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보일까봐] 06
#1. 놀이터 (밤)
마주 보고 서 있는 수현과 영은. 둘다 어색해져있다.
수현 : 그동안 나두 힘들었어요. 사랑한다고 말하면 영은씨가 믿지 않을 거 같아서요.
영은씨한테 잘못한 게 너무 많아서, 도저히 이 말을 못했어요... 사랑해요.
눈 똥그래져서 그저 멍하니 바라보는 영은.
영은 : (침 꼴깍 삼키고) 죄, 죄송합니다. 너무 늦어서요.
수현 : 네?
영은 : (시계 본다) 내일 뵙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허둥지둥 뒷걸음질치더니 도망치듯 멀어지는 영은.
어이없어 바라보는 수현.
#2. 영은집 앞길 (밤)
급히 달려오는 영은. 발걸음 멈추며 뒤를 돌아본다. 아무도 없다. 얼떨떨하다.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고른다.
#3. 영은집 마루 (밤)
들어오는 영은. 고요한 집안. 인옥방 쪽을 살피는 영은. 방문 빼꼼 열고.
영은 : 엄마?
#4. 인옥방 (밤)
들어오는 영은. 앓아누운 인옥. 표정 확 어두워지는 영은.
영은 : 아퍼요?
인옥 : 앞으루 아무한테나 문 열어주지마. 한번만 그 놈 더오면 무조건 감옥에 쳐넣을 거다.
영은 : 걱정마요, 엄마. 내가 책임져.
인옥 : (기막힌다)
영은 : 정말이야. 다신 안 온다구 나한테 약속했어요.
인옥 : 가서 자.
영은 : 진짜 걱정마요, 엄마. 자기두 속상해서, 속상해서 괜히 그랬던 거래. 후회한대.
인옥 : (잘두 지어내는구나)
영은 : 속은 되게 여린 사람이라니까? 증말! 겁내지 마세요.
인옥 : 알았으니까 나가.
#5. 영은방 (밤)
들어오는 영은. 옷 갈아입다가 멍해진다.
지은 : 영은아,
움찔 놀라 돌아보는 영은.
영은 : 안 잤어?
지은 : 그 남자 또 오면 나 심장 쪼개져서 죽을 거야. 니가 책임져. 엄마 아까 얼마나 우셨는지 아니?
영은 : ...그랬어?
어두워진다.
#6. 파인 외경 (아침)
#7. 동 홀안
출근하는 수현. 홀매니저 다가온다.
홀매니저 : 이제 나오세요? 본사에서 윤실장님 와계십니다.
수현 : 그래요?
#8. 점장실
들어오는 수현. 소파에 앉아있는 정희와 민식.
수현 : 오셨어요?
민식 : 축하 드립니다. 본사로 가신다면서요?
수현 : 네? 아아, 아뇨..
정희 : (OL) 민식씨가 새 점장 임명 때까지 점장 대행을 맡아주시기로 했어.
수현 : 점장 대행요?
민식 : (의아한듯 둘을 본다) 아직 모르구 계셨어요?
정희 : (잠깐 난감하다가 민식 보고) ...그럼 이따 오후에 본사에서 뵙죠.
민식 : 네.
인사하고 나간다.
수현 : 어떻게 된겁니까.
정희 : 신규사업팀으로 발령 난 거 못 들었어? 어제 사장님한테 얘기 들었잖아.
수현 : (굳는다)
정희 : 인수 인계할 준비해. 그만 고집 꺾구.
#9. 동 주방
스테이크 굽는 영은. 곁에 다가와 지켜보는 민식.
민식 : 많이 늘었다. 그만하면 니 가게 차려두 망하지는 않겠다.
곁에서 감자 다듬는 동규.
민식 : 너, 만약에 니가 이 식당 점장이 되면 젤 먼저 하구 싶은 게 뭐냐.
동규 : 월급이나 왕창 올려주는 거죠 뭐.
민식 : 나는 돈 밝히고 공부 못하는 종업원을 정리하는게 우리 가게의 급선무라구 생각한다.
만약에 내가 점장이 되면... 인제 이 식당 확 뒤집혀. 혁명 일어나는 거야.
그동안 내가 이런저런 문제를 보구두 참구 참았는데...
동규 : 허, 아침에 뭐 잘못 드셨어요?
민식 : 얇게 좀 깎아라. 니네 집 감자면 그렇게 깎을래?
영은, 샐러드 카트 끌고 나간다.
#10. 홀 안
샐러드바에 샐러드를 덜어놓고 있는 영은.
들어오는 혜경. 영은과 눈 마주친다. 움찔 놀라는 영은.
영은 : 오셨어요?
혜경 : 수현씨 있어요?
홀매니저 다가온다.
홀매니저 : 본사에 가셨는데요. 금방 오실 거예요. 기다리세요.
혜경 : (잠깐 생각) 영은씨랑 잠깐 얘기 좀 해두 되겠죠?
홀매니저 : (뭔가 싶다) 네, 그러세요.
영은 손을 꼭 잡고 창가 자리로 가는 혜경. 난처해지는 영은.
혜경 : 이럴 때 잠깐 쉬는 거죠 뭐. 안그래요?
영은 : ...(예의상 조금 웃고) 네.
혜경 : (복잡하게 잠깐 본다) ...
가방에서 작은 선물을 하나 꺼내는 혜경.
혜경 : 향수예요. 주방에서 일하면 땀 많이 날텐데 싶어서 하나 샀어요.
영은 : ...
혜경 : 받아요. 부담 갖지 말구. 언니가 주는 거라구 여겨요. 우리 그렇게 지내기로 했잖아요.
영은 : (괴로워진다)
혜경 : 왜요? 향수 안 써요?
들어오는 수현. 둘을 보고 멈칫 놀란다. 일어나는 영은.
수현 : (다가오며) 언제 왔어.
혜경 : 방금.
수현 : 영은씨, 일 안하구 여기서 뭐해요.
영은 : ...
수현 : (화난듯) 들어가세요.
영은, 인사하고 주방 쪽으로 간다. 가만히 둘을 지켜보는 혜경.
수현 : 아무 때나 함부로 불쑥불쑥 찾아오지 마. 여기 나한텐 직장이야.
혜경 : 할 얘기가 있어.
수현 : 가줄래? 인수인계 해야 돼. 많이 바쁘다.
혜경 : (밝아진다) 본사로 가는 거야?
수현 : 아니. 그만 두는 거야.
혜경 : 그만두다니?
수현 : 미안하다. 그만 가줬음 좋겠어.
#11. 주방
영은, 착잡한 얼굴로 감자 깎고 있다.
들어오는 수현.
수현 : 얘기 좀 해요.
영은 : (흠칫 돌아본다)
#12. 점장실
마주 앉아있는 수현과 영은.
수현 : 어젠 잘 잤어요?
영은 : 네.
수현 : 혜경이랑은 대학 이학년 때 어른들 소개로 만났어요. 아버지랑 혜경이 부모님이 친분이 깊으시죠.
유학생활 초기에 서로 의지하고 가깝게 지냈던 건 사실이예요.
영은 : 점장님,
수현 : 내 얘기 마저 듣구요... 만나면서 점점 힘들어졌어요. 난... 혜경일 감당할 수가 없었어요.
(사이) 그게 다예요. 내 의사 충분히 밝혔고, 결혼같은 거 안해요. 그러니까 마음 쓰지 않아두 돼요.
영은 : ...
수현 : 궁금한 거 있음 물어봐요.
영은 : 아뇨, 없습니다. 이제 제 얘기 해두 될까요?
수현 : 그래요.
영은 : ...저는...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수현 : (굳는)
영은 : 절 좋아해주시는 거야...좋은 일이지만...저는... (망설이다 조금 웃고) 그냥 이대로 지내고 싶습니다 ... 죄송하지만...저는...
실수로 테이블의 볼펜을 툭 쳐서 바닥에 떨어뜨린다. 얼른 구부리고 줍는다.
맘에 없는 말을 하고보니 손이 덜덜 떨린다. 볼펜이 잘 안 집힌다.
주워주는 수현.
수현 : ...알겠어요.
놀라서 일어나는 영은. 머리를 쿵 박는다. 못보고 시선 다른 데 있는 수현.
일어나는 영은. 목례하고 돌아서는데, 맘에 없는 말을 하고보니 마음이 무너지는듯 하다.
수현 : (책상 쪽으로 가며) 이제 자주 못 보겠어요. 나, 오늘 여기 그만 둡니다.
영은 : (돌아본다) 왜요?
수현 : ...짤렸거든요.
허탈하게 잠깐 웃는 수현. 마음이 다시 쿵 내려앉는 영은.
#13. 점장실 앞
기운없이 점장실 나오는 영은.
#14. 두식집 외경 (밤)
#15. 동 거실
런닝에 반파자마 바람으로 소파에 쪼그려 잠든 두식.
들어오는 수현. 테이블 위에 어지럽게 놓인 막걸리 병과 마른 안주, 흩어진 신문 등이 보인다.
다가가 대충 치우는 수현. 잠든 두식 얼굴을 안쓰럽게 잠시 본다.
눈 부스스 뜨는 두식.
수현 : (얼른 눈길 덤덤해지며) 들어가셔서 주무세요.
두식 : (일어나며) 혜경이 여러 번 전화했드라.
들어가는 두식.
수현 : (한번 더 매달려보자는 뜻으로) 아버지,
두식 : 새 사무실 가봤냐? 팀 분위기가 아주 좋드라. 열심히 뛰어봐. 넌 항상 그게 문제다. 마음가짐이 문제야.
요번 사업두 다 니 의지에 달렸어. 니가 맘만 먹으면 일류기업 되는 거는 시간 문제다. 알아듣겠냐?
수현 : ...(포기했다. 챙겨들고 부엌쪽으로 가며) 주무세요.
#16. 수현방
여행가방에 옷가지, 양말, 책 등을 싸는 수현. 착잡한듯 침대에 걸터앉아 방을 둘러본다.
#17. 두식집 외경 (아침)
#18. 동 부엌
식사하는 두식.
들어오는 수현. 곁에 앉아 식사하는 두식을 바라본다.
수현 : 경리과에 가서 제 퇴직금은 챙겨가지고 가겠습니다.
두식 : (굳는) ...
수현 : 날 더운데 속옷은 매일매일 갈아입으시구요, 밤엔 선풍기 꼭 끄고 주무십시요.
두식 : ...
수현 : 무좀약은 제가 다 썼어요. 밤마다 찾아 헤매지 마시구 하나 새로 사세요.
두식 : (수저 탕 놓는다) 무슨 헛소리야?
수현 : ...
두식 : 지금 애비 하구 장난 하자는 거냐?
수현 : 장난 안 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두식 : ...(떨린다)
#19. 동 거실
트렁크 들고 나서는 수현. 부엌 쪽에서 나오는 두식.
두식 : 내려 놔!
인사하고 그대로 나가는 수현. 멍하니 보는 두식.
두식 : 그래, 나가라. 당장 꺼져! 어디 니 멋대로 살아봐라!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놈! 다신 들어오지마! 오늘루 너랑 나랑 인연 끝이야!
#20. 영은집 외경 (밤)
#21. 동 마루 (밤)
인옥과 지은, 영은, 밥 먹고 있다.
인옥 : (혀 차고) 줏대두 없는 기집애. 그만 두란다구 그만두구, 다시 나오란다구 나가구, 뭐하러 그래? 자존심두 없어?
영은 : ...
지은 : 점장인지 쪽집갠지... 그 인간이 얠 단단히 갖구 논 모양이야, 엄마.
인옥 : 무슨 소리야.
영은 : (당황) 아냐.
지은 : 말해두 되지? 글쎄, 애인두 있는 주제에 얘보구 데이트하자구 희롱하구 그랬나봐.
인옥 : 뭐?
지은 : 엄마 병원에 옮기던 날... (영은 본다) 무슨 뭐, 사과하러 왔다 그랬니?
영은 : 정말 사과하러 온 거야.
인옥 : 너 당장 관둬. 그런 델 뭐하러 다녀? 돈두 안되는 거, 그나마두 다 뜯기구 다니는 주제에,
뭐한다구 거길 그렇게 기쓰구 다녀? 일할 데가 그렇게 없어?
영은 : ...
인옥 : 어떻게 된 여자애가 그렇게 아무한테나 놀아나? 니가 너 귀한 줄을 모르면 아무두 너 귀한 줄 몰라주는 거야. 그만 둬.
영은 : 그냥 다닐께요.
지은 : 어머, 얘 고집 부리는 거 좀 봐.
인옥 : 왜.
영은 : 그 점장님 관뒀어요. 인제 그 사람 거기 안 나와요.
국물 떠먹는데 눈물이 핑 돈다.
영은 : (웃고) 저 거기 계속 다니고 싶어요. 재미도 있고...월급두...
지은 : (뚝 자르며) 희정이 알죠, 엄마? 걔 남자친구랑 이번 주말에 결혼한대. 결혼하구 바로 유학 간대.
인옥 : 벌써? (안쓰럽다) 부럽지? 친구들 다 떠나구...
지은 : 괜찮아요. 그런 거 하나두 안 부러워. 난 엄마만 건강하면 돼요.
영은 : (둘을 본다)
지은 : 골고루 좀 드세요, 엄마. (생선을 발라 수저에 놔주고)
인옥 : 아유 됐어, 너나 많이 먹어. (도로 얹어준다)
영은 : ...
인옥 : 왜 뚱해있어? 어서 밥 먹어.
영은 : (얼른 먹는다) 안 뚱해요!
#22. 영은집 대문 앞 (밤)
대문 나오는 영은. 괜히 골목 끝을 바라본다. 바닥을 툭툭 차본다.
#23. 놀이터 (밤)
걸어오는 영은. 아무도 없는 텅빈 놀이터. 휘 둘러보는데 허전한 마음이 사무친다.
가로등 아래 어제 그자리에 가서 서본다.
종수(E) : 저녁 먹었냐?
고개 움찔 든다. 종수다.
#24. 분식집 (밤)
종업원이 라면 한그릇 내려놓고 간다. 급히 먹기 시작하는 종수.
가만히 지켜보는 영은.
영은 : 배고프셨어요?
종수 : 하루 종일 굶었다.
영은 : (걱정 어리며) 왜요.
종수 : 야, 점장 그 자식 본사루 올라갔대매?
영은 : (멈칫)
종수 : 위로나 해줄까 싶어서 온거야. 매니저가 그러는데 그 자식 가을에 결혼한다드라? 얘기 들었냐?
영은 : ...
종수 : 임마, 내가 너 헛물 켤 때 알아봤다. 그러게 내가 조분조분 충고해줄때 정신을 차렸어야지,
뭐 얻어먹을 게 더 있다구 거길 도로 기어나가냐?
물컵에 물 따르는 영은.
영은 : ...요즘 어디서 지내세요?
종수 : (마음 조금 약해지지만) ...니 걱정이나 해라.
영은 : 가게는 왜 관두셨어요?
종수 : 돈이나 얼른 갚어.
영은 : 저어, 죄송하지만...금방은 힘들구요. 매달 월급을 받으면 얼마씩 드릴께요.
당장은 다 못 드려두 차츰 다 드릴께요. 봐주세요.
종수 : ...
주머니에서 지갑 꺼내는 영은. 지폐 몇장을 털어 건넨다. 꼬깃한 천원, 오천원 다 합해 약 만원 쯤.
영은 : 이거요, 얼마 안되지만 내일 아침 사드세요.
종수 : ...(복잡해진다) 안 치워? 누구 거지 취급하냐?
영은, 무안한듯 단무지 하나 집어 먹는다.
#25. 두식집 외경 (아침)
#26. 수현방
텅빈 방안. 아침햇살이 창으로 들어온다.
문 열고 들어오는 두식. 안을 휘 둘러본다. 깨끗이 정리된 방. 섭섭하고 괘씸하다.
#27. 동 부엌
홀로 아침식사 하는 두식. 꿋꿋이 앉아 태연히 밥을 먹는다.
#28. 청과물 상회 (낮)
순금과 함께 과일 나르는 인옥. 차 떠나면 안으로 들어온다.
순금 : 점심 뭐 먹을래?
인옥 : 아무거나 먹지 뭐.
순금 : (전화기로 다가가며) 열무국수 시켜 먹을까? 국수 어떠니.
인옥 : (한쪽으로 앉히며) 내가 시킬께. 땀 좀 닦구 쉬어.
저만치서 걸어오는 두식. 먼저 보고 놀라는 순금.
순금 : 어머나, 이게 누구세요?
인옥 : (흠칫 돌아본다)
두식 : 인옥이 나 좀 보자.
순금 : (눈치 본다)
인옥 : 무슨 용건인데요.
두식 : 할 얘기가 있어.
순금 : 인옥아, 나 화장실에 잠깐...
두식 : 그럴 거 없다. 나 저기 모퉁이 보리밥집에 있을테니까 글루 좀 와라.
인옥 : ...
#29. 보리밥집 (낮)
들어오는 인옥.
한쪽에 앉아 신문 보는 두식. 마주 앉는 인옥.
인옥 : 점심 시켜놓구 왔어요. 금방 가봐야 되니까 용건만 말씀 하세요.
두식 : (신문 걷고) 여기 주문한 거 빨리 좀 주쇼.
인옥 : 나 가야 돼요.
두식 : 내것만 시켰다. 넌 어려서부터 원래 보리밥 안 먹잖냐. 이런 건 머슴이나 먹었지.
인옥 : (무안하다)
두식 : 양식당을 하구 살지만 식성은 그대루야. 밥은 역시 보리밥이 최고다.
인옥 : 무슨 일루 오셨어요.
두식 : ...이혼은 왜 했냐.
인옥 : (굳는다)
두식 : 듣자니까 아들 못 낳아 소박 맞았다면서?
인옥 : 누가 그래요? 순금이가 그래? 응?
두식 : 성질 여전하구나. 내 보기엔, 니 남편이 그 성질 감당 못해 헤진거 아닌가 싶다.
인옥 : (서슬 퍼렇게) 다신 만나지 말자 그랬죠? 뭐하러 왔어요? 뭘 듣구 싶은데?
두식 : 나는... 니가 나한테 사과라두 한마디 할 줄 알았어. 되려 뻔뻔하게 성질 부릴 줄은 꿈에두 몰랐다.
인옥 : 뻔뻔하다뇨. 내가 뭘 잘못했는데? 무슨 사괄 해요?
두식 : 죽을 때두 같이 죽자 맹세해놓구 다른 놈한테 시집을 갔으니 사과를 해야지.
주위 보기 부끄러워지는 인옥. 얼굴이 벌개진다.
인옥 : ...
두식 : 내가 중학교 중퇴했지만 그 정도 한자는 쓴다. 자랑같지만 내가 영어두 좀 하거든?
아무래두 서양 식당을 하다보니 해외루 비즈니스 투어두 다니게 되구...
인옥 : (일어난다) 갈께요.
두식 : 그 성질 여전한 거 보니 반갑긴 한데... 너 아직두 니가 주인집 따님인 걸루 착각하는 거 같구나.
이 친구야, 세월이 삼십년이 흘렀어. 착각하지 말어.
홱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리는 인옥. 이윽고 두식 앞에 턱 놓이는 까만 보리밥 그릇.
#30. 보리밥집 앞길
허둥지둥 가게를 나오는 인옥. 분해서 눈물이 핑 돈다. 모퉁이 돌아서며 눈물을 흑 훔친다.
인옥 : 세상에...세상에 제일 나쁜 놈...
순간, 누군가 인옥 팔을 나꿔챈다. 놀라서 바라보는 인옥. 두식이다. 성큼 잡아끌고 간다.
인옥 : 어,어딜 가요?
두식 : 따라와 봐.
근처의 택시를 세우는 두식. 억지로 인옥을 밀어 넣는다.
#31. 택시 안
뒤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 두식, 인옥 팔을 아직도 꽉 붙들고 있다.
인옥 : (뿌리치고) 놔요.
두식 : ...
인옥 : 어딜 가는데요?
두식 : (기사보고) 서초동 쪽으루 갑시다.
#32. 공터
서초동이나 내곡동 쯤. 서울 변두리의 넓은 공터. 잡풀이 우거져있고 멀리 아파트와 빌딩 숲이 보인다.
택시에서 내리는 인옥과 두식.
한쪽에 기초공사가 막 시작된 듯 굴삭기 같은것들이 세워져 있다.
황량한 공터. 그 땅 앞에 그저 망연히 섰는 두식.
인옥 : 여기가 어디예요.
두식 : ...
인옥 : 조두식씨.
두식 : (기운이 한 풀 꺾였다) 삼십 년 전 서울 왔을 때 내가 처음 밟은 땅이야.
남의 트럭 뒤에 몰래 숨어 타구 올라와서, 처음 내렸던 곳이 여기다.
인옥 : ...
두식 : 그때 내가 목표를 세웠지. 내 언제구 이 땅을 꼭 사구 말겠다!
그래서 십년 만에 기어이 이뤄냈다. 죽을 둥 살 둥 모아서 제일 먼저 땅부터 샀지.
인옥 : ...
두식 : 또다시 목표를 세웠어. 십년 뒤에는 내가 서울 시내에서 제일 큰 식당을 연다!
인옥 : ...
두식 : 그러구 또 십년... 여기다가 이 주위에서 제일 큰 건물을 올리겠다는 게 내 꿈이야.
앞으루 여기다가 할인 마켓을 하나 큼직하게 지을 생각이다. 자금은 대충 마련됐고...아마 그 꿈두 쉬 이루지 않겠나 싶어.
인옥 : ...그거 자랑할려구 나 여기 데려왔어요?
두식 : 그럼.
인옥 : 나 그만 갈래요. 순금이 기다려요.
두식 : 가긴 어딜 가? (본다) 내가 왜 여태 이렇게 살았는데?
내가 이날 이 순간만을 기다리구 살아왔어! 너 데리구 이 땅 앞에서 보란듯이 자랑할려구!
인옥 : !
두식 : 니가 얼마나 잘사는지 두구보자 그러면서, 이 악물구 피눈물 나게 살았다.
니가 단 한번이라두 내 심정 헤아린 적이 있냐? 있으면 말해봐라!
인옥 : ...
두식 : 단 한순간두 널 못 잊었어! 아파서 밥이 안 넘어갈 때두 이게 박인옥이다, 그러구 꾹꾹 씹어 먹었다!
백원 한장 쓸 때두 니 생각을 하면 도로 집어넣어졌어.
이윽고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하는 인옥. 눈물이 보일까 돌아선다.
인옥 : ...원 푸셨으니 이제 후련하시겠어요.
두식 : ...
인옥 : 저 바빠서 먼저 가요.
두식 : (잡는다) 인옥아,
뿌리치고 큰길가로 걸어나가는 인옥. 저만치 서서 지켜보고 있는 두식.
#33. 중고 차시장 (낮)
중고 승용차들이 주욱 늘어서 있다. 그동안 타고 다니던 지프 앞에 서 있는 수현.
중개인 달려온다.
중개인 : 파시게요?
수현 : 네.
차 둘러보는 동안 휴대폰 꺼내서 번호 누르는 수현.
수현 : 안녕하세요...네, 다들 잘 계시죠? ....미안하지만 직원 연락처 하나 알아봐주시겠습니까...
#34. 커피숖 (낮)
들어오는 종수. 한쪽에 앉아있는 수현.
종수 : 자주 봅니다. (삐딱하게 앉는다) 무슨 일입니까.
테이블 위에 쇼핑백 하나 내려놓는 수현.
수현 : 세어봐요. 나중에 딴소리 하지말구.
종수 : (굳는다)
수현 : 이걸로 분명히 끝내죠. 다신 영은씨 앞에 얼씬거리지 마세요.
종수 : (물끄러미 봉투 내려다보는데) ...
수현 : 할 얘기 있습니까.
종수 : ...
수현 : 그럼 먼저 일어납니다.
일어나는 수현. 카운터로 가서 계산하고 나간다.
그대로 앉아있는 종수. 손끝으로 봉투를 열어본다. 기분 비참해진다.
#35. 파인 주방 (낮)
슾 만드는 영은. 곁에 일하는 동규.
민식, 양복차림으로 왔다갔다 하면서지휘하고 있다.
동규 : 아우, 구관이 명관이다. 드러워서 못 봐주겠다.
영은 : (웃고)
동규 : (보다가) 너두 인제 꽤 한다?
영은 : 네.
동규 : 첨에 그렇게 실수 투성이드니...많이 늘었다. 빽으루 들어온 거 치구는 일취월장했다.
영은 : (웃음) 맞아요. 빽.
하는데 슬몃 쓸쓸해진다.
#36. 파인 앞길 (오후)
가게 나오는 영은. 수현 지프와 같은 종류의 지프 한대, 스치고 지나간다.
깜짝 놀라는 영은. 운전자 얼굴 확인하고는 곧 실망하다.
#37. 버스 정류장 (오후)
터덜거리며 걸어오는 영은. 그리운 마음이 스친다.
버스 한대 온다. 뛰어가서 타는 영은.
#38. 버스 안
한쪽에 가서 앉는 영은. 창가에 기대고 앉는다. 창 밖 바라보는데
곁에 와서 앉는 수현. 신문 한장 펴들고 그녀를 지켜본다.
문득 돌아보다가 깜짝 놀라는 그녀.
영은 : 언제 탔어요?
수현 : (짐짓) 여기 왠일이예요?
멍하다가 환히 웃는 영은. 눈물나게 기쁘고 반갑다.
영은 : (떨림) 어,언제 타셨는데요?
수현 : (슬몃) 나 보고 싶지 않았어요?
가만히 영은 손을 잡는 수현. 얼굴 빨개지는 영은.
#39. 원룸 건물 앞
변두리의 후미진 골목. 낡고 퇴색한 원룸 건물. 말이 원룸이지 고시원 정도의 분위기다.
나란히 오는 두사람.
수현 : 다 왔어요. 여기예요.
영은 : (의아한듯 올려다본다)
수현 : 어제 이사왔어요.
영은 : (본다) 어제요?
수현 : 네. 잠깐 들어갔다 갈래요?
영은 : 아뇨.. (시계본다) 가야 돼요.
수현 : (잡아끈다) 잠깐만 들어가요. 집구경만 잠깐 해요!
#40. 수현 원룸 안
문 열고 들어오는 수현. 비좁고 낡은 방안. 방안 가득 색색의 초와 풍선으로 치장이 되어있다. (너무 요란하지는 않았으면)
수현 : 들어와요!
방문 열어놓은 채 살그머니 들어오는 영은. 놀라서 입이 벌어진다.
수현 : 내방 첫손님이라서 신경 좀 썼어요.
영은 : (둘러보고 감탄)
수현 : (창문 열고) 전망이 아주 좋아요. 맑은날은 여기서 인천까지 다 보인대요.
담요를 접어 얼른 자리를 마련해주는 수현.
수현 : 내일 아침에 교외선 기차 타구 바람쐬러 갈래요.
영은 : (휘둥그레지며) 기차요?
수현 : 첫차 타구 가면 점심 때까진 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 내가 좋은 델 알아놨어요.
영은 : (망설이는데) ...
수현 : 갈 수 있죠? 가요!
영은 : (웃음)
한쪽에 칸막이 같은 걸로 가려진 씽크대. 다가가서 차주전자를 올리는 수현.
수현 : 차 뭐 마실래요? 커피 마실래요?
영은 : 네!
수현 : 금방 돼요! 오분만 있다가 가요!
조심스레 방안을 둘러보는 영은.
원래부터 놓인 커버도 없는 침대와 빈 옷장, 빈 책상, 냉장고 등이 한쪽에 썰렁하게 자리잡고 있다.
아직 가방을 다 못 푼 듯한 분위기. 짐이라곤 그저 트렁크의 옷가지와 책몇가지 뿐.
뭔가 분위기 심상치 않다. 조금씩 불안해진다.
수현 : 금방 다 돼요.
영은 : 오 분 넘게 있을께요! 천천히 하세요!
#41. 수현 원룸 안
(시간경과)
빈 커피잔 두개. 나란히 앉아 있는 영은, 수현.
빈 커피잔 달그락거리는 영은.
영은 : (조심) 집에서...왜 나오셨어요?
수현 : 나오구 싶어서요.
영은 : (진지하게 본다)
수현 : 일자리두 찾아야 하구, 앞으로 할 일이 무궁무진이예요. 영은씨가 많이 도와줘요.
영은 : 그러지마시구 집에 들어가세요.
수현 : !
영은 : 들어가시는게 좋겠어요. 걱정 많이 하실 거예요.
수현 : (피식) 내가 알아서 해요,
영은 : (결심) 저어, 결혼날짜 피해서 도망다니시는 거죠? 이유야 어쨌든 도망치는건 나빠요. 비겁하구요.
본사에 나가서 일 하세요. 잘 하실 거예요. 모두들 일자리 없어 헤매는데 그런 좋은 일 놔두구 왜 밖에서 헤매세요.
그만 고집 꺾으세요. 결혼하시구 행복하게 잘사세요.
수현 : ...(굳는다)
영은 : (시계본다) 전 그만 가봐야 되겠어요. 너무 늦었어요.
서둘러 일어나는 영은. 서먹해지는 두사람.
수현 : (화났다) 영은씨.
영은 : (본다)
수현 : 도대체 나를 뭘로 보는 겁니까.
영은 : 네?
수현 : 내가 한 말 뭘로 들었어요? 사랑한다는 말, 그렇게 안 믿어져요?
다른 건 전부 답답할 정도로 모조리 다 믿으면서, 누가 자길 사랑한단 말은 왜 안 믿어요?
영은 : ...
수현 : 지금 내가 도망치는 걸로 보여요?
서글프게 잠시 바라보는 수현.
#42. 두식집 외경 (밤)
벨 울린다.
#43. 동 거실 (밤)
방에서 나오는 두식.
입구에 서있는 혜경. 장미 한아름 안고 있다.
혜경 : 늦게 죄송해요. 놀라셨죠?
두식 : (어쩔 줄 모르고) 늦기는? 아직 초저녁이다. 내가 원래 밤잠이 없잖냐. 앉거라.
혜경 : (장미꽃을 내려놓는다)
두식 : 하이구, 이런 거 뭐하러 사왔냐...
혜경 : 남자들끼리 사는 집일수록 이런 거 꽂아놓구 그러셔야 돼요. 제가 이따 꽃병에 꽂아 드리구 갈께요.
두식 : 고맙다. (둘러대는) 수현이가 오늘 좀 늦는다. 전화 넣어보구 오지 그랬냐.
혜경 : 아버님 뵈러 온 거예요.
두식 : 나를 왜.
혜경 : 왜는요? 보고 싶으니까요.
두식 : (웃고) 거참. (시계본다) 이놈이 많이 늦을래나...
혜경 : 저 다 알구 왔어요. 아버님.. (고개 숙인다) 죄송합니다.
두식 : (황망해지며) ...니가 뭐가?
혜경 : 아니요. 제 잘못이예요. 제가 그동안 너무 수현씨 맘을 못 헤아렸어요.
항상 제 일만 신경 쓰느라구 그사람 많이 외롭게 했던 것 같아요.
두식 : 허참, 니가 무슨 잘못이 있어. 그놈이 요새 괜히 나한테 우기느라고 더 그러는 거야.
걱정마라. 내가 다리 몽둥일 분질러서라두 니 앞에 무릎꿇게 하마.
쥬스잔 들고와서 내려놓는 가정부.
혜경 : (눈물 떨군다) 도와주세요 아버님...
두식 : (착잡하다)
#44. 종수 지하창고 안 (밤)
바닥에 지폐를 주욱 깔아놓고 그 위에 앉아있는 종수. 무표정하다.
한장으로 비행기를 접어 날리다가 더 울적해진다.
바깥문 두드리는 소리 난다. 놀라서 후다닥 지폐들을 주워담는 종수.
#45. 창고 앞길 (밤)
안에서 나오는 종수. 사내1,2 기다리고 있다. 대뜸 후려팬다.
종수 : (얼굴 감싸고) 뭐야.
사내1 : 약속 기한이 언젠데 아직두 감감무소식이야?
종수 : 없는 돈을 어떻게 줍니까.
사내1 : 뻔뻔한 놈!
한대 친다. 방어하는 척 하다가 도망치는 종수. 쫓아오는 사내들.
#46. 영은집 앞길 (밤)
걸어오는 영은. 지나가다 문득 발을 멈춘다. 돌아본다. 깜짝 놀란다.
피흘리며 꼬꾸라져있는 종수.
영은 : 어떻게 된 거예요.
종수 : (신음) ...
영은 : 누구한테 맞았어요? 강도 만났어요?
가방에서 화장지 꺼낸다.
종수 : (비웃고) 그 자식 만나구 오냐?
영은 : 병원 가야 되겠어요.
부축하는데 일어나다 비틀 쓰러지는 종수. 이마와 입가가 다 터져있다.
#47. 영은집 마루 (밤)
방에서 살금살금 나오는 영은. 소독약과 밴드 등을 감추고 있다.
현관문 소리에 방에서 나오는 인옥.
#48. 영은집 앞길 (밤)
달려오는 영은. 종수에게 다가온다.
영은 : (내밀고) 이거 발라요.
그대로 널브러진 종수. 솜에 약을 부어 직접 상처를 눌러주는 영은.
종수 : (치우며) 됐어.
영은 : 가만 있어보세요.
종수 : ...(기분 묘하다)
영은 : 많이 아퍼요? 이거 바르구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병원에 가세요. 여기저기 막 찢어졌어요.
종수 : (밀치고) 됐다, 이 한심한 기집애야.
영은 : ...
종수 : 너, 그 자식이 니 돈 좀 물어줬다구, 감격해서 또 놀아나지?
영은 : ...무슨 말이예요?
종수 : 너 내가 그거 받았다구 선선히 물러날 거 같냐?
영은 : 누구한테 뭘 받았는데요?
종수 : 허, 너두 꽤 늘었다?
짐작해보며 인상 굳는 영은.
순간, 뒤에서 다가오는 인옥. 영은을 잡아 일으킨다.
인옥 : 들어와!
#49. 영은집 마루 (밤)
인옥 앞에 앉아있는 영은.
영은 : (괴롭다) 너무 많이 다쳤길래...
인옥 : ...
영은 : 죄송해요, 엄마.
인옥 : (한숨) 영은아,
영은 : (본다)
인옥 : (주머니에서 만원권 서너장 꺼낸다) 갖다 줘.
영은 : !
인옥 : 가서 병원 가라 그러구 던져 줘.
영은 : 엄마...
인옥 : (일어나며) 저놈두 참 불쌍한 놈이다. 어디 세상에 기댈 데가 없어서 우리같은 집엘 다 기대니. 그저 악만 남아가지구...
영은 : ...
인옥 : 저런 애들이 제일 무서운 거야. 무서울 게 없는 애들이 젤 무서운 거야. 알어? 조심해! 절대 손 내밀지마! 꽉 물려!
#50. 집 앞길 (밤)
나오는 영은. 둘러보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는 종수.
#51. 호프집 (밤)
들어오는 수현. 주위 둘러본다.
한쪽에 앉아있는 종수. 가서 마주 앉는다.
수현 : 무슨 일이죠?
종수, 돈가방을 올려놓는다.
종수 : 도로 가져가.
수현 : ?
종수 : 이 돈 필요없다. 너나 가져!
수현 : 종수씨,
종수 : 재수없는 자식.
일어나서 나가는 종수. 어이없는 수현.
#52. 영은방 (아침)
어둑신한 방안. 거울 앞에서 옷 갈아입는 영은. 아직 잠든 지은.
지은 : 새벽부터 어디 가?
영은 : (작게) 아냐, 계속 자.
지은 : 요즘 너 수상해!
영은, 가방 둘러메고 나간다.
#53. 병원 외경 (아침)
#54. 병실 (아침)
일인실. 누워있는 혜경.
들어오는 수현. 혜경 곁에 앉아있던 혜경모. 원망스레 본다.
수현 : 어떻게 된겁니까.
혜경모 : (외면) 나두 모르겠어. 며칠 물 한모금 안 먹드니 빈속에 수면젤 왕창 털어넣은 모양이야.
죽을려구 작정한 거야. 십분만 늦었어두 일 날 뻔 했대.
수현 : (허탈하게 본다) ...
혜경모 : 어떻게 된건진 내가 묻구 싶은 말이야. 도대체 뭘 어쩐거야? 응?
수현 : ...
#55. 기차역 대합실 (낮)
들어오는 영은. 주위 둘러보고 한쪽에 앉는다.
#56. 병원 복도 (낮)
의자에 앉아있는 수현. 들어오는 정희.
정희 : 너 왔구나.
수현 : 오셨어요.
정희 : 혜경이 좀 어때?
수현 : (담담하다) 괜찮을 거예요. 생명에 지장 없대요.
정희 : 어떡하다 일을 이지경까지 만드니...증말 니들 왜그래?
수현 : ...
정희 : 인제 어떡할 거야.
수현 : ...
#57. 대합실 (낮)
그자리에 그대로 앉아있는 영은. 기차표를 우두커니 들여다보다가 시계를 본다. 점점 표정이 어두워진다.
곁에 앉아 기차 기다리는 꼬마를 바라본다. 씩 웃어준다. 다시 시계본다.
#58. 역 공중전화 부스 (낮)
전화거는 영은. 메시지를 남기라는 안내음이 나온다.
영은 : 저 영은이예요. (화나서) 종수씨한테 돈을 주신 건 잘못하신 거예요. 그건 제가 갚아야 하는 거예요...
정말 실수하는 거예요...아무리 사랑...!
제풀에 놀라서 얼른 수화기를 내려 버린다. 실수다. 어떡할까 고민하다가 다시들고 번호를 꾹꾹 누른다.
메시지 녹음하라는 안내음 나온다. 머뭇하다가 잠시 후.
영은 : 죄송합니다...녹음이 잘 안됐죠? ....저 영은인데요... (한참 말이 없다가 이윽고 눈물이 주룩 흐른다) ...보고 싶어요.
#59. 수현 원룸 안 (낮)
아무도 없는 방안. 휴대폰이 떨어져 있다. 불빛이 깜박거린다.
#60. 대합실
그대로 앉아있는 영은. 이윽고 툭툭 털고 일어난다.
#61. 병실 (낮)
잠든 혜경 앞에 앉아있는 수현.
#62. 파인유통 사장실 (낮)
두식과 마주 앉아있는 정희.
정희 : 애를 너무 끓였었나봐요. 몸두 무척 허해졌다 그래요.
두식 : 그래, 수현이 놈은 만나봤어?
정희 : 네.
두식 : 뭐라 그래?
정희 : 별 말 없어요.
두식 : ...그동안 어디서 지냈대?
정희 : 모르겠어요. 통 대답을 안해요.
두식 : 사귄다는 여자앤? 좀 알아봤어?
정희 : ...네.
두식 : 어디서 뭐하는 애래?
정희 : ...실은 전에 저두 한번 만난 적이 있어요.
두식 : 왜 말을 안했어?
정희 : 그땐...장난인 줄 알았어요.
두식 : 어떤 앤데?
#63. 파인 주차장 (낮)
호스 물 청소하는 영은. 멍하니 자기 생각에 빠져있다. 들어오는 승용차를 보지 못하고 바닥에 물을 마구 뿌리고 있다.
승용차 멈추고 차에서 내리는 두식. 물벼락을 맞는다.
영은 : 죄송합니다!
허둥지둥 달려가 굽신 사과한다. 운전기사, 난처한듯 바라본다.
두식 : 됐어. (들어가는데)
영은 : 잠깐만요. 들어가시면 안돼요. 다 버리셨잖아요.
앞을 막아서는 영은. 두르고 있던 앞치마를 벗는다. 무릎 꿇고 마구 쓱쓱 닦아준다.
어이없어 내려다보는 두식.
영은 : (씩 웃고) 다 됐습니다. 들어가세요. (굽신 인사) 좋은 시간 되세요!
#64. 동 홀 안
들어오는 두식과 민식. 홀매니저와 종업원들 달려나와 인사한다.
홀매니저 : 오셨습니까.
두식 : (매장 안을 둘러보며) 한산하구만.
홀매니저 : 아직 식사시간 전이라 그렇습니다.
두식, 휘 둘러보다가 점장실 쪽으로 간다. 따라가는 민식과 홀매니저.
#65. 점장실
들어오는 두식. 홀매니저, 민식, 뒤이어 들어온다.
두식 : (둘러보며) 조수현이 점장으루 있는 동안 고생들 많았지?
민식,홀매니저 : (동시에) 아닙니다.
두식 : 편하기는 했을 거야. 그놈이 원체 일을 안했으니까.
민식 : 무슨 말씀이십니까. 일을 안하다뇨.
두식 : (민식 보고) 그동안 점장 대행하느라구 수고했어. 낼부터 새점장 나올거야.
민식 : (좌절...) 그렇습니까.
소파로 가서 앉는 두식.
두식 : 여기...직원 중에 김영은이라구 있나?
#66. 동 주방 안
스테이크 굽는 동규. 곁에서 일하는 영은.
동규 : 야, 봐봐, 미디엄인데 이 정도 구우면 되냐?
영은 : (다가간다) 아뇨, 그렇게 바싹 구우면 안되구... (다른 것 들어보이며) 보세요,
들어오는 홀매니저.
홀매니저 : (툭 치고) 점장실에 좀 가봐.
영은 : 네?
홀매니저 : 너 찾으신다.
영은 : 누가요?
#67. 점장실
들어오는 영은.
창가에 등 돌려 서있는 두식. 돌아본다.
영은 : 저어...부르셨습니까.
두식 인상이 대번에 굳는다. 아까 그 난리 치던 여직원이잖아?
두식 : 자네가 김영은이야?
영은 : 죄송합니다. 아까는... (얼굴 빨개져서) 다신 그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두식 : ...(살피듯 본다)
영은 : 죄송합니다.
두식 : ...만나서 반갑다. 내가 수현이 애비다.
영은 : !
제6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