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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보일까봐] 13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9.04.04|조회수476 목록 댓글 0

[눈물이 보일까봐] 13











#1. 두식집 거실 (밤)


마주 선 세 사람. 얼어붙는 인옥.


수현 : ...안녕하세요.

인옥 : ...(멍하니)

두식 : 인사해. 내 아들놈이야.

인옥 : 아,안녕하세요.

수현 : ...

인옥 : ...(창백하다)

두식 : (표정 읽는다. 둘이 벌써 구면인가? 서늘해지는데) ...


얼굴색 변하며 스르르 주저앉는 인옥.


두식 : 인옥아,

인옥 : (허둥지둥 일어나서 나간다) 저 그만 갈께요.

두식 : (창백해지며 수현을 본다) ...

수현 : (시선 떨군다) ...

두식 : 인옥아,


쫓아나간다.



#2. 동 대문 앞 (밤)


급히 나오는 인옥. 쫓아나오는 두식.


두식 : (잡고) 인옥아,

인옥 : (뿌리치고) 들어가세요. 갈께요.

두식 : 잠시 들어가서 얘기나 하고...

인옥 : 아뇨. 갈래요. 나중에 봐요.


뿌리치고 허겁지겁 달려가는 인옥. 더 못 붙잡고 허탈하게 바라보는 두식.



#3. 거리 (밤)


멍하니 걸어가는 인옥.



#4. 돈까스 가게 앞 (밤)


천천히 다가오는 인옥. 상호 확인한다.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망설인다.

순간 안에서 나오는 영은. 영은아, 부르려는 순간, 뒤에서 뛰어오는 꼬마들.


은석,준석 : (안기며) 누나!

영은 : 여기까지 뭐하러 왔어?


다정하게 끌어안는 그들을 놀라서 지켜보는 인옥.

이윽고 인옥을 발견하는 영은. 창백해진다.


영은 : 어,엄마,


꼬마들과 영은을 번갈아보며 기가 막히는 인옥.


인옥 : 너...얘들하구 같이 지내는 거니?

영은 : ...

인옥 : 대답해. 같이 살구 있어?

영은 : 네.


눈치 보는 남동생들.


인옥 : 느이 아버지두?

영은 : 며칠만...며칠만 부탁하고 가셨어요. (난감한듯 조금 웃는다)


이윽고 폭발하는 인옥. 영은 따귀를 올려 붙인다.


인옥 : 정신 나간 기집애!

영은 : ...

인옥 : 그 말을 믿어? 어떻게...어떻게 이것들을 떠맡어?


왕, 울음 터뜨리는 남동생들.


인옥 : (미움 어리며 아이들 쏘아보더니 혼잣말) 천하에 나쁜 놈.

영은 : ...

인옥 : (이윽고 꼬마들 떠민다) 그쳐! 울지마라! 니들 사는 데 어디냐? 가보자!


남동생들, 울먹하며 영은을 바라보고 있다.



#5. 자취방 외경 (밤)



#6. 동 방안 (밤)


방안에 앉아있는 인옥과 영은. 그리고 두 꼬마.

을씨년스런 방안을 둘러보는 인옥. 화가 점점 더 난다.


인옥 : 너희들 잠깐 밖에 나가 있어라. 아줌마가 이 누나랑 할 얘기가 있어.


준석,은석 손을 잡고 슬몃 밖으로 나간다.


영은 : 멀리 가지마.

인옥 : (노려본다) 모자란 기집애.

영은 : ...

인옥 : 어쩔 작정으루 일을 이만큼 벌였어?

영은 : ...아버지 오실 때까지만 돌볼께요.

인옥 : 안 오면?

영은 : 오시겠죠.

인옥 : 안 오면! 니가 데리구 영영 살래?

영은 : ...네.


인옥, 질린다.



#7. 자취집 앞길 (밤)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준석. 은석.

다가오는 종수.


종수 : 잘있었냐?

은석 : 아저씨!

종수 : 아저씬 무슨 아저씨냐, 임마. 형이라구 불러. 나랑 나이차두 얼마 안나는 놈들이!


하드 하나씩 건네주는 종수. 고맙습니다, 받는 꼬마들.


종수 : 밤중에 왜 나와 있냐? (안을 기웃거린다)

준석,은석 : ...(서로 눈치 본다)

종수 : 안에 누구 왔어?



#8. 자취방 (밤)


마주 앉아있는 인옥과 영은. 가만히 보다가 길게 한숨 쉬는 인옥.


인옥 : 애들 당장 고아원에 집어넣어!

영은 : ...(착잡하다) 엄마,

인옥 : 우리랑 아무 상관없는 애들이야. 당장 집어넣구 집에 들어와.

영은 : (각오한듯) ...아버지 곧 오실 거예요. 그때까지만 돌볼께요.


마주 보는 모녀. 긴장 감돈다.

이윽고 일어나는 인옥.


인옥 : 맘대로 해라! 맘대로 살아! 나는 모르겠다!

영은 : ...

인옥 : (돌아서다가 이윽고 다시 돌아본다) 너 그동안 왜 얘기 안했니.

영은 : (본다)

인옥 : 니 남자친구 아버지...누군지...알구 있었지?

영은 : ...(멈칫)

인옥 : 왜 알면서 얘기 안했니.

영은 : ...그 사람하구 나하구...대단한 사이 아니예요. 남자친구는 무슨...

인옥 : (본다)

영은 : 정말...아무 사이 아니예요. 안그래두 엄마 신경 쓸 거 같아서 얘기 할려던 참이예요.

         나두 그 사실 알구나서 깜짝 놀랐는데...다행이지 뭐예요. 그사람하구 나하구 진짜 사귀기라두 했음 어쩔뻔 했어?

인옥 : (본다)

영은 : ...아무 걱정 마시구 결혼하세요, 엄마.

인옥 : 독한 기집애.

영은 : ...

인옥 : 말을 말자. 말을 말어. 나 너한테 두 손 다 들었어.

         애들하구 살든 니 아버지랑 같이 살든...나는 이제 몰라. 너 내 딸 아니야.

영은 : ...

인옥 : 니 맘대루 잘 살아봐.


나가버린다. 그대로 앉아있는 영은.



#9. 대문 앞길 (밤)


안에서 나오는 인옥. 놀라서 얼른 몸을 감추는 종수.

밖으로 나오는 인옥. 하드 물고 눈치 보는 두 꼬마.

외면하고 급히 가버리는 인옥. 멀찌기서 바라보는 종수.



#10. 두식집 외경 (밤)



#11. 수현방 (밤)


들어오는 수현. 수화기 들고 번호 누른다.



#12. 인옥방 (밤)


착잡한 얼굴로 홀로 앉아있는 인옥. 울리는 전화벨. 전화 받는다.


인옥 : 여보세요.

수현(E) : ...저...조수현입니다...

인옥 : ...(긴장하다가)

수현(E) : 내일 낮에 잠깐 뵙고 싶습니다.

인옥 : ...그래요. 그럽시다. 아깐 내가 경황이 없었어요.



#13. 영은 자취방 (밤)


누워있는 준석과 은석. 그 앞에 앉아있는 영은.


영은 : 빨간 모자가 문을 탕탕탕 두드렸더니 안에서 늑대가 할머니 목소리로 누구세요? 그러는 거야.

은석 : 에이, 늑대가 할머니 목소리를 어떻게 내요?

영은 : 아, 그거는...그냥 그랬다 치는 거야. 동화는 원래 그래.

         으음...그래 갖구 빨간모자가 저예요, 할머니...맛있는 빵을 구워왔어요...문 좀 열어주세요...그랬거든? 으, 그런데...

은석 : 아, 디게 재미없어요.

영은 : 재미없니? 난 재밌는데.

준석 : (큭 웃고) 얘는 원래 그런 거 재미없어 해요.

영은 : (곁에 돌아 눕는다) 흐음, 뭐...재미없음 말어!

은석 : ...

영은 : ...나 삐졌어.

은석 : 누나...

영은 : 삐졌어.

은석 : 아빠 언제 와요?

영은 : (돌아 본다) ...어어, 금방 오셔.

준석 : 언제요?

영은 : 금방. 곧 오신다구 전화왔어.

은석 : 집에 가고 싶어. 여기 순 거지 같은 집이야.

영은 : 아우...거지라 그럼 누나가 섭섭하지.

준석 : (쥐어박고) 잠이나 자, 임마. 우리집 인제 없어!

은석 : 왜 때려! 우리집이 왜 없어?


이불 덮어주며 다독거려주는 영은.


영은 : 쪼끔만 참아. 아빠 금방 오실 거야...니네 집이 왜 없어? 아빠 오시면 금방 갈거야....아참, 은석이 오줌 안 누구 잘래?

은석 : (하품) 아까 눴어요.

영은 : 착하다.

준석 : (시무룩하게 돌아누워있고) ...


준석 어깨를 토닥여주는 영은.



#14. 대문 앞 (밤)


웅크리고 있는 영은. 곁에 와서 앉는 종수. 포장 안 푼 새담요 하나 내려놓는다.


종수 : 많이 혼 났냐?

영은 : (멈칫 본다) ...

종수 : 오다가 심심해서 이불 하나 샀다. 며칠을 살아두 있을 건 다 있어야지.

영은 : ...

종수 : 느이 어머니 속이 터질만두 하지 뭐. 내딸이라두 가만 안 둔다.

         집 나가 몰래 배 다른 동생들 거두구 있으니 기가 막히시겠다 ...그만하면 많이 참구 가셨다.

영은 : ...맞아요.

종수 : 맞긴 뭐가 맞냐... 야, 그건 그거구...뭐가 어떻게 된건지...얘기 좀 해봐라.

영은 : 뭐가요.

종수 : 그 자식이랑 뭐가 문제냐? 내가 다 해결해주께. 너 이러구 지내는데 와보지두 않냐?

영은 : ...

종수 : 도대체 그 새끼 이러는 거 몇번째냐? 이 자식을 죽여, 말어.

영은 : 종수 오빠,

종수 : (놀라서 본다)

영은 : 동생 걱정하는 건 고마운데...(피식) 그런 걸루 죽이진 마세요.

종수 : (본다) 농담 아냐, 임마.

영은 : 나두 농담 아니예요. 담요 고마워요. 잘 덮을께요.

종수 : 고맙긴 뭘. 오빠가 돼서 이 정도두 못 사주냐.


쓸쓸히 웃다가 자기 생각에 빠진 영은. 가만히 지켜보는 종수.


영은 : 내가...오빠 복이 많은가 봐요.

종수 : 무슨 소리냐.

영은 : ...(웃는다)



#15. 까페 (낮)


수현과 마주 앉아있는 인옥.


인옥 : 우리 애랑 만나면서...여자친구랑 헤어진건가요?

수현 : 그런 건 아닙니다. 그전부터 그 친구랑은 헤어질 마음이었습니다.

인옥 : 영은이하곤 서로 확신이 있는 사이예요?

수현 : ...네.

인옥 : 그래요, 많이 좋아한다는 얘기, 아버지한테서 들었어요.

수현 : (본다)

인옥 : ...(여전히 믿기지 않는듯 멍하니 찻잔만 만지작거린다)


사이. 이윽고 각오한듯 바라보는 수현.


수현 : ...저...영은씨랑 헤어지고 싶지 않습니다.

인옥 : (본다)

수현 :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만나서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습니다. 영은씨 없이 지내는 거 상상하기 힘듭니다.


간절히 바라본다. 잠시 긴장 흐른다.


인옥 : ...헤어져요. 두사람.

수현 : (멈칫 본다)

인옥 : 난 절대로 반대예요. 우리 애랑 앞으로 두번 다시 만나지 말아요.

수현 : (뜻밖인데)

인옥 : 젊을 때 감정...얼마든지 변해요. 빨리 정리하고 다른 친구 만나길 바래요.

         아버지 뜻 거스르고, 온 집안 뒤흔들면서 둘이 얼마나 행복할 수 있겠어요?

수현 : ...

인옥 : 나랑 약속해줘요. 앞으로 우리집 앞에, 우리 애 앞에...나타나지 말아요. 돌아가서 제자리 지키고 여자친구랑 잘지내세요.

         하늘이 두쪽이 나두 나는 반대예요. 내말 명심해요.

수현 : ...어머님,

인옥 : 아뇨. 듣고 싶지 않아요. 바빠서 이만 일어날께요.

수현 : ...(당혹스러운데)



#16. 청과물 상회 (낮)


들어오는 인옥. 기다리고 있는 두식.

멈칫 놀라는 인옥.


두식 : 어디 다녀오냐?

인옥 : 언제 오셨어요.

순금 : 아유, 한시간 전부터 와서 기다리신다.

인옥 : 오빠, 가세요.

두식 : ...

인옥 : 다시 오지 마세요. 이제 다 끝났어요.

두식 : 뭐가 끝이 나?

인옥 : 가요.


눈치 보며 나가는 순금.


두식 : 내가, 이 조두식이가 ...그깟, 애들 소꼽장난 앞에 그렇게 쉽게 무너질 줄 알았냐? 너는 겨우 그정도였냐?

         나한테 와서 결혼하자구 매달릴 땐 언제고 딸래미가 내 아들놈이랑 연애질 조금 한다고 금방 물러서?

인옥 : 그게 연애질 조금이예요? 걔들이 어떻게 한 집에서 살 수 있다구 생각해요?

두식 : 왜 못 살아? 걔들 정리된다.

인옥 : 오빠,

두식 : 왜 못해! 너 니 딸하구 얘기해봤냐? 그거 우리 아들놈 짝사랑이드라.

인옥 : (본다)

두식 : 니 딸은 꿈쩍두 않는데 우리 아들놈만 혼자 미쳐 날뛰는 거다.

인옥 : (멈칫 하다가) 말두 안되는 소리 말아요.

두식 : 물어봐라! 가서 물어봐. 니 딸한테 물어보면 되잖냐.

인옥 : 그러든 아니든 상관 없어요. 어쨌든 똑같애요. 가당키나 한 얘기예요?

두식 : (잡는다) 너 겨우 그 정도였냐? 나한테 겨우 그정도 마음 뿐이었냐?

인옥 : 네...전부 다 없었던 걸로 합시다. 애들두 우리두 다요.

두식 : ...인옥아,

인옥 : (돌아선다) 가세요! 나 일해야 돼요. 그만 회사 들어가세요.

두식 : ...(절망 어린다)



#17. 두식 사장실 (낮)


불안한 얼굴로 멍하니 소파에 앉아있는 두식. 들어오는 정희.


정희 : 몸 좀 어떠세요.

두식 : 괜찮아.

정희 : 며칠 더 쉬시지 왜 벌써 나오셨어요.

두식 : 회사 꼴이 말이 아니잖아.

정희 : ...수현이한테서 얘기 들었습니다.

두식 : (본다) 무슨 얘기?

정희 : 며칠전에 같이 술 한 잔 했어요. 만나시는 분 따님이라면서요.

두식 : ...

정희 : 묘한 인연두 다 있다 싶네요.

두식 : 나가서 일 봐!

정희 : 사장님.

두식 : ...

정희 : 제가 이러는 거 어줍잖은 줄 압니다만...양보하시는게 좋겠어요.

두식 : 어줍잖은 줄 알면 나가 봐.

정희 : 수현이 많이 괴로워하고 있어요. 사장님 마음 못 헤아리는 거 아닙니다만...

         수현이가 그 친굴 무척 좋아해요. 단순한 호감 정도는 아니었어요.

두식 : ...

정희 : 평생 서로 어떻게 얼굴 마주 보실려 그러세요? 수현이 뜻 이루게 해주세요.

두식 : 윤실장.

정희 : 네.

두식 : 나는 더 많이 괴롭다. 나는 뭐, 단순한 호감인 줄 알아? 나한테는 운명이야.

         나는 그놈 사랑 안 믿어. 혜경이 처음 만났을 때두 좋다 그랬어.

         이참에 혜경이랑 둘이 한 삼사년 외국 가서 살다오라구 보내버릴 생각이야.

정희 : ...

두식 : 몸이 떨어져 있으면 자연히 마음도 떨어져.

정희 : ...사장님은 그렇게 되시든가요?

두식 : (멈칫 보다가) 나하고는 달라! 그놈은 지금 나하구 싸우자는 거지, 그 아이랑 어찌 해보겠다는 거 아니야.

         금방 정리할 수 있어. 내가 다 알아.

정희 : (어이없고 허탈하다)

두식 : (일어나며 오기 어린다) ...나가 봐.



#18. 돈까스 가게 (낮)


서빙하는 영은. 입구에 들어서는 수현.

돌아서다가 수현과 눈 마주치자 놀라는 영은.


수현 : 언제 끝나요?

영은 : 아직 멀었어요.

수현 : 끝날 때까지 가게 앞에서 기다릴께요.


나간다. 난감한 영은.



#19. 가게 앞길 (낮)


안에서 나오는 영은. 인근 바닥에 털썩 앉아 신문 한장 보며 기다리고 있는 수현이 보인다. 다가간다.


영은 : 저 아직 멀었어요.

수현 : 기다릴께요.

영은 : 다섯시간도 더 기다리셔야 돼요.

수현 : 오십년도 기다릴 수 있어요.

영은 : ...

수현 : 들어가서 계속 일해요.

영은 : ...



#20. 종수 지하 창고 앞 (저녁)


들어오는 종수. 기다리는 혜경. 차에서 내린다.


혜경 : 어디 갔다 이제 오니?

종수 : 뭐냐.

혜경 : 얼마나 기다렸다구.

종수 : ...니가 날 왜 기다려?

혜경 : 술 사줄께. 가자.

종수 : 나 바쁘다.

혜경 : 양아치가 바쁠 게 뭐 있니. 니가 가진 게 시간 밖에 더 있어? 가자.


무시하고 그냥 들어가버리는 종수.



#21. 창고 안 (저녁)


들어오는 종수. 따라 들어오는 혜경.


종수 : 너 뭐하러 날 자꾸 찾아오냐? 내가 그렇게 좋냐?

혜경 : 그동안 내가 너랑 정이 많이 들었나봐. 보고싶드라.

종수 : 허,

혜경 : (곁에 앉는다) 재밌는 일이 생겼어. 혼자 알고 있으려니까 니 생각이 자꾸 나드라.

종수 : ...

혜경 : 수현씨 아버님하구 영은씨 어머니하고 결혼하신다 그러네.

종수 : 무슨 소리냐.

혜경 : 나두 첨엔 무슨 소린가 어이가 없드라. 오늘 수현씨 회사 실장님하구 점심 했어.

         걔들두 참...안됐다 싶어. 그게 무슨 악연이니.

종수 : (본다)

혜경 : 하늘 아래 그런 일이 다 생기네. 안될 사람들은 어째두 안되나 싶구...마음이 아퍼.

종수 : ...

혜경 : 나야 뭐 다 포기한 상태지만...너는 가서 위로 좀 해줘라. 약한 마음에 얼마나 멍이 들었겠니.

종수 : 뭐 이런 이상한 기집애가 다 있냐.

혜경 : 뭐?

종수 : 내가 살다살다 너같은 저질은 처음 본다. 그게 너는 재밌는 일이냐?

혜경 : ...내가 당한 거 생각하면 재미있지. 하늘이 괜히 있는 건 줄 아니. 남한테 못할 짓 하는 인간 벌 내리라구 있는 거야.

종수 : 나가.

혜경 : (본다)


잡아 일으키는 종수.


종수 : 너같은 거랑 한 하늘 아래서 숨쉬는 것두 끔찍하다. 도대체 니 머릿속엔 뭐가 들었냐? 그게 재미있냐?

혜경 : 이거 못 놔?

종수 : (떠민다) 나가!



#22. 자취방 앞길 (저녁)


들어오는 종수. 기웃거린다.



#23. 자취방 안 (저녁)


은석, 누워있다. 곁에 앉아 볼 두드리는 준석.


준석 : 임마, 정신 차려...어디가 아픈지 말을 해야지! (두드리며) 야! 야!


땀 흘리며 신음하는 은석.

문 쿵쿵 두드리는 소리 난다. 문 열리고 안으로 들어오는 종수.


종수 : 누나 없냐?

준석 : 아저씨!

종수 : 왜그래?

준석 : 은석이가 많이 아퍼요.

종수 : (대뜸 들어오며) 어디가 아퍼?

준석 : 모르겠어요. 뭘 잘못 먹었나 봐요. 다 토하구요,


머리 짚어보며 안아 일으키는 종수.


종수 : ...업혀, 임마!



#24. 대문 앞 (저녁)


은석 업고 안에서 뛰어나오는 종수. 뒤따라 나오는 준석. 골목 끝으로 달려간다.



#25. 돈까스 가게 앞 (저녁)


퇴근하는 영은. 여전히 그자리에 앉아 있는 수현.

바라보며 마음 아픈 영은. 다가간다.


수현 : (본다) 끝났어요?

영은 : (웃고) 네.

수현 : (웃으며 일어난다) 저녁 먹으러 가요.

영은 : 저, 집에 가야 돼요. 동생들 기다려요.

수현 : 동생들요?

영은 : 네. 저 요즘 아버지 쪽 동생들하고 같이 있어요.

수현 : ...

영은 : 아버지 사정상...사정상 그렇게 됐어요. 아직 어려서... 가봐야 돼요.

수현 : 그래요? ...같이 가요.

영은 : 아뇨. 혼자 갈래요.

수현 : 같이 가요. 만나고 싶네요.

영은 : 아뇨.

수현 : ...내가 도울 일은 없나요?

영은 : 아유, 없어요. 며칠 있다 데릴러 오실 거예요.

수현 : ...영은씨,

영은 : (다시 웃고) 많이 기다리셨는데...화나죠? 그래두 할 수 없어요. 저 가야돼요. 저 무지 바쁘거든요.

수현 : 좋아요...그럼...같이 집 앞까지만 걸어가요. 가면서 할 얘기가 있어요.



#26. 골목 (저녁)


나란히 걸어가는 영은과 수현.


수현 : 언제나, 저 가야돼요, 가볼께요, 그만 일어나겠습니다...그러는 거 알아요?

영은 : 어, 제가 그랬어요?

수현 : 그럴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드는지 알아요?

영은 : (본다)

수현 : 이 사람은 항상 도망치면서 살았구나...맞서서 싸우는걸 무척 무서워하는구나...

영은 : ...

수현 : 그럼 할 수 없구나, 내가 대신 싸워주는 수 밖에 없구나, 그렇게 생각하죠...

         영은씨, 하지만 언제까지나 도망칠 수는 없어요. 결국 막다른 골목이 나타나고, 조그마한 칼이라도 빼들고 싸워야 돼요.

         도망가는 건 선량한 것두 순수한 것두 아니고 비겁한 겁니다.

영은 : (멈춰 선다)...저...도망 안가요.

수현 : ...

영은 : (잠시 멈춰 생각하다가)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지요? 우리가 만나면 누군가 많이 아파야 돼요.

         만나면 만날수록 모두다 점점 더 힘들어져요.

수현 : 평생에 몇번쯤, 나 때문에 누군가 좀 아플 수도 있어요.


사이.


영은 : 그 누군가가 어머니 아버진걸요.

수현 : ...

영은 : (미안한듯 얼른 웃고) 가세요...저 그만 들어갈께요.

수현 : ...



#27. 자취방 (밤)


문 열고 들어오는 영은. 눈물 글썽하는데...불꺼진 방안. 아무도 없다.

놀라서 도로 나가는 영은.



#28. 대문 앞길 (밤)


주위 두리번거리는 영은.


영은 : 준석아! 은석아!


골목 끝으로 달려나간다. 마침 잠든 은석을 업고 들어오는 종수와 맞닥뜨린다.

뒤따라오는 준석. 손에는 조립 장난감 하나 들고, 입에는 하드 하나 물고 있다.


영은 : 어떻게 된거예요?

종수 : 식중독이랜다.

영은 : 식중독이요?

종수 : 인제 괜찮아. 주사 맞히구 약두 타왔어. (피식) 짜식, 아무거나 막 줏어먹구...

영은 : (은석 쓸어보며 안쓰럽다) 은석아, 괜찮니? 얼굴이 새하얗네.


일행, 안으로 들어간다.

반대편 골목 저끝에서 지켜보는 수현. 허탈하다.



#29. 동 방안 (밤)


잠든 은석과 곁에서 장난감 조립하는 준석.

약 봉지 꺼내서 머리맡에 놓는 종수.


종수 : 식후 삼십 분, 이틀치다.

영은 : (본다) 어떻게 된 거예요?

종수 : 우연히 이쪽 지나다가...아, 뭐 이 자식이 운이 무진장 좋았지 뭐.

영은 : 고마워요.

종수 : 고맙긴 뭘.

영은 : 병원비 얼마나 나왔어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만원권 다섯장을 꺼내는 종수.


종수 : 나 오늘부터 공사판에 나간다. 일당 받은거야.

영은 : !

종수 : 나 칭찬 해주라. 사람 돼가는 소리 안 들리냐?

영은 : (웃는다) 들려요.

종수 : 이거 받아 넣어라.

영은 : 네?

종수 : 중고 냉장고라두 하나 사야지. 이대로 인간이 어떻게 사냐?

         느이 아버지 언제 오실 줄 알구...야, 내가 보기엔 오기는 뭘 오냐? 텄어.

준석 : !

영은 : (얼른 눈치) 아,아뇨...오늘두, 아까두 전화 받았어요. 금방 오신대요.

준석 : 정말 전화왔어요?

종수 : (준석 눈치 읽고) 왔으면 온거지, 임마...누나가 거짓말 할 사람이냐? 근데 너 안 자냐?

준석 : 잘 거예요.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눈 감는다.


종수 : 옳지. 착하다. 너 임마, 잠깐 귀 좀 막구 있어라.

준석 : (웃더니 귀 막는다) 네.

영은 : (본다)


잠깐 머뭇하는 종수.


종수 : 영은아...너 나랑 사귀자.

영은 : (멍하니)

종수 : 안 괴롭힐께. 진짜 새사람 되구, 너 하라는대로 다 한다.

영은 : ...

종수 : 얘들 내가 돌볼께. 느이 아버지 언제 오시든 그때까지 내가 책임진다. 여긴 나한테 맡기구 집에 들어가라.

영은 : ...

종수 : 내가 여기 와서 살면서 애들 밥두 해먹이구 옷두 해 입히구...친동생처럼 잘해줄테니까...

         넌 느이 엄마 곁으루 들어가라.

영은 : 고맙지만...괜찮아요.

종수 : 그렇게 해.

영은 : 아뇨. 말이라두 고마워요.

종수 : 아, 진짜 말을 무진장 안 듣네. 그렇게 하라면 그렇게 해. 그리구...그 자식 잊어라.

영은 : (본다)

종수 : 맘 아프겠지만 잊어. 애초부터 너랑 인연이 아닌 거야. 나두 대충 들었다.

영은 : ...뭘 들었어요?

종수 : (난감한듯 일어나며) 잘자라...간다.


후다닥 나가는 종수. 귀에서 손 떼고 가만히 바라보는 준석.

접혀진 만원권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마음 아파오는 영은.



#30. 대문 앞길 (밤)


휘파람 휘익 불며 골목을 나서는 종수. 골목 끝에 초라하게 앉아있는 수현을 발견하고 멈칫 놀란다.

긴장하며 잠시 바라본다. 이윽고 눈 마주치는 두사람.


종수 : ...어디 가서 술 한잔 하자.

수현 : ...


앞서가는 종수.



#31. 포장마차 (밤)


소줏잔 놓고 마주 앉아있는 수현과 종수. 좀 당황하고 있는 종수.


종수 : 왜? 영은이 앞에 왜 또 어슬렁거리냐구 따질려 그러냐?

         어슬렁거리면 좀 어떠냐? 나름대로 중요한 용무가 있어서 온거다.

수현 : ...

종수 : 사실은...나두 알 거 다 안다. 어쨌든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수현 : (본다)

종수 : 임마, 인생사 다 그런 거지 뭐. 고개 넘으면 더 큰 산이고...뭐 그런 거 아니냐.

수현 : ...

종수 : 좋은 추억으루 생각하구 그냥 잊어라. 그리구 (망설이다가) 나랑 영은이...

         앞으로 어떻게 지내든 상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대꾸없는 수현. 담배만 한대 붙여 문다.

점점 초조해지는 종수.


종수 : 물론 너 지금 화나구 분한 마음은...내가 알겠는데...

수현 : 종수씨,

종수 : (본다)

수현 : 전에 나한테...내가 정말 영은씰 사랑하느냐구 물었지?

종수 : ...

수현 : 만나서 즐기는 게 사랑이 아니라구 그랬지? 내 사랑은 가짜구 엉터리라 그랬지?...

         생각해 봤는데...나는....요즘 사랑하는게 뭔지 절절이 느껴.

종수 : (당혹)

수현 : 앞으로 둘이 어떻게 지내도 좋아. 영은씨한테 관심 가지고 따뜻하게 대해준다면 나로선 고맙지 뭐가 화가 나?

종수 : ...

수현 : 고맙다. 충고도 고맙고, 영은씨한테 잘해주고 관심가져주는 것도 고맙다.

종수 : ...


일어나는 수현.


수현 : 여기 계산합니다. 얼맙니까.

종수 : (무참해진다) ...



#32. 두식집 외경 (밤)



#33. 동 거실 (밤)


들어오는 수현. 소파에 앉아있는 두식.


수현 : 몸 좀 어떠세요.

두식 : 이리 와 좀 앉아라.


마주 앉는 수현. 가만히 바라보는 두식.


두식 : 애비가 널 보면 항상 죄스럽기 그지없다...그 어린 나이에 에미 없이 혼자 됐어두 어디 한번 다정하게 안아주기를 했냐...

         너 혼자 이만큼 커서 연애두 하구 가게 일두 척척 잘해나가니 퍽이나 대견하구 기특하다.

         헌데...우리가 오늘 이 무슨 해괴한 인연으루 엮어져 가지구...(글썽거린다) 내가 벌을 받나보다.

수현 : (본다)

두식 : ...좋다, 애비가 마음 접으마.

수현 : !

두식 : 대신 너두 포기해라.

수현 : ...

두식 : 외국 가서 한 몇년 공부하구 오너라. 내가...니 얼굴 마주 대하고 살 자신이 없다.

         너 보면 자꾸만 인옥이 생각날 거구, 답답하구 서글퍼질거구, 그럼 내가 제명에 못산다.

수현 : ...

두식 : 이번에 가서 제대로 공부 좀 하구와라. 내가 미래에 니 도움 좀 확실하게 받아보자.

수현 : ...

두식 : (애절히) 이놈아...


사이. 잠시 침묵 흐른다.


수현 : (착잡하게 본다) 좋습니다.

두식 : (뜻밖이다)

수현 : 그렇게 하겠습니다...안그래도 생각 중이었습니다.

두식 : 정말루 그래볼테냐?

수현 : ...네. 준비되는대로 떠날께요.

두식 : (본다)



#34. 자취방 (낮)


은석, 준석과 둘러앉아 밥 먹는 영은. 작은 소반에 플라스틱 그릇들과 반찬 두어가지.

은석에게 죽을 떠 먹이는 영은. 한 두 숟갈 받아먹다가 도리질하며 자리에 눕는 은석.


영은 : 조금만 더 먹어.


우울하게 돌아눕는 은석.


준석 : 더 먹어, 임마.

영은 : 딱 세 숟갈만 더 먹자. 다 먹으면 누나가 종이접기두 해주구 놀이동산두 데려가줄께.

은석 : ...

영은 : 어디...가고 싶은 데 있어? 누나가 다 데려가줄께! 동물원 갈까? 사자랑 코알라 보러 갈까? 응? 응?

은석 : 집에 갈래요. (울먹) 엄마 보고 싶어요.

영은 : ...

준석 : (쥐어박고) 임마!

영은 : (얼른 말리며) 집에 데려다줄께.

은석 : 정말요?

영은 : 그럼! 이거 세숟갈만 먹으면...아니다, 네 숟갈만 먹으면!


부스스 일어나 받아 먹는 은석. 안쓰럽게 바라보는 영은.

문 두드리는 소리.


준석 : 아저씨다!


문 열어주면 서 있는 종수. 과자를 한아름 안고 있다.


종수 : 잘있었냐?

준석,은석 : 아저씨!

종수 : 아저씨 아니라니까! ...들어가두 되냐?

영은 : (난처하다) 왔어요?

종수 : (문턱에 걸터 앉으며) 임마, 좀 어떠냐? 안 아퍼?

은석 : 네.

종수 : 꾀병이구나?

은석 : 아니예요! 우리요, 밥 먹구 집에 가기로 했어요. 그죠, 누나?

영은 : ...(당황) 어, 그래.

종수 : (본다) 그러냐? 안그래두 이 형이 니들 데려다 주러 온거다.

준석 : 정말요?

종수 : 어린것들이 어디서 속고만 살았냐?

영은 : (본다)

종수 : 출근해라. (맡기라는 듯 눈짓한다)

영은 : ...(난감하다)



#35. 돈까스 가게 (낮)


들어오는 영은. 한쪽에 앉아있는 경은과 지은.


영은 : (당황) 언니...

경은 : 이제 나오니.

지은 : (한숨)

경은 : 와서 좀 앉아봐.


가서 마주 앉는 영은. 다가와 메뉴판 건네는 민식.


민식 : 언니들이 아주 대단한 미인들이시네...가게가 환하다!

지은 : 저희 먹으러 온 거 아니예요.

경은 : 아닙니다...쥬스 세 잔 주시겠어요?

영은 : ...

지은 : (쥐어박고) 이 못말리는 또라이,

경은 : 지은아,


당황하는 민식.


민식 : 그럼...얘기들 편하게 나눠요.


물러선다.


경은 : 요즘 어디서 지내니.

영은 : ...아휴, (씩 웃고) 큰언니까지 바쁜데 뭐하러 왔어.

경은 : 어디서 지내!

영은 : ...



#36. 놀이터 (낮)


준석, 은석과 축구하는 종수. 넘어지고 일으켜주고 셋다 아주 신났다.



#37. 자취집 대문 앞 (낮)


다가오는 인옥. 안을 기웃거린다. 안으로 들어간다.



#38. 동 방안 (낮)


문 열고 들어오는 인옥. 아무도 없는 방안을 둘러본다.

흩어진 약봉지, 냄비, 플라스틱 그릇, 장난감, 옷가지 등을 가만히 바라본다.



#39. 동 대문 앞 (낮)


땀 닦으며 들어오는 종수와 준석, 은석.


종수 : 돼지.

준석 : 지렁이.

종수 : 이쑤시개

은석 : 개밥

종수 : 밥풀

준석 : 풀빵

종수 : ...빵빵하다

은석 : 아휴, 빵빵하다가 뭐예요.

종수 : 빵빵하다가 빵빵하다지 뭐긴 뭐냐.

준석 : 아, 그건 안돼요. 반칙이예요.

종수 : 그럼 빵꾸.

은석 : 빵꾸두 안돼요. 우리말을 써야죠.

종수 : 아, 증말 이것들...더럽게 똑똑한 척 하네. 나 안해, 임마. 수준이 있지.

준석 : 아저씨 배고파요.

은석 : 나두.

종수 : 뭐 벌써 배가 고프냐? 나두 고프다, 임마. (머리 쓱쓱 쓰다듬고) 얼른 들어가 라면 끓여먹자.

은석 : 네!


셋이 키득거리며 뛰어 들어간다.



#40. 동 방안 (낮)


인옥, 속상한듯 눈물 훔치며 걸레로 방안을 닦고 있다.

문 드륵 열리고 뛰어들어오는 은석, 준석. 그리고 종수.

눈 마주치면 소스라치게 놀라는 인옥.


인옥 : 너...

종수 : (난감하다)

인옥 : 너...

종수 : ...안녕하십니까.


눈치 보는 꼬마들.


인옥 : (걸레 집어던진다) ...이 기집애가 증말!



#41. 돈까스 가게 안 (낮)


쥬스잔 놓고 언니들과 마주 앉아 있는 영은.


경은 : 당장 집에 들어와.

영은 : ..

지은 : 엄마 요즘 어떠신지 아니? 통 잠두 안 주무시구 밥두 안드셔.

영은 : ...

경은 : 어떻게 된거야? 아버지 애들하구 같이 산다며?

영은 : 응.

지은 : 미쳤니, 너? 걔들을 왜 맡아!

영은 : ...그러게.

지은 : 너 바로 말해봐...엄마랑 그 아저씨 요즘 통 안 만나드라...너 때문이야.

         니가 그 애들 떠맡아갖구 사는데 엄마가 그 아저씨 만날 기분이 나겠어? 안그래?

영은 : ...

경은 : 아버지한텐 연락 안돼?

영은 : 며칠 안으로 데릴러 오신대.

경은 : 진짜야? 어디 계신지 수소문은 해봤어?

영은 : (본다)

경은 : 어떡하든 아버지 찾아내서 애들 돌려보내. 그리구 엄마한테 와서 빌어. 이게 무슨 어리석은 짓이야? 알긴 알아?

영은 : ...알아.

지은 : (답답해서 가슴 쾅쾅 친다) 후우, 이 꼴통을 도대체 어쩌면 좋아?

영은 : ...



#42. 자취방 대문 앞 (낮)


인옥과 나란히 앉아있는 종수.


종수 : ...죄송합니다...그렇잖아두 한번 찾아뵐까 했는데...

인옥 : 니가 왜 날 찾아와?

종수 : ...전에 댁에 가서 행패 부린 거 사과할려구요.

인옥 : 허,

종수 : 그때 제가 머리가 확 돌았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십쇼.

인옥 : 용서구 뭐구...니가 왜 여기 와 있어?

종수 : ...

인옥 : 영은이하구 무슨 사이야?

종수 : ...좋아합니다, 어머님.

인옥 : !

종수 : 저...마음 잡구 한번 제대로 살아볼려 그럽니다. 그전 모습은 잊어주십시요. 영은이한테 잘하겠습니다.

         여러가지루 성에 안 차시겠지만...노력,

인옥 : 시끄럽다. 입닥쳐.

종수 : ...

인옥 : (아득해진다) 설마...니들 둘이 여기서 살림 차린 건 아니지?

종수 : 절대 아닙니다.

인옥 : (본다) ...


이윽고 속상해서 얼굴 감싸는 인옥. 난감해지는 종수.

골목 들어서는 영은. 두사람 광경에 얼어붙는다.

일어나는 종수.


종수 : 인제 오냐.

인옥 : (움찔 고개 든다)

영은 : ...어,엄마,

인옥 : (일어나며 얼굴 일그러진다) 이 기집애야! 차라리 엄마를 잡아먹어라...

영은 : ...

인옥 : (안으로 떠민다) 잘해봐...여기서 천년만년 니 맘대로 잘살아 봐라...다신 보지말자!


휘적휘적 가버리는 인옥.


영은 : 엄마,


몇걸음 쫓아가다 멈춘다.


종수 : ...미안하게 됐다.

영은 : ...(허탈하다) 뭘요.

종수 : ...

영은 : (애써 웃고) 에이 뭘요...(문득 주머니에서 오만원 꺼낸다) 저어, 이거요...

종수 : (본다)

영은 : (손에 쥐어주며) 받으세요. 저 이 돈 없어두 살 수 있어요. 아직 빚진 것두 많은데 이거까지 받으면 되겠어요?

         이걸로 생활하세요. 받은 걸로 할께요.

종수 : ...

영은 : 고마워요.


기운없이 안으로 들어간다.

홀로 남는 종수. 대문 앞에 앉는다. 비참하다.



#43. 동 방안 (낮)


라면 먹는 은석, 준석.

앉아서 물끄러미 아이들을 바라보는 영은. 문득 시선이 어딘가에 머문다. 웃목에 흰봉투 하나 놓여있다.

집어드는 영은. 열어보면 지폐가 소복히 들어있다.


영은 : 이거...(준석 본다) 이거 뭔지 아니?

준석 : 아줌마가 놓구 가셨어요.

영은 : (멈칫)

은석 : 누나, 라면 먹어요.

영은 : ......(글썽한다)

준석 : 누나.

영은 : (눈물 훔치고 다가온다) 그래...먹자! 먹자!

은석 : 누나 왜 울어요?

영은 : (목멘다) 내동생들, 너무 이뻐서.



#44. 영은집 외경 (밤)



#45. 인옥방 (밤)


홀로 앉아 소줏잔 기울이는 인옥. 조금 취했다.

들어오는 지은.


지은 : 엄마,

인옥 : 엄마 좀 혼자 있구 싶다.

지은 : 그게 아니구요...

인옥 : 왜.

지은 : 아저씨 오셨어요.

인옥 : (본다)

지은 : 들어오세요.


방으로 들어오는 두식.


인옥 : 가세요.

두식 : ...

지은 : 저 차 끓여올께요.


슬그머니 나가는 지은.

마주 앉는 두식.


두식 : 나두 한 잔 다오.

인옥 : 가요! 제발 함부로 남의 집에 불쑥불쑥 찾아오구 그러지마세요.


대꾸없이 소줏잔 빼앗아 들이키는 두식.


두식 : 우리가...아무래두 전생에 기구하게 얽혔던 인연인 모양이다.

인옥 : ...

두식 : 내가 죄를 많이 지었든지, 니가 많이 지었든지...아무튼간에 풀어야 될 업보가 많은 모양이야......

         (한숨) 인옥아,

인옥 : 가세요. 나는 할 말 다했고, 더 들을 말두 없어요.

두식 : 아들놈이 외국가서 공부한단다.

인옥 : ...

두식 : 그 놈 인제 마음 정리 됐다 그러드라. 한 몇년 나갔다가 들어오면 다 잊을 수 있다 그러는구나.

인옥 : ...(어이없어 바라본다)

두식 : 우리 앞으루 좋은 친구로, 오며가며 서로 도우며 지내보자...내가 서두르지두 않구 다른 거 요구하지두 않구,

         그저 괜찮은 남자친구로 지내주마.

인옥 : ...

두식 : 그러다가 시나브로...시간이 지나구 마음이 달라지면 그때가서 다시 결혼생각을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이런 저런 가능성을 다 열어놓구 편하게 그저 오늘만 생각해라.

         그때 되면 우리 아들놈이나 니 딸두 웃으면서 옛얘기 할거다.

인옥 : (허, 웃고) 두식오빠,

두식 : (버럭) 누가 우릴 갈라놔! 나는 못 물러난다.

인옥 : 이 나쁜 인간아,


당황하는 두식. 소주 한잔 붓더니 단숨에 마시는 인옥.


인옥 : 우리 딸보구 뭐? 부엌강아지?

두식 : ...

인옥 : 어디서 아들이 부엌강아지 같은 걸 데리구 와서 여자친구라구 들이민다 그랬죠?

         식당 종업원에 부엌 강아지가 내 딸이야...그래, 어쩔래요.

두식 : 인옥아,

인옥 : 돈 많이 벌어서 좋겠다, 조두식씨...돈 벌구나니까 눈에 보이는게 없지?

         그래, 나 그 부엌강아지 엄마야...내 못난 딸이 댁에 잘난 아들 좀 사귀었기로소니...

         당신 그러면 안돼. 지난날을 생각해봐.

두식 : ...(쩔쩔맨다)

인옥 : 가요! 당장 우리집서 나가! 그 대궐 같은 집에 가서 당신 수준에 맞는 며느리 얻어서 잘살아봐!

         마누라두 수준에 맞는 사람 얻어...나는 부엌강아지 엄마야...


마침내 철철 우는 인옥.

두식, 맘 아프게 보다가 다가와 안아준다.


인옥 : (뿌리치고) 놔요!

두식 : 미안하다.


괴로워지는 두식. 점점 눈시울 붉어진다.

다시 가만히 끌어안아주는데, 이윽고 매달려 엉엉 우는 인옥.



#46. 까페 (다른날 밤)


들어오는 혜경. 한쪽에 앉아있는 두식.


혜경 : 많이 기다리셨어요?

두식 : 아니다...요새 잘 지내냐?

혜경 : 작업실 하나 새로 꾸미느라구요...정신이 없어요. (웃고) 아버님은요?

두식 : 나는 뭐...늘 그렇지.

혜경 : (다 알지만 모른척) 수현씬 요즘...어때요.

두식 : ...혜경아,

혜경 : 아유, 괜찮아요. 저 요즘 잘지내요. 인제 그럭저럭 다 잊고 다 아물어가요.

두식 : 너 혹시 말이다...혹시 아직 우리 수현이한테 열어줄 마음이 남아있냐?

혜경 : ...아뇨...다 정리했어요.

두식 : 니가 우리 아들놈한테 정나미가 다 떨어진 거야 진즉 알구 있지만서두...

         그래두 혹시 아직 미운 정 같은 게 조금 남아있다면...한번만 다시 생각해봐라.

혜경 : (본다)

두식 : 녀석이 외국 가서 공부하겠단다.

혜경 : 그래요?

두식 : 뭐 말못할 사정이 조금 있다...그 아이랑은 대충 끝을 낸 모양이다.

혜경 : ...

두식 : 녀석 떠나구 나면 조금 있다가 너두 따라가라. 혹시 마음이 남아있다면 말이다.

         거기 가서 외롭게 지내다보면 다시 너한테 돌아올게다...내가 잘 알아...그놈이 널 아직 무척 좋아해...

         좋은 마음이 있으니 그렇게 예민하게 구는거다.

혜경 : ...(씁쓸히) 글쎄요...생각은 해보겠습니다만.

두식 : 생각해보구 자시구 할 거 없이 그렇게 해라...가서 꽉 잡아라.

혜경 : (진지해지며) ...



#47. 파인 홀 안 (밤)


영업 끝난 뒤의 텅빈 홀 안. 한쪽에 앉아 맥주병 놓고 담배 붙여무는 수현. 만감이 어린다.

들어오는 혜경.


혜경 : 오랫만이야.

수현 : (본다)

혜경 : (마주 앉으며) 술 한 잔 하고 싶어서 왔어.

수현 : ...

혜경 : 나두 정말 (피식) ...그렇게 완전히 끝내놓구 발길이 또 이쪽으로 향하구, 향하구...

         지나다보니까 여기 불이 환하길래...박대하지 말아주라. 가라구 쫓지마. 금방 갈거야.

수현 : ...잘왔어. 박대 안해.

혜경 : (뜻밖이다)

수현 : 올 수두 있지 뭐.

혜경 : (감격) 수현씨.

수현 : 한 잔 할래? 운전해야 되잖아.

혜경 : 뭐...한 모금만 마셔볼까?

수현 : (가만히 본다)

혜경 : (눈길에 얼굴 붉어진다)

수현 : 혜경아.

혜경 : 응.

수현 : 너두 참 안됐다.

혜경 : ...(멈칫)

수현 : (술 따라준다) 한 잔만 마셔.

혜경 : 어디...나간다면서?

수현 : ...(본다)

혜경 : 잘 가라구... 인사하러 왔어.

수현 : ...고맙다.

혜경 : (글썽하며) 보고싶을거야...

수현 : ...(씁쓸히 흐흥 웃는다)



#48. 돈까스 가게 안 (밤)


가게 안 공중전화. 통화하고 있는 영은.


영은 : 안녕하세요...저 서울에 사는 김성호씨 세째딸이예요...네...혹시 저희 아버지하구 연락 닿으시나 싶어서요...

         (실망) 네에....혹시라두 연락이 오면 저한테 얼른 연락 주라고...

         (결심) 저어...은석이가 많이 아프다구 전해주세요...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전화 끊는다. 실망하며 돌아선다.

청소하던 민식, 다가온다.


민식 : 누가 아퍼?

영은 : 아,아뇨.

민식 : 근데 왜 거짓말 치냐?

영은 : ...그러게요.

민식 : 퇴근해라.

영은 : 네.


에이프런 벗으며 정리하는 영은.



#49. 가게 앞길 (밤)


퇴근하는 영은. 터덜터덕 걸어가는데 가게 부근 한쪽에 고개 푹 숙이고 앉아있는 수현을 발견한다.

한참 아프게 지켜보는 영은. 결심한 듯 다가간다.


영은 : (씩 웃고) 에이, 여기서 뭐해요?

수현 : 영은씨 기다려요.

영은 : ...

수현 : (일어난다) 오늘두 시간 없죠? 그럼 집까지 또 걸어가요. 바래다줄께요.

영은 : ...

수현 : 가요.

영은 : 시간 있어요...우리...어디 가서 얘기 해요.



#50. 공원 (밤)


나란히 앉아있는 영은과 수현. 한참 말없는 두사람.


영은 : ...저어,저기요...

수현 : 영은씨,

영은 : (본다)

수현 : 나...여기 떠나요.

영은 : 네?

수현 : 조만간 수속 마치고 전에 다니던 학교 대학원에 입학할 거예요.

         생각해보면...거기 있을 때가 좋았어요. 외롭긴 했지만 마음이 편했어요.

영은 : ...(충격)

수현 : 내가 있던 동네는 오대호 부근이라서 아침 저녁으로 낚시도 하고 호숫가에 누워서 낮잠도 자고...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가 왔어요. 밤늦게까지 술마시고 놀다가 낮에는 호숫가에서 잠자고...

         생각해보면 그게 내 유학생활의 전부예요.

영은 : ...

수현 : 한심하죠? 내가 생각해두 한심하네.

영은 : ...언제 가세요?

수현 : 곧.

영은 : 잘됐네요.

수현 : 잘됐어요?

영은 : 그럼요.

수현 : (웃는다)

영은 : (같이 하하 웃는다)

수현 : 영은씨.

영은 : 네.

수현 : 같이 가요.

영은 : (멈칫)

수현 : 우리 거기 가서 새롭게 출발해요. 나도 이제 아버지 도움없이 혼자 헤쳐나갈 거예요.

         접시를 닦든 나무를 베든...내힘으로 내 학비 벌거구요...충분히 영은씨 먹여살릴 수 있어요.

         영은씨도 가서 뭘할까 생각해봐요. 공부해보면 어때요? 조리학교 같은 데 다녀봐요.

영은 : ...(마음 아파온다)

수현 : 영은씨랑 만나고, 영은씨 살아가는 모습 보면서...내가 많이 배웠어요. 열심히 살고 싶어졌어요.

         같이 가요. 어때요? 신나겠죠?

영은 : ...(불안해진다)

수현 : (표정 다 읽고) 지금 무슨 소리 안들려요?

영은 : 네? 무슨 소리요?

수현 : 가만히 귀 기울여봐요...가고 싶다, 가고 싶다...이 소리 안 들려요?

영은 : ...(뭉클하다)

수현 : 가요. 안그럼 영은씨 평생 후회할 거예요.

영은 : 혼자 가세요. 나는...여기 있을래요.

수현 : (절망) ...

영은 : 참 잘 생각하셨어요. 공부 열심히 잘 하세요.

수현 : ...

영은 : 건강하시구요...나중에 돌아오면 한번 연락 하세요.


가만히 손 내미는 영은. 물끄러미 보는 수현.

수현 손 잡더니 크게 손 흔들며 악수하는 영은.


영은 : (환히 웃고) 안녕히 가세요.


인사하고 돌아서는 영은. 그대로 지켜보는 수현. 허탈하다.



#51. 거리 (밤)


걸어오는 영은. 멍한 얼굴로 걷는다. 점점 표정이 어두워진다.

뒤를 돌아본다. 다시 돌아서서 빨리빨리 걷는다.

눈물 쓱 훔친다. 이제 못 보는구나. 그동안의 추억들이 하나씩 하나씩 사무치게 스친다.



#52. 지하철 역 플랫폼 (밤)


늦은 시간. 계단 내려오는 수현. 벤치에 앉아 착잡하게 사람들을 바라본다.



#53. 거리 (밤)


걸어가는 영은. 문득 발걸음을 멈춘다.

한참 그대로 서있는 영은. 이윽고 뒤돌아 마구 뛰어간다.



#54. 지하철역 입구 (밤)


달려오는 영은. 계단을 정신없이 내려간다.



#55. 역사 플랫폼 (밤)


뛰어내려오는 영은. 아무도 없다. 실망 어리며 돌아서는데 건너편 홈의 의자에 앉아있는 수현 모습이 보인다. 확 반갑다.

손 흔들어보다가 다시 계단 올라간다. 맞은편 지하철이 들어온다. 놀란다.



#56. 반대편 플랫폼 (밤)


허겁지겁 계단 뛰어내려오는 영은. 정차한 지하철 사람들 태우고 있다.

정신없이 주위를 살피는 영은. 출발하는 지하철. 이윽고 아무도 없는 역 구내...허탈해진다.

눈물 글썽 어리며 천천히 돌아서는 영은. 계단 올라가는데 순간,


수현(E) : 영은씨.

영은 : !


돌아본다. 한쪽에 서 있는 수현.


수현 : 나 찾아요?

영은 : ...(말을 못 잇고 목이 멘다)


가만히 다가와 따뜻하게 영은 어깨를 잡는 수현. 애틋하게 바라보는 영은.


영은 : ...같이 가요.

수현 : !

영은 : 같이 떠나요.


ENDING. 제13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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