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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보일까봐] 07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9.04.04|조회수380 목록 댓글 0

[눈물이 보일까봐] 07











#1. 파인 외경 (낮)



#2. 점장실 (낮)


두식 앞에 서 있는 영은.


두식 : 나 수현이 애비다.

영은 : !

두식 : 나랑 어디 나가서 차나 한 잔 하자.

영은 : ...

두식 : (일어난다) 옷 갈아입구 밖으루 나오너라.

영은 : 네.


인사하고 밖으로 나가는 영은.

두식, 그 모습을 찬찬히 살피고 있다.



#3. 커피숖 (낮)


두식과 찻잔 놓고 마주 앉아있는 영은. 긴장하고 있다.


두식 : 수현이랑 언제부터 만나기 시작했냐?

영은 : 네? 네, 저어... (곤란하다)

두식 : 말하기 어려운 모양인데... 내 단도직입적으루 얘기하마. 그 놈이 애정결핍이야.

         에미 없이 자라놔서 그저 지 맘에 드는 여자는 꼭 꺾어놔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거든?

영은 : ...

두식 : 나이두 어려뵈는데... 혹시 상처 입을까 걱정 돼서 하는 소리다.

         결혼날까지 잡은 녀석이야. 만나면 무조건 너만 손해다. 무슨 말인지 알겠냐?

영은 : ...

두식 : 일찌감치 정리하구 좋은 인연 만나거라. 지금 수현이랑 결혼할 아이 약 먹구 병원에 드러누웠다.

영은 : (놀라) 약을 먹어요? 어쩌다가요?

두식 : (되려 어이없다)

영은 : (착잡해진다) 저 때문인가요?

두식 : (헛기침) 만나지마라. 알겠냐? 무조건 헤어져. 사람 잡을 일 있냐? 나랑 약속하자.

영은 : ...

두식 : (버럭) 왜 대답이 없어!!

영은 : ...네.

두식 : 철이 없어두 정도가 있지! 어딜 주인 있는 남잘 넘봐! 그런 거 니 애비가 가르쳤냐, 에미가 가르쳤냐!

영은 : 죄송합니다.

두식 : 세상에 젤 나쁜 짓이 남에 물건 손대는 거하구 남에 사람 가로채는 거다. 아무리 남자가 너 좋다구 달려들어두,

         아닙니다, 그건 사람할 짓이 못됩니다, 그러구 피해야 그게 되먹은 사람이지! 안그러냐?

영은 : 네. 그렇습니다.

두식 : 정신 똑똑히 차리구, 만나자 그러면 아니 됩니다, 그래! 알겠냐?

영은 : 알겠습니다.

두식 : 그럼 일어나자.

영은 : 네.


영은, 급히 따라 일어나다가 실수로 물컵을 툭 쳐서 두식 쪽으로 쏟고 만다.

허둥지둥 일어나 냅킨으로 마구 닦아주는 영은.


영은 : 죄송합니다. 어쩌죠?

두식 : (털며 일어난다) 괜찮다.

영은 : (글썽하며) 오늘 물하구 인연이 깊으신가 봐요. 죄송합니다.


열심히 옷과 테이블을 닦는 영은. 내려다보는 두식.



#4. 파인 주차장 (낮)


승용차에서 내리는 영은. 인사하고 차 떠나는 것 바라본다.



#5. 동 주방 (낮)


개수대에서 그릇을 씻는 영은. 다가오는 동규.


동규 : 어떻게 된거냐?

영은 : 네?

동규 : 사장이 널 왜 보자 그래? 너 뭐 큰 죄졌냐?

영은 : 아,아니예요! 이거 다 씻은 거죠? 갖다놀께요!


애써 태연히 그릇 안고 돌아선다.



#6. 병실 (낮)


일어나 침대 벽에 기대고 있는 혜경. 곁에 서서 내려다보고 있는 수현.


혜경 : 통 잠이 안오길래... (쓸쓸히 본다) 잠을 자야 괴로운 걸 잊을 수가 있는데 통 잘 수가 없었어. 그래서 몇 알 삼킨 거야.

수현 : (그 속 다 안다) ...

혜경 : 원래 우리 엄마가 호들갑이시잖아.

수현 : 속은 좀 어때.

혜경 : 괜찮아. 조금 메슥거리기는 하는데... 괜찮을 거야.

수현 : 뭐 좀 마실 수 있겠어? 물 줄까?

혜경 : (애틋하게 본다) 수현씨.

수현 : (본다)

혜경 : (와락 끌어안으며) 눈 뜨구 수현씨가 곁에 있을 때, 나 정말 기뻐서 비명 지를 뻔했어. 너무 고마워. 와줘서 너무 고마워.

수현 : (떼놓으며 복잡해진다)

혜경 : 이걸로 됐어. 다 됐어. 이제 더이상 바라는 거 없어.

수현 : 혜경아.

혜경 : 응?

수현 : 앞으론 이런 일 벌이지마. 정말 죽을 거 아니면.

혜경 : (잠깐 굳었다가)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수현 : ...

혜경 : 나 다 정리 했어. 인제 포기했어. 사람 마음 돌리는 일이, 억지 쓴다구 될 일이겠어?

수현 : (본다)

혜경 : (미소) 가 봐. 가두 괜찮아. 그 친구한테 가서 행복하게 잘 지내라. 난 괜찮아.


눈물 글썽이며 돌아눕는다.


수현 : 그래, 그럼 갈께. 몸조리 잘하구... 잘 지내. 언제 인연 닿으면 또 만나자.

혜경 : (의외의 반응에 질린다)

수현 : 어머님께는 인사 못드리구 간다. 잘있어.

혜경 : (급히 일어난다)


파르르 떠는 혜경. 수현 사라진 문을 바라보며 치를 떨더니 분을 못이겨 손등에서 주사바늘을 확 뽑는다.

링거병을 문에 던져버린다. 산산이 박살나는 링거병.



#7. 병원 입구 (낮)


병원문 나서는 수현. 착잡하다. 담배 한 대 붙여문다.



#8. 영은집 앞길 (낮)


퇴근하는 영은. 한쪽에 기다리고 서 있는 수현 모습이 보인다.

깜짝 놀라서 얼른 몸을 감추는 영은. 멀찌기 숨어서, 왔다갔다 하는 수현을 지켜본다. 속상하고 마음 아프다.



#9. 시간경과 (낮-저녁)


날이 어둑어둑해져온다. 웅크리고 앉아있는 영은.

이윽고 포기한 듯 돌아서서 가는 수현.

그 뒷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는 영은. 수현 모습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본다.



#10. 파인유통 본사 사장실 (저녁)


통화하고 있는 두식.


두식 : 그래, 그럼 부탁해. 준비 차질 없도록 하라구...그래, 수고해.


들어오는 정희. 소파에 앉으며 지켜보고 있다.


두식 : 어, 윤실장... 퇴근할려구?

정희 : 저어 (새침하다가) 사장님 요즘 회사 일 너무 소홀히 하시는 거 아닌가 싶어요.

두식 : 내가?

정희 : 좋은 소식... 언제쯤 구체적으로 듣는 건가요.

두식 : 어? 어어.... 뭐, 곧.

정희 : 저두 한번 뵙고 싶어요. 소개시켜 주세요. 어떻게 만난 분이세요?

두식 : ...내 첫사랑이야.

정희 : 다시 만나셨어요?

두식 : 음.

정희 : 혼자 되셨나 보죠?

두식 : 윤실장.

정희 : 네.

두식 : 나 자넬 늘 친누이 이상으루 생각해. 기뻐해주면 고맙겠어.

정희 : (섭섭하다) 그럼요. 기뻐요.

두식 : (미안한데) ...

정희 : (일어나며) ...수현이 여자친구 만나보셨어요?

두식 : 음, 만났어. 거 되게 순진한 아이드구만.

정희 : 수현이... 혜경이 깨나는 거만 보곤 바로 가버렸다 그러네요.

두식 : ...망할 놈.

정희 : 저 그럼 퇴근하겠습니다.


인사하고 딱딱한 얼굴로 방을 나서는 정희.



#11. 청과물 상회 (저녁)


순금과 일하고 있는 인옥. 가끔씩 인옥 눈치를 살피는 순금.


순금 : 얘, 인옥아,

인옥 : 왜.

순금 : 너 오늘 내 대신 수금 좀 해올래?

인옥 : 수금?

순금 : 아침에 물건을 넜는데 굳이 돈을 직접 받으러 오라 그러네.

인옥 : 그래?

순금 : 내가 약속이 있어서 그래. 좀 다녀 와.

인옥 : (본다)



#12. 파인 부근 길 (저녁)


쪽지 들고 주위를 살피는 인옥. 이윽고 레스토랑 앞에 다다른다.



#13. 동 홀 입구 (저녁)


들어오는 인옥. 홀매니저 다가온다.


홀매니저 : 어떻게 오셨습니까.

인옥 : 천안상회에서 수금 왔는데요.

홀매니저 : 혹시 박인옥 여사님이십니까.

인옥 : 네, 그런데요?



#14. 동 홀안 (저녁)


들어오는 인옥. 무드 조명이 켜진 넓은 홀 안에 아무도 없고 가운데 자리에만 꽃과 와인이 깔끔하게 놓여있다.

그리고 두식이 일어나서 반긴다.


두식 : 어서 와라.


인옥, 어이없이 둘러 보다가 가서 앉는다. 와인을 따라주는 홀매니저. 초가 예쁘게 켜져있다.


두식 : 여기가 우리 식당 일호점이다..

인옥 : (난감하다) 네에.

두식 : 저녁 전이지?

인옥 : ...아, 네.

두식 : (매니저 보고) 식사 준비해 줘.


홀매니저 인사하고 간다. 실내에 이제 두사람 뿐 아무도 없다.


두식 : 다 늙어 이런 짓 하는 거 쑥스럽다구두 생각했는데... 니가 여기서 밥을 한번 먹어 주면 두구두구 기념이 될 거 같아서...

         (수줍다) 폼을 조곰 냈다.

인옥 : ...

두식 : 자, 한 잔 들자.


잔을 드는 두식. 건배 하는 두사람. 복잡해지는 인옥.



#15. 시간경과


조명 은은한 가운데 식사하는 두사람. 아무도 없는 식당 안. 그리고 아무말 없는 두사람.

인옥, 아주 불편하다. 포크 내려놓는 인옥.


두식 : 왜 벌써. 마저 먹어.

인옥 : (입 닦고) 가볼래요. 늦었어요. 애들 기다려요.

두식 : (당황) 차는 마시구 가라.

인옥 : 아뇨. 갈래요. 영 불편하구 싫네요. (일어나는데)

두식 : (다급히 잡는다) 삼십분, 아니 십분만 있다가 가! 너한테 꼭 할 말이 있다.

인옥 : (할 수 없이 앉고) 얼른 말씀 하세요.

두식 : ...(본다)

인옥 : ...

두식 : 너 혹시 방앗간집 덕규 기억나냐? 너 좋다구 무척 쫓아다녔지 그 놈두.

인옥 : ...기억나요.

두식 : 엊그제 그놈 간암으루 죽었다.

인옥 : ...그래요?

두식 : 자구 일어나면 곁에 있던 놈들이 하나씩 둘씩 죽었다구 소식이 날라와.

         우리두 인제 길게 살아야 한 이십년...그거 눈 두번만 꿈뻑 하면 휙 지나가는 세월이야.

인옥 : ...

두식 : 아들놈이라구 하나 있는데 입만 열면 아버지처럼은 안 살겠다구 그런다. 걔가 날 무척 싫어하드니...

         (헛웃음) 급기야는 짐싸서 나가버렸다.

인옥 : (본다)

두식 : 그동안 눈 떠서 잠들 때까지 오로지 돈만 벌었는데...오늘 아침 문득...내가 헛살았구나 싶드라.

         내가 뭘 위해서 살았나 모르겠다.


부스럭거리며 작은 보석함을 꺼내는 두식.


두식 : 이거 ... (건넨다) 열어 봐.


조심스레 열어보는 인옥. 금반지 한 개가 들어있다.


두식 : 삼십 년 전에...너한테 줄려구 사뒀던 거야. 평생 못주나 싶었지.

인옥 : (멍해진다) ...

두식 : 돈이구 자식이구 다 소용없다. 나는 그저 너랑 같이, 남은 한 이십년...

         그동안 못다 푼 정 나누며 지낼 수만 있으면 아무 원이 없겠다.

인옥 : ...

두식 : 그저 니 얼굴만 바라봐두, 이십 년...너무 짧다, 인옥아.

인옥 : ...(눈물 맺힌다)



#16. 수현 원룸 외경 (밤)



#17. 동 원룸 안 (밤)


들어와서 눕는 수현. 피곤한듯 눈 감았다가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을 본다. 불빛이 깜박거린다.

무심히 들고 메시지를 듣는다.


영은 : (E) 저 영은이예요. (화나서) 종수씨한테 돈을 주신 건 잘못하신 거예요. 그건 제가 갚아야 하는 거예요...

         정말 실수하는 거예요...아무리 사랑...!


인상이 달라지는 수현. 두번째 메시지 안내가 나온다. 버튼 누른다.


영은 : (E) 죄송합니다...녹음이 잘 안됐죠? ....저 영은인데요... (한참 말이 없다가) ...보고싶어요.


자리에서 일어나는 수현.



#18. 영은집 외경 (밤)


울리는 전화벨.



#19. 동 마루 (밤)


방에서 나오는 지은. 전화 받는다.


지은 : 여보세요....


얼른 방에서 뛰어나오는 영은. 손짓을 마구 하며.


영은 : (작게) 없다 그래! 나 없어!

지은 : 영은이 없는데요... 네, 아직 안들어왔어요.



#20. 수현 원룸 (밤)


통화하는 수현.


수현 : 조수현이라고 합니다...영은씨 들어오면 전화 부탁한다구 전해주세요...



#21. 영은집 마루 (밤)


지은 : 네, 알겠습니다.


전화 끊는 지은.


지은 : 조수현이래. 점장 맞지? 김영은! 도대체 어떻게 하구 다니는 거니?

영은 : ...앞으로 또 오면 계속 없다 그래, 언니.


기운없이 돌아서는 영은.



#22. 영은집 외경 (밤)



#23. 영은방 (밤)


나란히 누워있는 영은과 지은. 그리운 마음 사무치는 영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 흐른다.

훌쩍하는 소리를 듣는 지은.


지은 : 너 우니?

영은 : 아냐.

지은 : 감기 걸렸어?

영은 : 응.

지은 : 너어...그사람하구 왜그러는데?

영은 : 에이, 뭐가.

지은 : 내가 아무래두 언니로서, 너한테 인생강의 좀 해야겠다. 야, 남잔 다 그래. 저 좋다는 여자 싫다는 남자 없어. 자꾸 속지마.

영은 : ...

지은 : 어우, 재수 없어. 도대체 그 인간 뭐가 그러니? 밥맛, 밥맛. 난 그런 타입 딱 싫드라.

         키는 멀대같애가지구, 온갖 허탈한 분위기는 다 잡지?

영은 : (웃고) ...맞아.

지은 : 니 타입 아니야. 그런 남자하구 사귀면 첨엔 좋을 거 같지? 나중에는 고생 골치 이만저만 아니다. 어우, 재수없어.

         목소리는 왜그래? 무게 뎅뎅이 잡구 얘기하드라. (흉내) 조수현이라구 합니다- 도대체 왜 멋있지두 않은데

         멋있는 척 하냐 이거야. 아우, 나는 거저 준대두 싫다. 나한테두 혹시나 그런 자식 붙을까 겁난다.

영은 : ...

지은 : 지가 왕자야, 뭐야. 왜 우리 순박한 영은이를 울려? 혼자 잘사는 내동생 왜 흔들어 놔?


눈물 쓱 닦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영은.



#24. 동 마루 (밤)


방에서 나오는 영은. 인옥방에서 불빛이 나오고 있다.

욕실로 들어가려다가 살그머니 인옥방을 기웃하는 영은.



#25. 인옥방 (밤)


우두커니 앉아 보석함을 들여다 보는 인옥. 만감이 어린다.


영은 : (문 조금 열고) 안 주무세요?


얼른 보석함을 감추는 인옥.


인옥 : 어, 아, 아직 안 잤니?

영은 : (다시 문 닫고) 주무세요.

인옥 : 영은아,

영은 : 네?


들어오는 영은.


인옥 : 너 나가는 식당...이름이 뭐랬지?

영은 : 파인스.

인옥 : 맞구나. 긴가민가 했는데....그거 체인점이지?

영은 : 네.

인옥 : 오늘 엄마...엄마 아는 사람이 거기 갔었는데...거기 무척 크구 좋다면서?

영은 : 누가요?

인옥 : 어, 엄마 아는 고향 사람 있어.

영은 : (무슨 소린가 싶다) ...

인옥 : ...영은아,

영은 : 네?

인옥 : ...(시선 돌린 채) 고생 많다.

영은 : (당황) 어, 엄마? (확 웃는데)

인옥 : 엄마는 니가 늘 걱정이야. 어디 나가 사고나 안 저지를까, 남 고생이나 안 시킬까 늘상 그게 걱정이다.

         식당 그만 관둬! 집에서 밥이나 해라.

영은 : (굳는다) 아뇨, 저 그냥...

인옥 : 관두라면 관둬.

영은 : 엄마, 저 거기 다니구 싶어요! 무슨 말인지 모르세요? 제 직장이예요.

         왜 제 직장 제 일, 하나두 인정 안해주세요? 제가 그렇게두 못 미더우세요?

인옥 : (놀란다) 얘가 왜이래? 너 지금 엄마한테 대드는 거야?

영은 : (금방 스스로 놀라서 반성) ...죄송해요.


이불 꺼내는 인옥. 물끄러미 보는 영은.



#26. 커피숖 (낮)


들어오는 수현. 기다리고 있는 정희.


정희 : 여기야.

수현 : (곁에 앉는다) 왠일이세요.

정희 : (딱하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거야?

수현 : ...아버진 잘 계세요?

정희 : (피식) 사장님 요즘 연애하느라구 정신 없으시다. 너 혹시 알구 있니?

수현 : 연애요?

정희 : 몰랐구나. 곧 좋은 소식 있을 거라드라. 첫사랑이시래.

수현 : ...(어이없다) 실장님.

정희 : (피식) 왜? 나 위로할려구? 지금 남 걱정까지 할 여유 없잖아.

수현 : ...(복잡한데)

정희 : (본다) 그건 그거구...그 친구...니 여자친구 말인데...

수현 : (본다)

정희 : 정말 그렇게 좋은 거니?

수현 : (씁쓸히)

정희 : 사장님이 그 친구 만나셨다.

수현 : 아버지가요?

정희 : 내가 느이집 일에, 또 니 일에, 뭐라 왈가왈부할 처지는 아니지만...현실을 좀 생각하구 냉정하게 판단하길 바래.

         니 나이 벌써 몇이야. 사춘기 소년처럼 왜그래.

수현 : (스치는 생각) 만나서 뭐라 그러셨대요?

정희 : 만난 일에 대해선 별 말씀 없으셨어. 사장님 입장 그만큼 완강하다는 거 알고 있으라구 하는 소리야.

수현 : ...

정희 : 혜경이한테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그집서 지금 얼마나 벼르구 있는지 알어?

         출자하기로 한 거 취소하는 날엔 그 손해를 누가 다 감당해? 걱정이 태산이다, 수현아.

수현 : ...



#27. 파인 주차장 앞길 (낮)


퇴근하는 영은. 한쪽에 기대고 서서 기다리는 종수.


종수 : 잘있었냐.

영은 : !

종수 : 시간 있냐? 어디 가서 차 한 잔 하자.

영은 : 다친 덴 괜찮아요?

종수 : 다친 데? 누가 어디 다쳤냐?

영은 : (한숨)



#28. 커피숖 (낮)


마주 앉아있는 영은과 종수.


종수 : 그 자식한테 돈 도루 갖다 줬다.

영은 : (멈칫)

종수 : 너 돈에 팔려 질질 끌려다니는 꼴, 불쌍해서 더는 못봐주겠다.

영은 : ...잘하셨어요.

종수 : (멈칫)

영은 : 안 그래두 그 돈...돌려달라고 말할 생각이었어요.

종수 : 뭐?

영은 : 갚으면 제가 갚아야 되는 거니까요.

종수 : (피식) 너 갑자기 되게 야물어졌다?

영은 : ...

종수 : 그 자식 계속 만나냐?

영은 : ...

종수 : 정리해라. 내가 인생 선배로서 충고하는데...

영은 : 정리 했어요.

종수 : (굳는)

영은 : 저어, 먼저 일어날께요. 집에 일찍 가야 되거든요?

종수 : ...차였냐?



#29. 버스 정류장 (낮)


영은을 쫓아오는 종수.


종수 : 차였어? 바로 말해. 차였냐구!

영은 : 아니예요.

종수 : 아니긴 뭐가 아니냐! 거 봐! 내가 뭐랬냐? 진작 정신 차리랬지!

영은 : 아니예요. 그만 가요.

종수 : 너두 요번에 인생 험하구 고단한 거 크게 배운다. 임마, 기운내. 사람 다 이렇게 크는 거다.


버스 온다.


영은 : (뛰어가며) 가요!


지켜보다가 작심한 듯 쫓아가는 종수.



#30. 영은집 앞길 (낮)


걸어오는 영은. 수현 앉아있던 자리가 비어있다. 허전하다. 걸음 빨리하고 걷는다.

순간 뒤에서.


수현(E) : 영은씨.


깜짝 놀라 얼어붙는 영은. 휙 돌아본다.


영은 : 점장님.

수현 : 나 이제 점장님 아니예요.

영은 : 저, 지금 바쁘구요, (시계보며) 약, 약속두 있구요... 다음에 뵙죠. 그럼 안녕히 가세요.


고개 푹 숙이고는 달려간다.

어이없는 수현. 쫓아가 잡는다.


수현 : 영은씨.

영은 : (얼굴 빨개져서) 가세요.

수현 : 얘기 좀 해요. 왜그래요?

영은 : ...

수현 : 그날 역에 못 나가서 화 많이 났어요?

영은 : 아,아뇨.

수현 : 아침 일찍 급한 일이 좀 생겼어요. 정말 미안해요.

영은 : 괜찮아요. 저두 안 나갔어요.

수현 : (멈칫)

영은 : (힛 웃고) 저 안 나갔어요. 앗, 그럼 점장님두 안 나오셨어요?


둘다 멍하니 마주 보다가 하하 웃고 만다.

영은, 금방 웃으면 안되지, 하는 생각이 든다.


수현 : 가요. 맛있는 거 사줄께요.

영은 : 아뇨. 가보세요. 저 바빠요.

수현 : 우리 아버지 만났죠?

영은 : 네?

수현 : ... 많이 당했어요?

영은 : 아아뇨. 당하긴요? 제가 왜요?

수현 : (잡아끈다) 가요.


순간, 뒤에서 슬슬 다가오는 종수. 수현 팔을 잡아챈다.


종수 : 너 지금 또 뭐하냐?

영은 : !

수현 : 이거 놓구 얘기 하죠.


대뜸 한방 후려갈기는 종수. 엉겁결에 쓰러지는 수현.


영은 : (막아서며) 이러지 마세요! 왜이래요!


종수, 영은을 밀치고 다시 잡아일으키며 후려친다. 반격하려는 수현을 발로 짓밟고 찬다.


종수 : 지난번에 내가 경고했지? 너 얘 가지구 언제까지 놀래?

         찼으면 찬거지 또 나타나서 뭐하자는 건데? 너 그렇게 할 일이 없냐?

영은 : (다시 말리며) 찬 거 아니예요. 종수씨, 이러지마요. 그런 거 아니예요!

종수 : 비켜!

수현 : 영은씨 들어가요.

종수 : (다시 치며) 들어가긴 뭘 들어가? 니 걱정이나 해라, 임마.


다시 둘이 치고 받고 한다. 말리느라 정신 없는 영은.

언덕길 올라오던 인옥. 이 광경을 보고 휘둥그레진다.


인옥 : 뭐하는 거야?

영은 : 엄마,


종수, 흠칫 보더니 발길질을 멈춘다.

영은 손을 우왁스레 잡아끌고 안으로 들어가는 인옥.

널브러진 수현을 향해 침 퉤 뱉는 종수.


종수 : 담에 또 기웃거리면 그땐 숨통 끊어지는 날인 줄 알어!


유유히 사라진다.



#31. 영은집 마루 (낮)


인옥 앞에 앉아있는 영은.


인옥 : 누군데.

영은 : (말못하고)

인옥 : 누구냐구 묻잖아.

영은 : 전에...우리가게 점장님이었던 사람.

인옥 : 저번에 얘기한 그 놈? 너 가지구 희롱했다던 그놈?

영은 : 희롱한 적 없어요, 엄마.

인옥 : 애인두 있다면서!

영은 : (그건 그렇지만) ...

인옥 : 지금은 뭐하는데?

영은 : 그냥...놀아.

인옥 : 보자보자하니까 별 놈이 다 덤벼! 너 도대체 어쩌구 다니는 거야? 응?

영은 : ...좋은 사람이예요.

인옥 : 뭐가? 니 눈에 안 좋은 사람 있어?

영은 : ...

인옥 : 너 당분간 외출하지마. 그 가게 관두구! 거기 당장 관둬, 알았지?

영은 : (복잡한데) ...



#32. 종수 지하창고 앞길 (밤)


차에서 내리는 혜경. 주소 쪽지 들고 주위 살핀다.



#33. 동 창고 안 (밤)


누워있는 종수. 문 두드리는 소리에 벌떡 일어난다.


종수 : 누구야.


문 열어주면 들어오는 혜경. 흠칫 놀라는 종수.


혜경 : 들어가두 되니?

종수 : ...


들어오는 혜경. 안을 둘러보고 좀 놀란다.


혜경 : 이런 데 살아?

종수 : 여기 어떻게 알았어요?

혜경 : 안그래두 주소 알아내느라구 애 먹었어. 어디 앉을까? 앉으란 말두 안하니?


아무데나 털썩 앉는 혜경. 둘러본다.


혜경 : 이런 데 살면 재밌겠다. 상상력이 막 솟겠다. 너무 멋진걸? 나중에 좀 빌려주라.

종수 : ..용건이 뭡니까.

혜경 : 너 요즘 무척 마음 아프지?

종수 : 허,

혜경 : 여자친구 잃구 나서 얼마나 힘들까 싶어서 위로해줄려구 왔어.

종수 : 여자친구? 누가 내 여자친군데?

혜경 : 뭘 빼. 다 아는데.

종수 : 맘대로 갖다 붙이지 마.

혜경 : (일어난다) 나가자. 한 잔 안 할래?

종수 : (본다)



#34. 호텔 바 (밤)


술잔 놓고 혜경과 마주 앉아있는 종수.

종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는 혜경. 눈길 피하는 종수.


혜경 : 너 참 이쁘게 생겼다.

종수 : (피식)

혜경 : 한 번 내 작업실루 놀러와라. 일자리 만들어줄께. 밥 벌인 해얄 거 아냐.

종수 : ...본론만 얘기해요.


혜경, 잠자코 봉투 하나 내려놓는다.


종수 : 뭔데.

혜경 : 말 놓지마. 은근슬쩍 말 놓는 버릇은 어디서 배웠니?

종수 : (본다)

혜경 : 생활비 써. 나중에 필요하면 더 줄께.

종수 : ...(봉투 내려다보는데) ...

혜경 : (피식) 무슨 뜻인지 몰라? 니가... 걔들 좀 떼놔. 무슨 수단 써두 좋아. 뒷일은 내가 다 책임질께.


물끄러미 보다가 술 한잔 들이키는 종수.


종수 : 너두 증말 드럽게 치사하게 산다. 꼭 이러구 구질구질 살아야 되냐?

혜경 : ...

종수 : (피식) 고맙다. 잘 쓸께.


봉투를 훅 열어서 눈으로 돈을 세어보는 종수.



#34. 인옥방 (밤)


엎드려 오래된 앨범을 보는 인옥. 스무살 무렵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울리는 전화벨. 깜짝 놀라 받는 인옥.


인옥 : 여보세요,



#35. 두식집 거실 (밤)


두식, 통화 하고 있다.


두식 : 어, 그 그날 잘 들어갔나 싶어서...



#36. 인옥방


인옥 : 네...잘 들어왔어요.

두식(E) : ...그, 그럼 됐다.

인옥 : ...

두식(E) : 그래, 그럼 잘자거라.

인옥 : ...오빠,

두식(E) : 왜.

인옥 : 좀 봐요.



#37. 커피숖 (낮)


한쪽에 앉아있는 두식. 들어오는 인옥. 마주 앉는다.


인옥 : 일찍 오셨어요?

두식 : 아니야. 금방 왔다.


둘다 좀 멋적다.


두식 : 그날...내가 그날 좀 주책을 부렸지?

인옥 : 아뇨, 오빠...

두식 : (본다)

인옥 : 실은요...너무 늦었지만...나 이제라두 사과할려구요.

두식 : !

인옥 : 보따리 싸가지구 도망가기로 해놓고 같이 못간 거...용서해주세요.

         오빠 말 맞아. 나 벌 받았어. 오빠한테 못할 짓 해서 지금 이렇게 고생하며 사나 봐.

두식 : (당황) 그거 그날 어떻게 말을 하다보니...

인옥 : 아무튼요. 아무튼 살아서 다시 오빠 만나고, 이렇게 사과할 기횔 얻게돼서 기뻐요.

         그때...우리 아버지 농약 마시구 돌아가신다구 그러셨어요. 오빠랑 나 연애하는 거 알구 그대로 앓아누우셨잖아.

두식 : ...

인옥 : 보따리 다 싸놓구 밤중에 신발을 신는데...아버지 방에 불이 환해요. 딸 하나 밖에 없다구 오죽 애지중지 하셨어요?

         나...차마 발길을 뗄 수가 없었어요.

두식 : ...이해한다.

인옥 : (글썽한다) 두구두구 오빠 생각했어요.

두식 : (뭉클한데)


보석함을 내려놓는 인옥.


두식 : ?

인옥 : (결심) ...이거 안 받을래요.

두식 : 인옥아,

인옥 : 나...다신 결혼같은 거 할 생각 없어요. 애들하구 살거예요.

두식 : (굳는)

인옥 : 이번 만남...그냥 좋은 추억으루 간직하구 살께요. 이제 연락하지마세요.

두식 : !



#38. 두식집 외경 (밤)



#39. 동 거실 (밤)


홀로 술잔 기울이는 두식. 썰렁한 실내를 휘 둘러본다.



#40. 수현 원룸 안 (밤)


길게 누워있는 수현.



#41. 영은방 (밤)


전화기 앞에 웅크리고 있는 영은.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한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온다.

이윽고 결심한 듯 옷을 후다닥 갈아입고 가방 들고 나선다.



#42. 수현 원룸 앞길 (밤)


들어오는 영은. 여기가 맞나 살핀다.



#43. 수현 원룸 복도 (밤)


조심스레 들어오는 영은. 문 앞에 서서 벨 누른다. 벽쪽에 몸을 붙이고 긴장하며 기다린다.


수현(E) : 누구세요?


잠시후 문이 열리고 안에서 나오는 수현. 환해지더니,


수현 : 영은씨?

영은 : ...(긴장)

수현 : 들어와요.

영은 : 좀...좀 어떠세요? 괜찮으세요?

수현 : 그럼요.

영은 : (걱정)

수현 : 들어와요. 차 한잔 해요.



#44. 동 원룸 안 (밤)


얼른 자리를 만들어주는 수현. 얼굴 언저리 여기저기에 상처가 그대로 있다.


영은 : 죄송합니다. 저 때문이예요.

수현 : 뭐가요.

영은 : 그사람...뭘 좀 오해해서 그랬어요.

수현 : 괜찮아요, 영은씨. 오해 좀 하면 어때요.

영은 : 사과두 드리구...또 드릴 말씀두 있구...그래서 왔어요.

수현 : 얘기 해요.

영은 : ... 집에 들어가세요.

수현 : (본다)

영은 : ...혹시 저 때문인가요?

수현 : 네.

영은 : 에이... (웃고) 설마요.

수현 : (웃고) 정말 그래요. 영은씨 마음 놓구 만나고 싶어서 나왔어요.

영은 : (뭉클해지며 보는데) ...



#45. 원룸 건물 앞길 (밤)


승용차 와서 선다. 차에서 내리는 두식. 건물을 올려다보더니 미간 찌푸린다.



#46. 동 원룸 안 (밤)


찻잔 놓고 나란히 앉아있는 수현과 영은.


영은 : 아버님이 참 인자하시구 좋으시던데요? 걱정이 많이 되시는 모양이예요. 집에 들어가세요.

         전 아버지 없이 자라서요... 아, 초등학교 이후로요. 아버지라는 이름만 들어두 마음이 막 뭉클뭉클해요.

수현 : (본다)

영은 : 그날 뵙구서요...무척 부러웠어요. 아, 나두 저렇게 나를 위해주는 자상한 아버지가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하라는 거 다 할텐데...집에 여섯시까지 들어오라면 다섯시까지 들어가구 막 그럴텐데...

수현 : ..

영은 : 들어가세요. 혹시 마음 안 맞는 점이 있어두요... 곁에서 보살펴드리면서, 곁에서 극복해나가세요.

         얼마나 외로우시겠어요. (씩 웃는데)


그 순간 문이 확 열리더니 성큼 들어서는 두식. 눈에 불 커진다.


수현 : (일어나며) 오셨어요.

영은 : (창백해진다)

두식 : 이거! 이거 뭐야? 니들 여기 살림 차렸어?

수현 : 여기 어떻게 아셨어요.

두식 : 어떻게 된거냐니까! 둘이 살어? 응?

영은 : (난감하다) 아, 아닙니다. 잠깐...

두식 : 나가라!


영은을 밖으로 확 떠미는 두식.


수현 : (말리며) 아버지!

두식 : (영은보고) 너 내가 하는 말 뭘루 들었냐? 순진해보이드니 이거 뒤로는 순 내숭덩어리잖아?

         남에 남자 건들지 말라구 내 말했냐, 안 했냐?

영은 : (얼굴 붉어진다) 죄송합니다.

두식 : 죄송이구 뭐구 필요없어! 가거라!


인사하고 밖으로 나가는 영은.


수현 : 영은씨,

두식 : (붙잡고) 앉아!



#47. 동 원룸 앞길 (밤)


안에서 나오는 영은. 기운없이 걷는다. 비 쏟아진다.



#48. 원룸 안 (밤)


두식과 마주 앉아있는 수현.


두식 : (안을 둘러본다) ...꼴 좋다.

수현 : ...

두식 : 이게 독립이냐? 나와서 참 잘두 산다. 얼굴은 어디서 터졌어?

수현 : (화났다) 영은씨한테 어떻게 그렇게 하세요?

두식 : 뭘 어떻게 해?

수현 : 아버지 아들이 좋아하는 여잡니다. 지난번엔 만나서 또 뭐라 그러셨어요?

두식 : 뭐라 그랬는지 다 들었을 거 아냐!

수현 : ...

두식 : ...니 자리 고대루 놔뒀으니까 식당일 계속 해라. 내 백번 양보한다.

수현 : 이대로 살겠습니다. 직장 알아보구 있는 중이예요.

두식 : 뭐어?

수현 : (참다가) ...아버지 결혼하십니까?

두식 : (움찔) 누가 그래?

수현 : 좋은 소식 있을 거라든데요?

두식 : 누가 그러드냐구! 윤실장 그래?

수현 : 어떤 분입니까?

두식 : ...

수현 : 아버지 첫사랑이라면서요?

두식 : (서둘러 일어난다) 당장 짐싸서 나가자.

수현 : 아뇨.... 그냥 가세요. 저 이대로 살 겁니다.

두식 : (한대 치며) 이거 순 얼빠진 놈! 어디서 여잘 골라두 꼭 지에미 같은 촌뜨기한테 빠져가지구...

수현 : (일어난다) 저 나가볼께요. 안녕히 가세요.


겉옷 들고 일어나는 수현.


두식 : (우왁스레 잡아끌며) 어딜 나가? 얼른 짐싸! 짐 싸서 들어가자.

수현 : (뿌리친다)

두식 : (후려친다) 이 빌어먹을 놈! 천하에 못된 자식!

수현 : ...

두식 : 애비 말을 개코같이 듣지? 너 이 놈 자식 도대체 왜이러구 사냐? 왜 말을 안 들어?

         내가 너한테 못해준 게 뭐있길래? 내가 얼마나 피눈물 흘려 널 키웠는데...

수현 : 아버지 못지 않게 저두 피눈물 흘렸습니다. 그 말씀 이제 지겹습니다.

두식 : 뭐어?


마구 후려 치다가 제풀에 풀썩 쓰러진다. 놀라는 수현.


수현 : 아버지?



#. 영은집 외경 (밤)



#. 영은방 (밤)


나란히 누워있는 영은, 지은.

이런저런 생각에 잠못 이루는 영은. 뒤척이다 돌아눕는다.


지은 : 너 오늘 또 그 남자 만났지? 그지?

영은 : ...

지은 :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니? 얘기 좀 해봐.

영은 : ...

지은 : 언니 좋다는게 뭐니. 얘기 좀 해봐. 왜 전화는 피하구, 그러다가 또 만나구, 도대체 왜 그런 난리부르스를 치니?

         그만 좀 놀아나라. 내가 얼마나 충고했어?


곰곰 자기 생각에 빠져있는 영은.


영은 : 언니...우리 집...옛날에 말이야...아버지랑 같이 살았던 그집, 생각 나?

지은 : 집? 춘천에?

영은 : 응...마당에 연못 생각 나?

지은 : 얜 새삼스럽게 옛날집 얘기는 왜해?

영은 : 나 어릴 때, 거기 빠져서 난리난 적 있잖아. (쿡 웃고) 지금 생각하면 허벅지까지나 올래나?

         근데 그 나이땐 그게 엄청 깊은 물이었어.

지은 : (피식) 맞어. 그거 순 똥물이었잖아. 모기만 드글드글 끓구.

영은 : 내가 막 우니까 엄마랑 아버지랑 달려와서 구해주셨는데...그날밤에 두분이 나때문에 막 싸우셨거든?

지은 : 그랬니? 별 걸 다 기억한다, 너.

영은 : 아버지는 엄마가 애한테 신경을 안 써서 그런 일이 생긴 거라 그러구,

         엄마는 또 아버지가 괜히 연못을 파서 그렇다 그러구...밤새도록 연탄집개 붕붕 날라다니구 난리두 아니게 싸웠어.

         그러구 얼마 안 있다 헤어지셨잖아.

지은 : ...(웃고) 우리 엄마 요즘 연탄 안 때서 섭섭할 거야. 연탄집개가 엄마 비장의 무긴데...

영은 : 아까... 비 맞구 오는데, 그 연못...아직두 있을까, 갑자기 되게 궁금한 거 있지?

지은 : 너두 너다...누가 너한테 지금 그런 거 물어봤냐? 그딴 얘기 왜 하구 있어?

영은 : ..그러게.

지은 : 그 남자 말이야...애인이랑은 완전히 헤어졌어? 응? 응?


말없이 그냥 돌아눕는 영은.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 흐른다.


영은 : ...어떡하지, 언니.

지은 : 뭐가.

영은 : ...나...그사람이...정말루 좋아...


손등으로 눈물 쓱 훔치는 영은. 어이없어 바라보는 지은. 베개 던진다.


지은 : 으이그! 이 꼴통!


얼른 다시 베개를 맞받아 던지는 영은. 둘이 한참 베개 싸움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뒤엉켜 웃는다.



#49. 두식집 외경 (낮)



#50. 두식방 (낮)


링거 꽂고 누워있는 두식. 곁에 앉아있는 수현. 착잡하다.

이윽고 가만히 눈 뜨는 두식. 눈 마주치면 서먹한 두사람.


수현 : ...좀 어떠세요?

두식 : ...

수현 : ...그럼 더 주무세요.


조용히 일어나 나가는 수현.



#51. 동 거실 (낮)


방에서 나오는 수현. 거실 소파에 기운없이 앉는다.



#52. 청과물 상회 (낮)


순금과 마주 앉아 국수 먹는 인옥.


순금 : 왠만하면 만나지 그랬어? 그냥 친구루 지내는 것두 싫어?

인옥 : ...

순금 : 하기야 뭐 남녀사이에 친구가 어딨겠니마는...

인옥 : 국수 다 퍼져. 먹어.

순금 : (먹으며) 그래두 그렇게 짤라버린 건 너무했다. 니 나이 몇이니? 좀있음 경은이 지은이 영은이 다 시집갈거구...

         그때 돼봐라. 누구 의지하구 살래?

인옥 : 의지하긴 누굴 의지해. 사람 다 혼자 사는 거지.

순금 : 그렇게 죽구 못사는 사람이었는데 어쩌믄 그렇게 빨리 정리가 되니? 그 오빠 늙구나니까 보기 싫디? 추하게 굴디?

인옥 : 그래.

순금 : 어머, 오빠.


인옥 뒤에 와서 서 있는 두식. 깜짝 놀라는 인옥.


두식 : 국수 먹냐?

순금 : 어서 오세요.

두식 : 인옥이 나 좀 보자.

인옥 : ...

두식 : 잠시면 된다. 순금아, 얘 좀 빌려가마.



#53. 공원 (낮)


나란히 걸어오는 두식과 인옥. 벤치에 다다르면 나란히 앉는다.


두식 : 니 딸들 좀 만나자.

인옥 : (흠칫 본다)

두식 : 내가 밥 한 번 내마.

인옥 : 오빠, 저번에 얘기 다 끝낸...

두식 : (OL) 안다. 니 뜻 알아. 그건 그거구 이건 이거다. 그냥 고향 외삼촌이다 그러구 밥먹자 그래봐.

인옥 : 사양할래요.

두식 : 니 마음 다 안다. 자식들 두려워서 니 인생두 못 찾구 이대루 죽을거냐?

인옥 : 그런 거 아니예요.

두식 : 아니긴 뭘 아니야? 앞으로 무조건 내가 시키는대로만 해. 만나자면 만나고 밥 먹자면 밥 먹어라.

인옥 : 싫어요.

두식 : 싫어두 할 수 없다. 내 생활신조가 한다면 한다는 거야. 니가 내 성미 다 잊어버렸구나.


휴대폰 하나를 턱 안겨주는 두식.


두식 : 선물이다. 인제 너는 내 손 안에 있다.

인옥 : 오빠,

두식 : (일어난다) 조만간 날 잡아 통보하마.

인옥 : (어이없다)



#56. 파인 외경 (낮)



#57. 동 주방 안 (낮)


일하는 영은. 민식, 다가온다. 다시 주방 매니저로서.


민식 : 너 말이다. 너 혹시 나중에 나랑 독립할 생각 없냐?

영은 : 무슨 말씀이세요?

민식 : 아, 내가 여기 드러워서 못 다니겠다.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두 정도가 있지. 안그러냐?

영은 : ...맞아요.

동규 : (고소하다) 오늘 새 점장님 온다면서요?


다가오는 종업원1.


종업원1 : 점장실에 좀 가봐.

영은 : 왜요?

종업원1 : 찾으신다.



#58. 점장실 앞 (낮)


노크하는 영은.



#59. 점장실 (낮)


들어오는 영은. 서류철 같은 것 정리하고 있는 수현.

깜짝 놀라는 영은. 멍하니 보다가.


영은 : (환해진다) ...나오셨어요?

수현 : 네. 영은씨 말대로 제자리로 돌아왔어요.

영은 : 너무 잘하셨어요! 참 잘됐네요.


씁쓸히 바라보는 수현. 꽤 비장하다.


수현 : 앞으로 우리 아버지 문젠 나한테 맡겨요. 아무 걱정 하지 말구 맘 놔요. 내가 다 알아서 해요. 곧 마음 풀리실 거예요.

영은 : 저어...

수현 : 중요한 건 영은씨 마음 뿐이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절대 흔들리지 말아요. 나만 믿고 따라와요...

         이따 나랑 저녁이나 같이 먹죠. 시간 있죠?

영은 : ...(미안한듯) 저어...저기요...저 오늘로 여기 관둬요.

수현 : !

영은 : (씩 웃고) 죄송합니다. 원래 월급 채울 때까지만 일할려 그랬어요.

수현 : 영은씨,

영은 : 괜찮습니다. 저녁은 뭐... 먹은 걸로 할께요. 안녕히 계세요.


웃으며 인사하고 뒷걸음질 치는데 발에 뭐가 걸려 비틀 넘어진다.

다가와서 붙잡아주는 수현. 무안한 영은.


영은 : 그럼...저 그만...

수현 : (본다) 좀 있어봐요! 도대체 뭐가 문젭니까? 아버지예요, 혜경이예요?

영은 : ...

수현 : 나...영은씨 만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살아있다는 기쁨을 느끼게 됐어요.

         지금까지 영은씰 만나기 위해 살아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예요.

영은 : ...(멍하니 보다가)

수현 : (따뜻하게 본다) 내 말 모르겠어요? 왜그렇게 자신이 없어요? 나 좋아하잖아요.

영은 : ...(당황하며) 고맙습니다!

수현 : ?

영은 : (꾸벅) 안녕히 계세요.


후다닥 나간다.



#62. 파인 앞길 (밤)


퇴근하는 영은. 쫓아오는 수현.


수현 : 영은씨.

영은 : ...

수현 : (어이없어) 이런 법이 어딨어요?

영은 : 가보겠습니다. 행복하게 잘사세요!

수현 : 영은씨!


손 흔들고 웃으며 후다닥 뛰어가버리는 영은.



#60. 영은집 앞길 (밤)


승용차에서 내리는 두식. 운전기사, 트렁크에서 박스들을 가득가득 내린다.



#61. 영은집 마루 (밤)


방에서 나오는 지은.


지은 : 누구세요?

운전기사 : 실례합니다.


문 열어주면 박스 안고 들어오는 운전기사. 갈비와 과자세트 같은 것.

방에서 나오는 인옥.


인옥 : 뭐예요?


뒤이어 들어오는 두식.


인옥 : (깜짝) 오빠.

두식 : 집이 아담하구 좋구나.

지은 : (인옥보고) 누구...

두식 : 나 느이 엄마 고향 오라버니다. 한 동기나 마찬가지야.

인옥 : (당황) 어떻게 집엘 다...

두식 : 들오란 말두 안하냐?

지은 : (눈치 살피고)

인옥 : 아, 안돼요. 나가요.


성큼 들어오는 두식.



#62. 영은집 앞길 (밤)


들어오는 영은. 눈물이 핑 돈다. 집앞에 다다랐을 때 검은 그림자가 서성거리고 있다. 다가가 살핀다.


영은 : ...(흠칫 놀라) 아버지?


제7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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