 보고 있는 흥수와 용구, 두 눈이 빛난다.


한 : 그럼, 니가 딴 반 애 시켜서 날 보자구 한거야?

유미 : (끄덕끄덕)

한 : 왜?

유미 : (쑥스럽게 노트 내민다)

한 : ... 이게 뭔데?

유미 : 너 영작 숙제 안해왔지. 내가 니꺼 했어.

한 : (어이 없어 웃음이 다 난다) 니가 내껄 왜?

유미 : 그냥... 너 안했을꺼 같아서...

한 : (웃는데)

유미 : 너두 이제 농구 못하게 됐으니까 성적으루 대학가야 되잖아.

한 : (순간 표정 굳는다)

유미 : (제깐에는 진심을 다해 하는 말이다) 그럼 너두 성적관릴 해야 되는데...

         농구공만 만지다가 갑자기 공부하는게 어려운거 같아서...

한 : (점점 더 굳는)

유미 : 아 참, 그리구 (주머니 뒤져 티켓 두장 꺼낸다) 이건 내가 음악 채널 프로그램에 엽서 보냈다가 상품으루 받은

         콘써트 티켓이거든? 밤에 다니면서 괜히 싸움하지 말구 방황은 하구 싶은데 갈데가 없다, 그러면 차라리 여기,

한 : (O.L) 배유미.

유미 : 어?

한 : 니 성적이나 신경써.

유미 : ! (굳는다)

한 : 남 퍼줄 만큼 찬란한 성적두 아닌거 같던데 그렇게 한가해?

      너한테 도움 받을 만큼 나 아직 그렇게 한심하지 않아. (홱 뒤돌아간다)


숨어서 보며 키득거리는 용구. 어휴 저 바보 안타까운 흥수. 한이가 홱 돌아가는 것과 동시에 화들짝 숨으며 아웃 되고.

상처받은 마음으로 그 자리에 그대로 멍하니 서 있는 유미...



씬11. 2학년 5반 교실 (D)


수업 전. 아이들의 소음소리... 그 속에 멍하니 고개 떨구고 앉아있는 유미.

용구, 힐끔 유미를 보며 자꾸 쿡, 터지려는 웃음을 참고 있고.

한, 신경쓰이는 일이 생겨 성가시게 됐다는 표정으로 보다가 창밖으로 시선 돌린다.

교실 문 열리고 광도가 들어온다. 지민 일어나 경례한다.


광도 : 이번 모의고사에도 어김없이 2학년 5반이 영어 꼴등을 지켜냈다.

         더 이상 두구만 볼 수 없기에, 최후 통첩의 수단으로! (잠시 뜸들이는)

아이들 : (침 꼴깍 삼키며 집중하고)

광도 : 지금부터 반 평균을 깎아먹은 영광스런 얼굴들을 확인해보는 시간을 갖겠다.

         이번 모의고사에서 열 다섯개 이상 틀린 놈들은 죄다 일어나.


아이들의 웅성거림 속에 네댓명의 학생들 우거지상이 되서는 쭈삣쭈삣 자리에서 일어난다.


광도 : (고개 까딱이며 숫자 세보다가 여유있게 미소 지으며) 한 명이 모자란다. 좋은 말 할 때 얼른 일어나.

         (기다리는데 아무도 안일어난다. 잠시 긴장) 그래? (수첩뒤지며) 6번, 19번, 22번, 25번 (호명당하면 작게 대답하고)

용구 : 박흥수, 너 아냐?

흥수 : 임마, 난 아홉 개야! 씨이...

광도 : 27번. (대답이 없다) 27번 누구야!

애라 : (유미보며) 유미야, 넌가봐...


끼이익... 의자 밀어내는 소리. 고개 푹 숙인 채로 자리에서 일어서는 유미.

지민, 애라, 정연 벙찐 표정으로 유미를 보고. 용구 재밌어서 죽을 지경이다.


광도 : 이십칠번. 넌 니 점수도 모르나? 엉?

유미 : ...

광도 : 창피한줄 알면 진작에 영어단어 하나라도 더 외웠어야 될 거 아냐?

         남들이랑 똑같이 배워서 똑같이 시험봤는데, 그 쉬운 문제에서 열 다섯 개를 넘게 틀려?

         기말고사때 보겠어! 그때 또 일어나는 놈들한텐, 각별한 애정을 표현해주겠다. 알겠나? 앉아!


광도, 칠판에 판서하고, 유미를 포함한 학생들 맥없이 앉는다.


용구 : 완죤 쥐새끼가 고양이 걱정한 꼴이다. 저러니 이한이 대놓구 무실하지. 낄낄.

흥수 : (으휴, 속상해서 보고)


유미 고개 더 숙여진다. 한이가 의식되서 더 비참해진다.

보며 가볍게 한숨 내쉬는 한.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씬12. 영화반 (D)


자료 테입에 라벨 붙이는 작업 하고 있는 흥수, 신화, 성제, 지민.

흥수가 포스트잇이 붙어있는 테입 건네면, 지민이 라벨 써서 붙이고,

성제가 챠트에 기록하면, 신화가 상자에 차곡차곡 정리해서 집어 넣고있다.


흥수 : (어이없다는 듯 챠! 웃으며) 천하의 이용구도 안 일어났는데, 배유미가 웬말이냐구 도대체.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리더라니까.

지민 : 그만해라 이제.

흥수 : 아니, 그 곱상한 얼굴에서 어떻게 그런 남부끄런 성적이 나오냐?

지민 : (좀 싫증나서) 얼굴 예쁜거 하구 성적하구 무슨 상관이야.

흥수 : 그치? 상관 없지? 근데 난 있는지 알았다니까.

지민 : (혼잣말 처럼) 하여간 박광도 하는 일 진짜 맘에 안들어. 어쩜 그렇게 사람을 공개망신 시킬 수 있냐.

흥수 : (버럭) 야! 얘기의 파편이 왜 글루 튀냐?

애라 : (들어온다) 다 끝났어?

지민 : 어 대충. 주번 종례 끝난거야.

애라 : (앉으며) 응.

신화 : 유미는?

애라 : 손 씻구 오겠대. 정연이는 집에 갔어?

지민 : 아니 도서관. 먼저 가서 볼 책이 좀 있대.

애라 : 어으 독해 진짜. 아침에 양호실에서 감기약 하나 먹구 여태 버티는거 아냐.

흥수 : 멋지다. 김정연. 음.

애라 : 얼씨구. 언젠 차가워서 싫다며?

흥수 : 이거 왜 이래. 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여자가 좋아.

         선녀 가죽 뒤집어 쓰구 귀염 떨면서, 지적 능력이 떨어지거나하면 피곤하거든.



씬13. 영화반 문 앞 (D)


문 앞에서 멍하니 듣고 서있는 유미.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서있다가 가만히 뒤돌아 가는..



씬14. 영화반 (D)


지민 : 야, 말이 좀 심한거 아니냐?

흥수 : 속상해서 그런다 오빠가. 어휴 배유미, 공부 좀 하지 공부 좀. 그러니까 이한까지 유미를 쥐똥으루 여기는거 아냐.

성제 : 그 얘기 이제 그만해. 남의 얘기 엿들은게 자랑이냐? 이런 식으로 얘기가 돌면서 없는 말두 만들어지구 그러는거야.

애라 : 하여간 기집애 지 앞가림두 못하면서 남걱정은, (하는데)

신화 : (불쑥) 앞가림만 잘하는 것두 자랑은 아니야.

아이들 : ? (본다)

신화 : 우리들 다, 조금씩은 이기적이잖아. 그래서, 남의 점수 신경 써줄 만큼 너그럽지두 못하구.

아이들 : ...

신화 : (미소) 난 그래서 유미가 이뻐. 얼굴이 아니라 그 맘이 말야. 너무 순수해서 가끔 오해받구, 가볍게 취급 받지만...

         그런 일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잖아.

애라 : (괜히 무안해서 삐죽)



씬15. 교사 앞 (D)


한, 어깨에 가방 얹고 건물에서 나오는데,


혜원 : (E) 이 한!


한 돌아봄과 동시에, 뭔가 휘익 날아온다. 반사적으로 받는 한. 보면, 지혈제와 살색 반창고다.

세진과 함께 걸어오며,


혜원 : 아직 운동신경은 남아있네.

한 : (보면)

혜원 : 상처 남아 좋을꺼 없어. 관리 잘해라.

한 : (약 보며 피식 웃는)

혜원 : 살살해라.

한 : 뭘?

혜원 : 뭘 하는진 관심 없구 이마 찢어가면서 할 필요 뭐 있겠냔 얘기야.

한 : (피식 웃고 간다)

세진 : 참 나, 고맙다는 말이라도 해야되는 거 아냐? 뭐하러 저런 애한테 신경쓰고 그래?

혜원 : 누구든 자기랑 비슷한 사람한텐 신경쓰이기 마련이야.

세진 : 비슷한 사람? 하긴, 쟤 요즘 남자 일진에서 탐내는 눈치더라.

혜원 : 안테나 끄라 그래. 잰 아냐. (간다)

세진 : ...? (보며)



씬16. 교정 일각 (D)


한이 걸어오다가 멈칫 그 자리에 선다. 교정 한 구석에 혼자 우울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유미.

모른체 그냥 지나가려다가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한. 잠시 귀찮은 표정이 되다가 결심한 듯 유미에게 다가가려는데,


성제 : (유미 발견하고) 어? 여기 있었네?


우루루 몰려나오는 영화반 아이들. (정연은 없고. 애라가 유미의 가방 챙겨 들고 있다)

잠시 보다가 뒤돌아 가는 한.


지민 : 너 여기서 뭐해? 한참 기다렸잖아.

유미 : 날 왜 기다려...그냥 니들끼리 가지...

애라 : 무슨 소리야. 니가 도서관 같이 가자구 노래를 했잖아.

유미 : 내가 언제 노래까지 불렀어. 그냥 같이 가자구만 했지.

애라 : 어으 저 둔녀. 미쳐 내가.

성제 : 안 갈꺼야? 빨랑 일어나.

유미 : ... (안 내키고)

신화 : (오빠처럼) 가자. 공부 끝내구 뿌듯하게 같이 저녁 먹구 들어가면 좋잖아.

유미 : ... (고민하는데)

흥수 : 어휴, (답답해서 질질 끌고 가며) 고민하지마. 생각하지마. 넌 생각 안하는게 지구 역사에 도움이 돼.

아이들 : (웃으며 뒤 따르는)



씬17. 도서관 (N)


조용한 실내. 시험공부 하는 아이들...

정연과 유미가 나란히 앉았고, 맞은 편에 지민과 애라가 앉아있다.

유미 수학문제 푸는데 잘 안 풀리는지 답답한 표정이다. 문득 옆자리를 보면 꼼짝 않고 교재에 몰입하고 있는 정연.

유미 그 모습 부럽게 바라보는 위로,


흥수 : (E) 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여자가 좋아. 선녀 가죽 뒤집어쓰구 귀염 떨면서, 지적 능력이 떨어지거나 하면 피곤하거든.

유미 : (작게) 정연아...

정연 : (몰입된)

유미 : (가볍에 톡톡 치는)

정연 : (그제서야 ? 본다)

유미 : (수학문제집 내밀며) 나 이거 잘 모르겠어...

정연 : 어디 봐.


정연, 문제집 받아 보더니, 자기 연습장 끌어다가 문제 풀어가며 설명해준다.

유미 집중해서 듣다가, 문득 정연의 샤프를 본다.


유미 : (환해져서) 야아 너 샤프 이쁘다. 어디서 샀어? 얼마야?

정연 : ... (멈추고) 유미야.

유미 : 어?

정연 : (어른스럽게) 뭔가에 집중해야 될 땐 다른덴 신경을 끄도록 노력해봐.

유미 : ... (표정 혼나는 아이 처럼)

정연 : 난 니가 예쁜거에 관심을 갖거나, 다른 사람을 걱정해 주는 것 만큼

         니 문제에두 그렇게 관심을 갖구, 고민을 할 수 있었음 좋겠어.

유미 : 나두 고민해에...

정연 : (언니처럼) 이 문젠 아주 기초적인 거야. 이 문제에서 부터 막히기 시작하면 다음 문제, 다음 단원은 손두 못 댄단 말야.

         다시 잘 봐, (하다가 두통이 있는지 손으로 이마 짚고 얼굴 찡그리는)

유미 : 왜 그래? 어디 아퍼?

정연 : ...아냐. 커피 좀 마시구 올께. 혼자 풀어보구 있어. (일어나 나가는)


유미 걱정스럽게 보다가, 문제집 도로 가져가는데.

문득, 정연의 책상 위에 놓인 연습장...유미 뭔가 갈등하는...

어느순간 정연의 연습장을 훔치듯 자기 연습장과 함께 집어 들고는 후다닥 도서관을 빠져 나간다.

공부하다 궁금해서 보는 지민과 애라.



씬18. 교정일각 (N)


벤취에 앉아 정연과 자신의 연습장을 한 장 씩 넘겨가며 신중하게 비교해 보고 유미.

정연의 첫장. 영어 단어가 빼곡이 적혀 있다. 유미의 첫장. 영어 단어 조금 써있다가 유승준의 노래가사 적혀있다.

정연의 다음장. 수학문제가 정갈하게 적혀있다. 유미의 다음장, 수학문제 조금 써있다가, 가수 이름지우기 게임이 낙서되어 있다.

그렇게 몇장을 더 넘겨보다 덮어버리는 유미...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진다....F.O



씬19. 교무실 (다음날/D)


명교감 책상에 앉아 녹차 마시며 서류 따위 넘겨보다가,


명교감 : 노선생님.

일평 : (컴퓨터 작업 하다가 돌아보며) 네.

명교감 : 체험학습에 대한 전체 계획과 세부적 실천 내용, 문서로 작성해서 빨리 올리세요.

일평 : 예. (자판 치며) 지금 하구 있습니다.

민주 : (신나서) 어머, 저희 학교 학생들 체험학습 나가요?

명교감 : (검토 끝난 서류들 책상에 탁탁 쳐서 정리하며) 체험학습 갔다 왔잖습니까.

민주 : 네? 언제요?

명교감 : 아, 일학년들 야영 갔다 왔잖아요.

민주 : (실망하고) 저기... 교감선생님.

명교감 : 말씀하세요.

민주 : 제 생각에는 체험학습이란게... (조심스레) 그런 의미가 아닌거 같은데요?

명교감 : (안경 너머로 본다) 그런 의미가 아니면 뭡니까.

민주 : 이를테면 정기적인 야외수업이라던가, 성적을 떠나서 체험 삶의 현장처럼 직접 노동을 배워 본다던가,

         아니면 농촌 봉사활동을 나간다던가,

명교감 : (일어나며 O.L) 그러다 애들 다치구, 없어지구, 갑자기 병나서 난리통 겪으면 그 책임 다 누가 집니까?

민주 : 네?

명교감 : (나가며) 성적에 민감한 학부모들 항의 전화는 누가 다 받는지 한 번 생각해보시라구요.

민주 : ...

일평 : (웃으며) 나선생님이 오늘 때를 잘못 잡았어요.

민주 : 네?

정희 : 말도 마. 그깟 야영 한 번 갖다 오는데 학부모들 전활 한 스무통은 넘게 받았거든.

광도 : 누군 좋은지 몰라서 안하는겁니까. 체험 현장 이전에 학교 현장이 그걸 받아 들인만한 토대가 되야 할꺼 아닙니까.

유란 : 성적 중심의 교육 체제가 바뀌지 않는 한 요원한 일이죠.

민주 : ...



씬20. 교정일각 (D)


태훈, 동일에게 프린트 건네주고 있다.

‘98년도 기말고사 문제’, ‘수학예상문제’, ‘논술모범답안’ 등의 타이틀이 각각의 겉페이지에 깔끔히 프린트되어있다.

각 프린트물에는 대여섯장씩의 A4 내용물이 클립으로 묶여있다.


태훈 : 이건 작년 기말고사 문제를 과목별루 복사한거야. 정답은 뒤에 따루 체크해놨어.

동일 : (받으며 부담스러운) ...

태훈 : 이건 수학문제 풀이 해 놓은거. 그 뒤에 예상 문제들은 서울대 형들이 따루 만들어준거구.

동일 : (프린트 보며 조금 찡그려지는) 이건 나한테 좀 벅차겠는데...

태훈 : (상관 않고) 모르는건 형주나 나한테 물어. 이건 논술 수행평가 모범답안이야.

         논제에 따른 핵심문장은 붉은 펜으루 밑줄쳐놨어. 이해 안되면 그냥 무조건 외워.

         (얘기 끝났다는 듯 덮어놨던 책 다시 읽는다)

동일 : 저기... 난 영어 예상문제 준비 못했는데...

형주 : 됐어. 내가 준비할테니까 동일이 넌 이번에 성적 올리는 데만 신경 써.

동일 : 알았어... 노력해 볼께.

형주 : 딴 애들 눈에 안띄게 해라. (가려다가) 참, 이번이 마지막이야. 다음 부턴 프린트 따루 챙겨주는일 없어.

         앞으루 모임에 빠지지마.

동일 : ....



씬20-1. 2학년 5반 교실 (D)


태훈, 책보고 있는데 어느 순간 시선이 앞문쪽으로 간다.

들어오는 지민. 태훈 슬며시 웃고...


지민 : (들어와 교탁에 서서) 얘들아! 면담시작이다. 지금부터 시작해서, 다음 HR시간까지 자습하다가

         순서되면 차례대루 상담실루 가. 알았지?

태훈 : (힐끔 지민을 보며 미소 생겼다가 다시 평상심으로 책 넘긴다)



씬21. 교무실 (D)


재하, 면담자료 탁탁 챙겨들고 일어나려다가 ?해서 민주를 본다.

민주 수지침 꺼내놓고 책 보며 공부하고 있다.


재하 : 뭐하세요?

민주 : 네? 아아 이거요? 대학 때 배웠던 건데 다시 시작해보려구요.

재하 : 갑자기 수지침은 왜요?

민주 : 유비무환. 만일을 대비해서 미리 전력을 재정비하는 중이예요.

재하 : 어디 전쟁 나가십니까?

민주 : 나중에 체험학습 같은게 실현되면 애들이랑 현장에 나갈 일이 많을꺼 아니예요.

         그때를 대비해서 교사가 응급치료법 하나는 숙지해 두는게 좋을꺼 같아서요.

재하 : 하하. 대단하십니다. (하는데)

복만 : (들어오며) 아으 점심 먹은게 체했나. 왜 이렇게 속이 더부룩해.

민주 : (눈빛 반짝이며) 제가 수지침 놔 드릴까요?

복만 : (겁먹고) 새, 생체실험은 끝낸 실력입니까?

민주 : 삼년 전에요. 오세요. 놔 드릴께요.

복만 : 저... 박선생님, 아까 네시간 연짝으루 수업 했더니 허리가 땡긴다면서요. 먼저 한 번 맞아 보시죠.

광도 : (버럭) 아 내가 마루타야!

교사들 : (웃는다)



씬22. 2학년 5반 교실 (D)


칠판에는 ‘H.R - 조용히 자습할 것’이라고 써있고.

몇몇 아이들 숙제하거나 떠들고 있다. 유미 책상에 엎드려 있다.

지민 영어공부 하다가 사전 꺼내려 서랍에 손넣는데, 사전과 함께 나오는 프린트 파일.

지민 ? 해서 넘겨보면 기말고사 예상문제, 논술 모범 답안, 수학예제, 영어예제 등이 정리된 파일이다.


지민 : ? (고개 갸웃하며 보다가 알만하다는 듯 웃으며) 야 이성제.

성제 : (수학문제 풀다가) 어?

지민 : (씨익 웃으며) 고맙다.

성제 : 뭐가?

지민 : 차식, 능청 떨긴. 알았어 알았어 공부해. (흐믓하게 웃으며 사전 뒤적인다)

성제 : ? (보다가 다시 문제 풀고)

태훈 : (보며 피식 웃는다)



씬23. 상담실 (D)


마주 앉아있는 정연과 재하. 정연은 여전히 창백한 모습이고.


재하 : (성적자료 보며) 이번에 정연이 성적이 많이 올랐는데. 아주 좋아. 용왕매진, 일신우일신이구만. 비법이 뭐냐?

정연 : 그런거...없어요.

재하 : (장난스럽게) 있는 거 같은데?

정연 : 그냥 제가 가구 싶은 대학하구 학과를 미리 정해논거 뿐이예요.

재하 : 아아. 목표가 뚜렷한게 비법이다? 선생님한테만 살짝 말해주라. 어느 대학 무슨과냐?

정연 : (웃는)

재하 : 왜? 말하기 싫어? 비밀이냐?

정연 : 아니요. 사실은 저... (약간 뜸들이다가) 선생님 후배가 되구싶어요.

재하 : (반가워서) 야아 그래? 그렇게 훌륭한 대학을?

정연 : (끄덕이며 웃는) ...네.

재하 : (흐믓하게 웃다가) 정연아.

정연 : (보면)

재하 : 우리 학굔 말야 선후배 관계가 굉장히 엄격하거든? 선배말엔 무조건 복종이구, 선배 그림자두 안밟어요.

정연 : ? (본다)

재하 : (주머니에서 종이 꺼내며) 조퇴증이야. 집에 가서 쉬어.

정연 : 선생님.

재하 : 어머니가 너 땜에 걱정이 많으셔 임마. 성적 올리는 재미두 짭짤 하겠지만, 건강이 우선이야.

         (자료로 시선 내리며) 선배명령이니까. 절대 복종해.

정연 : ... (보며 미소짓는)



씬24. 2학년 5반 교실 (D)


책상에 엎드려 있던 유미, 갑자기 벌떡 상체 일으킨다.

애라 엄마야, 놀라서 보면, 유미 엣취! 재채기 하고는 다시 눕는다.


애라 : 여러 가지 한다 진짜.

유미 : (온 몸이 으슬으슬 떨리며 춥고 아프다)

정연 : (얼굴에 미소 띠며 들어온다)

지민 : 정연이 너 왜 이렇게 오래 걸렸냐? 이십분은 넘은거 같다 야.

정연 : (웃으며) 어...그냥... (하며 책가방 챙기는)

지민 : 뭐 해? 집에 가려구?

정연 : 응. 선생님이 안색이 안좋아 보인다구 조퇴증 끊어주셨어.

지민 : 그래 잘 생각했다. 집에 가서 푹 쉬어.

정연 : (가방 챙기다가) 유미야. 안 내려가? 니 차례잖아.

유미 : (누운 채로 눈 뜬다) ... (힘겹게 일어나 나간다)

흥수 : 잰 왜 하루죙일 파리약 맞은애 처럼 시들시들하냐?

애라 : 또 밤새 만화책 봤겠지 뭐.

아이들 : (웃는)



씬25. 상담실 (D)


화면 시작되면 너무너무 미안한 표정의 유미 얼굴. 조금 창백하다.


유미 : 죄송해요 선생님.

재하 : ? (자료보다가 보며) 뭐가?

유미 : (고개 숙여지며) 성적이 나빠서요..

재하 : 유미야.

유미 : 네. 잘못했어요.

재하 : (웃고는) 니 꿈이 뭐냐.

유미 : 꿈...이요? 꿈... (생각해보다가) 그런거 아직...없는거 같은데요.

재하 : (웃으며) 야 임마, 꿈두 없는 녀석이 성적 걱정은 왜 해?

유미 : 네?

재하 : 성적 보다 더 중요한건 니가 정말 하구 싶은 일이 뭔지 그걸찾는 일이다.

         막말루 성적은 니 꿈에 따라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아주아주 부차적인 거다 이 말이야. 알겠냐?

유미 : ...네.

재하 : (웃으며) 알았으면 얼렁 나가서 꿈부터 찾아 와 임마. (다음 자료 챙기는)

유미 : 벌써... 끝났어요?

재하 : ? 왜. 선생님한테 하구 싶은 말 있어?

유미 : ....아니예요. (일어나서 꾸벅 인사하고 나간다)

재하 : (보다가 웃고는 다음 학생카드 넘긴다. 한이다)



씬26. 상담실 앞 (D)


등 뒤로 문을 닫고 나오는 유미. 어쩐지 굉장히 우울하고 서운한 표정이다. 그 모습 위로,


지민 : (E) 정연이 너 왜 이렇게 오래 걸렸냐? 이십분은 넘은거 같다야.


유미 손목 시계를 본다. 오분 밖에 지나지 않았다.

문득 두통이 있는 듯 얼굴이 찌뿌려진다. 창가로 간다. 열을 식히려는 듯 창가에 가만히 이마를 갖다댄다.


정연 : (E) 선생님이 안색이 안좋아 보인다구... 조퇴증 끊어주셨어.


상담실로 향하던 한, 유미를 발견하고 멈춰선다. 유리창에 이마를 기대고 선 유미 어쩐지 서글퍼진다.

상담실 문을 열려다가 다시 한 번 유미를 돌아보는 한..



씬27. 도서관 (E)


유미 아픈 듯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다.


지민 : (E) 또 자?

유미 : (부시시 일어나서 보면)

지민 : (문제집과 샤프 들고 서있는) 그만 좀 자라.

유미 : 머리가 아파서 그런단 말야...

지민 : (웃으며) 공부하기 싫으니까 그렇지. 근데 정연인 어디갔어?

유미 : 낮에 조퇴했잖아.

지민 : 아, 맞다. 에이, 수학문제 좀 물어볼라 그랬는데.

유미 : 무슨 문젠데? 어디 한 번 봐봐.

지민 : (무심결에) 넌 봐두 몰라. 머리만 더 아플꺼다. (혼잣말로) 성제한테 물어볼까? 아직 안 갔겠지? (가는)

유미 : ... (비참해진다)



씬28. 도서관 앞 (E)


가방 매고 혼자 나오는 유미. 그렇게 걸어나오다가 문득 도서관 쪽을 한 번 돌아본다.

기침하며 힘없이 걷기 시작하는 유미의 모습에서..F.O



씬29. 학교 외경 (다음날/D)



씬30. 2학년 5반 복도 (D)


수업 시작 전. 희진, 아영 나와서 창밖으로 고개 쭈욱 빼고 밖을 보고있다.


희진 : 날씨 욕 나오게 좋네 진짜.

아영 : 이런 날은 수업 땡치구 바이킹이나 타러 가야 된다구 봐.

희진 : 니가 중딩이냐 이년아?

아영 : (입 나와서) 고딩이 바이킹 타면 벌금 무냐...?

희진 : 아으 씨, 진짜 담이나 넘을까부다.

아영 : (심드렁) 하긴 우리는 없어져두 아무두 모를꺼야.

희진 : (심드렁) 없어진거 알아두 우리한테 쓸 신경이나 있겠냐?


순간 동시에 눈빛 반짝이며 바라보는 두 아이.

아영 고개짓으로 학교 밖을 가리키며 튈까? 하면. 희진 의기투합되는 눈빛으로 튀자, 끄덕인다.

후다닥 교실 뒷문으로 들어가 가방 들고 냅다 뛰는 두 아이.

저만치 복도 끝에서 오던 지민 ?해서 보는데 수업종소리. 고개 한 번 갸웃하고는 교실로 들어가는 지민.



씬31. 2학년 5반 교실 (D)


지민, 들어와 자리에 가앉으면,


성제 : (자리에서) 교무실 갔다 오는거야?

지민 : 응.

애라 : 무슨 일인데?

지민 : (노트꺼내며) 유미. 몸이 안 좋아서 병원 갔다가 늦게 온다구 연락이 왔대나봐.

         수업시간에 결석 체크 안되게 말씀 잘 드리라구.

애라 : 꾀병 아니야?

용구 : (알만하다는 듯 시 읊는 포즈로) 아아.. 실연의 아픔은 큰법. 꽃 중의 꽃 무궁화꽃, 병 중의 병 상사병!

흥수 : 에라 이! (퍽 때리고)

한 : ... (보는)



씬32. 학교 정문 앞 (시간경과/D)


텅빈 정문 앞. 잠시 그대로 두었다가.

어느순간 콜록거리는 소리와 함께 정문으로 들어서는 유미 힘없이 교실을 향해 걸어간다.

그 위로 수업 종소리.



씬33. 2학년 5반 교실 (D)


교실 안. 평소보다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소란스럽다.

이때, 교실문 출석부로 탕탕 두드리는 소리. 떠들던 아이들 순간 조용해져서 돌아보면,


유란 : 도대체 수업 종 친지가 언젠데 이렇게 시끄러워!

아이들 : (우당탕탕 자리 찾아 앉고)

유란 : (출석부로 먼지 휘이 저으며) 어휴, 이 먼지 좀 봐... 얘, 그 뒤에 창문 좀 열어.

         (하다가 문득 뒷자리에 시선가며) 거기, 그 뒤에 빈자리 누구야.

학생2 : (돌아보고) 권희진하고, 윤아영인데요.

유란 : 아직까지 교실에 안들어오구 뭐하는 거야? 결석이야?

학생2 : 아니요....

유란 : 근데 왜 가방이 없어?

학생2 : 아까 까지 있었는데... (고개 약간 수그러지며) 들구 나갔는데요...

유란 : (한심해져서) 이러니 매일 꼴등반이라는 소리를 듣지. 배울 자세가 안됐어 니들은!

         (출석부 펼치며) 몇번하구 몇번이야.

학생2 : ... 6번, 17번이요.

유란 : (출석부에 체크하고 유미 빈자리 보며) 여기는, (하는데)


교실 뒷문 열리고 핼쓱한 얼굴로 들어오는 유미, 유란에게 미안한 표정으로 꾸벅 인사하고 자리로 가려는데.


유란 : 얘, 너 거기 뒤에 서있어.

유미 : ? (본다)

지민 : (어? 아닌데) 저기, 선생님.

유란 : (애라에게 다시) 여긴 몇번이야?

애라 : 번호는 27번인데요 저기, (설명하려는데)

유란 : (출석부 덮고) 다들 교재 펴.

지민 : 선생님 그게 아니구요,

유란 : 조용히 해에. 너두 잘한거 하나없어. 반장이 되가지구 애들하나 조용히 못시켜?

지민 : (어휴 미치겠고)

유미 : ... (고개 푹 숙인채 콜록콜록 새어나오는 기침)

한 : ... (보고)

유란 : 2번, 12번, 32번 나와서 연습문제 풀구, 나머진 숙제 펴놔. 검사하게.


호명된 아이들 일어나 칠판으로 나가고.

유란 아이들 노트 보며 책상 사이를 다니다가,


유란 : (정연 노트까지 와서) 정연인 좀 괜찮니?

정연 : ...네에. (유미 쪽 의식하며 마음이 편치 않고)

유미 : (본다)

유란 : 공부도 좋지만 건강 관리 잘해야지. (미소 짓고 가려는데)

지민 : 선생님, (기회 놓칠까봐 얼른 다다다 말하는) 27번이요. 오늘 몸이 안 좋아서 병원 갔다가 늦게 온다구

         담임선생님이 연락받으셨는데요,

유란 : (보면)

지민 : 27번이... (손으로 교실 뒤 가리키며 애매하게 웃으며) ...쟤예요.

유미 : (비참한) ...

한 : ... (보며)



씬34. 교정일각 (D)


음악책 들고 음악실로 이동 중인 영화반 아이들. 유미 눈치 살피며 걷고 있고.


흥수 : 어떻게 똑같이 아픈데 한 사람은 병환이구, 한사람은 염병이냐.

지민 : (툭 친다. 하지말라고)

정연 : ...(괜히 미안해져서 유미 살피고)

애라 : 야, 그러니까 건강관리 잘해 괜히. 공부도 못하는 애가 몸이라두 튼튼해야 구박을 덜,

유미 : (우뚝 멈춰선다)

애라 : (흠칫해서 보면)

유미 : 니가 나 공부 못하는데 보태준거 있어?

애라 : 아...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하는데)

세진 : (E) 배유미.

유미 : (본다)

세진 : 담임이 왔으면 교무실로 오랜다.


유미, 애라를 한 번 쏘듯 바라보다가 교무실로 간다.

영화반 아이들 흥수와 애라 구박하며 이동하고.



씬35. 교무실 앞 복도 (D)


유미 씩씩대며 걸어오고 있는데.


복만 : (E) 거기!

유미 : ? (돌아보면)

복만 : 너 2학년이지?

유미 : 네.

복만 : 몇반이냐?

유미 : 5반인데요.

복만 : 그래? 잘됐네. 니네 반 27번 왔냐?

유미 : (표정 굳는) ...네.

복만 : 그럼 니가 가서 27번 좀 내려오라 그래. 지금 바루. 알았지?

         (교무실 향하며) 실기 시험 있는 날 빠지면 날더러 점수를 어떻게 내라는거야. (들어가고)


잠시 그대로 서있는 유미.. 교무실을 향해 움직이다가 우뚝 멈춰선다.

아랫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그대로 홱 돌아 밖으로 뛰어 나가버린다.



씬35-1. 거리 (D)


교복을 입은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유미...



씬36. 2학년 5반 교실 (D)


화면 시작되면 유미의 빈자리. 가방만 덩그라니 놓여있다.

재하의 시선이 유미의 빈자리에 향해있다. 종례시간이다.


재하 : ... (착찹하게 보다가) 유미 삐삐 번호 아는 사람 없어?

지민 : 유미... 삐삐 없는데요.

재하 : ... (난감한) 오늘 영화반 모임 있지?

성제 : 네.

재하 : 그럼. 혹시 늦게라두 이 자식 오면 선생님 잠깐 보구 가라 그러구.

성제 : 네.

재하 : 자 이상!


지민 일어나서 경례하고, 재하 심난한 표정으로 나간다.

한 뭔가 생각해 보고 있다. 짚이는 데가 있는 듯 싶다.


흥수 : (E) 근데 얘가 왜 안하던 짓을 하구 그러지?



씬37. 영화반 (D)


영화반 아이들 모여 앉아있고, 유미의 자리는 가방이 대신하고 있다.


흥수 : 아니, 지가 무슨 정우성이야, 이정재야? 왜 이유없는 반항을 하구 난리야 진짜.

애라 : 도대체 이유가 뭐야 이유가. 누가 때리길 했어 쫓아내길 했어. 왜 갑자기,

정연 : (O.L) 쫓아냈잖아.

애라 : 누가?

정연 : 우리가.

흥수 : 우아, 이렇게 억울할 데가 있나? 우리가 언제?

정연 : (자조적으로) 매일. 조금씩. 우리가 유미를 학교 밖으루 밀어냈어.

신화 : (본다)

정연 : 편하다는 이유루 무시하구, 순진하단 이유루 놀려먹구,

애라 : 야 그건 친하니까, 친하니까 그런 농담두 하구 장난두 치구,

정연 : 니들 나한텐 안그러잖아.

애라 : (입 다문다)

정연 : 나두 같은 친군데 유미한테 처럼 그런 농담이나 장난...안하잖아.

아이들 : ... (할 말 없다)

정연 : 나두 그랬어. 유미 고민없어 보인다구 한심해하면서 니 고민이 뭐냐구 물어본적 없었어.

         언제나 어린애 처럼 달래거나 가르쳐줘야 할 대상이라구 생각했었지.

아이들 : ... (숙연해지는)

정연 : 우리 중 아무두 유미가 아픈지 몰랐잖아. 지금 어디 있을지 전혀 예상두 못하구 있구.

아이들 : .... (자연스레 유미의 가방으로 향하는 시선들)



씬38. 대학로 공연장 앞 (N)


공연이 끝났는지 안에서 나오는 사람들.

공연장 앞 뜸해지면... 안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유미. 잠시 공연장 앞에 서서 주변을 둘러본다.

마땅히 갈 만한 곳이 없다. 한숨 한 번 푸욱 내쉬고 정처없이 터덜터덜 걷기 시작하는데,

누군가 유미의 앞을 가로막아 선다.

유미 흠칫 놀라 올려다 보면.


한 : 방황은 하구 싶은데 갈데가 없으면 여기루 오라며.

유미 : ...



씬39. 한적한 거리 (N)


유미 터덜터덜 걷고 있다. 어느 정도 걷다가 우뚝멈춰선다.

뒤를 돌아본다. 거기 일정한 거리를 두고 멈춰 서 있는 한.


유미 : ... 너 왜 자꾸 쫓아와. 무섭게.

한 : (픽 웃으며) 내가 무서워?

유미 : 무서워. 그러니까 따라오지 마.


유미, 걸음 옮기는데 자꾸 한이가 쫓아온다. 신경이 쓰인다. 결국 돌아서며.


유미 : 야!

한 : (그냥 빙긋 웃는다)

유미 : 왜 따라오냐구!

한 : (유미 앞으로 다가와 서며) 나 라면 먹으러 갈건데 같이 안갈래?

유미 : ...

한 : 너한테 갚을 빚이 좀 있는거 같아 그래.

유미 : ...



씬40. 라면집 (N)


소박한 라면 전문집. 마주 앉아있는 한과 유미.

아줌마 두 사람 앞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라면 내려놓고 간다.

한, 나무 젓가락 쪼개서 후루룩 먹다가 유미 보며,


한 : 안 먹어?

유미 : 안 먹어.

한 : 왜?

유미 : 밥버러지 같아서.

한 : (웃으며) 너 많이 꼬였구나. 그거 다 풀려면 시간 좀 걸리겠다. 그래, 라면 먹으면 더 꼬일테니까 관두는게 낫겠다.


한, 유미의 라면그릇을 앞에 당겨놓고 맛있게 먹는다.

유미, 그걸 보니 배는 고픈데.. 한, 그런 유미를 눈치채고 빙긋 웃으며...


한 : 너, 배고프겠다? 뭐 먹은 거 있어?

유미 : 아... 아니.

한 : 하긴 일부러 굶는 애들도 있는데. (하면서 계속 먹는다)

유미 : (못참겠다) 저기...

한 : ?

유미 : 먹기는 싫은데...니 성의도 있고 하니까...그냥...맛이나 쫌 볼께.

한 : (픽 웃으며 라면그릇 내준다)

유미 : (먹으며) 넌 주로 어디서 노니?

한 : 내가 노는거 같아 보여?

유미 : ...(이크, 또 말 실수 했나 싶어서)

한 : 공부는 안하구, 가끔 쌈질이나 하구, 인생 포기한 놈 마냥 되는대루 사는거 같아 보이지?

유미 : ...

한 : (픽 웃고는) 대답 안하는 것두 일종의 대답이야. (라면 말아올리며) 내가 어디서 놀면 왜. 너두 놀아보구 싶어?

유미 : 어짜피 범생은 못 될거 같구... 놀아봐서 그 쪽으로 소질 있으면 그렇게 한 번 살아보게...

한 : (보는) ...



씬41. 레코드 가게 앞 거리 (N)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걸어오고 있는 두 사람.

문득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서는 유미.


한 : 왜 맘이 바꼈어? 놀아보자며?

유미 : ... (멈춰 선 채로) 내가... 좋아하는 노래야...


레코드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이오공감의 ‘나만 시작한다면’ 정도 - 가사가 딱입니다)

한 정말 못말리겠군, 하는 표정으로 유미 보다가 멈칫한다. 유미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있다.

한, 처음엔 기막힘으로 보다가 점차 안쓰러움이 되는데서..

(시간 경과)

음악 계속 이어지고. 레코드 가게 앞에 일정한 사이를 두고 나란히 앉아있는 두 아이.

그들 앞으로 지나가는사람들... 풍경들...


유미 : 있잖아...

한 : (보면)

유미 : 우리 앞에 지나가는 사람들 말야... 우리한텐 풍경으루 보이지만 저 사람들은 우리가 풍경으루 보이겠지?

한 : ...

유미 : 그러니까 영화로 치면 말야. 우리 눈엔 저 사람들이 엑스트라로 보이지만,

         저 사람들 눈엔 우리가 엑스트라로 보일거 아냐.

한 : ...

유미 : 학교에서 난 가끔 그런 생각해. 혹시 지금 이게 영화구 난 다른 애들을 위한 엑스트라나 풍경이 아닐까...

한 : ...

유미 : 난... 교실 뒤에 놓인 주전자구, 창가에 매달린 커텐이구, 없어지거나 조금 위치가 달라져도 아무두 모르는 풍경같아.

한 : ... (안쓰럽게 보는)



씬42. 대학 정문 앞 (N)


한적한 캠퍼스에 들어서는 한과 유미.

한 앞장 서서 걷고 있고, 유미 주변을 둘러보며 겁먹은 표정으로 따라오고 있다.

어느순간 안되겠는지 뛰어가 한이 앞에 멈춰선다.


유미 : 지금 어디 가는거야?

한 : (피식 웃으며) 왜 겁나?

유미 : ...

한 : 그렇게 겁이 많아서 잘도 놀아 보겠다. (가며) 아직 안 늦었어. 가고 싶으면 지금이라두 돌아가.

유미 : ... (잠시 갈등하다가 오기 부리듯 야무진 표정으로 따라간다)



씬43. 대학 내 노천극장 (N)


노천 극장 앞. 화면 안으로 들어서는 유미와 한. 무대를 바라보는 자세로 멈춰 선다.


유미 : ...? 여기가 어딘데?

한 : ...학교. 대학교.

유미 : 그 정돈 나두 알어.

한 : 내가 오고 싶었던 대학.

유미 : ! (순간 본다)

한 : 어디서 노냐구 물었지? 나 가끔 여기 와서 혼자 농구해.

유미 : ...!

한 : (담담하게) 첨엔 이 학교 근처에두 오지 않았어. 근데 지금은 일부러 여길 와.

      골대에 이마를 찢겨가며 뛰구있다보면 꼭 이 학교 농구선수가 된 기분이 들더라구.

유미 : ... (안쓰러운)

한 : 일종의 최면이구 스스로를 속이는 속임수야.

유미 : 다시... 재기 하구 싶지 너...

한 : 아니. (픽 웃는) 그냥 건전하게 쌓인 걸 푸는 것 뿐이야.

유미 : 스트레스?

한 : 아니. 수분.

유미 : 수분?

한 : 그래 수분. (짐짓 밝게) 인간은 몸에 쌓인 수분을 어떤 방법으로든 밖으루 내보내게 되있는데,

      난 그게 눈에서 나올까봐 미리 땀으루 빼두는거야.

유미 : 그러니까.. (마음이 아픈) 니가 농구 하는건 결국 우는거네...


그게 그런 뜻이 되나... 쓰게 웃는 한. 잠시 긴 침묵이 흐른다.


한 : (분위기 바꿔) 너 아까 니가 엑스트라 같다구 했지.

      어때? 저기 저 무대 위에 올라가 보면 오늘 하루쯤은 주인공이 된거같지 않겠어?


유미 농담인줄 알고 픽웃는데, 한이 그런 유미의 팔을 잡아 끈다.

무대 위에 오르는 두 사람. 이번엔 관객석을 바라보는 자세로 선다.


한 : 니가 모르는게 하나 있는데. 자기 삶에선 누구나 자기가 주인공이야.

유미 : ...

한 : (관객석을 바라보며) 너두 여기서 쌓인 수분을 건전하게 풀어봐.

      소리를 쳐두 좋구,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거나, 아무거나 좋아. 니 맘대루 해봐.

유미 : 야아 난, (하는데)


벌써 무대 아래로 뛰어내려가는 한. 잔디 밭에 무대를 향한 자세로 앉는다.


한 : 시작해 봐. 얼른.

유미 : ...

한 : 괜찮아. 해봐.

유미 : (모기만한 소리로) 아...안녕하...세요.

한 : 안들려!

유미 : (큰소리로) 안녕하세요? 저는 동광고등학교 2학년 5반 배유미예요! 27번이 아니구요, 배.유.미.요!

한 : (웃는다)

유미 : 전요 잘하는게 한 개두 없거든요? 공부도 못하구요, 남이 하는 말두 금방 못 알아 들어서 핀잔두 받구요,

         누굴 도와주구 싶은데 말을 잘 못해서 오히려 상처를 주기두 하구요.

한 : ... (따뜻한 미소로 보는)

유미 : (눈물 고이며) 저두 정연이처럼 공부두 잘하구, 어른스럽구 멋지게 말하구 싶은데 그게 잘 안돼요!

         누가 방법 좀 가르쳐 주세요.


소리치는 유미와 따뜻한 미소로 바라보는 한... 그 모습과 소리 점점 멀어지는데서...



씬44. 버스정류장 (N)


늦은 시간. 한산한 거리. 정류장에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두 사람.


유미 : 뭐 하나 물어봐두 돼...?

한 : (본다)

유미 : 오늘 나... 왜 따라왔어? 너 나 별루잖어.

한 : (피식 웃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 본다)

유미 : ? (해서 같이 하늘을 본다)

한 : 갑자기 비가 오면 말야. 사람들은 비에 옷이 젖을까봐 이리저리 피해 다니거든?

유미 : (뭔 소린가 해서 보는)

한 : 근데 그게 한방울...두방울... 자기도 모르게 젖기 시작해서 어느순간 완전히 젖어버리면

      에라, 그래 이왕 젖은거 아무렴 어때...그렇게 되버려.

유미 : ...

한 : 내가 그랬었어. 이왕 젖은거 아무렴 어때... (미소로) 그래서 쫓아온거야 니가 비 맞을까봐.

유미 : (도저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오늘 비 안오는데...?

한 : (웃다가) 저거 니 버스 아니야?


유미 궁금해서 고개 돌려 보면 저만치 오고 있는 버스... 어떤 느낌에 한이를 돌아보면 벌써 저만치 걸어가고 있는 한.

유미 어쩐지 서운하고 허전한 느낌으로 멀어지는 한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있다...



씬45. 교정 일각 (다음날/D)


이른 아침. 텅 빈 교정. 심난한 표정으로 걸어오고 있는 재하. 출근하는 중이다.

문득 수돗물 쏟아지는 소리. 이어폰에서 새어나오는 음악소리에 재하 무심결에 걸음 멈추고 돌아보면 그 입가에 번지는 미소.

야외 세면대 앞에 유미, 귀에 이어폰을 꽂고 단어장의 단어 중얼중얼 외워가며 대걸레 빨고 있다.


재하 : (반가운) 야 임마 배유미!



씬46. 교정일각 (D)


음료수 한 캔 씩 들고 앉아있는 재하와 유미.


재하 : ... 괜찮아. 말해봐. 갑자기 터프해진 이유가 뭐야.

유미 : (고개 숙인 채로) ...

재하 : 너 혹시... 면담 땜에 그러는 거냐?

유미 : (반짝이며 본다)

재하 : (역시! 확신을 갖고) 성적 떨어진거 땜에 그러는거야?

유미 : ...(실망하며 다시 고개 숙인다)

재하 : (성적 때문이라 확신하며) 야 임마. 선생님이 괜찮다구 그랬잖아.

         성적보다 더 중요한건 니가 정말 하구 싶은 일이 뭔지 그걸 찾는,

유미 : 선생님.

재하 : 어?

유미 : 저한텐 왜 공부하란 말 안하세요?

재하 : ! (본다)

유미 : 성적보다는 꿈을 찾으라는거... 그건 제가 공부에 희망이 없으니까 하는 말이잖아요.

재하 : 아. 아니 임마 그건,

유미 : 꿈이 뭐냐구 물어보셨죠? 근데 오분 동안 어떻게 꿈이 뭔지 얘길해요?

재하 : ! (띵한)

유미 : 전 정말 모르겠어요. 정연이는 이십분이 넘게 걸리는 면담이 왜 난 오분만에 끝나는지...

         둘 다 아프다는 말 안한 건 똑같은데 어떻게 정연이 아픈건 알구 내가 아픈건 아무도 모르는지...

재하 : (띵한 채로)

유미 : 왜 애들은 정연이는 어려워하면서 나는 만만하게 생각하는지... 전 정말... 모르겠어요.

재하 : (한방 먹은 듯한)



씬47. 2학년 5반 교실 (D)


조용히 교실 뒷문 열린다. 잠시후 빼꼼이 내밀어지는 얼굴. 유미다.

어쩐지 선뜻 들어가기기 쑥스럽다. 괜히 안을 한 번 살펴본다.

먼저 뒷자리에 앉은 한이가 눈에 들어온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그 다음은 어제 놓고 간 가방이 놓여있는 유미의 자리...

유미 잠시 보다가 쭈삣거리며 자리로 가서 앉는다. 심드렁하게 아는체 하는 아이들.


애라 : (툭) 왔냐? (하고는) 정연아 어제 말야... (지민, 정연과 함께 수다 떨고)

유미 : (섭섭하다) ... (슬쩍 성제 쪽을 보면)

성제 : (흥수와 얘기 나누다가 시선 느끼고) ? 어, 왔구나. (하고는 다시 떠드는)

유미 : (믿었던 성제까지... 푸욱 고개 숙이면)


서로 은밀한 시선을 교환하는 아이들. 뒷자리의 신화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을 끝으로,

살금살금 유미 주위로 모여서는 하나.. 둘.. 셋... 박자 맞춰서 동시에 왁! 소리친다.

유미 엄마얏! 놀라서 보면 깔깔깔 웃으며 유미 앞에 뭔가 한가지 씩 내미는 아이들.


지민 : (오렌지 두 알 주며) 감기엔 이게 최고래. 먹구 빨랑 나라.

흥수 : (레모나 주며) 공부 좀 열심히 하구, 피곤할 때 마다 한봉지씩 먹어. (귓속말로 은밀하게) 기미 주근깨에도 좋대요 이게.

아이들 : (웃고)

애라 : (노트 주며) 지집애, 니꺼까지 필기하느라 팔이 빠지는 줄 알았다 아주.

신화 : (호출기 내밀며) 동네에서 공짜루 나눠주길래... (오빠처럼) 연락 안되니까 답답하드라.

아이들 : 오우! (환호성)


유미 코 끝이 찡해져서 고개 숙이는데 그 앞에 내밀어지는 샤프. 씬18에서의 정연의 샤프와 같은 것.


정연 : (미소) 이쁘다며. 이걸루 수학문제 열심히 풀어.

성제 : 샤프심은 내가 얼마든지 대줄께. (하며 열통 정도의 샤프심 책상 위에 올려 놓는다)

유미 : (찡해져서) 고마워... 얘들아...

한 : (바라보며 미소 짓다가 시선 다시 창가로 돌린다)



씬48. 교무실 (D)


화면 시작되면 멍한 표정으로 턱괴고 앉아있는 재하.

바라보며 살피고 있는 민주. 유란 입모양으로만 ‘왜그래’ 물으면 민주 고개 저으며 어깨 으쓱하는데,


복만 : (땀에 젖어 들어오며) 어으, 덥다 더워. 애새끼들 암튼 말두 징그럽게 안들어 먹어. 에이, 비나 쫙쫙 내려줬음 좋겠네.

광도 : (재하 슬쩍 보고는) 오늘 끝나구 다같이 시원한 맥주 한 잔 어때?

일평 : 어, 거 괜찮은 생각이네.

복만 : 그럼 오늘 주임선생님이 쏘는 겁니까?

광도 : 학교가 주유소야. 쏘긴 뭘 맨날 쏴.

복만 : (시덥잖은 표정 되며) 그럼 더치패이예요?

광도 : 만민 평등주의 사상에 입각한 공포의 사다리 타기야.

         (그리기 시작하며) 오만원, 삼만원, 만원, 꽁짜. 번호 하나씩 골라두세요.

재하 : ... (피식 웃는)



씬49. 2학년 5반 복도 (D)


교실에서 수업 마치고 나오는 영화반. 다들 도서관으로 가는 듯.

유미, 멈춰 서서 한이가 나오길 기다린다.


성제 : 왜, 누구 기다려?

유미 : 응? 응. 먼저 가있어. 금방 갈게.

성제 : 또 어디 도망가는 거 아니지?

유미 : 갈데도 없더라. 곧 갈게.

성제 : 그래, 그럼.


성제 가고 나면 교실에서 농구공 들고 나오는 한.


유미 : 저기, 한이야.

한 : (돌아본다)

유미 : 어제, 고마웠어.

한 : 그 얘기 하려고 기다린 거야?

유미 : 응? 응. 그리구... 저기, 도서관 같이 안갈래?

한 : ?

유미 : 그냥, 너두 같이 가면 어떨까 해서...

한 : (잠시) 나중에 시간나면 한번 가볼게. (농구공 들어보이며)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


한 간다. 유미, 잠시 한 보다가 도서관으로 간다.



씬50. 호프집 (N)


공중에서 부딪혀지는 호프잔. 시원하게 마시고 내려놓는 교사들.


일평 : 이선생은 오늘 하루종일 표정이 왜 그래? 무슨 고민 있어?

재하 : ... (피식 웃고는) 애들하구 성적과의 복잡미묘한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중인데, 도저히 정답이 안나오네요.

정희 : (웃으며 유란에게) 수학 선생이 풀어줘야 겠네.

유란 : 뭘 어렵게 생각해요. 애들하구 성적! (웃으며) 불가분의 관계죠.

민주 : 왜요? 유미 때문에 그러세요?

재하 : 예... 오늘 그 녀석한테 제가 한방 먹었습니다. 전 제가 성적 따위는 괘념치 않는 멋진 선생인줄 알았거든요. 하하 참.

일평 : (알만하다는 듯) 흐흐. 너무 쥐구 흔들면 스트레스 받는다구 빗나가고, 너무 풀어노면 무관심하다구 훌쩍이구.

         어느 장단에 춤 춰야 될지 헷갈리지?

광도 : 아, 교사가 무당이야? 장단 맞춰 춤추게? 소신을 갖구 지도하면 되는 거지.

유란 : 애들 어리광 다 받아주면 교사 노릇 못해요. 지들두 다 그렇게 상처 받구, 아플 거 아퍼가면서 크는거죠.

복만 : 차식들... 나이는 거저 먹는줄 알지.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두 모르나.

재하 : 인생 경험자로서 애들이 좀 덜 아프구 클 수 있도록 도와주구 싶었는데... 본의 아니게 저두 가해자가 되버렸더라구요.

정희 : (위로하는) 애들 문제는요. 다 같은 문제 같아 보여도 애들마다 꼬여있는 부위가 조금씩은 다른 법이예요.

         그걸 교사 혼자 어떻게 다 풀어줘요.

민주 : 대신 공통적인 해결방안이 하나 있긴 있잖아요.

재하 : 그게 뭔데요?

민주 :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이요.

교사들 : (끄응, 심드렁하게 안주 씹는)

광도 : 휘둘리지마. 그러다 애들한테 앞통수 뒷통수 다 맞으면 그 납작해진 기분은 누가 위로해주나.

복만 : (번쩍 잔 들며) 술이요. 사천만의 영원한 벗, 술 있잖습니까.

교사들 : (맞다. 술. 너 본지 오래다. 어쩌구 하며 잔 들고)

재하 : (웃으며 건배하지만 여전히 씁쓸한)



씬51. 체육관 (N)


농구하고 있는 한. 가픈 숨을 몰아쉬며 멈춰선다. 그렇게 호흡을 고르다가 어떤 느낌에 문쪽으로 가는 한.

문 활짝 열어 젖히면 쏴아아아--- 시원하게 쏟아지고 있는 빗줄기...



씬52. 도서관 (N)


영화반 아이들과 같이 열심히 공부하는 유미. 정연이 준 샤프로 수학문제 풀고 있다.

그때, 학생1 들어와 건너편 자리에 앉으며 학생2에게.


학생1 : 얘 너 우산 가져왔니?

학생2 : 우산? 왜, 비와?

학생1 : 아휴, 어떡하지. 갑자기 무슨 비야...?


유미, 비온다는 얘기 듣곤, 잠시 생각하다가 얼른 가방을 챙긴다.


정연 : 왜? 벌써 가게?

유미 : 응? 응. 생각해보니까, 약속이 있어서....

흥수 : 그럼 그렇지. 쟤 아직 정신 차리려면 멀었다, 멀었어.

유미 : 먼저 갈게. 내일 봐.

정연 : ?



씬53. 교사 앞 (N)


화면 시작되면 빗줄기 너머로 보이는 유미의 발.

그때 뒤로 나타나는 한. 빗줄기를 보다가 움직이려는데, 그제서야 옆에 있던 유미를 발견한다.

마주치는 두 사람의 시선... 말없이 시선 돌려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는 두사람... 잠시 그대로 빗소리만...


유미 : 있잖아...


한, 본다.


유미 : .... 그때 니가 버스 정류장에서 한 말 있잖아. 무슨 뜻인지 내가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너두 아직 그렇게 많이 젖진 않은거 같애.

한 : ... !

유미 :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언제나 우산을 미리 준비할 수 있는건 아니잖아.

         어느날 갑자기 생각지두 못했던 불행이 니 뒷통수를 치구 니 꿈을 꺾어 버렸지만...

         또 알어? 젖은 옷 말리면서 기다리다 보면 이번엔 엄청난 행운이 널 기다리구 있을지...?

한 : ...


유미... 가만히 비오는 교정으로 내려선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금새 교복이 젖기 시작한다.


한 : 야아. 감기 걸려어.

유미 : 괜찮아.... 이 정도쯤 젖는건 아무렇지두 않아. 젖은 옷은 말리면 되구 감기 걸려 사나흘 아프구 말면 그 뿐이야.

한 : ...

유미 : (빗 속에서 한을 돌아보며) 감기쯤은 암것두 아냐. 그냥 툭툭털구 일어나면 돼. 너... 아직 젊잖어.

한 : .. (가슴이 찡해진다)


유미 흠뻑 젖어들며 빗속을 걸어간다. 한... 그런 유미를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멀어지는 두 사람 한 화면에 잡히다가 유미에게서 멎으면, 갑자기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서는 유미.


유미 : ... (어느순간 씨익 미소 지으며) 나두... 멋지게 말했다...


스스로를 너무 대견해 하며 살짝 비오는 하늘을 올려 보는 유미 그렇게 미소짓는 유미의 모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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