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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멋대로 해라] 16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06.05.14|조회수461 목록 댓글 1

[네 멋대로 해라] 16











1. # 달리는 택시 안 (밤)


조수석에 앉은 복수. 다소 불안한 표정이다.

뒷좌석에 앉은 미래와 경.

복수가 힐끔대며 백미러로 뒷 좌석에 나란히 앉은 미래와 경을 본다.

걱정스레 복수의 뒷통수를 바라보는 미래.

경은 백미러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복수가 훔쳐보는 눈길과 마주친다.

복수, 외면한다. 그러다, 다시 한 번 힐끔 백미러를 본다.

경은 여전히 백미러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복수와 눈을 맞춘다.



2. # 미래의 집 앞 (밤)


택시가 서고 미래가 내린다.

미래, 문을 연 채 경을 본다.



3. # 택시 안 (밤)


문밖에서 경의 팔을 툭 치는 미래.


미래 : 야, 오늘은 복수 아프니까, 니가 복수부터 데려다 주구 집에 가.

복수 : (당황하며) 미래야.

경 : (미래를 보며 인상을 쓴다.) 싫어요.

미래 : 아, 조고... 진짜.

복수 : 미래야. 됐어. 얼른 들어가.

미래 : ...(복수를 보며) 계속 아프면 진통제 먹어.

복수 : 어, 어. ...얼른 가.

미래 : (다시 경을 본다.) 아, 조고... 진짜. (복수를 보며) 가. (문을 닫는다.)

경 : (계속 복수만 야리고 있다.)


택시가 출발한다.

복수, 경의 눈치를 보다가 잠을 청하려는 듯 눈을 감는다.

복수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경이 손바닥으로 복수의 정수리를 한 대 툭 때린다.

놀라서 고개 돌려 경을 바라보는 복수.

경이 분해서 운다. 꺽꺽댄다. 그리곤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곤 운다.


복수 : (난처한 표정으로) 경이씨.

경 : (계속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엉엉 울어댄다.)

복수 : 경이씨.

경 : (여전히 외면한채 울어댄다.)

복수 : (안전벨트를 풀더니 그 자리에서 뒷자리로 넘어가려 한다.)

운전기사 : (점잖게) 아고, 아저씨, 위험해요오.

복수 : 저 아가씨가 더 위험해요, 아저씨.


뒤쪽으로 기어가듯 몸을 가져가면 경이 복수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밀면서 운다.



4. # 복수집 근처 큰길 (밤)


택시에서 내리는 경. 울면서 부랴부랴 걸어간다.

복수가 계산을 마치고 뒤늦게 내려 경을 쫓는다.


복수 : (쫓아가 경의 손을 잡는다.)

경 : (복수의 손을 뿌리치곤 걷는다.)

복수 : (다시 쫓아가 경의 손을 잡는다.)

경 : (다시 뿌리친다.)

복수 : (다시 잡는다.)

경 : (다시 뿌리친다.)

복수 : (다시 잡는다.) 여기서 내리면 어뜩해요? ...내가 데려다 줄께요, 집에...

경 : (뿌리치지만 거세게 잡은 손이 놓여지지 않는다. 소리친다.) 놔아.

복수 : 경이씨.

경 : (잉잉 울어대며) 니네 둘이서 잘 먹구 잘 사세요.

복수 : (비실 웃는다.) 아, 뭘 먹어요오? 먹을게 어딨다구?

경 : 알아서 먹어요. (팔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또다시 성큼성큼 걸어간다.)

복수 : (미소) 아, 땡깡 대단하다.



5. # 거리 (밤)


편의점 앞에서 기다리고 선 복수.

경이 담배를 사서 담배를 까며 나온다. 벗긴 비닐과 종이껍질을 꼬깃꼬깃 구겨서는 길에 휙 버린다.


복수 : 아, 쓰레길 아무데나 버리구... (주변을 두리번대다가 신경질을 낸다.) ...어뜩케 길에 쓰레기통 하나가 없냐?

         ...잘했어요, 경이씨. 기냥 막 버려.


복수를 무시하고 걸어가는 경. 복수가 쫄래 쫄래 따른다.

경, 담배를 입에 물고 걸어가다가 문득 선다.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난감한 표정.


경 : (지나가던 고교생에게) 학생, 불 좀 빌려 줄래요?

남학생 : (멈춰서서 경을 아래 위로 훑는다. 눈매가 매섭다.)

경 : (겁먹었다. 남학생을 피해 다시 뒤돌아 걷는다. 궁시렁) 없으면 말구...

복수 : (황당한 표정으로 경을 바라보며 경의 옆에서 따라 걷는다.) 또 어디 가요?

경 : (인상을 쓰며 소리친다.) 라이터 사러가요. 왜요?

복수 : (경 앞에서 경의 어깨를 양손으로 힘껏 잡아 흔들며 꾸짖듯, 하지만 표정은 자상하다.) 아, 그만. ...경이씨. ...그만.

경 : (인상을 긁으며 복수를 본다.)

복수 : (경 입에 문 담배를 빼앗아 자신의 입에 물곤) 그렇게 섭섭했어요?

경 : ...

복수 : (미소띤 얼굴로) 미안해요. ...너무 아퍼서... 너무 아펐어요. ...그래서, 짜증이 났어요.

경 : ...

복수 : 너무 아프니까... 응?

경 : ...(다소 누그러 들었다.) 아프면... 그럴 수 있지요. 근데, 어뜩케 안 만난단 말을 해요?

복수 : 아파서 그랬다니까?

경 : ...(여전히 노려본다.)

복수 : 그렇잖아요. 아픈데에...

경 : ...(인상은 여전하지만 목소린 한결 죽었다.) ...그럼... 어디가 아픈데요?

복수 : 머리요.

경 : 그래서 병이 뭔데요?

복수 : 머리병이요.

경 : ...(다시 소리친다.) 왜 제대루 안 가르쳐요? 죽을 병이라두 걸렸어요?

복수 : (미소) 네.

경 : (어이없는 표정으로 복수를 본다.)

복수 : ...(미소)

경 : (인상을 쓰며 눈치를 살핀다.) 지금 장난쳐요?

복수 : (미소) 장난 아니예요.

경 : 근데, 왜 웃어요?

복수 : ...(서서이 미소가 가신다. 경의 어깨에 올린 손을 내린다. 진지한 눈빛) ...장난... ...아니예요.

경 : ...(멍한 눈으로 복수를 바라본다.)

복수 : (어두운 눈으로 경을 본다.)

경 : (어렵게) ...머리요?

복수 : (담담하게) 네.

경 : ...(어렵게) 뇌종양이요?

복수 : 네.

경 : ...(입을 벌린채 복수만 본다.)

복수 : ...(무심한 표정으로 경을 본다.)

경 : ...심해요? ...죽을 정두루?

복수 : 네. (참 담담하고 무심하다.)

경 : ...(눈만 깜박이며 복수를 본다. 슬픔도 놀라움도 없다.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표정이다. 무감각...)

복수 : (옅은 미소) 놀랬구나?

경 : 네.

복수 : (담담하다.) 인제, 화 풀려요?

경 : 네.

복수 : 아 됐다. 화 풀렸네, 경이씨가... ...충격을 대빵 줘야, 화가 풀리네.

경 : (복수의 손을 덥썩 잡는다.) 가요. 집에 데려다 줄께요.


경의 손에 이끌려 가는 복수. 복수의 손을 잡고 가는 경.

계속 벙찐 표정으로 힐끔힐끔 복수를 본다. 복수도 힐끔힐끔 경을 본다.



6. # 복수집 산성 근처 (밤)


손을 잡고 천천이 걸어가는 둘. 경의 표정 무감하고, 복수의 표정 담담하다.


복수 : (실소) 미래가 하랜다구, 증말 하냐아? ...집 못찾아 갈까봐요, 내가? 병 걸려서, 집두 못 갈까봐?

경 : ...

복수 : (경의 팔을 툭 치며) 네, 경이씨?

경 : 힘들었잖아요. ...나한테, 그 말 하느라...

복수 : ...잘 아네. ...내가 말을 안해서 그렇지, 아깐, 증말... 다리에 힘 빠지드라.

경 : 업어줄까요?

복수 : (실소) 경이씨. ...아, 왜 이렇게 웃겨요? 나, 참. 암 걸렸다는데... 반응이 이러냐? 웃기게?

경 : (걸어가며 어둡게) 왜 수술 안해요?

복수 : ...복잡해요.

경 : ...근데... (멈춰선다.)

복수 : (멈춰선다.)

경 : (넋이 나가서) ...어쩌자구 날 만나기 시작 했어요? ...나중에 나, ...어뜩하라구?

복수 : ...(물끄러미 경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피한다.) 나두...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생각을 안해 본 건 아니예요. 근데...

         (다시 경을 본다.) 어뜩케 안 만나요? ...안 만나지지가 않는데... 어뜩케, 그래요? ...(답답한 듯) ...괴롭다.

경 : ...(무심하게) 나두요. 괴롭다. ...근데... 나두 그래요. ...어뜩케 안 만나요? 안 만나지지가 않는데...

복수 : ...그죠? ...(무심한 경을 바라본다.) 근데... 지금, 속 괜찮아요?

경 : (고개를 끄덕인다.) 네. ...이상하게, ...아무렇지두 않네. 슬프지두 않구...

복수 : ...

경 : (복수의 팔을 다정하게 훑어댄다. 그리곤 미소) 내가... 뭐 해주까요?

복수 : (물끄러미 경을 본다.)

경 : 네?

복수 : ...그냥... 아무것두 하지 마요.

경 : (고개를 끄덕) 그럴께요. 난... ...아무것두 안할래요. ...난, ...몰라요, 아무것두...

복수 : (입 끝에 걸리는 여린 미소)

경 : (미소짓는다. 그리곤 복수의 정수리를 쓰다듬는다.) 하필이면, ...아까 머리를 때렸네.

      ...복수씨. 이젠 목 위쪽으루는, 조심할께요.

복수 : (가만히 경의 손을 잡는다.) 말하길 잘했네. ...화두 풀리구... 기분두 좋구...

경 : ...조기 앉아서 담배 한 대만 피구 갈까요?

복수 : 네.


산성 위에 앉는다. 서울의 야경을 향해, 야경을 바라보며...

가방에서 파이프를 꺼내 무는 경의 표정이 쓸쓸하다. 살랑대며 부는 바람 때문에 머리카락이 자꾸 얼굴을 덮는다.

파이프를 문 채, 가방에서 고무줄을 꺼내 머리를 묶으려 한다.


복수 : 내가 해 줄께요.

경 : (고무줄을 준다. 그리곤 복수에게 등 돌린다.)

복수 : (고무줄로 머리를 묶으며) 경이씨... 기분 드럽게 좋아요, 나아. ...기대이상이야, 우리 경이씨.

         ...내 병 알면, ...울구, 이상하게 나 보구, ...아, 진짜 구질구질할 줄 알았네.

         ...그래서 경이씨 꼴두 보기 싫을까 봐, 얼마나 겁 났는데... ...이렇게 웃어주구, 너무 쬐끔 웃어서, 좀 그렇긴 하지만...

경 : (머리가 씹혔다.) 아.

복수 : 어? 너무 당겼나. 살살 묶어 주께요. ...(미소) 이렇게 머리두 묶어주구... 증말 살맛 난다. ...난... 지금 죽어두 좋다, 뭐.

경 : ...(어둡게) ...죽는게 뭐... 별건가?


그러나, 등돌린 경의 눈에선 이미 눈물이 흐르고 있다.

어떤 떨림도 느껴지지 않도록 무심한 표정으로 앞만 보는 경의 눈에선 한 방울 두 방울 계속 눈물이 떨어진다.


복수 : ...(경의 등뒤에서 정성껏 고무줄을 묶으며 미소) 인생을 알어, 경이씬...

         (머리를 다 묶었다.) 다 됐다. ...돌아 봐요, 이쁜가...


그러나 여전히 돌아앉지 않고, 복수에게 등 돌린 경.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

슬픈 눈으로 경의 가는 떨림을 등 뒤에서 느끼는 복수.

복수가 자신의 한 손을 경의 어깨에 지긋이 올린다. 고개 숙이는 복수.

경이 한 손을 올려 자신의 어깨 위에 있는 복수의 손등 위로 포개어 놓는다.

같은 방향을 향한 채, 소리없는 눈물을 흘리는 경과 고개숙인 복수.

둘의 옆 모습이 서울의 불빛을 역광으로 그림자진다. 아득하다. F.O.



7. # 복수집 - 복수방 (아침)


헛구역질을 해대는 복수. 방바닥을 뒹구는 복수의 고통.



8. # 복수집 - 주방 (아침)


쌀을 씻는 중섭의 귀에 언뜻 복수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의아한 눈빛으로 복수방으로 향하는 중섭.



9. # 복수집 - 복수방 (아침)


문을 열어보는 중섭. 등돌린채 잠을 자는 복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을 닫는 중섭.

복수, 등 돌린채 입에는 이불을 물고 있다. 핏발 선 눈을 꼭 감은 붉은 얼굴. 이마에 돋아난 힘줄...



10. # 중국집 (낮)


경과 미래가 마주 앉아 식사를 한다. 경은 짬뽕, 미래는 짜장면.


미래 :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맛있냐?

경 : 짬뽕 맛이 다 그렇죠, 뭐.

미래 : (꼬나본다.) ...사주는 사람 앞에 두구, ...말을 그렇게 싸가지없이 하냐? 그냥 맛있다 그르지.

경 : 짜장은 맛있어요, 언니?

미래 : 짬뽕 먹으니까, 짜장 먹구 싶지?

경 : 네.

미래 : 나두 짜장 먹으니까 짬뽕 먹구 싶다? ...바꿀래?

경 : 네.


서로 그릇을 바꾼다. 이젠 경이 짜장을 먹는다.


미래 : 야. 경아.

경 : (놀라서 미래를 본다.) ...

미래 : 왜 그렇게 보냐?

경 : (미소) 아우. 내 이름을 그렇게 부르니까, ...진짜 언니같다.

미래 : 그래. 내가 오늘은... 언니로서, 너한테 주의사항을 줄라구 불렀다.

경 : (짜장을 먹으며) 뭐요?

미래 : 복수가 너한테 아직 암말 안했지?

경 : ...네.

미래 : 나두 거기에 대해선 말 안해. ...복수가 죽기보다 더 싫어하니까...

경 : ...

미래 : 근데... 말은 않겠는데... 복수가 좀 아프거든?

경 : 알아요.

미래 : 알어?

경 : 치질이라면서요?

미래 : 그래. ...근데, 치질이 심해. ...그래서 전체적으로 몸이 안 좋아. ...그래서, 너한테 주의를 환기를 시킬라구 불렀다.

         (눈에 힘이 들어간다.) 하여간... 걔 피곤하게 하지마. 골 아프게 하지 말라구, 응?

경 : 내가 뭘 어쨋는데요?

미래 : 괜히 삐지구, 뭐 힘든 일 부탁하구, 술맥이구, 그르지 마. 또... (뭐 없나 생각한다.) 때리지 말구...

경 : 내가 복수씨를 왜 때려요?

미래 : 넌 안 때리냐? ...뭐, 내 입장에서 생각한 거니까, 너한테 해당이 안되는 걸 수두 있어. ...어쨋건 그래.

         ...만약 걔 속 썩일거면, 아예 걔한테서 떨어져. 응? 알았냐?

경 : ...치질 하나 갖구...

미래 : 아, 치질이 심하니까 그렇지, 이년아.

경 : 언니.

미래 : 왜?

경 : (우울하게) 언니한테 복수씨는 인제, 남자가 아니예요?

미래 : 뭐?

경 : (상념에 빠진 듯) 복수씨가 나한테 와 버렸을 때, ...언니는 꼭 복수씨 부인같은 얼굴루 날 봤어요.

미래 : ...

경 : 근데, 지금은... 간호가 같은 얼굴루... 날, 환자 보호자 대하듯 해요.

미래 : ...(쭈뼛댄다.) 그래에. 나, 간호사 공부 하잖어.

경 : ...언니가 간호사 노릇하는 거 참 좋은 일인 거 같애요. ...그치만, 나까지 간호사 만들진 말아요, 언니.

      ...나한테 복수씬 환자가 아니라, 남자거든요. ...난, 그 사람 애인 할래요.

      ...속두 썩이구, 일두 부려먹구, 싸우구, ...그럴래요. (그리곤 짜장을 먹는다.)

미래 : ...(한참을 꼬나본다.) 이기적인 년. ...저 좋은 거 다 한다네.

경 : (입을 오물대며) 병 하나 땜에, 주변사람들이 다 환자 취급하면, ...숨 막히잖아요. (입가에 묻은 짜장)

미래 : ...입이나 닦어, 이년아. ...그래두 주변에서 긴장 빡 하구 있어야 돼. ...(한심한 듯) 니가 뭘 알겠냐?

경 : (냅킨으로 입을 닦는다. 어둡게) 그깟 치질, 뭐.

미래 : ...(바락) 아, 빈혈두 있잖아, 기집애야. ...으유, 짜장 국물이나 흘리구... 다 큰 기집애가...

경 : (얼핏 앞섶을 본다. 짜장국물이 튀었다. 냅킨으로 힘껏 닦아댄다.)

미래 : (인상을 쓰며) 옷에 구멍나겠다.

경 : (문득 미소가 어린다.) 귀엽죠?

미래 : 드럽지, 귀엽냐?

경 : 헤.



11. # 연습실 앞 (낮)


경과 미래가 나란히 걸어온다.

경이 미래에게 껌을 건내고 미래는 경에게 사탕을 건낸다.

경은 사탕을 물고, 미래는 껌을 씹는다.

멀리 강이 보인다.


미래 : 아, 진짜. ...니네 오빠 왜 그러냐? 또 왔다, 야.

경 : ...(조심스레) 언니가 좀 뭐라 그래요. 싫으면...

미래 : 그랬어어. ...오늘은 작살을 낸다, 내가.


미래, 인상을 쓰며 강 앞으로 걸어간다.


미래 : 아저씨. 나한테 맞구두 정신을 못차리냐? 동생 앞에서 한 대 더 맞을래?

강 : ...싫다. ...너 보러 온거 아니니까, 신경꺼라.

미래 : ...그럼?

강 : 경아.

경 : (멀리서 지켜보다가 강 앞으로 걸어온다.)

강 : (수표를 준다.) 이걸루 니네 언니 선물 좀 사라.

경 : 응?

강 : 니 언니 생일선물. ...여태 돈으루 줬는데, 선물 하나 사 보자. 난 못 골라.

경 : (돈을 받는다.)

강 : 나머진 니 용돈하구... 간다. (승용차 문을 연다.)

미래 : (당혹스런 눈빛으로) 아저씨. 그걸, 집에서 얘한테 주면 되지, 왜 구지 여기와서 주냐?

강 : 쟤한테 물어 봐. 한 달에 쟤랑 나랑 집에서 몇 번이나 마주치나... (승용차를 몰고 간다.)

미래 : (경에게) 야, 니네 오빠. 일부러 내 앞에서, 니네 언니 선물 사라 그러는 거 아니냐?

경 : ...글쎄. 나두, 오빨 잘 몰라요. ...근데, 증말, 마주친 적이 드물어요.

미래 : 아냐. 조고 일부러 그러는거야. ...나더러 질투하라구... 아, 유치해. 유부남 주제에...



12. # 액션스쿨 - 사무실 (낮)


복수가 시나리오를 읽으며 낄낄댄다.

양찬석이 사무실 한켠에서 복수를 향해 온다.


양찬석 : 재밌냐, 시나리오?

복수 : (한심한 듯) 으찌나 유치한지... ...완전 짬뽕, 잡탕, 개판 5분전이네.

         ...장풍에 폭탄 터지구, 지붕에서 박쥐처럼 떼루 날아 다니구, 히히. ...도포자락으루 회오리 만들구...

양찬석 : 홍콩영화두 다 그래, 뭐.

복수 : 아, 중국은 원래가 무술하는 나라니까 그렇지... 우리나라 초가지붕에서 볼만 하겠다.

양찬석 : (시나리오를 뺏어보며) 무슨 초가지붕이야? 기와집이지.

복수 : 기와집이예요?

양찬석 : 초가지붕에서 임마, ...어떻게 열댓명이 날아 다니냐? 열댓명이 나란히 서 있기두 힘들겠다.

복수 : 아, 어쨋건... 유치해서 못 봐줘.

양찬석 : 원래 액션은 유치한 맛에 보는 거야.

복수 : ...액션전문가가 그런 말을 하다니... 실망 했어, 감독님.

양찬석 : 나처럼 돈을 많이 버는게, 액션 전문가다, 임마.

복수 : ...(궁시렁) 아, 돈자랑. ...(버럭) 통장 한 번 까봐, 감독님.

양찬석 : (대뜸) 야. ..너, 손 괜찮어?

복수 : ...네.

양찬석 : (진지하고 엄하게) ...난 니가 괜찮다면 괜찮은 걸루 안다? ...괜찮어?

복수 : (찔리지만) 네. ...괜찮아요.

양찬석 : 알았다. 연습하자. (사무실을 나간다.)


복수, 양찬석을 따라가며 계속 오른손을 쥐었다 놓았다 한다.



13. # 액션스쿨 (낮)


앞선 시나리오상의 대서사 활극의 콘티를 만드는 액션팀.

양찬석의 지도하에 액션스쿨 어느 지점을 지붕삼아, 10여명이 박쥐떼처럼 날고,

지붕 위를 그림자 지나가 듯, 발이 바닥에 닿지도 않은 상태로 달려가는 움직임을 만들어 본다.

칼든 우찬석과 복수가 적이 되어 지붕 위에서 홍콩무술을 한다.

이 때, 복수의 발에 채여 우찬석의 칼이 떨어져 내리고

우찬석은 칼을 들고 달려드는 복수를 피해 절벽 아래 호숫가로 떨어지는 간이 액션장면.

떨어지는 우찬석을 보며 복수가 잠시 오른 쪽 다리를 폈다 굽혔다 한다. 계속 손으로 허벅지를 주무른다.

얼핏 복수의 눈가에 그늘이 진다.


양찬석 : (플로어에서 복수를 보며) 복수야.

복수 : 네, 감독님.

양찬석 : 너, 발놀림이 왜 그러냐?

복수 : (놀라며) 네?

양찬석 : 둔해.

복수 : ...

양찬석 : 찬석이 찰 때, 박자를 맞춰서 차. ...다다다 세 번 차지 말구, 네 번을 차.

            박자 세서. 이렇게. (입으로 운율을 맞추며 발 시범을 보인다.) 응?

복수 : 네. ...(어둡게 혼잣말) 내 애인이 음악간데, ...박자쯤이야 우습지.


그러면서 계속 오른쪽 다리를 굽혔다 폈다 한다.



14. # 종합병원 앞 건너편 거리 (낮)


경이 서성댄다. 병원을 바라보며...

복수가 경을 향해 뛰어온다.


복수 : (웃으며 달려와 경의 손을 잡는다.)

경 : ...(웃으며 복수의 이마를 짚어본다.) 머리 안 아파요?

복수 : (웃으며 경이 짚은 이마의 손을 만지작댄다.) 네. 근데, 왜 여기서 만나자 그랬어요? 여기 뭐... 있어요?

경 : 그냥, 액션스쿨에서두 가깝구, 우리 연습실에서 가깝구... 그래서... 근데... 별루 갈데가 없네?

복수 : ...딴데 갈까요?

경 : 안돼요. 좀 있다 연습실 다시 가야 돼요. ...우리... 그럼, 콜라 사서 저기 병원이나 갈까요?

복수 : ...(싫다.) 아무리 갈데가 없어두 그렇지, ...왜 병원을 가요?

경 : 잔디두 있구, 벤취두 있구, 땅두 넓구 그렇잖아요. (복수의 손을 잡아끈다.)



15. # 종합병원 정원 (낮)


벤취에 앉아서 콜라를 마시는 경. 복수는 불편한 표정으로 경을 본다.

경은 환자복을 입고 두런두런 대화를 하는 환자들을 유심히 본다.


경 : 환자복 저거... 되게 편하겠다. ...저거 하나 얻어서, 잠옷으루 입으면 좋겠다, 그죠?

복수 : (입만 벌리고 경을 본다.)


둘의 벤취 앞으로 휠체어를 밀고 가는 간호사와 환자가 보인다.


경 : 야, 재밌겠다. 나두 휠체어 한 번 타 보구 싶다.

복수 : ...(어이없는 눈으로 경을 본다.)

경 : 복수씨, 휠체어두 하나 사 줘요. 걸어다니기 귀찮은데...

복수 : ...

경 : (복수를 보며) 네?

복수 : (궁시렁) 아무래두 돌았어. 병원 오잘 때부터 알아봤어, 내가.

         (일어서며 경의 손을 잡아 끈다.) 경이씨, 정신과 치료받자. ...그 날의 충격이 커, 지금.

경 : ...그럼, 나는 정신과 치료 받을테니까, 복수씬 뇌종양 치료 받아요.

복수 : ...(잡았던 경의 손을 풀며) 아, 난 안된다니까요. 난 치료가 안된다니까?

경 : ...안되는 건 아는데... 그냥 손을 놓진 말자구요.

복수 : ...

경 : ... (고개 숙이며 나직하게) 그냥... 손을 놓진 말아요, 우리. (그리곤 복수의 한손을 두손으로 잡는다.)

복수 : (물끄러미 경을 본다.)

경 : ...(복수를 바라본다.) 1초라두, 더 시간 벌 수 있는 거면, ...1초에 목숨 걸자구요.


복수, 아련한 경의 눈빛이 복수의 눈에서 흐릿해진다.



16. # 지하철 (낮)


나란히 옆에 앉아 헤죽대는 경과 복수. 무릎 위엔 스테로이드 주사약 캡슐이 놓여있고 경의 손엔 일회용 주사기가 들려있다.

이제 둘은 뇌종양을 명랑하게 받아들인다.


경 : 머리가 그렇게 아파요?

복수 : (끄덕) ...아침에는요... 스컬이 난리 부르스가 나요.

경 : 스컬이 뭐예요?

복수 : 아, 뇌두 몰라요? (궁시렁) 무식하네.

경 : (궁시렁) 되게 잘난척하네.

복수 : (스테로이드를 들어 보이며) 이게, 뇌압을 내리는 거래요. ...머리가 좀 들 아플거라네? 이거 맞으면?

경 : (버럭 화를 낸다.) 거봐요. 진작 병원갔으면, 들 아팠잖아요. ...그렇게 미련을...

복수 : ...(경의 입을 가린다. 당황해서는) 아, 왜 이렇게 아줌마같이 구냐? 시끄럽게...

         (손을 내리며) 근데, 너무 많이 맞으면 안 좋대요.

경 : 그래두, ...너무 아프잖아요, 머리가... 근데... 주사기 놓을 줄 알아요?

복수 : 네. ...그냥 팔에 푹 찔러 넣으래요, 의사가...

경 : ...안 무서워요?

복수 : 무섭죠. ...어뜩케 하냐? 내 손으루?

경 : 내가 해 주까요?

복수 : (미소) 네.

경 : (봉투에서 소독약을 묻혀 복수의 팔을 문지른다. 그리곤 일회용 주사기의 비닐을 뜯는다.

      스테로이드 약제를 주사기 안에 넣는다. 간호사처럼 꼼꼼히 잘한다.)

복수 : (환한 미소) 야, 진짜 간호사... 악.

경 : (복수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주사기를 복수의 팔에 푹 찔러 넣는다.)

복수 : (몸을 비비꼰다.)

경 : (주사기를 빼곤 복수의 팔을 솜으로 비빈다.) 됐다.

복수 : (울상) 아, 말을 하구 찔러야지. ...(겁에 질린 눈으로) 경이씨, 무서워.

경 : 히. 재밌다.


약과 주사기를 봉투에 주워담는 경. 팔을 부비며 고개를 드는 복수.

주변 사람들이 놀란 듯, 이상한 듯, 둘을 바라보고 있다.


복수 : (사람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젓는다.) 아, 뽕 아니예요. ...뇌종양 약이예요.

경 : (그제사 고개를 들며 복수를 본다.) 네?

      (그리곤 복수가 보는 앞 사람들을 본다.) ...뽕 아니예요. 이 사람이 뇌종양 걸렸거든요.


사람들이 더 이상한 눈으로 둘을 본다.

복수, 사람들을 외면하며 경의 손을 지긋이 잡는다.

경, 복수가 자신의 팔을 누르고 있는 솜을 자신이 잡아서 복수의 팔을 눌러준다.

복수, 행복하게 미소짓는다. 경도 복수를 바라보며 미소짓는다.


복수 : 뇌종양 걸린 사람 첨 보나? (미소) 인제 연습실루 가요?

경 : 네. 복수씨는요?

복수 : (미소) 골칫거리 찾으러 가요.

경 : (미소) 엄마?

복수 : (끄덕)



17. # 성호의 초등학교 - 교무실 (낮)


복수가 성호의 담임 앞에 서 있다.

성호의 담임이 학적부를 확인해 준다. 학적부엔 성호의 전학지가 적혀있다.



18. # 밴드 연습실 (밤)


키보드가 말을 듣지 않는다. 경의 입이 나왔다.


정국 : (못마땅한 듯) 음악 안하기루 작정을 했구나?

별리 : 그거 왜 그렇게 말썽이냐?

정국 : 도둑놈한테 미쳐서, 악기 관릴 안하는 거지, 뭐.

기홍 : 아, 형.

경 : (정국을 노려본다.)

정국 : ...뭐, 도둑놈을 도둑놈이라는데?

경 : 도둑놈 아니라니까...

정국 : 음악 집어치고... 그냥 나가서 놀아, 도둑놈이랑.

경 : (소리친다.) 증말 왜 그래? ...돈 돌려 줬잖아? 내가 우리 밴드 어뜩케든 해 보려구, 이리 저리 빌붙는 거 알어?

      기자한테두 빌붙구, 어디 녹음실 빈대붙을데 없나 두리번대구... 오빠는 뭘 했는데?

별리 : (안절부절) 야, 야. 이쁜아. 이쁜이 화났네. ...(정국에게) 넌 왜 그냐? 별 것두 아닌걸?

경 : 그만 둬, 그럼. ...나, 안해. (화가 나서 나간다.)

기홍 : (정국에게 짜증) 형. 왜 그러냐?

정국 : ...지쳐서 그래, 나두.



19. # 모 초등학교 정문 (낮)


초등생들의 하교로 정문앞이 북적인다.

정문에 서서 성호를 찾는 복수. 멀리서 풀죽은 듯 신발주머니를 흔들며 나오는 성호.

복수의 입가에 미소가 돈다.

복수, 성호의 뒤켠에서 성호를 얼싸안는다.


복수 : 성호야.

성호 : (놀란 듯 기쁜 듯 눈물이 난다.) 형.

복수 : (성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좋지?

성호 : (복수의 허리를 두 팔로 두르며 그대로 안긴다.)

복수 : ...(미소) 감격했어? 응? 형아한테?

성호 : (여전히 붙어서 고개만 끄덕인다.)

복수 : ...(성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엄마는?

성호 : (우울하게) 우리... ...아빠랑 같이 살아요.

복수 : (얼굴이 굳는다.) 응?

성호 : (복수의 몸에서 몸을 떼며 어둡게 복수를 본다.) ...아빠랑 같이 살아요.

복수 : (얼이 빠져서) ...성호... 니네 아빠?

성호 : ...(고개 숙인다.) 나는... 아빠랑 같이 살기 싫어요, 형.

복수 : ...(어둡게 성호를 본다.)

성호 : ...우리... 형이랑 같이 살면 안돼요?

복수 : (아프다.) ...성호야.

성호 : ...

복수 : 엄마한테, 형 본거 ...말하지마.

성호 : (고개를 끄덕인다.)


예쁜 성호의 얼굴을 쓸어 내리는 복수의 손이 떨린다.



20. # 까페 안 (밤)


경, 홀로 우울하게 앉아있다.


동진 : (멀리서 경을 향해 와서 앉는다.) 한 시간만 나랑 놀자. 밴드애들 한 시간은 걸린단다.

경 : ...(고개 숙인채) 네.

동진 : 근데... 딱 정리하구 나온거야?

경 : 아니요.

동진 : ...(경의 눈치를 읽는다.) 그냥, ...이 쪽팀 먼저 만나 볼라구?

경 : ...네.

동진 : 그래. 뭐 그게 더 낫다. ...근데, 왜 화가 났냐?

경 : ...

동진 : 팀에 불화났어?

경 : ...자꾸... 복수씨 더러 도둑놈이래잖아요.

동진 : (어이가 없다. 한동안 말문이 막힌다.) 그럼... 그거 땜에 나오겠단 거야? 팀에서?

경 : 네.

동진 : ...(실소) 음악적 견해차두 아니구, 비젼 보구 나오는 것두 아니구, ...니 애인 흉봤다구 나온거야?

경 : ...(멍하게) 음악적 견해차 없어요. ...그리구, ...내가 언제 비젼 따지나요? 음반 하나만 내면, ...지금은 별다른 욕심 없어요.

동진 : ...(어이가 없어서 허공을 본다. 힘이 빠진다.) 니가 한심한 건지, 그런 널 띄워 보겠단, 내가 한심한 건지...

         (낄낄 웃는다.) 전 경. 난... 내가 세상을 참 잘 안다구 생각했거든?... 그리구 세상이 참 선명했거든, 난?

         ...근데, 너 땜에 다 배렸다. 세상이 점점 안 보여. 너 땜에 별꼴을 다 봐서...

         (키득대며 웃는다.) 야, 전경. ...도루 들어가. 니네 밴드루...

경 : ...(진지하게) 그게 낫겠죠?

동진 : (낄낄 웃는다.)

경 : (헤죽) ...사실 다른 밴드루 갈라 그래두, 들구 갈 키보드두 없어요.

동진 : 키보드까지 팔아 먹었어?

경 : 고장났어요. 맛이 갔나봐요.

동진 : 니 손 거쳐서 맛 안간게 있냐? 나 봐. ...너 땜에 완전 맛갔어. ...내가 얼마나 잘 나갔는데...

         인제 여자랑 잠두 안자, 귀찮아서...


경의 수줍은 미소.

동진의 핸드폰이 울린다.


동진 : (핸드폰) 응. ...야, 오지마. ...키보디스트가 키보드가 없대.



21. # 성호네 집 (밤)


멀찍이서 성호집 대문을 바라보는 복수.

대문을 열고 나오는 유순의 모습이 보인다. 쓰레기를 대문 밖으로 가져나오는 유순을 보곤 한 발짝을 내딛는 복수.

그러나 대문 안에서 파자마 바람으로 나오는 성호부. 조그만 비닐 봉투를 들고 있다.


성호부 : 쓰레기 봉투두 돈이야. ...그걸 그렇게 헐렁하게 묶어서 버리면 쓰나? (비닐 봉투를 내밀며) 이거 마저 쑤셔 넣어.

유순 : (봉투를 다시 풀며) 꽉 찼구만...

성호부 : 조동이 놀리지 마. ...니 발루 기어 들어왔으면, 잔말말구 살어.


유순, 입을 다문채 쓰레기를 눌러 넣는다.

멀리서 유순을 지켜보는 복수의 눈에 눈물이 어린다. 복수의 가슴이 너무나 아리다. F.O.



22. # 복수의 집 - 툇마루 (아침)


아침상에 마주앉은 복수와 중섭.

복수는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한다. 복수는 퉁퉁 부었다.


중섭 : 왜 왼 손을 써?

복수 : (부어서) 남이사...

중섭 : 복 달아 나.

복수 : 달아날 복이 어딨어?

중섭 : ...(의아하게) 이녀석, 왜 화가 났어?

복수 : ...(퉁명스레) 반찬이나 많이 먹어. ...유기농이래. ...농약 안친거...

중섭 : 니 애인이 해다 준거야?

복수 : 아니. 우리 누나가...

중섭 : 뭐?

복수 : (짜증) 아우, 말 시키지 말구 밥이나 얼른 먹어. ...오늘따라 되게 귀찮게 구네. 밥 먹구 얼른 일이나 나가셔.

중섭 : 오늘 일요일라 일 없어. (이상한 듯) 아, 녀석... 왜 이러지? (복수의 눈치를 살피다가) 아빠가... 재미난 거 보여 줄까?

복수 : 싫어. 안 봐.

중섭 : 재밌는 거 뵈주께. (방으로 쪼르르 달려간다.)

복수 : (짜증) 아, 귀찮다니까...


중섭이 클라리넷을 가져 나와 툇마루 한 켠에 선다.


복수 : 으응? 밥 먹다 말구 뭐하는 짓이야?

중섭 :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넌, 밥 먹어. 난... 그 왜... 밥상 돌아다니면서 연주하는 사람들 있지?

         (꾸밈없는 미소) ...아빤 악사구, 넌 부잣집 아들이야. 고급식당에서 밥 먹는, 재벌집 자식이야.

복수 : (인상을 찡그린다.) 아우, 뭐야, 유치하게...


중섭, 잠시 삐삐 소리를 내더니, 라흐마니노프의 “Vocalise"를 연주한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 중섭을 바라보는 복수.

훌륭한 연주는 아니지만, 어설프기 짝이 없지만, 분명 열심히 연습한 연주다.

복수의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입 벌리고 있다가 밥알을 흘린다. 재빨리 주어 먹으며 또 입이 벌어진다.

중섭, 몇 소절이 지나서 연주를 멈춘다.


복수 : (어느새 기분이 풀렸다.) 다 해. 끝까지...

중섭 : 여기까지만 익혔어. (미소) 이제... 밥 맛 돌아왔어?

복수 : ...천재다. 내가 사 온 책보구 배운거야?

중섭 : 응.

복수 : ...천재다. ...내 애인하구 잘 어울린다, 아빠.

중섭 : ...(미소) 그래?

복수 : (개구진 미소) 인제 아빠가 밥 먹어. 내가 악사할게. ...아니야, 아니야. 밥 얹혀. ...한 번만 더 해봐. 팁으루 백원 줄께.

중섭 : 그래.

복수 : (어항을 자신의 무릎에 얹는다.) 경아. 니 시아버님두 음악가야.


다시 한번 vocalise를 연주하는 중섭.

밥상 옆에 앉아 중섭을 바라보는 행복한 복수와 마루 위에 선 중섭의 모습이 F.S.로 보여진다.

마치 화목한 한 때를 액자에 담은 듯 부자의 모습이 그림처럼 행복하다.



23. # 경의 집 - 거실 (아침)


신문을 들고 식당으로 향하는 강.

경이 방에서 부리나케 달려 내려온다. 그리곤 몰래 선물상자를 강에게 내민다.


경 : (속삭인다.) 언니꺼...

강 : (선물을 받아 들며 미소) 수고했다.

경 : (눈이 똥그래지며) 오, 웃었어.


다시, 인상을 굳히며 식당으로 향해 가는 강.


경 : (졸쫄 쫓으며) 웃었어.


강, 인상을 쓰며 경을 쏘아본다. 찔끔 밀린다.



24. # 경의 집 - 식탁 (아침)


경과 강이 들어선 식탁에 인옥과 미선이 식탁을 마련하고 앉는다.

자리에 앉는 강과 경. 미선은 오늘 푼수가 아니다.


강 : 아버지는요?

미선 : ...(인옥의 눈치를 보며) 외박하셨어요.

인옥 : (별일 아닌 듯) 먹자, 얼른.

강 : (인옥을 바라본다.)

인옥 : (무표정하게 수저를 든다.)

강 : (인옥을 보며) 한껀 잘 하셨네요. ...아부지 쫓아내구, 이 집 어머니가 갖게요?

인옥 : (눈을 내리깐 채 수저 든 손이 떨린다. 그러나 이내 평정을 찾는다.)

경 : (강과 인옥의 눈치를 본다.)

미선 : (넋이 빠진채 수저를 든다.)

경 : ...언니.

미선 : 네?

경 : 기도.

미선 : 아. ...내 정신 좀 봐. (기도한다.)

강 : (수저를 든다.) ...왜 미역국이 없냐?

미선 : (고개를 든다.)

경 : ...(이 분위기를 수습하고 싶다. 주머니에서 작은 선물을 내민다.) 언니. 생일 축하해요.

미선 : (작은 감동) 아가씨.

인옥 : ...(미선을 본다.) 너... 생일이니? ...깜빡 했다, 얘. ...통 달력을 못봤네.

강 : 어머닌 이혼할 날만 보느라, 남의 생일 볼새가 없죠.

인옥 : ...

강 : (미선에게 선물을 내민다.) 받아라.

미선 : (강의 선물을 받는다. 그러나 표정이 그리 좋지 않다.)

경 : (웃으며 오버한다.) 오빠 철 들었다. 선물을 다하구...

미선 : (우울하게) 안하던 걸 하니까, ...어색하네요, 난...

강/경 : (미선을 본다.)

인옥 : ...선물을 받았으면 좋아해야지, 뭐 그러니, 넌?

강 : 어머니두 아버지 선물 받으면 그러시잖아요. ...(국을 뜬다.) 우리집 전통이니까 뭐라 마세요.

경 : (눈치보느라 숨이 막힌다.)


이 때,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난다.

돌아보며 일어서는 셋. 인옥만 수저를 들고 식사를 한다.



25. # 경의 집 - 거실 (아침)


현관을 들어서는 낙관.

경, 강, 미선이 현관 앞에 서서 낙관을 맞는다.


강 : 지금 들어오세요?

낙관 : 응.

미선 : 아침진지 드세요, 아버님.

낙관 : 먹었어. 옷 갈아 입구 바루 나가야 돼. (경에게 서류봉투를 내민다.) 이 거... 니 어머니 줘. (방으로 들어간다.)


봉투를 들어보는 경. 슬그머니 서류를 본다. 이혼서류다.

입이 벌어지는 경.



26. # 경의 집 - 식탁 (아침)


인옥은 무표정하게 홀로 꾸준히 식사를 하고 있다.



27. # 미래의 집 - 옥상 (아침)


복수로 부터 반찬통을 받아 들고 선 미래.


미래 : (복수에게 애원한다.) 복수야아. 아부지한테 얘기해.

복수 : 야. 우리 아빤, ...나, 죽을 병 걸린 거 알면, 그 자리에서 죽어.

미래 : 나, 요즘 잠을 못 자, 복수야. ...아무두 니가 위험한 거 모르는데, 나 없는 데서 뭔일 나면... 그럼 나, 어뜩하냐? 응?

         ...딴 사람은 몰라두, 아부지한텐 말하자. ...딴 쪽은 내가 다 뚫어놔서, 정보통이 있으니까 괜찮아. ...전 경, 꼬붕이...

         니네 집만 해결 하면 돼. ...나, 불면증 걸렸어, 복수야. ...아부지한테만 얘기하자.

복수 : (미소) 미래야.

미래 : 응.

복수 : 알았어. ...얘기할게. 됐냐?

미래 : 진짜다?

복수 : (미소) 응.

미래 : (미소) 그래, 그렇게 말을 잘 들어야 이쁘지. (뒷통수를 쓰다듬으며) 많이 아프지, 머리.

복수 : 응.

미래 : ...(아련히 복수를 본다. 한숨.) 에유. 우리 복수... 자꾸 한숨이 난다, 너 보니까...

복수 : 아, 또 이상하게 쳐다본다. ...갈게, 미래야. 반찬 잘 먹었다. 아부지가 좋아하드라, 맛있다구...

미래 : 또 담아주께, 가져가라.

복수 : (돌아선다.) 아, 지금 안돼. ...일하러 가야 돼.

미래 : (인상을 쓰며) 그 일두우...

복수 : (획 돌아보며 활짝 웃는다.) 송미래.

미래 : 응.

복수 : (웃으며) 진짜 간호사하면 완빵이겠다. ...진짜 잘하겠다. 잔소리두 잘하구...

미래 : (미소) 당근이지, 새꺄. 내가 뭐는 못하냐?

복수 : 기집애. ...고맙다, 미래야. ...오빠가 돈 벌면, 이쁜 간호사복 사주께.

미래 : (미소)

복수 : (현관으로 향하며) 잠 안온다구, 수면제 같은 거 먹구 그러지 마라. (내려 간다.)

미래 : (큰 소리로 복수 등 뒤에) 간호사 되면, 병원에서 옷 공짜루 나와, 바보야.

         ...(물끄러미 서 있다. 표정이 아리다. 눈가가 젖는다.) ...어쩌다 병이 났냐. ...나 버려서, 니가 벌 받는 걸까봐...

         마음이 시리다, 내가...



28. # 밴드 연습실 (낮)


연습실 안의 경이 자기의 물건을 챙긴다.

별리와 정국, 기홍이 경을 바라본다.


별리 : 진짜 접는거냐, 너?

경 : ...응.

정국 : (경에게 다가간다) 경이야.

경 : ...

정국 : (경에게 손을 내민다.)

경 : (정국을 본다.)

정국 : (진지하게) 악수루 풀자.

경 : (정국을 보며) 복수씨한테 도둑놈이라 그러지 마.

정국 : (진지하게) 알았다.

경 : 복수씨, ...여기 자주 놀러 오라 그럴거야.

정국 : (진지하게) ...그래라.

경 : (정국의 손을 잡는다. 손을 흔든다. 힘차게... 그리곤) 키보드... 신경 잘 쓸게.

정국 : (고개 끄덕.)

별리 : ...(기홍에게) 이쁜이 독종이다.

기홍 : 막내라 고집이 세.


이 때 경의 핸드폰이 울린다.


경 : 네.



29. # 액션스쿨 앞 (낮)


복수가 핸드폰을 한다.


복수 : 경이씨. ...나, 주사 놔 줄래요?



30. # 밴드 연습실 (낮)


경 : (핸드폰 폴더를 닫으며 퉁명스레) 그리구, 오늘은 연습 못해.

기홍 : 왜?

경 : (여전히 퉁명, 당당) 오늘은 그 사람 만나러 가야 돼.

정국 : (인상을 긁는다.)

경 : 왜?

정국 : 아니, 가라구.

경 : (씩 웃는다. 애교스레) 오빠, 오늘만 봐 줘. 응?



31. # 액션스쿨 - 플로어 (낮)


복수와 양찬석이 장비를 챙기고 있다. 우찬석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


양찬석 : (우찬석을 보며) 뭘 했길래 감기가 드냐? 한 여름에? 쟤 땜에 졸지에 내가 노가다 하네.

복수 : 돈값을 해야죠, 감독님. 돈두 많이 버는데...

양찬석 : 너 왜 나 볼 때마다 자꾸 돈타령이냐?

복수 : 돈타령은 감독님이 시작했지.

양찬석 : CF 촬영은 잡혔어?

복수 : 다음주.

양찬석 : 계약금 받았어?

복수 : 네.

양찬석 : 콘티짰어?

복수 : 네.

양찬석 : 어뜩케?

복수 : 안 가르쳐줘요. 이번 꺼에 배껴 쓸라 그러죠?

양찬석 : 행여 쓸만한게 있기나 하겠다?


이 때, 핸드폰.


복수 : 네. (놀란다.) 엄마.



32. # 복수의 집 - 마당 (낮)


이젤이 놓여진다. 이젤 위에 캔버스를 올리는 중섭.

수돗가에서 유화용 기름을 따른다.

이젤 앞에 자리잡고 앉는 중섭. 소묘연필을 들고 캔버스 앞에 펼쳐진 마을을 바라본다.



33. # 다방 (낮)


다급히 다방 안으로 들어오는 복수.

유순이 복수를 본다. 유순, 옅은 미소를 띠우며 한 손을 살짝 든다.

복수가 유순을 향해 뛰어와 앉는다.


복수 : (애틋한 눈으로) 엄마.

유순 : ...(미소) 잘 있었어?

복수 : ...(애틋하게 바라보다가) 도망가서 사니까... 좋아?

유순 : (미소) 응. 좋아.

복수 : 뭐해 먹구 사는데?

유순 : 잘 먹구, 잘 살어.

복수 : 근데, 난 뭐하러 만나재? 혼자 잘 먹구 잘 살지.

유순 : (봉투를 내민다.) ...가게 정리한 돈이야.

복수 : ...

유순 : 복수야.

복수 : 왜?

유순 : 너, 성호 만나거 알어.

복수 : ...(유순의 손을 잡는다.) 엄마. ...안돼. 그 집에서 살지 마. ...세상이 좀 힘들어두, 그렇게 살면 안돼.

         ...눈 앞에 뻔한 불행찾아 들어가면 안돼. 응, 엄마? 이 돈 갖구... 딴 거 하자. ...그래, 엄마.

유순 : 복수야.

복수 : 응?

유순 : (단호하다.) 인제, ...난 니 엄마 아니야.

복수 : ...

유순 : 아니, 원래 아니였는데... 니가 억지루 엄마 만들었어. ...넌, 옛날 고리짝에... ...내가 버렸어.

         ...아들 아닌걸루, 이미 결판 난 거였어. ...넌 엄마 없는 자식이야. ...그거 받아들여. 그래야, 니 인생이 편해.

복수 : (눈자위가 빨개진다.) 안 편해. 엄마 없으면 안 편해.

유순 : (눈가가 젖는다.) 그리구... 나두 편해. ...왜냐하면... 난 내 나쁜 과거 중에, 하나라두 버려야겠다.

         ...그래야, 나빴던 세월이 줄지. ...그 세월 중에 하나가 너하구, 니 아빠야. ...그거라두 버리자.

         (눈물 젖은 눈으로 복수를 바라본다.) 난, 그럴래, 복수야. (그리곤 애절한 눈으로 복수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유순의 손을 어루만지며 눈물짓는 복수.



34. # 미래의 집 - 거실 (낮)


큰 양푼에 배추 겉절이를 버무리는 미래.


미래 : 현지야.

현지 : 응.

미래 : 간 좀 봐. (여름배춧잎 한올을 현지의 입에 넣는다.)

현지 : 응. 됐네. ...근데, 요즘 이런 거 만들어서 엊다 갔다 나르냐?

미래 : (반찬통에 담는다.) 남이사, 기집애야.

현지 : ...너, 요즘 복수 만나냐?

미래 : 요게 뜸하다 했어. 언니, 언니하드니... 또 너, 너 하네? ...내가 울상을 짓구 있어야 싸가지가 생기냐, 넌?

현지 : 너, 복수 만나지?

미래 : 만난다, 어쩔래?

현지 : 니가 그래서 안되는거야. 한 번 쫑난 걸, 다시 주워담냐?

         ...그래. 그래두, 차라리 복수를 잡아라. 유부남한테 빌붙지 말구...

미래 : 아, 증말 싸가지없어, 기집애.

현지 : 인제 안 껄떡대, 그 유부남?

미래 : ...(문득) 그러게... 완전 개무시한다, 야. ...전화 한 통 없다? ...터프한 척은 줄창하드니, 지 와이픈 무서운가부다, 야.

현지 : (비아냥) 아쉬운 표정이 역력하다?

미래 : 너, 배추 겉절이에 얼굴 박구 싶냐?

현지 : 아으. 동생한테 한단 소리가...

미래 : 니 싸가지나, 내 싸가지나...



35. # 영화 촬영장 일각 (낮)


복수의 팔에 주사를 놓는 경.

복수는 검은 무명옷과 이마를 가르는 검은 두건을 맸다.


경 : 어머닌... 그렇게 사신대요?

복수 : 그런대요.

경 : ...

복수 : 난 인제 몰라요. 알아서들 살아야지, 뭐.

경 : ...(솜으로 복수의 팔을 문지른다.) 복수씨가 모르면 안되는데...

복수 : (경을 본다.)

경 : 복수씨가 하는 거, ...배우구 있는데... 난...

복수 : (물끄러미 경을 바라본다. 그리곤 고개를 돌린다.) ...모르겠어요.

경 : ...그럼... 나두 모르겠다. (미소)

복수 : (미소) 같이 모르죠, 뭐.

경 : 그러죠, 뭐.

복수 : 녹음기사 꼬셔 놓을 테니까요, 녹음실 얘기 잘 해봐요. 그래서 불렀어요.

경 : 네.



36. # 복수의 집 - 마당 (낮)


중섭의 유화가 얼추 윤곽을 드러낸다.

중섭시점의 집 앞 풍경이다. 그리고 그 골목길에 양복을 입은 복수가 서 있다.

고개를 갸웃하고 유화를 본다.


중섭 : 괜히 양복을 입혔나? ...그래두, 양복이 어울리는데, 녀석.

         (툇마루의 경이 물고기에게) 그지? 오빤, 양복이 어울리지?


집앞 풍경을 바라보던 중섭이 문밖에 언뜻 언뜻 비추는 미래의 머리를 본다.



37. # 복수의 집 앞 (낮)


미래가 대문을 서성이다가 옆쪽 화단에 쭈그려 앉는다.


미래 : 복수새끼, 전화두 안되구... 음식 다 쉬겠다. 어쩌냐?


이 때, 문을 열고 나오는 중섭. 놀래서 벌떡 일어난다.


중섭 : ...누구신가?

미래 : ...(당황한다.) 네. 복수친군데요. ...이거 전해 주려구... (반찬 담긴 쇼핑백을 내민다.)

중섭 : (호기심 어린 눈으로 미래를 바라본다. 그리곤 미소) 그럼... 그 음악한다는 아가씬가?

미래 : 네?

중섭 : (미소) 아가씨가 경이양인가?

미래 : 네? ...(우울한 눈빛으로) 네.

중섭 : 복수, 아직 올 때 안됐는데?

미래 : 네에. 전 그만 갈께요, 아버님.

중섭 : 커피 한 잔 줄테니, 들어와요, 경이 양.


쓸쓸한 표정으로 미소짓는 미래.



38. # 영화 촬영장 - 기와 지붕 위 (밤)


영화 비천무의 지붕 장면이 연출된다. 앞선 서사활극의 연습씬의 실사 장면.

박쥐처럼 지붕을 날아, 바퀴벌레처럼 지붕을 걸어 다니는 검은 무사들의 모습.

비등한 숫자로 적이 나뉘어져 지붕에서 활극을 벌인다.

복수와 양찬석의 활극이 클로즈업 된다. 양찬석의 역할은 연습때, 우찬석이 하던 액션이다.

복수와 양찬석의 칼이 맞부딪친다.

복수의 오른 편 다리가 떨린다. 떨리는 오른 손을 제지하느라 두 손으로 칼을 쥐는 복수.



39. # 촬영장 모니터 앞 (밤)


모니터를 보고 있는 경. 그 옆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는 우찬석.


감독 : 컷.

우찬석 : (마스크를 벗으며 복수를 향해) 고 복수, 발 끝에 힘을 줘.

경 : (물끄러미 마스크 벗은 우찬석을 본다.)

우찬석 : (문득 경을 본다.)

경 : ...

우찬석 : ...(그리곤 놀란다. 얼른 마스크를 쓴다.)

경 : ...저 아시죠?

우찬석 : (고개를 가로젓는다.)

경 : ...의사잖아요.

우찬석 : 아닌데요.

경 : 빈혈이라구 우기던 의사.

우찬석 : (푹 고개를 숙인다.)

경 : 근데, 선생님.

우찬석 : 네?

경 : 복수씨 빈혈 아니래요.

우찬석 : ...네?

경 : 오진하셨어요, 선생님이...

우찬석 : ...



40. # 영화촬영장 - 지붕위 (밤)


양찬석이 복수에게 다가온다.


양찬석 : (진지하게) 야, 고복수 너 발 괜찮은거냐?

복수 : 네.

양찬석 : 진짜지?

복수 : 네.


의혹의 눈초리로 복수를 바라본다.



41. # 중섭의 집 - 마당 (밤)


툇마루에 걸터 앉아 고개를 파묻고 있는 중섭. 계속 어깨가 흔들린다. 몸을 일으켜 끝내 소리도 내지 못한채 눈물만 흘린다.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쿵쾅쿵쾅 쳐대는 중섭. 아주 세게, 주먹으로 자신을 꾸짖듯... 쿵쿵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소리를 내려하나 소리가 안난다.


중섭 : (이내 외마디 억지로 목에서 터지는 소리) 복수야.


드디어 울음이 터졌다. 소리소리 질러대며 엉엉 울어대는 중섭.


중섭 : 우리 복수야. ...죽지마. 죽지마. ...복수야, 죽지마.


엉엉 울어댄다.



42. # 영화촬영장 (밤)


호숫가 가파른 언덕.

양찬석과 복수의 홍콩액션이 극을 치닫고 양찬석이 복수를 피해 언덕 끝으로 가 선다.

양찬석과 복수의 칼싸움이 화려하게 진행되고 복수는 양찬석의 손에 든 검을 3회전 돌려차기로 날려버리려는데,

순간 칼을 놓으며 물로 빠져 들려던 양찬석.

그러나 양찬석에 앞서, 복수가 오른 손에 쥔 칼을 놓치곤 다리가 휘청 꺽여서 벼랑 아래 물 속으로 빠져든다.


양찬석 : (놀라서) 고 복수.



43. # 영화촬영장 모니터 앞 (밤)


감독 : 컷. ...뭐야? 사고야?


모니터를 보던 경과 우찬석이 달려 나간다.



44. # 수중 (밤)


수중으로 빨려드는 복수.



45. # 촬영장 언덕위 (밤)


물 속으로 뛰어드는 양찬석.



46. # 촬영장 일각 (밤)


놀란 눈으로 호숫가를 바라보는 경.



47. # 수중 (밤)


복수가 수중 밖의 조명을 보며 허우적대지만, 오른 손과 오른 발이 제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겁에 질린 복수의 두 눈.

조명을 받으며 복수를 향해 다가오는 양찬석의 모습이 하늘을 나는 천사같다.

지그시 눈을 감는 복수.



48. # 복수의 집 - 마당 (밤)


이제 중섭은 없고,

마당 한 가운데 놓여진 캔버스 안의 양복입은 복수와 그런 복수를 지켜보는 어항속의 경만 남았다.



49. # 영화 촬영장 한켠 (밤)


누워있던 복수가 어스름하게 눈을 뜬다.

복수의 눈에 제일 먼저 경이 있다. 그리고 우찬석, 그리고 물에 젖은 양찬석.

복수, 정신이 들었는지 몸을 일으킨다.


복수 : 아우. 깜빡 졸았네. ...엔지지?

양찬석 : 됐다. 인제, 스턴트 할 만큼 했다, 너. ...이제부턴... 스턴트 할 때 처럼, 기를 쓰구 살면 된다. (돌아서 걸어간다.)

복수 : (일어서서 양찬석에게 간다.) 감독님. ...엔지 났잖아요. ...이거 할래요.

양찬석 : (돌아서서 복수의 뺨을 거칠게 때린다.)

복수 : (놀라서 양찬석을 본다.)

양찬석 : (소리친다.) 촬영하다 죽겠다구? ...웃기지마, 임마. ...꼭 빙신같은 것들이, 영화처럼 살라 그래.

            ...(숨을 죽인다. ...나직이) 여기서 목숨 걸지마. ...여기서 배운걸루, ...니 목숨에 목숨걸어. (돌아서 간다.)


어금니를 물고 걸어가는 양찬석의 눈가가 붉어온다.

힘없이 손을 늘어뜨린 복수의 모습.

경, 말없이 복수를 바라볼 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모여 선 복수와 경과 우찬석의 모습이 부감으로 보인다.



50. # 복수의 집앞 (밤)


경과 복수가 마주섰다.


복수 : 아프니까, 호강하네. ...경이씨가 집까지 바래다 주구...

경 : (차분히) 아파서, 좋겠다, 복수씬.


미소짓는 경이 복수의 두 손을 소중하게 잡는다.


경 : (나직하게) 내일부턴, 나랑 운동해요. ...힘 없는 곳에, ...힘 키워요. ...우리.


마주보는 둘의 눈빛이 슬프다.



51. # 복수의 집 - 마당 (밤)


툇마루에 걸터앉는 복수. 문득 마당 위 이젤을 본다.

복수가 그려진 마을 골목길. 미소짓는 복수.


복수 : (어항을 본다.) 경아. ...아빠 그림 시작했네?



52. # 중섭의 방 (밤)


문을 열고 들어가는 복수. 이부자리에 얌전히 누워 눈을 감은 중섭.


복수 : (중섭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소짓는다. 장난스레) ...내가 그렇게 못생겼어, 아빠?

중섭 : ...

복수 : (중섭 옆에 앉으며) 되게 못생기게 그렸드라. 눈이 점이야, 그냥.

중섭 : ...

복수 : (중섭의 손을 살며시 잡는다.) 아빠가 그림 그려서... 기분 째져. ...집이 따뜻해.

         (미소띤 복수의 표정이 점차 변한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아빠? (눈을 어디다 둘지 몰라 눈동자가 방황한다.)


절반이 남은 소주병이 중섭의 머리맡에 놓여있고, 그 위엔 흩어진 수면제 껍질들...


복수 : 아빠. (중섭의 얼굴이며 몸을 더듬기 시작한다.) 아빠.


상체를 일으켜 흔들어 보고, 얼굴을 두드려 보지만 반응이 없다.


복수 : 아빠.


중섭을 안고 있는 복수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중섭의 품에 얼굴을 묻는 복수. 목이 막힌다. 가슴이 파래진다.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떠는 복수.


복수 : (흐르는 눈물. 자신의 얼굴을 중섭의 얼굴에 부빈다. 목이 튼다.) 왜 이렇게 차가워, 아빠?


이제서야 목을 놓아 울어대는 복수의 통곡.


복수 : 아빠아....



53. # 복수집 - 마당 (밤)


마당까지 퍼지는 복수의 눈물과 울음소리는,

이제 바람이 되어, 이젤 위 캔버스를 바닥으로 밀어 떨어 뜨린다. 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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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수다쟁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9.25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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