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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09 - 너를 믿어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5.03.03|조회수1,169 목록 댓글 0

[힐러] 09 - 너를 믿어

 

 

 

 

 

 

 

 

 

 

#1. 옥상 (8회에서 연결)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있다.

그 내리는 눈 아래. 영신과 정후가 마주 서 있다.

눈 바로 아래까지 올려진 영신의 비니.

정후가 고개를 숙여 영신에게 입 맞춘다.

놀란 숨을 삼킨 영신이. 그러나 피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그렇게 잠시 후. 정후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영신의 손이 떨리며 올라간다.

막 정후의 옷깃을 잡으려는데. 정후가 물러서며 멀어진다.

혼자 남는 영신. 움직이지 못하고 서 있다.

허공에 멈추어진 손. 그 손에 떨어져 내리는 눈.

그렇게 잠시. 기다리던 영신이 입을 열어 부르려는데 들리는 다급한 문호의 소리.

 

문호소리 : 지안아.

 

벌컥 옥상 문이 열리는 소리. 더 가까워지는 문호의 소리.

 

문호 : 지안아.

 

그러더니 문호의 손이 영신의 모자를 벗겨버린다.

잠시 눈이 부시다가 눈을 뜬 영신.

문호가 영신의 어깨를 잡아 들여다본다.

 

문호 : 괜찮아? 괜찮은 거냐고.

 

영신이 멍해서 주위를 둘러본다.

눈이 내리는 옥상. 문호 외에는 아무도 없다.

 

문호 : 인마. 대답 좀 해봐.

영신 : 선배가..

문호 : 그래 나야. 어이 나 좀 봐.

영신 : (문호를 보긴 보는데 아직 얼이 빠져서. 점점 말이 빨라지고 버벅거리며) 선배가 옥상으로 오라 그래서 옥상으로 오려고..

         근데 엘리베이터가 고장나서요. 그래서 떨어져서 진짜 죽을 뻔했는데. 그 사람이 와서.. 그 사람이 구해줘서..

         내가 보진 못했는데 그 사람 맞거든요. 힐러요. 아시잖아요.

 

영신의 숨이 가빠지기 시작한다.

보다 못한 문호가 영신을 잡아당겨 가슴에 안아준다.

 

문호 : 그만 해.

영신 : (말을 못 끊어서 계속) 근데 나 땜에 그 사람도 죽을 뻔 해서..

문호 : 쉬이.. 그만.. 됐어.

 

겨우 말을 멈춘 영신이 힘들게 숨을 쉰다.

영신을 안은 채 문호가 놀람과 화를 삼키느라 애쓰며 묻는다.

 

문호 : 걸을 수 있겠어?

 

문호의 가슴에서 영신이 끄덕인다.

 

문호 : 가자. 나하고 같이 가자.

 

문호가 영신을 부축해서 걸으려는데. 영신이 버티며 선다.

 

문호 : 왜.

 

영신이 다시 주위를 둘러본다. 아쉬움에.

문호가 걱정되어.

 

문호 : 채영신

영신 : (불쑥 하는 대답이) 휴대폰.

문호 : 뭐?

영신 : 내 휴대폰이요. 그거 우리 엄마 껀데. 잃어버리면 안 되는데...

문호 : (저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는데)

영신 : 거기 있나 봐요. 떨어진 엘리베이터. 그 안에.

문호 : 일단 가자. 그건 나중에. 응?

 

문호가 영신을 끌어안다시피 부축하며 걷는다.

영신이 한번 비틀거리는가 싶더니 걷는다.

그들이 문으로 들어가고 문이 닫히고.

이쪽에서는 보이지 않던 구조물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정후. 닫힌 문을 바라보며 귀의 이어셋을 조정한다.

 

정후 : (애써 냉정하게) 엘리베이터. 분명히 누가 조작했어. 딱 그 시간에 고장 내서 떨군 거 보면 근처에 있었다고.

         (울컥) 그 자식이 채영신을 똑바로 보면서 한 짓이야.

민자소리 : 알았다. 주위에 있는 CCTV 다 뒤져볼게.

정후 : (다시 애써 진정하며) 김문호 어디 가는지 추적해줘.

민자소리 : 채영신을 데리고 어디로 가는지 추적해 달란 말이지. 오키.

               김문호 휴대폰에 내 아그들이 심어져 있으니까 문제없고. 그런데 힐러야.

정후 : 왜.

민자소리 : 넌 뭐하게.

정후 : 난.. 뭐 좀 찾을 게 있어서..

 

하며 기계실 쪽으로 한걸음 걷다가 다리 맥이 풀리며 넘어질 뻔, 벽을 짚었다가 스르르 벽을 기대 주저앉는다.

그러느라 옆에 있던 뭔가를 건드려 넘어뜨리고 요란한 소리를 낸다.

 

민자소리 : 무슨 소리야.

정후 : (나 왜 이러지..)

민자소리 : 힐러야?

정후 : ..넘어..졌어.

민자소리 : 니가 넘어져? 아니. 누가 집어던져도 안 넘어지는 애가 지 혼자 넘어져?

               그리고 너 바이탈 사인이 왜 이러냐. 심박수가 막..

 

정후가 이어셋을 뽑아낸다. 어쩐지 정신이 없다.

영신과의 입맞춤이 뒤늦게 후유증으로 나타나고 있다.

 

 

#2. 도로

 

문호가 운전하는 차가 달리고 있다.

 

 

#3. 문호의 차 안

 

조수석에 앉은 영신이 정후와 비슷하게 멍한 얼굴로 앞을 보고 있다.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끌어안은 채.

문호가 그런 영신을 힐끗 보고.

 

문호 : 채영신.

영신 : (못 듣는다)

 

문호가 차를 길가에 붙여 세운다.

그제야 영신이 문호를 돌아본다.

문호가 영신의 팔목을 잡아당긴다.

영신이 놀라 보는데.

문호는 영신의 맥박을 짚고 다른 손으로 시계를 본다.

 

영신 : (당황해서 보다가) 짚을 줄 아세요?

문호 : 집에 아픈 사람이 있어서 좀 배웠어.

 

두 손으로 영신의 얼굴을 감싸 정면으로 보며.

 

문호 : 괜찮니?

영신 : 괜..찮습니다.

문호 : 병원에 안 가도 되겠어?

영신 : 다친 데 없습니다.

 

그래도 문호는 영신의 얼굴을 놔주지 않고.

영신이 민망해하는데도 더 살펴보다가 놓아준다.

 

문호 : 아까 숨 쉬는 게 힘들어 보이던데.

영신 : 잠깐 그랬습니다. 놀라서... 이제 괜찮은데요.

문호 : 그래.

 

하는데 영 표정이 안 좋다. 속으로 끓고 있는 화를 억지로 가두고 있는 중이다.

 

영신 : 근데 제보자 만나셨어요? 만나지 않고 가도 돼요?

문호 : 내가 전화로 그랬나? 제보자를 만나야 한다고?

영신 : (이해가 안돼서) 김의찬 쪽 제보자랑 만나기로 했으니까 빨리 오라고.

문호 : 또.

영신 : 위치추적 당할지 모르니까 휴대폰 끄라고. 그러셨잖아요.

문호 : 그거 나 아니야.

영신 : 예?

문호 : 누가 내 목소리로 전화를 한 거야. 너 불러내기 위해서.

 

영신, 얼른 이해가 안돼서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리켰다가 뒤를 가리켰다가..

나를 저리로 불러냈다고? 누가?

 

영신 : 목소리 완전 똑같았는데...

문호 : 미안하다.

영신 : 뭐..가요.

문호 : 나한테 경고를 한 건데. 니가 이용됐어.

영신 : (뭐?) 그럼 누가 선배인 척 하고 날 불러내서 일부러 엘리베이터를 고장 내서 날... 에이.. 설마..

 

문호가 차를 출발시킨다.

 

영신 : 설마지요? 나 겁주는 거지요? 그런 건 보통 영화에서..

문호 : 내 집으로 가자. 니 집은 위험해. 단독주택이지? 누구나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어.

영신 : ... 어떻게 아세요. 우리 집.

문호 : 말했잖아. 너 뒷조사했다고.

 

문호가 차의 속력을 높인다. 날이 저물고 있다.

 

 

#4. 문호의 집 내부 현관

 

/ 문이 열리고 들어서는 문호. 문을 잡아준다.

조심스레 들어서는 영신.

문호가 문을 닫더니, 영신은 무시하고 먼저 안으로 들어간다.

혼자 남은 영신. 영 어색해서 조그맣게..

 

영신 : 실례합니다.

 

 

#5. 문호의 집 거실 / 저녁

 

조심스레 들어오는 영신. 두리번거리며.

 

영신 : 이거.. 혹시 펜트하우스에요? .. 진짜로 이런 데 사람이 사는구나.

         (유리창 밖의 경치를 보더니) 어우야. (가방을 소파에 던져놓고 유리 창으로 가서 이마를 박고 보며) 죽인다.

         이런 걸 맨날 보고 살면 사람이 좀... 맛이 가지 않나.. (유리창 밖은 저녁노을이 지는 시각 정도?)

 

문호는 부엌 쪽에서 음료수를 만들며(가스 불에 우유를 덥히는? 핫초코를 만드는)

 

문호 : 너 어제 밤 샜지.

영신 : 솔직히 한 시간 반쯤은 졸았는데요.

문호 : 그리고 사십분 전에 너 죽을 뻔 했어.

영신 : 아.. 예. (문호를 향해 돌아서는)

문호 : 그런데 너, 성격이 좋은 거야. 무딘 거야.

영신 : 사실은.. 노래를 좀 부르고 싶은데 참고 있는 중입니다.

 

문호, 코코아 분말이 담긴 컵에 뜨거운 우유를 넣고 약간의 양주를 타며.

 

문호 : 술 마실 줄 알지? 술 좀 넣어줄게.

영신 : 그리고 묻고 싶은데 참고 있는 중입니다.

문호 : (음료수만 만드는)

영신 : 누가, 왜 선배한테 경고를 하는 거고. 저를 이용했다는 건 또 뭔 소립니까?

문호 : (무시하고 스푼으로 핫초코를 젓는)

영신 : 그리고 아까 저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셨지요. 지은인가..

 

문호의 손이 멈춘다.

영신이 그 손을 보고 문호의 기색을 살핀다.

 

문호 : 내가 그랬나. (스푼을 옆에 내려놓는)

영신 : 그랬습니다. 지연인가. 그런 이름으로 저 부르셨어요.

문호 : 지안이야. (그제야 영신을 보는) 오지안. 내가 알던 아이야. 마음이 급해서 실수했어.

 

문호가 컵을 들고 영신에게 온다.

 

문호 : 마셔. 자는데 도움이 될 거야.

영신 : (받지 않고) 아는 거 말씀해주세요. 저는 알아야 되잖아요. 진짜로 죽을 뻔 했는데.

문호 : 생각은 나중에 하고 자라고.

영신 : (잠시 문호를 보다가 가방을 집어 든다) 그렇다면 집에 가겠습니다.

문호 : 말했잖아. 집은 위험하다고..

영신 : 괜찮을 겁니다. 그 사람이.. 힐러가 지켜줄 거니까.

문호 : (답답한)

영신 : 떨어지는 엘리베이터에서도 구해줬어요. 그러니까..

문호 : 힐러에 대해서 취재해왔다면서. 그럼 알 거 아냐. 밤심부름꾼이란 거.

          기준은 하나야. 돈. 내일 나보다 많은 액수를 제시하는 자가 있으면 그 쪽에 붙는 게 당연해.

          선악이나 정의 같은 건 애당초 없어. 그래서 할 수 있는 직업이고. 믿지 마.

영신 : 그래도.. (하다가 멈칫)

문호 : (손을 영신의 앞머리 밑으로 손을 넣어 이마의 열을 가늠해본다) 너 지금 미열 있어. 좀 자.

영신 : 선배. 저는...

문호 : 그렇게 해줘. 안 그럼 불안해서 내가 나갈 수가 없어. 지금 다녀 와야 할 데가 있거든.

 

영신이 그제야 입을 다물고 조용해진다.

문호가 손을 이마에 얹느라 흩어진 영신의 앞머리를 대충 내려주며.

 

문호 : 자라.

 

하더니 컵을 내민다.

영신이 더 말을 못하고 받아든다.

 

 

#6. 문호 집 문 앞

 

나오는 문호. 엘리베이터 쪽으로 이동해 서다가 시선이 가는 곳.

거기 비상구 문이 조금 열려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조용히 그 쪽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문을 확 연다.

 

 

#7. 비상계단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선 문호. 그러나 아무도 없다.

계단의 아래 위쪽을 살피지만 없다.

문호가 내려다보는 곳. 문에 끼워놓았던 돌멩이(?)가 보인다.

문호가 빈 공간에 대고 말한다.

 

문호 : 듣고 있다면 이 말을 전하고 싶어서요. 오늘.. 그 애를 지켜준 거. 고맙습니다.

         위험수당이라고 해야 하나. 감사의 표시라고 해야 하나.. 충분히 입금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만 부탁합시다.

         앞으로 이쪽이 아닌 저쪽의 의뢰를 받게 된다면, 그래서 반대편에 서게 된다면 미리 알려줬으면 해요.

         어쨌든 나도 그동안 단골이었는데 그 정도는 해주겠죠?

 

아무런 대답이 없다.

문호가 다시 나가며 돌멩이를 다시 문 아래에 끼운다. 어느 정도 열린 채 멈추는 문.

빈 공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잠시 후. 저 위 쪽에서 난간을 잡고 넘어와 서는 정후. 문 쪽을 바라본다.

문득 생각난 듯 주머니에서 뭔가를 빼낸다.

영신의 폴더 휴대폰이다. 반쯤 파손되어있다.

폴더를 열어본다. 화면도 깨져있다.

접어서 다시 주머니에 넣는다.

 

 

#8. 문호의 방

 

이제 창 밖은 어두워져 있다.

침대 끝에 어정쩡하게 앉아있는 영신. 무릎에는 문호가 준 옷을 얹어 놓은 채. 등에는 아직도 가방을 멘 채.

홀짝홀짝 핫초코를 마시고 있다. 문호의 방을 낯설어서 둘러본다.

 

영신소리 : 믿어보라고. 한번만 믿어보라고. 그럼 점점 더 많은 것을 믿을 수 있게 될 거라고.

               그때까지는 낯선 아저씨였던 아버지가 말했다.

 

 

#9. 회상 / 보육원

 

대규모의 큰 보육원이 아닌 소규모의 가정집을 빌린 보육원 스타일?

툇마루 아래. (혹은 어떤 구조물 틈새) 구겨진 시멘트 포대? 같은 가림막 뒤에서

눈만 내놓고 보는 어린 영신(8세). 얼굴에 잔뜩 검댕 같은 게 묻어 더럽고, 머리칼은 빗질 안한지 오래 되서 까치집이다.

사회생활이 부족해서 나이에 비해 자폐적인 느낌.

그 앞 이만치에서 채치수(20년 전의)가 거의 땅바닥에 엎드리다시피 영신을 보며 말하고 있다.

 

치수 : 니가 몰라서 그렇지. 아저씨가 말이야. 알고 보면 깡통 로봇이거든. 그래서 니가 맘에 안 들면 요기.. 요기 보이냐?

 

하며 치수가 자기 뒷덜미를 가리킨다.

영신, 보고 싶어서 움찔대지만 나오지는 않는다.

 

치수 : 요기 점이 하나 있어요. 그래서 니가 맘에 안 들면 이것만 꼭 누르면 돼. 그럼 아저씨가 이렇게..

         (하면서 전원나간 로봇 흉내) 꼼짝 못하게 된단 말야. 봐. 꼼짝 못하지?

 

치수가 눈을 돌려 영신 쪽을 보자. 영신은 더 깊이 숨는다.

 

치수 : 한 번 눌러볼래? 그럼 아저씨 말을 믿을 수 있을 건데. 자.. 요기.

 

그 옆에 서서 구경하던 보육원 직원(40대 여)이 딱하다는 듯.

 

직원 : 소용없을 거예요. 애가 무슨 틈새나 구멍만 보면 기어 들어가서 하루 종일 안 나와요.

치수 : 말을 알아듣긴 하는 거죠?

직원 : 듣긴 다 들어요. 말을 못해서 그렇지. 암튼. 나도 걔 얼굴을 한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니까요.

         밥도 마루 끝에 놔주면 사람 없을 때 나와서 후딱 먹고 또 숨어버리고.

치수 : 잠은 어디서 잡니까?

직원 : 그러니 문제죠. 이제 겨울 깊어지면 어쩌려고. 우리가 억지로 붙잡아다 방에 넣어놓으면 애가 어찌나 날쌘지.

         날다람쥐같이 도망쳐서 또 저렇게 숨는다니까요.

 

치수가 고개를 숙여 들여다본다.

영신이 어둠 속에서 눈만 반짝이며 이쪽을 보고 있다.

 

직원소리 :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죠. 들으셨겠지만 애가 여기 들어올 때 정말 봐줄 수가 없었거든요.

               온 몸엔 멍이 들어있고, 골절된 데도 한두 군 데가 아니고...

 

직원이 떠드는 소리가 점점 작아지며,

치수가 영신과 눈을 맞추며 온갖 우스운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다.

무표정하게 보기만 하는 영신.

// 동장소 시간경과 / 저녁

날이 저물고 있는 시각. 영신이 숨어 있는 장소 앞, 이만치에 치수가 앉아있다. (직원은 없고)

계속 그렇게 앉아 얘기 중이었다.

 

치수 : 이정선. 한영애.. 이 사람들이 또 장난이 아니었거든. 그리고 여기에 한 사람이 붙게 되는데. 그게 바로 김현식이었다 이거지.

         김현식 알어? 모르나. 김현식을 모르면 안 되지. (노래) 사랑했어요. 그 땐 몰랐지만.

 

슬쩍 눈을 돌려 보면 영신이 마루 끝까지 나와서 치수를 보다가 치수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움츠려든다.

치수가 모른 척 하며

 

치수 : 이 사람들이 모여서 내놓은 앨범이 바로 신촌블루스 투. 크아... 명반이지. 그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으짜자으짜..

         (일어서며 제대로 노래하기 시작한다. 모션까지 취해가며) 골목길 접어들 때에 짜자으짜. 으짜자으짜.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커튼이 드리워진 너의 창문을 말없이 바라보았지. (김현식 버전으로 부탁합니다)

 

노래 부르면서 슬쩍 보는 아래 쪽.

치수가 일어서는 바람에 얼굴이 보이지 않자, 영신이 거의 끝까지 기어 나와 치수를 보고 있다. 여전히 심각하고 무표정한 얼굴.

// 동장소 시간경과 / 밤

이제 치수와 영신이 나란히 앉아있다.

치수는 일부러 영신 쪽을 보지 않고 앞을 보며 인상을 써가며 흥얼거리고 있다. (비처럼 음악처럼 혹은 Unchain my heart)

 

치수 :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그 때 영신이 조심스레 한 손을 들어올린다. 치수의 뒷덜미 쪽을 향해.

치수가 노래를 계속하며 모른 척 몸을 좀 낮춰준다.

영신이 치수의 뒷덜미를 손가락 끝으로 꼭 누른다.

치수가 순간 노래를 멈추며 전원 나간 로봇처럼 축 쳐진다.

영신이 놀라 보다가 조심스레 뒷덜미를 한 번 더 누른다.

치수가 다시 살아나며 노래를 계속한다.

그런 치수를 보다가 어린 영신이 비로소 아주 조금 미소 짓는다.

그렇게 노래하는 커다란 치수와 그 옆에 나란히 앉은 조그만 영신.

그 위로 영신의 소리 계속.

 

영신소리 : 아버지를 만나게 된 뒤의 세상이 그 전보다 더 믿음직해진 건 물론 아니다.

 

 

#10. 문호의 거실

 

영신이 쪽지를 쓰고 있다. 큼직한 글씨로 이미 적힌 글자는

[ ‘자라’ 하고 지시를 하셨는데 제가 제 방. 제 침대가 아니면 못 잡니다. 그래서 지시를 따르기 위해 집으로 갑니다. ]

그 아래 [걱정 마십셔.] 라고 적어 넣고 있다.

그 위로 영신소리 계속

 

영신소리 : 방심하고 있으면 누군가 뒤통수를 쳤고, 마음을 열어주면 누군가 기어들어와 상처를 남겼다.

 

 

#11. 문호의 집 앞

 

문이 열리며 나서는 고개만 쑥 빼서 밖을 살피는 영신. (위험을 가하는 사람이나 혹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힐러를 살피는)

아무도 없다. 나와서 문을 닫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심각하게 엘리베이터를 바라본다.

땡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들어서려다가 멈칫. 열려있는 엘리베이터 내부를 들여다보고만 있다. 순간 스치는 기억

 

 

#12. 회상 / 8부 #84.

 

엘리베이터가 무서운 속도로 하강한다.

 

 

#13. 문호의 집 앞

 

영신이 고개를 저어 기억을 떨치고 다시 발을 옮기려 하다가 멈칫.

 

 

#14. 회상 / 8부 #82.

 

크게 흔들리며 기울어지는 엘리베이터. 영신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구른다.

 

 

#15. 문호의 집 앞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닫힌다.

그 앞의 영신. 무서움을 떨치려고 아아아.. 소리를 내본다. 그리고 이어지는..

 

영신소리 : 그래도 괜찮았다. 살아가면서 정말 믿을 수 있는 한사람만 있다면 웬만큼 뒤통수를 맞아도

               그렇게 많이 다치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는 씩씩한 척 옆의 비상구 쪽으로 움직인다. 호기롭게 문을 벌컥 열고.

 

 

#16. 비상구

 

들어선 영신이 울상을 하고 난간 저 아래를 내려다본다. 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영신소리 : 나는 그랬다. 그래서 이제 난 누군가를 의심하는 것보다 믿는 쪽이 좀 더 쉽다.

 

영신이 걸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죽을 맛으로 궁시렁거리듯 전주와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영신 : 골목길 접어들 때에 짜자으짜. 으짜자으짜.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노래에 조금씩 흥이 실리기 시작한다)

         커튼이 드리워진 너의 창문을 하아. 말없이 바라보았지.

 

영신이 내려간 그 위. 계단에서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는 정후. 천천히 따라 내려가기 시작한다.

계속 들리는 영신의 노래 소리. 아이구우.. 하는 푸념소리도 섞여 들리고 있다.

정후. 웃지 않으려고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

 

 

#17. 문식의 집 복도 홀?

 

/ 복도를 휠체어로 빠르게 이동해오는 명희. 놀라서 보는 곳.

거기 문호가 성난 얼굴로 들어서는데. 오비서의 멱살을 잡아 질질 끌다시피 오고 있다.

 

명희 : 문호야.

문호 : 누나. 들어가.

명희 : 대체 무슨 일인데.

 

명희가 문호 쪽으로 이동하려는데. 그 앞을 막는 문호.

 

문호 : 형하고 얘기 할 게 있어. 누난 안 들었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여기까지. 더 오지 마.

 

하더니 다시 오비서를 질질 끌어 서재 쪽으로 간다.

(오비서는 별달리 저항도 하지 않고 끌려간다. 마치 폭력은 전혀 상관없는 사람처럼)

명희가 더 따라가지 못하고 본다.

 

 

#18. 문식의 서재

 

책상 앞에 앉아있던 문식이 고개를 든다.

문을 박차듯 들어서는 문호. 끌고 온 오비서를 거칠게 밀어버리더니 문을 쾅 닫고 잠가버린다.

 

문식 : 무슨 짓이야.

문호 : (성큼성큼 문식에게로 다가가는데 한 대 패고 싶은 걸 참느라고 서성 거리다가 옆에 보이는 두꺼운 책을 들어서

         옆의 책장으로 냅다 던져 버리고는 간신이 소리는 죽여서) 형이야말로 무슨 짓을 한 거야.

문식 : (오비서를 본다) 뭐야?

오비서 : (시선을 피한다)

문호 : 이제 인간 안하기로 했어? 내 눈 보고 대답해. 이제 인간 아니면.. 뭐야.

문식 : 알아듣게 말을 해.

문호 : (성큼성큼 가더니 구석으로 피하려는 오비서를 잡아채서 다시 질질 끌어와 문식의 책상 위에 머리를 박으며)

         이번에도 이 자를 시킨 거야? 형은 원래 지 손에는 피를 안 묻히잖아.

문식 : (오비서에게) 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나?

문호 : 지안이는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문식 : (놀라서 보는)

문호 : 다 끝낼 각오하고 그 짓을 한 거 맞지? 그러자고. 오늘 다 끝내자고.

문식 : 지금 지안이라고 했니?

 

문호가 오비서를 잡아채어 거칠게 밀어버린다. 가구에 부딪히며 힘없이 뒹구는 오비서.

문호가 똑바로 문식을 보며

 

문호 : 죽지도 않은 애를 죽었다고 한 거까지는 이해할 수 있어. 살 생각이 없는 누나를 살리기 위해서였다고. 그런데..

문식 : (일어서며) 지안이가 살아있다는 거니. 니가 찾아낸 거야?

문호 : (보다가 어이없어 웃는다)

문식 : 그 애한테 무슨 일이 있었어? 그래서 지금 니가 나한테 달려와서.. (오히려 성을 내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그 애한테 무슨 짓이라도..

문호 : (그대로 문식의 멱살을 틀어잡아) 그만해. 토할 거 같으니까.

문식 : ... 몰랐어.

문호 : (노려보는)

문식 : (진심을 다해) 정말이야. 몰랐어.

 

문호. 그대로 노려본다. 그 시선을 마주보는 문식.

문호가 멱살을 놓아준다. 문호가 냉정해지기 위해 애를 쓰지만 아직 떨리는..

 

문호 : 형이 아니면 형이 모시는 그 어르신이라는 자인가. 그 자가 나한테 보내는 메시지였어?

문식 : 문호야.

문호 : 잘 들어. 그게 누구든 다시 지안이 손끝이라도 건드리면 명희누나가 가장 먼저 알게 될 거야.

         형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그거지? 누나가 진실을 알게 되는 거.

문식 : (차가와지는) 너 지금 선을 넘고 있어. 명희를 놓고 협박을 해?

문호 : 어쩔 수 없잖아. 명희누나는 나도 사랑해. 내가 사랑하는 누나가 자기 딸을 다치게 한 놈이랑 아무 것도 모르고 같이,

         한 집에서 살게 하라고? 그걸 나보고 그냥 보고 있으라고? 그럴 순 없잖아. (아프다)

 

문식. 더 말을 못하고 문호를 본다.

 

 

#19. 부엌

 

명희가 기다리고 있다가 돌아본다. 거기 나오던 문호가 명희를 보고 멈칫 선다.

명희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명희 : 형제분들 또 한바탕 한 거야?

 

문호. 아무 말 없이 그냥 명희를 본다.

명희가 갸웃해서 문호의 얼굴을 살피며

 

명희 : 얼굴이 그게 뭐야. 저녁은 먹었어? 우선 이거 좀 마시고 있어봐.

         (하며 비타민 물을 만들며) 사막에서 일주일쯤 헤메다 온 애 같아. 얼굴이 바작바작 말라있어. 너.

 

내밀어 주는 유리컵 속에 녹아드는 비타민. 그저 보는 문호.

 

명희 : 뭐해. 팔 아파.

 

문호가 다가와 받아들어 마신다. 보던 명희가 휠체어를 돌리며

 

명희 : 스튜 만들어놓은 거 있어. 금방 덥혀 줄게 잠깐만..

 

하는데. 그 휠체어를 다시 돌리는 문호. 명희의 앞에 자세를 낮춰 앉는다.

 

문호 : 누나. (하고는 말을 못 잇는다)

명희 : 왜

문호 : 미안해. 누나. (울컥하는 마음을 애써 누르고 있다)

명희 : 뭐가아.

 

미소를 띄는 명희의 얼굴에 겹쳐지는 젊은 명희의 얼굴.

 

 

#20. 회상 / 2부 #29. 선술집 뒷마당

 

명희가 어린 문호를 보며 웃으며.

 

명희 : 문호야. 울어도 돼. 누나 앞에선 울어도 돼. 누나가 아무도 못 보게 해줄게. (어린 문호를 끌어 안아주는)

 

 

#21. 명희의 부엌

 

현재 젊은 명희의 얼굴이 지금의 명희의 얼굴이 되며..

 

명희 : 괜찮아.

문호 : 아니야. 괜찮지가 않아. 누나.

명희 : 그러니까 괜찮다고.

 

문호가 더 말을 못하고 보다가.. 정말 울음이 나올 거 같아 명희의 무릎에 얼굴을 묻는다.

명희가 문호의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며.

 

명희 : 얘 봐. 진짜 속상한가부네. 그게 뭔진 모르지만.. 이제 다 괜찮아질 거야. 누나 믿어봐.

 

저만치 뒤. 서재로 통하는 쪽에서 이쪽을 보고 있던 문식이 돌아선다.

 

 

#22. 문식의 서재

 

들어서 문을 닫은 문식이 돌아본다.

거기 서 있던 오비서, 틑어진 옷깃이며 흩어진 머리를 정리하고 있다가 바로 선다.

 

문식 : 말해. 뭐야.

오비서 : 어르신의 지시였습니다.

문식 : 그 지시란 게 정확하게 뭐였는데. 그 지시란 게.. (울컥하며) 그 아이를 찾아 어떻게 하라는 거였는데.

         내가 모르게 뭘 어떻게 하고 온 거야.

오비서 : 그것이..

 

그 때 모니터를 가리던 서고가 저절로 움직인다. 놀라서 돌아보는 문식과 오비서.

드르르.. 서고가 양쪽으로 열리더니 그 안에 있던 멀티 화면들이 일제히 켜진다.

거기 디지털 숫자가 커다랗게 보인다. 1초씩 줄어들고 있다. 48:00:05 정도에서 줄어들다가 47:59:59 식으로 넘어가며... 계속.

소리도 채칵채칵.. 그러면서 들리는 민자의 애기버전 변조 음성.

 

민자소리 : 여기는 힐러본부. 여기는 힐러본부. 고성철을 살해한 진범을 경찰에 넘기기까지 남은 시각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미션을 끝내지 못할 경우 문제의 동영상이 방영될 방송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3개 공중파 방송의 메인 뉴스.

               혹은 오늘의 날씨. 각 종편과 케이블 방송에서 가장 시청률이 좋은 예능 프로그램 중간. 또오...

 

민자의 목소리가 이어지는데 그 화면을 보며 문식이 말한다.

 

문식 : 오비서

오비서 : 예

문식 : 어르신을 만나 뵈야겠어. 시간을 잡아봐.

오비서 : 알겠습니다.

 

 

#23. 민자의 아지트

 

마이크에 대고 애기 목소리를 내고 있는 민자. 앞의 소리가 연결되는 느낌.

 

민자 : 드라마 중간에 넣으면 많은 분들이 화내실래나.. 일단은 이 정도로 방송할 계획입니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화끈한 예고방송도 준비 중에 있습니다. 많은 시청 바랍니다.

 

키보드를 타닥 쳐서 끝내고.

 

민자 : 아아.. 아아.. (애기 목소리에서 평소 목소리로 잠시 조율을 하는데 금방 안 돌아온다) 하나둘셋넷..둘둘셋넷...

         (노래) 사랑.. 사랑밖엔 난 몰라으아으..

 

이제야 목소리가 제대로 돌아왔다. 의자를 휘릭 밀어서 다른 키보드 쪽으로 가서 친다.

그 앞의 모니터에 나타나는 글자. 아이콘도. [ connect.... 강대용] 디리리 연결음 달칵. 걸렸다.

 

민자 : (평소의 목소리로 권위 있게) 대용아. 아가야?

 

 

#24. 치수의 집 앞 길 / 밤

 

치수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 정차되어있는 정후의 차.

 

대용소리 : 예 사장님.

 

 

#25. 차 내부 / 밤

 

대용이 운전석에 앉아서 스피커로 통화.

 

민자소리 : 뭐하냐.

대용 : 잠복 중인데요.

민자소리 : 뭔 잠복.

대용 : 채영신이 집 앞에서 밤새 지켜봐라. ..라는 잠복인데요.

민자소리 : 힐러는 어딨냐.

대용 : 직접 물어 보십쇼. 내가 물어본다고 대답해줄 형도 아니고. 대답해준다고 알아먹을 나도 아니고. 까라면 까고 박으라면 박고...

         근데요. 저 야근 수당은 어느 분이 계산할 겁니까. 사장님이..

소리 : (달칵 전화가 끊어지는 소리)

대용 : 여보세요. 싸장님? 야근수당...

 

 

#26. 민자 아지트

 

모니터에 보이는 [ connect.... 힐러] 디리릭 신호음이 가는데 받지 않고 있다.

민자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치며 기다리고 있는데.

다른 모니터에서 신호음 주파수 그래프가 흐르면서 벨소리.

민자가 의자를 휘리릭 밀고 가서 다른 키보드를 누른다. 다른 회선으로 통화하는.

 

민자 : 힐러 이눔아. 너 왜 또 연결을 끊어놨어. 어디에 있든지 뭘 하든지 똥을 쌀 때도 연결은 끊지 말라고 했지.

영재소리 : 나여.

민자 : 정치범? 당신이 왜 거기 있어. 거기 정후 집이잖어.

 

 

#27. 정후의 스튜디오 거실

 

탁자 위에는 케이크가 놓여 있는데. 이미 삼분의 일쯤을 파먹은 상태다.

책상 위의 모니터에 민자의 커리커쳐가 성난 얼굴 모양으로 떠 있고.

영재가 밥공기에 케이크를 담아 숟갈로 떠먹으며 방을 이리저리 구경하고 있다.

부엌에 쌓여있는 쓰레기를 보고 혀도 차면서. 그러면서 통화.

 

영재 : 여기가 원래 내 집이었거든.

민자소리 : 그게 무슨 집이었나. 버려진 창고였고. 그 집을 꾸민 건 정후지. 그래서 거기 정후가 있냐고.

영재 : 없어. 문에다가 쪼잔하게 장치를 어찌나 많이 해놨는지 뚫고 들어오다가 해 떨어졌어.

민자소리 : 그니까 거긴 왜 들어가. 정후 그 놈이 아무도 안 들이는 데를. 나도 거기는 안 건드려.

영재 : 조형사. 내가 부탁이 하나 있어서 그러는데.

민자소리 : 내가 어떤 인간한테도 부탁 같은 건 안 들어. 다만 의뢰는 받지. 얼마짜리야.

영재 : (무인도 섬 앞에 서서 케이크를 먹으며 구경하며) 김문식이 동생. 문호. 그 놈 휴대폰에 프로그램 심었다고 했지.

민자소리 : 심었어. 근데.

영재 : 거기 메일이나 뭐 그런 거 좀 뒤져봐. 확인할 게 하나 있어서 그래.

민자소리 : 글쎄 뭘.

영재 : 김문호가 친자확인용 DNA를 의뢰했다고 했지.

민자소리 : 했어.

영재 : (다시 걸으며) 그게 딸내미고.

민자소리 : 이십대 후반 여자. 맞아.

영재 : 그리고 고아.

민자소리 : 그래. 92년 이후 고아가 된 아이.

영재 : 그럼 김문호. 그 놈이 찾을 아이는 그 애 밖에 없어.

 

영재의 시선이 사진에 멎는다. 다섯 친구들이 함께 찍은 그 사진.

 

영재 : 명희하고 길한이 딸. 오지안.

 

 

#28. 동네 길1 / 밤

 

영신이 가방을 등에 메고.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다.

문득 멈춰서더니 후딱 뒤를 돌아본다. 어두운 골목길에는 아무 인적도 없다.

영신이 한숨을 쉬고 다시 걷는다. 걷다가 갑자기 옆의 샛길로 휙 접어들어 몸을 숨긴다.

샛길의 영신, 벽에 딱 몸을 붙이고 있다가 살그머니 고개를 빼어 자기가 온 길을 살펴본다. 여전히 아무도 없다.

그런데 그렇게 숨어서 길을 살피는 영신의 위쪽. 그 건물의 이층 베란다. 혹은 지붕 위 쯤에.

정후가 쭈그리고 앉아 영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영신이 낙담을 해서 다시 길로 나서서 걷는다. 정후가 일어서며 그런 영신을 본다.

 

 

#29. 동네 길2

 

영신이 길을 걷고 있다. 그런 영신과 평행으로 정후가 지붕 위를 걷고 있다.

 

 

#30. 동네 길3 공중전화 / 밤

 

영신이 오다가 문득 서더니 뒷걸음질 쳐서 몇 걸음 뒤로 간다. 그 옆에 있는 공중전화박스.

물끄러미 보다가 결심한 듯 다가선다. 주머니를 이리저리 뒤져 동전을 꺼내고.

수화기를 들고 동전을 넣으며 열심히 번호를 생각해본다.

 

영신 : 공일공에 구칠..아니 구팔..구칠...

 

버튼을 다다다 눌러본다.

 

영신 : 여보세요. 거기.. 아 죄송합니다. 잘못 건 거 같습니다. 죄송함다.

 

끊고 한숨. 에이.. 다시 가려다가 후다닥 다시 돌아온다. 빠르게 다시 건다. 귀를 기울인다.

// 이만치, 공중전화 박스가 있는 길의 건너편. 그 박스가 저 아래 내려다보이는 지붕 위?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드는 정후의 손. 휴대폰이 진동으로 울리고 있다.

정후가 휴대폰을 받는다.

 

정후 : 여보세요.

영신 : 아싸. 맞았다. 이야. 내가 숫자에 좀 강하거든. 내가 박봉수, 니 전화 번호 기억해낼 줄 알았어. 나 진짜 대단하지 않냐.

 

저 아래 길 건너 공중전화 박스 앞의 영신.

그리고 이 쪽 위의 정후가 통화를 한다. 정후는 목소리를 좀 낮춘 느낌으로.

 

정후 : 휴대폰은 어쩌고.

영신 : 잃어버렸거든. 그래서 지금 내가 얼마나 많은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는지 테스트 중.

정후 :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데.

영신 : 너한테 전화한 게 ...열아홉 번째쯤 될 걸.

정후 : (몰래 웃는) 영광입니다. 서열 이십 위 안에 들어서.

영신 : 내가 바로 얼마 전에 너한테 전화했었잖아. 그냥 기억이 나버리네. 근데.. 잤어? 목소리가 왜 그래.

정후 : 지금이 몇 신데. 착한 어린이는 잘 시간이 한참 넘었거든요.

영신 : 아 미안. 내가 깨웠구나. 그럼 계속 자.

정후 : (어.. 당황해서 보는데)

영신 : (계속 수화기를 귀에 대고 있다)

정후 : (전화를 끊지 못하는 영신을 보다가) 어차피 잠 깼어. 할 말 있어? ..요?

영신 : 망할 놈.

정후 : 그건 욕인데요.

영신 : 그냥 까라. 까.

정후 : 뭘 까요.

영신 : 말 놓으라고. 내가 허락해준다고. 매번 헷갈려 죽겠다고.

정후 : 좋았어.

영신 : 그래도 선배라고는 따박따박 불러라. 이 사회에는 질서라는 게 있고 질서는 아름다운 거예요.

정후 : 선배. 그럼 말 깐 기념으로 내가 밤새도록 얘기 들어주지.

영신 : 무슨 얘기.

정후 : 얘기할 데가 필요해서 전화한 거 아냐?

영신 : 얼... 눈치도 있고. 제법인데.

정후 : 근데 밖이야? 춥지 않나?

영신 : 추워. (하면서 옆에 쌓여있는 광고지를 들어 바닥에 깔고 아예 전화박스 안에 혹은 옆에 자리 잡으며)

         휴대폰을 잃어버려서 더 추워.

정후 : (자기도 편히 자리 잡아 기대며) 휴대폰이 무슨 핫팩도 아니고.

영신 : 나한테는 핫팩이었거든. 우리 엄마 휴대폰. 엄마 돌아가신 뒤부터 내 마음의 핫팩.

정후 : 어머니 꺼였구나. 어쩐지. 그런 골동품을 왜 들고 다니나했다.

영신 : 날이 추울 때. 마음이 추울 때.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꼭 쥐고 있으면.. 그게 따땃해진다고. 진짜로.

정후 : (주머니에서 영신의 망가진 휴대폰을 꺼내 본다) 통화하지 않을 때도 발열이 되는 거면 그게 맛이 갈 때가 된 거지.

영신 : 이렇게 낭만도 없고 상상력도 없어서 기자를 하겠다고. 에혀.

 

하더니 말이 없다.

정후가 기웃해서 내려다보니 영신은 수화기를 어깨에 끼고 앉은 채 광고 종이 하나를 주워서 길게 접고 있다.

 

정후 : 추우면 그만 집에 들어가지.

영신 : 이대로 집에 가면 울 아부지, 나 붙잡고 백가지쯤 물어 볼텐데. 내가 지금 아부지 상대를 해줄 기운이 없거든.

정후 : 몸이.. 안 좋나?

영신 : 근데.. 그건 핑계. 사실은..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요.

정후 : (어쩐지 마음이 쿵..해서) 기다...려?

영신 : (조물조물 손으로 종이별을 접으며) 기다리면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 등 뒤에서 갑자기 슝.. 나타날 줄 알았는데..

         (억지로 웃었는데.. 그 웃음이 사그라지며) 안 오네.

정후 : (더 묻지 못한다)

영신 : 이 사람이 분명히 나한테 할 말이 있을 거거든. 이렇게 아무 말도 없으면 안 된단 말이지. 난 들을 준비가 됐는데..

         (어쩐지 울 거 같은 마음. 목에 두른 스카프를 끌어올려 눈을 가린다. 가린 채) 나도 할 말이 있는데... 안 와.

         ...오지 않을 건가봐.

 

정후. 뭐라 말을 해줄 수가 없어서 그런 영신을 그저 보고만 있다.

 

 

#31. 민자 아지트

 

메인 모니터에 보이는 것. 스캔한 친자확인서다. (2부에서 보였던 연구소 친구의 명희+영신용)

메일함을 열어본 듯. 스캔본 확인서 아래쪽으로 문호의 받은 메일함이 보인다.

민자가 벌떡 일어나서 서성거리기 시작한다.

 

민자 : 그럼 안 되는데. 아 이게 무슨 이런.. 개똥같은 경우냐.

영재소리 : 뭐래는 거야.

민자 : 어이 정치범

영재소리 : 왜

민자 : 정후 애비 되는 이가 사고 쳤다고 했지.

영재소리 : 어.

민자 : 그게.. 친구를 죽였다고 했나.

영재소리 :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지.

민자 : 그 살해당한 친구가 당신 말대로라면... 채영신이 친아버지야.

 

 

#32. 정후의 아지트

 

영재가 우뚝 서 있다. 그 뒤로 보이는 무인도.

 

영재 : (비로소 입을 열어) 정후 그 놈이, 지 엄마가 그렇게 떠난 뒤에 여자 알기를 길바닥에 붙은 껌같이 생각하던 그 놈이.

         처음으로 여자를 쳐다보기 시작했다고, 조형사가 말했지. 그게.. 그 애야?

민자소리 : 그래. 그 애야.

 

영재가 돌아선다. 그 얼굴에 무인도의 불빛이 어지럽게 비춘다.

 

 

#33. 동네 길3 공중전화 / 밤

 

영신이 전화를 하던 공중전화가 비어있다.

잠시 후 불빛 아래로 들어서는 그림자. 정후다. 영신이 전화하던 수화기가 얌전히 걸려 있다.

정후가 문득 뭔가를 봤다. 바닥에 영신이 깔고 앉았던 광고지. 그 옆에 놓여 있는 것.

허리를 굽혀 집어 든다. 영신이 접어놓은 종이별이다.

 

 

#34. 치수의 집 앞 / 밤

 

영신이 걸어오고 있다.

안에서 문을 닫으러 나오던 철민이 영신을 봤다. 냅다 소리 지른다.

 

철민 : 형니임.. 영신이 와요오.

 

안에서 우당탕탕 소리가 나더니 치수가 달려 나온다.

영신이 난처해서 그들을 본다. 도망가고 싶은 얼굴로.

 

치수 : 너 이눔. 지금 대체 몇 시야? 전화는 왜 안 돼.

영신 : 아..하하.. 그게요. 설명을 하자면 무쟈게 긴데.

철민 : 일단 들어가서 얘기해요. 예? 형님.

치수 : 회사에서 너 찾는다고 전화가 몇 번이나 온 줄 알어? 이눔의 자식아. 집에서 걱정하는 사람들은 니 머리 속에 안 떠올라?

철민 : 애가 얼어서 얼굴이 파래진 거 안 보여요?

영신 : 아 추워. 아아아. 추워.

 

영신이 치수를 피해 안으로 가려하고. 치수는 잡으려 하고. 철민이 말리고.

 

치수 : 들어가긴 어딜 들어가.

철민 : 어딜 들어가긴. 집에 들어가지이.

치수 : 자초지종 납득이 가게 해명부터 하고.

철민 : 여기가 무슨 재판정이에요. 해명은 무슨.. 영신아 빨리 들어가.

 

소란스럽게 그들이 들어가고 문이 닫히고 겨우 조용해진다.

골목 이만치 떨어진 곳에 주차되어있던 정후의 차.

운전석의 대용이 치수의 까페 쪽을 보고 그리고 반대쪽의 건물을 본다.

건물 이층 쪽 그늘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정후. 정후는 치수의 까페 쪽을 가만히 보고 있다.

대용이 얼굴을 유리창으로 주욱 빼서 자세히 본다.

그렇게 치수네 집을 보던 정후가 정확히 이쪽을 쳐다보더니 자기 두 눈을 가리키고 치수네 집 쪽을 가리킨다. 잘 지켜보라고.

대용이 운전석의 창문을 내리고 팔을 빼어 흔들어 보인다. 알아들었다고.

대용이 다시 치수네 집을 본다. 이층에 불이 켜진다.

그리고 대용이 다시 정후가 있던 곳을 보았을 때 이미 정후는 그곳에 없다.

 

 

#35. 문호의 거실

 

밤의 도시 야경. 주욱 빠지면 유리창 안의 문호 거실이다.

문호가 테이블 위에 놓인 영신의 쪽지를 읽고 있다.

[ ‘자라’ 하고 지시를 하셨는데 제가 제 방. 제 침대가 아니면 못 잡니다. 그래서 지시를 따르기 위해 집으로 갑니다.

걱정 마십셔. 이상 채영신이었습니다.]

다 읽은 쪽지를 내려놓은 문호가 뭔가를 생각하더니 휴대폰을 든다.

주소록을 죽 밀어 올리다가 멈추는 곳. [ 윤동원 형사 ] 통화 버튼을 누른다.

 

 

#36. 도로 / 밤

 

윤형사가 방금 산 햄버거를 먹으며 다른 한 손에는 콜라를 든 채 걸어오고 있다.

막 맛나게 햄버거를 한입 베어 무는데 주머니의 휴대폰이 울린다.

양손이 다 놀지 않고 있는 중이라 쩔쩔매다가 종종 달려와서 주차된 차의 지붕 위에 콜라 컵을 올려놓고

주머니의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하며 꺼내 들어 받는다.

 

윤형사 : 윤동원입니다.

문호소리 :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김문호 기자라고 합니다.

윤형사 : 아 예.. 근데 기자분이 무슨.. (하고 대충 대답하다가 놀랐다) 김문호 기자면. 그 김문호 기자요? 진짜?

문호소리 : 통화 괜찮으시겠습니까?

윤형사 : 오오.. 목소리가 똑같다. 어이구. 영광입니다. 나중에 사인이라도 어떻게 한 장....

 

 

#37. 문호 집 거실

 

문호 : 제 후배 중에 채영신 기자라고 있는데 그 친구가 윤형사 얘기를 해서요. 혹시 기억하십니까?

 

이 정도에서 화면 이분할.

 

윤형사 : 채영신 기자.. 썸데이. 아아 그럼요. 기억합니다. 황재국네서 봤죠.

문호 : 그 황재국씨 집에서 발견한 동영상을 보내드릴까 하고요.

윤형사 : 동영상이요?

문호 : 황재국 소유의 소속사 여배우들이 여러 남성을 접대하는 내용인데요. 저희가 현재 취재 중인 내용이기도 하고요.

윤형사 : 어... 그게.. 뭔가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요. 제가 소속이 사이버팀이에요.

            그러니까 사이버 세상에 관계된 사건을 해결하는 게 내 일이고. 성범죄는 또 그쪽 부서가 있고...

문호 : 그 동영상에 나오는 남성들이 상당히 지위가 있는 분들입니다. 자칫하면 수사 초동단계에서 막히지 않을까 걱정되서요.

윤형사 : 아니 저기.. 저도 내부에서는 좀 왕따 쪽이라서 힘이 없는데..

문호 : 그러시더군요. 윤형사에 대해 죄송하지만 조사를 좀 해봤습니다. 정치 게임 쪽으로는 전혀 관심 없고.

         그래서 높은 분들 비자금. 외화 도피. 함부로 캐내다가 물도 먹으시고.

윤형사 : 어유.. 다 아시는구나. 역시 훌륭한 기자분이라 취재가...

문호 : 그 동영상. 힐러라는 밤심부름꾼에게 의뢰해서 구했습니다.

윤형사 : (웃음기가 가시며) 힐러라고 하셨습니까?

문호 : 오랫동안, 쫓고 계시다면서요.

윤형사 : 오랫동안... 맞습니다.

문호 : 현재 힐러가 누구의 주변에 있을지 알고 있습니다.

윤형사 : 누구..일까요.

문호 : 채영신 기자요. 현재로는 채기자를 보호하라는 의뢰를 받았습니다만 아마 상대 쪽에서 곧 힐러를 고용할 듯 싶습니다.

         얼마 전, 그들이 고용한 자가 힐러에게 당했거든요.

윤형사 : (차 지붕 위에 놓았던 콜라를 들어 쪽쪽 빨아 마시며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며) 그들이라면 황재국 쪽?

문호 : 더 뒤가 있을 겁니다.

윤형사 : 그러니까 김문호 기자께서 지금 잡고 싶어 하는 게 황재국일까요. 아니면 힐러일까요?

문호 : 물론 황재국과 그 뒤의 인물들.. 조사를 시작하게 되면 정보를 나눠 받고 싶고요.

윤형사 : 그리고?

문호 : ... 채영신 기자의 옆에 형사들이 잠복해주길 원하고 있습니다. 힐러. 잡고 싶은 거 아닙니까?

 

 

#38. 정후 건물 엘리베이터

 

잔뜩 쌓인 나무 자재 뒤에 숨겨진. 정후전용 화물칸 엘리베이터 문이 아래위로 열리고, 그 안에 있던 정후가 나선다.

 

 

#39. 정후 집 앞

 

벽으로 보이는 공간으로 다가가던 정후가 멈칫 선다. 뭔가 이상하다.

주머니에서 핀 전등을 꺼내더니 벽 주변을 살펴본다. 폴라를 끌어올려 입 부근을 막고.

 

 

#40. 정후의 집

 

문이 열리고 들어서는 정후. 조용히 옆에 항상 기대놓은 각목 하나를 집어 든다.

안으로 들어간다. 실내를 둘러본다. 그러다 발견하는 거실 테이블 위의 먹다 남은 케이크.

 

정후 : 이 영감이 진짜.

 

각목을 냅다 집어던지고는 실내를 빠르게 가로지르며 찾는다. 그러나 아무데도 없다.

그러다 문득 발견하는 컵. 차가 남은 컵에서 아직 수증기가 오르고 있다.

손바닥을 대어본다. 따뜻하다.

정후가 입구로 달려 나간다.

 

 

#41. 정후 건물 공간 일각

 

정후가 계단을 달려 내려온다. 달려오며 소리 질러대는 정후.

 

정후 : 나와. 안 나와! 영감. 아직 여기 있는 거 다 알거든.

 

사방을 급히 둘러 찾는다. 밤. 유리창도 없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은 약하고.

휑하니 빈 공간. 정후가 달려간다.

 

 

#42. 정후 건물 다른 일각

 

끝없이 이어지는 거친 공간을 달려오며, 사방을 둘러보며 찾으며,

정후가 그간 쌓이고 눌러놓았던 감정이 폭발하는 느낌으로 소리 지른다.

 

정후 : 내가 할 말이 있다고. 이 망할 영감탱이야. 좋은 말 할 때 빨리 튀어 나와. 그렇게 숨어 있다 내 손에 걸리면 반 죽는다.

         내가 물어볼 게 있으니까 나오라고 쫌 !! 당신 사부잖아. 사부니까! 내가!

 

주위를 둘러본다. 아무 반응도 없다.

정후. 속을 풀길이 없어서 냅다.. 소리를 지른다. 빈 공간에 내지른 소리는 메아리가 돼서 들려온다.

정후가 그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는다.

 

정후 : (이제 소리칠 기운도 없어서) 물어볼 게 있다고... 진짜 모르겠어서 그러는데. 나 어뜩하면 되나. 어? 나.. 어떻게 할까. 사부.

         쫌... 가르쳐주지.

 

길게 다리를 뻗고 보는 앞. 앞으로는 끝없이 길게 뚫려있는 느낌의 공간이 이어지고 있다.

정후가 바닥에 대자로 누워버린다. 넓은 공간에.. 혼자.

 

 

#43. 썸데이 건물 앞 / 아침

 

겨울날씨. 건물을 둘러싼 나무들. 보도를 구르는 낙엽들..

그 낙엽을 밟으며 영신이 뛰다시피 출근을 하고 있다.

 

 

#44. 썸데이 로비

 

달려 들어오던 영신 급브레이크를 밟듯이 선다.

거기 우뚝 서서 보고 있는 문호.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듯.

영신. 놀랐다가 꾸벅 절하며

 

영신 : 안녕하십니까.

문호 : (그저 보고 있다)

영신 : (더듬) 어제는 그냥 가버려서 죄송합니다. 쪽지 써놨는데..

문호 : 사과는 내가 해야 하는 거고. 니 얼굴 보니까.. 이제 숨이 쉬어지네.

영신 : ...예?

 

문호가 싱긋 웃는다.

영신 벙..해서.

 

 

#45. 썸데이 건물 앞 길

 

정후의 차를 몰아서 슬슬 건물 옆쪽으로 다가오는 대용. 한쪽에 차를 세우고 기지개를 켜다가 돌아보는 곳.

승용차 한 대가 옆을 지나가는데. 그 안에는 두 명의 사내가 타고 있다. (윤동원 소속 부하형사들).

뭔가 이상해서 주시하는데. 그 차가 저 앞 쪽에 주차를 한다.

대용이 반사적으로 운전석 아래로 몸을 내려 숨는다.

잠시 후 슬쩍 고개를 올려보았더니 형사 중의 하나가 차에서 내려서 썸데이 건물 쪽으로 다가가고 있다.

카메라를 들더니 건물 쪽의 사진을 찍는다.

대용이 휴대폰을 들어 버튼을 누른다.

 

 

#46. 정후의 거실

 

이제 케이크는 거의 다 먹어서 바닥만 보이고 있다. 그 옆에 뒹굴고 있는 빈 맥주 캔 서너 개.

바닥에 떨어져 있는 정후의 휴대폰이 울린다. 발신인은 [똘마니]

정후가 소파 위에 담요를 둘둘 두르고 앉아서 다큐멘터리를 멍하니 보고 있다.

밤새 침대가 아니라 소파에서 자며 뒹굴어서 뻗친 머리. 멍한 얼굴.

시선만 돌려 울리는 휴대폰을 보고는 다시 티브이 화면을 본다.

 

 

#47. 썸데이 옥상

 

먼저 올라온 문호가 돌아선다.

주춤주춤 따라온 영신도 선다. 뭔가 뻘쭘해서.

문호가

 

문호 : 사람을 시켜 찾아봤는데 그 엘리베이터에서 휴대폰 같은 건 찾을 수가 없다고 하더라.

영신 : 아.. 괜히 저 때문에.... 고맙습니다.

문호 : (들고 있던 작은 종이백을 내밀어 준다) 받어.

영신 : ?

문호 : 새 휴대폰이야.

영신 : 어우 아닙니다. 이쯤은 제가..

문호 : 회사 비품이니까 아껴 쓰고.

영신 : 아.. (받는다) 잘 쓰겠습니다.

문호 : 밤새 생각해봤어. 널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영신 : 조심하겠습니다.

문호 : 옆에서 너를 지키는 데도 한계가 있는 거 같고.

영신 : 저.. 그러니까 먼저 누가 왜 나를 해치려고 하는지 그거부터 말씀해주시면 제가 알아서..

문호 : 방법이 두 가지 생각나더라고. 하나는 너를 멀리 보내는 거. 유럽의 어느 시골학교로 유학을 보내버릴까..

영신 : (보다가 웃는) 어우 무슨 그런 드라마 같은 말씀을.. 농담도 참 ..올드하십니다.

문호 : 그렇게 반응할 거 같더라고. 그럼 두 번째. 너를 아주 유명하게 만들어버릴까.

영신 : ... 네?

문호 : 니가 유명해지고 너를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엘리베이터 사고 같은 장난은 못 치게 될 거야. 쉽게 묻을 수 없게 될 테니까.

영신 : (이해가 잘 안 되고 있다)

문호 : 원래 니 꿈도 그거였잖아. 유명한 기자가 되는 거.

영신 : 그건 어떻게.. 아 뒷조사.

문호 : 물론 니가 유명해지면 더 위험해질 수도 있어. 난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니가 결정해.

         무서우면 .. 늦기 전에 도망가. 내가 도와줄게.

영신 : 이유는 언제 말씀해주실 건데요. 내가 위험한 이유.

문호 : 니가 내 옆에 있기 때문이라고. 일단 그렇게 믿어줄래?

영신 : (가만히 보는)

문호 : (기다리는)

영신 : 유명한 기자라고 하셨지요?

문호 : 그래.

영신 : (한 손을 든다) 할래요.

 

 

#48. 황재국 집 앞

 

여전히 지키고 있는 상수파 사내들.

그 옆에 세워져 있는 윤형사의 낡은 차. 그 위로

 

윤형사소리 : 잃어버린 것도 없다. 도둑놈 같은 건 보지도 못했다.

 

 

#49. 황재국 서재

 

황사장 : 글쎄. 형사님께서 무슨 이야기를 듣고 오셨는지 모르겠는데. 우리 집 들어오면서 지키는 애들 보셨지요? 그 철통 경비.

            그거 뚫고 무슨 도둑이 어딜 들어오겠습니까. 예?

 

황재국이 못마땅해서 보고 있는 곳.

윤형사가 서재를 이리저리 거닐며 이것저것 구경하고 만지고 있다.

이미 어질러졌던 황재국의 서재는 말끔히 치워져 있는데.

정후가 망가뜨린 족자가 걸려있던 벽은 비어있다.

윤형사가 그 빈 벽을 들여다보고. 못만 남은 것을 만져보며

 

윤형사 : 여기 걸려있던 그림은 어디 갔을까요.

황재국 : 팔았습니다. 됐습니까?

윤형사 : (휴대폰을 조작하며 황사장 앞으로 오며) 그럼 도둑 얘기는 패스하고 다음 얘기.

            이 동영상에 나오는 여자분들. 황사장님네 소속사에 있는 분들 맞죠?

 

하며 화면을 황사장 코앞에 들이밀어 보여준다.

황사장이 움찔해서 화면을 본다. (여자들이 룸살롱 같은 데서 신사들을 접대하는 모습 정도)

 

윤형사 : 이게 이 중에서 가장.. 수위가 낮은 장면이고. 아까 대충 봤더니 이건 뭐 어휴... 전 뭐.. 도저히 끝까지 볼 수도 없고..

황재국 : (갑자기 놀라는 척 하며) 아니 이게 뭐야. 이것들이 대체 어디서 무슨 짓을 한 거야.

윤형사 : 그러니까요. 어디서 무슨 짓을 한 건지. 우리가 잘 알아보도록 하죠. 그런 의미에서 내일 서에 좀 와주셔야겠습니다.

            특히 여기 출연하는 각계각층의 신사분들에 대해서 물어볼 게 좀 많습니다.

 

윤형사는 웃어 보이는데, 황재국은 더 말을 못하고 본다.

 

 

#50. 지하 바

 

어르신이 하이볼글라스에 담긴 붉은 액체를 젓고 있다. 유리컵 안에서 저어지는 블러드메리 칵테일의 붉은 기운.

어르신이 그 위에 샐러리 스틱을 하나 꼽고. 레몬도 한 조각 컵 가장자리에 얹는다. 그리고 앞으로 내민다.

그 앞에 기다리고 있던 문식이 받아 자기 앞으로 끌어당긴다.

 

어르신 : 해장술로 좋아요. 마셔 봐요.

문식 : (마시지는 않고) 어르신. 그 여자아이는..

어르신 : 내가 잘못했어요. (웃는) 김사장에게 먼저 허락을 받아야했는데. 내가 내 맘대로 그 아이 건드린 거. 내가 참 잘못했어.

문식 : 먼저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면목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르신 : 그런데.. 알지요? 내가 왜 그 어린 여자애한테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문식 : 문호를 걱정하시는 겁니까?

어르신 : 김문호 기자. 지난 십년 넘게 내 뒤를 쫓아 왔어요. 얼마 전에 우리가 작업했던 삼한 중공업. 수성기업까지

            우리가 손만 대면 어김없이 김문호가 따라 붙었어.

문식 : 그래봤자 생방송에서 말장난 몇 번 친 것이 그 놈의 한계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일개 기자가 뭘 할 수 있다고 신경을 쓰십니까.

어르신 : 그래서 아예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더니 아주 방송사까지 걷어 차고 나가서 지 신문사를 차렸다면서요.

문식 : 신문사라 할 것도 없는 곳이라..

어르신 : 지난번에 입수했던 엘에이 동영상.

문식 : (긴장)

어르신 : 그것도 중간에 김문호가 가로채려 했지요. 그게 김문호의 손에 들어갔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문식 : (자세를 바로하며) 제가 맡은 일이었습니다. 실수. 없었을 겁니다.

어르신 : 알아요. 내 주위에 김사장만한 인재 없어요. 최고야. 그런데 내가 왜 이번에 김사장이 아니라

            김의찬을 시장 후보로 세웠을까?

문식 : 어르신 저는..

어르신 : 김사장이 가진 약점 때문이야. 아주 커다란 약점 두 개. 마누라. 그리고 동생.

            거기에 그 여자애라는 세 번째 약점까지 얹을 수는 없잖아요.

문식 : (똑바로 보더니) 알고 있습니다. 제 약점. 그래서 주시는 것 외에 더 큰 바램 가져본 적 없구요.

         그런데요. 어르신. 제 약점은 바로 치명상입니다. 한번 다치면 회복이 안됩니다. 그저 죽습니다.

         어르신께서도 죽은 병사는 필요 없지 않겠습니까.

어르신 : (보다가 소리내 웃는다)

문식 : 그러니.. 제 쪽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하게 해주십시오. 처리를 해도 제가, 그 방법도 제가 정하게 해주세요. 간곡히 청합니다.

 

문식이 무릎에 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여 보인다.

어르신이 그런 문식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실내에 울리는 전화벨. 어르신의 옆에 있는 전화기가 울리고 있다.

저만치 서 있던 사내 중의 하나가 급히 오려는데.

어르신이 손수 스피커폰의 버튼을 누른다. 연결되자마자 거칠게 들리는 황재국의 음성.

 

황재국소리 : 여보세요. 거기 어르신 좀 바꿔봐요.

 

황당한 소리에 경호원들도 문식도 돌아본다.

어르신이 다가오려는 경호원을 향해 손을 들어 말리더니 직접.

 

어르신 : 누구십니까.

황재국소리 : 나 황재국이라고 해요. 이거 어르신 계신데 전화인 거 내가 다 알고 한 거니까 좋은 말 할 때 바꿉시다.

어르신 : (난처한 듯 미소) 이 번호는 어찌 아셨습니까.

 

 

#51. 황재국 서재

 

황재국이 서성이며 잔뜩 열 받아서 전화 중.

 

황재국 : 그러니까 이 번호를 알 정도로 인맥이 좀 있는 내가, 곤란한 일이 생겼다고. 내가 지금 잡혀 들어가면 말이야.

            나 혼자 죽을 순 없잖아요. 내가 좀 입이 싸거든. 그럼 막 불지 않겠어요? 그럼 내가 무슨 이름을 불게 될지 모른다고.

            근데 그 이름 중에는 어르신쪽 사람이 좀 많아. 뭔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니까 늦기 전에 어르신 좀 바꿔달라고.

 

 

#52. 지하 바

 

어르신 :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지요. 기다리시면 답이 갈 겁니다.

 

전화를 끊더니 문식을 보며

 

어르신 : 엘에이에서 그 동영상을 가져 왔다가 죽었다는 자. 이름이..

문식 : 고성철이라고 합니다.

어르신 : 그 자의 살해범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나요?

 

어르신이 재미있다는 듯 웃는다.

 

 

#53. 썸데이 사무실

 

문호가 빠르게 사무실을 가로지르며 지시한다.

 

문호 : 오늘 오후 네시. 김의찬이 서울시장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할 겁니다.

 

선재. 찬영을 비롯. 종수가 부지런히 각자의 자료들을 챙겨 들며 문호를 따른다.

영신도 후다닥 가방을 자기 책상에 던져놓고 웃옷도 던져놓고 수첩을 찾는다.

 

문호 : 같은 시각. 썸데이는 썸데이 뉴스 제 1호 인터넷 방송을 합니다.

 

여기자도 장부장도 각각 노트북이나 수첩을 들고 따른다.

 

 

#54. 회의실

 

자리 잡고 앉거나 서 있는 모두. 앞에 선 문호가

 

문호 : 방송에는 기자회견 중계도 들어가지만 우리가 그동안 취재한 내용도 들어갈 거예요.

장부장 : (손을 번쩍 든다)

문호 : 예.

장부장 : 근데 시작부터 김의찬은 너무 하드한 거 아닙니까? 시작은 좀 소프트 하게 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그니까 워밍업. 연습경기. 그런 걸로요. 굳이 김의찬으로 시작하는 이유가..

문호 : 장사를 하려고요.

장부장 : 장사요.. 언론인의 사명이나 뭐 그런 게 아니고 장사..

문호 : 아무도 봐주지 않는 기자의 사명감 같은 건 쓸데가 없으니까요. 차기 서울시장 후보면서 대권주자로 꼽히는 김의찬 정도면

         장사꺼리가 되지 않겠어요?

종수 : (손을 들더니) 이 정도 껀수면 저 스파이짓 해야 되는데요.

문호 : 해. 대신 현장으로 가면서 해. 시간 없으니까.

 

 

#55. 썸데이 복도

 

카메라가방을 둘러멘 종수가 달려 나가고 있다.

 

문호소리 : 종수. 니가 할 일은 어떻게든 기자회견장에 자리를 확보하는 거야. 현장 중계를 바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

 

 

#56. 썸데이 사무실

 

여기자가 자기 책상 앞에서 썸데이뉴스 홈피에 나오는 화면을 보고 있다.

화면에는 썸데이 스튜디오가 비춰지고 있다. 거기 아직 문호가 앉지 않은 데스크가 보인다.

그런데 그 화질이 지직거리며 점점 엉망이 된다. 그 위로 이어지는 문호의 소리.

 

여기자 : 안돼안돼안돼.. 노오오오우

문호소리 : 우리의 방송은 화질도 엉망일 거고. 초짜들에 연습도 해 본 적이 없으니 실수투성일 거고.

 

 

#57. 썸데이 스튜디오

 

그 데스크를 비추고 있는 카메라. 찬영이 데스크 앞 쪽의 커다란 모니터 뒤를 손보고 있다.

모니터에는 (여기자가 보는 화면과 같은) 데스크가 찍히고 있는데 역시 불량으로 지직거리고 있다.

스피커로 여기자가 소리치는 게 들리고 있다.

 

여기자소리 : 접촉을 봐봐. 선 좀 다 뽑았다 껴보라고. 접촉불량이라니까 이거.

 

그 위로 계속되는 문호의 소리.

 

문호소리 : 컷트를 따줄 중계차도 없어요. 그래도 해봅시다. 해보지 않으면 뭐가 구멍인지. 뭐가 벽인지 알 수가 없으니까..

 

 

#58. 썸데이 로비

 

문호소리 : (계속) 우리는 이제 따뜻한 도장이 아니라 찬바람 부는 시장바닥에서 실전검법을 배우게 될 겁니다.

 

계단을 달려 내려오고 있는 영신.

그 뒤에서 영신을 부르며 달려 내려오는 선재. 손에 서류뭉치를 들고 있다.

영신이 도로 뛰어올라가 서류를 받아든다. 그렇게 마주한 둘의 모습이 찰칵. 셔터음과 함께 찍힌다.

영신이 다시 뛰어 내려온다. 입구 쪽으로 오던 영신이 멈춰 선다.

막 문을 열고 들어서던 정후가 영신을 본다. 들고 있는 카메라를 들어 보인다.

 

정후 : 이거 좀 찾아오느라고 늦었...

 

영신이 더 말 할 것도 없이 정후의 손목을 잡고 뛴다. 어어 해서 끌려 나가는 정후.

선재가 위를 향해 소리친다.

 

선재 : 카메라맨 도착했습니다. 지금 같이 출발했어요.

 

 

#59. 썸데이 주차장

 

날아오는 차 키.

썸데이 차의 건너편에서 영신이 던진 차키를 받아드는 정후.

 

영신 : 가자고.

정후 : 그니까 어딜 가냐고.

영신 : 유명해지러.

정후 : 뭐?

 

영신이 히힛 웃으며 차 너머로 오른 손을 내민다. 정후가 할 수 없이 하이파이브를 툭 해준다.

그렇게 마주 선 둘의 모습이 찰칵.. 셔터음과 함께 찍힌다.

// 정후가 운전하는 썸데이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그 차가 가고 난 뒤 보이는 곳.

다른 곳, 안내판이라도 읽고 있던 듯한 형사가 돌아본다. 그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다.

 

 

#60. 경찰서 외경

 

윤형사가 일하는 경찰서 / 퀵 줌인되며

 

 

#61. 경찰서 내부 복도

 

윤형사가 창가에 기대 서서 휴대폰 화면을 보고 있다. 썸데이의 형사들이 찍은 사진들.

영신과 마주 서 있는 문호를 멀리서 당겨 찍은 것.

넘겨보면. 계단에서 서류를 주고받는 선재와 영신.

다시 넘기면 자동차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영신과 정후.

그 다음 사진은 건물 이층 창문 너머로 보이는 여기자. 커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을 당겨서 찍은 것.

사진을 보면서 통화를 하는 윤형사. (스피커폰으로?)

 

윤형사 : 이거.. 채영신이 주변 인물들 말이야. 신상 조사 좀 해봐. 회사 동료 들이면 거기 회사에 인사기록 같은 게 있을 거 아냐.

형사소리 : 예 알겠습니다. 현주소. 경력. 그런 거 뒤지면 되겠습니까?

윤형사 : 신체 사이즈, 그리고 사진. 잊지 말고.

 

 

#62. 썸데이 편집실

 

장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오며

 

장부장 : 뭐래는 거야. 뭐가아.

여기자 : 문제가 생겼답니다.

 

이쪽에 있던 문호도 다가온다.

장부장까지 셋이 보는 여기자의 모니터 화면. 종수가 찍고 있는 기자회견장 입구가 보이고 있다.

여기자가 얼른 책상에 놓였던 전화를 스피커폰으로 바꾸며

 

여기자 : 말씀하세요. 다 오셨어요.

종수소리 :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문호 : 어딜 못 들어가. 뭔 소리야.

 

 

#63. 기자회견장 입구

 

포터블 카메라를 들어 찍고 있는 종수. 그 앞에 보이는 모습.

호텔? 볼룸들이 있는 층의 입구. (혹은 컨퍼런스홀의)

기자회견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홀. 간단한 플랭카드 하나가 걸려있다.

(로고) 정민당 김의찬 서울시장 출마 기자회견 더 특별한 서울, 더 특별한 시민 행복한 일꾼 김의찬입니다.

그런데 그 홀로 들어가는 입구는 차단 줄로 막혀 있고.

한군데만 열어놓고 들어가는 기자들을 일일이 리스트와 기자증을 대조해서 들여보내고 있다.

이쪽에는 들어가지 못한 기자들이 모여서 떠들고 있고.

 

종수 : 리스트에 있는 언론사 기자들만 들여보내고 있다고요. 리스트에 없는 방송사나 신문사는요. 질문만 못하는 게 아니고

         아예 회견장에 들어 갈 수가 없어요. 썸데인지 먼데인지 이 명함 가지고는 어림도 없습니다. 어뜩할까요.

 

 

#64. 썸데이 편집실

 

장부장이 문호의 눈치를 보며 괜히 더 열 받은 척.

 

장부장 : 아니. 언론의 자유가 팔팔하게 살아있는 대한민국에서.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차별이야. 거기 책임자 누구야. 바꿔 봐요.

문호 : (생각 중이다) 자기들이 원하는 질문만 받고. 짜여진 대답만 하겠다는 건데. 주연희 사건은 아예 질문할 기회를 봉쇄하겠다.

         (하다가 화면을 보다 멈칫) 종수야 카메라 다시 돌려봐. 빽팬하라고.

 

회견장 입구 쪽을 팬해서 보여주던 화면이 다시 돌아간다.

 

문호 : 거기.

 

화면이 멈춘다. 화면에 비치는 안내판.

 

문호 : 줌인.

 

화면이 줌인해서 들어간다. 안내판은 [ 김세광 차남 김준호 윤병회 장녀 윤세영 ... 언약식 사루비아 볼룸 ]

 

문호 : GK의 김세광 대표 아들이 옆방에서 언약식을 하는군요.

장부장 : (이해가 안되서) 예?

문호 : 거기 오는 손님을 막기는 쉽지 않죠.

 

하면서 벌써 휴대폰의 번호를 누르고 있다.

 

 

#65. 거리

 

정후가 운전하고 있는 썸데이 차가 달리고 있다. 그 위로 들리는 음악 같은 벨소리.

 

 

#66. 차 내부

 

계속되는 벨소리.

정후가 옆을 돌아본다. 영신도 맹한 얼굴로 돌아봤다가. 아.. 해서 부지런히 주머니를 뒤져 새 휴대폰을 꺼낸다.

그 휴대폰이 울리고 있다.

 

영신 : 오 내꺼다. (정후에게 보여주며) 내 꺼. 새 거.

 

정후 그런 영신의 새 휴대폰이 신경 쓰여서 힐끗 본다.

영신이 새 휴대폰이라 어떻게 열지를 몰라서 버벅인다.

정후가 한손을 뻗어 열어주며

 

정후 : 꼭 지같이 생긴 걸 어디서...

영신 : 여보세요.. 선배. 와. 이 휴대폰 첫 번째 통홥니다. 스마트폰이 첨이라..좀 늦었습..... 네? 위장침투요? 우리가요?

         ..먼저 어디로 가라고요?

 

 

#67. 살롱

 

토탚 패키지로 옷이며 미용을 해주는 고급 부티크 살롱.

디자이너 미셀(40대. 남)이 전화를 받고 있다.

 

미셀 : 김문호기자님. 저야 영광이지요. 그러니까 컨셉이, 어디든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누구도 거부할 수 없을 만큼

         존엄하고 우아한 복장이면 좋겠다. 이거죠?

 

하면서 보는 입구 쪽. 어리버리한 영신과 정후가 들어서고 있다.

화려한 실내에 주눅이 좀 들어 있는 영신. 이런 장소가 불편한 정후.

그들을 보며

 

미셀 : 저기 들어오는 두분인가부다. 와우. 끊어요. 나 마음이 막 바빠졌어.

 

전화를 끊더니 둘 앞으로 간다.

 

미셀 : 어서 오세요. 김문호기자님이 보낸 분들이죠?

영신 : 아. 예. 안녕하세요. 여기 먼저 들르라고 해서 들렀는데..

미셀 : 쉬잇...

 

영신이 찔끔해서 입을 다문다.

미셀이 두 사람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더욱 불편해지는 둘. 가게의 다른 직원들도 우루루 와서 대기하고 있어서 더욱 불편하다.

 

정후 : (영신에게 낮게) 아무래도 난 나가서 기다리는 게 좋겠는데.

 

정후가 슬쩍 돌아서 나가려는데. 그 소매를 붙잡는 영신.

 

미셀 : 오오케이. 콘티 끝났어. 시작해볼까요.

 

미셀이 두 손을 들어 양쪽으로 까딱이자 직원들이 우루루 몰려들더니 정후와 영신을 양쪽으로 데려간다.

어어..해서 끌려가는 둘.

 

 

#68. 남 탈의실

 

정후가 주위를 둘러본다. 일단 탈의실의 분위기에 질렸는데.

여직원 하나가 미소를 지으며 정후에게 다가오더니 정후의 옷을 벗겨주려 한다.

정후, 놀라서 옷깃을 부여잡고 입구로 다시 나가려다가 뒷걸음질로 밀려들어 온다.

거기 다른 여직원이 역시 생글생글 웃으며 줄자를 들고 정후에게 다가온다.

 

 

#69. 여 탈의실

 

영신이 서서 전화 중이다. 영신의 뒤에서는 직원이 영신의 치수를 재고 있다.

 

영신 : 위장침투래잖아. 이건 또 내가 전문이거든. 기자는 말이지. 필요에 따라 무엇으로든 순식간에 변장할 수 있어야 된다고.

 

 

#70. 남 탈의실

 

런닝셔츠만 입은 정후가 서서 전화 중. 옆에서 여직원이 치수를 재는 중이다.

 

정후 : 나도 변장은 좀 하는데. 언제나 혼자 잘 했거든.. 그러니까.. 어우..

 

여직원이 정후의 팔을 드는 바람에 놀라서 움추린다.

 

 

#71. 몽따쥬

 

이하, 정후와 영신이 각자 치장을 하는 몽따쥬 위로.. 통화하는 소리가 얹혀 진다.

(굳이 전화기를 들고 있을 필요는 없이)

// 정후의 앞에 대어지는 여러 가지의 셔츠. 넥타이.

// 영신에게 입혀보는 이것저것 드레스들..

// 정후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다시 나가려다가 다시 끌려 들어오고

// 메이크업을 받는 영신. 속눈썹을 붙이려하자 겁에 질리는 영신.

얼굴에 파우더를 발라 주는데. 그걸 들이마시고 재채기를 하고..

// 미용의자에 앉아 있는 정후. 미용사가 정후의 머리를 뒤로 넘기자 불쾌해서 다시 앞으로 끌어내리는 정후.

그러나 미용사는 다시 뒤로 싸악 넘긴다.

// 하이힐을 신고 두어 걸음 걷다가 바로 넘어지는 영신.

// 등등의 모습이 전체적인 차림새 모양은 아직 보이지 않게. 그런 위로..

 

영신 : 봉숙아

정후 : 말시키지 말지. 지금 말할 기분이 아니거든.

영신 : 왜. 잘 못 잤어?

정후 : 못 잤지.

영신 : 왜. 내가 어제 밤에 깨워서?

정후 : ..생각을 좀 하느라고.

영신 : 어이구. 우리 봉숙이. 생각도 할 줄 알고.

정후 : 생각을.. 좀 많이 했지. 평소와 다르게.

영신 : 무슨 생각을 했는데..

정후 : 핑계를 찾고 있었다고 할까.

영신 : 무슨 핑계.

정후 : 음...

영신 : 응?

정후 : ...다시 만나도 되는 핑계?

영신 : 다시 만나? 누굴?

 

그러나 정후의 대답은 없다.

 

 

#72. 살롱 홀

 

미셀이 돌아본다. 기웃해서 보더니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

거기 나오고 있는 정후. 헤어는 뒤로 깔끔하게 넘기고 넥타이에 수트를 제대로 차려입고 있다.

 

미셀 : 퍼어펙트. (손뼉을 따악 치며) 자아 다음. 레이디?

 

정후가 미셀의 시선을 따라 돌아보다가 멈칫. 침을 삼키다가 사레 걸릴 뻔해서 겨우 진정한다.

거기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영신. 제대로 화장하고 드레스를 입고 있다.

(앞으로 기자회견장 취재를 할 때 계속 입을 거라서 길지 않게. 무릎 길이의 칵테일 드레스 정도로.

너무 화려하지 않은 우아한 색으로)

영신이 어색해서 머뭇머뭇 내려온다. 힐 때문에 비틀하다가 겨우 서서 본다.

그 앞으로 다가와 서는 정후.

그제야 정후를 보고 아래 위를 살피는 영신. 휘파람을 불려다 실패.

그제야 정후가 좀 웃는다.

 

정후 : 준비되셨으면, 갈까요 선배.

영신 : 좋아. 가보자고.

 

하더니 한 손을 들어 보인다.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그러나 정후는 그 하이파이브를 받는 대신. 한쪽 팔꿈치를 약간 올려 보인다.

영신이 웃다가.. 그 팔에 손을 넣어 팔짱을 낀다. 허리를 펴고.

그렇게 차려입은 정후와 영신. 둘이 나란히 걸어 나오는 데서.

 

=9회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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