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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보일까봐] 03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9.04.04|조회수554 목록 댓글 0

[눈물이 보일까봐] 03











#1. 레스토랑 파인 외경 (아침)



#2. 동 입구 복도


대걸레 들고 바닥 청소하는 영은.

출근하는 수현. 수현을 보지 못하고 걸레질만 쓱쓱 하는 영은.

수현, 무심코 들어오다가 걸레에 걸려 넘어질 뻔 한다. 놀라서 얼른 걸레 방향을 바꾸는 영은.

그러나 역시 같은 방향으로 피하는 수현. 휘청하고 꼬꾸라지려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는다.


영은 : (당황)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수현 : (민망하다) 괜찮아요... (본다) 일찍 출근했네요.

영은 : 네.


눈 마주치자 잠시 어색한 두사람.

수현,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관둔다. 목례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머쓱해지는 영은.

수현, 들어가다 다시 발길을 멈춘다.


수현 : 영은씨.

영은 : 네?

수현 : (머뭇하며) 어제...잘 들어갔어요?

영은 : (짐짓 환히 웃고) 아아유, 그럼요! 친구분이랑 화해는 잘 하셨어요?


잠깐 희미한 미소 지어보이더니 안으로 들어가는 수현.

영은, 수현이 사라진 쪽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3. 점장실


들어오는 수현. 상의를 옷걸이에 건다. 들어오는 홀매니저.


홀매니저 : 본사에서 이번달 매출 분석 보고서 올리라는 연락이 왔는데요. 아직 안 올리셨어요?

수현 : (책상 정리하며) 지금 보낼 거예요.

홀매니저 : (상냥하다) 점장님,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수현 : 그래줄래요? 고마워요.


컴퓨터 앞으로 가며 서류 같은 것 정리하는데 문득 책상 한켠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밀레의 그림 액자가 보인다.

잠깐 미안한 기분 든다. 들여다보다가 다른 짐과 함께 구석에 툭 내려놓는다.



#4. 레스토랑 주차장


한손엔 우유, 한손엔 빵을 들고 건들거리며 다가오는 종수. 빵을 우물우물 삼키며 주차장 벽에 붙어있는 벽보를 들여다본다.

주차관리요원 모집 공고가 붙어있다. 모집인원 ㅇ명. 주야 근무 가능한 20세-30세의 신체 건강한 고졸 남녀.



#5. 점장실


커피 마시며 컴퓨터 앞에 앉아 보고서 작성하는 수현. 노크소리 난다.


수현 : 네에.


들어오는 홀매니저.


홀매니저 : 주차 관리요원 지망자가 왔는데요.

수현 : 그래요? 들어오라 그러세요.


일어난다. 들어오는 종수. 인사한다.

수현, 마주 인사하다가 유심히 바라본다. 어디서 봤드라?

홀매니저 나간다.


종수 : (머쓱 웃고) 저 기억 나시죠?

수현 : (기억날 듯...)

종수 : 영은이네 가게 앞에서 뵌 적 있잖아요.

수현 : (떨떠름해진다) 맞아요. 비오는 날.

종수 : 그날은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날 제가 꼭지가 확 돌았었거든요. 죄송합니다.

수현 : (이거 뭔가 싶다) ...아,네에...앉으세요.


앉으며 테이블 위에 이력서를 내려놓는 종수.


종수 : 유종수라고 합니다. 몸과 마음을 다바쳐 열심히 일해보겠습니다. 잘 봐주십쇼.

수현 : (뭐가 뭔지 모르겠다)

종수 : (잠시 사이 두고) 그나저나, 우리 영은이...잘 돌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진작 인사를 드렸어야 되는건데...

수현 : !

종수 : 아, 모르셨군요? 저한텐 친동생이나 마찬가집니다. (한숨) 어린 게 고생이 많죠.

수현 : (난감해진다) 네에...



#6. 주방


화지타 반죽을 밀고 있는 동규와 영은.


동규 : (혀차고) 지금 수제비 미냐?

영은 : (들어보고) 두꺼워요?

동규 : 다시 해봐. (자기 반죽 들어보이며) 종잇장처럼 얇게! 봐, 잘봐!


멀리서 넌지시 지켜보는 민식. 영은, 다시 반죽을 민다.

들어오는 종업원1.


종업원1 : 영은씨, 밖에 누가 찾아.

영은 : 저를요? 누가요?

종업원1 : 몰라, 어떤 남자.


동규, 마뜩찮게 본다. 눈치 살피며 밖으로 나가는 영은.



#7. 동 홀 안


영은, 밖으로 나온다. 주위를 살핀다. 주차장 한쪽 의자에 앉아 손을 들어보이는 종수.

놀라는 영은. 다가간다.


영은 : 여기 어떻게 아셨어요?

종수 : 잘 지냈냐?


영은, 머뭇거리다가 마주 앉는다.


종수 : 야, 립본 스테이크랑 필,레미-뇽 스테이크는 어떻게 다르냐? 립본은 안심이구 필레미-뇽은 등심이냐?

영은 : 식사하러 오셨어요?

종수 : 아냐, 식사는 방금 했구...

영은 : (주위 눈치 살피고 나직이) 그럼 밖에 나가서 얘기 해요. (엉거주춤 일어나며)

종수 : 야, 앉아, 앉아. 뭐 시킴 될 거 아냐. (멀리 종업원1에게) 아주머니, 여기 오렌지 쥬스 한 잔 주세요.

종업원1 : (아주머니?!)

종수 : 사실은, 그날 말인데... 니 월급 받아가면서 맘이 안 좋드라. 내가 아무리 너 땜에 처지가 이렇게 됐어두,

         니 그 단풍잎 같은 손으루 뼈빠지게 일해서 번 돈인데... (한숨) 내 심정이 좋을 리가 있겠냐.

영은 : 괜찮아요.

종수 : 괜찮긴. 니 맘 다 알어. (본다) 내가, 니네 가게 지하에 살 때부터 쭉 너를 봐왔잖냐...

         (미소) 나, 너만 보면 꼭 시골에 있는 내 다섯번 째 여동생이 생각 나.

영은 : 동생이 다섯이예요?

종수 : 아니, 여섯.

영은 : (한숨) ...저어...(고민한다) 그런데...그 옷...

종수 : (OL) 요번에 그 옷 팔아서 시골에 계시는 노부모님 봉양두 하구, 동생들 학비두 대구, 그럴 계획이었는데...

         (괴로운듯 한숨) 하긴...누가 불을 내구 싶어 냈겠냐.

영은 : (어쨌든 용기내자) 저어, 그 옷 말인데요...정말 그렇게 비싼 옷인가요?

종수 : (잠시 사이 두고 바라본다) ...너 보기보다 세파에 찌들었구나. 내가 공갈이라두 쳤다...그런 뜻이냐, 지금?

영은 : ...(할 말 없어지며)


쥬스 가져다 주는 종업원. 답답한듯 쥬스를 쭉 들이키는 종수.


종수 : 근데, 여기 점장인가 그 친구하군 언제부터 그런 사이냐?


종업원1, 가다가 멈칫 돌아본다. 난처해지는 영은.


종수 : 하긴 뭐 니 사생활인데, 내가 상관할 거 없지...암튼, 나한테 너무 미안해말구 맘 편히 가져라.

         나두 그 돈 전부 다 받을 생각은 없어. 걱정마.

영은 : ...

종수 : (갑자기 생각난것처럼) 아참, 그리구...나 오늘부로 여기 취직했다.

영은 : 예?

종수 : 왜? 나랑 같이 일하게 돼서 안 기쁘냐? 나는 무진장 기쁜데.


휘파람 불며 태연히 일어나는 종수. 주위를 둘러본다.

어이없어 그저 바라보는 영은.



#8. 신림동 고시원 외경 (낮)



#9. 고시원 로비 면회실


테이블 위에 그날 그 화과자 상자가 놓여있다. 경은과 마주 앉아있는 인옥.


인옥 : 영은이가 저 일하는 데서 얻어왔나 봐. 밤에 궁금할 때 하나씩 먹어.

경은 : (과자를 본다)

인옥 : (경은 머리 쓸어올려주며) 얼굴 꼴이 말이 아니다.

경은 : 엄마 얼굴이 더 말이 아니예요.

인옥 : 내가 뭘? 나는 괜찮아.

경은 : (곰곰 생각하다) ...고소는 안하는게 좋겠어요, 엄마.

인옥 : (굳는) 그렇겠니?

경은 : 잘은 모르겠지만...별 승산이 없어요. 아마 소송비만 날릴 거야.

인옥 : ...(절망어리며 떨군다) 그래.


잠시 흐르는 침묵. 가방에서 흰봉투를 하나 꺼내는 인옥.


인옥 : 요번 달은...엄마가 많이 못넜어. 미안하다, 경은아.

경은 : (마음 아프다) 엄마,

인옥 : 부모 잘못 만나 니가 고생이 많다.

경은 : 엄마가 고생이지, 내가 무슨...(인옥 손 잡아주며) 조금만 기다려요, 엄마.


울컥 설움 북받치며 눈시울 붉어지는 인옥.


인옥 : 그래, 경은아...엄마는 너만 믿는다. 니가 나중에 합격해서 엄마 한맺힌 거 다 갚아줘야 해, 응?

         우리 이렇게 고생하구 산 거 두구두구 잊지말자 응?

         우리 이쁘구 똑똑한 경은이...엄마는 너 아니면 벌써 옛날에 죽었을 거야.



#10. 거리


기운없이 터덜터덜 걸어가는 인옥. 전신주에 붙어있는 파출부 용역 등의 광고지를 들여다본다.

외면하고 다시 걸어간다.



#11. 인옥방 (낮)


엎드려 통장 몇 개 넘겨보는 인옥. 울리는 전화벨.


인옥 : 네에...

비서(E) : 거기 박인옥여사님 댁 맞습니까?

인옥 : 네, 전데요.

비서(E) : 여기 파인유통 본사 사장실입니다. 혹시...조두식 사장님이라구... 잘 아시죠?

인옥 : ...(굳는다) 누구요?

비서(E) : 조,두,식 사장님요.

인옥 : ...그런 분 모릅니다. 잘못 거셨어요.


전화 끊는다. 표정 굳어있다.



#12. 두식 집무실


두식 책상 앞에 앉아 서류 들여다 보고 있다. 들어오는 비서.


두식 : 연락 됐어?

비서 : (난감한듯) 저어, 그런 분 모른다구 그러시는데요?

두식 : (멈칫) 그래? 본인하구 통화했어?

비서 : 네.


곰곰 생각하는 두식.



#13. 인옥방


인옥, 멍하니 전화기를 들여다보고 있다.

다시 울리는 전화벨. 화들짝 놀라는 인옥. 몇번 울리면 이윽고 받는다.


인옥 : 네...

두식 : ...

인옥 : 여보세요, 말씀 하세요.

두식(E) : 인옥이냐? 나 두식이다.

인옥 : (굳는다)...

두식(E) : 여보세요. 거기 박인옥씨 댁 아닙니까?

인옥 : ...맞아요. 저예요.

두식(E) : (한참 사이) 오랫만이다...한 삼십년... (사이) 거진 삼십 년 다 돼가지?

인옥 : ...

두식(E) : 얼굴 한번 보자.


인옥, 대꾸없이 그저 화장대 위에 놓인 백합꽃 화병만 바라본다.



#14. 파인 주방 안 (밤)


영은, 밀가루 반죽을 하고 있다. 슬몃 다가오는 민식.


민식 : 요리학원 얼마나 다녔냐?

영은 : (창피한듯) 한, 오륙 개월 쯤...(반죽 들어보이며 머쓱 웃는다) 아직 멀었죠?

민식 : 가만 지켜 보니깐 니가 영 소질이 없는 거 같진 않다.

영은 : (밝아진다)

민식 : (심드렁히) 열심히 해봐. 잘하면 내가 비법두 몇가지 전수해줄께.

         한 일이년만 열심히 하면 책임 있는 자리두 맡을 수 있어...게으름 피지 말구 계속 노력해 봐.

영은 : (꾸벅) 고맙습니다!


설거지감 안고 들어오는 동규.


민식 : (자리로 가며) 누군 들어온지 반년이 다 돼가두 칼질두 하나 제대루 못해. 타구나야 되는 건가 봐...


예민해지는 동규. 태연한 척 반죽만 미는 영은.



#15. 주차장 (밤)


늦은 시간. 식당 안에서 나오는 젊은 남녀 한쌍.

얼른 키를 들고 승용차를 빼주는 종수. 멀어지는 승용차를 향해 인사한다. 돌아서며 금새 삐딱한 시선으로 바뀐다.

퇴근차림으로 식당에서 나오는 여종업원1.


종수 : 퇴근하십니까, 아주머니?

종업원1 : (불쾌해지며 무시)

종수 : (악수 청하며) 인사나 하구 지냅시다.


종업원1, 징그럽다는듯 피하며 빠르게 뒷걸음질 친다.

순간, 뒤에서 오는 승용차를 피하다가 기우뚱 넘어진다. 얼른 다가가서 붙잡아주는 종수.

핸드백이 열리고 돈과 화장품 등 이런저런 소지품들이 바닥에 뒹군다.

당황하는 종업원1. 주섬주섬 소지품을 주워서 건네주는 종수.

종업원1, 얼른 나꿔채고 뛰어가버린다. 어느새 종수 손에 들려있는 지폐 몇장.

가게에서 나오는 영은. 그 광경을 바라본다.

눈 마주치는 두사람. 인사하는 영은.


종수 : (지폐를 주머니에 쑤셔넣으며) 오늘은 점장하구 데이트 안하냐?

영은 : 네?

종수 : 둘이 어디까지 갔냐?

영은 : 저...뭐라고 불러야 좋을지 모르겠는데요,

종수 : 오빠라구 불러. 종수씨라구 불러두 괜찮구,

영은 : 점장님하구 저하구 아무 상관 없어요. 오해하시는 거예요.


안에서 나오는 수현. 종수와 영은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섰다.

눈 마주치자 얼른 굽신 하는 종수. 재빨리 승용차를 빼준다.


수현 : 고마워요.

종수 : (내리며 다시 구십도 인사) 안녕히 들어가십쇼.


영은에게 가볍게 목례하는 수현. 멀어지는 승용차. 물끄러미 바라보는 영은.

영은의 그 눈빛을 가만히 읽는 종수.


종수 : 한번 놀자 그러믄 크게 불러. 눈 딱 감구 쎄게 불러. 알았냐? 그래야 내 돈을 갚지.

         인생 선배로서 충고하는 거니까 새겨 들어. 깎을 셈 치구, 한 오백 불러라.


영은, 얼굴 확 붉어지더니 뒷걸음질 친다.


영은 : 갈께요. 수고하세요.



#16. 영은집 외경 (밤)



#17. 동 마루


가스렌지 위에서 끓고 있는 속옷 대야. 욕실에서 세수하고 나오는 영은.


영은 : (수건으로 발 닦으며) 덥다, 그죠? 씻어두 덥네.


식탁 앞에 앉아 콩나물을 다듬는 인옥. 무슨 생각에 깊이 잠긴 채 대꾸없다.

머쓱해지며 방으로 들어가려다 냄새를 흠흠 맡는 영은. 흠칫 놀라 가스렌지 위를 바라본다.


영은 : 다 타요!


얼른 가서 대야를 수건으로 감싸서 내리는 영은. 그제야 정신이 드는 인옥.


인옥 : 다 탔어? 응? 다 탔어?


허둥지둥 욕실로 가지고 들어가는 영은.


영은 : (소리로) 괜찮아요, 엄마. 얼마 안탔어요!

인옥 : (멍하니) 내가... 전생에.. 속옷 태워먹다 죽은 귀신이 들렸나보다.



#18. 인옥방


들어오는 인옥. 화장대 앞에 앉아 잠시 자기 얼굴을 바라본다.

일어나 옷장을 연다. 옷을 이것저것 꺼내본다. 티셔츠와 블라우스 나부랑이들. 오래되고 후줄근하다.

이리저리 들춰보고 대보다가 문득 자괴감이 확 든다. 허둥지둥 도로 옷장에 마구 쑤셔넣는다.


인옥 : 미쳤어. 내가 미쳤어.


화장대 앞에 주저앉는다. 다시 고개 돌려 거울 속 자기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인옥 : ...(혼잣말) 박인옥...언제 이렇게 늙었니.



#19. 영은 지은방


통화하고 있는 지은. 표정이 심각하다. 휴지로 연신 눈물을 닦고 있다.


지은 : 됐어, 관둬...누가 그동안 너 좋아서 만나준 줄 알어? 하두 인생이 불쌍해서, 하두 만나달라구 조르니까,

         불쌍해서 몇 번 만나준거야. 착각하지마.


들어오는 영은. 슬몃 눈치 살핀다.


지은 : 니가 은미랑 사귀든 금미랑 사귀든 나하군 아아무 상관두 없으니까, 변명 같은 거 하지마...끊자. 나 피곤해.


전화 끊고 누우며 이불 뒤집어 쓰는 지은.

영은, 살금살금 화장대로 가서 스킨을 바른다.


지은 : 전화 오면 나 잔다 그래.


눈치 보며 바닥에 널린 휴지들을 주섬주섬 치우는 영은. 전화 안온다.


지은 : 알았지? 전화 오면 나 잔다구...알았지?

영은 : (전화기 바라본다) 응.


한쪽에 무릎 괴고 앉는 영은. 돌아누운 지은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본다.


영은 : (가만히) 지은언니야...기운 내라.

지은 : 말시키지마.

영은 : 기분 풀어, 언니...(잠시 보다가) 아, 내가 재밌는 얘기 하나 해줄까.

지은 : 듣기 싫어.

영은 : ...나 있지...우리 가게 점장님한테 당했어.

지은 : ...

영은 : 나는 있지...그사람이 나 좋아하는 줄 알구 혼자 들떠갖구 방방 떴었다?

         근데 그날있잖아...같이 저녁 먹자던 날...글쎄 자기 여자친구 전시회에 나를 데려간 거 알어?

지은 : (이불을 쪼끔 연다)

영은 : 나쁜 인간. 날 이용했지 뭐야. 나는 것두 모르구 혼자 별 상상을 다했어.

         나는 내가 있잖아...신데렐라 되는 줄 알았다니까?

지은 : (이불 속에서 큭 웃는다)

영은 : 나한테 돌아가신 자기 엄마 얘기두 하구...케잌두 사주구,구두두 사주구...(수현 흉내) 우리 앞으로 잘지내요, 이러길래...

         (한숨) 이 사람이 나한테 결혼하자 그러면 어쩌나 싶어서...(본다) 언니두 결혼두 안 했는데...


드디어 이불을 확 제끼며 아하하하 웃는 지은.


지은 : 니가 그렇지 뭐! 그럴 줄 알았어! 너무너무 웃기다아!

영은 : 웃기지? (웃고) 그래두 양심은 있어서 쫌 미안한가 봐...계속 나만 보면 쭈삣쭈삣 하드라?

         그래봤자 뭐해. 사과할려구 몇번 그러는데, 내가 눈길두 안 줘버렸어.

지은 : 정말? (다시 웃고) 니가?

영은 : 그러엄!



#20. 파인 외경 (아침)



#21. 홀 안


출근하는 수현. 계산대 앞에 서서 종업원1과 수근거리는 홀매니저.


수현 : 무슨 일 있어요?

홀매니저 : 나오셨어요?

수현 : 무슨 일이예요?

홀매니저 : 아뇨...좀 불미스런 사고가 생겨서요.

수현 : 사고요?

홀매니저 : (망설이다) 호정이가 어젯밤에 가게에다 돈을 놓구 갔는데요.

수현 : 없어졌어요?

종업원1 : 네.

수현 : 얼마나요?

종업원1 : 한 십만원 정도.

수현 : 제일 나중에 나간 사람이 누구죠?

홀매니저 : 나가긴 제가 제일 늦게 나갔는데...(망설이다) 김영은씨가 아침에 일찍 나오겠다면서 스페어 키를 달라구 그랬거든요.

수현 : ...

홀매니저 : 아뇨, 꼭 누굴 의심하는 건 아니구요...제 불찰입니다. 주의하겠습니다.

수현 : (호정 보고) 돈 같은 건 놔두구 퇴근하지 마세요.

         (홀매니저 보고) 문단속 잘하시구요. 우리 식구끼리 함부로 의심하지 마세요.


얼굴 굳는 홀매니저.



#22. 동 주방


바삐 일하는 영은. 입구로 들어서는 수현.


민식 : 양송이 손질 아직 멀었냐?

영은 : 네, 갑니다!


돌아서다가 수현과 마주치는 영은. 멈칫 놀란다.


수현 : (머뭇하며) 잠깐 나 좀 볼래요?

영은 : ?



#23. 점장실


수현, 커피를 만들고 있다. 들어오는 영은.


수현 : 앉으세요.

영은 : (머뭇하며 앉는다)

수현 : (커피 따라준다) 드세요.

영은 : 고맙습니다.

수현 : (잠시 바라본다) ...일, 재미 있어요?

영은 : 네. 재미있어요.

수현 : (따뜻하게 바라본다) 다행이네요.

영은 : (눈길 마주치자 어색해지며) 네.

수현 : ...처음 영은씨 만났을 때 생각이 나요. 나한테 화분도 주고 열쇠고리도 찾아주고...

         참 맑고 예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영은 : (기분이 묘해진다)

수현 : 미안해요. 엊그제 혹시...내가 맘 상하게 했으면 용서해요.


수현, 쓸쓸히 커피잔을 만지작거린다. 뭔가 고민 있는 듯 고심한다. 침묵 감돈다.


영은 : (슬몃 바라본다) 괜찮아요. 정말 저 괜찮다니까요?

수현 : (본다)

영은 : 아휴, 정말 소심하시네요? 뭘 그런 걸 갖구 그러세요? 앞으로두 그런 자리, 또 가드릴 수두 있어요.

         근데, 여자친구 분이랑은 화해 하셨어요?

수현 : ...(난감한듯) 저어...

영은 : 좋게 잘 지내세요. 인상 좋으시던데요. 참 잘 어울리세요. 어떻게 만나셨어요?

수현 : (망설이다) 영은씨...나, 영은씨한테 할 말이 있어요.


따뜻하게 가만히 바라보는 수현.

영은, 그 눈길에 가슴이 떨린다. 고개를 스르르 떨군다.


수현 : 집안 형편이 많이 어려운가요?

영은 : (멈칫 바라본다)


봉투 하나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수현.


수현 : 얼마 안돼요. 이번달 보너스라고 생각해주세요. 그날 저녁에 같이 가준 사례라구 생각해두 좋겠구요.

영은 : (봉투 바라본다)

수현 : 종수씨두 영은씨 걱정을 많이 하드라구요. 그사람...겉보기엔 거칠어보여두 속마음은 따뜻한 거 같아요...잘 지내세요.

영은 : (본다)

수현 : 그리구요...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정직하고 바르게 살면... (잠시 보다가) 그럼 아마 좋은 날이 올 거예요.

         바쁠텐데 그만 나가서 일 보세요.


굳은 채 조용히 바라보는 영은.



#24. 동 주차장


종수, 손님 승용차를 발레 파킹 시켜주고 있다. 키를 맡기고 안으로 들어가는 손님.

차에서 내리는 종수. 운전석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담뱃갑이 보인다.

얼른 주위를 살피고 담배를 두어 개피 뽑는다. 차문 닫고 담배 피워문다.

흰색 승용차 한 대 들어온다. 운전석에 혜경이 타고 있다.

어서오십쇼! 하고 달려가는 종수.

급히 뛰어드는 종수에 놀라서 차를 급히 돌리는 혜경. 주차장 벽에 쿵 박고 만다.

난감한듯 차에서 내리는 혜경. 차 앞을 살핀다. 범퍼가 찌그러져있다.

종수, 미안한 얼굴로 다가온다.


종수 : 안 다치셨습니까?

혜경 : (버럭) 차 들어오는 거 안보여? 너, 일한지 얼마나 됐어?

종수 : (머뭇하며) 죄송합니다. (범퍼 살피며) 하, 이거...조심을 하시지.


혜경, 기분 거슬린다. 차를 만지는 종수 손을 더럽다는 듯 탁 친다. 무안한 종수.

혜경, 지갑을 꺼내더니 차 열쇠와 수표를 툭 던져준다.


혜경 : 오후까지 원상복구 해서, 여기 이 자리에 고대루 갖다 놔.


종수, 얼떨떨하게 받는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혜경.



#25. 파인 홀 안


들어오는 혜경. 홀매니저에게 다가간다.


혜경 : 점장님 있죠?


점장실에서 나오는 수현. 혜경을 보더니 다가온다. 덤덤한 표정이다.


혜경 : 있었구나?

수현 : 전화두 없이 웬일이야.

혜경 : (상냥해지며) 이쪽 지나다 들렀어. 좀 나갈래? 할 얘기두 있구.


주방 쪽에서 음식 접시를 들고 나오는 영은. 혜경을 보자 표정이 굳는다.

혜경, 주위를 둘러보다가 영은을 발견한다. 에이프런 두르고 양손에 커다란 샐러드 접시를 든 그녀의 모습.


영은 : (당황) 아,안녕하세요?

혜경 : (역시 당황) 안녕하세요.

수현 : (난감하다) 나가자.

혜경 : (아주 다정하다) 그날 왜 인사두 없이 가셨어요. 찾았잖아요.

영은 : ...과자 잘 먹었습니다.


당황한 채로 허리 숙여 인사하다가 양손에 든 음식을 기우뚱 쏟을 뻔 한다.

놀라서 재빨리 중심을 잡는 영은. 어어, 하더니 바닥에 다 엎고 만다. 달려오는 종업원들.

후다닥 음식을 닦는 영은. 잠시후 고개를 들고 바라보면, 어느새 나가고 없는 두사람.



#25-1. 주차장


종수, 혜경 승용차 아래 주저앉아 범퍼를 살피고 있다. 일어나 차에 오르려다가 멈칫 고개를 든다.

수현의 승용차에 오르고 있는 혜경과 수현. 이윽고 멀어지는 승용차.

유심히 지켜보는 종수.



#26. 거리 (저녁)


버스 정류장으로 터덜터덜 걸어오는 영은. 정류장 의자에 앉는다.

오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윽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본다. 수현이 준 봉투가 나온다.

봉투 열어보면 만원권이 스무 장 쯤 들어있다. 씁쓸히 들여다보는 영은.


영은 : ...바보.


봉투를 무릎 위에 얹고 고개 푹 숙이는 영은. 잠시후 뭔가 각오한듯이 고개를 든다.


영은 : (입술 깨물고 나직이) 돌려드리겠어요. 내가 거진가요? 당신 그렇게 살지말아요. 돈 많으면 단 줄 알아?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집어드는 영은.


영은 : 가게두 그만두겠어요. 여기 아니면 일할 데가 없는 줄 알아요? 도로 가져 가! 껌이나 사 먹어.


돈봉투를 꽉 구긴다. 주먹 쥔 손이 파르르 떨린다.


영은 : 나쁜 놈!


눈물이 맺혀온다. 일어나는 영은. 어깨 축 늘어뜨리고 다시 터덜터덜 걸어간다.



#27. 영은집 마루


들어오는 영은. 식탁에 앉아 고시 서적 같은 것을 몇 권 싸고 있는 경은.


영은 : (반가워) 언니?

경은 : 인제 오니?

영은 : 왠일이야? 전화두 없이!

경은 : 책 몇 권 가질러 왔어. 엄마랑 지은이랑 아무두 없네? 넌 벌써 퇴근한 거야?

영은 : (마주 앉으며) 응. 오늘은 낮 근무였거든.

경은 : 식당 일 힘들지?

영은 : 아니 뭐...힘들진 않지만... (잠깐 생각) 인제 관둘 거야.

경은 : 왜?

영은 : 뭐 좀 그럴 일이 있어...밥은 먹었어? (일어나며) 밥 차려줄께. 언니 공부 힘들지?

경은 : 힘들긴 뭐.

영은 : 엄마는 매일매일 언니 걱정만 해. 더우면 더워서 경은이 어떻게 공부하나, 추우면 추워서 경은이 어떻게 공부하나.

경은 : (씁쓸히 웃고)

영은 : (냉장고 열어 반찬통 꺼내며) 엄만 맨날 언니가 우리집 희망이래. (웃고) 우리 큰언니, 진짜 얼른 합격해서...

경은 : (OL 확 어두워진다) 제발 너까지 그러지마!

영은 : (멍한)

경은 : 너, 내가 하루에두 열두번씩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거 아니.

영은 : (굳는다) 왜.

경은 : 내가 우리집 희망이라구? 응? (격해지며) 희망같은 거 안하면 안될까? 희망 그거, 니가 해.

         엄마는 나만 보면 꼭 합격해서 한을 풀어달라 그러는데...나 합격할 자신 없어. 이게 열심히 한다구 되는 일인 줄 아니.

영은 : 언니...

경은 : 이게 가만히 앉아 단춧구멍 박는 일이야? 그 무게, 그 스트레스, 엄마 얼굴만 생각하면 난 죽구 싶어.

         왜 모두들 나만 바라 보는 거지? 왜! (얼굴 감싼다)

영은 : ...(괴로워진다)

경은 : ...(눈물 닦고) 미안하다, 영은아.

영은 : (안쓰러워지는) 아니야, 언니...

경은 : 미안, 내가 흥분했다...집에 불나구 그러면서 내가 좀 예민해졌어. 어제 엄마가 왔다갔거든.

         이번 달 고시원비를 절반만 넣으셨드라. 안봐두 그 사정 뻔히 아는데...내 마음이 요즘 너무 불편해...

         (일어나며 애써 웃고) 배고프다. 우리 얼른 밥 먹자!

영은 : ...



#28. 영은집 앞길 (저녁)


골목을 나오는 경은과 영은.


경은 : 그만 들어가.

영은 : (본다) 응.

경은 : 주말에 올께. 그때 보자.

영은 : 응...잘가, 언니.


멀어져 가는 경은. 영은, 물끄러미 본다.


영은 : 언니!

경은 : (돌아본다)


결심한듯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돈봉투를 꺼내는 영은. 달려가더니 경은 주머니에 억지로 봉투를 꽂는다.


경은 : 뭐야.

영은 : 나 오늘 보너스 받았어.

경은 : 보너스?

영은 : 그래. 얼마 안돼. 책이나 사서 봐.

경은 : (당황) 영은아...

영은 : 나중에 언니 돈 많이 벌면 갚아! (떠밀며) 그럼 잘가, 언니!


뛰어가는 영은. 바라보는 경은.

저만치 달려가다가 돌아서서 손을 크게 흔들며.


영은 : (소리친다) 힘내라, 큰 언니야! 언니가 우리집 희망이야!!



#29. 순금 청과물 상회 (저녁) (1회에 나왔던 순금의 반찬가게를 청과물 도매상으로 바꿉니다)


앉아서 부채질 하는 순금. 들어오는 인옥. 단정한 정장을 차려입었다.


인옥 : 잘있었어?

순금 : 어쩐 일이야? 어디 가?

인옥 : 가긴 어딜 가.

순금 : 에이, 무슨 좋은 약속 있나본데? 옷두 차려입구, 머리두 싸악 드라이 하구...

인옥 : (머리 만지며) 드라이야 뭐 머리 감으면 하는 거...약속 없어. 그냥 너 볼려구.

순금 : 하이구, 황송두 해라. 나볼려구 그러구 왔어?

인옥 : (다림질하는것 우두커니 보다가) 저어, 순금아...나 부탁이 있는데.

순금 : (본다) 뭐.

인옥 : 낼부터 나 니네 가게 나오면 안될까?

순금 : 여길?

인옥 : 일하는 사람 하나 구한다 그랬잖아.

순금 : 어어, 그랬지.

인옥 : (자존심 상한듯 외면하고) 그냥 장사 가르친다 치구 한두달만 써라...월급 줄거지?

순금 : (딱한) 아유, 그럼 나야 고맙지만...일이 영 고될텐데...

인옥 : 고되긴 뭘, 넌 맨날 하는 일인데... 시켜줄거지?

순금 : 너만 괜찮다 그럼 나야 당연히 좋지! ...좀 앉아. 시원한 거 한잔 줄까?

인옥 : 아냐 됐어...나 어디 좀 갈 데가 있어서.

순금 : (본다) 약속 없다면서.

인옥 : 어어...(망설이다) 가봐야 돼. 고맙다, 순금아.


돌아서서 서둘러 가는 인옥. 어이없는 듯 바라보는 순금.



#30. 호텔 입구 (저녁)


살그머니 다가오는 인옥. 호텔의 규모에 기가 죽는다. 입구에 멈춰 서서 올려다본다.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돌아선다. 오던 길로 되돌아 가는 인옥. 가다가 슬몃 멈춘다.

호텔을 돌아본다. 작게 "내가 미쳤어,"한다. 황황히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간다.

저만큼 가는데 인옥 앞에 멈춰 서는 승용차. 차에서 내리는 운전기사. 인옥 앞을 가로막는다.


운전기사 : 박인옥 여사님이시죠?

인옥 : 네에, 그런데요.


차에서 내리는 두식. 인옥과 눈 마주친다.

멍하니 바라보는 인옥.


두식 : ...(겸연쩍은듯) 일찍 왔구나.

인옥 : ...오,오랫만이예요,오빠.



#31. 호텔 커피숖


찻잔 놓고 마주 앉아있는 두식과 인옥. 아까와 달리 아주 표정이 밝고 도도한 인옥.


인옥 : 큰애는 지금 사법고시 공부하구있어요. 일찬 합격했어요.

         둘째앤 플룻 전공했어. 피아놀 시킬까 그러다가...지가 그렇게 플룻을 하겠다 그러데?

두식 : (덤덤히 미소 띠고 본다)

인옥 : 남들은 딸들 잘둬서 좋겠다 그러지만 알구보면 애물단지야.

두식 : 딸이 둘이야?

인옥 : 아니, 셋이요. 막내두 뭐, 잘 크구 있구요... 오빠는?

두식 : 난 아들만 하나다.

인옥 : 어머, 그 시절에 그렇게만 낳았어?

두식 : 음.

인옥 : 부인이 무척 세련된 사람인가 보네?

두식 : 세련은 무슨...촌여자야.

인옥 : ......사람들한테 오빠 성공했단 소문은 전해 들었어요. 큰 사업 한다면서요?

두식 : 큰 사업은 무슨. 자그마한 식당 몇 개 가지구 있어.

인옥 : 네에...그래두 먹는 장사가 최고죠 뭐. 우리 애들 아빤 건축업을 하는데 요즘 아주 애를 먹어요.

두식 : (멈칫 본다. 이혼한 거 다 아는데) ...건축 하는 사람 만났구나?

인옥 : 으응...우리 그이, 아주 잔정이 많아서...참 자상하구 꼼꼼해요. 건축일이 딱인 사람이예요.

두식 : ...

인옥 : (본다) 오빠, 참 보기 좋다.

두식 : 뭐가.

인옥 : 옛날에 그렇게 꾀죄죄하드니...지금 누가 오빠더러 남의집 머슴살이 하던 사람이라 그러겠어요?

         돈이 좋긴 좋은 가봐. 아까 첨봤을때 외국배우 보는 줄 알았어요. 멋있어졌어요.

두식 : (떨떠름하게 웃고) 너두 아주 곱게 늙는다.

인옥 : 아유, 뭘...요새 신경 쓸 일이 좀 있어서 얼굴이 상했어요. 한 며칠 마사지 받으러 안 갔드니 이렇게 다르네...(얼굴 쓸고)

두식 : ...(바라본다)


잠시 어색한 침묵 흐른다. 찻잔을 만지작거리는 인옥.


두식 : (시계본다) 어디 가서 식사나 하자. 내 우거지탕 잘하는 집 아는데.

인옥 : (과장스레 웃고) 아무리 잘돼두 예전 식성은 못 버리네? 우거지탕 좋아해요?

두식 : 안 좋아? 다른 거 할래?

인옥 : 아냐, 오빠. 나 가야 돼. 집에서 식구들 기다려요.

두식 : 저녁 먹구 들어가라. 얼마만인데...밥이야 애들더러,

인옥 : (OL) 아유, 안돼요. 애들 아빤 내가 차린 거 아님 안 먹어요. 일어날까요?

         오늘 어쨌든...만나서 반가웠어요. 난 오빠 평생 다신 못 만날 줄 알았어. (일어나며)

두식 : ...인옥아.

인옥 : 네?

두식 : (망설이다) 아니다. 한번 불러 보구 싶었다.

인옥 : 오빠두 참.



#32. 호텔 앞길 (밤)


두식과 함께 나오는 인옥. 운전기사, 승용차를 몰고온다.


두식 : 타라. 집까지 태워줄께.

인옥 : 아유, 괜찮아요. 누가 보면 오해해요.

두식 : 타.

인옥 : 그냥 택시 타구 갈래요. 먼저 가세요.

두식 : 타라니까.


인옥, 서둘러 대기하고 있는 모범택시로 뛰어간다.


인옥 : 반가웠어요, 오빠. 잘 사세요!


손 흔들고 차에 오르는 인옥. 모범택시 출발하는 걸 쓸쓸히 지켜보는 두식.



#33. 호텔 부근 거리- 모범택시 안 (밤)


뒷좌석에 앉아있는 인옥. 힐끔힐끔 뒤를 돌아본다. 무표정해지며 조용히 생각에 잠긴다.

문득 고개 들어 미터기를 바라본다. 아직 기본요금이다.


인옥 : 아저씨, 저기서, 모퉁이 돌아서 내려주세요.


운전기사, 차를 세운다. 천원짜리 석장을 세어 건네는 인옥. 차에서 내린다.

택시는 떠나고, 기운없이 초라하게 걸어가는 인옥의 뒷모습.



#34. 영은집 대문 앞


계단 올라오는 인옥. 주인집 여자(가게 주인 아님), 따라 올라온다.


주인집여자 : 경은엄마, 수도요금 나왔어.


고지서를 건넨다. 기운없이 고지서를 받아드는 인옥. 들여다본다.


인옥 : (예민하게) 아줌마, 잠깐만요.

주인 : (내려가다 돌아본다) 왜요.

인옥 : 머릿수를 삼을 곱하셔야죠. 우리 경은이 고시원서 사는데 왜 사를 곱하셨어요?

주인 : 그랬어?

인옥 : 이천원 빼주세요, 네? (분노) 왜 사를 곱하냐구요. 네?

주인 : (어이없는) 아니, 경은 엄마 왜그래? 빼면 되잖아. 왜 화를 내면서 말을 해?

인옥 : 제가 언제요!

주인 : (유심히 본다) 경은 엄마, 지금 울어? 아니 그걸루 울어? 빼준다 그랬잖아!



#35. 영은집 마루 (밤)


영은, 씽크대 앞에 서서 쌀을 씻고 있다. 울적하다. 울리는 전화벨. 전화 받는 영은.


영은 : 여보세요....(굳는) 아버지? 네에...잘있어요...그럼요, 잘 해결 됐어요.


밖에서 인옥 목소리 난다. 당황하는 영은. 급히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36. 영은 지은방


무선 전화기 들고 들어오는 영은.


영은 : 아니예요, 걱정하지 마세요...아버지, 취하셨구나? ...아니라니까요...우린 다 잘 살아요...


바깥 눈치 살피며 목소리를 낮추는 영은. 현관문 소리가 나자 흠칫 놀라서 옷장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37. 동 마루


들어오는 인옥. 안방으로 가려다가 멈칫 선다. 영은방 쪽에서 조그맣게 나는 목소리.


영은 : 엄마가 고맙대요.


영은방을 기웃하는 인옥.



#38. 영은 지은 방


가만히 들어오는 인옥. 옷장문이 반쯤 열려있고 그 안에 들어가서 통화하고 있는 영은. 인옥이 들어온 것 모른다.


영은 : (수화기 감싸고) 그럼요...엄마두 인젠 아버지 마음 이해하신대요...그 돈 받구 많이 미안해하셨어요...

         아버지, 술 많이 드셨구나? (쓸쓸히 웃고) 알아요, 사랑하시는 거 알아요.


하얗게 질리는 인옥. 달려들어 수화기를 확 빼앗는다. 덜덜 떠는 영은.

수화기를 바닥에 집어 던져버리는 인옥. 긴장이 감돈다.


인옥 : (싸늘히) 나가라.

영은 : 엄마, 그게 아니구...


외출했다 들어오는 지은. 멍하니 본다.


지은 : 왜 이래?

인옥 : (떨며) 나가. 너 이 집서 나가.

영은 : (고개 숙이고 눈물 뚝 흘린다) ...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는 영은.

인옥, 뜻밖의 태도에 멈칫 하더니 더 화난다.


인옥 : 다신 들어오지마! 다신! 너 인제 내 딸 아냐.



#39. 한강 둔치 (밤)


차 세워놓고 나란히 앉아있는 수현과 혜경.


혜경 : 나를 그렇게까지 힘들어하는 줄은 몰랐어. 없는 여자친구까지 만들어가면서 나랑 헤어지고 싶은 거였어?

수현 : ...

혜경 : 나있지, 그동안 많이 반성했어. 우리,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자. 결혼 얘기 없었던 걸로 해두 좋아.

         (눈물 맺힌다) 나 노력할께. 내 멋대로 굴지두 않구 정말 잘 할께. 나 많이 달라졌어.

수현 : (일어나며) 늦었다. 그만 일어나자.

혜경 : (붙잡고) 옛날에...수현씨 생각해봐. 그때 우리 얼마나 행복했니. 수현씨 그때는 나뿐이라 그랬었잖아.

수현 : (앞서가며) 그만 가자.


눈물 주룩 흘리는 혜경. 비장하게 일어난다.


혜경 : 차라리 나 여기 빠져 죽을래. 죽구 말거야. (강쪽으로 가며 고함) 죽는다구!!

수현 : (화난다) 정말 이럴래? 지금두 봐, 모든 게 니 멋대로잖아! 너 언제나 이런 식이야. 죽을 수 있어?

         정말 죽을 수 있으면 해봐! 이러다가 내가 니곁에 가면 너 어떻게 하니. 그럼 그때부터 나는 또, 없는 사람이야...

         세상 모든걸 니 마음대로 쥐고 흔들려 그러지마...부탁한다, 혜경아. 나두 좀 살자. 너 왜 자꾸 날 붙잡는 건데?

혜경 : 사랑하니까!

수현 : (기운 빠지며) 지겹지두 않아? 이러는 게 벌써 몇 번째야.


승용차 쪽으로 가버리는 수현 뒷모습. 분한 듯 표정 돌변하며 싸늘하게 쏘아보는 혜경.



#40. 두식집 외경 (밤)



#41. 동 거실


정희와 마주 앉아있는 두식. 테이블 위에 양주병 놓여있다. 얼근히 취했다.


두식 : 윤실장...자네 말이야. 내가 자넬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알아?

정희 : 네, 압니다. 취하셨네. 그만 드세요.

두식 : 아냐, 안 취했어. 자, 건배하자구. 잔 들어!


정희, 마지못해 잔을 든다.


정희 : 이번 잔만 드세요.

두식 : 내가 오늘 말이야...누굴 만났는지 알아?


들어오는 수현.


정희 : 어, 인제 와?

수현 : 오셨어요?

정희 : (난감한듯) 글쎄, 저녁 먹는데 갑자기 전화를 하셔서 급하게 호출을 하시잖니.

         술 친구가 필요하셨나 봐. 진작 좀 들어오지.

두식 : 우리 아들! 이리 와서 좀 앉아봐라. 수현아, 내가 오늘 누굴 만났는고 하니...

수현 : (머뭇하다 와서 앉고) ...

두식 : 내가...아주아주 가난하구 비참했을 때 나한테 수모를 주던 놈이 있었다.

         저 잘 산다구 말이야, 나 돈 없다 무시하구 배신을 때린 놈인데 말이야...

수현 : (쓸쓸히 바라본다)

두식 : 내가 오늘날 이렇게 이 악물구 성공한 거는, 다아 그 눔이 나한테 수모를 준 덕분이거든? 그러구보면 은인일세!

정희 : 그 사람이 누군데요?

두식 : 아, 윤실장은 몰라. 그런 인간이 있어. 그놈이 말이야. 아주아주 비참하게 됐드구만. 내가, 오늘 정말 통쾌했어! (웃는다)

         내 앞에서 쩔쩔 매드구만!

정희 : 저 그만 가봐야겠어요, 사장님. 너무 늦었어요.

수현 : 모셔다 드릴께요.

정희 : 그래, 좀 태워 주라. 나두 술 꽤 마셨어.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고 눈을 감는 두식.


두식 : 수현아, 너 얼른 결혼해서 이 애비한테 손주 좀 줄줄이 안겨주라...

         우리가 말이다, 대단한 명문가를 하나 만드는 거다...나는 오로지 그 희망으루 산다.

수현 : ...

정희 : 저 가요, 사장님. (일어난다)



#42. 수현 승용차 안


운전하는 수현. 조수석에 앉아있는 정희.


정희 : 사장님이 요즘 마음이 허하신가봐. 회사 전반적으로 마이너스 추센 거 알지?

수현 : ...

정희 : 사장님두 사장님이다만...수현이 넌 무슨 생각으루 사는 거야.

수현 : (피식 웃고)

정희 : 가만보면 혼이 다 빠진 사람 같애. 의욕두 없구 목표두 없는 거 같구...사는게 재미 없어?

수현 : (씁쓸히) 아뇨, 재밌어요.

정희 : 보기 안 좋아. 젊디 젊은데 왜그래? 아버지랑 아들이 바뀐 거 같다니까.

수현 : 저 앞에서 커브 도는 거 맞죠?

정희 : 아냐, 저기 건널목서 내려줘. 나 수퍼에서 뭐두 좀 사야되구.

수현 : ...실장님.

정희 : 응?

수현 : 아버지 좀 잘 부탁 드려요.

정희 : (한숨 쉬며 웃고) 댁이나 잘하세요...혜경이랑은 얘기 잘했어? 사랑싸움 그만하구 잘 지내.

         요새 우리 회사, 그 집 도움이 많이 받구 있어. 알지? 자꾸 심술 피우면 여러사람 곤란하다구.



#43. 파인 매장 앞


승용차 몰고 오는 수현. 차에서 내린다.



#44. 홀 안


불꺼진 실내. 들어오는 수현. 점장실 쪽으로 간다.



#45. 점장실


나른하게 누워서 캔맥주 마시며 이런저런 생각하는 수현. 휴대폰이 울린다.


수현 : 네...

혜경(E) : (얌전하게) 집이야?

수현 : 아냐, 가게.

혜경(E) : 왜 거기 있어?

수현 : 그냥.

혜경(E) : 집에 들어가서 자. 아버님 걱정하시잖아...

수현 : (사이 두고) ...혜경아,

혜경(E) : 응?

수현 : ...(다 포기한듯 씁쓸히) ...내가, 너한테...그렇게 필요해?


침묵 흐른다.


수현 : (자조 어리며) 그래, 니가 원하는대로 해줄테니까 너두 노력해 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이젠 좀 다르게 살아 봐.......

         아니, 오늘은 너무 늦었어. 피곤해...내일 만나자...그래, 그만 자라.


전화 끊고 휴대폰을 바닥에 툭 던져버린다. 만사 피곤한 듯 눈을 감는다.



#46. 홀 안


열쇠소리 딸가닥 난다. 안으로 들어오는 검은 그림자. 불꺼진 실내를 둘러보다가 카운터쪽으로 간다.



#47. 점장실


눈감고 누워있는 수현. 문득, 무슨 소리가 나는듯 하다.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난다.

홀 쪽에서 달그닥거리는 소리. 놀라는 수현. 어떻게 된건가 귀를 기울이다가 용기내서 밖으로 나간다.



#48. 홀 안


한쪽에 몸을 숨기고 살그머니 홀안을 살피는 수현. 카운터 쪽을 뒤적거리는 검은 그림자를 발견한다. 숨죽이고 살펴본다.

이윽고 몸을 일으키는 그림자. 자세히 보는 수현. 표정이 굳는다. 영은이다.

도둑이 맞구나 싶다. 수현 얼굴에 표정에 분노와 실망 어린다.

이윽고 환한 얼굴로 카운터 아래쪽에서 일어나는 영은. 책을 하나 꺼내 들고 있다. 주방 쪽으로 간다.

수현, 긴장하며 지켜본다.



#49. 동 주방


들어오는 영은. 주방 불을 탁 켠다. 대충 지저분한 것들을 치우고 밀가루 푸대를 옮겨온다.

에이프런을 두르고 밀가루에 물을 부어 반죽을 시작한다. 방금 카운터에서 가져온 요리책을 펼친다. 분량을 맞춘다.

커다란 화지타 반죽을 시작하는 영은.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주방 입구, 화분 뒤에 몸을 숨기고 지켜보는 수현. 뭐하는건가 싶어 얼떨떨하게 지켜본다.

밀가루를 한참 치대는 영은. 갑자기 어깨를 들썩거리며 흥얼흥얼 노래를 시작한다.

트로트풍의 가요다. 음정도 박자도 모두 엉망이다.

지켜보는 수현. 어처구니가 없다.

한참 열심히 반죽을 밀던 영은. 노래를 멈추고 반죽을 들어서 불빛에 비춰본다.


영은 : (한숨) 죄송합니다, 손님...우리 애가 영 서툴러서 화지타가 세상에나 이렇게 두껍군요. 이런 애는 짤라야 되는데...

         그래두 나름대로 열심히 만든 거니까 봐주세요. 자기 딴엔 부지런히 연습하고 있으니까, 곧 나지겠죠 뭐.


반죽을 뭉그려뜨린다. 다시 얇게 미는 연습을 시작한다.

지켜보는 수현. 마음이 뭉클해진다. 열심히 반죽하는 그녀의 진지한 얼굴을 지켜본다.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저절로 슬몃 고개가 숙여진다. 조용히 돌아선다.

그때, 다시 엉터리 노래를 흥얼흥얼거리는 영은. 높은 음정에 이르르면 목소리가 삑 갈라진다.

순간, 웃음이 푹 터지는 수현. 당황해서 얼른 입을 가리고 돌아서다가 중심을 잃는다. 우당탕 넘어지는 화분.

놀라서 딱 얼어붙는 영은. 눈 마주치는 두사람.


영은 : ...점장님,

수현 : (일어나며 민망한데) ...

영은 : 여기서 뭐하세요?

수현 : 영은씬 여기서 뭐해요?

영은 : ...

수현 : ...



#50. 파인 외경


불 환히 켜진다.



#51. 홀 안


넓고 텅빈 실내. 영은과 수현 두사람, 중앙의 테이블에 마주 앉아있다.


영은 : ...(얼굴 빨개져서) 죄송합니다. 점장님 계신 줄 몰랐어요.

수현 : ...

영은 : 반죽 연습을 좀 하러 나왔어요. 손이 둔해서 그런지, 얇게 미는 반죽이 잘 안돼요.

         (난감한듯 외면하고) 빨리 진도를 따라가야 요리 파트에서 일할 수 있으니까...

수현 : (뭉클해지며)

영은 : 박선생님이, 이번 반죽만 잘하면 소스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신다고 하셨거든요.

수현 : (본다) ...그렇다구 잠두 안 자구 밤중에 나와서 연습해요?

영은 : ...죄송합니다.

수현 : (시비 걸듯이 툭) 뭐가요?

영은 : 네?

수현 : (따뜻하게 바라본다) 뭐가 죄송합니까? 왜그렇게 겁을 먹어요?


눈물이 핑 도는 영은.


수현 : 영은씨...배고프지 않아요?

영은 : 네?

수현 : 우리 라면 끓여 먹을래요?

영은 : (멍하니 본다)



#52. 파인 주차장


들어오는 혜경의 차. 차에서 내리는 혜경.



#53. 주방


렌지 위에서 끓고 있는 물. 라면을 두 개 부숴서 남비에 넣는 수현.


영은 : 제가 할께요. 주세요.

수현 : 놔둬요. 내가 할께요. 나두 알구보면 요리에 영 재주가 없는 건 아니예요.

         어릴때부터 통 혼자만 지내놔서 공부보다는 부엌 일에 더 취미가 있었어요.

영은 : 그러세요?

수현 : 영은씨,

영은 : 네?

수현 : 영은씨 원래 그렇게 노래를 못해요?

영은 : (얼굴 확 붉어진다)

수현 : 아까 그 노래 다시 한번 불러 볼래요?

영은 : ...(무안하다) 그렇게나 엉망이었어요?

수현 : 후우... 내가 또 학교 때, 한 음악 했잖아요.

영은 : 음악, 하셨어요?

수현 : 그럼요. 고등학교 때, 락 밴드를 하나 조직했다가 아버지한테 들켜서 사흘 낮밤을 두들겨 맞았거든요.

영은 : (웃는다)

수현 : 그때 불렀던 레파토리 한 곡 들어볼래요?

영은 : 네.


젓가락으로 박자 두드리며 족보도 없는 이상한 노래를 하나 시작하는 수현.

(자작곡으로 설정합니다. 예컨대 그룹 동물원 풍은 어떨지? 대중에 많이 안 알려진 곡 중에서

힘차고 씩씩한 노래를 하나 연구해주시길...)

첨엔 그럴듯하게 시작하지만 노래 실력은 딱 영은 수준이다. 음정 박자 완벽하게 무시하고 잘도 부른다.

영은 표정이 점점 묘해진다.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 순간, 주방 입구로 들어서는 혜경. 신나게 노래 부르는 수현의 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다.

제3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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