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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08 - 잊을 수가 없었다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5.03.03|조회수998 목록 댓글 0

[힐러] 08 - 잊을 수가 없었다

 

 

 

 

 

 

 

 

 

 

#1. 명희의 침실 아침

 

햇살 속에 선반 가득이 놓여있는 각종 다육식물들. 각양각색의 꽃이 핀 것들도 있어서 어우러짐이 아름답다.

명희가 그 앞에서 휠체어를 탄 채 분갈이를 하고 있다.

비닐 깔개. 흙 한 부대. 모종삽 등.. 늘 하던 일인 듯 준비가 제대로 되어있다.

마음이 심난해서 작은 화분에 흙을 담다가 좀 흘리고, 작은 선인장을 옮기다가 손에 찔린다.

아.. 해서 손가락을 들여다보다가 다시 떠오르는 지난밤의 기억.

드르르... 휠체어의 바퀴가 굴러가는 낮은 소리.

 

 

#2. 문식 집 복도 / 밤

 

명희의 휠체어 바퀴가 굴러간다.

명희가 휠체어를 밀며 서재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어두운 밤. 명희가 이동함에 따라 복도를 따라 설치된 센서 등이 하나씩 밝게 켜진다.

 

 

#3. 문식의 서재 앞 / 7부 #51과 동상황

 

명희가 문 앞에 도착한다. 어둡던 공간에 센서 등이 켜지며 빛이 가득 들이찬다.

손을 뻗어 손잡이를 잡는다. 돌린다. 문을 여는데 거기 서 있는 검은 옷의 사내.

명희가 고개를 들어본다. 젊은 날의 준석이 현재 정후와 같은 복장을 한 채 명희를 내려다본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그 눈. 순간 안경에 색이 입혀지며 눈이 보이지 않게 된다.

준석이 명희의 옆을 지나가려고 한다.

 

명희 : 준석아.

 

준석이 멈추더니 돌아본다.

명희가 다급해서 그 옷자락을 잡으며

 

명희 : 너 준석이지. 맞지.

 

 

#4. 명희의 방

 

명희가 창문을 연다. 겨울바람이 몰아쳐 들어오며 하얀 커튼을 날린다.

 

 

#5. 문식의 서재 앞 / 7부 51에서 연결

 

명희를 내려다보는 준석. 그 얼굴이 준석에서 정후로 바뀐다.

명희가 그제야 준석이 아닌 걸 깨닫고. 아.. 해서 잡았던 옷자락을 놓는다.

그런데 명희를 계속 내려다보고 있는 정후. 뭔가 묻고 싶은 듯.

그 때 안에서 급히 다가오는 문식.

 

문식 : 명희야.

 

다음 순간. 앞에 있던 정후가 빠르게 돌아서 걸어간다.

명희가 휠체어를 몰아 쫓아가려는데.

달려나온 문식이 명희의 휠체어를 잡는다.

문식이 앞 쪽을 보지만 이미 정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명희 : 이거 좀 놔봐. 저 사람..

문식 : 방금 뭐라고 했니.

명희 : 당신도 봤지. 준석이잖아.

문식 : 무슨 소리야.

명희 : 방금 그 사람.. (흥분하다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문식을 본다)

문식 : 준석이라니. 서준석?

명희 : ...그럴 리가 없나?

문식 : 명희야.

명희 : 그러네. 그럴 리가 없네. 이십년도 전에 죽은 준석이가. 그 때 그 얼굴 그대로... 여기 있을 수가 없지. 아.. 나 왜 이러지.

 

명희가 얼굴을 쓰다듬어 정신을 가다듬으려 애쓰다가 보면

문식이 굳은 얼굴로 명희를 빤히 보고 있다가.

 

문식 : 그렇게.. 닮았다고? 준석이하고 방금 그 자가? 그래?

 

 

#6. 명희의 방

 

열려진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는 명희. 바람에 흐트러지는 머리칼. 뒤에서 들리는 소리.

 

문식소리 : 감기 들겠어.

 

문식이 다가와 창문을 닫아준다. 출근할 준비를 마친 정장 차림.

창문을 닫고, 명희의 어깨에서 흘러내린 숄을 올려 여며 주는 문식.

 

명희 : 어제 그 남자.. 도둑이었다고?

문식 : 응. 마침 내가 들어가는 바람에 제대로 훔치지도 못하고 도망치던 중이었어. 근데 당신이 겁도 없이 도둑놈을 막아서서..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명희 : 미안해. 내가 헛소리를 해서..

문식 : (웃는) 그렇게 닮았어? 그 도둑하고 준석이가?

명희 : 사실 얼굴 제대로 보지도 못했어. 검은 안경에 모자에.. 내가 약기운 때문에 눈 뜨고도 꿈꾸고 그러잖아.

문식 : 그럼 잠꼬대한 거야? 그렇게 멀쩡한 얼굴로?

명희 : 그만해. (웃다가..) 부탁이 있는데.

문식 : 말해.

명희 : 꿈에 봐서 그런가. 갑자기 생각이 나네. 나.. 준석이 와이프. 연락처 알고 싶어.

문식 : 준석이 그렇게 되고 나서 재혼했다고 들었어. 연락하면 불편해하지 않을까?

명희 : 알고 싶어. 알아 봐줘.

문식 : ... 그래. .. 다녀올게.

명희 : 다녀오세요.

 

문식이 몇 걸음 걸어가다가 멈추더니 돌아선다.

 

문식 : 준석이한테 아들이 있었지.

명희 : 응.

문식 : 이름이..

명희 : 정후. 서정후.

문식 : 나이가..

명희 : 지안이보다 딱 한 달 먼저 낳잖아. 지안이가 1월, 정후가 12월. 한 달 차이로 한 살 오빠가 됐다고 그랬었는데..

         그러니까 지금 스물여덟?

 

문식이 미소 짓더니 끄덕여 보이고 나간다.

문식이 나가자 명희가 다시 창문으로 다가간다. 창문을 연다. 갑자기 예전의 기억들이 밀려들어 가슴이 답답하다.

열린 창문으로 들이치는 겨울바람.

 

 

#7. 문식의 집 정원 / 이른 아침

 

경비 둘이 짝을 지어 정원을 순찰하며 돌고 있다.

간밤의 도둑 사건이 있던 뒤라. 긴장을 하고 정원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살피며 지나간다.

그러나 그들이 지나간 자리.. 나무 위. (혹은 담장 위?)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정후. 안경테를 만져서 줌인을 한다.

// 안경 화면. 창문 쪽으로 주욱 줌인이 되며 보이는 명희의 모습. 흰 커튼이 바람에 휘날린다.

// 정후, 안경테를 터치하고. 음성 통화 지시.

 

정후 : 통화. 아줌마.

소리 : (벨소리가 가다가 걸리더니 민자의 녹음) 자기야. 나 지금 자리에 없거든. 할 말 있으면 녹음하고,

         마무리 멘트는 꼭 이렇게 말해줘야 돼. 사랑해애.

정후 : (테를 터치해서 대충 녹음을 중간에 끊어 띠이..녹음으로 돌리고) 대답하기 난처하면 자리에 없는 척하는 거. 아는데.

         아줌마. 영감탱이하고 날 비행기에 태우려고 한 거, 이거야? 이 집 사모님. 우리 아버지 알던데.

         아버지가 들어 있는 사진도 갖고 있고. 뭐야. 대답해 주기 싫어? 그럼 직접 가서 물어보지 뭐.

         나는 서준석이 아들이고 힐러 일을 하는데. 사모님은 누구세요?

 

정후. 기다려본다. 침묵.

 

정후 : 알았어. 통화 끝.

 

정후, 가볍게 목 운동을 한다. 막 나무(?)에서 뛰어내리려고 하는데.

 

영재소리 : 꼬맹아. 잘 지냈냐.

정후 : (멈칫 멈췄다가 울컥 화가 나며) 이 변태 영감. 진짜..

 

 

#8. 국도 (문식의 집에서 오는 길?)

 

정후가 차를 거칠게 몰며 구불구불한 편도 일차선의 국도를 달려오고 있다.

앞을 서행하고 있는 트럭을 거칠게 추월해가는 정후의 차. 지금의 정후 심경인 듯.

운전석에는 굳은 얼굴의 정후.

 

영재소리 : 그 집 사모님 이름은 최명희고. 니 아부지 사진 속에 있는 다섯 명 중에 여자 하나 있지? 바로 그 여자야.

               이 정도면 만족하냐? ..라고 해봤자 만족 못하겠지? 알았다. 내가 가마. 너 우냐? 울지? 이 사부가 글케 보고 싶었어?

               아 쫌만 기다려. 울지 말고.

 

 

#9. 강변

 

그 한쪽에 세워져 있는 정후의 차. 그리고 그 아래 강변 쪽. 강을 바라보고 서 있는 정후.

 

정후소리 : 여덟 살 때. 모친이 집을 나간 뒤부터 난 인간 때문에 울어 본 적이 없다. 인간한테 바라는 것도 없다.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인간의 이해와 관심이다.

 

돌멩이를 발로 차서 올린다. 손으로 받아 잡아 강물로 던진다. 수제비를 뜨다 가라앉는 돌멩이.

기억 속에 들리는 남선생의 소리.

 

남선생소리 : 서정후. 너 인마. 또 싸웠어?

 

 

#10. 회상 / 학교 상담실 앞 복도

 

상담실 팻말 아래. 중1의 사내아이들 너댓명이 주루루 꿇어앉아서 손을 들고 있다.

격하게 싸운 듯. 다들 옷차림이 엉망이고. 그 중 하나는 코피가 난 코에 휴지를 틀어막고 있다.

이쪽에 혼자 따로 떨어져 손들고 있는 열네 살의 정후. 역시 싸워서 단추가 뜯어져 있고. 입가에 피가 맺혀 있다.

남선생이 정후 앞에 서서.

 

남선생 : 어떻게 사건사고 없이 일주일을 못 넘기냐. 어?

 

 

#11. 상담실 내부

 

상담선생인 듯한 젊은 여선생이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있고. 이쪽에 앉아있는 정후.

남선생은 여선생 옆에 붙어 서서 오지랖 넓게 떠들며 알려주는 중.

 

남선생 : (목소리를 낮추는 법도 없이) 서정후. 이 놈 이거 골치 좀 아프실 겁니다. 그래도 선생님이 이해를 해주세요.

            이놈이 부모님이 다 안 계세요. 할머니하고 둘이 살거든요.

여선생 : 어머.. 왜요.

정후 : (성질이 부글부글 끓는 걸 겨우 참고 있는)

남선생 : 이 놈 어려서 아버님 돌아가시고 어머닌 재가하셨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이놈이 속에 화가 좀 많습니다.

여선생 : 어머.. (정후를 보며 동정이 가득해서) 아버님은 어쩌다가 그렇게 일찍.. 병이셨니?

남선생 : 병이 아니구요. 그게.. (여선생에게 바싹 다가서 나름대로 작게) 스스로.. 그렇게 됐답니다.

여선생 : (못 알아듣고) 네?

 

정후. 옆을 돌아본다. 거기 열린 창문 너머로 밖에 있던 아이들이 고개를 빼고 안을 엿보다가

정후의 성난 눈과 마주치자 얼른 숨는다.

 

남선생 : 아 왜.. 있잖아요. 스스로.. 응? 아주.. 비극이었죠. 정후 저 놈, 속이 멀쩡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께서 좀 더 이해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하는 거죠.

 

여선생이 그제야 알아듣고 완전 놀란 얼굴로 정후를 본다.

 

 

#12. 교실

 

뒷문을 드륵 열고 정후가 들어선다.

아까의 아이들과 다른 아이들이 모여서 숙덕거리다가 정후를 돌아보더니 일제히 조용해진다.

정후가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다가 멈춰 선다. 모두 자기를 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피한다.

 

정후 : 뭐?

 

아무도 대답을 안 한다.

 

정후 : 뭐냐고. 어?

 

옆의 책상을 발로 냅다 찬다. 아이들이 슬슬 피한다.

저만치 앞 쪽에 있던 반장이 그 옆의 아이들에게.

 

반장 : 건드리지 말고 그냥 냅둬. 니들이 그냥 봐줘.

정후 : (폭발해서) 뭘 봐줘어.

 

그대로 책상 위로 뛰어올라 반장을 덮친다. 옆에 여자아이들이 비명을 지른다.

 

 

#13. 강변

 

강물 위를 통통 치다 빠져 들어가는 돌멩이.

보고 있는 정후. 잊었던 기억이 다시 떠올라 성질이 부글거리고 있는데.

주머니의 휴대폰이 울린다. 꺼내서 보면 발신인 [채영신]. 잠깐 망설이다가 받는다.

 

정후 : 예.

영신소리 : 여어. 뽕숙아.

정후 : (별로 통화할 기분이 아니다)

영신소리 : 너 어디야? 설마 밤새 술집 뒤지고 다닌 거야? 잠은 좀 잤어? 왜 계속 전화를 안 받아.

정후 : (그냥 듣고만 있다)

영신소리 : .. 봉숙아. ...박봉수

정후 : 예

영신소리 : (잠시 말이 없다가 걱정스러워서) 너 괜찮아?

 

괜찮아? 하는 물음에 정후, 어쩐지 마음이 풀어진다.

 

정후 : 괜찮습니다.

영신소리 : 너 목소리 왜 그래. ..봉숙아.

정후 : 예

영신소리 : 너 왜 존댓말 해. 사람 걱정되게.

 

정후. 그 말에 그만 피식 웃는다.

 

정후 : 그럼 하지 말까요. 존댓말.

영신소리 : 시끄럽고. 너 골라봐. 동쪽. 서쪽. 어느 쪽.

정후 : 뭐가.

영신소리 : 내가 어제 누구한테서 뭔가를 받았거든. 이걸 김문호가 출근하면 보고를 하긴 해야 되는데. 어디까지 보고할 것인가.

               그걸 결정해야 된단 말이지.

정후 : (아..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

영신소리 : 그래서 동쪽이야. 서쪽이야.

정후 : 이봐요. 선배. 그게...

영신소리 : 동쪽. 서쪽.

정후 : 동쪽.

영신소리 : (한숨)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알았어. 끊어.

정후 : 아 잠깐. 그거 보고하는 거..

영신소리 : 아침 먹었어? 안 먹었음 먹고 와. 늦어도 되니까.

 

정후가 뭐라 할 사이도 없이 끊어버린다. 끊긴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정후소리 :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건 인간의 이해와 관심...이었다. 내가 그랬었다.

 

정후. 차 쪽으로 선뜻 돌아서 간다. 점점 빨리.

 

 

#14. 썸데이 로비 홀

 

오락가락 서성이고 있는 영신의 발. 수면 양말에 슬리퍼.

영신이 혼자 손가락을 허공에 흔들기도 하고 고개를 젓기도 하며 생각에 빠져 있다.

간밤 회사에서 지새느라고 입은 낡고 커다란 점퍼에 대충 까치집처럼 묶어 올린 머리칼.

그 위로 적당히 시작되는 나레이션.

 

영신소리 : 절도 폭력 전문변호사인 아부지는 말했다. 그래도 사람은 사람을 믿고 사는 거다.

               믿어 줬는데 뒤통수 칠 놈은 오십명에 한 명. 그 한명 때문에 나머지 사십구 명을 의심하면서 살지 마라..

 

영신, 멈춘다.

 

영신소리 : 그래도... 그 사람이 그랬다.

정후변조소리 : (7부 #46의) 내가 말했죠?

 

영신, 저도 모르게 눈을 감는다. 눈을 감아야 더 잘 떠오르는 어제의 그 목소리.

 

정후변조소리 : 겁도 없이 아무나 따라가지 말라고. 가까이 와서 친절하게 구는 사람은 더 조심하고.

 

 

#15. 회상 / 7부 #46. 옥상 위

 

(영신의 기억 속의 앵글. 정후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 상태로)

영신의 손이 바로 앞 정후에게 부딪힌다. 놀라 멈췄던 영신의 손이 주춤거리며 옷자락을 더듬어 정후의 가슴께에 멈춘다.

잠시 후.. 정후의 손이 올라오더니 영신의 손을 감싸 잡는다.

정후의 얼굴이 영신에게 다가온다. 그 얼굴이 보일까.. 싶은 순간인데.

 

종수소리 : 저기요.

 

 

#16. 썸데이 로비 홀

 

영신, 눈을 떴는데. 바로 코앞에 보이는 종수의 얼굴.

 

영신 : 아 뭐야.

 

영신 놀라서 뒤로 물러서다 넘어질 뻔. 종수가 영신의 팔을 잡아주며.

 

종수 : 말 좀 물어볼라고..

영신 : (팔을 뿌리치며) 뭐요.

종수 : 여기가 썸데이 맞죠.

영신 : 썸데이는 3층이고요. 무슨 일로 오셨는데.

종수 : 어. 썸데이 직원분이세요?

영신 : 그런데요.

종수 : 김문호 선배 출근했어요?

영신 : 아직요. 근데.. 알아요?

종수 : 내가 인간 김문호의.. 무협지용어로 말하자면 제자 중에 따거. 수제자라고 할 수 있죠. 이종수라고 합니다.

         (악수하자고 손을 내밀지만)

영신 : (무시하고) 그럼 잘 아시겠네. 인간 김문호.

종수 : (내밀었던 손으로 머리를 정돈하며) 좀 쓸데없이 많이 알죠.

영신 : 어때요. 그 인간.

종수 : 에... (손가락질하며 웃으며) 캐내기? 그럼 맞교환. 내가 김문호 알려 줄게. 그 쪽은 채영신에 대해서 알려주기.

영신 : (어라?) 채영신을 알아요?

종수 : 모르니까 미리 사전 취재를 해놓자는 거죠. 어떤 여자에요? 우리 선배가 그 여자 땜에 여기 왔다는 정보를

         내가 좀 주워들었거든. 쭉쭉빵빵 글래머? 아니면 보호본능 백퍼 유발 청순가련형?

영신 : (생각해보더니) 둘 다 아닐걸요.

종수 : 아 집안이 빠방하구나.

영신 : (종수의 뒤를 보며) 빠방한 집안 여자 좋아하세요?

 

누군가 종수의 뒤통수를 퍽 때린다. 김문호다.

종수가 뒤통수를 감싸며 돌아보고

 

종수 : 선배애..

문호 : 니가 왜 여기 있어.

종수 : 안녕하셨습니까. 보고 싶었습니다.

문호 : (영신을 보며) 채영신.

종수 : (그제야 영신을 다시 보고) 엄마야..

문호 : 숙제는 다했나.

영신 : 드릴 말씀이 있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사람 많은 데선 좀 곤란하고. 밖에 어디 조용한 데서..

문호 : (영신의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그 꼴로 나가자고?

 

문호가 영신의 뒤통수에 큰 손을 얹어, 엘리베이터 쪽으로 밀어가며

 

문호 : 내 방, 공사 끝났잖아. 문 닫으면 조용하고.

 

종수, 영신이 어정어정 밀려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있다.

 

 

#17. 썸데이 편집실

 

이미 내부 인테리어 공사가 끝난 실내.

여기자가 모니터 뒤에서 고개를 빼어 눈만 내어 보는 곳.

저만치 문호의 방, 유리 창문 너머 블라인드 사이로

문호와 영신. 장부장. 세 사람이 심각하게 나란히 서서 뭔가(문호의 노트북)를 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여기자가 눈알을 돌려 보는 곳.

종수가 찡그린 얼굴(사무실 꼴이 한심해서)로 실내를 둘러보다가 여기자와 눈이 마주치자 억지로 웃어 보인다.

(여기자는 홈피 리뉴얼 작업 중이었음)

 

 

#18. 문호 집무실

 

나란히 서서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는 문호. 장부장. 영신.

노트북에 연결되어있는 황재국의 외장하드.

영신이 스페이스바를 눌러 멈추게 하더니

 

영신 : 이 외장하드에 들어있는 동영상은 총 220시간 정도의 분량입니다. 내용은 보다시피 각양각색의 인사들을 접대하는

         황재 엔터 소속 여배우들을 몰래 찍은 거구요.

장부장 : 이걸 다 본 거야?

영신 : 다 봤습니다.

장부장 : 밤새서?

영신 : 밤새서. 빨리 감기로 보다가 멈춰서 메모를 하다가 토할 뻔 하다가 다시 삼키면서 다 봤습니다.

문호 : 어디서 났어.

영신 : 예?

문호 : 그 외장하드.

영신 : ... 그게요. (망설이는)

장부장 : 그러게. 누가 준건데. 거기 내부 고발자가 있었나? 누구?

영신 : (문호를 향해 똑바로 서더니) 사실 좀 망설였습니다.

문호 : 뭘.

영신 : 김문호란 선배 분을 믿을 수 있을지.

문호 : (보는)

장부장 : (지가 괜히 눈치를 보며) 얘. 영신아. 너 뭐래니.

영신 : 이 제보자는요. 제가 아주 오래 전부터 취재를 해오던 인물이고요. 굉장히 어렵게 접선이 되었고요.

         아직 그 이유는 모르지만 일단 저에게 호의적입니다. 그런데. 선배가 선배랍시고 이 인물 취재를 중간에서 가로채신다거나

         그럴까봐. 좀 겁납니다. 솔직히.

장부장 : (문호에게) 얘가 잠이 모자라면 항상 이렇게 맛이 가요. 그러니...

영신 : 이 인물과의 접선은 무조건 저에게 일임한다. 그렇게 약속해주시면..

문호 : 약속해. 누구야.

영신 : ... 혹시 밤심부름꾼이라고 아십니까?

장부장 : (알아챘다) 야. 너 또..

영신 : 그 중에 힐러라는 코드명을 가진 자가 있는데요.

장부장 : 도대체 넌 그 되지도 않을... 너 설마.. 진짜?

 

장부장은 놀랐는데.

문호는 덤덤하게 영신을 보고만 있다.

 

영신 : 혹시 아십니까?

문호 : (덤덤하게) 알어.

 

 

#19. 썸데이 편집실

 

종수가 돌아보는데.

거기 입구로 들어오는 정후. 실내를 둘러보다가 문호 방을 보았다.

영신이 거기 있다. 문호와 함께.

마음이 급해지며 그 쪽으로 가려는데. 종수가 막아서며

 

종수 : 지금 저 안에서 기밀회의중인데요. 그래서 지금 관계자외 출입금지.

 

정후가 종수를 힐끗 보더니 한걸음 옆으로 옮기는 척한다.

종수가 다시 그 앞을 막으려는데.

정후는 그 움직임을 미리 안 듯 한바퀴 돌아 반대쪽으로 빠져서 지나쳐간다.

종수가 어어.. 돌아보지만. 이미 정후는 문호의 집무실 문 앞까지 다가서고 있다.

다가서며 빠르게 옆 책상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메모지 뭉치를 집어 든다.

 

 

#20. 문호 집무실

 

요란하게 노크소리가 나더니 문이 벌컥 열리며 정후가 들어선다. 봉수의 어벙한 모습으로 순간 변해서.

 

정후 : 안녕하십니까. 제가 그거 알아왔습니다.

장부장 : 야. 넌 좀 나가 있어봐.

정후 : 금방 나가겠습니다. (문호 쪽으로 오며) 그 왜 황재국 사장의 단골 술집을 알아오라고 하셨잖습니까. 제가 알았습니다.

         그게 어디냐 하면요.. (손에 든 메모지들을 뒤지는 척 하며) 내가 잘 적어왔는데.. 아 여깄다. 이름이 루나...루나문이랍니다.

         (그제야 봤다는 듯 영신을 보며) 어 선배. 밤 샜어요? 세수는 좀 하지.

 

영신이 대답을 하려는 순간 문호의 노트북에서 들리는 딩동.. 알림음.

무심코 화면을 내려다보던 영신이 굳는다.

문호가 그 화면을 보다가 아차. 화면 아래 한 구석에 팝업창이 떠있는데. 메일이 왔다는 것을 알리는 팝업창.

[ Healer@moebius.com님으로부터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

(바탕화면은 보고 있던 영상의 스톱모션. 풀어진 와이셔츠 차림의 사내들에게 술을 따라주고 있는 여인들.

몰래카메라 화질. 뒤의 황재국 서재에서 보일 영상과 동일해도 상관없음)

팝업창이 사라지고. 영신이 문호를 본다.

 

영신 : 방금 제가 본거요.

문호 : ...

영신 : 힐러님으로부터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이 힐러.. 그 힐러 맞아요?

 

정후가. 아.. 해서 둘을 본다. (이 순간 메일이 올 거라는 건 생각 못했다)

영신이 놀라 문호를 보고. 문호는 무뚝뚝한 얼굴로 그런 영신을 본다.

장부장이 이게 뭔 소린가 해서 둘을 보고.

그 때

 

정후 : 이 술집 이름 적어놓을까요? 여기..

 

하면서 책상 위에 메모지를 놓는 듯 하다가 바닥에 떨어뜨린다.

사방으로 흩어진 종이들.. 어이구.. 하면서 그걸 줍는다고 주저앉아 우왕좌왕.

영신이 계속 문호를 본 채.

 

영신 : 맞아요?

문호 : (장부장을 보더니) 자리 좀 비켜주겠습니까?

장부장 : 예? 아.. 예에.. (나가기 싫지만.. 아래서 우물거리는 정후를 발로 툭 툭 차며) 박봉수. 일나. 나가자. 어이.

정후 : 예. 잠깐만요. 잠깐만...

 

하고 메모지들을 줍는 척 하면서. 재빨리 문호의 책상 아래쪽에 도청기를 붙인다. 일어난다.

어설프게 주워든 메모지를 또 떨어뜨릴 듯한 포즈로

 

정후 : 루나문.. 그 이름은 그럼 엇다가 적어놓으면..

 

장부장이 그런 정후를 밀고 나간다. 문이 닫힌다.

 

영신 : 힐러 골뱅이 뫼비우스 닷컴. 그거 내가 아는 힐러의 메일 주소거든요. 유명하다는 해커들. 경찰 사이버팀들이

         그 메일의 주인을 찾겠다고 도전했으나 다 실패. 어떤 해커는 삼박사일동안 추격을 했는데 최종적으로 도착한 주소가

         바로 내 집이더라. 그 전설의 메일주소요. 신기하네. 왜 그 힐러가 메일을 보냈을까.. 선배한테.. ..하하..

 

억지로 웃다가 멈춰지며 문호를 본다.

문호가 빤히 영신을 보고 있다. 어디까지 무엇을 얘기할지 생각중이다.

 

 

#21. 준비실

 

정후가 들어서며 민자와 통화. 커피를 따르며 계속.

 

정후 : 아줌마가 김문호한테 메일 보냈어?

민자소리 : 어. 방금. 니가 보내라고 했자네.

정후 : (한숨)

민자소리 : 채영신이를 지키라는데. 누구한테서 왜 지켜야 하는 건지 구체적으로다가 데이터를 달라고 요청하라매.

정후 : 아니 그걸 왜 하필 지금..

민자소리 : 도청기 주파수 맞췄다. 누구네 말을 엿들을라고?

정후 : 쉿.. (하며 귀에 이어셋을 꼽는다)

 

잠시 소리가 없다가.. 들리는 소리.

 

영신소리 : 힐러를 개인적으로 아십니까?

문호소리 : 몰라.

영신소리 : 그럼.. 고객으로 의뢰를 하신 겁니까?

 

정후. 멈춰 대답을 기다린다. 잠시 후.

 

문호소리 : 그래.

 

정후. 뭔가 짜증이 나며 무심코 커피를 마셨는데. 역시 맛이 없다.

 

 

#22. 문호 집무실

 

책상 아래쪽에 숨겨져 붙여진 도청장치.

 

영신소리 : 그럼.. 이 외장하드... 가져오라고 시킨 것도 선배였습니까?

 

영신과 마주한 문호. 책상에 기대서 좀 생각해보더니.

 

문호 : 정확하게 그 일을 의뢰했던 건 아닌데. 내 지시를 확대해서 해석한 거 같군.

영신 : 정확하게.. 뭘 의뢰했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문호 : 아니.

영신 : 왜 안 됩니까.

문호 : 몇 번을 얘기해줘야 하나. 그딴 식으로는 인터뷰 대상의 제대로 된 답변을 얻어낼 수가 없다고.

영신 : 얼마 전 골목에서 깡패들에게 납치당할 뻔 했습니다. 그 때 힐러가 구해줬어요. 그것도 선배가 의뢰하신 거에요?

문호 : 상대를 달래는 기술도 없고. 기를 죽여 놓을 논리도 없고...

영신 : 그 얼마 전에는 내 가방을 훔쳐가고 내 손톱을 가져갔습니다. 그것도 시킨 겁니까?

문호 : 여기까지 하지. 나가 봐.

영신 : 대스타 기자 김문호가 왜 평생 알지도 못했던 비급 찌라시 기자의 뒤를 캐요. 왜 지켜주고 왜 구해줘요.

         내 DNA는 왜 필요하고요. 이상하잖아요. 이렇게 이상한데 어떻게 안 물어봐요. 어떻게 여기서 끝내고 나가요.

 

문호, 영신을 가만히 본다.

 

 

#23. 준비실

 

정후가 조용히 서서 문호의 답변을 기다린다.

 

 

#24. 문호 집무실

 

영신을 바라보던 문호가 싱긋 웃더니.

 

문호 : 기술도 없고 논리도 없지만. 패기는 있네.

영신 : (에이 진짜.. 열 받는데)

문호 : 나. 공중파 방송국 자리 던지고 나와서 내 신문사를 하나 가져볼 생각이었어. 그래서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었고.

         여기 썸데이가 그 중에 하나. 결정하기 전에 뒷조사는 해야지. 그 안에 소속된 기자들도 하나씩 다.

         어떤 실력과 배경을 가졌는지 알아야 했고.

영신 : (머뭇..) 그럼 저만 말고..

문호 : 그래. 너만 말고 여기 기자들 다 뒷조사를 했어.

영신 : 그럼 내 DNA는..

문호 : 그건 뭔 말인지 모르겠는데.

영신 : 절 지켜준 건요. 깡패들한테서..

문호 : 지켜야지. 넌 이제부터 내 총알받이가 돼야 하는데. 아무리 일개 보병이라도 소중히 해야지.

영신 : (뭔가 맥이 풀리는 기분. 뒤로 물러서다가 뭔가에 부딪히고 비틀)

문호 : 더 묻고 싶은 건 없어? 일단 인터뷰 대상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는데 이 때 물고 늘어져야지.

영신 : ... 됐습니다.

문호 : 뭐가 돼.

영신 : 그냥.. 기분이 더러워서요.

문호 : 왜.

영신 : (애써 웃는) 쪽팔려서 그럽니다. 어제 힐러 만났을 때 내가 했던 말을 생각하니까 죽고 싶어서요.

         난.. 그 사람이 나한테.. 나를.. 아닙니다.

문호 : 만났다고? 힐러 얼굴을 봤어?

영신 : 봤으면.. 알았겠죠. 그 사람이 얼마나 날.. 한심하고 황당하게 보고 있었는지...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보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더니 돌아선다.

 

 

#25. 준비실

 

정후가 유리창 너머로 사무실 쪽을 본다.

저기.. 문호의 집무실에서 나오는 영신. 풀이 죽은 얼굴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는데.

 

민자소리 : 이야. 글 쓰는 것들 참 무섭다야. 어케 저렇게 거짓말이 순발력 있게 나오냐.

 

정후는 영신의 얼굴표정이 신경 쓰여서 대꾸도 않는다.

 

민자소리 : 쟤네들은 지랄도 아주 창조적으로 한다. 그쟈.

 

정후가 기웃해서 영신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본다.

영신은 자기 자리에 앉더니 우울하게 있다가, 입고 있는 점퍼의 뒤를 들어 머리 위로 뒤집어쓰고는 책상에 엎드려 버린다.

(그 뒤 배경으로는 종수가 문호의 방으로 들어가는)

정후, 그런 영신이 마음에 걸린다.

 

 

#26. 지하 주차장

 

상수가 차를 몰고 도착한다. 이번에는 오픈카가 아닌 뚜껑이 있는 차량.

차에서 내린 상수가 주위를 둘러본다.

저만치 세워져 있는 문식의 차. 그 옆에 서서 상수를 보고 있던 오비서. 주위를 살펴보고 나서 차의 뒷문을 열어준다.

 

 

#27. 차의 내부

 

뒷좌석에 문식이 앉아 있다가 돌아본다.

열린 문 밖에서 상수가 꾸벅 절을 하더니 조심스레 들어와 앉는다.

오비서가 문을 닫아주고.

상수가 들고 온 서류봉투를 문식에게 건네준다.

운전석으로 오비서가 들어와 앉는 동안 상수 보고 시작.

 

상수 : 채영신에 대한 모든 것입니다. 문의하신대로 채영신은 여덟 살 때 입양되었고요.

문식 : 여덟 살이라고 했나.

상수 : 그 이전 다섯 살 때 미아로 발견되었던 모양입니다. 이후 몇몇 가정에 입양과 파양이 거듭되다가...

 

말하던 상수, 슬쩍 옆을 본다.

서류봉투를 잡은 문식의 손에 힘이 들어가 봉투가 구겨지고 있다.

 

상수 : 여덟 살 때 채치수의 양녀로 입양되었습니다. 채치수는 현재 주연희 사건을 맡고 있는 변호삽니다.

문식 : 처음 미아로 발견되었던 장소는?

상수 : (기억을 되살리며) 서울이었는데요. 아 신당동 쪽으로 들었습니다. 신당동 어느 골목 쓰레기통 뒤에서 발견되었다고요.

         처음 발견했을 때 말을 안 해서 언어장애인으로 분류 되었고요. 채치수 집에 입양 될 때 서류를 봐도

         특이사항에 언어장애라고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운전석에 앉은 오비서가 백미러로 슬쩍 본다.

확연히 굳어있는 문식의 표정.

 

 

#28. 문식의 집무실

 

들어서는 문식.

그 뒤를 따라 들어오는 오비서. 오비서는 문식을 살피고 있다.

책상 앞에 도달한 문식이 들고 온 서류봉투를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서랍 하나를 열더니 거칠게 쳐넣는다. 서랍 문을 쾅 닫는다.

그러다 깨달은 듯 오비서를 본다.

 

오비서 : 시킬 일이 있으십니까?

문식 : 시킬 일... (뭔가 생각하다가 스스로 떨치듯) 아니. 없어. 나가 봐.

 

오비서 고개를 숙여 보이고 나간다. 문을 닫는다.

문식. 앉지 못하고 선 채. 식은땀이 나는 기분. 넥타이를 느슨히 푼다. 그 손이 떨린다. 멈춘다.

기억나는 소리.

 

젊은명희소리 : 지안이 찾아줘.

 

 

#29. 회상 / 90년대 병실

 

사고 후 젊은 명희가 누워있다.

척추를 다치고 뇌수술을 받은 뒤라서 온 몸은 꼼짝 못하고 목에는 기브스. 머리에는 두텁게 붕대가 감겨 있는데.

그 눈이 옆에 선 젊은 문식을 간절히 보고 있다.

 

명희 : 지안이 못 찾으면 나... 죽어서도 그이 못 만나. 무슨 염치로 만나. 문식아 제발.. 우리 지안이 좀 찾아줘.

 

명희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옆에 선 문식이 굳어서 보고 있다.

그 모습에서 거칠게 전환되는 장면.

 

 

#30. 회상 / 90년대 파출소 내부

 

순경이 일지를 뒤져보더니 그 앞에 선 젊은 문식에게.

 

순경 : 아.. 여기 있네. 지난 27일 공육시 30분 경. 쓰레기차 기사분이 발견하셨답니다.

         쓰레기더미 뒤에 숨어 있어서 처음에는 못 봤고. 쓰레기를 치우다가 발견해서 놀랐다.

 

그 모습이 거칠게 전환.

 

 

#31. 회상 / 90년 대 보육원

 

기다리며 서 있는 젊은 문식. 보육원을 둘러본다.

허름하고 초라한 분위기의 당시 보육원. 별로 크지 않은 규모다.

그 옆에 뛰어서 오가는 보육원 아이들.

문득 문식이 돌아본다. 거기 안에서 보육원 직원의 손을 잡고 나오는 다섯 살의 지안.

지안이 문식을 보더니 놀라 선다. 그러더니 직원의 손을 뿌리치고 문식에게 달려온다.

문식이 쭈그려 앉아 받아준다. 문식의 목을 끌어안고 매달리는 지안.

문식이 그런 지안을 안아 올리는데. 착잡한 표정. 그 모습이 거칠게 전환.

 

 

#32. 문식의 집무실

 

책상을 짚고 있는 문식의 두 손에 힘이 들어가 있다.

문식, 호흡을 고른다. 떠오르는 기억들을 떨쳐 버리려 애쓰는데.

불쑥 들리는 소리에 소스라쳐 놀란다.

 

젊은준석소리 : 왜 그랬어?

 

문식이 돌아보면 거기 집무실 구석, 어느 가구에 기대 서 있는 젊은 준석. 언제나처럼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준석 : 인마. 그냥 델고 오지. 그렇게 평생 쫄아서 살 거면 그냥 델고 오지 그랬냐.

 

문식. 환상을 무시하려 애쓰며 의자에 앉는다. 앞에 있는 결재 서류를 들춰보다가 움찔.

바로 책상 건너편에서 준석이 책상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여 문식을 들여다보며

 

준석 : 왜. 지안이가 있으면 명희가 절대 길한이를 떠날 수 없을까봐? 그래서 절대 너한테 오지 않을 거니까?

         그치. 맞지. 이야.. 난 왜 이렇게 언제나 맞을까. (재미있다는 듯 웃는다)

 

문식이 뭐라 대답을 하려는데 앞에 준석은 없다.

그 때 뒤에서 들리는 소리. 문식 굳는다.

 

젊은길한소리 : 왜 그랬어?

 

문식, 돌아보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본다. 거기 젊은 길한이 서 있다.

 

길한 : 우린 친구였는데.

 

문식이 벌컥 일어서는 바람에 바퀴 의자가 뒤로 거칠게 물러난다.

 

길한 : (어쩐지 쓸쓸한 얼굴로 문식을 보며) 문식이 너. 우리.. 친구였어. 친구는.. 그러면 안 되잖아.

 

// 이만치 문. 문이 조금 열려 있다.

 

 

#33. 집무실 문 밖 비서실?

 

오비서가 열린 문틈으로 방 내부를 보고 있었다.

오비서가 보는 시선으로 문식은 아무도 없는 방안에 우두커니 서 있다. 질린 듯한 얼굴로.

 

 

#34. 건물 옥상

 

오비서가 전화를 하고 있다. 옥상 내 정원이 조성되어 있는 곳.

오비서의 옆에도 화단이 있다.

 

오비서 : 사장님께서 그렇게 흔들리는 모습은 십년 이래 처음입니다. 92년 그 사건 당시 잃어버렸던 아이가 의도적으로

            사장님께 접근을 해오는 거 같습니다. 김문호에게 먼저 접근을 해서 김문호는 이미 그 아이 쪽으로 넘어간 듯 하구요.

            .....정확한 의도는 모르겠습니다. 먼저 의도를 알아볼까요.

 

 

#35. 지하 바

 

어르신이 칵테일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스피커폰으로 통화중.

여전히 바 내에는 다른 손님들이 없고. 입구 쪽과 여기저기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만이 폼나게 서서 지키고 있다.

어르신은 조심스레 양을 재가며 리큐르 등을 쉐이커에 넣으며...

 

어르신 : 김문식이는 내가 키우는 애들 중에 탑에이스란 말이야. 영민하지만 분수를 알고. 분수를 알지만 비굴하지 않아.

            행장진퇴를 아는 명장이지. 그런데 우리 문식이에게 딱 하나 약점이 있어. 그 딸아이야. 그 딸아이는 말이지.

            김문식이를 단번에 풍선인형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어. 그 왜 있잖아. 가게 앞에서 팔다리를 너풀거리면서 춤추는 거.

            바늘 한방이면 펑 터지는 거. 우리 문식이를 그렇게 만들면 안 되지.

 

어르신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쉐이커를 흔든다.

 

 

#36. 건물 옥상

 

오비서 : 예 어르신. 싹은 올라오기 전에 자르는 걸로... 김문호에게는 확실하게 경고를 하는 걸로. 김문식은 알 필요가 없는 걸로.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오비서가 휴대폰을 끊더니 그때까지 보고 있던 화단 모서리의 담배 꽁초 한 개를 주워든다.

옆에 있던 쓰레기통에 잘 버리고 간다.

 

 

#37. 문호의 집무실

 

문호가 메일을 쓰고 있다. 힐러에게 쓰는 메일이다.

화면에 보이는 메일 화면. 중에 확대되어 보이는 부분. [ 수신인 : Healer@moebius.com 발신인 : 김문호 ]

문호가 빠르게 타이프 하는 내용이 화면 옆으로 흐른다.

[ - 김문식의 옆에 있는 오태원 비서를 특히 유의할 것 그리고 ]

문호가 잠시 생각해보더니 타이핑한다. 그리고.. 글자가 지워지고

[ 경고 : 다시는 채영신에게 개인적으로 접촉하지 말 것 ]

 

 

#38. 썸데이 편집실

 

자기 방에서 나오는 문호.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을 가로지르며 지시.

 

문호 : 채영신

영신 : (책상 앞에 있다가) 예. (이제 제대로 복장과 헤어를 갖춘)

문호 : 주연희 인터뷰 딸 수 있겠어? 얼굴, 목소리, 모자이크 해준다 하고. 상세한 내용을 따봐. 김의찬 부분을 특히 집중해서.

영신 : 알겠습니다.

문호 : 거기 신입.

 

정후가 나? 해서 돌아보면 문호가 옆의 뜯지도 않은 새 카메라 상자를 들어 다가가며

 

문호 : 카메라 찍을 줄 아나?

정후 : 휴대폰 카메라면.. 많이 찍어봤는데....

 

문호가 정후에게 카메라 상자를 안기며

 

문호 : 이거 들고 가서 채영신이 인터뷰 찍어와.

 

정후가 어어.. 해서 대꾸하려하지만 이미 장부장에게 가는 문호.

 

문호 : 혹시 아는 형사 있습니까? 제가 아는 형사들은 다들 정치권하고 친한 높은 분들이라서요.

장부장 : 황재국의 동영상, 신고하려고 그러십니까?

문호 : 우리가 기사를 먼저 터뜨리면 저쪽에서 증거들을 은폐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건 경찰 수사와 보조를 맞추는 게 도리죠.

         그래야 우리도 나중에 외딴 섬이 되지 않을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보조를 맞춰줄 형사가 필요한데..

영신 : 있습니다.

 

돌아보면 영신이 일어서며

 

영신 : 황재국을 감시하고 있던 형사를 하나 압니다. 아마 그 쪽이라면 좋아할 거 같은데요. 그 동영상.

문호 : 좋아. 그리고 너.

 

엉거주춤 서 있던 종수. 얼른 다가온다.

 

문호 : (장부장에게) 이종수라고 방송국에서 내 밑에 있던 앱니다. 하는 짓은 뺀질거려도 실력은 괜찮습니다.

종수 : (장부장에게 꾸벅) 안녕하십니까. 이종수라고 합니다.

문호 : 얘를 여기 좀 넣어도 될까요.

장부장 : 어.. 아니.. 이 친구는 또 왜 여기까지.. 그 좋은데 놔두고.. 당최 알 수가 없는 분들이네.

문호 : 말씀 드려. 아까 나한테 했던 얘기.

종수 : (괴롭지만) 스파이로 왔습니다.

장부장 : ... 뭐로 와요?

종수 : 김문식 사장님.. 그니까 여기 문호선배 친형님께서요. 저보고 문호 선배 옆에 가서 스파이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장부장 : (문호에게) 그런데 하라고 하라고요?

문호 : 말씀드렸다시피 실력이 괜찮아서요. 우린 사람이 필요하고. (뒤를 돌아보더니) 뭣들 하고 있어.

 

영신이 얼른 가방이며 웃옷을 챙기며

 

영신 : 갑니다.

문호 : 인터뷰 할 때 뭘 집중하라고?

영신 : 김의찬 부분을 집중합니다.

문호 : 왜

영신 : 예?

문호 : 왜 김의찬 부분을 집중해야 하는데.

 

영신. 울상이 된다. 잘 모르겠다. 안들리게 궁시렁.

 

영신 : 지가 하라고 시켜놓고. 이씨.

 

 

#39. 도로

 

정후의 차가 운행해오고 있다. 조수석에는 영신. 운전석에는 정후.

 

영신 : 내가 어제 날밤 새면서 해놓은 거. 수고했다 한마디 해주면 응?

 

정후. 운전만 한다.

영신은 계속 투덜대는데 잠이 모자라서 눈은 반쯤 감겨있다.

 

영신 : 지 삶의 모토가 무너지기라도 하나? 아이구 진짜.. (또 하품하면서 차의 내부를 둘러보며) 근데 이거 봉숙이 니 차야?

         니네 집.. 쫌 사나부네.. 하긴 뭐.. 돈 내고 입사도 한 놈이니까..

 

정후가 슬쩍 옆을 본다.

영신의 눈이 스르르 감기고 있다. 고개가 떨어져 내리다가 간신이 다시 올라간다.

 

 

#40. 채치수 집 앞 골목

 

차를 몰아 들어 서는 정후. 운전하지 않는 한 손을 옆으로 뻗고 있다.

보면 앞으로 고꾸라지고 있는 영신의 머리통을 받쳐주고 있는 중이다.

정후가 멈칫. 차의 속도를 떨어뜨린다.

정후가 보는 저 앞 치수의 가게 앞에 서 있는 두 명의 사내. 험상궂은 몰골. 둘이 뭔가 얘기 중인 듯.

영신의 머리를 의자로 밀어놓으며 차를 세운다. 그 바람에 영신이 부스스 잠이 깬다.

정후가 기어를 백으로 돌린다. 영신의 의자 뒤를 잡고 차를 후진시키려는데.

영신이 차 문을 벌컥 연다.

 

정후 : 어이. 잠깐만.

 

정후가 놀라서 영신을 잡으려하지만 이미 영신이 차 밖으로 나갔다. 그러더니 사내들을 향해 달려간다.

정후가 어이없어 보는데.

사내들이 영신을 돌아보더니 웃는다. 달려간 영신이 그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반갑다고 난리다.

정후. 이건 또 뭔가 싶다.

 

 

#41. 치수 가게 안

 

카메라 박스를 안고 들어서는 정후. 입구에서 멈칫.

가게 안은 험상궂은 사내들이 득시글거리는 중. 모두 영신을 둘러싸고 한마디씩. 떠들썩.

영신이 너는 자꾸 그렇게 이뻐지면 안 돼. 잡아가. / 시집을 아직 못갔어? 내가 중매 서줘? /

시끄럽다. 영신이는 시집 안가. 왜 가. 아까워서 못 보내. /

그 가운데서 영신은 좋다고 낄낄대고 있다.

 

사내 : 니 아직 그거 하나. 그거 머지. (하며 어깨 돌리는 흉내 어설프게) 이거이거.

영신 : (바로 받아서 춤 노래 보여주는, SES의 너를 사랑해 안무 그대로) 너를 사랑해 나의 마음이 너를 생각할수록..

 

사내들 좋다고 박수치고 따라하며 들썩이는데.

변호사 사무실 문이 콰당 열리며 튀어나오는 치수.

 

치수 : (버럭) 안 가. 가라고. 나가아!

 

사내들이 어이 형님. 변호사님.. 항의하는데.

치수 옆의 의자를 들어 패려고 하고 휘휘 저어 모두를 몰아 쫓아내며

 

치수 : 니들 땜에 하루 종일 손님 하나 못 받고. 커피 한잔 못 팔고. 영신이 얼굴 보면 간댔지. 봤지. 나가아!!

 

정후가 박스를 든 채 간신이 치수가 휘두르는 의자 회오리에서 피해서 옆으로 물러서고.

사내들이 우루루 쫓겨나가고.. 잠시 난리.

정후가 옆을 돌아보면 영신은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사내들과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아까의 춤동작도 잠깐 보여주고.

정후, 저도 모르게 웃는. 이제 그런 영신에게 어지간히 익숙해졌다.

 

 

#42. 상수파 건물 외경

 

 

#43. 상수파 전산실

 

세 명의 해커들이 앉아 빠르고 능숙하게 작업하는 이쪽에서 상수가 전화를 받고 있다.

(상대 말 듣는 사이시간을 너무 길지 않게)

 

상수 : 준비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에이 오비서님도 참.. 걱정 마십쇼. 우리 더블에스 가드가 원래 몸 쓰는 일보다 머리 쓰는 일에

         특화되어 있거든요. 제가 데리고 있는 애들 중에는 중국에서부터 힘들게 모셔 온 애도 있고..

         (하다가 저쪽에서 뭐라 하는지 듣고) 한 시간입니까? 알겠습니다. 준비해놓겠습니다. 염려마십쇼.

         (전화를 끊자마자 해커들에게 버럭) 한 시간 준다. 한 시간 안에 무조건 끝내.

 

작업대 쪽. 여러 개의 모니터 중의 하나에는 김문호의 리포트 장면이 플레이되고 있다.

(1부에서 영신이 보던 장면으로 활용하겠습니다)

 

문호 : 어떤 신문에도 자신들의 이야기는 한 줄도 나지 않더라. 그래서 이렇게라도 하면...

 

해커의 작업에 따라 화면이 멈추고 다시 앞으로 감겨서 반복된다.

 

문호 : 아무도 들어주지 않더라. 어떤 신문에도 자신들의 이야기는...

 

해커가 보는 앞쪽의 모니터에서는 음성그래프가 작동되고 있다. 문호의 목소리에 따라 들쑥날쑥 변형되면서.

해커가 문호 플레이를 중지시킨다. 앞의 화면의 음성 그래프도 멈춘다.

해커가 키보드의 키를 눌러 작동시킨다. 옆의 화면에 문호의 뉴스 플레이는 멈춰 있는데.

음성 그래프가 다시 움직이며 문호 목소리와는 좀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소리1 : 아무도 들어주지 않더라.

 

해커가 다시 키보드를 작동하고 엔터를 친다. 또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소리2 : 아무도 들어주지 않더라.

 

현재 이들은 문호의 음성을 복사하는 작업 중이다.

 

 

#44. 치수 까페 내부

 

이제 사내들이 모두 가고 난 빈 까페.

철민이 바 안 쪽에서 종이컵 정리를 하며 이쪽을 힐끔거린다.

채치수가 팔짱을 낀 채 서서 보고 있고. 그 옆에 연희가 서 있고.

이쪽에서는 정후가 카메라 조립을 하고 있고. (처음이라 이리저리 가늠해가며)

영신은 치수 앞에 마주 서 있다.

 

치수 : 그래서. 인터뷰를 하겠다.

영신 : (진지하게) 얼굴은 모자이크, 또는 뒷모습만 촬영할 거고. 음성은 변조할 겁니다. 확실하게.

치수 : (연희에게) 어떻게 생각해요.

연희 : 할래요. 그러겠다고 처음부터 말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다고.

치수 : 아니 잠깐만요. 저쪽 변호사 면면을 보니까 말이죠. 우리가 어하면 아 라고 우기고, 아 하면 그거 봐라 아라고 했다 이러면서

         꼬투리 잡고 늘어질 인간들인데... 우리가 언론에 인터뷰를 했다? 이거 재판에 아주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어요.

연희 : 변호사님.

치수 : 예.

연희 : 처음부터 나 유리하게 해달라고 한 적 없잖아요. 그냥 그런 인간들 잘 먹고 잘 살게 놔두고,

         나 혼자만 죽지 않게 해달라고 했죠.

치수 : (한숨을 쉬더니 영신에게) 내 의뢰인하고 좀 더 얘기해보고. 인터뷰를 할 경우 할 말 못할 말 좀 따져보고. 그리고 대답하마.

 

하더니 연희를 사무실 쪽으로 데려간다. 들어가서 문을 닫아버린다.

남은 영신. 돌아본다. 정후가 여전히 카메라 조립하느라고 바쁘다.

 

영신 : 조립하는 법은 아는 거야?

정후 : 원래가 조립하라고 만든 거니까 되겠죠.

영신 : (철민 쪽으로 가며) 아저씨. 나 배고픈데. 먹을 거 좀 없을까.

철민 : 토스트 해주까? 카야잼 넣어줘? 아님 햄이랑 계란이란 다 넣어줘?

 

영신이 가고 나자 정후가 슬그머니 이어셋을 조작한다.

들리는 민자의 소리.

 

민자소리 : 조립하는 법 진짜 알어? 매뉴얼 찾아서 읽어줘?

정후 : (작게) 됐어.

민자소리 : 하긴 니 싸부가 그러는데. 니 아부지란 사람이 그렇게 기계에 밝았대더라.

               어떤 기계든 한번 척 보면 다 작동시키고 다 고쳤대매.

정후 : (흥.. 웃는)

민자소리 : 김문호가 메일을 보내왔다. 근데.. 경고를 해왔네.

정후 : 뭔 경고.

민자소리 : (읽는) 경고. 다시는 채영신에게 개인적으로 접촉하지 말 것.

정후 : 허. (같잖다)

민자소리 : 웬만하면 지키지. 위반하면 돈을 안 줄 거 같은데? 그럼 황이자네.

 

영신이 정후에게 다가온다.

입을 다문 정후가 대충 조립이 된 카메라를 삼각대 위에 얹어 조립하기 시작하는데.

영신이 구경하며

 

영신 : 야. 새 거가 좋긴 좋구나. 이게 얼마나 비싼 거여. 어디.. 일루 보는 건가. 이렇게?

 

영신이 렌즈 모니터를 보느라고 정후의 앞으로 고개를 들이민다.

정후가 그런 영신을 보다가 가만히 손을 올린다. 손가락 하나를 뻗어 살짝 그 머리칼에 댄다.

그런데 영신이 머리를 움직이다가 그 손가락을 알았다.

영신이 멈칫했다가 고개를 돌려 정후를 본다. 이제 정후의 손가락이 영신의 이마에 대어져 있다.

 

영신 : 뭐하냐.

정후 : ... 접촉?

영신 : 뭐?

정후 : 개인적인 접촉. (그러더니 싱긋 웃는다)

 

 

#45. 민자의 아지트

 

민자가 듣고 있다가 어이가 없어서.

 

민자 : 미친놈.. 아주 똥을 싸라.

 

하면서 작업 중. 정후의 새 안경다리에 칩을 심는 정밀 작업 중이다. 돋보기를 코끝에 걸치고.

 

민자 : 근데.. 니 싸부는 아직 연락 없냐? 너 만나러 온다 그랬대매. 아.. 아까 내가 니 싸부랑 통화를 했는데 이상한 거 묻더라.

         니가 생 과일을 좋아하는지 초코렛을 좋아하는지 알고 싶디야. 뜬금없이 뭐래는 건지. 혹시 그거 니들 사이에 뭔 암호냐?

 

정후는 대답이 없다.

 

 

#46. 까페

 

카메라를 만지며 정후가 보는 곳. 저만치서 영신이 레코드판을 턴테이블에 올리고 있다.

영신이 플레이시킨 음악이 들리기 시작한다.

[송창식의 잊읍시다.] 전주 없이 대뜸 흘러나오는 노래.

영신이 이쪽으로 오다가 서더니 카메라를 향해 심각한 얼굴로 브이자를 그려 보인다. 짝다리를 짚기도 하고.

옆으로 섰다가 요염한 척 돌아보기도 한다.

 

정후 : 뭐하십니까.

영신 : 카메라 테스트.

정후 : 저기요.

영신 : 그냥 냅둬. 마음이 심란해서 그러니까.

정후 : 마음이 심란하면 보통 술을 마시거나 우는 거 아닌가?

영신 : (계속 카메라 렌즈를 보며 마이크를 잡은 시늉을 하고) 하나 둘 셋. 안녕하십니까. 여러분은 지금 짝사랑하던 1번 2번

         두 남자에게 동시에 차이고. 그래도 투철한 기자정신으로 현장에 나와 있는 여자 인간을 보고 계십니다.

 

저 뒤에서 철민이 접시의 토스트 위에 파우더 슈가를 모양 좋게 뿌리다가 돌아본다.

 

영신 : 현재 1번은 이 여자인간을 총알받이라 부르고. 2번은 망상 쩌는 관심종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후. 영신을 바로 보지 못하고 렌즈모니터를 본다.

모니터 속에서 영신이 똑바로 정후를 보며 노래말을 진지하게 리포트하듯 말한다.

 

영신 : 선뜻선뜻 잊읍시다. 간 밤 꾸었던 슬픈 꿈일랑 아침 햇살에 어둠 가시듯 잊어버립시다. 없던 일로... 해둡...

 

하다가 영신이 말을 잇지 못한다.

정후. 슬그머니 렌즈 모니터에서 고개를 들어 영신을 바로 본다.

렌즈를 보던 영신이 시선을 들다가 정후와 정면으로 마주친다.

정후가 피하지 않고 그 눈을 보자. 영신이 당황하듯 고개를 돌리더니 창 쪽을 본다.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목소리로.

 

영신 : 아 뭐야. 날씨 너무 좋잖아. 오늘 첫눈 온다 그랬는데. 오기는 개뿔.

 

그러나 정후는 창 밖이 아니라 영신의 얼굴만 보고 있다.

그들 뒤 저만치에서 철민이 그런 그 둘을 본다. 그 앞의 접시에 토스트에는 철민이 뿌려댄 파우더 슈가가 산처럼 쌓여있다.

그 때 변호사 사무실 문이 열리며 치수가 내다본다.

 

치수 : 우린 준비 됐다. 인터뷰 시작하지.

 

 

#47. 치수 변호사 사무실

 

삼각대 위에 설치된 카메라 렌즈로 보이는 투샷.

연희의 뒷모습을 걸쳐서 연희와 인터뷰를 하는 영신의 얼굴이 보인다.

 

영신 : 그 접대 자리에 나갈 때 그게 어떤 자리인지 알고 계셨습니까?

연희 : 그냥 우리 회사에 도움 주시는 분이니까 인사를 드리라고 했어요.

영신 : 누가요.

연희 : 황재국 사장이요.

 

// 시간경과

//계속되고 있는 인터뷰.

 

영신 : 그 K의원에 대해서는 뭐라고 설명을 하던가요.

연희 : 김의찬 의원이요?

영신 : ..네.

연희 : 앞으로 서울 시장이 될 분이라고. 우리나라 서울시장 자리는 나중에 대통령도 될 수 있는 자리라고요.

         그러니까.. 그분에게.. 잘 보이면.. (목이 메는 거 억지로 참더니) 나중에 팔자가 필 거라고.

영신 : (잠깐 망설인다)

 

카메라를 잡고 있던 정후가 고개를 기울여 영신을 살핀다.

이쪽에 있던 치수도 영신을 본다.

영신이 마음을 정하더니.

 

영신 : 팔자가 피고 싶으셨던 거에요? 그래서 거부 안하고. 접대 자리에 나가고, 높은 분들 만나고, 김의원도 만났던 건가요?

연희 : .... (대답을 못하고 있다)

영신 : ...제가 너무 나갔네요. 그럼 다음 질문을..

연희 : 모르니까.. 기자님은 모르니까 그렇게 물어볼 수 있겠죠. 그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니까.

         그 사람들은요. 자기 돈, 자기 자리,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하는 게 그 사람들은 상식이에요.

 

 

#48. 편의점 내부

 

오비서가 껌을 고르고 있다. 주루루 손가락으로 껌을 짚어가면서 다른 손으로는 휴대폰의 통화 버튼을 누른다.

신호음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다가

 

오비서 : 준비 됐습니까?

 

그러면서 껌을 하나 골라 집어낸다.

 

 

#49. 상수 전산실

 

전화를 받던 상수가 작업하는 해커에게 묻는다.

 

상수 : 준비 된 거지?

 

해커가 타이프를 친다. 모니터에 박히는 글자. [준비 된 거지]

그러자 옆의 모니터에서 음성그래프가 움직이며 목소리가 들린다. 문호의 목소리와 거의 비슷하다.

 

소리 : 준비된 거지?

 

그 옆 모니터에 보이는 문호의 정지 화면.

 

 

#50. 치수네 까페 내부

 

정후가 카메라를 거두고 있다. (삼각대에서 풀어내는 작업?) 인터뷰가 끝난 뒤다.

휴대폰이 울린다. 받아서

 

정후 : 여보세요.

영재소리 : 어이 꼬맹이.

정후 : 이 영감 진짜. 대체 지금...

 

하다가 아차. 카운터 쪽의 눈치를 본다.

철민이 샌드위치를 포장하다가 이쪽을 본다.

정후가 그쪽에서 등을 돌리며 작은 소리로.

 

정후 : 지금 어디냐고.

영재소리 : 너 초코렛이 좋냐. 고구마가 좋냐.

정후 : (울컥 열 받는) 계속 그렇게 헛소리하는 거 보니. 나 만날 생각, 첨부터 없었던 거지?

영재소리 : (킬킬 웃더니) 빨리 튀어와. 니 집에서 보자고.

정후 : 튀어 와라. 그럼 내가 바로 튀어가야 되고? 이봐. 영감.

영재소리 : 늦지 마라. 내가 남자 놈은 딱 오 분 이상 안 기다리는 거 알지.

정후 : 아 잠깐만. 언제부터 오분이라는 거야. 이봐. 싸부.

 

하는데 이미 전화는 끊겼다.

정후. 급해지면서 카메라를 도로 놓고 철민에게

 

정후 : 저 먼저 갔다고 좀 전해주세요. (입구로 이동)

철민 : 이거 갖고 가요. 영신이가 먹을 거 좀 싸주라고 해서 내가..

 

나가던 정후가 멈칫 서더니 빠르게 다시 돌아오는데. 철민을 보는 게 아니라 쇼윈도우의 케잌들을 본다.

각양각색의 케잌 조각들이 놓여 있는데. 그 중에는 초코렛 케잌도 있고 생과일이 얹혀진 것도 있고 고구마 케잌도 있다.

 

정후 : 오늘 며칠이죠?

철민 : 오늘이 22일이지.

정후 : (그제야 알았다) 그런 거야?

철민 : 예?

정후 : 오늘이.. 내 생일이었네요. 이 영감 진짜..

 

정후가 어이없어 웃는가 싶더니 달려 나간다.

철민, 포장된 샌드위치를 들고 이거.. 하며 부르려 하지만 이미 닫히는 문.

사무실에서 나오던 영신이 쾅 문소리에 입구를 돌아본다.

 

 

#51. 치수 집 영신의 방

 

영신이 방으로 들어온다. 컴퓨터를 부팅하는데 전화벨. 귀찮아서 휴대폰을 받아

 

영신 : 여보세요. (앉으려다가 다시 벌떡 서며) 선배.

문호소리 : 채영신. 지금 당장 와줘야겠다. 택시 잡아타고 바로 와.

영신 : 무슨 일인데요. (벌써 의자에 걸쳐놓았던 윗도리를 집어 걸치며)

 

 

#52. 치수 집 거실

 

식탁에 앉아 서류를 같이 보던 치수와 연희가 본다.

영신이 전화를 하면서 튀어나오며 수화기를 손으로 막고 치수에게

 

영신 : 아버지 나 나갔다 올게. 연희씨 이따 봐요.

치수 : 어딜 가. 너 어제도 외박했잖아.

영신 : 호출이야.

치수 : 누구. 장부장?

영신 : 아니 김문호 선배. (연희에게) 제보자가 나타났대요. 대박.

         (아래층으로 달려가며 통화) 녹음기나 카메라는 챙기지 않아도 됩니까?

치수 : (계단까지 쫓아가며 잔소리) 모자 갖고 가? 목도리 제대로 여미고.

 

 

#53. 치수까페 앞

 

영신이 달려 나오며 주위를 둘러보며 택시를 잡으려 한다. 통화중.

 

영신 : 경민화물 사거리요? 예. 거기 어딘지 알아요.

 

 

#54. 상수네 전산실

 

상수가 보여주는 휴대폰의 문자 화면을 보며 해커가 타자를 치고 있다.

타자를 친 내용이 앞의 모니터에 글자로 뜨고 그 옆의 모니터에 음성그래프가 움직인다.

화면에 쳐지는 글자와 같은 내용으로 스피커에서 들리는 문호의 목소리.

(어쩐지 약간 감정 높낮이는 없는 식으로. 타자를 쳐야 소리가 나오기 때문에 좀 천천히. 목소리는 똑같은)

 

문호소리 : 그 건물이 지금 비어있어. 후문을 열어놓을게. 옥상으로 와.

 

 

#55. 치수집 앞 길

 

택시가 와서 선다. 영신이 탄다. 택시가 출발한다.

그 위로 계속되는

 

문호소리 : 그리고 이 통화가 끝나는 대로 휴대폰의 전원은 꺼라. 위치추적을 당할지 모르니까. 지금 당장 꺼. 그럼 거기서 보자.

 

 

#56. 택시 내부 뒷좌석

 

영신 : 경민화물 사거리 쪽으로 가주세요.

 

영신이 잠깐 생각하다가 휴대폰의 전원장치를 누른다. 폴더 폰의 전원이 띠익.. 꺼진다. 에이 모르겠다.

영신이 비니 모자를 잘 눌러쓰고 편히 자리를 잡아 앉는다.

 

 

#57. 도로1

 

오비서가 걸어오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 마주 오는 중학생 소년을 본다.

친근한 미소를 띄며 그 학생을 손짓해 부른다.

 

 

#58. 문호 집

 

문호가 막 퇴근해서 들어오는 길이다. 겉옷을 벗어 의자에 걸치고 휴대폰을 꺼내 테이블에 놓고 부엌 쪽으로 움직이려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받는다.

 

문호 : 김문홉니다.

학생소리 : (글을 읽는 어조) 어려서부터 키워주고 이끌어준

문호 : (잘못 걸려온 전화인가 해서) 여보세요.

학생소리 : (계속) 가족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문호, 뭔가 감이 이상하다. 귀를 기울인다.

 

 

#59. 도로2. 공중전화

 

아까 오비서가 불러 세웠던 중학생이 수화기를 들고 종이를 보며 읽고 있다.

 

중학생 : 여자 하나 때문에 가족을 배반하면 안 됩니다. 나쁜 여자입니다. 어서 정신을 차리고 돌아와 주세요.

            모두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더니 중학생이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손에 들려있는 5만원권 지폐 한 장.

중학생, 완전 기분이 좋아서 돈을 들여다본다.

 

 

#60. 문호 오피스텔 지하 주차장

 

문호가 겉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다급하게 걸어오며 휴대폰의 화면을 찾는다.

보이는 화면에 이름. [채영신] 통화를 누른다. 신호음이 가더니 들리는 안내.

 

안내 :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연결된 후에는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문호가 더욱 급해지며 달리다시피 차 쪽으로 이동한다.

 

 

#61. 건물 입구

 

아직 분양이 되지 않은 건물? 혹은 공사가 중단된 건물.

오비서가 걸어 들어온다. 공사장 인부같은 작업복을 입고 머리에는 안전모를 쓰고 있다.

손에는 안부의 작업도구상자 같은 것이 들려있다. (건물은 10층 정도. 너무 높지 않은..)

 

 

#62. 민자 아지트

 

민자가 오늘 종일 작업한 새로운 안경의 작업을 끝냈다. 자기가 써보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모니터 중의 하나가 알림음 소리를 낸다. 돌아보면 메일이 왔다는 아이콘이 뜨고 있다.

 

 

#63. 도로3

 

정후가 운전하는 차가 오고 있다. 그 위로 따르르 전화 벨소리.

 

 

#64. 차 내부

 

정후가 차의 블루투스 통화를 연결한다.

 

정후 : 어 왜.

민자소리 : 김문호한테서 메일이 왔다. 채영신이하고 연락이 안된다고.

정후 : 채영신, 지 집에 있는데?

민자소리 : 그 집에 전화해봤더니 전화를 받고 급히 나갔대. 그게.. 김문호 전화를 받고 나갔댄다.

정후 : 뭔 소리야.

민자소리 : 내 생각엔 음성변조에 걸린 게 아닌가 싶다.

 

정후가 끼익 급브레이크로 차를 갓길에 세운다.

 

정후 : (냉정하려 애쓰며) 누가. 왜.

민자소리 : 김문호 말로는 어르신 쪽에서 경고가 왔대.

정후 : 어르신이 뭐야.

민자소리 : 몰라. 김문호는 지금 일단 지 형한테 달려간다는데.

정후 : (어쩔 수 없이 급해지며) 채영신이 가방에 아직 추적장치 있어. 걔. 가방 그거 하나 밖에 없어. 맨날 들고 다니니까...

민자소리 : 알아. 연결하는 중이야.

 

차의 네비게이션 모니터(혹은 차에 부착해놓은 태블렛?)가 켜지면서 인공위성 지도가 뜬다.

죽죽... 줌인해 들어가는 와중에.

 

민자소리 : 이거 김문호한테도 보낼께. 어느 쪽이든 빨리 가는 쪽이..

정후 : 어디야.

민자소리 : 파주 쪽인데.

 

지도에 빨간 점(깜박이는)이 하나 잡히기 시작했다.

정후, 차를 급출발시키더니 급하게 유턴을 한다.

 

 

#65. 정후의 집 문 앞 공간

 

계단 쪽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영재. 케잌 상자를 하나 들고 있다.

문 앞으로 와서 기웃거린다. 문에 어떤 장치가 되어있는지 살펴보는 중. 그 손의 케잌 상자.

 

 

#66. 건물 엘리베이터 위 공간 (기계실)

 

작업 인부복을 입은 오비서가 별로 급하지 않은 손길로 드라이버(그냥 혹은 전동드라이버?)로 나사를 풀고 있다.

지금 조속기(엘리베이터가 규정 속도보다 빨라지면 전동기 전원을 차단해 브레이크를 작동시킴/기계실 천정에 위치)의

나사를 풀어내고 있는 중이다. (전부 다는 말고 사람이 탈 때까지는 지탱하게 반만)

 

 

#67. 건물 앞

 

정차한 택시에서 영신이 내린다. 돈의 거스름돈을 받느라고 지체한다.

 

영신 : 영수증도 주세요. 경비 처리해야 돼서..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 택시가 출발해가고 혼자 남은 영신이 주위를 둘러본다. 인적이 없는 건물. 썰렁해 보이는 입구.

 

영신 : 뒷문이 어디야.

 

슬금슬금 건물 벽을 따라 뒤쪽으로 걸어간다. 아무도 없어서 어쩐지 무섭다. 괜히 주위를 둘러본다.

저만치 후문이 보인다. 다가선다. 문을 조심스레 밀어보니 열려있다. 끼익.. 열고 고개만 들이밀어 본다.

 

영신 : 선배.. 김문호 선배.. 핼로...

 

불러보지만 아무 대답이 없다.

영신. 할 수 없이 안으로 들어간다.

 

 

#68. 건물 내부 로비

 

영신이 걸어 들어온다. 빈 공간에 울리는 영신의 발소리.

영신 멈춰서서 주위를 둘러본다. 위를 올려다본다. 옥상이라고?

 

 

#69. 도로4

 

문호가 탄 차가 달리고 있다. 문호는 한손으로 거칠게 운전을 하며 다른 한손에 들린 휴대폰을 보고 있다.

휴대폰 화면에는 정후의 화면과 같은 지도. 빨간 점.

 

 

#70. 도로5

 

정후가 운전하는 차가 큰길에서 작은 길로 급히 회전하며 꺾어 들어간다.

 

 

#71. 건물 내부 / 메인 엘리베이터 앞

 

영신이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올라가는 버튼을 눌러본다.

그러나 여러 대 즐비하게 서 있는 엘리베이터들은 다 불이 꺼져 있고, 운행하지 않는다.

어쩌지.. 해서 둘러보다가 한 곳을 본다.

 

 

#72. 건물 내부 / 화물 엘리베이터 앞

 

저만치서 고개를 주욱 빼서 보는 영신. 이쪽 구석에 있는 화물 엘리베이터에는 불이 들어와 있다.

총총 다가온다. 층수 표시를 보면 엘리베이터는 지금 최상층에 멈춰져 있다.

영신이 올라감 버튼을 누른다.

 

 

#73. 건물 기계실 (엘리베이터 위의 옥상 공간)

 

엘리베이터 제어반의 뚜껑이 열려있다.

그 앞에 무료한 듯 앉아있던 오비서. 귀를 기울인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린다.

오비서, 별로 긴장한 기색도 없이 평상적인 일을 하는 샐러리맨 같은 덤덤한 표정으로 도구 상자에서 펜치를 꺼낸다.

 

 

#74. 건물 내부 / 화물 엘리베이터 앞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영신이 안에 탄다. 최상층 버튼을 누른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75. 건물 기계실

 

귀를 기울이고 있던 오비서가 펜치로 제어반 안에 있던 전자 접촉기를 끊는다. 톡.

그리고 또 하나의 선에 펜치를 댄다.

 

 

#76. 엘리베이터 안

 

상승하고 있는 엘리베이터.

그 안에 서 있는 영신. 시선을 들어 층수 표시를 본다. 7. 8. 9

그런데 갑자기 덜컹 멈춘다. 넘어질 뻔해서 겨우 선다.

다음 순간, 엘리베이터 실내등이 일제히 꺼진다. 암흑.

 

 

#77. 비상계단 꼭대기층 부근

 

오비서가 평안한 얼굴로 계단으로 들어선다. 도구 상자를 든 채.

다른 손으로 껌의 껍질을 까서 입에 넣는다.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한다.

 

 

#78. 엘리베이터 안

 

영신이 비상벨을 눌러대고 있다. 아무런 반응이 없지만 애타게 불러본다.

 

영신 : 여보세요. 여기 고장 났는데요. 여보세요. 아무도 없어요? 안 들려요?

 

그러다 생각이 났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전원버튼을 켜는데.

순간 엘리베이터가 심하게 요동을 친다. 영신이 비명을 지르며 넘어진다.

그러느라 휴대폰이 손에서 떨어져 어두운 바닥 어딘가로 떨어진다.

 

 

#79. 건물 밖

 

정후의 차가 급히 도착한다.

뛰어내리는 정후. (힐러 작업복을 바꿔 입을 여유가 없는 상태) 건물 안으로 달려 들어간다.

 

 

#80. 건물 내부 로비

 

달려 들어온 정후. 사방을 살피며 (아직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달려오며 보는 곳.

메인 엘리베이터는 다 불이 꺼져 있다.

 

 

#81. 엘리베이터 윗 공간

 

엘리베이터를 지탱하고 있는 줄 중에 하나가 휘리리릭 풀어진다.

그러면서 매달려 있던 엘리베이터가 다시 크게 요동친다.

 

 

#82. 엘리베이터 내부

 

크게 흔들리며 기울어지는 엘리베이터. 영신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구른다.

다음 순간. 엘리베이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하강한다.

 

 

#83. 로비

 

정후가 후딱 고개를 돌린다. 그쪽에서 들리는 요란한 소리.

정후가 달린다.

 

 

#84. 엘리베이터 윗 공간

 

엘리베이터가 무서운 속도로 3-4층을 하강하다가 덜컹 멈춘다.

 

 

#85. 기계실

 

아까 오비서가 나사를 몇 개 풀어놓은 조속기가 심하게 덜컹거리며 그래도 아직 줄을 붙잡고 있다. 그런데 아슬아슬하다.

 

 

#86. 엘리베이터 내부

 

굴러서 구석에 박혀 있던 영신이 겁에 질려 고개를 든다. 엘리베이터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는데.

위에서 끼이이익... 소리가 나고 있다.

 

 

#87. 건물 내부 화물 엘리베이터 앞

 

달려온 정후가 엘리베이터 앞으로 와 보지만 이미 전원이 꺼져 있다.

문을 열어 보려고 하지만 끄떡도 않는다. 다급한 마음에 두 손으로 문을 쾅쾅 친다.

 

 

#88. 엘리베이터 내부

 

어두운 구석에 박혀 있던 영신이 그 소리를 들었다. 저 아래서 쾅쾅 소리가 난다.

영신이 냅다 소리 지른다.

 

영신 : 살려주세요. 이 안에 사람 있어요.

 

 

#89. 건물 내부 화물 엘리베이터 앞

 

정후가 그 소리를 들었다. 그 옆을 살피더니 비상구로 달려 들어간다.

 

 

#90. 비상 계단 아래쪽

 

아래쪽/ 정후가 계단을 달려 올라가고 있다.

위쪽/ 계단을 내려오던 오비서가 멈춰 선다. 난간 너머로 내려다본다.

미친 듯이 올라오고 있는 정후. 그 발소리가 울려온다.

계단/ 정후가 전속으로 달려 올라간다.

 

 

#91. 비상계단 앞 복도

 

문을 열고 들어온 오비서가 문을 닫는 순간

저 안에서 달려 올라가는 정후가. 문 틈새로 보인다. (오비서는 정후를 못 보게)

 

 

#92. 엘리베이터 위 공간

 

나사를 몇 개 잃은 조속기가 간신이 제어하고 있는 줄에서 불똥이 일어나고 있다.

당장이라도 지탱하고 있는 줄이 풀려나갈 듯 하다.

불꽃을 튀기며 조속기에 맞물려있던 줄이 조금씩 미끄러진다.

 

 

#93. 엘리베이터 안

 

영신의 과호흡이 시작되고 있다.

영신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억지로 숨을 쉬려고 애쓴다.

 

 

#94. 옥상? (기계실로 통하는)

 

비상계단에서 달려 나오는 정후. 달려오면서 거기 비치되어있던 완강기를 꺼낸다.

달린다. 달리면서 줄을(벨트를?) 자기 허리에 감는다.

 

 

#95. 엘리베이터 윗 공간

 

// 정후가 달려오는 속도로 카라비너(고리)를 고정된 곳에 걸고(혹은 엘리베이터 도르래에?) 아래로 뛰어내린다.

// 조속기(도르래 옆)의 나사가 또 하나 티잉 빠져서 날라 간다.

 

 

#96. 엘리베이터 내부

 

엘리베이터가 덜컹 또 한 쪽으로 크게 기운다.

영신, 가쁜 숨소리와 함께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손잡이를 잡고 매달리는데. 위에서 요란한 소리가 난다.

영신이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팔 속에 박아 감춘다.

그러나 천정 뚜껑을 위에서 연 정후가 위에서 뛰어내린다. 허리에는 줄을 감고 있다.

정후가 플래시를 확 비춘다. 어둠 속에서 고개를 들려던 영신이 눈을 감는데.

영신을 발견한 정후가 성큼 다가서더니 영신의 머리 위에 비니를 아래로 당겨 내린다. 얼굴을 다 감추는 비니.

그리고는 영신의 허리에 자기 허리를 감은 줄의 나머지를 묶어 돌리는 정후.

영신의 팔을 자기 목에 두르더니 허리를 끌어안는다.

 

 

#97. 엘리베이터 공간

 

조속기가 드디어 분리되며, 끼워져 버텨지던 줄이 맥없이 풀린다.

/ 엘리베이터가 무서운 속도로 추락한다.

엘리베이터가 추락하며 도르래를 중심으로 줄의 한쪽은 내려가고 반대쪽은 올라온다.

그 반대쪽 줄을 잡고 올라오는 정후. 영신을 감싸 안고. (착지를 대충 잘 한다는 가정으로)

 

 

#98. 옥상

 

영신을 부축해서 나오는 (기계실에서?) 정후. 영신은 비니 모자가 턱까지 덮어져 내려와 있는 상태.

정후가 영신을 부축하던 손을 조심스럽게 떼어본다. 영신이 비틀한다.

정후. 손을 뻗어 다시 잡아주려는데. 영신이 그 팔을 거칠게 뿌리친다.

정후가 당황해서 본다.

영신이 한손을 들어 자기 얼굴을 가리고 있는 비니를 잡는다.

정후, (아무런 위장복도 입지 않은) 순간 긴장하는데.

영신이 머뭇거리다가 손을 다시 내린다.

 

영신 : (울컥 화를 내며 냅다 소리 지르는) 죽을 뻔 했잖아요. 미쳤어요? 암만 돈 받고 하는 일이래도 그렇지.

정후 : (어이없어 보는)

영신 : 살려줘서 고마운데. 덕분에 산 거 아는데요. 거기서 같이 떨어졌으면 같이 죽었잖아요. 그게 뭐야.

 

정후의 시선이 영신의 손으로 간다.

영신, 마주 부여잡은 손이 덜덜 떨리고 있다. 영신의 호흡도 떨리고 있다. 그래도 좀 진정하더니.

 

영신 : 아직 여기 있어요?

 

영신이 떨리는 한 손을 들어 앞의 공간을 저어본다.

정후가 조금 몸을 움직여 그 손이 닿지 않게 한다.

 

영신 : 아직 있죠. ... 힐러. 맞죠.

정후 : (보기만)

영신 : (아직 목소리는 떨리는데) 선배가 얼마나 줬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난.. 목숨을 빚진 거잖아요.

         근데 내가 돈이 없어서 이거 돈으로 갚을 수가 없어서요.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정후. 더 듣기 싫다. 몸을 돌린다. 걸어간다. 그러다 문득 멈춘다.

손을 내밀어 본다. 손바닥에 내려와 앉는 눈송이. 하늘을 본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있다.

 

정후소리 : 혼자 된 이후로 이제까지, 인간에게 뭐든 바란 적이 없다. 그래서 괜찮았다.

 

정후가 아래를 내려다본다.

건물 저 아래. 문호의 차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더니 급정차를 한다.

차에서 내려 건물 쪽으로 달려오는 문호가 보인다.

 

정후소리 : 누가 날 이해하든 오해하든 전혀 상관없었다. 내가 그랬었다.

 

정후가 돌아선다. 뚜벅뚜벅 영신에게로 다가간다.

영신이 아직 그대로 서 있다가 귀를 기울인다. 다가오는 정후의 발소리.

영신의 바로 앞에 선 정후가 두 손을 내밀어 영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비니의 끝을 잡는다.

천천히 올린다. 입 위로... 그리고 코 위까지.. 바로 눈 아래까지 올리다가 멈춘다.

정후가 두 손을 거두어 내린다. 영신이 숨죽여 기다린다.

정후가 고개를 기울여 입을 맞춘다. 그것이 영신의 오해에 대한 정후의 대답이다.

그들 위로 눈송이가 제법 소담해지며 내린다.

 

=8부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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