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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멋대로 해라] 05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06.05.04|조회수403 목록 댓글 1

[네 멋대로 해라] 05











1. # 경의 집 앞 (밤)


낙관의 주먹에 바닥으로 넘어지는 복수. 복수를 향해 몸을 숙이는 경.

복수가 고개를 들면 입가에 피가 맺혔다. 복수를 바라보는 경이 복수의 터진 입가를 본다.

얼빠진 표정으로 복수를 바라보던 경. 이내, 차분한 표정으로 복수의 입가를 손으로 닦아준다.

둘의 모습을 엄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선 낙관.


경 : ...(복수의 입가를 닦으며 차갑게) 사과하실래요?

복수 : ...싫은데...

경 : ...(표정없이 복수를 바라본다)

복수 : ...(마지못해 일어선다. 낙관에게 다가간다) ...선생님. ...(인상을 긁는다.) 사과를 하라네요.

낙관 : 그래서?

복수 : 사과할라구요.

낙관 : (기막히다)... 한 대 더 터지기 전에, ...가. (경을 노려본다.) 곧장 니 방으로 기어 들어가. 니 엄마, 아직까지 아파서 골골해.

         니 술 냄새 맡았다간 기절할거다, 숨막혀서. 멀쩡한 나두, 니 냄새에 구역질이 다 나는데... (대문안으로 들어서려는데)

복수 : 에이 증말. 선생님 그럼 못 써요. 자기 자식한테 구역질이 뭐...

낙관 : 이 새끼... (획 돌아서서 복수에게 다시 주먹을 드는데)

복수 : (낙관의 허리를 팔로 감으며 품에 안긴다.)

낙관 : (팔을 올린채 놀라서 품에 안긴 복수를 바라본다.)

경 : (눈이 똥그래진다)

복수 : (낙관의 품에 안긴 채, 말이 없다. 그리곤 이내 진지하게) ...따님두 아파요. ...오늘, 아주 많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약 대신 술 마셨어요. ...술이 아니라... 약을 먹은 겁니다. 좀... 사랑해주세요, 따님.

낙관 : (복수의 포옹을 뿌리치지 못한 채, 흔들리는 눈빛으로 경을 바라본다.)

경 : (입을 벌리고 복수와 낙관을 바라보다 고개를 숙인다.)

복수 : (올려다 보며) 아버님? 이쁘잖아요, 따님.

낙관 : (정신이 든 듯 복수를 품에서 밀어낸다) 얘 이거 뭐야? ...(경을 보며) ...지가 뭘 했다구 아파?

         (들어가며 복수를 본다) 미친놈. 내가 왜 니 아버지야? 생긴 것두 꼭 그지 같은게... (들어간다)


경, 들어가는 낙관의 모습을 바라본다. 그리곤 복수를 본다.

이내 바닥에 흩어진 터지고 뒹구는 포도알을 바라본다. 쪼그려 앉아 무심히 뒹구는 파란 포도알을 봉투에 주워 담기 시작한다.

복수도 덩달아 포도알을 줍는다. 말없이 포도알만 줍는 둘.

차를 몰고 경의 집 근처를 오르던 동진. 멀찍이서 차를 세운다.

웅크려 앉아 포도알을 줍는 경과 복수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경 : (그대로 쪼그려 앉은 채, 바닥만 본다.) 아저씨.

복수 : ...네.

경 : (계속 바닥만 바라보며 낮은 소리로) 왜 그러세요?

복수 : ...

경 : ...자꾸 쫓아다니면, (복수를 본다.) 아저씨 애인한테 일러 바쳐요?

복수 : ...

경 : (일어선다)

복수 : (일어선다)

경 : ...가세요.

복수 : (인사를 꾸벅하곤 돌아서는데)

경 : (대문을 열며) ...많이 아팠죠? ...얼굴.

복수 : (등돌린 채) ...네.

경 : (여전히 눈길을 피한채) 누가 맞아 달래요?

복수 : ...안녕히 계세요. (걸어가는데)

경 : (대뜸) 고마워요.

복수 : (돌아선다.)

경 : (복수 쪽으로 몸을 돌린다.) 오늘... 친구 돼 줘서... 그리고... 아빠랑 싸워줘서...


경, 돌아서서 대문 안으로 들어간다.

복수, 물끄러미 서서, 대문 안으로 들어가는 경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본다.

한참 넋을 빼고 서 있는 복수의 등뒤로 크락션. 돌아보면 동진의 오픈카가 서 있다.

복수, 하이빔에 눈이 부셔 손으로 눈을 가린다.

동진, 승용차 옆구리를 복수 옆에 바짝 붙여서 복수를 뚫어지듯 바라본다.

복수, 의아한 눈빛으로 동진을 본다.


동진 : ...우리 전 경 알아요?

복수 : ...전 경? (문득 눈을 돌려 문패를 바라본다. 문패에 전낙관이 새겨져 있다.)

동진 : ...(혼잣말) 주변이 다 남자냐, 전 경은?


그리곤 차를 몰고 사라진다.


복수 : (암기하듯) 전 경. ...이름이 외자네. 경... (대문을 보며) 경이씨.


그렇게 우두커니 대문 안을 바라본다.



2. # 낙관의 방 (밤)


인옥은 눈을 감고 있다.

물끄러미 인옥을 바라보던 서 있는 낙관. 쟈켓을 의자에 걸쳐두고 욕실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린다.

살짜기 눈을 뜨는 인옥. 한동안 물소리만 듣는다.


인옥 : (시니컬하게) 욕실문, 열어요. 왜 안하던 짓을 해요, 신경쓰이게?

낙관 : (E) 깼어? ...갈비 먹은게 얹혔나? 배가 아파 그래.

인옥 : 그런다구, 문닫고 일 봤어요, 언제?



3. # 안방 욕실 (밤)


낙관이 변기뚜껑 위에 넋을 놓고 앉아있다. 세면대 수돗물을 틀어 놓은 채, 멍하니 앉아서 거울을 본다.

의자삼아 앉은 변기뚜껑이 낙관의 무게에 삐그덕댄다. 일어서서 거울 앞에 선다.


낙관 : ...(한숨) ...나, 너무 뚱뚱한가? ...살 좀 뺄까? 당신이 그러라면... 그럴게. 응?



4. # 안방 (밤)


인옥 : (휑한 표정으로) ...당신 살에, 난 관심 없네요. (눈을 감는다.)

낙관 : (E) 경이...

인옥 : (살며시 눈을 뜬다)...

낙관 : (E) 내 딸 맞지?

인옥 : (살며시 상체를 일으킨다.) ...네?



5. # 안방 욕실(밤)


낙관 : 내 딸인데, ...왜 그렇게 미울까? 강인 안그런데...


낙관, 거울을 바라보다 고개를 숙인다. 그리곤 이내 흐르는 물에 얼굴을 씻는다.



6. # 안방 (밤)


인옥의 눈빛이 흔들린다.



7. # 경의 방 (밤)


불꺼진 창가 앞에 선 경. 대문 앞에서 한참을 서 있던 복수가 등 돌려 내려가는 뒷모습을 바라본다.

비닐 봉투에 담긴 포도알을 무심한 표정으로 입 안에 넣는다. 입에서 뱉어낸 포도씨로 복수가 내려가는 발걸음의 길목을 그리듯,

창문을 도화지 삼아 포도씨로 점점이 창문에 찍어 둔다. 포도씨는 마치, 복수의 발자국 같다.

다정한 경의 미소. F.O.



8. # 거리 지하철 역사 입구 (아침)


입구로 허겁지겁 달려오는 복수. 바삐 지하도 계단으로 내려간다.



9. # 지하계단 하단끝 (아침)


복수, 저만치 매표소 앞에 줄 선 꼬붕을 본다. 꼬붕은 챙 달린 스포츠 모자를 눌러썼다.

복수, 꼬붕을 보곤 미소를 짓는데, 두리번대던 꼬붕이 앞에 선 청년의 뒷 주머니에서 지갑을 슬쩍한다.

복수, 눈살을 찌푸리며 꼬붕을 향해 걸어가는데, 복수를 스치고 잰걸음으로 꼬붕을 향해 걸어가는 점퍼차림의 남자.

그의 뒷 주머니에서 살짜기 반짝이는 금속성 물체를 본다. 수갑을 본다. 형사다.

꼬붕은 상황도 모르고 훔친 지갑을 재빨리 자신의 뒷주머니에 꽂으며 돌아선다.

꼬붕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는 형사. 형사의 뒤를 바짝 쫓아가는 복수.

꼬붕, 그제사 복수를 보고 미소짓는데, 복수가 양쪽 집게 손가락으로 X자를 긋는다.

꼬붕, 그제사 형사에게 눈길을 준다. 정면으로 얼굴을 보는 형사와 꼬붕.

꼬붕, 부리나케 매표구 안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형사도 달린다.

복수도 형사의 뒤를 쫓는다.



10. # 지하철 플랫폼 (아침)


죽기살기로 뛰어가는 꼬붕, 형사, 복수.

플랫폼을 가로질러 꼬붕은 다시 계단을 오른다.

뛰어가는 형사의 뒤를 쫓던 복수가 형사의 뒷덜미를 잡아채 당기곤 계속 뛰어간다.

형사,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진다.

복수의 뛰어가는 뒷모습이 형사의 눈에 들어온다. 형사, 다시 벌떡 일어서서 복수의 뒤를 쫓는다.



11. # 지하철 매표소 (아침)


뛰어와 주위를 두리번 대는 형사. 둘이 보이지 않는다.

화장실 쪽으로 눈길을 돌리는 형사.

화장실 입구로 가면, 갑자기 형사를 밀치며 튀어나오는 남자. 스포츠 모자와 꼬붕의 티셔츠가 계단을 향해 무작정 뛰어간다.

모자를 쫓는 형사.



12. # 지하도 입구 (아침)


입구로 뛰어나오는 형사가 저만치 뛰어가는 모자를 따라간다.

모자가 갑자기 선다. 형사, 숨을 헐떡이며 모자에게 다가간다.

돌아서는 모자는 복수다. 의아한 눈으로 형사를 바라보는 복수. 형사도 의아한 눈으로 복수를 본다.


복수 : 아저씨. ...왜 자꾸 쫓아와요?

형사 : (의심의 눈으로 복수를 본다.) 왜 뛰어가?

복수 : 출근시간 늦어서요.

형사 : ...그 모자 어디서 났어?

복수 : (어이없는 표정) 이게 그렇게 갖구 싶었어요? 에유. ...일루와요. (형사의 손을 잡아 끌며 바로 옆 모자 노점상 앞으로 간다.

         같은 모자를 골라 형사에게 씌여 준다. 참 흔한 모자다. 그리곤 노점상에게) 얼마예요?

노점상 : 5천원이요.

복수 : (형사에게) 5천원이래요. (그리곤 형사를 남겨두고 간다.) 근데, 안 어울린다, 아저씨. ...안 샀으면 해.


유유히 걸어가는 복수.



13. # 지하철 화장실 (아침)


화장실 한 칸에서 꼬붕의 윗통을 벗은채 복수의 옷을 손에 들고 있다. 놀랐는지, 땀까지 비질비질 흘리고 섰다.



14. # 보라매 공원 (아침)


공원에서 옷을 바꿔입는 복수와 꼬붕.

복수는 입을 굳게 다물고 꼬붕은 복수의 눈치를 본다.


꼬붕 : 형...

복수 : (아무말도 없이 걸어간다.)

꼬붕 : (화를 낸다.) 형이 약속시간에 늦게 나와서 그래. ...지루하구 그러니까, 내가 그런 거잖어.

복수 : (그냥 걷는다.)

꼬붕 : (자신있게) 아, 그 지갑이 그 아저씨 뒷 주머니에서 떨어질라 그랬어어.

          ...내가 안 훔쳐두, 그거 떨어져서 잃어버렸을거야, 그 아저씨.

복수 : ...(걷기만 한다.)

꼬붕 : ...(복수를 따라가며 기가 죽어서) 형. (대답없다.) 미안해, 형.

복수 : (무표정) 내가 미안하지.

꼬붕 : 응?

복수 : (무표정) 내가 가르쳤잖아, 너. (바삐 걸어간다.)

꼬붕 : (멈춰서서 차갑게 걸어가는 복수의 뒷모습을 본다.) 알았어어... 신경쓸게, 사는 거...



15. # 지하 밴드 연습실 현관 앞 (낮)


현관 앞에 놓여진 꼬꼬닭 치킨을 바라보고 선 미래. 인상을 긁고 한참을 노려보다가 치킨을 집어든다.

닭 봉투를 들고 올라가려던 미래와 지하로 내려오던 경이 마주친다.

미래, 당황한 표정으로 경을 본다.

경, 미래를 보곤 인사를 꾸벅 한다. 무슨 일이냐는 듯, 눈을 깜박이며 미래를 바라보는 경.

미래는 이유없이 눈살을 찌푸리며 경을 바라본다.


미래 : ...(불쑥 닭 봉투를 내민다) 먹어.

경 : ...

미래 : (닭 봉투를 경의 손에 쥐어준다.) 고맙지?

경 : ...네. 근데.. 왜...


이 때, 지하로 내려오던 별리. 별리가 미래를 본다.


별리 : 야. ...이 지하 계단 밑으로 내려오지마.

미래 : 싫다면?

별리 : 이거 우리 엄마 건물인거 알지? 너 또 여기 왔다 걸리면, 니네 방 뺄거다.

미래 : 빼라. 방빼고 나면, 맨날 이 계단에서만 왔다갔다 할거다.

별리 : 왜?

미래 : 괜히...

경 : (별리에게 치킨을 보여주며) 언니. 이거, 주셨어. 우리 먹으래.

별리 : (치킨을 본다. 의아한 눈빛으로 미래를 본다.) ...너, 그 전에두 여기 내려 왔지?

미래 : 아니.

별리 : ...이거 여기다 두고 간 적 없어?

미래 : 없다.

별리 : (미래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본다.)

미래 : ...(인상을 긁으며 별리에게) 비켜.

별리 : (미래를 두 팔로 막는다.) 이거 니가 갖구 온거 아니지?

미래 : 뭐?

별리 : 하, 걸렸어, 요거. ...너, 여기 있던 거 지난 번에도 훔쳐갔지? 지금두 훔쳐갈라 그러다 걸렸지?

미래 : ...귀신같은 년. (별리를 밀치고 뛰어 올라간다.)

별리 : 도둑 부부구만, 저것들.

미래 : (멈춰선다. 그리곤 경을 내려본다.) 그거... 고 복수가 니 돈 훔친게 미안해서 주는 거니까, 잘 쳐먹어. (올라간다.)

경 : 고 복수?

별리 : (경의 치킨을 가로채 현관으로 들어서며 씽긋 웃는다.) 괜히 쫄았네. 닭다리 두 개나 훔쳐 먹었는데... 쫌 전에두... 히.

         야, 근데, 닭 말고 좀 딴 것두 갖구 오라 그래라. 질린다, 야. (들어간다.)

경 : (이름을 외듯) 고 복수.



16. # 액션스쿨 연습장 (낮) (핸드핼딩)


액션스쿨 플로어 한켠엔 예닐곱의 스턴트맨들이 영화 액션 콘티대로 주먹싸움을 하는 장면을 연습중이다.

액션이 맞지 않을 때마다 반복한다.

한 켠에선 한 여자 스턴트맨이 요가를 하고 있다.

한 켠에서 두 서너명이 플로어를 가로지르는 와이어를 매고 있다.

한 켠에선 두 서너명이 창검으로 무사연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한 곳에 카메라가 이르면 복수와 꼬붕이 소리를 지르며 서로 돌진해 부딪친다.

복수와 꼬붕은 플라스틱 칼로 장난삼아 칼싸움을 하는 중이다. 애들이 따로 없다.

마루바닥을 쿵쾅대며 뛰어다니다가 계단까지 오르며 난리굿이다.

2층 난간에 와이어를 묶고 있던 스턴트맨이 둘을 바라본다.


스턴트맨 : 꼬붕씨.

꼬붕 : 네?

스턴트맨 : 장난 그만 하고, 창고에서 와이어 좀 갖구 와요. 하네스 두개하고...

꼬붕 : 네. (창고로 달려간다)

스턴트맨 : (복수에게) 복수씬 당김줄 좀 잡아 봐요.

복수 : 네.


복수, 당김줄이 어떤 건지 몰라서 망설이다가 와이어를 묶고있는 스턴트맨 옆으로 올라온다.

스턴트맨은 2층 중앙을 가로지르는 와이어를 매느라 복수를 보지 못한다.

이 때, 쿵쾅대며 장비를 끌고 나오는 꼬붕. 종류별로 하나씩을 다 끌고 나왔다.


스턴트맨 : ...와이어 갖구 오라니까? 하네스하고...

꼬붕 : 이 중에 없나요?

스턴트맨 : 없잖아요.

꼬붕 : 네. (다시 창고로 간다)

스턴트맨 : (고개를 갸우뚱 복수에게) 스턴트 해봤다 그러지 않았나? (그러다가 놀란다) 뭐하는 거예요?

복수 : 줄 잡으려구요. (그리곤 스턴트맨이 매고 있는 와이어를 잡는다.)

스턴트맨 : (손가락으로 도르래에 늘어져 있는 당김줄을 가리키며) 아니 저기, 저 당김줄....어?

               (묶고있던 와이어가 복수가 기울인 몸무게에 받쳐서 풀어져 내린다.)


꼬붕이 다시 하나 가득 장비를 안고 온다.


꼬붕 : 이 중엔 있어요?


이 때, 복수의 손에 쥐어진 와이어가 풀어지며 공중으로 떨어져 내리고,

그 와이어 끝을 잡고 있던 복수는 스파이더맨처럼 줄을 손으로 잡은 채 공중을 난다.

놀라는 복수, 꼬붕을 향해 날아가 돌진하면 꼬붕은 날렵하게 몸을 피하고

현관으로 들어오던 양찬석을 향해 복수가 날아와 부딪친다. 꽝.

복수와 양찬석을 향해 뛰어가는 꼬붕과 스턴맨들.

양찬석과 복수는 눈을 뜬 채 기절했다. 사람들이 흔들어도 깨어나질 않는다.

그러다 이내 눈을 깜박이는 둘. 누운채 서로 마주본다.

양 찬석의 눈에서 눈물이 한 줄기 흐른다. 양 찬석의 눈물을 닦아주는 복수.

복수의 품에 안기며 울음을 터뜨리는 양 찬석.

벙쩌서 둘을 바라보는 스턴트맨들.



17. # 지하 연습실 (낮)


별리의 노랫소리. 밴드 연주없이 별리가 작곡하는 멜로디 라인이다.

눈을 감고 노래한다. 진지하고, 분위기난다.

(반주없이 노랫소리만으로 별리의 이미지가 달라 보였으면 한다. 그에 맞는 곡을 선곡해 주길)


정국 : ...(느낌이 좋은 듯 경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경 : 키보든 빼고 갈까, 별리 언니? 그게 낫겠는데?

별리 : (헤롱댄다) 니... 맘...대로 해.

경 : 곡두 잘 만드네. 노래두 잘하구. 이쁘구...

별리 : 맞어.

기홍 : 제 정신이 아니니 문제지. ...어차피 무대 올리면 다 망칠 거.

별리 : (맥주캔을 들고 흐느적대며) 맞어, 헤헤.

정국 : 그나 저나 공연하잔 말이 없다, 요즘.

별리 : 나 때문이지, 뭐. 헤헤.


이 때, 경의 핸드폰이 울린다.



18. # 동진의 차안 (낮)


동진 : (핸드폰을 들고 있다. 우울하게) ...지금 메일 좀 열어봐. 급하다, 전 경.



19. # 지하 연습실 (낮)


핸드폰을 끊는 경.


경 : (다급히 지갑을 챙겨 나간다) 30분만 쉬자.

기홍 : 어디 가?

경 : (뛰어나간다)

별리 : (정국에게) 쟤 어디 가게?

정국 : 몰라.

별리 : 남자 만나러...

기홍 : 연애해, 경이 누나?

별리 : 보면 모르냐? ...불쾌해.

기홍 : 왜에?

별리 : 우리 이쁜이가 남자 앞에서 헤롱대는게 좋으냐, 넌? 격 떨어지게? (기홍에게) 야, 젖가락 좀 갖구 와.

기홍 : 왜?

별리 : 필 꽂혔어. 뽕짝이나 불러야지.

기홍 : (정국에게 속삭인다.) 난 저 여자 싫어, 형.

별리 : 어떤 놈이 감히 날 싫어해? (기홍에게) 얘야. 맥주나 더 사와라. 아이씨, 술 깰라 그러네.


이 때, 지하 현관문이 열린다. 강이다.

밴드들 강을 바라본다.


강 : ...혹시 여기 전 경이라고 없나?

별리 :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를 바락 지른다.) 아, 왜 이렇게 남자관계가 복잡해, 전 경은...


그리곤 기타를 집어들더니 신경질적으로 연주를 해댄다.

밴드와 강은 어이없이 별리의 미친짓을 본다.



20. # 치어 연습실 (낮)


치어 연습 중인 미래. 계속 인상을 긁고 있다. 짱이 멈춘다.


치어짱 : (인상을 쓴다) 송 미래, 왜 이래? 우울하게?

미래 : 아우. 배 아퍼. 갔다올게.


미래, 두루마리 휴지를 들고 바삐 내려간다.



21. # PC방 (낮)


동진의 메일을 연다. <경. 나 좀 봐.>

파일을 연다. 파일을 열면 동영상이다. 동진의 서재인 듯.

동진은 카메라를 향해 옷을 훌렁훌렁 벗어 던진다. 상체가 알몸이 된다.

그리곤 카메라 앞에 바짝 팔뚝을 들이대며 알통을 보여준다. 알통엔 문신처럼 글씨가 씌여있다. <알통>


경 : (놀라서 손으로 입을 가린다.) 왜 이러냐, 이 사람?


핸드폰. 경이 받는다.


동진 : (E) 봤어, 내 알통?

경 : 네.

동진 : (E) (전화를 끊는다.)



22. # 동진의 차안 (낮)


PDA로 메시지를 보내는 동진.



23. # PC방 (낮)


다시 도착한 메일. 지난 날엔 내가 널 우울하게 했니? 이젠 웃어줘, 전 경.

경, 의자에 몸을 기대며 살며시 웃는다. 이번엔 핸드폰 메시지. <나한테 뿅갔지? 그지?>

경, 배실배실 웃는다. 그리곤 다시 한번 동진의 알몸 파일을 연다.


경 : (빙그레 웃으며) 저게 무슨 알통이야. 살덩이지.

PC방 주인 : (어느새 경 뒤에 서서) 뭘 그렇게 중얼대요?


경, 와락 컴퓨터 화면을 안으며 이마를 동진의 팔뚝에 쳐박고 꼼짝하지 않는다. 마치 동진의 팔에 얼굴이 파묻힌 형상이다.

주인이 보려해도 틈 하나가 없다. 완벽한 커버 플레이다.



24. # 지하 연습실 (낮)


어느새 소파에 머리를 쳐박은 채 잠이 든 별리.

맹한 표정으로 포터블 시디에서 나오는 로고송을 듣고 있는 강.

섹시 로고송. 정국과 기홍이 강의 눈치를 살핀다. 로고송이 끝났다.


강 : 끝인가?

정국 : 네.

강 : 이게 이백만원 짜린가?

기홍 : 맘에 안 드시세요? 그럼 다시 만들어 드릴께요.

강 : ...자존심두 없어? 돈 이백에, 만든 걸 그냥 버리는 거야, 니들은?

정국 : ...(입이 나온다) 이거야 돈 벌자고, 날림으로 만든거니까 그렇죠?

강 : 뭐?

기홍 : (정국을 툭툭 친다) 형. (강에게) 원래, 곡하나 만들자면, 만들었다 버리고 그래요. 원래가 그래요.

정국 : 싫으면 말아요. 우리 돈 안 벌어도 돼요.

별리 : (자고 있는 듯 했지만) 맞어.

기홍 : (별리의 머리를 쿠션으로 누른다.) 잠꼬댈 하구 그래?

강 : 쟨 낮술 먹은거야? 쟤두 밴드야?

기홍 : 아니요. 건물 주인 딸인데, 놀러 왔어요.

별리 : (쿠션만 뿌리친 채 계속 얼굴은 소파에 파묻었다) 밴드네요, 어쩔래요?

강 : 한심하다. (일어선다)

기홍 : 저. 경이 누나 곧 올텐데...

강 : 테잎만 받아두 되는 걸, 내가 일부러 어떤가 와 봤어. 에유, 젊은 것들이 창고에 쳐박혀서... 얼굴은 허옇게 떠서... 어이구.

정국 : 무슨 중고차 팔면서 로고송이야. 광고비 날리지 말고, 고장난 차, 사기쳐서 팔지나 마요.

강 : (빙그레 웃는다) 아쭈. 야, 나 유단자야.

기홍 : (강에게) 형님. 곧 경이 누나 오는데...

정국 : 됐다 그래. 날 샜어.

별리 : 맞어.

경 : (들어온다. 강을 보며) 오빠. 잘 찾아왔네.

강 : (정국을 야리며 탁자 위에 돈을 내 놓는다) 저 자식 맘에 든다.

경 : 응?

강 : 로고송도 좋다. 야시시한게... (정국을 보며) 창고에 갇혀서두, 깡은 있어야지. 야, 너 우리 경이랑 결혼해라.

경 : 응?

강 : 간다.


강이 나가고 경이 따른다.


별리 : (갑자기 뒤집어져 있던 고개를 앞으로 획 돌리며) 야, 쟤가 더 터프하냐, 내가 더 터프하냐?

기홍 : (돈을 들어 올리며 숨이 멎는다) 돈이다.

정국 : (갑자기 촐싹댄다) 나두 줘 봐, 나두.

별리 : (기홍을 발가락으로 찌르며) 내가 터프해, 쟤가 터프해, 응?



25. # 1층과 2층 중간 화장실 앞 (낮)


화장실에서 나오는 미래.


미래 : (땀을 비질비질 흘린다. 배를 퉁퉁 주먹으로 때린다) 아우.

경 : (E) 모하러 여기까지 왔어? 집에서 들어보면 되지.


미래, 빼꼼히 소리나는 곳으로 고개를 늘어 뜨린다. 1층 현관에 경의 옆모습과 강의 뒷모습이 보인다.

인상을 쓰며 현관 쪽으로 한 계단 내려서는 미래.


강 : (몸을 돌리며) 너 뭐하고 사나 볼라구. (눈살) 야, 연습실 좀 치우고 살아라. 난지도냐? (순간 미래를 본다.)


반층 계단 위에서 강을 내려다 보는 미래와 현관에서 미래를 올려다 보는 강. 서로 놀란다.


강 : ...

미래 : ...

강 : (빙그레 웃는다) 여기 사셔?

미래 : 여기 산다. (배를 잡은 채 몸을 돌린다) 재수 없어.

강 : 야.


미래, 일순간 고통에 겨운 얼굴빛이 되더니 계단 아래로 몸이 기우뚱 넘어져 내린다.

강, 재빨리 미래를 받아 안는다.


미래 : (강의 손을 뿌리친다. 목소리에 고통과 비호감이 섞여 있다.) 비켜. 아...

경 : (미래를 받쳐주며) 오빠, 차.


강, 부리나케 현관 밖으로 나간다.


경 : 땀 봐. (자신의 블라우스 밑단으로 미래의 얼굴을 닦아준다)

미래 : (신음에 가까운 소리로) 화장 지워져. 문지르지 마.

경 : 네. (미래의 땀방울 찍어준다.)


현관 앞에 급히 세워지는 강의 승용차. 강이 부리나케 달려와 미래를 번쩍 안아 올리며 승용차로 간다.

미래의 핸드폰이 떨어진다. 미래의 핸드폰을 주워 들며 경도 급히 따른다.



26. # 액션스쿨 사무실 (낮)


양 찬석과 복수의 머리에 빨간약을 발라주는 꼬붕.


양찬석 : (복수와 꼬붕을 가만히 바라본다) 어디서 배웠는지, 스턴트 기본이 안 돼 있네. 두 사람...

            (꼬붕에게) 저기 있는 저 초록색 책 좀 갖구 와봐요.

꼬붕 : (FILM ART 란 영문책을 가지고 온다.)

양찬석 : (책을 복수에게 건낸다) 저 안에두 하나 있으니까 꼬붕씨도 하나 갖구. (그리곤 일어서서 나간다)

복수 : (책을 안은채) ...이걸루 뭘 하라는 거죠, 선생님?

양찬석 : (퉁명스레) 책이잖아요. (그리곤 나간다)


복수와 꼬붕, 멍한 눈으로 책을 본다.


꼬붕 : 이걸 봐야 되나 봐?

복수 : 그런 줄 알았으면 이거 안했지. ...몸만 쓰면 되는 줄 알았지. 위험한 직업이니까, 돈두 한 번에 왕창 벌겠다 했지.

꼬붕 : 뽀다구 나서 한 거 아니야?

복수 : 애냐, 내가? 실속도 안 보고 하게? (영자를 보더니 더욱 우울하다) 죽기 전에 이걸 다 해석이나 하겠냐?

         스턴트 못하겠다, 야. 내 인생이 얼마나 바쁜데...

꼬붕 : 형이 뭐가 바뻐.

복수 : 바뻐, 임마. ...(우울하다) ...무지하게 바뻐.



27. # 서점 앞 (낮)


서점 앞에 멍청히 서 있는 복수.



28. # 응급실 - 남영동 인근 2차 진료 병원규모 (낮)


응급실 베드에서 악을 써대고 있는 미래.

미래 앞에 선 경과 강.

미래, 응급실 베드 옆에 늘어진 커튼을 잡아당기며 악악댄다.


미래 : 악. 나 죽는 거 아냐?

경 : 급성 맹장염이래요. 지금 곧바루 수술 들어가요.

미래 : 안돼.

경 : 왜요?

미래 : 배에 흉터 생기잖아.

강 : 꼴값하네. 그럼 배 터져서 죽을래?

미래 : 에이씨, 가, 너는.

강 : 나, 가면 수술빈 누가 내냐?

미래 : (경에게) 야, 우리 복수한테 전화해. 내 핸드폰 검색해서 오빠 눌러. 아, 아, 아.

         (커튼을 부여 잡는 통에 커튼고리가 뜯어져 내린다.)

강 : 유난을 떤다. (간호사에게 소리친다.) 아, 뭐해요? 금방 수술 한다더니... 의사란 것들이 게을러 빠져가지고...

미래 : 악.

강 : 야, 야. 의사 온다, 저기.

미래 : 아이씨. 흉터 싫은데... 배꼽티 못 입잖아.

강 : 기도나 해. 수술 이쁘게 해달라고.

미래 : 기도한다구 되냐, 그게? (다가오는 의사에게) 선생님. 흉터 안 남게 해주세요, 네?


이동침대에 밀려가는 미래. 강과 경도 뒤를 쫓는다. 이내 멈춰선다.


미래 : (의사를 째려보며) 흉터만 남아 봐, 진짜.

의사 : (중얼댄다) 아우, 되게 시끄럽네.


멀어져 가는 미래를 바라보는 강과 경.

강의 입가에 미소가 돈다.


강 : 골 때린다, 쟤.

경 : 오빠, 저 여자 알어?

강 : ...우리 광고 모델.

경 : ?


강은 빙그레 웃고, 경은 손에 쥐고 있는 미래의 핸드폰에 눈길이 머문다.



29. # 서점 (낮)


사전 코너 앞에서 난감해 하는 복수.


복수 : (주인에게) 아저씨. 어느 사전이 제일 좋아요?

주인 : (책꽂이에 책을 꽂으며) 비싼게 제일 좋겠지요, 뭐.

복수 : (사전의 가격을 비교해 보고는 아주 크고 두껍고 무거운 사전을 고른다.) 주세요.

주인 : 네. (사전을 들고 캐쉬박스 앞으로 간다)


복수, 가는 길목에서 바닥에 쌓아 올려진 기타교본을 본다. 슬쩍 뒤적대더니 갑자기 음악 코너에 꽂혀진 책을 유심히 살핀다.

찾았다. 클라리넷 사진이 그려진 교본을 빼어든다. 미소.

이 때, 복수의 핸드폰이 울린다. 핸드폰 창엔 “날씬이”가 뜬다.



30. # 응급실 앞 벤취 (낮)


미래의 핸드폰 창엔 “오빠”라고 쓰여져 있다.

이미 벨소리가 들린다. 귀에 붙였다 떼었다 망설인다. 통화 신호음이 난다.


복수 : (E) 미래니?

경 : (핸드폰을 귀에 댄 채 말을 못한다.)

복수 : (E) 여보셔.



31. # 서점 (낮)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고 있는 복수.


복수 : (책봉투를 들고 서점 문을 나서며) 왜 그러냐, 날씬이. ...나 바람 필까봐 감시하냐? (핸드폰이 뚝 끊긴다) 응?



32. # 병원 응급실 앞 (낮)


경이 미래의 핸드폰 폴더를 덮었다.

이내 미래의 핸드폰이 울린다. 핸드폰 폴더를 연다.


복수 : (E) 앙탈을 부리고 있어, 기집애가?

경 : 여보세요.

복수 : (E) ...

경 : 저... 여보세요?



33. # 서점 앞 (낮)


핸드폰을 들고 선 복수가 의아하다.


경 : (E) 고 복수 씨.

복수 : ...네.

경 : (E) 고 복수씨 애인이 지금 병원에 있어요. 남영병원 수술실로 오세요. (전화를 끊는다)


핸드폰을 든 채 고개를 갸웃하는 복수. 바삐 택시를 잡는다.



34. # 수술실 앞 (저녁)


미래의 옷가지와 소지품을 무릎 위에 올려 놓은 채, 수술실 앞 벤취에 앉아있는 경.

미래의 손목시계(실은 경의 시계다)를 만지작 대고 있다.

미래가 이동침대에 밀려 나온다. 경이 일어서며 미래 곁으로 간다.

미래, 하얗게 질린 얼굴로 경을 본다. 미래의 손을 어루만지는 경.



35. # 병실 (저녁)


미래가 누워있고 경이 물통에 물을 담아온다.


경 : 오늘 밤은 여기서 주무시구요. 무리하지 않을 수 있다면, 내일 곧바로 퇴원해두 된대요. 여기 알약은 잠자기 전에 먹구요.

      처방전 여기 있거든요? 퇴원하면, 약국가서 조제해 가야 된대요. 일주일 정돈 일하면 안된다니까 조심하세요.

      ...(꾸벅 인사한다) 안녕히 계세요.

미래 : 어디가?

경 : ...

미래 : 가지마. 혼자 있기 싫어.

경 : (엉거주춤 하다가 자리에 앉는다.) 곧 올거예요. 복수씨.

미래 : (경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경 : (눈길을 어디다 둘지 몰라 미래의 옷가지를 사물함에 넣는다. 그리곤 시계를 서랍에 넣으려는데)

미래 : 그 시계 너 가져.

경 : 네?

미래 : 니가 침 흘렸잖아. 그거 어디서 샀냐구.

 경 : ...싫어요.

미래 : 에이씨, 가지라니까. 야... 그거 우습게 보지마라. 내가 처음 받아 본 선물이다, 태어나서...

경 : ...

미래 : 내가... ...너한테... 얼마나 고마워 하는지... 눈치가 오냐?

경 : ...

미래 : 지난 번부터, 여러모로...

경 : (시계를 만지작 댄다)


이 때, 복수가 들이 닥친다. 복수, 앞 뒤 보지도 않고 미래를 향해 달려온다.

경이 화들짝 옆켠으로 물러선다.


복수 : (놀란 눈으로 미래의 얼굴을 감싸쥔다) 미래야. 미래야. 야. 미래야. 어디 아파? 응?

미래 : (복수의 손을 잡으며 울상.) 죽는 줄 알았다.

복수 : (경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어떻게 된... (경을 보고 놀란다.)

경 :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맹장염 수술 받으셨어요.

복수 : ...(물끄러미 경을 본다. 그리고 경 손에 쥐어쥔 손목시계를 본다.)

경 : (손에 들고 있는 손목시계를 어찌할 바 몰라한다.) 저한테 주셨어요.

복수 : (미래를 본다.)

미래 : 줘두 되지?

복수 : ...(경의 눈을 피하며) 응.

경 : 안녕히 계세요.

미래 : 잘가. 애썼다, 얘.


경이 나가자, 망설이던 복수가 경을 따라 나가려 한다.


미래 : (낮은 소리로) 복수야. 일루 와 봐.

복수 : 잠깐만 나갔다 올게.

미래 : (역시나 낮은 소리) 잠깐만 일루와 봐.

복수 : (미래에게 다가간다.) 아, 잠깐...

미래 : (복수의 따귀를 갈긴다.)

복수 : (멍하게 미래를 본다.)

미래 : ...(어둡게) 요즘, 불륜이 유행이드라.

복수 : ...

미래 : ...

복수 : ...

미래 : 할 말 없냐?

복수 : ...(한참을 아무 말 못한다.) 자꾸만... 신경이 쓰이네. 저 사람...

미래 : ...

복수 : ...

미래 : (이불을 들어 올리며 복수에게 등돌린 채 눈을 감는다.) ...내 적금 찾아서, 쟤한테 훔친 돈 갚자. ...그럼, 괜찮아 질거다.

복수 : ...

미래 : 돈 때문에 그러는 거야, 너.

복수 : ...(한참을 고개숙인채 말이 없다. 그리곤) 돈 때문이겠다. ...(미래의 손을 어루만진다.) 기집애. 왜 니 돈을 주냐?

         내가 벌어서 갚아야지. ...그리고 또, 더 벌어서, 너, 비싼 시계 사줄게. ..저 시곈 후졌어.

미래 : ...

복수 : ...이제 마취 풀려서, 많이 아프겠다.

미래 : 배신만 해 봐. ...죽을 줄 알어.


미래의 눈가에 어리는 눈물. 미래의 손을 잡은 채, 어두운 복수.

복수 너머 창밖엔 터덜터덜 병원 정문을 향하는 경의 모습이 조그맣게 보인다.



36. # 병원 정문 (해질녘)


정문을 걸어 나오는 경. 멈춰선다.

손에 들고 있던 손목시계를 바라본다. 손목에 시계를 차는 경.


경 : (자신의 손목시계를 한참동안 바라본다.) ...도둑놈.


그러더니 노래를 흥얼대며 걷는다. 별리가 부르던 노래를 상기하듯 흥얼댄다.

노래소리가 점차 커지더니, 큰 소리로 노랠 부르며 뛰어간다.



37. # 병원복도 (해질녘)


전면 유리로 된 창가에 서서 뛰어가는 경의 모습을 바라보는 복수.

발갛게 해가 진다. F.O.



 38. # 복수집 중섭의 방 (낮)


방바닥에 엎드려서 FILM ART 첫장을 펼쳐 놓은 복수.

책엔 연필로 매 단어마다 한국어가 적혀 있다. 반장정도가 빼곡하다. 그 옆엔 사전이 있고 복수의 손엔 연필이 쥐어져 있다.

빼꼼히 문틈으로, 엎드려 연필을 손에 쥔 복수의 뒷 모습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중섭. 조용히 문을 닫는다.

허나 복수는 그 자세 그대로 잠이 들었다. 얼굴을 세우고, 손엔 연필을 쥔 채, 닭처럼 눈을 감았다.

불현 듯 입에 괸 침을 삼키며 눈을 번쩍 떴다간 또 다시 가물가물 잠이 든다. 고개도 까딱않는 흐트러짐 없는 자세다.



39. # 복수집 마당 (낮)


마당을 이리 저리 왔다갔다 하던 중섭이 맞은 편 창고 방으로 들어간다.



40. # 복수집 창고방 (낮)


쓸모없는 가재도구들로 들이찬 방안. 물건을 들추일 때마다 먼지가 풀풀 날린다.



41. # 예술의 전당 (밤)


오페라 공연을 보는 동진과 경. 동진과 경은 팝콘을 먹어가며 오페라를 본다.

경 옆에 앉은 우아녀가 경을 보며 눈살을 찌푸린다.


경 : (동진에게 속삭인다.) 옆에서 싫어하네요.

동진 : (큰소리로) 촌것들이라 그래. 그럼 배고픈데 어뜩해? 먹으면서 본다는데, 뭐가 나뻐?

경 : ...(주변 사람들의 눈살이 거슬린다.) 나갈까요? 재미도 없는데?

동진 : 안돼. 이거 보고 기사써야 돼.

경 : ...

동진 : 콜라 주까? (바닥에서 음료수를 들어 올려 경에게 내민다.)

경 : ...(여전히 눈치를 본다. 슬금 슬금 눈치를 보면서도 먹을 건 다 먹고 마실 것도 다 마신다.)

동진 : 꺼억. (트림을 한다.)



42. # 예술의 전당 야외 (밤)


공연이 끝난 뒤라 일군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동진도 공연 출연자로 보이는 분장한 성악가들과 악수를 나누곤 바삐 경에게 달려온다.


동진 : 아으, 지겨워 죽는 줄 알았네. 가자, 자기야.


이 때, 동진에게 다가오는 중년 남자.


남자 : 한 기자님.

동진 : 어? 송 사장님. ...여긴 왜? 클래식 음반두 내요?

남자 : 내가 무슨 클래식? 우리 음반사에 음반 낸 가수들하고, 밴드들하고 모아 놓고, 공연 좀 하려구.

동진 : 여기서요? (고개를 가로 젖는다) 하지 마요. 여기 지루해요. 밴드 맛도 안 살구.

남자 : 글쎄. 뭐 좀 특이한 거 없나 해서 와 봤어. 안 되겠지?

동진 : 안되죠.

남자 : 한 기잔, 취재 왔구나. (경을 본다) 기자신가? 아님, 음악하는 분인가?

동진 : 아니요. 내 애인이예요. (경의 손을 꼬옥 잡는다.)

경 : ...(민망)

남자 : 이쁘다.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준다.)

경 : (명함을 받아든다. 월드레코드 대표 송현성)

남자 : 필요한 CD 있으면 연락해요, 아가씨. 나한테 음반은 넘쳐나니까... (동진에게) 일 봐요, 그럼.

동진 : (악수를 하고 헤어진다.) 가자, 경이. (경의 어깨에 팔을 두른다.)

경 : (동진이 두르는 팔에서 살짝 벗어난다.) 한 기자님.

동진 : 응?

경 : ...저 음악하는 사람 맞아요.

동진 : ...삐졌나 봐, 자기?

경 : ...한 기자님 애인인지는 아직 모르겠는데, ...내가 음악한다는 건 알아요. (입술을 깨물며 앞서 간다.)

동진 : ...삐지는 성격이구나, 전 경. (경을 향해 달려간다.) 경이.



43. # 주차장 (밤)


동진의 손에 이끌려 오는 경.

동진, 자신의 승용차 앞에 경을 세운다.


동진 : 전 경. ...어때?

경 : (아직도 표정이 굳어있다.) 뭐가요?

동진 : 차 바꿨잖아. 니가 스포츠카 싫어해서...

경 : ...(어이없는 눈빛으로) 기자 월급, 굉장하네요.

동진 : 기자 월급으로 어뜩케 이런 걸 사냐? 받은 유산이 많아서 그렇지. (문을 열어준다.)

경 : 저, 오늘은 그냥 갈래요.

동진 : 어딜 가? 나랑 놀기루 했잖아.

경 : (꾸벅 인사를 한다.)

동진 : (버럭) 아, 왜 그래? 신경질나게.

경 : (놀란다)...

동진 : ...(금새) 어? 무서웠어? 에이, 겁쟁이. (살갑게) 얼른 타.


시무룩하게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경.



44. # 숯불구이집 (밤)


고기를 앞에 놓고 앉아 입을 다물고 있는 경.


동진 : 좀 먹으라니까. ...고기 다 탄다.

경 : ...

동진 : 고기 좋아하잖아.

경 : ...

동진 : ...고집 세네, 전 경.

경 : ...

동진 : (애교있게) 말 안할거야, 나랑?


이때 동진의 등을 툭 치는 남자. 박 정달이다.


동진 : 어? 형님?

정달 : 야, 간만이다. 응?

동진 : 보고 싶었는데... 요즘 어느 서에 계세요?

정달 : 알면? 경찰서 올 일 있냐, 니가? (경을 보며) 애인이야?

동진 : 아직, 애인인진 잘 모르겠어요... 음악하는 친구예요.

정달 : 문화부로 옮겼다구 예술가만 상대하냐? 응? (동진에게 명함을 건낸다.) 교통사고나, 뭐, 그런 거 해결할 일이나 있어야,

         도움이 되겠네, 난. (경에게) 아유, 삼삼하네. 요즘은 가수들두 이렇게 이쁘드라. ...뜨겠다, 아가씨.

         (동진에게) 연락해. (식당 별실로 들어간다.)

동진 : 네, 형님. (경에게) 나, 수습 때 사회부에 있었거든? 그 때, 나, 경찰서에서 먹고 살았잖니. 무지하게 고생했다, 나.

         ...저 사람 형사야. 도움 많이 받았어, 내가.

경 : ...

동진 : ...아, 얘기 좀 해 봐.

경 : ...(퉁명스레) 한 여름에 왜 장갑을 끼고 다니지? 미쳤나 봐.

동진 : ...어, 정말? 난 신경두 안 썼네. 경이 눈썰미 좋다. 야, 예술가라 다르다.

경 : ...

동진 : (눈치를 본다) 응? ...나, 노력하는데, 좀 웃어 봐. 응?

경 : ...

동진 : 아, 돌아버리겠네.



45. # 동진의 차안 (밤)


남영동 연습실 앞에 동진의 차가 선다.


동진 : 우리, 오늘 데이트 엉망이다. 그지? 일요일 망쳤지, 그지?

경 : ...미안해요.

동진 : ...전 경씨. ...섭섭할 수 있어. 근데, 음악 관계자 만나면, 내 여잘 음악 한다 말할 수가 없어.

경 : ...

동진 : ...내가 자기랑 같이 있을 땐, 우린 사적인 관계잖아. ...근데, 기자가 이 친구 음악합니다, 했을 땐,

         그 사람은 전 경을 기자가 주목하는 음악인으로 여겨. 무슨 말인지 알겠어?

경 : (퉁명스레) 모르겠어요.

동진 : ...한 마디로, 공과 사가 구분이 안돼. 내 애인 밀어주는게 돼. 암묵적으로...

경 : ...

동진 : (설득조) 내가 그런 짓을 해야겠냐?

경 : ...한 기자님.

동진 : 이제야 입을 여네.

경 : (음반사 사장의 명함을 꺼내든다) 한 기자님. 내가 여기다 전화해서, 나 음악하는데, 한 기자랑 친한데,

      음반 좀 내자 그럴까요? 그럼, 음반 내주는 거죠, 이 사람?

동진 : (눈이 똥그래진다.)

경 : (고개를 숙인다)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일까요? ...밴드가 후지다구, 한 기자님한테 빌붙을 거 같아 걱정되나요?

       ...아님, 부끄러운가요?

동진 : ...

경 : 난, ...누가 날 뭐 하는 사람이냐구 물으면, 음악한다구 해요. ...티비에 나오냐구 물으면, 아직 앨범도 못냈다구 얘기해요.

      ...그럼, 사람들은 딱하게 보거나 한심하게 봐요. ...그래두 할 수 없지요. 음악을 한다는 건, 내 직업이니까요.

      ...왜, 내가 직업을 숨겨야 하나요? 한 기자님의 직업의식 때문에, 왜 내 직업이 함부로, 아무데나 버려지나요?

      (고개를 들어 동진을 본다.)

동진 : ...

경 : ...내 직업은, 한 동진씨의 애인이 아니라, 밴드 키보디스트예요. ...난... 그걸 많은 사람한테 알리고 싶어요.

      ...내가 참...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명함을 동진의 무릎 위에 놓으며 차에서 내린다.)


경, 우울한 걸음으로 지하 연습실 안으로 들어간다.

동진, 차창 너머 연습실 지하로 사라지는 경을 본다. 멍한 눈으로 허공을 본다.


동진 : (톡톡 손끝으로 핸들을 두드린다.) 애긴줄 알았드니, ...말 잘하네, 전 경.


허한 미소.



46. # 복수집 - 중섭의 방 (밤)


잠에서 깨어나는 복수. 복수의 잠자리는 어느새 이부자리에 베개까지 베어져 있다.


복수 : 어? 내 책 어딨지? 아빠.



47. # 복수집 - 마당 (밤)


복수가 방문을 열고 나온다.


복수 : (짜증이다.) 아, 나 공부하는데, 왜 이불을 덮어놨어어?

중섭 : (마당에 한 가득 쌓인 가재도구를 노끈으로 묶고 있다.) 공분 니 방 가서 해.

복수 : 내 방?

중섭 : (창고방을 턱짓한다) 그래, 니 방.


복수, 의아해하며 툇마루 건너 창고방을 연다.



48. # 복수집 - 복수방 (밤)


복수가 문을 열면 깔끔히 치워진 방안.

방 중앙에 앉은뱅이 책상 하나가 놓여져 있다. 책상 아래엔 낡은 조각 헝겊 방석(일명 퀼트)까지 가지런히 놓여있다.

책상 위엔 복수가 공부하던 영문 책과 사전과 연필꽂이까지 정성껏 셋팅이 되었다.



49. # 복수집 - 마당 (밤)


창고방 앞에서 중섭을 보는 복수.


중섭 : (헌 가재도구를 한 쪽으로 치우며) 쓸데도 없는 걸 쌓아두고 살았잖아. 진작에 공부방 하나 만들었을걸.

복수 : (원망스레) 제 정신이야? 혼자서 이 무거운 것들을 옮기구 다니게? 노인네가... 관절이라도 다쳐봐야 정신을 차리지.

중섭 : ...(빙그레) 선물하는데, 선물 받을 사람한테 손 내미냐, 그럼? ...당장은 있는 걸루 써. 좀 있다가, 책상이랑 의자랑

         괜찮은 걸루 장만하자... (회심의 미소) 아, 체증이 다 내려가네. ...평생, 속에 뭐가 걸려 있는 거 같드니...

         (복수에게) 대학 가려면 학원도 좀 알아봐라. 응?

복수 : ...

중섭 : 대답해.

복수 : ...알았어. ...대학 가. 아이씨. 가지, 뭐.

중섭 : 자식... (미소)

복수 : 아빠.

중섭 : 응.

복수 : (애잔하다) 내 방 만들었는데... 내가 한참 동안 그 방을 비워 둘 수도 있어.

         ...그래두... 나 없다고, 방이 비었다구, 너무 심심해 하지마.

중섭 : 내가 애기야, 이 놈아? 싱거운 놈이네. (그리곤 주섬주섬 허접한 가재도구 꾸러미를 들고 대문 밖으로 나간다.)

복수 : ...(혼잣말) ...방은 만들고 그러냐? (우울) 아빠 땜에... 죽지두 못하겠네. ...안 죽지, 뭐.

         ...(공부방으로 들어가며) 저 방석은 어디서 난 거냐?



50. # 꼬꼬닭 치킨별실 - 유순의 방 (낮)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성호.

바느질을 하고 있는 유순.


유순 : (궁시렁) 또 구멍나면, 인제 이거 치워 버려야지. ...걸레네. 다 됐다. 이거 깔구 앉어. (바느질 하던 방석을 내민다.)


복수의 방석과 같은 느낌의 크기의 조각헝겊 방석이다. 그 방석 또한 낡았고, 유순이 바느질한 부분만 새로운 천으로 매워져 있다.

성호가 그림을 들어 보여준다. 성호를 사이에 두고 복수와 유순이 양쪽에 그려져 있다.

(누가 봐두 그들 셋이라 느껴지게 캐릭터를 잡아서 그려주세요. 복수는 곱슬머리, 유순의 이마엔 주름살...)


유순 : 아빠랑 엄마 그리랬다며, 선생님이?

성호 : (복수를 가리키며) 아빠예요.

유순 : 얘 좀 봐. 아빠 얼굴 까먹었어? 이게 아빠야? 형이지? 머리카락 꼬불꼬불 하잖어. 형이나 그렇지?

         아빠 사진 줘? 사진 보구 그릴래? (서랍을 뒤적인다.)

성호 : ...나는... 형이 아빠예요. (미소 지으며 색칠을 한다.)

유순 : (망연히 성호를 본다.) ...

성호 : ...

유순 : ...성호야.

성호 : 네?

유순 : (나직이) 엄마가 너한테 아무것두 못해줬는데... 한 가진 제대루 했다.

성호 : ?

유순 : 형 만들어 준거. (미소) 그지?

성호 : 네.

유순 : ...형 이마에 주름살 그려 넣어. ...엄마랑 똑같이.

성호 : ?

유순 : 그래야, 아빤 줄 알어, 선생님이...


성호, 복수의 이마에 한 줄 깊은 주름을 그려 넣는다.



51. # 연습실 (저녁)


소파에 엎드려 새우깡을 먹으며 만화책을 읽고 있는 별리. 슬금슬금 경의 눈치를 본다.

경은 청소를 해댄다.


별리 : (바닥에 과자를 떨어뜨리곤 청소하는 경이 볼새라 얼른 바닥에 떨어진 새우깡을 주워 먹는다.) 이쁜아.

경 : ...(청소만 한다.)

별리 : 문제있냐?

경 : ...

별리 : (만화를 보며) 어떤 놈이 그랬어?

경 : ...뭐가?

별리 : 얘기해. 눈치 깠다, 나.

경 : (하던 일손을 놓고 한쪽 구석에 쪼그려 앉는다.) 언니.

별리 : 응.

경 : 어떤 사람을 만나면 되게 재미있구, 상큼하다? 근데 ...결국엔 초라해지고, 억울하고, 쓸쓸해진다?

별리 : ...(관심도 없다는 듯 만화만 본다.)

경 : ...그냥 그렇다구.

별리 : (슬쩍 경을 봤다가 무심하게 만화를 본다.) 또 다른 놈은?

경 : (놀라며) 응?

별리 : ...(새우깡을 툭 집어친다) 아우 짜. ...재미 없고 칙칙한 놈은?

경 : ...

별리 : (만화만 본다.)

경 : ...(한참을 망설이다) 날... 착하게 만들어.

별리 : (경을 본다)

경 : ...(별리의 눈을 의식하곤 고개를 숙인다.) 미움이... 사라져.

별리 : ...(한참 경을 바라보다가 마뜩찮은 듯 만화를 본다.) 근데, 니 남자가 아니라 그렇지.

경 : (놀라서 별리를 본다)...

별리 : ...(책장을 넘기며) 근데, 어쩌다 그 감자같은 걸 마음에 담았냐?

경 : ...

별리 : 에이유. 그래서, 내가 남잘 싫어해. 애들이 골 아프게 해.

         타고 날 때부터, 여자 괴롭히라고 만들어 놓은 것들이야, 그 요물들은... 나처럼 여잘 만나. 여자가 나아.

경 : 응?

별리 : (무심하게) 놀래긴. (만화를 보며) ...감자... 안된다, 이쁜아. 니네들 원수라며. ...또 막가는 애인두 있어

         ...또, 상대가 되냐, 너랑 감자랑? 예술가와 도둑놈. 헤헤. 볼만하다, 야. 니네들, 순정만화 하냐?

경 : ...(궁시렁댄다) 사는게 다 비슷하지, 뭐... 어차피 우리두 구질구질한데... 우리가 무슨 예술가라구...

별리 : 닥쳐. 우린 예술가야. ...헤헤헤. 되게 웃긴다. 짱구 엉덩이 너무 귀엽다. (만화책 “짱구는 못말려”를 보며 웃어댄다.)


경, 별리가 탐탁잖다.



52. # 미래의 집 - 미래방 (밤)


한쪽 구석 앉은뱅이 탁자에 앉아 삼계탕을 먹고 있는 미래와 현지.

복수가 닭고기를 찢어서 미래의 숟가락에 올린다. 좋아라 먹고 있는 미래.


현지 : (입을 삐죽댄다) 간사를 떨고 있네.

복수 : 간사가 뭐야?

미래 : 얜 할머니같은 말 잘 써. 신경쓰지마. 없다구 쳐, 얜.

현지 : “간사한 인간” 할 때 간사.

미래 : (복수에게) 이 삼계탕, 어디서 사온 거야, 오빠?

현지 : 오빠 좋아하네.

복수 : 천년 삼계탕. 조 큰 길 건너... 사람 많드라.

미래 : 이 집 괜찮네. 오빠두 좀 먹어.

현지 : 오빠 좋아하네.

미래 : (걱정스레 배를 만지며) ..수술자국... 이거 짜증나, 오빠.

현지 : (소리가 높아진다.) 오빠 좋아하네.

복수 : 성형하면 되잖아. 오빠가 돈 벌면, 너 고치고 싶은 거 싸그리 다 고쳐준다.

현지 : (바락) 오빠는 무슨 오빠야.

미래 : 진짜?

현지 : (미래와 복수를 번갈아 보며) 야.

복수 : 어디 어디 고치고 싶은데?

현지 : (벌떡 일어선다.) 이것들이 날 완전 따 시키네.

미래 : (현지를 본다) 할머니. 왜 서서 그래? 나가든가 앉든가, 그래.

현지 : 나가란 얘기네?

미래 : 알아듣네.

복수 : (달래듯) 왜 그래에. 현지야. 앉어, 앉어.

현지 : 싫다. 니가 앉으라 그랬으니까, 난 나간다. (그리곤 자신의 삼계탕 그릇을 챙겨 나간다.)

미래 : 챙길건 다 챙겨요.

복수 : 그래야지. 잘 살거야, 현진? 응?

미래 : 그럼. 누구 동생인데... (상에서 물러나 앉는다) 아, 배 터지겠다.

복수 : 물 갖다주까?

미래 : (미소) 응.



53. # 주방 (밤)


식탁에 앉아 삼계탕을 먹는 현지.

복수가 냉장고로 간다. 물을 꺼내고 컵을 꺼내고 쟁반을 찾고...

현지, 복수가 가는 걸음마다 째려본다.

복수, 현지랑 눈이 마주칠 때 마다 윙크를 하며 의연하게 대처한다. 그러다 문득, 냉장고 옆에 있는 생식 박스를 본다.


복수 : (한참을 보더니) 현지야. 내가 이거 세 박스나 줬나?

현지 : 니가 한 박스 더 줬다며? 우리 언니한테? 언니 혼자 낑낑대면서 갖구 왔드라.

         지가 갖다 놓을 것이지, 힘없는 언니한테 들려 보내구 있어. 맘에 안 들어...

복수 : ...

현지 : 왜? 주고 나니까 아깝냐?


물쟁반을 받쳐든 복수. 이 때, 등 뒤에서...


미래 : (배를 잡고 조심스레 다가와서는 현지의 머리통을 쓰다듬으며 장난을 건다.) 오빠. 저기 약두 좀 줘.

복수 : 소화 좀 시키고 먹지?

미래 : 생각날 때, 후딱 먹어야 돼. 약 먹을 타임 놓쳐, 안 그럼. (현지에게) 잘두 먹는다. 우리 돼지.

복수 : (물과 약을 내민다.)

미래 : (약을 먹는다.)

복수 : ...미래야.

미래 : 응?

복수 : 생식은 다 먹지도 않고, 왜 또 사왔어?

미래 : ...그냥.

복수 : ...내가 사준 거라는데? 현지가?

미래 : ...니가 사줬어.

복수 : 근데 좀 전엔 왜 니가 샀대?

미래 : 내가 언제 내가 샀다 그랬어?


미래, 무심한 표정으로 제 방으로 간다.

복수, 미래를 따라 들어간다.



54. # 미래방 (밤)


미래, 손톱깎기를 꺼내 손톱을 깎기 시작한다.

미래 옆에 바짝 붙어 앉는 복수.


복수 : ...(기억을 더듬듯) 내가 언제, 한 상잘 더 줬지?

미래 : ...

복수 : 난 기억이 없는데...

미래 : (버럭) 뭘 그렇게 따져? 그게 중요해?

복수 : ...아니, 내가 기억력이 나빠지나 해서...

미래 : 치매냐? 그런 걸 기억 못하게? ...(망설이다가 대뜸) 내가 갖구왔어. (그리곤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손톱만 깎는다.)

복수 : ...

미래 : ...밴드하는 애들, 문 앞에 둔 거 보구... 갖구 왔어. ...(인상을 쓴다.) 뭐??어?

복수 : ...

미래 : ...(퉁명스레) ?어두 할 수 없지, 뭐. 갖구 온 걸 어뜩해?...

복수 : (진지하게) 그렇지가 않다. ...아직 내가 오백만원 갚을 돈이 없어, 미래야. 그래서... 내 성의껏, 이자라 생각하고...

         내가 뭘 해주긴 해야 되는데... 머리가 나뻐서 뭘 해줘야 되는지 몰라. ...이렇게라두, 무식한 방법이지만,

         먹을 거라두 나눠 먹어야 되겠다고... 그런걸... 니가 망가뜨리면 되냐?

미래 : 니가 돈 훔친 사람 한 둘이니? 왜 걔한테만 그러냐?

복수 : (벌떡 일어나 소리친다.) 나 땜에 사람이 죽었다잖아.

미래 : ...

복수 : (기운이 빠진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걸, ...내가 알아버렸는데... 어뜩하냐, 그럼? 응?

미래 : ...(울먹울먹 복수를 보더니 한 켠 서랍에서 수표를 꺼낸다) 갚어, 당장.

복수 : 니 돈 싫다 그랬다. 화낸다, 나?

미래 : (소리친다.) 싫어. 지금 당장 갚어. 걔, 머리 속에 넣고 다니지 마. ...이 돈으로 죄책감 끝내구... 돈은 나한테 갚어, 응?

복수 : (한참동안 미래를 내려보다가 천천이 방문쪽으로 간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두, 니 돈에 손대는 짓은 안해.

         너 기껏 벌어서, 양아치한테 돈 대주는, 그런 한심한 기집애냐? ...그거 버릇된다. ...간다, 나.

미래 : (복수의 손목을 잡으며 수표를 복수의 손에 쥐어준다. 눈동자엔 분노감 마저 돈다.) 내가 하자는 대로 해.

복수 : (냉소한다.) 무슨 취미니, 이게?

미래 : ...너, 니 맘, 이미 3분의 2는 걔한테 가 있어.

복수 : ...

미래 :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니 죄책감이 핑계가 되서,

         아직 나한테 남은 니 마음 3분의 1... 한순간에 날아갈 거... ...난 느껴.

복수 : ...미래야.

미래 : (소리친다.) 나, 불안해서 죽고 싶단 말야.

복수 : ...

미래 : (나지막히) 걘, 나보다 이쁘구, 어리구, 키두 크구, 공부두 잘했을 거구... 착해. ...그리고, 널 싫어하지 않아.

         지 돈 훔쳐간 도둑새낀데... ...그게 너무 이상하구, 신경질 나. ...나, 질투나서 미치고 싶지 않아, 복수야.

         ...후지게 굴기 싫다, 복수야. 응? (눈물맺힌 눈으로 복수를 본다. 애원하듯 안타깝다.)


복수, 자신의 손에 들린 5백만원 수표를 어둡게 바라본다.

문틈으로 슬픈 미래를 바라보는 현지의 모습. 풀죽은 표정으로 문틈에서 사라진다.



55. # 경의 정류장 (밤)


벤취에 앉아있는 복수. 지친 듯 머리를 쓸어 올린다.

자신의 바지 주머니 속 수표가 의식되는지 계속 손을 넣었다 뗐다 한다. 수표를 꺼내든다.


복수 : (고개를 절래절래한다.) ...아무래두, 그 돈을 이렇게 갚을 순 없다, 미래야.


그리곤 가방 깊숙이에 수표를 넣어둔다. 얕은 한숨을 쉬더니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몇 장을 꺼낸다.



56. # 편의점 (밤)


캔 커피 두 개를 사들고 나오는 복수.



57. # 버스안 (밤)


MP3플레이어를 귀에 꽂은 채, 창밖을 보던 경. 벌떡 일어선다. 옅은 미소와 설레임이 어린 표정이다.

멀리 차창 앞 쪽에서 보이는 복수의 모습. 벤취로 걸어오는 복수를 봤다.

출입문으로 다급히 가 서는 경. 버스는 통행 정지 신호를 받아, 아직 정류장에 이르지 않는다.



58. # 경의 버스정류장 (밤)


잠바차림의 50대 노인이 벤취 한 켠에 앉아 있다. 버스를 기다리는 듯 지갑에서 천원권을 꺼낸다.

복수가 그 옆에 앉는다. 양 손에 차가운 캔 커피를 들고...



59. # 버스안 (밤)


경의 버스가 정류장에 닿는다. 문이 열린다.



60. # 경의 버스정류장 (밤)


버스가 도착하자, 노인이 부랴부랴 버스에 오른다.

복수, 문득 노인의 자리에 떨어진 지갑을 발견한다.

벤취 위에 캔 커피를 놓아두곤 재빨리 지갑을 집어들며 노인이 탄 버스를 본다. 그리곤 일어선다.

(복수의 시점) 그새, 버스는 떠난다. 망연자실 지갑을 들고 선 복수.

이 때, 그의 앞에 경이 서 있다. 냉정한 눈빛으로 복수가 들고 선 지갑을 바라보고 있다.

복수, 멍하니 경을 보다가 자신의 손에 들린 노인의 지갑을 어찌 할 수 없다.

눈만 깜박이다 지갑을 벤취에 부랴부랴 던져 놓곤 캔 커피를 집어 든다.

커피를 들고 경에게 다가서는 복수.

(경의 시점) 경의 귀에선 음악소리가 들리고 눈에선 당황하는 복수의 모습이 보인다.

복수가 다가와 뭐라 말을 걸지만,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어색한 미소로 캔을 내미는 복수를 향해 경이 뺨을 때린다.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깡통소리가 요란하다.

복수, 놀란 듯 경을 바라본다.

경, 차가운 눈길을 주곤 돌아서면 복수가 다급히 경의 손목을 잡는다.

경이 뿌리치면, 복수가 경의 이어폰을 귀에서 거칠게 떼어낸다.

경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복수 : (성난 눈으로) 내 말 들었어요?

경 : ...다 봤어.

복수 : (단호하게) 뭘요?

경 : ...다시 또, 도둑질 할 거 같지 않았는데...

복수 : (또박또박) 훔치지 않았어요.

경 : ...

복수 : 훔치지 않았다구요. 난 아까부터 계속... 그렇게 말하고 있었어요.

경 : ...착한 사람이라구 생각했는데...

복수 : 전 경씨.

경 : (그렁 그렁한 눈으로 목소리가 떨린다.) 드럽게 누구 이름을 불러? 너 같은 놈이 부르는 이름 아니야.

      ...교도소가 왜 필요한지 이제야 알겠다. 왜 전과자가 인간취급을 못 받는지두... 이제야 알겠다. (돌아선다.)

복수 : (냉정하게 경의 손목을 잡는다.)

경 : (복수의 손을 뿌리치려 하지만 놔주지 않는다.)

복수 : (한 손으론 경의 손목을 잡은 채 빤히 쳐다본다.) 전 경이란 사람... 참, 특별한 사람인 줄 알았네....내가 잠시나마 돌았네.

         (잡았던 경의 손목을 냉정히 날려주곤 가방 안에서 수표를 꺼내, 경의 손에 거칠게 쥐어준다.)

         ...너한테 빚진거, 이걸로 깨끗이 갚았다. ...다시 볼 일 없을 거다.


냉정히 돌아서는 복수. 손에 쥔 수표를 바라보는 경.

고개들어 멀어지는 복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경. 경의 발밑에 채여 구르는 캔커피, 두 개.

그녀의 눈동자에 눈물이 흐른다. 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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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수다쟁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8.19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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