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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멋대로 해라] 19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06.05.18|조회수377 목록 댓글 0

[네 멋대로 해라] 19











1. # 복수의 집 - 대문 안 (밤)


여전히 문가에 젖은 눈으로 선 복수.



2. # 복수의 집 - 대문 밖 (밤)


여전히 문 앞에 선 채 대문만 바라보는 경.



3. # 복수의 집 - 대문 안 (밤)


고개 들어 어둡게 문틈을 바라보는 복수. 한참을 서 있던 경이 스쳐 사라진다.

망설이듯 안쪽 문 앞에 서서 한참을 선 복수. 그제사 살짜기 문을 열어본다. 경이 없다.



4. # 대문 밖 (밤)


밖으로 나가 골목을 둘러보는 복수. ...경은 없다.


복수 : (물끄러미 텅빈 골목을 바라본다. 어둡게 혼잣말) 어뜩케, 그래요? ...그럼 안되지.

경 : (E) 복수씨.


복수, 소리가 나는 쪽을 본다. 경은 이미 복수집 담벽 오른편 난간에 서 있다.

복수, 입을 벌린채 경을 올려다 본다.

마당 안으로 뛰어 내리는 경. 복수, 대문 안으로 급히 들어선다.



5. # 복수집 - 마당 (밤)


그렇게 서로 마주 선 둘.


복수 : ...(말을 잃고 물끄러미 경을 바라본다.)

경 : ...(다부진 입매로 복수를 바라본다.)

복수 : ...

경 : ...(진지하고 나직하게) 나... 안 갈래요.

복수 : ...

경 : (고개 숙인다.) 안 갈래요. 복수씨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요.

복수 : ...

경 : ...점점 더... 떨어져 있는 시간이 아까워요.

복수 : ...(혼란스런 눈빛) ...그래두... 어뜩케 그래요?

경 : ...

복수 : ...(망설이듯) 내가, ...그러면 안되잖아요.

경 : ...(나직하게)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 건... 지금이 아니라, 훨씬 전이었어요. ...그 전에, 나, 좋아해선 안되는 거였구, ...

      ...그 전에, 나, 봐서는 안되는 거였구, ...그 전에, ...내 지갑 훔쳐선 안되는 거였어요. ...그때, 그러지 말지요.

      ...(애틋한 눈으로 복수를 본다.) 왜 그랬어요, 복수씨?

복수 : ...

경 : ...

복수 : ...나는요... (말문이 막힌다. 작은 심호흡을 하며 고개 숙인다.) ...그래두, 지금 그러면 안되잖아요.

경 : 난... ...(복수로부터 시선을 외면한다.) 복수씨랑... 사랑할 수 있는 거, 몽땅 다 할래요. 이젠, 하나두 안 빼구... 다 할래요.

      ...(다시 복수를 바라보는 눈가가 촉촉히 젖어온다.) 복수씨가 너무 아까와서, ...하나라두 빠뜨리기 싫어요, 난...

복수 : (경을 바라본다.)

경 : ...(고개를 숙인다.)

복수 : ...그래두, 내가 그러면 안되잖아요. ...위험하잖아요.

경 : ...(인상을 쓰지만 자꾸 눈물이 난다.) ...증말 위험한 건, ...잔머리 쓰는 사랑이예요.

복수 : ...(입을 벌리며 크게 숨을 내쉰다.)

경 : ...우리, ...마음 흐르는 대루... 그냥, 걸어가요. 네?

복수 : (슬픈 듯 허공을 보며 궁시렁) ...아, 이게 웬 떡이냐? ...이쁜 여자가 자꾸 같이 자재네? (경을 본다.)

경 : ...(눈물을 닦으며 자신의 새끼손가락 반지를 빼어 내서 복수의 손가락에 끼운다.)

복수 : (경의 반지는 복수의 새끼 손가락 손톱을 덮을 정도로 손가락에 맞지 않다.)

경 : ...(진지하고 나직하게) 돈 벌면... 맞는 걸루 사 줄께요.

복수 : (안타까운 눈으로 경의 손을 잡는다.) ...나, ...큰일나요, 경이씨. 나, 징그러워져요오.

경 : (복수의 얼굴을 손으로 어루 만진다.) ...면도기 어딨어요?


그렇게 어려운 눈빛으로 서로로 마주 보고 선 둘. F.O.



6. # 수돗가 (밤)


추리닝 바지와 면티셔츠 차림의 복수가 수돗가에 쪼그려 앉아있다.

어느새 복수의 헐렁한 면티셔츠와 헐렁해서 허리춤을 몇번을 꺾어 입은 복수의 추리닝을 얻어입은 경이 쉐이브 크림을 흔든다.

한 손으론 흘러내리는 바지를 추키면서...

경의 쉐이브 크림이 복수의 얼굴에 한 가득 거품을 낸다.

복수의 얼굴에 한 가득 묻혀진 쉐이브 크림은 복수의 눈만 빼곤 얼굴 전체를 덮는다.

복수 앞에 쪼그려 앉는 경. 경의 손에 들리워진 면도기가 복수의 턱과 볼을 타고 조심조심 복수의 수염을 깎는다. F.O.



7. # 중섭의 방 (밤)


중섭의 방 다락 혹은 이불장을 여는 복수.

이불 두 세 개가 쌓아 올려진 이불장 안. 맨 아래 하단에 얇은 천으로 쌓여진 투터운 요와 이불을 꺼내는 복수.

그 옆에 깔끔한 베개 하나가 있다. F.O.



8. # 복수의 툇마루 (밤)


깜깜한 복수의 툇마루엔 베네치아 유리 스탠드 불빛만 남았다. 그리고 그 옆의 어항. F.O.



9. # 복수의 방 (밤)


복수의 면 티셔츠 차림의 둘은 한 이불 속에 있다.

복수는 자신이 베던 헌 베개를 베고 있고 경은 복수가 꺼내온 새 베개를 베고, 서로 마주보고 누워 행복한 잠에 빠져있다.

서로를 마주 보는 둘의 얼굴엔 아이처럼 잔잔한 미소가 어린다.

눈감은 채 미소짓는 복수의 맞은 편 손이 경의 볼을 살포시 어루만진다.

경도 눈을 감은채 복수의 볼을 살며시 어루만진다.

둘은 평생 눈을 뜨지 않을 듯 그렇게 미소만 짓는다.


복수 : ...어뜩하냐? (그러나 표정은 평화롭다. 궁시렁) 좋아서 환장하겠다.


눈을 감을 채, 웃음지으며 서로의 볼을 어루만지는 둘.

둘의 머리맡엔 경의 반지가 놓여있다. 만원지폐를 싸 두었던 자수 놓인 손수건 위에... F.O.



10. # 복수의 집 - 툇마루 (아침)


F.I. 해맑은 미소로 밥상을 차리는 복수. 전에 없이 말쑥해 보인다.



11. # 복수의 방 (아침)


베개에 얼굴을 쳐박고 엎어져서 쿨쿨 잠을 자는 경.


복수 : (경의 팔을 조심스레 흔들어 본다.) 경이씨.

경 : (잘도 잔다.)

복수 : 경이씨. 아침 먹구 자요.

경 : ...(눈을 감은 채 중얼댄다. 아무래도 잠꼬대같다.) 아침... 내가 할거예요.

복수 : 말루만?

경 : (여전히 잠꼬대) 아침... 나 원래 안 먹어요.

복수 : 아침 해 준다며?

경 : (잠꼬대) 글쎄, ...해 준다니까.

복수 : (궁시렁) 또 맹순이 버전 나왔다. (경의 베개를 뺀다.) 아우, 축축해. ...침을 흘리구 자네?

         ...드런 기질이 간간이 있었어. 베개 괜히 새거 줬다. ...경이씨. 밥상 가자.

경 : ...(잠꼬대) 아 참. ...아침은 내가 한다니까?

복수 : ...아, 증말.


경의 양쪽 다리를 수레 손잡이 잡듯 끌고 방문 쪽으로 질질 끌고 간다.

경, 복수에 이끌려 방바닥 위를 등으로 쓸며 시체처럼 질질 끌려 간다. 깨어나질 않는다.


경 : (잠꼬대) 아, 등 뜨거워.



12. # 복수의 집 - 툇마루 (아침)


아침상 앞에서 맛나게 밥을 먹는 경. 낄낄댄다.

상 위에 놓인 낡은 커피잔 속엔 복수가 화단에서 꺾은 꽃이 두 송이 볼품없이 꽂혀져 있다.

양 옆으로 허리가 휘어져 있는 두 송이 꽃.


경 : (실실 웃으며) 꽃이 뭐 이러냐? 줄기가 다 휘었네. 할미꽃인가? 이쁜 꽃 좀 꽂지.

복수 : 경이씨 닮았는데?

경 : (비웃음) 치. ...나, 이쁜 건 세상이 다 아네요.

복수 : 무슨 세상?

경 : (귀엽게) 복수씨 세상.

복수 : (경을 외면하며 짖궂은 미소.) 아으, 짜증나구 귀여워.

경 : (왼손으로 저분질을 하는 복수의 수저에 반찬을 올린다.) 이젠... 내가 복수씨 오른 손이예요.

복수 : ...(진지하게) 경이씨.

경 : 네.

복수 : 경이씨 침 흘리구 자드라?

경 : (무심한 표정으로 밥만 먹는다. 아예 못 들은 표정이다.)

복수 : 원래 침 흘려요?

경 : ...(여전히 귀라도 먹은 듯 웃으며) 내일 아침은 내가 해야지.

복수 : 침을 되게 많이 흘리드라. ...꼭... 똥개들 침 흘리는 거 처럼?

경 : ...(슬쩍 복수를 째려본다. 그리곤 자신없게) 복수씬 코 골드라.

복수 : ...(미소) 뻥까구 그러냐? 속 보이게?

경 : (자신없이) 뻥 아니예요.

복수 : 뻥이야. ...(싱글대며) 나 어젯밤에, 경이씨 얼굴 보느라, ...그냥, 밤, 꼴딱 샜어요.

경 : ...뻥.

복수 : ...(진지하게) 그러면서... 밤새, 혼자 좋아하구, ...그리구, 밤새, ...혼자 생각했어요.

경 : ...

복수 : 근데... ...생각이 복잡해졌어요. ...(단호하게) 나, ...경이씨랑 결혼 안해요.

경 : ...(당황한 표정으로) 우리 어제... 결혼 했잖아요.

복수 : ...그럼, 이혼해요. 지금.

경 : (단호하다.) 싫어요. ...나, 오늘 집에서 짐 챙겨서, ...일루 갖구 올거예요.

복수 : 나, 경이씨랑 결혼하기 전엔, 별루 그런 생각 안해봤는데요. ...어제 결혼을 하구 나니까... 행복하구 나니까...

         나한텐... 마지막에, ...비극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

경 : ...비극 없어요.

복수 : 있어요. ...죽거나, 아니면 그 보다 더 나쁘거나...

경 : 죽는 거 말구... 뭐가 나빠요?

복수 : 장애인 되는 거.

경 : ...

복수 : 난... 그게 더 나쁘다구 생각해요.

경 : ...죽지만 않으면... 나쁜 건 없어요.

복수 : 아니요. ...죽는 거 보다 더 나빠요. ...왜냐하면... 죽으면, 경이씨 자유 생기지만,

         ...내가 나빠지면, ...경이씨 이혼하기 힘들어져요. ...양심상.

경 : ...

복수 : 그래서... 결혼은 안돼요. ...이혼하기 곤란 하니까, 뭐, 어쩔 수 없이 같이 살구, ...그런 경이씨 될까 봐, ...결혼은 안돼요.

         ...그 꼴을 어뜩케 봐요? 재수 없어서?

경 : ...나, 안 그래요. 나, 복수씨만 좋아요. ...(피식 웃는다.) 날 몰라두 너무 모른다.

      ...죽는게 문제지, 장애 생기는게 문젠가? ...제 정신이 아니군. (벌떡 일어나서 운동기구로 가서 운동을 한다.)

복수 : (어이없는 표정으로) 밥 먹다 말구 뭐해요?

경 : (인상을 쓴다.) 밥 먹다 말구 왜 그런 말을 해요? 밥맛 떨어지게...

      (다시 와서 복수의 손을 잡아 끈다.) 운동하러 가자, 복수씨. 장애인 안되려면...



13. # 야산 운동장 (낮)


철봉 위에서 체력장 치루는 여학생처럼, 매달리기를 하고 있는 경. 눈을 질끈 감고 있다.


복수 : (물끄러미 경을 본다.) 왜 그래요? 왜 그렇게 매달려 있어요?

경 : (낑낑대며) 철봉이 복수씨예요.

복수 : ...나한테 매달리는 거예요?

경 : 네. ...안 떨어져요, 나.

복수 : (어이 없이 웃으며 배를 푹 찌른다.)

경 : 엄마야. (바닥으로 떨어진다. 입이 나와서 복수를 본다.)

복수 : ...(경의 손을 끌고 와 벤취에 앉힌다.) ...경이씨. ...철봉에 매달려서 얼마나 버틸 수 있어요?

경 : 30초. 체력장 만점.

복수 : ...30초 넘게는 못 매달리겠네?

경 : ...악으루 버티면 더 매달려요. 원래 매달리기는 힘이 아니라, 악으루 하는 거예요.

복수 : (설득을 하듯 다정하게) 뭐하러 악으로 버텨요? 그게 뭐하는 짓이예요?

         ...경이씨, 나한테 그러겠네? 언젠간 악으루 버티겠네?

경 : 복수씨랑 철봉이랑 같아요?

복수 : 같아요. ...경이씨 죽겠다구, 30초 이상을 악으루 매달려 있는데...

         그걸, 몰라서... 그냥 냅두구 있으면 어뜩해요, 내가, 언젠가, 어느날... 저 철봉처럼, 뇌가 빠져서... ...이렇게...

         (입을 헤 벌리고 넋이 나가서 허공을 본다. 한 손은 가슴 쪽으로 오므리고... 장애인 흉내를 낸다.)

경 : (마지못해 웃는다.) 헤헤. ...왜 그래요, 복수씨. (그러나 불안하다.)

복수 : (진지하게) ...지금은 웃지만, 나중엔 울어요. ...나, 철봉 될지 몰라요.

경 : ...(물끄러미 복수를 본다.)

복수 : (어둡게) ...난...경이씨한테 죽을 때까지 남자였으면 좋겠어요. 아주 야한 남자였으면 좋겠어요.

경 : ...

복수 : (다시 장애인 흉내를 낸다.) 남자 같애요? 야해요?

경 : ...결혼한 사람들이, 뭐... 죽을 때까지 야하게 사나요?

복수 : ...난 아직 서른 살두 안됐어요. ...그리구 어쩌면, 서른두 안되서 골루 갈 수 있어요.

         그래서 죽을 때까지, 내 몸이 야해 보였으면 좋겠어요, 경이씨한테. ...경이씬, 내 구역질 나는 영혼까지 좋아해 주지만,

         ...근데, 난 오히려... 경이씨가, 내 몸을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죽을 때까지...

         ...(혼잣 말을 하듯 경을 외면한다.) 참 역겨울 거 같애. ...증말, 재수 없을 거 같애.

         내 영혼만 보구, 내 몸을 참는 경이씨 생각하면... 자기가 무슨 수년가?

         머리는 꽝 되버렸지만, ...내 눈은 그런 경이씨 볼텐데... 내 눈이, 환장 할 거 같애.

경 : ...

복수 : ...(우울하게) ...나, 아직 오른 손 쓸만해요. ...근데, 오른손 안 쓰는 건, ...열심히... 왼손 쓰는 연습하느라 그래요.

         ...경이씨가... 내 오른 손일 필요 없어요. ...아직도 나한텐... 남은 왼손이 있으니까...

경 : ...

복수 : ...(슬프고 단호하게) 어제 우리, 결혼했지만, ...오늘 우리, ...이혼해요.

경 : ...

복수 : ...인제, ...우리 집 오지마요, 경이씨.

경 : ...(묵묵히 생각에 잠긴다. 한 켠에 롤러 브레이드를 타는 아이를 본다.

      주머니에서 파이프를 꺼내 입에 문다. 무심히 아이를 본다.) 재밌겠다.


O.L.



14. # 경의 버스 정류장 (밤)


O.L. 복수집 야산 운동장과 같은 자세로 정류장 벤취에 앉아 파이프를 물고 있는 경. O.L.



15. # 복수의 집 - 툇마루 (밤)


O.L. 어항을 바라보는 복수. 복수의 손 위엔 경의 반지가 쥐어져 있다.

반지를 입 속에 넣는 복수. 마치 사탕을 빨 듯, 입 속에서 혀로 반지를 굴린다.


복수 : (무심히 동네를 바라보며 어항을 어루 만진다.) 반지에... 내 침 잔뜩 묻혀서 돌려 줘야지. ...내 냄새 배이게...


F.O.



16. # 미래의 연습실 (낮)


안무 연습중인 치어리더들.

한 켠에선 미래가 짐을 꾸린다.


미래 : 아, 기집애들, 짐 싸는데 도와주지두 않냐? ...인정머리 없는 년들.


치어리더들, 연습을 마친다.


치어1 : 쌀 짐이 어딨냐? ...대충 버리지?

미래 : (운동복을 들어보이며) 야. 이거 너 가질래?

치어2 : 니가 실컷 입던 걸 뭐하러 입냐, 내가?

미래 : ...아, 버리기가 아쉽잖아아. 정든 물건인데...

치어1 : 아쉽다구 쓰레길 디미냐?

미래 : 아, 싸가지 없는 년. 쓰레기래냐? (바락) 내 기념으루 가지구 있으면 안 되냐? 추억두 모르는 년들. 일 그만 둔다는데...

치어2 : ...우린 너, 일 그만 두는 거 싫다? 대학생 되는 거 싫어.

           ...너, 대학생 되면 우리랑 상대두 안할꺼지? ...추억 좋아하네.

미래 : (비실 비실 웃는다.) 대학생 되기 전까지만 잘 지내자는 거지, 난. ...대학 들어가면 니네 짤 없지이.

         ...학력 차이 나는데, 니네랑 노냐, 내가? 쪽팔리게?

치어3 : ...아이그, 대학생 아무것두 아니야. 나 봐. 그냥 똑같애.

미래 : 너랑 나랑 같냐? 난 대학 들어가면, 대학 못 들어간 것들 개무시하구, 대학생들만 아는 말 쓰구,

         사람 만나면 나이 안 물어보구 학번 물어 보구, ...하여간 대학생 티란 티는 팍팍 내구 다닐거야, 내가...

치어1 : (낄낄 웃는다.) 그럴 거 같애. 예상이 돼.

치어2 : (낄낄 웃는다.) 지금보다 백배는 싸가지 없어지겠다. 진짜 재밌겠다, 미래.

미래 : (웃으며) 대학 못 나온 것들 기냥 다 밟아 버려야지. ...특히 복수. 히히.



17. # 연습실 건물 앞 (낮)


건물 앞으로 바삐 뛰어 내려오는 미래.

복수가 건물 앞에 쪼그려 앉아있다.


미래 : (복수에게 다가간다. 시비조로) 왜 왔냐?

복수 : ...(일어선다.)

미래 : ...죽을 때가 되니까, 조강지처가 그립냐?

복수 : (비실 비실) 기집애. ...사실... 뭐, 니가 결혼상대로선, 경이씨보다 난 거 같애. ...뭐, 그건 인정해.

미래 : 이제 알았냐? 그걸? 그렇게 얘길 했구만... (복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철 들었네.

         ...근데, 나두 철이 들어서, 너 같이 빌빌대는 거랑 살기 싫다. ...전과자에, 환자에, 중졸에...

복수 : (인상을 쓰며 버럭) 아, 뭐가 중졸이야? 고등학교 중퇴지.

미래 : 그게 중졸이지, 새꺄.

복수 : (눈을 흘긴다.) 에이. 빵에서 검정고시 봤어. 결국은 고졸이야.

미래 : 그래, 너 장하다. (대뜸) 잘 됐다. 혼자 돌아다니기 싫었는데...

복수 : ...응?

미래 : (복수의 손을 끌고 간다.) 가자.

복수 : (끌려 가며) 나, 너한테 할 말 있어, 미래야.

미래 : 듣기두 싫어. ...내 볼일이 더 급해.



18. # 대입 학원가 (낮)


둘레 둘레 학원을 돌아다니는 복수와 미래.



19. # 학원 접수실 (낮)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길다란 수강시간표를 들고 유심히 강사를 살피는 복수와 미래.

미래는 볼펜을 들고 있다. 상단에 실린 강사의 사진을 유심히 본다.


복수 : (손가락으로 짚으며) 이 사람꺼하구, 이 사람꺼하구, 이 사람꺼.

미래 : 근데에... (한 강사를 가리키며) 얜 인상이 좀 쪼잔하지 않냐?

복수 : 아, 그래야 꼼꼼하게 가르치지이.

미래 : 아, 난 쪼잔한 것들이랑 안 맞는데?

복수 : 연애하냐, 강사랑?

미래 : (슬그머니 미소) 그를 수두 있지? 강사들 돈두 잘 버는데?

복수 : (짜증) 아, 좀, ...순수한 마음으루 공불해.

미래 : 연애하면, 더 잘 가르쳐 줄거 아니냐?

복수 : (허탈) 아, 애가 왜 이렇게 됐냐? 나한테 채이구 폐인이 다 됐네.

미래 : ...아이구... 웃기구 자빠졌네. ...너랑 헤어지니까, 인생이 다시 핀다, 야.

         ...(씁쓸하게) 너 있었으면... 이렇게 학원, 못 알아봤을거야? ...말로만 떠벌이면서, ...계속 돈이나 벌구 있었을거야? 응?

복수 : (물끄러미 미래를 본다.) ...아, 찔려.

미래 : 왜? 섭하냐?

복수 : 응. ...근데, 니가 그러니까, ...이젠 미안하지 않아두 되네. ...에유, 우리 착한 미래. (뒷통수를 쓰다듬는다.)

미래 : (복수의 뒷통수를 팍 친다.) 웃기구 있네. ...미안한 건 미안한거지, 뭐가 안 미안하냐? 이 배신자 새끼야.

복수 : (인상을 쓰며) 아, 좀. ...머리 좀 치지 마.

미래 : (낄낄대며) 히히. 깜빡했다, 야. 머리 아픈 거... ...(물끄러미 복수를 본다.) 한참 못 보니까, 그것두 까먹네?

         (일어서며) 학원증 끊자.



20. # 학원 창구 (낮)


창구에서 수강신청을 하며 지갑을 여는 미래 뒤로, 복수가 겸연쩍게 수강료를 대신 내민다.


미래 : (힐끔 복수를 본다.) 뭐냐?

복수 : ...(귀여운 미소) 선물이야, 미래야. ...배신자의 선물.

미래 : (미소) 난, 내 대신 돈 내 주는 새끼가 제일 좋드라?

복수 : (미소) 알어.

미래 : (학원증을 받아들며 돌아서서 복수를 본다.) 에유, 얼굴 보니까, 또 정이 샘솟네. ...다시 뺏으까?

         경이년 결혼하겠다구 떠벌이구 다니든데? ...(피식 웃으며) 너 뺏으면, 걘 나처럼 안 그럴거 같지 않냐?

복수 : 뭐가?

미래 : ...꼭 내 머리채 뜯을 거 같지 않냐?

복수 : 에이. 경이씨가... 아니다, 그건.

미래 : ...아냐. ...옛날엔 안 그랬는데... 애가 점점 마징가 젯트야. ...뭐 이상한 먹구 다니나 봐.

복수 : 사람이... 바뀐다구, 진짜 바뀌겠냐? ...언젠가 다시 제자리지. (씁쓸하다.) 미래야.

미래 : 응.

복수 : ...나 좀 도와라.

미래 : (의아한 표정)



21. # 녹음실 (낮)


녹음실 안에서 녹음을 하고 있는 밴드들.

조정실에서 물고기 악보에 뭔가 부지런히 적는 경.


엔지니어 : (경에게) 키보드 들어가요? 다음꺼?

경 : 네. (노트를 덮어 소파 위에 두고 바삐 들어간다.)


경의 물고기 노트 C.U.



22. # 액션스쿨 앞 (낮)


승용차에 액션 장비를 챙기는 양찬석.

멀리서 액션스쿨을 향해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오는 복수. 타다가 넘어지고, 타다가 넘어진다.

양찬석과 다른 스턴트맨들이 복수를 보며 미소짓는다.


양찬석 : (혼잣말) 쟨 또 무슨 장난감을 갖구 다녀? 그렇게 심심한가? (다가오는 복수를 보며) 복수야. ...놀러 왔어?

복수 : (퉁명스레) 건달인가? 남 일하는데, 놀러오게?

         (그리곤 스케이트 보드를 들고 액션스쿨 안으로 들어간다.) 일루와 봐, 감독님.

양찬석 : (의아한 표정으로 복수의 뒷모습을 본다. 그리곤 다른 스턴트맨들에게) 야, 갔다 와라.

            (그리곤 액션스쿨 안으로 들어간다.)



23. # 액션스쿨 플로어 (낮)


복수의 콘티를 보고 있는 양찬석.


양찬석 : 니가 직접하게?

복수 : 네. (스케이트 보드를 등뒤에 깔고 플로어를 발로 구르며 바닥을 미끄러져 본다.)

양찬석 : (불안한 표정으로 복수를 보곤 다시 콘티를 본다.) 그거 타는 사람은 만나봤어?

복수 : 네.

양찬석 : 걔더러 다 하라 그르지?

복수 : (일어서며) 로라 타는 사람이 스턴틀 어뜩케 해요? ...그리고, 감독료까지 받았는데... 그거 토해요, 그럼?

양찬석 : 그냥 토하지? 대강?

복수 : 난... 내 목구멍으루 넘어간 돈은, 절대루 안 토해, 감독님.

양찬석 : (비아냥) 그러다, 니 목에서 피 토한다. ...(인상을 쓴다.) 위험해. 하지마.

복수 : (쪼갠다.) 그럼 감독님이 먹여 살려요, 나.

양찬석 : ...그럼 해.

복수 : (궁시렁) 금방 이랬다 저랬다. ...돈 얘기만 나오면 저래.


다시 스케이트 보드에 등을 대고 바닥을 굴러다는 복수.

걱정스런 표정으로 복수를 바라보는 양찬석.


양찬석 : ...내가 하루에 오천원씩 주면... 그 CF 안할래?

복수 : 하루에 만 오천원씩 주면 안한다. 밥값으루 한끼당 오천원씩...

양찬석 : 니가 뭘 한다구, 밥을 세끼나 먹냐?

복수 : 싫음 말구...

양찬석 : (갈등하는 눈빛) ...하루에 팔천원씩...

복수 : ...도와 줄거면 팍팍 도와주든가, ...아님 말든가...

양찬석 : (어이없는 표정으로) 야. ...근데, 내가 왜 널 먹여 살리냐?

복수 : ...(웃으며) 우리 엄마 흉내낸 거니까, 신경 꺼요, 감독님. ...히히. 감독님 한테 그래 보니까, 재밌네.

         ...우리 엄마 재밌었겠네, 나한테 그러는 거... 헤헤.

양찬석 : 어머니두 뇌종양이야?

복수 : ...아으, 빈곤한 상상력. (누워서 찬석을 힐끔 보며) 오늘은 옷 잘 입었네, 감독님?

양찬석 : ...(상의를 가리키며 무지하게 좋아한다.) 이거... 싸구련데? ...괜찮냐? 내가 밀어 주까?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누운 복수의 양손을 잡고 넓은 플로어를 돌아 다니는 찬석.

찬석이 복수의 양손을 잡아 마치 썰매를 밀어주듯 플로어 위를 장난스레 돌아다닌다. 정겹다. 부감.


복수 : 여기 오니까, 좋다.

양찬석 : 여기가 좋아, 내가 좋아, 복수야?

복수 : 아이구, 진짜. ...장가를 보내야 돼. ...여자가 없으니까, 자꾸 나한테 애정 공셀 하냐? 감독님은?

양찬석 : 니가 쫌만 이뻤으면, 너 사랑했을지두 몰라, 응? 못생겨서 다행이야. 고 복수.

복수 : 그 혀 짧은 여잔, 찬석이한테 뺏겼어요?

양찬석 : 하다만 의사라두, ...의사라구 넘어가드라, 여자들이... 참. 여자들 한심해.


그리곤 복수의 몸을 회전판 돌리듯 돌려준다.



24. # 병원 벤취 (해질녘)


벤취에 앉아 물고기 노트에 열심히 펜대를 굴리는 경.

이 때, 복수가 다가와 앉는다.


경 : (얼른 노트를 덮는다.)

복수 : (처방전을 들고 서서) 뭘 가려요오? ...악보 봐두, 난 알지두 못하는데...

경 : (처방전을 가로채며) 며칠 치예요?

복수 : 한달치.

경 : 뭐하러 한달치나 타와요? 곧 수술받을건데?

복수 : ...누구 맘대루...

경 : (퉁명스레) 수술 안 받으면, ...나 사고나서 죽어야지. (그리곤 맹하게 복수를 바라본다.)

복수 : ...(어이없는 표정으로 경을 본다.) ...참...이상한 말과, 이상한 표정이다.

경 : ...(담담하게) 내가요. ...조만간... 복수씨 집으루 다시 들어갈 거예요.

복수 : ...

경 : ...(나직하게) 근데... 내가 지금 왜 이러구 있냐면... 내가 왜 복수씨랑 살아야 되나... 그걸 좀 잘 정리하는 중이예요.

      ...내 성격 알겠지만, 내가 뭘 오랫동안 생각하구, ...그런 사람 아니잖아요.

      근데... 복수씨 때문에... 증말 많이 생각하구 있어요. ...결과를 기대해 줘요, 복수씨.

복수 : ...싫은데... 난... 혼자가 좋은데... 여자 있으면, 불편한데...

경 : (인상을 쓰다가 한숨) 내가 미래 언니였으면 좋겠다.

복수 : 왜요?

경 : (차분한 음성으로 궁시렁) 그냥, 바루 주먹 나갈텐데... 아쉽다.



25. # 버스 안 (밤)


버스 안에 앞 뒤로 앉은 둘. 앞 쪽에 복수가 앉아서 창밖을 보고 뒷 쪽에 경이 앉아서 복수의 뒷통수를 본다.

경, 복수의 뒷통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복수의 왼쪽 머리칼에 묻은 딱정벌레를 본다.


경 : (혼잣말) 머리핀 같다. (복수의 머리칼을 살짜기 쓸어내리며 다른 한 손으로 딱정벌레를 받는다.)


복수, 경이 쓸어내리는 손길에 남모르게 옅은 미소가 맴돈다.

그러다가 쓸쓸히 고개 숙여 무릎 위에서 꽃자수 손수건을 만지작 댄다. 그 안에 반짝 경의 반지가 놓여있다.



26. # 경의 정류장 (밤)


벤취에 나란히 앉아있는 둘.

경이 복수의 손바닥 위에 딱정벌레를 올린다.


경 : (미소) 이쁘죠?

복수 : (끄덕) ...칼라가 예술이네.

경 : 복수씨 머리 속에서 나왔어요.

복수 : (실실 웃는다) 내 머리에 구멍 났어요? 드디어? 이거, 뇌종양 벌렌가, 그럼?

경 : (고개를 끄덕) ...네. ...거기서 사는 벌레가 이 정돈데, ...복수씨 뇌종양은 얼마나 이쁠까?

복수 : 말장난이라구 봐.

경 : ...사람보다 지구가 더 이쁘지 않아요? ...내 눈엔 그런데?

복수 : 지구를 멀리서 보니까, 그렇지. 가까이서 봐야 진실을 알지. 오염된 지구.

경 : 그럼... 뇌종양두 멀리서 보죠, 뭐.

복수 : 말장난의 연속이라구 봐, 난. ...(딱정벌레를 경의 머리 위에 올린다.) 머리핀이이예요. 딱정 머리핀.

경 : ...난... 복수씨 뇌종양두 이쁠 거 같애요.

복수 : ...경이씨, 그 뭐냐? ...점점 사회로부터 멀어지는 거 같다. ...경이씨 생각 하는게... ...내가 현실을 가르쳐 줄까요?

경 : 아니요.

복수 : (경의 손을 잡는다. 그 손바닥 위에 경의 반지를 올린다.)

경 : (물끄러미 복수를 바라본다.)

복수 : 경이씨가 뭐라든... 난 혼자 살래요. ...난 내 인생 그림, 다 그렸어요. ...경이씨랑 뭐, 계속 연애는 하겠지만,

         가족으루 만들지 않아요. ...그런 관계... 주접스러워져요. ...우리 집에, 내 가족은 나만 있어요. 그렇게 결론 났어요.

경 : ...(우울하게) 내가 들러 붙는게... 그렇게 지겨워요?

복수 : 너무 좋아서, ...너무 지겨워요.


쓸쓸히 도로로 눈을 돌리는 복수.

물끄러미 복수를 보다가 반지를 바라보는 경. 반지를 바닥으로 슬쩍 버린다.

그리곤 일어서서 집으로 향해 가는 경.

그런 경을 바라보는 복수. F.O.



27. # 영화 촬영장 (밤)


야외 공원의 넓고 긴 돌(혹은 시멘트)계단.

그 꼭대기에 선 우찬석이 오토바이 시동을 건다. 그리고 그 옆 난간에 스케이트 보드 선수가 서 있다.

우찬석이 신호를 하면 스케이트 보드 선수가 우찬석을 향해 고개짓을 하곤 힘차게 계단 아래로 발돋음을 한다.

뒤이어 우찬석이 선수의 뒤를 따라 출발한다. 거센 엔진음을 내면서...

난간을 따라 멋지고 시원스레 긴 거리를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내려오는 선수.

선수의 뒤를 쫓아 한 손으론 몽둥이를 휘두르며 한 손으로 오토바이 핸들을 잡으며 계단을 내려오는 우 찬석.

선수는 찬석이 휘두르는 몽둥이를 피해가며 난간을 파도타듯 내려 온다.

끝없이 이어진 긴 계단이 LS로 보인다.

CF감독의 모니터 옆에서 찬석과 선수의 액션을 눈여겨 보는 복수. 선수의 의상과 같은 의상을 입었다.



28. # 경의 집 - 경의 방 (밤)


경이 커다란 여행용 가방에 자신의 옷과 생활용품을 싸고 있다. 그 위에 올리워지는 멜로디카.

이 때, 경의 노트북에 이 메일이 뜬다.

노트북으로 가는 경. 노트북 메일을 연다. 동진이 나온다.


동진 : 전 경. ...나, 연애해. (그리곤 손바닥 크기의 사진을 카메라에 바짝 붙여 보인다.

         사진 안엔 야한 포즈의 야한 여자가 눈을 반쯤 감고 고개를 치켜든 자세로 포즈를 취했다.) 모델이다? 너보다 섹시하지?


경, 어이없는 표정으로 동진을 바라보다가 미소짓는다.


경 : 우리 복수씨두 한 기자님보다 섹시해.



29. # 촬영장 (밤)


계단 아래 끝자락 난간에 서 있는 복수.

우찬석의 오토바이가 복수를 향해 돌진하면 복수가 하늘을 날아오르고

우찬석의 오토바이가 옆으로 미끄러져 내리며 계단 끝 도로로 달려오는 자동차와 부딪친다.

복수의 스케이트 보드가, 오토바이와 부딪치는 자동자 밑으로 혼자서 굴러 빠져 나온다.

복수는 오토바이와 자동차 위로 공장 3회전으로 천천이 새처럼 날아올라

자동차와 오토바이 너머 바닥을 구르는 스케이트 보드 위로 떨어진다.

그리고 복수의 눈 앞으로 돌진해 오는 덤프트럭.

복수가 뒤쪽으로 넘어간다. 트럭 밑으로 빨려드는 스케이트 보드.



30. # 미래의 집 - 거실 (밤)


여기저기 커다란 짐이 꾸려진 미래의 집 거실. 이사 전 날의 분위기가 감돈다.



31. # 미래의 집 - 옥상 (밤)


검은 밤, 옥상 위에 선 미래와 현지. 둘, 나란히 서서 거리를 내려다 보고 있다.


현지 : ...이사가기 싫다, 언니.

미래 : ...인간은... 뜰 때, 확 떠야 돼. ...괜히 밍기적 대면, 인생이 피곤해져.

         ...난 좋다, 야. ...새 곳으로 가서, 다시 새 역사 쓰자, 현지야.

현지 : ...아, 진짜. ...난 서울이 좋은데. 촌으루 가냐?

미래 : (현지의 뒷통수를 친다.) ...기집애야. 일산이 촌이냐? ...이 동네보다, 더 서울 같다, 거기가...

         (동네를 내려다 보며) 아파트로 가면, 엘리베이터두 있어. 인제, 무거운 짐들구, 계단 낑낑대면서 올라 올 필요 없다, 야.

         ...복수가 짐 다 올려줬는데... 복수 없으니까, 불편해서 못 살겠다, 이 집은... 인제, 복수 없어두 되는 집 가자.


물끄러미 복수가 서 있던 동네 길을 바라보는 미래의 모습.



32. # 촬영장 (밤)


영화 “스피드” 처럼 트럭밑 프레임에 매달려 스케이트 보드를 등에 대고 한참을 끌려가는 복수의 모습.

가까스로 보드 위에 등만 받친 채, 트럭에 몸이 실느라, 복수의 신발바닥엔 불꽃이 인다.

덤프 트럭이 눈 앞으로 달려오는 유조차를 향해 돌진한다.

복수가 프레임에서 손을 놓는다. 트럭 밑으로 납작하게 누운 복수가 빠져 나오고, 트럭과 유조차가 정면 충돌한다.

여전히 도로로 미끄러져 내리는 복수와 그 뒤쪽으로 불꽃이 일며 폭발하는 유조차와 트럭.

복수의 눈빛이 가물대며 평화로와 진다.

도로 위에 장엄하게 피어오르는 붉은 불꽃.

눈을 감은 복수가 스케이트 보드로부터 기우뚱 옆 쪽으로 구른다. 바닥으로 위험스레 떼굴떼굴 구르는 복수의 몸.

복수, 불꽃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가 싶더니 가물대며 보는 불꽃을 확인하곤 눈을 감는다.

엠블런스 소리. F.O.



33. # 경의 집 - 식탁 (아침)


식탁 앞에 모인 식구들이 어이없는 눈으로 경을 본다.


낙관 : (같잖다는 듯) 니가 무슨 능력으로 독립을 해?

경 : ...능력은 없지만... 독립할 나인 된 거 같애요.

인옥 : 독립할 나이가 뭔데?

경 : 나 혼자만의 나이를 느낄 나이. ...가족들 나이 다 잊고, 내 나이만 생각할 나이.

강 : 까분다.

낙관 : 얘, 뭐라는 거냐?

인옥 : (어이없이) 나두 모르겠네요.

강 : (마뜩찮은 듯) 야, 밥이나 먹어.

낙관 : 당신이 제대루 좀 맥여, 쟤. ...애가 허한가 부네. 별 그지같은 말을 다 하네.

인옥 : ...그래, 경아. 얼른 아침 먹구 보자.

경 : ...(다시 밥을 먹는 낙관, 인옥, 강을 한 사람씩 바라본다.) ...내가 나간다니까, ...가족이 처음으루 뭉치네.

강 : 우리가 뭘 뭉쳐?

경 : 나 밥이나 먹으라구... 만장일치네?

셋 : (다시 경을 본다.)

경 : ...가족을 위해서두... 내가 독립할 때가 됐어. (그리곤 미소지으며 밥을 먹는다.)


물끄러미 경을 보는 셋.



34. # 미래의 집 (아침)


옥상에 서서 거리를 바삐 뛰어가는 미래의 모습을 보는 현지.


현지 : 이사가기 글렀네. 복수땜에...



35. # 중소병원 INS (아침)



36. # 병실 앞 (아침)


복도를 뛰어 와 병실문을 여는 미래.



37. # 병실 안 (아침)


침대에 걸터 앉은 복수가 오른 쪽 팔에 깁스를 하고 이마에 붕대를 붙이고 창 밖을 보고 있다.


미래 : (걱정스레) 복수야.

복수 : (넋을 잃고 미래를 바라본다.)



38. # 복수의 집 앞 (아침)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내려놓고 대문 앞에 선 경.

자신의 작은 가방안에서 물고기 악보노트를 꺼내든다. 그리곤 화단옆 컵 속에서 열쇠를 꺼내든다.


경 : (열쇠를 보며 미소짓는다.) 복수씨. ...나 왔어요. 반갑죠?



39. # 병실안 (아침)


복수에게 물과 약을 건내는 미래.


미래 : ...(머리를 만지며) 많이 아프냐?

복수 : (고개를 가로젓는다.)

미래 : 경이한테 연락 안했어?

복수 : 경이가 누군데?

미래 : ...얘 봐?

복수 : 넌 누군데?

미래 : (놀라며) 야. ...너, 머리 괜찮어?

복수 : 꼬붕인 뭐하러 너한테 연락을 하냐, 자꾸? 미안하게?

미래 : (버럭) 아, 놀랬잖아, 미친 놈아.

복수 : ...(씽긋 웃는다.) 경아.

미래 : (또 놀란다.) 야.

복수 : 아, 쇼야아. ...내가 경이씨한테 반말하냐?

미래 : ...아, 진짜. ...불안해서 못 살겠네.

복수 : (미소) 야, 미래야.

미래 : 왜, 새꺄.

복수 : ...인제, 나 다쳐두 안 우네?

미래 : ...

복수 : ...좋다, 야. ...미래, 점점 좋아진다.

미래 : 오죽 울렸냐, 니가? ...인제 울기두 귀찮어. ...너 죽어두 안 울거다.

복수 : 기집애. 그럼 섭하지이, 내가...

미래 : 또 할거야, 스턴트?

복수 : ...아니. 쫑이야. ...할 만큼 해서 미련없다, 야.

미래 : 왜에? 촬영장에서 꼴까닥하지? 멋있잖아? 신문에 이름두 나겠다, 야.

복수 : ...꼭 빙신같은 것들이 영화처럼 살다 죽을려 그래. ...그래봐야, 개죽음이지.

미래 : ...복수야.

복수 : 응.

미래 : 알아봤거든?

복수 : 응.

미래 : 일산 근처에 있는 요양원인데... 지낼만 할 거 같다. ...집 내 놨어?

복수 : 응. (창밖을 본다.) 인제... 환자처럼 살다 가야지. 혼자서, 조용히...

미래 : ...내가 자주 옆에 있어 주께.

복수 : 싫다. 너두 옆에 있지 마. ...니 시간 축내지 마. ...니 일해, 부지런히...


창밖을 보며 경의 반지를 만지작댄다.



40. # 복수의 집 - 마당 (낮)


어항 속에서 경이 죽은 경이 물고기를 건져 올린다.

양 손으로 물고기를 받쳐서 화단 근처를 서성이며 묻을 곳을 찾는다. 화단가에 꽂혀진 십자가를 본다.


경 : (무심하게) 여기다 뭍나부다, 물고기들.

      (십자가를 빼서 경이 물고기를 묻는다. 그리곤 십자가를 다시 꽂는다. 명랑하게) 잘자, 물고기야. 세상 살기 힘들었지?


툇마루로 오는 경.


경 : (어항을 본다.) 어항 주인은 죽구, 니네가 어항 주인됐네? 미안하게?


경, 툇마루에 앉아 물고기 노트를 만지작댄다. 이 때 초인종소리.

미소 지으며 대문으로 가는 경. 문을 연다. 문 앞에 복덕방 주인과 신혼부부 둘이 서 있다.

의아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보는 경.


복덕방 : 집 보러 왔는데?


입을 벌린 채 서 있는 경.



41. # 연습실 건물 앞 (낮)


건물 안으로 부지런히 뛰어오는 경.



42. # 치어 연습실 (낮)


힘없이 치어 연습실에서 나오는 경. 핸드폰을 든다.



43. # 미래의 집앞 (낮)


이삿짐을 차에 싣는 일꾼들을 바라보고 선 미래와 현지. 짐을 거칠게 다루는 일꾼을 보며 현지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현지 : 아저씨.. 그 식탁 산지 1년 뿐이 안됐어요. ...그렇게 막 다루지 마세요.

         (다른 일꾼에게 가서는) 아저씨. ...(의자를 본다.) 이거 왜 칠이 벗겨졌지? 이거 말짱했는데? 지금 아저씨가 그랬죠?

미래 : (현지의 팔을 잡아채며) 아, 신경 좀 꺼어. ...아, 진짜... 뭔 애가 완전 할망구처럼 구냐?

         (핸드폰이 울린다. 핸드폰을 받는다.)

현지 : (그 사이 현지는 또 짐들을 불안한 듯 바라보며 왔다갔다 한다.)

미래 : ...응. 경이니? ...지금 너 못 만나. ...복수? ...전화 안 받어? 몰라. 야. 나 지금 바쁘거든?

         (짜증) 아, 왜 자꾸 나한테 그러냐? 신경질 나게? ...니네끼리 알아서 해. ...몰라. (끊는다. 씁쓸하다.)



44. # 연습실 앞 거리 (낮)


터덜터덜 걸어가는 경.

이 때, 동진의 승용차가 경 앞에 선다.


동진 : (차창을 내리며) 어디가, 전 경?

경 : ...어? 어디 가세요, 한 기자님?

동진 : 너 보러 왔지.

경 : 왜요?

동진 : 내 애인 궁금하지?

경 : 아니요.

동진 : 에이, 뭐가? 궁금하잖아.

경 : ...(궁시렁) 또 왜 이러냐?

동진 : (조수석을 보며) 자기야. 내려 봐.


동진이 내린다. 조수석에서 동진의 새로운 여자가 내린다. 무지하게 크다. 본드걸 같다.

동진 옆으로 와서 동진의 허리에 팔을 두른다.


동진 : 거 봐. 너보다 키두 커.

경 : ...누가 뭐래요? (모델에게 꾸벅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모델 :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살짝 고개 인사만 한다.) 네.

동진 : (모델에게) 얜 내 옛날 애인이었어.

모델 : 어머.

경 : (멍청히 모델을 본다.)

모델 : 안 어울려. ...다리 아프다. 들어가자, 자기야. (그리곤 차 안으로 들어간다.)

동진 : 어디가, 전 경? 데려다 주까?

경 : ...한 기자님. 잠깐만... (동진에게 다가선다.) 한 기자님이 준 스탠드 있잖아요.

동진 : 응.

경 : 그거 복수씨 줬어요.

동진 : (바락 소리친다.) 그걸 왜 그 놈을 줘? 그게 얼마나 비싼건데?

경 : (혼자 걸어가며 소리친다.) 노트북두 복수씨 줄건데요?

동진 : ...아 짜증나.

모델 : 자기야.

동진 : (신경질이다.) 아, 말 걸지마.



45. # 액션스쿨 (낮)


플로어로 쿵쾅대며 들어서는 경. 연습 중인 우찬석을 향해 걸어간다.


경 : (조심스레) 선생님. ...우리 복수씨 여기 없나요?

우찬석 : 병원에 있는데? 몰랐어요?

경 : (놀라서) 왜요?



46. # 복도 (낮)


복도를 뛰어가는 경.



47. # 병실 앞 (낮)


문 앞에서 입을 벌리고 서 있는 경.

복수의 자리엔 아무도 없다. 텅빈 복수의 자리.



48. # 영화관 (밤)


깁스를 한 복수가 성호와 함께 영화를 보고 있다. 깔깔 웃어대며 영화를 보는 성호.


복수 : 이건 재밌냐?

성호 : 네.

복수 : ...형 닮아서 수준이 높아. ...엄마 닮았으면 후질텐데...



49. # 영화관 휴게실 (밤)


성호에게 선물상자, 세 개를 내미는 복수.


복수 : 헷갈리마. ...이건 성호 니꺼야. ...너 그림 좋아해서... 화집 샀어. 화집 알어?

성호 : 아니요.

복수 : 이 중섭, 박 수근 그런 화가들이 그린 그림이야. ...형두... 그 두 사람 뿐이 몰라.

         ...그리구, 이건 아빠 갖다 드려. ...우리 엄마 괴롭히면, 죽을 줄 알라구 전해.

성호 : (미소) 네.

복수 : 이건... 엄마 드려. ...화장품인데... 비싼거야. 잘 들구 가야돼. 외제야. ...넌, 외제 쓰지마. ...외제는 엄마만 쓰는 거야.

성호 : 네.

복수 : 그리구... 이 말두 전해. ...엄마는 화장하면 참 이쁘다구... 꼭, 화장하구 다니라구... 응?

성호 : ...네.

복수 : ...다음에 또 놀자.

성호 : (미소) 네. 형, 자주 봐요.

복수 : 자주 보면 안돼. ...그럼 니가 집 들어 가기 싫어 지잖냐. 엄마, 아빠보다 ...형을 더 좋아하는데... 그럼... 가출 소년 돼.

         ...그래서... 자주 보면 안돼.

성호 : (고개를 끄덕인다.)


성호의 볼을 어루만지며 미소짓는 복수.



50. # 병실 (밤)


병실 침대에 걸터 앉은 경. 우울하게 창가를 본다.



51. # 복수의 집 - 마당 (밤)


툇마루로 들어서는 복수.

어항 옆에 경의 여행용 가방이 있다. 열려진 가방 옆에 잘 개어 놓은 경의 옷 가지가 놓여있다. 그리고 그 위에 멜로디카.

주춧돌 위에 두 세 켤레의 운동화.

물끄러미 경의 물건을 바라보는 복수. 어항을 본다.


복수 : (한참을 바라보다가) ...우리 경이 어딨갔냐? 응? (어항을 부지런히 살핀다.) 우리 경이... 니네가 잡아 먹었냐?



52. # 병실안 (밤)


여전히 침대에 걸터 앉아 우울한 경.

미래가 들어온다. 경은 풀이 죽을 대루 죽어 있다.


미래 : 아, 진짜. 니네 땜에 아주 사는게 다 산만하다. ...아직 안 왔어, 얘?

경 : ...(나직하게) 오긴 오나요?

미래 : (경 옆에 걸터 앉으며) 치료는 받겠지.

경 : ...그럼... 지키구 있죠, 뭐.

미래 : 야.

경 : 네.

미래 : 너... 걔랑 무슨 일 있었냐?

경 : ...왜요?

미래 : 내가 또 입방정을 떨어서, 재수없는 일 일어나구, 그르진 않겠지?

경 : ...

미래 : 아, 너두 자살할까봐. 겁나, 나.

경 : 네?

미래 : ...(피식 웃는다.) 하긴... 뭐. 자살할 일이 아니지. ...이번엔...

경 : 뭔데요, 언니?

미래 : 복수가... 요양원 알아봐 달랬다?

경 : ...(입을 벌린채 미래를 본다.)

미래 : ...인제, 순수한 환자루 살겠대. ...조용히, 죽은듯이...

경 : 미쳤나 부다.

미래 : 미친 건 아니지. 올바른 거지. ...근데, 그게 복수라 좀 그렇지? ...걔가 그렇게 살면... 너무 심심할텐데...

         심심해서 죽을 거 같애, 오히려. 그렇게 살다간...

경 : (조용히) 언니가 좀 말리줘요.

미래 : 내가 왜 말리냐? ...내가 데리구 살 것두 아닌데... 복수가 왜 갑자기 그러냐? ...일 있었냐?

경 : (고개 숙인다.) 나랑... 결혼했어요.

미래 : ...뭐?

경 : 결혼하구 나서, ...생각이 많아졌대요.

미래 : ...(물끄러미 경을 본다.) 잤다구?

경 : ...네.

미래 : ...(기가 막히다.) 너, 참. ...어뜩케 될 줄 알구, 일부터 벌이냐?

         너, 참... 그렇다. ...용감하긴 하다. ...나보다. ...(실소한다.) ...걔가 그래서 그러네. ...너랑, 자꾸 깊어지구 싶어서...

경 : (미래를 본다.)

미래 : ...진짜루 결혼해서, 신나게 살구 싶어서 그러네. ...근데, ...지금이 신날수록 ...나중에 더 슬퍼지잖냐?

         넌, 그런 생각 안하냐? ... 나라두 복수 같다. ...복수가 잘 하는 거네, 뭐. ...됐다. 너, 그만해라.

         (한심한 듯) ...기집애야. 왜 자냐? 애, 욕심만 커지게? 있는 욕심 비워두 시원찮을 판에...

경 : ...(나직하게) 왜 ...욕심을 비워요?

미래 : ...죽을 때 되서 욕심 늘면, ...마음이 안 괴롭겠냐?

경 : ...(진지하게 천천이) ...더 욕심 내야죠. ...어차피 죽으면 다 버려지는데... 왜 죽기두 전에, 살면서 미리 다 버려요?

      ...그럼... 그게 사는 건가요? 죽은 거지?

미래 : ...(물끄러미 경을 본다.) 복수, 요양원 가면... 내가 지켜 줄라 그랬다? ...나, 이사했거든? 그 근처루? 일부러?

         ...근데... 경아.

경 : 네.

미래 : ...(눈물이 맺힌다.) 걔, 못 오게 해라. ...나, 니네 틈에 끼여 있기 싫으네.

경 : ...

미래 : (눈물이 흐른다.) 사랑, ...참 잘할거 같다, 너. ...그래. 그렇게 해 봐.

         ...그리구 이년아. 이제... 복수껀으루, 나 찾지마. ...나두 복수껀으루... 너 안 찾을게. ...알았냐?

경 : ...네. (눈물이 흐른다.)

미래 : ...(일어서서 경을 마주 보며 손을 내민다.) 악수.

경 : (손을 내민다. 흐르는 눈물) 잘가요, 언니.

미래 : (눈물) 잘 있어라. ...(경의 눈물을 닦아준다.)

경 : (미래의 눈물을 닦아준다.)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경과 미래의 슬픈 미소.



53. # 경의 버스 정류장 (밤)


깁스를 한 채 정류장 벤취에 앉은 복수. 벤취 위에 캔 커피 두 개가 놓여있다.



54. # 연습실 건물 앞 (밤)


건물 앞에서 서성이는 미래.

강의 차가 온다. 문을 열고 내리는 강. 인상을 박박 긁고 있다.


강 : 야밤에 왜 자꾸 불러내냐? 같이 자 줄것두 아니면서...

미래 : (실실 쪼갠다.) 아저씨. 이혼 당했다며? 아저씨 동생이 그르드라?

강 : ...니가 그런 말 할 자격 있냐? 너 땜에 그렇게 됐는데?

미래 : (실실 웃으며) 뭐가 나 때문이냐? 아저씨 때문이지?

강 : 니가, 밤에 불러내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 양심두 없냐?

미래 : 딴 여자가 밤에 한 번 불러냈다구, 응? 그거 땜에 이혼하는 여자가 어딨냐?

강 : 여깄다, 왜?

미래 : ...그래서 아저씨가 그 모양인거야. ...지가 왜 이혼을 당했는지 쥐뿔을 모르네.

강 : 너 때문이라니까?

미래 : 그 아줌마가 그래? 나 때문이라구?

강 : 꼭 말을 해야 아냐? 딱이면, 딱이지.

미래 : 나래두 너랑 못 살겠다. ...그런 말두 안했는데, 왜 자꾸 니 맘대루 해석을 하냐? 그 아줌마가 그래? 나 때문이라구?

강 : ...(물끄러미 본다.) 너 때문이란 말은 안했다.

미래 : 그렇잖아. 그 아줌마가 나 때문이란 말 안 했으면, 나 때문이 아니야. ...그럼 모래?

강 : ...나랑 놀아 본 적이 없단다.

미래 : 그럼, 그거야. ...왜 안 놀아줘서, 이혼을 당해? 바보 아니냐?

강 : (성질을 낸다.) 아, 왜 불러 냈는데?

미래 : 약 올릴라구...

강 : 왜 약올려?

미래 : ...넌, 이 여자 저 여자한테 당해 봐야 돼. ...아저씨한테 문제가 뭔 줄 알어?

강 : 무슨 문제?

미래 : 인상 빡 쓰구... 손가락으루, “야, 일루 와봐.” 이러는 게 문제야.

강 : 그게 어때서? 다 먹혔는데?

미래 : 퍽이나 먹혔다? ...아저씨, 죽으면 옆에서 울 여자 누군가 세 봐라. ...그래야 먹힌거지.

         ...넌 나두 너한테 먹혔다구 보지?

강 : 그래.

미래 : 아저씨, 있지? 아저씬 터프루 승부를 걸지 말구... 불쌍한 걸루 승부를 걸어. ...내가 왜 아저씨 만나 준 줄 아냐?

강 : ...돈 땜에...

미래 : 그거야, 초기구... 후반기에 만나준 건 좀 다른데... 아저씨가 살짝 보인 적이 있었어... 어머니 만난 날. ...어머니 보던 눈.

강 : ...

미래 : 무지하게 화가 난 눈이었는데... 원래 힘 빡 주구 있던 눈하군 달랐거든?

         ...아저씨. 눈에 힘 풀구, 머리에 힘 풀구, 어깨에 힘 풀구, 그리고 여자 만나라. ...애정결핍두 버리구...

         ...(웃으며) 간만에 만나서 반가웠어, 아저씨. ...잔소리하구 싶어서 불렀어, 사실은...

         요즘, 내가 잔소리 할 때가 없어서 환장했거든. ...잘가. (걸어간다.)

강 : 야, 타라. 집에 데려다 줄게.

미래 : 됐다. ...나, 서울 떴다. 잘 살어, 아저씨. 눈에 힘 풀구...


떠나가는 미래의 뒷모습을 보며 강, 자꾸 눈을 비비적댄다.



55. # 경의 버스 정류장 (밤)


택시에서 튀어 나오는 경.

앉아있던 복수가 웃으며 벌떡 일어난다. 캔커피 두 개를 한 손에 쥐고...

경이 물고기 노트를 들고 달려와 인상을 쓰며 복수의 가슴을 노트로 마구 친다.


복수 : 아, 좀... 왜 때려요? 환자를?

경 : 이 씨. 요양원 좋아하네.

복수 : (놀란다) 어? 어뜩케 알았어요? 경이씨?

경 : 어뜩케 알구 자시구... 잠깐 앉아봐요.

복수 : 일단... 커피 한잔 하구...

경 : 복수씨 혼자 다 먹어요. 일단 앉으라니까요?

복수 : (앉는다.)

경 : (물고기 노트를 펼쳐 든다. 목소리가 떨린다. 울음 직전의 그 떨림. 울지는 않는다.) 내가... 하두 복수씨가 속을 썩여서,

      앞으로의 전망과 해결책을 적었어요. ...복수씨가 장애인이 됐을 때. 복수씨가 죽었을 때. ...이 두 가지 가능성에 대해서

      내가 어뜩케 대처하겠는가... ...자, 그럼 읽어 줄테니까, 들어 봐요. ...(울먹이며 인상을 찡그린다.) 진짜, 별짓을 다 하네.

복수 : ...경이씨. ...안해두 돼요. ...그냥 커피나 마셔요.

경 : (소리친다.) 아, 어뜩케 안해요? ...(눈물이 맴돈다. 손으로 눈물을 닦는다. 노트를 본다.) 아, 진짜, 읽기두 싫다.

      (물고기 노트를 복수에게 주며) 댁이 알아서 읽어요. ...난, 그대루 할 거니까. 그리구... 댁하구 같이 살거니까...

      (여전히 울먹인다.)

복수 : ...(커피를 주며) 따줘요.

경 : (인상을 쓰며 커피를 따준다.)

복수 : (다른 캔을 들어서 준다.) 경이씨두...

경 : 안 먹어요.

복수 : 먹지? 나 혼자만 먹기 그런데?

경 : (눈물을 닦으며) 복수씨.

복수 : ...경이씨.

경 : 내 이름 부르지 마요. 징그러워요.

복수 : ...저기... 사실은 집에 들러서, 짐싸갖구 요양원 갈라 그랬거든요?

경 : (다시 벌떡 일어나서 눈물을 흘린다. 소리친다. ) 내가, 생각 찬찬이 신중하게 하느라구, ...그 노트에...

      복수씨가 예전에 나한테 보여준 노트처럼... 열심히 적었거든요? 근데... 난 복수씨처럼 눈물이 나는게 아니라...

      적구 있는데 계속 화만 났어요. ...생각이구 뭐구... 그 노트 다 무시할래요.

      ...(눈물 머금은 눈으로 복수를 본다.) 복수씨. 그냥, 사는 동안 살구, 죽는 동안 죽어요.

      살 때 죽어 있지 말구, 죽을 때 살아 있지 마요. ...남자인 동안엔 남자루 살구, 장애인인 동안엔 장애인으루 살아요.

      ...내가 애인인 동안엔 애인으루 살구, 내가 보호자인 동안엔, 보호자루 살래요. 그냥 그렇게 살면 돼요.

      ...과거 돌리면서 추억하지두 말구, ...미래 예상해서 걱정두 말구... 지금 사는 거처럼, ...지금을 살아요. 네?

복수 : ...(애틋하게 경을 바라본다.)

경 : (눈물을 닦는다.)

복수 : ...내 말이 그 말인데?

경 : (인상을 쓴다.) 언제 그랬어요?

복수 : 지금... 그렇게 말할라 그랬는데?

경 : ...진짜요?

복수 : 네.

경 : ...웬일루요?

복수 : ...(낮게) 집에 갔더니... 경이씨 물건이 있었어요.

경 : ...

복수 : 그 물건... ...계속 보면서 살구 싶어요.

경 : ...

복수 : ...(부끄러운 듯 고개 숙인다.) 그래서... 서랍 하나 비워서, 넣어뒀어요.

경 : ...

복수 : (경을 본다.) 잘했죠?

경 : ...(궁시렁) 어차피 이럴 걸... 그렇게 속을 썩이냐?

복수 : ...내가... 너무 잔머리가 심했어요.

경 : (나직하게) 그르게요. ...안하던 짓을 하면, ...일이 뒤틀려요.

복수 : 인제, 커피 마셔요. 소리 질러서 목 아플텐데... 울어서 목 탈텐데...

경 : (벌컥 벌컥 커피를 마신다.)

복수 : (자기 것을 내밀며) 이것두 더 마실래요?

경 : 네. (복수의 커피도 마저 마신다.) ...하. ...증말... 골 아퍼 죽는 줄 알았네.

      가뜩이나 죽는 문제 생각하기두 힘든데... 무슨 야하게 사니, 마니...

복수 : 아, 부끄러, 경이씨.

경 : 복수씨한테 중요한 문젠 죽는 문젠데...

복수 : (말을 끊는다.) 아니예요. 그건 나한테만 중요한 문제 아니예요. ...세상 모두한테 중요한 문제지.

         ...그래서... 모두한테 중요한 문제니까... 특별히 중요할 것두 없네요. 평범한 문제네요.

         ...인제... 난 경이씨랑 뭘 하구 살까... 그 생각만 할래요.

경 : ...

복수 : 경이씨두 콜?

경 : (미소) 인제... 제 정신으루 돌아왔네요.

복수 : 네. ...인생이 뭐. 그렇죠. 그냥, 되는 대루 사는 거죠, 뭐.

경 : ...그냥 막 살아요, 우리. 네?

복수 : 네. 근데... (물고기 노트를 보며) 이왕 무슨 계획을 세울거면, 다른 노트에 적어 오지, 왜 악보에다 그걸 적어와요? 네?

         무슨 의미가 있는 행동인가?

경 : 빈 노트가... 그거 뿐이 없었어요.

복수 : 아, 진짜... 되는 대루 막 살어, 이 여잔...

경 : ...

복수 : (주머니에서 경과 같은 반지를 꺼낸다.) 손가락 내 밀어요.

경 : 그거... 내가 결혼 선물루 복수씨 준거예요.

복수 : (새끼 손가락 손톱 위에 걸쳐져 있는 경의 반지를 보여준다.) 여기 있어요, 그건... ...이건 내가 주는 거구...

경 : (미소짓는다. 손가락을 내민다.)

복수 : (복수가 경의 새끼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준다.)

경 : ...(수줍게 미소짓는다. 혼잣말) 미안하다, 난. ...맞지두 않는 반지줘서...

복수 : 크기두 같구, 모양두 같으니까, 더 좋잖아요. ...난 더 좋은데...

경 : ...(복수의 손을 잡는다.) 이제... 내가 복수씨 오른 손이예요. 네? 이 다음엔 오른쪽 다리할께요.

복수 : 네. ...내 눈두 되줘요.

경 : 네.

복수 : 내 머리두 되줘요.

경 : 네.

복수 : 그러다 귀찮으면, 없어져요. 내 앞에서...

경 : 네.

복수 : 참구 뭉개지만 않으면... 나 경이씨랑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래요.

경 : ...네. ...못 참으면, 이혼할께요. 노트에... 이혼장두 만들었어요.

복수 : 진짜요?

경 : 네.

복수 : 꼼꼼하네, 보기보다...


마주보구 웃음짓는 둘의 모습. O.L.



56. # 복수의 집 - 툇마루 (밤)


O.L. 캄캄한 복수의 집 달빛아래 빛나는 베네치아 스탠드. 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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