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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보일까봐] 09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9.04.04|조회수462 목록 댓글 0

[눈물이 보일까봐] 09











#1. 시장 근처 거리 (낮)


한쪽에 서서 인옥과 두식을 지켜보는 영은. 유심히 두식 얼굴을 보다가 점점 떨려온다.



#2. 청과물 상회 (낮)


두식과 나란히 앉아있는 인옥. 잡힌 손을 휙 뿌리친다.


인옥 : 왜, 왜이래요?

두식 : (미소)

인옥 : (일어난다) 미쳤나 봐! 누구 보면 어쩔려 그래요?

두식 : 보면 어떠냐.

인옥 : 그만 가세요.

두식 : 갈 때 되면 간다.

인옥 : 가요.

두식 : (너털 웃고) 눈가에 주름은 자글자글 생겼어두, 손은 옛날 손 그대로구나.

인옥 : (얼굴 빨개지며) 어디 가서 차나 한잔 해요. (주위 상인보고) 아줌마, 여기 가게 좀 봐주세요!



#3. 시장 입구 (낮)


이윽고 뒷걸음질로 후다닥 도망치는 영은.



#4. 버스 정류장 (낮)


도시락 보따리 들고 급히 걸어오는 영은. 정류장 앞에 발길 멈추고 선다.

방금 본 풍경에 가슴이 마구 뛴다.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는 영은. 엄마랑 그는 도대체 무슨 관계인가!



#5. 커피숖 (낮)


인옥과 마주 앉아있는 두식.


두식 : 우리집에 오라구 한 거, 너무 무리한 부탁이었지 싶어서, 내 후횔 많이 했다.

인옥 : ...

두식 : 차근차근 무리하지 않구 진행해 나가마. 내가 워낙 성질이 급해서...

인옥 : (이윽고 결심) 오빠, 인제 정말 그만 오세요.

두식 : (흘려듣고) 니 마음 안다니까.

인옥 : (정색) 왜 내말을 진심으로 안 들어요.

두식 : (이윽고 좀 진지해지며)

인옥 : 난 혼자가 편해요. 물론 과거에, 삼십년 전에 오빠 많이 사랑했죠. 그런데 그거 정말 말그대루 삼십년 전 일이예요.

         어제랑 오늘만 해두 나는 다른 사람이예요. 그런데 삼십년...아직두 내가, 그리고 오빠가,

         그때 그사람 그대로일거라구 생각해요?

두식 : 그럼.

인옥 : (어이없어 본다) 우리, 좋은 추억 있을 때 헤어집시다. 난요, 오빠 가슴 속에 꽃다운 나이 때,

         그 도도하구 잘났던 박인옥으로만 기억되구 싶어요.

두식 : 지금두 너 도도하구 잘났다.

인옥 : ...나 자신없어요.

두식 : 뭐가 자신이 없냐? 자식이 문제냐? 내가 다 키워주마. 내 니 딸들 애비 노릇 잘 할 자신있다.

         혹시 늙구 추해졌다 그런 거냐? 천만에! 나한텐 니가 옛날 그대로 아니, 오히려 옛날보다 더 애틋하고 이쁘다.

         인생두 알구 손두 거칠거칠해져서 더욱 더욱 이쁘기만 하다.

인옥 : ... 주책 좀 그만 부려요.

두식 : 암말 말구 내 시키는대로만 해. 우선 과일가게 일부터 관둬라.

인옥 : (본다)

두식 : 그리구, 니 딸들은 나한테 맡겨라. 내가 다 책임진다. 반대하는 아이 있어? 내가 만나 다 설득하마.

         아니 도대체 뭐가 문제냐? 내가 친딸 이상으루 밀어주구 키워준다는데!

         현실을 똑바루 봐. 너한테, 그리구 니 애들한테, 나만큼 절실히 필요한게 또 있냐?

인옥 : (흘기며 글썽하는데) ...



#6. 영은집 외경 (밤)



#7. 영은방 (밤)


책상 앞에 멍하니 앉아있는 영은. 믿어지지 않는 현실 앞에 넋이 나갔다.

오버랩 되는 두식과의 사건들. 커피숖에서 수모 당하던 기억. 그리고 원룸에서 떠밀렸던 그 기억...

침대에 앉아 잡지 넘기는 지은.


지은 : 무슨 고민 있니?

영은 : (돌아본다) ...언니,

지은 : 왜.

영은 : 저번에...우리집에 오셨다는, 그...외갓집 머슴 아저씨 말이야.

지은 : 응.

영은 : 그 분...어떻게 생겼어?

지은 : 눈 부리부리하구 코구 매부리코구...잘생겼든데? 거의 영화배우 수준이야.

영은 : ...사업 하신댔지?

지은 : 아마 그럴걸? 그 아저씨 왜.

영은 : 그분...정말 엄마 좋아하는 거 같았어?

지은 : 그렇대니까! 척보면 딱이지. 내가 눈치의 여왕 아니냐.


세상에 이런 일이... 영은, 다시 앞이 노래진다.


지은 : 왜그래? 엄마 결혼이라두 할까봐?

영은 : (놀라서) 어? 어어...

지은 : 후우, 나는, 엄마가 그런 아저씨랑 재혼이나 하면 좋겠다. 돈 팍팍 주는 아버지나 생기면 좋겠다.


일어나 나가는 영은.



#8. 인옥방 (밤)


자기 손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인옥.


두식(E) : 나한텐 니가 옛날 그대로, 아니, 오히려 옛날보다 더 애틋하고 이쁘다.

             인생두 알구 손두 거칠거칠해져서 더욱 더욱 이쁘기만 하다.


울리는 휴대폰. 움찔 놀라서 받는 인옥.


인옥 : 여보세요.

두식(E) : 주말에 니 딸들 전부 데리구 나오너라. 저녁 한끼 먹자.

인옥 : 주말에요? ...힘들 거예요...맏이가 요즘 바뻐. 시험 얼마 안 남았구...아뇨, 글쎄... 그건 무리예요...



#12. 동 마루 (밤)


인옥방 앞에 서 있는 영은. 인옥방에서 흘러 나오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통화 내용이 작게 들린다.


인옥(E) : 오빠 자꾸 이러시면 곤란해요...기집애들이라 얼마나 민감한데...

              아유, 참 우리 애들을 뭐하러 자꾸 만나...안돼요...억지 좀 쓰지 마세요.


점점 창백해지는 영은. 문앞에 스르르 주저앉는다.

한순간, 울리는 전화벨. 놀라는 영은. 떨리는 손으로 전화 받는다.


영은 : 여보세요.

수현(E) : 나예요.


깜짝 놀라는 영은.



#13. 수현방 (밤)


전화하는 수현.


수현 : 전화 한다더니 왜 안했어요?



#14. 영은집 마루 (밤)


통화하는 영은.


영은 : 네...몸이 좀 안 좋아서요...감기 걸려서요...죄송해요. 전화 많이 기다리셨죠?


방에서 나오는 인옥. 움찔 놀라서 보는 영은.


영은 : 네, 그럼요...약 먹었어요...다 나으면 제가 연락 드릴께요...네...네,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그만 끊어요!


후다닥 전화 끊는다.


인옥 : 누구니?

영은 : 어어...

인옥 : 그 친구야?

영은 : 네? 어어...


인옥, 잠깐 보더니 화장실로 간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점점 멍해지는 영은.



#15. 수현방 (밤)


전화 앞에 앉아있는 수현. 어이없다는 듯 전화기를 다시한번 돌아보고 미소 짓는다.



#16. 호텔 레스토랑 (낮)


한쪽에 앉아 담소하고 있는 정희와 강회장.

들어오는 수현. 손 흔드는 정희.

정희 보고 반갑다가 곁에 있는 강회장을 발견하고 멈칫하는 수현. 할 수 없이 다가간다.

소탈하고 사람 좋게 생긴 강회장. 일어나 손 잡아주며 맞는다.


강회장 : 이게 얼마만이냐. 잘있었냐?

수현 : ...그동안 별고 없으셨어요?

정희 : (눈치 살핀다)

강회장 : 그렇게 집에 한 번 놀러 오래두 통 감감 무소식이냐.

수현 : 죄송합니다.

강회장 : 뭐, 죄송할 거야 없다. 우리 혜경이 녀석 때문에 속을 이만저만 끓는게 아니지? 내 그 맘 다 안다.

수현 : ...

정희 : 점심 전이지?

수현 : 네.

강회장 : ....수현이야 뭐 양식은 아주 질렸을 테지만, 다른 식당두 견학하라는 차원에서 내가 일부러 이런 양식당으루 정했다...

            여기 스테이크를 아주 맛나게 하드라.

정희 : 그럼 말씀 나누구 가세요 ...전 먼저 일어날께요.

수현 : 왜 벌써 가시게요.

정희 : (서로 다 짠듯이) 회의가 있었는데 깜빡 했어요.

강회장 : 아, 그래?

수현 : (본다)

정희 : 네, 그럼 (일어난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강회장 : 이거 섭섭해서 어쩌나.

정희 : 그러게 말이예요. 다음에 뵙죠 뭐. 수현아, 나중에 보자.

수현 : (일어나 목례한다) 네. 들어가세요.


강회장 안 보이게 수현에게 잘하라는 눈짓하고 멀어지는 정희.

다시 마주 앉는 수현.


강회장 : 당황했지?

수현 : 아닙니다.

강회장 : 내가 윤실장 더러 자릴 좀 주선하라구 부탁을 했다.

수현 : ...

강회장 : 우선... 사과부터 하마. 내가 딸을 잘못 키웠다.

수현 : (난감하다) ...



#17. 호텔 앞길 (낮)


건물 나오는 정희. 한쪽에서 다가오는 혜경 승용차. 차에서 내리는 혜경.


혜경 : 실장님.

정희 : 언제 왔어?

혜경 : ...왔어요?

정희 : 음. 만나는 거 보구 나오는 길이야.

혜경 : ...(착잡한듯)

정희 : 아유, 혜경이답지 않게 왜그래? 기운 내.

혜경 : ...네.

정희 : ...가자. 어디 가서 맛있는 거 먹자.



#18. 호텔 레스토랑 (낮)


수현과 식사 놓고 마주 앉아있는 강회장.


강회장 : 딸래미 저 하나 뿐이라구 워낙 오냐오냐 키웠드니 세상천지에 저 밖에 없는 줄 안다니까!

            온 집안 식구들이 그녀석 눈치만 보구 살아야 해.

수현 : ...

강회장 : 내 그걸 한 두 해 봐온게 아니라서 자네 심정을 너무도 잘 아네.

수현 : ...무슨 말씀을요.

강회장 : 용서하게, 응? 내 이렇게 사죄할테니, 그만 마음 풀구 우리 딸래미 좀 받아들여 줘.

수현 : ... 안그래두 한번 찾아뵙고 싶었습니다.

강회장 : 내 말이 그말이야. 아무리 둘이 다투구 싸워두 나한테까지 그러면 안되지. 말은 안했어두 섭섭했어, 내가.

수현 : 실은......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강회장 : 그래, 말해 봐.

수현 : 용서해주세요. 저...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강회장 : (굳는)

수현 : 그동안 아버지 사업에 여러 모로 도움 주시고 은혜 베풀어주신 거...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께나 강회장님께 잘못하는 건 줄 압니다만...결혼은 힘들겠습니다.

강회장 : 진심이냐?

수현 : ...

강회장 : 나두...대충 짐작은 했지마는...도저히 정리는 안되겠냐?

수현 : ...

강회장 : ...안되겠냐?

수현 : ...네...죄송합니다.



#19. 영은집 외경 (낮)



#20. 영은집 마루 (낮)


통화하고 있는 지은.


지은 : 네! 안녕하세요?.... 저 둘째예요...


밖에서 들어오는 영은.


지은 : 오늘요? 오늘 시간 많죠!

인옥 : (방에서 나오며)

지은 : 네, 그럴께요. 그럼 언니랑 동생이랑 다 데리구 갈께요...네....

         어, 네...거기요? 알아요.. 네, 그러겠습니다. 네...고맙습니다!

인옥 : 누구야?


전화 끊는 지은.


인옥 : 누군데?

지은 : 그 아저씨!


흠칫 놀라는 영은.


지은 : 그 삼식이 아저씨!

인옥 : 말하는 거 봐.

지은 : 밖에서 밥 사준대. 영은아, 니가 궁금해하던 그 아저씨가 밥 산댄다.

영은 : ...

인옥 : 밥을 사? (태연한듯) 그 사람 정말 왜 그런대니?

지은 : (다 안다) 그러게 말이예요. 우리한테 잘보이구 싶나부지 뭐.

인옥 : 무슨 소리야,

영은 : ...

지은 : 엄마,

인옥 : 왜.

지은 : 왜 얼굴이 빨개지는데?

인옥 : (더 빨개져서) 누가? 내가 언제?

영은 : ...(본다)

인옥 : 오해하지마. 그 아저씨 집을 니네 외가가 먹여살리다시피 했어. 신세 갚는다구 한사코 저러는데 난들 어째!

         엄마가 전화할께. 취소하자.

지은 : 왜 취소해? 그런 걸 왜 안 먹어? 안 그러니?

영은 : (얼른 웃고) ...어어, 그래.



#21. 영은방 (저녁)


거울 앞에서 옷 입고 있는 지은.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곁에 앉아있는 영은.


지은 : (문득 생각) 아참,아참, 빅뉴스! 빅뉴스! 글쎄 글쎄...그 아저씨가...너 일하던 식당 사장님이랜다.

         그 식당 체인점 사장이래! 몰랐지? 몰랐지?

영은 : ...누가 그래? 엄마가 그래?

지은 : 그래!


영은, 다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지은 : 너 왜 안 놀래?

영은 : (얼른 놀라는척) 놀랍다! 정말이야?

지은 : 인제 우리 고생 끝났어. 그 아저씨만 꽉 잡으면 엄마 고생, 내 고생, 다 끝이야, 끝.

영은 : ...(어두워진다)

지은 : 얼른 준비 안하구 뭐해?


들어오는 인옥.


인옥 : 다 됐어?

영은 : 엄마, 죄송한데요...나는 안 갈래요.

인옥 : 왜?

영은 : 급한 일이 생겼어요. 새로 취직을 했는데...지금 바로 나오래.

지은 : 어딜?

영은 : 전에 같이 일하던 분인데...식당 개업을 하셨어요.

인옥 : 그러지 말구 가.

영은 : 가기 힘들어요.

인옥 : (멈칫) 왜.

지은 : 너 왜그러니?

영은 : 죄송해요, 엄마. 다음에 갈께.

인옥 : 가게에 잘 얘기해봐.

영은 : 아뇨, 안돼요! 지금 바로, 바로 나오랬어. 안 그럼 안 써준대! 그럼 안되잖아요,

인옥 : 한번 전화나 해봐.

지은 : 그래. 집에 행사 있다 그래.

영은 : 아냐, 난 안가. 그냥 언니만 가.



#22. 버스 정류장 (저녁)


인옥,영은,지은, 나란히 서 있다. 고개 푹 숙이고 있는 영은.

버스가 온다. 앞서 가는 인옥과 지은. 따라서 달려가다가 탈 듯 그냥 멈춰 서버리는 영은.

사람들 사이에 묻혀 미리 차는 인옥과 지은. 영은, 재빨리 뒤돌아 후다닥 도망치고 만다.

이윽고 버스는 떠난다. 멀어지는 버스를 바라보는 영은.



#23. 고급 한식당 (저녁)


들어오는 지은과 인옥. 이미 와서 앉아있는 두식과 경은.

놀라는 인옥.


지은 : 언니?!

경은 : 어어...인제 오세요, 엄마?

인옥 : 어떻게 된거야?

두식 : 내가 따로 불렀다. 바쁘다구 안 올거 같다 그러길래...내 따로 고시원으루 연락을 했지.

         밥 한 끼 먹을 시간두 없이 공불 하면 쓰겠냐.

인옥 : (기막혀) 고시원은 어떻게 아셨어요?

지은 : 제가 가르쳐드렸죠.

인옥 : (어이없다)

두식 : 왜 둘 뿐이야?

지은 : 막내는 도망...

인옥 : (OL) 걘 일하느라구 못왔어요. 직장서 늦게 끝난대.

두식 : 직장 어디냐. 내가 전화하마.

인옥 : 끝나는대로 온댔어요.

경은 : (인옥과 두식 분위기를 살피고 있다) ...

두식 : 여기 내 친구가 하는 집인데...맛이 아주 그만이다.

         우리집서 밥을 먹을까두 생각해봤는데...되려들 불편해할 거 같아서...담으루 미루자.

지은 : 네, 그러죠 뭐.

경은 : ...

인옥 : ...(경은 눈치)


들어오는 종업원. 메뉴판을 하나씩 돌린다.


두식 : (종업원에게) 최고 맛있는 걸루 한 상 차려 봐.



#24. 변두리 돈까스 가게 외경 (저녁)


다가오는 영은. 가게 간판 확인한다. 개업 화환 몇개가 놓여있고 신장개업 팻말이 붙어있다.



#25. 동 가게 안 (저녁)


민식과 동규, 마주 앉아 포크 같은 것, 정리하고 있다.

들어오는 영은.


영은 : 안녕하세요?

민식 : 왔구나!

영은 : (둘러보며) 너무 좋은데요? 언제 개업하셨어요?

민식 : 어제 개업했다.

동규 : 맘에 드냐?

영은 : 네! 참 좋으네요? (동규보고) 같이 관두셨어요?

민식 : 아니. 얜 짤렸지. 내가 구제해야지 누가 이런 앨 구제하냐.

동규 : 제가 언제 짤렸습니까?

민식 : 그럼 안 짤렸냐, 임마.

동규 : 허, 지금 누구 놀리십니까? 전 거기 평생 다니구 싶었는데... 월급 올려주신다구 꼬신 거 아닙니까!

         유능한 것두 죕니까? 억울합니다.

영은 : (웃는다)

민식 : 너 여기 나와서 일 좀 안 해볼래? 주방에 사람 하나 더 있어야 되는데...니 생각이 나서 연락했어. 좀 도와주라.

영은 : 정말요?...(좋다) 고맙습니다.

민식 : 내가 고맙지 임마.

동규 : 열심히 해라. 거기서처럼 게름 피우면 여긴 국물두 없어.

민식 : 너나 잘해.

영은 :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시 둘러보고) 가게가 너무 깨끗하구 이뻐요.

민식 : 그럼 뭐하냐. 개업 첫날 수입두 영 신통찮드라.

영은 : 아유, 기운 내세요! 인제 잘될 거예요. 제가 왔잖아요!


웃는다.



#26. 거리 (밤)


울적하게 이리저리 배회하는 영은. 밤거리의 연인들, 노점들, 자동차들을 바라보며 걸어간다.

어디로 가서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신호등 앞에 서는데 뒤에서 머리카락을 누가 툭 건드린다. 무심히 털어버리는데 또 툭 치는 사람.

돌아보는 영은. 수현이다. 소스라치게 놀란다.


수현 : 여기서 뭐해요?

영은 : 여기 왠일이세요?

수현 : 왜 그렇게 놀래요? 어디 갔었어요? 영은씨 집 앞에서 내내 기다리다 가는 길이예요.


삐삐 하나 내민다.


수현 : 이런 거 좀 가지구 다녀요. (손에 쥐어준다)

영은 : (복잡해진다) ...

수현 : 밥 먹었어요?

영은 : ...아뇨.

수현 : 밥 사줄까요?

영은 : 아뇨...저어...술 사주세요.

수현 : (멍하니) ...술이요?



#27. 한식당 (밤)


식사 대충 마쳐가는 분위기.


두식 : 내 오늘 이런 자릴 특별히 만든 것은 다름이 아니구...

인옥 : (시계본다) 늦었어요, 그만...

두식 : 경은이라 그랬냐?

경은 : 네.

두식 : 지은이?

지은 : 네.

두식 : 전에 말했지만 나는 머슴 아들이었구, 니 엄만 주인집 외동딸이었거든. 나한텐 늘상 멀리 있는 공주님이었다.

지은 : (인옥보고) 어머나..공주래,

경은 : ...

인옥 : (얼굴 빨개졌다) 그만 일어나죠.

두식 : 내가, 집안이 어려워 중학두 못 마쳤다. 고생으루 치면 나만치 한 사람두 없을게다.

         그러다보니 때로는 과격하구 시쳇말루 무뎁뽀라 그러냐? 그런 면두 있구 그렇지마는...

         내가 속으루 순정 하나는 간직하구 사는 사람이다. 바루 니 엄마다.

경은 : ...(본다)

두식 : 나 느이 엄마 무척 사랑한다.


경은, 지은, 인옥 모두 깜짝 놀란다.


인옥 : 미쳤나봐!

두식 : 니들...내가 니 엄마랑 만나는 거 좀 허락해다오. 진심을 다해 잘하마.

지은 : (눈치 보며 웃는다) 아유, 허락은요, 무슨.

인옥 : (일어나며) 그만 일어나죠. 술 드시구 오셨어요?


한참 곰곰 생각 하고 있던 경은.


경은 : ...(잡는다) 앉으세요, 엄마.

인옥 : !

경은 : 우리 엄마 좋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저씨.

인옥 : (움찔 본다)

경은 : 저희들 다 컸어요. 엄마 인생에 이러구 저러구 하지 않아요. 안그래두 좋은 분 만나시길 바라구 있었는데...정말 기뻐요.

인옥 : (당황) 경은아,

경은 : 잘 부탁드릴께요. 우리 엄마 상처 많은 분이예요. 잘해주세요.

두식 : ...고맙다.

경은 : 엄마, 우리 신경 쓰지 마세요. 두 분 재미나게 잘 지내세요. (인옥 손을 잡아준다)

인옥 : ...(어쩔 바를 모르고)



#28. 락까페 안 (밤)


영은과 맥주 놓고 마주 앉아있는 수현.

잔뜩 들떠있는 영은. 큰소리로 오버하며 떠든다.


영은 : 저요! 이런 데 너무 와보고 싶었어요! 나두 알구보면요! 술두 잘 마시구요, 얼마나 잘 노는데요? 앞으로두 자주 와요. 네?

수현 : (어이없지만 귀엽다)


술 한잔 따르는 영은. 훌쩍 마신다.


영은 : 오늘요, 나 정말 술 많이 마실 거예요. 말리지 마세요.

수현 : 안 말려요. 많이 마셔봐요.

영은 : 자! 한 번 부딪쳐야죠!


수현과 건배하는 영은. 다시 단숨에 쭉 마신다.


수현 : 영은씨,

영은 : 네?

수현 : 무슨 일 있어요?

영은 : 어우, 일은요? 기분이 좋아서 그렇죠!

수현 : (웃음) 뭐가요.

영은 : 전부 다 좋죠 뭐! 아참, 저 취직 했어요! 박선생님 새가게에요!

수현 : 그래요?

영은 : 지금... (본다) 영은씨, 축하해요, 그럴려 그러시죠? 에이, 별 말씀을요. 고맙습니다!

수현 : (정말 오버하는군 싶어 황당하다) ...


다시 제 흥에 겨워 건배를 권하는 영은.



#29. 까페 앞 공원? (밤)


공원 벤치로 걸어오는 영은과 수현.

잠깐만, 하더니 영은 앉을 자리를 티셔츠 소매로 쓱쓱 닦아주는 수현. 물끄러미 보는 영은.


수현 : 자, 됐어요. 앉아요.

영은 : ...


나란히 앉는 두사람.


수현 : 난 영은씨 이렇게 술꾼인 줄 몰랐어요.

영은 : (본다)

수현 : 앞으로 술값 꽤 나가겠는데요?

영은 : ...(웃는다)

수현 : 주말에 우리, 기차 타고 여행가요.

영은 : 네?

수현 : 왜, 지난 번에 갈려다가 못 갔잖아요. 요번 주말에 가요.

영은 : (어두워진다)

수현 : 왜그래요? 무슨 걱정 있어요?

영은 : 네? 아뇨, 없어요.

수현 : (미소) 나두 요즘 걱정 때문에 밤에 통 잠을 못자요.

영은 : (본다) 걱정요?

수현 : 자는 동안 누가 우리 영은씨 업어갈까봐요.

영은 : (얼굴 빨개졌다)

수현 : (웃으며 영은 손 잡는다) 누가 나한테 이렇게 예쁘고 착한 사람을 보내주셨을까...나 아직두 잘 믿어지지가 않아요.

영은 : ...(뭉클하지만 슬몃 손을 뺀다)

수현 : (웃고) 그동안 어디서 뭐하다가...이제야 내 앞에 나타났어요?

영은 : ...(시선 떨군다)

수현 : (창피해 그러는 줄 알고) 영은씨?...나 좀 봐요.

영은 : (본다)

수현 : (억지로 다시 손 가져가며) 오늘 나하고 약속해요...앞으로 어떤 일 생기더라두 도망가지 말기.

영은 : ...

수현 : (손가락 걸고 흔든다) 자, 약속!


눈물 핑 도는 영은. 자기 때문인 걸로 생각하는 수현. 안쓰럽게 보더니 어깨를 가만히 끌어 당겨 따뜻하게 안아준다.

잠시 얼떨떨하게 안겼다가 정신 차리고 몸을 빼는 영은. 당황한다.


영은 : 저어...저 그만 가봐야 되겠어요.

수현 : (멈칫)

영은 : (시계보며) 너, 너무 늦어서요, 그만 갈래요.

수현 : 영은씨,

영은 : 안녕히 가세요.


일어난다. 당황하는 수현.



#30. 거리 (밤)


걸어오는 영은. 쫓아오는 수현. 앞을 막아선다.


수현 : 영은씨.

영은 : ...

수현 : 마음 편히 가져요.

영은 : ...(본다)

수현 : (따뜻하게 웃는다) 앞으로 다 잘될 거예요. 나만 믿어요.

영은 : (다시 눈물 핑 도는데) ....



#31. 영은집 외경 (밤)



#32. 동 마루 (밤)


들어오는 영은. 불꺼진 집 안. 아무도 없다.



#33. 집 앞길 (밤)


멈춰서는 두식의 승용차. 차에서 내리는 두식, 인옥, 지은.


인옥 : 그럼 잘가세요.

지은 : 오늘 고맙습니다.

두식 : 잠깐 들어가 차 한 잔 하구 가고 싶은데...

인옥 : 늦었는데 뭘요...

두식 : 막내딸 좀 보구싶다.

지은 : 그러실래요? 들어가세요.

인옥 : 아유, 너무 늦었어요. 가요.

두식 : 그래, 그럼 딱 십분만 있다가 가지 뭐.

지은 : 들어가세요.


앞장 서는 지은과 두식. 한숨 쉬는 인옥.



#34. 영은집 마루 (밤)


욕실에서 수건으로 얼굴 닦으며 나오는 영은. 밖에서 두런거리는 소리 들린다.

문 열어주러 나가다가 두식 목소리를 듣는다.


두식(E) : 큰애가 아주 똑똑하게 생겼드라....


눈 커지며 기겁하는 영은. 후다닥 다시 화장실 쪽으로 간다.

안되겠다 싶어 얼른 신발을 집어들고 다시 화장실로 뛰어들어간다. 동시에 문이 열린다.



#35. 화장실 (밤)


기겁하고 들어오는 영은. 문을 잠그고 쭈그려 앉는다.



#36. 동 마루 (밤)


들어오는 두식,인옥,지은.


인옥 : 얘 아직 안 들어왔나봐.

지은 : 앉으세요.

두식 : (앉으며)

지은 : 차 끓여올께요. 두 분 말씀 나누세요.


부엌으로 가는데.


두식 : 인옥이 니 방 좀 구경하자.

인옥 : 구경은 무슨 구경? 아유, 인제 그냥 가요.

두식 : 좀 보자. 저번에 못 보구 갔잖아.


문 열고 막 들어간다.


인옥 : 방두 어지러운데...아유, 좀 이러지 마요.



#37. 화장실 (밤)


문 앞에 기대고 앉아있는 영은. 문틈으로 밖을 내다본다. 아무도 없는 마루.



#38. 동 마루 (밤)


부엌에서 커피물 올리는 지은. 인옥방문 조금 열려있고 그 안에서 두런거리는 소리 들린다.

욕실에서 후다닥 뛰어나오는 영은. 맨발로 재빨리 밖으로 나간다.

문소리에 내다보는 지은.


지은 : 영은이 왔니?



#39. 영은집 앞길 (밤)


맨발로 뛰어나오는 영은. 승용차를 피해 한쪽 모퉁이로 가서 숨는다. 집쪽을 바라보며 점점 착잡해진다.



#40. 시간경과 (밤)


주저앉아 웅크려 있는 영은. 두런거리는 소리에 고개 들고 바라본다.

안에서 나오는 지은,인옥,두식. 차에 오르는 두식.


지은 : 안녕히 가세요.

두식 : 오냐. 조만간 또 만나자.

지은 : 네.

인옥 : 가요, 그럼.


승용차 떠나면 안으로 들어가는 인옥과 지은.

숨어서 그들을 바라보는 영은. 이윽고 눈물이 핑 돈다.



#41. 영은집 마루 (밤)


들어오는 영은. 인옥방에서 나오는 지은.


지은 : 너 어디갔다 인제 와?

영은 : 새 가게! 새로 나가는 식당 간댔잖아!

지은 : ...(냄새맡고) 술 먹었어?

영은 : 술? 응, 쪼끔! (웃는다)



#42. 인옥방 (밤)


들어오는 영은,지은.


지은 : 얘 술마셨어, 엄마.

인옥 : 술?

영은 : 어어...쪼끔요.

인옥 : 누구랑?

영은 : 새로...새로 나가는 가게 사람들이랑! 개업파티했어!

지은 : 왜 도망갔냐?

영은 : 도망? 아, 내가 그랬던가?

인옥 : 왜. 그렇게 가기 싫었어?

영은 : ...네.

인옥 : (굳는)

영은 : (조심스레) ...엄마, 저...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인옥 : (본다)

영은 : (이윽고 결심) ...시집가지 마세요.

인옥 : !

영은 : (글썽한다) 나두 시집 안 갈테니까 엄마두 가지마세요.

지은 : (어이없다) 영은아! 얘 왜이러니?

영은 : 엄마랑 나랑 살면 되잖아요.


철썩 치는 지은.


지은 : 너 미쳤니?

영은 : 시집 가지마세요.

인옥 : (얼굴 빨개져서) 누가 시집을 가! 응?

지은 : 일어나!


지은, 억지로 끌고 나간다.


영은 : 엄마, 나랑 같이 살아요. 네?



#43. 영은방 (밤)


영은을 끌고 들어오는 지은. 구석에 쿵 쳐박는다. 다시 어깨를 철썩 때린다.


지은 : 너 아주 또라이구나? 내동생이지만 어쩜 이런 애가 다 있어?

영은 : ...

지은 : 엄마가 얼마나 무안하시겠어? 안그래두 그동안 우리 눈치 보느라 힘드셨을게 뻔한데....

         너 대체 정신이 있는 애야, 없는 애야?

영은 : ...

지은 : 그 아저씨 만나보기나 하구 그딴 소리해. 얼마나 인상 좋구 맘 좋은지 아니?

         남잔 그런 남자가 최고야. 사나이답구 화끈한 분이드라. 진짜루 엄말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몰라.

영은 : ...

지은 : 심지어 경은언니까지두 엄마 잘 부탁한다구 그러드래니까. 언니두 넘어갔어.

영은 : (본다)

지은 : 야, 잘되라구 막 밀어줘두 엄마 그 성격에 될까말깐데 너 왜이러니? 철이라고는 없다, 증말...어른 좀 돼라.

         (다시 쥐어 박고) 이 꼴통아, 어른 좀 돼!

영은 : ...



#44. 인옥방 (밤)


홀로 앉아있는 인옥.



#45. 영은방 (밤)


잠든 지은 곁에 앉아있는 영은.



#46. 두식집 외경 (낮)



#47. 동 식당 (낮)


식사하는 수현과 두식. 슬몃 수현 눈치를 읽어보는 두식.


두식 : 어제...윤실장하구 강회장 만났다면서?

수현 : ...네.

두식 : 식사는 잘했냐?

수현 : ...네.

두식 : (흐뭇해진다) 강회장 건강은 좀 어때 보이드냐?

수현 : ...전보다 좋아보이셨어요.

두식 : (흡족하다) ...

수현 : ...

두식 : 너...오늘 저녁에 일찍 들어오너라.

수현 : (본다)

두식 : 누구 온다. 같이 밥이나 먹자.

수현 : ...

두식 : 애비가 그동안 너한테 숨기느라 숨긴게 아니구...

수현 : ...괜찮습니다.

두식 : ...

수현 : 두 분...예전에 왜 못 이루셨어요?

두식 : (머뭇하다) 집안 차이가 났다.

수현 : (듣다가 씁쓸해진다) 네에.

두식 : 그건 그건 거구...너 혹시 요즘두 그 아이 만나냐?

수현 : (일어난다) 그 분 오늘 몇 시에 오세요? 시간 맞춰 들어 올께요.

두식 : ...



#48. 돈까스 가게 외경 (낮)



#49. 가게 안 (낮)


민식과 바삐 일하고 있는 영은. 손님 몇사람, 식사 중이다.

들어오는 종수. 영은 어서오세요! 하다가 멈칫 한다.

민식 보고 목례하는 종수.


종수 : 잘있었냐?

민식 : (인상 쓴다) 너 아직두 얘 주변 어슬렁거리냐?

종수 : 밥 먹으러 왔습니다. (메뉴 본다) 개업하셨는데 좀 팔아드려야죠.

영은 : ...뭐 드실래요?

종수 : (씩 웃고) 뭐 잘하는데? 얼굴 좋아보인다!



#50. 가게 앞길 (낮)


가게 나오는 영은. 울리는 삐삐. 놀라서 얼른 꺼낸다. 꺼버리는 영은. 다시 걸어가는데 기운이 하나도 없다.

기다리고 있는 종수.


종수 : 퇴근하냐?

영은 : (멈칫)

종수 : 저번 날엔 미안하게 됐다. 다 잊어먹었지?

영은 : 여기 일하는 건 어떻게 알구 오셨어요?

종수 : 넌 임마, 오빠가 그 정도 정보두 없이 사는 줄 아냐?

영은 : (어이없어 웃는다)

종수 : 거봐, 웃으니까 이쁘잖아.

영은 : 저...궁금한 거 있어요.

종수 : 뭔데? 다 물어봐.

영은 : 제가 좋으세요?

종수 : (멈칫)

영은 : 좋죠? 그죠?

종수 : 이야, 너 많이 늘었다? 그딴 것두 물어볼 줄 아냐?

영은 : (씩 웃는다)

종수 : 임마, 말했지? 좋아하긴 누가 널 좋아해? 동생처럼 생각하구 돌봐주는 거야.

         너 같은 기집애 혼자 놔두면 이 무서운 세상에서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니까,

영은 : (자기 생각에 잠겨) ...

종수 : (본다) 야,

영은 : 오빠...

종수 : (깜짝)

영은 : 오빠랑 동생이랑은 연애하면 안되는 거죠?

종수 : 너 나랑 연애하고 싶다 이거냐, 지금?

영은 : (쓸쓸히 딴 생각)



#51. 영은집 앞길 (저녁)


걸어오는 영은과 따라오는 종수.


종수 : 무슨 일 있냐? 너답잖게 오늘 되게 폼 잡는다?

영은 : ...

종수 : 뭔데? 왜그러는데?

영은 : 그만 가요.

종수 : 무슨 일인데? 또 그자식 일이냐?

영은 : 그런 거 아니예요.

종수 : 임마, 내가 해결해줄께. 뭔데?

영은 : 가요. 엄마한테 들켜요.


영은, 한순간 발길 멈춘다.


영은 : 아버지?


집 근처 구석에 쓰러져 잠든 성호. 꼴이 말이 아니다. 여기저기 부푼 상처까지 보인다.


영은 : 아버지, 어떻게 된 거예요?

종수 : (뭔가 싶은데)

영은 : 아버지!

성호 : (겨우 눈뜨고) 영은이구나...

영은 : 왜이렇게 되셨어요? 네?


부축해서 일으킨다. 다시 푹 쓰러지는 성호.



#52. 두식집 앞길 (저녁)


승용차 와서 멎는다. 차에서 내리는 운전기사와 두식.


두식 : 내려 봐.


인옥, 마지못해 내린다. 휘둥그레져서 올려다본다.


두식 : 우리 집이다.

인옥 : (황당한데) ...

두식 : 들어가 저녁만 먹구 가거라.



#53. 두식집 거실 (밤)


마주 앉아 차 마시는 인옥과 두식. 기가 많이 죽어있는 인옥.


두식 : 집이 썰렁하지? 아들놈하구 일하는 아줌마하구 셋이 지내기엔 좀 넓다.

인옥 : ...그러네요.

두식 : (흐뭇) 너 딸 많은 거, 집 지을 때 미리 다 알았나 보다.

인옥 : ...(민망하다)

두식 : 이층에 방이 다섯 개구 아랫층에 세 개야.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냐.

인옥 : 저기요, 오빠,

두식 : 알았다. 주책 그만 떨라 이거지? (시계본다) 수현이 이놈이 올 때가 됐는데...

인옥 : (복잡해지는데) ...

두식 : 맘 편히 먹어라. 그냥 애비 여자친구라고만 소개했어. 내가 여기 여자친구를 한 다섯 명쯤 데리구 왔기 때문에

         그놈두 대수롭잖게 여길 거다. 부담 가지지마.

인옥 : (정색) 진짜예요?

두식 : 왜. 샘나냐?

인옥 : ...누가 샘을 내.

두식 : (웃으며 주방 쪽으로) 아주머니, 저녁 준비 빨리 좀 해줘요! 배고프다.



#54. 병원 외경 (저녁)



#55. 응급실 (밤)


잠든 성호 곁에 앉아있는 영은. 가만히 눈 뜨는 성호.


영은 : 정신 드세요? 좀 어떠세요?

성호 : ...괜찮다.

영은 : 어떻게 된 거예요. 무슨 일 있으셨어요?

성호 : 미안하다...애비가 너 볼 면목이 없다.

영은 : 그동안 어디서 어떻게 지내셨길래 몸이 이렇게 망가지셨어요. 춘천에 안 계셨어요? 어떻게 된 건데요?

성호 : ...(다시 눈 감고) 별 일 아니다.


뒤에서 슬몃 지켜보는 종수.



#56. 파인 앞길 (밤)


급히 나오는 수현. 시계보는데 휴대폰 울린다.


수현 : 네에...



#57. 커피숖 (밤)


들어오는 수현. 한쪽에 앉아있는 종수.


종수 : 잘지내죠?

수현 : 바쁩니다. 약속이 있어요.

종수 : (기분 상한다)

수현 : 용건이 뭐죠?

종수 : 누군 안 바뻐?

수현 : 뭡니까.

종수 : 영은이 말인데...지금...

수현 : 잠깐..말 잘라서 미안한데.

종수 : (본다)

수현 : 당신 언제까지 영은씨 주변 맴돌 거야?

종수 : 맴돌긴 누가 맴돌아? 미치구 환장하겠군.

수현 : (착잡한듯 담배 꺼내며) 얘기 계속 해요.

종수 : 지금 그 기집애 즈이 아버지랑 병원에 있는데...

수현 : 무슨 말이죠?

종수 : 한국말 못 알아들어? 어디서 그지 꼴을 해갖구 즈이 아버지라구 나타났드라구.

         집엔 얘기두 못하구 쩔쩔매길래, 내가 병원에 모셔 드렸으니까 수고비나 좀 내노슈. 가서 병원비두 좀 대주구.

수현 : ...

종수 : 싫음 말구.

수현 : ...



#58. 거리 (밤)


걸어오는 수현. 시계를 본다. 망설이다가 이윽고 택시를 잡는다.



#59. 두식집 부엌 (밤)


식사 앞에 놓고 기다리는 인옥과 두식.


두식 : 이 녀석이 왜이렇게 늦나... (시계 본다) 먼저 먹자. 차가 많이 막히나부다.

인옥 : ...

두식 : 자, 들자. 수저 들어. 우리 아주머니가 된장국 하나는 기가 막히게 끓인다.

인옥 : ..잘 먹을께요.


가정부, 들어온다. 전화기 내민다.


가정부 : 강회장님 전환데요.



#60. 두식집 거실 (밤)


통화하는 두식.


두식 : 하이구, 강회장 ...내 안그래두 전화 드릴까 하다가 늦었습니다... 어제 우리 애랑 식사 하셨다면서요?

         이 녀석 말루는 건강이 전보다 좋아보이신다구...(듣다가 점점 굳는다) ...그 따위 소릴 지껄이구 갔어요?


부엌 쪽에서 나오는 인옥.


두식 : 이거...이거 이녀석을 어째.. (창백해지며) 무조건 이거...다 내 탓입니다...내가 단 도리를 잘했어야 되는건데...

         이 녀석이 요새 좀 삐딱선을 타느라구...아니아니...그거 다 꾸며낸 소립니다....

         (듣는다) 사귀는 아이 없어요. 내가 보장합니다...그녀석 혜경이 뿐입니다....

         (듣다가) 내일 좀 만납시다... 그럽시다...낼 연락 드리리다.


전화 끊고 얼굴 벌개진 두식.


인옥 : 무슨 일 있나봐.

두식 : 어, 아니다.


이어서 울리는 전화벨.


두식 : 여보세요, (발끈) 너 이눔의 자식! 지금 어디야?



#61. 택시 안 (밤)


택시 뒷좌석에서 통화하는 수현.


수현 : ..오늘 좀 늦을 거 같습니다. 급한 일이 생겼어요...죄송하지만 두 분 식사하세요.



#62. 두식집 거실 (밤)


통화하고 있는 두식. 열이 펄펄 올랐다.


두식 : 죄송이구 나발이구 당장 못 기어들어와?


불안한 얼굴로 지켜보는 인옥.


두식 : 이 망할 놈! 애비 망신을 시켜두 유분수지! 어떻게 강회장 앞에서 그따위 망발을 할 수가 있어?

         니가 이놈아, 니가 제정신이냐? ... 지금 누구랑 있냐? ...당장 못 들어와? ...여보세요? 여보세요?


전화 끊어진다. 맥이 탁 풀리며 자리에 주저앉는 두식.


인옥 : ...괜찮아요?

두식 : ...

인옥 : (불안하게 바라본다) ...저 그만 가볼께요.



#63. 응급실 외경 (밤)



#64. 응급실 안 (밤)


잠든 성호 앞에 앉아있는 영은. 머리를 가만가만 쓸어본다.


영은 : 아버지...주무세요?

성호 : ...


영은, 가만히 성호 팔에 얼굴 기대고 엎드려본다. 다시 가만히 고개 들고 들여다본다.


영은 : (한참 그대로 보다가) 아버지...그때 왜 엄마랑 우리랑 버리셨어요?

성호 : ...

영은 : 나 아버지 얼마나 미운지 아세요? 뭐하러 오셨어요?


괜히 성호 환자복을 툭툭 건드려본다.

뒤에서 지켜보는 수현. 애틋하게 보고 있다. 천천히 다가온다.

한순간, 움찔 돌아보는 영은. 수현과 눈 마주치고 깜짝 놀란다. 앗, 하고 벌떡 일어나는데.


영은 : 어떻게 아셨어요?

수현 : ...



#65. 병원 앞뜰 (밤)


나란히 앉아있는 영은과 수현.


영은 : 회사에...무슨 문제가 생기셨는지...잠깐 피해 다니시나봐요... (이런 말 해야되나 고민된다)

         저두 잘은 모르겠어요. (창피하고 속상하다)

수현 : 네에...

영은 : (머쓱 웃고) 자세히 말씀을 안하시네요.

수현 : 아버님 몸은요?

영은 : 탈진에다 장염이 조금 겹치셨대요...에이, 뭐...괜찮으실거예요.

수현 : 지금...다른 분하고 사시는 건가요?

영은 : ...네.

수현 : 그쪽 가족분들 한텐 연락했어요?

영은 : 어, 네...연락이 잘 안되네요. 다시 해볼려구요, 인제.

수현 : 상황이 많이 안 좋으신 모양인데요?

영은 : 아니예요. 에이, 걱정마세요.

수현 : ...

영은 : ...


어색한 침묵 감돈다. 할 말 없는 영은.


영은 : 저 그럼 그만...


수현, 일어나려는 영은 손을 가만히 잡는다. 깜짝 놀라는 영은.


수현 : 기운 내요.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다 겪는 거죠 뭐.

영은 : (뭉클해지며) ...

수현 : 기운을 내세요...이거 영은씨가 나 처음 만난 날 해준 말인 거 알아요?

영은 : 어, 제가 그랬어요?

수현 : 그래요.

영은 : (웃음) 고맙습니다! 기운 없을 일이 어딨어요? 그래두 뭐, 기운 낼께요!


그러면서 가만히 손을 빼는 영은. 이 사람하고 손 잡으면 안된다.

하지만 다시 두손을 꼭 잡는 수현.


수현 : 가만 있어봐요. 내가 좋은 기운 막 불어넣어 줄께요.


잡힌 손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영은. 이 남자...정말 잃고 싶지 않다.

수현 손과, 머리와,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다가 이윽고 눈물이 글썽 맺혀온다.

제9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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