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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보일까봐] 16

작성자수다쟁이|작성시간19.04.04|조회수910 목록 댓글 0

[눈물이 보일까봐] 16











#1. 종수 창고 안 (밤)


돌아누워있는 종수. 곁에 앉아있는 영은. 머리맡에 놓인 약봉지들을 바라본다.


종수 : 그만 가봐. 늦었다.

영은 : ...어디...좀 나은 데로 옮겨요. 내가 좀 알아볼께요.

종수 : 임마, 집 놔두구 어딜 가?

영은 : ...(둘러본다)

종수 : 걱정 마. 내가 알아서 옮길께. 옮기면 되잖아.

영은 : 기분은 좀 어때요? 안 어지러워요?


사이.


종수 : ...영은아,

영은 : (본다)

종수 : 내가 옛날부터...하고 싶은 일이 딱 세가지가 있다. 임마, 좀 물어봐주라.

영은 : ...뭔데요?

종수 : 첫째는 넥타이 매구 양복입구 어디 출근하는 건데...넥타이 받았으니까 반은 풀었다.

영은 : 둘째는요?

종수 : 둘째는, 멀리 남태평양 섬나라에 가서...야자수 그늘 아래서 낮잠자는 거...

         이쁜 여자들 비키니 입구 막 지나다니지...먹을 거 산처럼 쌓여있지, 놀구 싶으면 놀구 자고 싶으면 자고... 죽이지 않냐!

영은 : 흠...죽이네요...그럼 세번째는요?

종수 : 거기...너랑 같이 가는 거.

영은 : ...

종수 : 임마, 농담이야.

영은 : (웃고) ...같이 가요. 언제 갈까요? 나두 너무 가고 싶어요.

종수 : ... 고맙다, 그래. 꼭 같이 가자.


애틋하게 지켜보는 영은. 눈물 글썽 어린다.


종수 : 야, 그러구 보지마. 진짜 같이 가고 싶잖아.


가만히 손 잡아주는 영은. 움찔 하는 종수.


영은 : 내일 올께요. 약 꼭 챙겨 먹구 잘자요.

종수 : ...



#2. 영은집 외경 (밤)



#3. 인옥방 (밤)


옷 갈아입는 인옥. 들어오는 지은.


인옥 : 느이 아버지, 애들 데리구 가면서 뭐라 그래?

지은 : 고맙다 그러지 뭐.

인옥 : 애들 엄마는?....찾았대?

지은 : 모르죠.

인옥 : 이 인간...

지은 : 왜요? 인사두 없이 가셔서 화나요? 인사구 뭐구 할 정신이 아니셨을 거야...영은이가 아버지 가슴에 비수를 콱 꽂았어.

인옥 : 무슨 소리야?

지은 : (한숨)...그런 게 있어요. 마지못해 데리구 가셨어요.

인옥 : 무슨 말이야. 자세히 얘기해봐.



#4. 동 마루 (밤)


들어오는 영은. 인옥, 방에서 나온다.


영은 : 다녀왔습니다.

인옥 : ...애들 잘 보냈다.

영은 : (본다)

인옥 : 느이 아버지 이번에 철 좀 들었을 거야. 잘했다.

영은 : ...(떨구고) 네.

인옥 : 그 인간 더 당해야 돼!


방으로 들어가는 영은.

인옥, 표정 살피다가.


인옥 : 지금 어디서 오는 거니.

영은 : (돌아본다) ...

인옥 : 그 놈 아직 병원에 있니?

영은 : (움찔) 네.

인옥 : 거기 안갔지?

영은 : ...네.

인옥 : 발 딱 끊어. 응?

영은 : (본다) 네.



#5. 종수 창고 안 (밤)


홀로 누워있는 종수. 어지럽다.

약 털어넣으며 영은이 놓고간 넥타이를 바라본다. 소매로 눈물 쓱 훔친다.



#6. 두식집 외경 (아침)



#7. 동 식당 (아침)


아침 차려진 식탁. 마주 앉아있는 두식과 수현.

조용히 밥 먹는 수현. 눈치 보는 두식.


두식 : 언제 출발한다구?

수현 : ...주말에요.

두식 : 그렇게나 빨리? 학교나 정해지면 가지 그러냐.

수현 : 가서 지내면서 차차 준비할려구요.

두식 : (어두워진다) 어디 있을려구?

수현 : 있을 덴 정했어요. 선배 집에서 일 거들면서 지내기로 했습니다.

두식 : 일?

수현 : 학비 제 힘으로 벌겠습니다. 대학까지 시켜주셨잖아요.

두식 : ...언제 돌아올 예정이냐?

수현 : 공부 다 마치려면 한 오년 쯤 잡아야 될 거 같습니다.

두식 : ...(점점 괴로워진다) 꼭 가야하냐?

수현 : (멈칫 본다)

두식 : 거...가지말구 여기 있어라. 공부는 무슨! 내가 그때는 열이 나서 홧김에 그랬다.

수현 : (씁쓸히 웃고) 먼저 일어날께요.


밖으로 나간다. 착잡해지는 두식.



#8. 파인 앞길 (아침)


들어오는 수현. 한쪽에 앉아있는 종수.

멈칫 놀라는 수현.


수현 : 어떻게 된 거야.

종수 : 안에 들어가서...차 한 잔만 주라.

수현 : ...벌써 퇴원 했어?

종수 : 줄 거냐, 안 줄거냐.



#9. 동 홀 안 (낮)


마주 앉아있는 수현과 종수.


수현 : 수술...안 받았어?

종수 : 어, 뭐...수술 같은 거 안해두 된대. 별거 아니드라구. 영은이가 얘기 안해? 다 낫어.

수현 : ...(심상찮다)

종수 : 준비 잘돼 가냐? 나두 곧 여기 뜬다.

수현 : ?

종수 : (피식) 마지막으루 인사나 하구 갈려구...정들었는데 그냥 가면 섭섭하잖아.

수현 : 어딜 가는데?

종수 : 고향! 사람 다아 철들면 태어난 데루 돌아가고 싶어지는 거잖아.

수현 : 정말 괜찮아? 그렇게 빨리 치료가 됐어?

종수 : 참, 속구만 살았냐. 왠 의심이 그렇게 많냐? 거뜬해.

수현 : ...(미소) 다행이다.

종수 : (본다) 영은이 행복하게 해주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딱 요 말 뿐이다.

         나중에 맘 변하지 말구, 더 난 여자 나타나드래두 차버리지 말구, 못났다구 구박하지 말구...

수현 : (어이없어 웃는다)

종수 : 주제넘은 소리 해서 미안하다. 나 영은이 깨끗이 포기했어. 첨부터 걔가 나한테 마음 준 적은 단 한번두 없어.

         (본다) 나는 임마, 너만 보면 신경질 나. 기집애들, 왜 그렇게 너만 좋아하냐? (웃고)

         나두 요담에 다시 태어나면, 너처럼 매너 좋은 놈으루 살아볼까 그런다. 잘될진 모르겠지만.

수현 : 종수씨,

종수 : 듣기나 해. 가진 놈들, 잘난 놈들, 다 한심하구 썩었다구만 생각했는데...내가 너 보구 맘이 좀 달라졌어.

         너두...알구보면 불쌍한 놈이드라... 그래서 더 신경질 나지만...암튼 만나서 반가웠다.

수현 : ...(씁쓸히 웃고) 곱게 봐줘서 고맙다.

종수 : ...(차 후룩 마신다) 간다. 잘 마셨다.


일어나는 종수. 툭 치더니 씩 웃고 나간다.

불안하게 보는 수현.



#10. 돈까스 가게 (낮)


일하는 영은. 다가오는 민식. 월급봉투를 툭 건넨다.


민식 : 자, 월급!

영은 : (반갑다) 고맙습니다!

민식 : 내가 고맙지 이놈아...열심히 해라.

영은 : 네!


봉투 안을 열어보는 영은.



#11. 종수 창고 앞 (저녁)


총총 다가오는 영은. 반찬거리 가득 안고 있다.



#12. 창고 안 (저녁)


들어오는 영은. 안이 깨끗이 치워져있다.

불길해지는 영은. 사방을 찾는다. 아무도 없다. 한켠에 놓인 라면 냄비 속에 편지봉투가 하나 들어있다.

그리고 그 앞에 놓인 베개로 썼던 큰곰인형. 인형 목에 넥타이가 둘러매져있다.

멍하니 바라보다가 급히 봉투를 열어 편지 펴보는 영은.


종수(E) : 잘있어라, 김영은. 오빠는 꿈에 그리던 남태평양 섬으로 간다.

              너두 그렇게 가고 싶어했는데 혼자만 떠나서 미안하게 됐다. 약올라두 참아라.


텅빈 지하 창고 내부.



#13. 터미널 (저녁)


표 끊고 돌아서는 종수.



#14. 고속버스 안 (저녁)


창가에 기대고 웅크려있는 종수. 혈색 나쁘고 떨린다. 식은땀 닦으며 눈 슬몃 감는다.


종수(E) : 거기 증말 죽이는 데야. 걱정 근심 아무 것도 없고, 사시사철 태양이 빛난다...

              야자나무 그늘 아래서 자고, 먹고, 놀면서, 한세상 신나게 살아 볼 거다...진짜 죽이는 데야.

              아픈 사람도 없고 가난한 사람도 없고 슬픈 사람도 없어...양아치들의 천국이라고나 할까...



#15. 창고 앞길 (저녁)


급히 뛰어나오는 영은.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종수(E) : 행복하게 잘살아라...이 다음에 먼훗날...너두 심심하면 놀러와. 조수현이는 데리구 오지마라...

              그래두 어쨌든 여기 있는 동안은 그 새끼랑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살아봐라...



#16. 거리 (밤)


밤거리 인파 사이를 눈물 흠치며 걸어가는 영은.


종수(E) : 고맙다, 영은아...이 세상에서...나를 사람으로 대접해준 건...너 뿐이었어.


모퉁이에 멈춰 서서 편지를 다시 꺼내보는 영은. 벽에 기대고 주저앉아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나씩 바라본다.



#17. 고시원 앞 (다른날 낮)


가방과 트렁크 잔뜩 들고 안에서 나오는 경은. 다가오는 인옥.


인옥 : 경은아,

경은 : (반가워서) 엄마? 뭐하러 여기까지 오세요?

인옥 : (가방 받아들고) 잘봤어? 어떻게 됐어?

경은 : 뭐...그냥저냥 봤죠. (한숨) 어렵드라.

인옥 : (볼 어루만지며) 고생했다...그동안 우리딸 너무 고생 많았다.

경은 : (팔짱끼며 웃고) 가요, 얼른...얼른 집에가서 엄마 해주시는 된장찌개 먹고 싶어.

인옥 : 그래...붙든 안 붙든 인제 다 끝났다. 잊어버려.

경은 : 네.



#18. 영은집 외경 (낮)



#19. 동 마루 (낮)


찻잔 내오는 지은. 인옥, 경은, 지은 둘러앉아 차 마신다.


지은 : 무사귀환 축하해, 언니...내일 우리 파티하자, 파티!

경은 : 영은이 요새 어쩌구 있니?

지은 : 말두 마. 걔 때문에 난리 난리 그런 난리가 없었다니까?

경은 : 왜?

지은 : (한숨) 글쎄, 아버지 애들을 집에까지 끌구 들어온 거 알어?

경은 : 정말이야?

인옥 : 그만 해라. 다 끝난 일 뭐하러 또 들춰?

지은 : 그래갖구 엄마랑 나랑 완전 뒤집어졌잖아...

경은 : 애들 어딨어?

지은 : 아버지 오셔서 데려가셨어. 암튼, 그 꼴통 땜에 우리집이 조용할 날이 없어.

인옥 : 너 그 꼴통 소리 좀 그만 못 두니!

지은 : (움찔 본다)

인옥 : 언니가 돼서 어떻게 동생을 그렇게 불러?

지은 : 아니, 나는 재밌으라구...엄마, 왜 화를 내구 그러세요?

인옥 : 영은이 맘이 어땠겠어? 걘들 데리구 들어오구 싶어 들어왔겠니? 감싸주진 못할망정 언니라는 게 어째 그래?

지은 : (심통) 엄마...

경은 : (조심스레 보다가) ...요즘 그 아저씨 안 만나세요?

인옥 : 차 다 식는다. 차 마셔.



#20. 돈까스 가게 (밤)


텅빈 가게 안. 한쪽에 앉아서 우두커니 종수 편지를 내려다보고 있는 영은.


민식 : 영은아,

영은 : ...

민식 : (툭 친다)

영은 : 예?

민식 : 혼이 다 빠졌네? 요새 왜그래? 너답잖게 통 기운이 없냐?

영은 : 아니요.


편지 얼른 집어 넣는다.


민식 : (가게 괜히 휘 둘러보며) 세월이 참 빠르다...문 연지 엊그제 같은데...

영은 : 그러게요.

민식 : 나두 니 나이 때 엊그제 같은데...어느새 훌쩍 마흔이 다 돼가네...

         니 나이루 돌아갈 수만 있으면 하고 싶은 거 무척 많다...(한숨) 후회한들 뭐하나...

영은 : ...

민식 : 이놈아, 니 나이 귀한 줄 알구 열심히 살아. 연애두 일두 다 때가 있는 거다.

영은 : (웃고) 네.

민식 : 들어가라.



#21. 버스 정류장 (밤)


퇴근하는 영은. 버스 기다리고 서 있다. 곁에 다가와 나란히 서는 수현.


수현 : 퇴근해요?

영은 : (움찔 놀라서 본다)

수현 : 그동안 잘 지냈어요?

영은 : ...네.

수현 : (공연히 밤하늘 보며) 덥네요.

영은 : (같이 하늘 보며) 네. 여름이니까요.


허탈하게 웃는 수현. 서먹한 두사람.


수현 : 나...요번 주말에 떠나요.

영은 : !

수현 : 작별 인사하러 왔어요....어디 가서 맥주 한 잔 할래요?

영은 : (본다)

수현 : 술 좋아하잖아요?

영은 : ...저 월급 탔어요. 제가 한턱 낼께요.

수현 : (웃음) 그럴래요?



#22. 까페 (밤)


마주 앉아 맥주 마시는 영은과 수현. 할말 없는 두사람.

잠시 침묵 흐르고 할말 찾는 영은. 짐짓 명랑한척 한다.


영은 : 난 왜그렇게 어디 잘 부딪치는지 모르겠어요.

         오늘두 손님 한사람하구 돌아서다가 꽝 부딪치는 바람에요...접시를 두개나 깬 거 있죠?

수현 : (애틋하게 가만히 보고 있다) ...

영은 : 그래두 마음 좋은 손님이어서 화두 안내구 다친 데 없냐구 오히려 살펴주셨어요. 다행이죠?

수현 : ...그랬어요?

영은 : (웃으며 이마 만지고) 여기두 지난 번에 유리 없는 줄 알구 그냥 들어가다 꽝! 아, 난 정말 못말려.

         혹 나구 띵띵 부었었는데 인제 가라앉았죠? 진짜 하늘이 노랬다니까요! (웃다가 다시 시선 못 맞추고 할 말 찾는다)

수현 : ...영은씨,

영은 : 네.

수현 : ...가끔 편지해두 되죠?

영은 : ...

수현 : 답장 해줄래요?

영은 : (웃고) 바쁘지만 뭐...그래보죠 뭐.


한동안 말이 없는 두사람.


수현 : ...잘있어요.

영은 : 네. 잘가세요.

수현 : ...

영은 : (술병 들고) 자요, 한번 부딪쳐야죠!


건배하는 두사람. 눈물 핑 도는 영은.



#23. 수현방 (밤)


불꺼진 방안. 들어오는 수현. 그대로 침대에 걸터앉는다.

문 밖에서 보다가 슬며시 들어오는 두식.


두식 : 술 마셨냐?

수현 : 안 주무셨어요?


그대로 고개 숙이고 있는 수현. 지켜보는 두식.


두식 : ...자거라.

수현 : 네, 안녕히 주무세요.

두식 : (본다)


나가는 두식. 기운없이 자리에 눕는 수현.

나가다 돌아보는 두식.



#24. 영은집 외경 (밤)



#25. 영은방 (밤)


영은을 중심으로 과자, 과일 같은 것 잔뜩 놓고 둘러앉아있는 세자매.


경은 : 아유, 말두 마...에어컨 틀면 머리가 아퍼서 그냥 창문 열구 지냈는데...더워서 죽는줄 알았어.

         날짜는 다가오지, 집중은 안되지, 옆방에 있는 애는 맨날 음악 틀어대지, 여기저기 아프지.

영은 : (안쓰럽다) 너무 힘들었겠다, 큰언니...인제 푹 쉬어, 언니야.

경은 : 진짜 고시공부 아무나 하는 거 아니야.

영은 : 맞아. 큰언니니까 하지.

지은 : (머리 툭 치며) 야, 야, 김영은. 너는 뭐가 그렇게 맨날 맞냐?

영은 : (웃고) 맞아.

지은 : 허,

경은 : 지은이 넌 어쩔 거니? 대학원 마치구 어쩔래?

지은 : (한숨) 어쩌기는...앞날 깜깜이지 뭐. 유학 가고 싶은데 돈이 있어, 뭐가 있어...

         엄마 그 아저씨랑 잘되면 혹시나, 하구 바랬는데...요새 거의 안 만나시는 거 같드라구.

영은 : (창백) ...

경은 : 왜 그러시는 거 같애?

지은 : 모르겠어. 우리 엄마 증말 이해가 안가. 결혼하겠다 그럴 땐 언제구, 인제와서 변덕이실까...

         그 아저씨한테 무슨, 말 못할 흠이 있는지.

영은 : ...(시선 점점 내리며)

경은 : 잘됐다,

영은 : (본다)

지은 : 뭐가?

경은 : 너 솔직히 엄마 결혼하는 거 좋았었니?

지은 : 좋았다 뭐.

경은 : 뭐가? 사장님이라서?

지은 : 그럼. 당연하지.

경은 : 너는 애가...


조용히 일어나 나가는 영은.


지은 : 어디 가?

영은 : (움찔) 으응, 화장실!



#26. 동 마루 (밤)


방에서 나오는 영은. 인옥방에서 나오는 인옥과 바로 마주친다. 놀란다.


인옥 : 여태 안 자?

영은 : (얼른 웃고) 으응, 언니들하구 간만에 좀 노느라구요.

인옥 : ...

영은 : ...


서먹한 두사람.



#27. 청과물 상회 (낮)


순금과 나란히 앉아 과일 먹는 인옥.


순금 : 경은이 시험 잘 봤대?

인옥 : 뭐 그럭저럭 봤나 봐.

순금 : 이번에 꼭 돼야될텐데...

인옥 : 안돼두 그만이지 뭐.

순금 : 요새 너 전같지 않다? 애면글면 안하네? 합격 못하면 애 잡을 거 같이 그러드니...

인옥 : (웃고) 내가 그랬니?


두식 승용차 와서 선다. 차에서 내리는 운전기사.


기사 : 안녕하셨습니까?

인옥 : 예에...

기사 : 사장님께서 좀 모시고 오라십니다.

인옥 : 어딜요?

기사 : 타십시요. 안 오시면 저보구 여기서 살라 그러셨습니다.

인옥 : (한숨) 알았어요. 가요, 갑시다. (화났다)



#28. 서초동 공터 (낮)


차에서 내리는 인옥. 어이없어 황량한 공터를 바라본다.

저만치 등 돌리고 앉아 소줏잔 기울이고 있는 두식. 머뭇하다가 다가가는 인옥.


인옥 : (대뜸) 또 억지 부릴 거죠? 내가 오늘 확실히 못을 박아둘려구 왔어요. 오빠, 정신 좀 차려요!

두식 : ...앉아봐라. 이미 못은 수천 수만 개 쾅쾅 박혔다. 더 박지말구 고만 앉아봐.


인옥을 곁에 잡아 앉힌다.


두식 : 나는 헛살았다.

인옥 : (멈칫)

두식 : 잘못 살았어. 뭘 믿구 그렇게 불도저같이 밀어붙였을꼬.

         돈이 있은들 밥을 열끼 먹는 것두 아니고...이제와서 널 얻은들 천년만년 곁에 있을 수두 없는 것을...

인옥 : (본다)

두식 : 모두가 그저 허영이구 욕심이다. 그거 고백하고 싶어 불렀다.

인옥 : ...

두식 : 처음 서울 내려서, 이 땅 앞에서 가졌던 포부며 야심이며...다 부질없구나.

         결국 오늘날 나한테 가져다 준게 이런 거냐 싶다...마누라두 잃구....결국은 아들 놈두 잃구 너두 잃구...다 잃었다.

인옥 : ...(안쓰럽다) 잃긴 뭘 잃어요. 세상에 잃는 게 어디있어요.

두식 : ...니 말이 맞다. 잃는 게 어딨구 얻는게 어딨냐. 내 너한테 많이 배운다.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 꺼내서 내미는 두식.


인옥 : 뭐예요.

두식 : 비행기표다. 우리 둘이 어디 같이 도망가자!

인옥 : 예에?

두식 : (너털 웃고) 니 딸 줘라...아들놈 모르게 따로 만들었다.

인옥 : (놀라서)

두식 : 둘이 같이 공부시키러 보내주자. 내가 확실히 밀어주마.

인옥 : ...오빠,

두식 : 혼인은 나중에 돌아오면 치르는 걸루 생각하구...둘이 약혼 정돈 시킨 걸로 치자.

         조촐하게 식이라두 만들어주구 싶지만 그것들 얼마나 불편해할까 싶어서 생략!

인옥 : (글썽한다)

두식 : 둘이 기왕 도망가기로 한 거...도망가는 걸로 만들어주자.

         우리 둘이 옛날에 도망 못 갔던 한을, 요번에 애들 통해서 확 풀어버리는 거야.

인옥 : ...

두식 : 왜? 안 내키냐? 또 억지 쓰냐?

인옥 : ...고마워요.


공터 바라보는 두식. 점점 눈가에 점점 물기 어린다.

목 메이며 두식 손을 가만히 잡아주는 인옥.



#29. 두식집 외경 (저녁)



#30. 동 거실 (저녁)


얼근히 취해 들어오는 두식. 이층에서 내려오는 수현.


수현 : 이제 오세요.

두식 : 이리 와 앉아봐라.


마주 앉는 부자. 수현 얼굴을 한동안 빤히 바라보는 두식.


두식 : ...(시비걸듯) 너 참 많이 컸다. 누구 맘대루 이렇게 훌쩍 자랐냐?

수현 : (씁쓸히) 약주 하셨어요?

두식 : ...아들아, 너 혹시 기억나냐? 니 에미 살았을 때, 너랑 니 에미랑 나랑 셋이서 남산에 케이블카 타러 갔었는데...

         대충 니 나이 아홉 살인가 그랬을 거다.

수현 : (본다) 기억나요. 어린이날이었어요.

두식 : 그랬냐? 그때 니놈이 나한테 그랬어. 아빠, 나는 이다음에 꼭 아빠처럼 멋있는 남자가 될거예요...

         내가 그 말에 어찌나 감격했는지 그날밤 잠을 못 잤다...그런데 사춘기 지나구서 점점 나한테 마음을 닫드니,

         고등학교 졸업식날 니가 나한테 그랬지? 저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습니다!

         그 뒤로 그 말이 니 입에서 튀어나올 때마다 내 가슴이 미어진다.

수현 : ...

두식 : (비스듬히 누우며) 니가 그러거나 말거나...나는 내 식으루 산다. 너는 니 식으로 살아라.

수현 : (일어나며) ...주무세요.

두식 : ... 앉아있어 봐!

수현 : (돌아본다)


두식, 팔 걷어부치더니 손을 내민다.


두식 : 팔씨름 한 판 하자.

수현 : (당황)

두식 : 이리 내봐! 오랫만에 한판 붙어보자! 손 내 봐!


수현 손을 끌어당긴다.


수현 : (마지못해 앉으며) 네.


팔씨름 하는 부자. 붙자마자 가볍게 이겨버리는 수현. 미안해진다.

표정 딱 굳는 두식.


두식 : 이 망할 놈!


냉랭하게 일어나더니 방으로 들어가버리는 두식. 난감한 수현.



#31. 두식방 (밤)


누워있는 두식. 들어오는 수현.


수현 : (미소) 화나셨어요?

두식 : 나가서 니 방에 올라가. 꼴두 보기 싫다.

수현 : ...아버지,

두식 : (삐졌다) 무정한 놈. 양보두 모르구 무지막지한 놈!


곁에 앉아 가만히 지켜보는 수현.


두식 : ...(돌아누운 채) 미국 가지 말구 애비 곁에 있으면 안되겠냐?

수현 : ...

두식 : 애비 결혼이구 뭐구 안해! 다 때려치우면 되잖냐! 그래두 안되냐?

수현 : (씁쓸히 본다)

두식 : 나가라.

수현 : ... 공부해서 나중에 도움 드리겠습니다. 더 많이 커서 돌아올께요...결혼하세요. 아버지 원하시는 인생 편히 사십시요...

두식 : ...(눈감는다)

수현 : (가만히 두식 손 잡으며 미소) 언제 이렇게 힘이 약해지셨어요.


뿌리치는 두식. 잠시 애틋하게 보다가 일어나서 나가는 수현.

나가는 뒤에 대고 베개 집어던지는 두식.


두식 : 잘난 척 하지마라, 이 자식아!



#32. 영은집 마루 (밤)


상에 빙 둘러앉아 파티하는 세자매. 그리고 인옥.

갖가지 음식들과 함께 상 가운데 놓인 케잌.

촛불을 훅 불어서 끄는 경은. 박수치는 식구들. 맥주잔 들고 건배한다.


지은 : 이차 시험 잘 끝낸 거 축하해, 언니!

영은 : 축하해, 언니. 꼭 합격해!

경은 : 고맙다!

인옥 : ...(흐뭇한듯 딸들 바라본다)

지은 : 아유, 맏이로 안 태어난 거 서러워 죽겠어. 엄마 얼굴에 생기도는 거 봐.

         언니만 집에 있으면 세상에 부러울 거 없죠? 인제 눈꼴 셔서 어떻게 사냐?

인옥 : 기집애...니 언니 힘들게 시험보구 돌아왔는데 겨우 그런 소리야?

지은 :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그지? (영은 본다)

영은 : (웃음 띠고 본다) 맞아.

인옥 : (물끄러미 본다)

경은 : (맥주 들이키다가 생각난듯) 야,야, 우리 밥 먹구 노래방 갈래?

지은 : 그럴까?

영은 : (밝아지며) 그래, 언니야! 가자! 내가 한 턱 낼께!


멈칫 보는 지은, 경은.


영은 : 나 월급 탔어! 모처럼 큰언니 노래 솜씨 좀 들어보자! 가자!

경은 : (웃고) 이야아, 증말?

영은 : 그럼!

지은 : 엄마, 가요?

인옥 : ...니들끼리 다녀 와.

지은 : 가요, 엄마...얘가 한 턱 낸 데잖아!

인옥 : ...

영은 : 가요! 진짜 한 턱 낸다니까! (씩 웃고) 뭐 하고 싶은 거 없어, 언니들? 말해! 다 들어줄께! 말해 봐! 응? 응?


점점 눈시울 붉어지는 인옥.



#33. 노래방 (밤)


템포 빠른 노래 한 곡 부르는 경은. 앉아서 지켜보는 인옥.

지은과 영은, 뒤에서 탬버린 흔들고 어깨 동무 하며 신나게 백댄스 하고 있다.

그런 영은을 가만히 바라보는 인옥.

노래 마치면 마이크를 인옥에게 건네는 경은. 알아서 노래 번호 꾹꾹 부르는 영은. 곡명 나온다.


경은 : 엄마,

인옥 : 아유, 난 안해. 니들이나 불러.

영은 : (일으키며) 한 곡 부르세요!


전주가 흘러나온다. (분위기 있는 곡?)

마지못한 듯 일어나 노래 부르는 인옥.

자리에 앉으며 열심히 다음곡 찾는 지은. 장단 맞추며 지켜보는 경은.

자리로 들어가는 영은을 붙잡는 인옥. 같이 부르자고 마이크 대준다.

멈칫 하다가 같이 노래 부르기 시작하는 영은.



#34. 영은집 외경 (밤)



#35. 영은집 인옥방 (밤)


이불 깔고 있는 인옥. 문 빼꼼 열고 들어오는 영은.


영은 : 엄마,

인옥 : 마침 잘 왔다. 거기 좀 앉아봐.


인옥 앞에 앉는 영은. 뒷춤에서 화장품 하나 꺼내서 내민다.


영은 : 이거요...

인옥 : 뭐야,

영은 : 엄마 눈가에 바르는 화장품. 잔주름 안생기는 거요.

인옥 : (본다)

영은 : 하루 한번 눈가에 바르면요, 한달만 지나면 팽팽해진대. 이십대 피부로 돌아온대.

인옥 : 뭐하러 샀어?

영은 : 바르라구 샀지!

인옥 : (바라본다)

영은 : (본다) 왜요.

인옥 : 영은아, 엄마가 평생에 한이 되는게 몇가지가 있는데...그중에 하나가 뭐냐면..

영은 : (본다)

인옥 : 너 대학 못 보낸 게 엄만 너무 한맺힌다.

영은 : ...아이구 참...그거야 내 탓이지.

인옥 : 그게 니 탓이야? 그때 엄마가 사기만 안 당했어두 대학 보냈지. 전문학교라두 기어이 보냈어야 하는데...

         지은이 음악 한다구 돈 들어가지...이래저래 내가 눈 감아 버린 거 아냐.

영은 : 아유, 엄마는? 그 뒤에라두 내가 할래면 했죠.

         나는 지금 만족해요...하나두 안 꿀려. 내가 괜찮은데, 엄마가 왜그러세요?

인옥 : ...

영은 : 그리구요...엄마 나 그 남자랑요...완전히 끝냈어. 어제 마지막으루 만나서 인사하고 손 흔들고 헤어졌어요.

         헤어지고 나니까 첨엔 좀 마음이 아팠어...그런데...하루 지나구나니까 벌써 옛날 일 같애...

인옥 : (본다)

영은 : 나는 이렇게 단순하니까 살기가 편한가봐. 무슨 애가 이럴까.

인옥 : 정말 옛날 일 같애?

영은 : 그럼요.


비행기표를 꺼내서 내미는 인옥.


영은 : 뭐예요?

인옥 : 선물.

영은 : ?

인옥 : 아저씨랑 엄마가 주는 선물이야. 여기 떠나서 둘이 공부하구 와.

영은 : 네에?

인옥 : 거기 가서, 요리 공부든 무슨 공부든, 하고 싶은 공부 하고 와. 아저씨가 뒤는 다 봐준단다. 학교며 집이며 다 알아봐준대.

영은 : (멍하니) 엄마,

인옥 : 신세 좀 지면 어때? 예전에 외가에서 그 아저씨네 다 거둬줬다. 받아두 돼.

         정 부담스러우면, 가서 아르바이트라두 하든가.

영은 : (두려운듯 본다)

인옥 : 왜? 안 믿어져? 갈 준비해라.

영은 : 아뇨...안 할래요.

인옥 : 영은아,

영은 : 저 다 잊었어요, 엄마...안 가요...


잠시 바라보는 인옥. 단호해진다. 영은 손을 잡는다.


인옥 : 엄마 말 들어. 그게 엄마 위하는 거다.

영은 : ...

인옥 : 양보하구 도망치는 게 엄마 위해주는 거 아니야.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인젠 니 마음 흐르는 대로, 욕심껏 살아 봐. 왜 못해?


인옥 손을 후다닥 빼는 영은.


영은 : (불안하다) 엄마, 이러지 마세요.

인옥 : (당황)

영은 : 저 안가요. 끝났어요.


일어난다.



#36. 동 마루 (밤)


방에서 나오는 영은. 멍하니 서있다.

안에서 나오는 인옥.


인옥 : 영은아, 엄마 봐.

영은 : ...(불안한듯 물러선다)

인옥 : 엄마 소원이다.

영은 : 아뇨, 내가 그걸 어떻게 받아요...내가 그동안 얼마나 엄마를 원망했는데...나는 벌 받아야 돼.

인옥 : 니가 벌 받으면 엄마는 벌써 벌 받아 죽었겠다!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영은 : 엄마...

인옥 : 잘들어...니가 행복한게 엄마가 행복한 거야...엄마는 이번에 그 사실 겨우 깨달았다.

         어떻게 우리 운명이 이렇게 꼬였나 그랬는데, 이게 꼬인게 아니드라...나한테 기회를 줄려구 하늘이 돕는 거드라.

영은 : ...

인옥 : 가는 거야. 알았지?

영은 : ...(고개 젓는다)


사이.


인옥 : (북받치며) 이 기집애야! 엄마 얼마나 더 미안해하라구 이러니?

         니가 가야 엄마 맘이 편해! 몰라? 정말 모르겠어?


눈물 떨구는 영은.



#37. 영은방 (밤)


나란히 누워 잠든 경은과 지은과 영은.

부스스 일어나 베개 들고 나가는 영은.



#38. 인옥방 (밤)


불꺼진 방안. 누워서 뒤척이는 인옥.

들어오는 영은.


영은 : (어색하다) 주무세요?

인옥 : 안 잤어? 잠이 안 와?

영은 : 네.

인옥 : 엄마두 안 온다.


가만히 곁에 눕는 영은. 잠시 말없이 누워있는 모녀.


인옥 : 이리 가까이 와봐...


살며시 다가와 기대는 영은. 인옥, 팔을 베준다.


인옥 : 그 청년 말이야...나는 처음 보구 딱 맘에 들었어...아주 진실해보이드라...

영은 : ...

인옥 : 어쩌면 이런 사람이 우리 딸을 좋아할까...속으루 무척 대견했었어..그런데 영은아, 아직은 서로 갈 길이 멀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진짜 사랑하는 데는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한 거 아닌가 싶어...

         느이 둘...앞으루 서로에 대해 추하고 밉고 못난 거 많이 봐야해. 죽어라 싸우고 미워하고,

         그러다가 문득 옆을 돌아보면 나하고 똑같은 사람이 서 있는 거야. 못생기구 치사하구 더러운 거 알아가는게 진짜야.

영은 : ...

인옥 : ...멀리 가서 그거 배워가지고 와라...요즘 생각하는 건데...엄마나 느이 아버지나 또 그 아저씨나...

         우리두 전부 아직 멀었어.

영은 : ...(글썽한다)

인옥 : 좋은 공부 많이 하고, 넓은 세상 나가서 많은 거 보구 와.

영은 : 엄마...


끌어안아주는 인옥. 이윽고 북받치며 서럽게 흐느끼는 영은. 둘이 같이 부둥켜 안고 운다.



#39. 까페 (낮)


혜경과 마주 앉아있는 수현. 담배 붙여문다.


혜경 : 나 선 봤어.

수현 : 그랬어?

혜경 : 집에서 하두 난리쳐서 마지못해 나가긴 했는데...생각보다 괜찮드라.

수현 : (미소)

혜경 : 펀드 매니전데...굉장히 자신만만하구 터프해. 보자마자 결혼하자드라.

수현 : 나하군 반대구나.

혜경 : 음. 그래서 해버릴까 하구...

수현 : 축하한다. 잘 생각했어.

혜경 : ...(맘 상한다) 고마워.

수현 : 돌아오면 애 셋은 낳았겠다?

혜경 : 지금 그걸 농담이라구 해?

수현 : 진담이야.

혜경 : (약 올라) ...언제 올 건데?

수현 : 모르겠어. 영 안 돌아올지두 모르지...지금 생각으론 그래.

혜경 : ...

수현 : ...혜경아,

혜경 : (본다)

수현 : ...행복하게 잘 살아라.



#40. 거리 (저녁)


차 몰고 가는 혜경. 음악 크게 틀고 과속으로 가다가 어느 순간 길가에 급정거한다. 운전대에 엎드린다.



#41. 종수 창고 앞길 (저녁)


술 사들고 들어오는 혜경. 좀 취했다.

굳게 닫힌 창고 문. 쾅쾅 두드리는 혜경.


혜경 : 야! 유종수!


안에서 조용하다.


혜경 : 유종수! 나와 봐! 안에 없어? 야! 야! 이 거지같은 자식아! 어디 갔어!


끝없이 문 두드리는 혜경. 지친듯 주저앉더니 이윽고 점점 표정 어두워진다. 얼굴 묻고 운다.



#42. 두식 사장실 (밤)


정희와 마주 앉아있는 두식. 심드렁히 듣고 있는 두식.


정희 : 어쨌든 그 계획은 당분간 유보하시는 게 좋겠어요. 자금 유통이 쉽질 않네요.

         혜경이네 껀 터지구부터 투자 분위기두 냉각되구 있는데다가...요즘 전반적인 상황두 어렵고...

         (한숨 쉬고 본다) 그간 다른 데 정신 파시느라구 통 모르셨죠?

두식 : ...알았어. 그만 나가 봐.


일어나는 정희. 생각난듯 돌아본다.


정희 : 내일 저녁에 시간 어떠세요? ...저녁 같이 드실래요?

두식 : (본다) ...어...그럴까?

정희 : ...소개 시켜드리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요.

두식 : (본다)

정희 : 저...결혼할까 그래요.

두식 : ...(멈칫) 그래?

정희 : 대학 동창인데요...몇 년만에 우연히 만났어요. 전 그냥 친구라고만 생각하구 특별히 대하질 않았었는데,

         그 친군 그렇질 않았던가 봐요. 청혼 받구 무척 망설이다가...저번주에 승낙했어요.

두식 : (표정 묘해진다)

정희 : 만나서 좀 봐주세요. 남편감으로 괜찮은지 어떤지 봐주시면 좋겠어요.

두식 : ...승낙했음 다 끝난 거지 보기는 뭘 봐줘?

정희 : 그러니까 보셔야죠. 친오라버니보다 더 가까운 분이라고 말해놨어요.

두식 : ...그러지 뭐.

정희 : 고맙습니다.

두식 : 뭐하는 친군데?

정희 : 대학에 강의 나가요...

두식 : (버럭) 그거 문제 있는 놈 아냐?

정희 : (놀라) 네?

두식 : 그 나이까지 결혼두 못하구 뭐했대?

정희 : ...

두식 : 잘 살펴봐! 혹시 숨겨논 마누라라두 있는지! 윤실장 순진해 빠져 가지구 내가 참 걱정이야!

정희 : ...걱정마세요.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예요.

두식 : ...(할 말 없다)

정희 : ....수현인 갈 준비 잘 돼 간대요?

두식 : 뭐...잘되겠지.

정희 : 그럼...그만 들어가볼께요.


인사하고 나가는 정희.

초라해지며 우두커니 앉아있는 두식. 담배 꺼내 거꾸로 문다.



#43. 돈까스 가게 앞길 (밤)


안에서 일하는 영은 모습. 다가와 유리문 밖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수현. 한동안 지켜보다가 씁쓸히 돌아선다.



#44. 두식집 외경 (다른날 낮)



#45. 수현방 (낮)


짐 꾸리는 수현. 서랍 열어 이것저것 살피는데 밀레의 만종 그림이 보인다.

들여다보는 수현. 미소 지으며 보다가 소중하게 가방 안에 집어 넣는다.



#46. 동 거실 (낮)


트렁크 들고 이층에서 내려오는 수현. 소파에 앉아 신문 보는 두식.


수현 : 저 갑니다.

두식 : (보지도 않고)

수현 : 아버지,

두식 : 가든지 말든지.

수현 : 건강하세요.

두식 : (신문 넘길 뿐) ...

수현 : 제 얼굴 좀 봐주십시요.

두식 : 뭐 이쁘다구 봐?

수현 : 아버지 아들이잖아요.

두식 : 아들은 무슨! 너같은 놈 없으면 내 명이 십년은 더 길겠다.

수현 : (웃고) 맞습니다.

두식 : (신문 접고 짐짓) 애비 만일 결혼하면, 결혼식 때 잠깐 올 수 있겠냐?

수현 : ...

두식 : 아무리 보기싫은 애비구, 애비 혼사에 자식 참석하는 거 우스운 일인 줄 안다마는...그래두 잠깐 나오너라.

수현 : 봐서요.

두식 : 못된 놈. 내 너 그 대답 할 줄 알았다.

수현 : ...(착잡한) 끼니 잘 챙겨 드십쇼. 술 너무 많이 드시지 마시구요.

두식 : (다시 신문 편다) ...



#47. 수현집 앞길 (낮)


안에서 나오는 수현. 두식 승용차 대기하고 있다.

운전기사, 차 트렁크 열고 짐을 실어준다. 차에 올라 떠나는 수현.

차 떠나고 나면 안에서 허둥지둥 나오는 두식. 허전하게 골목 끝을 바라보고 섰다.



#48. 거리 (낮)


여행가방 여러 개를 잔뜩 메고 지고 걸어오는 영은. 건널목 앞에 선다.

나란히 서서 신호대기 하는 사람들. 앞에 와서 서는 남자 뒷모습이 천상 종수다.

멈칫 하다가 다가가 확인하는 영은. 그러나 다른 사람이다.

신호 바뀌면 사람들 사이에 묻혀 길을 건너가는 영은. 뒤를 힐끗힐끗 돌아보다가 다시 인파 속에 묻혀 걷는다.


영은(E) : 종수오빠...잘 도착했어요? 야자수 그늘 아래서 즐겁게 잘 지내고 있어요?



#49. 버스 정류장 (낮)


사람들 사이에 서서 공항버스 기다리는 영은. 오가는 연인들,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본다.


영은(E) : 여긴 여전해요. 여전히 모두들...사랑하고 미워하고 아파하고 슬퍼해요...



#50. 공항 버스 안 (낮)


한쪽에 앉아있는 영은. 창 밖을 바라본다. 잔뜩 긴장하고 있다.


영은(E) : 저... 오늘 드디어 떠나요...얼마나 먼 덴지, 얼마나 험한 덴지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요...

              가서 한 번 용감하게 부딪쳐볼래요.


창 밖 바라보다가 눈물 글썽 어리는 영은.


영은(E) : 고마웠어요...잘있어요...



#51. 공항 출국 수속대 앞 (낮)


짐 실어보내고 수속하는 수현.



#52. 동 로비 (낮)


신문 한 장 사서 들고 보는 수현. 곰곰 생각하다가 일어난다.

공중전화 부스로 다가간다. 번호 누른다.



#53. 영은집 인옥방 (낮)


울리는 전화벨. 외출 준비 하다가 받는 인옥.


인옥 : 여보세요...

수현(E) : ... 안녕하세요? 조수현입니다...

인옥 : 네에...

수현(E) : 지금 공항입니다...인사 드릴려구요. 찾아뵙구 인사 올렸어야 되는데...사정이 여의칠 못했습니다.


짐짓 담담한 인옥.


인옥 : 아니예요...고마워요...공부 잘하구 잘 다녀와요...



#54. 공항 공중전화 부스 (낮)


통화하는 수현. 잠시 망설이다가.


수현 : 그동안 저 때문에 힘드셨지요? 다 잊으시구 좋은 출발 하세요...

         아무래도 말씀 드리고 가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전화 드렸습니다...그리구...(망설인다)

         영은씨한테두 안부 전해주십쇼... 따로 전화 못하고 떠납니다.

인옥(E) : ...우리 영은이 지금, 거기로 갔어요.

수현 : 네?



#55. 인옥방 (낮)


통화 하고 있는 인옥.


인옥 : ... 우리 딸 잘 부탁해요. 만나서 얘기했어야 되는데...나두 그러질 못했네요...둘이 사이좋게 잘 지내다 와요.....

         그동안 마음이 많이 아팠지요?...이제 아무 걱정말고 편안하게 잘 지내요.


미소 어린다.



#56. 공항 공중전화 부스 (낮)


수화기 들고 있는 수현.


인옥(E) : ...우리 영은이, 많이 아껴줘야 해요...에미가 못한 거까지 다 해줘요. 믿을께요.

수현 : ...

인옥(E) : 듣고 있어요?

수현 : ...


믿어지지 않는다.



#57. 까페 (낮)


전망 좋은 까페 레스토랑. 기다리고 있는 두식. 다가오는 인옥.


인옥 : 많이 기다렸어요?

두식 : 아니다. 앉아라.

인옥 : 막 나오는데...아들이 전화했드라.

두식 : 누가? 수현이가?

인옥 : 네.

두식 : 뭐라 그래?

인옥 : 안부 인사 하데요. 오빠 아들 볼수록 괜찮은 거 같애.

두식 : 괜찮은 놈이라서 내가 지금 이꼴이 됐냐?

인옥 : (웃는다)

두식 : 뭐 먹을래? 마음두 그런데 밥이나 맛있게 먹어보자.

인옥 : (창 밖 본다) 벌써 여름두 다 갔네...바람이 전같지 않아요. 싸하네.

두식 : (허허 웃으며 본다)

인옥 : (메뉴판 보며) 뭐가 맛이 있어요? 배고프다.

두식 : (바라본다)

인옥 : 아유, 이렇게 비싸네...원...


눈물을 쓱 훔치는 두식. 인옥, 고개 들고 보다가 멈칫 한다.


인옥 : 우세요?

두식 : 울긴 누가 우냐?

인옥 : (웃고) 우는데요?

두식 : (외면하고 냅킨으로 눈시울 닦는다) 기뻐서 그런다.

인옥 : (본다)

두식 : 니 귀한 딸 우리집에 줘서 고맙다...나중에 이것들 보러 한 번 같이 가자.

인옥 : 그래요.

두식 : 너 외국 가봤냐?

인옥 : 어...아뇨.

두식 : 비행기는 타봤냐?

인옥 : (굳는) 지금 누구 비웃어요? (메뉴판 팽개친다) 있다구 또 재는 거예요? 이거 촌스럽게 또 왜이래?

두식 : 아니다, 잘못했다...머슴 주제에 내가 잘못했다.

인옥 : (부아나서 본다) 내딸한테 그래봐? 가만 안둬요. 당장 내가 도로 데려와!

두식 : (웃고)



#58. 국제선 공항 앞길 (낮)


공항버스에서 내리는 영은. 짐을 둘러메고 공항 건물을 올려다본다. 긴장된다.

급히 뛰어들어가다가 나오는 남자 한사람과 쾅 부딪친다.


영은 : 죄송합니다! 안 다치셨어요? (굽신) 죄송합니다!


인사 꾸벅하고 다시 다시 짐을 챙겨든다. 안으로 허둥지둥 들어간다.



#59. 티켓 창구 앞 (낮)


달려오는 영은. 주위 살피며 급히 창구로 다가간다.


영은 : (티켓 내밀고) 좀 늦었는데요.. 탈 수 있을까요?


주위를 살핀다.



#60. 공항 출국 게이트 부근 (낮)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영은을 찾는 수현.



#61. 공항 이층 엘리베이터 (낮)


짐 들고 달려올라가는 영은. 주위를 둘러본다.



#62. 출국 게이트 부근 (낮)


들어오는 영은. 사람들 일일이 확인하며 찾는다. 안 보인다. 초조하게 이리저리 살핀다.



#63. 티켓 창구 앞 (낮)


찾아 헤매는 수현. 다시 돌아서서 이층 쪽으로 올라간다. 시계를 본다.



#64. 출국장 로비 (낮)


들어오는 수현. 티켓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일일이 보다가 다시 돌아서서 살핀다.

이윽고 저쪽에서 헤매고 있는 영은을 발견한다. 반갑다. 다가가는 수현.


수현 : 영은씨,


순간, 확 반가워지며 돌아보는 영은. 환하게 웃는 그녀.

인파를 헤치고 다가와 수줍게 마주 서는 그들.

제16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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