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속으로] 13
S #1 인하 방
인하,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매고 거울 속 자기를 매섭게 노려보다가 밖으로 나간다.
S #2 인하네 식당
인하, 경환, 왕여사, 재숙, 긴장이 감도는 침묵 속에서
조용히 아침을 먹고 있다.
인하, 계속 경환과 왕여사의 눈치를 본다.
인하 아버지.
일동, 돌아본다.
인하 저, 파혼하겠습니다.
식탁이 싸늘하게 얼어붙는다.
일동, 굳은 얼굴로 인하를 본다.
경환 ... 너, 다시 한 번 얘기해봐.
인하 파혼하겠다구요.
왕여사와 재숙, 비웃음을 날리고 다시 밥을 먹는다.
경환도 대수롭지 않은 듯이 인하를 보고 피식 비웃고 다시 밥을 먹는다.
인하, 기분이 확 상해 경환을 노려본다.
경환 (계속 밥을 먹으며) ... 결혼문제 니가 알아서 한다더니 결국
그런 거냐?
인하 ...
경환 친엄마 만나고 돌아다니면서 니가 무슨 인생의 의미라도 새
로 발견한 것처럼 까부는데 너, 지금까지 살아온 걸 생각해
봐. 니가 어떻게 살았나.
지금 니가 누리고 있는 게 니 눈엔 다 우습게 보이지?
니 인생에서 본질적인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지?
인하 ...
경환 쓸모 없고 무능한 놈이 애비 잘 만나서 분에 넘치는 자리에
앉았으면 잠자코 시키는 대로 일이나 열심히 할 것이지, 뭐가
어째? 파혼?
너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니가 잘나서 상무이사 자리에 앉
혀 놓은 줄 알아?
인하 ...
경환 사내새끼가 인생을 크게 볼 줄 모르고 기껏 한다는 게
친엄마 때문에 눈물이나 질질 짜고, 거지같은 기집애 때문에
파혼이 어쩌구 저째?
그러니 내가 너를 어떻게 믿냐? 니 인생은 니가 알아서 한다고?
한심한 놈. 넌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인하 ...
경환 ... 아니면 너도 인생 끝나. (다시 밥을 먹고)
인하 ... (그런 경환을 잠시 보다가) 끝일 수도 있지만 시작일 수도
있어요.
인하,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나간다.
왕여사와 재숙, 경환과 인하를 번갈아 보며 눈치를 살피고
경환, 나가는 인하의 뒷모습을 본다.
S #3 연희네 집
연희와 이모, 아침을 먹고 있다.
이모 나도 알아보는 데까지 알아볼 테니까 너도 좀 알아봐.
연희 한두 푼이라야지.
이모 그러니까 너도 알아보라는 거 아니야.
한꺼번에 못 구하면 나눠서라도 구해봐야지.
부자 친구 뒀다 어디다 써. 수빈인가 하는 애 집이 그렇게 부
자라면서.
연희 (난감하다)
이모 (눈치를 보며) 니네 회사 이사한테도 한 번 부탁해 보고.
연희 (한숨을 쉰다)
이모 치사해도 어떡하겠냐? 당장 잠잘 데는 있어야될 거 아니야.
우리가 떼어먹을 것도 아니고 갚아 주면 되잖아.
(갑자기 울화가 치민다) 어흐, 저 웬수. 어흐. 못살아, 못살아.
이모부, 화장실에서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내복바람으로 나와
이모와 연희의 눈치를 보며 밥상 앞에 앉는다.
이모부 내 밥은? 안 펐어?
이모 나가! 꼴도 보기 싫어, 나가!
이모부 나, 배고파. 엊저녁부터 굶었잖아.
이모 안나가?
이모부 밥을 먹어야 기운 차리고 나가서 그 놈을 잡지. 내 잠수정 떼
먹고 도망간 놈.
내 이놈 잡기만 하면!
이모 아직도 잠수정이야! 아직도 잠수정이야! 에이!
이모, 이모부의 머리끄뎅이를 확 잡는다.
이모부, 비명을 지른다.
연희, 그러거나 말거나 돈 구할 걱정을 하며 밥을 먹는다.
S #4 사무실
연희, 컴퓨터 앞에 멍하니 앉아 돈을 어디서 구하나 고민을 하고 있다.
오과장 이연희씨!
연희 ....
오과장 이연희씨!
연희 (계속 못듣는다)
오과장 (다가와 툭툭 친다) 이연희씨!
연희 예?
오과장 왜이래? 아침부터?
연희 예?
오과장 정신차려!
연희 예.
오과장 저번에 기획안 보충하라는 거 다 됐나?
연희 예? 예. (뒤져서 꺼내준다)
오과장 (받아들고 가다가) 김주임, 아직도 바빠?
김주임 그런데요, 왜요?
오과장 (기획안을 주고) 오늘 오후에 작가들하고 약속 잡아놨으니까
이거 들고 만나봐.
김주임 만나서요?
오과장 서로 조건이 맞아야 일을 할 거 아니야. 이 기획안으로 시나
리오를 쓸 수 있는지 없는지, 돈은 얼마나 줘야 되는지. 아,
그 전에 다른 데는 대략 얼마정도 지급하는지 알아보고.
김주임 그거야, 작가에 따라서 다르겠죠.
오과장 아, 그러니까 자세히 좀 알아봐서 얘기하란 말이야.
연희, 오과장과 김주임의 대화를 들으며 문득 어떤 생각이 스친다.
김주임 아이씨, 바빠 죽겠는데. (전화벨) 여보세요?...
오과장 뭐, 이런 게 다 있어?
김주임 (오과장에게) 쉿! (다시 전화기에 대고) 예.... 예... 예.....
오과장 나, 원, 별.
연희 과장님.
오과장 왜?
연희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S #5 회의실
연희와 오과장 마주 앉아 있다.
오과장 이연희씨가?
연희 예.
오과장 시나리오 써봤어?
연희 아니오.
오과장 아무리 자기 기획안이라 그래도 시나리오는 분야가 다른데?
연희 제가 좀 써 놓은 것도 있거든요?
오과장 그래?
연희 만약에 제가 쓰게 되면 시나리오료도 따로 주시나요?
오과장 아, 그거야, 그렇지만. 근데 회사일이랑 병행하기가 힘들 텐데?
연희 틈틈이 써볼께요.
오과장 이연희씨가 보기보다 욕심이 많구만.
연희 ... 꼭 하게 해주세요.
오과장 한 번 생각해 보지, 뭐.
연희 저... 돈은 얼마나 주나요?
오과장, 연희를 이상한 눈으로 본다.
S #6 인하의 사무실
인하와 김주임, 자료를 들여다보고 있다.
김주임 임사장이 설립은 했지만 회장님께서 동업자로 합류하시기 전
에는 회사규모도 작고 주로 재하청 위주의 소규모 개보수 공
사를 하던 회사였습니다.
그러다가 경찰출신인 회장님의 정보력과 로비력, 그리고 임사
장의 뚝심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단시간에 엄청난 속도로
성장을 한 거죠.
인하 임사장은 왜 감옥에 가게 됐죠?
김주임 재개발 이권과 관련해서 고소고발 사건이 있었는데요,
재판과정에 임사장의 조직이 드러나는 바람에 감옥에 가게
되고 그래서 손을 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인하 그 다음에 우리 아버지가 유니온을 먹었다?
(과장되게 웃으며) 우와, 대단한 우리 아버지야.
김주임 (당황한다)
인하 그나저나 이 얘긴 어떻게 알아내셨어요?
김주임 뒤져보면 다 나옵니다.
인하 아, 그래요? (김주임을 보며 놀랍다는 듯 감탄한다) 이야...
김주임 (민망하다) 뒷 얘기는 이연희씨가 더 자세하게 알고 있을 겁니다,
아, 그리고 또 한가지. 자금 건인데요,
김주임, 날카롭게 주위를 살피고 인하의 귀에 속삭인다.
인하 (다시 감탄한다) 이야, 그건 또 어떻게 알아내셨어요?
김주임 (민망하다) 뒤지면 다 나옵니다.
인하,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미소가 스친다.
김주임 근데, 저... 괜찮을까요?
인하 뭐가요?
김주임 제가 누구 눈치보고 사는 성격은 아닙니다만 이번 일은 왠지 좀...
회장님이나 임사장 쪽에 알려지면 짤리던지, 맞아 죽던지, 하지는 않을까요?
인하 그럴 수도 있겠죠.
김주임 예?
인하 (씩 웃으며) 짤리면 같이 짤릴 거고, 맞아도 같이 맞을 테니
까요, 너무 걱정마세요.
김주임 이사님은 그래도 회장님 아드님이시니까 아무려면 그렇게까
지야 되겠습니까만 저는... 뭡니까?
인하 (일어나며) 염려마시라니까요. 밥이나 먹으러 가죠.
인하, 김주임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씩씩하게 밖으로 나간다.
S #7 구내식당
연희, 오과장, 장대리, 이주임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다.
오과장 조금만 이름이 있다 그러면 너무 쎄게 불러서 말이야.
장대리 지난번 공모에 당선된 작가들을 활용하는 건 어떨까요?
오과장 그거 하나 쓴 거 갖고 알 수 있나?
이때 재숙, 식판을 들고 가다가 연희가 있자 일부러 다가와 앉는다.
재숙 안녕하세요.
일동, 벌떡 일어나 인사한다.
재숙 어머, 왜 이러세요? 부담스럽게. 앉아서 드세요.
일동, 다시 앉아서 어렵게 밥을 먹는다.
이주임 (연희를 슬쩍 보고) 그 이연희씨 기획안으로 영화를 만들긴
만드는 거예요?
재숙 이연희씨 기획안으로 영화를 만들어요?
오과장 아직 그 단계는 아니구요,
이주임 (연희가 얄밉다) 이연희씨가 시나리오도 쓰기로 했대요.
재숙 (기가 막히다) 별 거 다하네?
오과장 아직 결정된 건 아니구요, 여러 대안 중의 하납니다.
재숙 그렇게 아무나 써서 되겠어요? 시나리오가 제일 중요하다던 데.
오과장 아무나는 아니죠. 그 기획안의 입안자고, 대필경력도 있고요.
재숙 그 경력만 있나요? (연희에게) 너, 출세했다?
연희 (식판을 들고 일어난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연희, 간다.
재숙, 연희를 기분 나쁘게 본다.
이주임 (재숙에게) 근데 이연희씨가 무슨 경력이 있다는 거예요?
재숙 학교 다닐 때 이상한 아르바이트했어요.
일동, 궁금한 얼굴로 가는 연희를 돌아본다.
S #8 인하의 사무실 (밤)
인하, 와이셔츠를 소매를 걷고 일을 하다가 기지개를 켜고 일어선다.
S #9 복도 (밤)
인하, 복도를 따라 걷다가 연희가 있는 사무실 안에서 불빛이 새어나오자 들어가 본다.
S #10 유니온 사무실 (밤)
인하, 문을 열고 들어서면 혼자 앉아 컴퓨터로 작업을 하는 연희의 모습이 보인다.
인하, 씩 웃고 살금살금 다가가 연희의 컴퓨터 위로 얼굴을 내민다.
연희, 깜짝 놀란다.
인하 뭐하냐? 이 시간에 아직도 퇴근 안하고.
연희 뭐 좀 할 게 있어서요.
인하 안가냐?
연희 먼저 가세요.
인하 무슨 일인데? (모니터를 슥 들여다 본다)
연희, 인하가 볼까봐 얼른 다른 화면으로 돌린다.
인하 뭔데 그래?
연희 나중에 보세요.
인하 집에서 하지. 여기 추운데.
연희 ...
인하 (시계를 보며) 어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저녁은 먹었어?
연희 ..네.
인하 그래, 그럼 수고해라.
연희 안녕히 가세요.
인하, 뒤도 안 돌아보고 돌아서 나간다.
연희, 나가는 인하의 뒷모습을 보며 조금 아쉽지만 다시 일을 시작한다.
시간경과.
인하, 봉지를 하나 들고 다시 나타난다.
인하 아직도 안갔어?
연희, 놀라서 본다.
인하, 책상에 걸터앉으며 봉지를 편다.
초밥이 들어있다.
인하 먹자. 난 저녁 안먹었거든?
연희, 할 말을 잃고 계속 인하를 본다.
시간경과
연희, 자기도 모르게 쉴새없이 초밥을 집어먹고 있다.
인하, 그런 연희를 보다가 피식 웃는다.
인하 나 미쳤나 봐.
연희 (계속 먹으며 의아한 얼굴로 본다)
인하 뭐가 이쁘다고 이러지?
연희 ...
인하 잘난 것도 없이 맨날 튕기기나 하는 여자한테?
연희 ...
인하 저녁도 안 먹었으면서 먹었다고 사기나 치고. 열등감이야, 알아?
연희 ...
인하 아까 나 진짜 가버린 줄 알고 속상했지? 그지?
연희 ...
인하 내가 다시 와서 너무 반가웠지, 그지? 거기다가 먹을 거 까지
들고 와서.
연희 (픽 웃는다)
인하 내가 탁 돌아설 때 가지 마요, 같이 있어줘요. 좀 그러면 안
되냐?
연희 (넘어올라 그런다) 욱!
인하 에이, 관두자. 내가 미쳤지.
(얄밉다. 젓가락으로 탁 친다) 그만 좀 먹어라.
연희 (젓가락을 뻗다가 무안해서 거둬들인다)
인하 농담이야. 먹어.
연희, 다시 젓가락을 뻗는데 한 알이 남았다.
인하와 연희, 잠시 초밥을 보다가 동시에 젓가락을 뻗는다.
두 사람, 한치의 양보도 없이 상대방의 젓가락을 밀어내다가 인하가 이긴다.
연희, 아쉬워하는데 인하, 초밥을 들어 연희에게 줄 것처럼 하다가 자기가 먹어버린다.
연희, 민망한데
인하 (갑자기 연희의 얼굴을 보며) 어? 이거 뭐야? 이리와봐.
인하, 연희의 턱을 들어 자기쪽으로 당기며 마치
뭐가 묻은 것처럼 사기를 친다.
인하 어? 이거 뭐지? 눈 감아봐.
연희, 정말 얼굴에 뭐가 묻은 줄 알고 얼떨결에 눈을 감는데
인하, 연희의 입술에 천천히 다가간다.
이 때 연희, 책상의 전화벨이 울리고 연희, 눈을 번쩍 뜬다.
인하 아흐! 누구야? 이 시간에.
연희 여보세요. ... 좀 있다 들어갈 거예요. ... 아직 못 구했어. ...
들어가서 얘기해요.
... 네. (끊는다)
인하 (연희가 통화하는 동안 쓰레기들을 치우고 돌아오며) 뭘 구해?
연희 아니에요.
인하 뭔데?
연희 아니라니까요.
인하 난 너한테 다 얘기하는데 넌 왜 얘기 안 하냐?
연희 집에 안 가요?
인하 밥 다 먹었다 이거야?
연희 (기가 차 웃는다) 어린애도 아니고.
인하 뭐? 내가 미쳤지, 어흐. 가, 일어나. 데려다줄게.
연희 저. 이거 마저 해야되거든요.
인하 그래? 그럼 기다려야지.
인하, 옆 책상에 앉아 괜히 귀도 후비고 코도 후비고 다리도 올려보고 부산하게 움직이며 기다린다.
연희, 못 참겠는지 컴퓨터를 끄고 일어선다.
연희 가요.
인하, 벌떡 일어난다.
S #11 수빈이 방
수빈, 핼쓱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있다.
송여사 (소리) 문 안 열어? 정말 이 문 안 열 거야?
송여사가 문고리를 흔드는 소리가 들리지만 수빈, 꼼짝도 않는다.
잠시 후 누군가 밖에서 열쇠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고 송여사, 방으로 들어온다.
송여사 (수빈을 한심하다는 듯 보다가)
니가 이렇게 단식투쟁을 하면 불쌍하게 생각할 줄 알았니?
남들이 다 웃어.
수빈 ...
송여사 내가 너 그런 앤줄은 알고 있었지만 해도해도 너무한 거 아
니니?
어떻게 그렇게 뻔뻔스럽게 두 남자하고 다 놀아나?
강군이야, 결혼할 사이니까 그렇다치고 그 불량배하고는 뭐 어쩌구 저째?
포기 못한다구? 한 남자로는 성에 안차나 보지?
수빈 (기가 막히다)
송여사 그리고 회장님이나 나나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니?
그런 허접쓰레기같은 놈한테 뭐 나올 게 있다고 그런 짓을
시키겠니?
널 보호하는 차원에서? 웃기지 마. 맘 같아선 그런 놈한테 시
집 보내고 싶은 게 내 솔직한 심정이야.
수빈 당신하고는 아무 말도 하기 싫어. 나가. ,
송여사 굶는 거야 니 맘이지만 약먹고 죽은 니 에미 생각해서라도
니가 이러면 안되지. 안그래?
수빈, 못참고 옆에 있던 물건을 송여사에게 집어 던진다.
수빈 나가!!!
송여사 아니, 이 기집애가.
이때, 정회장이 들어온다.
정회장 (버럭) 너, 이게 무슨 짓이야!
송여사 쟤 처지가 안됐다고 우리가 너무 오냐오냐한 거 같애요.
당신이 좀 따끔하게 야단 좀 치세요.
송여사, 밖으로 확 나가버린다.
정회장 수빈아, 너, 왜 이래. 정말?
수빈 정말 아버지가 그러신 거 아니죠?
정회장 내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있냐?
수빈 정말이죠?
정회장 내가 얼마나 너한테 정을 안 줬으면 니가 그런 생각까지 했겠니.
미안하다. 하지만 이 아버지가 그렇게까지 철면피한 사람은 아니다.
수빈 그럼, 아버지. 결혼 안하게 해주세요. 저 정말 이 결혼, 하기 싫어요
정회장 수빈아. 내가 니 결혼문제에 언제까지 매달려 있어야겠냐?
아버지 바쁜 거 잘 알잖아?
수빈 ...
정회장 자, 어서 일어나서 밥이나 먹자. (나간다)
수빈, 미치겠다.
S #12 수빈네 거실
송여사, 수빈이 방 쪽을 째려보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송여사 여보세요. (당황) 어머, 왕여사님. 그럼요, 별 일 없죠...
....지금 수빈이하고 같이 있어요.
S #13 인하네 집
재숙, 화장을 지우고 있고 왕여사, 통화를 하고 있다.
왕여사 그럼요, ...저희도 별 일 없죠.......네...네....안녕히 계세요. (끊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
다행히 아직 그쪽으로는 얘기가 들어가지 않은 모양이네.
뻔뻔스러운 기집애. 도대체 어떻게 홀렸길래 인하가 저 지경
이 됐지?
재숙 내가 그랬잖아. 걘 남자 심리를 꿰고 있다고. 무서운 애야.
왕여사 파혼?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 이 일을 어떡하지?...아,
이 일을 어떡하지?
내 말은 씨도 안먹히고?
재숙 오빠가 수빈이가 정말 싫은가 보지. 솔직히 나도 수빈이 맘에 안들거든?
난 오빠가 좀 정상적인 애들하고 놀았으면 좋겠어.
왕여사 (혼자 딴생각을 하고 있다가) 어른들하고 얘길 해야될래나?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다) 음....그래, 그러면 되겠다...
음, 내가 왜 그 생각을 진작 못했을까? 음...
재숙 무슨 생각?
S #14 캬바레 사무실
춘배, 초조한 얼굴로 안절부절 못하고 서성대고 있는데 노크소리 들린다.
춘배 (꽥) 누구야?
문이 열리면 이모가 들어온다.
이모 부장님, 계셨네.
춘배 뭐예요?
이모 (어렵게 말을 꺼낸다) 저....저....혹시 우리 캬바레는 직원들 주
택마련을 위한 장기 융자같은 거는 주선 안해주나요?
춘배 뭐요?
이모 아니면...직원들을 위한 대출...
춘배 이 아줌마가 지금 무슨 얘기하는거야?
이모 (간절하게 춘배에게 매달린다) 부장님, 우리 집이 당장 거리
로 나앉게 생겼거든요?
어떻게 돈 좀 빌려 주시면 안될까요?
춘배 아, 왜이래요?
이모 이자 꼬박꼬박 쳐서 갚을 테니까 제 사정 좀 봐주세요.
춘배 아줌마, 그건 사채업자한테 가 봐야지.
이모 그것도 알아봤는데요, 전세 계약서라도 있어야 된대요.
춘배 그러니 날더러 어떡하란 얘기예요?
이때 부하1이 급하게 들어와 춘배의 귀에 귓속말을 한다.
춘배 뭐?
춘배, 갑자기 밖으로 후다닥 뛰어나간다.
이모 부장님! 부장님! 에라, 이!
S #15 지하 창고
임사장의 부하들이 둘러 싸고 있는 가운데 명하를 친 행동대장이 엉망으로 얻
어터진 채 무릎을 꿇고 있다.
임사장, 가죽장갑을 끼며 천천히 다가온다.
임사장 내가 못 찾아낼 줄 알았나?
이 임복돌이가 이젠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소문이 났나보지?
누가 시켰어?
대장 ...
임사장 (부하들에게) 세워.
부하들, 행동대장을 부축해 세우면
행동대장, 공포에 질린 얼굴로 임사장을 본다.
임사장 죽음으로서 의리를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스스로 판단해라.
... 마지막으로 묻겠다. 누구야?
행동대장의 눈빛이 흔들리는데 춘배가 다급하게 뛰어들어오며
행동대장과 눈이 마주친다.
행동대장, 입을 열려다가 춘배를 보는 순간 다시 입을 다문다.
임사장 뭐야?
춘배 (식은땀을 흘리며 순간적으로 분위기를 살피고) 늦어서 죄송합니다.
저도 지금 연락 받았습니다.
임사장 (싸늘하게) 누구한테 연락 받았어?
춘배 (당황하지만) 예? 저..클럽 애들이... 잡은 거 같다고...이놈입니까?
춘배, 갑자기 행동대장에게 다가가 멱살을 움켜쥔다.
춘배 (무섭게 노려보며) 너, 죽을래?
춘배, 눈빛으로 무언의 압력을 가한다.
행동대장, 춘배를 빤히 노려보다가 입을 열려는 순간
춘배, 행동대장에게 주먹을 한 방 먹이고 방방 뜨며 옷을 벗어 젖힌다.
춘배 니들이 명하를 건드려? 명하를 건드리는 건 이 김춘배에 대
한 도전이자 회장님에 대한 모욕이야. 이 자식아!
춘배, 다시 한 방 먹이고
임사장, 그런 춘배를 계속 싸늘하게 보는데 휴대폰 벨이 울린다.
임사장 조용히 해!
춘배 예. 회장님.
임사장 누구야?....자네가 웬일이야... 나 지금 좀 바쁜데........알았어.
그럼, 거기서 보지.
임사장, 전화를 받는 동안 춘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임사장, 전화를 끊고 장갑을 벗는다.
임사장 나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잘 지키고 있어.
춘배 걱정 마시고 다녀오십시오. 회장님.
제가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임사장 누가 시켰는지 반드시 알아내.
춘배 예. 회장님.
임사장, 나가면 부하 몇 명이 따라 나간다.
춘배, 사태를 어떻게 수습하나 잔머리를 굴린다.
S #16 한정식 집
임사장, 술을 따르는 인하를 빤히 본다.
인하 (술을 따르고 임사장을 잠시 보다가) 한 번 모시고 싶었습니다.
임사장 왜?
인하 지난 번 영화일도 있고, 또 여쭤보고 싶은 것도 있어서요.
임사장 영화?
인하 다른 영화사는 좀 알아보셨습니까?
임사장 그건 왜?
인하 저, 그냥...
임사장 접었어.
인하 아, 예.
임사장 영화 얘기 말고 뭘 알고 싶은데?
인하 ... 명하는 잘 있습니까?
임사장 ... 잘 있네.
인하 몸은 좀 어때요?
임사장 많이 나아졌어.
인하 고맙습니다.
임사장 (다시 빤히 보다가) 알고 싶은 게 그건가?
인하 회사를 되찾고 싶으시죠?
임사장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다가 굳는다) 뭐?
인하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임사장 (픽 웃는다)
인하 대신 저도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임사장, 인하의 진지한 태도에 입가의 비웃음을 거둔다.
S #17 유니온 로비
연희, 엘리베이터로 가는데 고부장이 다가온다.
고부장 이연희씨?
연희 네?
고부장 회장님이 찾아요.
연희 저를요?
S #18 회장실
연희, 고부장을 따라 긴장하여 안으로 들어온다.
경환, 회전의자에 등을 보이고 앉아있다.
고부장 이연희씨 왔습니다. (나간다)
연희, 고부장이 나가고 경환과 둘만 남자 더욱 긴장하는데 경환, 의자를 돌려 연희를 본다.
연희 안녕하세요.
경환 (잠시 빤히 본다)
연희 (경환이 자기를 쏘아보자 몸둘 바를 모른다)
경환 (턱짓으로 소파를 가리키며) 앉아.
연희, 조심스럽게 앉으면 경환, 의자에서 일어나 소파로 와 앉는다.
경환, 한동안 말없이 파이프에 담배를 채워 넣으며 어떻게 하면 모욕을 줄 수
있을까를 궁리하다가 파이프에 불을 붙인다.
연희, 초조하다.
경환 강이사는 어떻게 만났어?
연희 ... 고등학교 때 재숙이 따라서 집에 갔다가 처음 봤습니다.
경환 깊은 관계야?
연희 (경환의 노골적이고 모욕적인 질문에 말문이 막힌다) ...
경환 남자는 대부분 여자가 유혹하면 넘어오게 돼 있어.
연희 (덜덜 떨린다) ...
경환 강이사 인생을 망치고 싶나?
연희 ...
경환 그렇게 하게 내가 놔둘 것 같아?
연희 ...
경환 원하는 게 뭐야?
연희 ... (이를 앙다물고 눈물이 뚝 떨어진다) 그런 거 없습니다.
경환 ... 안분지족이란 말 아나? 분수를 지키며 살라는 얘기야.
넘볼 걸 넘보고, 넘보면 안되는 건 깨끗이 포기하고. 무슨 얘
긴지 알겠지?
연희 ...
경환 배운 사람이니까 알아들었겠지. 나가봐.
연희,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경환 원하는 게 생각나면 언제든 얘기해.
연희, 그대로 돌아서서 나간다.
S #19 비상계단
연희, 너무너무 서러워 한참을 울다가 가까스로 울음을 멈추고 밖으로 나간다.
S #20 복도
연희, 비상구에서 나와 사무실로 가는데 엘리베이터에서 인하가 내린다.
인하, 연희를 보고 활짝 웃는다.
인하 안녕!
연희, 잠시 멈칫했다가 사무적으로 목례를 하고 지나간다.
인하, 의아한 얼굴로 가는 연희를 돌아보다가 픽 웃는다.
S #21 연희네 집 앞 (밤)
연희, 힘없이 집으로 걸어 올라오는데 2층 난간에 은옥이 나와 먼 데를 보고 있다.
연희 안녕하세요?
은옥 어, 이제 오니?
연희 오늘 가게 안 나가셨나 봐요?
은옥 ...
연희 추운데 왜 나와 계세요?
은옥 그냥 심란해서...
연희 ... 명하 오빠 아직 연락 없어요?
은옥 ... (대답없이 쓸쓸하게 웃는다)
연희 들어갈게요.
은옥 연희야.
연희 (다시 올려다본다)
은옥 우리집에서 나랑 소주 한 잔 할래?
S #22 명하네 집 (밤)
연희와 은옥, 마주 앉아 소주를 마신다.
은옥 너도 한 잔 해라?
연희 아니에요.
은옥 뭐, 어때? 이제 성인인데. 자.
연희, 술잔을 받는다.
은옥 인하한테 얘기 들었지?
연희 네.
은옥 사람 사는 게 들여다보면 다 그래.
겉으론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거 같아도,
크든 작든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연희 ...
은옥 난 널 보면 신기해 죽겠다.
저런 집구석에서 어떻게 그렇게 반듯하게 잘 자랐는지.
연희 제가 뭘 반듯해요, 반듯하긴?
은옥 하여튼 용해.
연희 ...
은옥 너도 인하 좋아하니?
연희 ...
은옥 결국엔 니가 상처받을까봐 걱정된다.
인하가 아무리 지 말로는 자신있다 그래도...
난 걔 아버지를 너무 잘 알아.
너도 그렇고 명하도 그렇고, 어른들 때문에 너희들 인생까지 꼬이는구나.
은옥, 연희를 보다가 술을 쫙 마신다.
연희, 괴롭다.
S #23 명하네 앞 2층 난간 (밤)
연희, 구석에 앉아 소리를 죽이며 울고 있는데
명하가 올라오다가 연희를 보고 다가온다.
연희, 발소리에 울음을 멈춘다.
명하 잘 있었냐?
연희 (얼른 눈물을 감춘다) 오랜만이야.
명하 어. 그래.
연희 도대체 어디 가 있다 오는 거야? 아줌마가 얼마나 걱정하셨는지 알아?
명하 울었냐?
연희 아무리 바빠도 집에 전화 한 통은 해야지.
명하 너, 술 마셨냐? 무슨 일 있어?
연희 오빠!
명하 (본다)
연희 ... 다시 오빠 자리로 돌아오면 안돼?
명하 내 자리? (픽 웃는다) 언제 그런 게 있기나 했냐?
연희 내가 알던 오빠가 그리워.
명하 난 예전에도 한명하고 지금도 한명하야.
연희 ... 오빠가 얼마나 넉넉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는지 알아?
명하 ...
연희 오빠가 오토바이 팔아서 등록금하라고 준 돈을 그땐 왜 거부 했을까?
명하 ...
연희 그건 자존심도 뭐도 아닌데... (갑자기 왈칵 울음이 터진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나 이제 어떡하지? 내가 어떡해
야 되지?
명하, 갑자기 울음을 쏟아내는 연희를 잠시 당황하여 보다가 옆으로 다가온다.
명하 너, 무슨 일이야?
연희, 다시 갑자기 울음을 멈추고 씩씩하게 눈물을 닦아낸다.
연희 어쨌든 오빠가 집에 오니까 좋다. 나, 내려갈게. 잘 자.
연희, 계단을 뛰듯이 내려가 버린다.
명하, 연희가 내려가고도 한참 동안 연희가 사라진 쪽을 보다가 집으로 간다.
S #24 명하네 집 (밤)
명하,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은옥, 연분홍치마를 흥얼거리며 부엌을 치우고 있
다가 명하를 슥 보고 다시 외면한다.
명하 다녀왔습니다.
은옥 손가락은 멀쩡하구나. 전화도 못 하길래 손가락이라도 부러진
줄 알았다.
명하 죄송해요. 좀 바빴어요.
은옥 깡패짓 하느라고?
명하 ... 연희한테 무슨 일 있어요?
은옥 차! 니가 언제 이 동네 일에 관심이나 있었냐?
은옥, 방으로 확 들어가 버린다.
명하, 그 자리에 굳은 듯 서 있는다.
S #25 지하 창고
명하를 친 행동대장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춘배, 몽둥이를 손에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다.
춘배 이야, 이 자식 정말 지독하네.
좋아. 너 어디까지 버티나 두고 보자.
(한 쪽에 있는 부하들에게) 야! 순대 사왔냐?
부하 예, 형님.
춘배, 몽둥이를 바닥에 팽개치고 부하들 쪽으로 오는데
입구에 명하가 나타난다.
춘배 어, 명하야!
부하들, 일제히 인사한다.
명하, 지하실에 진동하는 피비린내에 속이 뒤집히지만 꾹 참으며 바닥에 시체
처럼 뻗어있는 포로와 한 쪽에 둘러서서 낄낄거리며 순대를 먹고 있는 춘배일
행을 둘러본다.
명하, 참기 힘들만큼 비위가 상한다.
춘배 몸은 좀 어때? 괜찮냐? 순대 좀 먹을래?
(바닥에 쓰러진 포로의 머리카락을 잡아 얼굴을 들어 보여준다)
야, 봐봐. 이 자식 맞지?
명하, 피떡이 된 얼굴을 보며 심한 욕지기를 느낀다.
춘배 (머리를 내려놓고 다시 순대를 집어먹으며) 야, 명하야. 이 형만 믿어라.
내가 반드시 알아내서 복수해 줄 테니까.
명하 내보내.
춘배 뭐?
명하 (부하들에게 버럭) 말 안 들려? 얘, 내보내!
부하들, 순대를 먹다말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명하를 본다.
춘배 얌마. 너 왜그래? 얘만 족치면 다 알아낼 수 있어, 임마.
명하 지금 당장 병원 데려가. (버럭) 빨리!
부하들, 춘배와 명하의 눈치를 살피다가 얼른 포로를 들쳐업고 나간다.
춘배 (기분 나쁘고 불안하다) 회장님이 아시면 화내실 텐데?
명하, 춘배를 잠시 보다가 말 없이 돌아서 나간다.
춘배, 환장하겠다.
S #26 창고 앞 골목
명하, 피비린내를 씻어내려는 듯 찬바람을 들이마시다가 마구 토한다.
명하, 자신의 처지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오며 온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S #27 연희네 집
이모, 전화를 받고 있다.
이모 여보세요. ... 누구요? ... 근데요? ... 왜요? ... 차를 보냈다구요?
이모, 점점 의아한 얼굴로 듣고
이모부, 수화기에 귀를 바짝 대고 엿들으려 애쓴다.
S #28 인하네 집
이모와 이모부, 가정부의 안내를 받으며 거실로 들어선다.
두 사람, 상상을 초월하는 집 안 분위기에 이미 넋이 반쯤 나간 상태로
바짝 긴장하여 사방을 두리번거리는데 왕여사가 2층에서 우아하게 내려온다.
왕여사 오셨어요?
이모 아, 예.
이모부 안녕하십니까?
왕여사 앉으세요.
왕여사, 가운데 자리에 앉고
이모와 이모부, 엉거주춤 소파 끝에 엉덩이를 걸친다.
왕여사 아줌마, 여기 차! 이렇게 누추한 데까지 오시라 그래서 죄송해요.
이모부 아유, 별 말씀을. 좋은 차를 보내주셔서 편하게 왔습니다.
전 머리털 나고 그렇게 좋은 차는 처음 타 봅니다.
뒷자리가 막 왔다 갔다 하던데요?
이모, 이모부를 확 꼬집는다.
이모부 윽!
이모 우리를 보자 그러신 이유가 뭐죠?
왕여사 두 분은 인생경험이 있으시니까 저하고 말이 좀 통할 것 같
아서요.
우리 인하가 이제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두 분 조카가 쉽게
놔주질 않는 모양이에요.
이모 ...
왕여사 결혼이라는 게 당사자들끼리만 좋아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이모 서로의 사랑이 제일 중요한 거 아닌가요?
왕여사 물론 사랑도 중요하죠. 하지만 법도 있는 집안에서는 결혼이
란 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랍니다. 결국 가문과 가문
이 만나는 거거든요.
두 사람이 자라온 환경, 정치 경제적 배경, 혼맥으로 얽혔을
때의 시너지효과까지 면밀하게 검토해서 비로소 결혼이라는
것이 이루어지는 거랍니다.
이모 ...
왕여사 제 말씀을 백퍼센트 이해하시기는 힘드실 거예요.
하지만 쉽게 말해서 유유상종이란 말 아시죠?
더 쉽게 말하면 끼리끼리. 자라온 환경이 백팔십도 다른 사람
들이 만나서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이모 요점이 뭐죠?
왕여사, 봉투를 꺼내 놓는다.
이모, 왕여사를 빤히 보는데 이모부, 슬그머니 봉투입구를 열어보다가 수표가
들어있자 눈이 휘둥그레진다.
왕여사 너무 고깝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냥 정신적인 피해보상이랄까, 아니면 위로금이랄까, 뭐 그
런 거라고 생각하세요.
이모, 굴욕감과 현실적인 필요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모부, 궁금증을 못 이기고 봉투를 집어 수표의 액면을 확인하려는데
이모, 봉투를 확 빼앗아 다시 테이블에 놓는다.
이모 말씀 다 하셨나요?
왕여사 ...
이모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는데 저로선 개입하고 싶지 않은 문제
네요.
두 사람은 성인이고 자기들의 환경적인 차이든지, 경제적인
차이든지는 두 사람이 알아서 해결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른들이 나서서 감놔라 팥놔라 하는 게 오히려 더 꼴불견
아닌가요?
제가 어른으로서 조언은 해 줄 수 있지만 결정은 전적으로
연희 몫이예요.
그런 일들이 꼴 사납고 못 미더우면 댁의 아드님이나 잘 간
수하세요.
갑시다, 여보.
이모,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이모부, 테이블에 놓인 봉투를 못내 아쉬운 얼굴로 보며 선뜻 따라나가지 못하
는데 기가 막힌 얼굴로 나가는 이모를 보고 있던 왕여사, 얼른 봉투를 집어
이모부의 주머니에 넣는다.
이모 (소리) 뭐해? 빨리 안 오고!
이모부 어, 가.
이모부, 잠깐 망설이다가 봉투를 쿡 눌러 넣고 왕여사에게 인사하고 현관으로 나간다.
S #29 인하 사무실
인하, 일을 하고 있는데 재숙이 불쑥 들어온다.
재숙 퇴근 안 해? 나 오늘 차 안 갖고 왔거든. 같이 들어가자.
인하 나 바빠.
재숙 요새 뭐가 그렇게 바빠?
인하 그런 게 있어. 방해하지 말고 가.
재숙 알았어. (돌아서다가) 참, 연희가 이제 오빠 안 만나줄 거야.
인하 뭐?
재숙 순진한 우리 오빠 어떡하냐?
인하 무슨 얘기야, 너?
재숙 연희가 목적을 달성했으니까 이제 오빠가 더 이상 필요 없어진 거지.
인하 시끄러. 가.
재숙 엄마가 한 몫 챙겨 줬대. 꽤 많이 줬대나 봐.
재숙, 문을 쾅 닫고 나간다.
인하, 기가 막혀 웃다가 왕여사가 또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 불안해진다.
인하 (수화기를 들고) 이연희씨, 자리에 있어요? ... 언제요? ... 예,
알았습니다.
인하, 전화 끊고 잠시 생각하다가 자료들을 정리한다.
S #30 술집
수빈, 술을 마시며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수빈 여보세요. 한명하씨 나오셨어요? ... 도대체 언제쯤 나오나요?
... 나오시면 정수빈한테서 전화왔었다고 꼭 좀 전해주세요.
정수빈이요.
수빈, 전화를 끊고 다시 술을 마시는데 연희가 들어와 옆에 앉는다.
수빈 야, 너 오랜만이다?
연희 응. 그러네.
수빈 왜 보자 그랬어?
연희 ..어,...저기... 우리 이사해.
수빈 그래? 잘됐다. 이번엔 좀 좋은 동네로 가는 거니?
연희 어? 아직 몰라.
수빈 언제 가는데?
연희 곧 가야돼. 지금 철거 시작했어....그래서..말인데...
수빈 그럼 명하 오빠네도 이사가겠네?
연희 그래야지.
수빈 니네 집하고 명하 오빠네하고 우리 동네로 이사 왔으면 좋겠다.
연희 (기가 막혀 돈 얘기가 안나온다).....
수빈 근데 이연희, 넌 나쁜 기집애야. 니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연희 ...
수빈 그러고도 니가 내 친구야?
연희 ...
수빈 너, 왜 나한테 얘기 안 했어? 너, 알고 있었지?
한명하가 강인하 동생이라는 거.
연희 ... 나도 얼마 전에 알았어. (술을 확 마신다)
수빈 하, 웃기지 않냐?
연희 ... 너, 어떡할라 그래?
수빈 뭘?
연희 아무렇지도 않니? 둘이 형제라는데?
수빈 그게 그렇게 중요해?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거 보다 더?
연희 ....부자라 그런가?
수빈 뭐가?
연희 거침없이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게. 너나, 강인하씨나.
수빈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그게 부자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
자기 감정에 솔직하냐, 솔직하지 않냐의 차이 아냐?
연희 그렇게 솔직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수빈 너, 왜 그래? 나한테 뭐 기분 나쁜 일 있니?
연희 아니, 그냥 니가 부러워서 그래.
수빈 별 게 다 부럽다.
연희 (술을 마신다)
수빈 (갑자기 신경질을 낸다) 도대체 어디 가 있는 거야?
연희 집에 연락해 봤어?
수빈 집?
연희 얼마 전에 집에 왔더라.
수빈 (기분 나쁘다)....뭐? 하, 그런데 나한테 연락을 안한거야?
내가 그렇게 메시지를 남겨 놨는데?
연희 연락하기 싫어서 안했겠냐?
수빈 그럼 뭐야? 내가 지 형하고 약혼해서? 바보같은 자식!
연희 넌 왜 니 생각만 해? 너만 솔직하면 다 돼?
표현할 수 없는 감정도 있는 거야. 상황이라는 게 있잖아. 현
실이 있고.
너만 괴로운 거 아냐. 상대방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지 생각
안 해 봤어?
연희, 술을 좌악 들이키고 술잔을 거칠게 내려 놓는다.
수빈, 그런 연희를 빤히 본다.
연희 미안하다. 이런 얘기하려고 너 만나자 그런 건 아닌데. 나 먼저 갈게.
연희, 일어나 나가버린다.
수빈, 괴롭다.
S #31 연희네 집 앞 (밤)
연희, 복잡한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오는데 인하가 앞을 막는다.
인하 어디 갔다 오냐?
연희 (놀란다)
인하 어디 갔다 오냐구?
연희 수빈이 만났어요.
인하 수빈이?
연희 ... 왜요?
인하 아니, 그냥. 뭐 다른 일은 없지?
연희 다른 무슨 일이요?
인하 ... 그냥 물어 보는 거야.
연희 여긴 웬일이에요?
인하 웬일은? 너 보러왔지.
연희 안그래도 할 얘기가 있었는데 잘 됐네요.
인하 무슨 얘기? 어디 들어가서 얘기할까?
연희 됐어요. 여기서 그냥 하죠. ... 회사는 시나리오 끝나는 대로 정리할께요.
인하 뭐?
연희 길어야 한두 달 안에 끝날 거예요.
인하 무슨 얘기야?
연희 그 동안 고마웠어요. 잠시나마 제 처지를 잊고 행복했던 시간이었어요.
물론 갈등도 많았지만.
인하 왜 이래?
연희 이렇게 일방적으로 얘기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그 동안은 이사님이 늘 일방적으로 행동했으니까 이
해해 주시기 바래요.
인하 연희야.
연희 친구의 약혼자이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우린 너무 달라요. 사람도 다르고 ... 환경도 다르고.
인하 (기가 막혀 하다가) 재숙이 엄마한테 또 무슨 얘기 들었나 본
데, 우리 이러지 말자.
연희 누가 무슨 얘기를 해서가 아냐. 난 이제 강인하, 니가 싫어. 됐어?
연희, 탁 돌아서 가는데
인하, 가는 연희를 돌려세운다.
인하 (기가 막혀, 비웃으며) 정말인가 보네? 얼마 받았어?
연희,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을 꽉 참고 인하를 빤히 보다가
인하의 귀뺨을 주먹으로 갈기고 돌아서서 집으로 간다.
인하, 가는 연희를 보다가 돌아선다.
EN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