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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보일까봐] 02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9.04.04|조회수596 목록 댓글 0

[눈물이 보일까봐] 02









#1. 영은방 (밤)


희미한 스탠드 불빛. 책상 위에 놓인 케잌 상자. 지은과 나란히 누워있는 영은.



#2. 회상 (몽타쥬)


-비오던 날 수현과 우산 쓰고 가는 영은

-수현에게 화분 건네는 영은

-케잌 건네주며 앞으로 우리 잘지내요 하던 수현



#3. 영은 지은방 (밤)


누운 채 흐흥, 하고 웃는 영은. 곁에 누운 지은, 예민해져서 돌아본다.


지은 : 뭐가 그렇게 혼자 웃겨?

영은 : 아냐.

지은 : (한심하다는듯 잠깐 보다가 다시 돌아눕는다) ...불끄구 자.

영은 : 응.


스탠드 끄고 다시 자리에 눕는다.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수현(E) : 앞으로 우리 잘지내요...

영은 : (미소 지으며 조그맣게) 네!



#4. 동 집 외경 (밤)


불꺼진 영은집 창문. 타이틀.



#5. 버스 정류장


뛰어오는 영은. 버스 놓친다. 기다린다.

길가에 주욱 펼쳐 놓고 파는 싸구려 그림들. 지친 표정의 중년 남자 한사람, 낚시 의자에 앉아 국수를 허겁지겁 먹고 있다.

영은, 버스 기다리며 흘깃거리고 본다.



#6. 레스토랑 파인 앞


액자 하나를 끼고 걸어오는 영은. 가게 간판 올려다보며 설렌다.



#7. 동 홀안


오픈 전의 가게. 청소하는 직원 한사람.

들어오는 영은. 홀매니저에게 다가가 꾸벅 인사한다.


영은 : 안녕하세요?

홀매니저 : (사무적으로 까딱) ...

영은 : (눈치) 저어...저 어떻게 할까요?

홀매니저 : 탈의실 저깁니다. 가서 유니폼 갈아입으세요. 사물함에 이름 붙여놨어요.


머뭇거리며 안으로 들어가는 영은.



#8. 탈의실


여종업원 두사람, 사물함 앞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다.


종업원1 : 경력은 무슨 경력이니. 생짜래.

종업원2 : 생짜를 왜 뽑아?

종업원1 : 모르지 뭐.

종업원2 : 이쁘구나?


들어오는 영은. 당황하는 종업원1.


영은 : 첨 뵙겠습니다. 김영은이라고 합니다.

종업원2 : (자기들끼리 작게) 별론데?

영은 : ?


까딱 인사 하더니 얼른 나가는 두사람. 머쓱해지는 영은.



#9. 주방


일 시작 전의 한산한 주방. 각 라인(튀김 굽기 스프 등) 별로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 몇몇.

주방장 민식, 고기를 다듬고 있다. 30대 후반, 과묵하고 진지한 인상이다.

기민하게 생긴 주방 보조 한사람, 구석에 앉아 재료 다듬는다. 이름은 동규. 20대 중반이다.

들어오는 영은.


영은 : (주방장에게 다가가 꾸벅 인사) 안녕하세요.

민식 : (힐끗 보고) 둥근파 한개 가지구 와라.

영은 : 예?

민식 : 귀 먹었냐? 둥근파,

영은 : 둥근파... (주위를 기웃기웃)

동규 : 야, 받어. (깐양파 하나 휙 던져준다)

영은 : (놀라며 받는다)

동규 : 너 양파 깔 줄은 아냐?

영은 : (민식에게 양파를 두손으로 건넨다) ...

동규 : 쩝...도움이 못되면 방해나 말아야지. 보자보자 하니까 진짜 아무 생각 없는 사는 양반이군.

         가게를 하겠다는 거야, 말아먹겠다는 거야. 참는 것두 하루 이틀이지, 양파두 모르는 앨 어따 쓰라는 거야?

영은 : ...열심히 하겠습니다.

동규 : 누군 아버지 잘만나, 아무 능력이 없어두 점장으루 내려와 있구, 누군 허구헌날 부엌에서 이 모양 이 꼴이구... (한숨)

         하늘두 불공평하시지...안그래요, 박선생님?

민식 : (OL) 좀 조용히 살자. 시끄럽다.

영은 : 저...뭐부터 할까요.

동규 : 창고에 가서 설탕이나 한 푸대 가지구 와라.



#10 물품 창고


영은, 설탕 푸대를 안고 일어난다. 돌아서는데 문가에 서있는 수현. 확 반가워진다.


영은 : 나오셨어요?

수현 : 잠깐 차나 한잔 할까요?

영은 : (좋은데)



#11. 창고 부근


기다리고 있는 수현. 다가오는 영은.

캔커피 하나 건네는 수현.


영은 : 고맙습니다.

수현 : 일 재미있어요?

영은 : 아직 뭐... (으쓱) 인제 막 출근한걸요.


뒷춤에서 액자를 쓱 꺼내는 영은. 사방30센티 정도의 조그만 액자다.


수현 : 뭐예요?

영은 : (수줍다) 뜯어보세요.


수현, 받아서 뜯어본다. 밀레의 '만종' 복사본 그림이 들어있는 싸구려 액자.


영은 : 제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이예요. 밀레의 만종!

수현 : ?

영은 : 케잌 잘 먹었다구요. 답례로 드리는 거예요.

수현 : (아아, 하고 웃는다. 그림 보며) ...밀레 좋아해요?

영은 : 네. 그 사람 자기가 자기 귀를 짤랐대요. 사는게 무척 괴로워서요.

수현 : (무표정해지는) ...

영은 : 그러니까 이런 슬픈 그림을 그릴 수 있었겠죠?

수현 : 그건 고호 아닌가요?

영은 : (잠깐 생각하다 얼굴 빨개진다) 그랬던가요? 밀레는 귀 안잘랐어요?

수현 : 모르죠.

영은 : (무마하듯 입가리고 호호 웃는다) 암튼 좋은 그림이잖아요.

수현 : 그래요...근데 이거, 고마워서 어쩌죠?

영은 : 에이 뭘요. 오고가는 선물 속에 싹트는 우정! (친다) 고마우면요, 밥 한번 사세요!

수현 : (멍하니 보다가) 그러죠.


수현 얼굴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영은.



#12. 동 복도


나란히 걸어오는 두사람.


영은 : ...홀에서 일하세요?

수현 : 홀에서두 일하구, 주방에두 가끔 가구.

영은 : (망설이다가) 우리 가게 점장님...좀 문제가 있으신가요?

수현 : (멈칫) 왜요.

영은 : 부모님 덕에 낙하산으루 내려오셨어요?

수현 : ...맞아요. 낙하산.

영은 : (조심스레) 생각이 좀...없는 분이세요?

수현 : ...누가 그래요?

영은 : 아니예요?

수현 ...(피식) 맞아요. 생각두 없구 의욕두 없구...문제가 많은 사람이죠.

영은 : (심각하게 한숨) 큰일이네...그런 가게는 꼭 망해요.

수현 : 그래요?

영은 : 네, 당연하잖아요! 예전에 우리가게 옆에 식당두 그렇게 망했어요.

         제일 중요한 게 주인 마음가짐이예요. 의욕이 없으면 정말 한순간에 가는 거예요.

수현 : ...

영은 : (본다) 표정이 왜 그러세요? (웃으며 툭 친다) 에이, 우린 안 망해요...제가 들어왔잖아요!

수현 : (씁쓸히 웃는다)...

영은 : 여쭤볼 게 있는데요...혹시 우리 가게 말이예요. 월급을...

수현 : 월급을 왜요?

영은 : 혹시 가불은 안되겠죠? 한 일주일치만이라두... (본다) 어림 없겠죠?

수현 : 아마 힘들걸요. 돈 필요해요?

영은 : 네...급히 좀 쓸 데가 있어서...(웃고) 음, 뭐, 힘들 줄 알았어요.

수현 : (보다가) ...저, 그럼 밥은 언제쯤 살까요?.

영은 : (멈칫) 네?

수현 : 언제 시간 있어요? (그림 들어보이며) 밥 살께요.

영은 : (고민된다) 저기요... (멈춰 선다) 저 당분간 일만 열심히 배울 거예요.

수현 : ?

영은 : 그러니까 저어... (머뭇하다 씩 웃는다) 우리 그냥 좋은...좋은 친구로 지내요.


영은, 창피한듯 목례하더니 허둥지둥 앞서서 가버린다.

수현, 어이없어 멍하니 본다.



#13. 레스토랑 홀 안


오전 분위기 스케치. 손님 몇이 식사하고 있다. 종업원들 오가며 시중 들고 있다.



#14. 동 주방


바삐 일하는 주방 사람들.

한쪽에 양파와 감자 그득 쌓여있다. 구석에 주저 앉아 껍질 까고 있는 영은.

주방보조 동규, 설거지 감 안고 영은 앞으로 다가온다.


동규 : 껍질만 까지 속은 왜 다 썰어?

영은 : 조심하겠습니다.


들어오는 홀매니저.


홀매니저 : 수고 많네요.

영은 : 네.

홀매니저 : 점장님이 찾으세요. 아직 인사 안했죠?

영은 : (일어나며) 네.



#15. 점장실 앞


노크하는 홀매니저. 곁에 서서 옷매무새 추스리는 영은.



#16. 점장실


들어오는 홀매니저와 영은.

구석에 돌아 앉은 채 책장의 잡지 따위를 정리하는 수현.


영은 : (반가워) 여기서 뭐하세요?

수현 : (돌아본다)

영은 : (다가서며) 일 안하구 여기서 뭐해요?

홀매니저 : (뭔가 싶다) 점장님하구 잘 아세요?

영은 : 예?

수현 : (일어나 다가오며) 네, 잘 알아요.


영은, 멍하니 보다가 상황 파악하고 딱 얼어붙는다.


수현 : (홀매니저보고) 저녁에 우리 단합회 합시다. 김영은씨 환영회두 겸해서요.

영은 : ...(식은땀 흘리며 기어들어가는) 점장...님이셨어요?

수현 : 네. 아무 생각 없는 점장, 조수현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릴께요.


흰봉투 하나 내민다. 놀라서 그저 멍하니 보는 영은.


수현 : 부탁했잖아요? (홀매니저 눈치보고) ...받아요, 얼른.


핸드폰 울린다. 전화 받는 수현.


수현 : 네에...어디야?... 오늘?

영은 : ...

수현 : (다이어리 보며) 벌써 날짜가 그렇게 됐구나.


나가보라는 눈짓.

봉투 받아들고 뻣뻣이 굳은 채 서있는 영은. 죽을 맛이다.



#17. 속옷가게 앞


인부들이 불탄 자리에 페인트를 칠하고 있다. 속옷가게 간판이며 유리문짝 등이 근처에 어지럽게 널려있다.

다가오는 인옥. 멈칫 선다.


인옥 : (인부에게) 여기 누구 지시 받구 공사하시는 거예요?

인부 : ?

인옥 : 여기 저희 가겐데요...누구 허락 받구...

주인여자 : (안에서 나오며) 내 허락 받구 하는거예요.

인옥 : 아니,아주머니. 이런 경우가 어딨어요?

주인여자 : 인제 여기 아줌마네 가게 아니예요.

인옥 : 뭐요? 그게 무슨 말이예요? 제가 피해난 거 보상한다 그랬잖아요.

주인여자 : 겨우 그 돈 갖구 와서 무슨 피해보상이예요. 아줌마네 보증금 다 해두 이 건물 원상복구 못해요.

인옥 : 말두 안돼. 이 아줌마 지금 누굴 바보루 알아요? 겨우 이 정도 불에...

주인여자 : (OL) 겨우 이 정도라니! 나 요새 하루하루 피가 말라 잠이 안 와요.

               남편없이 혼자 사는 거 불쌍해서, 이 정도 선에서 끝내는 거니까, 더 열받기 전에 가요!

인옥 : 뭐예요?



#18. 가게 부근 거리 - 승용차 안


운전하는 기사와 뒷좌석의 두식. 두식 곁에 커다란 백합꽃 바구니가 놓여있다.

눈 지긋이 감은 두식. 기분이 좋아보인다.


두식 : 세상에 그렇게 기품 있는 요조 숙녀가 없었어. 고상하구 우아하구...자존심은 또 얼마나 강했는지...

         (미소) 온 동네 총각들 혼을 다 뺐다니까.

운전기사 : 대단한 분이셨네요.

두식 : 흐음...

운전기사 : 한 고향 분이신데 왜 여태 한 번두 못 만나셨어요?

두식 : ...(덤덤히 창 밖만 보는)

운전기사 : 긴장되시는 모양이지요, 사장님.

두식 : 거, 쓸데 없는 소리 그만 하구 운전이나 잘해.

운전기사 : 예... (둘러보고) 여기 어딘 거 같은데... (주소쪽지 들여다보며) 메리야스 가게가...


창밖 저 멀리 웅성거리며 몰려든 사람들.

차를 멈추고 차창 내리는 운전기사. 기웃기웃 한다.



#19. 속옷 가게 앞길


주인여자와 인옥, 싸우고 있다. 주인 팔을 잡고 매달린 인옥.


주인여자 : (뿌리치며) 고소해! 고소하라구! 누가 무서운데 그래? 봐줬드니 고마운 줄은 모르구,

인옥 : (억울해서) 이 아줌마 순 도둑 심보네? 아줌마 세상 그렇게 사는 거 아니예요.

주인여자 : 도둑은 누가 도둑인데?

인옥 : 고소한다구요! 내 딸이 누군지 알아? 내 딸이 사시패스했어! 당신같은 사람 당장 쳐넣을 수 있어요!

주인여자 : 사시패스는 무슨 패스야? 겨우 일차 통과해 놓구! 그거는 개나 소나 다 하는 거 아냐?

인옥 : (무안) 두구봐, 두구 보자구! 당신 고소해서 내 돈 다 받을 거구, 정신적인 피해보상두 받을 거구...

         (엉엉 울며 주인 팔을 안 놓는다) ...

주인 : 이거 못 놔? 생사람 잡지 마요. 나두 억울한 사람이야.


차에서 내리는 두식. 기사와 함께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눈길이 인옥에게로 가서 멎는다.

무심코 시선 돌리다가 다시 유심히 들여다본다. 얼굴이 점점 굳는다.


인옥 : (허겁지겁 매달리며 운다) 내 가게 돌려줘요! 아줌마, 내 가게, 내 돈 내놔요...부탁해요, 아줌마...


안으로 들어가는 주인여자를 질질 잡고 끌려들어가는 인옥.

멍하니 바라보는 두식.


기사 : (뒤에서 온다) 메리야스 가게가 없는데요?

두식 : (흠칫) 어어... (서둘러 차에 오르며) 그만 가지.

기사 : 예?

두식 : 이 동네가 아닌 모양이야... 타!

기사 : (무슨 영문인가 보다가 차에 오른다)



#20. 거리 - 승용차 안


대로를 빠져나가는 승용차. 침묵 흐른다.


운전기사 : (눈치 살피고) 이사 가신 모양이지요?

두식 : 회사로 도로 들어가지... (시계보는 척) 내, 약속이 있었는데 깜빡 했어.


우두커니 생각에 잠기는 두식.



#21. 단란주점 외경 (밤)


안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



#22. 단란주점 안 (밤)


레스토랑 식구들 2,30명. 둘러앉아 떠들썩하게 술과 안주 먹고 있다.

가끔 수현과 눈 마주치면 눈길 떨구는 영은.

앞에서 이중창으로 노래부르는 홀매니저와 동규.


주방장 민식 : (영은에게 맥주 따라주며) 자, 한잔 받아라.

영은 : 감사합니다.

민식 : (탕수육 한점 집어먹고) 이집 안주가 형편없구만. 이러구두 장사를 하나?

수현 : (웃는다)

영은 : (슬몃 바라본다) ...


노래 마치고 들어오는 두사람. 마이크를 주방장에게 정중히 건넨다.


동규 : 한 곡조 하시죠.


민식, 앞에 나가 노래를 시작한다. 찬찬찬 같은 빠른 비트의 트로트곡. 힘차게 불러제낀다.


동규 : 야, 뭐하냐? 나가서 장단 맞춰야지.


영은, 주저하다가 앞으로 나간다. 탬버린을 들고 곁에 서서 박자를 맞춘다.

흥이 오르자 영은의 어깨를 끼고 노래하는 민식.

영은, 에라 모르겠다 싶다. 탬버린을 흔들며 겅충겅충 돌아가는 인디언 춤을 춘다. 신나게 한바퀴 돌고 객석을 문득 바라본다.

어느새 사라지고 없는 수현.

영은, 마음이 쿵 허전해진다. 간주곡이 흐르고 환호하는 사람들.



#23. 주점 앞길 (밤)


거나하게 취해서 인사하고 헤어지는 사람들.

영은, 사람들에게 인사하면서, 눈으로 연신 수현이 없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24. 영은집 앞 골목 (밤)


힘겹게 산길을 올라오는 영은. 기분 정말 씁쓸하다. 대문으로 막 다가가려는데 기다리고 서있는 검은 그림자.

멈칫 바라보는 영은. 종수다.


종수 : (막아서며) 잘있었냐?

영은 : !


담배 비벼끄는 종수.


종수 : 너 그게 전부 얼만지 알어? 천두 넘어. 내 전 재산 털어서 산 거야. 너같은 앤 평생 한번 입어볼까말까한 옷이거든?

         (기막힌듯 웃고) 남의 재산을 통째루 잡아먹구두, 아무 일 없단 듯이 잘두 돌아다니네? 너두 참 대단한 강심장이다.

영은 : ...

종수 : 할 말 있냐?

영은 : ...죄송합니다.

종수 : (움켜쥔다) 죄송하면 다야? 물어내! 조만간 보상 안하면 너두 죽구, 나두 죽는다 그랬지?

         너 때문에 내 인생 다 종쳤어. 이번에 증말 제대로 한번 살아 볼려 그랬는데, 너 땜에 다 텄다구!

         어쩔래? 언제, 어떻게, 보상할 건데? 응?


착잡한 얼굴로 고개 숙인 영은. 고민한다.


영은 : 저희 집두...지금 사정이 많이 어려워요. 누가 일부러 불을 낸게 아니라, 그냥 우연히 일어난 사고였어요....

         화 푸시고 이해해주세요.


가방에서 주섬주섬 봉투를 꺼내는 영은.


영은 : 이거...얼마 안되지만...


멈칫 보는 종수. 봉투를 휙 나꿔챈다. 지폐를 눈으로 차르륵 세는 종수.


영은 : (본다) 그거...제 첫 월급이예요.

종수 : (본다) 그래서?

영은 : (서글프게 바라본다)

인옥(E) : 영은아,


헉 놀라는 영은. 종수, 움찔 돌아본다.

뒤에서 다가오는 인옥. 종수를 거세게 밀친다.


인옥 : (싸늘하다) 들어와!


영은 팔을 거칠게 나꿔채고 끌고 들어간다. 대문을 소리나게 쾅 닫는다.

종수, 태연히 담벼락에 기대고 서서 담배를 붙여문다. 생각이 복잡하다.



#25. 인옥방 (밤)


인옥 앞에 무릎꿇고 앉아있는 영은.


인옥 : (차갑다) 그래서? 그래서 그 짐을 맡아줬다 그거지?

영은 : ...(고개 숙인다)

인옥 : 전부해서 얼마라 그래?

영은 : (머뭇하다가) 천만원... 넘는대요.

인옥 : (뚫어져라 본다) ...너 그 놈 말 믿니?

영은 : 네?

인옥 : 그 자식이 하는 말 믿어? 너 그 옷 봤어? 진짜 비싼 옷인지 니 눈으로 봤어?

영은 : (본다)

인옥 : 그 자식 지금 거짓말하는 거야. 그 옷 다 가짜야. 모조리 거짓말이야.

영은 : !

인옥 : 다 태워봤자 몇만원.. 그래, 많이 써서 한 십만원이나 하겠다. 그래놓구 너한테 와서 물어내라는거야. 알겠어?

         그동안 맡아준 창고비만 해두 그 돈 다 빠지겠다.

영은 : ...

인옥 : 엄마가 왜 너만 보면 속이 터지는지 알어? 너 이러니까! 내가 이렇게 쑥맥에 덜 떨어진 물건을 낳았다는 게...

         나는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아! 아무나 믿구, 누구한테나 덥썩 손 내밀구...

         대체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래? 모자란 기집애야.

영은 : (고개 숙이고) ...

인옥 : 한번만 더 그 놈 찾아오면 경찰서에 집어넣는다구 소리 질러버려!

         왜 그렇게 사니? 너 왜 그렇게 살아? 왜 밖에 나가 병신짓만 하구 돌아다녀? 응?


등을 철썩철썩 친다.


인옥 : 나가! 니 방에 가. 꼴두 보기 싫어.


밖에서 낭랑하게 들려오기 시작하는 플룻 소리.



#26. 영은 지은방 (밤)


지은, 플룻 연습을 하고 있다. 포즈가 우아하기 그지없다.

들어오는 영은. 묵묵히 옷을 갈아입는다.


지은 : 뭐 안 좋은 일 있니?

영은 : ...

지은 : 왜 뚱해? 첫 출근 하자마자 짤렸니?

영은 : 아냐.


무릎에 얼굴 팍 묻는 지은.


지은 : (한숨) 나, 죽구 싶어.

영은 : 왜에.

지은 : (피식) 현정이 소연이 다 유학간댄다... 나는 유학이 다 뭐니. 불 나서 다음 학기 등록두 할까 말깐데...

         내 팔자에 무슨 음악이니, 음악은...

영은 : (안됐다)...

지은 : (글썽하며) 휴학하구 나두 너처럼 일이나 하든지...

영은 : 언니.

지은 : (화장지 꺼내 눈물 닦는다) 미안하다, 언니가 돼서 약한 모습이나 보이구...

영은 : (감싸며) 기운내라, 언니야...

지은 : 오늘 엄마 기분두 말이 아니드라. 너 조심해. 주인이랑 머리 끄댕이 잡구 싸웠대.

영은 : 정말?

지은 : (흑 운다) 우리집은 왜 항상 이 꼴일까...

영은 : (착잡해지며 바깥 쪽을 본다) ...



#27. 동 마루 (밤)


방에서 나오는 영은. 방문 틈으로 흘러나오는 인옥 목소리. 통화중이다.


인옥(E) : 괜찮아, 경은아...엄마 괜찮으니까 전화할 시간 있음 공부나 해. 다 해결됐대두 그러네...

              그래 괜찮아...니가 나중에 크게 돼서, 엄마 한 다 풀어주라...엄마 너만 믿고 산다...


가만히 듣고 섰다가 냉장고 열고 물통 꺼내는 영은. 대접에 찬물을 붓고 미숫가루를 휘휘 개기 시작한다.


영은 : (짐짓 씩씩하게) 엄마! 시원한 미숫가루 한 잔 드세요!


방에서 나오는 인옥. 물끄러미 바라본다.


영은 : (고개 떨구고) 죄송해요, 엄마...


싸늘히 화장실로 들어가는 인옥. 참담해지는 영은 표정.



#28. 파인 홀 안 (밤)


영업 끝난 뒤 홀 안의 풍경. 의자들이 테이블 위에 엎어진 채 올려져있다.

바 쪽에만 희미하게 불이 켜져있다.

입구로 들어오는 혜경. 긴 생머리에 심플하고 여성스러운 의상.

의자 딛고 올라선 채, 조명등을 갈아끼우고 있는 수현.


혜경(E) : ...조수현 사람 됐는데? 이런 거까지 직접 하구?

수현 : (놀라서) 언제 도착했어?

혜경 : 짐만 집으루 보내놓구 공항서 곧장 오는 길이야.

수현 : (손 털며 내려온다) 피곤할텐데 쉬지, 뭐하러...

혜경 : 나오지 말라고 했지만 그래두 설마 안 나올 줄 몰랐어. 공항을 샅샅이 뒤진 거 알아?

수현 : 직원들하구 회식 있었어.

혜경 : (애틋하게 본다) ...잘지냈어?

수현 : ...음.


가만히 다가오더니 수현을 끌어안는 혜경.


혜경 : 보고 싶었어...참 많이.



#29. 점장실 (밤)


맥주캔 몇 개 놓여있다.

오디오에 음반 꽂는 혜경. 구석에 아무렇게나 놓인 액자가 눈에 들어온다.


혜경 : 이건 뭐야...(들고본다)

수현 : (맥주 마시며 심드렁히) 별 거 아냐.

혜경 : 조악하기두 해라. 같은 그림두 뮤지엄에 있는 거랑 이렇게 달라 보일 수가 있을까? (툭 놓으며) 달력에서 오린 거야?

수현 : (무덤덤히 그림 내려다보다가) ...전시회 준비는 잘 돼가?

혜경 : 나야 뭐 한 게 있나. 집에서들 고생하셨지.. (곁에 다가오며) 비행기 안에서 내내 무슨 생각 했는지 알아?

수현 : 무슨 생각?

혜경 : 우리집 꾸밀 생각.

수현 : 집?

혜경 : 아파트 말구 주택으로 얻자. 내 작업실 겸해서...아버님한테두 말씀 드렸어. 딱 일년만 저희들끼리 살겠습니다, 그랬더니

         흔쾌히 허락하시드라? 정원두 꾸미구 텃밭두 만들구... (멋적게 웃고) 나혼자 온갖 밑그림을 그렸다 지웠다 그랬어.

수현 : (굳어있다) 지금 무슨 말 하는거야?

혜경 : 왜? 우리끼리 사는 거 싫어? (뒤에서 가만히 끌어안는다) 싫지 않잖아?

수현 : (팔 풀며) 우리끼리라니? 누구랑 누구.

혜경 : (멈칫보다가) 누구긴 누구야. 너랑 나지.

수현 : 내가 너랑 왜 같이 살지?

혜경 : ...결혼 날 잡았어. 못 들었어?

수현 : 결혼?

혜경 : 금시 초문이야?



#30. 두식집 외경 (아침)



#31. 동 식당


홀로 앉아 식사하는 두식. 서둘러 들어오는 수현.


두식 : (눈길도 안주고 밥만 먹는다) 오랫만이다.

수현 : (앉으며) 아주머니, 저두 밥 좀 주세요. (무덤덤한 듯) 결혼식이 언젠가요?

두식 : (태연히 잠깐 본다) ...9월 마지막 토요일이다. 좋은 날이라드라. 안사돈하구 의논해서 고르구 골랐다.

수현 : 저한테 왜 한마디도 상의 안하셨어요?

두식 : 상의 하나마나지. 보나마나 생각해본다 어쩐다...니 놈이 뭐 한가진들 똑부러지게 하는게 있냐?

수현 : (기막혀 웃는다) 다른 것두 아니구, 제 결혼입니다.

두식 : 그래, 니 결혼 맞아. 누가 뭐라냐?

수현 : 전 혜경이한테 결혼하자구 한 적 없어요.

두식 : 그런 놈이 근 십년을 사귀구 있어?

수현 : 친굽니다.

두식 : (삐딱하게 보다가) ...미국서 둘이 꽤 깊게 지낸 거, 다 안다.

수현 : ...그땐 제가 어렸어요. 외로웠구요.

두식 : 누구나, 언제나, 외롭다. 외로운 거 끝나면 죽는다.

수현 : (본다) ...

두식 : (수저 놓고 일어나며) 아줌마, 내일 고사리 좀 무쳐서 상에 올려봐요. 고사리가 먹구 싶네...간 좀 슴슴하게 해서...


밥과 국을 가져다 주는 가정부. 착잡해지는 수현.



#32. 동 거실


소파에 앉아 안경 쓰고 조간신문 읽는 두식. 식당에서 나오는 수현.


수현 : 저한테...따로 사귀는 사람이 있다 그래두 이 결혼 추진하실 건가요?

두식 : (안경 너머로 힐끗 본다)

수현 : 혜경이네 집이 지금처럼 대단치 않아도 이런 식으로 밀어붙이셨겠어요?

         다른 건 다 그렇다 치구, 어떻게 제 결혼까지두 아버지 비즈니스 스케쥴에 따라 움직여야 됩니까?

두식 : 내 말 들어서 너 지금 뭐 잘못 된거 있냐? 고마운 줄이나 알아라.

수현 : (서글퍼진다) ...많이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만...앞으론 저두 제 인생 살겠습니다.

두식 : ...

수현 : 저 사랑하는 사람 따로 있습니다. 혜경이랑 결혼 안합니다.

두식 : (태연히 신문 넘긴다) 거짓말두 좀 그럴듯하게 해봐.

수현 : (잠시 보다가 이층으로 올라간다) ...



#33. 레스토랑 외경



#34. 점장실 앞.


출근하는 수현. 기분이 좋지 않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영은과 눈 마주친다. 목례하는 영은.


수현 : 무슨 일이죠?

영은 : 잠깐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35. 점장실


들어오는 수현. 뒤이어 들어오는 영은.


수현 : (앉으며) 앉으세요.

영은 : (선 채로) 죄송합니다. 사과 드리겠습니다.

수현 : (본다)

영은 : 혹시 언짢으셨으면 용서해주세요.

수현 : 뭐가 언짢아요.

영은 : ...실수가 많았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꾸벅 인사하고 나간다.

뭔가 곰곰히 생각하는 수현.


수현 : ...영은씨,

영은 : (나가다 돌아본다)

수현 : 우리, 밥 먹기로 한 약속은 여전히 유효한 거죠?

영은 : 네?

수현 : 내일 낮 근무 맞죠? 저녁에 혹시 시간 있어요?

영은 : (본다)

수현 : (덤덤히 외면한 채로) 친구들 모임이 있어요. 파트너로... 같이 가줄 수 있어요?



#36. 점장실 앞


점장실 나오는 영은. 멍하다.



#37. 주방 안


감자 깎는 영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좋아서 갑자기 훗 웃음이 터져 나온다.

동규, 마주 앉아 재료 다듬는다.


동규 : 내가 그렇게 우습냐?

영은 : 네?


동규, 기분 나쁜 듯 일어나 휙 나간다. 당황하는 영은.



#38. 영은집 외경



#39. 동 마루


벨 울린다. 방에서 나오는 인옥.


인옥 : 누구세요?

남자(E) : 꽃배달 왔습니다.


문을 열어준다. 배달원 한사람, 커다란 백합꽃 바구니를 내려놓는다.


배달원 : 박인옥씨 댁이죠?

인옥 : (의아한) 네, 그런데요?

배달원 : 싸인 좀 해주세요.

인옥 : 누구한테서 온거예요?

배달원 : 모르겠는데요. 저흰 그냥 주문만 받았거든요.


방에서 나오는 지은. 휘둥그레져서 본다.


지은 : 뭐야?

인옥 : 너, 어디가서 엄마 이름 둘러대구 소개팅했니?

지은 : 말두 안돼. 내가 뭐하러.

인옥 : 솔직히 말해.

지은 : (뒤적이며) 카드 같은 것두 없네? 박인옥씨 앞이예요, 정말?

배달원 : 네.

지은 : 하긴 백합꽃 이거, 엄마가 젤 좋아하는 꽃이잖아. (짐짓) 엄마 요즘 연애하우?

인옥 : (배달원 보고) 정말 발신인을 몰라요?



#40. 파인유통 사장실


두식, 혜경, 찻잔 놓고 마주 앉아있다.


두식 : 너 오니까 이제야 맘이 좀 놓인다. 그 녀석 삐딱 성질을 누가 말리냐. 갈수록 철이 더 안나.

혜경 : 그게 수현이 매력인 걸요, 뭐.

두식 : 매력으루 보니 다행이다. 나는 점점 감당이 안된다. 니가 잘 요리하며 살아라. 괜히 툭툭 내뱉는 소리에 마음 다치지 말구.

혜경 : (웃고) 안 다쳐요. 걱정마세요.

두식 : (테이블 위의 초대장 본다) 가만 있자...내일 저녁은 아주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참석하기가 힘들 거 같은데.

혜경 : (실망) 못 오세요?

두식 : 진작 알았으면 회읠 좀 미뤘을텐데...미안해서 어쩌냐.

혜경 : 섭섭하지만...할 수 없죠 뭐.

두식 : 대신에 윤실장 보내마. 화환두 큰걸루 하나 보내구...

혜경 : 고맙습니다.


들어오는 정희.


정희 : 찾으셨어요?

두식 : 마침 오는구만.

혜경 : 실장님!

정희 : 이게 누구야, 언제 왔어?


일어나 끌어안는 혜경. 반가워 어쩔 줄 모르는 두사람.



#41. 영은집 마루 (밤)


식탁에 얹힌 백합꽃 바구니. 앉아서 물끄러미 꽃을 바라보고 있는 인옥.

들어오는 영은.


영은 : 다녀왔습니다! (다가오며) 이쁘다...지은 언니꺼예요?

지은 : (방에서 나오며) 엄마 꺼.

인옥 : ...(꽃 보며 기운없이) 이 정도 꽃바구니면 얼마나 하니.

지은 : (물 따라 마시며) 한 십만원은 할 걸? 넘을 수두 있겠다.

인옥 : 미쳤구나...그 돈이면 소고기가 몇 근이야.

영은 : 누구한테서 온 거예요?

지은 : 엄마두 모른댄다.

인옥 : (넋두리처럼 나직이) 삶아먹을 수두 없구, 무쳐먹을 수두 없구...

         누군지 돈으루 주면 얼마나 고마울까...엎드려 절하구 받을텐데...


인옥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영은.



#42. 영은방 (밤)


나란히 누운 지은과 영은.

뒤척이다가 부스스 일어나는 영은. 무릎 괴고 곰곰 생각한다.


지은 : 안 자니?

영은 : (슬몃 돌아본다) ...언니.

지은 : 왜.

영은 : 어떤 남자가 나한테... 파트너루, 모임에 가자 그러는데...

지은 : (돌아본다) 파트너? 어떤 남자가?

영은 : 우리 가게 점장님.

지은 : 니네 점장님? (웃는다)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데?

영은 : 젊어. 큰언니 나이쯤.

지은 : 그렇게 젊어? (새침해지며) 그런데? 니가 맘에 든대?

영은 : ...모르겠어.

지은 : 너 지금 나한테 자랑하는 거야?

영은 : (무안) 아니.

지은 : 조심해라. 요즘 변태들 많다. 너무너무 무서운 남자들이 드글드글거려. 세기말이라 그런 건가...

         (이불 뒤집어 쓰며) 취향 이상한 인간들 참 많아...


영은, 다시 엎드려 곰곰 생각에 잠긴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배어있다.



#43. 영은집 앞 골목


플룻 케이스 메고 학교 가는 지은. 골목 어귀를 나서는데 담벼락에 삐딱하게 서 있는 종수.

눈길 마주치자 얼른 외면하고 서둘러 골목을 빠져나가는 지은. 슬슬 따라가는 종수.

걸음이 빨라지는 지은. 같이 빨라지는 종수.

어느 순간, 사색 되며 휙 돌아보는 지은.


지은 : 따라오지 마세요.

종수 : 잠깐 얘기 좀 합시다.

지은 : 저 시간 없는데요.


후다닥 앞서가는 지은. 따라가서 잡는 종수.


종수 : 잠깐이면 됩니다.

지은 : 이거 보세요. 바쁘구 시간없다 그랬잖아요. (한숨) 절 뭘로 보는 거예요.

종수 : 영은이 둘째 언니로 봅니다.

지은 : 네?

종수 : 동생 일하는 데 주소 좀 알려주쇼.

지은 : (무안하다)

종수 : 압니까, 모릅니까,

지은 : ...



#44. 레스토랑 파인 주방


설거지 하는 영은. 가끔 시계를 본다.

들어오는 동규, 설거지를 한아름 내려놓는다.


동규 : 설거지 하는 꼴 봐라. 컵에 루즈 그대로 묻었잖아.

영은 : (얼른 살피고) 어디요?

동규 : 너 뭐 오늘 흥분 되는 일 있냐?

영은 : (쓱쓱 닦고) 아아뇨.

민식 : (멀리서) 동규야, 드레싱 좀 만들어 봐라. 실력 늘었나 보자.


얼른 다가가는 동규. 드레싱을 만든다.

농도 맞나 주방장 눈치를 슬슬 보는 동규. 곁눈으로 지켜보는 영은.


영은 : (나직이) 묽어요!

동규 : (기분 상하며 주방장에게 보인다) 묽습니까?

민식 : (힐끔 돌아본다) 니가 다 마셔라.


동규, 무안해져서 돌아온다. 거보란 듯 웃으며 설거지 하는 영은.


동규 : (째려보며) 죽구 싶냐?

영은 : 아뇨, 살고 싶습니다. (다시 힐끔 벽시계를 본다)



#45. 레스토랑 주차장


옷매무새 추스리며 긴장된 걸음으로 나오는 영은. 자기 나름대로 단정하게 입었다. 주위를 둘러본다.

수현, 저만치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 밝아지는 영은 얼굴.


수현 : (차문 열어주며) 타요.


머뭇하며 차에 오르는 영은.

파킹 담당 아르바이트생들, 힐끔거리며 본다.


수현 : 안전 벨트 매시구요.


두리번거리며 벨트 찾는 영은. 팔을 뻗어 벨트를 매주는 수현.

영은, 기분이 묘해진다.

승용차 출발한다. 저만치서 주위 두리번거리며 다가오는 종수. 식당 간판 찾다가 하마트면 차에 치일 뻔 한다.

이크, 피하다 미끄러진다. 순간, 차 안에 타고 있는 영은과 수현을 발견한다.

휘둥그레지는 종수. 다시 한번 둘의 얼굴을 유심히 확인한다.

멀어지는 승용차. 얼떨떨하니 지켜보는 종수.

승용차 완전히 사라지고 나면 돌아선다. 뭐가 어떻게 된건가 곰곰 짚어본다..

아르바이트생1, 종수에게 어서오십쇼, 인사한다.


종수 : 수고가 많습니다. (차 있던 곳 가리키며) 저기, 방금 나가신 분 말인데요... 여기 자주 오시는 손님입니까?

아르바이트생 : 저희 점장님이신데요.

종수 : 점장님요? 점장이라...


담배 꺼내물며 가게 규모를 휘이 둘러본다. 씨니컬한 표정으로 한쪽에 털썩 주저 앉는 종수. 다시금 가게를 올려다본다.

아르바이트생, 경계하며 바라본다.



#46. 거리- 승용차 안


달리는 승용차 안. 잔뜩 긴장해있는 영은. 말없이 운전만 하는 수현.

슬몃 표정을 바라보는 영은. 어색함 감추느라 괜히 신발을 꼼지락 꼼지락한다.

먼지 쓰고 다 헤진 영은의 단화를 잠깐 바라보는 수현.


영은 : (괜히 머쓱해져서) 저어...친구분들이 많이 오시는 자린가요?

수현 : 영은씨,

영은 : 네?

수현 : 미안하지만 잠깐 저랑 어디 좀 들를래요?



#47. 백화점 구두매장


이것 저것 구두를 권하는 종업원. 굽 높은 힐 하나를 신어보는 영은.


수현 : 그걸로 해요. 예쁘네요.

영은 : (멋적고 어색하다) ...

수현 : (신고 온 신발 가리키며) 이건 포장해주세요.



#48. 갤러리 전시장


전시장 곳곳에 갖가지 현대적인 조각과 설치미술이 전시되고 있다.

한쪽에 차려진 뷔페 상차림. 야회복 차림으로 사람들과 인사 나누는 혜경 모습 보인다.

폐휴지 같은 것을 오려 만든 작품 앞에 서서 설명하는 혜경.


혜경 : ... 제가 환경문제를 작품에 접목 시켜야겠다고 생각한 건 대학 다니면서부텁니다.

         은사님이셨던 브라이튼 교수님께서 제게 해주신 말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는데요,

         자연으로 부터 멀어질수록 예술로부터도 멀어진다는 게 그분의 지론이었어요.

         변변치 않은 제 작업을 격려해 주시러, 바쁜 시간 쪼개 이 자리에 와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작업에 정진하겠습니다.


박수치는 사람들.

정희, 사람들과 인사하며 입구 쪽으로 들어온다.



#49. 갤러리 앞길 (낮-저녁무렵)


강혜경 개인전 일정이 붙어있는 현수막이 보인다.

차를 멈추는 수현. 차창 밖으로 건물을 올려다보며 의아해지는 영은.

뭔가 복잡한 얼굴로 건물을 바라보는 수현. 이윽고 차에서 내리는 두사람.



#50. 갤러리 전시장


다과를 들며 삼삼오오 작품 감상하는 사람들.

혜경, 정희 등 몇명과 즐거이 담소하고 있다.

들어오는 수현과 영은. 휘황찬란한 실내 분위기에 주눅드는 영은.

혜경, 눈길을 돌리다가 수현과 마주친다. 반갑게 손을 들다가 멈칫 한다. 영은을 봤다.

영은 손을 이끌고 혜경 앞으로 가는 수현.


수현 : (악수 청하며) 축하한다.

혜경 : 어,그래...와줘서 고마워.

영은 : (뭐가 뭔지)

정희 : (차갑게 굳어있다)

수현 : (혜경 보고) 인사해. 이쪽은 내 여자친구야. 김영은씨구...

         인사해요, 영은씨, 이쪽은 나하구 외국서 같이 공부했던 친굽니다.

영은 : (내가 여자친구?!)

혜경 : (감정 감추고) 반가워요. 강혜경입니다.

영은 : (얼떨떨) 아,네...김영은입니다.

수현 : (휘이 둘러본다)

정희 : ...(시선 읽고 나직이) 아버지 찾니? 아버지 안오셨다.

수현 : (스치는 실망감) 그래요? (태연히 혜경 보고) 후우...이 많은 걸 다 배루 실어왔음 배 삯 상당히 들었겠다?

혜경 : (영은에게 시선 떼지 않고 있다. 태연한 척 웃으며) ...그렇지 뭐.

정희 : 수현아, 나 좀 보자.


수현 팔을 잡아끌고 가는 정희. 마지 못하고 따라가는 수현.


수현 : 잠깐만요, 영은씨. 둘러보구 있어요. 금방 올께요.


혜경과 영은 둘이 남는다. 오가며 혜경에게 인사하는 손님들. 혜경, 연신 악수하며 인사 받는다.

어떻게 운신해야할까 난처해지는 영은.



#51. 동 로비


정희, 수현을 이끌고 온다. 화가 나있다.


정희 : 누구야, 저 아가씨.

수현 : 말씀 드렸잖아요. 제 여자친굽니다.

정희 : (착잡한듯 한숨) 왜 이러는지 대충 짐작이 가는데...이러면 안돼. 이게 무슨 어린애 같은 태도야?

         아버지한테 시위하고 싶으면 집에서 해.

수현 : (피식) 제가 왜 아버지한테 시위를 왜 해요.

정희 : 안그래두 사장님이 나한테 신신당부 하시드라. 너 오늘 무슨 일 저지를지 모른다구, 감시하라 그러셨어.

수현 : 감시요? (어이없다는 듯 흠,웃다가) 실장님...우리 아버지 뭐가 그렇게 좋으세요?

정희 : 뭐?

수현 : 저 가봐야겠어요. 영은씨 기다려요.

정희 : (붙잡는다) 얘기 마치구 가! 내가 엄마같구 누나같은 맘으루 충고하는데...수현아, 이러지마라. 혜경이한테 사과해.

수현 : 뭘요.

정희 : 사과해. 큰 잘못한 거야.

수현 : (세상 살기 싫다는 표정으로 씁쓸히 본다) 실장님...

정희 : 사과해라. 그리구 저 아가씨 보내.



#52. 갤러리 전시장 안 뷔페 상 앞.


접시를 손에 들고 음식 먹는 영은. 이런저런 음식들이 잔뜩 차려져있다.


혜경 : (다가오며) 배고프셨나봐요.

영은 : 네에...(접시 들어보이며) 좀 드세요.

혜경 : 네...(친절하게) 수현이랑 만난지는 오래되셨어요?

영은 : 아뇨. 얼마 안됐어요.

혜경 : ...어떻게 만나셨어요?

영은 : (음식 먹으며 가만 생각) 비오는날 제 속옷을...(!) 아니요, 비오는날 우연히요.

혜경 : 비오는 날 우연히...영화처럼 만나셨네요.

영은 : 에이, 뭘요. (주위 둘러보며) 이 많은 작품들을 다 만드셨어요?

혜경 : 많긴요. 재학시절부터 만든 거 다 주워모은 거예요.

영은 : 참 대단한 거 같아요. (미안한듯 웃고) 잘은 모르겠지만요.

혜경 : (웃고) 실은 저두 잘 몰라요... 그쪽은 뭘 전공하셨어요?

영은 : 저요? 저는 전공 없어요. 고등학교 졸업했어요. (미소) 대학시험 떨어지구 곧바로 요리학원에 등록했거든요.

혜경 : (당황스럽다)... 그러세요?

영은 : 저두 어릴때는 미술...전공 하고 싶었어요. (혼자 흐음 웃는다) 하긴 뭐...저는 고호랑 밀레두 헷갈리는 걸요.

         혹시요, 밀레는 자기 귀 안짤랐대요?

혜경 : 네?

영은 : (웃는다) 아니예요.

혜경 : (조심스레) 그럼 지금은...요리...하세요?

영은 : 아뇨, 아직 요리두 못해요. 주방에서 양파두 까구 감자두 까구 그래요.

         그래두 한 이개월만 더 하면 요리 파트에서 일할 수 있을 거 같애요.

혜경 : (이거 뭔가 수상하다 싶다) ...


다가오며 축하합니다, 인사하는 손님 한사람. 얼른 악수하며 그쪽으로 가는 혜경.

다시 홀로 남는 영은. 잠자코 선 채로 음식을 먹는다.

저쪽에서 얘기 나누며 영은 모습을 잠깐씩 바라보는 혜경.

접시에 음식 담는 영은. 쟁반에 그득 놓인 예쁜 화과자(미니케잌 종류?) 보인다.

주위를 잠깐 살피는 영은. 얼른 과자 하나를 냅킨에 싸더니 가방에 쏙 집어넣는다. 다시 음식을 열심히 먹기 시작한다.

눈으로 수현이 왜 안오나 하고 찾아본다.



#53. 동 로비


전시장을 나와 주위 두리번거리며 수현을 찾는 영은. 새로 신은 힐 때문에 발이 아파 절뚝거린다.

신 벗어 들고 손끝에 침을 묻혀 발뒤꿈치에 살살 바른다. 다시 태연히 신 신고 연신 주위를 살핀다.

뒤에서 다가오는 정희.


정희 : 아가씨.

영은 : (놀라서 돌아본다)

정희 : 수현이 찾아요?

영은 : 네.

정희 : 나 수현이네 레스토랑 본사 기획실장이예요.

영은 : 네? (굽신) 첨 뵙겠습니다.

정희 : 첨 뵙구 자시구 그게 중요한게 아니구...자세한 사연은 잘 모르겠지만...아가씨 이러면 곤란해.

영은 : ?

정희 : 쟤들 두사람 곧 결혼할 사이예요. 이런 데 가자 그런다구 불쑥 따라나서면 어떡하나.

영은 : (굳는다)

정희 : 내가 대신 사과할께요. 수현이가 좀 충동적인 데가 있어.

         (한숨) 미안하지만 그만 가는게 좋겠어요. 나중에 더 상처 받지 말구.

영은 : ...

정희 :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다 겪는 거예요. 오늘 일 이해해줘요, 응?

영은 : ...

정희 : 그리구 이건...혜경이가 전해주라 그러네요. 기념품 같은 건가봐요.


쇼핑백 하나를 건넨다. 받아들고 인사하는 영은.

잘가란 손짓하고 돌아서는 정희.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는 영은.



#54. 갤러리 전시장 안


수현,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영은을 찾는다. 다가오는 혜경.


혜경 : (태연히) 식사 안했지? 뭘 좀 먹지 그래?

수현 : 영은씨 못 봤니.

혜경 : 모르겠는데...

수현 : (두리번거리며)

혜경 : (가만히 보다가) 수현아...얘기 좀 할래?

수현 : 나중에 하자.


수현, 밖으로 나간다. 뒷모습을 바라보는 혜경. 표정 복잡하다.



#55. 갤러리 앞길 (밤)


영은, 쇼핑백을 들고, 하이힐을 신고, 절뚝거리며 걸어간다.

뒤에서 쫓아오는 수현.


수현 : 가요?

영은 : (돌아본다)

수현 : (화난듯) 얘기두 없이 가버리면 어떡해요?

영은 : (담담히 본다) ...찾았는데 안 보이시길래요.

수현 : (찔린다) 무슨 일...있었어요?

영은 : 아뇨.

수현 : 들어가요. 저녁두 안 먹었잖아요.

영은 : 아니요. 많이 먹었어요. 저 그만 가보겠습니다.

수현 : (뭔가 있었구나 식은땀) ...영은씨...저어...나랑 잠깐 어디 가서 얘기 좀 해요...

영은 : (OL 미소) 괜찮습니다...저 다 이해해요...저어, 이런 얘기가 주제 넘을진 모르겠지만요...

         두 분, 이제 싸우지 마시구 잘 지내세요.

수현 : (굳는다)

영은 : (씩씩하게) 진작 말씀해주셨으면 애인 노릇을 좀 그럴듯하게 해드릴 수 있었는데...

         제가 이래봬두 연극은 쪼끔 하는 편이거든요. 고등학교때 저요, 축제때 연극 대회에서 상두 받았어요.

         이런 역할은 식은 죽 먹긴데...오늘은 준비가 너무 없었어요...(나직이) 다 들킨 거 같애요.

수현 : ...

영은 : (따뜻하게 웃는다) 얼른 들어가서 싹싹 비세요...전 그만 가볼께요...

         오늘 맛있는 것두 먹구, 좋은 구경두 하구...여러가지로 고마웠습니다.


꾸벅 인사하고 돌아서는 영은.

한 대 맞은 듯 바라보는 수현. 저만치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그녀의 조그만 뒷모습.

가다가 우뚝 멈춰서는 그녀, 하이힐을 쓱쓱 벗는다. 가방에서 자기 신발을 꺼내 신더니 뚜벅뚜벅 어둠 속으로 사라져간다.



#56. 영은방 (밤)


어두운 방안. 들어오는 영은. 책상 앞에 앉아 스탠드를 켠다. 무표정하다.

잠시 그대로 앉아있다가 문득 생각난 듯 받아온 쇼핑백을 열어본다. 안에서 케잌상자가 하나 나온다.

뚜껑을 열면, 아까 가방에 몰래 숨겼던 그 화과자가 열두 개 쯤 예쁘게 들어있다.

조용히 과자를 바라보는 영은. 화과자 위로 눈물이 한방울 뚝 떨어진다.

제2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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