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보일까봐] 08
#1. 영은집 외경 (밤)
#2. 동 마루 (밤)
과일과 찻잔 놓고 둘러 앉아있는 인옥과 지은과 두식. 안절부절하는 인옥.
두식 : (신났는데) 느이 엄마에 아버지, 그러니깐 니 외할아버지가 바루 우리집 상전이었다.
돌아가신 어른 두구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그 어른 참 치사할 만치 격식 따지셨지.
한여름에두 맨발루 다니시는 걸 못 봤다.
지은 : (웃고) 맞아요. 외할아버지 그러셨어.
두식 : 그래두 인정은 참 많으셔서 동네 어려운 일은 다 나서 하셨거든.
우리 아버지구 어머니구 그 어른 아니었으면 다 일찌감치 배곯아 돌아가셨을게다.
내 지금이라두 그 신셀 갚아야지 도리가 아니겠나 싶어서... 수소문 해서 찾아온 거다.
지은 : 네에... (인옥 본다)
인옥 : (얼굴 빨개져있다) ...
두식 : 느이 엄마 나랑 남매처럼 지냈어. 삼촌처럼 여기구 앞으로두 어려운 일 있으면 의논하구 그래라.
내가 딸이 없어 그런지 아주 반갑다. 둘째라 그랬냐? 느이 엄마 젊을 때랑 똑닮았구나.
지은 : (웃음) 네! 다들 엄마랑 저랑 많이 닮았대요.
인옥 : 차 드세요. 식어요.
#3. 영은집 앞길 (밤)
영은과 아버지 성호. 나란히 앉아있다.
성호 : 엄마 건강은 어떠냐?
영은 : (명랑하다) 좋으세요. 요새 순금 아줌마네 가게에 나가시는데요.
몸 움직여 일하시니까 되려 아픈 덴 더 없는 거 같다구 그러세요.
성호 : (측은하게 본다)
영은 : 서울에 왜요? 출장 오셨어요?
성호 : 음.
영은 : (슬그머니) 식구들 궁금하셔서.... 여기 계셨던 거예요?
성호 : 그래...니들 얼굴이나 먼발치서 한번 볼까 그러구.
영은 : (쓸쓸해지며) 들어가셨다 가시면 좋을텐데...
성호 : (웃고) 너 봤으니 됐다. 엄마한텐 아버지 만났단 말 절대 하지말아라.
영은 : ...네.
성호 : 남자친구 아직 없어?
영은 : 네? (웃고) ...네.
#4. 영은집 마루 (밤)
두식, 지은, 인옥, 앉아있다.
두식 : 한번은 개천에서 동네 애들끼리 송사리를 잡는데, 니 엄마가 물에 빠졌어.
고상한 척 폼잡구 강가에 앉아 책을 읽구 있드니만 언제 쭐떡 미끄러졌는지, 그냥 강물로 휘감겨 들어가는데...
인옥 : ...
두식 : 온 동네 남자놈들이 다 서로 구하겠다구 물에 뛰어드는 바람에 개천이 아주 와글와글 목간통처럼 변해버렸단 말이지.
지은 : (깔깔 웃고) 정말요? 너무 웃기다.
인옥 : 그만해요, 오빠. (시계본다)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늦었네. 안 가셔두 돼요?
두식 : 어, 가야지.
지은 : (살핀다)
두식 : 그래, 그럼 우리 악수나 하자. 만나서 반가웠구, (지은에게 악수청한다)
지은 : (악수하고) 네, 저두요.
두식 : 종종 만나자. 내 요담에 밖에서 맛있는 거 사주마.
지은 : 고맙습니다.
인옥 : ...
#5. 여관 앞길 (밤)
성호와 걸어오는 영은.
영은 : 바로 안내려가시구 주무시구 가세요?
성호 : 으응. 내일 오전에 약속이 또 있어서.
영은 : 네에.
성호 : 가거라.
영은 : 네. 들어가세요.
성호 : 건강해라.
영은 : 네. 아버지두요!
인사하는 영은. 안으로 들어가는 성호.
영은, 뭔가 느낌이 조금 이상하다.
영은 : 아버지!
성호 : (돌아본다)
영은 : 안녕히 주무시라구요! (손 흔들며 웃고)
#6. 동 집앞 (밤)
승용차에 오르는 두식. 배웅하는 인옥과 지은.
차 떠나면 바로 이어서 들어오는 영은.
영은 : 엄마,
인옥 : 어어, 오니.
영은 : (멀어지는 승용차 쪽 돌아보고) 누구예요?
지은 : 엄마 남자친구!
영은 : !
인옥 : (앞서 들어가며) 남자친구는 무슨 남자친구!
#7. 지은방 (밤)
크림 바르는 지은. 곁에서 옷 갈아입는 영은.
지은 : 우리 엄마 취향이 저렇게 독특한 줄 몰랐다, 얘. 완전 삼식이 아저씨야.
영은 : (심각해지며) 엄마랑 어떻게 아는 사인데?
지은 : 외갓집 신셀 많이져서 은혜 갚으러 오셨다 그러시는데... 내보기엔 엄마한테 꽤 맘이 있었든 거 같애.
영은 : (불현듯) ...유부남이잖아!
지은 : 그런가?
영은 : 엄마두 좋아했던 거 같애?
지은 : 대충 그런 거 아닐까? (돌아본다) 돈 많은가 봐. 차 봤지?
#8. 인옥방 (밤)
이 일을 어쩌나, 하는 기분으로 잔뜩 예민해져있는 인옥.
살금 들어오는 영은.
영은 : 안 주무세요?
인옥 : (깜짝) 왜.
영은 : 그냥.
인옥 : 왜이렇게 늦었어?
영은 : 어어, 누구 좀 만나구...그렇게 됐어요...아참, 나 오늘 식당 관뒀어요.
인옥 : (멈칫) 어, 그래 잘했다.
영은 : 다른 일자리 찾을 때까지...엄마 일하는 가게 나가서 나두 도울까?
인옥 : 됐어. 그럴 거 없어.
영은 : 그...엄마 고향 친구분...
인옥 : 왜.
영은 : 결혼하셨어요?
인옥 : 결혼을 하든 말든! 그게 엄마랑 무슨 상관이니.
영은 : ...그러게.
#12. 파인 외경 (낮)
#13. 점장실 (낮)
수현, 출근한다. 자리에 앉자마자 노크하고 들어오는 홀매니저. 꽃바구니 한아름 안고 있다.
홀매니저 : 강혜경씨가 다시 오신 거 축하한다구 꽃을 보내셨는데요.
수현 : ...네에.
홀매니저 : 여기 놓을까요?
수현 : (받으며) 네.
착잡하게 보다가 전화기 드는 수현.
#14. 영은집 마루 (낮)
울리는 전화벨. 안 받는 영은. 노래 부르면서 청소 시작한다. 그리운 맘이 사무친다.
이윽고 전화벨 멎는다. 동시에 노래 멈추고 웅크려 앉는 영은.
수현(E) : 다른건 답답할 정도로 다 믿으면서 누가 자길 사랑한다는 말은 왜 못 믿어요?
다시 울리는 전화벨. 걸레질 시작하며 큰소리로 노래 빽빽 부르기 시작하는 영은.
#15. 점장실 (낮)
신호 가지만 안 받자 수화기 내려놓는 수현. 밖으로 나간다.
#16. 동 주방 (낮)
일하는 주방사람들. 들어와 직원들과 업무 이야기하다가 괜히 허전히 둘러보는 수현.
민식 : (다가오며) 뭐 찾으십니까?
수현 : 네? 아, 아뇨.
민식 : 저 가게 차려서 독립해나갈까 그럽니다.
수현 : 그래요?
민식 : 잡지마십쇼. 나 한번 맘 먹으면 하는 놈이니까.
수현 : 어디다 여시는데요?
민식 : 지금 여기저기 알아보구 있는 중입니다.
수현 : 잘되길 빌겠습니다... 그래두 섭섭하네요.
#17. 여관 앞길 (낮)
보자기에 싼 찬합같은 것 들고 걸어오는 영은. 주위 슥 살피다가 여관 안으로 재빨리 들어간다.
#18. 여관 안 (낮)
카운터에 서 있는 영은.
주인 : 아침 일찍 체크아웃 하셨는데요.
영은 : 그래요?
실망 어리며 돌아선다.
#19. 거리 공중전화 부스 (낮)
전화 하고 있는 영은.
안내음성 : 지금 거신 번호는 결번이니 다시 확인하고...
영은 : ?
다시 수첩의 번호 확인하는 영은. 이번엔 다른 번호 누른다.
영은 : 안녕하세요? 김성호 소장님 휴대폰 번호를 좀 알고 싶은데요...네? 거기 건축 사무소 아닌가요?
...네? 언제요? ...알겠습니다.
#20. 청과물 상회 (낮)
순금과 돈 계산하는 인옥.
인옥 : 오늘 벌이가 괜찮다?
순금 : 글쎄 말야. 얘, 자두랑 복숭아 좀 싸줄께. 갖구 가라.
인옥 : 얜 그런 거 자꾸 뭐하러 싸줘?
순금 : 뭐하러는? 청과물상 좋다는게 뭐니. 기집애들 이럴 때 과일이라두 실컷 먹여봐.
인옥 : (일어나 옷 털며 웃고) 고맙다.
순간, 울리는 휴대폰.
순금 : 너 휴대폰 샀니?
인옥 : (깜짝) 어, 어어...
한쪽으로 가서 받는 인옥.
인옥 : (더듬거리며) 네...네, 저예요...(순금 눈치 보는데)
두식(E) : 퇴근하구 나랑 갈 데가 있다.
인옥 : 오늘 바뻐요.
두식(E) : 나두 바쁘다.
하는데 눈앞에 와서 서 있는 두식. 에그머니나, 하며 놀라는 인옥.
순금, 기가 막혀 둘을 바라보고 있다.
승용차 문 열어주는 운전기사.
두식 : 타라.
인옥 : 아뇨, 안 갈래요.
두식 : (밀며) 타!
#21. 서울 근교 농원이나 과수원 분위기 (낮)
승용차 다가온다. 차에서 내리는 운전기사. 문을 열어주면
내리는 인옥과 두식. 주위 경관을 둘러본다.
두식 : 경치 좋지?
인옥 : 어디예요.
두식 : 기사더러 우리 고향 분위기 나는 데 좀 찾아보라 그랬다. 여기 꼭 비슷하잖냐?
인옥 : (이윽고 결심) 오빠...이렇게 막무가내루 막 밀어붙이는 거 좀 관둘 수 없어요?
두식 : (미소)
인옥 : 우리가 열여섯살 청춘이예요? 애들한테두 얼마나 챙피했는지 알아요? 내 의사 분명히 밝혔잖아요!
#22. 근처 고급 갈비집 (저녁)
마주 앉아 식사하는 인옥과 두식.
두식 : 오늘은 다른게 아니구...내가 너한테 인생 상담을 좀 할까싶어 보자 그랬다.
인옥 : ...뭔데요.
두식 : 아들놈 말인데...에미가 없어 그런지 통 지멋대로다. 집안끼리 정혼해논 아이가 있는데...싫다구 내빼드니,
어디서 꼭 부엌강아지 같은 아일 데리구 와서 여자친구라구 내민다.
인옥 : 그래요?
두식 : 정혼한 아이가 꽤 괜찮아. 그림 그리는 아인데...인물두 성격두 아주 그만이거든.
인옥 : 새로 사귀는 앤 뭐하길래요. 뭐하는데 부엌강아지 같아요?
두식 : 뭐...모르겠어. 우리 식당 종업원인 모양이야.
인옥 : 아들은 뭐하구요.
두식 : 내 밑에서 일 배우구 있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구 사는지 그 머릿속을 들여다 볼 수가 있어야 말이지.
어려서부터 그랬거든.
인옥 : 식당 종업원이면 어때요. 저 좋으면 됐지.
두식 : 누가 식당 종업원이어서 그런대냐? 이놈이 삐끗하는 바람에 새로 시작한 사업 전부가 흔들거리게 생겼으니.
인옥 : ...뭐, 사돈집 도움이라두 받는 모양이죠?
두식 : 무슨 수가 없겠냐. 집에는 겨우 끄집어 들어왔는데...보니깐 단단히 돌았다.
인옥 : 여자애가 이쁜가봐.
두식 : 이쁘긴? 이쁘면 내 말을 안해.
인옥 : ...지들 좋은 거 누가 말려요. 떼놓으면 더 좋아지지. 그런 거 방법 없어요. 안해봤어요? 오빠가 양보해요.
두식 : (멋적게 피식 웃고) 고기 다 탄다. 많이 좀 먹어라.
#23. 근처 가로수길 (저녁)
승용차 쪽으로 걸어가는 인옥과 두식.
두식 : 내일 우리집에 좀 오너라.
인옥 : 네?
두식 : 내 귀빠진 날이다. 아들놈한텐 잘 말해뒀으니까 와서 밥만한끼 먹구 가.
인옥 : (당황) 어, 아뇨...저 바뻐요.
두식 : 차 보내마. 잠깐 밥만 먹구 가. 나 사는 데 안 궁금하냐?
인옥 : 안 궁금해요. 제가 왜 오빠 사는 델 가요? 미쳤어,
서둘러 차 쪽으로 가는 인옥. 흐뭇하게 바라보는 두식.
#24. 거리 (저녁)
게시판 앞으로 걸어오는 영은. 각종 구인 공고를 들여다보다가. 전화번호 몇개 적는다.
#25. 파인 앞길 (저녁)
가만가만 걸어오는 영은. 그때 안에서 나오는 수현.
깜짝 놀라는 영은. 한쪽에 몸 숨기고 숨는다. 한길 쪽으로 걸어가는 수현 모습을 숨어서 지켜본다.
사라질 때까지 애틋이 바라보다가 돌아선다. 짐짓 씩씩하게 걷는다.
#26. 버스 정류장 (저녁)
영은 앞을 가로막는 종수.
종수 : 반갑다, 김영은.
영은 : (흠칫)
종수 : 당구나 한게임 치러 가자.
영은 : (한숨) 저 당구 못쳐요.
종수 : 그럼 볼링.
영은 : 볼링두 못해요.
종수 : 뭘 할 줄 아는데?
영은 : (망설이다) ...저기요, 우리 어디 가서 얘기 좀 해요.
#27. 공원 (저녁)
종수와 나란히 앉아있는 영은.
영은 : 지난번에...그날요, 잘못하셨어요. 사람 그렇게 두들겨 패면 마음 불편하지 않아요?
종수 : (피식) 난 패야 마음이 편해.
영은 : 그러지 마세요. 도대체 왜 그렇게 살아요?
종수 : (귀엽다) 넌 왜 그렇게 사냐?
영은 : (한숨) 밥은 먹었어요?
종수 : 밥이 다 뭐냐. 엊저녁부터 쫄쫄 굶었다.
영은 : ...이거 받아요.
보따리 내민다.
종수 : 뭔데?
영은 : 밥이랑 반찬이예요. 아침에 누구 줄려구 쌌는데...못주게 됐어요.
종수 : 그 자식?
영은 : 아니예요...이제 안 만난다니까요. 좀 그만해요.
종수 : 안 만나? 진짜냐?
영은 : (물끄러미 본다) 제가 누굴 만나든 그게 왜 그렇게 그쪽한테 중요해요?
종수 : 내가 말했잖아. 동생 같아서 보호해주구 싶다니까.
영은 : (한숨 쉬며 일어난다) 고마운데요. 그만 보호하세요. 저 동생 안 할래요.
종수 : (피식) 가게 완전히 관뒀다며?
영은 : 어떻게 아셨어요?
종수 : (일어난다) 임마, 오빠가 그 정돈 기본이지. 관둔 가게 앞은 왜 자꾸 기웃거리냐?
영은 : (들킨듯) ...
종수 : 나랑 어디 좀 같이 가자.
영은 : 어딜요?
종수 : 시골서 내 여동생이 올라왔거든? 걔가 몸이 좀 아퍼. 맨날 골골하드니 병원서 얼마 못 산단 진단을 받았다.
영은 : (놀라)
종수 :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같이 가서 좀 놀아주라. 인제 중학생이야.
영은 : (진짜일까 슬몃 바라본다)
종수 : (쓸쓸히) 왜.
영은 : 무슨...병인데요?
종수 : 뇌종양... (피식) 돈 없어 수술 시기두 놓쳤어.
영은 : (글썽하며) 어쩌다가요? 빚이라두 냈어야죠!
#28. 종수 창고 앞길 (저녁)
종수와 나란히 걸어오는 영은. 뭔가 이상하다.
영은 : 여기...병원이 여기 어디 있어요?
종수 : 병원은 임마 무슨 병원이냐. 돈두 없는데 집에다 방치해놨지.
영은 : 여기가...집이예요?
종수 : 나 이렇게 산다. 들어와.
영은 : (망설이고 잠깐 뒷걸음)
종수 : 괜찮아, 들어와. (안을 향해) 오빠 왔다!
할 수 없이 따라 들어가는 영은.
#29. 동 창고 안 (저녁)
들어오는 영은. 컴컴한 실내.
영은 : 여기서...살아요?
종수 : 음.
영은 : 이런 데서요?
종수 : 그러게 말이다.
영은 : 동생 어디 있어요?
셔터를 드륵 내려버리는 종수. 잠가버린다.
영은 : (놀라서) 뭐해요?
한쪽으로 가서 털썩 앉더니 담배 꺼내 무는 종수.
영은 : (뒷걸음) 저 갈께요.
종수 : 가지 마. 못가.
영은 : 동생 얘기 거짓말이었어요?
종수 : 여깄잖아, 내동생.
때묻은 곰인형 하나를 들어보인다. 인형 베고 뒤로 벌렁 눕는 종수.
기가 막히는 영은.
#30. 영은집 앞길 (밤)
집앞에 앉아 기다리는 수현.
들어오는 인옥. 수현 모습을 본다. 유심히 다시본다. 이윽고 다가가는 인옥.
인옥 : 저기...혹시 우리 영은이 기다려요?
수현 : (멈칫)
인옥 : 나 영은이 엄마예요. 그날 병원에 태워줬죠?
수현 : (잠깐 당황) 네.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인옥 : 그날은 고맙단 말두 못했어요.
수현 : 별 말씀을요. 요즘은 몸 좀 어떠세요?
인옥 : 괜찮아요. (잠깐 보다가) 여기 왜 있어요?
수현 : (머뭇) 죄송합니다. 연락이 잘 안돼서요.
인옥 : 혹시 우리 애한테 관심 있어요?
수현 : (머뭇하다 난감한 미소) ...네.
인옥 : ... 듣자니까 여자친구두 있다면서요?
수현 : ...(더 난감하다)
인옥 : 우리 영은이 순진해 빠졌어요. 알지요?
수현 : ...
인옥 : 순진한 애 놀리구 상처주지 말아요. 걔 남자친구 한번 없었던 애예요.
수현 : ...
인옥 : 정말 순수한 감정이예요?
수현 : (망설이다가) 네. 순수하구 좋은 감정입니다. 그렇게 예쁜 따님 낳아주시구, 또 예쁘게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인옥 : (당황)
수현 : 저...가끔 문제두 있지만...그렇게까지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영은씨 만나면서 점점 더 나아지고 있구요... 잘 하겠습니다. 걱정 놓으세요.
인옥 : 아니...아니, (할 말 없어지며 허둥지둥) 언제 올지두 모르는데 여기서 계속 기다릴 거예요?
수현 : ...
인옥 : 오늘은 그만 가요. 이 기집앤 삐삐두 하나 안 갖구 다녀!
수현 : 네...그럼...가보겠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구요. 안녕히 계세요.
인옥 : 그래요, 가요.
인사하고 돌아서는 수현.
얼떨떨하니 지켜보는 인옥. 그리 나쁘진 않은데?
#31. 종수 창고 안 (밤)
누워서 눈 감고 있는 종수.
적당히 떨어져서 앉아있는 영은. 두렵기 보다는 진지한 느낌으로 바라보다가.
영은 : 왜 그런 거짓말 했어요.
종수 : 너 여기 데려올려구.
영은 : 왜요.
종수 : 나 사는 데 한 번 보여주구 싶드라.
영은 : (다시 가만히 둘러본다) 언제부터 여기 살았어요?
종수 : 니네 가게 지하실서 쫓겨나구부터.
영은 : ...동생은요...정말 아퍼요?
종수 : 나 동생 없어.
영은 : !
종수 : 옛날 옛날에 동생이 있기는 있었는데... 가족이 다 뿔뿔이 흩어져서 기억두 아물아물해.
영은 : 왜요.
종수 : 아버지 감옥가구 엄마 집나가구 동생 입양되구 그런 거 있잖아.
야, 왜, 버스 타서 볼펜 파는 애들이 하는 레파토리 있잖아. 근데 그게 정말 있는 일이거든?
영은 : ...
종수 : 야, 나는 왜 태어났을까? 너 말이야. 사람 왜 태어난다구 생각하냐?
누군 부자루 태어나구, 누군 가난뱅이루, 누군 양아치거지깡깽이루 왜그렇게 태어나냐?
영은 : ...(슬프게 본다)
종수 : 나 오늘 너 안 보낼 거다.
영은 : 네?
종수 : (일어난다) 인제 너 나랑 여기서 같이 사는 거야.
영은 : (멍해진다) ...
#32. 파인 외경 (밤)
#33. 동 홀 입구 (밤)
들어오는 수현. 홀매니저에게 다가간다.
수현 : 늦어서 미안해요. 본사에 매출 보고 올렸어요?
홀매니저 : 아직요.
수현 : 금방 올릴께요.
홀매니저 : 손님 와 계십니다.
수현 : 누가요.
#34. 동 홀 안 (밤)
들어오는 수현. 정리하는 마감 분위기.
한쪽에 앉아 잡지 들여다보는 혜경. 반갑게 웃는다.
혜경 : 잘있었어?
수현 : ...
혜경 : 다시 나왔단 말 듣구 너무 반가웠어.
수현 : 몸은 다 났니?
혜경 : 음.
수현 : 왜. 무슨 일이야?
혜경 : 좀 앉아 봐. 돌아온 얘기 듣구 반가워서 왔다니까?
할 수 없이 마주 앉는 수현.
혜경 : 바뻐?
수현 : 비운 사이에 쌓인 일이 많아.
혜경 : 그러게...이럴 거 뭐하러 나갔어?
수현 : 혜경아, 그만 가주라.
혜경 : (한숨) 수현씨.
수현 : 왜.
혜경 : 마지막이다 생각하구 인사하러 온 거야.
수현 : (본다)
혜경 : 그동안 나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니. 사과두 하고 싶고...
수현 : ...
혜경 : (진지해지며) 사실은... 여기 일하던 종수라는 친구 있지?
수현 : (본다)
혜경 : 그 친구가 날 찾아왔었어.
수현 : (멈칫) 왜.
혜경 : 왜 왔는지 대충 짐작이 안 가?
수현 : 그 친구가 왜.
혜경 : 김영은씨하구 꽤 깊은 사이였나본데...
수현 : (일어난다) 먼저 일어날께.
혜경 : 내 얘기 마저 들어. 곧 갈거니까. 누구 걱정돼서 온 거야.
수현 : 뭐가.
혜경 : 지금 그 둘이 같이 있을 걸?
수현 : !
혜경 : 열 받아서 왔드라구. 나한테 수현씨 죽여버릴 거라 그러기에 얼마나 설득했는지 알아?
수현 : 언제 찾아왔어.
혜경 : 아까 낮에. 자긴 그애 뿐이래. 정말 눈에 불을 켰드라. 나보구 책임지라는 거야. 내가 무슨 죄가 있어. 나두 이 꼴인데.
수현 : (본다)
혜경 : 아무래두 얘길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왔어. 무슨 일 내겠드라. 배신감 되게 느낀 모양이야.
혼자 고민하다가 결심하구 달려온 거야.
수현 : ...
혜경 : (애틋하게 본다) 갈께. 몸조심하구 잘 살아. (일어난다)
수현 : ...
#35. 점장실 (밤)
들어오는 수현. 점점 화가 난다. 서류철을 마구 뒤적거린다. 유종수 이력서를 찾아서 주소를 확인한다.
#36. 파인 앞길 (밤)
뛰어나오는 수현. 급히 택시를 잡는다.
#37. 종수 창고 안 (밤)
버너 놓고 라면 끓이는 종수. 막 라면을 부숴 넣는다.
곁에 앉아서 지켜보는 영은. 긴장 감돈다. 보다가 일어나 가만히 다가오는 영은.
영은 : (조심) 그게 아니구요.
종수 : (멈칫)
영은 : (젓가락 뺏으며) 주세요. 내가 할께요.
종수 : 이리 내.
영은 : 비켜보세요. 내가 할께요.
종수 : 너나 비켜.
확 떠민다. 넘어졌다 일어나 다시 다가오는 영은.
영은 : 비켜봐요. 요리 아무나 하는 줄 아세요?
종수 : (본다)
영은 : 라면은요, 아무 때나 넣는게 아니구요...물 온도가 맞아떨어질 때 넣어야 제맛이 나죠.
이게 뭐예요. 끓지두 않았는데 넣으면 어떡해요.
종수 : (본다) 너 나 안 무섭냐?
영은 : ...
종수 : ...
영은 : ...(외면하고 작게) 조금 무서워요.
종수 : 무서워? 근데 너 지금 뭐하냐?
영은 : 무서운 건 무서운 거구...라면은 라면이예요.
종수 : (기막혀)
라면 끓는 사이. 영은, 국물을 떠 먹어본다.
영은 : (담담히) 있잖아요...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사람은 누구나 다 태어난 이유가 있는 거예요.
다 귀하고 소중한 이유가 있으니까, 주어진 상황 속에서 그냥 열심히 열심히 걸어가면 되는 거예요...
누구나 다 힘들긴 마찬가지니까... 에이 뭐 그냥, 태어났으니 할 수 없잖아? 그러면서 그냥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면,
그 이유를 알려준대요.
종수 : 누가?
영은 : 자기 자신이요.
종수 : 엿같은 소리 하구 있네. (피식) 책에서 봤냐?
영은 : 네, 잡지책에서요! (웃음) 어떻게 알았어요? 그러니까 기운 내구 그냥 즐겁게 살아요.
종수 : ...
영은 : (따뜻하게 손을 잡는다) 기운 내구요, 바르게 사세요. 인제 사람 패구 훔치구 그러지 말구요...
손길에 움찔하는 종수. 마음이 약해진다.
하지만 이건 내가 아닌데 싶다. 영은 멱살을 와락 잡아 일으킨다.
종수 : 와, 너 진짜 열받게 한다! 죽구 싶어?
영은 : ...(질리는데)
#38. 종수 창고 앞길 (밤)
주위 살피며 급히 다가오는 수현. 건물 확인한다.
#39. 창고 안 (밤)
영은 멱살을 잡고 있는 종수.
종수 : 나는 너 이러는 데 미치겠어. 그렇게 철이 안드냐? 나 오늘 너 집에 안 보내! 몰라? 무슨 뜻인지 몰라?
영은 : ...
문 두드리는 소리 탕탕 난다.
종수, 영은 멱살 잡고 쏘아보다가 그냥 한쪽에 쿵 밀어버린다. 발로 라면 그릇 엎어버리는 종수.
영은 : (주워담으며) 이러지 말아요.
나가서 문 열어주는 종수.
들어오는 수현. 어이없는 광경에 충격 받는다. 라면 그릇 치우던 영은, 돌아본다.
영은 : (움찔 놀라서 보는데)...
수현 : 어떻게 된 거예요?
영은 : ...여기 어떻게 아셨어요?
수현 : 여기서 지금 뭐하는 거예요? 왜 여기 있어요!
영은 : ...(난감하다)
입구 쪽에서 경멸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는 종수.
#40. 창고 부근 (밤)
영은 팔을 잡아끌고 나오는 수현. 한쪽에 밀친 뒤 쏘아본다.
수현 : 왜 여기 있어요?
영은 : ...
수현 : 도대체 왜 여기 있냐구요! 설명해봐요.
영은 : ...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수현 : 내 질문에 대답부터 해요.
영은 : ...사정이 좀 복잡해요. 그렇게 됐어요.
수현 : 뭐가 그렇게 돼요? 혹시 무슨 일 있었어요?
영은 : ...없었어요.
수현 : 도대체 생각이 있는 사람이예요? 척 보면 어떤 사람인지 몰라요?
영은 : (담담하려 애쓰고) 종수씨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예요.
수현 : (더 화난다) 영은씨,
영은 : ...저 그만 가볼께요.
수현 : 그렇게 아무한테나 덥썩덥썩 베푸는 거... 그거 좀 그만둘 수 없어요? 나 정말 더이상 못 참겠어요.
어떻게 그런 사고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요? 어리석은 겁니까, 순진한 겁니까. 그 성격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요!
영은 : 그러게요... (서글프게 보다가 인사) ...안녕히 가세요.
돌아서서 가는 영은. 눈물이 핑 돈다.
말해놓고보니 스스로에게 더 화가 나는 수현.
#40. 까페 혹은 바 (밤)
들어오는 혜경. 한쪽에 앉아있는 종수. 다가가서 곁에 앉는다.
혜경 : 잘 지냈니?
종수 : (덤덤히 본다)
혜경 : 너 그런 눈으루 보지마. 기분 상해. 안그래두 어쩌다 니네들하구 엮이게 됐나 싶어서 자존심 상해 죽겠다.
나한테 마음 있니? (비웃음) 쳐다볼 걸 쳐다봐라.
종수 : 야, 이 기집애야.
혜경 : 너 미쳤어?
종수 : 그럼 너 머슴애냐?
혜경 : (피식) 이거 왜이래? 보자보자하니까 점점 기어올라?
종수 : ...나는 걔네들 못 떼놓겠드라. 그러니까 하고 싶으면 니가 직접 해라.
혜경 : ...(굳는) 같이...안 있었어?
종수 : 걔가 미쳤냐? 걔가 날 얼마나 싫어하는데 우리집엘 따라오냐? 아무리 해두 안되드라.
혜경 : ...너 이럴 수 있어?
종수 : 그 새끼 헛걸음하구 허탈해져서 가드라. 미안하다.
혜경 : ...그 돈 도로 가지구 와.
종수 : 미안하지만 다 썼어. 빚 갚았다.
혜경 :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어?
종수 : 너두 앞으루 이렇게 살지 마라. 이런다구 니가 원하는 거 얻을 수 있을 거 같냐.
혜경 : (분한데)
일어나는 종수. 툭 치고 나간다.
종수 : 여기 계산...이 여자가 합니다!
#55. 두식집 외경 (밤)
#56. 동 거실 (밤)
홀로 구부정하게 앉아 술마시는 두식. 들어오는 수현.
수현 : 안 주무세요?
두식 : 앉아봐라.
마주 앉는 수현. 기운이 하나도 없는 두식.
두식 : 어찌 됐든 집에 돌아와준 거...애비가 무척 고맙게 생각한다.
수현 : ...(뜻밖인데)
두식 : 그건 그거구...수현아...애비 부탁한다. 그 아인 제발 만나지 마라.
수현 : ...
두식 : 나는 절대로 그 애를 인정할 수가 없다. 결혼이라두 하겠다구 니가 나서면, 나는 그날루 혀 깨물구 죽는다.
수현 : 아버지,
두식 : 그거, 지금까지 애비 살아온 이유를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거야. 그런 거 너는 모를 거다.
수현 : ... 그만 올라가 자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42. 영은집 외경 (밤)
#43. 동 마루 (밤)
불꺼진 마루. 가만히 들어오는 영은. 자기 방쪽으로 얼른 가는데.
인옥 : (나오며) 지금 몇시야!
#44. 인옥방 (밤)
이불 호청 꿰매는 인옥. 그 앞에 앉아있는 영은.
영은 : 사람들 좀 만나구...친구들하구 라면두 먹구...그러다 보니까...
인옥 : 그남자 만났어?
영은 : 그남자?
인옥 : 왜, 저번에 얘기하던 그, 점장이었다 짤렸다는...
영은 : (움찔) 어어, 그사람두 잠깐 만나긴 만나구...
인옥 : 둘이 사귀는 거야?
영은 : 아,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인옥 : 아까 우리집 앞에 서 있길래 내가 몇 마디 했다. 너 갖구 놀지 말라구.
영은 : 네?
인옥 : 가만 보니까 못된 머슴애 같지는 않든데...
영은 : ...(멈칫)
인옥 : 사귀는 거 정말 아냐?
영은 : 아니요! 사귀긴 누가!
인옥 : 지하실 살던 놈은? 요새 안 나타나?
영은 : 어? 그러게. 안 나타나네.
인옥 : 또 나타나면 신고해. 알았어?
영은 : ...네.
인옥 : 나가봐.
#45. 영은방 (밤)
들어오는 영은. 문을 등지고 기대어 서는데 오늘 하루 겪은 일이 너무 많다. 그제야 눈물이 앞을 가린다.
스탠드 불을 켜고 그 아래 스르르 앉는다. 슬픔에 젖는데 베개를 영은 머리에 집어던지는 지은.
지은 : 잠 좀 자자! 꼭 잘려 그러는데 들어 와!
영은 : 미안.
스탠드 끄는 영은.
#46. 두식집 외경 (낮)
#47. 동 식탁 (낮)
온갖 산해진미가 가득 차려진 생일상.
들어오는 두식. 식탁 위를 휘 둘러보다가 시계를 본다. 가정부, 찬을 나르고 있다.
두식 : 고생했소, 국하구 밥은 손님 오면 퍼요.
가정부 : 네, 그럼요.
두식 : (흡족) ...
#48. 동 거실 (낮)
이층에서 내려오는 수현. 거실에서 초조하게 왔다갔다하는 두식을 본다.
수현 : 누구 기다리세요?
두식 : 어, 그래.
수현 : (짐작해보다가) 그 분...오세요?
두식 : (헛기침)
수현 : 오신다구 왜 미리 말씀 안 하셨어요.
두식 : ...
수현 : (보다가 서먹하게) 생신 축하 드려요.
#49. 청과물 상회 (낮)
대충 단정한 차림으로 앉아 과일 고르고 있는 인옥. 갈까말까 시계 보며 고민하는데...
주위 살피며 다가오는 정희.
정희 : 실례합니다. 천안상회죠?
인옥 : 네.
정희 : (살피고) 혹시...박인옥여사님이세요?
인옥 : 그런데요?
정희 : 아,네...반갑습니다. 전 조두식 사장님 밑에서 일하는 윤정희라고 합니다. 회사 기획실장이예요.
인옥 : (당황) 아,네. 그러세요? (인사)
정희 : 저희 회사에 과일을 대주구 계셔서요.
인옥 : 주인 잠깐 어디 갔는데요?
정희 : 아뇨. 사장님이 워낙 박여사님 말씀을 많이 하셔서요. 저두한번 뵙구 싶었어요.
인옥 : 네에...(이 여자 뭔가 이상하군)
정희 : (살피며) 일 안 힘드세요?
인옥 : 아,아뇨.
정희 : 과일이 참 싱싱하구 좋대요. 지점마다 반응이 좋아요. 주인 오시면 전해주세요.
인옥 : 네에.
정희 : ...어디 가던 길이라서요...그럼 (보다가 웃고) 가볼께요.
인옥 : 네,그럼...(인사하며 기분 좀 그렇다)
정희 멀어지면 반대편에 이어서 나타나는 두식의 승용차. 차에서 내리는 기사. 인사한다.
인옥 : (당황) 오셨어요.
#51. 두식집 부엌 (낮)
음식 놓고 마주 앉아있는 두식과 수현. 침묵 흐른다. 각기 신문 한 장 씩 들고 본다.
#52. 영은집 마루 (낮)
수다 떨며 고기 구워먹는 세자매들.
지은 :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니까? 얘 요새 난리두 아냐.
영은 : (얼굴 빨개진다)
경은 : 정말이니?
영은 : 아니야!
지은 : 아니긴 뭐가 아니냐?
경은 : 별 일이 다 있네? 영은이가 남잘 다 만나게.
지은 : 문제가 좀 있는 남잔데 그래두 얼굴은 허여멀건 하드라구. 갖구 노는 건지 사귀는 건지 워낙 불분명 하지만...
영은 : ...(착잡해진다)
지은 : 뽀뽀는 했니?
영은 : (놀라서) 아우, 언니,
들어오는 인옥. 반가워지며.
인옥 : 경은이 왔구나?
경은 : 인제 오세요?
인옥 : (음식 보고) 겨우 이거야? 경은아, 뭐 먹구 싶은 거 없니.
영은 : 언니가 삼겹살 먹구 싶대서...
경은 : 먹구 싶은 거 없어요.
인옥 : 얘 볼살 쪽 빠진 거 봐.
경은 : 아유,아냐. 나이 들어 그래.
인옥 : 니가 무슨 나이?
경은 : 아유,엄만. 내가 엄마 나이에 시집 갔음 애가 둘,셋은 되겠다.
지은 : 엄마 남자친구 왔었다?
경은 : 남자친구?
인옥 : (굳는) 누가 남자친구야?
영은 : (본다)
지은 : 아니,남자구 친구구 그러면 남자친구지.
인옥 : 엉뚱한 소리 하지마.
경은 : 누군데요?
인옥 : 엄마 한고향...느이 외갓집 머슴살이하던 사람 있어.
영은 : 머슴살이요? 그럼 머슴이야?
인옥 : 그래 머슴. 그게 무슨 남자친구니? 신세 갚으러 온 거야.
경은 : 난 또...진짠 줄 알구 가슴이 서늘했네.
인옥 : (가슴이 서늘하다니? 이럴 수가) ...
지은 : 언니두 참,우리 엄마가 남자 사귈 주변이나 되냐? 내가 아무리 가르쳐두 엄만 죽어두 안될 걸. 연애 아무나 해?
인옥 : ...
경은 : 하긴 엄마 나이에 무슨 연애? (웃고) 생리두 끝났잖아요!
영은 : 정말? (웃음) 정말 생리 끝났어요?
인옥 : ... (얼핏 흐흥 따라 웃고)
웃다가 표정 굳는다.
#53. 두식집 식당 (낮)
식어가는 음식들. 그 앞에 마주 앉아있는 두식과 수현.
들어오는 운전기사.
운전기사 : 오늘 댁에 행사가 있으셔서 못 오신답니다.
두식 : 그래?
운전기사 : 어쩌죠? (음식 둘러보고)
두식 : 어쩌긴 뭘.
수현, 두식 표정에 어리는 실망을 읽는다.
정희(E) : 안에 계세요?
#54. 두식집 거실 (낮)
총총 들어오는 정희. 케잌상자를 들고 있다.
정희 : 대문이 열렸네...(안을 살피며)
뒤이어 나오는 수현.
수현 : 오셨어요?
안에서 나오는 두식.
두식 : 어,왔어.
정희 : 생신 축하드려요! 전화 드리구 올까 그러다가...괜찮죠?
두식 : 괜찮지 그럼.
수현 : (본다)
#55. 영은집 인옥방 (낮)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있는 인옥. 울리는 전화벨. 전화 받는 인옥.
인옥 : 여보세요? ....(굳는) 김성호씨를 왜 여기서 찾습니까...그런 사람 안 삽니다...잘못거셨대두요! 춘천으루 해봐요!
전화 끊는다. 살금 들어오는 영은.
영은 : 엄마,
인옥 : 미친 놈. 김성홀 왜 여기서 찾아?
영은 : 아버지한테 무슨 일...있나 봐.
인옥 : 뭐?
영은 : 아,아니예요.
인옥 : 너 또 만났어?
영은 : 아뇨.
다시 울리는 전화벨. 얼른 전화 받는 인옥.
인옥 : 여보세요? ...잘못 거셨다 그랬죠? 그 인간을 왜 여기서 찾아!
뚝 끊는다. 지켜보는 영은. 불안하다.
#56. 호프집 (밤)
들어오는 수현. 앉아있는 종수. 오징어 같은 것 뜯고 있다.
종수 : 밤늦게 불러내서 미안합니다. 안 잤죠?
수현 : (본다)
종수 : 저번에 몇 대 친 거...사과할려구요. 살다보면 그럴 수두 있지만 그래두 원체 귀하게 크신 분이라 상처 받으셨을까봐요.
수현 : 그 얘기 할려구 불렀어요?
종수 : (종업원 부른다) 여기 맥주 두어병 더 주십쇼.
수현 : (본다)
종수 : 그날 우리집까지 오셨는데 대접두 못하구 (피식 웃고) 미안하게 됐습니다.
수현 : 하고 싶은 얘기가 뭔가요?
종수 : (맥주 한 잔 단숨에 들이키고) 앞으루 영은이한테 잘해주쇼.
내 큰맘 먹구 인심 쓴다. 당신 마음, 진심이라구 한 번 믿어줄께.
수현 : (본다)
종수 : 그날 ...사실은 말야. 내가 걔 강제루 끌구 간 거야. 가기 싫다는 앨 억지루 질질 끌구서...(말하기 싫다는듯) 어후,
수현 : ...
종수 : 혹시 오해하는 건 아닌가 해서... 후우,유종수 사람 많이 변했다. 치사하게 이딴 걸 다 해명하구 앉았으니...
수현 : ...
종수 : 영은이 걔가 당신, 무진장 좋아하드구만. (조소) 기집애들 다 똑같애.
수현 : ...
종수 : 그러니까,사랑한다,어쩐다 입으루 달작지근하게 떠들지말구 진짜 행동으루 보여줘봐.
솔직히 나는 아직두 당신이 걜 델구 노는 걸루 밖에는 안 보여...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걔가 어디 여자 같기나 하냐?
뭘 보구 그렇게 연연하는 건데? 너 진짜, 사랑이 뭔지 해보기나 했냐?
수현 : (착잡하다) ...얘기 다 끝났습니까.
종수 : 이 자리에서 내가 마지막으루 경고하는데...영은이한테 잘해. 만약에 걔 울리면 그날로 당신 쥐두새두 모르게 죽는 거야.
수현 : ...
다시 맥주 따라서 단숨에 들이키는 종수. 일어난다.
#57. 수현방 (밤)
불꺼진 방. 수현 들어온다. 한참 그대로 고개 숙이고 앉아있다.
#58. 영은방 (밤)
잠든 지은 곁에 앉아서 전화기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영은.
한순간 울리는 전화벨. 깜짝 놀라는 영은.
영은 : 여보세요.
수현(E) : 영은씨?
영은 : (깜짝) 네?
수현(E) : 뭐했어요? 잤어요?
영은 : ...(당황) 아,네. 잤어요.
#59. 수현방 (밤)
전화하고 있는 수현.
수현 : ...내일 좀 만나줄래요?
#60. 영은방 (밤)
전화기 들고 있는 영은.
수현(E) : 듣고 있어요?
영은 : ...저어,내일은...
수현 : (E) 바빠요?
영은 : (짐짓 웃고) 네. 당분간 좀 바쁘거든요.
수현(E) : (사이) ...영은씨,
영은 : ...네.
수현(E) : ...미안해요.
멍하니 얼어붙는 영은.
영은 : 아,아니예요. 에이,뭐가요?
그런데 눈물이 저절로 주룩 흘러내린다.
수현(E) : ...그럼 잘자요.
영은 : (놀라서) ...자,잠깐만요,
눈물 닦으며 이윽고 환히 웃는다.
영은 : ...내일 만나요. 저요, 하나두 안 바뻐요! 만나요!
#59. 청과물 상회 (낮)
홀로 우두커니 앉아 복숭아 같은 것 깎아먹고 있는 인옥.
승용차, 와서 선다. 차에서 내리는 두식. 얼른 복숭아 치우고 일어나는 인옥.
인옥 : 오셨어요.
두식 : 마저 먹어라. 나두 한조각 주라.
곁에 앉는다. 인옥, 다시 깎는다.
두식 : 순금인 어디 갔냐?
인옥 : 집에 일이 좀 있다구 잠깐....
두식 : 어제...
인옥 : 어제 못가서 죄송해요.
두식 : 그리 오기 싫드냐.
인옥 : ...네.
#60. 영은집 부엌 (낮)
김밥을 싸고 있는 영은. 색색의 재료를 늘어놓고 정성껏 싸서 통에 담는다.
들어오는 지은.
지은 : 왠 김밥?
영은 : 으응.
지은 : 누구 소풍 가니?
영은 : 엄마 시장에 점심 싸다 줄려구.
지은 : 하이구,효녀났네. (하나 집어먹고) 하기야 놀면서 이런 거라두 해야지,니가.
영은 : ...맛있어?
지은 : 뭐,그런대루! (또 집어먹고)
#61. 버스정류장 (낮)
뛰어오는 영은. 버스에 올라탄다.
#62. 청과물 상회 (낮)
나란히 앉아있는 두식과 인옥.
두식 : 정말루...정말루 그렇게까지 내가 너한테 부담이 되냐?
인옥 : ...
두식 : (짐짓) 당분간 좀 안 나타나주까.
인옥 : 네.
두식 : ...
인옥 : 아주 안 나타나면 더 좋겠어요.
두식 : (섭섭하다) 그러냐.
인옥 : (외면) 네. 좀 부탁해요.
서먹한 기운 감돈다.
두식 : 매정두 하구나.
인옥 : 나 원래 그래요.
두식 : ...나두 원래 이렇다.
손을 덥썩 잡는 두식. 깜짝 놀라는 인옥.
#63. 시장 입구 (낮)
도시락보따리 들고 걸어오는 영은. 멀리 앉아있는 인옥 모습 보인다. 반가워 손 흔들고 달려간다.
영은 : 엄마!
부르다가 우뚝 그 자리에 선다. 엄마 곁에 있는 그 사람은... 두식이다.
제8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