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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숙이 경숙아버지] 02 - 어데 가서 내 아부지라 카기만 해봐라!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1.11.21|조회수761 목록 댓글 0

[경숙이 경숙아버지] 02 - 어데 가서 내 아부지라 카기만 해봐라!    

 

 

 

 


S# 1.  들녘 (낮)
피난짐을 가득 실은 소달구지를 끌고, 아이가 아이를 들쳐 업고, 만삭의 임산부를 부축하고, 거동이 불편한 노모를 지게에 지고, 저마다 보따리를 이고지고 걸어가는 피난행렬이 길다.

그 속에 보이는 할머니와 경미를 업은 경숙모와 경숙, 제각각 배신감을 곱씹으며, 줄지어 씩씩대고 걸어가며 

 


할머니     에미도 내삐리는 빌어묵을 자슥!

경숙모     이참에 서방 죽었다치믄 그뿐이다!

경숙       어데 가서 내 아부지라 카기만 해봐라!

할머니     천하의 시러배아들놈!

경숙모     천하의 문디자슥!

경숙       천하의 오사리잡탕!

경숙모/할  (돌아보며 동시에) 어데!!!

경숙모     어른이 그칸다꼬 니까지 그카믄 안 된다!

할머니     오사리잡탕이 먼지나 알고 지껄이는 기가?

경숙       (불만스레) 먼데?!

할머니     (으르듯) 아-가 지껄일 기 따로 있지! 어디서 씰 데 없이 주서들은 건 많아가지고…

경숙       (부루퉁 다시 가다) 만근아~, 소 또 탈났나?

 


저만치 상필과 함께 주저앉은 소를 잡아끌며 실랑이 하던 만근  

 


만근       (소에게) 일나라 쫌! 꼴 마이 묵었잖아?

할머니     (가며) 갸는 머가 꼴리가 길바닥에 퍼질러 앉았노?

상필       나오?는교? 짐을 쪼까 실었디 마 벌써 매가리가 빠진 모양입니더.

경숙모     을매나 왔다꼬 소 값도 몬하고...

할머니     고놈이나 성하믄 내 쫌 얻어타고 갈낀데...

E          (갑작스런 요란한 포성)

일동       (움찔 돌아보고)

할머니     빨개이들이 쳐들와가 칵 잡아묵게 고마 내삐리고 오그라. (서둘러 가고)

경숙모     (경숙과 뒤따르며) 퍼뜩 오이소.

 


알아듣기라도 한 듯 소 버둥대며 일어나고

 


상필       얼씨구 이 놈 봐라! 야가 어무이 말을 알아들은 모양입니더. 그란데 재수는 우예 안 보이는교?

 


돌연 일제히 돌아보는 할머니와 경숙모, 경숙.

 

할머니     갸가 누꼬?!

경숙모/경숙 (동시에 꽥) 그기 누군교?! 

상필/만근  (놀라 뻥하고)

 


S# 2. 나루터

만선이다, 만선! 다음 배 타라카이! /(발 동동) 우리 아-아부지 몬탔는데 우야믄 좋노? / (강에 짐 빠뜨리고) 옴마야 내 보따리~/ 흔들지 마이소, 배 디비진다! /배 도착하믄 거기 꼼짝 말고 있그라. 금방 뒤따라 갈테이까~ 등등 앞다퉈 배에 오르려는 사람들을 뒤로 한 채 피난민들을 가득 실은 만선 출발하고

뒷전에서 우왕좌왕하던 경숙네와 만근네

 

할머니     말세대이, 말세! 전쟁통이라꼬 우아래도 엄꾸마. (상필과 경숙모에게) 젊은 것들이 와 이래 재간도 없노? 이래 앉아서 꼼짝없이 죽을 끼가? 

경숙모     (퉁) 그라믄 어무이, 이 다라이라도 타고 갈랍니꺼?

할머니     친시어매 아이라꼬 이참에 황천 보내뿔라꼬?

상필       은비네는 안보이네. 벌써 배타고 가뿟나?

은비모     (E) 경숙아~ 만근아~(다가오며) 아이구 여 다 있었네. 을매나 찾아댕?다꼬. 여서 이러지 말고 내 따라 오보이소. (가는)

할머니     밑도 끝도 엄씨 우델 가자는 기고? 

은비모     (주위 의식해 말 못하고 답답해) 아 기냥 쫌 와 보이소. 와 보믄 안다카이. (서둘러 가며) 비키 보이소. 쪼매 가입시더.

일동       (어리둥절 따르고)

 


S# 3. 동 나루터 일각

인적 드문 후미진 강변에 짐을 가득 실은 배 대기하고 있고

경숙과 은비와 만근은 와중에도 비석치기 하며 놀고

경숙네, 만근네, 은비네 일동 기다리며

 


상필       다 탈 자리가 있겠나? 짐이 저래 많은데.

은비모     우예 낑가 앉으믄 몬가겠는교.

명랑       (거들먹) 우리가 이래봬도 마님 외가 쪽으로 6촌간 아이가. (하다) 오신다, 오신다. (반색으로 가며) 인자 나오십니꺼?

 


연을 챙겨든 윤섭과 함께 배로 오던 최사장과 윤섭모, 뜨악해 다가오고

 


경숙모     (손짓해 부르며 낮춰) 경숙아 퍼뜩 온나. 니들도 언능.

최사장     (뜨악) 와,와들 여 모인 기고? 

은비모     우리도 쪼매만 낑가주이소. 사람들이 하도 몰리가 배를 탈 수가 없심더.

최사장     (성가시지만 별 수 없이 선장에게) 다 타겠나?

선장       짐을 내리면 모릴까 다 몬타지요. 소까지 저래 있는데.

할머니     (오엘로 들으라는 듯) 그카믄 짐을 내리야제. 이 난리통에 사람 목심이 중하지 짐이 중한가.

윤섭모     (난감해 무심결에) 어머 저것도 줄일 만큼 줄인 건데…

명랑       소는 내삐리고 가도 됩니더. 안 글나?

상필       (난감) 어? 어…

최사장     (짜증) 짐 내린다꼬 ? 사람이나 탈끼고. 마 뒷배 타고 오소. (배로 가며 선장에게) 해 떨어지기 전에 퍼뜩 출발하그라.

윤섭모     (당황) 아니 여보… 

명랑       (난처해) 아니 사장님… 

할머니     아이구 사장님, 이 늙은이만이라도 우째 안 되겠는교?

최사장     안 오고 머하노? 시간 없대이.

윤섭모     미안해서 어떡하죠? … (어정쩡 인사로 가고)

윤섭       (가며) 만근아, 경숙아, 은비야, 나중에 연 날리기 하자. 

경숙       니 혼자 마이 날리그라!

윤섭       (뭐라고 하려는데)

윤섭모     (얼른 잡아끌며 배에 타고)

 


외면해 돌아선 윤섭네를 태운 배 떠나면

허탈하게 지켜보던 일동

 


할머니     이꼴 보일라꼬 우덜을 다 끌고 왔나? 니는 먼 씰모가 있다꼬 늙어빠진 소를 여까지 끌고 오노!

상필       (끙... 명랑에게) 6촌간이라메?

명랑       (되레 짜증) 세상인심이 이래 무서불지 누가 알았노!

경숙       내는 인자 윤섭이 쟈하곤 다신 안 논다.

만근       내도! 

은비       내도! 

 


그새 남겨진 사람들을 잊었는지 윤섭네의 희미한 웃음소리를 실은 배가 지는 해를 받으며 멀어지고

 


S# 4. 나루터 강변 (저녁)

처참한 심경으로 둘러앉아, 주먹밥과 감자로 끼니를 때우는 경숙네 일동.

배를 놓친 다른 피난민들 역시 가족끼리 둘러앉아 저녁 먹고

와중에도 경숙과 아이들 소풍이라도 온 듯 뛰어다닌다.

그 통에 경숙에게 발을 밟힌 할머니

 


할머니     (경숙의 엉덩짝을 찰싹 때리며) 고마 설치라 안캤나?! 아파죽겠네 기냥. 지금 무슨 동네 운동회 나온 중 아나?!

경숙모     어무이는 아-들이 다 그렇지 뭘 안다꼬..

상필       (아이들에게) 다 묵었으믄 소 잘 있나 가보그라.

아이들     (가고)

명랑       내일 배탈라 캐도 그 소는 아이라고 본다, 내는.

할머니     (새삼 열나) 짐 쪼매 내리믄 될 꺼를 이래 사람을 버리고 가도 되는 기가? 하기사 나랏님도 부산으로 내빼고, 아들놈도 지 혼자 살겠다고 내빼는 판국에, 누구를 탓할 끼고.

경숙모     어무이도 혼자 배타고 갈라꼬 안했는교.

할머니     그라믄 늘그막에 길바닥에서 객사해야 옳나?!

 


갑자기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은비모     우째 비까지 내리쌌노? (벌여놓은 음식들 치우고)

경숙모     (같이 치우며) 이럴 중 알았으믄 애비 말대로 집이나 지키고 있을 걸 그랬구마.

할머니     (잽싸게 전모 꺼내 쓰며) 니 혼자 가서 지키그라. 가마이 앉아서 황천 가긴 내 아직 젊다. 그라고 빨개이들이 쳐들어오믄 우리 같은 여자들을 온전히 내삐리둘 꺼 같으나? 생각만 해도 끔찍시럽다.

은비모     (어이없어 웃음으로) 할무이는 벨 걱정을 다... 우리라믄 또 모를까...

경숙모     맴은 경숙이하고 동갑 아인교.

할머니     ? 살 아래라꼬 유세하는 기가? 그캐봐야 젖탱이 방탱이 팍 퍼져갖꼬 넘들이 그래 봐주는 중 아나? 내보고 더 젊다카지. (명랑과 상필에게) 그렇재?

명랑       (돌아앉으며) 어데예. 은비애미한테 먼 소릴 들을라꼬.

할머니     사나가 그래 설설 기니까 쟈가 더 설치는 기라!

은비모     그란데 어무이는 우째 배 탈 때만 늘그이라예?

경숙모     우리 어무이 나이는 고무줄나이 아인교.

일동       (웃다 요란한 비행기 소리에 돌아보면)        

 


멀리서 날아오는 전투기. 

아이들, 호주기다~! 뱅기다~! 소리치며 신나서 쫓아가보지만

전투기 순식간에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 사라지고

 


만근       이야~ 멋찌다. 그란데 저래 날라다니믄 똥은 우예 누노?

은비       뱅기에 변소 있겠재.

경숙       저래 쪼맨한 데 변소가 우예 있겠노? 오강에다 눌끼다.

만근/은비  맞다 맞다.

     

다시 가까워져 오는 요란한 전투기 소리-

아이들, 다시 돌아보면

순식간에 다시 나타난 전투기가 난데없이 총격을 퍼부으며 날아온다.

일순 놀라 엉거주춤 굳어있던 경숙모 일동.

 


할머니     아이고 내 죽는다~ (소리치며 달리고)

상필       (뛰며) 퍼뜩 내빼라-!

 

어느새 굵어지기 시작한 빗줄기와 함께 쏟아지는 총탄 속을 달리는 경숙, 달리는 은비, 달리는 만근.

경숙모 일동도 혼비백산 산지사방으로 달리고...

여기저기서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피난민들... 만삭의 임산부도 쓰러지고, 소달구지도 엎어지고, 노인 아이 할 거 없이 푹푹 꼬꾸라진다.

마침내 총격을 멈춘 전투기가 기수를 돌려 날아가면...

납작 엎드린 채 살며시 고개를 드는 경숙, 주위 둘러보면

혹여 다칠세라 서로 은비를 감싼 채 머리를 박고 있는 명랑과 은비모.

치마를 머리 위까지 뒤집어쓴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할머니.

바위 뒤에서 서로 꼭 부둥켜안고 있는 만근과 상필의 모습 보이고...

돌연, 뒤에서 누군가 와락 경숙을 잡아 일으킨다. 

놀란 경숙의 눈에 들어오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반쯤 잘려나간 남자의 팔.

와중에도 딸을 찾아 헤매던 남자가 실망으로 비틀비틀 다시 걸어가면

놀라 숨을 멈췄던 경숙, 털퍼덕 주저앉고

안 그래도 경숙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경숙모, 그 소리에 황급히 다가와 보면

충격으로 혼이 반쯤 달아난 얼굴로 멍해서 보는 경숙.

그 이마에는 뛸 때 엎어지면서 생긴 상처에 피가 굳어있다. 

가슴이 철렁하는 경숙모, 총구멍이라도 났는지 황망히 경숙의 머리를 돌려보고, 팔, 다리, 온 몸을 더듬어 상처가 없는지 확인하고, 안도로 와락 경숙을 껴안는다.

멍하게 안겨있던 경숙,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며 입가에 문득 미소가 번진다. 

보면, 만근네 소가 풀어헤쳐진 남의 보따리에 코를 박고 주먹밥을 먹고 있다... 

 


S# 5. 부산 장거리, 좌판 국밥집 (다른 날 낮)

국밥을 다 먹은 손님들 두엇이 일어나 계산하고 나가고

 


국밥댁     또 오이소~ (그릇 치우려는데)

남식       (지게 옆에 놓고, 국밥 먹던) 아줌마 잠깐!

 


잽싸게 손님들이 먹다 남긴 국밥을 자기 그릇에 쓸어 담는 남식.

나란히 앉아 국밥 먹던 재수, 떨떠름 돌아보고

 

국밥댁     모지라믄 한 그릇 더 시켜 묵지...

남식       (남긴 깍두기까지 제 그릇에 쓸어 담으며) 지게 져서 얼마나 번다구요. 한 푼이라도 아껴야지. 어차피 버릴 거잖아요.

국밥댁     그래 아낀다꼬 금방 부자 될 끼가?

남식       티끌 모아 태산이죠. 부산 바닥에 혈혈단신 혼자뿐인데, 기댈 데라곤 돈 밖에 더 있어요.

국밥댁     식구들은 다 우짜고?

남식       피난 오다 뿔뿔이 흩어졌죠 뭐...

국밥댑     고향이 어딘데?

남식       예? 서, 서울요... (내심 찔려 돌아앉아 먹고)

국밥댁     (쯧쯔 혀 차고, 아들을 데리고 와 앉는 손님에게) 아(들) 그래 델꼬 나다니지 마소. 길거리서 징집당해뿔면 우짤라꼬.

손님       야가 인자 열다섯인데 징집은 무슨... 국밥 두 그릇 주소.

국밥댁     (국밥 푸며) 모르는 소리 마이소. 아-든 어른이든 어깨에 총 메보라 캐서 땅에만 안 끌리믄 다 트럭에 싣고 가뿐다 아입니꺼. (남식과 재수에게) 거그들도 조심하소.

남식       전 걱정 없어요. 낼 모레면 사십인데요 무슨.

재수       (어이없어 실소)

국밥댁     그래 안 보이는데...?

남식       진짜예요. 피난민증 보여드려요? (주머니에서 꺼내려는데)

국밥댁     됐소 고마. 그렇다믄 그런 기겠재. 암튼 재주 좋네. (가서 일하고)

재수       (남식에게 먹던 국밥 내밀며) 이거도 묵을랍니꺼, 행님?

남식       ? (경계로 보면)

재수       지게 질라믄 마~이 묵어야한다 아입니꺼. 행님이 혹시 묵을지 몰라서, 내 특~별히 깨끗이 묵었다 아입니꺼.

남식       아, 안 그래도 되는데...

재수       (그릇에 부어주며) 체면 차릴 거 없심더. 동생이 주는 긴데 머.

남식       (얼결에) 고, 고맙습니다. 

재수       말 놓이소. 낼 모레 사십이믄 내보다 서너 살은 족히 많을 낀데.

남식       예에... 예 뭐...

재수       (어깨 툭툭 치며) 천천히 마이 묵고 오소. (장구와 짐 챙겨들고 일어나며 부러 크게) 그라믄 또 보십시다이, 행님. (가며) 아지매~ 

 


한쪽에서 새 국밥 솥에 불 때고 있는 국밥댁에게 다가간 재수, 뭔가 귓속말을 하고는, 남식을 돌아보며 친근한 웃음으로 손을 들어 보인다.  

국밥을 먹으며 지켜보던 남식, 덩달아 어정쩡 웃으며 손들어 보이고

 


S# 6. 근처 골목

피난민들이 가족들을 찾는 벽보가 도배를 하다시피 붙어있는 전봇대에 기대서서 꺼억 트림을 하는 재수.

그 뒤로 보이는 빈 지게를 멘 남식, 씩씩 걸어오며

 


남식       뭐 그런 자식이 다 있어? 저하고 나하고 언제 봤다고... (열나 재수 못 보고 지나치며) 잡히기만 해봐. 이자까지 쳐서 받아내고 말테니까.

재수       국밥 한 그릇에 이자는 무슨. 사나가 쪼잔쿠로...

남식       (돌아보고)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도망은 안 쳤네.

재수       덕분에 잘 묵었대이. 냉중에 낙동강 근바(방) 오거든 조절구 찾아오그라. 낙동강 조절구네가 어디고 물으믄, 말 몬하는 아 빼곤 다 안다. 그때 상다리 뿌라지게 차리주꾸마. (가려는데)

남식       (잡으며) 어딜 도망 가? 낙동강 조절구고 뭐고 필요 없고, (손 내밀며) 내 국밥값 내놔.

재수       (손바닥으로 탁 쳐주고) 있어야 줄 꺼 아이가. 묵고 죽을라 캐도 땡전 한 푼 엄따.

남식       이 도둑놈! 그리고 당신 왜 반말야? 나이도 어린 게.

재수       그래? 그라마 순경나리 불러서 함 따지보까? 나이 속카가 피난민증 맹글었다카믄 그날로 영창행일 낀데.

남식       (당황) 어, 어쨌거나 초면에 반말하는 게 어딨어요?

재수       하이고 봐라, 내 고럴 줄 알았다.

남식       좋아요. 어느 게 더 큰 죈지, 가서 어디 따져보자구요.

재수       (성가셔) 따져 봐야 입만 아푸다. 담에 보자. (가려면)

남식       (다시 잡으며) 이봐요, 계산은 끝내야죠. 어디 진짜 없나 주머니 좀 봐요. (주머니 뒤지려 들면)

재수       (캥겨서) 와 이카노? 거 참 찐드기대이... (하다 돌연 손 쳐들며) 어, 군인아저씨!

남식       (놀라 돌아보고)

재수       (그 틈에 얼른 돌아서서 내빼는데)

 


때마침 골목 끝에 진짜 군인(한국)이 미군과 함께 나타난다.

 


재수       (놀라 도로 돌아서면)

남식       (속은 걸 알고 돌아서다 역시 놀라 도로 돌아서고)

미군       헤이~ 컴 온!

재수       야 토끼자. (하며 못 들은 척 슬금슬금 가고)

남식       (따라 슬금슬금 가는데)

미군       헤이 스톱! (철컥 장전한다)

재수/남식  (놀라 두 손을 쳐들고, 돌아서면)

미군       (손짓으로) 컴 온, 컴 온!

 


S# 7. 들녘 (다음 날 낮)

맥이 쭉 빠져 터덜터덜 걸어오는 경숙네와 만근네 일동.

 


상필       이래 집으로 도로 가는 기 잘하는 긴지 우짜는 긴지...

경숙모     (내심 걱정) 은비네 따라서 걸어서라도 갈 걸 그랬지예?

할머니     내는 일 없다. 길바닥에서 그래 총 맞아 주글거믄, 죽디라도 집에서 죽을란다.

경숙       인자 빨개이 세상 되믄 은비는 영 몬보는 기재?

경숙모     모르재. 앞일 우예 아노.

상필       아이다. 쪼매만 참고 있으마, 양코백이들이 구해주러 올끼다.

만근       양코백이들이? 그라믄 어제는 와 우덜한테 총을 쏜 긴데?

상필       (알길 없어 역시 답답하지만) 뭔가 잘몬 안 기재... 그럴 끼다.

할머니     잘몬 알기는. 거(기) 다 배타고 피난갈라꼬 난리치던 사람들 뿌인데, 빨개이믄 와 피난을 가겠노? 세상 믿을 놈 없다카디, 말 안통하고 우째 나올지 알 수 없기는 쪽바리나 코재이나 거기서 거긴 기라. 빨개이들은 또 우예 나올지...

일동       (걱정스럽고) 

할머니     (막막해 열내며) 쪽바리들 보다 더하믄 더했지 들할 리 있겠나. 아-고 어른이고 막 잡아죽인다 카던데.

경숙모     어무이 고마하이소. 아-들 괜시리 겁묵구로.

상필       맞심더. 누가 오든지 또 우예 살길이 안 생기겠는교? 느그들도 지레 겁물 거 없다. 행여라도 누가 몬살게 굴믄, 아버지가 이 꽹과리로다 고마 정신을 홀랑 빼가꼬, 쩌~기 태평양으로 쫓아뿔끼다! (보란 듯이 힘껏 꽹과리를 쳐댄다)

일동       (기분 풀려 웃고)

할머니     고마 시끄럽다! 귀청 떨어지겠네.

상필       (계속 치며) 이라믄 혼 안 빠질 놈 엄겠지예?

할머니     치아뿌라! 내 정신이 먼저 빠쪄뿌겠다, 이노마야.

상필       하하하하~ 인자 어무이 같심더. 그란데 소 우데 갔노? (이리저리 돌아보면)

 


소가 저만치 길바닥에 뻗어 있다.

 


만근       (한숨으로 다가가며) 니 또 와 이카노? 일 나라. (늘 하던 소리로) 니 주겄나? (하다 의아) 어? (코에 손대보고, 뻥 돌아보며) 아부지, 야 숨 안 쉰다.

일동       (뻥) 으이? 

 


S# 8. 경숙이네 마당

평상에 둘러앉아 고기 먹는 경숙네와 만근네 일동.

 


경숙모     (경미 업고, 도마에 고기 썰며, 주워 먹으며) 으메 꼬시라~ 늙어서 벨 맛없을 중 알았디 맹색이 그래도 소라꼬 이름값 하네예 (상필에게) 덕분에 입이 호강입니더.

할머니     니는 우째 썰어주는 거보다 니 입에 들어가는 기 더 많노?

상필       마이 드이소. 날마다 묵어도 메칠은 묵을 끼라예.

경숙모     어무이도 너무 그라지 마이소. 내도 소시적엔 고기 귀한 중 모르고 컸다 아입니꺼. 이 집구석에 시집와가 고기 맛을 몬봐서 그러지예.

할머니     니 복이 고거 뿌인걸 집구석 탓은 와하노?

상필       은비네도 있었으믄 좋았을 낀데. 

할머니     갸들이 묵을 복이 없는 기재. 기관총을 그래 볶아대도 멀쩡하던 놈이 꽹과리 소리에 죽을 중 누가 알았노?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 카드이, 너그 소가 딱 그 짝이다. (경숙에게) 저 가스나 말도 안하고 쳐묵는 거 좀 봐라. 맛난 건 알아가지고.  

경숙       (정신없이 먹기만)

상필       (만근에게) 사나자슥이 먹는 거 앞에 놓고 찔찔 짜기는... 그라믄 소한테 쪼매 덜 미안하나?

만근       (훌쩍이며, 먹으며) 그래도 불쌍타 아입니꺼.

상필       어차피 빨개이들 쳐들어오믄 다 공출해 뿐다꼬, 집집마다 멀쩡한 소도 다 잡는다 아이가. 울 거 없다.

경숙모     아이구 술이 빠?네예. 우째 맨숭맨숭하다 캤다. 경숙아 정지간에서 아부지 묵다 냄긴 술병 갖고 오그라.

할머니     괴기맛을 보더이 쟈가 오늘 날 잡았네. 그래 한잔 하자. 이 가스나야 고마 쳐묵고 퍼득 갖고 온나.

경숙       (눈길도 안 주고 먹으며) 난 술 필요엄따.

할머니     (으르듯) 저 기 근데.

경숙       (그제야 입안 가득 고기 밀어 넣으며 가고) 

 


S# 9. 동 부엌

경숙       (부위별로 고기 건져둔 채반 보며) 이거는 머꼬? (낼름 소 혓바닥 한쪽 집어먹고, 낮춰 탄성으로) 이야~ 쫄깃쫄깃, 꼬시다~ (밖 살피며, 짐짓) 술이 어딨노? (소리치며 한 점 더 집어먹고, 대답 없지만 모르고, 술 찾아 둘러보고)

 


S# 10. 다시 마당

술병 들고 나오던 경숙, 놀라 주춤 서고

보면, 어느새 들이닥친 인민군들에게 포위당한 채, 두 팔을 번쩍 치켜들고 있는 경숙모 일동.

놀라 반사적으로 번쩍 두 손을 쳐드는 경숙.

그 바람에 들고 있던 술병이 바닥에 떨어진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지는 술병 C.U.

그 소리에 놀라 자기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기는 소년병 진수, 그 탄성으로 총은 총대로 몸은 몸대로 바닥으로 나가떨어지고

와장창 깨지는 간장독!

 


경숙모     (다급히) 오메, 내 간장~!

 


깨진 간장독에서 흘러나온 검붉은 간장이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S# 11. 학교 운동장

막 도착한 군용트럭에서, 거리에서 징집 당한 행색 그대로, 제각각 자기 소지품을 챙겨들고 내리는 징집병들.

역시 제각각 장구와 지게를 들고 내린 재수와 남식, 어리둥절 둘러보면

앞서 도착한 징집병들이 줄을 서서 이름과 나이, 주소를 대고, 군복을 지급받고 있다.

 


군인1      자 빨리빨리 줄 서, 줄!

재수       (움직이며 낮춰) 꼴랑 국밥 한 그릇 때문에 목심 내놓게 생겼네. 니 때문에 이기 무슨 꼴이고? 

남식       (역시 낮춰) 지금 누가 할 소릴 누가 하는 거요? 내가 그놈의 총질하기 싫어서 신의주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재수       신의주? 

남식       (질겁으로 낮춰) 아 좀 조용히 해요. 

재수       (다시 낮춰) 고향이 서울이라 카디 것도 순 거짓부렁이구마. 니 정체가 뭐꼬? (놀리듯) 혹시 빨개이 아이가?

남식       (낮춰 펄쩍) 거 좀 말 같은 소리를 해요. 그럼 내가 힘들게 여기까지 뭐하러 피난와요? 이북출신이라 그러면 무조건 의심부터 하니까 그런 거지.

재수       거짓부렁도 자꾸 하다보믄 병 된다 아이가. 조심하그라.

남식       내 말이! 남 등쳐먹는 것도 자꾸 하다보면 버릇 된다구요. (하며 차례 다가와 피난민증 꺼내려는데)

재수       (넌지시) 그 고무줄 피난민증은 안 내놓는 기 좋을 낀데... 그라고 전장에서 뼈를 묻을 각오 아이믄, 사실대로 말해가 머 좋을 끼고.

군인2      (책상에 앉은/ 손 내밀며) 신분증.

남식       (피난민증 도로 넣으며) 어, 없는데요...

군인2      거류민증이든 피난민증이든 있을 거 아뇨?

남식       지게 지다 왔는데 그런 중요한 걸 들고 다니는 사람이 어딨어요.

군인2      (못마땅하지만) 이름.

남식       박, 박... (해놓고는 생각 안 나 머뭇대는데)

재수       삼팔아, 퍼뜩퍼뜩 하고 비키그라. 뜨거버 죽겠다.

군인2      박 삼팔?

일동       (낄낄 웃고)

남식       (돌아보며 우거지상으로 작게) 삼팔이 뭐예요, 삼팔이?

재수       (놀리듯 낮춰) 그라믄 따라지든가?

 


S# 12. 동 교실 (밤)

누가 입던 것인지 낡고 명패까지 붙어 있는 군복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재수.

 


재수       옷 꼴이 이기 뭐꼬? 걸배이를 줘도 안 입겠구마. 이거 입고 어디 뽀대가 나겠나?

남식       (군복 착착 접으며) 목숨이 왔다 갔다 하게 생긴 판국에...

재수       그래도 내는 뽀대가 중요하거덩.

남식       그런 사람이 국밥값을 등쳐먹어요? 돈이 없으면 먹지를 말지.

재수       그노마 참 찔기네. 가스나도 아이고 어디 시끄러버 살겠나. 고마 엥가이 하자, 삼팔아.

남식       아 그 삼팔이 소리 좀 하지 마요.

재수       그라마 머라꼬 부르까? 삼팔이믄... 한 끝이구마. 한끝이라 캐주까?

남식       관둡시다, 관둬. (열나 모포 덮고 누워버리고)

재수       (낄낄 눕다 무심결에 발 닿으면)

남식       (뒷발길질로 차내고)

재수       (지지 않고 차는)

 


재수와 남식, 서로 뒷발질로 차대며... F.O

 


S# 13. 경숙이네 마당 (다음 날 낮)

F.I

똥마려운 폼으로 기둥 붙잡고 선 할머니, 뒷간 쪽 향해

 


할머니     가스나야 퍼뜩 좀 나오그라. 배때지 꼴리가 죽겠다! 할메 잡을라 카나?

경숙모     (경미 업고, 쌀 배급 타서 들어오며) 안즉도 속이 그래 안 좋은 기라예? 우야꼬?

할머니     쟈나 쫌 퍼뜩 나오라캐라. 싸기 일보 직전이다. (하다 뒷간 문소리에 배 틀어쥐고 부리나케 가고)

 


할머니와 엇갈려 뒷간 쪽에서 나오는 경숙, 평상에 모로 쓰러지고

 

경숙모     엥가이 묵지, 아까운 거 다 빼내뿌리네.

경숙       (힘없이) 나으믄 묵게 내 꺼 남가 도~.

경숙모     남가둘 기 어딨노? 그날 빨개이들이 싹 다 쓸어 묵고, 쪼매 꼬불친 거?에 엄따. 

진수       (들어오며) 어머니 동무.

경숙       (놀라 벌떡 일어나 앉고)           

경숙모     (역시 놀라) 옴마야! 우야노? 지는 기냥 그렇다는 얘긴데예...

진수       예? 뭐가요?

경숙모     아, 아이라예. 암말도 안했심더.

진수       (배급 쌀자루 내밀며) 이거 쌀 드세요.

경숙모     지도 방금 타왔는데예.

진수       알아요. 두고 드시라구요. 저번에 제가 간장독도 깨고 그래서...

경숙       (힘없이 도로 눕고)

경숙모     (역시 안도로) 아~ 내는 또...  고맙심더. 잘 묵을께예.

진수       넌 학교 안 갔네? 어디 아퍼?

경숙       학교 안 다니는데예.

진수       응? 몇 살인데 학교를 안 다녀?

경숙모     ?살이나 마나 학교댕길 형편이 됩니꺼. 그라고 가스나가 시집가서 살림만 잘하믄 되지, 그거 쪼매 배운다꼬 씰모가 있는 거도 아이고. 

진수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인민공화국에서는 남자고 여자고, 부자고 가난한 사람이고 차별 없이, 모든 인민이 다 평등합니다. 다 같이 배우고, 다 같이 일하고, 다 같이 잘사는 세상! 그게 우리 인민공화국의 목표라구요. 자본주의처럼 따로 돈 받고 부자들만 가르치는 거 아니니까 낼부터 학교 꼭 보내세요.

경숙모     야.... 

진수       너도 알았지? 낼부터는 학교 꼭 다녀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거다.

경숙       (힘없이 일어나 앉으며) 훌륭한 사람이 먼데예?

진수       그거야... 이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일꾼이 되는 거지.

경숙       (와중에도 호기심에) 그래예?

 


아이들의 노래 소리 선행되며

 


S# 14. 학교 (다음 날 낮)

칠판에 북한 노래가사 적혀있고, 인민군 여교사의 풍금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아이들. 

조그마한 아이들 틈에 끼어 앉은 경숙과 만근도 열심히 노래 부른다.

 


경숙일동   (노래하는)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욱~ 오늘도 자유조선 꽃다발 위에 역력히 비쳐주는 거룩한 자욱~

 


노래하던 경숙 보면

복도에서 창문 너머로 보고 있던 진수가 반갑게 손을 들어 보인다.

따라 손을 들어 보이는 경숙, 더 신나서 노래 부르고

 


S# 15. 부산 학교(훈련소) 복도

훈련 중 휴식시간 분위기.

파김치가 된 징집병들 제각각 총을 소지한 채 교실과 복도에서 쉬고,

복도 한쪽에는 평복 차림의 대필자가 책상을 놓고 앉아있다.

그 주위에 둘러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징집병들 속에 재수도 보이며

 


대필       (완성한 편지를 내용확인 차 읽어주는) 막둥이 이름은 종전으로 지읍시다. 끝날 종, 전쟁할 때 전! 종전이가 세상에 태어날 때에는 이 전쟁도 끝나고, 우리 다 같이 무사 무탈하게 다시 만나기를 빌며... 임자, 아버지 어머니 내 동생들과 아이들을 잘 부탁하오. 몸 성히 돌아가리다.

징집병1    (새삼 감회에 젖어 헛기침하고)

대필       뭐 더 쓸 말 있으믄 부르소. 추신~해갖고 밑에 부치믄 되이까.

징집병1    됐심더... 맴 속에 있는 말을 다 풀자믄 밤을 새도 모지란다 아입니꺼.

대필       그라마 두 장 꽉 채웠으이까 장당 OO원씩 OO원.

징집병1    (돈 꺼내다) 예에~? 아까는 O원이라 카디 말이 와 이래 달라지는교?

대필       그거야 짧게 ? 줄 쓸 때 얘기고, 양에 따라 값이 달라지는 기 당연한 기재. 먹물이 들어도 을매나 더 들었는데.

징집병1    그라마 진즉에 그런 얘길 해줬어야재. 도둑이 따로 없구마... (하면서도 돈 내며) 학실히 들어가게 잘 부치줘야 합니더.

대필       하루이틀 장사합니꺼. 걱정 붙들어 매소. 다음!

재수       짧으마 짧을수록 싸다 그 말이지요?

대필       하모요. 

재수       그라마 이래 쓰소. (헛기침하고 또박또박) 장구 손대믄 죽는대이!

대필       ? (보고)

일동       (키득거리고) 

대필       그기 전분교?

재수       그 말을 더 쭐아쓸 수 있으믄 쓰소.

대필       거그서 더? (픽 실소) 마 그라입시더. (뭔가 큼지막하게 쓱쓱 쓰고)

 


S# 16. 동 교실

호호 불어서 대필한 편지의 잉크를 말리던 재수, 흡족한 듯 다시 보고

 


남식       (뭔가 해서 보면)

재수       (놀리듯 팔랑팔랑 흔들며) 니가 본다꼬 아나?

남식       뭐라는 거예요, 그게?

재수       장구 손대믄 죽는다, 그 말 아이가. 무식하기는...

남식       (기막혀 웃고) 그걸 지금 편지라고 쓴 거예요? 

재수       할 말만 하믄 됐재, 날씨가 우짜네저짜네 늘어놔야 펜지가? (장구를 싼 보자기 안에 편지 집어넣으며) 우리 식구는 내말이라믄 알아서 철썩 같이 새겨들으이까, 신경 끊으라이.

대필       (다가와) 훈련 또 시작할 끼라예. 퍼뜩 주이소. 보낼 기 이긴교?

재수       내한테는 목심같은 장군데 (자못 으르듯) 중간에 손 타는 일 엄겠지요? (남식 의식해 슬쩍 돈 주며) 마 잘 부탁합니대이. 

대필       (돈 보고) 에(게)? 물건이 이래 크믄 소포료가 을맨데, 한 장 더 주소.

남식       ? (보고)

재수       (돌아앉아 양말 안에서 한 장 더 꺼내주고)

대필       그라마 몸 보전 잘하소. (가고)

남식       (기막혀 씩씩) 어으으~ 뭐, 먹고 죽으려고 해도 돈이 없어? 긴 말 할 거 없이 내 돈 내놔.

재수       뭔 돈을 자꾸 내놔라 캐쌌노? 은제적 얘긴지, 기억도 가물가물하구마.

남식       뭐,뭐,뭐라구? 이 순 도둑놈, 사기꾼! (벌떡 일어나 총 겨누며) 누구를 병신 머저리로 알아? 내 돈 내놔, 당장!

재수       으메 무시라~ (일어나며) 니만 총 있나? 내도 총 있다. 나이도 어린놈이 엇따 말꽁지  다 떼묵고 혀짜래기 소리를 하노?

남식       뭘 잘했다고 큰소리야? 대접을 받고 싶으면 나이값을 해! 어디 떼먹을 게 없어서 남의 국밥값을 떼먹어, 치사하게!

재수       말 잘했다. 겨우 그거 갖고 파리새깽이마냥 졸졸 따라 댕기는 니는 안 치사시럽고? 사내자슥이 꼭 그래 살고 싶나? 한번만 더 귀찮게 하그라이. 확 주디를 쌔리 꼬매삘테이까.

남식       끝까지 오리발로 나오시겠다. 좋아. 너같은 놈은 뜨거운 맛을 봐야 돼. (철컥 장전하면)

징집병들   (어이없다는 듯 멀뚱 보고)

재수       이 문디자슥, 어데 배짱있으믄 쏴봐라!

 

군인1,2를 대동하고 어느새 다가온 교관, 재수와 남식을 퍽 박치기 시키고    

재수/남식  (비명으로) 누꼬? / 누구야?

교관       (머리통 갈기며) 잘들 논다, 잘들 놀아! 이 자식들이 총 가지고 어디서 장난질야?

일동       (키득거리고)

교관       (돌아보며 왁) 시끄러! 총알 없다고 장난감인 줄 알아?! (손가락으로 허공을 찌르며 재수와 남식에게) 니들은 최전방이야! 최전방!

 


S# 17. 최전방 참호(다른 날 밤)

칠흑같이 어두운 전방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재수와 남식.

 


재수       (반 혼잣말로) 우리 어무이 말씀대로 앞일이 깜깜하기가 심청애비 눈깔이구마. 눈앞도 깜깜하고... (남식 돌아보며) 옆에 놈은 더 깜깜하고...

남식       (불끈 쏘아보면)

재수       와? 또 국밥값 얘기할라꼬?

남식       (이 악 물고 으르듯) 나한테 말 걸지 말라고 했다~.

재수       (고개 절레절레) 악연이대이, 악연.

남식       (열나 양손 불끈 쥐고) 으~~ (하다 보면 옆에서 으~신음소리 들린다.  또 놀리나 싶어 불끈 돌아보면)

군인3      (칼로 팔뚝에 이름 새기며) 으메 아픈 거~

재수       (덩달아 오만상 쓰며) 잠 안자고 머하는교?

군인3      이대로 군번도 군표도 없이 죽으마, 식구들이 내가 어디서 뭐하다 죽었는지 우예 알겠는교. 이름이라도 냄겨놔야지. 정식 군인들이야 죽으믄 나라에서 다 알아서 해줄 끼지만, 우덜같이 길바닥에서 끌려온 하빠리들이야 죽어도 누가 죽었는지 모른다 아입니꺼. 

남식       (착잡)

재수       그카긴 해도 생살을 그래 파믄 마이 아플 낀데...

군인3      아프지예. 그케도 어디 빽 엄어서 집에 기별도 몬하고 사지로 끌려온 설움만 하겠는교. 돈 있고 빽있는 놈덜은 다 후방으로 빠지삘고, 암 거도 없는 놈들만 이래 개죽음 당하는 기라예. 오죽하믄 죽을 때도 어무이!하고 죽는 기 아이라, 빽-하고 죽는다 아입니(하다 갑자기 날아온 총탄을 맞고 모로 쓰러진다) 빽-!  

군인4      (E) 기습이다! 전원 사격-!

 


요란한 총격전 시작되고 

놀란 재수와 남식, 머리 박은 채 한바탕 쏘아대고

 

남식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탄창 바꾸려 애쓰며) ... 내래 딘짜 이름은 남식이라요. 박 남식... 내래 부탁이 있시오. 꼭 좀 들어주시라요. 대신 국밥값은 받은 걸로 치갔시오.

재수       (역시 안 들어가는 탄창을 붙잡고 실랑이하며) 미친 놈! (소리쳐) 분대장님, 이 총 좀 봐주이소~ 총알이 안 들어간다 아입니꺼~ 

남식       내래 벤벤티 못해서리 혼자만 내려왔는데... (울먹이며 징징) 우리 불쌍한 아반... 오마니... 누부... 죽어서라도 만나게... 내래 죽으면, 머리카락이라도 짤라서 바다에 뿌려주시라요.

재수       니까지 와 그카노? 안 그케도 떨리 죽겠구마. 그라고 니같이 질긴 놈은 그래 쉽게 안 죽는대이. 잡소리 말고 퍼뜩 쏘기나 하그라.

재수/남식  (다시 머리 박은 채 총 쏘고) 

 


S# 18. 경숙이네 마당 (다른 날 낮)

눈이 휘둥그레져 하얀 레이스원피스(1부 32씬의)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경숙.

 


경숙       이 기 진짜 내 주는 기라예?

진수       마음에 들어?

경숙       하모요! 억수로 입고 싶었던 기라예. 입어 봐도 되지예? (신나서 방으로 들어가고)

할머니     내 꺼는 머 없나? 제분공장 사장네 살림을 다 몰수했으믄 비싼 양단 치마저고리도 많았을 낀데.

경숙모     (경미 업고, 쌀에 돌 고르며) 어무이도 참... 아~꺼 챙기다 준 거만도 어딘데. 이래 고기(생선)도 한 마리 갖다 줬구마. 이거 드이소.

할머니     말도 몬하나?

진수       (머쓱) 있으면 다음에 챙겨다 드릴게요.

할머니     오야~, 어차피 돈 드는 거도 아잉끼네! 인민군 동무 덕분에 호강 좀 해보재이. (호들갑스레 웃고)

진수       (따라 웃다, 방에서 나오는 경숙 보고) 야 이쁘다.

경숙       그래예? (내려와 얼른 고무신 신어 보이며) 내는 인자 이거 입고 학교 열심히 댕기가, 훌륭한 사람이 될 끼라예.

할머니     입지마라! 꼭 서양 애기구신 같구마. 꿈에 볼까 무섭다.

경숙모     (제지로) 어무이.

할머니     내는 솔직한 사람이다. 니는 안 이상하나? 옷만 이쁘믄 머하노, 지한테 어울려야재. 안 그라나 인민군 동무?

진수       (난처)

경숙       샘나서 그러는 기재? 내도 다 안다. 오빠야 동무, 우리 할무이 꺼는 아무 거도 갖다 주지 마이소. 맨날 낼로 구박한다 아이가.

할머니     저 가스나, 평생 도움이 안 된다 카이!

경숙       (진수 뒤로 얼른 숨고)

진수       할머니 동무, 아이들은 이 나라의 희망입니다. 구박하지 마세요.

할머니     내가 머랬다꼬... (끙)

 


S# 19. 다시 경숙이네 마당 (밤)

불 꺼진 어두운 마당.

부엌에서 몰래 생선전 먹으며, 치마꼬리에도 몇 점 싸서 들고 나오는 할머니, 자기 방으로 가는데

흰 원피스 입고, 툇마루에서 오강에 오줌 누던 경숙이 쓱 일어난다.

 


할머니     오매야~! (놀라 엉덩방아 찧고) 저 가스나, 오밤중에 와 그거는 입고 설치대?노? 간 떨어질 뻔했다 카이! 

경숙       (잠결에도) 내는 이 나라의 희망이다. 구박하지마라카이, 쫌~ (방으로 들어가고)

할머니     아이구야~ 내가 쟈 때문에 제명에 몬 죽는다. 재수 이노마는 저런 걸 나놓고 지 혼자 어딜 쳐싸돌아댕기는 기고?

 


S# 20. 산자락

포로가 되어 부상당한 인민군이 실린 들것을 들고 오는 재수와 남식. 

포로나 인민군들이나 성한 사람보다 부상자가 더 많아 힘겹게 움직이는데, 

갑자기 나타나 총격을 퍼붓는 전투기-

인민군이고 포로들이고 너도나도 혼비백산 도망치기 시작하고

재수도 얼른 들것을 팽개친 채 달아난다. 

남식도 들것을 내려놓고 피하려는데 누군가 팔을 잡는다.

 


남식       (소스라쳐 놀라 보면)

부상자     살려달라우... 

남식       (때마침 근처에 가해지는 총격에 머리 감싸 쥔 채 쭈그려 피하고)

재수       (돌아보며) 야 삼팔아~ 니 뭐하는 기고? 퍼뜩 오그라~

남식       (갈등으로 보다... 돌연 들것을 끌고 숨을 곳을 찾아 움직이고)

재수       저기 죽을라꼬 환장했나? 야 박남식~ (보면 공중에서 선회한 전투가 다시 달려든다) 어우 절마 저거... 내가 돌아삔다! (별 수 없이 남식에게로 달려가고)

 


같이 들것을 들고 은폐물을 찾아 피하는 재수와 남식.

그들이 떠난 자리에 총격이 따르고 

 


S# 21. 근처 일각 (새벽)

남식, 땅 파고

바위에 걸터앉아 빈 수통을 털어 마시던 재수, 수통 던지고

 

재수       니도 참 사서 고생이다. 이 전쟁통에 우리 편도 아이고 빨개이를 묻어줄끼 뭐 있노. 고마 퍼뜩 가자.

남식       그냥 빨갱이가 아니라, 내 팔을 잡으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했던 사람이라니까요.

재수       그래가 목숨 한번 걸었으믄 됐다 아이가. 이러다 또 국군이든 빨개이든 나타나믄 우리 자유는 그 순간으로 끝나는 기다.

남식       투덜대고 있느니 같이 파면 되겠네. (다시 퍽퍽 땅 파고)

재수       어유 저 꼴통~ (하다 보면) 

 


들것에 죽어있는 인민군의 손에서 무언가 반짝인다.

재수, 다가가 보면

죽은 인민군의 손아귀에 꼭 쥐어진 인민군모자에 금배지가 달려있다.

눈이 휘둥그레진 재수, 힐끗 남식을 돌아보고   

 


S# 22. 동 근처 일각 (시간 경과)

인민군을 묻은 자리에 총을 꽂아 표시하고, 손에 묻은 흙을 터는 남식.

재수, 금배지를 떼어낸 모자를 총에 휙 던져 씌우고

 


재수       인자 끝난 기재? 퍼뜩 가자. (가려는데)

남식       (잡으며) 황천길 잘 가라고 장송곡이라도 하나 불러 봐요. 풍물패에서 한자락하다 왔다면서요.

재수       니 참말로 질기대이. 그거도 다 분야가 있는 기거든. 내는 소리꾼이 아이고 장구치는 사람이다.

남식       그래도 뭐 좀 들은 게 있을 거 아녜요. 그렇게 살고 싶어 했는데 얼마나 억울하고 서럽겠어요. 사람이 죽으면 끝이라지만 그래도 영혼이라는 게 있는데, 잘 가라고 위로해주면 좋잖아요.

재수       영혼? (끙) 알았다 그래. 금값은 해야재.

남식       예? 

재수       아이다. 잡음 넣지 마라. (심호흡하고, 상여가를 시작한다) 간다간다 나는 간다 사든 생각을 다 버리고 북망산천을 나는 가네~ 백년집을 이별하고 만년집을 찾어가네~ 

 


S# 23. 몽타주 

재수       (노래 연결/ E) 황천길이 멀다더니 대문 밖이 황천이네~ 빈손으로 태어나서 빈손으로 돌아가네~ 초롱같은 우리야 인생 이슬같이도 떨어지네~ 인지 가면 언지 올꼬 한 번 가며는 못온다네~ (상여가 계속되며)

 

S#23-1. 강변(낮) / 강물에 붉게 번지는 피... 보면, 학교에서 동원 된 소녀들이 교복을 입은 채, 피 묻은 군복을 빨고 있다. 그 뒤로 빨래대에 널린 군복들이 바람에 나부낀다. 그 사이에서 옷을 훔쳐 나오는 재수와 남식, 살그머니 도망치고 

S#23-2. 경숙이네 읍내 공터(낮)/ 흰 원피스를 입고, 책보를 메고 돌아오던 경숙, 다른 인민군들과 함께 서있는 진수를 발견하고 반갑게 다가가는데, 인민재판을 하던 인민군 간부가 마을 유지를 즉결총살을 한다. 충격으로 흠칫 놀라서는 경숙, 진수와 눈이 마주치자 두려움에 후다닥 달아나고

S#23-3. 야적장 근처(저녁)/ 길 아래 나무 뒤에서 소변을 보던 남식, 바지를 추스르며 나오다 뭔가를 밟고 도로 주르륵 미끄러진다. 뭐야? 해서 집어 들어 보면 탄피다. 그 너머로 보이는 포탄과 총탄의 탄피들이 산처럼 쌓여있는 야적장! 그 광경에 투덜대며 일어나던 남식도, 낄낄 웃으며 다가오던 재수도, 웃음 가시며 하얗게 질리고...

S#23-4. 경숙이네 마을 일각(낮)/ 나물바구니를 들고 오던 경숙(이하 평상복), 골목을 돌아 걸어오는 진수를 발견하고 얼른 돌아서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서둘러 다가오는 진수를 피해 그대로 일어나 도망치는 경숙. 다가온 진수 씁쓸히 바닥에 흩어진 나물들을 바구니에 주워 담고...

S#23-5. 도시 거리(낮)/ 걸어오던 재수와 남식, 자신들을 향해 움직이는 탱크의 포에 놀라 주춤 서면, 망가진 탱크 안에서 놀던 아이들이 나와 낄낄 웃는다. 놀란 재수 냅다 ?아가 알밤을 먹이고

S#23-6. 경숙이네 마당(낮) / 쫓기듯 마당으로 뛰어 들어오는 진수. 놀라 보는 할머니와 경숙모의 시선을 받으며 황급히 부엌으로 뛰어 들어가고 

S#23-7. 다른 거리(낮)/ 김일성 수령 만세! 인민공화국 만세!라고 쓰인 현판을 걸어 세운 아치에서 인공기를 떼어내는 미군들. 인공기를 들고 아치 밑에서 기념촬영을 하려다, 길 한쪽으로 슬슬 피해 지나가는 재수와 남식을 부른다. 미군들에 둘러싸여 함께 기념촬영하고

S#23-8. 경숙이네 앞 골목(저녁) / 살그머니 집에서 나오는 할머니, 주위 둘러보다 골목을 돌아 나가는 민병대를 발견하고 황급히 뒤쫓고

 


S# 24. 경숙이네 부엌

경숙모, 황망히 물독 위에 이것저것 갖다 얹으며

 


경숙모     아이고야 이 일을 우짜믄 좋노. 답답해도 쪼매 참으소.

진수       (물독 안에서/E) 고맙습니다, 어머니 동무. 

경숙모     아이구 그 동무 소리 좀 빼소.

경숙       (물동이 이고 들어오며) 어무이.

경숙모     아이쿠야~ (놀라 엉덩방아 찧고) 와 니는 소리를 지르고 그라노? 안 그래도 가슴이 벌렁벌렁해 죽겠구만.  

경숙       와? 어디 아프나?

경숙모     아프기는.

경숙       비키 봐. 물 붓게.

경숙모     (다급히) 아이다 됐다. 물독 꽉 찼대이. 그냥 거기 내리두그라.

경숙       먼 소리고? 물독 바닥났다고, 물 길어오라 카디.

경숙모     시키믄 시키는대로 하지 먼 말이 그래 많노. 기냥 거기 두라카이!

민병대장   (E) 구석구석 샅샅이 수색해!

경숙모     (철렁) 오매, 클났대이~ (서둘러 나가는)

경숙       ?

 


S# 25. 동 마당

부엌에서 황급히 나오는 경숙모, 방방으로 들어가 뒤지는 민병대들에게

 


경숙모     머,머,먼 일인교? (부엌으로 들어가려는 수색대 막으며) 와 이카는교, 넘의 정지간에? 어무이 머하는교? 좀 말리소.

할머니     (평상에서 자는 경미 옆에 앉은, 외면해 부채질하고)

민병대원   (경숙모를 밀치며 부엌으로 들어가고)

경숙모     (상황 파악하고 굳어서고)

경숙       (상황 모른 채 두려움에 치마꼬리 잡으며) 어무이.

민병대원   (E) 찾았습니다! 빨리 나와! 안 나오면 쏜다.

민병대일동 (부엌으로 뛰어 들어가고)

경숙모     (체념으로 돌아서고)

경숙       ? (부엌 보면) 

 


젖은 옷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민병대원들에게 양팔을 붙잡혀 나오는 진수.

 


경숙       (놀라) 오빠야 (하는데)

경숙모     (제지하듯 경숙을 감싸 안고)

민병대장   철수!

 


민병대원들에게 끌려 나가던 진수, 체념과 원망과 감사가 뒤섞인 복잡한 얼굴로 돌아본다.

 

할머니     (헛기침으로 외면하고)

경숙모     (안타깝고)

경숙       (두려움에 경숙모의 치마 뒤로 숨고)

 


S# 26. 경숙이네 방 (밤)

잠든 경숙.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달싹여 뭔가 헛소리를 하며 악몽에 시달리고

 


S# 27. 경숙이네 부엌

아궁이 앞에 앉은 할머니, 불에 쌀 배급 자루며, 화근이 될 만한 물건들을 던져 넣어 태우고

경숙의 흰 원피스를 들고 들어오는 경숙모.

 


경숙모     이거도 꼭 태워야 하는교? 경숙이가 억수로 좋아하는 긴데...

할머니     그러다 빨개이로 몰리믄 니가 내 대신 죽을 끼가? (채듯 원피스를 가져가 아궁이에 던져 넣는다)

 


불길 속에서 타들어가는 원피스-

그 위로 찬송가 소리 선행되며

 

S# 28. 동네 교회 (다른 날 낮)

사람들 틈에 앉아 열심히 고개를 주억이며 찬송가를 따라 부르는 할머니.

박자를 따라잡지 못하고 하는 둥 마는 둥 하다 할머니에게 통박 먹는 경숙모(경미 업은)와 상필.

노래를 부르면서도 미국인 선교사의 큰 코가 신기해 제 코를 잡아당겨 보기도 하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의 폼을 따라 해보며 킥킥대는 경숙과 만근 보이며

 


일동       (찬송하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그 위로 반주라도 하듯 어우러진 구성진 장구소리 선행되며

 


S# 29. 부산 요정, 뒷방 (밤)

한상 떡 벌어지게 차려져 있고

신명나게 장구를 치는 재수.

감격해 듣는 남식, 자기도 모르게 흥분해 거푸 술잔을 비우고

땀을 흘리며 열연하던 재수, 가락을 마무리 하면

 


남식       (열렬히 박수 치며) 이야 정말 대단하네요, 대단해! 장구소리가 이렇게 멋진 줄 몰랐어요.

재수       내가 이거를 다시는 몬 잡아보고 죽는 줄 알았다 아이가! (뿌듯해 웃고)

남식       (흥분해 술 주며) 자 술. 낙동강 조절구니 뭐니 그래도 난 순 구란 줄 알았는데, 최곱니다 최고!

재수       말로 때울 기 아이라, 이럴 땐 놀음채를 떡 하니 내놓는 기라. 그래야 신명이 나서 더 쳐불재. 신의주 촌놈이 놀아봤어야 머를 알재. (벌컥벌컥 술 마시고)

남식       (상 탁 치며) 기분이다 까짓! 국밥값 가리!

재수       에라잇~! (하다 새삼 생각나 푸하하 웃으며) 국밥~

남식       (역시 새삼 생각나 웃음으로) 삼팔이가 뭐요?

재수       (웃으며 흉내로) 내래 딘짜 이름은 남식이라요, 박남식.

재수/남식  (그간의 시간들이 생각나 배꼽을 쥐며 웃어대고)

 


기생들 두엇 들어오며

 


기생1      뭣이 이래 재미납니꺼? 우리도 쪼매 같이 웃어보입시더. 

기생2      어디 최전방에서 왔는교? 옷 꼴이 그기 뭡니꺼?

남식       최전방~!

재수/남식  (그 소리에 다시 웃음 터져 데굴데굴 구르고)

기생1,2    (떨떠름 웃고)

 


S# 30. 요정 안채

뽀이들이 방으로 부지런히 음식을 들어 나르고, 화려하게 치장한 기생들의 환대를 받으며 손님들이 드나들고, 방방에선 끊임없이 음악소리와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는... 밤이지만 휘황찬란하게 불을 밝힌 흥청망청한 풍경들 보이고  

구경삼아 여기저기 둘러보던 재수

 


재수       앗따 요정이라꼬 다 같은 게 아이네, 삐까번쩍하구마. 전쟁이라 캐도 죽는 놈 따로, 노는 놈 따로, 주지육림이 따로 없구마... (둘러보다 반가움에) 이야 니~! 여 와 있었나?

 


걸어오다 주춤 선 화자, 행색에 눈살 찌푸리며 다가온다.

 


화자       (옆으로 비딱하니 서서 아래위로 훑으며 낮춰) 꼴이 그기 뭔교? 아는 척하지 마이소. 내 여 들어오느라 힘들었으예. (치마꼬리 착 말아 쥐며 가고)

재수       (어이없어) 얼씨구! 세상이 디비졌다꼬 이래 안면을 까나?

화자       (질겁으로 낮춰) 아 조용히 하이소. (주위 살피고 다시 낮춰) 안면을 까는기 아이고, 그 꼴로 불쑥 나타나서 이래 아는 체를 하믄 내 입장이 곤란하다 아입니꺼. 담에 보입시더. (가려다 선심 쓰듯) 참, 신장구 보는 기 소원이라 캤지예? 후원 월송정으로 가보이소.

재수       신장구?! 이기 웬 횡재고?! (서둘러 가고)

화자       그쪽이 아이고 이쪽이라예.

재수       땡큐 베리대이~ (황급히 화자 지나쳐 가고)

화자       (풋 웃고 가려는데)

지배인     니 아는 사람이가?

화자       (시침 뚝) 어데예! (자못 콧대로) 자꾸 지분대싸서 쪼매 대거리해준 깁니더. (치마꼬리 말아 쥐며 살랑살랑 엉덩이 흔들며 가고)

  

S# 31. 후원

황급히 오는 재수, 여기저기 들어앉은 별채들을 둘러보며

 


재수       월송정이 어디고? (하다 장구소리에 돌아보면)

 


저만치 보이는, 연못 옆 정자에서 기생들을 끼고 앉은 풍류객들을 상대로 신장구가 ‘앉은장구’를 치고 있다.

고조되는 장구가락과 함께, 끌리듯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재수와의 거리만큼, 점점 커져오는 신들린 듯 연주에 몰두한 신장구의 면면들. 그리고 장구를 두드리는 그 손과 함께 교차되는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빠르게 돌아가는 기생의 치마폭과 버선발

-빨랫줄에 널린 펄럭이는 색색의 천들 뒤에서 몰래 끌어안는 남녀.

-먹이를 향해 쏜살같이 수직강하 하는 독수리

-계곡으로 떨어져 내리는 세찬 폭포수

등등 인서트 흐르고

 


S# 32. 요정 뒷방

술에 취해 널브러진 남식, 노래 흥얼거리며 비몽사몽이고

다급히 들어오는 재수, 서둘러 자기 짐 챙기며

 


재수       이노마야 퍼뜩 일나그라. 술독에 빠져 해롱댈 때가 아이다. (남식 짐 던져주며) 자,자, 퍼뜩 가자. 우째 만난 신장군데 이러다 놓치뿐다. (발로 차며) 내 좀 도와도, 쫌! 

남식       (머리 겨우 쳐들며 베시시) 낙동강 조절구~ (하다 다시 꼬꾸라지고)

재수       맛이 완전히 갔구마. 니 이카믄 뒷일은 내도 모른대이. 퍼뜩 일나라카이!!!

  

S# 33. 요정 대문 앞

주위 살피며 마당을 가로지르는 재수, 살금살금 대문으로 가는데

어느새 다가온 지배인, 덥석 뒷덜미 잡으며

 


지배인     쥐새끼 맨쿠로 어델 내뺄라꼬!

재수       아이 그기 아이고, 내 말 쪼매 들어보이소.

지배인     누구를 핫바지로 보는 기가? 걸뱅이 꼬라지 주제에 방 내노라꼬 큰소리 뻥뻥 칠 때부터 내 알아봤다 아이가!

 


때마침 장구를 멘 시동을 대동하고 돌아가는 신장구 보이고

 


재수       신장구 어른, 지 좀 잠깐 보이소~ 아 이거 좀 놔보이소. 내 저 양반을 꼭 만나야 된다카이! 어르신~

신장구     (돌아보면)

지배인     어르신 이놈 아시는교?

신장구     어데. (가고)

재수       아이고 어르신 내 좀 잠깐 보이소~

지배인     (머리통 후려치며) 어데서 잔꾀를 쓰고 있노?! 이래 내뺄 중 알고 내 감시까지 붙여놨구만. 

재수       (뿌리치며) 아 좀 노소. 내빼긴 누가 내뺀다고 이라는교?!  

지배인     그기 아이믄 당장 계산부터 하소.

재수       내 참 누굴 도둑놈으로 아나...

지배인     (뽀이1에게) 이 손님 계산서 갖고 오그라.

재수       (그 틈에 내빼려다 다시 잡혀 버둥대며) 내 신장구를 꼭 쫌 만나야한다 아입니꺼.

지배인     (덜미 잡은 채 무릎으로 엉덩이 차며) 신장구가 니 친구가?!

재수       그기 아이고... 화자야~ 화자 니 어딨노~? (버둥대며 끌려가고)

 


S# 34. 요정 광

뽀이1에게 들쳐 메져 들어오는 만취한 남식, 가마니 위에 던져지고

지배인에게 덜미를 잡혀 들어오는 재수. 

 


재수       앗따 아무리 세상이 험하다꼬 사람을 이래 몬믿어서 우야노? 눈 요래 쪽 찢어진 화자 좀 불러달라카이.

지배인     (떠밀어 처넣으며) 눈이 모로 찢어지든 가로 찢어지든 화자란 여잔 없다 카이! 단디 지키그라. (나가고)

 


뒤따라 광문 닫고 나가던 뽀이1

 


뽀이1      (살그머니 문 열고) 어디 기별할 데 있으믄 지 부르이소. 우리 대빵, 아저씨들 가막소 처넣고도 남을 사람이라예. (도로 문 닫고)

재수       가막소? 일이 와 이래 자꾸 꼬이노? (널브러져 노래 흥얼거리는 남식 발로 차며) 야, 야. 일나 보그라! 지금 한가시럽게 노래나 흥얼거리고 있을 때가 아이다. 이번 참엔 돈 ? 푼에 콩밥 먹게 생?다 아이가.

남식       (술기운에 돌연) 걱정하지 마요, 걱정! 나 돈 많~아요. 얼마면 되는데?! (낄낄 웃고)

재수       얼씨구, 풍신났다! 헛간의 도리깨도 춤추게 만든다는 신장구를 만났는데 이래 갇혀있어야 하다이... (낙담으로 털퍼덕 앉고) 이 꼴로 만나믄 또 뭐할 끼고. 한 수 배울라 카믄 쌀가마이를 지고 가도 될 똥 말 똥 할 낀데... (금배지 꺼내보고) 니는 작작 좀 처묵지 멀 그래 많이 시켰드노?

남식       (버둥버둥 일어나며) 내가요, 신의주에서... 혈혈단신 내려와서... 안 해본 일 없이 다 했거든요~우리 불쌍한 아반... 오마니... 누부... (어느새 징징 짜며) 다시 만나면 호강시켜 줄라고 내가...

재수       (툭 밀쳐서 도로 눕히며) 됐다 고마. 쭉 자그라!

남식       (누운 채 키득키득) 까짓 술값~ 갖고 오라 그래, 다 갖고 와! 내가 묻어 논 돈이 얼만데!

재수       (같잖아서) 으이?

남식       (찰싹 붙으며 속삭이듯) 있잖아요, 40계단. 거기 다섯 번째 나무에다 내가 다~ 묻어놨어요. (혼자 좋아 키득거리고)

재수       (으잉? 보고, 쿡쿡 찌르면서 떠보듯) 야야 나무 밑에 돈이라이? 니 지금 술주정하는 기가?

남식       (징징) 오마니 어딨시오, 날래 오시라우요~ 내래 보고싶다우요~ 호강시켜 드리갔시요~

재수       (눈 반짝하고)

 


S# 35. 요정 대문 앞 (다음 날 아침)

빗자루로 대문 앞 쓸던 뽀이1, 주머니에서 금배지를 꺼내 던져본다. 기분 좋아 다시 쓸고

 


S# 36. 부산 거리

새 두루마기로 입성 쫙 빼입고, 새로 장만한 장구까지 걸머메고 걸어오는 재수. 쌀가마니를 진 지게꾼을 대동하고 활개 치며 걸어가고

 


S# 37. 요정 마루

엉덩이 쳐들고 걸레를 밀며 긴 마루를 왕복하는 남식

 


지배인     (엉덩이 걷어차며) 꾸물거리지 말고 퍼뜩퍼뜩 하그라! 할 일이 산더미다 아이가.

남식       (바닥에 코 찧고, 우거지상 일어나며) 하고 있잖아요.

지배인     그래 느려터져가 언제 다 갚을 끼고? 십 년을 갚아도 택도 없다.

남식       십 년은 무슨... 벌써 갚고도 남았겠네...

지배인     뭘 잘했다꼬 궁시렁대노? 어디 나무 밑에다 돈을 묻어 놔? 그 말을 믿고 따라 갔던 내가 빙신이지.

남식       (걸레 집어던지며) 이 자식 잡히기만 해봐라!

지배인     쇼하지 말고 퍼뜩 끝내라이. (가고)

남식       그 돈이 어떤 돈인데... (울상으로 걸레 밀며 가고) 

 


S# 38. 윤섭네 마당

일꾼들 몇 김일성초상화 등 인민군들이 쓰던 물건들을 대문 밖으로 나르고,

동네 여자들 몇 기둥이며 문틀까지 구석구석 쓸고 닦고 청소한다.

마당 가운데 선 최사장과 윤섭모

 


윤섭모     아유 심란해! 아니 그 사람들은 무슨 남의 집에다 본부를 차려. 찜찜해서 여기서 어떻게 살아~

최사장     잿물 아끼지 말고, 빨개이 냄새 안 나게 구석구석 빡빡 닦으소.

 


잡동사니가 가득 든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오는 나이든 여자 일꾼1, 방망이 모양의 수류탄을 들어 보이며

  

일꾼1      사장님, 이거도 버리는 깁니꺼?

윤섭모     (돌아보고 놀라) 포포포 폭

최사장     (입 막아 재지하고) 그,그,그건 어디서 나왔는교?

일꾼1      광에서 굴러 댕기던데, 쓸 깁니꺼?

최사장     어데! 살살 들고 나가서, 대문 밖에, 아무도 없는데, 멀~리 던져 뿌소.

일꾼1      이기 뭔데예?

최사장     그거는 알 거 없고, (우거지상으로) 퍼뜨윽~

일꾼1      (바구니 안에 폭탄 얹으며 의아히 돌아서서 가고)

최사장     (초조) 퍼뜩퍼뜩 쫌 가소.

 


돌부리에 걸려 휘청하는 일꾼1, 떨어질 뻔한 수류탄을 잡으며 가고

철렁해 숨을 멈췄던 최사장과 윤섭모, 안도하고

 


S# 39. 근처 언덕길

경숙과 만근, 교회에서 얻은 우유가루 먹으며 신나서 가고

할머니와 경숙모(경미 업은), 찬송가 성경책 들고 걸어오며

 


경숙모     아이구 디라~. 은제까지 이래 알도 몬하는 예수쟁이 노래를 따라 해야 하는교? 오늘 최사장네 청소한다꼬 오라 ?는데 거도 몬가고...  

할머니     물정 모르는 소리 하지 말그라. 재 넘어 청덕에서 빨개이들은 말할 거도 엄꼬, 사돈에 팔촌까지 싹 다 잡아다 골로 보냈다카는 소리 듣지도 몬했나.

경숙모     우리가 머 그래 잘몬한 기 있다꼬...

남식       저기요 (하며 다가오는데)

E          (뻥- 폭탄 터지는 소리)

경숙모     오매야~(얼결에 남식을 부둥켜안으며 쪼그리고)

할머니     (놀라 치마 뒤집어쓴 채 엎드려) 이기 뭔 일이고? 빨개이들이 또 쳐들어왔나?

경숙/만근  (납작 엎드려 보면)

 


언덕 밑, 최사장네 대문 앞 공터에서 풀풀 연기 올라오고, 일꾼들과 함께 집에서 뛰어나온 최사장이 일꾼1에게 뭔가 야단을 치는 게 보인다.  

 


만근       불발탄이 터졌는갑다.

할머니     (치마 걷어내고 보며) 주여 할렐루야! 니 오늘 하나님 덕분에 목심 건졌대이. 내말만 들으믄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아이가. 그란데 니 누구를 끌어안고 있는 기고?

경숙모     (기겁해 떨어져 서며) 아이구메! 누군데 남의 여잘 끌어안고 그라는교?

남식       (머쓱해) 누가 누굴 끌어안았다는 거예요?

경숙       (놀리듯) 아부지한테 일러뿌까?

경숙모     (무안) 머를?

할머니     처음 보는 얼굴인데 누군교?

남식       여기 낙동강 조절구네 집이 어디예요?

경숙모     (경계로) 와예?

 


S# 40. 마을 골목

경숙네 일동, 남식을 앞세우고 걸어오며

 


경숙모     (살피듯) 그래가 조절구가 을매를 해묵었는데예?

남식       이런 집 한 채 값은 족히 되고도 남죠.

경숙일동   (놀라 입 쩍 벌어지며 걱정스레 서로 보고)

우체부     (마주오며) 집 비워놓고 어디들 다녀오는교?

경숙       교회 가가 우유가루 타묵고 옵니더. 

할머니     가스나 그거는 덤이고, (우체부에게) 빨개이들 싹 다 몰아내달라꼬 빌고 왔다 아이가. 

우체부     하모요, 하모. 집에 소포 갖다 놨심더.

경숙모     소포예? 그런 기 올 데가 엄는데 누가 보냈는교?

우체부     조절(하는데)

할머니     하이고 전쟁통에 배달한다꼬 욕본대이. 피난 가서 빈집도 많을 낀데. 바쁘재? 싸게싸게 가보그라. (떠밀 듯 보내고)

남식       (주위 둘러보며) 어느 집예요?

할머니     어느 집이나 마나 (경숙모와 경숙에게 눈짓하며) 그 집 식구들 다 피난 가서 아무도 엄따. 그렇재?

경숙/모    야~! 

남식       가서 기다리면 오겠죠. 

할머니     (주춤 하다, 얼렁뚱땅) 피난 가다 폭격 맞아 죽은 사람이 을맨데 살아있겠나? 접때 니가 그 집 식구들 강변에서 폭격 맞아 싹 다 죽었다 안 캤나?

경숙모     (질겁으로) 지가 은제예?

할머니     (옆구리 찔러 눈치 주며, 얼렁뚱땅) 그 집이 아이고 딴 집이었나. 암튼지간에 빈집에 가서 뭐할 끼고? 냉중에 다시 오는 기 낫재.

남식       일단 집이나 가르쳐 주세요.

할머니     앗따 고집 세대이. (경숙에게) 니가 가서 갈쳐주그라.

경숙       ? (뭔 말인가 싶어 보면)

할머니     니는 동무 집도 까묵었나? (짐짓 경숙모에게) 참 명랑네도 여태 안 왔재?

경숙모     (눈치 채고 떨떠름) 야아...

경숙       (역시 알고, 떨떠름 앞장서며) 지 따라 오이소.

남식       저 그럼. (가면)

경숙모     (낮춰) 어무이 우짤라꼬예? 눈 가리고 아옹이다 아입니꺼.

할머니     냉중에 산수갑산을 가디라도 급한 불은 끄고 봐야재. 그나저나 재수 그노마가 한 몫 챙?다고 지 혼자 다 안 묵고, 식구들한테도 뭣 좀 보냈는갑다. 뭣이 왔을꼬. (신나서 가고)

경숙모     (걱정스레 남식이 간 쪽 돌아보고)

 


S# 41. 은비네 마당

남식       (앞서 들어오며) 여기야?

경숙       (대문 밖에 선 채 난처해 보고)

남식       그래도 집은 제법 쓸만하네. 좋아, 오늘 부로 이 집은 내가 접수한다. (돌아보며) 고맙다.

경숙       (캥겨 횡하니 내빼고)

남식       (흡족한 듯 집 둘러보고)

 


S# 42. 경숙네 마당

힐머니, 평상에 놓인 장구를 부여잡고 통곡하고

경숙모, 편지 쥐고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 통곡하며

 


경숙모     아이고 경숙아부지~ 이래 객사할라꼬 그래 천지사방 떠돌아 댕겼는교? 아이고 인자 우린 누굴 믿고 사노~

할머니     서방 복 없는 년 자식복도 없다 카디 아이고 내 팔자야~ 인자 내는 늘그막에 어디 가서 빌어묵고 산단 말이고~

경숙모     이래 허망시리 죽을 줄 알았으믄 장구친다꼬 타박이나 말 껄... 경숙아부지 불쌍해서 우얍니꺼~ 

할머니     불쌍하긴 개코나! 지 혼자 살겠다꼬 혼자 내빼디 넘까지 등쳐묵고 배터져 죽었는갑다. 하나님이 백지로 있는 기 아이다. 아이고~(다시 울고) 

경숙       (들어오며 놀라) 어무이 할무이 와 그카노? 누가 죽었나?

경숙모     아이고 경숙아~ 니 아부지 죽었다꼬 이래 펜지가 온 기라~ 우야노~

 

편지 보면, 장구와 손을 그린 옆에 ‘즉사’라고 한문으로 쓰여 있다.

 

경숙       이기 죽었다 소리가?

경숙모     내가 딴 글자는 몰라도 이기 죽을 사자라는 거는 학실이 안다. 우리 경숙이 불쌍해서 우야노~ 

경숙이     아부지~ (덩달아 우앙 울고)

 

S# 43. 은비네 마루(밤)

쪼그리고 누워 자던 남식, 훌쩍이는 소리에 설핏 잠 깨다

 


남식       (화들짝 놀라 일어나며) 누, 누구요?

 


보면, 마루 끝에 처연하게 앉아 훌쩍이던 경숙모.

 


경숙모     (돌아보며 처연하게) 총 맞아 죽었으예, 폭탄 맞아 죽었으예? 우리 아-아부지 우예 죽었십니꺼?

남식       (영문 몰라)아,아,애아버지라뇨?

경숙모     거기서 찾던 낙동강 조절구 말입니더. 실은 그 양반이 우리 경숙이아부지라예.

남식       뭐라구요? 아니 그럼 식구들이 단체로 날 속였단 말예요?

경숙모     미안하게 됐십니더.

남식       (열나) 으아~ 아니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어?

경숙모     그거는 그기고 우리 경숙아부지 우예 죽었는교?

남식       (성질나 왈칵) 죽었다고 누가 그래요?

경숙모     평소 목심같이 애끼던 장구캉 이래 펜지가 왔다 아입니꺼. (훌쩍이며 편지 주면)

남식       (편지 알아보고 기막혀 실소)

경숙모     어디서 객사를 했는지 시체라도 찾아야 될 기 아입니꺼.

남식       이건 죽었다 소리가 아니라, (편지 짚어보이며) 장구 손대면 죽는다! 그 소리라구요.

경숙모     야? (어리둥절하다) 오매, 이기 그 소리였으예? (반색으로) 그라믄 죽은 기 아이네예. 우린 그란 줄도 모르고... (벌떡 일어나 가며) 어무이~ 경숙아~ (가다 돌아서서 꾸벅) 고맙십니더. (황급히 가고)

남식       아니 뭐 이런 황당한... (하다, 다급히 일어나며) 아주머니~ (서둘러 뒤쫓고)

 


S# 44. 경숙이네 마당

남식, 열나 씩씩거리며 서성이고 

 


할머니     저녁도 몬묵었다믄서 와 이래 기운을 빼노. 쪼매 앉그라. 경숙아 머하노? 물떠오라 카이 샘을 파고 있나?

경숙       간다~ (부엌에서 물대야 들고 와 발밑에 놓아주며) 여 발 담가보이소. 시원합니대이.

남식       나 참... (기막혀 실소하고, 못 이기는 척 앉아 양말 벗으며) 조절군지 돌절군지도 기가 막혔지만, 보다보다 이렇게 단체로 사기 치는 식구는 본 적이 없어요, 내가.

경숙/할머니 (찔끔하고)

남식       (푸덕푸덕 씻으며 혼잣말로) 오늘 이렇게 알았으니까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남의 빈집에서 혼자 바보짓하고 있을 뻔 했잖아.

경숙모     (밥 상 들고 오며) 시장해서 우얍니꺼? 이거라도 드이소.

남식       내가 지금 밥이 넘어가게 생겼어요?

경숙모     그카지 말고 한술 떠보이소. 금방 새로 했다 아입니꺼.

남식       (못이기는 척 수저 들며) 이런다고 내가 어영부영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구요. 도둑맞은 내 돈, 일 원 한 푼도 못 깎아줘요, 나는!

일동       (난감)

경숙모     우예됐든 우리 경숙아부지가 돈을 빌렸다는 차용증이나 함 보입시더. 

남식       (왈칵) 아 빌려간 게 아니라 내 돈을 훔쳐갔다니까요!

할머니     (옳다쿠나해서) 훔쳐가다이? 증거는 있나?

남식       아니 지금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거예요? 증거는 무슨 증거가 필요해요? 내 돈 어딨는지 아는 건 조절구밖에 없는데.

할머니     이제보이 순 생짜구만? 야 밥상 치우그라.

경숙       (냉큼 숟가락 채가며) 주이소!

남식       (황당) 누굴 거짓말쟁이로 아나? 에이 씨, 누가 이기나 해보자구! (하며 벌렁 눕는다)

경숙모     (그 바람에 들썩이는 밥상 들며) 오매야~ 

할머니     증거도 없이 어디 와서 찍짜를 붙고 있노? 퍼뜩 일나그라. 몬 일나나? (돌연 대야의 물을 확 끼얹고)

남식       (벌떡 일어나며) 아니 뭐하는 거예요!

 


S# 45. 방

꿰짝에서 재수의 옷을 꺼내 보던 경숙모, 옷 챙겨 주며

 


경숙모     밖에 갖다 주그라.

경숙       (돌아앉으며) 싫다! 와 아부지 옷을 주노?

경숙모     그라믄 니 옷 주까? (들고 일어나고)

 


S# 46. 다시 마당

이불로 몸을 감싼 채 평상에 앉은 남식,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다 방문소리에 돌아앉고

 


경숙모     (다가와 옷 주며) 이기라도 입으소.

남식       병 주고 약 주고... (손 뻗어 받는데 이불 반쯤 흘러내려 알몸 보이고)

경숙모     에그머니나! (민망해 후다닥 방으로 가면)

남식       (역시 당황해 얼른 이불 감싸고)

 

S# 47. 방

잠 못 들고 뒤척이던 경숙모. 

 


경숙모     (답답해 벌떡 일어나며) 주책이대이. 와 얄궂은 생각이 자꾸 나노? (하면서도 문으로 시선)  

 


S# 48. 경숙이네 마당 (다음 날 아침)

방에서 나오는 경숙모, 주춤 보면 

평상이 비어있다. 

 


경숙모     ... 갔나...? (내려서서 신 신고 부엌으로. 부엌문 열면)

 


남식이 아궁이에 붙어서 쪼그리고 자고 있다.

 


S# 49. 동 부엌

난감해 보던 경숙모, 조용히 들어와 물동이 들고 나가려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이불을 들어 살며시 남식을 덮어주는데  

그 기척에 깬 남식, 무안해 헛기침으로 일어나고 

 


경숙모     (역시 무안해 얼른 물동이 이며) 쪼매 더 자이소.

남식       (뺏듯 물동이 가져가며) 주세요, 내가 떠올게요.

경숙모     됐심더. 남자가 남사시럽게 무신...

남식       어때서요. 이게 얼마나 힘든데. 고향에서도 우리 어머니하고 누나한테 물동이 이게 안 했어요. (나가고)

경숙모     (의외고 미안하고) ...

 


S# 50. 헛간(낮)

문 열어젖힌 채, 잡동사니들을 치우는 경숙모

 


할머니     (밖에서 보며) 뭐하는 기고?

경숙모     애비 올 때까지 저래 기다릴 모양인데, 어데 잘 데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교.

할머니     아주 푹 눌러앉으라고 멍석을 깔아줄 끼가? 우짜든 쫓아삐리야지.

경숙모     재주있으믄 어무이가 해보이소. 우짤낀데예?

할머니     와 니 그 잘하는 거 있잖아. 시어메 낮잠 쪼매 잘라카믄 방망이질 팡팡 해대고, 깜박 잊어뿌다 그라믄서 한겨울에 냉골 만들고.

경숙모     우짜다 한번 그런 거를 가지고 참 오래도 우라 드시네예.

할머니     근데 간 거 아이가? 안 보이는데. 

 


S# 51. 고물상

양철깡통을 망치로 두들겨 펴는 남식, 주인의 지시에 따라 수거해온 빈 깡통들도 옮기고 

 


S# 52. 마당(저녁) 

평상에 앉아 저녁 먹던 경숙 일동, 들어오는 남식 보고 

 


할머니     밥 때 되이 지 집맨쿠로 기들어오네.

경숙모     와서 같이 한술 뜨이소.

경숙       우리 묵을 거도 없는데 와?

남식       (봉지쌀과 자반고등어 들어 보이며) 내꺼 내가 사왔다. 너 이거 안 먹을 거야?

할머니     (반색으로) 자반고등어네?! 웬 기고? 

남식       아침도 얻어먹었는데, 밥값은 해야죠. 저 공짜로 얻어먹고 그러는 사람 아녜요. 

할머니     (손바닥 치며) 하모하모 그래야재. 총각이 셈이 바르대이. 애미야 아까 헛간 치우라 캤디 치웠나?

경숙모     은제예? (하며 일어나 부엌으로 가고)

할머니     퍼뜩 헛간부터 치우그라.

남식       어디, 저기요? 제가 이따 밥 먹고 치울게요. 

할머니     (자리 내주며) 그래 그라믄 퍼뜩 일로 오그라.

경숙       할무니는 아부지보다 고등어가 좋나?

할머니     가스나, 여 엄는 놈이 뭔 소용이고? 

경숙모     (밥과 수저 챙겨와 주며) 드이소.

할머니     퍼뜩 묵그라. 배 마이 고프제?

경숙       (못마땅해 보고) 

 


S# 53. 빨래터 (다른 날 낮)

경숙       (퍽퍽 빨래에 방망이질하며) 어무이도, 할무이도, 아부지 오믄 다 일러뿔끼다. 

윤섭       (E) 경숙아~

 


개 끌며 다가오는 윤섭.

 


경숙       (힐끗 보고 모른 척 빨래하고)

윤섭       우리 메리 멋있지? 부산에서 사왔다.

경숙       내한테 말시키지 말그라. 인자 니캉 안 놀끼다.

윤섭       (부루퉁보고) 배 안 태워줬다고 그러는 거야?

경숙       시끄럽다! 저리 꺼지라 마. 안 가나? (돌멩이 집어 들면)

메리       (으르렁~하고) 

경숙       (일어나며) 저 기(게)!

윤섭       야 우리 메리 화나면 무서워. 물릴려고... 가자 메리야. (돌아서는데)  

경숙       (순간 반짝) 니 내랑 놀고 싶나?

 


S# 54. 마을 어귀 (저녁)

땔감과 먹거리 든 봉투 들고 마을길을 걸어오는 남식 저만치 보이고.

윤섭과 함께 마을 입구 나무 뒤에 숨어서 기다리던 경숙.

 


경숙       (메리 엉덩이 밀며 낮춰) 온다, 온다. 퍼뜩 가서 물으라, 물으라.

윤섭       메리야 얼른 가.

경숙       야 와 이래 말을 안 듣노? 퍼뜩 가라. 물라카이!

 


뒤에서 나타난 재수

 


재수       (장구채로 찌르며) 야 이 가스나야, 누굴 물라고 시키노?

경숙       (놀라) 아부지!

재수       (장구채로 머리 톡톡 때리며) 하는 짓마다 우째 그 모양이고?

메리       (으르렁)

재수       (발로 차며) 이놈이 어딜 으르렁 (하다 왕 달려들 기세에 펄쩍 물러나 장구채 휘두르며) 니 와 이카노? 저리 안 가? (하다 개에게 쫓겨 내달리고)

윤섭       (놀라 따르며) 메리야 이리 와~

경숙       (뒤쫓으며) 야 저 강새이! 그기 아이다~

 


S# 55. 마을 길

피난짐 이고지고 돌아오던 명랑네 일동, 개에 쫓겨 달려오는 재수 보고

 


명랑       야 니 살아있었네, 어디 가노?

재수       (달려가며) 쟈나 좀 잡아봐라! 

명랑       뭐? (돌아보는데 뒤쫓아 온 메리 슝 지나가고)

 

걸어오던 남식, 마주 달려오는 재수 발견하고

 


남식       어, 너!

재수       (놀라) 니가 여 웬일이고? (하다 달려오는 개보고) 냉중에 보재이~ (달려가고)

남식       야 거기 서~

 


남식의 옆을 스쳐 개가 먼저 달려가고,

그 뒤를 쫓는 남식-

뒤이어 달려온 경숙도 아부지~부르며 그 뒤를 쫓아 달려간다. 

그 광경 위로 저녁노을 붉게 타오르며- <제2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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