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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보일까봐] 05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9.04.04|조회수426 목록 댓글 0

[눈물이 보일까봐] 05











#1. 영은집 근처 대로 (해질녘)


인옥을 부축하고 뛰어 나오는 영은. 다급히 택시를 잡는다. 손님 태운 택시 한 대, 그냥 지나간다.

기진맥진 늘어져있는 인옥. 의식이 거의 없다.


영은 : 도와주세요! 우리 엄마 죽어요! 아저씨, 좀 태워주세요, 아저씨!


눈물을 철철 흘리며 지나가는 차를 붙잡고 매달리는 영은.

순간, 뒤에서 급히 멈추는 수현 승용차.


수현 : (차에서 내리며) 영은씨!

영은 : (놀라 돌아보는데) 점장님?

수현 : (성큼 다가오며) 얼른 타요!



#2. 수현 차 안


기진한 인옥 곁에 매달려 연신 쓰다듬고 눈물 흘리는 영은.

앞자리에서 운전하며 거울로 그녀를 지켜보는 수현. 애틋한 마음이 든다.



#3. 응급실 외경



#4. 응급실


링거 꽂고 잠들어있는 인옥. 곁에 앉아 지켜보는 영은.

멀찌기서 레지던트와 얘기 나눈 뒤 다가오는 수현. 글썽하며 고개 숙인 그녀를 가만히 지켜본다.

기척에 움찔 하고 돌아보는 영은.


수현 : 급성 위염이래요.

영은 : 위염요?

수현 : 걱정 말아요. 심각하진 않은 것 같대요. 주사 맞으셨으니까 곧 나으실 거예요.

영은 : 정말 괜찮은 거예요?

수현 : 그럼요. (잠든 인옥 얼굴을 본다) 신경 쓰실 일이 많으셨던가봐요.

영은 : ...

수현 : (보다가) 나가서 차 한 잔 할까요?



#5. 동 복도


음료 두 개 뽑아들고 오는 수현. 영은에게 건넨다.


영은 : 고맙습니다.


음료수 마시는 영은 옆모습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수현.


수현 : 아버님께는 연락 드렸어요?

영은 : (깜짝) 네?

수현 : (휴대폰 꺼내며) 전화 쓸래요?

영은 : (아무렇지않게) 저희......아버지랑 따로 살아요.

수현 : ?

영은 : 엄마랑 두 분, 헤어지셨거든요. 이혼하셨어요.

수현 : ...미안해요.

영은 : (웃음) 뭐가요?


뛰어 들어오는 지은, 경은.


지은 : 어떻게 된거니? 어떻게 된거야, 응?

영은 : 괜찮아, 언니. 위염이래! 심각한 건 아니래!

경은 : 위염이 뭐가 안 심각해! 도대체 니들 집에서 뭐하는 거니? 어떻게 응급실에 실려 올 정도가 되도록 모를 수가 있었어?

지은 : (등 철썩 친다) 으이그,

영은 : ...미안.


급히 응급실로 들어가는 경은. 지켜보는 수현.


지은 : (들어가다 수현 보고 누군가 싶어 멈칫)

영은 : 인사해, 언니. 우리 가게...(이제 우리 가게 맞나?) ...그때 얘기 했지? 점장님이셔.

지은 : (점장님? 아니 얘가?)

수현 : 첨 뵙겠습니다.

지은 : 아, 예...

영은 : (난감해지며) 여기까지 태워주셨어. 우리 동네 오셨다가... (우물쭈물 돌아보는)

수현 : 영은씨 만나러 왔다가요.

영은 : 어, 그냥! 공적인 일로...

지은 : (경계하며 안으로) 얼른 들어와!

수현 : 저 그럼 그만 가볼께요.

영은 : 가실래요?

수현 : 네. 깨나시면 안부 전해주세요.

영은 : ...오늘 고맙습니다.


답례하고 멀어지는 수현. 잠시 지켜보는 영은. 돌아선다.

수현, 가다가 돌아본다. 응급실 쪽으로 걸어가는 그녀를 애틋하게 본다.



#6. 두식집 외경 (밤)



#7. 수현방 (밤)


들어오는 수현. 앤서링 머신 켜고 침대에 눕는다.


혜경(E) : 수현씨...어딜 이렇게 돌아다니는 거니? 주말에 시간 비워놔. 나랑 뮤지컬 보자.

             브로드웨이에서 캣츠 봤던 날 생각 나? (웃음) 그때 우리 둘다 졸다가 제대루 보지두 못하고 나왔었잖아...

             오랫만에 옛날 기억이나 되살려보자구...다른 약속 절대 잡지마. 무조건 가는 거야! 그렇게 알고 있어.


수현, 손 뻗어 전원 버튼을 꺼버린다. 무표정하게 천장 바라본다.



#8. 병실 (밤)


2인 병실. 불꺼져있다. 눈 부스스 뜨는 인옥.

인옥 팔을 꼭 잡고 엎드려 잠든 경은과 지은 모습이 보인다. 발치에서 구부정하게 잠든 영은.

하나하나 돌아보는 인옥.



#9. 한식당 앞 (아침)


출근하는 영은. 바삐 뛰어온다.



#10. 동 식당 안 (아침)


개시 전의 분위기. 여주인과 그 남편, 마주 서서 다투고 있다. 우람하게 생긴 남자, 화가 잔뜩 나 있다.


남자 : 뭘 믿구 가불을 줘? 이 여편네가 장사 말아먹을려구 환장을 했나?

여주인 : (움츠리며) 아니, 나는...하두 형편이 어렵다구 매달리길래... 아유, 일 시켜보니까 착하든데 뭐... 떼먹기야 하겠어요?

            (혼잣말) 그거 얼마나 된다구 쪼잔하게...

남자 : (빗자루 집어든다) 이게 맞구 싶어? 너 땅 파서 장사하냐, 지금?


들어오는 영은. 광경을 지켜보며 당황한다. 눈 마주치면 꾸벅 인사하는데.


남자 : 너 마침 잘 왔다. 너 어제 받아갖구 간 돈 있지? 도루 가지구 와.

영은 : 네?

남자 : 이사람이 실수루 돈을 내준 모양인데...우리 가게 가불 같은 거 없어. 일하는 거 보구 판단을 해서 월급을 주든지 말든지...


여주인, 민망한듯 혀 차고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남자 : 낼 아침 나올때 도로 가지구 와. 정 어려우면 다른 데 찾아봐. 가뜩이나 장사 안돼 성질 나는데...

영은 : 한번만... (씩 웃고) 아저씨, 한번만 봐주세요. 안 떼먹구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남자 : 봐주긴 내가 널 언제 봤다구 봐주냐? 돈 갖구 와!

수현(E) : 여기 있습니다.

영은 : (놀라 돌아본다)


가게 안으로 들어와있는 수현. 봉투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다.


남자 : 뭐야.

수현 : 김영은씨 저희가 스카웃 해가겠습니다. 일류 요리사라는 소문이 워낙 자자해서 모시러 왔어요.

영은 : 점장님...

남자 : (어이없다)

수현 : 가시죠, 영은씨.



#11. 가게 앞길


차 앞에서 기다리는 수현. 다가오는 영은.


수현 : (차문 열며) 타세요. 같이 가고 싶은 데가 있어요.

영은 : (한숨) 점장님.

수현 : 다 해결됐어요. 직원들한텐 충분히 해명했어요. 영은씨 입장 곤란하지 않을 거예요. 종수씨한텐 적절한 조칠 취할 거구요...

         다시 출근해요.

영은 : 꼭 이렇게까지...

수현 : 꼭 이렇게까지 해야돼요.



#12. 거리- 수현 승용차 안


운전하는 수현과 곁에 앉은 영은. 어색한 분위기.


영은 : (주위를 살핀다) 어디...가세요?

수현 : 다 와 가요.



#13. 청계천 재래시장


붐비는 재래시장 안. 옷가게, 그릇 가게 등이 빼곡 들어찬 활기찬 시장 안.

나란히 걸어오는 수현과 영은.

노점상들이 전을 펼치고 호객하는 풍경 등이 보인다.


수현 : 여기가 내 고향이예요.

영은 : 고향요?


손을 덥썩 잡더니 모퉁이의 골목으로 이끄는 수현.



#14. 골목 안


골목으로 들어서는 두사람. 먹자 골목이 주욱 늘어서 있다. 꾀죄죄하고 후미진 골목. 낮인데도 아주 어둡다.

낡고 비좁은 가게들 중 한 집 앞에 발을 멈추는 수현. 가게 앞에 순대와, 족발, 돼지머리 등이 얹혀있다.


수현 : 웃는 얼굴루 죽은 돼지가 다른 돼지보다 더 비싼 거 알아요?

영은 : (웃음) 진짜요?


수현, 쓸쓸해지며 가게 안을 들여다보고 섰다. 여인 한사람, 손님 시중을 들고 있다.


수현 : ...여기가 예전에 우리집이었어요.

영은 : !

수현 : 아버지랑, 돌아가신 어머니랑, 처음으로 열었던 식당이예요. 태어나서 열한 살까지 이 동네서 살았어요.

영은 : 네에...

수현 : 우리 어머니...참 명랑하구 씩씩하셨어요. 종일 궂은 일 하시면서두 한번두 찡그린 얼굴을 안 보이셨죠. 꼭 영은씨처럼요.

영은 : (붉어진다) ...

수현 : 어머니랑 나는 여기서 숙제두 하구, 잠두 자구, 아버지두 기다리구...

         (쓴웃음) 우리 아버진 어머니한테 아주 냉담하셨거든요? 한번 나가면 며칠씩 안 들어오셨어요.

영은 : ...어머니 많이 보고 싶으시겠어요.

수현 : 보고 싶죠...(본다) 영은씨 어머님 병원에 모셔드리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났어요.

         어머니 붙잡구 엉엉 우는 영은씨 모습이 꼭 어릴 때 나 같아서요.

영은 : ...(짠한데)


영은 손을 힘주어 꼬옥 잡는 수현. 기분 묘해지는 영은.



#15. 분식집 (낮)


마주 앉아 있는 두사람. 쫄면을 쓱쓱 비벼서 수현 앞에 내려놓는 영은.


영은 : 드세요. 맛있겠죠?

수현 : (귀엽다)

영은 : 에이, 기분이다! 오늘 이거 제가 살께요. 드시구 또 시키세요.


흐뭇하게 자기 그릇을 비비는 영은.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수현.

눈 마주치면 웃는 두사람.



#16. 병실 (낮)


주사 맞는 인옥. 돌아서는 간호사를 붙잡는다.


인옥 : 저 언제쯤 퇴원할 수 있을까요?

간호사 : 한 이삼일 더 계시면 될 거예요.

인옥 : 오늘 퇴원하면 안될까요?

간호사 : 네?

인옥 : 주사는 통원하면서 맞을께요. 퇴원할래요.

간호사 : 에이, 안돼요. 검사 결과두 보셔야 하구... 좀 더 계셔야 해요.

인옥 : 인제 괜찮아요. 다 났어요.

간호사 : (곤란한듯)

인옥 : 의사 선생님께 좀 여쭤봐 주세요. 집에 급한 일이 있어서 그래요.



#17. 병원 경리창구


창구 앞에 서 있는 인옥.


인옥 : 병원비를 다 내다뇨? 누가요?

창구직원 : 아침에 어떤 남자분이 오셔서 다 계산하고 가셨어요. 입원날짜 미리 예측해서 여유분까지 다 치르고 가셨는데요?

인옥 : ...어떤 남자가요?

창구직원 : 모르죠, 저희두.

인옥 : ...(곰곰 생각)



#18. 파인유통 본사 근처 커피숖 (낮)


들어오는 두식. 한쪽에 앉아있는 인옥을 발견한다. 잠시 주춤하다가 다가간다.

수척한 인옥.


두식 : (앉으며) 많이 기다렸냐. 손님이 찾아와 가지구...

인옥 : 방금 왔어요.

두식 : 왠일이냐.


인옥, 준비한 봉투를 테이블 위에 올린다.


인옥 : 가져가세요. 병원비예요.

두식 : (움찔한다) 무슨 병원비?

인옥 : 순금이한테 다 들었어요.

두식 : ...(할 수 없다는듯) 넣어둬라. 아직 병원 있을 시간인데 여긴 어떻게 왔냐. 벌써 퇴원하긴 이른 거 아니냐.

인옥 : 걱정해주는 거 하나두 안 고마워요. 거두절미하구 본론부터 얘기할께요. 사람 무시하지 말아요.

         그래요, 나 이혼하구 혼자 살아요. 혼자서 딸 셋 키우며 이날 입때껏 어렵게 살았어요.

         그런데 그게 어때서요? 그게 흉인가요? 왜 사람을 비웃어요?

두식 : 누가 널 비웃어?

인옥 : (격앙된다) 비웃는게 아님 뭐예요? 그럼 동정하는 건가요? 내가 그 속 모를 줄 알아요? 보란듯이 복수하고 싶다 이거죠?

두식 : ...

인옥 : 꼴 좋다 이건가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천박해요? 피는 못 속이는 모양이죠?

두식 : (굳는다)

인옥 : 내가 아무리 어려워졌어두 이까짓 병원비 없을까봐요? 잘됐음 얼마나 잘됐길래 이렇게 촌스럽게 굴어요?

         돈이 있으면 얼마나 있어서? 세상 사는데 돈이 다야? (일어난다) 이걸루 마누라 화장품이나 사다줘요.

두식 : (심술난다) 오지랖두 넓다. 남에 마누라 화장품까지 니가 왠 걱정이냐.

인옥 : (무안하다) ...갈께요. 다신 만나지 맙시다.


성큼 나가버리는 인옥. 굳은 얼굴로 물 마시는 두식.



#19. 커피숖 앞길


울고 싶은 얼굴로 총총 걸어오는 인옥.

멀찌기 뒤에 서서 바라보는 두식.



#20. 버스 정류장


버스 기다리고 서 있는 인옥. 승용차에서 내려 다가오는 두식.


두식 : 내 차 타구 가라.

인옥 : (흠칫 본다)

두식 : 몸두 성찮은데 버스는 무슨 버스야.

인옥 : (발끈) 아직두 내 말 못 알아들었어요?

두식 : (기 죽었다) 알아들었다. 알아들었어. 비웃는 것두 아니구 동정하는 것두 아니니까 마음 풀구 내 차 타구 가라.

인옥 : (대꾸 없이 버스 오는 방향만 초조히 본다)

두식 : 인옥아.

인옥 : 들어가보세요. 바쁠텐데.

두식 : ...내 이거 한가지만 묻자. 그때 삼거리 다방에 왜 안나왔냐?

인옥 : (잠깐 굳는)

두식 : 거기 앉아서 삼박사일 기다렸다. 보따리 싸서 도망가기로 해놓구 왜 약속 안지켰냐?

         내 평생 너 만나서 그 대답 하나 듣구 싶었다.


버스가 온다. 후다닥 뛰어가서 올라타는 인옥.

버스 떠나면 홀로 남는 두식.



#21. 병원 복도 (낮)


잰 걸음으로 들어오는 영은. 병실 문 열려있고 청소 중이다.


영은 : (당황하며 병실 홋수 확인) 여기 환자, 박인옥 환자 어디 가셨어요?

청소원 : 아까 퇴원하셨어요.

영은 : 네?



#22. 인옥방


모로 누워있는 인옥. 멍하다.


두식(E) : 그때 삼거리 다방에 왜 안나왔냐. 거기서 삼박사일 기다렸다.


급히 들어오는 영은.


영은 : 엄마?

인옥 : ...

영은 : 왜 벌써 퇴원하셨어요?

인옥 : (돌아누우며) 괜찮아.

영은 : 정말 괜찮아요?

인옥 : 그래. 괜찮으니까 왔지. 엄마 좀 쉴께. 나가있어.


일어나 입에 약을 털어넣는다. 안쓰럽게 지켜보는 영은.



#23. 영은방


악보 세워놓고 플룻 불고 있는 지은. 잔뜩 새침하다.

들어오는 영은.


영은 : 엄마 정말 퇴원해두 괜찮대?

지은 : (말없이 플룻만 분다)

영은 : 의사선생님하구 상의는 한거래?

지은 : (이윽고 플룻 떼며 우울한) 몰라. 병원비 아까워서 일찍 나오신 거 같애.

영은 : 정말?

지은 : (눈물 그렁해지며) 나...대학원 관둘까봐...하루종일 음악학원에 아르바이트 구하러 다닌 거 아니?

         엄마 입원비라두 마련해볼까 하구 발이 부르트게 돌아다녔는데...

영은 : (뭉클해지며) 언니,

지은 : 요즘은 너두나두 다 음대를 나와서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 없드라. 한군데 있는데,

         글쎄 일주일에 나흘이나 일하구 한달에 육십을 준대요. 너 그게 말이 된다구 보니? 그거 받구 일할 수 있겠어?

영은 : ...일 못하지.

지은 : 넌 얼마 받니?

영은 : 오십.

지은 : 어떻게 너랑 내가 십만원 밖에 차이가 안 나니. 이러니 내가 안 슬프겠니.


눈물 닦으며 다시 플룻을 불기 시작하는 지은.



#24. 동 마루 (밤)


흰죽 쑤는 영은. 인옥방 쪽에서 신음소리와 함께 기침 소리 들린다.

놀라서 후다닥 다가가는 영은. 열린 방문 틈으로 돌아누운 인옥 모습.


영은 : 엄마 괜찮아요?

인옥 : ...


돌아와 다시 죽 휘휘 젓는 영은. 한숟갈 떠먹다가 뜨거라 입 덴다.



#25. 파인 외경 (아침)



#26. 동 홀 안


수현, 출근한다. 주방 쪽을 지나가다가 멈칫 선다.



#27. 동 주방


민식 앞에 마주 앉아있는 영은.


민식 : 여기가 니집 안방이냐, 화장실이냐? 너 들어오구 싶음 들어오구, 나가구 싶음 나가구!

영은 : ...

민식 : 내가 너만할 땐 어땠는 줄 알어? 한번 몸 담은 일터는 죽을때까지 일한다, 그런 맘으로 다녔어!

         설사 좀 섭섭한 일이 있었다 치자. 그렇다구 홱 그만둘만큼 그렇게 장난으루 다녔냐? 니집 그렇게 부자야?

영은 : 죄송합니다. 앞으론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입구 쪽에 서있는 수현. 반갑다.


동규 : 너무 야단 치지 마세요. 반성하잖아요.

민식 : 너나 반성하셔! 고기 다 탄다!


얼른 오븐으로 달려가는 동규.


영은 : 잘하겠습니다!

민식 : (일어나며) 뭘루 믿냐? 내일 또 관두겠지 뭐.

영은 : (따라가며) 아아뇨! 관두긴 누가요?


돌아서다 수현과 눈 마주치는 영은. 수줍게 머뭇하다가 씩 웃는다.


영은 : (속삭이듯) 저 나왔어요!

수현 : 고마워요.


마주 웃는 두사람.



#28. 주차장 (낮)


종수, 건들거리며 걸어온다. 한쪽에 앉아 신을 벗어 툭툭 터는 종수. 순간 눈이 번쩍 뜨인다.

쓰레기봉투 들고 나오는 영은 모습.

어이없다는 얼굴로 일어나는 종수. 눈 마주치는 두사람.


영은 : 잘 계셨어요?

종수 : 너...나왔어?

영은 : ...네.

종수 : (기막혀 신발 던진다) 너, 밸두 쓸개두 깡그리 없냐, 응? 존심두 없어? 여길 또 기어나와?

영은 : (얼굴 빨개진다)


목례하고 안으로 들어가는 영은. 분노 치미는 종수.



#29. 점장실


문 탕 열리고 들어오는 종수.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가 고개 드는 수현.


종수 : 나 오늘부루 관둡니다. 그동안 일한 거 다 챙겨 주십쇼.

수현 : ...(이거 뭔가 싶다)


소파에 마주 앉는 종수. 비장하게 본다.


종수 : 내가 당신한테 충고 한가지 하겠는데...불쌍한 애 작작 갖구 노쇼.

         착한 애 괜히 들었다 놨다 하지말라 이거야. 당신 그렇게 살면 벌 받아!

수현 : 그거 내가 하고 싶은 말이네요.

종수 : !

수현 : 영은씨 괴롭히지 말아요. 한번만 더 그럼 나두 가만있지 않아.

종수 : 뭐?

수현 :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 둬요. 매니저한테 말해 놓을테니까 오후에 와서 정산해 가세요.


할 말 없어지는 종수. 분하다.


수현 : 그만 나가 줄래요. 일하는 중입니다.



#30. 탈의실


들어오는 수현. 아무도 없다. 얼른 영은 사물함에 메모를 끼워놓는다.


종업원(E) : (들어오며) 뭐하세요?

수현 : (깜짝) 네? 어...뭐...아무 것두 아닙니다.


웃으며 밖으로 나간다.



#31. 영은집 외경 (낮)



#32. 인옥방


들어오는 순금. 누워있다가 일어나는 인옥.


순금 : 누워있어, 누워.

인옥 : 뭐하러 왔어. 가겐 어쩌구.

순금 : 좀 어때? 배 안 아퍼?

인옥 : 괜찮아.

순금 : 자식들 하나두 소용 없지? 친구가 최고지? 내가 너 혼자 있을 줄 알았다니까.

인옥 : 그래, 니 말이 맞다.

순금 : 전복죽 해먹자. 내가 수산시장까지 가서 전복 싱싱한 걸루 잔뜩 사왔어.

인옥 : 비싼데 뭐하러 사와?

순금 : 얼른 일어나 나오라구. 너 이러구 꼬꾸라져서, 내가 손해가 막심이야.

인옥 : (미안한데) ...



#33. 동 마루


식탁에 앉아 전복죽 먹는 두사람.

순금, 먹다가 식탁 위 작은 냄비 뚜껑을 열어본다.


순금 : 어머, 이 죽은 누가 끓였어?

인옥 : (힐끗) 영은이지 뭐.

순금 : (찍어 먹고) 요리는 참 잘해.

인옥 : 그거라두 해야지.

순금 : ...아참, (슬몃 본다) 두식오빠 만났니?

인옥 : ...

순금 : 만났어?

인옥 : 요새 전복 일 킬로에 얼마나 하니? 많이 비싸지? 뭐하러 그렇게 많이 사와?

순금 : 말 돌리지 말구!

인옥 : 그래, 만났어. 병원비 내줘서 고맙다구 그랬어. 됐니?

순금 : (신난다) 어쩌믄! 인제 슬슬 니 운이 풀릴려나 보다!

인옥 : 무슨 소리야.

순금 : 옛말에, 만나질 사람은 꼭 만나진다구 그랬어. 그렇게 눈물나게 헤어진 사람들인데 왜 인연이 안 닿나 그랬지.

         어쩜 하늘두 고마우셔라. 둘이 얼마나 애틋했을까. 잘해봐, 응? 잘해봐.

인옥 : 말이래두 큰일날 소리 한다. 마누라 알면 어쩔려 그래?

순금 : 몰랐어?

인옥 : 뭘.

순금 : 얘가 증말 몰랐나 보네? 두식오빠 혼자 산대! 마누라 오래 전에 저세상 갔단다.

인옥 : (굳는)

순금 : 몰랐구나...그러니 그렇게 데면데면 굴었지! 언제 또 만나자든?

인옥 : (생각할수록 더 못된 인간이군 싶다) 만나긴 내가 누굴 만나!

         너 다시 내 앞에서 두식에 두짜두 꺼내지마. 나 그런 인간 몰라.

순금 : (어이없다)



#34. 파인유통 사장실 (낮)


책상 앞에 앉아 서류 읽고 있는 두식. 들어오는 수현.


두식 : 왔냐.


소파로 와서 마주 앉는 두사람.


두식 : 낼부터 본사로 출근해라. 그만하면 현업 경험은 충분히 쌓았고, 와서 신규사업 프로젝트팀에서 일해라. 발령 내렸다.

수현 : (본다)

두식 : (비밀스레) 혜경이 집서 투자 결정을 내렸어! 애비가 예전부터 할인마켓 쪽에 관심 있었던 건 알고 있지?

         니가 이번에 중책을 좀 맡아줘야겠다.

수현 : ...다른 분께 맡기세요. 전 이대로 살겠습니다.

두식 : 뭐야.

수현 : 뭐하러 그런 무리한 출발을 하세요? 다시 말씀 드리지만 혜경이랑 결혼 생각 추호두 없습니다. 전 뒷일 책임 못져요.

두식 : 혼인 날까지 잡아놓구 무슨 헛소리야?

수현 : 전 결혼날 같은 거 잡은 적 없어요. 아버지 혼자 결정하신 일입니다.

         지난번에 분명히 말씀 드렸잖아요. 좋아하는 사람 따로 있습니다.

두식 : 누군데.

수현 : ...아직 말씀 드리기 곤란합니다.

두식 : (비웃음)

수현 : (한숨) 아버지...저도 제 생각이 있고, 제 인생이 있어요. 언제까지 아버지 의사결정 대로 살아가길 원하세요.

두식 : 시키는대로 해. 낼부터 출근해라.

수현 : ...지금 하는 일 계속 하겠습니다.

두식 : (인터폰) 윤실장 보구 신규 사업 마스타 플랜 좀 가지구 들어오라 그래.

여직원(E) : 네, 사장님.

수현 : ...(각오한듯 일어난다) 그만 가보겠습니다.

두식 : 뭐?

수현 : 정 이러시면 차라리 독립해서 나가 살겠습니다.

두식 : (일어난다) 이눔이 지금 협박하는 거야? 팔자가 늘어져 제정신이 아니구만!


들어오는 정희.


수현 : 그동안 죽은 것처럼 살아드렸잖아요. 이제 그만 좀 하세요. 도대체 돈 말고 아버지가 사랑하는 게 뭐가 있습니까?

두식 : 뭐?

수현 : 가족이 뭘 생각 하고 뭘 원하는지, 따뜻하게 귀기울인 적 있으세요? 출세며, 사업이며... 전 그거 관심 없습니다.

         전요, 그냥 식구끼리 오손도손 모여서 정답게 밥 먹고 사는 게 꿈이예요. 그게 전붑니다.

         저에 대한 욕심, 기대, 그만 좀 버리십시요. 전 아버지처럼 안 삽니다.


두식, 따귀 올려붙인다.


정희 : 사장님!

두식 : 얼빠진 놈! 언제 정신을 차릴래? 어디 그 따위 소릴 지껄여? 니가 누구 덕으루 오늘 이때까지 호의호식 하며 컸는데?

수현 : ...

두식 : 나가라! 니 맘대로 살아 봐!



#35. 동 복도


성큼 걸어나오는 수현. 뒤따라오는 정희.


정희 : 수현아,


그대로 멀어져 간다.



#36. 사장실


창가에 돌아 서있는 두식. 들어오는 정희.


정희 : ...괜찮으세요?

두식 : 뭐가.

정희 : 왠만하면 참으시지...다 큰 사람을 치기까지 하시구...왜요, 혜경이랑 결혼...안 하겠대요?

두식 : (돌아본다) 저 놈...정말 사귀는 여자 있나?

정희 : 네?

두식 : (본다) 잘 몰라? 그럼 좀 알아 봐. 누구 만나구 돌아다니는지.

정희 : ...(곰곰 생각)



#37. 파인 복도 (낮)


월급봉투 쑤셔 넣으며 안에서 나오는 종수. 계단 물걸레 청소하는 영은.

한쪽에 삐딱하게 서서 지켜보는 종수. 표정이 복잡 미묘하게 일그러진다.


종수 : 뭐 하나 묻자, 김영은.

영은 : (움찔 고개 든다)

종수 : 그 자식이 그렇게 좋냐?

영은 : 네?


얼굴 빨개지더니 다시 묵묵히 청소 하는 영은.


종수 : 사람 말이 말루 안 들리냐? 그렇게 당하구두 좋냐구!

영은 : (그냥 청소 계속 하는데)

종수 : 내가 그때 충고 했지? (돌려 세운다) 충고 했잖아! 잊어먹었어? 그렇게 살지 말랬지?


대걸레를 내팽개친다.


영은 : (주우며) 이러지 마세요.


계단 올라오는 혜경. 둘을 보고 멈칫 놀란다.


영은 : (당황) 오셨어요?

혜경 : (그만둔 거 아니잖아?) ...


셋 사이 긴장 감돈다. 가볍게 목례하더니 그대로 들어가는 혜경.



#38. 파인 홀안 (낮)


창가에 앉아있는 혜경. 가끔 시계본다. 다가오는 홀매니저.


홀매니저 : 늦으시는데요...오실 때마다 번번이...어쩌죠?

혜경 : 괜찮아요. (곰곰 생각하더니) 저어, 주방에 김영은씨 좀 불러주시겠어요?

홀매니저 : (멈칫하다가) ...네.


주방 쪽으로 가는 홀매니저. 이윽고 홀매니저 따라 나오는 영은. 다가온다.


혜경 : 잘지냈어요?

영은 : ...네.

혜경 : 좀 앉아요. (유심히 본다) 그새 더 이뻐졌네? 요즘 연애하나봐?


당황스러운 영은.


혜경 : (다정하다) ...사과할께요. 지난 번 밤에 나 땜에 기분 많이 상했죠?

영은 : 아아뇨. 괜찮습니다. 오히려 저 때문에...

혜경 : 아니예요. 마음 많이 상했을 거야. 내 스타일이 좀 그래요. 나쁜 뜻은 없었던 거니까 이해해주세요. 응?

영은 : (본다)

혜경 : 오늘 몇 시에 끝나요?

영은 : 곧 마칠 거예요.

혜경 : 잘됐다. 나랑 뮤지컬 보러 가요. 공짜표가 생겼거든요? 나 꼭 영은씨랑 보구 싶은데...괜찮죠?

영은 : 저어...오늘은...

혜경 : 그럼 승낙한 걸루 알구 일어날께요. 일곱시에 만나요. 티켓하구 약도 이 안에 들었어요. 라운지에서 기다릴께요.


티켓이 든 봉투를 내미는 혜경.


혜경 : 맛있는 저녁두 살께요. 아, (나직이) 아무한테두 얘기하지 말구 살짝 와요.

영은 : (난감하다) ...



#39. 탈의실


티켓 들고 걸어오는 영은. 괴롭다. 사물함 앞에 선다.

한손으로 티켓 봉투를 꺼내 보면서 다른 손으로는 사물함 문을 연다. 시선은 뮤지컬 티켓에 가 있다.

순간, 메모지가 펄럭 바닥에 떨어진다. 그대로 옷 갈아입기 시작하는 영은.



#40. 영은방


들어오는 영은. 티켓과 팜플렛을 꺼내본다. 어떡할까 한숨 쉰다. 시계를 본다. 다섯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구석에 종수가 준 그 옷가방이 놓여있다. 원피스 자락이 비죽 나와 있다.

슬그머니 시선을 그리로 주는 영은. 다시 티켓을 본다.



#41. 욕실


대야 놓고 후닥닥 머리 감는 영은. 수건으로 닦으며 거울 앞에 서서 얼굴 속 자기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비장하다.



#42. 영은방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시작하는 영은. 립스틱까지 곱게 그린다. 진지하다.

이윽고 원피스를 꺼내서 입는다. 지퍼 올리고 거울 앞에서 매무새 가다듬는다.

결연한 얼굴로 가방 들고 급히 나간다.



#43. 까페 앞 (저녁무렵)


작고 깔끔한 통나무풍 까페. (파인과 분위기 다른 곳)



#44. 동 까페 안


창가 쪽에 케잌과 포도주, 꽃이 예쁘게 마련되어있다.

들어오는 수현. 종업원 안내를 받아 자리로 간다. 흡족한 얼굴로 자리에 앉는다.

해피 버스데이 새겨진 케잌을 바라본다.



#45. 공연장 라운지


붐비는 사람들. 포스터 같은 것 붙어있고 한쪽에 로비 라운지 까페가 있다.

혜경, 입구 쪽을 바라보며 시계를 들여다본다.

이윽고 입구에 나타나는 영은. 지난번 혜경이 샀던, 바로 그 원피스를 입고 있다.


혜경 : (반가운) 여기예요!

영은 : (다가온다) 많이 기다리셨죠?

혜경 : 아뇨. 나두 금방 왔어요... (하는데 어디서 많이 본 옷이다)

영은 : (옷 예쁜걸 아는구나)

혜경 : (알겠다! 입 벌어진다) 그 옷 어디서 샀어요?

영은 : (흡족) 아,네에...누구한테 선물 받은 거예요.

혜경 : (짐작해보다가) ...이쁘네요. 디자인두 특이하구... 잘 어울려요!

영은 : 고맙습니다.

혜경 : (일어나며) 들어갈까요?


손잡고 안으로 이끈다.



#46. 공연장 안


무대 위에 펼쳐지는 화려한 뮤지컬. 객석에 앉아 구경하는 영은과 혜경.

진지하게 빠져있는 영은과 그런 영은을 가끔 흥미롭게 돌아보는 혜경.



#47. 통나무까페 안 (밤)


기다리는 수현. 벽시계가 여덟시를 가리키고 있다. 착잡하다.

휴대폰을 꺼낸다. 메시지 확인 불빛이 깜박거린다. 확인한다.


혜경(E) : 나야... 많이 바쁜 모양이지? 같이 공연보기로 한 거 잊어버렸구나? 바쁘면 할 수 없지 뭐. 그래두 연락은 해주라.


다음 메시지 확인 안내가 나온다.


혜경(E) : 수현씨, 나야... 지금 어딨어? 연락 기다릴께.


더이상 수신된 메시지가 없다는 안내음이 나온다.

휴대폰 꺼버린다. 툭 던져놓고 담배 붙여문다. 다시 생일 케잌을 물끄러미 본다.



#48. 레스토랑 (밤)


마주 앉아 식사하는 혜경과 영은.


혜경 : 밖에 있을 땐 자주 뮤지컬두 보구 오페라두 보구 그랬는데... 우리나라만 들어오면 그런 거랑 통 멀어져요.

         가끔 이렇게 맘 먹구 볼려 그래두 수준이 너무 떨어지니까... (웃음)

         실망할 거 알면서두 봐주긴 봐줘야지. 그래야 우리 문화두 죽질 않죠.

영은 : 네에.

혜경 : 하기야 뉴욕에서 조수미 공연을 보는데 눈물 나드라구요. 내가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드라니까.

영은 : 조수미씨 노래는 저두 텔레비젼에서 몇 번 봤어요. 정말 잘하시든데요. 그 분을 진짜루 보셨어요?

혜경 : (귀엽다)

영은 : ...(미소)

혜경 : (피식) 수현씨랑 둘이서 뮤지컬 많이 보러 다녔어요. 수현씨 음악에 조예 깊은 거 모르죠?

         밤새 작업하느라 피곤하다 그래두 한사코 보러가자 그래서 아주 귀찮았다니까요. (웃음)

         어딜 가두 나랑 꼭 같이 가고 싶어해요. 애처럼.

영은 : ...

혜경 : (표정 살피며) 결혼하면 좀 덜 귀찮겠죠 뭐. 영은씬 남자친구 없어요?

영은 : ...없어요.

혜경 : 빨리 남자친구 생겨야겠다. 이렇게 귀여운 아가씰 왜 다들 그냥 놔두나?

         아, 그 옷 사준 사람 있을 거 아녜요. 남자친구가 사준 거죠?

영은 : (빨개지며) 아니예요.

혜경 : 그럼 애인이구나? ...한번 맞춰볼까요? 그거 주차장에서 일하는 그 친구가 준거죠?

영은 : 네? (사색되는데) ...

혜경 : 너무 정곡을 찔렀나? (웃고) 그 옷 사실은 내가 사준 거예요... 그 친구 날 더운데 내 차 고쳐오느라구 무척 고생했거든요.

         그래서 사례로 내가 선물한 거예요. (흘기며) 어쩜, 그렇게 사귀는구나? 옷이 잘 어울리니까 참 기뻐요.

영은 : ...(무표정)

혜경 : (걱정) 어머, 혹시 내가 실수했어요?

영은 : (얼른) 아니예요... (환히 웃고) 고맙습니다. 잘 입겠습니다.

혜경 : ...오늘 즐거우셨어요?

영은 : 네. 즐거웠어요. 고맙습니다. 전 오늘 태어나서 뮤지컬 첨 봤어요. 이렇게 재밌는건 줄 몰랐어요.

혜경 : 어우, 그래요? 그럼 앞으로두 자주 보여줄께요. 우리 친하게 지내요.

         난 외동딸이라 여자 형제 있는 애들이 그렇게 부럽드라. 내동생 할래요?

영은 : ...그럴까요?

혜경 : 정말요? 너무 멋지다! (깔깔 웃는다)

영은 : (같이 하하 웃고)



#49. 거리 (밤)


터벅터벅 걸어오는 영은. 건널목 앞에서 신호 기다리며 거리의 쇼윈도우 앞에 선다.

바람에 원피스 치마자락이 펄럭 휘날린다. 날리는 치마를 양손으로 꼭 붙들고 서있다.



#50. 파인 홀 안 (밤)


불꺼진 실내. 작은 전등만 한두개 켜져있다.

박스 들고 점장실 나오는 수현. 쓸쓸한 기분으로 담배 붙여물며 앉는다.

들어오는 혜경. 한쪽 창가에 앉아있는 수현을 발견한다.


혜경 : 여기 있을 줄 알았어.

수현 : (본다)

혜경 : 집에두 안 들어왔대구 휴대폰은 꺼놨구... 왜 약속 안 지켜? 같이 공연보기로 했잖아.

수현 : 언제.

혜경 : 메시지 못 들었어?

수현 : (쓴웃음) 그게 약속이었어? 혜경아, 약속이란... 둘이서 같이 하는 거야.

혜경 : 뭐 안 좋은 일 있구나? 툴툴거리니까 더 매력있네?

수현 : 안 바쁘냐? 예술은 다 때려치웠어?

혜경 : 참, 나 오늘 영은씨랑 같이 공연 봤어.

수현 : !

혜경 : 표 아깝잖아! 같이 가자 그랬지 뭐. 귀엽드라. 완전 천사표든데?

수현 : 너 대체 왜그래? 니가 왜 그 친구랑 공연을 보러 가?

혜경 : (심각해진다) 왜 화를 내는데? 수현씨야말로 그런 앨 왜 가지구 놀아?

수현 : 가지구 논다구?

혜경 : 그럼 뭔데? 나 보라구 시위하는 거 아냐. 어떻게 그런 야비한 짓을 하니? 만나보니까 착하구 천진하기만 하드라.

         더군다나 남자친구까지 있는 앨... (한숨) 아랫직원들이면 그렇게 막해두 돼? 내가 다 미안하드라구, 정말.

수현 : 미안해할 거 없어. 나... 그 친구 무척 좋아해. 진심이야.

혜경 : (굳는)

수현 : (일어난다) 그만 가라. 문 닫아야 돼. 언제 또 만날지 모르겠구나. 너두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아라.

혜경 : 수현씨.

수현 : 잘가라.


나가버린다.



#51. 영은집 앞길 (밤)


다가오는 종수. 건물 올려다보다가 바닥에 쪼그리고 앉는다. 담배 한 대 붙여물며 곰곰 고심한다.

초조하고 불안한 듯 있다가 담배를 휙 던져버린다. 이윽고 일어난다.


지은(E) : 누구세요?



#52. 영은집 마루 (밤)


안으로 성큼 들어서는 종수. 놀라는 지은.


지은 : 뭐예요?

종수 : 후우, 덥다...


걸치고 있던 남방을 훌렁 벗더니 나시 차림으로 식탁 앞에 앉는다.


종수 : 얼음물 한 잔 주라.

지은 : 엄마!


방에서 나오는 인옥.


인옥 : 뭐야. 너 뭐야?

종수 : 안녕하셨습니까? 내 재산 돌려 받으러 왔습니다! 받을 때까지 여기서 한발짝두 안 나갈 거니까 그런 줄 아십쇼.

인옥 : 무슨 헛소리야? 당장 못 나가?

종수 : 못 나갑니다. 내 돈 내놓기 전엔 못 나가요. 갈 데두 없구요.

인옥 : (기가 막혀) 경찰에 신고해, 지은아.

종수 : 신고하십쇼. 며칠 살구 다시 또 옵니다. 그땐 각오하십쇼.

지은 : (질려) 엄마, 어떡해.

인옥 : (떨린다) 너 우리집에 무슨 억하심정 있니? 왜이래?

종수 : 누가 할 말인데요? 내가 누구 땜에 알거지 됐는데요.

인옥 : 알거지는 무슨 알거지야? 그깟 거 얼마나 된다구...

종수 : (OL) 얼마나 되는지 아주머니가 봤어요?

인옥 : (말문 막히며) 나가! 당장 못 나가?

종수 : (뒤로 기댄다) ...내 돈 가져오기 전엔 못나갑니다.

영은(E) : 다녀왔습니다.


들어오는 영은. 깜짝 놀라 바라본다.


종수 : 어디 존데 갔다 오나부다?

영은 : 어떻게 왔어요?

종수 : (옷 훑어보며) 폼 난다? 잘 어울리는데? 선물한 보람이 있구나.

인옥 : (영은 옷을 본다) 무슨 소리야.

영은 : (괴롭다) ...

종수 : 딸 간수 잘 하십쇼. 얘 밖에 나가 뭐하구 돌아다니는지 아십니까?


식탁에서 내려오더니 집기들을 이것저것 툭툭 만져보다가 아예 벌렁 드러눕는다.


지은 : (물러서며) 엄마...

인옥 : (보다가 결심) 지은이 영은이 다 방에 들어가. 들어가 문 잠그구 있어!


안으로 들어가는 지은. 들어가는 척 하는 영은.


인옥 : 그래, 맘대로 해봐. 한번 버텨봐. 버틸거면 버텨! 누가 이기나 보자!


방문 쾅 닫고 들어가는 인옥.

도로 나오는 영은. 단호해진다.


영은 : ...이러지 마세요.

종수 : 그 자식한테 가서 매달리든지 구걸을 하든지 어쨌든 내 돈만 가져와.

영은 : (잡아 일으킨다) 가요.

종수 : 가긴 어딜 가냐? 니 엄마 말씀 못 들었어? 버티래잖아! 나 인제 여기 살거야.

영은 : 일어나세요! 가요!

종수 : (뿌리치고) 내 돈 가져와!


인옥 방문 열린다.


인옥 : 너 안 들어가? 들어가!


마지못해 방으로 들어가는 영은.

이윽고 홀로 남는 종수. 대자로 팔 뻗더니 눈 감는다.



#53. 인옥방


초조한 얼굴로 앉아있는 인옥. 두렵고 서글프다. 어떡할까... 전화기를 들었다 놓는다. 전화기 드는 손이 떨린다.



#54. 영은방


지은, 한쪽에 앉아 얼굴 감싸고 있다.


영은 : 언니,

지은 : (베개 던지며) 니가 다 책임져!

영은 : ...



#55. 동 마루


누워서 눈 붙이고 있는 종수.

영은 방문이 비죽 열리더니 안에서 나오는 영은. 잠시 서글프게 내려다보고 섰다.


종수 : (눈 뜬다) 왜.


이윽고 결심한듯 종수 앞에 무릎을 꿇고 앉는 영은. 고개 조아린다.


영은 : 가요. 어떡하든 만들어 드릴께요. 제발 일어나서 가요.


멈칫 하다가 외면하는 종수.


영은 : 내가 다 잘못했어요. 물어낼께요. 가주세요.


순간 방문 벌컥 열고 나오는 인옥. 영은 모습에 기막히고 분노가 치민다.


인옥 : 뭐해? 안 일어나, 이 기집애야?


잡아 일으킨다. 부엌 입구에 놓인 빗자루를 집어든다.


인옥 : 오늘 그냥 우리 둘이 죽자! 너두 죽구 나두 죽자! 이렇게 살 거 뭐하러 사니? 차라리 죽자! 다 죽어!


마구 영은을 팬다. 고개 푹 숙이고 그냥 얻어맞는 영은.

당황하는 종수. 이윽고 슬몃 일어난다.


종수 : (겉옷 걸치며) 오늘은 이쯤 해두구 물러갑니다.

인옥 : (떨린다) ...

종수 : 조만간 다시 들를테니까 그때까지 마련해 놓으쇼.

영은 : ...



#56. 영은집 앞 골목 (밤)


대문 나서는 종수. 안에서 쫓아 나오는 영은. 앞을 막는다. 원망과 미움 어린 눈으로 글썽이며 본다.


종수 : 뭐.

영은 : (밉다) 부탁해요. 집에는 찾아오지마세요.

종수 : ...

영은 : 우리 엄마...몸두 아프구...마음두 아픈데...집에는 오지 마세요.

종수 : (비웃음) 내가...하두 니 인생이 불쌍해서 많이 봐준다. 딱 잘라서 오백만 받을께.

영은 : ...

종수 : 딱 담주까지만 봐주는 거야...그때까지 안 만들면 그땐 드러눕는 정도가 아니구

         아예 니 집두 불을 싸질러 버릴테니까 그런 줄 알어.

영은 : (다급히 붙잡고) 그러지마요, 제발...


눈물 글썽하는 영은. 마음 약해지는 종수.


종수 : (밀친다) 놔!


침 뱉고 멀어진다.



#57. 놀이터 (밤)


가로등 아래로 천천히 걸어오는 영은. 벤치에 앉아 얼굴 묻는다.

천천히 다가오는 수현.

문득 인기척 느끼는 영은. 고개 들면 눈 앞에 서 있는 수현.


영은 : (놀라) 점장님,

수현 : 여기서 뭐해요.

영은 : 사,산책 좀...이 시간에 왠일이세요?


곁에 나란히 앉는 수현.


수현 : ...(화난듯) 내 메모 못 봤어요?

영은 : 네?

수현 : 사물함에 메모 못 봤어요? 내가 거기서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요? 못 오면 못 온다, 전화는 할 수 있잖아요.

         그래놓구 뮤지컬을 보러가요? 그것두 혜경이랑? 왜그렇게 답답하게 살아요?

영은 : 메모라뇨?

수현 : (굳는) 못 봤어요?

영은 : ...못 봤는데요.


난감해지는 수현. 할 말 없어진다. 잠시 감정을 수습한다.


수현 : 뮤지컬은 재밌었어요?

영은 : 네? 아, 네...무척 재밌었어요.

수현 : ...

영은 : (할 말을 열심히 찾다가) ...화제작이래요! (멋적게 잠깐 웃는다)


씁쓸하게 바라보는 수현. 어색해지는 영은.


수현 : ...울었어요?

영은 : (놀라) 아유! 울긴요? (시계본다) 어, 저 그만 들어가봐야 되겠어요. 늦었네요. (일어난다) 낼 뵐께요! 안녕히 가세요!


서둘러 가는 영은. 저만치 가는데 쫓아와 확 잡아끄는 수현.


수현 : 내 얘기 듣구 가요, 영은씨...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영은 : (본다) ...

수현 : ...사랑해요.

영은 : 네?!


ENDING.

제5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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