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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보일까봐] 04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9.04.04|조회수1,267 목록 댓글 0

[눈물이 보일까봐] 04











#1. 파인 주방 안 (새벽)


박자 두드리며 엉터리 자작곡을 부르는 수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를 지켜보는 영은.

입구로 들어서는 혜경. 이 기묘한 광경을 떨면서 지켜보고 서 있다.

한소절 마치면 박수를 짝짝 치는 영은. 으쓱하는 수현.


수현 : 어때요?

영은 : 와아- 대단하신데요?

수현 : 으흠...


그 순간 혜경과 눈 마주친다. 당황하는 수현.

영은, 멈칫 돌아본다. 놀라서 딱 굳는다.


혜경 : (화 참으며) 미안해. 내가 눈치 없이 온 것 같네. 가볼께.

수현 : 혜경아, 잠깐만.


그대로 돌아서서 나가는 혜경.

수현, 낭패스런 얼굴로 쫓아나간다.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영은.



#2. 주차장


건물을 나오는 혜경. 승용차에 오른다.

쫓아오는 수현. 차창 앞에 선다.


수현 : 내려. 얘기나 좀 하구 가.

혜경 : 무슨 얘기? 얘기 필요없어! 다 끝났어!

수현 : (차문 열며) 내려 봐.

혜경 : (이윽고 폭발하며) 사람 이렇게 무참하게 만들 수 있어? 그래, 좋아. 멋대로 해봐! 더 치사하게 복수해 봐!

         이렇게 유치찬란한 인간인 줄은 정말 몰랐어! 그래, 헤어지자, 헤어지면 되잖아!

         기집앨 골라두 어디서 저런 수준을 골라서 들이미니?

수현 : ...(굳는다)


뒤에서 다 듣고 서있는 영은. 이윽고 쫓아온다. 어쩔 줄 몰라 굽신한다.


영은 : 죄송합니다. 오해하시는 거예요. 저흰 아무 사이두 아니구요, 저요, 아무 것두 아니예요...

         그러니까, 제가 괜히 밤에 나와가지구...(당황) 오해예요, 오해! 저 아니예요!

혜경 : (대꾸없이 가만히 내려다 보는데) ...

영은 : (다시 굽신)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수현 : (OL 싸늘히) 영은씨, 들어가요. 뭐가 죄송한데요?

영은 : (멈칫)

수현 : 가라, 그럼.


창백해지는 혜경. 그대로 거칠게 차를 몰고 가버린다.

영은, 당황하며 허둥지둥 차를 쫓아가본다. 이윽고 승용차 사라지면 난감한듯 돌아본다.

벌써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수현.



#3. 동 홀 안


수현 한쪽에 앉아 담배 붙여물고 있다.

들어오는 영은. 눈치를 살핀다.


영은 : ...저어...그만 가보겠습니다.

수현 : ...갈래요?

영은 : 네, 그럼. (인사한다)

수현 : 미안해요, 영은씨.

영은 : (과장스레 허둥지둥) 아유, 뭐가요? 제가, 제가 죄송하죠!!


수현, 씁쓸히 일어나 안으로 들어간다. 물끄러미 보는 영은.



#4. 영은집 대문 앞 (새벽)


터덜터덜 걸어오는 영은. 열쇠를 문에 꽂는 순간, 안에서 문을 열어주는 인옥.

멈칫 놀라는 영은.


영은 : (확 반가워) 엄마, 아직 안 주무셨어요?



#5. 동 마루


식탁 의자에 앉아 냉랭하게 바라보는 인옥. 영은, 주저앉은 채 양말을 벗는다.


영은 : (좋아서 헤헷 웃고) 나 기다리느라구 여태 안 주무셨어요? 응?

인옥 : (외면) 아버지한테 가지 왜 왔니.

영은 : (웃고) 어후, 엄만? 내가 아버지한테 왜 가요? 엄마 정말 나 기다리느라구 여태 안 주무신 거예요? 응? 응?

인옥 : (일어나며 한숨) 속두 없는 기집애. 야단을 치면 무슨 소용이 있어.


안으로 들어간다.


영은 : (신나서) 내가 쌀 씻어놓구 잘께! 아침에 밥두 제가 할께요! 늦잠 주무세요!



#6. 파인 외경 (아침)



#7. 점장실


통화하고 있는 수현.


수현 : ...알고 있습니다...네...곧 출발합니다.


전화 끊고 일어나는데 들어오는 홀매니저.


홀매니저 : 어디 가세요?

수현 : 본사에 회의가 있어서요.

홀매니저 : (난감한듯) 저어...

수현 : 왜요?

홀매니저 : 혹시 엊저녁에 여기 계셨어요?

수현 : ...무슨 일 있었어요?

홀매니저 : 진열장에 있던 꼬냑 두 병이 없어졌어요.

수현 : (굳는다)

홀매니저 : 혹시 드셨나 하구요.



#8. 동 홀 안


출근하는 영은. 점장실 쪽에서 나오는 홀매니저.


영은 : 안녕하세요!

홀매니저 : 영은씨,

영은 : 네?

홀매니저 : 스페어키 가져간 거 도로 줄래?

영은 : (주섬주섬 꺼낸다)

홀매니저 : (빼앗듯 가져간다) 일찍 나오지두 않을 거면서 뭐하러 키를 달라 그래?

영은 : 아, 그게 저...(우물쭈물 웃으며) 그러게 말이예요.

홀매니저 : ...혹시 진열장에 꼬냑, 누가 가져가는 거 못 봤어?

영은 : ...못 봤는데요. 없어졌어요?



#9. 탈의실


사물함으로 다가오는 영은. 문 열고 작업복을 꺼내는데 사물함 한켠에 꼬냑이 한 병 들어있다.

딱 굳는 영은. 이게 혹시 그 꼬냑? 도대체 어떻게 된거지? 주위 살피며 식은땀 흐른다.

곁에서 옷 갈아입던 종업원1(호정), 돌아본다.


호정 : (새침하게) 요새 우리 가게 귀신 있나 봐. 밤마다 뭐 하나씩 없어진다?

영은 : (깜짝 놀라며 옷 같은 걸로 술병을 막 감춰넣으며) 정말요? (당황) 에이, 설마! 무슨 귀신이 있을라구요.

         (하는데, 떼구르 굴러 떨어지는 술병)

호정 : (놀라서 보다가) 어머나... (바깥 향해 뒷걸음) 꼬냑 찾았어요! 매니저님!! (쫓아나가며) 찾았어요! 도둑 맞은 거 여깄어요!

영은 : !


달려들어오는 홀매니저. 눈에 쌍심지 켜지며 당장 꼬냑병을 나꿔챈다.


홀매니저 : 영은씨 어떻게 된거야?

영은 : (머쓱 웃고) 어떻게 된건지...저두 모르는 일인데요.

홀매니저 : 지금 이거 두 눈으루 똑바루 보구두 모르는 일이야?


뒤이어 탈의실로 들어오는 수현. 홀매니저, 잔뜩 흥분해서 수현 앞으로 들고간다.


홀매니저 : 여기 있어요, 점장님. 김영은씨 사물함에서 나왔습니다.

수현 : (당황하며 영은 본다) ...

영은 : 저는 정말 모르는 일이예요.

홀매니저 : 얘 증말 큰일이네. (수현보고) 그냥 두면 무슨 일이 또 날지 모르겠어요.

수현 : (차분하게) 함부로 속단하지 마세요.


홀매니저, 약이 바싹 오른다.


홀매니저 : 저두 중간 관리자 권한으로 말씀 드리는 거예요! 이번에두 그대로 넘어가면 차라리 제가 그만두겠어요.

영은 : (굳는다)

수현 : 영은씨, 정말 모르는 일인가요?

영은 : ...


긴장 감돈다. 기분 복잡해지는 수현.



#10. 동 주방


들어오는 영은. 개수대로 다가가 설거지 한다.

들어오는 민식.


민식 : 오늘부터 브로일러 파트에서 일해라. 고기 굽는 거 슬슬 가르쳐주께.

영은 : (멈칫 본다)

민식 : 왜? 너무 좋으냐?


동규, 민식을 한쪽으로 끌고 간다. 뭐라고 속닥거린다. 얼굴 빨개지는 영은.

민식, 미간 좁혀지며 힐끔 돌아본다.

눈 마주치면 민망해져서 얼핏 웃는 영은. 이윽고 고개 푹 숙인채 그릇을 빡빡 씻는다.



#11. 동 매장 복도


창가에 돌아서서 담배 피우는 종수. 다가오는 영은.


종수 : (멈칫 돌아보고) 반갑다,

영은 : (각오한듯 다가선다) 혹시 제 사물함에 술 넣어놓으셨어요?

종수 : 술?

영은 : 사물함 같이 쓰자 그러셨잖아요.

종수 : 아아...그거? 난 또 뭐라구...그거 좀 당분간만 맡아놔라.

영은 : ...

종수 : 야,야,까짓거 사물함 한귀퉁이 빌려주는 게 그렇게 고깝냐? 뭐, 주차장에서 일하는 놈은 인간두 아니냐?

         그거 좀 같이 쓰면 어디 덧나냐.

영은 : 그 술...어디서 났어요?

종수 : 어디선 나긴? 샀지 뭐! (시선 돌리고) 곧 여름휴가두 다가오구 추석두 다가오구... 고향 내려갈 때 빈손으루 갈 순 없잖냐.

         취직한 기념으루 술 한 병 구입 했다. 며칠 안으루 찾아 갈테니까 잠시만 보관해주라.

영은 : (화난다) ...정말 샀어요? 아니죠? 훔쳤죠?

종수 : 뭐?

영은 : (주위 살피며 나직이) 금방 들킬 거, 몰랐어요? 매일 아침 재료랑 음료랑 갯수 점검 하는 거 모르셨어요?

         뭐하러 그런 걸 훔쳐요?

종수 : 야,야,누가 뭘 훔쳤다 그래? 까짓 거 얼마나 한다구 훔치냐? 사람을 뭘루 보구...

영은 : (글썽하며 본다) ... 인젠 그러지 마세요.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랑 동생들 생각하시구 열심히, 올바르게 사세요.

종수 : (곤혹스럽다)


멀찌기 뒤에서 다가오는 수현.


수현 : 영은씨, 나 좀 볼래요?

영은 : (흠칫 돌아본다)



#12. 점장실


수현과 마주 앉아있는 영은.


수현 : ...(고심하다가) 영은씨가 나나 직원들 입장을 이해했으면 좋겠어요. 엊그제두 조그만 도난사건이 있었거든요.

         혹시...누구 짚히는 사람은 없어요?

영은 : ...

수현 : (망설이다가) 혹시...그 술이 꼭...필요했어요?

영은 : (멈칫 본다)


한동안 침묵 흐른다. 절망하는 영은.


수현 : 그랬어요?

영은 : 저어...여기 그만 두겠습니다.

수현 : (멈칫 본다)

영은 : 가불해주신 월급은 다른 일자리 구해지는대로 금방 갚을께요.

수현 : (당혹스러워진다)

영은 :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조용히 일어나는 영은. 인사하고 나간다.


수현 : 김영은씨 이런 사람이었어요? 그런 게 필요하면 얘기를 하지 그랬어요?


한동안 꼼짝않고 앉아있는 수현. 실망감에 화가 치민다.

일어나며 테이블 위에 놓인 잡지 같은 것을 괜히 들었다 던져버린다.



#13. 주차장


퇴근 차림으로 건물을 나오는 영은. 주차장 부스에 있다가 다가오는 종수.


종수 : 잠깐 얘기 좀 하자.

홀매니저(E) : (뒤에서 다가오며) 김영은씨.

영은 : (돌아본다)

홀매니저 :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감정 있어 그런 거 아니었어. 이런 경우, 한 번 두 번 봐주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서 그래. 우리 업소, 영은씨 들어오기 전엔 단 한번두 이런 일이 없었어.

종수 : ?

홀매니저 : (한숨) 세상에 젤 고치기 힘든게 도벽이라드라. (넌지시) 혹시 그날이야?

영은 : ...

홀매니저 : (툭 치고 간다) 다른 데 가서 일하더라두 조심해요. 세상 그렇게 만만치 않아.

종수 : (당황하며 본다) ...어떻게 된거냐?

영은 : (꾸벅) ...안녕히 계세요.


멀어지는 영은.



#13. 청과물 도매시장 (낮) (순금의 가게를 반찬가게에서 청과물 도매 상점으로 최종 결정합니다)


인부들과 함께 트럭에 수박을 올리는 순금과 인옥. 이윽고 다 나르면 인부들에게 인사하는 순금. 차 떠난다.

인옥, 미니 냉장고 문을 열고 물병을 꺼낸다.

순금, 전대에서 지폐를 꺼내더니 훌훌 센다. 부러운듯 잠깐 보는 인옥.


순금 : 니가 오니까 장사가 착착 잘된다. 오늘만두 벌써 주문이 몇 껀이야?

인옥 : 뭐얼... (물 따라 마시며)

순금 : (곁눈으로 보고) 하이구, 물두 꼭 지같이 마신다. 줘봐, 시원시원하게 좀 마셔 봐.


물병 빼앗아 병째 마시는 순금. 전화벨 울린다.


순금 : 네, 천안 상횝니다...파...파인...잘 안들립니다...무슨 회사라구요?...예, 과일 도매상 맞는데요...제가 양순금인데요...


의자에 앉아 땀을 닦는 인옥. 지치고 힘겨운 표정으로 넋놓고 앉아있다.



#14. 파인유통 본사 외경 (낮)



#15. 본사 회의실


각 지점장들 십여명 쯤 주욱 앉아있고(나이는 대개 30대 중후반쯤) 맨 앞 쪽에 두식 모습 보인다.

앞에 서서 발표하는 정희.


정희 : 이번에 샐러드용 과일 납품 업체를 바꿀까 합니다. 업체가 확정되는대로 각 업소 전산망으로 고시하겠습니다.

         지점장님들께서는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뒷문으로 들어오는 수현. 목례하고 한쪽 자리로 가서 앉는다.

두식의 마뜩찮은 시선.


정희 : 그리구, 최근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서 다음달부터 업소 파트 타이머생들의 페이를 시간당 이천오백원에서

         이천 삼백원으로 내리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경쟁업소들보다 임금 수준이 높다는 자체 분석에 따라...

수현 : (OL 심드렁히) 그건 다시 생각해주세요, 실장님.

정희 : (멈칫)

수현 : 그렇게 한들 경비가 얼마나 절감되겠습니까. 차라리 음식값을 이백원씩 올리죠.


표정 싸늘해지는 두식.



#16. 동 사장실


두식과 마주 앉아있는 수현.


두식 : (버럭) 이놈이 제정신이야? 니가 지금 장사를 하겠다는 거냐, 애비 사업을 말아 먹겠다는 거냐?

         어떻게 그 자리에서 그 따위 소릴 떠들어대나?

수현 : (덤덤하게) 경비 절감책으로 꼭 그런 방법 밖엔 없습니까?

두식 : 이거 정말 경영학 공부를 하기는 한 놈이야.

수현 : (일어나며) 어쨌든 제 가게 만큼은 제 원칙대로,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두식 : 알아서 하긴 뭘 알아서 해? 회의 시간도 하나 못 지키는 놈이 혼자 인간적인 척은 다 하구 있어.

         돈 무섭구 세상 무서운 거는 요만큼두 모르는 놈.

수현 : ...가보겠습니다. (돌아선다)

두식 : 도대체 혜경이한텐 어쨌길래 강회장이 나한테 연락을 하게 만들어?

         방문 걸어 잠그구 밥두 안 먹는단다. 걔가 어디 좀처럼 그러는 애냐?

수현 : ...(돌아본다)

두식 : 어떻게 한건데? 자기 여자 하나 챙기지두 못하는 놈이 밑엣 직원들은 잘두 챙기겠다. 당장 가서 잘못한 거 사과나 해라!



#17. 두식집 외경 (밤)



#18. 동 거실 (밤)


들어오는 수현. 식당 쪽에서 나오는 혜경. 환히 웃고 있다.


혜경 : 인제 와? 배고프지?

수현 : (황당하다) ...

혜경 : 맛있는 거 많이 만들어놨어! 얼른 손씻구 들어와.


한숨 쉬는 수현.



#19. 동 식당


들어오는 수현. 식탁 위에 그득히 차려진 반찬들. 가정부가 밥을 날라준다.


수현 : (앉으며) 언제 왔어?

혜경 : 아까 낮에. 아버님은 오늘 많이 늦으신대. 이거 내가 다 만들었다? 먹어 봐.

가정부 : 아유, 솜씨가 보통이 아녜요. 나보더 더 잘해.

혜경 : 얼른 먹어보래두. (그릇 밀며) 우리집서 오이 소박이두 가져왔어. 잘 익었다?

수현 : (가만히 본다) ...혜경아,

혜경 : (눈길 돌리는) 괜찮아. 사과할 거 없어. 나 다 이해해.

수현 : ...

혜경 : 아랫직원들하구 잘지내는거야 뭐, 흉두 아니지. 내가 좀 오버했어. 그 아가씬 얼마나 무안했을까? 착하게 생겼든데.

수현 : ...(착잡해진다)

혜경 : 그런 애들 요새 일당 얼마나 받아? 집에 가서 생각해보니까 내가 너무나 잘못했드라구. 얼마나 서러웠을까...

         수현씨 화낼만두 하지. 그애들한테 잘해야 정말 좋은 관리자란 소릴 듣는 건데...

수현 : (묵묵히 참고 수저를 든다) ...밥 먹자.



#20. 파인 입구 복도 (다음날 아침)


들어오는 수현. 걸레질하고 있는 영은.

저도 모르게 반가워지며 성큼 다가서는 수현.


수현 : 나왔어요?


순간, 고개 드는 종업원1. 영은이 아니다.


종업원1 : (인사) 나오세요?

수현 : (잠깐 당황) 어, 네.


안으로 황황히 들어가는 수현. 내가 왜이러나 싶다.



#21. 주차장


쓰레기 봉투 들고 나오는 민식. 쓰레기통에 뭔가 발견하더니 눈빛이 예리해진다.

주차장부스 쪽을 바라본다. 주차요원 부스 안에서 잠든 종수.

민식, 부스로 다가간다.


민식 : (발로 차며) 야! 일어나!


부스스 눈을 뜨는 종수.


민식 : 일 안하구 어디서 퍼질러 자냐? 밤엔 뭐하다가 지금 자?


술냄새 큼큼 맡는다. 기지개 켜며 밖으로 나오는 종수.



#22. 동 홀안


들어오는 민식. 카운터 쪽에 서서 서류 들여다보는 수현.


수현 : 이거...(서류철 내밀며) 본사에서 내려온 이번달 신메뉴 조리법입니다.

민식 : (훌훌 넘기며) 흠...별거 아니구만. 맛두 없겠는데? 이거 백프로 안 팔려!

수현 : 그건 뭐예요?


민식, 뒤춤에 들고 있던 빈 꼬냑병을 보인다.


민식 : 잡았어, 범인!

수현 : 네?

민식 : 내가 누굽니까? 특급호텔에서 칵테일 바로만 십년을 굴렀던 경력 아냐.

수현 : (무슨 소린가)

민식 : 주차장에서 일하는 종수란 놈 있죠? 그 자식이 쳐마시구 쓰레기통에 박아놨드라구.

         (병 튕기며) 딱 요 냄새가 나드라니까...

수현 : 어떻게 된거죠?

민식 : 어떻게 된건진 나두 모르죠 뭐. 종수 저놈이, 분위기가 심상칠 않아요.

         안그래두 며칠 전부터 창고 쪽을 괜스리 기웃기웃... 신원조회나 해보구 채용을 하시지...

수현 : !



#23. 주차장


주차부스에 앉아있는 종수.

수현, 안에서 나온다. 비장하다. 다가오며 굽신 인사하는 종수.


종수 : 어디, 가시게요? 차 빼드릴까요?

수현 : 영은씨 집주소 알죠?

종수 : (멈칫)

수현 : 압니까, 모릅니까.

종수 : (눈길 피하며) 그거야... (삐딱하게) 모르죠.

수현 : 동생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주소두 몰라?!


들어오는 승용차 한대. 얼른 달려가 주차시켜주는 종수.

수현, 잠시 지켜보다가 자기 승용차에 오른다.

이윽고 수현 차 떠나면 표정이 확 구겨지는 종수. 불안하게 차 떠난 방향을 본다.

순간 반대편에서 들어오는 혜경의 승용차. 차에서 내리는 혜경.


종수 : 오셨습니까? (범퍼를 툭 치고) 차 잘 굴러가죠? 점장님 방금...


하는데, 대꾸없이 키를 건네고는 안으로 성큼 들어가버리는 혜경.



#24. 속옷가게 자리 앞 (낮)


수현의 승용차 다가온다. 차에서 내리는 수현.

속옷가게 자리에 새로 들어선 깨끗한 새 상점. 두리번거리는 수현. 잘못 왔나 싶다.


수현 : (행인 잡고) 실례합니다. 여기 있던 속옷 가게...어디로, 옮겼습니까?

행인 : 그 가게 불나서 다 탔어요.

수현 : 네? ...(멍하니)



#25. 영은집 외경 (낮)



#26. 동 마루 (낮)


가스렌지 위에 미역국이 끓고 있다. 국물 맛보는 영은.

방에서 나오는 인옥.


영은 : 식사하세요, 엄마. (지은방 향해) 언니! 밥 먹어!

인옥 : 영은아.

영은 : (국 푸며) 네?

인옥 : (등 철썩 친다) 너 도대체 애가 왜이래? 이따 큰언니 오는 거 몰라?

영은 : (본다)

인옥 : 아니 어떻게 미역국을 끓이니...경은이 시험 얼마나 남았다구, 하필 이걸 먹여 보내야겠어, 응?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

영은 : 어우, 내 정신...(머리치며) 내가 이래요, 엄마.


냉장고 문을 여는 인옥. 야채통을 뒤진다.

식탁에 앉아 국에 밥을 말고 있는 영은.


인옥 : 아욱이 남았을텐데...경은이 아욱국 좋아하는데...국 새로 끓여놓구 나가라, 알았니?

영은 : (서글프게 잠깐 본다) ....응.

인옥 : 오늘 몇시에 나가? 저녁 근무야?

영은 : ...인제 안 나가요.

인옥 : 안 나가다니? 왜.

영은 : ...(피식) 짤렸어요.

인옥 : (어이없다) 너는! 어떻게! 매사!

영은 : 그러게 말이야...나는 어떻게 매사 그런지 몰라.


인옥, 한숨 쉬며 화장실 쪽으로 간다.

미역국을 미어지게 꾹꾹 떠먹는 영은.



#27. 영은집 부근 거리 (낮)


생활정보지 들고 한 식당에서 나오는 영은. 땀 닦으며 정보지를 들여다보고 걷는다. 공중전화 부스로 간다.



#28. 부스 안


통화하는 영은.


영은 : ...네? 조리사 자격증 있어요!...당장 일할 수 있죠! 그럼요!

         ...근데 저어...혹시...월급말인데요...(기어들며) 가불이 가능할까요?


뒤에 와서 서는 수현.


영은 : ...(주눅) 그럼 한 절반만이라두...(무안) 아,네,알겠습니다...다시 연락 드릴께요.


전화 끊고 다른 번호를 누른다.


수현(E) : 한 통화씩 하죠. 뒤에 기다리는 사람 있습니다.


당황해서 돌아보는 영은.


영은 : 점장님?



#29. 커피숖


수현과 마주 앉아있는 영은. 착잡하다. 잠시 침묵 흐른다.

동시에 뭐라고 말을 꺼내는 두사람.


영은 : (붉어지며) 말씀 하세요.

수현 : (잠시 바라보다가)...영은씨, 사람이 뭐 그래요?

영은 : 예?

수현 : 왜그렇게 똑똑하질 못해요? 이러면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곤란해지는지 몰라요?

         결국 남들한테 피해만 끼치구 사는 겁니다. 알아요?

영은 : (무슨 말인가)

수현 : (미안해서 지레 더 화내는) 안 훔쳤으면 안 훔쳤다, 억울하면 억울하다, 말을 해야죠!

영은 : (멍하니 본다)

수현 : 나는 모르는 일이니까 괜한 사람 잡지마라, 당당하게 말을 해야지, 관두긴 왜 관둬요?

영은 : ...저는, 모르는 일이라고, 그때 말씀을 드렸는데요.

수현 : (민망해지며 말문 막힌다) 언제...그랬죠?

영은 : ...

수현 : 왜 그게 영은씨 사물함에 들어가 있어요?

영은 : ...(본다)

수현 : 내 말은...그러니까...(괜히 언성이 높아져서) 도대체 종수씨랑은 무슨 관곕니까?

영은 : 네?

수현 : 무슨 관곈데 그 사람이 한 걸 몽땅 뒤집어 써줘요? 그 정도루 대단한 사인가요?

영은 : (이 남자 정말 너무 하는구나) 저어, 점장님.

수현 : (왜이렇게 화가 날까...담배 꺼내문다) 불은 언제 났어요? 집이 얼마나 어려워요? 얼마나 어렵길래 가불까지 해가면서...

영은 : (얼굴 붉어지며) 가불해주신 월급...금방 갚을께요. 걱정마세요. 집이 아무리 어려워두,

         그런 거 떼 먹구 도망가지는 않거든요. (애써 웃고) 진짜예요!


시계보며 일어나는 영은.


영은 : 저 그만 가봐야 돼요. 안녕히 가세요. 곧 찾아뵐께요.

수현 : (당황) 영은씨,



#30. 커피숖


앞길 커피숖을 나오는 영은. 애써 태연히 걸어간다.

멈춰 서서 커피숖 쪽을 잠깐 돌아본다. 이윽고 눈물이 핑 돈다.



#31. 커피숖 안


난감한 얼굴로 물 한모금 마시는 수현. 이런 게 아닌데...뭐가 왜이렇게 꼬이나.

창 밖 멀리 사라지고 있는 조그만 영은 뒷모습.



#32. 청과물 도매시장 (낮)


인옥, 홀로 가게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짜장면을 먹고 있다. 목에 수건을 두른 꾀죄죄한 몰골로 허겁지겁 먹는다.

멀찌기 승용차 한 대 와서 선다. 뒷자리에 앉아있는 두식. 차창 너머로 인옥의 모습을 착잡하게 바라보고 있다.

앞자리 조수석에 앉아있는 정희.


정희 : (차창 밖 살피며) 여기 어딘 거 같은데요? 내리시죠, 사장님.

두식 : 으응.


인옥, 단무지 하나 깨물어 먹으며 무심히 고개 들고 본다.

차에서 내리는 정희와 두식.

순간, 얼어붙는 인옥. 얼른 그릇을 내팽개치고 일어난다. 입가에 짜장이 고스란히 묻었다. 이게 어떻게 된건가.


정희 : (다가오며) 실례합니다. 여기가 천안상회 맞죠?

인옥 : ...아,예...

두식 : (놀라는 척) 아니, 너! 니가 여기 왠일이냐.

인옥 : (식은땀) 저기...

두식 : (다 알고 왔으면서) 어떻게...놀러온 거야?

인옥 : 아,네! 놀러왔어요. 오빠가 여기 왠일이세요?

두식 : 순금이가 청과물상 한단 얘길 듣구 도움 좀 받을까 하구 왔지. 윤실장, 인사해 내 고향친구야.

정희 : 첨 뵙겠습니다. 윤정흽니다.

인옥 : ...예에..(마주 인사하며...속으로 이게 어떻게 된거지?)

두식 : (짐짓) 순금이랑 둘이, 여태두 단짝인 모양이구나.

인옥 : 예? 아, 그럼요. (에라 모르겠다) 얘가 오늘 어딜 좀 간다구요, 아침에 전화를 해서 가겔 봐달라 그러잖아요.

         내가 뭐 이런 장사를 아나...못한다구 빼는데두 사정사정을 하는 통에...이런 덴 하루만 문 닫아두 표난다나.

         아우 참, 오빠랑 인연이 깊네? 이런 데서 또 만나구.

두식 : (가만히 보고 있다가) 나두 깜짝 놀랐지! 니가 왜 여기 있나 싶어서.

정희 : (가게 둘러보며 좀 미덥잖은) 과일은 싱싱하겠죠?

인옥 : 네? 그거야, 저는 잘...몰라서..


순간, 저쪽에서 총총 달려오는 순금.


순금 : 어서오세요,

인옥 : (싸늘히 굳는다)

두식 : 하이구, 이거 봐라! 순금이 얘두 할망구 다 됐구만...나다, 두식이다! 기억 나냐?

순금 : (한참 본다) 어머나! (이게 어떻게 된건가 인옥을 돌아보고)

인옥 : (딱 굳어져서 외면하고 있다)

정희 : 첨 뵙겠습니다. 파인유통에서 나왔습니다. (명함 꺼내고)

순금 : 파인...아유 그럼 그, 양식당 열두 군덴가 주문이...어머나, 그게 오라버니 꺼유?

두식 : 그전부터 니가 청과물상 한단 소린 들었는데 그동안 연락을 못했다. 고향 좋다는 게 뭐냐. 서루 돕구 살아야지.

인옥 : (얼른 냉장고로 가서 뒤적거리는 척)

순금 : 하유, 진짜 고맙구 반갑네요, 오빠. 앉으세요, 앉아. 쥬스나 한잔 해요, 응?

         (당황하며 인옥을 살핀다) 인옥아, 인사했어? 두사람 인사했어? 아니 어떻게 이렇게 만나우?

인옥 : ...어어...글쎄 말이야.

순금 : (어쩔줄 모르다가) 얘는 혼자 되구, 여태 고생만 하구 살아두요, 티두 안나. 여전히 고상하구 곱죠? 처녀 때랑 똑같죠?

인옥 : (다급히 돌아서며) 순금아, 나, 쥬스 사올께.

순금 : 이런 일 할 애가 아닌데...여기 와서 내밑에서 고생이 말이 아니예요. (위해준 답시고) 살다보면 이런 시절두 있지 뭐...

인옥 : (죽고 싶다) 순금아,

두식 : 인옥아,

인옥 : 네?


입가의 짜장 닦으라는 시늉을 하는 두식.


두식 : 짜장면 마저 먹어라. 다 퍼진다.

인옥 : (굳는다) ...


창백해지며 뒷걸음질 치는 인옥. 순간, 바닥에 널린 수박껍질에 쭐떡 미끄러지고 만다.

중심 잡으려다가 도리어 엉덩방아를 콰당 찧는다.



#33. 인옥방 (밤)


요 깔고 옆으로 누워 있는 인옥. 수치심과 분노에 얼굴이 벌개져 있다.


두식(E) : 짜장면 마저 먹어라. 다 퍼진다.


이윽고 눈물을 주룩 흘리는 인옥. 점점 설움이 커진다. 꺼이꺼이 소리 높여 울기 시작한다.

밖에서 들어오는 영은. 얼른 얼굴 훔치는 인옥.


영은 : (멈칫 살피고 놀라) 엄마, 울어요?

인옥 : 아냐, 울긴 누가 울어.

영은 : 왜요?

인옥 : 안 울어. 좀 나가 있어.

영은 : 주인이랑 또 싸웠어요?

인옥 : ...(휴지로 코 푼다)

영은 : 왜 우시는데요?

인옥 : (분한) 못된 성질 머린 똑같애. 하나두 안 변했어! 그러니까 내가 찼지! 그러니까!

영은 : 누가요?

인옥 : 지가 뭐라구...지가 우리집 머슴 주제에...(다시 휴지로 눈물 훔친다) 중학교두 못나온 주제에...

영은 : (본다)

인옥 : 나가라니까!


눈치 보며 일어나 조용히 나가는 영은.



#33-1. 파인유통 사장실 (밤)


두식, 등 돌리고 홀로 앉아 어두운 창밖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들어오는 정희.


정희 : 여태 퇴근 안하셨어요?

두식 : ...(일어나며) 해야지.

정희 : 사장님, 저어...

두식 : 왜?

정희 : 혹시 시간 되시면 내일 저희집서 저녁 드실래요?

         시골서 할머니가 올라오셨어요. 사장님 모시구 밥 한끼 대접하구 싶으시대요.

두식 : (옷걸이로 가서 상의 걸치며) 어, 그래? 가야지! 할머님은 어때? 여전하시지?

정희 : 그러믄요...(웃음) 니가 부모 없이 어렵게 컸어두 이만큼 된 건 다 사장님 덕분이다, 사람은 은혜를 잊지말아야 된다,

         아침 저녁 전화루 끊임없이 잔소리예요. 제가 얼마나 잘하는지 말씀 좀 해주세요...

         구십 노인이 저보다 더 힘이 넘치신다니까요!

두식 : (예의로 허허 웃으며 나가는데)

정희 : 잠깐만요. (문득 다가서며 옷을 털어준다) 뭐가 묻었어요. 음식 흘리셨나보다.

두식 : (물러서며 어색해진다)



#33-2. 동 복도


성큼성큼 걸어가는 두식과 뒤따르는 정희.


정희 : 신촌지점 매출이 많이 늘었드라구요. 신메뉴 반응이 아주 좋대요.

두식 : ...윤실장,

정희 : 네?

두식 : 나 곧 좋은 일 있을 거 같애.

정희 : 좋은 일요?

두식 :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정희 : (멈칫하다) 어머! 축하드려요! 어떤 분인데요?

두식 : (나직하게) 아직은 비공개야.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로 해줘. (앞서간다)

정희 : 정말 축하 드려요! 평생 혼자 사시는가 싶었잖아요! 어쩜! 어쩐지 요즘 들떠보이셨어요.

두식 : (돌아보고) 고마워. 우리 윤실장두 얼른 얼른 좋은 사람 만나 혼인해얄텐데...


정희, 표정이 서서히 굳는다.



#34. 동 마루 (밤)


방에서 얼굴 닦으며 나오는 인옥. 화장실 쪽으로 가는데 식탁 의자에 초라하고 구부정하게 앉아있는 영은.


인옥 : 왜 거기 그러구 있어?

영은 : ...(고개 든다) 엄마,

인옥 : 왜.

영은 : 혹시요...돈 같은 거는...없겠지요?

인옥 : ...돈 같은 거는 뭐냐? 무슨 돈?

영은 : 어어, 내 월급이...가불이...(잘못했다 싶다. 머쓱 웃고) 아니예요! 그냥 해본 소리!

인옥 : (돌아서며) 모자란 기집애! 저거 뭐하러 태어났을꼬!


화장실 문 닫고 들어가는 인옥.


영은 : ...



#35. 영은방 (밤)


들어오는 영은. 기운없이 책상 앞에 앉는다.

플룻 케이스 메고 외출에서 돌아오는 지은.


지은 : (툭 치며) 야, 김영은, 생일 축하한다!

영은 : (움찔 돌아본다)

지은 : 생일 선물은......(다시 어깨 툭툭 치고 옷장 앞으로 간다) 나중에 돈 벌면 많이 사줄께.

         (옷 갈아입으며) 야, 그래두 나 밖엔 없지?

영은 : (피식) 응!



#36. 파인 외경 (밤)



#37. 동 홀 안


한쪽 창가에 앉아있는 혜경. 쥬스잔이 비어있다.

다가오는 홀매니저.


홀매니저 : 쥬스 한 잔 더 드릴까요?

혜경 : 아뇨, 됐어요.

홀매니저 : 방금 점장님한테 연락이 왔는데요...오늘 못 들어오신답니다.

혜경 : 나 여기 와 있다는 거 얘기 했어요?

홀매니저 : (미안한듯) 네.

혜경 : (분하다) 누구랑 있다구 그래요?

홀매니저 : 모르겠는데요.

혜경 : (잠깐 생각) ...저기요, 혹시, 주방에서 일하는 김...영은인가... 그런 아가씨 있죠?

홀매니저 : (돌아서다 멈칫 본다) 영은씨...오늘 안 나왔는데요.

혜경 : 그래요? 왜요?

홀매니저 : 관뒀습니다.


홀매니저 멀어진다.

잠깐 생각하다가 휴대폰을 꺼내 번호 누르는 혜경. 안내음성 나온다. 가입자가 전원을 끈 상태입니다.



#38. 주차장 (밤)


잔뜩 부은 얼굴로 안에서 나오는 혜경. 주차된 차를 찾는데 차가 없다. 당황하며 주위를 살핀다.

순간, 저만치서 급히 들어오는 승용차. 얼른 내리는 종수. 하필 이때! 들켰구나 싶다.


종수 : 들어가시게요? 잠깐...잠깐 차 성능을 좀 시험해보느라구요...

         (히죽 웃고) 수리가 잘 됐나 한바퀴 휙 돌아보구 왔습니다. 문제 없는데요?

혜경 : 너 미쳤니? 짤리구 싶어 작정했어? 어디서 이런 거 배웠어?

종수 : ...(구십도로 숙이며 정중히 키를 내민다)

혜경 : (화를 삭이며 신경질적으로 차문 연다) ...

종수 : (유들거리며) 그럼...조심해 가십쇼.

혜경 : 피곤한데, 증말 별게 다...(차에 타다 어지러운 듯 이마 짚는다) 너, 운전 좀 할래?

종수 : 예?

혜경 : 벌이야. 앞에 타!



#39. 혜경 승용차 안 - 거리 (밤)


운전하는 종수. 뒤에 앉아있는 혜경. 창 밖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다.

룸미러로 힐끗 보는 종수. 양갈래길에 다다른다.


종수 : 어느 쪽으로 갈까요?

혜경 : (창 밖만 보며) 직진해.

종수 : ...

혜경 : (그대로 시선 안주고) 이름이 뭐니.

종수 : 유종숩니다.

혜경 : 몇 살이야?

종수 : (본다) 스물...여섯입니다.

혜경 : (피식 웃고) 보기보다 오래됐네?



#40. 의상실 (밤)


강남의 고급 디자이너 부띡샾. 탈의실에서 옷을 입고 나오는 혜경. 흰색 롱 원피스 같은것.

젊은 여자 디자이너 다가온다.


디자이너 : 이쁘다아, 딱 어울리는데? 결혼식은 언제예요? 드레스두 준비해야지.

혜경 : 김선생님, 부탁이 있는데요.

디자이너 : 무슨 부탁?

혜경 : 제발 같은 옷 좀 여러 벌 만들지 마세요. 지난 번 전시회때 똑같은 옷 입은 여자 만난 거 아세요?


구석 소파에서 잡지를 넘기는 종수. 가만히 곁눈으로 그들을 본다. 시선 삐딱하다.


디자이너 : 에이, 가짜겠지. 요즘 워낙들 베끼잖아.

혜경 : 가짜는 무슨. 마크 붙은 거까지 다 봤는데...암튼 이건 별루네요.

디자이너 : 별로야? 혜경씨한테 맞춰서 특별히 만든건데?

혜경 : (탈의실로 들어가며) 저 친구 차나 한잔 주세요. 많이 기다리게 했는데...

종수 : (움찔 본다) ...



#41. 의상실 앞길 (밤)


숖을 나오는 혜경. 양손에 잔뜩 옷가방을 들고 뒤따라 오는 종수.


혜경 : 배 고프지?

종수 : 아닙니다. (차에 옷가방들 싣는다)

혜경 : 후우, 어디 가서 술이나 한잔 했음 좋겠다!

종수 : (본다)



#42. 나이트클럽 (밤)


춤추는 사람들. 번쩍이는 조명 아래 함께 춤추는 혜경.

테이블에 앉아 과일 먹으며 가만히 지켜보는 종수.

음악이 바뀌면 테이블로 돌아오는 혜경.


혜경 : (맥주 마시며 즐겁다) 안 출거야? 춤 잘 못 춰?

종수 : 네.

혜경 : 이런 데 많이 안 와봤구나? (가만히 스테이지 바라보며 담배 꺼내 문다) ...후우, 산다는 거, 참 슬프지 않니?

         너무 허무하구 쓸쓸해... 너는 아직, 그런 거 모르지?

종수 : ...(웃기고 있군)



#43. 혜경 집 앞 (밤)


차에서 내리는 종수. 뒷자리에 취해서 꼬꾸라져 있는 혜경을 내려준다.

규모 거창한 혜경집 건물을 올려다본다. 대문 쪽으로 혜경을 부축한다.


혜경 : 수고했다. 그만 가봐.


종수, 생각난듯 얼른 차 뒤쪽에서 옷가방들을 꺼낸다.


종수 : 이거 가져가십쇼.

혜경 : 어어, 그거? 그거 너 가져! 니 여자친구 줘! 오늘 수고했다구 주는 선물이야!

종수 : (난감한데)

혜경 : (가라는 손짓) 가!



#44. 점장실 (밤)


어두운 실내. 들어오는 수현. 불을 켜고 피곤한듯 소파에 앉는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한쪽에 내려놓은 만종 그림이 보인다. 가만히 들고 들여다보는 수현.



#45. 회상 (2회 씬11 중에서)


수현 : 밀레 좋아해요?

영은 : 네. 그 사람 자기가 자기 귀를 짤랐대요. 사는게 무척 괴로워서요.

수현 : (무표정해지는) ...

영은 : 그러니까 이런 슬픈 그림을 그릴 수 있었겠죠?

수현 : 그건 고호 아닌가요?

영은 : (잠깐 생각하다 얼굴 빨개진다) 그랬던가요? 밀레는 귀 안잘랐어요?



#46. 점장실 (현재)


팔 괴고 기댄 채 입가에 피식 웃음이 맴도는 수현. 점점 기분이 묘해진다. 내가 도대체 왜이렇게 얘한테 마음이 쓰일까.

의자 뒤로 젖히고 곰곰 생각하다 문득 서랍을 뒤적거린다. 영은의 입사 지원서를 찾는다.

반명함판 사진과 함께 학력, 생년월일 등이 써있다.

뒷면을 넘기면 지원동기란이 있다. 소박한 영은의 글씨로 빼곡하게 채워져있다.


영은(E) : 저는 장차 훌륭한 조리사가 되고싶습니다. 언젠간 제 이름을 걸고 깨끗하고 맛있는 식당을 하나 열어보고 싶습니다...


몽타쥬 흐른다.

그들이 처음 만난 날, 속옷 주워주던 장면, 화분 주던 장면, 열쇠고리 건네주던 장면, 밤중에 요리 연습하던 영은 모습 등등.

그위로 흐르는 영은의 지원 동기.


영은(E) : ...어느날 우연히 이곳에서 일하시는 한 친절한 분을 만났고, 그 분 소개로 이 식당을 알게됐습니다.

             그 사람 첫인상이 참 좋았습니다. 그만큼 인간적이고 따뜻한 직장일거라는 기대가 듭니다.

             기회만 주시면, 최선을 다해 열심히 배우고 성심껏 일하겠습니다.

             원하는 급료는 시간당 이천원에서 이천오백원선입니다.


조금씩 마음이 뭉클해지는 수현.



#47. 지하실 외경 (밤)


공사장 부근의 낡은 창고 건물.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48. 지하실 안 (밤)


어두운 방안. 찢어진 장판 바닥 곳곳에 바가지,대야,재떨이,물대접 등등이 놓여있다.

놓인 그릇마다 천장에서 똑똑 떨어지는 빗물을 받고있다.

가구라곤 없다. 옷가지와 휴대용 가스버너,라면 껍질,술병,담배 꽁초,두루마리 화장지 등이 어지럽게 놓인 지저분한 방.

천장쪽으로 난 손바닥만한 창문. 빗소리와 가로등 불빛이 들어온다.

한쪽에 놓인 혜경의 옷가방. 팔괴고 누운 채 생라면 조각을 잘근잘근 씹어 먹는 종수. 옷가방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이마 위로 빗물 한방울이 뚝 떨어진다.



#49. 영은집 대문 앞 (밤)


우산 받쳐 들고 안에서 나오는 영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시커먼 그림자 다가온다.


종수(E) : 여기다!

영은 : (놀라 돌아보면)

종수 : (씩 웃고) 아직 안 잤냐?

영은 : 왠일이세요?


처마 밑으로 나란히 와서 서는 두사람.


종수 : 왠일은 뭐...그냥 오다가다 들렀지. 가게는 인제 영 때려친거냐?

영은 : ...

종수 : 잘 생각했다. 까짓거 월급 얼마나 준다구 목매구 다니냐? 옛다!


한쪽에 놓아뒀던 옷봉투들을 건넨다.


영은 : 뭐예요?

종수 : 옷이야, 옷! 훔친 거 아니니까 걱정마라. 받아!

영은 : (경계한다)

종수 : 훔친 것두 아니구 가짜두 아니구, 진짜 고급 브랜드다. 내가 과거에 이쪽 계통으루 종사한 적이 있잖냐.

         (피식) 너 땜에 다 말아 먹었지만...

영은 : 이걸 왜 저한테 주세요?

종수 : 술 보관료!

영은 : (밉다) 가져가세요. 안 받을래요.

종수 : (자세히 본다) 우와아, 너 진짜 꼭 내 둘째 여동생 같다?

영은 : ...다섯째 동생이라면서요.

종수 : 다섯째 동생? 어우, 미쳤냐? 요새 누가 그렇게 무식하게 많이 낳는대?

영은 : (이 인간 정말...)

종수 : (쭈그리고 앉는다) 임마, 내가 너한테 충고 하나 해주까? 누가 너보구 도둑이라구 몰면 절대 아니라구 버티는 거야.

         도둑일 때두 도둑 아니다 끝까지 버티면 도둑아닌 거구, 도둑 아닐 때두 가만 있으면 도둑 되는 거야.

         그게 바로 성숙한 사회인의 태도라는 거다. 너, 높은 사람들 잡혀 들어가서 자기가 그랬다구 말하는 거 본 적 있냐?

         절대 없지. 유명한 스타들 결혼설 터져봐, 사귄다 그러는 거 봤냐? 절대 아니지! 그러는 덴 다 이유가 있는 거야.

영은 : ...(작게 한숨) 스타 결혼설이랑 제가 무슨 상관이 있어요?

종수 : 뭐, 암튼 그렇다는 말이야...니가 한 달 뼈빠지게 일해 번 돈, 우리 가게 손님들 하룻 저녁 술 한 병 값이야.

         세상은 그런 거다. 성실하게 살면 복받는다구? 다 개소리야. 너두 괜한 헛꿈 꾸지 말구 정신 차려.

         어떡하면 뽑아먹을까 그 궁리나 해. (툭 쳐주고) 간다!

영은 : (옷가방 들고 쫓아가는) 저기요! 잠깐만요! 이거 가져가요!


그대로 성큼 멀어지는 종수.



#50. 영은방 (밤)


지은, 옷가방에서 옷을 꺼내보고 있다. 아까 그 롱원피스와 블라우스 등이 들어있다.


지은 : (감탄) 어머나! 꼭 진짜 같애!

영은 : 진짜라든데?

지은 : 진짜는 무슨? 그 자식 말을 믿니? 가짜야. 어쩜 요샌 진-짜! 진짜 같게 만든다!


거울 앞에 서서 잠옷 위에 그대로 껴입고 한바퀴 돌아본다. 난처한듯 바라보는 영은.


지은 : 어울리니? 어때? 이뻐?

영은 : ...(저래도 될까 겁이 나는데) 음.

지은 : 나야 뭘 입어두 이쁘지 뭐. (본다) 고맙다! 안그래두 옷 없어서 너무 괴로웠는데... (한숨)

         교수님 연주회 찬조 출연하라 그러는데, 옷 없어서 포기할려 그랬어.

영은 : 그럼 안되지! 그런 걸 왜 포기해? (블라우스 둘러주며) 와, 이것두 너무 어울리잖아?



#51. 파인 외경 (낮)



#52. 동 홀안 (낮)


홀매니저, 카운터 앞에 서 있다.

다가오는 수현. 뭔가 대단히 중요한 얘기 하려는듯한 폼으로 망설인다.

의아한 홀매니저.


수현 : 최매니저님.

홀매니저 : 네?

수현 : (심각한 얼굴로) 실은 나...고백할 게 있어요.

홀매니저 : 고백요?

수현 : (다른 사람 들을새라 주위 살피며) 그동안 많이 망설였어요...내 마음, 이해해줬음 좋겠는데...

홀매니저 : (긴장) ...뭐,뭔데요?

수현 : 꼬냑 말인데요...그거, 내가 영은씨 사물함에 넣었어요.

홀매니저 : 네? 무슨 말씀이세요?

수현 : 일이 그렇게 커질 줄 몰랐어요. 난 단지 영은씨 생일이구 해서...축하하는 의미로 넣어논 거 뿐인데...

         말을 꺼낼려구 보니까 다들 너무 흥분해있길래...

홀매니저 : (굳는다)

수현 : 어쨌든 사과할께요. 영은씨 다시 나오면 아무렇지 않게 잘 좀 대해주세요.

홀매니저 : 점장님,

수현 : (미소) 한번만 봐주세요. 미안해요.



#53. 주차장 (낮)


안에서 나오는 수현. 주차 부스로 다가간다.

앉아서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나오는 팝을 흥얼흥얼 따라부르고 있는 종수. 수현 보자 얼른 라디오를 끈다.


수현 : 고생 많죠?

종수 : 뭐... (대단히 고마운듯) 덕분에 하나두 고생 없습니다. 일두 아니죠 뭐. 놀며 돈 받을려니까 이거 미안해서요.

수현 : 그래요?

종수 : 네. 다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수현 : 고맙긴요. 이거...받으세요. (쇼핑백 하나 건네고)

종수 : 뭡니까.

수현 : (넌지시) 별 거 아니예요. 열심히 일해 달라는 뜻으루 마련한 뇌물입니다.


승용차로 다가가는 수현. 차에 올라 출발한다.

수현 차 떠나고나면 쇼핑백을 열어보는 종수. 꼬냑 두병이 깔끔하게 리본 포장 되어있다.

우두커니 들여다 보는 종수. 가슴이 서늘해진다. 이윽고 쓰레기통에 휙 던져버린다. 술병, 박살이 난다.



#54. 한식당 (낮)


접시 한 개 쨍그랑 깨진다. 당황하고 서 있는 영은. 고급 한정식집 분위기.


주인 : (달려오며) 뭐야?

영은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주섬주섬 주워담는다) 접시가 살고 싶지 않다는데요?

주인 : 칠칠치 못하게!

영은 : 그러게요.

주인 : (안으로 가며) 월급서 깐다.


빗자루 들고 와서 쓱쓱 쓸어담는 영은.



#55. 영은집 앞길 (해질녘)


걸어오는 영은. 멀찌기서 지켜보는 수현. 사뭇 안쓰럽고 애잔한 기분으로 지켜본다.

대문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영은.


수현(E) : 영은씨,

영은 : (움찔 돌아본다) 점장님?

수현 : 식사 했어요?

영은 : ...아뇨.

수현 : 안 바쁘면 저녁이나 같이 먹죠. 어디 이 근처, 아는 식당 없어요? 저녁 살께요.


영은, 물끄러미 본다.



#56. 분식집


주인이 테이블 위에 쫄면 두그릇 놓고 간다.

수현과 마주 앉아있는 영은. 동네 작은 분식집.


영은 : 여기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집이예요. 정말 맛있어요.

수현 : (이 친구, 예상 외로 명랑하잖아?)

영은 : (젓가락 건네며) 한번 먹으면 다신 잊을 수 없는 쫄면이예요. 이 집 특미예요.

수현 : 네에.

영은 : (맛있게 먹기 시작) 드세요!

수현 : (조심스럽게) 가게에...화재난 건...수습됐어요?

영은 : (멈칫) 어, 예에...수습은 됐지만... (웃고) 저희 집은 쫄딱 망했죠 뭐.

수현 : 불이 왜 난 겁니까.

영은 : (조금 씁쓸해진다) 잘...모르겠어요. 그것 땜에 종수씨두 망했구... 그 사람 재산두 다 타 버렸구...(괜히 국물을 휘휘 젓는다)

수현 : 무슨 말이예요?

영은 : 음...뭐 그런 게 좀 있어요. 복잡해요... 드세요, 계란 국물두 아주 맛있어요.

수현 : ...내가 여기 왜 왔는지 안 궁금해요?

영은 : ...알아요.

수현 : (알다니?)


영은, 주섬주섬 가방을 연다. 봉투를 꺼내 내민다.


영은 : 여깄습니다. 저 오늘 취직했어요. 주인 아저씨가 맘이 좋으셔서 가불을 해주시드라구요. 세어보세요.

수현 : (멍하다)

영은 : 저어...근데요, 그동안 저 일한 만큼은 뺐어요. 쪼끔! (웃고) 아휴, 굳이 받으러 오시지 않아두 찾아갈려 그랬는데.

수현 : (기막힌다) ...영은씨.

영은 : 괜찮습니다. 점장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가요. 아무리 작은 가게두 수입 지출 세세하게 따지는데,

         우리 식당은 워낙 큰 데 잖아요. 제가 떼먹구 도망가면 점장님 입장이 얼마나 곤란하시겠어요.

         가불 준 거 매니저님께 말두 못하셨을 거구요.


잠시 침묵이 흐른다. 수현,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먹기 시작한다.


영은 : 맛이 괜찮죠?

수현 : 맛있네요...(이윽고 고개 드는데 눈시울이 붉어져있다)

영은 : (당혹) ...우세요?

수현 : ...(웃는) 매워서요.

영은 : (환히 웃는다) 맞아요! 좀 매워요. 그게 이 집 쫄면의 매력이라는 거 아닙니까.

수현 : (물 마시며 웃고)

영은 : 아줌마, 여기 물 좀 더 주세요! 많이 매워요? 매워두 다 드셔 보세요. 그래야 이 가게 쫄면의 진가를 알 수가 있는데...



#57. 영은집 근처 공터


해기울 무렵. 나란히 걷는 두사람. 침묵 흐른다.

기분이 묘해지는 수현.


수현 : ...(뭐부터 말할까 찾다가) ...아, 어제가 생일이었죠?

영은 : (멈칫) 어떻게 아셨어요?

수현 : 입사 지원서에서 봤어요. 늦었지만 축하해요.

영은 : 에이...생일은 뭐...확실치두 않은 거예요.

수현 : 왜요.

영은 : (웃고) 그냥요.


공 놀이하는 어린 아이들.

한순간, 날아오는 공을 피하다가 수현 쪽으로 몸이 확 쏠리는 영은. 둘다 얼굴이 빨개진다.

얼른 공 주워서 던져주는 수현.

벤치 같은 곳에 앉는 두사람. 잠시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영은 : (쓸쓸한 미소) 우리 엄마는...절 정말 낳기 싫으셨대요. 엄마는 종갓집 외며느리였거든요...

         아들을 꼭 낳아야하는데, 딸만 둘을 낳으신 거예요. 셋째는 꼭 아들이어야 되는데 제가 들어선거죠.

         제왕절개 때문에 더는 애를 낳을 수가 없었는데, 양수검사를 했더니 또 딸이잖아요? 뗄려구 그랬지만...

         (본다) 근데 제가 그렇게 안 떨어지구 아득바득 세상에 기어나온 거예요. 으음...나 그때 왜 그랬나 몰라.

수현 : ...

영은 : 낳고나서 일주일 동안은 제 얼굴두 안 보셨대요. 그러니까 생일이야 뭐, 엄마두 헷갈리는 거예요.

         그냥 여름 어느날... (웃고) 출생 신고한 그 날이 생일이 됐죠!

수현 : (본다)

영은 : (혼자 피식) 참, 그렇게 나온 주제에 맨날 말썽이나 일으키고...

수현 : ...(본다)

영은 : (문득 현실을 깨닫고) 앗, 제가 지금...무슨 얘길 한 거죠? (일어난다)

수현 : ...영은씨,

영은 : 네?

수현 : 내일부터 다시 출근해요. 그 말하러 왔어요.

영은 : (멈칫)

수현 : (봉투 건넨다) 이 돈...도로 물러주고 다시 나와요.

영은 : (가만히 보다가 정중하게)... 싫습니다.

수현 : !

영은 : (미안한듯 잠깐 웃고) 어, 그게요...새로 일하는 가게에두 그렇구...그게 그렇잖아요.

         암튼 고맙습니다. 저한테 잘해주신 거, 두고두고 안 잊을께요.

수현 : (안타깝게) 영은씨,

영은 : (정중히 인사) 안녕히 가세요, 점장님. (애틋하게 본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지는 해를 등지고 저만치 씩씩하게 멀어지는 영은.

한 대 맞은 듯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는 수현. 마음이 텅빈 듯 쿵 허전해진다.



#58. 영은집 외경 (저녁)



#59. 동 마루


어둑신한 실내. 들어오는 영은. 깜짝 놀란다.

마루에 엉금엉금 기어나와 쓰러져 있는 인옥. 온몸에 땀에 흠뻑 젖어있다.


영은 : (달려들며) 엄마?

인옥 : (배 움켜쥐고) 나 병원에...병원 좀...

영은 : 업혀요! 얼른 업혀요, 엄마!!



#60. 집 근처 대로 (저녁)


인옥을 부축하고 뛰어 나오는 영은. 다급히 택시를 잡는다. 손님 태운 택시 한 대, 그냥 지나간다.

기진맥진 늘어져있는 인옥.


영은 : 도와주세요! 우리 엄마 죽어요! 아저씨, 좀 태워주세요, 아저씨!


눈물을 철철 흘리며 지나가는 차를 붙잡고 매달리는 영은.

제4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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